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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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물소리의 기원은 물방울 하나하나의 투신이 파열음을 부서뜨리고 말았을 때에야 시작된다 은백색 상록을 휩쓸고 지나가는 폭포의 세찬 음성은 이를테면 곡비들의 행렬인 것이다 형태가 있는 것들의 앓음은 형태가 없는 것들의 어미가 된다 도시 한 가운데를 스쳐 흐르는 강물의 절규는 오늘도 서슬이 퍼렇다

 

(나는 그 강엔 멍이 들어 푸르다, 라고 쓴다)

 

하나가 하나로, 둘로 쪼개어지는 순간을 아프다고 말하지 않기로 했다 부서지는 물방울들은 비울 것 없는 비움을 깎아내고 무리가 된다 지느러미들을 곧잘 자른다 헤엄칠 수 없는 파편들은 일제히 흐름을 거스르는 방식을 잊는다 일제히 그들은 강의 매서운 아니리를 모국어로 삼는다

 

(손을 집어넣어 보았더니 비명이 손가락을 잘라 먹었다 밀려오는 곡소리를 나는 감히 우리, 라 발음한다)

 

모든 물소리의 언어는 물방울 하나하나의 죽음으로 조율되고 마침내 曲을 노래하는 哭聲의 창법은 순항한다 물방울들의 음색은 일제히 동일해지고 강은 이름을 잃는다 (그러나 강변의 노래는 멎지 않는다) 들여다보면 강물은 더 이상 강물이 아니게 되고 물방울은 물방울이 아니게 되었으나 물살은 흐르며 노래는 아니 멈춘다 나는 우리, 라는 말을 되뇌여본다 잘린 손가락은 아물지 못했다, 아니 깎여 죽어버렸다 그렇게 쓴다

 

멀리서 보면 장관壯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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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와 카카오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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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있는 것만으로 무기武器가 되는 공장 한 채

 

에는 주름진 손을 가진 늙은이들이 조금

 

의 인기척도 없이 하나 둘 쫓겨나가곤 하고, 점점

 

묽어져만 가는 양배추 수프*, 고도를 낮추어 항

 

해하는 늙은이들의 함선

 

음지처럼 찍어낸 초콜릿 한 장에는

 

새까만 콩을 줍는 검은 지문들이 몇 푼 묻어있고

 

어쩐지 사람들을 죽여나가는 공장, 비어있는 것만으로

 

무기가 되는 공장, 지독히 검은, 알 수 없는, 양판소처럼 찍어내는

 

순도를 높이는 쓴맛 같은

 

 

 

*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찰리네 가족이 먹던 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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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異般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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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싹 타들어간 육질의 표면과

해체를 하기 전엔 알 수 없는 속살의 색채가 언제나

일치하지는 않음을

알고 있다

우리는

 

알고(는) 있다

 

(나는 고기를 먹을 수 없어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고기를 먹는 단다

너의 혀끝은 사사로운 방황에 잠시

이정의 감각을 잃었을 뿐이야

 

(단지 세상이 채식주의자들을 벙어리로 만들었을 뿐일 텐데요)

나의 말을 뱉어내는 통로는 식탁 위에서 일순간

목구멍에서 대동맥으로 변이되고

내뱉는 모든 말들은 심장으로 이어져

묵음이 되는데

 

고기를 먹는 게(선홍빛의 진물이 허연 비곗덩어리를 잠식하는 누린내 나는 이형체를 잘라 삼키는 게)

다수의 이치잖아, 그렇지?

 

언제나 나의 말은 식탁 위에서 소음이 되고

접시 위에서 잘게 요리되어 버리는 나의 미뢰는

눈물 대신 육즙을 흘리는 고깃덩어리로 해체되는데

 

(나는 채식주의자예요!)

 

고기를 식음하는 행태는 일반의 동의어

나의 입맛은 이반의 소곤거림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가장 연약한 나의 이명異名의

이명耳鳴을

 

알고 있다

알고(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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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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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어회는 자기가 그만

뼈 있는 생선인 줄로만 알았네

 

오래 꾹꾹 눌러써야만 뼈로 보이는 곡선들이

자신 안에 있는 줄로 알았네

 

뼈가 있었으므로 헤엄칠 수 있으며

뼈마디가 시린 슬픔도

익히 알았겠거니 광어회는 생각했네

 

나는 가장 짠 눈물을 유영하겠어, 광어회는

그만 자신이

바다에 있는 줄만 알았네

 

가라앉음과 부패를 써내린 시들은

읽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읽지 않은 것이었네

 

뼈들이 모두 발라져 속살을 드러낸

광어회의 바다는 그만

수몰하고 말았네

 

쫄깃한 식감으로 죽을 때까지

광어회는 이 지독한 비린내를

바다라고 믿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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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이름을 책꽂이에서 찾았네 우리의 열락(悅樂)은 책갈피에 고스란히 적혀 사랑가의 한 폭을 귀 접고 있었네 다만 나는 그저 이 책을 빌리거나 얻을 수는 있어도 사랑할 수는 없다는 추론을 고이 접어 책장에 되돌려 놓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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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말할 것 같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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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 소식 들었음? 무슨 소식? 미영이 죽었대. 자살이래. 뭐? 무슨 미영? 김미영? 이미영? 박미영? 미쳤냐 박미영은 내 이름이고. 설미영 말이야 10반 음침한 애. 헐 진짜? 걔가 왜? 왜 죽었대? 내가 전지전능한 주님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알음? 근데 대박인 게, 걔 자기네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했는데, 하필이면 밑에 뾰족한 바위 위에 떨어져서 몸이 박살났다더라. 미친… 현장에서 걔네 엄마가 토막난 팔다리 줍고 껴안고 대성통곡하고- 하여튼 난리도 아니었다더라고. 헐… 이게 웬일이야 근데 그래서? 왜 죽었는데? 두 번씩이나 똑같은 질문 하지마셔 내가 어떻게 아냐? 뭐 우리 나이 때 애들 자살 하는 이유야 뻔하지. 성적 비관 학교 폭력 가정 폭력 남친 문제. 나는 학교폭력에 한 표. 솔직히 걔 찐따 같잖아. 그건 아닐걸? 내가 10반에 친한 애들 많은데 걔네들은 왕따 안 한다 그랬음. 그럼 무슨 가정에 마라도 꼈대? 그건 모르지. 성적이야 걔는 원래 꾸준히 낮았다 그랬고… 그럼 남친 문제밖에 안 남았네. 근데 걔가 무슨 남친이 있겠냐? 근데 그건 또 모르는 일이지. 그런 애들이 원래 오히려 더 걸레 같고 그렇잖아. 내 친구가 그러는데 설민영 걔 남자애들이랑 밤늦게까지 붙어다니고 술 마시고 그랬다던데? 헐 진짜? 대박이다- 최근에도 종종 학교 안 나왔고…… 그래서 애들이 걔 임신한 거 아니냐고 수군덕대고 그랬었나 봐. 헐 소름이다 그거 진짜야? 그거야 나는 모르지 내 친구한테 들은 거라니까……

 

미영아, 미영아? 박미영? 왜 답장이 없음? 아 왜 자꾸 불러- 밥 먹던 중이었음. 아 뭐야 뭔데 밥을 두 시간 동안이나 먹어 근데 뭐 먹음? 그냥 맛있는 거. 아 그리고 아까 설미영 얘기 있잖아 걔 남자들이랑 막 자고 술 퍼마시고 그랬다며. 그래서? 아 근데 원주가 그러던데 걔 륜욱이랑도 친했다며. 그래서. 왜, 륜욱이 네가 좋다고 난리도 아니었잖아 개충격 아니냐? 막 륜욱이랑도 자고 그런 거 아냐? 안 잤어. 뭐? 안 잤다니까. 그리고 그 애랑 나랑은 아무 사이도 아냐. …그래? 저번에 막 좋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 애랑 나랑은 아무 사이도 아냐. 그 애랑 나랑은 아무 사이도 아냐. 그 애랑 나랑은 아무 사이도 아냐. 그 애랑 나랑은 아무 사이도- 박미영? 박미영? 미영아? 왜 자꾸 불러? 아니야 너 조금 이상한 거 같아서. 함부로 말해서 미안해 근데 너 아까 뭐 먹었다고 그랬지? 그냥 맛있는 거 먹었다니까- 고기 먹었어, 고기. 그래? 그럼 마지막으로 설미영 얘기 묻겠는데- 야, 그 얘기는 이제 그만하자. 아 미안. 근데 그럼 대신 하나만 물어봐도 돼? 아 뭔데.

 

너 박미영 아니지. 너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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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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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이 되새김질하는 밤의 미사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세상을 이분법으로 나누자, 뼈마디를 얇게 저며 낼 수 있는 칼날 한 뼘

나는 나거나 네 가슴이거나 영혼이거나 몸뚱아리거나 슬픔일지도 모른다는 작은 서사를

심장 깊숙한 동맥 안쪽에 조그맣게 새겨 넣어

 

세상은 식탁보 위에 올려 놔, 조금은 바싹 익혀진 세상의 비좁음들은 소금에 절여

자반이나 찬거리로 쟁여두자 유언을 대필한 해고 통지서 간밤 아내의 흐느낌 같은 것들

 

밤에 먹힌 감정들의 유통기한이 끝나고 일제히 절개되기 시작하는 악몽들

 

별들의 노래가 들리니 내 안의 너를 위한 장송곡 토막 나기 시작하는 밤

아침이 날 예리하게 해체해

 

나의 무덤은 새벽의 허리춤에 기대어 줘

빛이 명멸하면 어둠이 바락 바지춤을 내리고 산란이 전개된다

 

네 안에 착상하는 나

 

뒤틀린 소행성의 주기도문은 외워도 그만 외우지 않아도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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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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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직각삼각형

 

세상의 모서리로 좌천되신 아버지

가끔씩 모서리의 언어로 장문의 악몽을 중얼거리시고

터져버릴 듯 단단히 팽창한 얼굴로, 새빨간 항성의 유언 같은 표정으로

가장자리로 쫓겨난, 핏물이 가장 쓰라리게 배인 가장(家長)의 혓바닥을 울렁거리시는데

마침내 아버지가 직각이 되기를 결심했던 밤

천장과 수직을 이루신 아버지, 덩달아 진자운동을 하는 늙은 발짓과

결국엔 끊어진 올가미 컥컥 솟구쳐오르는 아버지의 거친 호흡

아버지는 그만, 점성이 스며든 고통을 참지 못하고 뱉어내는 데에 여념이 없으신데

아버지의 자리엔 바다가 남았다 소금기가 많았다

 

(초상화 속 아버지의 묘사는 여기서 그만)

 

2. 종이비행기

 

이제 다시 든 붓 그릴 것은 추상화 종이비행기처럼 멀리, 멀리, 어디론가, 숨 막히게 달아나신 아버지 갈피 없는 날개를 다신 듯 다시지 않으신 듯 위태롭게 모습을 숨긴, 아버지, 날개엔 상처가 많아 잘 날아오르지도 못하실 텐데 아버지, 심장엔 부패하는 살점 덩어리를 숨기고 있어 무겁기 그지없으실 텐데 아버지에겐 꼬리깃이 없다 새빨간 압류 딱지로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는 나, 여분의 감정, 종착역은 아버지, 그러나 아버지의 이름은 간 데가 없다

 

 

3. 아버지, 바람

 

아버지가 분다 세상을 스쳐지나 건널목을 건너, 당신 족적을 따라 천천히 돌아오셨다 가루가 된 아버지는 형태가 없다 육신도 없으며 영혼도 없다 산천을 따라 흐르기 시작하는 아버지, 아버지의 묏자리에는 아직 채 날리지 못한 압류 딱지가 새빨간 혀를 놀리고 있는데 바람이 되어 사라지신 아버지, 이제는 태양의 옆구리에 시린 가슴골을 비빌 수 있을까 아버지가 분다 분다는 것은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것 세상은 넓고 나와 엄마 사이의 폭은 좁으므로 아버지의 흔적을 듣는 일은 영원히 없으리라고

 

아버지가 분다 흔적이 분다 아버지의 시취만이 남는다 다만 언젠가 불어 흩어져버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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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좁음이 알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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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을 알 수 없습니다 흉기도 동기도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전달되는 언어들이 불분명합니다 고요한 밤의 암막은 용의자가 아니었습니다

 

 

상흔은 부재(不在)합니다

 

 

그녀의 죽음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우화가 필요했습니다 그녀가 가장 가까이 했던 것은 사각의 학습지 아니면 문제집이었습니다 이를테면 비극을 양산하는 원고같은 것들 어쩌면 그녀는 단단한 모서리에 심장이 긁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건네보았으나 확신은 부재했습니다

 

 

그녀가 부재합니다

 

 

그녀의 하루 일과는 지극히 단순했으므로 사인에서 제외합니다

– 6시 기상

– 7시 반 등교

-10시 하교 후 학원으로 이어지는 족적, 잠결이 허락되는 1시 반

 

 

그녀가 부재합니다

 

 

어느 누군가가 그녀의 사인은 질식사라며 목소리를 높였으나 고성을 들을 군중은 부재했습니다

 

 

그녀의 사인을 알 수 없습니다 그녀가 부재합니다 비좁음의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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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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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고통스럽고 죄스러웠습니다 추악한 밤의 가죽을 뒤집어쓴 악마가 내게 그것을 밀어 넣었습니다 순간 온몸의 외피를 탈피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의식을 먹어치웠습니다 몸뚱이 한 가운데에 구멍이 뚫리는 고통이 핏줄에 실려 온몸으로 퍼졌습니다 내게 펼쳐진 모든 광경은 그저 밤이 장난스레 집필해놓은 악몽의 원고라고 몇 번이고 되뇌었으나 악마의 행위는 멈추어지지 않았습니다 나의 다리 사이에선 붉은 핏줄기가 흘렀고 나의 심장에선 통증이 신음을 내뱉으며 수 천번 살의 섞인 박동을 반복했습니다 나는 몇번이고 혀를 깨물어버리고 싶은 끔찍한 고통과 절망에- 하염없이 몸을 삼키고 마는 무력한 겁들에 그저 눈을 감고 나의 모든 치부를 깎아낸 한 필의 몽당연필로 탈고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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