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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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 시큼한 커피를

한 손엔 싸구려 볼펜을

 

그 끝에

이제는 나의 가치로 변모한

우리의 가치를 잉크삼아 묻히다

 

창 밖의 햇살이 몰아보낸

시린 겨울의 한기에

번저버린 자국들을 조용히 메만진다.

 

본질을 내몰아 펜 끝에 서린 실존

허락조차 구하지 않고

촉 끝을 타고 올라와

어둠을 아릿하게 울리는 것들이

 

그를 중력에 저항시키는

손가락 근육 섬유

안의 세포 조직

 

미세한 것 하나만 어긋나도

악취의 향기를  쏟아내며

낮은 바닥에서 최후를 맞이할

 

싸구려 커피,

그 무력한 파동에 불과함을

 

이제야 간신히 알기에

 

조용히 되뇌이는거지

죽어서 이름을 남길 수 없다면

살아서 당신께 고통의 향기나마 남길 수 있도록

 

목적을 잃어가는 섬유 조직 하나의 이성에

나는 자유의지를 불어넣고,

간신히 펜을 쥐고

다시 본질로 돌아간다

 

어느덧 펜촉에는 다시 가치들이 묻어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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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꽃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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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나 텅빈

어느 포장지 재질 속

미약한 바람에도 자지러지게 떨던 그녀는 생각한다

 

어울릴 수는 있었지만

같은 줄기가 될 순 없었나봐

 

조그마한 나는

붉게 타오르는 그로 인해

녹아내리고 또 부피를 늘려가

온힘으로 감싸안았었는데

 

그러다 바람이 거세지고

움칫 하던 그녀는 가만히 그것을 마주한다

 

어쩌면 그가 유난히 붉었던 게 아니라

내가 유난히 허였던 건 아닐까

 

자신의 흰색을 철저히 부정하듯

거세게 고개를 저어보지만

누우런 빛깔 상처로 남겨졌을 뿐

한 잎 한잎 도망치던 떠나간 그는

예전에도 그랬고 또 앞으로도 그렇듯

뜨겁기만,

계속 붉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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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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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사랑이 아니기에
우리가 함께하는 그 핑크빛 무언가로 취해있기보단
미련에 니가 좋아했던 매실 장아찌처럼 푹 절어 지내고 있다.
시큼하지만 꽤나 달짝지근한 맛이 나긴 하더라.

 

이제는 사랑이면 안되기에
밥상을 앞에 놓고 저녁은 먹었을까 니 속을 걱정하는 대신에
밥맛이 없다며 깨작이던 귀여운 네 얼굴을 조금씩 깨작이고 있다.
천천히 곱씹으니 나름 소화잘된 느낌이긴 하더라.

 

이제는 사랑일 수 없기에
네게 들인 매몰비용이 아쉬워 투자실패를 극복하고자
개미 투자자 주삭시세 확인하듯 네 깨끗한 타임라인을 체크하고 있다.
차분히 분석해보니 괜히 다 아는 것 같은 기분이긴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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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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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이다
떠나기에, 참 추운 날이다

 

길을 나선다면, 더 이상 세계는 없을 테다
문밖에 서 노크하는 너도
손목에서 움직이는 시계도
아스라이 번지는 달빛도
온 순간을 담던 내 세계는 없을 테다

 

북적한 세상에 적막함을 담고 싶었던 소망
차가운 유리파편으로 조각조각 사라지고
틈 사이로 들어간 잔재만이 당신의 세계에 존재하겠지

 

추억이라 불릴 것은 없었으면 한다
네 세계를 무너트릴 감정의 독을
고대해온 끝에서 주고싶지 않다
다만 사라져가는 존재가
너에게 티끌의 무게 정도 남기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니 고요한 숨결로 굳게 닫힌 문을 열어다오
뜨거운 눈물로 시린 내 몸을 안아다오
부드러운 손짓으로 굳은 내 팔을 끌어다오

 

추운 날이다
네가 어지간히 뜨거워서, 추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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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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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들의 사랑을 받는 주말 그 년놈들처럼
탄내 날 때까지 지지고 볶고
그런 마음은 아니었지만

 

메마른 땅 잦은 모래바람 속
서서히 파묻힌 그것들은
길었던 시간을 도둑길 삼아
슬그머니 걸어나오곤 했다

 

그러면 나는 그 모래바람 한 가운데에 서
아무도 모르게 깨진 보물들을 발굴해 본다.

 

더 이상 무엇일 수 없는 그것들은
한 때는 우리도 너의 반짝이던 기쁨이었노라고
부서진 몸뚱아리 떨어가며 외쳐대었지만
아, 그럴때면 나는 날카로운 잔해들을 맨손으로 주워내어
차곡차곡 쓰레기통에 버리곤 했다

 

상처에 베어나온 빨간 그리움을
건조한 땅바닥이 모조리 집어삼킬때까지
나는 그 모래바람 한가운데 서
아무도 모르게 초라한 쓰레기통 하나 붙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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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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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행복한 사람인걸 알아서 나는 우울해요

옆에 이렇게나 좋은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내 우울로 그 사람들을 울려

오늘도 많은 사람에게 티내고 위로받았지만

하나도 안 괜찮아

나한테만 불행과 우울이 찾아오니까

가장 원할때 놓쳤고

제일 필요할때 떠났으니까

그들도 겪어봤을지라도

나의 무게는 온전히 나만의 것이니까

힘내라고요?

아니요, 나는 힘낼수 있는애가 아니에요.

열심히 했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거라고요?

아니요, 나는 열심히 하는 애가 아니에요.

위로하는 당신이 좋은 사람인걸 알지만

나는 지금 좋은 마음과 기분이 아닌걸 어떡해

그렇다고 나쁜 사람이 될수는 없으니

고마워 하고 마는거지.

그래도 차마 힘낼께요 열심히할께요는 못하겠더라

그냥 지금은 내게 아무도 힘내라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바랄뿐이지.

근데 있잖아

나는 욕심이 많아서

네가 힘내지 않아도,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줘도

놓을 자신이 없어

그냥 나만 죽어나가는거지

지금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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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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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의 온도

 

야, 솔직히 말이야

커피도 75짜리만 입에 머금는데

0어쩌면 그 이하인 사람을

마음에 머금으려니 참 힘들더라.

 

이렇게 나 혼자 무더운 여름날엔

25도 아님 26

구청 민원실 적정온도가 딱 좋던데

넌 멋대로 히터를 꺼내선

적정온도는 18도 쯤이래.

 

그래 인정해

난 미련의 온도에 취약한 겁쟁이야

 

작년 이맘때 좁아터지던 버스 안

둘이 더해 76도 같던 온기를 아는데

나 더하기 너 겨우 36.6도인 지금에도

그냥 걷고 말지

빈 좌석엔 앉기 싫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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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과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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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했다.

 

천지에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싶은 날

나는 구름 위 하늘로 떠났다

 

온 지구를 부수고도 남을 힘으로

쿵 쾅 쿵 쾅

내 발 밑 그 하늘 밑 전부 먼지가 되도록

 

퀘퀘한 다락방

할머니 장롱안의 그것처럼

먼지가 내 구름 위에 쌓일 줄은 몰랐지만

 

쌓인 먼지는 치워야 제맛이지

엄마의 말을 되새기며 청소기를 돌리는데

위잉 위잉

그 바람에 폐포 저 깊은 곳까지 들어갔나봐

 

꼭 창틀가에 끼인 놈처럼

아무리 기침을 해대도 빠지지를 않는다

 

난 한 톨인지 알았는데

남이 몰라줄 만큼 부피는 작은 것들이

온 세상만큼 무게는 너무 커서

내가 이렇게 떨어지고 왔나봐다

 

추락하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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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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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놓쳐버린 인연에 조금 더 충실했더라면

살을 맡대고 눈을 맞추는 기쁨을 놓치지 않았더라면

관계란 허울 속에 담긴 그들의 저의를 알아챘었더라면

알지 못해 겪은 아픔에 조금 더 강건히 맡섰더라면

그래서 주어진 기회에 온 삶 온 마음을 담을 수 있었더라면

 

모두 생각일 뿐이라 아릿한 바람들이다

현실이 되는 순간 간절함은 사라지고

순간의 기쁨이 또 다른 상실을 낳을 것임을 이제는 안다

 

나는

간절함으로 포장된 미련을,

내 찰나에 닿지도, 닿아서도 안될 만약을.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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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상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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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과 반비례로 무료한 오후

나는 쓸데없는 상념에 잠겨

학급 문고의 낡은 시집을 읽는다

 

사각거리는 필기소리 박자 삼아,

선생님의 수업소리 멜로디 삼아.

 

소중한 사람에게 전해 줄

마음 속에 보물처럼 보관해 둘

짝궁 몰래 끄적거리는 이 노트에

뜨거운 가슴의 눈물을 떨굴

 

온기를 읽는다

다정함을 읽는다

그 속의 슬픔을 읽는다

너를 읽는다

 

나태라며 눈 흘기는 너에 비해

적어도 나는 안다.

짤막하고 간지러운 이 마디들도 누군가의 상념이었음을

그러니 이 얼마나 귀중한 상념인가

이 얼마나 값진 나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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