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작]보다 온전한 사랑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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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안타깝게도 누군가를 오해하는 일일 것이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해가 불가능할 때 우리는 차라리 오해해버린다. 감정이 관련된 일에서 특히 더 그런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건 우리가 고작 언어에 기대어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감정 앞에서 언어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사랑’한다고 말해도 거기에 사랑은 없다. ‘사랑’이라는 모양의 문자가, 공기의 울림이 있을 뿐이다. 연인에게 끊임없이 사랑하느냐고 물어 사랑을 확인받고도 또 되묻는 것은 비단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때의 달콤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도 진심인지 의심이 들고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도 마찬가지. 그러나 말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다면 어떨까. 도국의 <스펙트럼 분석기>다.

 

희동은 헤어디자이너다. 그의 말을 빌려 헤어디자이너를 정의해보자면, 여자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다. 이것만 보면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뿐만은 아니다. ‘손님에게 아낌없이 칭찬해주고, 따뜻한 손길로 빗어주고, 고작 20분이지만 아름다움과 함께 즐거움도 드리는 엔터테이너’다. ‘엔터테이너’라고 했지만 이건 오히려 연인을 닮았다. 희동의 바람기는 직업병인지도 모르겠다. 반면 나비는 정반대의 인물로 그려진다. 사랑에 인색하다. 아니, 사랑이 나비에게 인색하다. 타인에게 자신의 머리를 맡겨본 적도 없어 희동이 머리를 감겨주자 버둥거리며 온몸으로 거부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몸에 힘을 빼고 희동의 손길을 느끼기 시작하자 ‘기분 좋음’을 전혀 숨기지 못하고 여과 없이 겉으로 드러내고 만다. 정반대의 모습을 한 인물들의 만남은 늘 요란한 법. 희동과 나비도 그렇다. 둘은 종합병원의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만난다.(정확히는 엘리베이터의 앞이겠지만.) 먼저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 희동이다. 그는 나비에게 담배가 무엇인지, 몇 층으로 가는지, 같은 것들을 물으며 대화를 건다. 그러나 나비는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예측 못할 행동을 통해 희동의 관심을 밀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엘리베이터에서 밀려나는 건 나비지만 밀어낸 것 또한 나비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둘은 서로가 내려야 할 층이 뒤바뀌어 도착하게 된다.(안과가 5층, 정신과가 6층이다.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게 된 것은 나비이다.) 마지막까지 엘리베이터가 배경으로 나오는 만큼 의미심장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식으로 둘의 위치가 바뀌는 장면은 계속 된다. 예컨대 카페의 쇼윈도를 사이에 두고 희동이 벙어리가 되는 장면 같은 것. 작가는 인물들에게 계속해서 서로의 위치를 바꿔 서 볼 것을 강요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건 너무 낡고 뻔한 방식 아닌가. 과연 만화에서도 희동과 나비는 둘 사이의 실패를 겪는다. 나비가 작별악수를 하자고 말하지만 희동이 거부한다. 희동의 거부에 나비는 “그럼 악수 없이 작별하자”고 말한다. 헤어지기 직전 나비가 입을 벙긋거리지만 때마침 지나가는 열차소리 때문에 희동은 듣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나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을 벙긋거렸을 뿐이었다. 기차는 정해진 선로로만 달리고 그 끝에는 정해진 종착역이 있다. 그건 나비의 현재와 닮았다. 그녀는 자살을 결심하고 마침내 그러기로 결정한 그 날이 오고 만 것이다. 죽음은 어쩔 수 없다. 가장 확실하고 절대 피할 수 없는 이별의 방식이다.

 

레일의 의미가 나비라면 기차의 소리가 의미하는 것은 희동일 것이다. 희동은 보고 듣는 것이 너무 많다. 희동이 보는 ‘우리들’을 어떤 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언뜻 보면 유령 같지만 꼭 그런 것 같지만도 않다. 극중에서 ‘우리들’은 전지전능하다. 희동이 듣는 나비의 목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으며 심지어 희동이 제령의식을 하는 도중에도 그 모습을 지켜본다. 그러나 극중에서 의지를 가지고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거나 직접 다른 인물과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다. 그저 보고, 이따금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필요한 만큼만 희동에게 질문한다. ‘우리들’의 시선은 관찰자(영화라면 카메라)의 시선이다. 때문에 독자의 시선이기도 하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독자들을 이야기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제 독자는 희동과 나비의 이별에 도무지 책임을 지지 않을 수가 없다.(예를 들면 이야기가 전개함에 따라 “벙어리가 된 가엾은 가수보다, 우매한 광대라고 조롱받는 게 나”은 것이라고 말하는 나비의 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녀를 연민하게 된다.) 때로는 시선을 보내는 것 자체만으로도 죄가 되니까. 아무리 타인의 시선이 피사체의 내부에서 새로운 감정으로 변모하는 것이라 해도, ‘시선을 보내는 것’ 자체를 무시할 순 없는 것이다. 아마 희동이 스스로를 이상하게 느낀 것은 자신의 시선이 ‘우리들’에게 닿아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시선이 자신을 겨누고 있어서겠지. 본인은 몰랐다 해도 말이다. 시선의 수만큼 오해가 생긴다. 작가는 ‘우리들’이라는 인물을 통해 독자를 작품 속의 직접적인 관찰자로 내세우며 그걸 강조한다. 그와 동시에 드러나는 오해가 하나 더 있다. 사랑이 오로지 1대1 관계라는 오해. 그러나 그건 불가능하다. 심지어 모두가 죽고 단 둘이 남았다 해도 희동이 느끼는 시선은 여전할 것이다. 이것은 희동이 ‘우리들’을 보기 때문만은 아니며, 또 희동만의 이야기도 아닐 것이다. 우리 또한 사회에서 벗어나도 예컨대 ‘인간적’이라는 시선을 느껴 인간적으로 행동하려 노력하고 말 것이니까.

 

나비와 희동은 이제 각자 죽음과 시선을 극복해야한다. 나비의 이야기부터 해볼까. 나비는 일상에 대한 집착으로 잠깐 죽음에 대한 충동을 잊어보려 한다. 그녀는 잠에서 깨 목욕을 하고 밥을 먹는다. 지극히 일상적인 일들이지만 이미 죽음을 결심한 그녀는 그것들에 대한 거부감을 감출 수 없다. 먹던 음식을 모두 버리고 변기에 기대어 먹었던 것을 게워낸다. 그리고 예정대로 그녀는 자살을 시도하지만 스스로 줄에다 낸 흠집으로 인해 실패한다. 그러나 이건 극복이라고 볼 수 없다. 운명에 결정을 미루어 다시 죽음이 도사리는 삶으로 돌아간 것일 뿐이니까. 다만 목에 가해진 충격 때문이었을까, 나비는 목소리를 되찾는다. 죽음을 보류했으니 시선을 극복할 차례. 나비는 자신이 퍼플래빗임을 선언한다. 순식간에 스타가 되어 관심과 사랑을 얻지만, 앞서 말했듯 시선은 규정이고 사랑은 오해일 뿐이다. 그 과정에서 나비는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닌 ‘들어주는’ 희동이 아니면 안 된다고 느낀다. 물론 이 또한 아직 언어를 통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말이다. 나비는 희동에게 사과하고 다시 관계를 맺기 위해 그를 찾아가지만 텅 빈 집과 5월에 멈춘 달력만이 나비를 맞는다. 이 부분은 그들의 첫 만남을 연상케 한다. 나비는 희동을 밀어내며 자신은 5층에 희동은 6층에 도달하게 했다. 죽음이 물리적인 일이라면(5월과 5층) 타인의 시선에 대한 건 정신적인 일일 것이다(6층 정신과). 나비는 매니저에게 자신은 누구인지, 너는 누구인지 묻는다. 상투적인 대답들 속에서 나비는 희동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구원자가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 또한 나비가 이제 말을 할 수 있으니 특별한 능력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나비는 희동을 위해 살기로 하며 ‘관계자 외 출입금지’ 스티커 아래에다 코미디언 간나비의 심벌을 그려넣는다. 그녀와의 ‘관계자’는 코미디언 간나비의 유일한 매니저였던 희동이라는 듯. 도국에게 죽음과 시선은 같은 맥락인 것처럼 생각되었던 걸까. 희동의 경우도 그 둘을 동시에 극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희동은 자신의 ‘이상함’을 느끼고 제령의식 혹은 정신수양으로 보이는 어떤 것을 하기 위해 떠난다. 그 과정에서 환상을 통해 죽음과 삶의 경계에 맞닥뜨린다. 죽음이 막 희동을 집어삼키려는 순간 그는 코미디언 간나비로 돌아간 그녀의 삶을 보게 된다. 그건 사랑을 당당하게 돌려받으라는 희동의 말에 대한 나비의 대답(목소리)일 것이다. 희동은 웃는다. 나비가 웃기 때문이고, 나비가 웃길 바라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것이 나비가 원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둘은 더 이상 ‘말’로 말하지 않는다. ‘삶’으로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희동과 나비가 다시 만났을 때, 나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희동이 “듣고 있어요.”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들을 수 없다. 그건 둘만의 언어이니까.

 

도국은 삶 자체가 무언가에 홀린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게 희동이 느끼는 시선과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시선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약에 홀려 웃고 울던 나비도 그렇다. 홀려야 한다면, 어차피 무언가에 홀려야 살아갈 수 있다면, 무언가에 홀릴 것인지 결정할 정도의 자유는 있지 않을까. 도국은 사랑으로 결정한 것 같다. 보다 온전한 사랑이라는 언어로 그걸 우리에게 보여줬다. <스펙트럼 분석기>는 부정할 수 없는 도국의 첫 번째 스펙트럼이다.

 

스무살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글을 올렸었다고 생각했는데 퇴고작은 시간을 연장해주시는 기회가 생겨 한 번 더 글을 보여드리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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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장원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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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월장원 상품을 받지 못했어요 ㅠㅠ

 

주소… 여섯자리 우편번호를 몰라서 지번주소를 적어두긴 했는데, 도로명주소나 다섯자리 우편번호는 못 적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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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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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여행자와 베테랑 여행자의 공통점은 바유로 간다는 것이다.

창밖을 보던 유진은 문득 그 문장을 기억해냈다. 언젠가 여행블로그에서 본 글이었다. 블로그 주인의 말을 빌리자면 바유는 바유 이외의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곳이었다. , 나라, 도시와 같은 말들이 바유의 뒤에 따라왔지만 그것은 바유의 일부일 뿐, 바유를 온전하게 설명하는 말이 될 수 없었다. 바유는 오로지 바유였다. 유진은 그 말을 좋아했다. 바유를 좋아했고 바유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가본 적도 없는 곳을 사랑하다니, 그건 말이 안 되잖아. 언젠가 그녀에게 그런 멍청한 말을 한 사람이 있었다. 그게 아니라고, 그녀는 말하고 싶었지만 상대를 설득시킬 자신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설득당하는 것은 그녀 쪽이었다. 그런 환상의 섬 같은 곳이 존재할리가 없잖아. 가보지 않고 어떻게 그렇게 말하는 거야? 그녀는 그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바유에 왔다.

창밖으로 펼쳐진 바유의 풍경에 집중했다. 수평선과 그 위로 떠오르는 커다란 구름이 보였고 잔잔한 바닷물 위에서 자국을 남기며 나아가는 고기잡이배가 있었다. 창 너머로 보이는 바유는 마르틴 감독 영화인 [바람의 방향]의 첫 장면을 닮았다. 바유의 풍경을 가장 정확하고 아름답게 스크린으로 옮겼다는 평을 받는 영화였다. 하지만 흥행에 실패한 영화이기도 했다. 유진이 보기에도 [바람의 방향]은 놀랍도록 지루하고 난해한 영화였다. 처음 오 분 간은 바유의 풍경을 무차별적으로 보여주더니 느닷없이 주인공들의 섹스장면으로 넘어간다. 십 분 정도 그러고 나면 다시 바유의 풍경을 보여주는데 이번에는 여주인공의 헐떡이는 숨소리만 바유의 풍경 속에서 계속 되는 식이다. [바람의 방향] 이후로 마르틴은 더 이상 새로운 영화를 찍을 수 없었다. 그런 게 영화라면 유진은 자신도 얼마든지 감독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유진은 몸을 움직여 창문에서 멀어졌다. 침대에 걸터앉은 뒤, 시도해야만 할 것들과 시도해봐야 할 것들이 적힌 수첩을 배낭에서 꺼내 펼쳤다. 그녀는 바유로 오며 일정에 대해 대략적으로라도 정해둔 것이 없었다. 미리 정한 것은 오는 시간과 돌아가는 시간뿐이었다. 대신 해봐야 할 것들과 해야만 할 것들을 생각한 뒤, 필기해 배낭에 달린 주머니에다 넣어 두었다. 해봐야 할 것에는 바다에서 수영하기와 갓 잡은 생선 사먹기, 지나가다 문득 가로수를 흔들어보기, [바람의 방향]의 배경이 되는 장소들 찾아가 보기 같은 것들이 있었다. 모두 충동적으로 생각나는 것들을 적은 것이었고, 지금 와서는 굳이 안 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드는 일이었다. 그녀는 한 장을 더 넘겨 시도해야만 할 일들을 훑어보았다. 바유의 시장에서 산 식재료로 직접 저녁 해먹기와 히치하이킹이 목록의 전부였다. 그녀는 볼펜을 들고 잠시 고민했지만 목록이 늘어나지는 않았다.

대충 세수와 양치만 한 유진은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아침은 뷔페식으로 제공되었다. 그녀는 접시 가득 샐러드를 담아서 창가자리에 앉았다. 튀긴 생선을 곁들이려다 그만두었다. 속이 거북했다. 그녀는 샐러드를 씹으며 자신의 처한 상황을 돌이켜보았다. 날씨는 나쁘지 않았고 샐러드의 맛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괜찮지 않은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 바유에는 공항이 없었기에 바유의 땅을 밟기 위해서는 무조건 배를 타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심한 배 멀미를 앓았고 그게 오랫동안 바유에 오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배 위에서 할 수 있었던 일은 토를 하거나 녹초가 되어 누워 있는 것뿐이었다. 누적된 피로 때문인지 첫 날, 그녀는 짐을 풀곤 곧바로 잠에 들었다. 이제 겨우 첫 날을 보낸 거잖아. 초조해할 필요 없어. 그녀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바유에서 떠나기까지 오 일이나 남아 있었다. 포크를 잠시 내려두고 고개를 들어 식당 안을 둘러보았다.

한가운데의 음식이 잔뜩 놓인 긴 테이블과 주변으로 작은 테이블이 자리 잡은 단조로운 구조였다. 세 명의 투숙객이 테이블을 하나씩 차지한 채 음식을 먹었다. 당연하게도 유진이 모르는 얼굴들이었다. 고개를 더 돌리자 어저께 숙소를 안내해주었던 남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무얼 하는 건 아니고 그저 볼록한 배 위에 손을 얹은 채 식당 내부를 유심히 살폈다. 곧 유진과 남자의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남자는 이를 드러내어 웃어보였다. 잠깐 의아해하던 유진은 곧 바유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바유에 있었다. 드레싱의 땅콩향이 입과 코로 번졌다.

 

준은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오랜 소파생활로 늘 목이 뻐근했고 경직된 자세 때문에 잠에서 깨면 팔다리가 쑤셨다. TV에서는 계속해서 무어라 떠들어댔지만 준은 소리를 들을 뿐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잠에서 깨는 순간은 늘 그랬다. 사고가 멈춘 것처럼 글을 읽거나 소리를 들어도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준은 허리를 세운 채 몽롱함이 사라질 때까지 눈을 감고 기다렸다. 곧 허기가 천천히 뱃속을 채우려들었다. 갈수록 또렷해지는 배고픔을 준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대로라면 굶어 죽을 거야. 준은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여덟시였다.

준은 TV를 끄고 소파 등받이에 걸쳐져 있던 티를 입었다. 아버지가 경찰들에게 체포된 이후로 준은 TV 소음 없이는 잠들지 못했다. 벌써 한 달째였다. 아버지가 모아서 숨겨뒀던 돈도 다 떨어졌고 냉장고에 남아 있던 음식도 모두 먹어치워 버렸다. 더 이상 아무것도 안 하며 잠만 잘 수 없는 노릇이었다. 준은 경찰이 들이닥쳤던 그 날, 숲 속으로 던져버렸던 열쇠를 찾기 위해 집밖으로 나갔다. 숲으로 열쇠를 던져버리는 것은 아버지가 준에게 알려준 것이었다. 자동차는 숲 깊은 곳에 숨겨두었다. 혹여 찾아낸다 해도 견인차가 들어갈 만한 공간이 없었다. 열쇠만 보이지 않는 곳으로 던져버리면 되었다. 자동차와 지식이 아버지가 준에게 남긴 전부였다. 준이 가진 전부이기도 했다.

집을 나온 준은 숲의 입구에 섰다. 집은 정확히 숲과 평야의 경계에 있었다. 한 발 간격을 차이로 숲과 아닌 곳의 차이는 확연했다. 준은 숲을 노려보았다. 곧 열쇠를 던졌던 방향을 기억해냈다. 사이렌 소리 사이로 열쇠가 떨어지는 소리까지 정확히 들었다. 나뭇가지 어딘가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닐 터였다. 준은 짐승처럼 바닥에 엎드려 손바닥으로 풀 위를 더듬으며 돌아다녔다. 이미 몇 번 해 본 일이었다. 상당히 오래 걸리는 일이라는 것도 잘 알았다. 반복된 훈련의 결과였다.

아버지는 이따금 준에게 던졌던 열쇠를 찾는 훈련을 시켰다. 그 때는 열쇠가 아니라 열쇠고리뿐이었지만. 아버지가 준에게 열쇠고리를 보여주고 숲을 향해 던지면 준이 그것을 찾아온다. 그게 훈련의 거의 전부였다. 준은 그 순간이 오면 한껏 긴장했다. 열쇠를 찾을 때까지는 잠을 자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준은 열쇠가 떨어진 방향을 노려보았고 아버지의 출발 신호가 떨어지면 곧바로 그곳을 향해 달렸다. 표지 없는 위치는 잠깐만 눈을 돌려도 금세 잊혀졌다. 온통 풀과 나무뿐인 숲에서는 더 그랬다. 몇 번을 반복하자 준은 열쇠고리를 곧잘 찾아냈고 아버지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 준의 눈을 가린 채 열쇠고리를 던졌다. 준은 소리만으로 열쇠고리의 위치를 가늠해야했다. 그 다음은 커다란 스피커로 노래를 재생시킨 채 던지는 것이었다. 준 뒤에 스피커가 있었던 첫 날, 준은 가늠되지 않는 열쇠가 있을 곳 대신 집을 향해 달렸다. 아버지가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가방 안에다 닥치는 대로 음식을 집어넣었다. 냉장고에 있던 음식을 모두 챙겨 숲으로 달아나며 준은 아버지가 서 있던 쪽을 확인했지만 아버지는 애당초 준을 쫓을 생각이 없었는지 그 자리 그대로 서 있었다.

그 날부터 준은 나무 위에서 생활했다. 나무 위의 삶은 나쁘지 않았다. 고단한 집안일도 아버지처럼 위협이 되는 것도 없었다. 이따금 초식동물만이 준이 올라 있는 나무 밑으로 지나다닐 뿐이었다. 지루할 때면 준은 돌을 던져 초식동물을 맞춰보았다. 초식동물이 듣기 싫은 울음소리를 내며 주위를 살피면 준은 소리 없이 낄낄거렸다. 밤이 되면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고 나뭇잎의 어두운 아랫면 사이로 하늘을 보았다. 준은 그 광경이 마음에 들었다. 지루하지 않았다. 문제는 음식이었다. 가져온 음식은 고작 일주일만에 바닥나버려 다시 음식을 훔쳐야 했다. 그 일을 세 번 반복할 때쯤 아버지의 손에 목덜미를 붙잡혔다. 아버지는 다짜고짜 준을 때리기 시작했다. 준은 배낭을 맨 채 엎드려서 두 팔로 머리를 감쌌다. 한참을 때리기만 하던 아버지는 이 섬은……. 하고 입을 열었다. 차분한 목소리였다. 준은 고개를 들어 아버지를 바라보았고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잠시 준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말을 끝마치지 않고 준의 앞에 빵을 던졌다. 곧바로 몸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준은 아버지의 방문을 바라보다 빵을 먹었다. 입 안 가득한 피 때문에 빵의 맛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이후 준은 이따금 숲으로 갔다. 가출은 아니었다.

준은 곧 열쇠를 찾아냈다. 열쇠를 찾는데 두 시간이나 걸렸다. 예상보다 오래 걸렸지만 초조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가 생기기 않았다면 차는 제자리에 있을 것이고 여행자들은 늘 거리에서 차를 불러 세웠다. 그들 중에서 적당히 고르면 되는 것이었다. 준이 느끼기에 바유의 좋은 점이라곤 도처에 히치하이커들이 널려있단 것뿐이었다. 준은 마른 입술을 핥았다. 단 맛이 났다.

 

바유가 히치하이커들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들의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바유는 중심의 우거진 숲과 이외의 광활한 평야로 이루어진 섬이다. 본래 말이 많은 섬이기도 했지만 바유의 사람들은 넓은 평야를 이동하기 위해 더 많은 말을 길러야 했다. 바유에서 말은 모두에게 필수적인 이동수단이었고 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동물이었다. 말은 바유 사람들의 공유재산이었다. 바유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허락받지 않고 도처에 널린 말을 잡아다 탈 수 있는 것이었다. 이미 누군가 타고 있는 말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히치하이킹처럼 그들은 길가에 서서 달리고 있는 말을 세워 함께 탔다. 이에 관련된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운송회사였던 Z사는 일찍이 관광지로써 바유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바유와의 택시독점계약을 추진했다. 계약에 방해될 것은 없었고 머지않아 바유에는 Z사의 택시가 다녔다. 하지만 수입은 바닥을 쳤고 관광객 수가 늘어나도 마찬가지였다. Z사가 바유의 히치하이킹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탓에 벌어진 일이었다.

블로그 주인은 오래 전에 활동을 그만 두었다. 남아 있는 그의 글들만 이따금 들어오는 초보 여행객들에게 바유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다. 그 글을 접한 여행객들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했다. 자신의 환상이 실재한다고 증명하려는 듯, 바유에 대한 정보들을 찾아다니다 곧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바유에는 단 한 마리의 말도 살지 않았다. 바유의 히치하이킹 문화는 12대 시장이었던 미하일의 아이디어였다. 관광산업을 통해 바유를 키우고자 했던 미하일은 꾸민 이야기와 거짓말들로 바유를 치장하고 홍보에 나섰다. 지금 와서는 그의 거짓말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히치하이킹 문화만은 여전했고, 바유의 사람들 또한 히치하이킹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진실을 알게 된 이후의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바유에 대한 관심을 거두거나 더욱 바유를 사랑하게 되거나. 유진은 후자였다. 어쨌건 히치하이킹이 활발한 것은 사실이었고 바유의 매력은 겨우 히치하이킹 하나만이 아니었다.

유진은 휴대폰과 지갑, 수첩만을 가방에 넣고 숙소를 나섰다. 일단 시가지를 벗어날 때까진 무작정 걸을 생각이었다. 걷다가 건물이 보이지 않게 되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걷던 방향으로 나아가는 자동차를 기다릴 것이다. 그녀는 히치하이킹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자신의 앞에 선 자동차의 색깔과 차종, 운전자의 성별을 예상해보았다. 무엇 하나 확실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없었지만 그녀가 느끼는 기대감만은 선명했다.

마을을 나가기 위해선 시장을 거쳐야 했다. 오전이었음에도 시장은 이미 시끄러웠다. 손님이 많은 것은 아니었고 그저 시끄러울 뿐이었다. 상인들은 소리를 질러야만 길 위에 듬성듬성 서 있는 여행객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것 마냥 행동했다. 몇몇은 시끄러운 나팔을 불어대기도 했는데, 그 앞을 지나며 유진은 귀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파는 게 특이하거나 가치 있어 보이는 물건들은 아니었다. 식재료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돌덩어리, 모자, 양산 같은 것들이 나열된 물건의 거의 전부였다. 그녀는 물건들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일단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 싶으면 상인들은 길을 막아서고 흥정을 시도했다. 말이 통하지 않았음에도 손가락 두어 개를 세우며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그녀는 서둘러 시장을 벗어났다. 지긋지긋한 시장만큼은 여느 여행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건물의 밀도가 점점 옅어지더니 마침내 시가지를 벗어날 수 있었다. 도시 밖으로 나온 유진은 먼저 수첩 사이에 넣어두었던 지도를 펼쳤다. [바람의 방향]의 배경으로 쓰였던 장소들은 미리 표시해둔 지도였다. 크게 두 구역으로 나눌 수 있었는데, 어느 쪽부터 둘러볼지는 아직 정해두지 않았다. 유진은 가장 먼저 잡아타는 차가 가는 방향부터 둘러볼 예정이었다. 지도를 확인하는 동안에도 유진의 옆으로 간간히 자동차 몇 대가 스쳐 지나갔다.

 

당황하지 말아라. 준은 아버지에게서 배웠던 것들을 곱씹으며 차를 몰았다. 상대를 당황시키고 우리는 절대 당황해선 안 된다. 자동차의 미세한 떨림이 핸들을 잡은 손을 통해 준에게 전해졌다. 고르지 않은 길 때문에 차체가 덜컹거릴 때면 준은 괜히 헛기침을 했다. 누군가 자신을 놀라게 하려고 길 곳곳에다 파놓은 함정 같았다. 준은 마음을 가다듬고 희미한 기억에 집중했다. 의지할 것은 아버지의 가르침뿐이었다.

준이 아버지의 작업에 처음 따라갔을 때, 그는 뒷좌석에 올랐다. 평소에는 준 대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잡동사니들로 채워놓던 곳이었다. 히치하이커를 태울 때, 작업을 위해서는 반드시 뒷좌석이 아닌 앞좌석에 태워야만 했다. 준은 아버지가 시킨 대로 뒷좌석을 모두 차지하고 누웠다. 자는 척 하기 위해 눈을 감고 있으면 차의 떨림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앓는 짐승 같았다. 차라리 짐승의 뱃속에 있다고 생각하면 편안해졌다. 준이 어둡고 축축한 짐승의 위를 상상하는 동안 차가 멈춰 섰지만 아버지와 여행객의 짧은 대화가 들렸을 뿐, 차에 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곧이어 다시 차가 멈췄고 이번에는 차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차체가 잠시 기울어졌다가 제자리를 찾았다. 그제야 긴장되었다. 자신이 할 일은 없다고 스스로 다독여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여전히 짧고 서툰 영어로 여행객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언제 왔는가, 언제 돌아가는가. 질문은 그런 것들이었다. 준은 아버지가 여행객에게 했던 질문의 발음을 모두 기억하려고 애썼지만 긴장한 탓인지 전혀 집중되지 않았다. 곧 아버지는 시동을 끄고 품에 들어 있던 칼을 꺼내서 여행객 앞으로 들이밀었다. 준은 조용히 상황을 살폈다. 여행객은 한 손을 귀 옆으로 들어 보이고 나머지 손으로 가방을 옮기고 있었다. 준은 여행객에게서 가방을 낚아채 안을 확인했다. 휴대폰, 지갑, 귀중품이나 전자제품만 챙기고 나머지는 가방 채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그 사이 아버지는 여행객을 차 밖으로 밀어내고 다시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후로 준은 항상 뒷좌석에서 아버지의 작업을 지켜보았다. 아버지는 대체로 가까운 곳을 가는 사람과 일주일 이상 섬에 남을 사람들을 상대로는 작업하지 않았다.

도시에 도착한 준은 시간을 확인하고 차를 돌려 다시 숲 쪽으로 움직였다. 얼마 가지 않아 준의 시야에 히치하이킹 하는 여자가 보였다. 유진이었다. 준은 그녀 앞에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렸다. 어디까지 가시나요.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서툰 발음과 미소를 유지했다. 마을 쪽만 아니면 돼요. 지도를 내려다보며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대답했다. 준은 팔을 뻗어 조수석 쪽 문을 직접 열어주었다. 유진은 어렵지 않게 차에 올라탔다.

준은 그녀에게 여러 질문들을 했다. 말이 많고 친절한 현지인. 아버지는 그게 여행객들이 원하는 운전자의 모습이라고 준에게 가르쳤다. 그런 모습을 보이면 한껏 긴장한 채 창밖을 바라보던 경계를 지우고 곧 함께 수다를 떨었다. 준은 눈을 돌려 유진을 힐끔 쳐다보았다. 유진은 그의 말에 대답을 했지만 시선은 자신의 무릎에 펼친 지도에 고정되어 있었다. 준은 입을 다물었다. 차는 점점 더 인적이 드문 곳으로 나아갔다.

어느 쪽으로 가고 있나요? 이윽고 고개를 든 유진이 물었다. 지도를 보며 자신이 돌아다닐 루트 정리를 막 끝마친 참이었다. 그러나 준은 유진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그녀를 슬쩍 바라보더니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그제야 유진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창밖을 바라보았지만 어디에도 이정표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스탑, 카. 당황한 유진은 정확한 문장을 만들지 못하고 그렇게 말했다.

스탑. 카. 나우!

차가 멈췄다. 준은 품속에서 칼을 꺼내 유진 앞으로 들이밀었다. 유진의 얼굴 위로 두려움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준은 가방을 자신에게 넘기라고 소리쳤다. 유진이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자 칼로 가방을 툭툭 건드렸다. 유진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가방을 준의 품에 안겨주었다. 준은 유진에게 칼을 겨눈 채 남은 손으로 가방을 뒤졌다. 휴대폰과 붉은 지갑, 끈이 달린 수첩이 전부였다. 흔한 카메라 하나 없다는 것에 준은 실망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가방을 모두 확인한 그는 유진에게 나가라고 말했다. 유진이 차 문을 열자 그녀의 등을 찬 다음 가방을 던졌다. 가방은 바닥에 고꾸라진 유진의 위로 정확히 떨어졌다. 준은 서둘러 조수석 문을 닫고 숲으로 향했다.

오 일이랬다. 오 일만 조용히 지내면 유진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것이고 경찰들은 수사를 그만둘 것이다. 늘 그랬다. 수사는 형식적이었으며 그나마도 신고자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고 나면 없던 일이 되었다. 경찰과 마을 사람들은 준과 아버지에게 바유의 이미지를 갉아먹고 사는 기생충이라 했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문제는 바유 자체에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시장에 자리를 잡아도 삶이 안정되는 것은 아니었고 호객행위와 구걸은 큰 차이가 없었다. 물고기를 낚으며 사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바유에서는 누구도 보장된 삶을 살 수 없었다. 바유의 모든 인간은 위태롭게 바유에 기생해 있을 뿐이었다.

 

준의 자동차가 떠나고 유진은 한참동안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왔던 길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해했다. 준이 가져간 것 중 딱히 중요한 물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휴대전화는 어차피 곧 새로운 기종으로 바꿀 생각이었고 지갑 또한 현금이 약간 들어 있을 뿐이었다. 카드와 비상금은 모두 숙소에 있었다. 거기다가 수첩과 가방은 돌려주었으니 그녀가 잃은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고 있는 동안 차 몇 대가 그녀를 지나쳤다. 때때로 멈춰 서서 이것저것 묻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녀가 대답하지 않자 금세 떠나버렸다. 도시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희미하게 바다냄새를 풍겼다. 곧 그녀는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비가 내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다의 비는 바다냄새가 났다. 남은 오 일중 하루는 비가 와주지 않을까. 그녀는 가방을 메고 도시 쪽으로 걸었다. 또 다시 모르는 누군가의 차를 얻어 탈 자신은 들지 않았다. 긴장이 풀리자 졸음이 쏟아졌다.

숙소로 돌아온 그녀는 곧바로 잠에 들었다.

꿈 속에서 그녀는 길을 잃었다. 어두운 숲이었다.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마을이 나올지 짐작할 수 없었지만 그녀는 걸었다. 땅 위로 노출된 나무뿌리는 어디를 가나 비슷한 모양새였다. 같은 곳을 빙빙 돌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는 누군가를 원망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도대체 누구를 원망해야하는지 알 수 없었다. 목이 말랐고 신발을 벗어 확인하지 않아도 발은 상처투성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나무가 제 의지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그쯤이었다. 유진은 쉽게 눈치 채지 못했지만 곧 알아차렸다. 그녀 앞의 나뭇가지들이 아치모양으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나무들 사이의 길을 그녀는 멍하니 쳐다보았다. 곧 길의 끝에서 한 남자가 나타났다. 준이었다. 준은 칼을 든 채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고 그녀는 도망치려고 했지만 두 발이 뿌리에 묶여 있었다. 곧 그녀의 앞에 선 준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칼을 들어 그녀의 발목을 감싼 뿌리들을 내리쳤다. 내려치기를 거듭할수록 칼날이 뿌리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지만 쉽게 끊어지지는 않았다. 그녀는 준을 바라보았다. 준의 턱에서 떨어진 땀이 바닥에 떨어져 흙에 흡수되었다.

유진은 눈을 떴다. 새벽이었다. 그녀는 누운 채 고개를 돌려 창 쪽을 바라보았다. 창백한 하늘이 보였다. 막 해가 뜨고 있어 숙소의 벽이 푸르스름하게 물들어 있었다. 벽 한 쪽에 걸어두었던 바람막이에는 준의 신발 밑창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녀는 다시 눈을 감았다. 이불을 끌어올려 목까지 덮었다. 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경찰서로 가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보란 듯이 여행을 끝마칠 것이다.

 

준은 음식으로 가득 찬 냉장고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첫 작업에 대한 죄책감은 조용히 사라졌다. 중요한 건 결과였다. 아버지는 늘 그렇게 말했고 죄책감은 냉장고를 가득 채우지 못했을 때 느껴야하는 것이라고 준에게 가르쳤다. 준은 냉장고 문을 닫고 대신 유진의 지갑을 열었다. 지폐 두 장이 남아 있었다. 어째서인지 여행객들은 늘 비슷한 양의 돈을 지갑에 채우고 돌아다녔다. 아버지라면 담배를 사는 데 모두 썼을 돈이었지만 준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준은 지갑을 닫고 뒷주머니에 지갑을 넣었다.

소파로 간 준은 TV를 켰다. 준의 흥미를 끌만한 방송은 없었지만 전원을 끄지 않고 켜두었다. 간혹 준이 알지 못하는 언어가 섞여 들렸다. 준은 아버지의 행방을 생각했다. 바유의 주민들은 국가로써 바유의 독립성을 주장했지만, 사실 국가로 인정받지 못했다. 모든 행정적 절차들은 바유가 소속된 국가에 기대고 있었다. 중범죄로 체포된 아버지라면 육지로 이송되어 재판을 받은 후 교도소에 수감될 것이었다. 이미 삼 년을 교도소에서 살다 온 아버지였다. 이번에는 좀 더 오래 있을 게 분명했다. 어쩌면 준의 미래일지도 몰랐다.

준은 눈을 감았다. 잠을 자기 위해서였지만 쉽게 잠들 수 없었다. 눈을 감으면 유진의 얼굴이 떠올랐다. 겁에 질린 유진의 눈빛과 칼을 쥔 자신의 손이 눈앞에서 정교하게 재생되었다. 준은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벌레 몇 마리가 시야에 나타났다가 곧 사라졌다. 고개를 들어 냉장고 쪽을 바라보려다가 그만두었다. 일시적인 해결일 뿐 눈을 감으면 유진의 얼굴이 다시 떠오를 것이다. 준은 몸을 일으켰다. 차라리 잠자지 않는 편이 나았다.

준은 TV앞에 올려두었던 유진의 휴대전화를 들었다. 비밀번호는 걸려 있지 않았고 배터리도 넉넉하게 남아 있었다. 준은 가장 먼저 휴대전화의 언어를 바꾸었다. 그 뒤 휴대전화 속 정보들을 익숙하게 뒤졌다. 늘 하던 일이었다. 물건들을 빼앗은 후, 아버지가 중고시장에 내다 팔기 전까지 모든 전자기기들은 준의 장난감이었다. 시간을 흘려보내기에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근 일주일간의 통화기록은 없었다. 문자메시지 몇 통이 있었지만 언어설정을 바꾼다 해도, 메시지 속 내용들은 여전히 모르는 언어였다. 나머지는 바유의 시장과 부두를 찍은 사진 몇 장과 동영상 파일 하나였다. 사진들을 살펴보던 준은 마지막으로 동영상 파일을 열었다. [바람의 방향]이라는 타이틀이 준이 모르는 언어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곧이어 바유의 풍경들이 재생되었지만 준은 그것이 바유란 것을 알지 못했다. 익숙했지만 바유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은 주인공들의 섹스씬으로 전환되었다.

휴대전화에 포르노를 저장해두다니. 준은 유진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화면 속의 남녀는 점점 과격해졌다. 둘의 숨소리와 TV소리만이 방안에 가득했다. 준은 화면에 시선을 둔 채 천천히 바지를 내렸다. 차가운 공기가 하반신을 통해 느껴졌다. 바유의 공기는 해가 지면 빠르게 식었다. 준의 손도 마찬가지로 차가웠다. 남녀는 준이 모르는 언어로 서로의 귀에다 무어라 속삭여댔다. 준은 그들의 입술을 바라보며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곧 다시 화면이 넘어갔다. 바유의 숲 한 쪽이었다. 준은 한눈에 그곳이 바유란 것을 알아보았다. 이따금 아버지를 피해 도망치던 곳이었다. 돌연 준은 휴대전화를 던졌다. TV에 맞은 휴대전화는 TV의 화면을 깨뜨리고 바닥에 떨어졌다. 휴대전화는 액정이 깨져 검은 화면만 띄웠지만 소리는 여전했다. TV소리 사이로 들리는 여자의 숨소리가 꼭 비명 같다고, 준은 생각하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준은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람이 불어 흔들리는 어두운 숲뿐이었다.

 

 

 

 

(과거 업로드 했던 글을 퇴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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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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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방 창문 너머에는 창문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창문들, 빛이 들지 않을 때까지

 

어두운 방 안에서 그는 관이 되었지

지우개가 없는 책상에는 지울 것도 없는 법

단언하는 습관은 그가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혼잣말의 천재였고

책을 펼치면 그의 흔적들이

그러나 거짓말처럼 남아 있었다

연필만이 그의 삐뚤어진 치열을 재현해냈다

 

나쁜 습관은 영원했고

좋은 습관은 오래가지 않았다

 

죽음을 고민하는 건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

그는 죽어서 무엇도 되지 못했다지,

하는 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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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사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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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시체들뿐이다

죽은 것만이 자연사 박물관에 이름을 올린다

 

어느 날 들이닥친 손님은

내가 안내해주었다

나는 잠시,

어쩌면 오래 선생이고 싶었다

 

전시장 안에는 어저께 죽은 이웃이

그저께 죽은 이웃과 싸우고 있었다

죽은 줄도 모르고

 

나는 내가 모르는 전시물들을 소개하며

자주 자연사 박물관을 무너뜨리는 꿈을 꿨다

남은 자리에는 무얼 할까, 그런 고민도 없이

 

나머지는 수수께끼와 말장난들

중요한 건 유머다

웃지 못 한 손님은 화를 내며 돌아갔다

 

나는 오랫동안 자연사 박물관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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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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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긴 동물은 오랫동안 거울 앞에 앉아 있어야 한다

우리는 서로의 머리칼을 가발처럼 쓰고 마주보았지

네 눈동자에 내가 비치지 않을 때 나는 퍽 서글퍼지고

내가 슬픈 표정을 지으면 너는 내 표정을 따라했다 확신도 없이

그러면 나는 어쩔 줄 몰라 네 머리카락을 마구 씹어 삼키고

내 이는 머리칼을 끊기에 적합하지 않아 뱃속에는 엉킨 머리가 가득하다

아야, 아야, 신음하는 네 목소리의 근원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네가 버틸 수 없어진다

 

사랑이 사람의 영역이 아니라고 네가 농담할 때

농담(弄談)의 농담(濃淡)을 조절한다며 소리 내어 웃을 때

네 웃음만이 유일해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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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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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을 맞닿아

손금을 포개고도 우리는 점을 치지 못하지

다만 낡은 이야기를 서로의 귀에 속삭였다

 

변하지 않는 건 변하지 않는 것

그걸 깨달은 날은 네 몰래 종일 껌을 씹었고

턱이 사각이 될까하는 고민 따위 하지 않았어

 

하관이 넓으면 돈을 많이 번대, 하고

너는 조용히 말했다

 

나는 돈이 싫어

차마 뱉지는 못 해 그대로 삼켰지

위에서 껌이 부푼다는 소문이 유행하고

과연 입술의 주름에도 운명이 담겨 있는지

우리는 고민했지만

 

나의 사주에는 없는 게 많대, 네가 속삭이는 날에는

세상은 아주 어려운 미신이 되어버리지 하지만

너를 사랑하므로 오늘을 사랑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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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컬한 삶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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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자보지 않을래?

은하가 말했다. 침착하고 높낮이 없는 일상적인 어조였다. 나는 은하의 말에 어떤 저의가 있는 것인지 잠시 고민해야 했다. 고민이 끝나는 지점에는 또 다른 고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진심인가. 어떻게 이 상황을 얼버무려야할까. 혹은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잘못 들었다는 게 가장 설득력 있지 않나. 은하를 바라보았다. 은하는 내게서 등을 돌린 채 바닥에 앉아 있었다. 어깨너머로 책을 든 손과 종이를 쓰다듬는 엄지손가락이 보였다.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어떤 의문에 대한 해답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가장 설득력 있어 보이는 쪽을 선택했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이다. 은하는 그런 말을 한 적 없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문득 은하와 나 사이의 침묵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물을 받아둬야겠어. 물탱크 청소가 있다고 했거든. 말하고 찬장이 있는 부엌으로 도망쳐왔다. 스테인리스 대야를 꺼내 싱크대 위에다 올려두고 수도꼭지를 열자 대야로 물이 쏟아졌다. 차오르며 일그러지는 수면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새 은하가 내 뒤에 서 있었다. 나는 상체를 틀어 은하를 바라보았다. 은하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입을 약간 벌리고 있었는데, 입술 틈으로 보이는 앞니 두 개가 컸다. 오늘이 아니라 다음 주야, 물탱크 청소. 은하가 말했다. 나는 네가 어떻게 우리 아파트 일정을 아는 것이냐고 구태여 묻지 않았다. 물탱크 청소가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아마 은하의 말이 맞거나 은하도 거짓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곧이어 은하는 자신과 자보지 않겠냐고 다시 물었다. 처음과는 다르게 짜증이 섞인 어조였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은하의 표정은 점점 나빠졌다. 나는 은하의 시선을 피해 틀고 있던 몸을 되돌렸다. 대야에서 물이 넘치고 있었다. 은하의 발소리는 거칠었고 문이 닫히는 소리는 유난했다.

수도꼭지를 잠그고 아무도 없는 거실을 바라보았다. 식탁 너머로 보이는 거실에는 크림색 소파와 마주보는 텔레비전, 벽에 걸린 액자 몇 개가 전부였다. 거실 너머로는 발코니가 있었다. 다른 계절이었다면 소파와 텔레비전 사이 러그가 깔려 있었겠지만 여름이 되면 걷어냈다. 은하와 나는 주로 거실에서 생활했는데 이렇다 할 일들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등을 맞대고 앉아 책을 읽거나 대화를 했다. 은하는 뭐가 좋다고 이런 거실을 매일같이 찾아왔을까. 뭐가 좋다고 내게 자보지 않겠냐고 말했을까.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작년 봄,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퇴서를 제출하게 되었다. 사고를 쳤다거나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 해의 작년, 그러니까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기 직전에 엄마와 아버지는 이혼을 했다. 안정적인 직장이 있는 아버지 쪽이 경제적으로 덜 힘들 것이라는 누나의 판단에 따라 우리는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다. 삶이 송두리째 뒤흔들린다거나 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와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어머니의 빈자리가 생각보다 너무 가볍게 느껴졌던 것이다. 부모님의 이혼에 대한 나머지 이야기들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는 잘 알 수 없었다. 그런 건 어른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누나가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누나는 매사에 그런 식이었다. 자신 이외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럼에도 어머니가 사라진 집의 중심은 누나가 되었고, 모든 일들이 거의 누나의 의견을 따랐다. 나의 자퇴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자퇴하겠다고 말하자 누나는 그러던지, 하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자퇴서를 제출하자 2주간의 숙려기간이 주어졌다. 아침마다 학교대신 센터로 가서 상담사와 대화하고 설문지를 작성하는 게 거의 전부인 시간이었다. 그리고 은하가 있었다. 은하는 나보다 이틀 먼저 숙려기간을 시작했다고 했다.

은하의 첫인상은 뭐든 싫다고 말하는 아이었다. 상담사가 무언가를 하자고 요구하면 일단 싫어요, 대답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말뿐이었고 시키는 것들을 곧잘 했다. 그럼에도 다음번에 또 싫어요, 하고 말했다. 살면서 가장 많이 해야 할 말이 그것이라는 듯. 습관이냐고 묻자 은하는 아니라고 했다. 그런 습관은 싫어. 나는 어쩐지 그런 은하가 마음에 들었고 조금 더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휴대전화의 번호를 물었지만 은하는 휴대전화가 없다고 했다. 요즘 세상에 휴대전화 없는 애가 어디 있냐고 말하자, 은하는 그런 세상은 싫다, 대답하고 웃었다. 나는 내 전화번호와 집주소를 은하에게 알려주었다. 편지라도 보내라는 의미였는데 이후로 전혀 연락이 없었다. 은하답다고 생각하며 은하를 조금씩 잊어버렸다.

느닷없이 은하가 찾아온 것은 그 해 가을이었다. 비가 내렸고 얼마 되지 않게 누나가 집에 있던 날이었다. 그즈음 누나는 학교가 끝나거나 주말이어도 어디론가 가고는 했는데 어디로 가는지는 알지 못했다. 도서관이나 독서실이 아닐까. 누나는 공부를 잘했으니 막연히 그럴 거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그러나 누나가 있기 때문에 평소와 다른 날이란 것은 아니었고 그저 집에 있는 일이 드무니 그런 식으로 기억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누나와 나는 이상한데서 게으름을 피웠는데 그 날은 보일러를 켜는 것이었다. 한기를 버티지 못하고 카디건 위에다 담요를 두르려고 할 때 초인종이 울렸다. 내가 집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누나가 손님을 맞을 리 없었으니 몸을 일으켜야 했다. 현관으로 가며 보일러를 작동시켰다.

문을 열자 은하가 서 있었다. 빗속을 한참 헤맨 것 같은 꼴이었다. 손끝과 교복치마에서 물이 떨어져 현관바닥으로 둥글게 고였다. 누나의 친구인가. 현관에 있던 신발을 양옆으로 밀어내는 은하를 보며 생각했다. 하지만 익숙한 얼굴인데. 누구였더라, 생각하다보니 은하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양 끝의 길이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단발을 보고나서야 은하의 이름이 기억났다. 그렇다고 쉽게 안녕, 이나 은하구나, 하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은하란 것을 알자 이 상황이 더 당황스럽게 느껴졌다. 물론 집주소를 가르쳐주고 지나가듯 이 시간에 나 말고는 사람이 없을 거라 알려준 건 나였지만, 그게 이런 식으로 예고 없이 찾아오란 말은 아니었으니까.

언제까지 세워둘 거야? 들어가도 되지?

은하가 물었다. 동의를 구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하는 신발과 함께 양말을 벗으며 집으로 들어왔다. 누나가 방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어 우리를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은하는 고개 숙여 인사하더니 자신의 젖은 머리카락을 만지며 갑자기 비가 내려서, 하고 말했다. 누나는 잠시 은하를 관찰하듯 바라보았다.

비는 아침부터 내렸는데.

누나가 말했다. 그제야 나는 비가 아침부터 내렸다는 걸 깨닫고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왜 거짓말을 한 걸까. 은하는 대답하지 않고 표정으로만 웃고 있었다.

갈아입을 옷 없지? 가져다줄게.

누나는 침묵을 오래 끌지 않았다. 은하는 누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 화장실로 들어갔다. 곧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누나는 손가락을 들어 화장실을 가리키며 누구인지 내게 물었다. 나는 은하, 하고 대답했다. 이름을 묻는 것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지만 딱히 은하를 설명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누나는 내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흠, 소리를 냈다. 그러나 더 이상 추궁하지는 않았다.

누나에게서 받은 옷을 입고 나온 은하는 화장실 앞에 서서 잠깐 집을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소파로 가 앉고는 나를 불러 나 추워, 하고 말했다. 어쩌라는 거지, 하는 마음에 대꾸하지 않고 서서 은하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자 은하는 과장되게 두 팔을 비벼대며 춥다, 추워, 추운 건 너무 싫다, 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이 카디건 위에 두르고 있던 담요를 은하에게 건네주고 옆에 앉았다.

왜 거짓말 했던 거야?

무슨 거짓말?

갑자기 비가 내렸다고 한 거.

너는 속았잖아.

은하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 보면 은하는 늘 그런 식으로 내게 거짓말하곤 했다. 은하의 거짓말은 어설퍼서 조금만 생각해보면 사실이 아니란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은하도 자신의 거짓말이 어설프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일부러 거짓말이란 걸 알아챌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왜 그런 짓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러니까, 자보자는 말도 같은 맥락의 거짓말이 아니었을까. 조금만 생각하면 금세 알아차릴 수 있는 바보 같은 장난이었던 걸까.

어느새 나는 거실을 어슬렁거리며 빙빙 돌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은하가 떠나고 20분이 지났다. 고개를 돌려 발코니 쪽을 바라보니 기어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일주일 전부터 예고되었던 장마였다. 우리 층까지 솟은 나무의 나뭇잎들이 빗물을 맞고 흔들렸다. 언제부터 내렸던 거지. 은하는 비에 맞지 않고 잘 들어갔을까. 또 비를 맞고 있는 건 아니겠지. 여러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은하, 라고 말하며 나는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은하를 생각하며 어떤 느낌으로 은하의 이미지를 되새겨야하는 것일까. 정말 은하는 어떤 아이었지? 그런 생각이 들었고 지금 와서 그런 생각을 해봤자…, 하고 생각해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우리 집을 찾아왔던 날 이후로 은하는 매일 같이 나를 찾아왔다. 어쩌면 내가 아니라 누나를 찾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건 상관없이 나와 누나는 은하를 기꺼이 맞았다. 은하를 이상한 애라고 말했지만 실은 누나도 이상한 사람이었으니 잘 맞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누나는 이상하리만치 레몬 향에 집착했다. 레몬 향 핸드크림과 레몬 향 립밤, 레몬 향 물티슈, 레몬 향 방향제와 섬유탈취제를 썼다. 누나의 방에 들어가면 정말 레몬 향에 압도되어 질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마 은하는 모르겠지만 누나가 은하를 마음에 들어 했던 것도 은하가 누나에게서 나는 레몬 향이 좋다고 말해서였을 것이다. 누나가 은하를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해서 누나의 외출패턴이 바뀐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은하는 항상 오자마자 언니는? 하고 내게 물었다.

은하의 목적이 무엇이었든 와서 하는 일이라곤 나와 등을 맞대고 있는 것이었다. 은하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음악을 듣지 않았다. 귀가 문제라고 했다. 어느 날 왼쪽 귀의 청력이 갑작스레 나빠졌는데, 이후로 소리를 들으면 누군가 오른쪽에서 속삭이는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는 더 해. 그래서 싫어. 대신 은하는 책을 읽거나 그도 아니라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내 이름은 아빠가 지어준 거야. 은하처럼 예쁜 별들을 많이 가지라고. 나는 유치해서 싫어. 라던가, 학교로 돌아가지 말 걸 그랬어. 한 번 나가려고 하니까 더 해. 라는 식이었다. 그마저도 질릴 때쯤이면 은하는 누나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왔다.

언니는 언제 오실까?

몰라. 잘 안 들어오는 거 너도 알잖아.

고삼이시니까. 공부하느라 바쁘신 걸까?

그렇겠지.

고삼 되기 싫다.

이쯤 되면 은하에 대한 불만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얘는 왜 이렇게 싫다는 말을 자주 하는 거지? 왜 이렇게 누나에 대해 궁금해 하는 거지? 하지만 그렇다고 실없이 반복되는 은하와의 대화들이 싫다는 건 아니었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나는 은근히 은하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족을 제외하면 대화상대라곤 은하밖에 없었고 나는 타인과의 대화에 굶주려 있었으니까. 학교를 다니지 않는단 건 그런 것이었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는 그랬다. 은하의 처지도 나와 썩 다른 것 같아 보이진 않았지만 언젠가 은하에게 왜 우리 집에 오는 것이냐고 괜히 물은 적 있었다. 은하는 그냥 오는 거지, 하고 대답했다. 그냥은 은하가 싫다는 말 다음으로 많이 하는 말이었다. 뭐가 또 그냥일까. 새삼 은하가 참 쉽게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기를 느껴 고개를 들었다. 발코니의 열린 창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여름의 바람이라기엔 너무나 차가웠다. 나는 카디건의 단추를 여미며 창문을 닫기 위해 발코니 쪽으로 갔다. 거실을 가로지르는데 무언가 발에 차여 내려다보니 은하가 읽다 두고 간 책이었다. 바람을 맞은 책의 페이지가 저절로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다말고 책이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어가지 않도록 집어 들었다. 구태여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왠지 그래야할 것 같았다. 책을 소파 위에 던져놓고 발코니로 나가 창문을 닫았다. 바닥이 축축했다. 덩달아 젖은 내 발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문득 욕조 가득 뜨거운 물을 채워 목욕을 하고 싶었다. 목욕을 하는 내내 어디선가 못 박는 소리가 들렸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니 누나가 거실에 있었다. 누나는 교복차림으로 서서 한 손에는 리모컨을 쥐고 남은 손으론 자신의 턱을 만지며 TV를 보았다. 앉아서 보지 않고 왜 서 있느냐고 물으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런 건 왠지 아버지나 할 법한 말 같았으니까. 누나를 지나쳐 방으로 가려는데 뜻밖에도 누나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내일도 춥다네, 하는 날씨 이야기였다. 날씨 이야기로 시작한 누나의 말은 가끔 외출도 하라는 말로 끝맺어졌다. 이거야말로 아버지가 할 것 같은 말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누나가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우스웠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웃는 대신 그래, 대답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어쩐지 내 방에서 레몬향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은하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옷을 입고 침대에 누우니 언뜻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우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은하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그건 은하와 나 사이에서 쌓아온 규칙 비슷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다투거나 어색한 일이 생기더라도 그 주의 주말이 끝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하는 것. 관계를 유지하는 데 꽤 잘 먹히는 규칙이었고 은하나 나나 그에 대해 말한 적 없지만 의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의심이 들었다. 은하가 규칙을 깨고 오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사실 규칙이랄 것도 없이 나 혼자 생각하고 의식하고 있는 일인지도 모르잖아.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리고 잠에 들려고 눈을 감았지만 쉽지 않았다. 기다렸다는 듯 사라진 시야의 자리로 고민들이 형상화되어 치고 들어왔다. 여러 상황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생각이 거듭될수록 은하가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돌연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다가오는 발소리가 없었으므로 누나란 걸 알 수 있었다. 평소엔 그렇지 않았지만 걸을 때의 누나는 꼭 유령 같았다. 소리도, 몸의 흔들림도 없이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내일은 나가서 함께 점심을 먹자.

문 너머에서 누나가 말했다. 느닷없는 제안에 거절할까 고민했지만 누나는 내 의사를 듣지 않겠다는 듯 의도적으로 발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나는 머리맡에 있던 휴대전화를 들어 날짜를 확인했다. 오늘은 금요일이었다. 부재중 전화나 문자는 없었다.

 

잘 어울려?

누나가 물었다. 질문의 의도가 궁금할 정도로 누나가 입은 옷들은 무난했다. 오히려 안 어울리는 사람이 없을 듯한 스니커즈와 청바지, 흰색 티셔츠, 그리고 재킷이었으니까. 나는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 웬일로 사복을 입은 것이냐고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게 누나가 사복을 입는 일은 거의 없었다. 처음 교복을 맞출 때부터 세 벌을 사서는 외출할 일이 생기면 명찰을 달지 않은 교복을 입곤 했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랐던 광경이었으니 그러려니, 생각하며 살아왔다.

곧 교복도 못 입으니까. 그런데 역시 불편하네.

대답을 한 누나는 곧바로 집을 나섰다. 나는 서둘러 신발을 꿰어 신고 뒤를 따랐다. 누나의 말처럼 추웠고 여전히 비가 내렸다. 그 때문인지 주말임에도 거리에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큰길가로 나와도 마찬가지였다. 텅 빈 거리를 누나가 앞장 서 걸었고 나는 누나의 발목을 바라보며 따라갔다. 걸음을 뗄 때마다 발목의 힘줄이 불거졌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빗물이 튀어 바지의 밑단이 조금씩 젖어가고 있었다. 이윽고 누나는 골목으로 접어들더니 꽤 깊숙한 곳에 있는 음식점을 가리키며 그곳에서 밥을 먹을 거라고 했다. 나는 별 의미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밥이야 한 끼 때우면 그만 아닌가.

가까이서 보니 음식점은 나름 신경 써서 꾸며져 있었다. 외벽은 연한 파란색으로 페인트칠 되어 있었고 작은 창으로 보이는 내부도 그럴듯했다. 입구 근처에 세워진 작은 칠판에는 추천메뉴가 적혀 있었다. 스테이크와 감자튀김을 주로 파는 곳 같았다. 우리는 차양 아래에 서서 우산을 털고 안으로 들어섰다. 누나는 입구에 멈춰 잠시 안을 둘러보더니 곧 손을 들어 누군가를 향해 인사했다. 나는 누나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보았다. 은하가 사각형 테이블의 한 면을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누나를 바라보며 웃던 은하의 표정이 나와 눈을 마주치자 퉁명스럽게 변했다. 어이가 없다고 생각하며 누나를 바라보았지만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은하와 나를 함께 부른 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누나를 따라가 테이블에 앉았다. 기다렸다는 듯 종업원이 메뉴판을 우리 앞에 내밀었다.

오래 기다렸어?

누나가 물었다.

아니요. 기다리는 거 좋아해서 일찍 나와 있었어요.

은하는 기다리는 것을 싫어했다. 어쩐지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그저 은하의 거짓말에 장단을 맞추는 게 좋겠다고 테이블에 비친 조명 바라보며 생각했다.

기다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저 있잖아요.

은하와 누나가 함께 웃었다. 나는 메뉴판을 내려다보았다. 여러 스테이크들이 사진과 함께 나열되어 있었다. 내 눈엔 모두 비슷한 것이라 선택하지 못하고 다만 쭉 훑어보다 눈길이 멈추는 것을 먹기로 했다. 파인애플을 함께 익혀 올린 것이었다. 종업원은 누나와 은하, 내 주문을 받은 뒤 이십 분 정도 걸릴 거라 말하곤 부엌 안으로 사라졌다. 곧 가게 안으로 고기 익는 냄새가 퍼졌다.

나는 은하의 눈치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은하는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대신 누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상황이 꼭 내가 잘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은하와 한참 떠들던 누나가 갑작스레 말을 멈췄다. 나와 은하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너희 싸웠어? 하고 물었다. 아니요. 은하가 대답했고. 안 싸웠어. 내가 동조했다. 누나가 의심스럽다는 듯 우리를 쳐다보느라 한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때마침 음식이 나와 견디기 힘든 침묵과 누나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날이 되게 춥네요.

은하가 중얼거렸다. 화제를 돌리려는 의도가 너무 티 나서 안쓰럽게까지 느껴지는 문장이었다. 나는 해명하거나 다른 말을 하는 대신에 고기를 썰기로 했다. 나이프가 들어갈 때마다 육즙이 흘러나오는 고기는 썩 그럴듯해 보였다. 다 썰어낸 고기를 씹으며 슬쩍 누나를 바라보았다. 누나는 손으로 하는 일을 어려워했다. 손으로 하는 일에는 고작 스테이크를 써는 것도 포함되었다. 반면 은하는 능숙하게 고기를 조각내고는 나처럼 누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나의 고기는 썰린다기보다 뭉개지는 것에 가까웠다. 문득 은하가 웃음을 터뜨렸다. 은하의 웃음소리에 깜짝 놀란 누나가 나이프를 떨어뜨렸고 나는 내 나이프를 건네주며 누나의 눈치를 살폈다. 은하의 웃음이 누나를 기분 나쁘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예상과 다르게 누나는 은하가 왜 웃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아무튼 웃음이 터질 타이밍은 아니었으니까.

날씨가 웃겨서요. 꼭 겨울 같지 않나요?

한참을 웃은 후에야 은하는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러다 여름이 오지 않는 게 아닌가 모르겠어요. 정말 여름이 오지 않으면 어떡하죠?

은하의 말에 누나는 손을 멈추고 잠시 은하를 바라보았다. 그것도 좋을 것 같아. 말하고 다시 고기를 뭉개기 시작했다. 밥을 먹으면서 무슨 이런 대화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괜히 대화에 끼어들지는 않았다.

고기와 함께 나온 라임에이드를 마시며 조명이 왜 이렇게 어두울까, 생각하는데 또 다시 나이프를 떨어트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은하 쪽이었다. 은하는 놀란 표정을 하고 굳어 있었다. 눈이 내려요. 더듬거리며 말했다. 창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은 빗물 뿐이었다. 은하가 또 실없는 거짓말을 했다는 걸 깨달을 때쯤, 은하가 웃기 시작했다. 바보 같다고 생각하며 몸을 되돌렸다. 누나는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은하가 웃음을 멈출 때까지 그 자세 그대로였다.

이런 장난은 재미없다. 은하야.

말하고 나서야 누나는 고개를 되돌리고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화난 것처럼 보였다. 어느 부분에서 누나의 기분이 나빠진 건지 짐작할 수 없었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이따금 당혹스러움이 묻어나는 은하의 시선을 느꼈지만 나도 아는 것이 없었으므로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누나는 나와 은하의 몫까지 함께 계산했다. 누나가 제안한 식사는 누나가 계산하는 것이었다. 그건 은하에게도 마찬가지일까.

언니, 잘 먹었어요.

은하가 말했다.

그래, 대답한 누나는 우산을 펴며 친구와 약속이 있어 이만 가보겠다 말하고 홀로 걸어갔다. 은하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멀어져 가는 누나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젠가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생각하며 우산을 펼쳤다. 그래도 풀이 죽은 은하의 모습을 보니 안쓰럽다는 마음이 안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저께의 일을 생각하면 먼저 말을 거는 게 껄끄럽기도 했다. 갈게, 말하고 집을 향해 걸었다. 걸으며 누나에게 보낼 잘 먹었다는 문자를 쓰고 있는데 발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았다. 은하가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은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소파로 가 앉고는 내게 물었다.

몰라.

말해봐. 동생이니까 알 거 아니야.

정말 몰라.

내 말에 은하는 소파 위로 엎어졌다. 으, 으, 소리를 내더니 이런 상황은 싫어, 하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물을 마시며 은하를 쳐다보았다. 물을 다 마신 후 새 컵을 꺼내 물을 채웠다.

그래도 이번에는 꽤 재미있었어.

나는 물을 건네주며 은하에게 말했다. 바람이 불어 발코니 쪽을 바라보니 분명 닫았던 창문이 열려 있었다. 여름이니까. 그냥 열어두기로 했다. 은하가 물을 건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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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하는 동물, 규정당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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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하는 동물, 규정당하는 인간

<3인칭> 꼬마비

 

인간을 ‘규정하는 동물’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끝없이 무언가를 규정하고 정립하고자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이다. 권종원의 말처럼 이미 규정된 무언가와 “다른 것은 틀린 것”이다. 그리고 ‘틀린 것’은 두 가지 의미에서 두려운 것이 된다. 1) 미지(未知)를 두려워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수렵시절을 살던 우리의 오랜 조상들은 두려워함으로서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 우리의 유전자에는 이미 미지, 그러니까 ‘아직 규정되지 않은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감각이 깊게 새겨져 있는 것이다. 2) 언제든지 ‘옳은 것’과 ‘틀린 것’의 위치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규정되지 않는 무언가’(틀린 것)가 규정되는 순간 앞서 ‘규정된 무언가’(옳은 것)는 새로운 규정을 거치거나 폐기된다. 그 순간 ‘틀린 것’은 ‘옳은 것’이 되고 ‘옳은 것’은 ‘틀린 것’이 된다. 물론 둘 모두 ‘옳은 것’이 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새로운 규정의 단계를 거치며 이전에 있던 표준은 위협을 느끼고 실제로도 상처 입는다. 부분적으로나마 폐기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옳은 것’이 될 순 없다. 따라서 인간은 스스로를 ‘옳은 것’으로 규정하는 순간 ‘틀린 것’이 될 가능성으로 내던져진다. 불안한 인간은 예민하다. 인간이 그토록 ‘다른 것’을 배척하려드는 이유이다.

 

이런 모습을 가장 많이 보이는 사람은 당연 권종원이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굳게 믿고 있는 인물이다. 일본의 공항에서 (날 리가 없는)간장 냄새를 맡으며 인천공항에선 (마찬가지로 날 리가 없는)김치냄새가 나는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그런 모습들은 노조기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가장 먼저 노조기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도 그렇다. 그는 타인에게 설명하듯 자신과 노조기의 관계를 말하는데, 학창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한다는 말을 서두로 한다. 그는 둘의 과거를 설명하며 “그런 일이 일상다반사”인 “시절”이라거나 “암묵적인 룰” 같은 단어들을 사용해 의도적이든 아니든 자신은 규정된 사회의 안쪽에, 노조기는 바깥쪽에 둔다. 그리곤 “그나저나 너도 참, 고딩 때도 그러더니 지금도 여전하네.” 말하는 식으로 노조기를 공격하지만 도리어 돌아오는 “너야말로 여전하다.”는 노조기의 말에 불편함을 느낀다. 끝에 가서 스스로에게 ‘김치냄새’를 맡지만 그건 자기반성이나 자아성찰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잘 숨겨둔 김치봉투에 구멍이 나 냄새를 들키고 말았다는 부끄러움과, 봉투에 구멍이 난 상황에 대한 분함이 아닐까. 그마저도 타국인 일본이 아니었다면 맡을 수 없는 냄새였을 것이다. 그러나 노조기가 규정하지 않는 인물이라던가, 표준을 전복시키는 인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노조기는 다수에 포함된 소수, 혹은 이미 규정된 소수다. 스스로를 전혀 의심하지 않고도 자신이 ‘옳음’을 믿을 수 있는 위치이다. 본질적으론 권종원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표준에 의심이 들도록 상황을 전개시키는 인물은 누구인가. 바로 나카지마 후미히메와 수정(수진)이다. 후미히메는 베트남과 일본, 한국의 피가 섞인 혼혈이고 수정은 흔히 말하는 ‘업소여성’이다. 이들은 규정되어 사회에 속하는 대신 사회로부터 대상화된다. 하지만 그런 지점에서 “우리도 입으로 밥 먹어요.”라는 수정의 말은 힘을 갖는다. 모든 규정과 대상화 이전에 인간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수정의 이 말은 울림이 있다. 이 울림에 이끌려 노조기는 스스로를 바꾸려고, 후미히메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말은 노조기-후미히메 관계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노조기의 “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녀가 AV배우라는 걸 나중에 알아서.” 이 말에 ‘(성적)대상화는 나쁘고 (피해자로)규정하는 건 괜찮은가?’하고 직접 묻는 것이다. 만약 노조기가 ‘몰카’라고 착각하지 않았다면, 그가 후미히메를 우연히 본 것이 AV가 아닌 증명사진이었다면 그는 후미히메를 위해 일본까지 왔을까? 이런 한계 속에서 노조기-후미히메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 한계를 극복한 것이 노조기-수정의 관계일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수정이 규정하지 않는 인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도 마찬가지로 오타쿠들을 하나의 개체처럼 다루며 그들을 구경한다.

 

하지만 사실 이야기 속에서 누군가를 규정할만한 힘을 가진 인물은 없다. 처음에 말했듯 인간을 ‘규정하는 동물’이라고 부른다면 개인은 ‘규정당하는 인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개인은 스스로를 규정할 힘조차 갖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개인의 규정이 힘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규정하는 건 사회다. 바로 3인칭 시점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 독자들이다. 작가는 극중에서 서술자를 적절히 바꾸며 그 사실을 상기시킨다. 권종원이 서술을 맡아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동안은 ‘다른 성별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부족한 인물이 등장’한다는 경고문이 가리키는 인물이 노조기라고 독자들은 착각했다. 그러나 권종원의 서술이 끝나는 순간 실은 권종원을 가리키는 말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앞서 권종원이 노조기를 규정했던 말들은 힘을 잃게 된다. 독자가 생각(규정)하는 표준과 권종원은 다르(다고 믿)기 때문이다. 불안한 인간의 불안한 믿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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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완전한 사랑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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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완전한 사랑의 언어

<스펙트럼 분석기> 도국

 

 

사랑은 안타깝게도 누군가를 오해하는 일일 것이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해가 불가능할 때 우리는 차라리 오해해버린다. 감정이 관련된 일에서 특히 더 그런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건 우리가 고작 언어에 기대어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감정 앞에서 언어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사랑’한다고 말해도 거기에 ‘사랑’은 없다. ‘사랑’이라는 모양의 문자가, 공기의 울림이 있을 뿐이다. 연인에게 끊임없이 사랑하느냐고 물어 사랑을 확인받고도 또 되묻는 것은 비단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때의 달콤한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도 진심인지 의심이 들고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도 마찬가지. 그러나 말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다면 어떨까. 도국의 <스펙트럼 분석기>다.

 

희동은 헤어디자이너다. 그의 말을 빌려 헤어디자이너를 정의해보자면, 여자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다. 이것만 보면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뿐만은 아니다. ‘손님에게 아낌없이 칭찬해주고, 따뜻한 손길로 빗어주고, 고작 20분이지만 아름다움과 함께 즐거움도 드리는 엔터테이너’다. ‘엔터테이너’라고 했지만 이건 오히려 연인을 닮았다. 희동의 바람기는 직업병일지도 모르겠다. 반면 나비는 정반대의 인물로 그려진다. 사랑에 인색하다. 어쩌면 사랑이 나비에게 인색하다. 타인에게 자신의 머리를 맡겨본 적도 없어 희동이 머리를 감겨주자 버둥거리며 온몸으로 거부감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러나 몸에 힘을 빼고 희동의 손길을 느끼기 시작하자 ‘기분 좋음’을 전혀 숨기지 못하고 여과 없이 겉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마지막 인물, 그저 그런 사랑이야기를 벗어나게 만든 관찰자인 ‘우리들’이다(독자의 시선이기도 하다). ‘우리들’을 어떤 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극중에서는 전지전능한 존재로 보인다. 나비의 목소리를 희동과 함께 듣는다. 희동을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며 희동과 나비가 어디에 있던 그들을 볼 수 있다. 심지어는 희동이 자신의 ‘이상함’을 느끼고 제령의식을 받는 도중에도 ‘우리들’은 그걸 본다. 그러나 극중에서 의지를 가지고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거나 직접 다른 인물과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다. 그저 보고, 이따금 희동과 대화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둘의 관계를 방해하기는 충분했다. 아무리 타인의 시선이 피사체의 내부에서 새로운 감정으로 변모하는 것이라 해도, ‘시선을 보내는 것’ 자체를 무시할 순 없다. 아마 희동이 스스로를 이상하게 느낀 것은 자신의 시선이 ‘우리들’에게 닿아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시선이 자신을 겨누고 있어서일 것이다. 본인은 몰랐다 해도 말이다. 시선의 수만큼 오해가 생긴다. 작가는 ‘우리들’이라는 인물을 통해 독자를 작품 속의 직접적인 관찰자로 내세우며 그걸 다시 강조한다. 그와 동시에 드러나는 오해가 하나 더 있다. 사랑이 오로지 1대1 관계라는 오해. 그러나 그건 불가능하다. 심지어 모두가 죽고 단 둘이 남았다 해도 희동이 느끼는 시선은 여전할 것이다. 이것은 희동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 또한 사회에서 벗어나도 예컨대 ‘인간적’이라는 시선을 느껴 인간적으로 행동하려 노력하고 말 것이니까.

 

나비 또한 희동과 비슷한 과정을 겪는다. 목소리를 되찾은 후, 자신이 퍼플래빗임을 선언하고 여배우가 되어 많은 사랑을 받지만 그들이 보내는 사랑과 시선은 앞서 말했듯, 오해와 규정일 뿐이다. 그 과정에서 나비는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닌 ‘들어주는’ 희동이 아니면 안 된다고 느낀다. 물론 이 또한 아직 언어를 통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더 이상 나비의 곁에 희동은 없다. 사과를 하고 싶어도 사과를 들어줄 상대가 없는 것이다. 희동의 집으로 찾아가지만 그의 달력은 5월에 멈춰져 있다. 나비가 희동을 떠난 달이다. 나비는 결심한다. 희동이 언제 어디에 있던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듯 그가 언제 어디에 있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살 것이라고. 그건 사랑을 당당하게 돌려받으라는 희동의 말에 대한 대답일 것이다. 나비는 희동과의 추억으로 무대를 가꾸는 코미디언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기어이 희동은 한 줄기의 빛으로 나비를 발견한다. 자신이 보고 싶던 나비의 삶으로 살고 있는 간나비를. 희동은 ‘당신이 웃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웃어 보인다. 나비도 자신과 똑같이 생각할 것을 알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나비에게도 희동은 한 줄기의 빛이 되었다. 이제 둘에게 대화는 필요 없다. 나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희동이 ‘듣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이다. 그러나 ‘우리’는 듣지 못 한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둘을 보는 ‘우리들’의 시선 또한 끝나는 것은 당연하다. 둘의 대화는 이미 완벽하니까, 끼어들 자리란 있을 수 없다.

 

많은 독자들에게 이 작품의 서사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그래야한다. 그게 작가의 의도였을 테니까. 나 같아도 그렇게 썼을 것이다. 따라서 스토리에 관한 이야기는 최대한 접어두었다.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 또한 예의가 아니다. 이것은 희동과 나비의 이야기이지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이해하려 할수록 오해로 가득 차게 된다. 설령 (애초에 불가능 하겠지만)엘리베이터의 문을 비집고 들어가 둘을 관찰하고 마음껏 오해한다고 해도 둘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그들의 관계에서 타자는 이제 완벽한 이방인이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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