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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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차

엄청난 어둠이었다. 37년 동안 이런 어둠은 단 한번도 보지못했다. 모든것이 사라져 버릴듯한, 다른 의미로는 너무 깨끗해서 깨져버릴듯한 어둠이었다.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나에게 주어진 공간은 내 몸을 겨우 눕힐 수 있을정도의 공간 뿐이었다.

눈을 처음 떴을 때에는 엄청난 공포가 느껴졌다. 몸은 움직일 수 없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러웠지만 더욱 놀랐던건 내가 입고있는 옷이었다. 까칠까칠한 (손가락을 뻗어 허벅지 밖에 만질 수 없었지만) 옷은 죽은 사람이 입는 '수의' 였다.

"나는 지금 죽은건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내 감각이 너무나도 또렷했다. 손가락 끝으로 느껴지는 삼베의 촉감도 정확했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이외에는 모든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나는 죽지 않았다.'라는 현실을 수긍하면서도 왜 내가 죽어있는지에 대한 모순된 생각을 반복했다.

내 기억은 어느 지점에서 끊겨있다. 평범한 주부였지만 심장이 좋지 않았다. 혹시 심정지 상태의 나를 죽었다고 생각한건가? 장례절차가 끝날때까지 일어나지 못한건가?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뭔가 영양분은 섭취했나? 이러다가 며칠 지나지않고 죽어버리는건 아닐까?

 

 

 

2일차

어쩌다보니 잠들었다. 어쩌다보니 일어났다.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알 수 없다. 아직 겨울이 되지 않아 추위에 떨지 않고도 잠에 들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어깨가 축축하게 젖어있어서 관 벽면에는 물방울이 생겨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고개를 겨우 옆으로 움직여 물방울을 햝아 먹었다. 먹으면 먹을수록 생기는 갈증은 나를 아득히 먼, 알 수 없는 곳으로 보내버리는 느낌이었다.

온 힘을 다해 소리치기로 했다. 나는 공동묘지에 묻혀있고, 우연히 다른사람 묘지에 온 사람이 내 소리를 듣고 구해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저는 아직 살아있는데, 여기에 묻혀있어요!"

같은 외침을 30분동안 반복하고나서야 무의미 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 무의미한 것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살아나갈 방법은 그것 이외에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수 십번, 수 백번을 반복해도 돌아오는 답은 없다. 이러다 온 몸의 힘이 다해 죽어버리는건 아닐까.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차라리 죽는게 좋을 수도 있겠다.

삶과 죽음의 순환 속에서 인간은 무엇에 희열을 느낄까. 죽었지만 죽지않은 나는 어떤 존재인가. 어쩌면 내 죽음은 누군가의 계획된 범죄가 아닐까? 나를 죽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서 뭐가 좋은걸까. 의문은 의문을 가져오고 그 의문은 결론을 주지 않는다. 내가 하는 행위의 목적은 알 수 없고, 그 행위의 결과조차 하지 않고서는 모른다. 나는 그저 눈물이 났다. 이 현실에서 나를 위로해주는건 없다. 혼자서, 좁은 공간에서 뭘 어떻게 해야할까. 그저 눈물이 난다.

 

 

 

3일차

오늘도 소리친다. 먹은거라고는 작은 물방울 뿐이라 힘이 부족하다. 쓸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소리지르는데 사용한다. 누군가 들어주기를 바라는 욕심이 점점 커지고 기대가 커져서, 이렇게 소리쳐도 들은 사람 하나 없다는 현실에 몇배로 실망했다.

'죽을 운명인것 같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누워서 소리치거나, 신을 원망하는 일뿐. 모두 신의 자식이라고 소리치던 교회 목사의 얼굴을 한대 때리고 싶어졌다. 모두 신의 자식이라더니 나는 버려졌네.  참 못난 사생아다.

무의미한 행동을 그만뒀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이 좁은 공간과, 어둠 속에서 나 혼자 생존해야한다. 몸에서 나오는 아직 따뜻한 이 온기만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각인 시켜준다. 이 온기가 작은 물방울을 생기게 하는 희망이고,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희망이다.

선택을 해야만 했다. 이대로 누워서 힘이 닳아 없어지기를 기다려 죽을 것인가, 스스로 생존방안을 모색해 끝까지 살아남을 것인가. 나는 추악한 죽음을 싫어한다. 시도조차 않고 죽는 삶은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나를 격려하고 노력했다. 살아있는 나로 돌아가자.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자.

더 힘이 사라지기 전에 바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손으로 관 뚜껑을 칠 생각이었는데, 손을 사용해서는 도저히 강하게 칠 수 없다. (팔을 뒤로 당길 공간이 없다.) 바로 작전을 바꾸었다. 온 힘을 다해 이마를 관 뚜껑에 들이받는다. 그러나 미동조차 생기지 않았고,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피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제일 고통스러운건 생리현상이었다. 해결 할 방법이 없다. 결국 누운 그 자리에서 해결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행위는 나에게 엄청난 수치심을 주었다. 엉덩이에 질펀하게 쌓이는 분비물의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기에 그냥 그렇게 지냈다. 그 냄새와 질감이 엄청난 충격이었다.

관에는 십자가가 같이 들어있다. 씨발, 신은 무슨. 십자가를 들고 관 뚜껑을 때렸다. 약간의 흠집이 생겨 나무 부스러기가 내 몸에 떨어졌다. 그러나 그것도 한 두번이었고, 그 이후에는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4일차

 

점점 몸에 힘이 사라지는게 느껴진다. 몸은 말라가고 체력은 확실히 사라졌다. 절망적인 현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 스스로를 책망했다. 좀더 머리를 써보란 말이야. 나는 이정도가 한계인가?

결론은 나왔다. 나는 괜한 힘만 사용했고, 남은 건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뿐이다. 그 사실은 내 온기라는 희망 마저도 꺼버릴만큼 강렬해서 내 몸이 서늘하게 차가워졌다.

가슴팍에 올라와있는 십자가를 들고 신을 원망했다. 왜 내가 이 비극의 주인공이어야 하는지. 희망은 아예 없어졌는지. 나는 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미련과 실망만을 가득 남긴 채 떠나가는지. 결론은 단 하나라는 사실만을 알 수 있었다. '죽음'

십자가를 손에 쥐고 정자세로 누웠다. 얼마남지 않은 결론을 마주할 준비를 했다. 나는 사생아. 신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버림받은 아이. 행복한 사람들이 있으면 나같은 사람도 있어야해. 알고는 있는데 그게 왜 나인지 원망하게 되는 나는 사생아. 불행한 아이. 불운한 아이. 사랑해요 어머님.

 

 

 

 

 

 

5일차

 

"아 씨발, 진짜 이거 해야하냐?"

"입 닫고 빨리 삽질해라. 좋은거 하나만 걸리면, 우리 이제 편하게 살 수 있으니까."

어둠속에서 삽질을 반복한다. 묘지를 파는건 좋은 취미가 아니지만, 우리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팔 수 밖에 없다.

가끔 사람이 죽으면 묻을 때 그 사람의 물건을 같이 넣는다는 소리를 들은 적 있다. 요즈음은 금품도 많이 넣는다고 하니 하나만 잘 걸리면 떼돈을 벌 수 있다. 묘지를 파헤쳐볼 생각은 아무도 안할테고, 가족과 친척들도 중요한 시기가 아니면 자주 오지 않을테니 완벽 범죄를 성공할 수 있다.

"아 진짜 깊게 묻어놨네. 이건 뭐 생매장 시킨거도 아니고."

"야, 생매장 시켰으면 묘지를 만들어 놓았겠냐? 좀 깊게 묻었을 뿐이겠지. 열심히 좀 파봐 좀."

2시간이 넘도록 삽질은 반복되었고, 우리는 딱딱한 관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야 드디어 나왔네 제발 대박이기를…"

뚜껑에 묻은 흙을 모두 제거하고 관에 박힌 못도 전부 뺀 뒤, 설레는 마음으로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관속의 내용물을 본 우리는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십자가를 든 채 눈을 뜨고 입으로는 어떤 단어를 반복하며 말하고 있는 여자를 보았다. 너무 작게 말해서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들리지 않았는데, 뚜껑을 연 후 들은 그 말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생아사생아사생아사생아사생아사생아사생아사생아사생아사생아사생아사생아사생아"

연속해서 말하는 '사생아'라는 단어. 우리는 대박도, 중박도, 평범한 쪽박도 아닌. 최악의 쪽박을 맛본 뒤에 삽과 관을 그자리에 두고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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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적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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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점에 갔다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보았다. '생산적 인간'. 약간의 불쾌함 까지 가져오는 필명을 사용하는 작가이다. 그의 소설은 절망적인 결말로 유명하다. 좋은 결말로 끝나는 작품은 하나도 없다. 벌써 6권의 장편소설을 출간한 프로작가이지만, 언제나 비극적인 결말 때문에 안티 팬이 많은 듯 하다.

그러나 슬프고, 비극적이고, 자극적인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신격화되는, 호불호가 확실하게 나눠지는 작가이다. 그의 소설속에서 표현되는 잔인하고, 비극적인 클라이막스의 묘사는 감탄을 자아낸다. 나는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경외감을 느낀다. '생산적 인간'이라는 필명처럼 그저 '생산'을 반복할 뿐일지도 모르지만, 그의 묘사는 내가 그 자리에 있는 비극의 주인공처럼 서글퍼지게 만들어준다. 특히 이번 소설이 그랬다. '행복의 비애'라는 제목의 소설 이었는데 결말은 언제나 그렇듯 비극이었다.

 

 

 

기차 역에서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스크린도어 앞에 서서 멀리 떠나가는 기차를 바라보는 주인공.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스스로의 무능력함을 질책한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모습이 주인공을 더 초라하고, 서글프게 만들었다.

'박사원, 이거 오늘 5시까지 해서 나한테 보내줘요.'

상사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일을 시작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작업량에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일이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상사에 대해 불평한다.

'적당히 시켜야지…. 저렇게 많이 시키고 5시까지 다 하라는게 말이되나….'

집으로 가는 중, 사람들이 많은 번화가를 지나가다가 술집을 보게된다. 시원한 맥주를 한입 크게 들이키며 '캬'하며 저절로 소리내는 모습이 주인공을 자극 하기에는 충분했다. 주인공은 집으로 가기전에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사가기로 한다. 그리고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고르고 계산대에 올려놓은 순간, 그녀와 마주친다.

 

 

 

 

나는 '운명적인 사랑'을 믿지 않았다. 스스로를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언제나 옳다고 주장하는 이기적이고, 고집 센 사람처럼 느껴졌다. 사랑은 사람에 따라 형태가 다르고, 그 중 자신이 느낀 한 형태가 보편적인 사랑의 형태라고 주장하는 그들의 말은 이기적인 주장으로 느껴졌다. 이 소설은 내가 느끼고, 생각해온 사랑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었다.

 

 

 

운명적으로 다시 만나게 된 주인공과 여자. 그들은 운명처럼 다시 사랑에 빠진다. 고등학교때 헤어진 이후 있었던 일들을 공유하며, 서로의 유대는 더욱 깊어진다.

헤어졌을때 당신을 너무 그리워해서, 그 그리움이 행복마저 삼켜버려서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었다 해도 열심히 살아왔다고, 수고했다고 말해달라고. 그렇게 요구하는 주인공과 여자의 마음이 표면에 드러나 '사랑'을 잘 모르는 나 조차도 공감하게 만들었다.

 

 

 

 

사랑의 형태가 어느 하나로 고정된 느낌이었다. 믿음이 부정당하는 느낌. 그러나 하나도 불쾌하지 않았다. '사랑은 원래 이런거구나.'라는 수긍의 감정이었다. 첫 부분의 초라함과 서글픔에 대조되어, 행복해지고 활력을 되찾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운명적인 사랑을 믿지는 않지만, 그 존재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주인공과 여자는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사랑을 속삭이며 아이를 가졌다. 그리고 결혼을 약속했다. 얼마 뒤, 서로가 보일 수 있는 가장 멋지고, 가장 예쁜 모습으로 서로를 마주했다. 그리고 행복의 미소를 짓는다.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자랑할 수 있을 정도로. 그정도로 행복하다고 모든 단어들을 통해 말하고 있었다. 둘은 예식장으로 향했다. 차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행복을 절정으로 느끼며 굽이굽이 산길로 올라가고 있었다. 뭔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건 그때였다. 산길을 올라가던 도중에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산길은 더욱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당황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른 채 핸들만 부여잡고 있었다. 격하게 흔들리는 차체에 당황한 주인공의 심정을 여자의 한마디가 꿰뚫었다. '왜 제대로 안살피고 출발한거야.' 모든것을 주인공 탓으로 돌리는 여자의 직설적인 한마디가, 격하게 흔들리는 차체를 멈추었으며, 정적이 자리잡도록 도와주었다. 그 한마디에 사랑은 형태를 잃고 일그러졌으며 그 빈자리를 분노가 채우기 시작했다. '생산적 인간'은 그걸 이렇게 표현했다. '꽉 찬 보름달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면 그 자리를 어둠이 채우는 것 처럼, 자연스러운 이치로 사랑의 빈자리는 분노가 채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모양을 잃은 사랑은 유지가 불가능했고, 넋을 놓은 남자가 운전대를 놓으면서 소설은 끝난다.

 

 

 

 

 

다 읽고 나서야 제목의 의미를 가늠할 수 있었다. '행복의 비애'는 행복의 부조리함과 바람직하지 못함을 느끼면서 생기는 슬픔이나 서글픔을 표현하고 있었다. 행복을 이루기는 어렵지만 말 한마디에 사라질 정도로 연약하다. 그 부조리함을 '행복의 비애'라는 짧은 말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약간의 불만이 남는다. 어째서 저런 애매한 결말로 끝을 낸건지. 애매한 결말로 끝을 내면서 얻는 이득은 뭐가 있을까. 그저 '생산적 인간'인가? 무언가를 만들기만 하는건가? 수 많은 의문이 의문을 덮고, 결론 지을 수 없다고 말할 수 밖에 없어져서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시간 책을 읽어서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프다. 손을 깍지껴서 위로 들고 좌우로 움직였다. 허리에서 '뿌드득'하는 소리가 나며 조금은 시원해졌다. 창문을 열어보았다. 며칠전 느꼈던 미지근한 바람은 사라지고, 이제는 시원하게 기분좋은 바람이 날아들고 있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보름달은 정원대보름이 1달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창문을 활짝 열고,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허리까지 오는 방범창에 기대어 보름달을 주시하고 있었다.

 

 

 

 

보름달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저 '생산적 인간'인가. 왜 내 이야기에 의문이 생기고, 그 의문들을 결론지을 수 없는거지? 지난 1년간 무얼했냐. 그렇게 질문하면 난 무슨 대답을 할까. 오래전부터 생긴 강박증과 의문. '모든 것의 답은 내릴 수 없어.'라고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느낀 그 경외감은 스스로를 향한 혐오감이었다. 그래 이게 끝이겠지. 내 소설의 결말처럼, 이게 내 결말인거야.

그때 나의 몸을 밝은 보름달이 비추면서, 꽉 찬 행복을 투영하고 있었다.

 

 

 

이게 '생산적 인간'의 비극이야. 그 이야기는 모두 나였어.

비친 행복을 사랑하는 이처럼, 행복을 바랐던 자신을 고문하고 이제는 죽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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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풍주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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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최근 연달은 일 때문에 피곤했기 때문에 몸은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피곤한 눈을 겨우 떠서, 알람을 계속 울리고있는 스마트폰을 보았다.

'긴급재난문자' 그 여섯 글자에 정신을 차리고 아직은 멍한 상태의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가보았다.

거실은 '재난' 그 자체였다. 창문은 깨져있었고,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넘어오는 시점의 약간 선선한 바람이 악의를 품고 공격하듯 강하게 날아들고있었다. 그 사태를 제대로 보기위해 안경을 찾아서 썼다.

안경을 쓴 뒤 보이는 거실은 '재난'보다 더 심했다. 창문은 완전히 깨져서 파편이 되어 집을 공격하였으며, 그 공격을 미처 방어하지 못한 여린 가구들은 깨져버렸다. 사랑하는 어머니의 웃는 모습을 담아 놓은 액자는 떨어져서 창문의 파편처럼 바뀌어있었다. 이건 '재앙'이었다.

방으로 돌아가 시계를 봤다. 7시 20분. 더 이상 보고있을 시간이 없다. 서둘러 씻기 시작했다. 씻으면서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지금 몸으로 쏟아지는 따뜻한 물줄기처럼, 그저 평범한 일상이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평범을 깨버린 이 '재앙'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결국 씻고 나올때까지 결론을 짖지 못하였다.

 

 

 

 

 

회사는 울산에 있다. 나는 부산에 살기 때문에 매일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을 해야한다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 흔한 차도 없어서 매일같이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해야한다. 9시까지 출근이 원칙이기 때문에 8시에는 버스를 타야한다.

옷을 입고 깨진 창문을 뒤로한 채 집에서 나왔다. 버스터미널 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라 10분정도 여유가 있다. 집 앞에서 창문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네 여보세요."

전화를 받은 창문회사 사람은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그 목소리에 왠지모를 짜증이 밀려왔다.

"저 창문이 깨져서 연락드렸는,"

창문회사쪽 사람은 내 말을 끊고 말했다.

"지금 바빠요."

그의 태도에 화가났다.

"저 아직 말도 다 안했는,"

다시한번 말을 끊고 답변하였다.

"저기요, 지금 한 두곳이 그런줄 알아요? 저희도 바빠 죽겠으니까 나중에 연락주시던지 다른곳 알아보세요."

전화가 끊겼다. 아까 밀려온 짜증과 화가 겹쳐서 연쇄적으로 폭발을 일으켰다.

 

 

 

 

 

어머니는 평범하지 않으셨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서 날 키우셨다. 돈은 부족했지만 열심히 일을 하셨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게, 다른 아이들 부럽지 않게 나를 챙겨주셨다. 다른 아이들이 받는 부모님의 사랑만큼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어머니는 50대가 넘어가도록 나를 아끼며 키워주셨다. 그러나 자식에게 준 사랑의 크기만큼, 자신의 몸이 낡고 있었다는걸 알게된건 50대 후반이 다 되어서 였다.

어머니는 결국 쓰러지셨다. 큰 병원에 입원해서 제대로 된 검사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돈이 없어 그러지 못했다. 할 수 있었던건 아르바이트를 통해 얼마 안되는 돈이라도 벌어서,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드리는 것이었다. 학교에 가서 늦게 돌아오기 때문에 어머니를 보살필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고 어머니를 혼자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 이었지만 지금 나는 그 선택에 대해서 후회한다.

어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가신 첫 날, 휠체어에 앉아서 말씀하셨다. 누구든 도울 수 있으면 도우라고. 도와줄 능력이 있는데도 돕지 않는건 사치라고.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을 줄곧 가슴속에 품고있었다.

이건 수능시험날 아침의 일이다. 누군가 쓰러져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데도 주위에 걸어가는 사람들은 아무도 돕지 않았다. 도우려고 하지도 않았다.

내가 그 사람을 도와주었다. 인공호흡을 하고, 119를 불렀다. 전화에서 말하는 지시에 따라 행동하였다. 기도를 확보하고, 가슴을 압박하고, 숨을 불어넣어라. 그 사람은 앰뷸런스에 실려갔고, 나는 경찰차를 타고 수능시험장으로 향했다. 사이렌을 울리며, 빠르게 움직였다. 시간이 멈춘 듯 나만 지나가는 주위의 풍경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빠르게 달렸다. 그러나 결국 시험시간에 맞추지 못하였다. 그래도 그 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시험 잘 치고 돌아오라는 마지막 말만 남기신 채 떠나버리셨다. 절망적 이었다. 어머니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고, 떠나가는 마지막을 옆에서 지켜봐 드리지 못했다.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다는 그 절망적인 사실에 빠져 눈물만 흘렀다. 그때 요양원에 계시던 아주머니가 말씀하셨다.

"분명 네 어머니는 너를 자랑스러워 할거다. '도우면서 살아라' 네 어머니가 남긴 그 말이 가장 중요한거야."

절망적인 그 날 이후로 나는 강박적으로 어머니의 말씀을 따르게 되었다.

'요양보호사' 가 되었다. 자격증을 따자마자 어머니가 계셨던 울산에 있는 요양원에 취업했다. 조금이라도 어머니를 가까이서 마주하고 싶었다. 어머니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를 도우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아직도 가슴속에 품고 살아간다고 말하고 싶었다. 어머니께 사죄하고 싶었다.

수능시험날 있었던 사건은 '누군가 도와주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이 가져온 결과이다. 그리고 그 안일한 생각은 우리 사회 전체에 녹아들어 있었다.

그런 어머니의 말씀을 가슴속에 각인시킨 나였기에, 창문회사 사람의 태도는 나를 화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냥 창문이 깨져버린게 아니라고요. 이건 재앙이라고요."

설명을 하기도 전에 사치를 부리며 앉아있는 모습은 분노를 자아냈다. 안일한 생각의 결과이자 안전에 대해 민감하지 못한 결과였다.

전화통화 때문에 예상보다 늦어졌다. 서둘러 터미널로 움직였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간판이 강한 바람을 원망하듯이, 일렁이는 촛불이 누군가가 내뱉는 숨을 원망하듯이, 나는 자연스럽게 사회를 원망하고 있었다.

 

 

 

 

겨우 도착한 터미널에서 절망을 마주했다. 버스가 떠나버렸다. '요양보호사' 라는 직업의 특성상 한명이 없으면 여러사람이 힘들어진다.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바람을 원망했다. 아침부터 정신을 쏙 빼놓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나를 화나게 만든 원인도, 내가 늦게된 원인도, 다른사람이 고통받는 원인도, 모두 바람 때문이다.

바람은 그런 나의 마음도 모르는 채 더욱 거세졌다. 이제 밖에서 걸어다니는 사람은 똑바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바람에 온 몸을 일렁이며 한 발자국씩 조심스럽게 떼고있었다.

하늘에서 헤엄치는 현수막을 봤다. 날아가는 새처럼 하늘을 돌아다니는 쓰레기들을 봤다. 평소에는 평범하게 느껴지던 바람이 이제는 무섭다. 추리소설 속 탐정이 '네가 범인이야' 하며 누군가를 가리키듯이, 모든 사건들의 결과가 '바람'을 범인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밖에 서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터미널 건물 안으로 사람이 몰려들었다. 사람이 많아 까치발을 들어야만 겨우 보이는 창문에서 상가의 골목사이로 위태롭게 걸어오는 여자가 보였다.

눈으로는 그녀를 쫓으며, 손으로는 지각하게 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요양원에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강한 바람 때문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신경쓰는듯 한걸음 걷고 거울을 보기를 반복했다. 다리가 아파 까치발을 내렸다가 다시 들 때마다 한걸음씩 움직이고 있었다. 머리 위에는 높은 상가건물의 간판이 위태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위태롭게 걷는 그녀와, 강한바람에 흔들리는 간판이 겹쳐보인 순간, 간판이 떨어졌다.

수능시험날의 기분이었다. 누군가 간판에 맞아 쓰러졌다. 사람이 이렇게나 붐비는데 아무도 못봤을리 없다. 모두 쓰러진 그녀를 보고있다. 그저 보고만 있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수능시험날과 같다. 누군가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어도,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있는 어둡고, 차가운 생각들이 내 생각보다 훨씬 깊숙히 들어와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렇게 있으면 안 돼.'

'안일한 그들과 똑같이 되어버리면 안 돼.'

'어머니의 말을 기억해야지.'

지독하고 고독한 혼잣말. 이유없는 눈물이 눈에서 흘러내리며 몸이 움직였다.

연결 된 전화를 무시한 채 손에 들고,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달려가는 동안 내 뒤통수를 관통하는 수많은 시선들이 느껴졌다. 구경꾼들을 뒤로하고 달렸다. 도와야 해. 구해야 해. 깊숙한 심연에서 나 혼자 외롭게 소리치더라도, 소리치는걸 멈추면 안 돼. 스스로에게 요구했다. 제발 그녀를 구하라고.

가까이에서 본 그녀의 상태는 절망적 이었다. 그녀는 죽었다. 간판이 머리에 직격했다. 형체를 알 수 없게 바뀌어버린 머리 속으로 처음보는 덩어리가 나와있었다. 바람은 이제 그 덩어리 조차 날려버리려 하고있었다.

 

 

 

 

스마트폰을 꺼내보았다. 전화는 연결된 채였다.

"여보세요."

흐르는 눈물에 끓어오르는 목소리가 제어되지 않았다. 바람은 강하게 불고있고 '재앙'은 끝나지 않았다는걸 확실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움직이는 수 많은 쓰레기들이, 재앙을 몰고오는 까만 까마귀 떼처럼 보여 상황을 더욱 절망적으로 만들었다. 나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주시하며 웃고있었다. 이제 하늘에서 '재앙'이 떨어진다. 아아 어머니 죄송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죄했다.

"아, 드디어 연결됐네. 오늘 요양원 안 와도 돼. 강풍주의보라서 여기까지 못 올거 같아서 가까운데 사는 사람보고 오늘 하루만 해달라고 부탁했어."

떨어진 스마트폰은 슬픔에 젖어, 불러도 답 없는 메아리를 울리고 있었다. 계속 울리던 아침의 알람처럼, 계속해서 울리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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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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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다는 것은 참 간단하지 않아?"

그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긴 침묵 사이에 이런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으니 그가 이어 말했다.

"모든 남자들은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배워. 2년동안 전문적으로 말이야. 물론 나도 배웠어. 불만은 없었지. 모두가 배워야 하는거니까. 하지만 그거 알아? 우리는 '국가를 지킨다.'라는 명분 아래에서 그들의 재산을 지켜주고 있었던거야."

그는 줄곧 안대로 가려져 있던 오른쪽 눈을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물렁물렁한 주변의 살만 남아있었고 중요한 '알맹이'는 없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토가 나와서 눈을 뽑아버렸어. 눈에서 선분홍색의 눈물이 나올때 나는 감탄했어. 남들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살아가는게 정말 행복할 것 같았지. 그러나 세상은 바뀌지 않았어. 그래서 내가 바뀌기로 결심했어. 2년동안 배운 기술로 사람을 죽였어. 사람을 죽이고, 그들을 먹었어. 나는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 대부분의 동물들이 그렇듯 나는 살기위해 죽이고, 먹었어. 도망치는 사람을 쫓아가서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서 국수를 먹듯이 빨았어. 이건 단순한 사냥이라고 생각해. 동물은 사냥을 하고, 인간은 동물이야. 그렇다면 이건 평범한 일 아닌가?"

그는 그동안 과거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는 나의 아버지이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이 혈연에 대한 절망과 혐오감이 밀려와 당장 자리를 떠나고 싶어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그는 매우 고통스러워 보이는 표정으로 부탁했다.

"제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줘."

아버지의 말을 무시한 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자 그는 서둘러 이야기를 시작했다.

"왜 이런 이야기를 지금 너에게 하는지 이해가 안되는게 정상이겠지. 하지만 지금은 진실을 말해야 할 시간이야. 그때 나는 네가 좋아졌어.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내 과거를 말하는거야. 무척 닮아있어. 지금의 너와 과거의 나. 단지 그것 뿐이지만 말이야."

대체 그는 나의 어떤 부분이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한걸까. 나는 물었다.

"어떤 부분이… 말입니까?"

그는 기다렸다는 듯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답변했다.

"너도 알맹이가 비어있어. 인간성을 상실한거지. 그들의 재산을 지켜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때 나는 변했어. 나 역시 지금의 너처럼 사회악을 증오하며 살아온거지. 정의를 추구하던 내 안에서 모르는 사이에 내가 악으로 바뀌어 있었다면, 스스로를 죽여버리고 싶지 않겠어?"

그는 잠시 차를 마시고는 다시 말하였다.

"사냥을 하던도중 죽여달라며 부탁하는 소년을 마주했어. 이기적인 사회를 원망했던 나에게 그 말은 신선한 충격이었어. 나는 그 당시에 자살을 시도하고 있었지. 총구를 내 입으로 넣고, 총알을 발사하기 직전에 죽여달라며 찾아온 소년을 마주했어. 동족을 만난듯한 기쁨에 나는 그 소년과 함께 이 곳에서 살아가기로 약속했어. 그러나 지금 내 마음속에는 아직도 공허함과, 상실감 그리고 과거의 나에 대한 혐오감이 남아있어.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어. 만약 그때 입에 있던 총구를 빼지않고 쐈다면, 그게 아니라도 총구를 빼서 너를 향해 쐈다고 한다면 지금 나는 이렇게까지 되어있지는 않았을거야."

나는 혼란이 왔다. 정리가 되지 않는다. 두개골 속이 스크램블 에그처럼 뒤죽박죽이다.

"너에게는 기억이 없어. 혼란할거야. 네 기억은 내가 지웠어. 아니, 실수로 지워버렸어. 나는 너와 같이 살기로 약속한 이후 방금처럼 후회했어. 너를 죽이고, 나도 죽으려고 했어. 너를 죽이기 위해 뒤통수를 망치로 때렸어. 그런데 너는 쉽게 죽지않았지. 진득하게 살아남아 기억만 잃고 다시 일어났어. 이게 너를 위해서는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괴로운 과거를 잊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거니까. 나는 네가 정신을 되찾았을 때 다짐했어. 네 과거를 언젠가 다시 말해주기로. 너는 네 몸속에 어떤 피가 흐르는지 모를거야. 알게된다면 아마 자신을 혐오하게 될거야. 하지만 언젠가는 말해줘야 해. 말하지 않아서는 안돼. 지금부터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아. '언젠가'는 바로 지금이야. 내가 죽기로 마음먹었을때."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를 끝낸 그는 총을 꺼내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이유없는 눈물만 뚝뚝 마른 바닥에 자국을 남겼을 뿐이다.

그는 사라졌다. 그의 시체를 살펴보았다. 피부의 표피를 벗기니 살이 모두 썩어있었다. 썩어있는 채로 삶을 살아온 것이다. 나는 그 시체를 창밖으로 던졌다.

눈에서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눈의 시신경에 까칠까칠한 철가루를 집어넣은 듯 아파왔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오른쪽 눈을 뽑고 있었다. 그래, 나와 그는 근본적인 부분부터 닮았던 것이다.

모든 의문이 사라졌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이상한 감정. 무언가를 충족시켜야 하는 욕심과 갈망이 나에게는 있었다. 언제부턴가 느끼게 된 그 감정의 원인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와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서로 알게되어 사랑에 빠졌다. 서로 결혼까지 약속했지만 그들의 사이에는 어느새 21개월의 벽이 생겨있었다.

21개월의 벽을 허문 그때. 그가 이상해졌다는 것을 그녀는 알아차렸다. 도망치려 했지만 그는 그녀의 목을 조르고 말했다.

"나를 혼자두지 말아줘."

그는 그러면서도 손에서 힘을 풀지 않았고, 결국 그녀는 쓰러졌다. 그는 이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 며칠뒤 목에있는 상처에 대해 물어보면서 알게되었다.

그녀는 그를 떠났다. 그가 그녀에게 제발 자신을 떠나라고 부탁했다. 알 수 없게 되었다고 울며 호소했다. 그녀는 울며 그의 곁을 떠났다.

그녀는 가끔씩 편지로 소식을 알렸다. 사진을 넣어 아들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그에게 전했다. 그는 기뻤다고 말했다. 자신을 떠나서 제대로된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고, 그 결실을 이루었다는게 좋다고 했다. 나는 그게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있었다. 그는 아마 그 사진을 보고 눈을 뽑아버렸을 것이다.

그는 모아뒀던 돈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얼마 지나지않아 모아둔 돈은 모두 사라졌다. 그러나 일은 하지 않았다. 그들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역겨우니까. 그래서 그는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먹었다. 약한자는 당한다. 아니 악한자는 당한다. 그는 정의의 이름으로 악한자들을 죽였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몰랐다. 정의가 누구인지 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을.

욕구에 충실한 사냥을 몇번이고 반복하던 시기에 다시 편지가 왔다. 그녀는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그에게 자백했다. 죽은 사람은 그녀의 남편이라고 했다. 상세한 내용이 적혀있었고 편지에 적혀있는 집 주소로 와서 이야기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주변인들의 시선을 느낀다. 아 오른쪽 눈이 없었지. 그는 안대를 사서 그녀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집에 도착했을 때 문은 열려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악취가 느껴졌다. 그는 알 수 있었다. 그 냄새는 사냥의 흔적이었다. 그녀의 말은 진짜였다. 방문을 연 순간 시체가 보였다.

시체는 보였다. 그러나 남자가 아니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줄. 축 내밀어진 혓바닥에 키스했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에 대한 인사다. 아래쪽에는 편지가 있다. 그 편지는 나에게 쓰는 일종의 자백이었다.

편지에 의하면 그녀는 연쇄 살인마였다. 그와 헤어진 뒤 상실감에 의해 문란한 생활을 즐기다 그녀의 아들을 임신해버렸다. 남편이 누군지도 모른다. 의미없는 살인만을 반복하고 이유없이 살아왔다. 그녀의 아들은 어느새 8살이 되었고 그녀는 아들이 무서웠다. 친구를 집에 데려온 날. 아들과 아들의 친구를 위해 과일을 깎아서 포크와 함께 건네주었다. 그러나 수 시간이 지나도 아무 말도 들리지 않고, 밖으로 나오지도 않아서 그녀는 아들의 방문을 열어보았다. 그녀의 아들은 포크로 친구의 눈알을 파먹고 있었다. 목에 생긴 구멍으로는 피가 조금씩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그 뒤로 아들을 피했다. 그녀의 아들은 어째서 안좋은 점만 이어받은 걸까. 그녀는 편지의 마지막에 그에게 부탁했다. 아들을 죽여달라고.

그는 우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녀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준 뒤 그녀를 따라가자고. 스스로를 마음대로 할 수있는 권한은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줄곧 무언가가 없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의 눈처럼 말이다.

눈을 가릴 무언가가 있었다. 그러나 마음 속 상실감을 가려주는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마지막 부탁은 들어줄 수 없다고. 그는 진작에 죽었어야 할 운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죽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총을 꺼내들고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쏘기 직전에 누군가가 말했다.

"저를 죽여주세요."

 

 

 

 

그는 21개월의 벽에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 해주었다. 그곳에서 받았던 훈련과 그 훈련을 사냥에 어떻게 적용했는지에 대하여. 그리고 스스로 알게된 효율적인 사냥방법을 설명해주었다. 이 사회에 어떻게 반항하고 싶었는지, 어째서 반항하고 싶었는지에 대하여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 하나의 예시를 들어 설명하였다.

"이 세계를 하나의 실로 보는거야. 어딘가가 엉켜있어. 그러나 아무도 풀려고 하지않아. 노력조차 하지 않는거야. 나는 그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어. 엉켜버린 이 세계를 풀어주고 싶었던거지."

나는 줄곧 괴로웠다. 어느순간부터 이유없는 욕심과 갈망을 느꼈다. 욕심과 갈망은 모두 살인을 향해 있었다. 그는 구세주였다.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내 몸에 섞인 피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나는 이미 알고있었다. 자신의 피따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 아닌가?

계속 사람을 죽였다. 엄마처럼 의미없는 삶을 반복했다. 어느날 그가 말했다. 그때 나를 죽이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어째서일까. 나는 지금 행복한데.

그는 나를 지옥에서 해방시키고 싶어했다. 살인이라는 의미없는 삶을 반복하는 끝없는 지옥에서. 그러나 그는 실패했다. 몇번이고 계획을 세웠지만 한번도 실행하지 못했다. 그는 점점 사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졌다. 그래서 내가 본격적으로 사냥을 시작했다.

의미 없다. 누구든지 죽는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것이다. 나는 죽음에 쫒기는 그들을 구원해준 것이다. 방향을 틀어 역으로 죽음을 잡은 것이다.

사냥을 마치고 돌아와서 식사를 하고 있을 때. 그가 들어왔다.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눈을 뜨니 내 세계는 돌아가 있었다. 편하게 다시 눈을 감았다.

눈을 떴다. 앞에는 모르는 아저씨가 있다. 아저씨는 스스로를 나의 아버지라고 했다. 너는 기억을 잃었다고, 앞으로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면 된다고 하였다.

그 뒤로 평범하게 살아갔다. 식사도 정상적으로 하고 사는 곳도 정상적인 아파트였다. 그와 나는 아버지와 아들로서 살았다. 이게 그가 바란 결혼 후 행복 아니었을까. 21개월의 벽이 바꾸어 버린 그의 인생의 본래 모습이다.

마지막에 그는 울면서 나에게 말하였다.

"스스로를 원망하지 마라. 너는 악이 될 수 밖에 없었어. 아무도 너를 원망하지 않아. 반드시, 몸속의 피를 이겨내야해.'

아버지 미안해요. 저는 이미 졌어요.

그는 마지막까지 모르고 있는 것이 많았다. 선과 악의 구분은 누가 한다는 말인가. 그것들을 구분하는 권한은 누가 가지고 있는 것인가. 선의 반대는 또 다른 선이다. 서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선은 무엇인가? 그것을 판단할 권한은 아무에게도 없다. 이기는 쪽이 진정한 선이다. 이기려면 강해져야한다.

 

 

 

 

선분홍색 눈물이 떨어지는 채로 수 개월동안 방구석에 앉아있었다. 얼룩지는 마루바닥처럼 나는 엉켜있다. 그것을 알고 있었는데.

일어나서 밖을 쳐다보았다. 시체가 있었던 자리에 싹이 자라났다. 마치 뼈가 자라나서 탑을 이루는 것처럼 보였다. 마당에 있는 잡초들은 여러구의 시체에서 양분을 얻어 자란 것이다. 여러구의 시체에서 뼈가 자라고 있었다.

나는 괴로웠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이상한 감정. 무언가를 충족시켜야 하는 욕심과 갈망. 이것은 살인욕구다. 나는 누군가를 죽여야했다. 무언가에 휩싸여 집을 나가던 도중 튀어나온 못에 피부가 찢어졌다. 그리고 그 피부의 속은 썩어가고 있었다. 나는 근본적으로 그와 같았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죽이기로 하였다. 이제 새롭게 시작하기로 하였다.

나는 정신을 잃어가는 와중에 철탑을 기어 올랐다. 철탑은 내가 죽인 사람의 시체를 양분삼아 자란 뼈로 이루어져있다. 위에서는 내장이 로프처럼 얽혀 내려온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로프를 잡고 철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가면 돼."

"조금만 더."

끝까지 오른 철탑 위에서 보이는 것은 내가 죽인 수 많은 머리였다. 머리들은 모두 닮아있었다. 마치 그와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머리중에서 익숙한 것들이 보인다. '과거의 나'와 '나의 엄마'. 히어로를 동경했던 스스로를 죽여버렸다. 사랑하는 엄마를 죽여버렸다.

사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게 결말이다. 머리들이 소리쳤다.

'너도 똑같아.'

'네 엄마는 너를 키우는데 실패했구나.'

수 많은 머리를 피해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선분홍색의 아름다운 장미가 있었다. 어째서 아름다운 것은 삶보다는 죽음을 연상시킬까. 그렇게 생각했다.

수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그리고 지금은 나 혼자 멀쩡하게 철탑위에 서 있다. 난 지금 그가 느꼈던 마음속의 공허함을 느낀다. 텅 빈 우주의 끝을향해 자유형을 하는 사람처럼. 끝없는 공허함에 이유없는 눈물만이 부르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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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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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다. 딱딱한 침대에서 일어나 손목시계를 보았다. 오전 3시 30분. 30분밖에 잠을 자지 못했지만 일어나서 움직여야한다. 나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흰색 가운을 입고 병실로 발을 옮겼다.

'살려주세요.'

괴로워 보이는 그녀의 표정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내 머릿속에는 아직 그녀를 처음보았던 어린시절의 모습이 생생하다. 그때는 환자라고 말하지 않으면 알아보지 못할정도로 건강해보였으나 수년이 지난 지금, 그 시절 그녀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그녀는 변했다.

사람은 매 순간 변한다. 누군가에 의해 변하기도 하지만 스스로 변하기도 한다. 병에 의해서 겉모습이 바뀌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이 상해가는 것은 가까이에서 보지않고서는 알아차릴 수 없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사는 것을 원망한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아직 살아있는 자신을 원망한다. 죽기위하여 태어난 사람이 태어난 것을 원망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다시금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과거에 보았던 그녀의 웃는 얼굴을 더 이상은 볼 수 없다. 그녀를 변하게 만든 사람은 내가 아니었을까. 의사의 책임을 느꼈다.

 

 

어렸을적의 나는 누군가를 구하고 싶어했다. 내가 구하고자 하는 사람이 범죄자같은 사회악일지라도 나는 구하고자 하였다. 누군가를 구하는 행위. 그 자체가 선이고, 정의라고 생각했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공부는 언제나 상위권에 외모도 준수했다. 집안에 돈도 그럭저럭 있었으며 인간관계도 완벽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하고싶은 것이 없었다. 주위에서는 의사가 되라고 하였다. 그들은 내가 어느 곳에 가든 잘 해낼거라고 하였다. 억지로 끌려가듯 의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묻고싶다. 가만히 잘 살던 내게 왜 용기를 줬는지. 왜 착각하게 만들었는지. 내가 원했던 정의는 이런게 아니었다.

나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이른 새벽 시간이라 깨어있는 환자는 거의 없다. 아니, 사실 깨어있다고 해도 알 수 없다. 그들은 말 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다. 그저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밖으로 나가던 도중 한 할아버지가 나를 붙잡았다. 그의 상태는 이곳의 사람들 중 상당히 좋은 편이다.  말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의사 선생님. 저는 구원받을 수 있는건가요?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겁니까?"

죽은 바로 옆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살아가는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구원자라고 생각한다. 고통에서 구해주고 죽음을 막아주는 방패. 그러나 나는 고통에서 구해줄 수도 없고 죽음을 막아줄 수도 없다.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죽음이 빗겨가기를 기도하는 일 뿐이다.

나는 아까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중인지 스스로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사로 살아온 수년간 그런 질문은 수도 없이 받아왔다. 그러나 단 한번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애초에 나는 의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다시 한번 그의 질문을 곱씹어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한 일들은 모두 그들을 끝 없는 지옥에 빠뜨렸다는 것을.

 

 

 

 

내게 누군가를 죽일 용기가 있다면 이곳의 모두를 죽여주고 싶다. 그러나 그런 용기가 있을리 없다.

누군가 나를 향해 손가락질 하며 말했다.

"너는 미쳤다. 그게 의사가 할 짓이냐?"

나는 반응하지 않는다. 의사가 할 짓이라는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나는 그들의 구원자다. 이제 의사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제대로 된 의사로서 살아간다. 생각을 하다가 꿈에서 깼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며 무언가를 믿는 것. 나는 내가 이 세상에 넘쳐나는 평범한 사람이라 믿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진실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미친 사람이고 그들이 평범한 사람이다. 내가 믿은 것은 이 세상 그 자체인데 내가 믿었던 세상은 원래 없는 것이다. 나에게는 이 세상이 허구다.

그녀는 아직도 누워있다. 말은 물론 눈도 뜰 수 없다. 아직도 나의 눈에는 수 년전 그녀의 웃던 모습이 아른거린다. 나는 신에게 기도한다. 모든건 운에 맡긴다. 무책임하다. 그러나 나는 그런 나를 좋아한다. 그럴 수 밖에 없으니까.

죽어가는 환자. 그들이 나에게 말한다. '나에게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저는 얼마나 더 살 수 있나요.'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대답한다.

"저는 신이 아닙니다."

 

 

 

 

 

환자가 죽었다. 사인은 급성 심부전. 간단하게 돌연사다.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이 죽었다. 환자이름도 모르는 의사라고 욕해도 좋다. 환자가 죽었지만 전혀 슬프지 않다. 오히려 활력을 찾았다.

옆자리를 쓰던 환자가 죽었지만 그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그들도 하루하루 살아가는게 기적이다. 나는 날이 갈 수록 그들과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원래 저 침대에 누워있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오랜만에 그녀가 눈을 떴다. 그녀의 눈동자를 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나는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그녀는 말라 비틀어진 입으로 겨우 소리를 내 나에게 말했다.

"차라리 저를 죽여주세요. 너무 괴로워요."

그래 이게 현실이다. 그들을 위하는 척 하며 그들을 괴롭게 만들었다. 나는 누워있는 그녀를 안고서 말하였다.

"미안합니다…"

나에게 남은 마지막이다.

 

 

 

 

 

인간은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다. 모두가 똑같다. 이곳의 사람들은 병드는것이 조금 빠를 뿐이다. 단지 그것 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평범하지 않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곳에서는 모두 평범해진다. 이곳에서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평범하다는 것이다.

이제 모든게 끝나간다. 무엇이 끝나가는지는 알 수 없다. 무언가가 끝나가는듯한 기분이다. 매일같이 신에게 기도한다. 인간에게는 정해진 일을 바꿀 힘이 없고, 의사가 할 일이라는 것은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어째서 나는 의사가 된 걸까. 누군가를 구하고 싶었다. 그 생각 하나로 의사가 되는 것은 이상하다. 누군가 나에게 용기를 주었기 때문일까. 나는 그것 하나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었을까.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누가 해줄수 있는가.

그녀는 그날 이후로 다시 눈을 뜨지 않는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째서 그녀에게 집착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누군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어째서인지 그녀를 쫓고있다.

매일 눈을 뜨면 그녀의 침대로 간다. 그저 옆에 앉아서 바라보고만 있다. 처음에는 1분 다음은 10분 그러다가 점점 커져 이제는 시간조차 가먹고 계속 앉아서 바라본다. 하염없이, 계속.

"선생님 정신차리세요.'

간호사가 불렀다. 나는 정신을 차렸다. 시계를 보니 벌써 1시간이나 지나있었다.

"죄송합니다. 어째서인지 그녀가 걱정되어서…"

간호사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본 뒤 말했다.

"다른 환자분들도 신경 쓰셔야죠. 의사잖아요."

나는 의사라는 단어에 유독 경멸감을 느꼈다. 나는 이 알 수 없는 직업에 의문이 넘쳐났다. 그러나 표현할 수는 없다.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가볼게요."

 

 

 

 

 

끝이 없는 지옥에서 끝을 찾고있다. 어쩌면 허무맹랑한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그런것이다. 어느 누구도 명쾌한 답을 제시해주지 않는다. 그저 살아가는대로 살아가고, 죽어간다. 살아가는 건지 죽어가는 건지 서로 반대인데 어떻게 동시에 할 수 있는걸까.

그녀의 상태는 갈수록 안좋아진다. 이제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 수년 전 보았던 미소는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이 사실이 나를 슬프게, 행복하게 만든다.

할동안 수많은 환자가 죽어간다. 그들을 구원할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사라는 직업은 겉모습에 불과하다. 나는 매일같이 신에게 기도한다.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 그곳에 존재한다.

신은 내 정성을 비웃듯 그녀의 상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이제 숨 쉬기도 힘들어 보인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래 이제 끝을 내자. 모든것을 끝내자. 이 지옥에서 벗어나자.

그녀가 죽었다. 언제든지 이 날이 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웃는 얼굴은 내 기억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은 이제 고통으로 바뀌었다.

나는 내가 싫다. 내 삶 속에서 기억에 남아있는 사람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괴로워보인다. 나는 저주받았다. 평범한 내가 있는 이 세상은 없다. 신은 허구에 불과하다.

매일같이 절망에 빠져있다. 그녀가 떠나버리고 매일 이 모양이다. 매일같이 그녀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던걸까. 그저 아무 생각없이 앉아있었을까.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내 기억속의 괴로운 사람들은 괴로운 운명 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괴롭게 만든걸까. 신을 원망한다. 이 지옥에 나를 놓아두고 가버렸으니.

하나가 끝나면 새로운 하나가 시작된다. 끝이 끝이 아니다. 이세상은 원래 그렇다. 한사람이 죽어서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나면, 어느 곳에서는 또 다른 하나의 인생이 시작된다. 끝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죽기로 결심했다. 그녀와, 그들을 괴롭게 만든 벌이다. 나는 벌이 필요하다. 내 몸속 장기는 없다. 무언가 사라져버린 기분. 무언가를 찾으려해도 찾을 수 없다. 이미 멀리 떠나버렸다.

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아무것도 없다. 주위를 둘러 보았다. 아무것도 없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무것도 없다. 이게 진실. 나머지는 허구.

죽으려고 마음먹으니 의사라는 직업이 참 편하다. 손만 내밀면 죽을 수 있다. 칼을 사용하던, 약을 사용하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동안 내가 틀렸다. 환자를 죽이는건 구원하는게 아니라 벌을 주는 것이다. 나는 내가 정말로 안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원망하는건 괴로운 일이다.

주사기를 들었다, 이걸로 찌르면 삶은 끝이다. 사인은 급성 심부전. 간단하게 돌연사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팔뚝에 주사기를 찔렀다.

약이 내 핏줄로 들어왔다. 끓는 물을 혈관에 직접 집어넣는 느낌이다. 아프고 뜨겁다. 약을 전부 핏줄로 흘려보내고 눈을 감았다. 눈을 뜨면, 아니 눈을 뜨지 못할거다.

사실 그녀도, 이름모를 환자도 내가 죽였다. 둘 다 사인은 급성 심부전. 돌연사다. 내가 그들에게 벌을 주었다. 나는 지금 신이 된 기분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이미 시체가 되어 썩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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