학습실 (부제 : 몇 평 안되는 작은 방은 나무들의 무덤인 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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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올라가기 위해

시선을 아래에 얼마나 두고 있었는지 몰라

 

어쩌면 식물원보다 더 많은 나무가

이 좁은 공간 속에 꽉 들어차 있을지도

 

벚꽃 휘날리는 봄 한창에

은행나무를 기르겠다고 버둥대는 저들이 처연합니까

나무로 만들어진 책상들을 나무로 꽉꽉 채우고 또 나뭇잎을 이곳저곳 덕지덕지 붙여

 

글쎄, 잘 모르겠다니까요

저 달려가는 시간을 잡으려면

얼마나 더 뛰어야만 하는지

 

그래서일까요,

피톤치드 가득해야 할 이 공간에서

숨이 이다지도 턱턱 막히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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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 없는 세상에서 품은 시 : 시인 동주, 안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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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로써 들어 가며 그 말로써 하여 가며

 

“한 겨례의 문화 창조의 활동은 그 말로써 들어 가며 그 말로써 하여 가며 그 말로써 남기나니 : 이제 조선말은 줄잡아 반만 년 동안 역사의 흐름에서 조선 사람의 창조적 활동의 말미암던 길이요, 연장이요, 또 그 성과의 축적의 끼침이다.”
– <시인 동주> 20쪽

 

드러나지 않는 생각들을 사유하여 예고운 말들로 풀어내면 활자들은 비로소 제 의미를 찾아 너울댄다. 조금의 끼적임 속에도 감정은 깊이 침잠해있다. 모든 모국어 속에는 그 민족의 역사적 얼이 담겨 있다고 했다. 『우리말본』이 제목에서부터 하릴없는 울림을 주는 까닭은 모국어가 조선어라고 불리는 시대에서 국어로도 불리지 못하는 우리 언어, 우리말을 공부한다는 사실을 각성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줄줄이 설명하지 않아도 늘 뭉클함을 지니고 공부하게 되는 까닭은 그러할 수밖에 없기 때문임을.

 

‘시인, 동주’는 단지 동주 한 사람이 겪어온 수난일지가 아니다. 동주의 삶, 동주의 글은 조국이 식민지로 있는 나라를 위해 강제 징병된 소년을, 정신대로 끌려갔던 무고한 소녀를, 조선인이기에 죄인이었던 그 모든 아픈 청춘들을 기록한 일기다. 윤동주는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고통을 가장 온전히 표현한 인물이었다. 윤동주에게 언어란, 조선어가 금기되었던 시기에 소중히 품은 애국심이었으며 그 자체로 지켜야 할 조국이었다. 처음에 단지 주변을 묘사하고 멋스러운 표현으로 퇴고하는데 목적을 두었던 동주의 시는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을 담고, 조국을 담았으며 후엔 생각을 이어나가는 매개체가 되어 삶을 지탱했다. 그 시대의 모든 이팔청춘들이 그러했듯 시대의 아픔은 자신의 서러움이었으나 억압할수록 강해지는 게 청춘들의 독립의지였다. 동주는 글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력함을 끊임없이 한탄하고 부끄러워한다. 나라를 지키는 방법이 남들과 다르다 해서 어떻게 그 애국의지가 남들보다 적다고 단정할 수 있겠는가. 보통의 걸사들의 삶은 동경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동주의 생활을 읽고 있노라면 가슴 한켠이 아릿하다. 조선어로 시를 썼다는 이유로 수감되어 표현 못할 고초를 당하고 마음에 품고 고이 숨겨왔던 시들을 다시 일본어로 번역해야만 했던 그 수치스러움. 윤동주와 송몽규, 문익환, 정병욱 등 우리의 언어를 사랑했던 문인 독립 운동가들의 삶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일제 헌병들은 동 섣달에도 꽃과 같은, 얼음 아래 한 마리 잉어와 같은 조선 청년을 죽이고 제 나라를 망치었다. 일제 시대에 날뛰던 부일문사 놈들의 글이 다시 보아 침을 뱉을 것뿐이나, 무명의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 시와 시인은 원래 이러한 것이다”
– <시인 동주> 302쪽

 

언어는 지도에도 표시되어있지 않은 조선이란 나라를 온전히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생활은 궁핍해져가기 일쑤였고 가난에 거리에 나앉는 사람들은 늘어났다. 조선의 땅에서 부유하게 사는 조선인들은 찾아보기 힘들었으며 거리에서도 일본어가 더 많이 들렸으니 마음 편히 찾아갈 수 있는 고향이란 이상향일 뿐이었다. 당시 유일하게 이질감 없이 편히 느껴지는 게 바로 언어였을 것이다. 창씨개명으로 이름이 바뀌었을 때에도 꿋꿋이 글을 고집하던 이유를 짐직 예상해본다.

 

언어는 민족성을 유지하는데 큰 기여를 했을 것이며 글은 그만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철학을 담고, 사유를 담고……. 시에는 그 이상의 것도 눌러 담을 수 있었으며 윤동주는 세계를 담았다. 아름다운 우리의 풍경은 우리의 표현으로 가장 잘 작성되어 남을 수 있었고 남루한 주변 환경에 잠식당한 슬픔은 글로써 풀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동주는 세계 여러 나라의 글들을 읽으며 새로운 사상을 접하고 희망을 품었다. 선배 문인들의 애절한 시어들로 위로를 얻었다. 시를 대하는 동주의 태도가 바뀐 것은 존경하던 문인들이 핍박받고 교도소에 수감되던 상황이 아닌 문인협회가 만들어진 때였다.

 

“동주는 결심했다. 잘못된 전쟁을 지지하고 동포들의 고달픈 삶을 외면하는 것이 문학의 길이라면, 가지 않으리라. 감투와 명성을 탐하고 궤변으로 자신의 행동을 미화하는 자들이 문인 이라면, 되지 않으리라. 하나의 시어를 찾기 위해 수없이 버리고 취하는 연마의 과정이 저렇게 쓰이는 것이라면, 더 이상 쓰지 않으리라.”
– <시인 동주> 127쪽

 

시작-詩作을 멈춘 윤동주의 고뇌도 깊었으나 형무소에서 자신의 시를 일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윤동주는 무너져 내렸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상황에서도 끝까지 시를 놓지 않으려 노력했던 동주는 결국 생체 실험으로 눈을 감게 된다. 결국 윤동주는 말로써 들어가며 말로써 하여가던 농도 짙은 삶을 살았던 것이다.

 

조국 없던 이십 칠년 이 개월에 반점을

 

동주의 삶은 하나의 시였다. 늘상 시들이 그러하듯 동주의 시들에서의 온점 또한 이지러진 글들을 정리하는 문장 부호였을 뿐 그 온점이 시의 마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동주의 삶은 하나의 짧은 시였다. 이십 칠년 이 개월뿐이 되지 않는 짧은 시에서 윤동주는 영원한 온점이자 마침표를 찍었으나 훗날 이 또한 시에서의 온점처럼 반점이 되었다. 윤동주는 그의 소중한 작품들을 남기고 떠났으며 생전 그가 남긴 다수의 작품들은 광복 후 70여년이 된 우리에게도 구원을 선사한다.

 

태어날 때부터 조국이 없었던 그에게 애국심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아마 빼앗기고 싶지 않은 삶의 의지와 결합해 독립이라는 더 큰 갈망을 품지 않았을까. 많은 억압 속에서 일본은 끊임없이 조선어를 통제해왔다. 자신이 비로소 자신이 될 수 있는 시간인 시 쓰는 시간조차 빼앗기기 싫었던 게 아닐까. 깊은 내면의 바닥까지 닿아 신을 마주하였을 때 동주는 더 큰 애국심을 가졌을 것이다. 같은 민족이 굶주리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스스로에 대한 괴리감, 스스로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 사랑하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오래 지키고 싶다는 사명감. 같은 민족으로서, 다른 민족에게 억압받고 핍박받는 그 모든 상황을 동주는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생각을, 어질러진 활자들을 제 자리에 배열하며 숨을 불어넣는 시인. 자신에게서 느껴지는 독립의지를 우리말로 기록하는 일, 그것이 동주의 천명이었다.

 

청춘과 십자가

 

“쫓아오던 햇빛인데 / 지금 교회당 꼭대기 /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 처럼 /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윤동주 , 십자가

 

궁극적으로 <시인 동주>는 어두운 암흑 그 중심에서도 문득 싱그럽게 빛났던, 찰나의 청춘들의 이야기다. 동주에게나 병욱에게나 또 그 어느 조선 청년에게나, 고단하고 막막한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에도 문득 싱그럽게 빛나는 찰나의 순간이 있었음을, 그 모든 조선 청년들의 청춘이 있었기에 조선의 겨울은 매섭지만 봄꽃의 씨앗들을 품어낼 수 있었다. 동주는 초봄의 햇살이었다. 매서운 칼바람에 굴복치 않겠다 눈을 녹였으며 선한 꽃을 틔워냈음을 기억하자. 동주도, 시를 품었던 그 소년들도, 내일을 알 수 없는 미래에 괴로워하고 가족들에게 늘 미안함과 고마움을 지니고 살았음을 기억하자.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저마다의 십자가를 품은 청춘들의 길은 신이 함께한 길이었음을.

 

“시인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슬픔과 절망에 잠긴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며, 다른 사람의 아픔을 돌아보지 않는 잔혹한 말들도 여전합니다. 이 책에서 다시 그려본 시인의 삶과 시가,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시인 동주> 318쪽

 

“모든 20대는 자기 시대의 십자기를 졌고 지금의 20대도 지고 있고 다음의 20대는 또 다른 십자가를 지게 될 것이다.”
–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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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_알프레드 디 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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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를 잃어버리는 순간이 있다. 자신의 모습에 괴리감이 드는 순간이 있다. 얕은 관계들 속 수많은 비난은 끊임없는 선택-타인속의 나와 독립적인 내 의견 사이의-과 선긋기를 반복시킨다. 사회 대다수와 떨어진 소수 의견들은 비정상으로 판단된다. 다름은 죄악으로 치부되고 우리는 남들과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을 꺼려한다. 마침내는 스스로 입을 닫는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은 다분히 일상적인 시어들을 ‘타인을 신경쓰지 않고’ 행동하라고 요구한다. 이 시의 미장센-개인의 삶에는 타인의 간섭이 필요 없다는 일련의 흐름-을 통해 독자 자체가 주체적인 삶을 살라는 메시지를 깨우치도록 유도한다. 이 시가 독자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는 이유는 인간 자체가 정서적, 정신 분석학적으로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회피하고자 하는 상황을 그대로 돌파하였기 때문이고 또한 타인에게는 사랑받길 원하면서 정작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다분히 모순적인 난제를 제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인간관계를 통해 나 스스로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다분히 상처를 받으며 무의식중에 타인에게 맞추는 삶을 선택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수동적이고 위선적인 삶을 살고 있는, 그래서 괴리감을 느끼는 필자이므로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으로 하여금 이 시는 누구나 완벽하지 않다, 고. 스스로를 사랑하라, 고. 외면해야 할 것은 스스로의 목소리가 아닌 타인의 목소리다, 고 읽혀진다. 필자는 스스로와 다른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춤추고, 사랑하고, 노래하고, 일하고, 사는 일상적인 행동들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당신의 삶이 진정 당신이 원한 삶이 맞는 것인가, 또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하고.

 

필자는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미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 의견 없이 연명하던 삶은 터무니없이 비약적이었다고 반성한다. 결국 이 시의 2행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 제목이 된 이유는 ‘사랑하라‘가 전체 시를 포괄하는 내용임과 동시에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이 시인이 사람들을 향해 궁극적으로 외치고자 하는 말이었음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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