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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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에 푸른 잉크가 흥건하다.
병이 폭발하기로 한 점은 구겨진 손바닥 안
나는 아직도 뼛조각을 주워담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제멋대로 늘어난 펜이 함께 걸었던 길들을 짓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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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약병을 뒤집어 눈을 다물자
마침내 지하수에 닿으면 우리는 한없이 갇히는 기분이 들 테니
공범자의 마지막 변명 우리 표류중인 신호만큼이나 섞인 것들을 사랑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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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사이 검정이 내린 뚜껑이 눈꺼풀을 대체 혹은 보완하기를
무방비한 발뒤꿈치에 날아와 박히는 돌연변이
자신을 시멘트라고 소개하는 사람들처럼 그는 기꺼이 대기표를 뽑아든다
엎질러진 가루를 얼마든지 찾아다니기 위해 수갑을 들고
다른 한 손에 청소기를 굴려대면 입이 녹아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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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천체를 모방하려 했던 불나방들이 쇠에 버글거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리가 붙어서 안타까웠지
수치스럽게도 둘과 셋은 모두 위조된 그늘을 달았으니 모두는 그와 그림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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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벽돌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아니, 밤을 넘을 준비가 되었는지가 궁금할 뿐이야
들어올린 발끝이 맞닿으며 흠집 사이로 떨어진다 안무를 복사하는 종잇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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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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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잉크를 심다 말고 종종 타자기의 갈빗대를 더듬었지 손목을 걷어붙이고
비디오테이프 속에서 순환하는 먹구름이 죽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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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태양에 그을려 버렸을 땐 일부러 둥글게 도려내진 신문 뭉치를 끌어안으며
가끔 회색만 잃은 시각들의 안부를 묻기도 해요, 추방당한 주파수들은 아직도 사막을 떠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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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우주복을 뒤집어쓰고 산책을 나가곤 했잖아
짭짤한 대기는 그리워지거나 말라 버리거나 방울로 수축하는 타클라마칸
힘없이 핏자국을 기울이다 계절 사이에 묻히고 말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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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와 분리될 수 없던 사람들 온종일 찢어진 종잇장을 달고 살아야 했던 증기기관처럼
납작해진 머리들을 조용히 빨아들이는 타자기의 작은 차원과 채우지 못한 여백들,
나의 일과는 미세한 빗소리를 받아 적는 것뿐이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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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 가득찬 미생물들이 끌어안고 혹은 짓눌린 활판의 구덩이 속에서 뭉쳐지는
어제의 나는 역방향으로 가는 기차를 탈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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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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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눈물의 범람으로 인해 더 이상 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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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총을 들고 있었다가 먼지가 울려 퍼지면 바스라지듯이 몸을 숙이기로 하자
구정물에 실려가는 길목에서도 나는 거절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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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상대할 방법이 없었던 손가락들
시멘트를 밟아 버린 이상 나는 손목을 장대에 건다
멀리 손을 잡은 아이들과 아이들과 잿더미 안에 웅크린 애도를 표하며 그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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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비틀어진 검정을 용서받기 위해 나는 혀끝을 씹어 가며 다듬는다
당신들이 없어도 괜찮다고 그랬잖아요 나의 지옥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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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척거리는 땅을 내뱉으면 선고를 합창하는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나의 보잘것없는 비명을 담당할 사람은 당신뿐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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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현재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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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임은 흙에 묻어 보관되어 왔습니다 활자 이상으로 나뉘어 앞으로도 사용되지 않을 조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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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포식자와 다수의 생애 주기를 공유하기 위해 귀향에 대한 이야기를 무한히 끌어안았고 그것은 이제 한 줌의 껍질에 지나지 않아서 빈 이정표처럼 풍화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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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성층권의 맨홀에 대한 이야기들은 최초의 단두대가 고개를 들면서부터 낡아 버렸다 마지막 공장이 문을 닫아 버리고 나서부터 우리는 멸종위기 옆모습은 보석에 누워 숨을 끝까지 지키자고 말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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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져본 적도 없는 노이즈 위를 운전하다 보면 흔히 무덤을 건드리게 된다
아직도 라디오 소리가 들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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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 깊은 잠이 지속되는 꿈 보랏빛 향을 점화하고 혼자가 되기 전의 러시아워 눈물의 트리거만 몰려드는 집행의 마지막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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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의 일기에는 후회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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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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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를 기어오르는 포물선은 내버려두고 이만 나를 털어 보내줘
물고기 떼가 되었다가 먹잇감을 찾아 둥그런 우주를 둥둥 떠다니는 종잇조각처럼

 

가시를 다져서 만든 시곗바늘은 버티는 시간과 시간을 동시에 갉아먹어서

 

나는 줄어가는 숫자를 씹으며 일용할 문장을 발명하는 과정
여름처럼 손가락을 굴려도 가장자리처럼 말라가는 호숫가에서

 

표적이 아니라도 따가워서 나는 이따끔씩 정전을 꿈꾸네
아무리 문질러 지워도 울타리 밖은 끊임없이 웅얼거려
오늘은 하루종일이 잠들지 못하는 밤

 

녹색 호수에 뛰어들어 긴 낮잠에 닿기까지 한나절은 돌고 또 돌아

뭉쳐진 바늘 떼가 목 아래에서 짤깍거려 태엽 감는 소리만 내뱉고
군중은 나를 관통해 기이하게 시린 여름이 맴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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