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플갱어를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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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억-방 안에서 어딘가에 부딪힌 듯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소리의 주인공은 술과 담배에 찌든 사람과 그 사람의 자식인 강세훈 이었다. 보는 사람의 간이 쪼그라드는 상황이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아무렇지 않았다. 세훈은 이 시간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이었고, 세훈의 아빠는 자신이 휘두르는 폭력에 취해 있었다. 참다못한 동생 세준이 아빠를 말려 보았지만 (엄마는 이미 몇 년전에 자신과 동생을 버리고 떠났다) 이미 이성의 끈이 끊어져 괴물이 된 지 오래인 그는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때리다 지쳐 잠들 때까지 세훈을 때렸다. 어느새 힘이 빠진 그가 평온하게 잠들 때 쯤 세훈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하지만 세훈은 온몸 구석구석 밀려 들어오는 고통을 잊게 해 주는 기절 속에서조차 오래 있지 못했다. 깨어나면 또 다시 고통이 밀려들어 오는 지옥 같은 현실로 재빨리 돌아가야 했다. 그래야지만 자신을 괴롭히는 괴물이 깨어나기 전까지 자신이 깨어나야 그 괴물에게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세훈은 괴물이 깨기 전인 시각에 일어났고 잠시나마 동생 세준에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치료 해 주는 동안 세준은 그저 눈물을 꾹 참고 목 메인 소리로 세훈에게 말을 건넸다.

 

“형………미안해”

 

애먼 사람한테 사과의 소리를 듣고 있다.

 

“내가 막아주지 못해서”

 

울컥. 짜증이 밀려왔다. 왜 정작 미안해야 할 그 새끼는 평온하게 자고 있는데 왜 애먼 사람이 나한테 미안해야 하는가……..

 

“야”

 

“응?”

 

“미안하다고 하지 마. 그 새끼 때문에 네가 왜 죄책감을 가지냐?”

 

“하지만 맨날 형만 다치잖아”

 

“나 다치는 것은 내가 간수를 못해선데 왜 네가 사과 하냐고”

 

“…….”

 

“사과 하지 마 내일이면 입장이 완전 뒤바뀔 거니까”

 

응 무슨 소리야? 말뜻을 이해 못해서 어리둥절해 하는 동생을 뒤로 하고 세훈은 집을 나섰다. 자신의 기분과 너무나도 걸맞게 만들어져 있는 어두침침한 집. 하지만 세훈에게 그 집은 고문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고문실을 언제든지 뛰쳐나올 수 있는 자유를 가졌지만 그 동안 써먹지를 못했다. 내가 아니면 그 누가 고문타깃이 될까 불안해하면서……..하지만 더 이상 자신이 지켜줄 사람은 없었다. 동생 세준이도 어느 정도 커서 이젠 자신의 도움이 필요 없어졌으니까….하지만 그것들만이 이유가 아니었다. 어릴 적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 때문에 도저히 가족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지키고 있는 게 가족인지 괴물인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그게 가장 결정적인 이유였다.. 자신이 그 동안 열심히 모았던 100만원이 들어있는 지갑을 들고서 세훈은 집을 나왔다.

 

* * * 

 

세훈은 서울로 가는 버스표를 끊고 차가 출발하기만을 기다렸다. 딱히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자신이 아는 지역 중 가장 유명한 서울로 가는 티켓을 끊었다) 드디어 버스가 출발하고 세훈은 괴물이 없는 곳으로 간다는 생각에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잠으로 빠져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중에서 베스트 1위에 드는 편안한 잠이었다) 버스도 그런 세훈의 마음을 아는지 느릿느릿 가면서 세훈을 깨우지 않으려 애쓰는 것 같았다. 버스의 노력(?) 덕분에 세훈이 깨어났을 때는 서울의 버스 정류장에 주차하는 중이었다. 기분 좋게 일어난 세훈은 버스를 향해 손을 한번 흔들고 곧바로 찜질방으로 향했다. (오후 9시였으므로 잘 곳이 필요했다) 세훈은 처음으로 맥반석 계란의 참맛을 깨달았다. 괴물이 없다는 행복감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맛있는 계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세훈의 컨디션은 최고로 좋았다.

 

* * *

 

다음 날 아침. 누군가가 흔들어 깨우는 느낌에 깜짝 놀란 세훈이 일어났다. 깨어나 보니 병원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옆에는 누구인지 모를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아저씨는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이제 깨어났구나 몸은 좀 괜찮니?”

 

“누, 누구세요?”

 

이게 도대체 말이야 막걸리야 생판 모르는 남이 마치 나를 잘 안다는 듯이 다정하게 대하고 있었다. 평상시의 세훈이라면 그런 다정함이 좋았을 테지만 지금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런 세훈의 기분을 알아챈 건지 옆에 있던 아저씨가 말했다.

 

“도빈아 지금 많이 혼란스럽구나”

 

“대체 누구신데 저를 이곳에 데려왔어요?”

 

세훈의 말 한 마디에 아저씨는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대체 왜 그런 건지 세훈은 전혀 모를 따름이었다. 어리둥절한 세훈에게 아저씨는 격양된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중요한 스케줄 팽개치고 도망가서 어디 갔나 했더니 온 몸에 상처 가득한 채로 대체 왜 찜질방에서 편안하게 자고 있었던 거냐!”

 

스케줄? 대체 무슨 말인가 스케줄이라면 연예인에게 해당되는 말일 텐데…….연예인 제의를 받아보긴 했어도 무조건 다 거절하고 도망쳤던 세훈이 연예인일 리가 없었다.

 

“저기…….혹시 사람을 잘못 보신 거 아니에요?”

 

“장난치지 마라 너랑 지금 장난칠 기분 아니다”

 

“저도 장난칠 기분 아니에요 대체 왜 애먼 사람 데려와서 이러고 계세요!”

 

결국 세훈은 짜증이 듬뿍 묻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생판 모르는 아저씨가 지껄이는 이상한 말을 받아주기에는 세훈의 심신이 너무나도 혼란스러운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아저씨는 화를 내는 대신 갑자기 세훈에게 딜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네가 도빈이가 아니란 말이지?”

 

“걔가 도대체 누군데요”

 

“흠……그럼 이렇게 하자”

 

“뭘요”

 

“지금 너와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가 촬영장을 탈출해서 생돈이 날라가게 생겼어. 그러니 네가 도빈이 대신 촬영장에 들어가 주렴”

 

“제가 왜요?”

 

그러자 아저씨는 대답 대신 돈이 한 가득 들어있는 세훈의 지갑을 꺼내 보였다.

 

“내 지갑….!”

 

세훈이 지갑을 잡으려 손을 뻗자 아저씨는 곧바로 세훈의 팔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잘 들어. 네가 대신 촬영장에 들어가 준다면 지갑도 돌려주고 이것보다 더한 돈을 주마”

 

악마의 유혹이 이런 것이었을까……절대로 거절하지 못할 달콤하다 못해 살살 녹는 제안에 세훈의 고개는 저절로 끄덕여졌다. 그러자 아저씨는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세훈의 팔목을 놓았다.

 

* * *

도빈이라는 도플갱어가 문제를 일으키고 뛰쳐나간 촬영장. 내 도플갱어가 빛어 놓은 사고의 뒷수습을 내가 하고 있다는 생각에 세훈은 억울하지 그지없었지만 자본주의 앞에서 뭔들 못하랴….뒷수습이 얼추 끝나고 담당 메이크업 스텝이라는 분이 세훈의 얼굴에 분칠을 하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받아보는 메이크업에 어색했지만 최대한 가만히 있었다. 메이크업 끝나고 눈을 떴을 때는 어딘가 모르게 불량한 느낌과 어두운 느낌이 섞여 있는 소년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입을 옷도 어두침침한 분위기였다) 그렇게 분장이 얼추 끝났을 때 감독이라는 사람이 세훈을 불렀다.

 

“세훈아 네가 찍을 장면은 되게 짧게 잡았으니까 빨리 끝내자”

 

그리고 찍을 신에 대한 설명이 하기 시작했다. 구구절절 설명했지만 요점은 딱 하나뿐이었다. 아빠에게 구타당하는 신. 세훈이 너무나도 자신 있어 하는 신이었다. 큐! 가 떨어지고 상대방 배우가 마치 괴물이 된 것처럼 행동했다. 그 모습에 세훈은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갑자기 OK 소리가 떨어졌다. 뭐지…….몸을 웅크린 것 밖에 안 했는데….어리둥절해 하는 세훈의 모습은 그야말로 순수한 어린아이 같아서 촬영장은 한 바탕 살살 녹을 것 같은 분위기에 휩싸였다.

 

* * *

 

세훈의 짧은 촬영분이 악마의 편집으로 이리저리 붙여져 드라마의 25분 정도가 나왔다. 홀린 듯이 쳐다보게 만드는 존재감과 신들린 듯한 연기력 덕분에 시청률 40%가 나왔고, 세훈은 ‘괴물신인’ 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때문에 잠깐 촬영하고 휴식기에 들어가야 했던 세훈은 주연 같은 조연으로 자리가 올라갔고 하루도 빠짐없이 연기를 해야 했다. 그 기간 동안 세훈은 점점 불만이 쌓여져 갔다. 이럴수록 내가 자유롭게 돌아다닐 시간이 뺏기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내 도플갱어란 놈은 어딜 그렇게 싸돌아 다녀서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건지…….걔 때문에 내가 회사 먹여 살려야 되잖아 (자신의 연기력 때문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점점 짜증이 쌓여져 가던 세훈이 쉬는 시간 10분 동안 밖에 나갔다. 역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은 좋았다. 중 3때 친구들과 함께 몰려다니며 재미있게 놀았던 추억이 생각났다. 그렇게 한참 추억에 젖어 있는 세훈의 어깨를 누군가 톡 쳤다. 누군가 하고 싶어서 돌아보는데 모르는 여학생이 서 있었다.

 

“대박……도빈 오빠 맞죠?”

 

도플갱어의 이름이지만 지금은 세훈의 이름이 되어 있었다.

 

“네…….맞는데요”

 

“저 여기 사인 좀 해 주시면 안 돼요?”

 

“네? 왜요?”

 

난생 처음 겪는 일이었다. 자신이 갈겨 쓴 듯한 글씨가 갖고 싶다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자신과 여학생 주위에는 어느새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기 시작했고, 그들은 하나같이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눈빛을 발사하며 세훈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동안 어두침침한 고통 에서만 살아온 그에게는 너무나도 혼란스러운 일이었다. 생전 처음 받아보는 따듯한 시선, 자신을 향한 환호, 조심스레 대해주는 다정한 손길. 지하에서만 있다가 처음으로 햇빛을 향해 발을 내디딘 듯했다. 어색했지만 기쁜. 눈부시지만 동시에 따듯한. 그런 기쁨을 처음으로 맛보았다. 한참 동안 팬 사인회 비슷한 걸 하고 나서 세훈은 가벼운 마음으로 촬영장에 복귀했다. (물론 감독님께 한 소리를 들었다.)

 

* * *

“그게 무슨 소리에요? 인터뷰라뇨”

 

톱 스타 대열을 달리고 있는 배우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할 법한 인터뷰였다. 하지만 세훈은 의외로 속마음을 잘 보이지 않았다. 감정이 풍부하다고 극찬을 받는 그였지만 그건 순전히 못 하면 맞을 거라는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그런 그에게 자신의 얘기를 하라고 하는 인터뷰가 좋을 리 없었다.

 

“지금 이 인터뷰 안 나가면 월급 안 준다”

 

“그러시든가요. 안 그래도 더 이상 ‘이도빈’ 이라는 이름 가지고 살기도 싫은데 그 이름 가지고 인터뷰까지 해야 되요?”

 

“네가 그 인터뷰를 나가지 않으면 우리 회사 주가가 폭락한다고”

 

“이미 제 존재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텐데요?”

 

“네 존재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네가 유명한지 모르는 사람은 있을 거다”

 

그러니까 좀 나가 대표의 부추김에 어쩔 수 없이 세훈은 인터뷰를 할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수많은 카메라가 세훈을 주시하고 세훈은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세요?”

 

“엄마, 저, 동생……그리고…..”

 

그 괴물에게 ‘아빠’라는 말은 죽어도 하기 싫었다. (엄마도 싫었지만 마지막은 좋게 장식했던 사람이라서 쉽게 발음할 수 있었다) 그런 세훈의 기분을 눈치 챘는지 기자분은 곧바로 다음 질문들을 던졌다. 그렇게 시원시원하게 넘어가나 했더니 또 하나의 산이 남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제일 좋아하는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은?”

 

첫 번째 질문보다 더 말하기 어려운 질문. 세훈은 감정을 가다듬고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을 힘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세준아 어떻게 살고 있니…….혹시 그 인간이 나에게 했던 것처럼 똑같이 하고 있진 않니? 정말 미안해……변명은 하지 않을게 그 대신 어떻게든 빨리 갈게”

 

사실 하고 싶은 말은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들을 다 말하기엔 죄책감 때문에 견뎌낼 수가 없을 것 같다. 세훈은 죄책감과 정면승부를 하는 대신 덜어내기로 했다. 그리고 그 방법은 곧바로 실행되었다. 세훈은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곳으로 돌아가려고 했을 때 몸이 본능적으로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하지만 동생이 똑같이 당하고 있을 거란 생각은 본능을 억제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렬했다.

 

* * *

“야! 너 지금 통화 되냐?”

 

“그게…..지금은”

 

퍼억-

세훈이 집의 현관문을 열려고 했을 때 또 다시 악몽 같은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순간 핸드폰이 툭 떨어졌다. 액정이 깨질 위험이 있었지만 지금 그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세훈은 다시 한번 고문실에 들어섰다. 설마 동생이 똑같이 맞고 있는 건 아니겠지…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었다. 그 괴물은 자신에게 휘둘렀던 그 야구배트를 가지고 자신의 동생에게 똑같이 폭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자신에게 하는 건 괜찮아도 남이 하는 건 안 된다고 했던가……세훈은 눈에 보이는 것을 집어들고 그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괴물의 머리에 타격을 가했다. 그러자 방금까지도 힘이 펄펄 끓어서 주체를 못하던 그 괴물이 별안간 잠잠해졌다. 잠잠해진 그때 세훈의 귀에는 세준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으으…..”

 

딱 봐도 심각해 보이는 상처

 

“야 강세준! 정신 차려 봐!”

 

“형……”

 

“멍청아! 전화를 했어야지!”

 

“내가 어떻게 그래…..그러다 형 잘못되면 어쩌라고”

 

진짜 더럽게 착한 놈. 고 1씩이나 됐는데도 이렇게 자기 관리 못하고 바보처럼 참고 있으면 어쩌잔 거야……

 

중 2가 되었으니까 충분히 동생이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세훈의 크나큰 오산이었다. 하루 아침에 방어막이 없어지고, 자신에게 온갖 위험이 날아오는 데 그걸 감당 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그리고 그건 이제 겨우 중 2가 된 청소년에게 너무나도 버거운 일이었다. 자신도 힘겨웠던 일을 동생에게 떠넘겼다고 생각하자 세훈의 죄책감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그리고 착해 빠져서 그 동안 형한테 전화 한 번 못한 동생에게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동생에게 온갖 욕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동생은 그냥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런 동생의 모습이 꼭 자신과 닮아 보여서 세훈은 더 짜증이 났다. 마음 같아서는 한 바탕 싸우고 싶지만 지금 병원 가는 게 급선무여서 일단 세훈은 동생을 들쳐업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아빠에게 맞아서 다치면 언제나 병원으로 갔었다. 다행히 몸이 안 잊고 있어서 무작정 내달려도 병원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볼트 급 달리기 실력과 길을 기억하는 지능 높은 몸 때문에 세준은 골든타임과 같은 시간대에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세훈은 수술이 끝나고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동생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바라보고만 있던 그를 누군가가 건드렸다. 뒤를 돌아보니 엄마와 대표, 그리고 개고생 하게 만든 도플갱어가 서 있었다. 순간 욕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너무나도 공손한 도플갱어의 모습에 욕이 툭 들어갔다.

 

“죄송합니다…..저 때문에 일 하게 되셨다고 대가는 얼마든지 달게 받겠습니다”

 

세훈은 자초지종을 설명하라는 듯이 대표를 쳐다보았고, 대표는 자초지종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차분히 설명을 듣고 있다가 세훈은 대표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래서…..저는 이제 일 못하는 거에요?”

 

“흠…..그건 회사에서 처리해야겠지만 .얘는 아이돌로 보내고 너는 그냥 배우로 남아 있는 게 어떨까 싶다. 그 동안 대중들을 속인 건 사과해야겠지만 네게 큰 타격이 안 가게 기사를 낼 것이니 그건 문제 없다고 본다”

 

회사 내에서 독심술이라도 가르치는지 대표의 말은 세훈의 심리를 안정시켰다. 앞으로 생길 문제들은 기록에 남을 정도로 문제가 많이 생기겠지만 그런 불안들도 잠재울 정도로 대표의 말은 단단하고 믿음직스러웠다. 세훈은 피식 웃더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날은 세훈의 인생에서 제일 운이 좋았던 선택이었다.

-도플갱어 편-

 

“컷!”

 

배우로 생활한 지 10년. 아역 때부터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도빈은 이제 조연을 맡아도 주연 급으로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존재감은 마치 꽃에 모여드는 벌들과도 같아서 언제나 수많은 인파를 몰고 다녔다. 어떤 무명 배우들은 그런 게 소원일 수도 있겠지만 도빈은 점점 지쳐갔다. 분명히 관심을 받는 직업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정신적으로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했다.

 

“저기……..괜찮으세요?”

 

지친 그를 보다 못한 상대 배우 한가율이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속은 전혀 괜찮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괜찮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왔던 그였기에 반사적으로 ‘예, 괜찮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다행히 상대방은 집요하게 묻지 않고 대본을 바라보며 대사를 외우기 시작했다. 도빈도 손에 들려 있는 대본을 빠르게 훏기 시작했다. 오늘 그가 찍을 신은 구타 신. 평소의 그라면 가볍게 넘어갔을 테지만 오늘따라 그 신을 찍는다는 부담감이 어깨를 무겁게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그 부담감은 일평생 ‘모범 배우’로 불리는 그가 촬영장을 빠져나가는 몰상식한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뇌 구조까지 180도 바꿔버렸다) 그렇게 한참을 촬영장에서 빠져나와 걷던 그가 어느새 도착한 곳은 ‘공항’ 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찜질방 같은 하루 묵을 수 있는 곳을 선택하지만 일평생 존재감이 희미해져 본 적이 없는 그는 목적지조차 그 지역의 랜드마크로 남다른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는 곳을 골랐다. 뇌도 주인을 닮아서 모든 신경에 자신을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건지 아니면 모처럼 바깥 공기를 마셔서 그런지 그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비행기 타고 도망갈까? 어차피 여권도 있는데’

 

그 생각은 좋게 포장하면 ‘자유로운 생각’ 이고, 나쁘게 말하면

 

미친 생각이었다.

 

다행히 일평생 돈의 부족함을 모르고 살아온 그였기에 여권은 핸드폰 가지듯이 가지고 다녔고, 지갑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지갑 속에는 적어도 수표 한 장은 있었다.) 이렇게 완벽한 재벌의 삶을 내려주신 것은 아마도 지금을 대비한 것이리라 생각한 도빈은 망설이지 않고 자신이 가고 싶었던 나라 중국을 클릭하고, 재빠르게 표를 구했다. 또한, 준비성은 개를 주더라고 관리 하나는 타고 난 그였기에 재빨리 약국에 가서 황사 마스크 하나를 구입했다. 촬영장이 걱정 됬지만 어차피 그 신은 갔다와서도 찍을 수 있는 신이었다.

 

* * *

-한국 입국 날-

 

입국 D-DAY. 이날 도빈은 대표님의 부재중이 잇는지 전화기를 확인했다. (대표님의 부재중 전화가 한 통이라도 있을 경우 엄청난 손해가 있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행운의 신이 평생 쓸 행운을 지금 이 순간에 몰빵했는지 부재중 전화는커녕 회사에 관련된 문자 하나 없었다. 뭔가 살짝 씁쓸한 순간이었지만 세상 무서운 게 대표님밖에 없는 도빈은 씁쓸한 순간을 일명 ‘긍정 파워’로 날려 버렸다. 도빈은 그렇게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으므로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캐리어를 현관 한쪽에 세워둔 뒤 겉옷을 얌전히 벗어둔 도빈은 소파에 이 보다 편한 자세는 존재할 수 없을 정도로 편하게 앉았다. 리모컨으로 TV를 켜 채널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중 도빈은 깜짝 놀라 리모콘을 떨어트렸다. 분명히 자신이 촬영장에서 뛰쳐나와서 분량을 못 찍었을 텐데 자신의 얼굴로 자신보다 매끄럽게 연기를 하는 사람을 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사람은 자신이 나가기로 되어 있던 인터뷰에 나가서 마치 내 행세를 하듯 인터뷰를 이어 나갔다. 그 사람의 인터뷰에는 아빠를 향한 증오심이 묻어났다. 그렇지만 자신은 아빠를 증오해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존경스러웠다. 언제나 일 처리는 신속했고, 가족들에겐 한없는 사랑을 듬뿍 쏟아 부었고, 아무리 힘들어도 언제나 자신을 절제하며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어릴 때 막무가내였던 자신을 언제나 타일러 주며 부드럽게 제제하고 신사적인 행동을 하게 인도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런 완벽한 아빠의 모습만 보고 살아왔던 도빈에게는 아빠를 저렇게 증오할 수가 있나 생각이 들었다. 화면 속 자신의 모습은 ‘아빠’라는 두 글자도 발음하기 힘들어할 만큼 아빠를 증오했다. 직접적으로 감정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보는 사람이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만큼의 엄청난 감정이었다. 그래서 그랬던 걸까? 아빠를 증오하는 신에서 그렇게 매끄럽게 연기를 한 게……

 

* * *

다음날 아침. 도빈은 대표님한테 전화를 걸었다. (자신의 이름을 쓰고 자신의 흉내를 내는 도플갱어의 정체가 너무 궁금해서였다)

 

“여보세요?”

 

“대표님 어떻게 된 거에요?”

 

“뭘 어떻게 되. 너 닮은 애 찾아서 겨우 메꿨지”

 

아~ 그 말 한마디에 납득이 되 궁금한 게 싹 풀려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 도빈 이었다. 전화기에서 더 이상 도빈의 목소리가 흘러 나오지 않자 대표는 거꾸로 도빈에게 궁금한 걸 물었다. (물론 거의 닦달 톤이었다)

 

“얌마 그런데 너는 촬영장을 왜 뛰쳐나갔냐?”

 

“네?”

 

“뭐가 ‘네?’야 너 촬영장 뛰쳐나가서 내가 너 찾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아니 사람을 시키시지….”

 

“내 밑에 사람이 다 일 나가서 내가 대신 나갔다! 이 미X놈아!”

 

“제 매니저 형 있잖아요”

 

“걔 휴가 보내도 된다고 했던 게 누구였더라?”

 

아…….새삼스레 대표한테 미안해지는 도빈이었다.

 

“그런데 저 닮은 애는 어디서 찾으셨어요?”

 

“요즘에 그….시간낭비서비스(SNS)가 유행이잖냐? 얼굴책에서 어떤 애가 너 닮은 애 너로 착각해서 사진 찍어 보냈더라”

 

다시 한번 얼굴책의 위대함을 깨닫는 도빈이었다.

 

“그나저나 그분한테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네요”

 

“당연하지! 걔가 너 때문에 이유 없이 사과도 했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요”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어했던 현실에서 비어버린 제 자리를 맡아주신 거잖아요”

 

“그래 그럼 내가 얘한테….”

 

잠깐 동안 대표의 말이 끊어졌다. 아마도 누군가에게 뭔가를 전달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왜 그러세요?”

 

“야 도플갱어가 어떤 행동을 하면 또 다른 애가 그 행동을 반복하냐?”

 

“아니요? 그런 얘기 못 들어봤는데?”

 

“이 새X도 촬영장 탈출했대!”

 

“네?”

 

뭐지? 도플갱어의 법칙이라는 것도 존재했었나? 아니면 존재했는 데 내가 모르고 있었나? 한참 동안 혼란에 빠져 허우적대던 도빈은 겉옷을 챙겨 들었다. 자신의 얼굴을 한 도플갱어를 만나기 위해서……

 

* * *

따르르릉~

 

“여보세요?”

 

“대표님 도플…”

 

“걔 병원에 있대!”

 

도대체 밖에 다칠만한 요소가 뭐가 있지? 그냥 자기 혼자 넘어져 무릎이 까졌을 때 병원 갈 일을 없을 테고…..속으로 밖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사고들을 어림잡아 보던 도빈에게 다시 대표의 말 전화기 저 너머에서 흘러나왔다.

 

“야! 김도빈!”

 

“예! 대표님 왜요?”

 

“얘 OX병원에 있대!”

 

도빈은 서둘러 택시를 잡아타 OX병원을 찾아갔다. 병원 주차장에서는 몇 년 동안 보아왔던 하물며 방금까지 목소리도 들었던 대표가 도빈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와~촬영장에서 이 병원까지 이렇게 가까운 거리였어요?”

 

“몰라! 이 녀석이 걍 버스 타고 가더니 여기로 왔어!”

 

“아니 왜 버스를……”

 

도망가고 싶으면 비행기를 타면 되지……라는 속 터지는 말을 하는 도빈의 뒤통수에 대표가 온갖 짜증과 울분을 가득 담아 후려쳤다.

 

“아 왜 때리세요!”

 

“비행기? 얌마! 세상 사람들이 너처럼 부자도 아니고 생각 없는 놈도 아니야!”

 

“부러우신 거죠?”

 

“생각 없는 놈을 내가 왜 부러워 해! 그만 말하고 빨리 병원으로 들어가!”

 

칫-입술을 한번 삐죽인 도빈이 도플갱어가 있는 층의 버튼을 누른 대표를 따라 조용히 걷기 시작했다. 병실 문이 열리고 드디어 만나고 싶었던 화면 속 도플갱어와 마주쳤다.

 

“아……”

 

도플갱어와 모습은 똑같았지만 분명히 어딘지 모르게 달라 보였다. 자신이 상황에 따라 뇌 구조와 성격이 자유자재로 바뀌는 카멜레온이라면 이 도플갱어는 그저 바뀔 줄 모르는 우직한 나무 같았다. 신기할 틈도 잠시……이분이 자신의 일을 대신 해 주셨다고 생각하면 죄송스러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평소에 남들한테 보여주던 예의 바른 그 모습 그대로 공손하게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저 때문에 일 하게 되셨다고 대가는 얼마든지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화를 내는 대신 자초지종을 설명하란 듯이 대표를 바라보았다. 대표는 한숨을 내쉬더니 자초지종을 아주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조용히 듣고 있더니 대표에게 자신이라면 내 뱉지 못할 말을 했다. (물론 도빈은 속으로 경악했지만 일평생 배우의 기질을 타고난 그였기에 평온함과 다름 없어 보이는 표정의 가면을 쓰고 차분히 행동했다) 대표의 화술과 도플갱어의 무조건적인 신뢰로 내 도플갱어는 우리 회사와 계약을 하게 됬다. 저거저거 얼마나 힘든지 알고 저러는 걸까…….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젓는 도빈을 보며 도빈의 도플갱어가 손을 내밀었다.

 

“고마워요”

 

“네? 왜요?”

 

“제가 도망치고 싶었던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천국을 맛 보게 해주셔서”

 

“그건 제가 할 말인데……뭐 어쨌든 저도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도빈은 내 도플갱어의 손을 잡았다. 도플갱어는 살짝 당황하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아까는 몰랐는데 도플갱어의 웃는 모습은 자신보다 더 예쁘다고 생각했던 도빈이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도빈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던 부담감은 사라져 있었다.

-세준 편-

 

딩동댕동~

 

단축수업으로 학교가 일찍 끝난 세준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따른 애들 같으면 좋아했을 단축 수업이지만 세준에게는 너무 싫은 순간이었다. 차라리 23시간을 공부만 한다고 해도 집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쨍그랑-

 

집 안에는 가족들을 괴롭히는 괴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괴물의 사회적 지위는 ‘아빠, 남편’ 이었다. 하지만 체감 지위는 ‘괴물’ 이었다. 인간에서 괴물로 언제 변했는지 기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변한 시기가 아니라 구타 수가 점점 증가하는 게 문제였다. 이제는 하루도 빠짐없이 누군가를 때렸다. 그리고 그 괴물의 구타를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의 형 ‘강세훈’ 이었다. 처음에 세훈은 보는 사람이 더 괴로울 만큼 아파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무표정으로 담담하게 저 구타를 감당했다. 그런 세훈을 보기가 괴로워서 한번은 아빠를 저지하려 했다. 하지만 아빠의 앞을 가로막는 세준을 세훈은 거칠게 밀어버렸다. 그 순간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세훈이 세준은 한 없이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나중에 물어보니 미운 마음을 품고 있었던 자신이 증오스러울 만큼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때 너가 아빠 막게 놔 뒀다면 아빠가 너 때렸을 거야”

 

그 새끼가 때리는 건 나 하나로 충분하지 않냐? 라면서 힘겹게 웃어 보이는 세훈의 모습에 세준은 더 마음이 아프고, 자괴감에 빠져 들었다. 나를 때리면 자신에게 오는 충격은 덜해질 텐데 자신의 동생이 그 사람한테 맞는 게 싫어서 오로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렇게 자신을 밀어내고 자신이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 * *

퍼억-

오늘도 그 괴물의 구타가 이어졌다. 그런데 뭔가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괴물의 상태는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바가 없지만 자신의 형이 조금 이상했다. 세훈의 감정이 표정 위로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주 옛날부터였지만 오늘은 왠지 알게 모르게 입가에 비틀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물론 아주 미묘하게 비틀린 입 꼬리였다) 그리고 상처를 치료해 줄 때도 뜻을 모르겠는 말만 하고 집을 나섰다. 그때까지만 해도 세준은 세훈의 말뜻을 이해 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정이 넘고, 형이 돌아올 시간보다 한참이 지나서야 세준의 머릿속엔 문득 이 생각이 들었다.

 

‘혹시 형이……가출했나?’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고 했었나? 그 말을 만든 사람은 이미 이 세상의 모든 이치를 깨달은 사람일 것이 너무나도 분명했다. 다음날. 그 다음날이 되어서 그 괴물이 외박해서 다시 돌아올 때까지도 세훈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괴물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세훈을 찾았다. 하지만 불러도 대답없는 상황이 이상하게 여겨져서 그 괴물은 세준에게 물었다.

 

“얌마. 그 새X 어디 갔냐?”

 

대답하면 불길한 예감을 확인될 것 같아 세준은 우울한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하지만 그 괴물에게는 애시 당초 눈치나 공감하는 능력이 탑재되어 있지 않았기에 그런 세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세준의 뺨을 인정사정 없이 갈겼다.

 

“이게 지 형보다 더 말 안 듣네? 인마, 너네 아버지가 말하면 대답을 해야 할거 아냐”

 

아버지라고 불릴 만한 자격도 없는 괴물이 자신을 감히 ‘아버지’라 칭하고 있다.

 

“안 되겠어 너 오늘 각오해라”

 

그가 내뱉는 폭력의 언어는 절대로 어긋나는 법이 없었다. 또한 괴물의 구타는 어느 누구보다 셌다. 그래서인지 세준의 몸은 본능적으로 벌벌 떨렸다.

 

“윽!”

 

보던 것보다 맞는 것의 고통은 강도가 달랐다. 그 괴물의 주먹이 한번 몸에 내리꽂힐 때 뼈가 부서지는 느낌이었고, 그 괴물의 발이 올라갈 때 몸 속 어딘가에서 뭔가가 터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점점 더 세지는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세준은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괴물의 구타는 세준의 방어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그것을 억지로 풀어버리고 고통의 강도를 더 높였다.

 

* * *

“야 너 괜찮냐?”

 

세준의 친구 현유가 말을 걸어왔다. (세준이 자신과 닮은 면이 하나도 없어서 자석처럼 끌려 제일 친한 친구가 된 상태였다) 다른 사람 같으면 ‘괜찮겠냐?’라고 응수했겠지만 천성이 착하기로 따지자면 이 세상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천사일 정도로 착했다. 그래서 카칠하게 응수하는 대신 세준은 고개를 돌렸다.

 

“괜찮은 거 아니면 조퇴해라”

 

“…..아픈 거 아니야”

 

“거짓말”

 

너의 거짓말은 진실이 겉으로 떠오르기 때문에 아주 쉽게 거짓과 진실을 구별할 수 있어

 

“진짜래도”

 

“속일 사람을 속여라….내가 너만 몇 년을….너 왜 울어? 너무 아파?”

 

“….미안해서”

 

“야 일단 모자로 머리 뒤집어 쓰고 나와”

 

(친구를 배려할 줄 아는 신사 중의 신사) 현유는 옥상 정원(둘의 아지트)에서 흐느끼는 세준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을 걸었다.

 

“도대체 누구에게 미안한대? 네 형?”

 

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 사람이? 널 버렸는데?”

 

“날 버린 게 아니야 형은…..”

 

너무 힘들어서 도망친 거야…..더 이상 버틸 수가 없으니까 고집스럽게 버티다간 온몸이 조각조각 나서 부서져 버릴 만큼 약해졌으니까…..그렇게 말하는 세준의 의도는 사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것이었다. 내가 형한테 버려질 만큼, 지킬 가치도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형은 그저 너무 약해져서 잠시 동안 떠나 있는 거라고…..그리고 떠나 있는 동안 형도 그렇게 행복해하지는 않을 거라고….그렇게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너무 비참해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세상 누구보다 세준은 형을 의지했었다. 자신을 지켜줄 것 같으니까……형이 다치는 모습을 보면 고통스러웠지만 그와 동시에 마음 한 구석에는 알게 모르게 형을 향한 신뢰가 피어났다. 그 신뢰라는 감정은 세훈이 다치면 다칠수록, 세훈이 세준을 위로할수록 그 순간들의 감동들을 먹고 무럭무럭 피어나서 이제는 세준의 삶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훈이 세준을 버린 순간부터 신뢰라는 감정은 점점 시들시들해 갔다. 세준이 애써 위로라는 감정으로 힘겹게 신뢰를 다시 키워 보려고 했지만 이미 마음에는 의심이라는 감정이 싹을 틔우고 있었다. 신뢰가 힘을 잃어가면 잃어갈수록 의심이라는 감정을 마치 그 감정의 생명력을 빨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듯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의심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곧바로 절망이라는 감정을 창조해냈다. 절망은 무력이라는 감정을 무력감은 파멸이라는 결과를 낳으며 계속 번식해갔다.

 

* * *

쨍그랑-

 

세준이 들고 있던 컵과 신뢰가 부서지는 파열음이 집안을 울렸다. 밤 9시 드라마 ‘불량 소년’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세준은 형이 자신을 버리진 않았을 거라고 어둠 속에서 희미한 희망이라는 빛을 잡고 지금까지 버텨왔다. 하지만 세훈이 자신을 버리고 TV 속에서 행복하게 연기를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이로써 세준의 삶을 지탱해오던 희망은 그 빛은 완전히 잃었고, 세준의 몸은 끈이 끊어진 줄 인형처럼 툭 쓰러졌다. 한참을 그렇게 쓰러져 있던 세준의 머리는 번개충격과 흡사한 충격을 먹었는지 아니면 세준의 삶과 함께 암전 속으로 들어가기로 작정을 한 건지 그나마 일말의 희망이 있었던 전의 생활이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행복한 추억은 물론, 희망이 잠시나마 있던 시절까지 싹 다 뇌에서 삭제되었다. 삭제된 그 자리에 세훈에 대한 새로운 기억이 저장 되었다.

 

[예전에는 좋은 형이었으나 지금은 나를 버리고 행복한 존재]

 

그리고 자신에 대한 생각도 바꾸었다. 예전에 ‘희망이 있어서 잘 살아가는 존재’ 였다면 지금은…..

 

[이 세상에 있는 어느 누구도 환영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버림 받는 존재]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을 받으며 자라나야 할 청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쓰라린 자신의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 세준의 머릿속에는 온통 자신에게 할 수 있는 온갖 지독한 말들로 가득 차 있어서 쓰라릴 틈조차 없었다.

 

‘인간 쓰레기 같은 놈. 도대체 넌 왜 태어난 거야? 부모가 낳아줘서? 야, 부모가 너 같은 걸 낳고 싶었겠냐? 과학이 아직 발달하지 않았으니까 자연 임신으로 어쩔 수 없이 너를 낳았겠지. 너네 부모가 이런 걸 상상이나 했겠어? 세상에 자신이 10달 동안 키워온 생명이 고작 쓰레기라니…..왜? 지금 내가 너 자신을 소중히 하지 않는다고 자존심 상해? 야 소중히 할 만한 사람을 소중히 하지 너 쓰레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 봤냐? 차라리 쓰레기가 낫지. 쓰레기는 그래도 한 때는 각종 물건들을 포장했었으니까 쓸모 있었다 치고, 너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떤 부분이 쓸모 있었냐? 엄마 도망가게 만들고, 형 방어막으로 삼으면서 너 안 맞았다고 좋아하고,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이건 형이 맞아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형을 향한 신뢰야 라고 세뇌 하기는….이래서 너 같은 인간 쓰레기는 그냥 쓰레기통 같은 무덤이나 납골당 같은 데 조용히 짜져 있어야 해. 아. 납골당 같은 것도 좀 과분하려나? 인간 쓰레기를 한 공간에 고이 모셔 놓다니….그냥 너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려라. 그것밖에는 답이 없다. 그냥 이 세상에서 꺼져버려!

 

한참을 지독한 말로 자신을 찔러대던 세준은 괴물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오자 조용히 눈을 감았다. 괴물이 건방지게 일어나지 않는다고 자신을 때려도 좋았다. 아니, 차라리 이대로 때려서 자신의 목숨을 조용히 거둬 가 줬으면 하고 세준은 어느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다.

 

* * *

‘이거 꿈이지?’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믿기지가 않았던 세준은 꿈이라고 믿어버렸다.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는 핏물 사이로 희미하게 형이 보였다. 세준이 그토록 바랬던 형은 어디선가 나타나서 괴물의 머리를 가격해 쓰러트리고 자신의 머리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선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그러다 별안간 세준의 고막이 찢어질 듯한 소리로 세훈이 말했다.

 

“멍청아! 전화를 했어야지!”

 

지금 이 순간만큼은 형이 밉지 않았다. 비록 꿈이어도 형은 왔으니까 세준은 그 동안 쌓아왔던 원망을 터트리는 대신 마음 깊이 숨겨져 자신도 몰랐던 진심 중 하나를 터트렸다.

 

“내가 어떻게 그래…..그러다 형 잘못되면 어쩌라고”

 

자신이 들어도 미련해 보이는 음성에 세훈은 세준에게 온갖 원망을 쏟아냈다. 한참을 세훈이 쏟아붓는 원망의 감정을 묵묵히 듣고 있던 세준의 몸이 갑자기 땅에서 떨어졌다. 자신의 다리가 세훈의 팔에 단단히 고정되었다. 세준은 이 꿈에서 깨고 싶지 않다는 듯이 세훈의 목을 꽉 감싸 안았다. 마치 세훈이 자신이 깨고 싶지 않은 꿈인 것 마냥……..

 

* * *

세준에게 지난 몇 달간은 그냥 순식간에 벌어졌었던 꿈 같았다. 세준이 자신의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바늘을 느꼈을 때가 마지막 기억이었다. 깨어나 보니 형이 자신의 옆에 앉아 있었다.

 

“형….?”

 

“이제 일어났냐?”

 

“어떻게 된 거야?”

 

“뭘 어떻게 된 거야 돌아왔지”

 

“그럼 형이 아빠를 때린 게 꿈이 아니라는…..”

 

“그 괴물 한 대 맞고 벋어서 나도 좀 당황하긴 했는데 기절한 거였드라 아마도 대표님이 신고 했으니 이번엔 감옥 갔을 거야”

 

“잠시만……대표님이라고?”

 

“너 TV에서 나 안 봤어? 나 연예계에 취직됬어”

 

믿기지 않는다는 세준에게 세훈은 자랑스레 대표의 명함을 내밀었다.

 

“헐~정말이야?”

 

“이 상황에서 굳이 거짓말 할 필요가 있을까?”

 

“우와오아와와오아와와와!!!!”

 

“야야 이제 형이 너 자주 못 보는 데 뭘 그렇게 좋아하냐?”

 

“그래도 너무 좋은 걸…..”

 

“됐고”

 

갑자시 세훈은 브로마이드 같은 걸 세준에게 던졌다. 국내 최고의 명문 학교의 정보가 담겨 있었다.

 

“이거….뭐야?”

 

“형이 너 못 보살펴 주니까……거기는 기숙사도 있대”

 

“이걸 내가 어떻게 가”

 

“너 공부 잘하지 않아?”

 

“나 평균 90인데…..”

 

겨우 90점 간당간당 한데 어떻게 여기를 가……라고 말하는 풀 죽은 세준의 귀를 세훈이 쭉 잡아 당겼다.

 

“얌마 지금까지 불행하게 살았으면 학벌이라도 좋아서 인생 펴야지 이 자식아 안 되면 내가 손 쓰지 뭐”

 

장난스럽게 투닥거리는 세훈에게 세준도 오랜만에 장난끼가 발동해 세훈에게 헤드록을 걸었다. 그렇게 햇살은 오랫동안 두 사람의 웃는 모습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미래는 밝은 햇살이 영원히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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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예린은~뱀파이어래요~뱀파이어래요~”

“저 아이 뱀파이어래…..”

“헐~그럼 사람 피를 막 뽑아 마시는 거야?”

“쟤한테 피 빨린 애 한둘이 아니라는데? 전부 다 토막살인 돼서 놀이터에 파묻혔대”

“헐~대박 개소름 돋았음”

 

“그만………..그만!”

 

예린은 오늘도 악몽에 뒤척이다가 힘겹게 눈을 떴다. (분명히 말하면 꿈은 아니었다. 그저 예전에 있었던 악몽 같은 시간들이 예린의 머릿속에서 꿈으로 재생되었을 뿐이었다) 예린은 땀 때문인지 악몽 때문인지 모를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 속에 비친 예린의 모습은 누가 봐도 뱀파이어 그 자체였다. 하얗다 못해 창백하게 질린 피부며 , 새빨간 입술이며, 결정적으로는……….

 

“하…….이 송곳니 진짜 꼴 보기 싫어”

 

입을 벌리면 바로 알아챌 수 있을만한 뾰족한 송곳니 때문이었다. 이러한 생김새 때문에 예린에 대한 소문은 별의별 걸로 다 만들어져서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때문에 예린은 아이들의 경멸과 공포가 섞인 따가운 시선들을 다 받아내야 했다. 점점 더 이상한 구조로 바뀌어져 가는 상황을 바꾸어보려고 노력해 봤지만 소문이라는 녀석은 은근히 끈질겨서 쉽사리 놓아주질 않았다. 결국 소문은 예린에게 ‘무기력’ 이라는 녀석을 남겨줬고 오늘도 예린은 이 녀석을 데리고 등교를 해야 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등교부터 예린에게 따가운 시선들은 한 가득 쏟아졌다. 가까스로 무시하고(대항해 봤자 바뀌는 건 없었다) 교실로 들어왔다. 들어온 예린은 책상 밑부터 살폈다. 오늘은 쓰레기와 함께 구겨진 포스트잇들이 예린을 반겼다. 포스트잇들에는 역시 예린을 두려워하고 경멸하는 내용들이 담긴 문구가 가득 실려 있었다. 이런 문구들은 고등학교 들어오고부터 계속 받았지만 마음은 쉽사리 아픔에 무뎌지지 않았다. 마음은 왜 이리 예민해서 쉽게 상처를 받는지……..평소처럼 쓰레기 청소로 시작하는 오늘이었다. 아마도 오늘 하루도 역시 여유로운 척 쏟아지는 시선들을 무시해야 할 것이다. 예린은 담담한 척 책 한 권을 꺼내 읽었다. 책에 집중하다 보면 다행히 현실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잠시 잊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 평소보다 더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 때문에 책에 집중할 수 없었다. 주제는 ‘전학생’이었다. 잘생겼냐느니 키가 크냐는 등의 시답잖은 얘기였다. 예린이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다시 책에 집중하려는 순간 어떤 애가 한 말이 귀에 들어왔다.

 

“맞다, 그런데 걔 약간 좀 뱀파이어 같이 생기지 않았냐?”

 

보통 사람이면 그냥 넘길 얘기였지만 예린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한 한 마디였다. 그날 점심시간. 예린의 눈은 자동적으로 뱀파이어 전학생(예린이 지은 임시 특징이었다)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뱀파이어처럼 생긴 아이는커녕 송곳니 하나 뾰족한 아이가 없었다. 대체 왜 꼭 찾으려는 것은 늘 안 보이는지……..그만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한 예린이 몸을 돌리자마자 누군가와 부딪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은 예린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토록 찾아다니던 전학생이었기 때문이었다. 창백하게 질린 피부, 새빨간 입술. 입을 벌리지 않았기에 안 보이지만 뾰족한 송곳니도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예린과 같이 뱀파이어적(?)으로 생긴 남학생이었다. 하지만 뭔가가 달랐다. 적어도 이 아이는 자신과 다르다고 배척하는 이 사회에서 충분히 살아남고도 남을 정도로 강해 보였다. 자신을 훑어보는 예린의 시선이 불쾌했던지 이 남학생의 미간에 주름이 그려졌다. 그제서야 예린은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기 위해 입을 열었는데 바로 그 순간 남학생이 예린의 이마를 가운뎃 손가락으로 짚었다. 무슨 짓이냐고 따져물을 겨를도 없이 그 남학생은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 순간 예린의 몸이 어느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 * *

 

“으으………여긴 어디야?”

 

예린은 신경질적으로 정신을 차리며 일어났다. 예린은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새까만 밤하늘에 별을 수놓은 듯 한 커튼, 선반 위의 여러 가지 영롱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신비한 유리병들, 한참을 정신 놓고 보던 예린은 갑자기 사고회로가 멈췄다. 내가 아는 장소가 아닌 이곳은 내가 모르는 곳이라는 걸……..언제부터 내가 이곳에 있었던 건지…………..이곳에서 예린이 감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딱 한 가지 밖에 없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것.

 

비명 소리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아까 예린이랑 부딪혔던 남학생이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내가 왜 여기 있어?”

 

그러자 그 남학생은 웃으면서 말했다.

 

“여기가 네가 있어야 할 곳이니까”

 

이건 도대체 무슨 소리인건지………알 수 없는 말 한 마디를 뱉고 그 남학생은 예린을 혼자 남겨두고 나갔다. 예린은 혼자 있는 게 싫어 남학생을 붙잡으려 따라 나갔다. 그러자 예린의 눈에 판타지 영화 촬영장을 CG까지 그대로 입혀서 갖다놓은 듯 한 광경이 펼쳐졌다. 등 뒤에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는 인간들부터 핏빛 와인을 송곳니로 마시는 뱀파이어들까지……….이 상황이 어색한 건 나뿐인가? 라고 생각한 예린은 그 남학생에게 물었다.

 

“저…….저기 여긴 어디야?”

 

그러자 한참을 예린에게 등을 보이며 걸어가던 남학생이 몸을 돌려 예린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내 이름은 카멜이야……….카멜레온처럼 변장이 뛰어나서 붙여진 이름이지…….그리고 여기는 네가 살던 곳이고”

 

“뭐? 난 여기서 산 적이 없어. 내가 살던 집은 주택이라고”

 

“흐음……….이곳에서 네 위치나 정보부터 확실히 설명해줘야겠네…..”

 

“너는 지금 이 뱀파 제국을 다스리는 최고 권력자인 이완 국왕의 딸이자 이 제국의 공주이지, 하지만 잘못한 일이 있어서 인간 세계로 잠시 쫓겨났고, 오늘이 너의 기간이 풀리는 날이기에 내가 데려온 거야”

 

“그럼……내가 이 나라의 공주란 말이야?”

 

“응. 나는 지금 너를 데리고 이완 국왕께 데려가는 거야”

 

“잠시만………..그러면 오늘 바로 데려와야지 왜 점심시간까지 기다리게 한 거야?”

 

“너 찾기가 쉬울 것 같냐?”

 

너무나도 쉽게 말을 뱉지만 이해 안 되는 말 투성이인 카멜의 말을 예린이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이곳의 뱀파이어들이나 이해하지 나 같은 정상인에게 그런 말이 곧이곧대로 들릴 리 없잖아! 라고 예린은 생각했다. 하지만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 법. 예린은 일단 카멜이 가는 대로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이완 국왕님?”

 

“카멜 왔는가?”

 

‘응? 잠깐 나라도 아니고 제국 정도의 국가를 다스리는 왕한테 뭐가 그렇게 가벼워?‘

 

하지만 커튼을 걷어 올리자 예린의 그 생각은 바로 깨지고 말았다. 무게감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국왕은 10대처럼 소년 같은 외모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나면 누나지 절대로 니보다 나이가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예린은 국왕에게 인사도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예린의 마음을 꿰뚫어 본 이완은 예린에게 말을 건넸다.

 

“이놈의 딸 자식 봐라? 아빠한테 인사도 안 올리네?”

 

꼭 어린아이에게 그런 말을 들은 것 같아 기분이 나빠진 예린은 이완에게 톡 쏘아 붙였다.

 

“아빠긴 누가 아빠에요? 딱 봐도 나보다 나이 적어 보이는 데 누나라고 부르시는 게 어때요? 그 대신 존댓말은 써 줄게요”

 

그러자 갑자기 이완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변신이 끝났을 즈음엔 이완은 호탕해 보이는 미 중년으로 변해 있었다.

 

“어때? 이래도 너네 아빠로 안 보이냐?”

 

“아…………..”

 

“딸 많이 변했네? 너도 인간들에게 물들어서 고작 이 시시한 외면 때문에 진짜 중요한 걸 못 보는 거야?”

 

“아…..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 외모 지상주의가 얼마나 심한 사회에서 자라 왔는데 내면 따위를 중요하게 보겠어?

 

이런 말들이 목구멍부터 올라와서 입 밖으로 미친 듯이 나가고 싶어 했지만 예린은 가까스로 그 말을 삼켜냈다. (그 말을 하면 더러운 인간세상에서 왔다고 자신을 경멸할 게 뻔했다)

 

“안 되겠다. 카멜”

 

“네?”

 

“네가 지금부터 조금 더 잘 가르쳐줘라”

 

하……알겠습니다. 하고 말한 카멜은 곧바로 예린의 손목을 잡고 어느 상점으로 끌고 갔다. 가게는 마치 마법사의 상점처럼 신비로웠다. 그저 평범했던 외부와는 달리 내부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것들 투성이였다. 예린을 한참을 그냥 넋 놓고 상점 안을 둘러 보았다. 그런 예린을 한동안 지그시 주시하고 있던 카멜을 옷을 하나 꺼내왔다. 그 옷을 받아든 예린은 순간 깜짝 놀랐다. 회색 옷의 뒷면에 구멍 2개가 숭숭 뚫려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멀쩡한 옷을 어떻게 했기에 구멍이 걸레처럼 숭숭 뚫린 건지………….하지만 더 황당한 것은 카멜의 태도였다.

 

“뭐해? 어서 안 입고?”

 

“지금 나보고 이걸 입으라고?”

 

“그럼 뭐하라고 줬겠냐”

 

“좀 더 정상적인 옷 없어? 이렇게 구멍 뚫린 거 말고”

 

“내가 생각 없이 그 옷을 가지고 왔겠냐? 됐고 저기 탈의실 가서 입고 오기나 해”

 

그리고는 손끝으로 보라색 커튼이 달린 탈의실을 가리켰다. 예린은 하는 수 없이 입을 삐죽이며 옷을 갈아입었다. 역시나 등의 피부는 윤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예린은 미간을 있는대로 구기며 물었다.

 

“이걸 대체 왜 입힌 거야?”

 

그러자 카멜은 대답 대신 검은색 목걸이를 예린의 목에 둘러 주었다. (목걸이는 검정색 바탕에 금색의 점들이 찍혀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예린의 등 뒤 구멍이 뚫린 부분에서 날개가 돋아났다. 처음 겪는 경험에 예린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도대체 이게 가능한 일이야? 내 조상님은 익룡과 결합한 인간이었나?’

 

하지만 익룡의 멋진 날개와는 달리 거울을 본 예린의 날개는 볼품없기만 했다. (게다가 크고 작은 상처들로 가득했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볼품없기만 한 날개의 상태에 예린은 실망하며 카멜에게 물었다. (카멜의 날개는 크고 부드럽고 멋드러진 날개였다)

 

“도대체 내 날개 상태는 왜 이런 거야?”

 

그러자 카멜이 예린의 날개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 날개는 네 내면인 거야. 볼품없는 것보다 일단 먼저 상처부터 치료해야겠는데?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많이 다친 거야? 아예 날 수조차 없잖아”

 

“이 날개가 내 내면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카멜의 말에 예린은 그 동안 외면하기 바빴던 자신의 내면을 거울 앞에 제대로 서서 바라보았다. 예린의 눈에는 그제서야 여기저기 찢겨나가고 너덜너덜해진 날개가 보였다. 보기 싫은 상처에 그만 화가 솟구쳐 올라 예린은 제일 깊게 파인 상처를 찔렀다. 그러자 카멜이 깜짝 놀라면 예린을 저지했다.

 

“그만 둬! 뭐하는 거야?”

 

“왜 그래? 내 날개야”

 

말이야 방귀야…….카멜은 고개를 한번 가로젓더니 예린을 데리고 지하 치료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치료액 즙을 예린의 날개에 발라주며 말했다.

 

“너는 일단 감정을 제어하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겠다. 어떻게 어린애들보다 더 자신의 마음에 대해 몰라?”

 

“무슨 소리야?”

 

“여기 어린 뱀파이어들도 너처럼 그렇게 날개의 상처를 막 대하진 않아. 오히려 빨리 나으라고 잘 살피고 쓰다듬어 주면 모를까”

 

“하지만……….”

 

나는 감정을 제대로 직시하는 법을 못 배웠는걸…………오히려 감정을 무디게 하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 왔는지 알아? 언제나 쏟아지는 아픔들을 이기지 못하는 여린 마음을 가진 게 얼마나 큰 저주였는지 알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 동안 꾹꾹 참아왔던 눈물이 두 눈에서 하염없이 쏟아졌다. 카멜은 여기서 더 상처가 생기면 이젠 감정이 무뎌지는 단계에 들어가기 때문에 최대한 상처가 나지 않게 조심하면서 날개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별안간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예린 혼자 힘으로는 아무리 해 봐도 안 됐던 치유가 카멜의 손짓 하나하나에 점점 치유가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점점 신기하게 서러운 감정들도 사그라져 갔다. 카멜이 쓰다듬는 것을 끝냈을 땐 예린의 날개 40%가 거의 치료가 되어 있었다. 카멜은 눈물 젖은 예린의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얘기했다.

 

“치료란 이렇게 하는 거야. 그렇게 꾹꾹 참기만 하면 결국 아픈 건 네 마음뿐이라고”

 

누구에게도 드러내 보이지 않았던 예린의 상태였다. 드러낼 사람도 없었고, 무엇보다 너무 아플까봐 예린 자신조차도 외면했던 상처였는데 카멜은 그걸 아프지 않게 짚어 줬다.

 

 

* * * * * *

 

뱀파이어 마을에 온 지도 벌써 5달. 예린은 점차 마을에 적응해 나갔다. 처음에는 사람들에게서 받은 상처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탓에 뱀파이어들에게 쉽사리 다가서질 못했다. 그리고 다가서기까지는 서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예린의 마음의 문을 열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음의 문을 연 날에 뱀파이어들은 파티를 열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모두 지나간 일이었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들은 전부 치료되었고 이젠 예린은 처음 보는 사람을(사람은 아니지만;;;) 의심없이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딱 한 사람만 빼고.

 

“진짜 말 안 해줄 거야?”

 

“대체 뭘 말하라는 건데”

 

바로 카멜이었다. 예전보다 더 말이 없어진 카멜의 모습에 예린은 답답해져만 갔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이러진 않았는데 뭔가 비밀이 많아진 카멜의 모습에 예린은 그 비밀이 무엇이냐고 물어 봤지만 카멜은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 모습에 예린은 또 답답해지고, 하루하루가 뫼비우스의 띠 마냥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예린의 아빠인 이완이 예린을 불렀다. 거의 불렀던 적이 없었던 이완이기에 예린은 호기심을 품고 이완에게로 갔다. 카멜의 우울증이 이완에게 옮았는지 이완도 침울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예린의 눈에는 둘 다 이상하게 보일 뿐이었다)

 

“아빠 무슨 일 있어요?”

 

“예린아……..미안하다)

 

“네? 무슨 소리에요?”

 

“이젠 인간세상으로 돌아가렴”

 

그 말을 듣는 순간 예린은 차가운 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온 몸이 벌벌 떨렸다. 내가 잘못 들은 거지? 뱀파이어 세계를 인간 세계라고 잘못 말한거지? 예린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이완에게 물었다.

 

“지금 제가 제대로 들은 거 맞아요?”

 

“그렇단다………”

 

“도대체 왜요?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너는 원래 인간세계에서 살던 아이니까…….우리가 너무 보고 싶어서 너를 잠깐 불렀단다”

 

“대체 왜……..차라리 부르지나 말지……..왜 이렇게 이기적이에요”

 

“……..미안하다”

 

이완은 예린에게 사과를 했지만 그 말이 예린의 귀에 들어갈 리 만무했다. 예린은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이완의 방을 나섰다. 방문 앞에는 카멜이 서 있었다. 예린은 카멜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 말……..왜 나한테 안했어?”

 

“……..그 말을 전하기가 싫었으니까”

 

“뭐가 어려워! 다시 그 지긋지긋한 곳에 돌아가야 하는 나보다 더 싫어?”

 

“………미안해”

 

“됐어! 그딴 사과 따윈 집어 치우고 돌려 보낼거라면 빨리 돌려보내! 이딴 이기적인 곳에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아!”

 

카멜은 무거운 목소리로 처음에 했던 것처럼 예린의 이마에 손가락을 짚어 주문을 외웠다. 처음처럼 예린의 몸은 어디 론가로 빨려 들어갈 듯 한 느낌을 받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예린의 감정이었다. 한참을 빨려들어가다 정신을 차리니 예린의 침대였다. 예린의 얼굴은 이미 눈물로 젖어 있었다. (예린의 날개는 이제 없어져 있었다.)

 

“하…………진짜 이기적인 새끼”

 

물론 그 음성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뱀파이어 마을로 끌고 가, 거기에 눌러 살고 싶게 한 카멜이 듣기를 원하며 예린은 일부러 못된 말만 골라서 했다. 예린은 기운 없이 축축 늘어지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학교로 갈 준비를 했다. 평소는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이 지배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가고 싶지 않은 마음보다 두려운 마음이 더 컸다. 지금까지는 잘 버텨 왔다면 뱀파이어 족에서 생활했던 시간 동안 마음이 더 여려져서 혹시나 마음에 더 아픈 상처가 더 깊게 배어들까 두려웠다. 죽어도 가기 싫은 학교였지만 그 동안 예린이 없었던 시간 동안 출석일수가 혹시 모자라졌을 까봐 예린은 꾸역꾸역 가방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저 멀리 교문이 보였다. 저 문을 통과하는 순간 쏟아질 시선들에 예린은 벌써부터 겁이 났다. 발걸음도 예린의 이성보단 감정을 따르는지 점점 느려졌다. 학교를 등지고 가려는 발걸음을 겨우겨우 재촉해 교문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한 예린은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교실에 들어섰다. 그런데 뭔가가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더 이상 예린에게 따가운 시선들이 쏟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예린을 반 구성원 중 한 명인 듯 조용히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그게 좋은 거야? 널 무시하는 건데?’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동안 쏟아졌던 따가운 시선들보단 이런 조용한 무관심이 예린에겐 좋은 일이었다. 항상 쓰레기들로만 가득 차 있던 책상 서랍도 오늘은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예린은 조용히 귀에 이어폰을 끼고, 책을 꺼내 읽었다. 이제 막 5장으로 넘기려던 순간 누군가가 예린을 건드렸다. 시원시원하게 생긴 예린의 반 반장 소영이었다.

 

“…….왜?”

 

“누가 너 점심시간에 학교 정원으로 보내달래”

 

나를? 도대체 왜? 조용히 넘어가나 했더니 이젠 신종 괴롭힘인가? 예린은 복잡한 생각들을 가지고 점심시간에 정원으로 나갔다. (안 나가면 무슨 화를 당할지 몰라서였다) 학교 정원에는 이상하리만큼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커녕 개미 뒷다리 하나조차도 없이 아주 깔끔했다. 이리저리 둘러보던 예린의 눈에 누군가가 보였다. 혹시 저 사람인가? 싶은 마음에 예린을 그 사람을 향해 다가갔다. (뒷모습만 보여서 누군지 알 수는 없었다) 10cm 정도로 다가갔을 때 그 사람이 예린의 발걸음을 느꼈는지 뒤를 돌았다.

 

“너………”

 

“너 부를 만한 사람이 나 아니면 누굴 것 같은데?”

 

그 사람의 정체는 입가에 매력적인 호선을 그리며 웃는 카멜이었다. 뭐가 그리도 좋은지 미소를 짓는 카멜과는 달리 예린의 표정은 점점 구겨졌다.

 

“너………이건 또 뭔 짓인데”

 

이렇게 네 맘대로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이유가 뭔데………도대체 얼마나 더 이기적으로 행동해야지 사람 마음을 그만 갖고 놀 건데

 

“그날………그렇게 간 거 해명하려고 불렀다 왜?”

 

“이미 아빠한테 해명 다 들었는데 굳이 나설 필요가 있냐?”

 

비꼬는 듯 한 말투와 표정으로 말하는 예린을 본 카멜은 입가에 있던 미소를 지우고 예린에게 물었다.

 

“도대체 뭐에 화가 난 건데……..”

 

“그걸 지금”

 

몰라서 물어? 기껏 데려와 놓고선 왜 다시 돌려보내려고 하는데! 사람 가지고 노는 거야 뭐야! 라고 말하는 예린의 말에 카멜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너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렇게 말하지 마”

 

“아빠한테 설명 다 들었는데 뭘 아무것도 몰라!”

 

이완 국왕님은 너에 대해 이 우주 어느 누구보다 더 많은 고민을 하셨던 분이야 라고 말하는 카멜은 예린이 미처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 * * * * *

[데려 올 당시]

 

“하아……..”

 

“왜 그러십니까?”

 

“그 아이를 데려오는 게 잘하는 일일까 카멜?”

 

잘 적응해 살고 있는 그 애의 인생을 내 개인적인 감정으로 망쳐 놓는 것 같단 말이지……..라고 말하는 이완의 모습은 평소에 늘 보여왔던 장난스러운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기운 없는 이완의 모습에 카멜은 위로의 말을 건넸다.

 

“괜찮습니다……….어차피 잠깐만 데려와서 날개의 상처만 확인하면 될 일이니까요 그리고 뱀파이어와 인간 세계는 시간이 다르지 않습니까? 5달 있어도 5시간 밖에 안 지났을 테니 별 문제 없을 겁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국왕이 더 자괴감에 시달릴 까 봐 카멜은 서둘러 인간세계로 떠났다. 한번 갔다 오는 데 소모되는 에너지가 상당히 많아서 카멜은 한 번에 성공해야 했다. 다행히 행운의 여신이 카멜을 도와줬는지 예린의 학교에 맞게 도착시켜 줬다. 보통 인간들이라면 교무실에 공손히 들어가 물어보겠지만 안타깝게도 카멜의 생각은 거기까지 가지 못했다. (그저 인간들에게 최면을 걸어 전학생이라고 위장했을 뿐…………) 인간세계에 아무것도 모르는 카멜은 남녀합반이 아니라는 것도 모르고 여자 같이 생긴 애를 보면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당사자들은 카멜이 게이라고 망상을 펼쳤지만;;;) 그렇게 반 전체 이름을 묻다가 카멜을 주의 깊게 보던 반장이 결국 점심시간에 예린을 가리키며 네가 찾는 아이가 저 애라고 알려줬다. (뱀파이어처럼 생긴 생김새로 온 학교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쉽게 알려 줄 수 있었다) 반장의 손가락 끝이 가리킨 곳은 뱀파이어 같이 시크한 아름다움을 가진 여자아이가 있었다. 카멜은 저 여자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그 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달달 외워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주문을 외우며 여자아이한테 다가갔다. (혹시나 이 여자애가 아니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카멜의 생각에 없었다.) 그리고는 뱀파이어라면 누구나 이마에 지니고 있는 각인을 찾기 위해 가운뎃 손가락으로 그 여자아이의 이마를 짚었다. 다행히도 그 여자아이는 뱀파이어가 맞았다. 그래서 카멜은 손 쉽게 여자아이를 뱀파이어 세계로 데려올 수 있었다.

 

[그로부터 5달 후]

 

예린을 여기에 머무르게 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졌다. 어릴 적 인간세계로 가고 싶다고 계속 졸라대서 어쩔 수 없이 인간세계에 보내줬다. 그러나 한번 보내진 뱀파이어는 다시 뱀파이어 세계로 돌아올 수 없었고, 돌아온다면 누군가가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하지만 한번 정도 5달 머무를 수 있었기에 예린을 불러들인 것이다. 쳐다보면 금방 닳아져 없어질까 봐 감히 불러들이지도 못했다. (이완은 그 시간들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닳아 없어져도 예린을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전하기 힘든 말을 이완은 전해야 했다. 그런 이완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카멜은 예린이 오기 전 이완의 상처 입은 날개(=마음)를 치료해줬다. (치료밖에 해 줄 수 없는 무능력한 자신을 원망했다.)

 

* * * * * *

 

“이제 알겠어? 너희 아버지께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셨는지? 혹시나 딸한테 피해 갈까봐 항상 노심초사 하셨던 마음밖에 없으셨어. 그런데 너는 그런 사람한테 하는 말이 고작 그거야?”

 

실컷 감정을 쏟아놓고 이성을 차린 카멜은 그제야 예린이 눈에 보였다. 예린의 고개는 숙여져 있었고, 작은 어깨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아차 싶은 카멜이 수습하려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예린은 축 처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미안해 내가 아무것도 모른 채 나만 생각해서”

 

뒤 돌아서 가는 예린의 모습은 축 처져 있는 게 너무 안쓰러워 보였다. ‘내가 설마 저 아이의 날개에 깊은 상처를 남긴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 카멜은 곧 바로 예린이 사라진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늦어버려 예린을 붙잡을 수 없었다.

 

 

* * * * * *

 

“흐윽 흑”

 

텅 빈 집안에는 예린이 흐느끼는 소리만 가득했다. 분명히 내가 잘못한 게 맞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운……….머리로는 이해하는 데 마음은 따라가지 못하는 그런 복합적인 감정들이 뒤섞인 흐느낌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비에 젖은 처량한 강아지를 연상 시켰다) 그렇게 예린을 한참을 울다 지쳐 잠들었다.

 

* * * * * *

 

“넌 정말 이기적이야. 왜 너만 생각하고 판단해?”

“너 같은 거 데려오는 게 아니었어”

“너 같이 이기적인 애를 누가 생각해 주겠어?”

“너는 그 어디에도 필요 없는 존재야”

“학교 애들이 너를 다 싫어하는 데 도대체 왜 거기에 가서 피해를 주는 거야?”

“사라져버려! 꺼지라고!‘

 

“그…….만 그만!”

 

예린은 또 다시 무기력이 만들어 낸 악몽 속에서 허우적대다 겨우 깨어났다. 하지만 이번엔 뭔가 달랐다. 예전에는 그래도 견딜만한 악몽이었다면 이번에는 예린이 가장 아파하는 곳을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찔렀다. (실로 어마어마한 정신적 고통이었다.) 이 악몽은 예린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그 동안 억지로라도 가던 학교마저도 빠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예린은 침대에 기운 없이 축 늘어져 악몽을 계속 곱씹었다. 그렇게 계속 무기력하게 있는 예린을 갑자기 누군가가 확 잡아 일으켰다. 하지만 정작 예린은 강도라 해도 상관없었다. 예린은 자신을 잡아올린 상대방을 초점 없는 몽롱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상대방이 누군지 확인한 예린의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 담겨졌다. 내 집을 어떻게 알고 온 건지 카멜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린은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카멜의 손을 쳐 내고 물었다.

 

“뭐야! 너 여기 왜 왔어!”

 

“내가 너무 상처 낸 게 아닌가 싶어서……….”

 

진심 어린 사과에 예린의 눈에 이유 모를 눈물이 차올랐다. 내가 이렇게 사과 받은 적이 있었던가………그 동안 예린의 기분은 상대방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상처를 받든지 말든지 상관 않고 자기 멋대로 내뱉는 상대방의 가시 돋친 말들에 상처 받기도 여러 번. 이렇게 진지하게 사과를 받아본 적이 없어 예린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였고 그런 예린의 마음을 눈물이 대신 전해주려고 눈 밖으로 흘러 내렸다.

 

“이…….이게 아닌데왜 이러지?”

 

“괜찮아 그냥 울어”

 

네가 받은 상처들을 네 눈물이 씻어주고 있으니까 마음껏 울어……..

 

우는 걸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위로해 주는 카멜의 행동에 예린은 오랜만에 실컷 울 수 있었다. 마치 그 동안 응어리진 것을 다 풀어내기라도 할 것 같이………..

 

* * * * * *

 

[외전]

(카멜)

 

“널 이제부터 내 호위무사로 임명하겠다”

 

5살 때 일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궁궐에 들어서니 이 나라의 국왕이라는 사람이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아마도 내 잠재력인 방어 능력이 뛰어나서 그런가 보다) 그날부터 내 생활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예전 같으면 꿈도 못 꿨을 고급스러운 과자들이며, 내 취향대로 꾸며진 방, 또한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분을 모시게 된 것. 이 나라의 국왕은 어린아이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귀 기울여 줬다. 또한 내가 가지고 싶은 건 다 가질 수 있게 해 줬다. (고아 소년에게는 꿈에서도 이루어지지 않을 상황이었다.)그러던 어느 날 국왕이 날 불렀다.

 

“나는 이제 내 호위무사가 새로 생겼단다”

 

“절 버리실 건가요? 그 호위무사보다 제가 더 잘할 수 있으니 제발 버리지 마세요!”

 

거의 애원하듯 매달렸다. 하지만 그런 나를 보고 국왕은 빙그레 웃으며 말 했다.

 

“이제부터 너는 나보다 몇 배는 더 소중한 사람의 호위를 맡게 될 거야”

 

“이 나라에서 임금님보다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이 없는데요?”

 

“아니야, 분명히 있어 나보다 몇 배는 더 소중한 사람”

 

그렇게 말한 다음 날. 나는 나랑 같은 나이의 여자애 호위를 맡게 되었다. 자기 말로는 이 나라의 공주라는 데 하는 짓을 보면 영 공주가 아니었다. 천방지축 말괄량이에 막무가내 땡깡까지…….내가 아는 아름다운 공주님과는 이미지가 완전히 달랐다. 도대체 이 아이에게 아름다운 구석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뭐가 그리고 좋은지 국왕은 그 아이만 보면 얼굴에서 웃음이 활짝 피고,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그 이유가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그 아이의 유모에게 한번 물어봤다.

 

“도대체 예쁜 구석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을 수 없는 아이를 임금님은 왜 그렇게 예뻐하시는 거에요?”

 

그러자 유모가 기가 막힌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 보았다.

 

“자신의 딸이니까 당연히 예쁘시겠지. 너도 엄마 사랑 받고 자랐잖아”

 

엄마에게 버려진 나로써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때만 해도 자식이란 부모가 버리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모의 한 마디는 내 가치관에 혼란을 주었다. 저렇게 못난 아이도 부모의 눈에는 예쁘게만 보이는데 나는 못생기지도 말썽쟁이도 아닌데 왜 부모는 나를 버린 거지? 도대체 왜? 어린 아기가 부모에게 큰 잘못을 할리는 없고……….그렇게 나는 한 동안 혼란스럽기만 했다. 마치 답이 없는 문제의 답을 찾으려고 끙끙대는 기분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답을 찾으려고 했고 그 답을 찾았다.

 

‘엄마는 아무 이유 없이 내가 싫으셨던 거구나……’

 

이 답은 한창 사랑받고 자라야 할 어린아이에게는 감당할 수 없이 아픈 답이었다. 결국 마음의 상처가 몸에도 영향을 끼쳤는지 한 동안 앓아 누웠다. 그러던 어느 날 말괄량이 공주가 병문안을 왔다.

 

“너 괜찮아?”

 

평소의 장난끼라고는 싹 사라져 있었다. 처음으로 보는 그 아이의 내면이었다. 이 아이는 다친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구나………….그때부터였다. 그 아이가 좋아지기 시작한 건………..

 

* * * * * *

 

내가 다 나았을 때 다시 그 아이가 있던 방으로 갔다. (호위를 해야 하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방에 있을 그 아이가 없었다. 그 대신 유모가 슬픈 표정으로 그 아이의 물건들을 치우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유모를 붙들고 물었다.

 

“그 아이 어디 갔어요?”

 

“국왕께서 인간세계로 보내셨어…….”

 

내가 알지 못하는 이상한 세계였다. 나는 국왕을 찾아가 물었다.

 

“도대체 왜 보내셨어요?”

 

“그 아이의 고집은 나도 못 이기겠더구나 허허허”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는 국왕은 오히려 안쓰러워 보였다. 다시는 오지 못하는 딸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어린 아이였던 나도 눈치 챌 수 있을만한 커다란 슬픔이었다. 그 슬픔은 국왕의 날개에 커다랗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국왕의 날개를 내가 닦아 드렸다. (국왕의 슬픔을 전 호위무사였던 내가 위로해 주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이 들어서였다) 국왕은 그런 나를 보고 다시 자신의 호위무사로 삼으셨다. 그리고 전보다 나를 더 아껴주셨다. 어린아이의 마음을 보고 선택했는지 아나면 날개를 닦아 드려서 그랬는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아끼신 건 사실이었다. 누가 보면 부자 사이로 오해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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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일어난 신비로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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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지혁. 섬세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남자애다. 내가 지금부터 말할 내용은 조금 아니 아주 현실성이 없는 얘기다. 어쩌면 내가 지어낸 이야기라고 얘기할지도 모르지만 지어낸 얘기가 아닌 실화인 것을 분명히 밝혀 둔다. (못 믿으시며 우리 집에 오시기를)

사건이 시작된 날은 방학식 날이었다. 나는 신이 나서 집으로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가고 있었다. 어느새 집 근처의 골목길에 와 있었을 때 어떤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회색의 귀여운 고양이였다. 상태를 보니 많이 다친 듯 했다. 집에 데리고 가면 분명히 이모가 잔소리를 하겠지만 뭐 어차피 일 하느라 집에 잘 안 오시는 이모이니 상관은 없었다. 오신다 해도 그까짓 잔소리 눈 딱 감고 들어주면 되는 거 아닌가 나는 조심스럽게 고양이를 안아들고 집으로 옮겼다. 구급상자를 꺼내 다친 곳을 소독해주고 붕대를 감아줬다. 그리고는 푹신한 쿠션 하나에 고양이를 올려놓았다. 그렇게 첫째 날이 지나갔다. 놀라운 건 둘째 날부터 일어났다. 어제 다친 곳을 소독해주려고 하는데 갑자기 고양이의 몸에서 하얀 빛이 일어나더니 별안간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아니 고양이의 모습이 약간 남아있는 사람으로 변했다. 다른 데는 다 인간의 모습인데 머리에 고양이의 귀가 뾰족 솟아 있었다.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입을 떼지 않았다. 그러자 그 고양이가 웃으면서 자신의 이름은 뮤리라고 소개했다. 지금 이 상황은 눈앞에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도대체 이 뮤리라고 하는 고양이 소녀는 진정 환상인지 아니면 현실인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게다가 이게 실제로 가능한 일인지….꿈 속일까 싶었지만 뮤리의 손톱에 의해 현실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고양이 여자애와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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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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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하양이. 주인님이 지어준 이름이에요. 나는 강아지 공장에서 태어났어요. 아주 어릴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를 봤어요. 엄마는 철로 만든 감옥 같은 곳에 갇혀서 나를 바라보며 애처롭게 울고 있었어요. 나중에는 결국 이마에서 피가 났어요. 나는 그런 엄마를 향해 소리쳤어요.

“엄마 그만해요! 머리에서 피가 나고 있잖아요!”

엄마는 내 말을 들어도 계속 탈출하려고 버둥댔어요. 나는 그런 엄마를 마지막으로 보고 어디론가 실려 갔어요 눈을 떴을 때는 작은 유리 상자 안에 있었어요 그곳은 좁지만 필요한 것은 다 있었어요.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어떤 소녀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는 자기 집으로 데려갔어요. 그 날 이후로 소녀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주인님이 되었어요. 하지만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나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줄어들었어요. 그리고 외출이 잦아지는데 나와 산책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어요. 나는 혼자서 집을 보고 있는 존재가 되었죠. 내가 이런 불만을 옆집 진돗개 아저씨에게 털어 놓자 진돗개 아저씨가 말했어요.

 

"그래도 너 밥은 주잖아"

"차라리 산책을 시켜 달라고요"

"그냥 집 안에서 산책해"

"그건 수백번도 넘게 해 봤어요"

"에휴~인간드르이 심리는 나도 모르겠다 도저히 답이 안 나와"

 

그렇게 혼자서 무료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현관문이 열려 있는 걸 봤어요. 산책을 하고 싶었던 나는 그 길로 집을 나왔어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기분이 그렇게 자유로울 수 없더라고요.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슬슬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어요. 저는 슬슬 겁이 났죠. 얼마나 달린 건지 제 집이 어딘지 모르겠어요. 아마 중간에서 길을 헤멘 거 같아요.  하염없이 헤메다 보니 어느 공사장에 와 있었어요. 순간 발바닥에서 통증이 일었어요. 초록빛 유리가 발에 박혀서 피가 나고 있었어요. 너무 아프고 겁이 나서 저는 소리쳤어요.

 

"거기 아무도 없어요?"

 

하지만 들려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저는 몇 번이고 소리를 질러 댔어요. 그러자 저 멀리서 흐릿하지만 사람의 형체가 보였어요. 더 가까이서 보니 두 사람이 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어요. 저는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오라고 소리쳤어요. 그런데 더 가까워지자 그 사람들은 저를 향해 돌멩이를 던졌어요. 왜? 왜 나에게 돌을 던지는 거야? 갑자기 저를 향해온 무지막지한 폭력에 저는 반항 한번 못하고 그대로 쓰러져서 깨갱 소리만 냈어요. 얼마나 돌팔매질을 했을까요 그 사람들은 공사장에서 떠났어요. 저는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었어요. 하지만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그렇게 그 사람들은 몇 번이고 찾아와 돌팔매질을 했어요. 처음에는 시끄러운 걸 없애려다 나중에는 점점 흥미를 붙이기 시작했어요. 고통스러운 제 목소리는 그들의 귀에만 들리지 않는지 저를 보는 사람도 없었어요. 그렇게 저는 점점 생명이 약해졌어요. 결국 저는 싸늘히 숨이 끊어졌어요. 숨이 끊어진 순간 보인 것은 주인님이었어요. 피투성이가 된 저를 안고서 주인님은 울음을 터트렸어요. 그렇게 보고 싶었던 주인님이 저를 끌어안고 우는 모습을 보고 저는 속으로 주인님께 말을 걸었어요.

 

'주인님. 저는 단지 사랑 받고 싶었던 게 다였어요. 제 욕심이 너무 컸던가요? 제 욕심이 너무 과했던가요? 그런데 왜 인간들은 저를 바라보기는 커녕 저를 괴롭혔던 거죠? 제가 너무 약해서? 만만한 상대가 필요해서? 저는 인간이 아니라서?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학대하는 거라면 전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인간에게 도움을 청해봐도 돌아오는 건 고통이었어요. 제발 주인님……학대하는 사람들을 막아 주세요…..그게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탁하는 청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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