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과 소금에 찌들어 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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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과 소금에 찌들어 살래요

 

설탕과 소금에 찌들어 살래요
사람들은 달고 짠 걸 좋아하니까요
식탁만한 수저에 설탕을 가뜩 담고
조리예엔 테이블 스푼이라 농을 치죠

 

향수처럼 슈가파우더는 어떨까요
코카인에 흠뻑 취한 코쟁이마냥
몽롱해있을 표정들이 궁금해요
사람들은 달고 짠 걸 좋아하죠

 

소금을 손에 비벼 감칠맛을 더해요
하루의 권장량을 초과해도 좋아요
동방의 요리를 앞에 둔 중세귀족처럼
나를 품평할 사람들이 궁금해요

 

미사여구들이 오가는 자리에
여전히 내가 남아 있을진 모르겠어요
그래도 나는 빛 좋은 사치품일 테니
설탕과 소금에 찌들어 살래요

 

 

너무 진부한 느낌이 들어요. 가슴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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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박한 세상 부제-독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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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박한 세상

 

개천에서 용 난다는 팻말 아래
카드기, 청소도구 들어찬 좁은 공간에는

 

침대 위에 자빠져 있을 사장 엄살만 메아리치고
시간당 천원짜리 목소리는 잔잔하지

 


가랑이나 긇어대다 버는 돈은 항상 시원찮아서
또는 나 말고도 앉아 있을 놈이 천지에 삐까리라
법도 사람도 씹어먹곤 하는 게지

 

월급이다 쥐어주는 십몇만 원에
겉으로는 얼핏 웃다 속으로만
조심스레 꺼내 드는 총 한 자루

 

새삼 각박하기는….
참 좆같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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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기에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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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기에 살았습니다

 

나 여기에 살아있습니다
무겁게 내려 앉은 암막 틈으로
언뜻 불 비치다 사라지면은
주저앉아 울기도 하고

 

나 여기에 살았습니다
갈라진 유리창에 이마 대고
하루를, 하루를 가늠하다
지쳐서 그만 잠들기도 하고
나 여기에 살아있습니다

 

세상이 흔들리고
곡소리 비명소리 가득 차
별들이 못내 눈감고
구름도 슬퍼 운 세월

 

눈조차 뜨기 힘든 빛
하늘에서 내려오는 날에
그제서야 한숨 내쉬고
웃어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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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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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별시

 

떠나감을 끝이라 믿지 않는다
계절마다 쌓여온 너의 시간을
조금씩 나눠 가질 뿐이다

 

가슴속에 달처럼 빤빤히 떠있는 너를
야금야금 곱씹다 울컥하면은
소음 없는 세상 속에 네가 살기를
하염없이 기도할 뿐이다

 

가더라도 사람아
너는 아직 내 안에 등불처럼 살아있고
나는, 온 어둠이 저물고 세상이 환해질 때에
다시 만날 너를 기다릴 뿐이다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헤어질 때의 아쉬움과, 슬픔과
다시 오던 성숙한 나날, 이별의 아름다움
이 모든 것을 나와 다시 이야기하자

 

가던가 사람아, 영원히 가기보단
내가 영원히 향해서 가는 곳
너는 그곳에 먼저 앉아 쉬며
번지수 하나 남기고 갔을 뿐이다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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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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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 아파트

 

베란다 밖으로 앰뷸런스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은 시끄러운 소리에 귀를 막지도, 기울이지도 않는다. 익숙한 풍경이다.
옆집에서 바퀴벌레 넘어올 일이 없어졌다.
노인네가 흐느끼는 소리는 듣기에 꽤나 고역이었다.
십 년 새에 아랫집 네 집 정도와 1510호, 1512호는 밤잠 설칠 일이 없어졌다.
다른 노인들은 슬퍼도 크게 울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 처지를 가련하다 인정하는 꼴이기에,
그저 속으로만 쯧쯧, 쯧쯧댈 수 있을 뿐.
간병인 없는 양로원, 더 정확히 말하자면 외벽에 돌멩이가 연거푸 날아드는 양로원이 적당하다.
골 빈 놈들이 실정을 연속할 때마다, 구급차가 아파트 입구를 때려 박으니까.
아차, 이곳에 살려거든 이처럼 말이 많아서는 안된다.
나랏돈 받아 쳐먹는 신세, 불평하면 배때지가 불렀다들 하거나,
최저 생계비로 한 달을 풍족하게 살았다는 둥 할 테니.
그러니까 방금은 빨간빛과 파란빛이 번갈아 빛나고,
그저 밥숟갈이 하나 줄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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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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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노인이 손수레를 끈다
손수레를 질질 끌며
낡은 군복 어깨에 먼지를 턴다
감히 국장 위에 올라앉은 먼지를
공산군과 싸우듯 탈탈 턴다

 

노인은 진지를 구축한다
키로당 120원짜리 진지를 구축한다
지폐 몇 장 훈장처럼 받아 들면
노인의 주머니는 두둑해진다
참으로 영광스러운 급여이다

 

노인은 한때나마 자신을 높여주던
님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님은
노인에게 있어서는 말이 없으시다
애초에 그를 사랑하긴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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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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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어릴 적엔
저 여덟 발 달린 것이
익충 인지도 몰랐다
큰놈한텐 옆에 가지도 못하고
작은놈이면 눌러 죽이곤 했지

 

저 작은 것한테
생태의 균형을 지키라는 몫은 있어도
천대받으라는 천명은 없을 것이다
겉모습만 보고 징그럽게 여기던
나란 것의 불찰일 뿐

 

사람이 언제부터 외관만으로
감히 옳고 그름을 따졌던가
아아, 이것은 유구한 전통이다

 

색이 다른 사람, 성이 다른 사람
정상인과 장애인의 범주
께름칙한 시선들
나라고 다름이 있었는가

 

되려 모자란 것은
나를 거미라며 찡그릴 사람 많은데도
나의 우월을 자위했던 나란 사람
모르고 지내던 거울 속 못난 상

 

거미야, 거미야 미안하구나
사람아, 사람아 내가 미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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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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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다 헤지고 망가져도 소중하고
한때의 애틋함으로
버리기도 아까운 맘은 무엇인가

 

새것의 설렘보다, 부담보다
낡은 것이 주는 애증이
더없이도 소중한 건 아닌가

 

하찮았다면,
그렇게도 볼품없었다면
망각의 존재라는 사람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을까

 

어느 한켠에 놓아둔 중고품처럼
먼지 쌓인 꿈일랑 낭만일랑
후, 하고 입바람 한 번 불어보자
애증의 눈빛으로 바라보자

 

아직도 바래지 않은 광이
나를 기다리던 눈빛처럼,
잊었던 첫사랑처럼 느껴질지도
모르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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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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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심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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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심증

 

가슴이 저리고 숨이 가빠 온다
방사통, 아픔은 머무르질 않는다
고단함이 혈관에 알알이 박혀있다

 

술 한 잔으로 푸는 설움,
담배 한 개피로 푸는 답답함
이조차 쉽사리 허용되지 않아
늘 억울한 대가가 따른다

 

좌절하면 자살이요
노오오력하면 병이렸으니
감내의 눈물마다 어리는 혈전
서민의 길은 멀고도 멀다

 

이것은 전염병이 아닌데도
오늘날 사람들은 앓고 있다
숨도 가뿐히 쉬지 못하고
날마다 문신처럼 새기고 있다

 

서러운 술 담배보다, 따라오는 병보다
헐뜯고, 상처받고, 강요받고
노오력하고, 좌절하고, 대물림하는
야속한 세상이 더 원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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