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태풍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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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는 호우주의보를 보도했다.
 
 
잠가 놓았던 난민들이 쏟아졌다. 철새처럼 무리지어 수근거렸다. 간밤에 301호가 무너져 내렸다고 302호와 303호는 속닥였다. 십자가 위에 걸린 비바람처럼 웅성거렸다
 
 
무너져 내린 길목을 걷느라 어른들은 아이가 되었다. 모두의 무릎이 축축했다. 잃어버린 사람들에게만 보인다는 비벼락은 낯 익은 소문이었다. 다 헤진 야상을 걸치고. 사람들은 자주 주머니 속에서 뒤척거렸다. 가게들은 전부 닫혀 있거나 닫혀 버렸다
 
 
내일은 내일의 태풍이 올 것
아무데나 버려진 바람을 한 움큼 훔치고
길목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으로 훌륭한 소란이었다
 
 
때때로 부슬비가 내리면 나란히 걷던 발자국들은 두려워한다. 갈라진 골목을 한 줄로 걷고 싶어 한다. 전쟁은 누구에게나 입버릇이다. 비상식량처럼 부러진 손톱을 아껴 먹으며. 다만 여전히 비린내가 풍긴다고 말한다. 오늘의 날씨는 흐림이라는 전보다. 먹구름들의 뒤꿈치가 무너진 301호 예수상에 걸렸다
 
 
거꾸로 뒤집힌 교회엔 302호 303호 사람들의 입모양으로 만원이었다. 오늘은 전투적으로 계속된다. 뉴스는 영영永永, 호우주의보를 보도한다. 거리에 고여 가는 불행들에 대해 생각하며. 어제의 폭풍처럼 잠잠한 눈꺼풀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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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소년의 벽난로는 물컹거리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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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아직 예열되지 못한 벽난로
 
식전 빵처럼 차갑게 준비된 거실 속에서 둥글게 부풀어 오르는, 소년은 이불 속에 포장된 일회용품이다. …소년은 아직 예열되지 않은 벽난로, 웅크리는 것만으로도 난쟁이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경직된 책장들 사이에서 발효되는 착각. 간밤에 젖가슴이 돋아나오는 꿈을 꿨어 천장은 부드럽게 녹아내리고 벽지의 눈꺼풀마다 새어나오는 노래는 높아, 높아서 아름답다고 말하는 중독. 간밤의 한낮처럼 꿈들은 너무 빨리 식어버려서, 끈질기게 살아남는 신기루들. 발효는 부패로도 읽을 수 있는데, 곰팡이처럼 번식하는 기다란 머리카락을 소년은 땋지 않았다. 너는 수염을 깎아야 하는 시절, 바짓단을 걷어 올려붙여야만 한다고 굳은 선반이 명령했을 때, 벽장 안에서 익어가는 빨강들은 누구의 유실물인지, 잃어버렸다는 말까지 잃어버리고 나서 소년은 웅크렸다. 웅크림은 변태變態를 잣는 재단사라는 믿음, 빨개질 거라는 희망. 소년은 단지 웅크려, 벽난로의 불씨가 조금 더 다정해질 때, 언젠가는 벽난로마저 잠기게 할 커다란 젖가슴을 얻고 싶다고, 그 순간 단단했던 소년의 벽장은 …웅크린 도형이 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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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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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소년이 파도와 함께 밀려온다 소년의 머리카락이 죽음에 얽혀 밀려온다 밀려온다는 말과 함께 밀려온다 짠맛과 함께 짠 성분이 된다
소년의 이름은 사실 파도였으리라
 
머리에 달린 구멍에서 자꾸만 피가 흐를 때
섬이 될 수 있으리라는 소년의 믿음은 단단해지고
 
파도와 함께 소년이 밀려온다 소년의 종착지도 밀려온다 비명과 콧노래와 홀로코스트가 소년의 눈주름처럼 매달려 밀려온다 밀려온다는 말을 밀어내는 세기로 밀려온다 다 같이 짠 성분이 된다 염분의 기분으로 통일 된다
 
비명이 함부로 섞이는 물결. 감히 나란해지는 파도.
구멍 속으로 내린 두레박에서 소년의 먹물이 발견된 것은 새까만 비밀일까.
이 슬픔이 액체의 기분이라면 위험하다, 숨죽인 아우성이나 북극성처럼
 
바다가 삐걱거리며 부풀어 오를 때;
 
소년은 파도가 되어 밀려온다 소년의 구멍이 더 큰 파도가 되어 밀려온다 소년의 죽음이 소년의 몸뚱이를 밀며 세차게 밀려온다 분명 세 발자국만 더 가면 우리는 육지가 되겠지, 우리는 오래토록 짠맛이 되어 이 파도를 기억할거야 죽음과 죽음의 말이 소년이 되어 밀려온다 점점 더 새까맣도록 커진다
 
소년이 도착하지 않은 섬에서
새로운 파도가 출항을 서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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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속의 슬픔, 일상 밑의 비일상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중 '어느 늦은 저녁 나는'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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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연작 중편소설 ‘채식주의자’는 여러 가지로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폭력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극단적이고 기괴한 소설 속 상황들은 깨끗한 접시처럼 단란한 문체에 담겨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은 소설의 첫 부분을 맡은 ‘채식주의자’였는데, 꿈속에서 목격한 장면들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게 된 여자의 극단적 행위를 인상적으로 그려내었다. 나는 거기에서 한강의 문장 속에 내포된 뒤틀린 감정들을 읽을 수 있었다. 우리가 흔히들 말하곤 하는 그로테스크함이나 기괴함에 가까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건 일종의 슬픔이었다.

 

한강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에 수록된 시들 역시 전반적으로 그런 분위기를 표명하고 있다. 함축적이고 짧은 문장 속에 폭력과 슬픔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 특징인 한강의 시들은 읽을 때마다 느껴지는 불투명한 오묘함이 있었다. ‘피 흐르는 눈’이나 ‘해부 극장’ 등의 시들은 한강 특유의 매력이 가득 풍겼다.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깝고, 쾌락보다는 고통을 더 많이 논하는 시들이었다.

 

특히 내가 인상적으로 읽었던 시는 시집 맨 첫 페이지에 실려 있는 ‘어느 늦은 저녁 나는’이었다. 상당히 단조로운 서술로 이루어진 이 시는 어쩌면 단순한 일상의 나열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특히 ‘밥을 먹어야지//나는 밥을 먹었다’라는 시의 마지막 서술은 얼핏 보기엔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하는 건방진 의구심을 들게 하기에 충분한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내가 이 시를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 역시 바로 그 부분이었다. 이 시의 독특한 감정선을 읽기 위해서는 마지막 구절들과 맞물려 돌아가야 할 톱니바퀴 역할의 구절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시 5행~8행의 ‘그때 알았다/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지금도 영원히/지나가버리고 있다고//’ 구절인 것이다. 시 속 화자는 밥을 먹고 있거나 밥을 먹기 직전의 상태다. 이는 시 속 서술로써 알 수 있는 정보에 불과하다. 하지만 바로 다음 행에서 시인은 흰 밥공기 위로 김이 피어올라오는 현상에서 어떤 감정을 감지한다. 무미건조한 일상 속에서 비일상적인 발상을 떠올린 것이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는 상상은 곧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는 생각으로 확장된다. 화자는 유순히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세월이든, 어떤 소모적인 감정이든, 그 어떤 것이든) 무엇인가를 놓쳐버렸다는, 지금도 놓치고 있다는 상실감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이후 화자는 ‘밥을 먹어야지’라고 말한다. 밥은 1행~4행에서 일상을 묘사하는 데에 쓰인 소품이다. 이러한 밥이라는 사물을 어떤 상실감의 감지 후 갑자기 떠올렸다는 것은 우리에게 일상 속으로의 순응으로 받아들여진다.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회의감과 상실감을 느꼈음에도 화자는 결국 이 일상에 순응하여 살아가기로 한 것이다. 연과 연이 벌어지는 간격 속에서, 화자가 어떠한 심경의 변화를 겪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우리는 그 미묘한 공백 속에서 화자가 겪었던 감정들을 상상하고 공감해보며 그 공허함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밥을 먹었다’고 말하며 일상으로의 순응을 완료한 화자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이 작품을 이 시집의 가장 인상적인 시로 꼽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사고의 흐름과 변화가 연과 연 사이로, 짧고 단조로운 문장들 사이로 물 흐르듯이 진행되고, 독자들이 이 감정을 공유 받을 수 있을 만큼 소통의 통로를 열어두었다는 데에 있다. 또한 이 시의 마무리는 일상으로서의 순응이 아니라 앞으로 남은 일상을 겪어내겠다는 단단한 각오로 읽힐 수 있다는 점에 더욱 인상적이다. ‘어느/늦은 저녁 나는/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김이 피어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그때 알았다/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지금도 영원히/지나가버리고 있다고//나는 밥을 먹어야지//나는 밥을 먹었다’라는 짧은 본문 속에서 시인은 삶의 긍정성과 부정성을 한꺼번에 그려낸 것이다.

 

이 시 외에도 ‘여름날은 간다’에서 느낄 수 있는 서늘함이나 ‘저녁의 소묘’에서 풍겨오는 인상은 한강 특유의 세계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침보다 저녁을 더 많이 끌어오는 한강의 시들을 정말 좋아한다. 특히 그녀가 무엇보다 세밀하고 예리하게 그려낸 시 속의 고통들은 마치 내가 겪은 것처럼 아프다. 대부분의 문장들이 함축적이고 연과 연 사이의 공백이 길어 무거운 감정의 소통이 쉬운 것도 한강 시 특유의 장점이다. ‘밤을 기다리고 있’는 한강의 시들은 꼭 아침을 거부하거나 고통을 희망하는 것처럼 보인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고통으로 해소하려는 사람들이나 위로를 사절하는 병자들에게 무엇보다도 선물하고 싶은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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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통(少年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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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는 어긋난 오기誤記라고 해서 오른손잡이가 되었다

 

아무도 듣지 않는 해적방송처럼 물러 내리던 우기, 버려진 잔반들 속에서 졸업장은 찾을 수 없었다. 모르는 사이에 한 폭 더 깊어진 슬픔의 키 재기, 쓸모없는 것들 중에서는 내가 가장 키가 컸는데

 

달콤해도 달콤해하지 말라는 명령을 혀로 들었다 이미 무죄로 판결난 혓바늘들은 왜 억울해하고 있는지, 고작 그 길이만으로도 새파랗게 피가 났어. 피의 맛은 달콤하기 때문에 달콤하지 않다고 말해야 한다

 

언젠가는 하교해야할 거리,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마다 한 뼘씩 키가 커지는 것은 어깨선일까 두려움일까. 어린 필름들의 러닝타임이 너무 간소하다고 느껴질 때, 후반전이 시작하고 나면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하는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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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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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을 물어뜯는 버릇은 삼 대 째 내려온 악습이었다 마루에 누워 바닥이 되었을 때 바다가 될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상상력은 나를 네발짐승으로 만들어주는 원동력, 눈물샘이 헤퍼질 때마다 깊숙한 손톱자국으로 점을 쳐보고 싶었다 내일은 어떤 피를 흘릴 것인지에 대해

 

눈에서 뽑아낸 슬픔들은 튼튼하기도 하였다 조각된 조각의 조각이기에 충분하였다 학창시절의 우리처럼 벽들이 날카로워지면 나는 날아갈 날개를 다시 꿰매야 했다 날짐승이라고 불리고 싶었다 젖을 빨기에 적합한 입술과 입술의 포개짐 자장가만 있다면 웅크릴 수 있을 것 같았지. 지금도 우리의 몸에는 피보다 질은 외피가 돌고 있다

 

종種이기 때문에 우리는 퇴화할 운명이다 우리는 운명의 종, 낡은 교복 대신 나쁜 습관들을 물려받을 때마다 탓할 방향이 늘어나서 기분이 좋았다 열리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는 것 발톱이 길어지고 구부러질 때마다 밥들을 쪼아 먹어보는데, 밥알들은 중력을 거슬러 오르는 것으로 소화보다 더 아름다운 자유를 찾아 퇴행했다. 성씨돌림처럼 돌아가는 회로 판에서 나는 언제나 패배가 없는 도박, 승리가 없는 싸움이지. 바닥이 허물어질 때마다 바다가 될 수 있다면, 나는 물에 빠져 죽는 최초의 바다가 되어도 좋을 일

 

모두가 부서질 준비를 했다 나도 실패를 구걸했다

이따금 눈동자가 가냘파질 때마다 하늘의 고도를 측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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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마스크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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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발톱의 한 꺼풀을 벗겨낼 때마다 하루가 갔다

하루의 사인은 실족사였을 거라고 추측한다
 

엄마가 가로등을 스쳐 퇴근하지 않는 길목마다

어려서 멈추지 못하는 나의 울음들이 잠복하고 있었다

애어른들은 때때로 모든 구멍이 굳는 병에 걸리기도 한다는 걸
온몸으로 설명했어야 했는데, 분노보다도 짧았던 팔다리
 

숙제를 숙제로 풀지 않을 때, 점점 쌓여가는 문제집처럼

눈높이는 무엇이든지 높여주었다 밑바닥에 달라붙은 그림자마저

나와 같은 키 높이

 

죽고 싶을 때마다 수학 공식의 독성을 삼키며

나는 생존해있다 빨래를 개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익지도 않는 계란 요리를 할 때

불안한 마음을 먼저 익혀버리던 실수로 인해

 

엄지발톱처럼 무너져 내린 쪽방에서 탈피를 흉내낼 때마다

하루가 갔다 나는 아직 아무도 발 들이지 않은 폐우물처럼,

그림자와 손을 맞대고 번식해보았다 꼭꼭 밀폐해 놓은 울분

 

나의 첫 사인은 실족사였을 거라고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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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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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늘들이 끓어올랐다 내부의 온도를 숨기려는 듯이

타는점에 다다를 수 있다면 슬픔이 아니라고 우겼다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는 소식이

전파보다 가볍게 화면과 화면을 맞추어

오로지 장면만으로 전달될 때

더 이상 죽지 않을 수 없겠다고 변명했다

 

튀어나온 동공 저기압의 콧등 나날이 키가 커지는 광대뼈 죽어 늘어진 귓볼 단을 줄인 모가지 부패되는 것들만이 고정되지 못했는데, 뱃가죽은 매일을 거듭할수록 굵게 흘러내렸다 내 소개의 전문

 

혼자가 좋겠다는 말은 어딘가 어설픈 승리처럼

얇고 갸날픈 숨소리, 들이마시고 다시 내쉴 때까지 오로지 혼자였는데

방 안에서 독재할 때마다 눈꺼풀은 지루해졌지만

그래도 좋았다고 말할 때마다 입술은 허풍처럼 꾸물거렸다

 

…틀린 게 아니다

 

또 하나의 뒹굴음을 발명할 때마다 이웃의 창문들은 조금 더 단단해졌지만

포갤수록 바깥이 되는 잠자리 위의 역사처럼

짓물러 내리는 습도들을 신으로 추앙하며 나는 여전히 행려병자의

지팡이 아니면 무인도였다 코끝으로 길게 늘어뜨리는 변명들조차 더 이상

둥글게 끈적일 수 없다는 경고가 방 안으로 침입할 때마다

세상의 바깥에 혼자 앉아 수평을 관측하는 천문학자의 불안이 부풀어 오를 때마다

 

우기는 언제나 방문을 두드리는 처음이자

유일한 손님.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불러준다면, 그 위대한 입술마저 더럽혀질 자신이 있다면,

 

나는 안에서도 겉이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

 

……틀린 게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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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프티덤프티; 오만 같은 달걀과 달걀 같은 오만을 깨뜨려 노는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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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립보행의 역사를 잊어버리고 나서 험프티덤프티 달걀은 고꾸라졌다 아니면 고꾸라지는 그림자가 달걀의 역사를 집어 삼킨 것 정복이 술래인 잡기 놀이에서, 항상 일등 아니면 꼴찌를 하던, 일등보다는 꼴찌의 채도가 어울렸던 아이. 만취한 거리가 될 때마다 아이의 그림자는 조금 더 길어진 더듬이 아니면 뼈와 연골을 갖고, 다리털과 수염이 자라지 않을 때마다 미끄러지던 길바닥. 근사한 성을 짓고 싶었어 짓고 싶었는데, 가장 밑장에 실패를 숨겨놓은 카드놀이에서 매일 졌던 아이의 일주일. 별과 별 사이의 거리와 손가락의 한 뼘을 같은 눈높이에 두고 바라보던 아이의 눈주름은 계절이 오래되어 갈수록 얇아집니다
 
험프티덤프티 험프티덤프티 일종의 주문 같았던 호기심
말하는 달걀은 나 혼자 뿐일 줄 알았어 유년의 종교
 
이름을 거꾸로 발음할 수는 있어도, 이름의 위치는 언제나 이름으로써 고정되어 있지 달걀이 굴러 떨어져; 깨진다는 것은 아이와 어른 사이에서 줄어드는 간격의 키 높이, 뒤집어 읽으면 비문이 되는 성장들과도 같은 말이다 오로지 달걀일 뿐인 아이, 오늘도 거리는 살아있는 오크통이 되고 슬픔 같은 적포도주 적포도주 같은 슬픔들이 그곳을 채울 수 있다면
 
여전히 달력은 첫날의 아이에게 머물러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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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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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물소리의 기원은 물방울 하나하나의 투신이 파열음을 부서뜨리고 말았을 때에야 시작된다 은백색 상록을 휩쓸고 지나가는 폭포의 세찬 음성은 이를테면 곡비들의 행렬인 것이다 형태가 있는 것들의 앓음은 형태가 없는 것들의 어미가 된다 도시 한 가운데를 스쳐 흐르는 강물의 절규는 오늘도 서슬이 퍼렇다

 

(나는 그 강엔 멍이 들어 푸르다, 라고 쓴다)

 

하나가 하나로, 둘로 쪼개어지는 순간을 아프다고 말하지 않기로 했다 부서지는 물방울들은 비울 것 없는 비움을 깎아내고 무리가 된다 지느러미들을 곧잘 자른다 헤엄칠 수 없는 파편들은 일제히 흐름을 거스르는 방식을 잊는다 일제히 그들은 강의 매서운 아니리를 모국어로 삼는다

 

(손을 집어넣어 보았더니 비명이 손가락을 잘라 먹었다 밀려오는 곡소리를 나는 감히 우리, 라 발음한다)

 

모든 물소리의 언어는 물방울 하나하나의 죽음으로 조율되고 마침내 曲을 노래하는 哭聲의 창법은 순항한다 물방울들의 음색은 일제히 동일해지고 강은 이름을 잃는다 (그러나 강변의 노래는 멎지 않는다) 들여다보면 강물은 더 이상 강물이 아니게 되고 물방울은 물방울이 아니게 되었으나 물살은 흐르며 노래는 아니 멈춘다 나는 우리, 라는 말을 되뇌여본다 잘린 손가락은 아물지 못했다, 아니 깎여 죽어버렸다 그렇게 쓴다

 

멀리서 보면 장관壯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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