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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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자리

 

 

계단을 오르며 발목 아래로 사라지는 바닥, 오를 수 없는 곳까지 오르고 있다. 그곳에는 문고리처럼 거미가 매달려 있다. 문은 없지만 규칙적으로 금이 가 있다. 열쇠를 쥔 손이 없어서 손은 열쇠가 되었고, 거미의 피가 손금을 타고 흘렀다. 쥔 손을 펴지 않았다.

 

문을 열지 않아도 들어서는 방, 너머로 더 이상 계단이 보이지 않았고, 밤이었다. 하늘에는 거미들이 가득 매달려 있다. 당신은 그걸 보며 거미자리라고 한다. 나는 그 금을 볼 수 없었지만.

 

그 계절에 태어난 손이 있었다.

 

주먹 쥔 손을 폈는데

거미들이 별처럼 박혀 있었다.

손금을 기어가면서

별자리가 되고 있었다.

기어갈 수 없는 곳까지 기어가면서

그 계절에 태어날 수 없는 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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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티브이를 들여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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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티브이를 들여 놓았다

 

 

 

책장이 위치한 벽은 오래도록 밤이다. 암막커튼을 열어두고 집을 나선 날에는 조금의 빛줄기가 새어 든다, 당신은 몰래 앉아 있다. 그곳은 밤이다. 우리가 만난 시간은 흘러갔던 적이 없지만, 늘 악몽에는 당신이 있었다. 그곳은 눈꺼풀 사이로 햇살이 파고들어도 밤이었다. 우리는 상영되고 있다. 누군가 고장 난 티브이의 전원을 켰다.

 

당신은 스크린 안에서 끝없이 사라지고 나타난다. 씬 같은 건 표백된 검은 고양이에게나 주라지. 운명이 세운 계획 따위는 종영되어야 한다. 꺼진 티브이를 켜지 않는다. 그럼에도 버릴 수 없는 이유는 알 수 없다. 멍하니 책장 앞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다. 밤이지만 더 밤 같은 밖이 있었다. 그것은 방 안에 있었다. 당신은 방 안에 없었지만, 밖 안에 있을 수 있었다. 내가 집을 나서는 것으로, 당신은 자주 안으로 나온다. 그때 티브이는 켜져 있는 것이다. 당신은 고장 난 그림자를 입고 있다. 나는 고장 난 티브이를 버리지 않는다, 버리지 못한다.

 

좁은 방에서 고장 난 티브이는 죽은 애완동물처럼 연명하고 있다. 나는 당신의 장례식을 치르고 오는 길이다. 그 길 밖에는 당신이 있었고 나는 길을 나서는 법을 모른다. 집에 들어서면 창문은 꺼져 있다. 전등을 켜는 것으로 이 방에도 아침이 오겠지만. 그때 창문을 열면 방은 밖이 된다. 나는 방 안에서 당신이 죽어 있는 밖을 떠올린다. 아침의 밖은 티브이 속에 갇혀 있다.

 

창문을 버릴 수 없어서 방은 고장 나고 있다. 그럴 때마다 물수건으로 표면을 닦아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당신은 끝없이 나를 버리고 있다. 닦아 줄 사람이 없어서 나는 자주 아프고, 약을 먹고 잠에 들면 아침이 너무 빨리 찾아온다. 결국 일찍 태어났구나. 그럴 때마다 당신은 일찍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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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낮에는 모두가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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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낮에는 모두가 잠에 들었다

―유계영 시인의 ‘온갖 것들의 낮’을 보며

 

 

 

“낮보다 밤에 빚어진 몸이 많았기 때문에/ 나는 병이 비치는 피부를 타고났다”「시작은 코스모스 中」이 문장을 보면 의학적으로도 증명된 꿈의 특성이 떠오른다. 꿈은 오로지 자의적인 것이고, 그건 타인의 구애를 받지 않는 일이다. 꿈속에서는 자신의 육체를 빌린 타인들이 나타날 수 있고, 잠든 이의 내면이나 앓고 있는 “병”같은 것들이 이미지로 나타날 수도 있다. 「1)〈정신은 깨어 있는 상태에서보다 수면 상태에서 신체 상태를 훨씬 더 깊고 넓게 지각한다. 그래서 깨어 있는 동안에는 전혀 깨닫지 못하는 신체 부위나 신체 변화에서 유래하는 자극 인상들을 받아들이고 그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밝힌 이론 중 하나다.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이라는 책을 집필하며 이 문장을 인용했다. 이러한 꿈의 논리를 유계영 시인은 잘 자각하고 있는 듯 했다. “나도 죽어서 신이 될 거야/ 그러나 버릇처럼 나는 살아났다”라는 문장에서는 생리적으로 깨어나고 잠에 들 수밖에 없는 일상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꿈을 꾸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꿈이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의문을 품으면 그 답은 이미 나타나 있다. 꿈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꿈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이다.

 

“낮 동안 절망하고/ 누우면 기억하지 못했다”「유리 中」 이 시에서는 “낮 동안”의 “절망”이 꿈을 만들었다. 하지만 시인은 이를 부정하고 있다. “나는 꿈을 꿔 본 적이 없다/ 밤, 또는 밤이라고 믿는 방”이는 언어유희처럼 읽힐 수도 있지만, 꿈꾸는 “방”이라고 할 때 “밤”은 자연스레 섞일 수 있다. 또한 꿈꾸지 않는 “방”이라고 할 때에도 우리는 “밤”을 맞이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유리”가 가진 투명성과 닮아 있다. 우리는 그 투명으로 밖을 보기도 하고 “밤”이면 안을 볼 수도 있다. “밤”만 되면 거울이 되기도 하는 그 거울에서 우리는 “방”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때 화자가 인식하는 것은 무엇일까. 시인은 이러한 감정에도 의문을 품었다. “나의 기분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모형 中」 꿈의 종류 중에는 ‘자각몽’이라는 것이 있다. 본인 스스로 꿈을 자각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게 되는 것인데, 그렇다면 자각몽이 아닌 꿈은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는 것인가. 만약 나의 생각대로 이뤄지지 않아 무섭거나 고통스러운 꿈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악몽이라고 부를 것이다. “봉제선 안으로 꼭꼭 접어 둔 그림자만이/ 나의 유일한 의지라면”이는 화자의 깊은 내면을 이미지화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보았기 때문에, 꿈속에서는 비시각적인 감각 또한 시각적 이미지로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는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나 의지하고 있지 않았던 감정들을 마주할 수 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부정하고 외면한 감정이라고 다시 왜곡하는 일이 있을까. 아쉽지만 그건 “잘 죽지 않는” “기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내가 꿈을 마주하는 방법이 있다. 아예 나 자체를 부정하는 것. 시인은 그것 또한 인식하고 있었다. “우리는 어제 태어난 개의 꿈을 꾼다”「하루 종일 반복할 수 있는 일에 대한 목록 中」 같은 시구처럼 내가 나를 부정하고 그 비어 있는 나의 자리에 다른 이를 투영시키는 것, 그것이 악몽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가끔 잠 속에서 울던 울음이 깨어나고 난 뒤에도 이어진다면. 그날은 하염없이 슬퍼해야겠지. 실제에서도 내가 나를 부정한다면, 이는 위험한 일을 초래할 수도 있다. 영화 ‘인셉션’에서는 꿈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살을 하는 경우가 있기도 한데 어떤 장면에서는 꿈이 아님에도 꿈이라고 착각을 하는 바람에 자살을 시도하다 저지당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그들은 아마 버릇처럼 자신을 부정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꿈을 마주하되 자신을 부정하는 것. 그리고 “바깥으로 통하는 문이 녹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아이스크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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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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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보내는 편지

 

 

그러니까, 당신을 만난 후 달력의 날짜보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작년 9월 말 모 백일장에서 당신을 만나 이후로, 매일 밤 꿈마다 당신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고, 그저 몇 번의 카톡 따위를 주고받았을 뿐인데, 아직도 왜 꿈속에 당신이 나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저는 그때 시가 뭔지도, 내가 왜 시를 써야 하는지도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저 시를 쓰고 싶었고, 그건 욕구와 상관없는 일이었지요. 노력해도 달라지는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저는 쓰고 싶었습니다, 뭘 써야 할지도 모르면서.

 

수시와 정시가 모두 끝나고, 저는 방황했습니다. 밥도 잘 먹고 친구들도 자주 만나고 지냈는데, 항상 왜 시를 쓰는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무런 색깔 없는 그림을 그리는 기분이 들었달까요. 그래서 사는 게 무뎌졌어요. 남은 삶에서 글을 쓰는 시간을 빼면 저는 달리지 않는 마라토너의 기분이 들었으니까요. 하루 세끼를 다 먹고, 잠자는 시간이 늘어갔습니다. 수면장애가 있어서 하루에 꿈을 9번을 꿀 때도 있었죠. 주로 2~3번의 꿈을 꾸는 편입니다. 그래도 자고나면 어떤 꿈을 꿨는지도 모른 채,  모두 잊는 일들만 있었죠. 그러나 아직도 기억나는 꿈이 있습니다. 7살 때쯤 새로 이사 온 아파트 놀이공원에서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하던 아주머니가 운석에 맞아 죽는 꿈, 경비실에서 아저씨가 뛰쳐나와 유모차 속 아이를 업고 도망치는 꿈. 그건 사소한 악몽이었을 뿐인데요. 사실 가장 큰 악몽은 당신이 나온 꿈이었습니다.

 

꿈에서 깨고 나면 하루가 지난 기분입니다. 3개의 꿈을 꾼 날에는 3일이 지나 있죠. 아니 그런 기분이 든다는 겁니다. 꿈일기를 쓰면 보다 확실한 하루가 지나 있겠죠. 중요한 건 내가 꿈일기를 쓰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것이 내 시가 되고 그 시에서 당신이 사랑했던(사랑하지 않았어도 괜찮습니다)문장이 나오기 시작했죠. 언젠가 내가 프로필에 그 문장을 올렸을 때, 당신은 내게 처음으로 연락을 했습니다. 그저 문장이 좋았다는 말이죠. 그날은 당신이 나왔던 꿈을 꾼 날이었습니다. 저는 무슨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마냥 설레기 시작했습니다. 어리석은 일이죠, 이래서 모태솔로는 연애를 실패 하는구나 생각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모든 일이 꿈이 만들어 낸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물 같은 거라고나 할까요. 그 후에도 당신은 꾸준히 나를 찾아왔습니다. 그때마다 꿈일기를 썼고, 어느새 시보다 꿈일기를 쓰는 날이 많아졌죠.

 

2월, 저는 다시 시를 쓰기로 했습니다. 입시에 지친 손목을 자르고, 새 손목을 가지기로 했죠. 3월, 동국대에서 한 어느 백일장에서 당신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당신 덕분에 다시 시를 쓸 수 있었다, 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입실 시간보다 한 시간 먼저 도착해 당신을 찾고 있었는데 당신은 보이지 않았고, 결국 아는 분들과 학식을 먹으러 가기로 했습니다. 그때 입실 시간을 3분 앞두고 당신이 뛰어왔습니다. 그때 모습이 아직도 악몽에서 나옵니다만. 연갈색 원피스를 입고 전화를 받는 오른손이 있었습니다. 저는 인사를 하려 했지만, 많이 바빴나 봅니다. 저는 매일 꿈에서 당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는데, 그때도 목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이는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그저 고개를 떨구는 것으로 인사를 마치고 당신은 입실 장소로 들어갔습니다. 이때 저는 시를 써야지 생각했습니다.

신청을 미리 한 터라 입실을 할 수 있었습니다. 원고지를 받고 시제는 ‘편지’가 나왔습니다. 그때 든 확신이라면, 당신을 시로 쓰고 싶다는 것. 당신이 좋아했던 문장을 첫 행으로 두고 문장은 행을 늘어뜨리며 새로 태어나고 있었습니다. 40분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각, 3번의 퇴고를 마치고 저는 시험실을 나섰습니다. 후에 지인들을 만나 밥을 먹으면서도 첫 문장은 머리를 맴돌았습니다.

 

그날 저녁, 당신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제가 상을 받았다는 축하 문자였습니다. 시상식에 가지 않아 상을 받았는지도 몰랐는데, 그럼에도 저는 기쁘기보다 아쉬운 감정이 더 많았습니다. 그만큼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담아두기로만 했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목소리를 들으며 대화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4달이 흐르고, 어느 대학 백일장에서 당신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꿈에서 만나는 당신으로만 마흔 편 가량의 시를 쓴 후였고요. 주위 사람들에게는 필력이 많이 늘었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게 당신이 준 선물인 것도 모르면서, 저는 가진 것들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백일장 당일, 당신이 꿈에 나왔습니다. 목소리도 들려주지 않을 거면서, 나를 또 죽이고 아무렇지도 않게 무언의 인사를 할 거면서. 그럼에도 저는 반가웠습니다. 대학 건물 옆 의자에서 당신이 있었고, 저는 말을 건넸습니다. 안녕하냐고, 당신은 말하지 않았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렸습니다. 당신이 손을 들어 화면을 보여줍니다. 안녕하다고. 이런 방식으로도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후에는 핸드폰 없이 대화를 나눴는데, 목소리 없이도 대화가 가능했습니다. 그건 꿈의 일이고, 백일장 당일 당신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이 글이 단순한 짝사랑 얘기처럼만 들린다면, 저는 비극적 로맨스물의 처량한 주인공으로 남겨질 것입니다. 중요한 건, 이 글이 사후에 당신을 만나기 위한 유언장이나 생일이 없는 꿈속에서 쓰는 일기라는 것입니다. 몇 천 번 당신을 만나도 우리는 초면입니다. 당신은 아직 내가 익숙하지 않고, 그러나 가끔 내가 시를 보여줄 때면, 당신은 “정말로 시를 사랑하면 시가 보답을 하나 봐요”라고 말합니다. 나는 시를 사랑하지 않습니다만, 내 시가 온전히 당신이 될 수 있다면 그건 애증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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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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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만 해도 매일같이 드나들던 곳이었는데

최근 슬럼프에 빠진 탓인지 글도 못올리고 댓글도 못달고 있네요

그렇다고 글을 쓰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저번주에는 맘에 드는 글이 나올 때까지 이틀 동안 4편을 썼네요

그럼에도 맘에 드는 초고가 나오지 않아서 부끄러웠어요

글틴에 올라오는 친구분들의 글을 보면서

자꾸만 자괴감이나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요즘이거든요

또한 사유가 희미해졌다는 것도 큰 몫을 한 것 같구요(사실 이게 제일 큰 것 같아요)

최근 글틴에 올라오는 수필이나 시를 보면서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많구나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글을 올리지 못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구요

 

위로나 조언 같은 걸 바라고 쓴 글은 아니에요

그저 쓴다는 것으로나마 해방감을 느끼고 싶었고

혹여나 저와 같은 감정을 지니고 계신 분이 있다면 같이 공감하고 싶었어요

새벽에 갑자기 말이 길어졌네요

곧 부끄럽지 않은 글이 나오면 꼭 찾아올게요

 

시나 수필은 자주 보고 있으니 다들 건필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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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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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생각

 

 

익숙한 카페에는 낯선 사람들이 가득해요 테이블마다 놓인 음료들이 목소리를 뱉어내고 우리의 대화는 앙다문 입술 사이로 빨대처럼 가늘게 흘러가겠지만

 

내가 질문을 뱉어내는 것으로 당신이 싸늘하게 굳어갈 때 달팽이관에선 따뜻한 피가 흐릅니까 당신의 귀를 입안에 머금고 잘근잘근 씹어 먹을 땐 어떤 대답이 녹아내리나요

 

언제나 제빙기처럼 일방적으로 뱉어내는 질문, 그 속에서 당신은 차갑게 섞여 들어가고 나에게 주어진 잔은 무엇인가요 언젠가 당신이 마지못해 토해 낸 얼음을 입안에 머금으면, 그것은 얼어있던 시간만큼만 녹아내립니까

 

저는 온도가 없는 혀를 가지고 있어요 당신의 파편들을 입안에서 굴려대다 고개는 자주 기울어지고 결국, 아무런 말도 삼킬 수 없을 때 당신은 의문이 만들어 낸 결여 속에서 얼어붙습니까 목구멍에 가득 찬 얼음조각들이 흐트러지며 녹아갈 때 그제야 당신의 심장은 뛰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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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체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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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체이탈

― 아무에게나 없는 사람

 

 

나는 필름 속의 얼굴로 살아가요. 당신이 거울 앞에서 눈감을 때마다 찍히는 영정. 언제나 죽은 몸이지만 죽어본 적은 없어요.

 

매일 당신이 잠드는 방 벽지에는 필라멘트들이 박혀 있어요. 전등을 끄는 것으로 이곳의 달이 사라져도, 별들은 가까스로 빛날 테지만. 그것이 나의 초점이 되는 일은 영원히 비밀이에요. 우리는 흩날려도 언제든지 되돌아올 수 있는 체온이지만, 잠든 몸을 빌려 입고 선풍기를 꺼요.

 

반대로 깍지를 끼고 잠에 드는 건, 내가 당신에게 선물한 습관이에요. 버릴 수 없어서 무거워진 두 손의 감각으로 방문을 열어요. 집에는 양말들이 잠들어 있고, 고양이는 내게 꼬리를 바짝 세우지만. 그들은 언제든지 당신을 떠날 수 있어요.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떠나지 못하고, 머무르는 일은 머무를 사람에게 떠맡겨요.

 

나의 사인(死因)은 불면증이에요. 필라멘트 한 알을 입에 넣고 잠드는 것으로 병은 낫겠지만. 당신이 병실에 누워 잠들지 못할 때, 나는 시체가 없는 관 속을 오래 보고 있어요. 빛줄기가 그곳에 대신 누워 있고, 영정사진에는 아무것도 찍혀 있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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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드백의 중요성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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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시를 쓰며 활동하고 있는 별환이라고 해요.

 

요즘 시 게시판을 보면 기말고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글이 드물게 올라오고 있어요.

하지만 꾸준히 올라오고 있어서 제 또래 친구들이 이런 글을 쓰고 있구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러분이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이유는 자신이 쓴 글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의도이거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글을 어떻게 읽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올리는 것이잖아요?

작가는 독자가 있기에 만들어지는 것인데,  여러분은 이곳에 작가의 입장으로 왔겠지만

시나 다른 글을 올리고 난 후에는 독자의 입장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가끔 멘토 선생님을 제외한 다른 댓글이 없는 게시글을 볼 때마다

소통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요.

어쨎거나 작가에게 가장 도움되는 일은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니까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고 감상평을 쓰는 것도 작가로서 하나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자주 소통하는 글틴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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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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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

 

 

이곳에서는 전철의 경적 소리가 자주 들린다. 그래서 철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자주 탈선한다.

 

젖은 양말을 신은 날에는, 해수면 위에 남겨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수평선은 수평선으로 흐르고, 끝은 끝을 내딛었다.

 

그럼에도 나는

걷지 않았다

 

지나치는 사람들을 지나치고 있었다. 그러다 같은 방향으로 걷는 사람들이 뒤처지는 일들이 있었다. 나는 뒷걸음질 칠 수도 없었다.

 

그림자의 자세는 편하고 게을러 보였다. 그것은 아무래도 이불 없이 잠에 든 것 같았다. 내가 살아 있어서, 그는 조금 추울 것이다.

 

끝이 더 이상 끝을 내딛지 않고

멈춘 걸음을 옮길 수 없을 때에는

그림자 위로 드러누웠다

 

눈을 떴고

이불을 발로 걷어냈지만

발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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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을 따라하는 나의 앵무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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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을 따라하는 나의 앵무새

 

 

 

안녕. 네가 죽고 새장에서는 시체 썩은 냄새가 난다. 아직도 너의 친구는 부재를 느끼지 못하고, 나의 흐느낌을 따라하다가 문득 외로워지는 모양이다. 너는 이제 잃어버린 날개로 잘도 날아간다. 활주로는 괴로움의 연속이었구나. 그곳을 비행하는 너를 떠올리면 내가 가라앉는 기분이 든다.

 

너의 무덤에서 묻혀버릴 편지를 썼다. 다시는 번역되지 않을 너의 언어로. 우리는 살아 있어도 많은 대화를 했지만. 그건 언제나 일방적인 나의 질문의 연속이다. 또 그 질문에 대답하는 나의 지저귐이다. 거울도 따라하지 못하는 목소리를 너는 곧잘 따라했다. 이제는 너의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리겠지만.

 

안녕. 나는 잘 지낸다. 나에게 주어진 무게로 가라앉는 발자국과 흩날리는 날숨이 있다. 그곳의 무게는 어떠니. 죽은 너는 무게가 없어서, 무덤의 중력으로 살아가고. 너의 꿈을 꿀 때마다 이불은 무거워진다.

 

너의 이름을 불렀다. 누군가 그 이름을 따라 불렀지만, 들어도 들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곳은 나만 남겨진 새장이니까, 이불로 고립된 나의 무덤이니까. 나는 죽어서라도 너를 만날 수 있을까.

 

안녕. 잘 지내란 말은 못하겠다. 나는 잘 못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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