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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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아져 버린 연은

하늘로 올라가 버리는 것이

숙명이기에

 

연을 놓친 어린아이의

눈가를 닦아줄 새 없이

하늘을 날아오릅니다.

 

내가 밟고 지나친

장미들이 붉은 눈물로

땅 위를 수놓아도

운명을 거스를 힘이 내겐 없습니다.

 

운명이란 이름에

비겁하게 숨어버린 나

끊어진 연처럼

비겁하게 도망쳐버린 나

 

 

저 멀리 사라져가던 내가

지쳐버려 나무 위에 쉬어 갈 땐

조용히 내려 주세요.

 

그대 곁에 조용히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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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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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같은 밤

달빛 한 가득 모아다가

그대 품에 놓아 두고 싶어라.

 

돌아가는 발걸음 구름 위를 걷는 듯.

두 손에 가득한 달빛 위로

아른거리는 아름다운 임.

 

아아. 저기 저 다리는

내 임의 다리인데

옆에 누운 이 누구오리까.

 

갈 곳 잃은 달빛은

산산이 부서져

내 눈가에서 반짝거리네.

 

갈 곳 잃은 두 발은

내 임 잃은 이승을 넘어

찬란한 오색운 위에서 춤을 추네.

 

슬프고 아름다운 밤.

내 임 잃은 나는

어디로 가오. 어디를 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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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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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릿광대, 곡예사, 조련사, 사자.

모두가 즐거운 서커스.

즐거워야 하는 슬픈 서커스.

사자를 돌보던 어릿광대.

어릿광대를 돌보던 곡예사.

곡예사를 잡아둔 조련사.

 

웃어야 하는 어릿광대.

아름다워야 하는 곡예사.

행복해야 하는 서커스.

조련사는 사자를 길들여.

어두운 상자 안에 가둬놔.

어릿광대가 찾아 헤매도록.

 

사자를 길들인 조련사.

어릿광대가 물었어.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요?

사자가 대답했어.

조련사가 대답했어.

곡예사가 대답했어.

 

어둠이 날 삼키도록 두었어.

사자가 대답했어.

너는 어릿광대니까.

조련사가 대답했어.

당신은 잘못이 없어요.

곡예사가 대답했어.

 

서커스의 막이 올랐어.

불은 켜지고 관객은 가득해.

사자가 어릿광대를 물어뜯어도

어릿광대의 웃음은 지워지지 않아.

조련사는 크게 소리쳤고

관객들은 크게 환호했어.

 

서커스의 막이 내리고,

불은 꺼지고 관객은 없어져.

공중그네는 덩그러니 놓여있어.

곡예사가 내려오고 다시 불이 켜져.

환하게 웃고 있는 어릿광대를

곡예사는 품에 꼭 안아.

 

사자와 조련사가 떠나 간 무대 위엔

웃음이 지워진 눈물투성이 어릿광대.

예쁜옷 벗겨진 상처투성이 곡예사.

모두가 즐거운 서커스.

즐거워야 하는 슬픈 서커스.

그렇게 막이 내린 나의 서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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