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들의 가치를 만들어낸다. -'4천원 인생'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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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공장이 넘쳐나는 다른 나라와 다름없이 공장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수없이 많다. 그들은 4천원이라는 시급을 받고 하루 종일 일한다. 말 한마디 하기도 벅차는 혹독한 노동에 땀 닦을 시간조차 없다. 여름엔 땀띠가 겨울엔 털옷을 입어도 난로 하나 없어 떠는 노동환경에서도 불평조차 할 수 없다. 공장에 들어와서 4일뒤면 보이지 않는 사람도 대다수였다. 과연 이러한 환경이 적절하다 말할 수 있을까.

‘9번 기계’ 노동일기는 한달간의 실험을 토대로 쓴 일기다. 난로 기계에 배치되어 한달간 노동하는 실태를 그대로 기록했다. 작성자는 마지막 단락에서 실험이라 다행이라는 말을 썼고 첫 단락에 “오전 10시가 되자 허기로 멍해졌고, 11시가 되자 다리를, 오후로 들어서자 머리를 떼어내고 싶었다.”라는 말을 썼다. 글로 써도 느껴지는 노동의 고통을 우리나라 국민들은 겪고 있다. 시급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고도 일하며 노동 환경이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도 일한다.

이러한 노동 실태에 대해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다. 노동자들이 학창 시절을 보낼 때 성실하지 않았던 것 때문 아니냐며 그들의 성실성과 게으름을 판단한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다른 방향에 있다. 그들의 학업이 어찌되었던 전 직장이 어디였건 그들은 공장이라는 ‘직장’에서 알맞은 대우를 받을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비정규직 문제는 아직까지도 논란이다. 비정규직이 없어지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마당에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질타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어쩌면 다른 방향의 시선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정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직장에 근무하고 있는 우리들은 그들을 같은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들 중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여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간 사람들도 있다. 사업이 부도나서, 학자금 대출이 벅차서, 가족 중 한 명이 아파서 등 자세히 귀기울여보지 않으면 잘 모르는 상황들 말이다.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사회 구조는 지독하게 그리고 단단하게 매듭지어져 있다. ‘틀’에 갇힌 삶을 살며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저 지금 당장의 금전적 상황을 쫓으며 살아간다. 그것이 사회 구성원들이 노동자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하는 이유이다. 예를 들어보자. 전깃줄 보수공사를 하는 한 아버지가 있다. 공사를 하다 두 팔이 잘려나간 아버지는 한없이 무너져 내렸다. 어머니는 시장에 내몰려 장사를 시작했고 공부를 출중히 하지는 못했던 아들은 전기관련 학과와 소방관련 학과에 지원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아들에게 응원의 말을 건냈다. 두 팔을 잃고서도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이것이 노동 상황의 그림자이다.

앞서 말했듯이 노동을 하다가 신체적 피해를 받는 상황에서 기업은 보상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 어쩌면 ‘피해보상’의 개념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러한 상황은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노력 또한 필요하다. 노동자들이 데모를 일으킨다고 해봤자 소용없다. 우리는 다 함께 일어서 소리쳐야 한다. 그래야 이 끔찍한 사회의 매듭을 풀어나갈 수 있다. 한 번 엉켜버린 실타래를 푸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과같이 이러한 사회 노동자들의 상황을 풀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바꿔나가야 한다.

또 하나의 문제점에는 사람들의 인식이 있다.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을 예로 들어보자. 사람들은 이런 아주머니들을 막 대해도 된다는 인식에 사로잡혀 반말은 물론 언성까지 높여가며 노동자들을 몰아세운다. 이것도 하나 못해주냐는 마인드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건지 머릿속으로 이해조차 할 수 없다. 그저 오래된 한국의 인식인지 군중이 만들어낸 심리적 인식인지를 떠나 이것은 바뀌지 않는 우리의 인식에 달려있다. 고생하신다는 말 한마디가, 나갈 때 수저 조금 간추려놓는 배려가 그들의 마음을 울린다. 그런데 이러한 작은 노력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도대체 우리는 어떤 한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까? 인식에는 많은 힘이 담긴다. 사람들의, 군중의 인식은 사람을 만들고 환경을 만들고 사회를 만든다. 우리의 인식이 바뀌어야 사회가 바뀐다.

4천원 인생의 저자는 머리말에 ‘가장 본질적인 모순에 대한 생살 그대로의 기록’이라는 말을 썼다. 그렇다. 우리는 ‘본질적인 모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면 나머지 것들은 절로 본질에 따라갈 뿐이다. 우리는 언제가 되어야, 몇세기가 되어야 사람과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에 살아갈 수 있을까. 단순히 노동자 뿐만이 아닌 사회 약자 모두가 따뜻한 사회 속에 살아가는 그날까지 우리는 멈추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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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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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적부터 맺고 끊는 게 확실치 않았다. 그것이 사람 관계에 있어서든, 자아에 있어서든 언제나 두리뭉실하게 흘려보냈다. 그렇게 행복만을 쫓다 나는 한없이 가라앉는 배를 탔다. 그저 한없이, 그지없이, 끝없이, 그렇게 나는 가라앉고만 있었다.

살면서 속좁은 사람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을 지도 모르는 것이지만서도, 나는 정이 많은 성격이었다. 거절은 속에서 차오르는 한숨과 함께 하지 못했다. 싫은 소리를 누가 잘하겠냐만은 나는 나로써 회피했다. 나는 의사표현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옷을 고를 때, 저녁 메뉴를 고를 때, 좋아하는 음악을 고를 때. 나는 항상 얼버무렸다.

나는 어쩌면 나로 산 적이 없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언제나 내가 아닌 행인으로 산 것이 아닌가. 끝없는 의문과 함께 한 배신은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다. 펑펑 우는 것이 속 편하다며 흔치 않은 울음을 속으로만 삼키는 걸 죽어도 싫어하던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슴 깊이 넘겼다. 사람 관계에서는 어째서 배신이 필요할까 하는 증오는 나 혼자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나는 나였던 적이 있었는가. 나는 나의 삶을 산 적이 있었는가. 나는 내 자아를 지켜낸 적이 있었는가. 나는 나의 삶을 방관했다.

나는 범죄자이다. 나는 그렇게 아파했음에도 피해자의 신분은 될 수 없었다. 그 아이가 나를 어떻게 배신했던, 나에 대해 어떻게 지껄였던 나는 한평생을 피해자로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하루 하루 나를 죽여만 갔고 나는 결국 배를 탔다. 내가 나였다면 나는 조금 더 불행하지 않은 나를 마주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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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소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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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소리를 들을 때면

어김없이 머릿속엔 풍선이 떠오른다.

의문점을 불어넣고 띄우다 보면

먹구름의 부피와 같다하여도 그지없다.

“비의 소리란?”의 대답은

과연 한결같을 수 있을까

 

여리디 여린 빗방울들이 소리치는 소리

냉정한 빗방울들이 소복이 쌓이는 소리

억울한 빗방울들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외로움에 바람과 손잡고 휘날리는 소리

단지 어느 비인가와 더불어

비의 소리는 정의할 수 없지 않은가

 

소리만이라도 풍선에 담기위해 녹음기에게 속삭였다.

풍선이 뒤얽혔을 때에는 천둥번개와 같고

유유히 떠다닐 때에는 잔잔한 소나기와 같으니

소리의 말들은 가히 정의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소리가 음소거일 때 비로소 ‘소리’가 들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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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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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아리에 빗방울이 스쳐 지나간다. 몰아치는 비로부터 상체만 겨우 막아주는 우산은 어느새 싫증만 날 뿐이다. 뚜벅뚜벅 걸어가던 길을 철벅철벅 걸어간다. 가만히 서있어도 비는 맞거니와 걸어갈 때마다 바닥에서 물이 튀어오른다. 이러한 것들은 비가 오는 날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떠올리게 한다. 우산을 던져버리고 슬며시 뛰어갈까 생각도 해보았다. 이 생각은 금새 사그러들어 물웅덩이로 사라졌다. 가방 안의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교과서들, 문제집들, 필기구들이 어깨를 짓눌렀기 때문이다. 여름의 기나긴 장마철에는 그저 대수롭지 않게 매일 거듭되는 생각과 내적갈등이지만 늘 마음의 웅어리가 가시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이 기분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장마철 폭풍우처럼 몰려올 때면 언제나 한가지 이유가 떠올랐다.

어느새 학원의 앞자락에 다다랐다. 학원까지 오는 길에 불현 듯이 했던 생각과 느꼈던 기분들은 잠시 가방속으로 봉쇄시켰다. 벽에 기대듯 자리에 앉아 짙은 먹구름이 끼어있는 듯한 얼굴로 수업을 들었다. 수업 도중 친구들과 웃고 떠들던 어린 시절은 온데간데없이 소멸시켰다. 그렇게 한가하게 시시덕덕거리며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리석음을 가장한다면 나도 농담 몇마디와 효율성 없는 말을 던지며 학원을 친구들과의 소통 매개체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비가 그쳐가고 학원은 마침 그에 맞추어 끝났다. 덕분에 돌아가는 길에는 물웅덩이만 피해가면 비를 맞을 일이 없었다.

돌아가는 길이라고 하기에도 모호했다. 학원이 끝나면 곧장 독서실로 가기 때문이다. 저녁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운지 오래라 그 종류와 맛까지 낱낱이 파헤칠 정도가 되었다. 나는 매일 공허함을 한 꺼풀씩 더해갔다. 학교, 학원, 독서실, 편의점 이 네 곳만이 나의 발걸음이 닿는 유일한 곳들이다. 지독히도 매일 반복되는 삶에 나는 어쩌면 미쳐가고 있는게 아닌가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도 있다. 흥미로운 일, 구름위를 걷는 듯한 즐거움 그러니까 친구들과의 약속, 어쩌다 한 번의 여행 등과 같은 것들은 내 스스로 차단해버려야만 하는 현실이 나에게 슬픔을 낮게 속삭인다. 지금의 나는 내가 없다. 입시가 끝날 때까지, 수시든 정시든 대학에 붙을 때까지 ‘나’라는 자아와 존재는 없다. 끊임없이 내 발목을 잡는 성적이, 등급으로 나뉘는 나의 신변이 무지막지하게 증오스럽지만 어쩔 수 있겠는가? 어른들이 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과 자료들인데 말이다.

숨을 죽이고 독서실에 들어섰다. 나보다 먼저 와 공부하고 있는 또래들을 보며 오늘도 불타오르는 의지를 가지고, 잠깐. 이건 공부 블로그의 시덥잖은 멘트일 뿐 허위이다. 속으로 한숨을 삼키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늘 하던 메뉴얼을 시행한다. 독서실의 또래들을 보며 자극을 받지는 않는다. 만약 받는다고 하더라도 잠깐 반짝이고 마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일 것이다. 오로지 시험을 위한 지식을 머릿속에 꾸역꾸역 구겨넣다보니 독서실이 닫을 시간이 되었다. 나는 또다시 문을 열고 길을 걸었다. 이번엔 돌아가는 길이라 할 수 있다. 가로등의 불빛으로 인해 어딘가 사연이 있어보이는 공원을 걷고있자니 또다시 일명 ‘장마철 감성’과 비슷한 감정이 드려고 했다. 나는 잠시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냉기가 서린 바람이 머릿카락을 쓸고 피부를 쓰다듬고 지나가는 느낌이 노을 지는 바다의 모래사장에서 바람을 맞는 기분과도 비슷했다. 눈을 감으면 그러한 기분이 더욱 물씬 들었다.

다시 현실의 문 앞에 다다랐다. 행여 가족들이 잠에서 깰까 도어락 조차 솜털같은 느낌으로 누르며 살금살금 집안으로 들어갔다. 언제나 내가 집에 무사히 들어오는 것을 기다렸다 잠에 드는 엄마에게 넌지시 “다녀왔습니다.” 하고 말했다. 엄마는 배고플텐데 뭐라도 먹고 자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며, 사실은 허기짐에 요동치는 배를 이끌고 잘 준비를 했다. 침대 옆 탁상에 있는 전자시계에서는 ‘D-13’이 깜빡이고 있었다.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지금 잔다면 과연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까 하는 매일매일 반복되어 드는 생각이 또다시 시계와 함께 깜빡였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스톱워치를 깜빡이며 공부하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을 것이다. 사무치게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두려움에 몸둘바를 모르는 내 자신이, 내 자신이라고 할 수도 없는 나라는 사람이 물웅덩이 속으로 소리도 없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은 거기에 머물러 시계 주위를 뱅뱅 돌았다. 영단어 몇십개만 더 보고 자야한다는 생각이 밀려와 책상 앞에 앉았다. 책상 위도 예외는 없었다. 캘린더의 정가운데에는 ‘D-13’이라는 글씨가 온갖 형형색색의 색깔들로 강조되어 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캘린더를 들어 서랍 속으로 넣어버렸다.

‘D-3’. 지난 열흘 동안에도 현실과 자아를 넘나들며 생활해왔다. 학교 정문을 지나려는데 현수막이 나를 가로막았다. ‘꿈을 향한 첫 걸음!수능 대박을 기원합니다.’ 눈을 천천히 깜빡이는데 어느새 눈물이 앞을 가려왔다. 이것이 어떤 감정에 대한 것인지는 몰랐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정확하게 알았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의 코 앞에 종점이 보이는데, 나는 어쩌면 돌아서고 싶은 마음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가시밭길을 걸으며 힘들게 나아왔던 길을 이제는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건 부모님의 얼굴도, 친구들의 얼굴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꽃이 기나긴 고난을 견디고 피어날 때의 순간처럼 웃고있는 나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득히 떠올랐다. 원하는 대학에 입학해 원하는 전공을 하며 인생의 단 한번뿐인 나의 길을 찾고 있는 내 자신은 그렇게도 아름다울 수 없었다. 나는 손을 올려 눈물을 닦았다. 손 끝에 맽힌 눈물은 서서히 땅으로 떨어져갔고, 떨어지는 순간 나는 다시 다리를 뻗었다. 지금까지의 회의감이 한순간에 희미해진 것 같았다. 나는 또다시 하루를 시작했다.

‘D-day’. 도시락과 책가방을 들쳐매고 신발을 신고 나갈 채비를 끝마쳤다. 엄마는 데려다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응원과 격려의 말을 건냈다.

“딸아, 네가 해온 노력은 헛되지 않을 거다. 엄마는 안다. 사랑한다, 딸.”

평소 서로서로 피곤한 생활을 보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조차 별로 나누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절로 편안한 미소가 지어졌다. 대답을 하다가는 울적해질 것 같아 포옹을 하고 엘리베이터의 문을 닫았다. 버스에서 막바지 공부를 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험장의 정문으로 향했다. 거의 다다랐을 때 후배들, 학부모님들, 선생님들이 수험생을 반겼다. 나는 복받쳐오르는 기분을 받았다. 한 명 한 명의 응원을 들으며 뚜벅 뚜벅 걸어갔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마지막으로 걷는 이 길을 무게있게 누르며 뚜벅, 뚜벅 그렇게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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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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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중 이맘 때

눈이 펑펑 내린다.

 

옷을 껴입어도

뼛속을 파고드는 추위는

 

아무리 나를 보호해도

톡 쏘아붙였던 너의 말과 같다.

 

친구와 싸웠던 날은

내 마음에도 눈이, 친구 마음에도 눈이

 

눈송이를 잡으려 애써봐도

그 많은 눈송이를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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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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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두 잔 분량에 아메리카노 한 포 믹스커피 한 포 정해진 분량을 정확히 따라 섞는다. 그 후 입에 털어 넣는다. 하루를 이렇게 잠을 잠재우는 일로 불행한 삶의 눈을 뜨게 한다. 오후 12시 혹은 오전 12시 나의 하루는 오로지 오전 12시로 고정한다. 말하자면 새벽을 새기 위한 일종의 수단이라고 말해놓는다. 굳이 새벽으로 시작할 필요성을 수학적으로 계산해보자면 그 수치가 매우 낫다고 확신한다. 그렇다면 내가 왜 이 방바닥의 수많은 먼지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해보겠다.

나는 수학을 굉장히 잘한다. 이건 잘난 척을 하기 위함이 아닌 사실을, 그러니까 fact를 있는 그대로 옮겨 적을 뿐이다. 초등학교 5학년, 그 시절 까지는 공부에 대한 흥미 다시 말하자면 하고 싶은 마음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생각이 없었다고 말하면 적절할 것 같다. 6학년. 그 시초가 아닌 중앙에서의 시작을 뚜렷이 기억한다. 날 싫어하던 두 나쁜..아니 그 아이들의 역겹던 성격부터 얼굴, 말투까지도. 이 이야기를 읽고 있다면 자신의 인성에 대해 깊이 제발 깊이 좀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뭐 평생 하지도 못하겠지만, 대충 걱정해주는 척 좀 하자면 그렇다. 그 둘은 공부를 잘했다.

오기와 함께 참으로 지독히도 악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둘의 얼굴을 짓누를 계획을 했다. 그 중 가장 쪽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기말고사였다. 난 머리를 타고났다. 하기만 하면 전교 1등은 기본인 사람이기 때문에 잡생각까지 하며 공부했지만 그들의 머리를 눌렀다. 점수를 잘 받은 쪽이 아닌 머리를 짓누르고 내가 올라갔다는 사실이 기뻤다. 앞으로도 그리고 대학을 갈 때도 그 아이들을 짓누르며 약육강식의 계단을 두 발자국씩 올라갈 것이다. 뭐 이 내용으로 노래를 낸다면 히트는 물론이고 빌보드 차트는 껌 아닐까. 자극적인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마련이니까.

이것이 본격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입맛을 돋우는 수프 정도로 알고 있으면 된다. 다소 온도가 식지 않은 게 길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내 마음에는 쏙 들었다. 난 그런 삶을 산다. 불행하지만 내 꼴리는 대로 살아간다. 흔히들 ‘마이웨이’라고 말한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하고 싶은 일을 안하고 살면 입에 가시가 돋칠 것만 같다.

사건은 다시 시작된다. 그 아이로부터 시작되어 그 사람으로 끝난다. 그 사람이라 함은 내가 좋, 그러니까 영어로 말하자면 like에 해당되는 사람이다. Love는 내가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난 늘 좋아함으로 좋게 마무리 지었다. 마음을 표현하지 않고 압력으로 눌러 폭파시켜버렸다. 시한폭탄이다. 그런데 그 아이는 다르다. 내가 표현을 해버린 두 번째 사람이다.

정말 처음으로부터 시작해보자. 고등학교 입학식 날에는 반을 분석해봤다. 괜찮게 생긴 남자 아이 세 명. 그리고 우등생 스타일 한 명. 여자 아이들 중에는 두 명이 작년에 같은 반이었다. 그 아이, 아니 호칭을 재정비하자면 단짝 친구, 그러니까 친구..어감이 이상하지만 괜찮다. 친구는 그 세 명중 우등생 스타일에 속했다. 그래서 감흥 없었다. 모든 아이들에게 친절했고 나한테 또한 그랬다. 난 내 외모에 자부심이 손톱만큼도 없다. 나한테까지도 잘해주는 그 아이가 그저 착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1학기 중 처음으로 짝이 되었다. 처음엔 별 말 않았지만 나중에는 내가 먼저 장난을 걸었다. 관심을 가지는 남자아이는 이승수 말고는 없었다. 이승수로 말할 것 같으면 키 크고 눈 째지고 나쁜 남자 성격에 또라이다. 내 이상형의 정석이다. 그래서 좋아했다. 그런데 내가 친구에게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곧 이어 직업체험 현장체험학습에 갔다. 친구는 나에게 장난을 치고 나는 친구에게 장난을 쳤다. 남자와 여자가 따로 놀 때 우리는 조금 더 가까운 그런 사이가 되었다. 호칭을 두 번째로 다시 정하자면 김수호가 가장 정확하고 객관적이다. 수호는 그런 남자였다. 모든 이들의 호감을 사고 모든 이들의 비호감은 반납해버리는 사람이다. 난 그런 사람이 딱 질색이었다. 가식적인 웃음 행동 말투로 환심을 사는 게 고약했다. 그런데 수호만은 달랐다. 가식이 싫지 않았다. 처음엔 거리낌이 있었지만 그것마저 느끼지 못했다. 평소에 많이 치던 장난은 이런 것이다. 어느 한쪽이 먼저 물건을 뺏어가서 돌려주지 않는 장난이다. 처음엔 헷갈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재미를 느꼈다.

왜 좋아졌느냐가 가장 궁금했다. 나의 이상형과는 정반대의 사람이 좋아지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난 시시때때로 변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마음만은 그렇지 않다. 마치 드라마 대사 같지만 나는 정말로 그런 사람이다. 한 사람을 한 번 좋아하기 시작하면 적어도 6개월, 1년 이상은 좋아했다. 나는 스스로를 해바라기라고 생각한다. 태양 하나만을 희망으로 삼고 살아가는 게 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다시 본론을 파고들어서 말하자면 가장 중요한 것은 수호가 절대 내 이상형이 아니란 것이다. 그런데도 내 마음 속 태양으로 삼기 시작했다. 나의 태양은 이승수 지만 수호가 내 마음속에 완전히 자리잡았을 때는 이미 늦고 말았다.

우린 2016년이 끝나갈 때쯤 단짝친구가 되었다. 거의 모든 활동을 같이 했다. 수호도 그렇게 생각했다. 수호가 성을 빼고 부르지 말라고 내게 말하기 전까지는 성도 빼고 불렀다. 나는 성을 빼고 부르지 말라는 수호의 말을 그저 내가 싫어서 그러는 줄로만 알았지만 그냥 그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는걸 뒤늦게 깨달았다. 내 주변 친구들 모두가 나에게 고백을 권장했다. 무조건 성공할거라고, 늦기 전에 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했다. 나는 쉽게 마음을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겠다 수없이 다짐했다.

주말에 평소와 다름없이 친구를 만났다. 춥고 다리가 아파서 카페에 갔다. 우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중심에는 수호가 있었다. 그러다가 지금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 친구를 통해 수호에게 물어봤다. 내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러자 수호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신은 나와 가장 친하고 내가 정말 좋지만 지금은 아무도 사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은데 싫다고 대답하는 수호를 보며 할말을 잃었다.

그 일이 있고 4일 뒤면 종업식이었다. 그래서 그 4일 동안 미친 듯이 신나게 살았다. 누가 봐도 행복해 보였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수호는 날 계속해서 쳐다봤다. 다른 아이들이 봐도 느껴진다고 했다. 하루에 한 번은 그 이야기를 들었다. 내심 좋기는 했다. 부담스러움이 더 컸다. 나는 신경 안 쓰는 척 노력하는데 수호는 그냥 봐도 신경 쓰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자꾸만 노래방에 갔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그 사람을 잊으려고 그런 거라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점점 잊어가나 싶으면 또다시 노래방에 갔다. 다시 고백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저 타이밍을 잘못 맞춘 거라고 생각한다. 타이밍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즈음에서 다른 이야기를 해야겠다. 지루한 틈에서 다른 이야기를 꺼내는 건 독자를 위함이다. 이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도 그걸 원할 거라고 확신한다. 지독한 짝사랑 이야기 말고 달달한 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적어도 내가 고백을 하기 전까지는 ‘썸’이라는 남녀 사이의 무엇인가가 존재했다. 난 학기 중 독감으로 학교를 빠진 적이 있다. 한 4일 빠졌나, 병원에서 학교에 가도 된다는 말에 깊이 환호하며 학교에 갔다. 수호도 내가 보고 싶기는 했었던 것 같다. 만들기 재료로 쓰이는 철사로 ‘메기’라는 글자를 만들어 내게 수줍게 건넸으니 말이다. 여기서 메기란, 수호가 날 부를 때 쓰는 나의 하나뿐인 별명이다. 작년, 그러니까 중학교 3학년 때에 나에게 장난을 치는 것을 좋아했던 남자아이가 지어준 별명이라 메기라는 단어를 썩 좋아하진 않았다. 그런데 수호가 알고 나서는 나를 줄곧 이름 대신 메기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나’라는 존재를 메기라고 칭한 것이다. 아무도 부르지 않았던 나의 별명을 수호의 목소리로 듣게 되니 싫었던 별명마저도 좋아졌다. 이것이 like의 파급력이다. 도저히 뗄레야 뗄 수 없는 숙명 관계인 것이다. 어쩌면 이 내용은 조금 유머러스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강아지나 고양이 이름도 아닌 메기라니, 이거 좀 어이가 없으려나. 지금 당장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려보아라. 무엇이 떠오르는가? 서술할 수 조차 없는 많은 생각들 중에서도 당신의 호칭이 자리잡았을 것이다. 설령 그것이 이름에 성을 붙인 서늘한 호칭일지는 몰라도 당신만은 그것을 마음을 들어할 것이다. 이 부분은 다큐스러웠다. ‘Like의 모든 것’과 같은 제목이 붙을 것 같은 분위기이다. 어쩌면 내 이야기는 노래와 같다. 아니, 같을지도 모른다. 이 부분은 슬프지만 이 부분은 희망차고 당찬 분위기라면 사람들은 틀림없이 감명깊이 듣고 말거야. 아, 프로듀서나 해볼까. 최연소 한국 프로듀서로 이름을 날린다면 수호가 날 한 번 쯤은 다시 생각해볼텐데. 아니, 수호는 유명세에 눈을 돌리는 사람이 아니다. 애초에 그랬다면 우리 학교에서 가장 예쁘다고 소문이 난 여자아이에게 관심을 보이며 호감을 표시했겠지.

어쨋거나 나는 차였다는 것이다. 영어에 애착은 없지만 또다시 영어로 표현하자면 I was car. 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말장난이기는 하지만 정확히도 내 정곡을 찌르고 피를 보고야 만다. 어쩌면 내가 이 소설을 수호에게 보여줄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가 실화라면 말이다. 날 청소년 (아직 데뷔하지 않은)작가라고 칭해줬으면 좋겠다. 나의 진로는 거의 뭐 글쓰기, 그러니까 문학 쪽이 아니지만 미래는 나조차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다시 한 번 썸이 아닌 우리의 사이를 서술해보자. 이렇게 좀 왔다갔다 해주면 책이 재밌어졌던 것 같다. 일종의 스킬이라고 하고 싶다. 현재로써는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 모든 이들이 그렇게만 생각한다. 고정관념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나보다. 나는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다. ‘지금은’ ‘아무도’라는 단어로 보자면 지금 롸잇나우, 연애를 전혀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아닌가. 또 내가 아주 좋다고 말했다. 노래 제목도 아니고 좋다고 말했‘었’다. 그런데도 거절한 것에는 무조건 이유가 있다. 물론 이유의 유무는 내 영역이 아니지만 스토리 전개상 그렇다고 해보자. 나와 수호는 단짝친구 사이이다. 그냥 친구도 아닌 단짝친구이다.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남녀사이에 단짝친구가 있다는 것은 놀라울 따름이라고 생각한다. 보통은 썸남, 혹은 썸녀라고 부르니 말이다. 나는 남녀사이에 친구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경우에는 두 가지로 입장이 갈리기 마련인데, 나는 좀 더 현실성을 두고 정했다. 남녀가 친해지고 난 이후에는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이거나 양쪽의 쌍방 이렇게 두 가지 경우가 생긴다. 물론 이도저도아닌 그저 “친구”라 부를 수 있는 동성,이성의 문제를 넘어선 경우도 있다.

다시 한 번 말해 나에게는 한 번의 기회가 더 있다. 이건 차인 것이 아니지 않을까? 내가 정말 좋으면 이미 나에게 신경이 많이 쓰이고, 그러다가 호감도가 더 높아지고 이런 순정만화에서만 보던 전개가 나에게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설령 이게 사실이 아닌 ‘나’의 친구의 이야기라고 가정하에 보아도 충분히 신빙성있는 결론도출이다. 나는 수호와 2학년 반배정에서 반이 떨어지게 되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싶지만은 같은 반이 되었다면 주체하지 못하고 이상한 타이밍에서 고백을 하고 말았을 것이다. 결국 내가 이러한 삶을 살게 된 이유는 수호 덕분이다.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없는 끝까지는 그걸 향해 내달리고 있던 것일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A4용지의 세 장 분량을 꿰차고 있는 이 이야기의 끝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가? 그건 나만 아는 무명인의 이야기이다.

 

덧붙이는 글_ 지난 달 올린 '마음의 미소'를 작성한 학생입니다. 댓글로 조언을 주신 작가님의 충고를 머리와 마음에 새겨넣어 새로운 자세와 생각으로 써 본 글입니다. 이번 작품도 솔직하고 객관적인 조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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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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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시험이 끝났다. 중학교 1학년 기말고사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줄은 몰랐다. 시험이 끝나서 기쁘고 후련한 마음과 성적에 대한 쓰린 마음이 겹쳐 마음속이 복잡했다. 죄책감도 함께 들었다. 공부를 미뤄놓았던 날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시험은 내가 쓴 글씨 같았다. 나의 기대와 달리 삐뚤빼뚤하게 적히는 글씨가 꼭 시험을 닮았다. 시험은 글씨를 많이 써보지도 않았으면서, 예쁜 글씨를 바라는 나에게 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내 방 안의 모든 물건들이 크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젯밤 잠이 들지 않아 몸을 뒤척이느라 늦잠을 자서 일어나기 싫었다. 세월아 내월아 하며 겨우겨우 일어나 보니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침대가 마치 백두산 같이 느껴졌다. 발밑은 낭떠러지 같았고, 베게는 침대를 네 개 정도 붙여놓은 듯 컸다. 침대 앞의 전신거울을 보니 나의 몸은 마치 열쇠고리의 인형 크기와 유사했다. 그제 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작아졌다. 손목의 전자시계를 보니 시험3일 전, ‘6월27일’이 빛을 내며 깜빡거리고 있었다.

나는 이불을 타고 내려와 집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몸이 작아져서 마룻바닥 하나를 지나는데도 땀이 흘러내렸다. 우선 안방으로 가보았다. 순간 생각이 떠올랐다. 부모님이 출장을 가신 것이다. 학교에 어떻게 연락을 줄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작아진 몸으로 학교에 가봤자 날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화장대 위에 올려져있는 스마트폰 곁으로 갔다. 버튼이 스케치북 같았다. 화면을 켜 비밀번호를 하나하나 눌렀다. 발꿈치를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 겨우겨우 잠금 화면을 풀었다. 전화부에 들어가 담임 선생님 전화번호를 찾았다. 스마트폰 위에서 뛰고 있는 나의 발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문자를 눌렀다. 전화로 했다간 내 목소리가 닿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좌절했다. 문자를 보내려면 다시 뛰어야했다.

숨 좀 돌린 후 타자로 글자를 치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났다. “선생님 저 몸살에 걸려 학교에 못갈 것 같아요.” 한 문장을 완성했다. 더 썼다간 정말로 몸살에 걸릴 것 같아 그대로 전송을 눌렀다. 이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나는 학교에 가기로 결심했다. 시험이 3일 남은 지금, 학교를 빠질 수는 없었다. 나는 매일 부모님의 차를 타고 가는 친구의 차에 몰래 타기로 했다. 우선 친구 부모님 차의 바퀴를 타고 올라가 문 밑에 숨어 있다가 친구가 문을 여는 순간 들어갈 계획이다. 5분정도 지나니 친구가 왔다. 긴장 하고 있다 나는 차에 들어가는 것을 성공했다. 멀미를 하지 않는 나인데 유난히 멀미를 했다. 걸어서 15분이 걸리는 학교를 5분 만에 왔다. 나는 친구의 가방 앞주머니에 들어갔다.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걸어서 갔다면 2시간은 족히 걸렸을 것이다.

1교시는 자습시간이었다.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니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교무실에 가서 답안지를 봐도 안 들키겠지?’ 나조차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무섭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이미 교무실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고, 식은땀이 흘렀다. 손에는 힘이 들어갔으며 다리는 힘이 풀릴 것만 같았다.

교무실은 문이 열려있었다. 수업이 없으신 선생님 두 분만 계셔서 교무실은 공허한 느낌을 주었다. 책상 위로 올라갔다. 사회 선생님의 책상이었다. 내가 제일 못하는 과목이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느끼고 머리가 울리듯 아파왔다. 내가 이런 아이였나 싶었다. 내 손은 파일더미를 뒤지고 있다. 오직 한 생각만이 들었다. ‘답안지를 찾자!’파일의 중간쯤에 답안지가 있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뇌가 얼어버린 느낌과 죄책감이 밀려왔다.

글자를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1학년 2차 지필평가 사회 답안지’바로 밑에는 답이 있었다. ‘객관식’ 도저히 고개를 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내면속의 나는 굳게 결심을 내렸다. 한 글자씩 천천히 읽다가 나중에는 더 빠른 속도로 읽으려고 조급해했다. 금방이라도 사회 선생님께서 내려와 나를 쳐다볼 것만 같았다. 마지막 답안과 페이지 수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읽은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미 봐버린 답안은 머릿속에서 영영 지워지지 않을듯했다. 귀가 멍해졌다. 정신을 놓았는지 소리가 점점 들리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려는 순간 인기척이 느껴졌다. 소리는 들렸지만 내 뒤의 소리는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아주 조금 몸을 틀었다. 내 외면의 눈동자와 사회 선생님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나는 몸이 붕 뜨는 느낌과 동시에 모든 기억이 하나하나 머릿속을 스치며 지워지는 것을 느꼈다.

새가 지저귀고 있다. 그리고 햇빛이 따사롭게 나를 비추고 있다. 선선한 바람이 나를 간질였으며 마음은 홀가분하지만 무언가가 채워진 느낌이 들었다. 침대 옆 탁자의 전자시계에는 ‘6월 30일’이라는 글자가 유난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D-day라는 새로운 글씨도 보였다.

나의 입가에는 저번과는 전혀 다른 미소가 아주 천천히 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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