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 너머의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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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기 너머의 너에게

 

[1]

따스한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오는 5월의 아침이었다. 의진은 거실에서 요란하게 울려퍼지는 벨소리에 잠이 깼다. 거추장스럽게 내려온 수면바지를 질질 끌고서 의진은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전화였다. 요즘 시대에 필요한 전화가 집전화로 걸려오는 일은 거의 없기에 의진은 짜증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여론조사 전화가 아니라면 스펨 전화다. 의진은 반쯤 확신하며 수화기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의진의 예상과는 다르게 수화기 너머로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변성기가 아직 오지 않은 어린 남자아이의 목소리였다. 의진은 짧게 누구세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는 잠시 침묵이 이어지더니 망설이는 듯 말끝을 흐리는 물음이 돌아왔다.

 

"아저씨는 누군데요…?"

 

아저씨라는 말에 의진은 바로 얼굴을 찌푸렸다. 아저씨라니, 겨우 스물 둘인데.
하지만 생판 처음 마주하는 아이와 그런 논쟁을 벌일 만한 여력은 없었기에 의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잘못 전화한 것 같은데. 끊을게."

 

이른 아침에 자신을 깨운 전화가 고작 어린 아이에게서 잘못 걸려온 전화라는 사실에 짜증이 확 올라왔다. 의진은 바지를 질질 끌며 부엌으로 향했다.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키던 그는 또다시 울려퍼지는 전화벨에 거실쪽을 돌아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익히 들어온 캐논 변주곡. 이번에도 집전화였다.
의진은 물컵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선 전화기로 향했다. 오늘따라 사뭇 묵직하게 느껴지는 전화기를 집어든 의진은 여보세요,하는 익숙한 목소리에 한숨을 내뱉었다.

 

"또 너야? 잘못 걸었다니까."
"잘못 건 거 아니에요. 이 번호 맞는데요…"

 

그러면서 혀 짧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번호를 부른다. 번호가 틀리다면 고쳐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의아하게도 아이가 부른 번호는 의진의 집전화번호가 맞았다. 처음부터 잘못 받아적은 거 아니냐는 의진의 핀잔에 아이는 큰 소리로 우기기 시작했다.

 

"아닌데요. 이거 저희 이사갈 집 번호란 말이에요."

 

전화기를 들고있던 의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건 또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란 말인가. 누가 버젓이 쓰고 있는 번호를 이사갈 집에서 쓰겠다니.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말이었기에 의진은 실수로 잘못 받아적었겠거니 했다.

"너가 잘못 알고 있는 거겠지. 이거 우리집 전화번호거든. 자꾸 시끄럽게 울리니까 그만 전화 걸어. 알았지?"
"시른데요. 저 제대로 알고 전화한 거예요."

당당하게 늘어지는 아이의 말에 의진은 인상을 팍 썼다. 아침부터 얼굴도 모르는 아이와 의미없는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귀찮아 죽을 지경이다.

의진은 이렇게 비생산적인 일에 시간을 투자하는 걸 싫어했다. 하지만 이대로 전화를 뚝 끊어버려도 또 전화가 올 것이 분명했기에 의진은 하는 수 없이 말을 던졌다.

 

"잘못 전화한 거 맞다니까. 너 이사 가는 집이 어딘데?"

 

의진의 물음에 아이는 곧바로 이사 갈 집의 주소를 술술 말했다. 어른들한테 들은 모양인지 몇 동 몇 호인지까지 꽤나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말을 마치자 의진은 의아함에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집 주소였다. 지금 자기가 살고 있는.
이사갈 예정도 아니고, 집을 내놓지도 않았다. 13년 째 버젓이 살고 있는 집인데 누군가 이곳으로 이사 올리가 없었다.

 

개인정보까지 어떻게 알아낸 건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 아이가 장난을 치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자 의진은 차가운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장난치면 못 써. 너 이름 뭐야."
"권의진이요. 9살이에요."

 

이제는 하다하다 자신의 이름까지. 의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이 어이없는 장난이 어디까지 이어지나 싶어 태연하게 캐물었다. 부모님 성함, 다니는 초등학교, 현재 사는 곳-의진에게는 예전 집이다-까지 물었지만 어김없이 툭툭 튀어나오는 정답에 의진은 서서히 불안해졌다.

 

어린애가 무슨 수로 자신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아나 싶어서였다. 신종 보이스피싱인가. 의진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의진이 심각한 얼굴로 앉아 고민하는 동안 그 상황을 알 리 없는 아이는 밝은 목소리로 다급하게 외쳤다.

 

"엄마가 오래요. 오늘 엄마랑 영화관 가서 환상의 나라 네버랜드 보기로 했어요. 이따가 또 전화할게요!"
"이따 전화하지 않아도 괜…"

 

긴 신호음이 들려왔다. 아이는 제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의진은 알 수 없는 찝찝함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분명 어릴적에 봤던 영화다. 어디서 새로 개봉이라도 하나. 그러나 재개봉을 한다고 치기에는 불과 어제 영화관을 갔다온 의진이었다. 워낙 영화를 좋아하는 터라 유명하지 않은 영화까지도 전부 섭렵하며 상영시간표를 외우다싶이하는 의진이 예전에 인상적이게 봤던 영화의 재개봉 일시를 놓칠 리가 없었다.

 

만약에 다시 전화가 걸려온다면 한 번 물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일들이 태산이다. 의진은 밀린 레포트를 작성하기 위해 노트북을 켰다.

 

하지만 근사한 레포트를 써내겠다는 마음가짐보다도 더 빠르게 움직여버린 손은 이미 인터넷 검색창에 머물러있었다.
의진은 아이에게서 들은 영화 제목을 검색창에 쳤다.

 

환상의 나라, 네버랜드(2005)

 

그 말을 끝으로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재개봉일자도 나와있지 않았을 뿐더러 관련된 최근 뉴스도 없었다.

 

이건 또 무슨 고약한 장난인가 싶어 의진은 입을 다물었다. 굳이 어린애가 자신에 대한 정보까지 알아내서 이런 장난을… 두 번째 전화가 오면 코치코치 캐물어서라도 그 이유를 알아내겠다고 다짐하며 의진은 벽에 걸린 시계를 노려보았다.

 

 

[2]

 

 

두 번째 전화는 저녁 9시가 넘어서야 걸려왔다. 어린이날이라 저녁까지 밖에 나가서 놀고 온 모양인지 아침보다는 훨씬 피곤한 듯 지쳐있는 목소리였다.

 

전화벨이 울리자마자 거실로 달려나가 전화를 받은 의진은 여보세요, 하는 아이의 말이 채 끝나기 도 전에 질문을 던졌다.

 

"너, 아까 본다던 영화 이름 다시 얘기 해봐."
"환상의 나라 네버랜드요. 보고 왔는데 짱 재밌어요! 피터가…"
"그거 2005년에 개봉한 거잖아."
"네, 지금이 2005년이잖아요."

 

해맑은 아이의 한 마디에 순간 의진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생각을 모두 비워낸 기분. 다분히 고의적인 장난일까. 의진은 마음을 가다듬으며 최대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장난치지 말고."
"뭐가 장난이에요? 저 장난 안 쳤는데요."

 

티끌 하나 없이 순수하고 맑은 목소리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뭐지…하며 거듭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린애의 거짓말이라고 치부하기도 좀 애매한 상황이다. 9살밖에 안되는 아이가 2005년에 개봉했던 영화까지 들먹이면서, 자신의 현 집주소까지 알아내서 이사갈 집이라고 우긴다는 게,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전문적으로 사기를 칠 마음이라면 모를까, 아무것도 얻어낼 수 없는 거짓말에 집착하는 이유도 알 수 없었다. 만약, 거짓말이 아니라면?

 

2005년에 의진은 9살이었다. 어린이날에 개봉했던 환상의 나라, 네버랜드를 보러 갔었고, 아이가 말한 초등학교를 다녔으며 예전 집에 살았었다. 그리고, 이곳으로 이사를 온 것 역시 의진이 9살이었던 해 겨울이었다.

 

아이가 주장하는 얘기가 모두 맞다면 저 아이가 예전의 자신이라는 것밖에 말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이름까지도 같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의진은 그렇게 되뇌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찝찝한 기분에 의진은 어쩔 수 없이 떨리는 손을 붙잡고 말을 꺼냈다.

 

"너, 집에 나무상자 있지? 보물 1호."
"네? 아저씨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이사오면서 챙겨오지 못해 밤낮을 울었던 의진의 어릴적 보물 1호. 의진만이 알고 있는 네자리 비밀번호 자물쇠로 잠겨있는 그 나무상자 안에는 의진이 좋아했던 로봇과 딱지, 구슬까지 별의별 장난감들이 들어있었다.

 

그러니 그 안에 든 건 이 세상에서 의진만이 알고 있다.

 

의진은 아이의 장난일거라 반쯤 확신하면서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말해보라고.

 

"메이플 딱지랑 로봇이요! 그리고 미니카도 되게 많은데, 제가 젤 아끼는 빨간색 BMW랑 파란색 벤츠도 있어요. 그리고…"

 

아이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들리는 것 마냥 멀게 느껴졌다. 의진은 혼란스러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기억하는 상자 속 내용물과 일치했다.
의진은 저도 모르게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뚝 소리가 나며 전화가 끊어짐과 동시에 응답이라도 하듯 또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말하고 있는 와중에 무턱대고 끊어버린 전화이니 아이도 퍽 당황했을 터였다. 하지만 충격을 받은 건 의진 쪽이 더했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 각종 신기한 사연들은 들어봤어도, 그런 사연들에 맞먹는 상황을 자신이 직접 경험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의진은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며 두 눈을 깜빡였다. 배고픈 아이가 보채듯 쉴새없이 울려대는 카논 변주곡에 의진은 하는 수 없이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여전히 아무 것도 모르는 듯한 아이의 밝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저씨, 왜 갑자기 전화 끊었어요?"
"의진이라고 했지? 하나만 물어보자. 너 이 번호로 전화 왜 한거야?"

 

그 답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꼬인 실타래처럼 얽혀버린 의문을 조금은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의진의 물음에 어린 의진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건 비밀인데요… 사실 꿈을 꿨어요."
"무슨 꿈?"
"산타할아버지가 꿈에 나와서… 이사 가는 번호로 전화하면 크리스마스 때 좋은 선물 준댔어요!"

 

너무나도 순진무구한 멘트에 의진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사뭇 황당한 꿈이었지만 그 꿈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통화해보지도 못했을 터였다. 어쩌면 그 꿈이 자신들을 이어주기 위한 매개체는 아니었을까하고 의진은 생각했다.

 

의진은 수화기 너머의 아이가 어린 자신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자 중요한 생각이 순간 머릿속을 스쳤다. 미래는 바꾸지 못하더라도 지금은, 과거를 바꿀 수 있다. 아홉 살짜리 아이라해도 자신이 하는 말을 마냥 흘려듣지는 않을테니.

 

"의진아,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네, 아저씨."
"아, 아저씨 아니라고. 너도 몇 년 지나면 나처럼 돼. 아니, 그냥 내가 되지."

 

의진은 우겨대면서도 어린애를 상대로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어린 시절의 자신이 저렇게 짜증나는 성격이었다니. 의진은 지금껏 곁에 있어준 주위 사람들이 진심으로 고마워졌다.

 

"내가 무슨 아저씨처럼 돼요. 너무하네, 진짜."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어린 자신의 투덜거림을 가뿐히 무시하며 의진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진짜 중요한 얘기라는 강조도 다시 한 번 하면서. 정작 아이는 별 관심이 없어보였지만 말이다.

 

"내가 하는 말 잘 따르면 산타할아버지가 더 좋은 선물 사주실거야, 알겠지?"
"그걸 아저씨가 어떻게 알아요?"
"아, 내가 전화할게. 나 산타할아버지랑 엄청 친해."

 

어린 의진은 작은 목소리로 알았어요, 하고 대답했다. 힘이 없는 목소리는 영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의진은 우선 말을 꺼냈다.
아홉 살의 의진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초등학교 때 너무 열심히 공부하지마."
"네? 왜요? 어차피 안 하는데."
"아냐. 너 엄청 빡세게 할 거야. 나중에 후회한다, 진짜. 지금 놀아."

 

'나중에 후회한다.'라는 말에 유독 힘이 실려 있었다.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공부 덕에 100점도 곧잘 맞고 칭찬도 받았지만 대학생이 된 지금에서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딴 건 몰라도 초등학교 시절의 공부는 정말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의진이 어렸을 때 유행했던 책 하나가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성적이 대학까지 간다는, 그런 내용의 책이었다. 그게 사실이었다면 의진의 친구 용민이는 서울대에 갔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 어차피 죽어라 할 공부를 굳이 초등학교 때부터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0대를 보내본 의진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제발 중학교 2학년 때 이상한 판타지 소설 같은 거 써서 흑역사 만들지 말고. 너, 그 땐 잘 썼다고 생각하는데, 그거 나중에 보면 이불 찰 거다, 진짜."
"판타지 소설이 뭔데요?"
"차차 알게 될 거야."

 

의진이 무슨 말을 하든 어린 의진에게는 뜬구름이나 마찬가지로 느껴질 것이다. 반 이상은 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니. 그래도 삶의 어느 순간에서라도 불현듯 떠오르길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처음에는 조언으로 시작된 의진의 말은 점점 예언에 가까워졌다. 사실 예언이 맞았다. 그것도 신용가능한 백퍼센트의 예언.

 

"의진아, 너 고3 때 수능 볼꺼잖아. 그치?"
"네에… 그 시험 말하는 거예요?"
"어, 너 그거 국어 23번 마킹 실수하지 마. 그것 때문에 등급 바뀌어서 재수하지 말고."
"재수가 뭔데요?"
"지금 내 말 안 들으면 네가 나중에 하는 거."

 

그 놈의 국어 23번만 아니었어도! 의진은 이를 악물고 공부했던 재수생 시절을 떠올렸다. 어린 자신이 지금의 충고를 새겨들을 지는 모르겠으나 부디 기억하기를 바라며 의진은 거듭 그 말을 강조했다.

 

가시밭길을 걸어가게 하는 것보다는 아스팔트 길을 깔아주고 싶은 것이 현재 의진의 마음이었다.
말대꾸를 하면서 짜증나게 굴던 아이었지만 그게 자신이라고 생각하니 마냥 애틋하게 느껴져서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었으니까.

 

마법 같은 일은 주로 특별한 날에 일어난다. 모든 동심이 깨어나고 동화처럼 신비로운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어린이날.
이 믿을 수 없는 통화 왠지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아서, 의진은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냈다.

 

"2017년이 되면 말이야."
"오, 그 때는 저 어른이에요?"
"그건 그런데, 중요한 건 따로 있어."
"뭔데요?"
"비트코인이라는 게 있는데, 그걸 사. 돈이 몇 배로 뛰면 떨어진다 싶을 때 팔고."
"에…?"
"그냥 잔말 말고 사."

 

지금의 로또 번호를 알려준들 아이가 기억할 리 없기에 나름 현실적인 방안을 제공한 거지만 지금 아홉 살을 상대로 무슨 얘기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잘만 되면 인생이 한 방에 바뀌는 건데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어린 의진은 장난으로 건 통화였겠지만 사실상 설교에 가까운 의진의 주입식 교육을 받게되자 따분했는지 들려오는 대답이 갈수록 건성이었다.
이 전화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알아채면 나중에 뼈저리게 후회할 거다. 의진은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윽고 밤이 깊어지자 수화기 너머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의진의 엄마였다.
이제 자야지, 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하루종일 어디에 전화하는가 싶었는지 살짝 짜증스러움이 묻어있었다. 어린 의진은 이 때가 의진의 설교로부터 벗어날 기회라 생각했는지 밝아진 목소리로 가겠다며 외쳤다.

 

"아저씨, 저 자야돼요. 나중에 봐요."
"그래, 아니 잠깐만."

 

전화기를 끊으려던 의진은 괜히 뭉클해져 담아두고 있던 말을 전하고 싶었다. 이 통화가 자신들을 이어주는 마지막 통화라면.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큰 인생의 굴곡 없이 평범하게 자라온 의진이었지만, 순간 순간을 생각해보면 벽처럼 느껴졌던 시간들이 있었다.
먼 훗날, 자신이 그 벽들을 마주했을 때, 다른 말들은 잊어도 좋으니 이 말만은 기억했으면 했다.

 

"멋있는 사람으로 자라줘. 형보다 훨씬 멋있는 사람으로."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앞이 캄캄해도 조금만 더 그 어둠을 헤쳐보면서.

 

"약속할게요."

 

어린 의진의 해맑은 목소리에 의진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지금 이 전화가 끊어져도 내일은 오겠지만 의진은 모든 시간이 멈춰버린 것만 같은 느낌 속에 스스로를 놓았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며 의진은 모처럼만에 진정으로 의미있다 느꼈던 하루를 되돌아보았다.
머리맡에서 시계의 째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린이날의 마지막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어린이날 기념으로 써 본 단편입니다. 하루 지났지만 올려봅니다. 글틴에는 처음 와보는데,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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