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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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인을 하고, 수화물을 부치고, 엄마 아빠와 인사를 하니, 어느새 공항에 혼자 남겨졌습니다.

 

정신을 차리니 또 비행기 안이더군요.

 

나는 여행이 낯선 사람은 아니지만, 홀로 된다는 사실은 퍽 낯설었습니다. 자동출입국 심사를 통과하고, 게이트를 통과하는 내내 말할 사람이 없었기에 두근거리는 기분을 홀로 삭여야 했습니다. 공항이 참 넓구나, 다시 한 번 실감했습니다.

 

이 여행이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수능을 정확히 일주일 앞둔 목요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나는 갑작스런 아빠의 여행 제안에 역시나 갑작스럽게, 그리고 충동적으로 대답했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과 같이, 약간의 나른함에 취한 채로요. 비행기를 12시간이나 타야하고, 오래 머물러야 하고, 무엇보다 혼자 가야했지만, 수능이 아직 끝나지 않았던 그 상황에서는 무엇이든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아빠는 그날로 비행기 티켓을 끊었습니다. 12월31일 오후 2시 비행기로요.

 

그리고 나는 지금 여기 있습니다. 머나먼 이국,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나라에요.

 

비행기는 12시간 내내 기류로 인해 흔들렸고, 나는 내가 얼마나 의존적인 사람인지 깨달았습니다. 나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 잦은 전학으로 인해 나는 그리움이 나의 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적응을 위해선 과거의 향수에 젖어 있어서만은 안 된다는 사실일 일찍이 파악했습니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나는 무서웠습니다.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겁을 먹었습니다. 꼭 흔들림 자체라기보다는, 내가 혼자라는 사실과, 앞으로도 얼마간 혼자로 남아 있을 거라는 그 사실이 두려웠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은 없지만 곁에 있을 사람은 필요했던 것입니다. 나는 참 이기적인 인간이지요. 그리움 없이 외로움을 타는 그런 사람.

 

공항에 내려 입국심사를 마치고 짐을 챙겨 공항을 나와 아빠의 지인 분들을 만나 그분들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집의 3층인 제 방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여행을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다른 나라에서의 나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나에게 길들여졌던 단어와 문장들이, 새로이 재구성되어 다른 방식으로 출력되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여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한국은 어떤가요. 내가 글을 올리는 이 순간, 이곳과 달리 한국은 아침이겠지요. 여전히 아파트들이 높게 서 있겠지요. 한글이 쓰인 간판들이 상가마다 널려 있겠죠. 그 당연한 사실이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마치 지금 쓰고 있는 글처럼, 8년 전 한국 땅을 밟던 그 순간처럼, 참으로 멀고도 아득합니다.

 

한국은 어떤가요. 나는 조금 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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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에 썼고, 그때에 맞춰서 올리려 하긴 했는데 정신이 없어서 이제사 올리네요…연초에 어울리는 글은 아니지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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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퇴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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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그것이 그가 뱉은 마지막 말이었다.
그는 구겨진 양복의 소매 끝을 잡아당기며 어깨를 펴려 했지만, 전화 안내 음처럼 기계적이고 유창한 옆 사람들의 언변에 더욱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면접관들은 시선을 그의 어깨 이상으로 두지 않았다. 그의 표정이나 얼굴은 관심 밖이라는 듯, 제품설명서를 읽는 것처럼 무심하게 서류들을 들춰댈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냐는 상투적인 질문에 그는 잠시 고민했다. 그전에 떨어졌던 수차례 면접에서 에둘러나마 털어놓았던 진심은 이미 바스러진 지 오래였다. 그는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것이 그가 뱉은 마지막 말이었다.

 

집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는 구태여 불을 켜 불행한 현실을 더 자세하게 보고 싶지 않았다. 방 안에는 물건들이 잡다하게 널린 채 아우성을 쳤고, 그는 지형구조에 익숙해진 굳은살 박힌 발로 뚜벅뚜벅 침대를 향해 걸어갔다. 침대는 얼어붙어 있었다. 그는 마치 시체 보관소에 냉동된 시체처럼 침대 위에 반듯이 누웠다. 그리곤 곧바로 잠들었다. 여느 불면증 환자와는 달리, 그는 자신의 삶에 미련이 없었기에 자학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다.
꿈에서 그는 노파를 만났다. 노파는 그의 친할머니였다. 치매 끼가 있던 노파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의 머리채를 잡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노파의 고함은 피라니아처럼 그의 귀를 파먹기 시작했고, 그는 휘청거리는 몸과는 반대로 묘한 균형을 느꼈다. 세월이 만들어낸 익숙한 불편함. 한순간 노파의 몸은 마치 구멍 난 풍선처럼 점점 쭈그러들기 시작하더니, 마침내는 뱀의 허물처럼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렸다. 땍땍거리는 노파의 입만이 허공에서 휘청거리며 고함을 질러댔다. 잿빛 입술에 누런 치아가 맞부딪쳤다. 더운 입김과 누린내가 풍겼다. 그는 이 공기의 파열이 마치 유리잔을 깨듯 자신을 부술까 두려웠다. 갈색으로 비틀어진 노파의 혀가 꿈틀대며 침을 뱉었다.
그는 잠에서 깨어났다. 노파의 장례식이 있은 지 꼭 한 달 만이었다.

 

노파의 죽음은 필연적이었다. 아니 사실, 모든 이의 죽음은 필연적이다. 폐지를 줍다 경사길에서 꼬꾸라진 노파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장례는 노파의 삶만큼이나 단조롭게 치러졌다. 그는 눈을 끔뻑대며 노파의 영정사진을 바라보았고, 몇몇 사람들과 악수를 했다. 그는 그 이후 악수를 했던 몇몇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려 했지만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그 이후로는 아무도 그의 머리채를 잡지 않았고, 아무도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는 잠에서 덜깬 눈에 번진 지난밤 꿈에서 노파의 고함을 찾아냈고, 잊어버렸던 사람의 목소리를 겨우 떠올릴 수 있었다. 목구멍 뒤에 가래가 끓듯이 여러 단어가 부글거렸다. 그는 그것을 어떻게 내뱉어야 할지 몰라 참으로 난감했다. 혀를 들어올렸다. 까끌까끌한 입천장이 느껴졌다. 그는 천천히 입을 벌렸다. 차가운 공기가 입안에 퍼졌고, 그의 혀는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는 또다시 면접에 떨어졌고, 그의 집에 있는 물건 중 가장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는 이러한 비효율성에 대한 어떠한 구체적인 의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부글거리는 냄비 속에 라면사리를 던져 넣을 때마다, 녹이 슨 수도꼭지를 천천히 틀어 올릴 때마다, 이들의 움직임이 가져오는 생산성에 숨이 막혔다. 바퀴벌레 한 마리가 싱크대 위로 기어올랐고, 그는 반쯤 감긴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날 밤 그의 꿈에 또 다시 노파가 나왔다. 노파는 더 이상 그의 머리채를 잡지도, 고함을 지르지도 않았다. 그저 오래전 초등학교 앞에서 보던 수평아리처럼 희미한 눈동자로 그를 바라봤다. 소름 끼치는 고요함. 그는 그 침묵을 견딜 수 없었다. 그는 노파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마치 노파가 그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다. 몸 안에 불이 붙어 내장을 태우기 시작했다. 그는 이것을 몸 밖으로 내뱉어야만 했다. 입을 벌렸지만 꺽꺽대는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목 안에서 뜨거운 열기가 역류했다. 그의 혀가 물컹한 아이스크림처럼 녹기 시작했다. 무슨 말이라도 내뱉어야 했다. 그는 캑캑대며 입을 벌렸다 닫았다. 허나 끄끝내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는 차갑게 식어버렸다. 입안에는 완벽한 공백만이 남아있었다.

 

그는 꿈에서 혀를 잃어버렸다. 그 이후로 그는 다시는 입을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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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라 해봤자 문장다듬기밖에 못하는데 그나마 별로 크게 바뀐 것 같지도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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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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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날 찾아왔다. 오늘도, 꽃을 든 채로.

 

“제발 날 내버려둬요. 그냥 가란 말이에요. 왜 자꾸 찾아와서 귀찮게 하는 거예요?”

 

나는 그녀를 노려보았다. 노려본다는 행위 자체가 이제는 영 어색하고 와 닫지 않았지만, 그래도 오래간만에 생긴 강렬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해 그녀를 노려보았다. 날씨는 화창했고, 무덤 위에 풀들은 푸릇푸릇했다. 그녀는 공동묘지와 어울리지 않게 머리를 새빨갛게 염색하고 알록달록한 반소매 티셔츠에 하늘색 멜빵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아이스크림을(그것도 삼단씩이나 쌓아 올린.) 한입 베어 물고는 쾌활하게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요. 죽지 마라니까.”

 

나는 그 말에 자존심이 상해서 무덤 위에 털썩 주저앉아 그녀를 계속해서 노려보았다. 털썩 이라고 해봐야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고, 잔디가 눌리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기분이 나쁜 걸 표현할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다.

 

나는 죽었다. 그것도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으깨진 끔찍한 모습으로

 

내가 자살을 결심한 경위에 대해 구구절절하게 다 설명할 생각은 없다. 뭐, 다들 한 번쯤 하는 그렇고 그런 생각들 말이다. 살기 싫고,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쓸모없는 인간 같고,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는, 그런 흔한 푸념 끝에 거의 매일 같이 올라가던 옥상에서 뛰어내린 것뿐이다. 사실 뛰어내린 그 날이 다른 날보다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서 푸념 끝에 계단을 터덜터덜 내려와 근처 편의점에서 점심을 해결하던 평소와 다르게 행동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용기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이번 달 월세를 이미 냈기 때문에, 죽어도 다음 달에나 죽지 싶었다. 나는 그저 내 우울함을 확인하고 싶어서, 죽고 싶은 처량함을 만끽하고 싶어서 22층 꼭대기에서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보았을 뿐이었다.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나는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생판 모르는 여자가, 엘리베이터나 복도에서 한 번 스쳐 지나간 적도 없는 여자가 말을 걸었다. 나는 태연하게 아래 경치를 구경하고 있었다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렇기에는 난간 밑으로 몸을 너무 내밀고 있었고, 또 여자가 너무 갑자기 말을 거는 통에 당황스러워서 대답할 수 없었다. 내 표정이 심상치 않은 걸 느꼈는지 여자는 무슨 말을 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선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순간, 그 순간 알 수 없는 짜증이 몰려왔다. 여자의 눈에 담겨있는 그 동정의 눈빛, 그리고 그 얄팍한 동정 안에 들어있을 한심함. 나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옥상구경을 이제 그만 끝내고 싶었다. 원래 죽기를 결심하려면 오랜 숙고가 필요하지만, 그 결심 이후에는 참 단순하고 멍청해지나 보다.

 

나는 별다른 미련이나 고민 없이 몸을 숙였다. 한여름이라 뜨겁게 달궈진 난간에 피부가 쓸리고 미지근한 바람이 약하게 느껴졌다. 죽는다. 이대로 죽는구나, 무게중심이 밑으로 쏠리기 직전 모든 것이 멈춘 듯한 기분과 함께 롤러코스터의 맨 꼭대기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비슷하긴 했다. 다시는 올라올 수 없는 롤러코스터라는 점만 빼면.

 

“죽지 마요!”

 

모든 것이 멈춘 느낌 사이로 여자의 고함이 뚫고 지나갔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듯 그 순간 내 몸이 빠르게 내려가기 시작했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땐(사실 눈 이라는 건 더 이상 없었지만.) 모든 게 끝나있었다. 내 몸은 흰 천으로 덮여있었고, 아마도 그 여자가 불렀을 경찰차와 몇몇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 기분에 내 몸(몸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을 내려다보았다. 반투명하고 흐릿한 형태만 남았을 뿐이었다. 귀신이 된 건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나는 여자를 발견했다.

 

여자의 표정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긴, 눈앞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그런데 기분이 나쁜 것 이상의 당황이라던가, 충격이라던가 하는 느낌은 없어 보였다. 지나치게 담담하달까? 게다가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하지만, 여자의 눈이 허공이 아니라 나를 주시하는 것 같았다. 원래 죽은 뒤에는 다른 사람 눈에 안 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 혹시 아직 살아있는 건가? 이 모든 게 꿈인가?

 

생각을 정리할 새도 없이 여자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나는 어쩔 줄 몰라 가만히 서 있었고, 여자는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고 빠르게 걸었다. 이러다 부딪히겠는걸, 하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한 순간, 여자는 나를 아무렇지도 않게 통과해버렸다. 처음엔 여자가 나를 보지 못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녀는 나를 통과하며 작지만 확실하게 중얼거렸다.

 

“죽지 말라고 말했잖아요. 왜 그랬어요.”

 

여자는 말을 마치고 뒤를 돌아 나를 다시 쳐다보았다. 이번엔 확실히 알았다. 여자는 날 볼 수 있다는 걸, 여자의 눈에는 약간의 원망이 섞여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어쩐지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렸지만 내게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 앞에서 보란 듯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여자가 얄미웠다. 무덤에 놓인 새빨간 장미를 보자 기분이 더 나빠졌다.

 

“국화나 안개꽃이면 몰라도 장미가 뭐에요. 누가 보면 프러포즈라도 하는 줄 알겠어요.”

 

여자의 해맑은 얼굴에는 내 투덜거림이 조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꽃 좋아하지도 않잖아요. 내가 보려고 산 거에요. 그쪽 보라고 산 게 아니라.”

 

말을 하며 여자는 꽃잎을 매만졌다. 바스락 소리가 들렸지만 장미 향은 전혀 나지 않았다. 평일이라 그런지 공동묘지에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여자는 기지개를 켜고 말했다.

 

“나를 h이라고 불러요. 난 그쪽 유령 씨라고 부를게요. 다른 유령들한테도 다 그렇게 했으니까.”

 

“그러죠. 뭐, h씨, 이제 난 어떻게 되는 거죠? 설마 이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는 건 아니겠죠?”

 

“그렇다면 이곳은 유령들로 바글바글해서 발 디딜 틈도 없었을 건데요 뭐, 보통 한 이 삼 일 지나면 점점 기억을 잃고 사라져요. 뭔가 아쉽거나 살아있을 때 못해서 한이 된 게 있으면 계속 남아있게 되겠지만요.”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식상할 수가 있죠? 마치 좋은 대학을 나오면 좋은 회사에 취직한다는 소리 같네요. 죽으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h는 내 말에 조금 씁쓸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사는 게, 아니, 사는 거나 죽는 거나 다 그렇죠. 뭐, 잘 지내는 거 확인했으니 됐어요. 이게 내가 유령들에게 지키는 최소한의 예의니까요. 다음에 또 올게요. 그때까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면…그때 다시 이야기해요.”

 

“예의 지킬 필요 없으니까 이제 그만 와요.”

 

나는 단호하게 말하려 했지만 어쩐지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h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h는 손을 흔들며 점점 멀어져 작은 점이 되었다. 나는 h가 아예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무덤 위에 앉아 오랫동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h가 사라지자 묘지는 침묵에 잠겼다. 가끔 철문 너머로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나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조금 외로운 것 같았다가 영 낯간지러운 감정이라고 생각하고는 피식, 하고 웃었다. 평소 같았으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바람이 느껴졌을 테지만,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나는 무덤 위에 잠시 누워 있다가 잠이 들었다. 잠이라는 게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생각을 멈추고 어둠에 들어갔으니 잠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그 뒤로 며칠 동안 비가 내렸다. 나는 감기에 걸릴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왠지 몸이 으슬으슬한 것 같아서 몸을 움츠렸다. 젠장, 그럴 리가 없잖아. 애초에 움츠릴 몸도 없고, 으슬으슬할 것도 없는데. 뭐가 아쉽고, 뭐가 억울해서 여기에서 혼자 이러고 있는 거지? 바람이 나를 집어삼킬 듯 휘몰아쳤지만,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묘지 근처에 커다란 은행나무들이 가지를 흔들며 나뭇잎을 떨어뜨렸다. 가지들이 맞부딪치며 스산한 소리를 냈다. 날이 어두워 묘지는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짧게 자란 풀들을 듬성듬성 날리는 무덤 외에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난 외로웠다. 참 같잖게도.

 

혼자 생활하는 거야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 때문에 유난 떨 일도 아니었다. 아니, 유난을 떤다 해도 나 혼자 외로워하고 풀기를 반복하니 무뎌져서, 어차피 아무소용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굳이 티 내지 않았다. 근데 왜, 또 이런 감정이 생겨버리는 걸까, 단칸방에서 무덤으로 공간이 바뀌어서 적응이 안 되는 건가, 아니면 죽고 나서 더 예민해진 건가, 대체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천둥소리가 마치 나를 심판하는 누군가의 꾸지람 같았다. 나는 감정이 격해져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천둥소리에 묻혀서인지, 혼자 지내면서 말을 거의 하지 않아서인지, 내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고 어딘가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풍경들이 소용돌이쳤다. 몸이 없어서인지 고정된 느낌이 없어서 자꾸 불안했다. 나는 묘지를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더 이상 걷지 않고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모든 게 희미해져 가는 와중에 단 하나만은 소름 끼치도록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는 죽었다.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정신이 흐릿해졌다. 나는 내가 누구였는지조차 잊어버린 것 같았다. 이제 끝났다. 다 끝나버렸다.

 

그 순간 h가 떠오른 건 우연이었을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죽은 뒤에 처음 보았던, 나를 안타까워하던 h의 표정이 떠올랐다. 무언가를 말했던 것 같기도 했는데,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유령 씨? 내 말 들려요?”

 

정신을 차리자 h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것을 겨우 가늠할 뿐, 시력이 거의 사라진 것 같았다. 목소리 또한 목욕탕에서처럼 부정확했다. 나는 온 힘을 쥐어짜내 겨우 대답했다.

 

“내가 이곳에 온 지 얼마나 됐죠?”

“3일째에요. 미안해요, 요 며칠 날씨가 안 좋아서.”

 

일주일은 지난 것 같았는데, 나는 주위를 살펴보았다. 정확히 알아볼 순 없었지만, 적어도 비는 그친 것 같았다. 살아 있을 때였으면 감각이 사라져 가는 것에 덜컥 겁을 먹었을 테지만 이제는 그런 감정조차 닳아 없어진 기분이었다. 나는 술에 취한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유령 씨, 지금 꼭 담요를 뒤집어쓴 것처럼 보여요. 실루엣만 희미하게.”

 

h의 표정도, 목소리에 담긴 감정도 알 수 없었다. 무덤가에 보이는 빨간 뭉치는 아마 장미인 듯싶었다. 나는 꽃잎을 만지려다 대체 어느 부분이 손인지 구분할 수가 없어서 그만두었다. h는 이 상황이 익숙할 터였다. 내 이전에도, 내 이후에도, 수많은 유령을 만나고 떠나보내겠지.

 

“h씨, 말해줘요. 어쩌다 유령을 볼 수 있게 된 거죠?”

 

잠깐의 침묵으로 보아 h는 당황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는지, 천천히 말을 꺼냈다.

 

“내 이야기를 궁금해한 유령은 처음이네요. 보통은 자기의 억울한 사연을 이야기하는 걸 더 좋아했는데 말이에요.”

 

h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 다시 말을 잠시 멈췄다. h의 목소리가 멈추면, 내게는 정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h가 떠나버렸다고 생각할 때쯤, 천천히, 벌이 윙윙거리는 것처럼 말소리가 들려왔다.

 

“14살 때, 가족끼리 놀러 갔다가 교통사고가 났어요. 자세한 과정은 생략할게요. 죽어보셨으니까 아시겠죠. 어쨌든 가족이 다 죽고 혼자 남았어요. 그래서 뭐, 따라가려고, 유언까지 다 쓰고목 메달아 죽으려고 했어요.”

 

잘 들리지 않아서 그런지, h의 목소리는 조금도 떨리거나 주춤거림 없이 담담하고 평온했다.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평온해졌다. 마치 자장가를 듣는 기분이었다.

 

“근데, 목을 메단 채 버둥거리는 그 짧은 순간에 갑자기 가족들 얼굴이 보이더라고요. 처음엔 그냥 환영이겠거니 싶었는데, 조금 뿌옇고 불투명할 뿐 확실히 내 가족들이었어요. 게다가 금붕어처럼 입도 뻥긋댔는데, 처음이라 그랬는지 목소리가 들리진 않았어요. 하지만 그 다급한 표정만큼은, 오히려 흐릿한 다른 것들과 대비돼서 더 선명하게 보이더라고요.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그 순간, 밧줄이 끊어지고 전 바닥에 떨어졌어요. 머리가 어지러워서 구토하고 쓰러져서 정신을 잃었는데, 깨어나니까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 뭐에요.”

 

말소리가 멈추고 갑자기 비누 거품이 생기는 것 같은 보글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한참이 지나야 그것이 h의 웃음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라도 감동받았다거나 하면 유감스럽지만, 전혀 그런 느낌은 아니에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오싹한걸요. 가족을 다시 만난 반가움보다는 무섭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그땐 어리기도 했고 갑작스럽기도 했으니까요. 그 이후로, 조금씩 유령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대화까지 하게 된 건 6년 전부터예요. 가족들을 다시 만난 적….”

 

h의 목소리는 점점 흐릿해지더니 마지막에는 아예 들리지 않았다. 모든 감각이 사라져버리는 줄 만 알았는데, 어느새 점점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살아있을 때 느끼던 육체의 차가움이 아니었다. 거대한 죽음이 내 영혼의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고 있었다. 전에는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공포였다.

 

“h씨…나는…나…나는.”

 

그러나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내 의식은 끓어오른 물처럼 순식간에 증발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
“유령 씨? 유령 씨!”

 

나는 멀어져가는 불투명한 덩어리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그것이 점점 흐려지다 공기 중에 흩어질 때까지, 나는 사람이었던 형체가 정확히 어느 순간에 의식을 잃는지 알 수 없었기에 차마 일어나지 못하고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6년이라,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유령이 사라질 때만큼은 매번 마음이 약해지곤 했다. 나는 흐릿해진 눈가를 비볐다. 울기는, 같잖게. 내가 뭐라고, 생판 모르는 남의 죽음에 슬퍼할 자격이나 있는 건가?

 

아직도 딱히 왜 내가 이렇게 유령들을 쫓아다니는지 모르겠다. 간혹 몇 달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유령들은, 그들을 도와서 억울한 사정을 해결해 주기도 했다. 그것은 어떤 감정일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우월감? 연민? 아니면 책임감? 복잡한 감정은 어느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컵에 놓인 아이스크림이 녹아서 질척해졌다. 날이 저물어가면서 바람이 불었다. 공기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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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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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봐!

 

k의 목소리에서 바다 냄새가 난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가 간지럽다. 짭짤하다. 태양은 건조하고 파도는 축축하다. 난 슬리퍼를 벗고 맨발로 모래를 밟다가 고개를 돌려 내 그림자를 본다. 그림자는 내 키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11시 10분?

 

내 대답에 k는 시원하게 웃는다. 이게 다 k의 쓸데없는 놀이 때문이다. 해변의 시계라니, 별 이상한 이름의 바닷가에 놀러 와서는 시계 없이 시간을 맞춰보잔다. 이름대로, 이곳은 뭔가 시간을 알려줄 만한 게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하나도 재미없어 k, 시계 없이 이 정도 맞추는 것도 대단한 거라고

 

갈매기 소리에 묻혀 k의 웃음소리가 옅어진다. k는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춘다.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바다 거품에 발을 담근다.

 

-재미없는 건 너야

 

두세 걸음 떨어진 곳에서 k가 나를 보며 말한다. 뜨겁다. 피부다 쓰리다. 저 멀리 새파란 바닷물과 그보단 조금 옅은 하늘, 그리고 아직 남아있는 미소를 머금고 나를 보는 k의 새빨간 곱슬머리가 대조적이다. k는 숨이 찬지 헉헉거리며 나를 향해 웃는다. 그 끝이 써서 나는 고개를 돌린다.

 

-가자, 더워

 

k가 나를 끌어당긴다. 출렁, 물결을 따라 몸이 흔들린다. 입속으로 짠 바닷물이 들어온다. 깔깔, k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구역질이 난다. 버둥거리는 팔이 내 팔이던가, 심장은 터질 것 같은데 마음은 고요하다. 죽음이 두려운가, k가 두려운가, 아니면 둘 다인가, 나는 알 수가 없다.

 

-우웩

 

축축한 몸, 따뜻한 모래, 뜨거운 태양. 미지근한 바닷물이 머리에서 뚝뚝 떨어진다. 구토를 한다. 침이 짜다. 눈에서 흐르는 것이 눈물인지 바닷물인지, 온몸을 덜덜 떨다가 정신을 잃는다.

 

-바다엔 오랜만이지?

 

k의 환영이 아른거린다.

 

-그러게 자주 놀러 오지, 재미없는 회사원 놀이 그만하고

 

k가 웃는다.

 

눈을 뜬다. 저 멀리 파도소리가 들린다.

 

k는 늘 바다에 오고 싶어 했다. k가 죽은 지 7년이나 되었구나, 내 망가진 시계가 천천히 돌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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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은 무서움이고

무서움은 두려움이고

두려움은 겁이다

 

그 뜻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지
척추에 아로새겨진 이 통증은
어느 사전에도 나와있지 않았다.

 

겁은 무서움이고
무서움은 두려움이고
두려움은 겁이다

 

이불 속 웅크린 발끝에
소리없이 찾아와
이유도 끝도 시작도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이

 

눈물도 숨도 생각도
모두 입속에 삼킨 채로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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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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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진실했던 날들을 세어봐
그게 네 진짜 나이라는 걸
너는 기억해야 할 거야

 

네가 깨진 유리컵을 등 뒤로 숨길 때
심부름 끝나고 잔돈을 주머니에 넣을 때
친구의 샤프를 가방 안에 챙길 때

 

너는 단 한 순간도 자라지 않았다는걸
너는 기억해야 할 거야

 

하지만 있지
먼지쌓인 날들이 많아 질수록
너는 그 모든 걸 기억하지 않아

 

그래서 아무도 자기의 나이를 알지 못한 채
적당히 거짓되게 살고 있다는걸

 

모두가 기억해야 하지만
사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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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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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을 다듬는 게 서투른 사람은
진심을 말할 때도 어딘가 거짓말 같아 보여

 

떫은맛 많이 나는 나의 입꼬리엔
아직 덜 익은 매실처럼 옅은 독이 발려있어

 

어떻게 웃어야 내 웃음에 대해서
오롯이 이해하고 표현 할 수 있는 걸까

 

거울을 보다보면 가끔 가면조차 없는
투명하고 어색한 얼굴을 마주하게 될 때가 있어

 

진실을 말하기 위해 얼굴 근육을 단련하고
조금은 복잡한 감정을 가져야 할 것 같아

 

왜나면 진심은 방법없이 그 자체로
나타내기에는 너무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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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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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었다. 슬퍼서가 아니라 그냥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시험이 끝난 교실은 시끄러웠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앉아있었다. 아이들은 각자 핸드폰을 하고 나는 책을 읽었다. 문제가 될 만한 상항이 아니었다. 아니, 그래서 문제가 되었다.

 

나는 책으로 얼굴을 가렸다.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울컥하며 뜨거운 덩어리가 목구멍에서 소리 없이 넘어갔다. 나는 그 자리에서 끅끅대며 울어버리고 싶은 걸 참으려 갖은 애를 다 썼다. 당황스러웠다. 이유가 뭐지? 나는 끊임없이 눈을 깜빡이며 진정하려 애썼다. 교실은 평화로웠다. 숨이 막혔다.

 

침착해, 지금 울면 미친놈 취급받을 거야, 그러길 바라는 건 아니겠지?

 

아니야, 나는 스스로에게 대답하며 어떻게 해야 진정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뜨거운 홍차, 혼자 있기, 책 읽기(구체적으로 상황에 맞는 책은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일 거야, 라고 생각했다.) 젠장, 집에 가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고, 오늘은 체험학습을 가는 날이라 오후 4시는 돼야 끝난단 말이야! 절망감에 빠지려는 찰나 그제야 학교에 가기 전 아무렇게나 집어 든 책이 두 권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로써는 유일한 해결책이었기 때문에 나는 망설임 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별로 좋지 못한 선택이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숨을 쉬기 힘들었다. 책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자신에게 잘못한 인물에게 맹목적으로 사과를 요구하고 있었다. 역겨웠다. 모두가 사과를 요구하기만 한다면, 도대체 사과는 누가 하냔 말이야. 아무도 자신을 선량한 피해자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은 결백한 약자고 타인은 악랄한 강자이다. 나는 실제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사람조차 이러한 생각만을 품고 있을까 봐 무서웠다. 그리고 혐오스러웠다.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다.

 

체험학습이 있는 날이었다. 장소이동과 점심 모두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나는 장소이동방법과 점심 메뉴를 친구들과 상의하며 내내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시답지 않은 이야기로 낄낄거리면서도, 나는 기침하는 척하며 눈물을 삼켜야 했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배가 아팠다.

 

체험학습으로 간 곳에서 들은 강의의 내용은 간단했다. 꿈을 캐스팅 당해야 한다는 것과, 남들에게 져주며 함께 가라는 것. 나는 유명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예시로 설명하는 그 사람에게 캐스팅은 수천만의 사람이 경쟁, 즉, 남을 짓밟고 올라가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 사람의 요지는 결국 얼렁뚱땅 말을 한 뒤, 어쨌든 청년들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알아냈고, 강의를 듣는 맨 앞자리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무시, 나는 그를 철저히 무시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심적으로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혼자 남았다는 해방감은 들지 않았다. 눈물은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나는 고요한 집안에서조차 울 수 없었다. 벗어놓은 옷을 정리하고 티비를 봤다. 웃기는 장면이 나오면 신경질적으로 웃었다. 나는 울 수도, 홍차를 마실 수도 없었다.

 

그다음 날, 나는 먹었던 모든 것을 게워냈다. 점심 약속으로 고기 뷔페에 가기로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나는 화장실에 처박혀 토하고 또 토했다. 마치 그렇게 구역질을 계속하다 보면, 시험이 끝나고 거의 매일 같이했던 수많은 외식을 다 지워버릴 수 있을 것처럼. 머리가 아팠고, 반사적으로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나는 내 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여전히 펑펑 울어버릴 수는 없었다. 왜 울고 싶은지, 왜 울고 싶은데 울지 못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도서관에 가서 카프카의 책을 빌렸다. 집에 오는 내내 꺽꺽거리면서 헛구역질을 해댔다.

 

제가 출구란 말을 무슨 뜻으로 쓰는지 똑바로 이해받지 못할까 걱정이 됩니다. 저는 이 말을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빈틈없는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저는 일부러 자유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방을 향해 열려 있는 자유라는 저 위대한 감정을 뜻하는 게 아니거든요.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나는 헐떡거리며 책을 읽었다. 그제야 내 상황이 조금 이해가 됐다. 나는 시험이 끝나는 동시에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니라 다만 출구 찾은 것뿐이었다. 12년 동안의 학교생활을 통해 나는 자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자유가 아니라 출구를 찾기 위해 교화됐을 뿐이었다. 나는 조련 된 원숭이 패터처럼 원숭이 시절, 그러니까 자유롭던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을뿐더러, 그것을 제대로 기억조차 할 수 없다. 내가 학교를 떠난다 한들, 자유 따위는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시끌벅적하게 웃고 떠드는 아이들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출구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구멍을 통해 나가면 잃어버린 것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면서 모순적으로 나를 잃어버린 것이다. 출구를 향해 좁은 구멍에 몸을 욱여넣으며, 나는 변해버린 것이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나뿐이다. 나는 이것을 무의식적으로 깨달아 버린 것이다. 속이 쓰렸다.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그리하여 저는 배웠습니다, 여러분, 아, 배워야 한다면 배우는 법, 출구를 원한다면 배웁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배우는 법입니다. 회초리로 스스로를 감독하고, 지극히 조그만 저항만 있어도 제 살을 짓찧었습니다. 원숭이 본성은 둘둘 뭉쳐져 데굴데굴 쏜살같이 제게서 빠져나가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저의 첫 스승 자신이 그것으로 하여 거의 원숭이처럼 되어버려, 곧 수업을 포기하고 정신병원으로 보내져야 했습니다.

 

나는 무서웠다. 누군가를 미치게 할 만한 어떤 본성이 내게도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비워내며 나는 계속 구역질을 했다. 모든 것이 역겨웠다. 나는 반쯤 조련 된 동물의 어리둥절해진 미혹(迷惑)을 눈길에 담고 있었다. 어지러웠다. 메스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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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소닉-음악으로 세상을 뒤흔든 악동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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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소닉>은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대형 밴드 오아시스의 초기 3년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이 영화는 1124일에 개봉한 영화이지만 상영관이 많지 않고 상영 일수도 길지 않기 때문에 여러 번 감상 후에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따라서 세부적인 내용에 있어 원 내용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감안해달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러나 먼 곳으로 지하철을 갈아타면서까지 이 영화를 보러 갈 정도로, 나는 이 영화에 대해 간절했고, 한 장면 한 장면이 소중했다. <슈퍼소닉>을 보며 나는 그전까지는 몰랐던 오아시스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되었다.

 

3년 만에 신인에서 록계의 거인으로 거듭난 밴드죠.

 

<슈퍼소닉> 예고편의 첫 서두이다. 이를 보면 이 영화가 마치 오아시스의 성공담에 대해 찬양의 일색을 보낼 것만 같다. 그러나 실상 영화의 내용은 그렇지 않다. <슈퍼소닉>은 오히려 이들의 실패, 좌충우돌에 대해 더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결성된 후 3년 내내 전혀 얻지 못한 관심부터, 음원 녹음할 당시 라이브의 느낌을 살리지 못해 여러 번 녹음을 뒤엎으며 고심하는 순간까지. 마치 하루아침에 성공한 것 같은 이 밴드의 이면에는 수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공식은 너무나도 유명해 식상할 지경이지만. 오아시스에 대해서는 노력 없이 한순간에 성공한 밴드라는 편견이 강했기 때문에, 겉모습 뒤에 숨겨진 그들의 땀방울을 처음으로 알게 되어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또한, 오아시스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는 갤러거 형제의 성향 차이에 대해서도 좀 더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노엘 갤러거는, 자신과 자신의 동생인 리암 갤러거 사이의 관계에 대해 개와 고양이를 예시로 들어 설명한다.

 

리암은 개 같고 나는 고양이 같아. 고양이는 독립적인 동물이야. 세상에 관심이 없지. 매정한 새끼들. 개는 반대야. “놀아줘 놀아줘” “제발 공 던져줘늘 상대가 필요해. 자기 천성은 못 바꾸는 거지

 

영화는 반복적으로 형제의 성향 차이를 강조하며 이 둘의 갈등과, 해체할 수밖에 없었던(오아시스는 2009년 노엘 갤러거의 탈퇴로 해체했다.) 상황에 대해 설명한다. 술에 취해 카지노 판을 뒤엎고 경찰들을 뒤에 달고 다니며 뜀박질을 하는 리암 갤러거는, ‘락앤롤밴드는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것뿐만이 아니라 행동에 있어서도 락앤롤스러워야 한다고 말하는 반면, 노엘 갤러거는 너는 배에서 사고나 치다가 쫓겨나는 게 락 앤 롤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라고 이야기하며 이에 대해 비판한다. 이들의 음악이 듣고 싶어 해체를 원망스럽게 생각하다가도, 영화의 진행과 동시에 뼛속까지 달랐던 두 형제의 갈등은 불가피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여전히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었지만, 어쩌면 이러한 성향 차이를 극복하고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해야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처럼 오아시스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내용도 많았지만, 내가 익숙했던, 기존의 모습 역시 사실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영화 내내, 오아시스의 멤버들은 정말 끊임없이 사고를 치고 다닌다. 특히 마약에 대해서는 거의 영화 내용의 절반 정도를 할애하는 것 같았다. 처음 <슈퍼소닉>의 개봉이 확정됐을 때 나는 부제로 달린 ‘음악으로 세상을 뒤흔든 악동 밴드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악동이라는 단어가 마치 어린아이 취급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화면 속의 그들이 낄낄거리며 여기저기 사고를 치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는, 정말 철없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악동이라는 수식어가 이보다 그들을 더 잘 설명할 수 없는 단어임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영화 중간중간에 나오는 익숙한 노래들 역시 귀를 즐겁게 해 주었다. 오아시스를 모르고 영화를 보게 된 사람이라도, 음악이 나오는 순간만큼은 그들의 매력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내 멋대로 단정지어버릴 정도로 좋았다. 휴대폰에 다운 받아 이어폰을 낀 채 거리를 걸을 때에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영화관의 생생한 음향효과는 내게 간접적으로 90년대 라이브 현장에 있는 듯한 기분을 선사해 주었다. 그와 동시에, 영화관에서 음원을 틀었을 뿐인데도 이렇게나 벅찬데, 실제로 라이브를 들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 역시 느끼게 해주었다. 영화관 전체를 가득 채우는 드럼과 기타 소리, 그리고 리암 갤러거의 시원한 보컬은 매우 훌륭했다. 그중에서도 <rock n roll star>라는 곡이 나오는 도중 다른 악기들이 연주를 멈추고 리암 갤러거의 거칠고 생생한 보컬이 단독으로 흘러나오는 부분과, 원테이크로 <champagne supernova>라는 곡의 음원 녹음을 마치는 부분은 전성기 시절 리암 갤러거의 목소리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주었다.

 

그렇다면 <슈퍼소닉>이 단지 기존의 오아시스의 팬들만을 위한 영화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슈퍼소닉>은 오아시스의 음악과 삶을 통해 강렬하고 분명한 몇 가지 교훈을 전달한다. 이는 오아시스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것을 후회하지는 않아

 

<슈퍼소닉>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대사 중 하나이다. 이들은 인생이 단 한 번 밖에 없다는 것과,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머리로만 알뿐 실제로 그것을 체감하지 못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따라서 오아시스의 사건사고는, 단순히 철없는 행동으로만 치부될 수 없다. 그것은 이들이 한 번 뿐인 인생을 얼마나 최선을 다해 즐겼는지에 대해 알려준다. 단순히 술과 마약을 하며 깽판을 치는 것만이 아니라, 갤러거 형제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 불화로 인한 잦은 멤버 교체 등, 안 좋은 일들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는 역시 동일하다. 그것은 이미 지나간 일일뿐이고,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 것이다. 거침없는 음악과 삶, 오아시스는 <슈퍼소닉>을 통해 제대로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알려준다.

 

또한 영화는 말미로 갈수록, 그러니까 이들이 무명시절을 거쳐 점점 명성을 얻어 갈수록 겪게 되는 문제에 대해 지적한다. 그것은 바로 음악이 점점 상업화되고 비즈니스로 변질되는 것이다. 순수하게 음악이 즐거워 시작했던 밴드는, 서류더미에 파묻혀 그 본질을 잃어버리게 된다. 사소한 일에도 언성을 높이며 싸움이 끊이지 않다가도 음악을 위해서는 일심동체가 되었던 그들은, 이제는 음악을 만들기 위한 수많은 시스템 때문에 더 이상 즐겁게 노래하는 밴드가 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 지쳐 오아시스를 떠나버리는 사람들 역시 여럿 등장한다. 이는 거대한 자본주의 체계에 대한 씁쓸함을 느끼게 해줌과 동시에 변해가는 상황 속에서 처음의 본질을 잃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영화 말미에 나오는 웸블리 공연은 무려 영국 인구의 4퍼센트가 티켓팅을 시도한 엄청난 공연이었다. 노엘 갤러거는 인터넷 세대 이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불러 모은 것은 오아시스가 마지막 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확실히, 오아시스는 인터넷 세대 이전의, 그러니까 90년대의 마지막 대형 밴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의 감성과 파급력을 가진 밴드가 다시는 나올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자 조금은 씁쓸해졌다. <슈퍼소닉>은 무명이었던 작은 밴드의 성공을 다룰 뿐만이 아니라, 이들의 종말, 그러니까 90년대라는 하나의 시대의 끝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영화의 본질적인 메시지는 지나간 시대에 대한 후회는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어쩌면 나는 90년대 라이브를 듣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슈퍼소닉>이라는 영화를 영화관에서 감상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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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kyll-내면의 악을 마주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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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박사와 하이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쓴 이 소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는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상세히 다룸으로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고, 2차 창작물 역시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오늘은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리메이크작 중 하나인 6부작 영국 드라마 <지킬>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지킬>의 주인공 닥터 톰 잭맨은 일정한 주기, 혹은 특정한 자극에 반응하여 의식을 잃고 하이드라는 전혀 다른 인물이 된다. 그는 변화 후 자신의 행동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이 새로운 존재와 녹음기에 녹음된 음성으로 소통하며, 기이한 공생을 시작 한다.

 

이중인격을 다룬 다른 창작물과 달리 톰 잭맨은 단순히 정신적 변화 뿐 만이 아니라 신체적 변화 역시 겪는다. 갈색이었던 눈동자와 머리카락은 검어지고, 머리카락의 라인, 턱선, 키나 몸무게, 어깨 넓이 등에서 미세한 변화를 보인다. 또한 톰 잭맨과 달리 하이드는 월등한 힘과 체력을 가졌으며, 신체나이도 톰 잭맨 보다 젊다.
따라서 톰 잭맨과 하이드는, 아주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달라 보이는 생김새로 하나의 신체에서 생활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 새로운 인물 하이드가 매우 충동적이고 본능에 충실해서 언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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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잭맨 일 때의 갈색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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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일 때의 검은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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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잭맨 일 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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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일 때의 모습)

 

시간이 지나면서 톰 잭맨은 점점 스스로를 통제하기 어려워지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규칙하게 하이드로 변화하기 시작하자, 실험소를 만들고 자신과 하이드를 동시에 지켜봐 줄 정신과 간호사 캐서린 라이머를 고용한다. 캐서린 라이머는 양 쪽 모두를 동등하게 대우하며, 톰 잭맨과 하이드 사이에서 균형을 지킨 채 연구를 시작한다.

 

하이드가 범죄 행위를 저지르면 톰 잭맨이 자수하고, 톰 잭맨이 치료법을 연구하면 하이드가 자살해 버린다. 이 둘은 이렇게 서로를 협박하고 대립하면서 계속 살아나갈 수밖에 없었다. 하이드가 술을 마시고 밤새 떠돌아다니면, 정신을 차린 톰 잭맨이 숙취에 괴로워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식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자꾸만 수상한 행동을 하는 남편을 감시하기 위해 톰 잭맨의 아내 클레어는 사설탐정을 고용하고, 캐서린 라이머의 도움으로 자신이 감시당했다는 사실을 알아낸 톰 잭맨은 사설탐정에게 찾아가 그들이 찍어놓은 사진에서 하이드의 흔적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나 톰 잭맨은 오래 전 부터 자신을 따라다니던 검정 밴의 정체가 실은 사설탐정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아내가 고용한 탐정 외에도 자신을 감시하는 또 다른 존재가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한편, 하이드로 변한 그에게 정체불명의 조직이 찾아와 그들이 하이드를 소유한 주인이라는 황당한 주장하기 시작한다. 톰 잭맨은 그를 따라다니던 사설탐정, 의문의 조직, 그를 연구하는 캐서린 라이머와 속고 속이는 관계를 이어가며, 점점 더 괴물같아지는 하이드와 그를 둘러싼 거대한 음모의 실체를 파헤치게 된다. 과연 그는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사랑하는 아내와 쌍둥이 아들들이 기다리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호빗에 출연했던 제임스 네스빗이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 보기 시작한 이 드라마는, 어느새 정신없이 몰입하며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주연 배우의 소름 돋는 1인 2역이었다. 제임스 네스빗, 그는 말투, 표정, 걸음걸이, 움직임 등 세세한 부분에서 끈질기게 상반된 이 두 인물을 연기 해 냈다. 정신과 간호사 캐서린 라이머에게 웃기는 하냐는 질문을 받는 심각하고 진지한 톰 잭맨에 비해 하이드는 항상 어린아이 같은 웃음을 잃지 않는다. 또한 하이드는 계산적이고 의도한 악함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아니라, 단순히 어른의 욕구를 가진 충동적인 어린아이 같이 행동한다. 따라서 하이드는 칼을 들고서도 자동차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4살짜리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그 표정이 어찌나 순수한지 처음엔 두려움을 느끼며 몸을 움츠리다가도 서서히 그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적응하게 되고, 색다른 매력을 느끼게 된다. 제임스 네스빗은 이러한 ‘순수하고 정제되지 않은 악함’을 매우 잘 표현 해냈다. 반대로 진지하고 가족적이며 끝까지 선함을 유지하려는 톰 잭맨 이라는 역할에서 역시 그에 준하는 연기를 해 냈는데, 톰 잭맨이 숨기고 있던 그의 가족을 하이드가 발견한 후 자신을 톰 잭맨의 사촌인 '빌리' 라고 속이며 톰 잭맨의 가족들에게 접근하자, 정신을 차린 톰 잭맨이 녹음기를 향해 “그들은 너의 가족이 아니야!”를 외치며 눈물을 삼키는 모습은 가족에 대한 그의 사랑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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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들고 아이처럼 웃는 하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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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지키려 하이드에게 경고하는 톰 잭맨)

 

배우의 연기 못지않게 감탄하면서 본 점은 이 작품이 아주 매력적으로 원작을 재해석 해냈다는 것이었다. 이 드라마는, <지킬박사와 하이드>라는 소설 속 지킬 박사가 실존인물이었다는 가정 하에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빅토리아 시대에 실존했던 지킬 박사와 현대에서 동일한 질병을 가지고 살아가는 톰 잭맨 사이엔 과연 어떤 연결고리가 있었던 것일까? 게다가 지킬 박사에게는 가족도 후손도 없었다.<지킬>에서는 반복적인 질문을 통해 보는 이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이야기를 뒤튼다. 톰 잭맨은 지킬 박사와 너무나도 흡사한 외모로 그가 지킬 박사의 후손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지킬 박사에게는 가족도 후손도 없었다. 과연 어떻게 된 것일까? 톰 잭맨은 지킬 박사의 복제 인간일까? 지킬 박사가 죽지 않고 살아있던 걸까? 혹은 이 둘은 전혀 관련 없는, 그저 동일한 질병을 가진 닮은 사람일 뿐일까?

 

혼란스러움을 정리하기도 전에 드라마는 쏜살같이 흘러간다. 그 안에는 선악에 대한 심층적인 고민도, ‘나’라는 존재에 대한 모호성도, 과학의 발전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탐욕과 무자비함에 물든 인간들에 대한 고찰도 들어있다. 이는 단순히 중첩된 사건을 추리하는 즐거움을 넘어서서, 여러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1. 하이드, 그는 과연 악마였을까?

 

-불이 켜져 있고 카메라가 켜져 있는 한 넌 안전해, 불이 꺼지면…넌 내 밥이야.

 

위 대사는 하이드와 정신과 간호사 캐서린 라이머의 대화 중 일부이다. 이는 하이드를 잘 표현해 주는 대사 중 하나이다. 밥, 하이드는 모든 인간을 자신의 밥 또는 장난감 정도로 취급하며, 사자를 때려죽일 정도의 강력한 신체능력으로(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그는 극중에서 실제로 사자를 죽이고 라이언 킹의 주제가를 흥얼거렸다.)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 인간에게 잔인한 폭력을 서슴지 않고 행한다. 그의 잔인함과 사이코패스같은 행동들은 보는 이들을 소름 돋게 한다. 그러나 ‘하이드’ 라는 존재의 시작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그의 본질은 매우 놀랍게도 ‘사랑’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사랑과 사이코패스, 언뜻 보면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 두 감정의 연결성을 <지킬>은 설득력 있게 풀어간다. 톰 잭맨에게 처음으로 하이드가 등장했던 순간은 그의 아내가 불량배들에게 습격을 당한 순간이었다. 극중 지킬 박사의 이중인격 역시 원작 소설에서처럼 약물복용으로 인한 것이 아닌, 사랑하는 하녀로 인한 것이었다. 톰 잭맨의 어머니는 톰 잭맨의 아내 클레어와의 대화에서 하이드의 존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들은 하이드가 분노라고 생각하지. 증오, 탐욕, 정욕이라고. 하이드는 더 나쁜 거야. 자네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처음 생각한 건 언제인가?

-제 아이를 처음 안은 날이요.

-인간의 가장 오래되고 끔찍한 충동이지, 다른 생명을 희생하고서라도 자기 것을 지키려는 충동, 게다가 우린 그 충동에 아주 멋진 이름을 붙여 줬지 않나? 하이드는 사랑일세, 그리고 사랑은 사이코패스적인 거지.

 

실제로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의 하이드는 후반부를 갈수록 톰 잭맨의 아내와 그의 아이들을 보호하기 시작한다. 그는 살인을 저지를 경우 톰 잭맨이 자수할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망설임 없이 그의 가족들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후반부에서는 수십 발의 총알을 맞는 것 까지 감수한다. 하이드는 어째서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그저,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충실하게 톰 잭맨의 가족을 지켜낼 뿐이다. 초반의 잔인하고 폭력적인 성격은 변함없지만,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그의 처절한 노력은 조금은 짠해 보이기까지 한다.

 

 

2. 톰 잭맨과 하이드, 그들은 과연 어떤 관계일까?

 

하이드는 톰 잭맨을 꾸준하게 ‘대디’, 즉 아빠라고 부른다. 초반에야 하이드가 톰 잭맨의 이름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는 톰 잭맨의 이름을 알고 나서도 꾸준히 톰 잭맨을 아빠라고 부른다. 과연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처음 시작할 당시 <지킬>에서는 그들의 신체적 변화를 강조하며 그 둘이 동일인물이 아님을 강조한다. 하지만 후반으로 내용을 전개 할수록, 톰 잭맨과 하이드 사이에는 무시 할 수 없는 상관관계가 존재했다. 하이드는 분명 폭력적이고 제멋대로 였지만, 그가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거나 반쯤 죽을 정도의 심각한 폭행을 행사 한 것은 모두 톰 잭맨에게 시비를 걸거나 위협을 가한 경우에만 해당했다. 또한 하이드에서 톰 잭맨으로 돌아온 후, 정신을 차린 톰 잭맨이 처음으로 했던 말은 기분이 끝내주게 좋았다는 것이었다. 하이드가 이유 없이 톰 잭맨의 가족들을 지켰듯, 톰 잭맨 역시 하이드의 폭력행위 이후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았다. 이는 이 둘이 어떤 방식으로든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명시하며, 하이드가 어느 외딴 섬이나 우주같이 동떨어진 공간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악마가 아닌, 톰 잭맨의 내면에서 일정한 영향을 받아 탄생한 인물임을 나타낸다.

 

 

3.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과학에 대한 탐욕의 끝은 어디일까?

 

마지막으로 이러한 하이드의 능력을 이용해 인류의 진화를 이륙하려했던 존재들에 대해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앞서 말했다 시피, 톰 잭맨에게는 악마같은 하이드, 그를 쫓는 사설탐정, 정신과 간호사 캐서린 라이머 이외에도 정체모를 의문의 조직이 싸워야 할 대상으로 등장했다. 그들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소설의 지킬박사가 실존한다는 사실을 알아내자 그의 능력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반인륜적인 실험들을 하기 시작했다. 약물로 변화한 소설 속 지킬 박사를 보며 동일한 약물을 개발하려다 12명이나 되는 사람을 죽이기도 했고, 실제 지킬 박사가 약물이 아닌 사랑으로 변화했다는 것을 알고는 지킬 박사와 같은 증상을 지닌 톰 잭맨의 일상, 가족, 직장, 친구 등 모든 것을 조작하고 통제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톰 잭맨 속에 내제되어있는 하이드를 불러내기 위해 톰 잭맨의 아들을 사자 우리에 집어넣기도 하고, 폐쇄공포증이 있는 그를 상자 안에 가둔 채로 기절조차 하지 못하게 전기 충격을 주는 잔인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엄청난 정신적 충격으로 몸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 톰 잭맨, 그러나 그들은 이것을 '인류의 진화'라고 부르며 기뻐했다. 또한 자신들의 행위를 대의를 위한 것이었다고 정당화하며, 그에 따른 희생은 불가피한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초반, 끔찍했던 하이드의 악행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의 광기어린 실험에 묻혀버릴 지경이 되었다. 오히려 수없이 톰 잭맨의 가족을 납치하고 무자비하게 약물을 투여하며 하이드를 불러내는 사람들과, 톰 잭맨의 가족을 지켜내기 위한 하이드의 대립을 통해 하이드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까지 생기게 된다. <지킬> 은 하이드라는 개체를 통해 개인의 내제된 악함과 잔인함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어쩌면 이보다 더 무서운 집단적인 폭력과 과학에 대한 탐욕을 비중 있게 다루어 다양한 ‘악함’에 대해 깊이 있는 탐구를 이루어냈다.

 

비록 다양한 점에서 장점을 가지고 있는 드라마이지만. <지킬>역시 아쉬운 점과 단점이 있다. 몇 가지를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자면 다음과 같다.

 

 

1. 분량의 한계.

 

어쩌면 짧은 분량이 득이 된 것일 수도, 실이 된 것일 수도 있다. 수많은 반전과 다양한 인물의 출현으로 <지킬>은 흡입력 있는 전개와 완성도를 보여줬으나, 다소 설명이 부족하거나 불친절하게 넘어간 부분이 많다. 대표적인 예로 지킬 박사가 하이드로 변화하기 시작한 이유가 사랑하는 하녀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내용이 나올 때, 구체적으로 무슨 상황에서 그러한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초월적인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지킬 박사의 경우 신체적 능력과 인격이 모두 변화한 거의 최초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적어도 <지킬>이라는 드라마 안에서는 말이다.)이에 대한 설명의 생략은 의구심이 들게 한다. 그저 하녀를 사랑했기 때문에 몇 백 년 동안 과학적으로 설명 할 수 없을 정도의 진화를 이루어 냈다는 설정은. 극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뛰어넘어간 것 치고는 너무 비약적이다.

 

 

2. 반전을 위한 무리한 설정

 

톰 잭맨은 지킬 박사의 직계 후손이다. 그러나 지킬 박사에게는 자식이나 가족이 없었다. 그들은 놀랍도록 닮았고 동일한 질병을 앓고 있다. 이러한 관계를 풀어나가기 위해 <지킬>은 하이드를 이용한다. 지킬 박사는 총각으로 죽었지만 하이드는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많은 자식을 낳은 것이다. 그들은 다중인격이나 샴 쌍둥이 같은 불완전한 모습으로 지킬 박사의 증상을 물려받았다. 그 중 유일하게 톰 잭맨 만이 지킬 박사의 증상을 완벽하게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이해 할 만한 수준이다. 그러나 이를 넘어서서 <지킬>은 톰 잭맨의 아내를 지킬 박사가 사랑한 하녀의 유전자를 본뜬 클론으로 만들어 버린다. 톰 잭맨은 분명 지킬 박사의 후손이지만 지킬 박사 그 자신은 아니다. 그가 사랑에 빠지는 대상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러니 굳이, 그의 아내가 복제인간이었다는 과도한 설정이 필요했던 것일까?

 

 

3. 제목의 아쉬움, 아무것도 담지 못한 <지킬>

 

<지킬>, 어찌 보면 영리한 이름 일지도 모른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모티브로 했다는 점이 잘 드러나고, 또한 그것과 완벽히 같은 내용은 아니라는 암시 역시 원작의 제목을 변형함으로서 나타냈다. 그러나 훌륭한 제목이란 주제의식을 담은 제목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킬>의 주인공은 톰 잭맨, 하이드, 혹은 이들을 둘러싼 거대한 ‘악’그 자체이다. 그저 잠깐의 과거회상으로만 등장했다 사라져 버리는 지킬 박사를 제목으로 내세운 것은, 홍보차원에서는 효과적일지 모르나 조금의 아쉬움이 남는다. 차라리 원작의 제목을 그대로 따랐다면, 선과 악을 균형적으로 다룸으로서 괜찮은 제목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지킬>이라는 제목만을 보고나서는 <지킬박사와 하이드>라는 원작 속 지킬박사의 선의에 집중하여 인간의 원초적인 악함과 대항하여 싸우는 지킬의 영웅적인 모습을 집중하여 재해석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따라서 예상과는 너무나도 다른 내용에 처음에는 당황했다. <지킬>은 전체적으로 인간의 ‘악함’에 대해 다루고 있다. 어쩌면 <하이드>라는 제목을 짓는 것이 작품의 주제의식과는 더 부합하는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킬>은 내게 인간의 내면에 대해서 여러 가지 방면으로 생각해 볼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하이드’라는 악마적 본성은 어쩌면 모든 인간에게 남아 있을 지도 모른다. 끔찍하고 비인간적으로 톰 잭맨을 괴롭혔던 과학자들을 보며, 그들 또한 하이드 못지않은 악마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과 톰 잭맨의 차이는 톰 잭맨은 끊임없이 의지를 가지고 하이드를 통제하고 가족과 주변사람들을 지키려 싸웠다는 것이고, 그들은 ‘대의’라는 보기 좋은 명분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악행을 정당화 한 것이다. 내면의 악함을 마주했을 때, 그 끔찍함과 악랄함 앞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6부작짜리 짧은 드라마 <지킬>은 나에게 많은 고민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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