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학습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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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막이 책상들이 줄 서간 뒤로

대박이라는 형광불이 여기저기 흩뿌려졌어

이곳에 살고 있는 나의 이름은 수험생

공부벌레를 닮은 로봇이 되지

얼굴 위로 책을 일제히 펴는 순간

필기구를 장착하고 책상을 탁탁 두들기면

머릿속에 암호화된 기억장치로 수두룩해

시작 종소리와 맞먹은 얇은 종잇장 위로

머리에서부터 터져서 나온 폭포수

온 몸 구석들이 땀으로 흠뻑 물들였어

나의 생각을 다 받아주느라고

자동문이 열리기 시작했어

학습실 안 밝은 등불이 머리를 간파할 때

이제는 입시가 아닌 앞으로의 여정

나는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떠나서

끝없이 펼쳐진 반짝이는 바다처럼

인생을 운전하며 남겨진 추억들을 그려낼 거야

메모리 카드가 많이 필요할지도 몰라

자율경험은 무한소수를 닮아서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잖아

도서실을 지나 발걸음은 학습실 안 좌석

나는 스케치북을 펴서 그림을 그릴거야

대입의 지휘 아래로 휘둘렸던 나,

진짜 나를 찾는 공부에 몰입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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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자는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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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자는 교실

 

자장가가 울려 퍼지는
인문계 고등학교 교과 교실
그림을 그려 나간 칠판 앞
선생님의 혼잣말이 도는 동안
우리들의 눈길은 책상 윗면을 향했어

 

그는 자기 할 수업만 이어서 했고
최면에 취해 버린 반 아이들
얼굴 맞대고 확성기 소리를 내가며
확 깨는 비타민을 투여했지만
곧이어 코골이로 받아치는 친구,
나의 잠 자는 수업을 방해하지 말래

 

점심이 곧 낮잠을 취하는 시간
밥이 입 안에 들어가면
항상 수면제를 몸에 진다는 친구들
그래서 수업 시작종이 울릴 때마다
공책 위로 분신사바를 하는
녀석들이 하나, 하나씩 늘어가

 

고개 들세요, 쳐 자지 말고
변함없이 툭 던지는 단골 대사
우리는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지만
금세 시들어가고

 

낮잠을 자는 시간은 무의미했어
우리는 학교라는 호텔에서
잠에 찌들리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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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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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책 펴는 소리만이 장식하는 학습실에

햇살이 좀처럼 들어서지 않는

해 뜰 무렵의 작지 않은 도서관

그 동안 한숨을 내 쉬며

잠시 정적을 깨뜨려 놓았던

사람들의 숨소리가 서로 귓가에 울렁거렸다, 천천히

우리는 그걸 밥 먹듯이 해왔고

처음부터 그래왔듯 한 장 한 장

참고서 문제집에 다시금 들어섰다

 

한 장, 한 장 참고서의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한껏 피어오르는 먼지들에

그만 두 눈을 감아버렸다

책은 짐짝 같은 가방처럼 이미 닫힌 지 오래

책상은 사람들의 침대가 되어

고이 잠들게 하였고 몇 번의 헛기침이

한 줌의 수면제가 되어 되돌아왔다

 

잠자리의 횟수가 점차 늘어갈수록

닫혀버린 참고서로 쏟아진 산산 조각난 꿈들

그것은 곧 독감처럼

여러 사람들에게 전염되어 나타났고

도서관은 앞으로의 시간을

점차 좀먹어가는 중이었다

 

도서관은 앞으로의 삶을 잃어버려

지쳐버린 사람들이 모이는 집합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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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의 답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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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의 답은 알 수 없었다

 

공식이 수두룩한 고등 수학 교과서
두 눈의 초점이 점점 희미해져
그러다 손에 꽉 쥔 연필은 갈 곳을 잃어
공백으로 자주 추락하곤 해

 

복합된 공식들이 감겨오는 수학시간
나는 저절로 빗 속을 헤매는 꿈을 꿔
우산 없이 온 몸으로 얻어 맞듯이
칠판에 술술 찍혀나오는 숫자들의 모임에
나의 머리는 두문불출 상태야

 

선생님 그래서 답은 얼마에요
'5+5=10' 이처럼 간단하게 나올 순 없을까요
순환소수처럼 걷잡을 수 없이
자꾸 커지는 산수의 위력에
나는 숫자 위에
숫자는 교과서 위에 주저앉아
줄줄 흐르는 식은땀을 관람하고 있어

 

이번 수학 시간의 결말은
끝내 공식의 답은 알 수 없었음으로
내 아픈 머리만 억울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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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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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한 평 남짓한
쥐구멍 같은 공간
구멍 숭숭 뚫린 대문을 단 채
야윈 동생과 한솥밥을 먹는
내 친구가 살고 있습니다

 

아스라이 피어나는
하얀 형광등 아래로
줄 지은 개미들처럼 모여들어
얇은 종이 같은 배 밖으로
꼬르륵 소리를 떨쳐냅니다

 

홀연히 하늘 위에 그려진
작은 그믐별 아래
좁은 단칸방 구석지기에
어둠을 식사로 삼아 한 끼 때우고
창 밖의 밝은 별이 되길 꿈꾸며
고단한 숨통을 삼키길 반복합니다

 

마음 속 쌓아둔 서늘함
이미 숱한 아픔과 외로움이 어우러진
자리에는 아직 어둠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내 친구는 눈부신 바깥 세상을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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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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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는 마을

 

검은 잉크들이
뚝뚝 떨어져 번져진 마을 한복판,
녹 슨 고장난 시계탑이
나를 애달프게 바라보고 있다
검은 천에 가려서인지
초침이 움직이지 않을 때
긴 시계바늘을 세게 밀는 순간
나의 손가락은 따끔거렸다
시계탑은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 마을엔 아무것도 없는 걸까
멋대로 멈춰진 시간의 끝을
외로이 건드리며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이 초라했다
운명을 체념하는 듯
마을에는 개미 그림자도,
살아간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새까만 늪에 가라앉아
허공만이 인근을 맴돌았다
애초부터 시작과 끝은
끝내 존재하지 않은 것일까
일 초의 딸깍거림 없이
우두커니 서 있는 시계탑 앞에
나는 나의 숨소리를 심어주었다
나와 이 마을은
끝내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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