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좁음이 알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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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을 알 수 없습니다 흉기도 동기도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전달되는 언어들이 불분명합니다 고요한 밤의 암막은 용의자가 아니었습니다

 

 

상흔은 부재(不在)합니다

 

 

그녀의 죽음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우화가 필요했습니다 그녀가 가장 가까이 했던 것은 사각의 학습지 아니면 문제집이었습니다 이를테면 비극을 양산하는 원고같은 것들 어쩌면 그녀는 단단한 모서리에 심장이 긁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건네보았으나 확신은 부재했습니다

 

 

그녀가 부재합니다

 

 

그녀의 하루 일과는 지극히 단순했으므로 사인에서 제외합니다

– 6시 기상

– 7시 반 등교

-10시 하교 후 학원으로 이어지는 족적, 잠결이 허락되는 1시 반

 

 

그녀가 부재합니다

 

 

어느 누군가가 그녀의 사인은 질식사라며 목소리를 높였으나 고성을 들을 군중은 부재했습니다

 

 

그녀의 사인을 알 수 없습니다 그녀가 부재합니다 비좁음의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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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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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고통스럽고 죄스러웠습니다 추악한 밤의 가죽을 뒤집어쓴 악마가 내게 그것을 밀어 넣었습니다 순간 온몸의 외피를 탈피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의식을 먹어치웠습니다 몸뚱이 한 가운데에 구멍이 뚫리는 고통이 핏줄에 실려 온몸으로 퍼졌습니다 내게 펼쳐진 모든 광경은 그저 밤이 장난스레 집필해놓은 악몽의 원고라고 몇 번이고 되뇌었으나 악마의 행위는 멈추어지지 않았습니다 나의 다리 사이에선 붉은 핏줄기가 흘렀고 나의 심장에선 통증이 신음을 내뱉으며 수 천번 살의 섞인 박동을 반복했습니다 나는 몇번이고 혀를 깨물어버리고 싶은 끔찍한 고통과 절망에- 하염없이 몸을 삼키고 마는 무력한 겁들에 그저 눈을 감고 나의 모든 치부를 깎아낸 한 필의 몽당연필로 탈고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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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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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나, 할 얘기가 있어

 

꽃이 시들어

잎이 곧게 설 생각을 안 해

무엇보다도

더 자랄 생각을 안 해

 

목말라 해

꽃이 괴로워 해

 

아니야, 엄마

그저 꽃 얘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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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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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까

비행기일까

 

하여간 빛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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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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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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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뜬금없어서 죄송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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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정 시인님 저희 반에 있는 제 친구랑 얼굴이 똑같으세요….

ㅎ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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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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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무리의 하늘이 손끝에 내음을 묻힌다

피곤을 어깨에 목욕타월처럼 걸쳐두고

하늘 속에 유영하려 걸음을 한 술 놓는다

내가 허리께에 두른 것이 목욕 가운인지

치부를 감싸매어 놓은 표피의 일부인지

구름 사이를 헤엄쳐다니기 전엔 모르는 일

구름을 벅벅 긁어다모아 때를 민다

쓰라림의 표면적은 이렇게 거칠기만 하구나

오늘을 지나며 묻혀놓은 기억들을 얼룩들을

모조리 민다 구름의 귀퉁이에 스민다

하늘로 몸을 던진 나는 이윽고 눈물로 유영을 한다

아니다 자유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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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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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밤도

비어 있는지도 몰라

 

저기

손톱만한 달도

 

어쩌면

조금은

울고 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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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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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빛은 잔상입니까 화면입니까 차오르는 여백은 우리에게 쉼표입니까 마침표입니까 밤하늘을 기울여 보아도 세상은 수평선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습니다 언제나 나의 시선은 낮을 모릅니다

 

밤하늘을 꿰뚫은 저 구멍은 우리에게 출구입니까 입구입니까 불타 죽어버린 별들이 모습을 감춘 밤하늘은 누군가가 써내리던 한 때의 원고를 모조리 태워버린 흔적입니까 어느새 식어버린 악몽입니까

 

하염없이 둥근 저 여백은 어둠이 수놓아 놓은 자수입니까 밤하늘의 균열입니까 어쩌면 내게서 달아나버린 동화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공백의 진실을 알고 있습니까

 

 

 

*망: 보름. 지구를 기준으로 달과 태양이 정반대에 놓이는 때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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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짐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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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녕, 몇 번이고 발음해도 끝까지 붙지 않는 두 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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