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이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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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이름 2>

0
나는 당신 이름이 알고 싶어요

 

1
당신은 늘 미래를 말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과거를 읇조리는 사람이었죠 우리는 아마도 등을 마주대고 사는 사람이었을 거예요 그래서였을까요 우리는 모두 지금을 살지 못하고 시간의 경계에 갇혀버렸죠 그리고 반짝이던 당신의 이름은,

 

2
계속 누군가를 찾고 있어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눈이 마르는 날이 늘어났어요 자꾸만 눈물이 나서 과거에 눈물이 뚝뚝 떨어져요 번지는 잉크와 구깃해지는 종이 따위의 것들을 바라봐요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3
등을 맞대고 있으면서도 대화는 하지 않아요 우리는 정반대의 시간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나는 우리가 살지 못하는 지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당신은 절대 대답하지 않았죠 당신이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미래뿐이었고 나는 당신을 지나온 시간만 말할 수 있었으니까 그 시차 때문에 나는 한참을 앓았죠

 

당신도 모르는 시간이 내게는 있었어요

 

4
언제쯤 우리는 마주볼 수 있을까요 시간이 뒤틀리면 만날 수 있을까요 과거는 반복되고 돌고 돌아 미래가 되니까 계속 이 길 위에 있다보면 우리가 마주볼 수 있을까요

 

5
당신의 이름이 알고 싶어요 나의 이름이 알고 싶어요 세상 모든 것에는 이름이 있죠 아직 오지 않은 오늘은 내일이라고 하고 지나간 오늘은 어제라고 해요 오늘을 살지만 오늘을 살 수 없는 우리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은 꿈이라고 하고 지나간 시간은 추억이라고 해요 흐르는 시간 속에서 멈춰있는 우리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시간을 뒤틀까요 당신을 뭐라고 불러야 당신이 돌아봐줄까요

 

6
가끔은 간절한 것이 독이 되는 일도 있어요

 

7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나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우리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무엇인가요

 

8
흘러가는 세상 생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건져올렸어요 빛나는 이름은 많아요 하지만 우리의 것은 없죠 언제쯤 이름을 받게 될까요 이름을 알게 되면 이 삶의 이유도 알게 될까요

 

9
당신 이름을 너무 알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누구도 알려주지는 않으니까, 멋대로 사전을 펼쳤어요 당신을 형용할 수 있는 단어를, 나를 말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아서 시간 틈새를 뒤졌어요 그렇게 찾은 당신의 이름은, 나의 이름은,

 

10
당신의 이름은 빛,
나는 그림자입니다

 

내가 마음대로 그렇게 정했어요
빛은 눈이 부시어 똑바로 바라볼 수 없어요 그건 미래도 마찬가지죠 당신 또한 제대로 알 수 없어요
그림자는 빛이 아니라 똑바로 볼 수 있어요 그건 과거도 마찬가지죠 나는 다시 제대로 볼 수 있어요
나는 당신이 아니라서 오늘에 가려진 당신을 보지 못해요 당신을 가리는 오늘의 그림자에 묻혀 살고 있답니다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는 거예요 지나갈 시간이 있기에 지나온 시간도 있어요 그건 나와 당신도 같죠

 

나는 아마 영원히 당신 앞에 설 수 없겠죠 당신 앞에 서면 나는 죽어버리니까 빛나는 내일을 두고 어두운 어제를 볼 사람은 아무도 없겠죠 그러니 나는 이 자리에 남을게요 언젠가 당신이 오늘을 넘어올 때를 기다릴게요 그때가 되면 부를 수 있게 될까요 닿을 수 있게 될까요 알 수 있을까요,

 

11
당신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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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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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눈을 닮은 한이에게

 

1
잘 지냈어? 나는 아주아주 잘 지냈어 있지, 나는 지금 한국에 없어 여기는 세상에서 제일 큰 땅이야 눈을 돌리면 눈이 있는 곳 사람들은 다정해 친절하고 따뜻해, 그건 내가 흰 피부와 노란 머리 파아란 눈을 가졌을 때만 일어나는 기적 그 따뜻한 냉정함에 나는 오늘도 몸부림쳤어 끔찍해 그런데 여기서밖에 숨을 쉴 수 있어서 다시 눈물에 지우개를 마구 문질렀어

 

2
있지 나 여기 볼에 서리가 피었어 예쁘지? 반짝이는 얼음꽃이 질 때 나도 여기에 남아있을까
어제는 여기보다는 훠얼씬 다정한 서쪽나라의 여왕님 꿈을 꿨어 아주 신기한 힘을 갖고 있다지 얼음과 눈을 다루는 힘 나도 그런 힘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나를 정교한 얼음동상으로 만들텐데 봄이 오면 녹을텐데 사라질텐데

 

3
너는 어떠니 잘 지내? 거기는 눈이 온다며 하이얗게 소담하게 눈이 쌓였다며 새카만 구름에서 새하얀 눈이 내렸다며 있지 눈은 죽은 사람들의 말이 부서진 거래 저 멀리 햇빛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사람들이 외치는 말이 별처럼 부서져서 내리는 거래 저 눈송이 중에 내 말도 있을까 우주 너머에서 부서진 내 눈물도 있을까

 

4
한아 나는 지금 아주 행복해 너무 행복해서 어떨 정도냐면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야 그러니까 만약에 나를 다시 못 보게 된다면 그때는 날 위해서 눈처럼 하얀 장미 한 송이를 태워줄래?

 

5
내 장례식에는 오지 마요 부탁이에요 오려거든 국화 말고 작은 하얀 장미를 가져다줘요 화려하게 다 핀 장미 말고 덜 핀 장미 말이에요 다 핀 건 금방 죽으니까 죽은 사람에게 죽을 꽃을 가져다주는 건 너무하잖아요

 

미안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다시는 이런 이야기 하지 않을게요 나한테 제발 따뜻하게 대해주지 마세요 제발

 

6
한아 사실 엄청나게 추워 마음이 추운건지 아니면 정말로 추운건지는 잘 모르겠어 너는 괜찮아? 눈이 쌓였다며 새하얗게 깨끗하게 쌓였다며 오늘이 삶의 마지막인 것처럼 행복해야지 눈을 덮어야지 눈을 감아야지

 

7
한아 미안해 나는 아무래도 더는 편지를 못 쓸 것 같아 네가 내 눈이었어 내 눈이 되어줘서 고마워 너는 눈처럼 살지 말아줘 내 몫까지 행복해줘 다음번에 다시 만나면 우리 그때는 꼭 같이 스ㅋ,

 

[글씨가 끊어져 있다. 눈이 녹은 것처럼 점점이 젖은 자국이 남아있다. 마지막 일기는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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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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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아, 경아 우리는 아직 어린 별이니까 아직 피지 않은 민들레니까 경아

 

1

경아 어디에 있어?

 

온통 검은 세상에서 너 홀로 하양이었어 경아

 

경아, 경아 어디 있어 나 여기 있어 혼자 손 흔들어 인사하고 뒤돌아 그대로 사라지는 삶을 살고 싶다며 경아

 

2

너를 만나러 왔어 오래 돌아서 드디어 너를 만나러 왔어

 

경아 어디 있어 하얀 밤이면 나를 만나러 오겠다고 했잖아 파랗게 뜬 달에 잡아먹히기 전에 도망치자고 했잖아 경아

 

이러는 게 어딨어 경아 같이 살아남기로 했잖아

 

3

영아

 

노랗게 밀려오는 파도에 끝에서부터 천천히 부서졌어
차마 도망칠 수는 없었어 그래서 나는 그냥

 

그림자 없는 사람이, 온기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미안해, 근데 그게 잘못은 아니잖아

 

4

나 아까 오랜만에 만난 아이랑 인사를 했어

 

안녕 나 누군지 기억 나? 안 난다고 그래 그럴 수 있지 기억해 나는 네 그림자야 네 그림자라고 다시는 날 떠나지 마, 응?

 

(웃기지 나는 그림자가 있을 수가 없는데 내 이름이 뭔지는 알아?)

 

있는 힘껏 발버둥쳤어 발끝부터 노란 모래색으로 변해 가는데

 

5

경아 같이 잠자리 잡으러 갈래 같이 별을 피워내러 갈래 경아

 

달빛을 잡으려 달렸어 경아, 아직 피어나지 않은 약속을 하고 우리 같이 파랑에 뛰어들자 어느 날 이 파랑이 보랏빛이 되고 그건 아마도 우리가 흘린 빨강이지 경아

 

(아주 오랜 꿈을 꿨어 언젠가 도망치다가 별에 머리를 부딪쳤던 날의 잔상이)

 

괜찮아 분홍이 되고 싶었던 건 너뿐이 아니잖아

 

6

영아

 

사실 바다가 보고 싶었어 아무도 없는 바다에서 크게 소리쳐도 아무도 모를 공간에서 너랑 나랑 둘만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어

바다가 울었어, 영아

나는 그냥 다정해지고 싶었어

 

7

경아, 오늘도 꿈을 꿨어?

 

8

영아 나 친구가 생겼어, 볼래? 환이야. 나랑 같이 살아. 내가 숨 쉴 때 같이 쉬고 내가 먹을 때 같이 먹어. 내가 젖으면 같이 젖고 내가 자면 같이 자. 근데 내가 파랑에 잠겨 있을 때는 절대로 따라서 잠기지 않는다, 영아

 

(경아 안 되겠다 너 조금 더 자 괜찮아)

 

도망쳤던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그래도 되는 줄 몰랐어

 

9

경아 나 갈수록 감정이 격해져 어떤 날은 동이 트기 직전까지 깨어 있고는 해 불면이 심해진 밤이면 나는 사고가 정지된 채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넘쳐나는 생각 틈에서 허우적거려

 

경아

난 어디로 가야 해?

 

10

덜 피어난 민들레를 꺾었어 너도 언젠가는 씨를 뿌릴 테니까 그러고 나면 남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 그렇게 되기 전에 먼저 내가,

 

(환아 그만해줘 제발)

 

경이는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

 

11

경아 아무도 도망쳐도 된다고 하지 않았다며 근데 너는 그래도 돼

있지 경아 나 가끔 너랑 손잡고 죽어라 달려들었던 파랑이 나를 짓눌러 그런데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경아

 

(환이 뒤를 돌았다. 뭔가를 손에 쥐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직 다 피지도 않은 제비꽃.)

 

경아, 나 별에 머리를 부딪칠 것 같아

 

12

무서워, 경아

 

눈 뜨면 마중 나와 있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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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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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마주하게 된 사람을 위로하고 위로하는 동시에 위로받고
향기로운 단어들을 쏟아내고 미처 정리할 틈도 없이
부끄러워하고 실수로 쏟았다고 변명하고 그러나 우리는 서로가 애써 숨긴 전부를 알아듣고

 

각자의 방식으로 파랑을 표현하고 물감을 풀어 하양에 쏟고
네 파랑은 아름답구나 오늘은 유독 파랑이 짙구나 바다 색이구나
빛바랜 노을이구나 잿빛 분홍이구나 하는 예쁜 말로 서로의 상처를 끌어안고

 

파랑이 검푸른 빛이 되면 곁에 있지 않아도 짓누르는 무게를 알아차리고
정신차리라고 끊임없이 텔레파시를 보내고 깊어지는 물 속에서 끌고 나오고
아프지 말라고 제발 당신만은 아프지 말라고 마음 졸이면서 두 손 가득 빌고

 

너의 내일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각자의 언어로 서로를 걱정하고 기억하고 동시에 볼 붉히며 분홍으로 가만가만 웃고
서로를 다정하다 하고 세상에서 가장이라는 다정한 말로 애써 진짜 분홍을 가리고

 

서로에게 직접 말해주기 부끄러운 말을 모두가 보는 곳에 쏟아내고
우리는 언어의 바다 속에서 서로의 메세지를 알아보고 또 부끄러워하고 수줍어하고

 

이 풋내 나는 게 어떻게 사랑이 아니야?

 

ㅡ입을 맞춰야만 사랑이라고 하는 바보들에게

 

 

 

 

어쩐지 오랜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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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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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에는
꼭 고양이가 노래를 한다

 

우리 아파트에 불법으로 세 들어 사는
고 모 씨는
비 오는 날이면 늘 낮은 노래를 부른다

 

가르릉 가르릉
목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그 울림의 기분좋음을 알아버려서
나는 비 오는 날이면
고 씨를 만나러 간다

 

우리는 서로를 앞에 두고도 별다른 인사도 없이
나는 고 씨의 금빛 눈을,
고 씨는 나의 눈을
바라보고만 있다가

 

내가 먼저 고 씨를 쓰다듬으면
고 씨는 다시 노래를 시작한다

 

당신은 좋겠네요,
나 말고도 사랑해주는 사람이 많으니까
고 씨는 아무 말이 없다
절대 겸손의 의미는 아닌 그 침묵 앞에서
나는 그냥 고 씨의 쪽으로 우산을 더 기울여 준다

 

늘 아니라고는 하지만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많은 고 씨는

꽤나 까다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쓰다듬을 수 있는 사람은

온 동네를 통틀어 나 뿐이다
그 특권을 알면서도
나는 늘 고 씨가 나 말고 다른 이에게
쓰다듬을 받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어디서나 인기가 많은 고 씨
나는 그를 아주 사랑하지만
가끔 고 씨를 볼 때면
나도
저렇게
사람들이
좋아해줬으면
하고 울컥 치솟는 감정을 느낀다

 

비 오는 날이면
나는
문득
나도 모르게
사랑받고 싶다고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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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장미의 꽃말은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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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이 끝나고 집에 가던 길에
노점상 아주머니가 꽃을 팔면서
학생, 장미 한 다발만 사가시오
푸른 장미의 꽃말은 기적이라오
하시길래
얼떨결에 기적을 사 버렸습니다

 

열 송이의 기적을 병에 꽂아
책상 위에 두고는
마냥 설레고 반짝거리는 마음에
한참이나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러고는 잊어버렸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어느 날 우연히 그것에 시선이 닿아
그때서야 물을 갈아줘야 한다는 생각이 나
들여다보니
벌써 네 송이는 죽어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시들고 있었습니다

 

급히 물을 갈아주었지만
죽어가는 것을 살릴 수는 없었습니다
아름답게 시들어가는 장미에게서
꽃잎이 한 장,
두 장
떨어져 내렸습니다

 

떨어졌는데도 너무 부드럽고 향기로운 꽃잎을 붙잡고
나는 아주 조금 울었습니다
매일 물을 갈아주려고 하셨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기적을 잊고 살았더니
모두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나도 그렇게 시들고 있겠지요

 

왜 나는
기적은 빨리 죽는다는 것을
좀 더 일찍 알지 못했을까요

 

후회해도 늦었다는 것을 알아서
어쩐지 조금 슬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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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안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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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람에게 아프지 말라고 하는 게 제일 잔인하고 상처에 칼 꽂아넣는 거라고 입이 닳도록 말하고 다녔지만 사실 난 그 말이 제일 듣고 싶었어 내가 아프다는 거 알아주는 사람이 필요했어 그게 나쁜 건 아니잖아 아픈 게 나쁜 건 아니듯이 그래서 그 말을 해줄 수 밖에 없었어 난 혼자 있는 게 제일 무섭거든 혼자라는 생각이 들면 머릿속에서 문장들이 막 기어나와 그 아이들이 스스로 정렬해 글을 만들 때도 있어 그럴 때 나는 그냥 그것들을 풀어놓으면 되지만 걔네가 날 갉아먹을 때면 난 꼭 죽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무섭단 말야 막 머리가 너무 아프고 그래서 난 아프고 싶지 않다는 걸 계속 생각해 그래도 너무 아파 그래서 난 네 세상은 아프지 않은 세상이었으면 좋겠어 너의 오늘이 널 아프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네가 앞으로 끌어안게 될 미래가 아프지 않은 것이었으면 좋겠어 고통이라는 단어가 사라질 나날이었으면 좋겠어 아파요, 라는 말을 모르는 아이들이 태어날 미래였으면 좋겠어 그래서 그래 난 네가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야 우리 아프지 말자, 아프지 말자, 이렇게 끌어안고 같이 울어줄 수 있는 사람 중의 하나야 나한테 다 이야기해줘 무엇이 널 아프게 했고 누가 널 울게 했는지 내가 가서 혼내줄 수는 없지만 널 위해 같이 울 수는 있어 너랑 같이 아파할 수는 있어 그러니까 우리 아프지 말자 아프면 꼭 아프다고 말하자 혼자 참지는 말자 곪아들어가다가 결국엔 손 쓸 수도 없게 되잖아 우리 같이 살아남자 이 고통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살아남자 그러려면 나 너한테 이것만큼은 꼭 물어봐야 해 "너 괜찮은 거 맞지?" 그러니까, 그러니까 다시 한 번만 더 대답해줄래 "나 지금 아주 괜찮아" 라고

 

<그냥 어쩌다가 쓰게 된 글이니까요. 감정 털어내려고 썼던 글인데, 이런 것도 시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아프지 말기로 해요. 너무 서럽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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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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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인의 시는
반투명한 실크드레스처럼 연약하고

 

나는 차마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지는 못할 것 같아

 

내일을 꿈꾸는 친구에게는
빨간 털실로 짠 목도리를

 

이 세계를 탈출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레몬맛 사탕을

 

삶을 끝내달라고 비는 나에게는
에스프레소 두 잔과 녹차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은
있을지라도

 

앞으로 살아갈 하늘에서는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고
사랑을 사랑으로 대하고
나를 나로 대하는 세상이었으면,

 

ㅡ다 헛된 바람인 걸 알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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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와 소년과 사자와 비둘기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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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있었지
소녀의 겉모습은 소년에 가까웠고
여자아이를 좋아했어
그게 나쁜 건 아니지
상식이 있다면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여기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계
다들 소녀에게
네가 남자같이 하고 다녀서 그렇게 착각하는 거야
라고 했지
소녀는 그 말 속에 담긴 혐오에 눌려서
질식할 것 같았어

 

소녀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지
대체 남자같은 건 뭐고 여자같은 건 뭔데
난 당신들이 말하는 여자같은 모습일 때도 같은 반 아이를 좋아했어
그게 뭐가 어떻냐고?
난 여중을 나왔어 그리고 여고에 갔고
난 지금 한 학년 위에 선배를 좋아해
그 언닌 웃는 게 아주 예뻐
참 맑은 사람
보고 있으면 딸기가 생각나 달달하거든
근데 그게 뭐
혐오할 권리를 찾지 말고 사람답게 대해
날 사람으로 대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혐오할 권리 따위를 논할 수 있니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소녀는 귀를 틀어막고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고 세상의 절반이 날아갔어
북반구가 날아간 지구에서 소녀는 점점 소년이 되어갔지
사람은 한 명도 없는 남반구만 남은 세계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막 한복판에 서서 소년은
춤을 췄지 마치 타조의 구애의 춤같은 몸동작으로
소년은 미쳐갔지 그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느날 평화롭던 숲에 미친 사자가 들어와
사자는 토끼를 먹어버리고
사자는 사슴도 먹어버리고
샤자는 당나귀도 먹어버리고
사자는 다람쥐도 먹어버리고
그렇게 전부 먹어버리고
사자는 굶어 죽어버렸죠

 

소년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그의 등어리에서 날개가 돋았어
소년은 신이 나 날아갔고
비행하는 동안 점점 작고 하얀 비둘기가 되었고
하늘의 끝에 있는 무지개를 찾으러 떠났지 그러다가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 굶어 죽어버린 사자가 태양이 되어버려서

비둘기는 날개가 타들어갔고
결국 소녀는 죽고 말았지

 

그래서 세상에 상식이 없어지게 되었지 평화가 없는데 어떻게 상식이 있을 수가 있겠니 아가 이야기는 여기까지란다 이제 자야지 잘 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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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주님이 되어주시겠습니까 (수정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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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주님이 되어주시겠습니까?
당신의 머리에는 금관을 씌우고
손에는 반짝이는 반지를
끼워줄 수는 없지만
누구보다 사랑합니다
이 나라에서는 우리의 사랑이 불법이지만
그래도 나는 당신을 사랑하니까
이 세계를 탈출할 방법을 찾을게요
당신을 처음 만난 그 세상에서
함께 읽었던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 책을 다시 펼쳐들고
사랑이 사라진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겠죠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목소리로
상식의 반입이 금지된 세계중앙광장에서
온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에 대해 강연을 할게요, 맑고 또렷하게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사랑을 금지하는 이 세계는 뒤틀린 세계입니다
목이 터져라 소리지르겠지만
이미 청각을 잃은 사람들은 아무도 듣지 못하겠죠
그러면 나는 또 절망에 빠져
내가 당신을 사랑하게 된 순간을 떠올리겠죠
나는 당신의 장미빛 드레스도 아니고
당신의 비단같은 머릿결도 아니고
나는 당신이 오래된 책방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그 아름다운 책을 행복하게 맛보는 모습에 반했죠
그때의 당신의 그 아름다운 홍조와
반짝이던 두 갈색 눈동자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위해 금지된 그 책을 구하기 위해서,
또 이 세계를 탈출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
금지된 세계 도서관에 발을 들이겠죠,
거기에만 그 방법이 살고 있으니까
그렇게 해서 나는 계속해서 그들이 생각하는 위법을 저지르고
결국엔 잡혀가 당신을 만나지 못한 채 죽겠죠
사람들은 대부분 잔인해서
당신을 사랑한 나를 죄인으로 몰겠죠
마녀에게 홀려서 금지된 곳에 발을 들였다고
그러면 나는 오히려 크게 웃겠죠
애초에 모두의 것인 지식을 가둬둔 것은
그들의 잘못 아닌가요?
지식이라는 것은 꽤나 연약해서
사람의 손이 자주 닿지 않으면 금방 죽어버리죠
그걸 알면서도 가둬둔 건 그들의 잘못 아닌가요?
내가 이렇게 말해도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은 나를 무시하고 가두겠죠
아주 깊은 지하감옥에
당신은 나를 위해 면회를 오겠죠
나는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어 당신을 맞겠죠
철창 사이로 손을 내밀어
사랑하는 당신의 손을 잡으면
당신은 그 손에 이마를 대고 엉엉 울겠죠
울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그런 모습이면
나 같아도 울 것이 뻔하기에
나는 그냥 당신 손을 잡고 함께 마지막 시간을 보내겠죠
나는 결국에는 장정들에게 끌려나가
세상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결국에는 단두대 위에 오르겠죠
아낙네들은 손수건을 있는 힘껏 뻗고
나의 잘린 목에서 흐를 피를 묻히려 애쓰겠죠
그 시간이 오면, 당신은 날 위해 울어줄건가요?
당신이 그래준다면 나는 너무 기뻐서 아프게 울겠죠
그럼 나는 죽어도 좋지만,
그러면, 그러면, 나의 공주님은 혼자 남겠군요

 

<지난 번 조언 듣고 조금 수정해보았습니다. 쓰다 보니 자꾸 감정이 격하게 뭉쳐들어가서 죽도 밥도 못 된 것 같긴 하지만 아직은 제게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 중이니까요. 지난번처럼, 화자가 남성이 아닙니다. 유의하여 감상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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