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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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 아파트

 

베란다 밖으로 앰뷸런스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은 시끄러운 소리에 귀를 막지도, 기울이지도 않는다. 익숙한 풍경이다.
옆집에서 바퀴벌레 넘어올 일이 없어졌다.
노인네가 흐느끼는 소리는 듣기에 꽤나 고역이었다.
십 년 새에 아랫집 네 집 정도와 1510호, 1512호는 밤잠 설칠 일이 없어졌다.
다른 노인들은 슬퍼도 크게 울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 처지를 가련하다 인정하는 꼴이기에,
그저 속으로만 쯧쯧, 쯧쯧댈 수 있을 뿐.
간병인 없는 양로원, 더 정확히 말하자면 외벽에 돌멩이가 연거푸 날아드는 양로원이 적당하다.
골 빈 놈들이 실정을 연속할 때마다, 구급차가 아파트 입구를 때려 박으니까.
아차, 이곳에 살려거든 이처럼 말이 많아서는 안된다.
나랏돈 받아 쳐먹는 신세, 불평하면 배때지가 불렀다들 하거나,
최저 생계비로 한 달을 풍족하게 살았다는 둥 할 테니.
그러니까 방금은 빨간빛과 파란빛이 번갈아 빛나고,
그저 밥숟갈이 하나 줄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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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꽃 지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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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지는 봄

 

봄꽃이 아름답다 하실 적은 그 언제
눈앞에 계절도 다 거치지 못하고
덧없는 실바람되어 홀연히 가십니까

 

떠나는 당신 곁에 매화가 아득히 지고
아주 가신 자리엔 낙화만 뒤얽힙니다
처연히 담장을 짚고 흐느끼어 웁니다

 

사랑을 배울 적에 이별은 배우지 못해
못다 이른 마음이 목련처럼 집니다
그대는 이런 내 모습 구차하다 하실까

 

한 마디만 더 듣고 가셨으면 내 님아

제아무리 꽃 피는 계절이라 하신들

님없이 아름답기나 하렵니까 이 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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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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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노인이 손수레를 끈다
손수레를 질질 끌며
낡은 군복 어깨에 먼지를 턴다
감히 국장 위에 올라앉은 먼지를
공산군과 싸우듯 탈탈 턴다

 

노인은 진지를 구축한다
키로당 120원짜리 진지를 구축한다
지폐 몇 장 훈장처럼 받아 들면
노인의 주머니는 두둑해진다
참으로 영광스러운 급여이다

 

노인은 한때나마 자신을 높여주던
님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님은
노인에게 있어서는 말이 없으시다
애초에 그를 사랑하긴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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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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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어릴 적엔
저 여덟 발 달린 것이
익충 인지도 몰랐다
큰놈한텐 옆에 가지도 못하고
작은놈이면 눌러 죽이곤 했지

 

저 작은 것한테
생태의 균형을 지키라는 몫은 있어도
천대받으라는 천명은 없을 것이다
겉모습만 보고 징그럽게 여기던
나란 것의 불찰일 뿐

 

사람이 언제부터 외관만으로
감히 옳고 그름을 따졌던가
아아, 이것은 유구한 전통이다

 

색이 다른 사람, 성이 다른 사람
정상인과 장애인의 범주
께름칙한 시선들
나라고 다름이 있었는가

 

되려 모자란 것은
나를 거미라며 찡그릴 사람 많은데도
나의 우월을 자위했던 나란 사람
모르고 지내던 거울 속 못난 상

 

거미야, 거미야 미안하구나
사람아, 사람아 내가 미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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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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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다 헤지고 망가져도 소중하고
한때의 애틋함으로
버리기도 아까운 맘은 무엇인가

 

새것의 설렘보다, 부담보다
낡은 것이 주는 애증이
더없이도 소중한 건 아닌가

 

하찮았다면,
그렇게도 볼품없었다면
망각의 존재라는 사람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을까

 

어느 한켠에 놓아둔 중고품처럼
먼지 쌓인 꿈일랑 낭만일랑
후, 하고 입바람 한 번 불어보자
애증의 눈빛으로 바라보자

 

아직도 바래지 않은 광이
나를 기다리던 눈빛처럼,
잊었던 첫사랑처럼 느껴질지도
모르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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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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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심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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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심증

 

가슴이 저리고 숨이 가빠 온다
방사통, 아픔은 머무르질 않는다
고단함이 혈관에 알알이 박혀있다

 

술 한 잔으로 푸는 설움,
담배 한 개피로 푸는 답답함
이조차 쉽사리 허용되지 않아
늘 억울한 대가가 따른다

 

좌절하면 자살이요
노오오력하면 병이렸으니
감내의 눈물마다 어리는 혈전
서민의 길은 멀고도 멀다

 

이것은 전염병이 아닌데도
오늘날 사람들은 앓고 있다
숨도 가뿐히 쉬지 못하고
날마다 문신처럼 새기고 있다

 

서러운 술 담배보다, 따라오는 병보다
헐뜯고, 상처받고, 강요받고
노오력하고, 좌절하고, 대물림하는
야속한 세상이 더 원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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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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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너 그거 사람 죽이는 일이다'
개의치 않아 하던 너를
나는 확실히 말렸어야 했다

 

보험사 전광판에 카운트가 올라간다
소름끼치게 덤덤한 숫자들 속에
섬뜩한 절규와 뼈가 부러지는 고통
안타까운 죽음, 안타까운 상처가 있다

 

너의 과오는 오늘 전광판에 걸려있다
중환자실 천장에 효수되어 있다
빨간 빛 엘이디 글씨도 너를 세며
그 덤덤한 표정으로 혀를 끌끌 찼다

 

너를 말리지 못한 나는
네가 누운 병상 아래 앉아 있다
고개를 꿈뻑 숙이고 앉아 있다
너를 안쓰럽게 쳐다볼 수가 없다

 

이미 수많은 사람의 가슴에는
네가 던진 비수가 꽂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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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사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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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사서함

 

1.
삐-
외롭게 다리 위에 선
처절한 이들의 귀에 울리는
이명이자, 심장이 멎는 소리이다

 

목소리에 고독이 가득 묻어난다
고독 말곤 더 남을 것이 없었다

 

공중전화 속에서 써내린
소리 없는 절규, 그들의 유서는
아무도 들을 이가 없다

 

2.
그 목소리 또한
살아 있을 때가 있었다

 

그 목소리 또한
누군가를 사모해,
또는 꿈과 행복에 젖어
격렬히 꿈틀댈 때가 있었다

 

3.
미수취 메시지
끝끝내 그 손은 잡히지 못하고
목소리는 찰나의 필름 속에
단 구십 일간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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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응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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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어리

 

혈전이 흐르면
나는 이제 쓰러지리

 

심장 속에 고이 맺힌
검붉은 응어리

 

후회로 얽히고 섥힌
당신의, 나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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