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너무 지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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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쓰지도 못하고요. 고3이라는 게 뭔지 고작 한 살 더 먹었을 뿐인데요…. 건강관리도 못해서 어제는 아침부터 병원에 다녀왔네요.  그냥 슬럼프 극복을 위해 무작정 책이라도 읽고싶은데 공부도 급하고, 그러다보니 아무것도 안되는 것 같아요. 음, 다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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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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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는 평소에도 몇 번이고 죽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건 '죽고 싶다' 따위의 말이 아니었다. 죽겠다고 말하는 그는 평소와 다름없는 멍한 얼굴이었다. 죽겠다, 는 그에게 당연한 말이었다. 당연한 행위였다.

그의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고, 형제는 보기 드문 정도로 많았다. 학원이나 과외는커녕 문제집을 사기도 어려워 버려진 문제집을 주워 풀었으며,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급식을 제외하고는 식사도 제대로 챙겨먹기 어려웠다. 그는 반지하에 방 두 칸짜리 작은 집에서 두 명의 부모와 열 명의 형제들과 함께 살았다. 방을 나누는 기준은 간단했다. 수가 많은 남자들은 큰 방에, 여자들은 작은방에. 어느 쪽이든 빽빽하게 사람이 차서 뒤척이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A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A는 항상 그랬다. 모든 것에 관심이 없다는 듯이 행동했다.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대부분의 것들이 그에게는 사치였다. A는 도전하는 법보다는 체념하는 법을 먼저 배웠다.

가난은 사람을 예민하게 만든다고, 그는 말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나쁜 사람인 것은 아니니까, 상황이 그렇게 만든 거니까. 나는 괜찮아. 그는 몇 번이고 괜찮다고 말했다.

*

목을 맸다고 했다.

'나는 최대한 끔찍하게 죽을거야.'

그는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다.

'목을 맬거야. 혀는 쭉 빠지고 흰자만 보이는 눈은 빠질 듯이 튀어나오고, 얼굴은 퍼렇게 퉁퉁 부어서 온 배설물을 다 흘리면서,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그렇게 죽을거야.'

그는 그가 원하는 모습 그대로 죽었을까. 그의 시체를 처음으로 발견한 이가 충격으로 쓰러진 뒤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의 바람은 이루어졌던 것 같다.

목을 매달아 죽으면 무척이나 고통스럽다고, 그는 연이어 말했다. 왜 하필이면 그런 방법으로 죽고 싶어 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드물게 웃는 얼굴이었다. 그렇게 고통스러우니까, 호흡이 막혀서 완전히 죽기까지 걸리는 시간, 그 시간동안 나는 살고 싶어 할 거야. 죽음을 선택한 것을 후회할지도 모르지. 피가 온통 머리로 몰리고, 목을 누르는 압력에 꺽꺽대며 발버둥 치다가 살려고, 살고 싶어서 애를 쓰다가, 결국은 그 발버둥도 잦아들며 죽어버리겠지. 나는, 그걸 원해.

그가 유일하게 살고 싶어 했던 순간은, 죽기 직전 그 순간뿐일 거라고. 그때라면 삶에 대한 집착이, 의지가 무엇인지 자신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A는 항상 죽고 싶어 했다. 그리고 죽음 직전에서야 삶을 바랐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지. 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

“죽고 난 뒤에는 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말을 꺼낸 건 나였다. A의 환경을 아는 나는 그를 말릴 수가 없었다. 다만 네가 죽는다면 많이 슬프고, 외로울 거야. 라며 말했다. 그런 말에 A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물었다. A가 죽는다면, 죽어서는 행복하길 바랐기 때문에. A는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아무것도…….”

“어?”

“아무것도 없길 바라.”

그런 표정의 A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렇게도 절박한 표정,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것 같이, 무언가를 간절히 갈망하는 표정. A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A의 장례식은 조촐하게 진행되었다. 장례조차 제대로 치루지 않고 화장해 버리려던 것을 B가 화를 내며 말렸다. B는 A의 친구 중 하나였다. B는 조곤조곤 설명했다. 저소득층에게 장례 지원을 해주는 곳이 있다고, 그곳에 연락해보라고. 죽은 사람을 이렇게 취급하는 것이 옳은 일은 아니라고. A의 부모는 혀를 차며 정말로 귀찮고, 짜증난다는 듯이 장례식을 준비했다. 장례식 내내, A의 부모와 형제들은 울지 않았다.

A는 살아생전 친구가 별로 없었다. 누군가에게 미움을 사지는 않았지만 호감을 사지도 않았다. 먼저 말을 거는 일이라고는 절대 없고, 항상 멍한 표정으로 허공만 바라보는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A의 장례식의 찾아오는 조문객은 무척 적었다. 나는 한구석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A는 왼쪽에서 다섯 번째, 가장 아래에 있는 납골당에 담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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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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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계단을 오른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책이 가득 든 가방을 어깨에 메고, 한 손에는 성적표를 쥐고 있다. 마침내 옥상에 다다른다. 소녀는 커다란 철문을 민다. 문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만 쉽게 열린다. 잠겨져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라 소녀는 당황한다. 문의 잠금장치는 망가져 있다. 잠금장치의 끝부분이 아예 부러져서, 잔뜩 녹이 슬었다. 이런 것도 보수하지 않는 걸까, 소녀는 생각한다. 옥상의 난간은 낮다. 기껏해야 소녀의 명치쯤 닿을 것 같다. 소녀는 가방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친다. 쾅. 무거운 가방이 바닥과 부딪치며 제법 큰소리를 낸다. 소녀는 난간 위에 대충 걸터앉는다. 다리가 허공에 떠있다. 곧 떨어질 것 같다. 위태롭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난간을 손으로 더듬는다. 칠이 벗겨진 부분은 시멘트가 고스란히 들어나 있어 거슬거슬한 느낌이 난다. 손톱으로 난간 위를 긁어본다. 말라붙은 페인트 조각이 손톱 밑으로 들어간다. 진짜 죽을까. 충동적으로 옥상에 올라온 소녀는 고민한다.

“야! 너 거기서 뭐해!”

밑에서 고함을 친다. 소녀는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본다. 아마 선생님. 중심을 잡지 못한 소녀의 몸이 휘청인다. 밑에서 또 소리친다. 거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 그리고 이어지는 발걸음 소리. 한 번 혀를 찬 소녀는 난간에서 일어난다. 난간에서 자그마한 돌조각이 몇 개 떨어진다. 소녀는 옥상 바닥으로 내려온다. 자신을 불렀던 선생님이 옥상 위로 올라오기 전에 옥상을 벗어난다.

[1학년 -반 —학생은 지금 당장 2층 교무실로 내려와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1학년 ―반 —학생은 지금 당장 2층 교무실로 내려와 주시기 바랍니다.]

소녀는 풀던 문제집을 덮는다. 짜증을 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소녀에게 이목이 모인다. 수군거리는 입들. 소녀는 인상을 찌푸리며 반을 나간다. 야, 쟤가 그 옥상에 오른 걔야? 아마 그럴걸? 쌤이 부르는 거 보면. 수군거리는 소리가 뒤따른다. 소녀는 귀를 틀어막는다.

소녀는 교무실 앞에 서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머릿속으로는 영어단어를 외며. testament. 유서, 증거, 성서. testament. 유의어는 proof, evidence, testimony…….

“아, 왔어? 들어와.”

교무실 문을 연 익숙한 얼굴의 선생님이 소녀를 부른다. 소녀는 교무실로 들어간다.

“종용쌤, 학생 왔어요.”

“아, 왔냐? 앉아봐.”

담임선생님은 성의 없이 의자를 가리키며 보고 있던 영화를 일시정지 시킨다. 소녀는 표정을 관리 하려고 애쓰며 의자에 앉는다. 담임선생님은 그제야 소녀를 본다.

“그래, 옥상에 올라갔다며?”

“아……. 네.”

“왜 그랬어? 이번 성적도 잘 나왔잖아. 저번보다 30등이나 올랐는걸.”

소녀는 차분하게 준비했던 말을 이으려 애쓴다.

“저는 성적 때문에 옥상에 오른 게 아니에요. 애초에 뛰어내릴 생각도-”

“됐고. 학교에서 사람 죽으면 재수 없으니까 자살 생각은 마. ……뭐해? 가봐.”

담임선생님은 소녀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시 영화를 튼다. 소녀는 교무실에서 나온다. 꽉 쥔 두 손이 하얗게 질려있다. 빌어먹을, 망할 새끼. 소녀는 속으로 몇 번이고 욕설을 퍼부으며 반으로 돌아간다.

소녀가 자리에 앉자 별로 친하지도 않은 같은 반 아이가 말을 걸어온다. 소녀는 풀던 문제집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답한다.

“저기, 요즘 많이 힘들어?”

“별로. 괜찮은데.”

“아, 그렇구나.”

성의 없는 대답에 아이는 놀란 듯 움츠러든다. 주춤거리며 물러난다.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는 다른 친구와 속닥거린다.

“야, 뭐래?”

“아, 몰라. 재수 없어. 사람이 걱정을 해줘도 진짜.”

“왜 저런대. 지 옥상 올라간 거 애들 다 아는데.”

“관심 받고 싶나보지.”

소녀는 필통을 뒤져 귀마개를 꺼낸다. 귀를 막는다. 막힌 귀로 소음이 들어온다. 소녀는 손을 멈추지 않고 문제를 푼다.

 

*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소녀는 다시 옥상을 찾았다. 당연히 잠겨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옥상문은 이번에도 쉽게 열렸다. 잠금장치는 여전히 망가져 있다. 문도 안 고치네. 미친 새끼들. 소녀는 열린 옥상 문을 인상을 찌푸린 채 바라보다 옥상으로 나갔다. 옥상은 황량했다. 몇 달 전 소녀가 왔을 때와 다를 게 없다. 주변을 둘러본 소녀는 가방을 내려놓고 종이와 펜을 꺼냈다. 유서, 소녀는 난간에 종이를 대고 제일 위쪽에 작게 적어 넣었다. 첫 문장을 뭐라고 써야하지, 소녀는 한참을 고민한다. 툭툭, 의미 없는 볼펜자국이 종이에 남는다.

 

유서

.. … .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뭘 더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요. 고해성사와 같은 말은 하지 않을래요.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 더 이상 살지 못하겠어요. 삶이란 고달프기 그지없다는 것을 최근에야 깨달았어요. 저는 공부하고 싶지 않아요. 2시까지 독서실에 있고 싶지 않아요. 그런 걸로, 그렇게 얻은 결과로 칭찬받고 싶지 않아요.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요. 애초에 나라는 사람에게 의미가 있는 걸까요?

세상은 성적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어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도 많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왜 성적을 전부로 저를 보시나요. 왜 저의 행복은 성적으로 평가되나요. 성적이 올랐네. 잘했어. 봐, 하면 할 수 있잖아. 이런 말에 왜 저의 노력은 들어가 있지 않나요. . …

몇 번, 상담소에 다녀왔어요. 병원이나 약은 조금. 들키면 또 곤란하기도 하고 공부에 지장이 갈 수도 있으니까 상담만 몇 번 받았어요. 아빠가 나 성적 올랐다고 준 그 돈으로, 성적 스트레스를 상담 받으러 갔어요. 별 거 없더라. 그래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 좀 나아졌는데, 이제는 별로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아요. 그래서 죽으려고. 상담사 선생님께는 좀 미안하네요. 많이 도와주려고 애쓰셨는데 학생이 이래서. 미안해요, 선생님.

잘못된 것은 무엇일까요. 이상한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겨우 이 정도의 일로 죽겠다고 하는 제가 잘못된 걸까요? 저를 죽음으로까지 밀어 넣은 사회가 잘못된 걸까요? 제 일을 겨우 이 정도의 것으로 재단하는 사회가 잘못된 걸까요. 저는 정말로 모르겠어요.

이, 편지유서가 누군가에게 보일 때쯤에는 전 죽었겠죠. 이 세상에 없겠. 죽었겠죠. 아, 제게 나쁜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분명 좋은 일도 있었죠. 있었겠죠. 그런데 그 기억들이 전부, 나쁜 기억에 먹혀버렸네요. 그래도 고마웠어요. 네, 안녕. 죽은 뒤에는 새처럼 자유롭게 되고 싶어요. 안녕. 이만 줄일게요. 잘 있어요. 안녕.

 

소녀는 유서를 접어서 옥상 난간 위에 내려놓았다. 난간 위에 올라섰다. 발 하나가 겨우 들어설 수 있을 정도로 좁은 난간 위에서 소녀는 마지막 미련으로 뒤를 돌아봤다. 아무렇게나 버려둔 성적표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세게 쥐었던지 아직도 손자국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성적표. 소녀는 난간 위에서 내려와서 성적표를 집어 들었다. 8/382. 전교 8등. 수도권 자사고에서 이 정도면 나쁜 성적은, 아니지. 인서울은 안정권에, 더 올리면 서울대도 노릴 수 있겠지. 좋은 대학에 가면 행복할까. 소녀는 중얼거리며 난간에 대충 걸터앉아 몸을 뒤로 기울였다. 조금만 중심을 잃어도 떨어질 것만 같다. 다리 하나만 땅에서 떼기만 해도 머리부터 바닥에 떨어져 깨질 정도로 위태로운 자세였다. 이대로 죽으면 반응이 어떨까. 성적 비관 자살? 내가 성적이 떨어져서 죽은 거라고 생각할까? 내 죽음에 관심을 가질까? 생각이 몰아쳤다. 소녀는 질끈 감았다 떴다. 그럴 리가 있나. 내가 전교 1등도 아니고. …전교 1등을 하면? 반응이 궁금하네. 소녀는 몸을 일으켰다. 가방을 챙겨들고 옥상을 내려왔다.

 

*

 

문제집 위로 피가 떨어진다. 아, 코피. 소녀는 중얼거리며 책상 위에 있는 휴지로 코를 막는다. 문제집을 닦고 다시 문제를 풀어나간다. 삼차함수 f(x)는 극값을 가지니까, f'(x)는……. 판별식을 써서, 근과 계수의 관계. 미분한 다음에 대입. 대입, 대입…….

“아악!”

소녀는 화를 참지 못하고 샤프를 내던진다. 벽에 부딪친 샤프가 산산조각이 난다. 아, 저거 비싼 건데. 자리에서 일어난다. 순간 시야가 흐려진다. 저혈압 진짜. 소녀는 화를 참으며 넘어지지 않으려 애쓴다. 그러나 결국 넘어지고 만다. 휴지가 빠져서 피가 바닥에 떨어진다. 어지러워. 도통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당장이라도 비명을 내지르고 싶은 걸 참으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애쓴다. 원래도 약한 몸이 말을 들을 리가 없다. 소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른다. 감정만이 잔뜩 담긴 비명이다.

“제발 좀 닥쳐! 고3이면 다야? 지랄도 하루 이틀이지!”

소녀의 비명소리에 잠을 깬 동생이 소리친다. 소녀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소녀의 엄마가 말한다.

“너 누나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누나는 고3이잖아. 겨우 그 정도도 이해 못해줘? 네 누나는 이 시간까지 공부하면서 좋은 성적 받아오는데 너는 잠이나 퍼질러 자면서. 네가 공부를 잘해, 뭘 잘해. 미안해, 더 공부하렴. 조용히 시킬게.”

소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다리가 제멋대로 떨린다. 소녀는 책상 앞에 앉아서 다시 문제를 풀어나간다.

 

*

 

3학년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났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우울한 기색이다. 대학과 직결되어 있는 고사인 만큼 다들 혈안이 되어 공부했을 테니, 원하는 만큼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비가 추적하게 내린다. 아이들의 우울한 심경을 날씨가 대변해주는 것만 같다. 소녀는 성적표를 받고 평소처럼 옥상에 올랐다. 오랜 불면증 탓에 뿌연 눈, 귀마개를 한 것처럼 답답한 귀. 한손에는 구겨진 성적표가 꽉 쥐어져 있었다. 성적표에 써져있는 전교 석차가 비에 젖어 흐려진다. 1/382. 피부로 차가운 비가 쏟아졌다. 소녀는 비틀거리며 난간으로 걸어갔다. 오늘은 될 것 같다. 괜찮을 것 같아. 소녀가 웃었다. 비가 와서 미끄러운 난간을 붙잡고 그 위에 올라서,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미끄러지듯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소녀의 몸이 바닥과 부딪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소녀의 시체를 본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빗소리에 섞였다. 너희들 뭐하는 거야! 이어지는 선생님의 고함소리. 뒤늦게 떨어진 성적표가 피에 젖어갔다.

 

소녀의 이야기는 뉴스에 나오지 않았다. 학교는 그제야 옥상 문을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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