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마주할 수 없었던 나의 모습 / 윤이형 "쿤의 여행"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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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을 뜯어냈다. 말 그대로, 뜯어냈다. 길고 힘든 수술이었다고 의사는 말했다. 내게 붙은 쿤은 내가 자랄 모습으로 자라났다.”

 

윤이형 작가의 단편 '쿤의 여행' 의 첫 문장이다.

 

나를 포함해서 이 작품을 처음 읽는 독자들은 쿤이 대체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쿤은 뭘까? 도대체 뭐길래 길고 힘든 수술까지 하며 떼어내야만 하는 걸까?

 

이 쿤이라는 것은, 그러니까 단순한 종양 비스무리 한 것은 아니다. 쿤은 작품 내에서 곤약같은 회백색 덩어리에서 다 자라자 마흔살 여자의 모습으로 굳었다고 묘사되는데, 제거수술을 받기 전 발버둥치며 저항하고, 슬퍼하며, 제 머리를 쥐어뜯는다. 사람과 비슷하나 사람은 아닌, 그런 종류의 무언가이다.

 

서술자는 말한다. “나는 팔로 쿤의 목을 감고, 두 다리를 쿤의 옆구리에 바싹 붙여 업힌 자세로 그녀와 한 몸이 되어 살아왔다.” 고.

 

결국 쿤은 서술자의 몸에서 분리된다. 쿤 없이 혼자 분리되어 남은 그녀는 처음 쿤을 만난 모습이었던 열다섯의 그녀로 돌아간다. 쿤은 그녀 대신 먹고, 걷고, 추해지며 자라왔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쿤 없이 행동하려니 모든 것이 어색하다. 수술과 재활 치료가 끝난 후 쿤의 모습 대신 열다섯의 모습으로 마주한 그녀의 딸은 그녀를 보고 당혹스러워 한다. 어떻게 해줄 방도가 없어, 그녀는 딸의 손을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딸, 미안해. 엄마가 자랄게, 얼른 자랄게.”

 

쿤을 떼어낸 후 실수 투성이인 집안일, 낯선 딸아이의 눈길에 모든 것이 불편하고 어색하기만 하다. 그러나 마음을 바로잡고 달라지기 위해, 자라나기 위해 집을 나선다. 어쩌면 제목에서 암시했던, 여행의 시작이다.

 

서술자는 먼저 그녀의 어머니가 안치된 납골당을 찾는다.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였던 과거를 떠올린다. 그러나 쿤이 챙겼던 엄마의 생일. 쿤이 보았던 엄마의 유해가 수습되는 모습. 그 어디에서도 그녀가 주체가 되는 일은 없었다. 그저 쿤의 등 뒤에서 안부를 전하는 말 몇마디를 건넬 뿐이었다. 그녀는 젊은 시절의 모습이 담긴 엄마의 영정사진 앞에서 자신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몇번 찍고서는, 제일 잘 나온 사진을 테이프로 붙이고선 작별 인사를 한다.

 

“엄마 안녕. 곧 다시 올게요.”

 

그녀는 분식집에 가서 중학생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한때 그녀와 다름없이 쿤을 가진 연인이었던 C와 재회하기도 한다. C는 그녀의 모습에 놀라면서, 그녀의 쿤에 대해서 질문한다. 그녀는 쿤을 떼어내는 수술을 했다고 말하면서, 넌지시 그에게 너도 쿤을 떼어낸 것이냐고 묻는다. C는 그것을 부정하며, 그냥 하고싶은 일을 했을 뿐인데 몇해 전 그의 몸과 쿤이 자연스럽게 너덜너덜해지며 떼어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라나고 싶은 마음 따윈 없었지만 몸이 자라나기 시작했다고.

 

“난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왜 내가 어른이 돼야 하는거야? 그런데 그 뒤로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몸이 쑥쑥 커지기 시작했어. 난 정말 이렇게 되고 싶지 않았는데.”

 

그저 하고싶은 일을 했다던 C의 말을 듣고는 자신이 한때 다녔던 대학을 찾아가 당시 바쁨을 이유로 입회하지 못했던 연극 동아리에 찾아가서 연기를 배운다. 연극부에 있던 학생은 그녀에게 무엇이든 되고싶은 것이 되어보라고 말 하지만, 그녀는 갈피를 잡지 못해 가만히 서 있는다. 그런 그녀에게 학생은 말한다.

 

“그런 곳을 상상해. 가장 어둡고 무겁고 슬픈 곳을. 그리고 거기서 뛰어나와 달리기 시작해. 내 자신이 죽도록 싫어지면 난 그렇개 해. 달리다 보면 반대편의 장소가 떠올라. 내가 되고싶었던 내가, 아직 보이지는 않지만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 게 느껴져.”

 

그녀는 학생의 말을 듣고 어디로 가야하는 것인지를 깨닫는다. 그녀는 가장 어둡고 무겁고 슬픈 곳, 어린 시절 평생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를 때리고, 욕지기를 내 뱉었던 그녀의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병실에 들어선다. 그녀의 아버지 또한 덩치가 커다란 쿤이 있었다. 그는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감동적인 강연을 하며 그들의 마음을 울리는 정신적인 지주, 스승이었지만 모녀를 폭행하는 폭력적인 아버지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쿤에 눌려서 힘겨운 숨을 내쉬고 있었으며, 곧 쿤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동시에 사망한다.

 

“쿤을 뜯어냈다. 길고 힘든 수술이었다고 의사는 말했다. 아버지의 쿤은 그가 자랄 모습으로 자랐고, 이제 그와 함께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난 후, 그녀는 흙속에 묻힌 아버지에게 가만히 읊조리며 서사는 마무리된다.

 

“괜찮아요, 자라지 않아도.”

 

그래서, 도대체 쿤은 무엇인가?

 

작품 내에서 쿤을 정의하자면, 사람의 몸에 기생해 그 사람 대신 자라나는 회백색의 물체. 정도다.

 

그러나 쿤은 모두에게 기생하지는 않는다. 폭력적인 아버지와 그의 이면 사이에서 견딜 수 없었던 서술자. 밖에서의 모습과 가정에서의 모습이 너무나도 달랐던 서술자의 아버지. 또한 쿤을 받아들이고 삶을 살아간 C에게는 오히려 쿤이 떨어져 나가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나는 항상 집 밖의 나와 집 안의 자신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나, 밖에서 무언갈 할 때에는 굉장히 활기찬 편인데, 뭐랄까. 집에만 들어오면 항상 축 늘어지고 사람이 매우 감성적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었다. 쿤 또한 마찬가지다. 쿤은 SF의 한 종류처럼,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고 소설 내에서만 존재하는 하나의 질병 또는 생명체 그 자체로 인식될 수도 있지만, 그보다도 결국 쿤이라는 것은 낯설고 어색한 사회에 대응할 수 있는 나의 두번째 자아, 내가 되고싶지 않았던 모습의 나, 결론적으로 진정한 내가 아닌 나 가 아닐까 싶다.

 

C는 커가면서 진정한 자신의 내면적 자아와 사회적으로 보여야 하는 자신의 자아가 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쿤이 자연스럽게 떼어졌고, 서술자는 정신차리고 보니 너무도 달라진 자신의 사회적 자아를 부정하며 쿤을 억지로 수술하여 떼어낸 후 진정한 자아를 찾으려 했다. 그렇다면 서술자의 아버지는, 사회적으로 보여야 하는 자신의 모습에 갇혀 진정한 자신의 자아를 잃어버린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작품 내내 펼쳐지는 것은 쿤이 떼어지고 난 뒤의 서술자의 여행이었는데, 제목은 왜 쿤의 여행일까. 쿤의 여행이라는 제목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서술자는 자신이 삶의 주체가 아니었던, 그동안 쿤으로 살아온 여행을 마치고, 진짜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기에 이는 그녀의 여행이 아니다. 그녀의 현실이자 그녀의 진정한 삶인 것이다. 여행은 이미 끝났다. 쿤과 함께한 세월들, 쿤 속에 감추어 살았던 그 때가 그녀의, 쿤의 여행이었다.

 

작품의 중반부에서 서술자는 잠시 도서관에 있는 꿈을 꾸는데, 그곳에는 쿤을 떼어내는 방법이 적힌 책이 있다. 그 방법은, 이렇다.

 

“거울을 볼 것.”

 

모든 것을 웃는 얼굴로 응대해야 하는 상담원, 상사의 부조리에 화 한번 내지 못하고 가만히 일해야 하는 회사원,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군인, 내가 아닌 나. 사회속의 나.

 

우리의 쿤은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쿤이 나였는지, 내가 쿤이였는지는 정확히 보여지지 않는다. 우리는 거울을 보고 내 자신을 확인하며 살고 있는가. 나의 삶은 내가 주체가 되는가. 현실의 압박 때문에 그것이 나를 좀먹고 있지는 않았는가. 그렇게 방황하는 정체성의 사이에서 자라지 않아도 된다는 그녀의 말은,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안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오는 깊은 위로를 건넨다.

 

“괜찮아요, 자라지 않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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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글틴 문학의 종언(글틴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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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빛 좋는 개살구, 글틴

오래토록 이어진 사이버문학광장 글틴의 쓰면서뒹굴뒨굴은 청소년의 문학기반을 더 견고하였다. 수상작 선정과 작품의 첨삭 및 조언은 글틴에 몸담은 이들에게 큰 양분이 되었다. 이를 통해 일부는 성인이 돼 등단을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일부는 관련 역량을 통해 각종 전문분야로의 취업에 기여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졸업생. 우리는 재학생. 찌찌뽕. 그들과 우리의 차이를 가르는 선을 약간 넘겨 짚자면 그것을 문학캠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의문이 든다. 왜 우리는 그 즐겁고 보람찬 문학캠프를 겪을 수 있게 도와주지 않는 것인가. "캠프를 겪지 않은 자 진정한 글틴일 수 없다!(2018. 4. 1. 상산의 신령 '체'의 발언 중)"는 말처럼, 캠프의 유무는 글틴 문학의 화합이자 시너지이며 그 무엇도 대신될 수 없는 궁극적 결산이고, 이 결산 없이는 글틴 문학의 본질적 의미는 퇴색돼 버린다. 관료적이고 정치적이며 경제적인 '어른들'의 변명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글틴캠프 없이는 문장 글틴 쓰면서뒹굴뒹굴의 경험을 효율적으로 극대화 할 수 없는 것이다. 휘황찬란하게 다 그려놓은 용에 '눈'이 찍히지 않은 것과 같다. 세월로 인해 백안으로 '틴'을 벗어나는 자. 그 얼마나 슬프고 흉칙한가. 우리는 이를 '글틴 문학의 종언'(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에서 차용)이라 부르기로 하자. 승천하지 못하는 '백일장 키드'(전삼혜 소설에서 용어 차용)의 설움을 알아보자.

 
2. 글틴캠프라는 슬픈 전설

우리에게 글틴 캠프는 전설로 남아 있다. 고전문학의 대가 조동일(동국대) 선생은 전설의 전승 범위가 국부적이고, 주인공은 비범하며, 전승태도는 신빙성 있으며, 관련한 구체적 증거와 비극적인 결말을 특성으로 갖는다고 하였다. 과거 글틴캠프는 각 분과 수상자라는 비범한 참여자인 일부 시기의 존재들만 참석하였으며, 그 일정이나 활동은 검색포털을 통해 사진으로 증거가 박제화 돼 있고, 그들의 존재가 후대 글틴의 아쉬움으로 남았다는 점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맺는다. 캠프가 전설이 된 것은 아름다운 옛 이야기가 아니라 슬프고 안타까운 현 주소이자, 가능할 수 있는 일이 전설로 지칭될 수밖에 없는 허탈함이다. 이 허탈을 극복하고자 한다. 역사가 짧은 미국은 어벤져스라는 영웅집단으로 결핍을 극복하고자 하고, 유럽은 판타지에 의뢰하며(해리포터, 크툴루신화 등), 중국은 역사(삼국지, 무술 등)에 의존한다. 그리고 현역 글틴은 만우절을 통해 억압 받은 욕망을 발산한다. 그 욕망은 글틴캠프. 전설로 지칭됐으나 사실 현존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앞서 설명한 전설과 궤를 달리 한다는 걸 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선 어른들의 각성과 변화와 시행의 약속이 필요하다. 그들의 의지와 캠프의 실현을 촉구한다! 각성하라! 각성하라!

 

 

3. 글틴캠프라는 마중물을 달라!

우리가 왜 글틴 캠프를 원하는가. 캠프를 꿈꾸는 건 전례의 효과와 결과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글틴이 청소년의 문학증진을 위하는 것이라고 할 때 가장 효과적고 중심적인 행사기 때문이다.  물론, 앞세대에선 해준 걸 뒷세대에선 해주지 않는 차별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도 가미돼 있다.(쌤들 받으시는 월급 갑자기 줄어들면 기분이 어떨까요!?) 기본적으로 전국구의 인원이 온라인(글틴)을 통해 조우하고 교류하게 되는데 이는 시공간을 달리함으로인한 기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특별한 만남을 기획하는 것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글틴의 존재 이유를 더 명확하게 하는 것과 다름이 없지 않은가. 더불어 물리적 공적(학업) 한계를 지닌 글틴은 그런 만남이 언제나 즐겁고 유익할 거라는 판단과 기대에 가득 차 있다. 글틴 대개가 원하고 연간 단위의 행사라는 점에서 캠프가 주최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글틴의 이러한 결핍과 욕망은 다른 방향으로 불출되는 양상을 보인다. 글틴과 무관한 문학단체(대산재단, 학원, 과외 등)에 소속된다거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교류하는 식이다. 그러나 책임 있는 감독이 지속되지 않거나 부재하는 점에서 이러한 형태의 대체는 불안하거나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나마 이런 소속이라도 된 글틴은 문학관과 작품, 생활을 수시로 교류함으로써 부정확하고 불안한 선에서 성장하고 용기를 얻을 수 있지만, 홀로 글을 쓰는 글틴은 이마저도 경험할 수 없어 작품의 비교나 조언 등을 얻기가 쉽지 않다. 예고 문예창작과의 재학생의 특별한 사례는 차치하고, 결국 전국 곳곳의 모든 문학키드에게 혜택과 도움을 주기 위하는 예술위원회의 근본적인 존립근거는 글틴캠프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많은 가능성과 함께 불투명해 지는 것이다.

단지 캠프 하나가 그런 걸 다 채워줄 수 있느냐 반문할 수도 있다. 그 말이 맞다. 고작 며칠 동안 모든 게 다 충족되진 못하는 게 맞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간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매년 반복되는 캠프가 수많은 백일장키드의 '마중물'이 된다는 점이다. 마중물은 깊은 지하네서 물을 퍼내는 펌프가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부어주는 물이다. 이 물이 없으몀 수백번의 펌프질로도 물이 안 올라오겠지만, 몇 바가지의 마중물만 있으면 끊임 없이 물이 솟구치게 된다. 글틴 캠프란 이런 마중물과 다름이 없다. 매회 만나는 글틴은 친분을 넘어 교류를 견고히 하게 되고, 새로이 유입되는 글틴에겐 꿈과 희망의 장소가 이미 구축돼 있는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그 성과가 캠프를 겪은 졸업생을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 마중물을 주지 않는다는 건 물줄기를 포기하겠다는 것이고, 그 펌프를 고사시키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형법」에선 작위의무자의 행위 뿐만이 아니라 부작위의무(방임, 아기에게 젖을 주지 않아 살해하는 등) 역시 범법행위로 취급하고 있다. 다만, 형벌권이 접하는 부분이 아니라는 점에서 도덕적인 방임이자 방관이라는 점이 형법과 다를 뿐이다. 그러니까 글틴캠프를 주최하지 않는 건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또 글틴캠프의 미주최는 글틴을 정신병에 걸리게 하는 것과 같다. 철학자 라깡은 인간의 정신을 이드와 에고, 슈퍼에고로 구분하였다. 범박하게 이드를 무의식, 에고를 의식, 슈퍼이고를 세계/한계/법칙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글틴캠프가 초자아로, 글틴을 자아로, 글쓰기의 욕망과 꿈을 에고로 대입할 수 있겠다. 여기서 중요한 건 글틴캠프가 없어서 에고(글틴)가 슈퍼에고 자리까지 차지하는 것인데, 정신분석학에서 우울의 증상을 바로 '에고 = 슈퍼에고'의 상태로 보았다. (쓰면서뒹굴뒹굴도 역할을 하긴 하지만) 글틴캠프가 슈퍼에고로써 에고(글틴)을 끌어주고 조절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볼때, 캠프의 부재는 글틴을 고아로 만드는 것과 같으며 우울증 환자로 방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4. 본질이 중요하지 형식이 중요하진 않아

그렇다면 글틴캠프가 어떻게 재개될 수 있을까. 그것은 청소년이 해야 할 업무가 아님으로 알 수가 없다. 참석해본 적도, 주최해본 적도 없으니까. 캠프 주최에 돈이 들어가고 관리할 사람이 필요하며, 그 과정이 필요하다는 상식은 당연히 있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필요성은 충만하다는 것을 이미 길게 주장하였고, 결국 실천으로 행동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말은 쉽다. 겪지 않아서 모른다. 문제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문제를 우리 틴에게 구체적으로 공고하고 거론라며, 의지의 문제가 아닌 제약의 문제임을 공고히 한 적이 있던가. 글틴은 사이트의 대상자지만, 동시에 함께 하는 주인이자 동반자다. 학교가 교직원의 전유물이 아니라 학생과 함께 하는 공동체인 것처럼 글틴도 마찬가지라는 것. 따라서 실천되지 않는 것은 설명하고 논의해나가면 되는 것일 뿐, 마치 없었던 것처럼 묵과하거나 단순한 제한사항을 게시하는 것으로 매듭지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통 안 된다는 건 예산의 문제로 치부한다. 그러나 중고교부터 대학까지. 회사가 아닌 거의 모든 단체와 모임은 결국 회비 등 차출을 통해 자금난을 해결한다. 그리고 앞서 모임의 본질이 중요한 것이라 설명하였다. 삐까번쩍한 호텔이 아니더라도 글틴이 함께 할 수 있는 어떤 공간과 몇 박의 시간만 가능하다면 충분히 웃을 수 있다. 글틴캠프가 부재되는 건 글틴의 무관심과 어른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결국 실천하지 않고 할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닌지 다시 돌이켜 봐야 한다.

 

 
5. 만국의 모든 글틴들이여, 단결하라!(카를마르크스 공산당선언의 구호에서 차용)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자본증식욕망을 통해 부르주아가 많은 것을 독점하고 앗아가는 것을 다수의 프롤레타리아가 단결하여 전복시키길 기도하고 예상했다. 하지만 보기 좋게 좌절되었다. 그는 이데올로기가 프롤레타리아에게도 주입되고, 그렇게 현실과 자신의 상환을 왜곡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세상은 변해가고 매번 다른 시대의 사조와 매번 자본주의의 한계와 변화가 주장되나 실상은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글틴캠프를 위한 이 단결, 주장이 보기 좋게 좌초될 게 뻔한 부스레기 같은 글 쪼가리로 치부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글틴(일부)은 왜 4월 1일(만우절)이라는 형식을 통해 이성의 끈을 놓고서야 이런 주장을 할 수 있게 됐을까. 이 글과 이 말 자체가 농담과 픽션과 유희가 되었을 때야 이 이야기를 '거론'할 수 있게 된 걸까. 우리는 평소에도 부모님과 선배와 선생님 등 많는 윗사람에게부터 고개숙이고 지시 받으며 복종하길 제도적이고 인적으로 강요 받으며 지낸다. 앞으로도 전승되고 바뀌지 않을 박정희 새마을운동식 유교주의는 우리의 발목을 잡고, 우리의 욕망을 억누를 것인데 말이다.

그런 압박의 분위기가 조금 약해져서 그런지도 모를 일이다. 미투 운동을 통해 거론되지 않을 것 같았던 약자의 당연한 권리가 마치 혁명처럼 번지는 걸 보면서, 그리고 대통령이 탄핵되고 구속되며 재판 받는 사건을 보면서, 우리가 꿈꾸는 문인의 존재가 벌인 비열한 성추문과 각종 권력적 작태를 보면서 조금은 더 당당해져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꿈을 꾼 것 같기도 하다. 조금은 발목이 가벼워져서, 조금은 키가 더 클 수 있을 것 같아서.

고로, 조금 더 꿈꾸고자 다소 거칠게 욕망을 분출하고 행복을 꿈꾸어보았다.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엔 원전의 '아우라'가 사라진다고 했지만, 우리는 복제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면서도 '문학'이라는 예술을 통해 개개인의 '아우라'를 피워올리려 고군분투하고 있다. 단지 캠프의 유무 따위로 글틴이 원하는 삶을 지속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한다. 가서도 외톨이가 될 수도 있고, 즐거워도 미래는 암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시간의 의미를 결코 잃어버릴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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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편의점 알바인 내가 이세계 용사가 되어버린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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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삑, 8000원."

"어이어이! 편의점 알바 군! 분명 8500원이라고? 일은 똑바로 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아아- 또 이런 귀찮은 녀석이 걸려 버린 것인가. 하고 나는 생각하면서 앞에있는 그 자식의 멱살을 잡은 것이었다.

 

 

"이봐. 이건 1+1 상품이다. 자신의 [무지]를 조금은 깨닫지 그래?"

 

"뭐? 이자식… 이거 놓지 못해?"

 

 

앞에있는 이 녀석은 발버둥 치면서도.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왜 내 인생에는 이런 귀찮은 녀석들이 꼬이는 거지. 하고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조금은 겁을 줘볼까.'

 

"어이- 네녀석. 나는 인간들을 싫어하진 않지만, 내 다른 인격인 [윤별]은 너같은 멍청한 인간들을 아주 싫어하지. 이쯤에서 그만두도록 해라. [윤별] 에게 죽. 임. 당. 하. 고. 싶. 지. 않. 으. 면."

 

"히…히이익!!! 죄송했습니다!!!"

 

 

하고 그 자식은 부리나케 도망쳐 버리는 것이었다.

 

아아- 시시하군 시시해. 왜 이 세계에는 재미난 일이 없는 것일까?

 

그때였다.

 

 

"어이, [철수]군. 용사가 되어보지 않겠어?"

 

내게 들려오는 머릿속의 ~울림~

 

그건 마치 <<신.의.목.소.리>> 같았다.

 

 

"네 녀석은 뭐지? 어서 모습을 드러내라."

 

"건방지군 김철수. 나는 신, 아니면 그 모든것을 초월한 존재. 지금부터 너를 [용사 김철수]로 임명한다."

 

으윽… 머리가 어지러워… 나는 어떻게 되는거지? 젠장… 잠이 온다… 더이상은 버틸 수…

 

 


 

 

 

 

"에에엣!!!"

 

일어나보니. 그곳은 몬스터와 엘프가 가득한 이세계. 나는 [용사 김철수] 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평범한 편의점 알바인 내가 이세계 용사가 되어버린 건"

프롤로그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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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치지 못한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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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를 두고 떠나왔다고 해서 나를 너무 원망하지는 않기를 바랐다.

너희는 결국 나를 곧 잊을 테고, 나 또한 너흴 곧 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전자는 성립되었을 지 몰라도, 후자는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끝끝내 성립되지 못했다.

 

나는 중학교 근처에 위치한 고등학교에 가지 않았다.

너희들은 모두 그곳에 진학한다고 들었다. 혹은 그 옆의, 아니면 그 옆옆의.

그 무렵의 나는 어떠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고, 조금이라도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으면 대학 또한 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별 수 없이 많이 멀더라도 약간이라도 수준이 높은 학교에 진학했어야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물론 지금와서 생각하면 둘 다 도긴개긴이었지만.)

 

다행히 나는 낯선 그곳에서 새 친구를 사귀었고, 그곳에서의 생활에 그럭저럭 적응했으며 평범한 학생으로 지낼 수 있었다.

힘겨운 1학기를 마치고 잠시 소통이 끊겼던 너희들 중 한명과 연락이 닿았다. 연락이 닿았던 J는 나를 위해 그가 다니고 있는 학교는 어떤지, 내가 아는 아이들은 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차근차근 말해주었다. 활기찼던 아이들은 여전히 활기있게 보였고, 내성적인 아이들은 여전히 내성적이었다. J는 평소 그와 친했던 친구와 같은 반에 배정받아서 다행이었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아, 나 없이도 충분히 잘 지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약간의 배신감. 그리고 다시금 나를 감싸는 조금의 우울감.

그러나 나는 너희들로부터 쫓겨난 것이 아니었기에 아무런 투정도 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의 여름방학은 그리 길지 않았고, 곧 2학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쯤 글을 쓰기 시작했다.

너희들에게는 내가 완벽하게 그곳에 적응한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나는 나를 무너지지 않게 지탱할 일종의 버팀목이 필요했다.

글을 쓰는 것은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나는 내면에 자리한 나의 우울을 그곳으로 조금씩 표출하고는 했다.

그러나 그런 상태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란 어려웠다. 나는 이미 처음의 목표를 상실한 채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내 자신을 억지로 위무하면서 1학년은 그렇게 금세 지나갔다.

나는 그무렵 모아왔던 돈으로 내 개인 컴퓨터를 갖게 되었다. 새로 이사할 집은 공간이 부족하지 않아서 컴퓨터를 둘만한 여유 공간이 있었고, 나는 그곳에 내 컴퓨터를 설치했다.

너희들에게는 말하기 어려웠고,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로 말하기는 똑같이 껄끄럽지만 나는 몇년 전 내가 평생을 나고 자랐던 아파트를 떠나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사정이 있어 1년간 잠시 상가 건물에서 기거했었다. 철이 없다고 해야 할까. 나는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약간 가슴이 저리지만, 너희에게는 행복하게 보여야 했으므로 나는 내가 이미 떠나온 그 집에 여전히 사는 것처럼 나를 위장했다.

너희는 다행히 알지 못했다.

 

겨울방학에는 새로 장만한 컴퓨터에 빠져 살았다. 그러나 너희들과는 대부분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이야기를 주고받았기 때문에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너희들의 소식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너희들 중 한명이 자퇴를 했다는 소식도.

겨울방학이 끝나갈 무렵 나는 자퇴한 친구 H를 만날 수 있었다. 솔직하게, 정말 궁금했지만 나는 그에게 굳이 왜냐고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그냥 내가 살던 아파트의 주변을 걸었고, 그다지 비싸지 않은 가격의 음식점에 들어가 같이 식사를 했으며, 후에 그를 집까지 배웅해 주었다.

그가 자퇴한 이유는 후에 알 수 있었지만, 그때의 H는 행복해 보였기에 굳이 이유를 알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어느덧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문,이과 중 하나의 교육과정을 선택하는 학년이었다. 나는 이과였고, 너희들도 대부분 이과를 선택했다고 들었다. 그때의 나는 소설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다행히 컴퓨터의 하드웨어에는 조금 관심이 있었기에 나는 그것을 명분으로 삼아 이과로 진학했다. 그러나 소설을 버리지는 못했고, 그럴 필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때 하나를 포기했어야 했고,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2학년 초에 내 담임은 나를 불러 개인 상담을 했다. (내가 특별 대우를 받은 것은 아니고, 그 반의 모든 아이들이 상담을 받아야 했었다.) 상담의 요지는 이런 것이었는데, 네가 1학년을 좋지 못한 성적으로 마무리했어도 2학년때 열심히만 한다면 충분히 1학년때 공부하지 않은 것을 커버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안타깝게 나는 그때도 별로 공부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고, 마음은 5월달에 주최되는 한 문학 공모전에 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상담에 별로 집중하지 못했다.

 

5월 무렵은 소설 구상에 집중했고, 공모전 전날 문학 선생님의 도움을 빌려 무사히 내 작품을 그곳에 투고할 수 있었다.

나머지 시간들은 빠르게 흘러갔고, 다시금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방학동안, 나는 내가 작품을 투고했다는 사실을 잊고 지냈다. 그러나 곧 주최측에서 연락이 왔다. 예선을 통과했으니 몇가지 서류를 작성하여 제출하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서류를 작성했고, 본선이 열릴 캠프에 참가했다.

 

그러나 캠프에 참가한 후 이윽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곳에는 취미로 소설을 쓰는 학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대학의 문학 관련 학과로 진학하기 위하여 수상 실적을 쌓아가고 있었으며, 누군가 내게 대학에서 주최하는 백일장 이야기를 주제로 건네는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나처럼 살고있는 학생은 없었다. 다들 너무도 성실하게, 그리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곳의 친구들은 내게 정말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정말 즐거웠지만. 내 안에서 그곳에서의 나는 이방인이었고, 계속 그들을 겉돌았다.

본선은 3시간동안 진행되었고, 결국 상은 수상하지 못했다.

 

너희들은 내게 잘 다녀왔느냐고 물었다.

조금 울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냥 배울 것이 많았다고만 답했다.

그리고 나는 그 후 몇개월간 소설을 쓰지 못했다.

 

여름방학이 대부분 그렇듯 얼마 있지 않아 2학기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놓아버렸던 공부를 다시 하기란 쉽지는 않았다. 우선 급한 불인 수학부터 다시 복습해야만 했다.

나의 댓가를 치루는 과정은 한없이 지루했고, 외로웠으며. 정말, 너무나도 힘들었다.

하루는 너희들도 이 과정을 묵묵히 해나가고 있었다는 생각에, 어쩐지 참을 수 없는 자괴감 또한 들기도 했다.

 

구경만 했던 1학년 때에 비해 준비할 사항이 많아 바빴던 2학년의 학교 축제가 끝나고, 나는 두번째 겨울방학을 맞았다.

1월달은 김영하의 책에 빠져, 그의 책 5권을 순식간에 읽어 해치웠다.

약간의 로맨스가 첨가된 "퀴즈쇼"를 가장 재밌게 읽었던 것 같다.

 

며칠 전 새벽에는 몇달만에 너희들을 만나서 눈이 갓 덮힌 중학교의 운동장을 걸었다.

너희들 전부는 아니고, H, 그리고 K와 함께했다. 공이 있었기에 우리는 잠깐 축구를 했고, 몇분 후 금방 숨이 차버려 흰 운동장에 벌렁 누워버렸다.

헉헉대는 와중에, K가 내게 말했다.

 

"우리가 왜 고삼이지?"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평소 잘 까불고 다녔던 K의 입에서 사뭇 진지한 말이 나오자 나는 조금 당황했다.

 

"이러다 폭삭 늙어버리는 거 아니야? 응?"

"…"

"우리 스무살 넘어서도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생각하다가, 말 할 타이밍을 놓쳐버렸기 때문이었다.

등이 시려왔기 때문에, K와 나는 일어섰고 H에게 등에 묻은 눈을 털어주기를 부탁했다. H는 귀찮은 듯 우리의 등을 퍽퍽 때렸다.

곧 우리는 세명 분의 발자국을 남긴 채, 한때 우리가 있었던 중학교를 빠져나왔다.

 

이제 이 글에 종지부를 찍어야겠다. 나는 그동안 나의 어스름 덮힌 시절로부터 너희를 조금씩 속여왔고, 설사 너희들이 이 글을 읽는다 하여도 내가 누구인지 모를 것이다. 혹시라도 누구인지 의심이 간다면 마음속에만 담아두길 바란다. 이건 너희에게 쓰는 편지지만 너희가 이 글을 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K에게,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언제가 되었든 간에.

그리고 너희들을 다시 만나는 날에는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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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딩거의 고양이

1시간 후에 절반의 확률로 상자 안의 고양이가 죽는다. 당신은 그 상황을 전혀 볼 수 없다. 1시간 후 상자 속의 고양이는 어떻게 되어있을까?
(여러 해석이 있지만 여기서는 상자를 열어보기 전에는 살아있는 세계와 죽어있는 세계가 모두 존재하며 관측하는 순간 어떤 한 쪽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는 다세계 해석을 따릅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에서 착안하여 만들었다는 그 과학자의 발명품은 그것의 진위가 가려지기도 전에 시내 골목의 점집보다 더 많은 숫자의 체인을 만들어가며 소비자를 유혹했고, 효과는 폭발적이었으며, 유행을 지속하였다.
'분기점' 이라고 이름 지어진 이 가게는 지나온 삶들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서 다른 선택을 했을 때의 모습을 적게는 한 시간, 많게는 세 시간으로 요약하여 영상으로 보여주었고, 가상현실 기술의 발전에 편승하여 ‘다른 삶’의 실감을 한층 더 증폭시켜주었다. 은희는 SNS에 빠져 살았고, 덕분에 가게에 대한 정보를 가장 빠르게 읽어볼 수 있었으며 그 후 처음으로 맞은 주말인 오늘, 우리는 분기점의 앞에 우두커니 서 있게 되었다. 나는 들어가기 전 은희에게 한가지 당부의 말을 전했다.

 

“정말 결혼으로 하는 거야? 후회하지 않겠어?”

“말했잖아, 재미라니까 재미. 오빠는 너무 까탈스러워, 우리가 서로 만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지 않아?”

 

언중유골(言中有骨)이었다. 은희가 내게 한 말이 너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나는 더 행복했을 거라고,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을 거라고, 너보다 멋지고, 돈도 잘 벌고, 섹스도 훨씬 더 잘하는 남자를 만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그렇게 자신만만한 투로 단정 짓는 것처럼 들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3년도 채 지나지 않은 결혼생활은 위기 그 자체였고, 우리는 당장에 이혼 서류를 접수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서로에게 애정이 없었다. 아이 때문에 억지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들 중에 나와 은희가 있었다.

 

"뭐해? 어서 들어가지 않구?"

 

은희는 콧소리가 섞여 조금은 들떠 보이는 목소리와 함께 분기점의 문을 열었다. 나는 어쩐지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은희의 뒷모습이 사라지기 전에 그 뒤를 밟았다. 출입문으로부터 시작되는 긴 계단은 그것의 끝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길고 어두워서,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했다. 얼마간 내려가자, 이번엔 분기점의 진짜 출입구로 보이는 화려한 문 하나가 은희와 나를 반겼다. 은희는 기다렸다는 듯 당장에 문을 벌컥 열고 분기점의 내부를 살폈다. 작은 건물의 크기와는 달리 꽤 커 보이는 내부는 클림트와 고흐를 비롯한 여러 유명 화가들의 그림으로 전시되어 있었고, 벽 또한 계단과 마찬가지로 코발트와 검정 사이를 배회하는 애매한 단색의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가게 내부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고요함은 가게의 디자인과 합을 맞춰 우리 둘 사이를 웃돌고 있었다.

 

"처음 오셨나요?"

 

정적을 순식간에 깨트려버린 소리에 놀란 나머지 입술 사이로 새어버린 신음과 함께, 나는 고개를 꺾어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았다.
벽과 같은 색으로 칠해진 카운터에 앉아있는 직원은, 그녀 또한 벽과 같은 색의 정장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기척만으로는 알아채기가 어려웠다.

 

"죄송해요. 인기척이 나질 않아서…"

"괜찮습니다. 많이들 놀라시더라구요."

 

카운터의 그 직원은 입꼬리를 올려 씽긋 웃고는 우리 둘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다시 말을 꺼냈다.

 

"두 분은 부부인 것 같은데, 결혼 전으로 보실 건가요?"

 

이 곳은 점집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그리 먼 사이도 아니었나 보다. 정곡을 찔린 나머지 나는 말끝을 조금 흐려 대답했다.

 

"아… 예, 뭐 그런…"

"부부나 커플분들이 자주 찾아오셔서요. 대부분 만나기 전으로 해 달라고 하시거든요."

 

부부 사이가 소원한 것이 비단 우리의 일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은 여기서 위안을 얻고 돌아갔을까. 아니면 어떠한 답을 찾았을까. 둘 중 무엇이든지 나에게는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그분들은 이걸 받고 나서 많이 싸우던가요?"

"오빠!"

 

별소리를 다 하냐는 듯 은희가 나를 째려보았고, 나는 애써 은희의 눈길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대부분은 현재의 삶에 만족한 채로 돌아가세요. 물론 저는 분기점 바깥의 일까진 알지 못하지만,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그것뿐이네요."

"지금 바로 받을 수 있는 거죠?"

 

은희가 끝내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기계가 준비되는데 5분 정도 걸려요. 아마 곧 이용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 두 분 서로 결정은 하신 건가요?"

"아…"

 

대답을 망설이는 나를 쿡쿡 찔러대는 은희에게 못 이겨, 나는 마지못해 그렇게 해 달라고 대답했다.

 

"그럼 잠시 대화 나누고 계세요. 준비되면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잠시만요."

 

나는 현재의 삶의 만족한 대부분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물으려다, 순간적으로 은희의 잔소리가 걱정되어 화제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내었다.

 

"벽에 걸려있는 저 그림들, 진짜입니까?"

 

은희는 내가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푹 숙여버렸고, 직원은 또 그 입꼬리를 올리고 씽긋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산 게 아니라서 잘은 모르지만… 진짜든 가짜든, 보기에 예쁘면 그만 아닐까요?"

 

직원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기계가 있는 방 안으로 홀연히 들어가 버렸다.

 

 

"편안하게 앉아주세요. 영화 한 편 관람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말하자면 1인 영화관 같은 기분이었다. 헬멧보다 큰 가상현실 기계를 착용해야 한다는 점만 빼면 정말 영화관의 그것과 별 다를 게 없었다. 나는 부담스러운 이 기계를 내 머리에 끼운 후에, 직원에게 손가락으로 준비가 되었다는 사인을 보냈다.

그 순간 눈 부신 빛이 시야로 쏟아지더니, 나체의 은희가 나타났다. 영상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현실감에 순간 착각하여 나는 반가운 마음에 은희를 불렀으나, 은희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은희가 공간 속으로 조금씩 사라져 배꼽만 겨우 보일 때 즈음 내가 서 있는 장소 또한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다.
숲이 우거졌으며, 건물이 세워졌고,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몇십 년 전 개봉한 SF 영화의 주인공이 된듯한 기분이었으나, 정작 나를 조종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저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배경은 청록이 우거진 대학 캠퍼스 앞이었고, 그곳에는 그야말로 청춘의 전성기를 맞고 있었던 내가 서 있었다. 어쩐지 그 장면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 같았으나, 배경은 빠르게 바뀌어 내가 그런 감정에 취해있을 시간까지는 주지 않았다.
어느덧 대학의 OT에 참석하여, 은희의 모습을 보게 되었으나 OT가 끝날 때까지 나와 은희는 단 한 번도 말을 섞지 못했다. 원래대로라면 그곳에서 은희를 만나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알아가게 되지만, 이쪽 삶에서의 나는 은희를 모르고, 은희 또한 나를 모른 채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었다.

3시간의 압축은 모든 걸 보여주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고, 시간은 더욱 빠르게 흘러갔다. 나는 어느새 3학년이 되어 있었고, 학생회장까지 맡으며 더욱 바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에 따라 본래의 삶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교수와의 친분 또한 쌓게 되었으며, 졸업 전 교수의 추천을 받아 괜찮은 회사에 입사할 기회까지 얻게 되었다.

내 삶이 그야말로 역변을 겪고 있었다.
은희는 어떻게 되었을까. 은희도 파란만장한 새 인생을 경험하고 있을까. 은희의 생각대로 우리가 결혼하지 않아서 이렇게 행복했었더라면. 은희와 나 사이의 사랑은 처음부터 헛수고였으며, 서로에게 노력하는 억지 봉사도 하지 않았으리라. 이젠 화면 속인지, 실제의 나인지조차 잘 구분되지 않는 다른 삶 속의 나는 벌써 대학 졸업장을 손에 거머쥐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

교수의 추천으로 입사한 회사는 몇 년 전부터 큰 성장세를 보였던 중견기업이었다. 나는 비슷한 시기에 나와 같이 입사한 동기와 서로 힘든 점을 털어놓고 공감해주며 친해지게 되었고, 어느새 남들 모르게 사내연애까지 하게 되었으며, 결국 몇 년 되지 않아서 그녀와 나는 결혼을 앞두게 되었다.

겨우 은희를 만나지 않았을 뿐인데 어떻게 하면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잘 풀리고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이쪽 삶을 보게 될수록 눈앞의 현실이 떠올라서 나는 더욱 비참해졌다.

결혼 후의 삶 또한 그저 행복하기만 했다. 아이는 자신의 어머니를 닮아 예쁘게 자랐으며, 가정 형편 또한 걱정할 것이 없었다.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이었고, 내가 항상 꿈꾸던 장면이었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시간은 흐른다. 이날은 대학 동기들과의 동창회가 있는 날이었고, 나와 친하게 지내던 모두가 각자 그들의 기준에서 성공한 채 살고 있었다. 그때 이번에 개인병원을 차린 친구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너네 은희 이야기 들었냐?"

 

가슴이 내려앉았다. 은희는 어떻게 되었나. 은희도 나를 만나지 않고서 행복했을 것이고, 그래야만 했다.

 

"은희가 누군데?"

"왜, 과에서 조용한 애 있었잖아. 말도 조금 어눌하고."

 

은희가 이렇게 기억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은희는 대학 시절 밝고 쾌활해서 과 선배나 동기들에게 사랑받는 성격이었는데, 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번에… 자살했다네, 형편이 좀 안 좋았는데.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었나 봐."

 

화면 속의 또다른 나는 이미 안타까운 일이라며 수긍하고 있었고, 벌써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하고 있었다.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은희는 삶을 포기할 정도로 끔찍하게 살고 있었음에도, 나는 이기적이게도 이런 식으로 행복하게 사는 것도 모자라 은희의 죽음 자체를 상관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 분노와는 달리 이곳에서의 나는 은희를 몰랐다. 내 삶에서 은희는 조연도 아닌 엑스트라로 기억되고, 결국에는 잊힐 사람이었다.

건배하고 술잔을 들이키는데 시야가 흐려지면서 갑자기 친구들이 한 명씩 사라졌다. 그 후에는 술집 테이블과 의자가 사라지더니 종국에는 술집 자체가 사라지고 빛줄기가 다시금 내 시야를 붉혔다.

현실을 다시 체감하는 데에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슬픈 영화를 보고 난 후의 여운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기에, 나는 10여 분을 통곡하고서야 조금 진정할 수 있었다.

 

 

"며칠간은 조금 적응하기 힘드실 거에요. 다들 그러니까 걱정은 하지 마세요."

"은희는 끝났어요? 걘 좀 괜찮나요?"

 

나보다는 은희가 조금 더 걱정이었다. 내가 본 결말대로라면 나를 만나지 못한 은희의 삶은 끔찍했을 것이기에, 충격을 크게 받았으리라.

 

"네? 누구요?"

"은희요. 같이 온 제 아내 말입니다."

 

직원은 입꼬리를 올리고 씽긋 웃더니, 급기야 입을 벌리고 깔깔깔 웃기 시작했다.

 

"뭐에요?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은희 어딨냐니까요?"

 

직원은 한바탕 웃고 나서는 조금 진정된 듯한 낯빛으로 말을 꺼냈다.

 

"아내라니요? 손님은 아직 결혼도 안 하셨는걸요."

 

은희에게 무슨 짓을 저지른 후에 나를 미친 것처럼 만들 심산인 듯했다. 3시간이면 일을 저지르기에 충분한 시간이고, 나는 곧이어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이보세요. 경찰에 신고하지는 않을 테니까, 은희만 데려와 주세요. 왜 이러십니까 도대체."

 

직원은 대답하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터져 나오는 웃음을 계속해서 참으려 하고 있었고, 나는 결국 직원의 멱살을 붙들었다.

 

"이 미친년아. 우리 은희 어디로 데려갔어. 당장 말 안해?"

"이 씨… 아직 선택도 안 하셨는데 왜 아내가 있겠느냐고요!"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직원이 내 팔을 뿌리치고 카운터 구석으로 도망쳐 버렸다. 그나저나 선택이라니.

 

"도통 무슨… 선택?"

"네? 아니 참. 그것도 모르고 오셨어요?"

 

직원은 허탈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한번 쳐다보고선 간이 책상 쪽으로 안내했다.

 

"여기를 보시면요… 그냥 인생의 중요한 부분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의 다른 면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면을 선택한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해 드리고 있는데요… 아까 아내였던 분이 이걸 선택하셔서 남편분도 같이 이걸로 해드린 거에요."

"…"

"그니까 가게 문을 나서면, 손님이 선택해보지 못한 삶으로 살아갈 기회가 주어지는 거예요. 물론 원래 삶으로도 돌아갈 수 있구요."

 

평소였다면 말도 안 되는, 그야말로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했겠지만 이 곳에서 보여준 영상은 정말 사실처럼 느껴졌기에, 내가 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 또한 손에 잡힐 듯 거짓말이 아닌 것 처럼 느껴졌다.

 

"내가 그걸 어떻게 믿어?"

"그럼 선택을 하시고, 아내분이 바뀌었는지 안 바뀌었는지 확인하면 되겠네요. 하지만 여기 왔던 기억은 당연히 사라지게 될 거구요."

 

혹시나 싶어 은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 속의 기계음은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번호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지갑에는 은희와 찍은 가족사진과 내가 결혼했을지도 모르는 그녀와 찍은 가족사진이 같이 끼워져 있었다.

 

"이곳은 모든 게 불분명해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죠."

"…내가 선택을 하면, 나머지 하나는 어떻게 되는데?"

"없던 일이 되는 거죠. 죽음과 생존이 공존하는 슈뢰딩거의 상자를 열어버리면, 그때부터는 죽음이나, 생존. 둘 중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아내분이라고 해도 결국 마찬가지구요."

 

이젠 인정할 수 밖에. 은희는 애초부터 날 떠났다. 무엇을 선택하던지 나 따위랑 사는 것보다는 자신의 삶이 더 나아질 줄 믿고서 그랬던 것일까.
의자를 끌고 일어나 조심히 가게 문을 연다. 밖에서 빛을 받아 한없이 화려해 보였던 문은 어두운 가게 안에서 녹슨 철제문에 불과했다.

 

"또 오세요!"

 

끝없이 세워진 계단을 걷는다. 저 멀리 빛이 점처럼 반짝이는 것이 보인다.
몇 걸음을 더 걷자 눈 부신 빛이 시야에 쏟아지며, 곧 세상이 환해진다.

<끝>

ㅡㅡㅡㅡㅡㅡ

글틴에는 첫 글이자 첫 소설이네요!

마지막 소설을 쓴지 거의 9개월만에 완성한 소설이에요

분량은 반에도 못미치지만…

그동안은 공모전용 으로만 쓰다보니 안에 내포하고있는 교훈만을 추구하게 되었는데

이번엔 정말 이야기다운 소설을 한번 써보고 싶어서 쓰게 되었습니다.

그나저나 작가님 평을 받게 된다니 굉장히 떨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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