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슬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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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일단 전화를 끊었다. 신호가 가고 받는 사람이 있으니 아주 틀린 번호는 아니었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사람은 엄마가 아니었다. 중년을 넘긴 목소리로 가래를 뱉고 난 이후인 듯 탁하면서도 갈라진 음성이었다. 바람 소리마저 섞여 나와 얼른 알아듣기조차 힘든 목소리였다. 이모가 넘긴 번호가 잘못된 것일까? 지금 이 순간 내가 통화를 해야 할 사람은 엄마였다. 지난 석 달 동안 망설여 온 일을 마침내 결행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 전화를 받은 것이다. 교정을 막 지나 교문을 벗어난 무렵이었다. 수업이 채 시작되기도 전에 감행되는 무단이탈이었다.

 

사고는 조회 직후 벌어졌다. 충동을 참지 못해 벌인 그 일로 인해 교실은 발칵 뒤집혔다. 조회를 마치고 나가던 담임까지 돌아와 그 상황을 목격해 버렸다. 어쩌면 학교에서는 나의 그 일로 인해 학생부 선생님들이 소집되고 교장과 교감이 참석한 자리에서 나에 대한 징계절차가 진행될지도 모른다. 전혀 억울한 감이 없지는 않지만, 결과를 두고 보면 나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모든 일은 원인과 결과로 짝을 이룬다. 원인이 개떡 같으면 결과도 개떡이 될 수밖에 없다. 오늘 아침의 일이 바로 그랬다. 문제는 담임한테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상황이 그처럼 악화일로로 걷게 된 원인 중에는 무성의로 일관하는 선생님의 탓이 컸다.

조회가 끝나는 시점에 나는 교탁으로 나가 상담을 신청했다. 등교 시 교문에서 또 내 곱슬머리를 두고 시비가 오고 갔던 것이다. 나는 파마를 한 머리가 아니었다. 학년 초부터 학생부의 지적이 끊이지 않자 수차례 담임 선생님께 중재를 부탁했었다.

조금만 신경 써서보면 내 머리가 파마한 머리인지 곱슬머리인지는 금방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내 곱슬머리를 걸고넘어지는 학생부 언니들이 있었다. 나는 그 이유가 다분히 질투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했다. 전교에서 곱슬머리가 나만이 아니었다. 곱슬로 인정받아 아무렇지도 않게 교문을 들락거리는 학생이 적지 않았다. 그들의 머리는 하나같이 수세미처럼 얽혀 꼴사나운 모습이었다. 뜨거운 열기에 고스러진 아프리카의 태양 볕을 떠올리게 하는 머리카락이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내 머리는 전체 적으로 살짝 웨이브만 들어가 있다. 어떻게 보면 미장원에서 손질을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엄마로부터 물려받아 그렇다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내 머리는 예쁜 편이었다. 얼굴 안 본 지 꽤 오래되었지만 갈색 곱슬머리의 엄마는 여전히 내 휴대폰 배경화면에서 웃는 모습을 하고 있다.

교칙은 파마머리는 금지였다. 일 학년 때는 마지못해 풀고 다녔는데 아침마다 고대기로 머리카락을 펴는 일이 장난이 아니었다. 머리 손질을 하느라 아침마저 거르고 등교하기가 일수였다.

이 학년이 되면서 나는 태도를 바꾸었다. 더 이상 의미 없는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파마한 머리가 아니다. 교칙이 어찌 됐든 타고난 머리를 어찌하란 말인가. 내가 원하는 것은 담임이 학생부로 가서 내 머리가 곱슬머리라고 보증을 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면 된다. 간단하지 않은가. 그러면 더는 교문에서 선도부 언니들로부터 지적당할 필요도 없고 복장 검사 기간에 머리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게 된다. 그게 어렵나? 그것이 담임이 할 일이 아닌가?

담임은 요지부동이었다. 일 학년 때는 어떻게 해서 머리를 펴고 다녔냐고 했다. 나는 한숨이 흘렀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반복한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담임을 쏘아보았다. 메추리. 속으로 담임의 별명을 읊조렸다. 내가 붙인 나만 아는 별명이다. 덩치 작은 사람은 속도 좁은 것일까? 속 좁은 남자에게 붙일 마땅한 별명이 떠오르지 않아 학년 초 임시로 붙여 놓았는데 그 후로 다른 별명을 찾지 못해 그대로 메추리라고 부르고 있다. 문득 담임의 벗어진 앞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담임이 적극적으로 변호를 꺼리는 이유가 저 대머리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머리숱이 없는 사람은 머리숱이 많은 사람을 본능적으로 질투하는 것일까?

대머리가 손을 내저으며 그만 가보라. 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대로 그냥 갈 수 없었다. 휴대폰에 담긴 엄마의 사진을 내보이면 곱슬머리로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유전인 것을 알면 도리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나는 곧 포기했다. 담임은 어딘지 야비한 면이 있는 편이었다. 오십을 넘긴 나이에 걸맞지 않게 포용력이라고는 없는 쫀쫀한 남자였다. 엄마 사진을 보이면 엄마의 머리도 파마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라고 할 사람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평범하지 못한 내 가정사만 드러내 상처를 받을 수 있었다.

 

선도부만 나무라기보다. 너도 성의를 보여야 할 게 아니냐.

 

우물쭈물하고 가지 않고 서 있자 담임이 한 말이었다. 무슨 말인지 얼른 이해가 안 갔다. 어떻게 성의를 보이란 말인지 모르겠다. 는 표정을 짓자 담임은 일학년 때 펴고 다녔으면 이학년 때라고 그러지 못할 이유가 뭐냐고 했다. 그러면서 매번 지적당하면서 한 번도 성의를 보이지 않은 나를 꾸짖었다. 지적한 사람을 봐서라도 한 번쯤은 머리를 펴고 등교하는 게 하급생으로서 도리라는 것이다. 말문이 콱 막혔다. 게다가 담임은 어안이 벙벙해 서 있는 나에게 따지듯 대드는 태도도 매우 불손하니 고치라는 충고까지 보탰다. 혹을 떼려다 혹 붙인 꼴이 되어버렸다.

나는 물러났다. 더 이상 할 말 없어 가라니 물러날 도리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건 아니지 싶었다. 내가 곱슬머리로 태어나고 싶어 곱슬머리가 된 것이 아니다. 까만 피부가 씻지 않아서가 아니라 타고 난 피부가 그렇듯이 머리카락도 유전이다. 사람마다 타고난 특징이 있는 것이다. 키가 크고 작은 사람, 뚱뚱이와 홀쭉이, 머리 좋고 나쁜 사람, 그림을 잘 그리는 학생과 노래를 잘하는 학생…, 그런데도 학교는 학생들을 몽땅 붕어빵처럼 같은 꼴로 만들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보였다. 짜증을 내며 돌아와서 앉는데 등 뒤에서 들리는 말이 있었다. 내 곱슬머리 때문에 학급 생활점수가 바닥을 긴다는 누군가의 불평이었다. 얼굴이 널찍해 세수대아라고 별명 지어 붙인 아이였다. 물론 그것도 나만 아는 별명이었다.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반장을 두고서도 시시콜콜한 문제까지 학급 일은 제가 나서서 챙겨야 직성이 풀린다는 덩치였다. 제 덩치만 믿고 평소 군림하려 드는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그딴 소리까지 듣게 되자 확 끌어 올랐다. 담임은 학급 일에 있어 반장보다 은근히 이 덩치를 믿고 의지했다.

 

조회를 마친 담임이 밖으로 나갔다. 보통 때 같으면 참았을 것이다. 하지만 별것 아닌 것도 그렇지 못할 때가 있었다. 오늘 아침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등교 때부터 구린 기분은 담임과의 상담으로 더욱 구겨져 버렸다. 그곳에 기름을 붓듯 덩치의 비아냥까지 더해졌다. 나 들으라고 그런 소리를 대놓고 할 수 있는 아이는 우리 학급에서 많지 않았다. 성깔 하면 중학교 때부터 소문이 나 있는 나였다. 저것이 담임을 믿고 저러나 싶어 참을 수 없었다. 방심하고 있는 덩치 곁으로 다가가 왕창 머리채를 낚아채 버렸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덩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끌려 나왔다. 덩치를 둘러싸고 있던 아이들이 황급히 달아났다. 나는 머리채를 잡아끌며 좌우로 흔들어 내동댕이쳐버렸다. 교실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수업을 기다리던 아이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세수대아가 넘어진 쪽을 바라보았다. 자빠진 덩치의 옆 꾸리를 걷어차고 있는데 밖으로 나간 담임이 돌연 돌아왔다. 엎어지고 넘어지는 소리로 요란하던 교실은 순식간에 찬물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꺼억! 꺼억! 거리는 세수대아의 괴상한 비명만이 교실 안을 떠돌았다. 아이들은 담임과 나, 그리고 넘어진 덩치를 번갈아 보며 아연실색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니…. 저, 저 녀석이.

 

담임은 말을 잇지 못했다. 몇몇 아이들이 넘어진 세수대아를 살피기 시작했다. 후회할 짓을 또 저지르고 만 것이다. 분노를 주저앉혀야 하는데 나는 움켜쥔 주먹을 풀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지금 내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얼까? 하고 바쁘게 생각했다. 낯을 가리고 주저앉아 펑펑 우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이 충동적인 사고를 저지른 것에 대한 반성으로 보이지 않겠는가 말이다. 달아나버릴까?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나를 맡은 담임들은 나 때문에 골머리를 싸안았다고 들었다. 지금 담임도 나에 대한 소문을 들었음이 분명했다. 그는 학년 초부터 편견으로 나를 대했다. 나의 지각에 대해서도, 나의 결석에 대해서도 남들과 똑같은 이유를 들이대도 담임은 내 말은 곧이곧대로 믿어주지 않았다. 그래도 담임 앞에 고개를 숙이거나 했어야 했었다. 그것이 학생다운 처신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갑자기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담임한테 비굴해지기 싫었다. 굉장히 센 내 자존심 탓이었다. 엄마를 닮아 그렇다고들 했다. 고집이 센 엄마는 자식과 남편을 버리고 집을 나가 소식을 끊고 산다. 엄마가 집 나가고, 할머니가 폐지를 줍고, 실업자나 다름없는 아빠의 밑에서 자라는 계집애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느냐 말이다. 깡다구나 성깔만이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편이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듣기 싫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담임의 시선을 맞받았다. 담임은 확실히 당황하는 것 같았다. 벗어진 앞머리를 따라 붉은빛이 정수리를 향해 뻗고 있었다. 평소에 나를 곱게 보지 못하는 이유가 대드는 태도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 못된 버릇을 가감 없이 노출시킨 것이다. 이제 퇴로는 없다. 어쩐지 낯선 곳에 혼자 버려진 것만 같은 고독이 심하게 밀려왔다. 외롭기도 했다.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집 나간 이후 한 번도 그리워해 본 적이 없는 엄마였다. 집 나간 후 한 번도 자식을 찾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사건은 원인과 결과로 짝을 이룬다.

 

말썽이 터질 때마다 담임들은 집에 없는 엄마를 찾았다. 내가 입을 닫을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담임들은 그 태도를 반항으로 받아들였다. 중학교를 막 입학했을 무렵이었다. 차라리 이혼해서 호적이라도 깔끔하게 정리되었다면 나는 오히려 당당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엄마는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엄마가 집을 나갔어요.’ 어떻게 14살 계집아이 입에서 그와 같은 고백을 강요한단 말인가. 게다가 나는 굉장히 자존심이 센 아이였다. 담임은 숙이지 않고 쳐든 내 머리를 쥐어박으려 했다. 나는 피했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와 주섬주섬 가방을 챙겼다. ‘너 안 서!’ 담임은 불렀고 나는, ‘엄마 데려오라면서요.’ 맞받았다. 그때의 사건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소문은 삽시간에 선생님들 사이에 돌았고 그 후 누구도 편견 없이 나를 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남들과 똑같은 실수도 고의나 반항으로 해석했다. ‘김 선생님, 민정이 걔 담임 맡으셨다면서요. 호호호…. 신경 좀 쓰이겠어요. ’ 학년 초, 일 학년 때 담임이 복도를 걸으면서 현재의 담임한테 하는 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를 화장실 세면대 앞에서 들었다. 이를 앙다물었다. 그렇지만 마음과 달리 달려 나가 따지지 못했다. 세차게 쏟아지는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은 채 붙박인 듯 서 있었다. 차가운 표정의 여자아이가 거울 속에서 나를 노려보고 서 있었다.

 

나는 가방을 챙겼다. 아이들이 우르르 물러나며 길을 터주었다. 이모는 정확히 석 달 전 할머니 장례식에 와서 엄마의 연락처가 적힌 메모지를 남기고 갔다. 나에게 준 것이 아니라 아빠가 앉은 탁자 위로 밀어놓았다. 딸만 내리 다섯을 나은 외할머니는 막내인 외삼촌을 낳고 더 이상 임신을 하지 않았다. 아마 외삼촌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외할머니는 일곱이든 여덟이든 또 아기를 낳았을 것이다. 그때는 왜 사내아이를 낳지 못해 안달했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외할머니의 다섯 딸 중에서 셋째였다. 엄마의 가출 이후 외갓집과도 소원해졌는데 어떻게 소식을 접했는지 맏이인 큰 이모가 문상을 다녀갔다.

 

재부보기 면목 없네만 민정이 엄마가 워낙 고집이 드센지라….

 

아빠가 먼저 연락하는 게 어떻겠냐는 타진인 셈인데 아빠는 이모가 남긴 쪽지를 챙기지 않았다. 이모가 떠나고 상조회에서 나온 도우미 아주머니가 상 위의 것을 치우면서 메모지도 함께 걷어갔다. 나중에 쓰레기통을 뒤져 찾아내 간직하게 된 것이었다. 아빠는 어떨지 몰라도 나는 다르다. 나는 엄마한테도 자식인 만큼 연락하고 만날 자격이 있었다. 그런데 처음의 마음과는 달리 까닭 없이 차일피일 미루기만 할 뿐 나는 선뜻 전화를 걸지 못했다. 이유는 딱히 모르겠다. 어쩌면 자존심 때문일 수도 있었다. 자식을 찾지 않은 엄마를 왜 내가 먼저 연락해야 하지?

그 미루었던 전화를 갑자기 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가출한 엄마와 통화 할 장소로서 교실은 적합한 곳이 아니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문으로 향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반장이었다. 곧이어 ‘놔줘! 놔줘! 가라고 해!’ 고함을 치는 대머리의 소리가 뒤를 따랐다. 나는 계단으로 뛰었다. 전화를 해서 엄마한테 따져 물을 생각이었다. 남편이 실직하고 시부모를 모신다고 해서 누구나 다 가출을 하지는 않는다. 자식이 딸린 사람은 이런 식으로 가정을 내팽개치면 안 되는 것이다. 엄마 없이 자란 계집애가 어떤 꼴로 하루하루를 버티는지 속 시원하게 퍼부어 줄 생각이었다.

이모의 말로는 창원 어디라고 했는데 마음만 먹으면 한두 시간 내로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서울에 있네, 대구에 있네 하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결국 엄마가 있는 곳은 창원이었나 보았다. 아니면 그동안 떠돌다가 최근에 그곳에 정착한 것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곳이 어디든 찾아가서 만날 생각이었다. 노동일에 익숙하지 않은 아빠는 그동안의 고생으로 얼굴이 까맣게 죽어 있었다. 어딘가 몸이 좋지 못한 것이 틀림없지만, 병원에 가기를 꺼렸다. 눈은 노랗게 황달이 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집안 꼴은 엉망이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살림을 하고 들앉아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넌 누구냐?

 

수화기 건너의 목소리는 엄마의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엄마일 거라 예상했던 나는 당황했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딸이 엄마 목소리를 구별하지 못하지는 않는다. 수화기 건너의 목소리는 엄마 나잇대보다 훨씬 나이든 음성이었다. 번호를 잘못 눌렀나 싶어 얼른 끊었다. 휴대폰에 찍힌 번호와 메모에 적힌 번호를 대조했다. 맞다. 그렇다면 엄마가 자리를 비운 사이 다른 사람이 대신 받은 모양이었다. 이십 분쯤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 정도 시간이면 화장실에 갔더라도 나왔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전화 받는 사람은 엄마가 아니었다. 확인해야겠기에 엄마의 이름을 들먹였다.

 

고영애? 누구지? 글쎄 잘 모르겠는데.

 

그러면서도 전화를 받은 여자는 ‘고영애’를 찾는 사람이 누구냐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왔다. 누구인지 알아야 바꿔주든 구워삶든 하겠다는 퉁명스러운 어투였다. 나는 순간 망설였다. 엄마와 떨어져 산 지 5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 한 번도 엄마를 찾은 적은 없었다. 정확히 말해 내가 엄마를 찾지 않은 건 아니고 엄마가 나를 찾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엄마 연락처를 알지 못했다. 엄마의 가출 이후도 우리 집은 이사한 적이 없으니 마음만 먹으면 엄마는 언제든 나에게 연락할 수 있었다. 아빠는? 글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빠가 그동안 엄마가 있는 곳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현재 아빠의 처지로 보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빠는 여전히 반 실업상태였다. 한때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좋은 직업을 가진 적 있는 아빠는 현재는 아침마다 직업소개소를 전전하며 날품을 팔고 있다. 비가 오거나 궂은 날이면 이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지난날 개발한 프로그램 소스를 들여다보며 왼 종일 소일했다. 아빠의 조기 실직과 큰아버지의 사망으로 떠안게 된 할머니, 이것이 엄마가 집을 나간 직접적인 이유였다.

모든 사건은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인과관계를 따지자면 그렇다는 뜻이다. 따라서 원인이 달라지면 결과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지난 6월의 일이었다. 나는 할머니와 같은 방을 썼다. 장장 6년 동안의 동거였다. 더는 노인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보다 내 교복을 빨고 아침 등교를 도울 사람이 없어졌다는 불편이 먼저 다가왔다. 아빠는 대게 아침을 거르고 나간다. 그렇지만 자식까지 굶기기는 미안했는지 식탁에는 만 원권이든 오천 원이든 지폐 한 장을 놓아둔다. 어떨 때는 아무것도 없을 때도 있었다.

 

중년 여인은 아는 사람이면 바꿔 줄 수 있다는 뉘앙스였지만 그녀는 정작 엄마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이모가 번호를 잘못 적은 것일까? 어쨌든 엄마 전화번호가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머뭇대던 나는 실례했었다는 말만 남기고 얼른 끊었다. 번호가 잘못된 것이라면 이모한테 연락을 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이모의 전화번호를 모르고 있었다. 아빠야 당연히 알겠지만, 엄마와 통화하기 위해 이모의 연락처를 달라고 한다면 허락할 아빠가 아니었다. 잠시 골똘히 생각하던 나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말자 아빠의 컴퓨터가 놓인 책상 앞에 앉았다. 책상에는 며칠 째 치우지 않은 담배꽁초가 재떨이에 수북이 쌓여있었다. 찌든 담배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나는 컴퓨터가 켜지자 네이버 지도를 실행하여 이모가 일하는 밀양 시장의 상가 건물들을 검색했다. 로드뷰를 실행하고 골목을 따라가다 보니 다행히 이모네 기름집 간판이 보였다. 전화번호도 선명했다.

이모는 갑작스러운 내 전화에 놀란 모양이었다. 나나 아빠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것으로 생각한 것 같았다. 곧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자 목소리의 톤이 낮아졌다. 한창 손님이 몰리는 시간대라서 그런지 이모는 통화에 잘 집중하지 못했다. 수화기 너머로 손님과의 대화가 수시로 섞이고 있었다.

 

이모…. 먼저 주신 전화번호가 잘못된 거예요.

 

뭐라고? 그건 5천 원이고 그쪽 것은 6천 원…. 그 번호를 네가 왜 가지고 있니? 아니, 아니, 그쪽이 6천 원 요. 네네…. 미안해 오늘 장날이라 좀 바빠. 어서 오세요. 그 번호로 네가 직접 연락하면 안 돼. 전화하지 마. 감사합니다. 또 들려주세요. 뭐! 전화했었다고? ……. 그게 아닌데…. 누구하고 통화했어? 어서 오세요. 모르는 사람? 누구? 안 되겠다. 민정아 이모가 이따 전화할게.

 

아빠한테 내민 쪽지를 내가 지니고 있는 것에 대해 적잖이 당황해하던 이모는 세 시간 정도가 지난 정오를 넘긴 오후에 전화를 해왔다.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았지만 손님들이 들이 닥치는 상황에서 차분히 설명하기 곤란했던가 보았다. 초조한 기다림을 견디지 못해 내 쪽에서 먼저 전화를 하려는 순간 벨이 울리고 휴대폰에 이모의 번호가 떴다.

이모는 그 번호가 엄마의 폰 번호가 아님을 시인했다. 올 초 걸려온 번호를 적어두었는데 알고 보니 엄마 폰 번호가 아니라 엄마가 일하는 식당 전화번호더라고 했다. 이모도 지난 몇 년간 연락하거나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무슨 까닭인지 내가 직접 연락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민정아 알겠지? 전화하지 마. 절대 네가 전화해서는 안 돼.

 

하지만 이모의 그 당부는 오히려 나의 궁금증과 의심을 더욱 부채질하는 결과를 나았다. 게다가 나는 하지 말라면 더 하고야 마는 못된 기질을 타고난 아이였다. 어쨌든 엄마와 연락할 수 있는 번호는 맞지 않은가. 나는 엄마의 딸이고 자식은 필요하면 언제든 엄마한테 연락할 수 있어야 한다. 이모와 통화를 끝내고 나는 앞서 걸었던 번호로 세 번째 전화를 했다. 역시 이번에도 전화를 받는 사람은 오전에 통화 한 나이 든 여자였다. 이번에는 내가 누구라는 것을 밝히고 엄마 이름을 댔다. 딸이라는 신분을 밝히자 상대편에서는 조금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중년 여자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퉁명스럽게 말을 이었다. 딸이면서 어떻게 엄마 번호를 몰라 이런 곳에 직접 연락했냐는 것이었다. 이런 곳으로…? 어디지? 전화 받는 사람이 엄마와 어떤 관계인지는 몰라도 엄마의 신상에 대해서는 어두운 것이 분명했다. 도대체 누구일까? 하는 의문에 휩싸여 있는데 전화기 건너 누군가가 ‘정아가 고영애예요.’ 속삭이듯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가명까지 쓰고 있었다. 일반 식당이 아닌 것 같았다. 업소임이 분명했다. 마음이 심란해졌다. 이모가 그토록 전화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이유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아라는 여자가 그 업소에서 주방일이나 거들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알았다. 여기 찍힌 번호로 연락하면 되지? 엄마한테 전하마.

 

딱딱하던 중년 여자의 태도가 많이 부드러워졌다. 그쯤 해서 통화를 끝내야 했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잠시 뜸을 들인 후 나는 그곳이 어디냐고 물어버린 것이다. 당돌한 내 질문에 느긋하던 중년 여자는 당황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이내 꾸짖는 목소리로 ‘그러면 못써.’ 했다.

 

왜요? 술집인가요? 정아라는 여자한테 전해주세요. 오늘까지 연락 안 하면 딸년도 내일부터 술집 나가 몸을 팔 거라고요.

 

전화를 끊었다. 아빠는 알고 있었던 것일까? 까닭을 모를 배신감에 손이 떨렸다. 엄마와 아빠의 재결합은 물 건너간 것일 수 있었다. 아빠는 요즘 끊었던 담배를 다시 태운다. 과음도 잦다. 눈알이 노란 사람이 베란다에 서서 담배를 태우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심란했다. 청소가 안 된 집안 꼴은 엉망이었다. 세탁물이 쌓여도 아빠도 나도 세탁기를 돌리지 않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우리 부녀는 갈팡질팡할 뿐 중심을 잃고 있었다. 바닥없는 수렁에 빠져 추락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 추락이 멈추려면 엄마가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어차피 엄마한테 연락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안 하는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머저리같이….

 

나는 안정을 찾지 못하고 거실을 서성거렸다. 주방이며 다용도실을 오락가락했다. 냉장고 문을 벌컥 열었다. 미루었던 점심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냉장고 안은 텅텅 빈 채로 돌고 있었다. 아빠가 마시고 남긴 술병을 집어냈다. 빈속에 연거푸 두 잔을 마시자 갑자기 속 안이 울렁거렸다. 나는 인상을 썼다. 힘주어 입술을 꼭 다물었다. 속이 좀 진정됐다. 잘한다. 가출한 엄마는 술집에 나가고 딸년은 학교를 박차고 나와 집에서 술이나 처마시고….

넘어진 세수대아와 담임의 모습이 떠올랐다. 진짜 재수 옴 붙은 날이다. 곱슬머리만 트집 잡지 않았어도 그런 일은 없었을 거였다. 내 잘못이 아니다. 아니, 다 내 잘못이다. 아니, 엄마 탓이다. 엄마만 집을 나가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로 짝을 이룬다.

술기운을 이기지 못해 식탁에 엎드려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엄마가 분명했다. 얼른 받았는데 아무런 말이 없다. 내 쪽에서 무슨 말을 하려는 찰라 전화가 뚝 끊겼다. 이 쌍! 걸려온 번호를 길게 눌렀다. 그러나 받지 않는다. 나는 기다렸다. 끈질기게 울리던 신호음이 갑자기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어쩌고 하는 안내 멘트로 넘어갔다. 나는 끊고 다시 눌렀다. 역시 받지 않았다. 잠시 후 같은 멘트가 반복되었다. 휴대폰을 내동댕이쳤다. 전화했으면 말을 해야 할 것 않냐!

나는 거실로 나왔다. 주방과 거실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거실 창밖은 잔뜩 흐려있다. 실내가 어두운 것은 날씨 때문이지만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은 그늘은 날씨 탓만 아니었다. 어차피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엄마는 5년 전에 집 나간 사람이다. 나는 스스로를 달래고자 안간애를 썼다. 일어나 전등 스위치를 올렸다. 실내가 밝아 졌다. 그러나 답답한 마음은 쉬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 취기 탓일 수도 있었다. 도대체 뭘 기대했던 것이지? 갑자기 허탈하기도 했다. 그때 바닥에 뒹굴고 있던 휴대폰이 다시 울기 시작했다. 같은 번호였다. 엄마였다.

 

민정아, 미안해!

 

한참 만에 우는 듯한 엄마의 음성이 건너왔다. 어쩌면 엄마도 나처럼 취해 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분을 참을 수 없는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뭐야 우는 거야? 왜 우는데? 울어야 할 사람은 엄마가 아니고 나야! 엄마 때문에 내가 어떤 꼴로 사는지 알기나 해? 나는 학교에서도 잘리게 생겼어. 모든 게 엄마 탓이야. 책임져! 책임지란 말이야. 나는 이제 열여덟밖에 안 됐단 말이야!

 

나는 악을 쓰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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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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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이다! 나는 재빨리 녀석이 사라진 너머를 살피기 위해 주방 창문에 매달렸다. 싱크대가 가로막고 있는 그곳에 머리를 밀어 넣고 까치발을 했다. 가로 오십에 세로 삼십 센티미터가 될까 말까 한 좁은 창밖에는 인근 건물의 외벽이 완고하게 막아서 있었다. 중화반점과 부동산 그리고 미용실이 입점해 있는 상가 건물은 내가 사는 5층짜리 빌라보다 꼭 한층 낮았다. 그래서 맨 꼭대기 층을 제외하면 나머지 세대의 베란다는 상가 건물에 막혀있어 낮에도 저녁처럼 컴컴했다. 목을 뽑고 위를 살피자 건물 사이로 가려졌던 하늘이 손바닥만 하게 드러났다. 그나마 건물에서 건물로 가로지르는 각종 전선에 의해 하늘은 여러 조각으로 분할되어 있었다.

 

나는 위로 향했던 고개를 돌려 급하게 아래를 살폈다. 그리고 녀석이 달아났을 법한 곳을 열심히 찾았다. 거리의 반대편에 가려진 건물의 외벽은 지저분했다. 햇볕이 닿지 않은 곳이라 곳곳에 검은 곰팡이 얼룩이 보이고 옥상 물통과 연결된 호스를 감싼 보온재는 낡을 대로 낡아 흉측한 뱀의 허물 같았다. 아래로, 혹은 위로 이어진 전선과 배관을 훑어나가던 내 시선이 3층의 창틀에서 멈추었다. 녀석이었다. 야옹! 에어컨 외기에 도사리고 앉은 녀석은 시선이 마주치자 낮은 울음소리를 냈다. 밝은 노랑에 흰색 줄무늬에 어울리지 않게 녀석의 울음은 어딘지 침울한 분위기가 담겨있었다.

 

어젯밤에도 녀석은 찢어진 방충망을 통해 뒤 베란다로 숨어들었었다. 밤사이 은밀하게 움직였지만 나는 녀석의 존재를 알아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녀석을 내쫓기 위해 일어나지 않았다. 너무 추워 이불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체온으로 덥혀놓은 온기를 잃지 않으려면 가능한 이불 속에서 웅크린 자세를 유지해야 했다. 가스는 장기연체로 공급이 중단된 상태였다. 고지서는 매달 배달되지만 나는 어떤 식으로 어디에 납부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수도세와 전기요금도 잔뜩 밀려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물과 전기는 아직 공급되고 있다. 대신 수도 검침원과 한전직원이 여러 차례 초인종을 눌러 엄마를 찾았다.

 

어른 안 계시니 어른?

 

나이보다 체격이 작은 탓에 그들은 중학생인 나를 초등학생처럼 취급하려 들었다. 나는 가능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시선을 깔았고 잘근잘근 손톱을 씹었다. 대답 대신 고개만 가로 저었다. 입술 위의 상처나 눈두덩의 멍 자국은 없는데도 나는 아직 사람들과 똑바로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어른이라면 엄마를 이야기할 터였다. 아빠가 없는 우리 집은 엄마가 유일한 어른이다. 그렇지만 엄마는 육 개월 전에 집을 나갔고 나는 정말 엄마의 행방을 몰랐다.

 

엄마 어디 가셨니? 언제 오셔?

 

검침원이 재차 물었지만 나는 역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더욱 고개를 숙이고 몸을 흔들어 댔다. 알고 있다면 진작 알려주었을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나의 출입과 우리 집을 감시하는 그 험상궂은 아저씨에게도 실토했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자기의 말대로 엄마를 어딘가로 끌고 가거나 감옥에 처넣을지도 모른다. 자식으로서 품어서는 안 될 생각이지만 나는 한때 그렇게라도 해서 엄마와 격리되고 싶은 적이 있었다. 엄마의 매질은 언제부터인지 부모가 딸에게 가하는 정상적인 체벌의 수준이 아니었다. 함부로 던진 물건에 맞아 입술이 찢어지고 멍이 드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아빠가 돌아가셔서 이제는 소용없어진 구두주걱으로 사정없이 후려쳤다. 그러던 엄마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지난 초여름의 일의 일이었다.

 

뭐 생각나는 게 없어? 어디로 간다든가. 평소와 다르게 한 행동 같은 거 말이야?

 

아저씨는 집요하게 엄마의 행적을 깨물었고 작은 단서라도 얻고자 어르기까지 했다. 그는 엄마가 큰돈을 빌리고 종적을 감추는 바람에 자기의 입장 곤란해졌다고 했다. 엄마가 끝내 나타나지 않으면 나를 대신 끌고 가 팔아버리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쳐 문을 박차고 신을 신은 채로 집 안 구석구석을 뒤지는 횡포를 일삼았다. 그런 아저씨도 최근 들어서는 많이 누그러진 태도를 보였다. 나도 엄마의 행적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믿는 눈치였다. 그렇지만 잊을만하면 나타났고, 그는 나에게 말을 시키며 내 얼굴에 나타난 변화를 관찰하려 들었다.

 

이제 오지 마!

 

나는 내뱉듯 쏘아댔다. 분명하게 내 의사를 드러내야겠기에 주변에 던질만한 물건이 없나 하고 둘러보았다. 싱크대와 개수대 근처에는 며칠째 방치한 설거지 감과 일회용 라면 컵 용기만이 흩어져 있었다. 어디선가 쾌쾌한 곰팡내가 올라왔다. 사기로 된 머그잔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물을 가득 담아 창문 밖으로 냅다 뿌려댔다. 그리고 재빠르게 고개를 내밀고 녀석이 앉았던 곳을 살폈다. 야옹! 물은 녀석의 근처에 도달하지 못한 것 같았다. 녀석은 여전히 도사리고 앉아 이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오지 말란 말이야.

 

창밖으로 주먹을 흔들어 보였다. 녀석을 보고 있으면 집 나간 엄마가 생각났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녀석을 부르던 엄마의 음성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나비야!

 

엄마는 가끔 생선 남긴 것이나 음식 찌꺼기를 담은 그릇을 베란다에 구석 놓아두곤 했다. 그리고 녀석을 불러댔다. 기르는 고양이가 아닌데도 녀석은 그때마다 용케도 엄마의 소리를 듣고 나타났다. 고장 난 새시문과 뚫린 방충망은 녀석을 위해 마련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벽체 어디를 타고 오는지 녀석은 소리 없이 나타나 베란다 안을 기웃거렸다.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나풀거리듯 뛰어내려 얌전히 자신의 몫을 해치우고 사라졌다. 그것이 이곳으로 이사를 한 이후 녀석과의 관계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와는 상관없는 엄마와의 관계였다. 녀석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는 사람은 엄마였고 애초에 녀석을 불러들인 사람도 엄마였다. 나는 아직 한 번도 녀석에게 먹이를 챙겨 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엄마는 사라졌다. 더는 먹이를 챙겨주는 사람도 없는데 녀석은 왜 집요하게 나타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창문을 닫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뭔가 챙겨 먹겠다고 나갔는데 녀석과 신경전을 벌이는 동안 생각이 달아나 버렸다. 배가 고프지만 참기로 했다. 게다가 뒤늦게 떠오른 것이지만 선반에는 컵라면이 더 이상 남아 있지도 않았다. 아침에 먹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가스 공급이 끊긴 이후로 컵라면으로만 끼니를 유지해 왔다. 더운물은 전기 포트로 끓일 수 있었다. 물만 부으면 간편히 조리할 수 있는 컵라면이야말로 지금의 내 처지를 위해 마련된 음식 같았다. 그러나 컵라면이 딱 떨어졌다. 라면을 사기 위해서는 밖으로 나가야 한다. 나는 나가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이상한 눈으로 나를 살피는 이웃도 슈퍼 아줌마도,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제대로 씻지 못한 탓이겠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불결한 물건을 대하듯 나와 거리를 두려 했다.

 

침대로 돌아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난방을 할 수 없는 집은 이불만 벗어나면 그대로 한대나 마찬가지였다. 이불 속에서도 오들오들 한기가 느껴졌다. 체온으로 이불 속을 덥히려면 얼마간 시간이 필요했다. 밤에는 끓인 물을 두세 겹 싼 비닐봉지에 넣어 수건으로 감싸 안았다. 그러면 어느 정도 견딜 만했다. 말랑말랑한 그것은 어릴 적 만지고 놀던 엄마의 젖을 생각나게 했다. 부드러운 향기가 맡아지는 그곳에 살짝 입술이라도 갖다 대면 엄마는 죽는다고 간지럼을 탔다. 다 큰 지지베가 이게 무슨 짓 이래 그래? 깔깔깔…그러면서도 싫지 않은지 꼭 나를 끌어안았다. 정확히 아빠가 사망하기 전까지의 엄마의 모습은 그랬다. 늘 다가가서 안기고 싶은 존재였고 실제로 엄마는 나를 그렇게 감싸주었다. 민정아, 엄마는 우리 사랑스러운 딸을 가진 것이 너무 행복해. 민정아 사랑한다. 부드럽게 머리를 쓸어주었다.

 

민정아…

 

나는 예전에 엄마가 내게 하듯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 보았다. 그렇지만 이내 나비야! 하는 길고양이를 부르는 엄마의 음성과 겹치면서 나도 모르게 데구루루 눈물이 흘렀다. 나는 훌쩍거리며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아빠의 사망은 교통사고였다. 그리고 누구나 교통사고를 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가족인 엄마에게 슬픔의 사유가 될지언정 어째서 분개할 만 일이 되는지 그때까지 나는 알지 못했다. 나에게는 아빠의 사망이 악몽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한시바삐 악몽에서 깨어나고자 발버둥을 쳤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엄마의 태도였다. 엄마는 아빠의 사고 소식을 접하던 처음을 제외하면 장례 기간 내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퍼렇게 날 선 눈으로 영정 사진을 노려볼 뿐이었다. 그 혼란스러운 상황이 나를 더욱 서럽게 만들었는데 놀라운 것은 그다음의 일이었다.

 

이년아, 안 그쳐! 뭔 잘난 애비 뒀다고 그렇게 서럽게 우니?

 

갑자기 훌쩍이는 나를 엄마가 밀쳐버렸다. 나는 바닥에 나뒹굴었고 엄마는 넘어진 나를 올라타고 앉았다. 엄마가 사정없이 내 머리를 낚아채 흔들기 시작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놀란 문상객들이 엄마를 뜯어말리기 위해 달려왔다. 나는 갑작스러운 아빠의 죽음으로 엄마의 머리가 일시적으로 이상해 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머리카락이 뜯기는 아픔조차 못 느끼고 가슴이 철렁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마당에 엄마까지 정신 줄을 놓아 버린다면… 그야말로 나에게는 끔찍한 상황이었다. 중학생인 내가 감당하기로는 너무 가혹한 형벌이었다.

 

민정이 엄마, 참아. 애가 무슨 잘못 있다고 그래.

 

그래 어쩌겠어. 산 그냥 사람은 살아야지. 이게 무슨 짓이야.

 

도무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나는 막연하게나마 떠난 아빠가 우리 가족에게 남긴 것이 단순히 슬픔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날 이후로 모든 것이 변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동안 살고 있던 아파트를 비워야 했으며 엄마는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찾아 전전했다.

 

배가 너무 고팠다. 잠시 잠이 들었던 것인데 배고픔에 못 이겨 다시 깼다. 잠이 들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어 좋았다. 그러나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악몽과도 같은 현실 속에 놓인 나를 발견하게 된다. 현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거실을 내다보았다. 그곳에는 도둑이 다녀간 것 마냥 어수선했다. 문짝이 떨어진 안방의 풍경도 을씨년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치 급하게 짐을 싸서 달아난 피난민의 집 같았다. 문짝의 경첩이 빠진 것은 엄마와 연락이 안 된다고 찾아온 아저씨가 신경질을 부리며 발로 찬 까닭이었다. 그는 재산이 몽땅 털린 사람처럼 흥분했고 거실과 안방, 그리고 침대 하나만 달랑 놓인 내방까지도 구석구석 뒤지고 다녔다. 그가 찾는 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나는 시종 거실 중앙에 꼼작 못하고 선 채로 공포에 질려 오들오들 떨어댔다.

 

발밑이 축축한 것을 깨달은 것은 그렇게 한 시간가량 난봉꾼이 휘젓고 돌아간 이후였다. 오줌을 싼 것이다. 나는 별안간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한번 터진 울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엄마가 없으면 매 맞을 일도 없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서럽기만 한지 모를 일이었다.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밤마다 무서움에 떨었다. 돌아올 사람이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가 되었다는 것이 그토록 끔찍하고 두려운 일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고아로 버려졌다는 외로움에 견디기가 어려웠다. 좁은 거실과 방 두 개에 불과한 공간이 마치 깊은 산 속처럼 광활하게 느껴졌다. 공포가 밀려왔다. 밤새도록 TV를 켜 놓았다. 자그마한 소리에도 소름이 돋아 몸을 도사렸다. 현관 밖에서 발소리가 날 때마다 살금살금 문 쪽으로 다가갔다. 화장실에 있는 목욕 의자를 가져와 딛고 서서 단추 구멍에 눈을 갖다 댔다. 어두컴컴한 계단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희미한 비상등 아래에 있는 사람은 엄마를 찾는 아저씨였다. 나를 감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언제이고 돌아올 엄마를 기다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그곳에서 서서 종종 담배를 태우며 새벽까지 머무르곤 했다.

 

어디선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거실의 소파에 이불을 감고 누워있던 나는 흠칫하며 TV의 볼룸 소리를 낮추었다. 그리고 귀를 기울였다. 분명히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잠잠했다. 나는 불안하게 주방 쪽을 살폈다. 소리가 난 곳이 주방과 연결된 뒤 베란다였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숨을 죽이던 소리가 다시 사각사각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현관으로 다가갈 때와 마찬가지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렇지만 빈손이 아니라 빗자루를 든 채였다. 짐작대로였다. 녀석이다. 녀석이 휴지와 라면 봉지 등속을 버리는 종이 상자에 들앉아 있었다. 잠자리를 마련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엄마가 사라진 후 먹이를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녀석도 한동안 종적을 감춘 상태였다. 그러다가 불현듯 나타난 것이다. 반가운 동시에 녀석의 등장은 나비야! 하는 다정한 엄마의 음성도 동시에 떠오르게 했다.

 

민정아… 엄마가 내 이름을 그렇게 다정하게 부르던 적이 있었던가. 이곳으로 이사 온 이후부터 나는 한 번도 사랑스러운 엄마의 딸로 대접받지 못했다. 그런데 녀석은 다르지 않았든가 말이다. 엄마는 예전의 엄마가 아니었다. 아빠의 교통사고가 보상 한 푼 기대할 수 없는 음주 상황인 데다 함께 사망한 동승자가 젊은 여자였다는 사실 하나가 엄마를 그처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엄마의 체벌이 점점 폭력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생계를 위해 이런저런 날일을 하면서부터였다. 주로 식당일인데 엄마는 늦은 밤 지친 모습으로 돌아왔다. 술에 취해 오는 날도 늘었다. 그러다가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고 매질을 해댔다. 내 존재가 아빠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 이유 같았다. 던진 물건에 머리가 터지고 멍이 드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어야 했다. 그러나 막무가내였다. 죽은 듯이 매를 받아들이면 그제야 엄마의 흥분은 조금씩 가라앉는데 나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그다음 순서였다. 조금 전과 달리 엄마는 막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전혀 딴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아아, 어쩌면 좋아. 민정아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엄마를 용서해줘.

 

딸의 몰골을 보고는 어찌하지 못해 끌어안으며 후회의 말을 쏟아냈다.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가 나를 때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매질을 가한 것은 아닐까하고 착각이 들 정도였다. 눈물을 흘려도 소리 내어 울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오히려 소리 내어 통곡하는 쪽은 엄마였다. 엄마는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망가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몇 년 사이 피부는 거칠어지고 잔주름이 늘고 있었다. 하지만 후회와 반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사흘이 멀다고 엄마의 미친 듯한 발짝은 재발하였다. 학교에 갈 수 없게 된 것도 그럴 무렵이었다. 얼굴에 난 상처와 멍 자국을 감추려면 그 방법 외는 없었다. 무단결석이 잦자 담임선생님은 나를 행실 나쁜 결손 가정의 문제아로 분류한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거의 일 년이 다되어 가도록 휴학 상태에 있지만 학교에서 연락이 온 것은 두 차례 담임선생님의 전화가 전부였다. 나이가 육십에 가까운 선생님은 자신의 반이었던 학생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민정이라는 이름을 몇 차례 ‘정미’로 했다가 ‘민영’으로 부르기도 했다.

 

정미, 아버지가 없구나. 네 장기 결석에 대해 엄마는 알고 있는 거니?

 

민정이예요.

 

그래 민영이, 엄마한테 연락이 안 되는구나. 전화번호가 바뀌었니?

 

선생님 저 민정이예요. 김민정.

 

그래. 알았다. 민정이. 근데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니. 너 되게 버릇없구나. 어른 말에 토나 달고 말이다. 아무튼, 몇 시쯤에 전활 해야 엄마랑 통화가 되는 거지? 아니다 네 엄마한테 전해라. 학교에 오시든지 선생님한테 전화 좀 넣어 달라고 말이야.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한 학년이 이미 끝났지만, 학교에서는 더 이상 연락이 없었다. 차라리 홀가분했다. 어쩌면 진작 퇴학처분이 내려졌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녀석이 야옹! 하고 다정한 울음소리를 냈다.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나에게 알리는 것 같았다. 나는 녀석이 그곳에 머무는 것을 손톱만큼도 허용하고 싶지 않았다. 불현듯 꼴도 보기 싫어진 것이다. 그것이 질투에서 비롯된 감정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녀석이 빤히 올려다보았다. 나는 높이 비를 치켜들었다. 여차하면 확 던질 기세였다. 낌새가 좋지 않다는 것을 눈치 챈 녀석이 휙! 하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리고 뚫어진 방충망 사이로 사라졌다.

 

머그잔으로 두 컵 가득 물배를 채우고 나니 조금 살만했다. 한낮 기온은 많이 풀어졌다. 거실 창으로 건너온 햇살이 실내의 차가운 기온을 걷어내고 있었다. 나는 해바라기를 할 요량으로 햇볕을 받기 쉬운 소파 위로 올라가 앉았다. 이불은 여전히 어깨에 두른 상태였다. 고개를 빼고 밖을 내다보았다. 골목 안에 지어진 건물이라 3층인데도 바라볼 수 있는 바깥 풍경은 아주 제한적이었다. 이웃 건물의 외벽과 얼기설기 엉킨 전선만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무슨 소리라도 들리는가 싶어 골목을 향해 잔뜩 귀를 기울여 보았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난 게 있어 벽시계를 힐끗 살피고 TV 리모컨을 찾았다.

 

뉴스 하는 시간이었다. 며칠 전 저수지에서 발견되었다는 변사체의 소식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시신은 훼손과 부패 정도가 심해 신원 파악에 애를 먹는다고 했다. 다만 주변에서 수거한 옷과 구두로 볼 때 40대 초반의 여성으로 보인다며 민소매 재킷 하나와 붉은색 구두 한 짝을 화면에 공개했다. 첫눈에 보기에도 엄마의 것은 아니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는 어쩌면 엄마가 스스로 죽음을 택해 집을 나갔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집을 나간 당시를 떠올려 볼 때 충분히 있을 법한 상상이었다. 이틀이 멀다고 반복되던 엄마의 매질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이다.

 

어느 날 나는 개수대로 옮기던 그릇 하나를 그만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린 적이 있었다. 엄마는 식탁을 훔치던 중이었다. 감전이라도 된 사람처럼 나는 어찌하지 못하고 엄마의 눈치만 보았다. 이어질 엄마의 고성과 매질을 감안할 때 숨도 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엄마는 조용히 나를 한쪽으로 밀쳤다. 쭈그리고 앉아 깨어진 조각을 모았다.

 

민정아 비와 쓰레받기 좀 가져 다 줄래.

 

잔뜩 긴장해 있던 나는 오히려 낮은 엄마의 음성에 화들짝 놀랐다. 엄마가 달라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외의 다른 변화도 눈에 띄게 드러났다. 평소 같지 않게 술을 마시거나 늦은 귀가도 없어졌다. 아침저녁으로 음식을 조리하는 엄마의 모습에서는 우리 모녀에게 불어 닥친 불행 이전을 단란함을 떠올리게도 했다. 하지만 불안은 쉽게 걷히지 않았다. 곁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그것은 언제든지 부서지고야 말 위태로운 안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무엇인가 불순한 것이 잠재되어 있었지만, 그 정체를 분명히 알 수 없는 것이 답답했다.

 

나는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엄마의 동태를 끊임없이 살폈다. 한 곳에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거실과 내 방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엄마의 눈가에는 확실히 깊은 우수가 서려 있었다. 그것은 노상 엄마의 이마 끝에 머무르던 근심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알고 싶었다. 도대체 뭘까?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엄마는 한숨 소리와 함께 밤잠도 쉽게 들지 못했다. 그렇게 일주일가량이 흘렀을 때 그 불안의 정체는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저녁 시간이었다. 외출준비를 마친 엄마가 내 방으로 건너와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무릎을 감싸고 안았다. 불안하게 흔들리던 시선이 엄마의 눈과 마주쳤다. 엄마의 표정은 전에 없이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결심을 굳힌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나는 얼마 동안 이어진 평화가 마침내 끝났음을 깨달았다. 막연하나마 나는 엄마가 나와의 이별을 준비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엄마는 단 한 번도 먹던 쌀이 동이 나기 전에 미리 새 포대를 들인 적이 없었다. 싱크대의 수납장에는 라면과 즉석조리 식품으로 가득 채워졌다. 냉장고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손에 쥔 무엇인가를 내 발끝에 놓았다. 끈으로 칭칭 동여맨 비닐로 감싼 물건이었다. 무엇이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감춰! 절대로 빼앗겨서는 안 돼.

 

엄마의 음성은 단호했다. 나는 불안해서 울음이 터지려 했다. 함께 데려가 달라고 떼를 쓰고 싶었지만 어쩐지 엄마가 용서하지 않을 것 같았다. 전처럼 매질을 할지도 몰랐다. 파랗게 질려 어찌하지 못하는 사이 엄마는 일어났다.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거실로 달려 나갔다. 그러나 엄마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가방만 챙겨 들고 현관으로 걸어갔다. 나는 바들바들 떨면서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으나 목이 잠겨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감청색 블라우스에 밤색 줄무늬의 칠보 바지를 입은 엄마가 흰색 샌들을 꿰신었다. 그것은 엄마가 식당일을 갈 때 입는 평소의 복장 그대로였다. 선체로 오줌을 싼 것을 안 것은 계단을 내려가는 엄마의 발소리가 아주 사라진 다음이었다. 나는 찔끔찔끔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수사는 난항을 겪고 있나 보았다. 보도 내용은 어제의 것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 162 센티미터의 키에 40대 초반의 여성이라는 인상착의와 민소매 재킷, 붉은 구두 한 짝을 반복적으로 화면에 내보냈다. 제보자를 찾는 중이라고 했다. 재킷과 구두로 볼 때 엄마는 아니었다. 비록 집을 나간 지 시간이 지났다고는 해도 민소매와 하이힐은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나는 불안한 심정을 가누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채널을 돌렸다. 뉴스는 각 채널마다 비슷한 시간대에 했다. 일반 방송에서 종편에 이르기까지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던 나는 잡자기 놀라서 손에 들린 리모컨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요란하게 초인종이 울렸던 것이다.

 

나중에는 쾅쾅! 발로 차기까지 했다. 엄마를 찾는 아저씨였다. 우리 집 현관문을 저렇게 함부로 발로 찰 수 있는 사람은 그 아저씨밖에 없었다. 초인종이 울리면 대개 나는 숨을 죽이고 내다보지 않는 편이었다. 빈집인 척 가장을 했다.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찾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엄마였다. 끝끝내 가지 않고 초인종을 눌러대 단추 구멍으로 내다보면 한전 직원이나 수도 검침원일 때도 있었다. 그들은 수차례 단전과 단수에 대해 경고를 했으나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차라리 안 만나는 편이 나았다. 꼭꼭 숨어버렸다. 그러나 그 아저씨라면 상황이 달랐다. 아저씨한테는 그와 같은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신을 벗지 않고 들어왔다. 발자국을 남기는 그의 구두가 신경이 쓰였으나 그렇다고 그에게 신을 벗어 달라고 말할 처지도 못되었다. 다른 사람이 와도 거실의 상태는 신을 벗고 들어오라고 하기에는 너무 지저분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그를 맞이했다. 밖에서의 염탐 정도는 알 수 없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의 방문은 뜸해진 편이었다. 그렇지만 보름에 한 번 꼴로 집안을 둘러보고 갔다. 자식이 있는 한 어떻게든 어미 된 처지에서 연락을 취하지나 않을까 하는 의심에서 비롯되는 것 같았다. 그는 주방이며 안방, 화장실을 기웃거리며 살피고 다녔다. 나는 시종 그의 손에 들린 커다란 봉투에서 시선을 때지 않았다. 해가 지면 사오려고 했던 컵라면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것을 보자 참고 있던 허기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나는 현기증에 비틀거렸다. 주방을 둘러보던 아저씨가 손에 든 것을 내밀었다.

 

먹을 만한 게 아무것도 없구나. 끼니는 제대로 때우는 거니?

 

나는 봉투를 받아들고 허겁지겁 주방으로 내달렸다. 포트에 물을 붓고 전원을 넣는 손이 와들와들 떨리고 있었다. 급하게 물이 끓기 시작했다. 컵라면 하나를 식탁에 두고 뚜껑을 땄다. 끊은 물을 날라 와서 붓는 동안 아저씨는 의자 하나를 당겨 먼지를 툭툭 털었다. 그리고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면발이 제대로 불기도 전에 덮어 둔 뚜껑을 들추었다. 치솟는 김을 헤치고 젓가락질을 했다. 너무 뜨거워 입에 넣은 것을 도로 쏟았다. 입으로 바람을 불어 면발을 식히느라 후우- 후우- 소리를 냈다.

 

천천히 먹어. 아무도 뺏어 먹을 사람 없으니.

 

나의 그러한 행동을 측은하게 지켜보던 아저씨가 한마디 했다. 그리고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한숨을 쉬듯 그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었다. 그는 이제 내가 제 어미로부터 버려진 고아에 불과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모양이었다. 그가 고개를 치켜세우고 천정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무슨 생각인지 골똘한 표정이 되어 간간이 손에 들린 담배만 입술로 가져가 빨았다. 나는 후루룩 거리며 면발을 빨아들이며 빈속을 채우기에 정신없었다.

 

참 독한 년이다. 네 어미란 년 말이다.

 

아저씨가 천정에 시선을 둔 채 혼자 말을 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젓가락질을 멈추고 거실에 켜 놓은 TV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그곳에는 앞서 본 채널의 뉴스와 같은 변사체에 대한 보도가 가로 늦게 보도되고 있었다. 내용은 전과 같았다. 다만 앞선 보도와 달리 자살로 추정되지만, 타살에 대한 가능성도 열어두고 수사를 확대한다는 소식이 추가되어 있었다. 민소매 재킷과 빨간 구두가 화면에 확대되고 있었다.

 

저기…

 

천정을 향했던 아저씨의 얼굴이 나를 바라보고는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따라갔다. 그곳엔 제보를 기다린다는 나이 든 수사관의 인터뷰와 함께 피해자의 유품이 화면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저거… 제 엄마 것이에요.

 

불현듯 나는 저 변사체가 엄마가 맞다. 고 단정을 해버렸다. 모르지 않는가? 엄마가 집을 나간 지 육 개월이 넘었다. 민소매와 하이힐이 엄마와 연결 짓기 어렵다고 해도 사람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아빠의 죽음 이후 엄마는 하루아침에 딴사람이 되었다. 그것을 감안할 때 육 개월이란 시간은 사람의 취향도 변화시켜 놓을 만한 충분한 시간이 아니겠는가. TV를 향하고 있던 아저씨의 동공이 크게 열리고 있었다.

 

엄마가 나가던 날 입은 옷과 구두예요.

 

나는 어째서 나 자신이 그와 같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아저씨의 입에 물려있던 담배가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나는 글썽거리며 눈물을 삼켰다. 그러면서도 감싸고 있는 라면 용기를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허기는 가셨지만 바닥이 드러나도록 국물을 삼켰다. 그릇을 내려놓자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더는 엄마를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엄마는 돌아오지 않을 게 분명하다. 아빠의 사망이후 엄마도 충분히 고통 받았다. 엄마한테 기회가 있다면 나 때문에 포기하라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나도 더 이상 배를 곯지 않을 작정이다. 숨어 지내지도 않을 것이다.

 

낭패한 표정의 아저씨가 허둥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쫓기듯이 현관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무슨 까닭인지 그는 곧 되돌아왔다. 우물쭈물하던 아저씨가 지갑에서 몇 장의 지폐를 꺼내 식탁 위에 놓았다. 그리고 뜸을 들인 후 속엣 말을 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이 유감이다만 네 알다시피 나도 피해자다. 복잡하게 얽히고 싶지 않구나. 알지? 내가 네 엄마의 죽음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거?

 

나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날이 저물고 있는지 실내가 어두워졌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는 것 같았다. 혼자 살아갈 일을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착잡한 심정이 되었다. 떠난 엄마는 돌아오지도 않을 것이다. 엄마는 철저히 준비했다. 만약 돌아올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준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비닐에 감싸인 그것을 확인했다. 육 개월 동안 한시도 내 주머니를 벗어나지 못한 그것은 내 명의로 개설된 통장이었다. 한 번도 찾아 쓴 적도 없었다. 그냥 그대로 지녔다. 마치 그것을 놓치면 영원히 엄마를 만나지 못할 거라는 불안 때문에 잠들면서도 손에서 놓지 않고 잤다.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불을 켰다. 실내가 밝혀짐과 동시에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뒤 베란다였다. 녀석이 찾아온 것이 분명했다. 모두가 떠났는데 녀석만이 고집스레 되돌아왔다. 이번에도 녀석이 웅크린 곳은 같은 장소이다. 야옹! 녀석은 내 반응이 어떨지 몰라 다정하게 우는 소리를 내면서도 시선을 때지 않았다. 나는 뒤로 물러섰다. 굳이 가지 않으려는 녀석을 내쫓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대신 포트에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녀석에게도 몫을 챙겨주어야 할 것 같아서였다. 녀석과 한 식구로 어울려 살면 덜 외로울 수도 있을 것이었다.

 

뜨거운 물에 불은 면발을 걷어 찬물에 헹궈 냈다. 접시에 담아 조심스럽게 베란다로 갔다. 웅크리고 있던 녀석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바닥에 접시를 밀어 놓으며 엄마가 그랬듯이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작지만 다정한 음성이었다.

 

나비야. 밥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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