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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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어코 흐르는 시간 속의 물결에서 견디고, 또 견디는 생물들이 있습니다. 그 중, '인간'이라는 원숭이가 있습니다.

이 생물체가 가진 것은 무엇인가요? 이들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누군가는 '몸뚱이'? '지성'? '마음'? 이라고 말하겠지요.

조금 넓게 생각해본다면, 하늘 위에 남모르게 펼쳐진 우주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요?"

별은, 매우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존재로 다뤄지고는 합니다. 시를 쓸 때나, 소원을 빌 때나, 시간 속의 자신들을 기억할 때,
우리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봅니다. 저의 일상 속에는 항상 천체가 있었습니다. 절망하거나, 자신감 없을 때는, 하늘에 떠 있는 무수한 별들을 보고 내면의 부활을 한 경험이 대다수였습니다.

어느 때나, 별을 보다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들더군요. 항상 띡띡, 맞물리는 세 개의 천체들의 움직임과, 아득히 멀리 있는, 그것도 눈에 겨우 보일 정도의 별의 모습이 일치된다고 해야 할까. 도시라는 공간은, 언제나 저에게 현실을 가져다 주었죠.
그것 때문에, 때로는 아픔을 겪기도 하며, 침대에 하루종일 누워야 할 정도로 머리가 깨지듯이 아픕니다. 무엇인가, 깨달음을 선사할 때도 종종 있었습니다. 현실을 가끔씩 잊고 싶은 소망이 간절할 때가 있지요.
그럴 때면, 이미 육체와 한몸이 되어버린 이불을 떼어네느라 지치고, 문지방을 밟고서,
거실 너머의 베란다로 가지요. 가는 동안의 고생을 싹 잊어버리고, 측백나무 방석에 비스듬이 앉아, 저녁과 밤의 경계의 하늘을 보지요.
둥근 해가 져버리고, 천장이 검게 뒤덮이고, 불가피하게 광선들의 요란함 속에서 존재를 숨기던 별들이 모습을 드러내죠.

이럴 때 보면, 별들은 우리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요란하고 눈부신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조금씩 숨기고,
대나무숲의 일곱 도사들처럼, 은은하고, 고요한 장소에서 재능과 성품을 마음껏 가꾸고 있는 것이지요.
문학하는 우리들 뿐 아니라, 역대 문학가들도, 대부분이 자신만의 대나무숲에서 자유롭게, 또한 개성있고, 정교하게, 자신의 원칙과, 다른 문학가들의 충고를 수용하며, 위대한 작품을 써내려나갔죠. 별들은 조용한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듯이, 우리들도 우리들만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재주를 펼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별의 모습은, 과거의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50억광년 떨어진 별을 보는 우리는 50억년 전에 있었던 별의 모습을 직접 보는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전 이 진실을 처음 알게 된 순간, 소름끼칠 정도로 감탄했습니다. 우리가 문화재와 유네스코 유산들보다도, 더욱 오래전에 있었던, 아무 손길도 거쳐지지 않은 순수한 형태의 별. 우리들은 별처럼 재주를 은밀히 갈고 닦기도 하며, 별과 함께 철학하는 동지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별처럼 완벽해지고 싶습니다. 더욱 옛날로 되돌아가서 그 때, 후회했던 것들, 잊었던 것들을 모두 실천하고픈 간절한 욕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우리에게 주사를 남기고 가요. 과거는 내버려두세요. 쫓아가보았자, 무슨 소용이겠어요?
단지, 마음 속에 오래토록 놓여 있기만 하면.."

오랜 역사에서 우리들이 우주를 포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들 또한, 우리 인류와 행성과 은하를 포기하지 않았어요.
넓디 넓고, 허망한 공간에서 창백한 푸른 점 안에, 무수히 많은 생명이 태어나고, 죽어가기를 반복하는지..
우주는 우리들 위에서 어느덧, 선생님이 되어줍니다. 깨달음을 주고, 생각하게 하며, 이론을 정당하게 만드는 이 모든 것을 우주가 내어줍니다.
남모르게 펼쳐진 우주의 품 안에서, 우리는 생각하고, 변화합니다.

그들이 주는 지성, 성품, 깨달음, 감성은, 본디 하찮은 원숭이였던 우리에게 누구도 가질 수 없었던, 누구도 가지지 못했던 '영혼'을 심어 주었습니다.
잠시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세요. 텅 빈 하늘. 구름 가득 낀 하늘, 먹먹한 하늘, 어지러운 하늘, 그들이 지금의 우리 삶을 대신 보여주는 듯 해서,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고요한 태초의 밤하늘. 과거의 기억을 품은 별은, 오늘날 우리가 지나쳐야만 했던 때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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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가지 간략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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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에 글틴에 입사한 학생인데, 문학에 관심을 가진지, 3년도 채 되지 않은 새내기입니다. 글을 사랑하지만, 아직은 글과의 사이가 어색합니다. 그래서인지, 글에 대한 고민이 다른 분들보다 별로 없다고 생각해요. 더 나이가 들고, 남독하다 보면, 언젠가는 글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겠죠. 전 주로 수필과 시를 쓰며, 그 형식들을 좋아합니다. 추상적이고, 서정적인 방식으로 글을 쓰는 편인데요.
글감을 찾으려고 관찰과 탐색을 수 없이 해보아도, 글감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왜일까요?
저는 글감을 찾을 때 자연과 기억과 경험 속에서 찾는 주된 방법을 씁니다.
요즘은,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대다수입니다. 작가님은 글감을 찾을 때, 어떻게 찾으셨는지 궁금합니다.

2. 또, 글을 쓸 때 자주 듣는 말이, '치장된 언어를 조금 줄이는 게 어떠냐'라는 말을 자주 들어요. 한자어를 주로 많이 쓰는 편인데요. 특히, 시를 쓸 때, 한자어는 관념적인 언어니, 되도록이면 사용하지 말라고 들었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있는데요. 한국 시인들 중에는, 한자어를 쓰는 분들이 많은데, 이에 대해서 제가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3. 제가 글을 사랑하게 된 계기는, 혼자서 내가 세상에 대한 기억과 경험을 모두 쏟아부으니, 왠지 모를 카타르시스가 생기게 되고, 평소 인문학에 관심이 많습니다. 인문학이 또한, 글과 밀접한 관련이 많았습니다. 인문학을 좋아하다가, 글까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어떻게 하면, 객관적으로 저의 감정과 기억을 서사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저는 주로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을 풀어내는 가벼운 느낌의 글을 쓰기 때문입니다.)
4. 소설같은 흥미진진하거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무거운 느낌의 글을 써보고 싶어요. 간결하고, 객관적인 문체로 글을 써보고 싶은데 말이지요..
그런 형식의 글을 쓸 때 어떤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 파악이 안됩니다..

5. 마지막 질문인데요.. 저는 주로 퇴고를 할 때, 글을 훑어보고 읽어보고, 그려보는 등, 우스꽝스러운 형식으로 퇴고를 합니다.
어색한 부분이 있다면, 머리를 쥐어싸매여 좋은 문체를 찾기까지 고뇌한 적이 많았어요. 작가 분들은 주로 어떤 식으로 퇴고를 하는지 궁금해요.
주로 논리적으로 퇴고하려 애쓰지만, 자꾸 서정적이고 추상적인 문체로 퇴고하는 경우가 많아서, 퇴고를 다수 실패했던 경험이 많지요..

이상입니다. 작가님 잘 부탁드립니다! 다른 분들의 고민글을 보니, 아주 깊이 있게 상담해주셔서 저 또한, 어떻게 답변해 주실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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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을 벗겨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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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아가면서 두려웠을 때가 반드시 있을 터.
가족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나라에 대한 두려움. 내면에 대한 두려움. 관계에 대한 두려움.
이들은 내가 느껴본 두려움이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므로 이외의 두려움들은 벌써 잊어버렸거나, 아니면 그것들이 사라졌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항상 나에 대하여 책을 가까이 하니까 미래가 밝을 거야라고 말하지만, 칭찬들은 나를 북돋아주지 않았다.
나의 내면에 거센 파도가 치기라도 하였을까. 그 칭찬들은 오히려 나를 채칙질하고, 참… 고맙게도 내 마음 속의 비바람이 되어 요동쳐주었다.
나에 대하여 많은 기대를 하는 동시에, 아무 걱정 없던 나의 마음은 쇠약해질 뿐이었다. 왜 이렇게 여린 열두살 애에게 많은 고통의 씨앗을 환한 미소로 뿌리는 걸까. 두려움만 커질 뿐인데. 답을 모른채 떠돌기만 했다.
지난 날은 아름다웠으나, 미래는 공허했다. 정처 없이 떠돌기만 했던 나 자신은 어느덧 열세살이 되었다.
'작년보다 더욱 평온하리라. 이번에는 반드시 용기있게, 자신있게 행동하리라.' 다짐했던 나였다.
임원도 되어보고, 문학에 대해서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인간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배움이 있기까지, 많은 생각과 걱정과 고난을 거듭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되게 못하는(특히, 축구를) 나는 아이들과 친해지기 매우 어려웠다. 나에게 기회를 많이 주던 착한 아이들이 있어서 망정이지. 그들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확신컨대, 초등학교 시기를 살아갈 꿈도, 희망도, 힘도 없었을 것이다. 나의 여린 마음을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그들의 존재는, 나에게 부모님만큼이나, 소중했다. 희망이 되어주는 친구들과 소통하면서, 친구들의 내면도 나처럼 점점 변화한다는 사실을 느꼈다.
2016년 중순, 우리 반의 악녀들은 꿀 먹은 벙어리 같은 나에 대하여 많은 비판과 뒷담화를 해대었다.
그것들은 의외로 나에게 큰 고통의 화살로 날아왔다.
그 고통에 덤까지 더하자면, 우리 학교 운동회에서 내가 많은 실수를 해대어, 나 자신을 많이 자책함에 생기는 고통이 더욱 컸다.
그것들은 나에게 '사랑'이라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면, 절대 씻겨질 수 없는 상처였다.
여지껏, 몇 번이나 옥상 아래 자연과 마을의 풍경을 바라보며, 싱그러운 공기를 마셔봤지만, 그 때는 달랐다.
난생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충동이 들었다. 등 뒤에 무거운 죄악이 흐르는 것 같았다. 중심을 잃고 난간 밖으로 던져질 것 같았다.
등 뒤에서 누군가 잡아땡기는 느낌이 들었다. 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는 뒤를 홱 돌아보았다.
누구일까.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고, 공허한 복도와 집. 그리고 나만이 있었다.
단지 나 혼자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진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가 나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신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두려움을 벗겨내고 희망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던져준 것일지도.
당장 수화기를 들고, 선생님께 떨리는 목소리로 내가 가진 두려움과, 방금 일어날 뻔했던 무서운 사건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걱정들을 빠짐없이 전부 쏟아내었다. 그 때의 내 목소리는 내 일생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목소리었다. 아무 두서와 참음 없이 사실대로 전부 털어놓았다.
"선생님, 너무 걱정스러워요. 요즘 학교생활은 고통의 연속입니다. 어떻게 하면 미움받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그런데 선생님의 목소리는 내가 우려했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아닌, 따뜻한 목소리로 나의 경황 없이 빠른 목소리에 응답했다.
"누구에게나 부족한 점이 있기 마련이야.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라 할 수 없겠지. 너무 완벽한 것 자체는 창조주의 입장에서 보면, 오만불손한 태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너에 대한 단점들을 선생님은 다르게 생각된단다. 너의 단점을 장점으로 생각하는 것이 어떠니?
좋은 친구들이라면 너의 진가를 알아보고 너에게 아마 접근해 올 것이다. 그 때를 기다리며 너의 내면을 가꾸고 채우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바란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해야할 일은 많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천재적인 인물들에게는 사회성을 주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너무 어울려다니면 그 천재성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에 조용히 자기의 일에 몰두할 수 있도록 말이다. 역사의 위인들 대부분이 너같이 외로이 지냈고,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 분들이라는 것을 명심하렴. 용기를 가져라!"
선생님 말씀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축복같았다. 나의 마음을 이해하고, 나의 장단점을 이해해주는 따뜻한 사랑은,
나의 가슴 속 어둠을 빛으로 없애주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물이 내 벌건 눈가로부터 흘러내렸다.
나는 지금 당장 달려가서 포옹하고 싶은 심정으로, 몇 번이나 감사하다고 수화기 너머에 있으신 선생님께 말해주었다.
내가 흘린 눈물 중, 가장 감정적이고, 깨끗하고, 귀한 눈물이었다.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 때는 몰랐다.
그 두려움이 인간 관계로부터 나 스스로가 만들어낸 고통이었다고.
내가 이대로의 나를 인정해 보았더니, 더 이상 인간 관계에 대한 두려움은 내 마음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 날로부터, 나는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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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보였었는데, 갑자기 또 사라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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