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월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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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모두들 8월 한 달 잘 보내셨나요? 어느덧 열어 두었던 창문을 닫을 계절이 다가오네요. 매해 절기를 이길 더위를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여름이 가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이 생기기도 하고요.

8월 한 달, 대전과 수원에 다녀왔습니다. 온라인으로만 알던 분들을 대면하게 되어 정말 반가웠어요. 그 과정에서 느낀 것도 있었어요. 소설을 쓰고자 하는 많은 글틴 식구들이 생각보다 다른 분들이 올린 글을 안 읽는다는 거였어요. 물론 저도 짐작하고 있었던 일이지만 , 이 페이지에 올라온 다른 분들의 작품조차 잘 읽지 않는 줄은 몰랐어요. 당연히 작품마다 다는 제 댓글도 안 읽으시겠죠. ㅠ

여러분! 타인의 작품을 읽는 건 정말 중요해요. 글을 쓰려는 분들에게는 더더욱!

자신의 글쓰기를 점검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죠. 친구들이나 저 같은 사람에게 작품을 보여주는 것도 방법 중 하나일테고 공모전에 투고해보는 방법, 혹은 과외 시간이나 수업 시간에 합평을 하는 방법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남이 쓴 작품을 읽는 것이 자신의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쓴 글을 객관적으로 보기는 어려워요. 플롯이나 캐릭터에 대한 조언을 들어도, 그걸 극복할 방법이 없어 답답해지는 것도 그 때문일 수 있죠. 그럴 때는 타인이 쓴 글을 읽으며 자신의 문제점을 찾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예요. 또한 제가 다는 댓글은 대부분 한 분에게만 국한된 조언이 아니라 대개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문제들이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자신이 올린 작품에 달린 댓글만 보고 다른 작품은 잘 보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정말 슬펐어요. 또래 친구들이 쓴 작품을 보며 자신의 작품을 점검하고 작가의 글을 보며 질투를 하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인데 말이예요.

물론 여러분 거의 모두가  입시 공부에 시달리느라 독서할 시간은 커녕 글 쓸 시간도 내기 어렵다는 걸 압니다. 다만 제 바람은 하루에 1-20분이라도, 한 달에 1-2시간이라도 타인의 글을 읽는데 할애했으면 하는 거랍니다. 더불어 제가 여러분의 작품에 덧붙이는 글도 읽어주셨으면 하고요. ㅠ

 

잔소리가 길었네요. 이런 잔소리 또한 여러분을 향한 제 애정의 표현이라고 생각해주시길 바라며 8월에 올려주신 작품들을 살펴볼게요. 이번 달에는 총 아홉 분이 열 두편의 작품을 올려주셨어요. (중등부 5편, 고등부 7편)

모로님의 <소원> (이 작품은 심사대상에서 제외해 달라고 하셨지만 어쨌든 올려주신 건 올려주신 거니까요), <하루> -고등부

마약님의 <사이코>, <얼룩> -중등부

병자님의 <새벽에 몰아쓰는 6년의 일기>, <마피아> -고등부

지워진 낙서님의 <마지막 외출> -중등부

서보현님의 <늪> -중등부

향유용님의 <어린 왕자를 사랑한 장미 이야기> -고등부

박와룡님의 <더위> -중등부

화도융님의 <네잎 클로버> -고등부

꿀달생향님의 <달밤이 들려주는 이야기> -고등부 등이었습니다.

 

  • 월장원은 박와룡님의 <더위>입니다.

 

댓글에서도 밝혔듯이 이 작품은 순차적 구성적 측면과 개인의 삶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지는 못하지만 전개 부분의 개괄 솜씨나 문체가 개성적이고 힘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가난을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차례로 집을 떠나는 형제들에 대한 이야기를 진술하는 방식이라든지 서술자인 내가 어떻게 집을 나서게 됐는지를 생략과 강조를 통해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더위를 이 달의 장원으로 뽑은 이유입니다. 물론 거친 문장과 입말, 글말을 구별하는 훈련을 해야하는 숙제가 남기는 했습니다. 와룡님, 축하드립니다.  그 외에도 8월에 작품을 올려주신 여러분 모두 고생하셨어요. 9월에도 여전히 잘 부탁드립니다.

 

  • 모로님의 요청대로 "소원"은 심사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 연작 형식으로 작품의 일부만 올려주신 분들도 제외했습니다. 댓글에서 밝힌대로 완성되지 않은 작품을 평가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은 여러모로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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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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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동안 광주, 부산, 서울에서 있었던 문학창작 아카데미에 참가했습니다. 비록 촉박한 시간 탓에 오랜 시간을 같이 하지 못했지만 그곳에서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주로 방에서 글을 쓰거나 강의실에서 제한된 인원만을 대하며 지낸 저에게 그 기간은 특별했고 조금은 뭉클한 시간이었습니다. 여전히 이렇게 많은 분들이 글을 쓰고 싶어하신다는 사실이 기뻤습니다. 이 일(글틴에서 소설 멘토를 하겠다고 한 일)을 너무 가벼이 여긴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도 했습니다.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 한 달 동안 꽤 여러 편의 작품들을 읽었습니다. 댓글을 달 때마다 이런 조언이 지나치게 일방적인 것은 아닌지, 기존의 질서에 누가 되는 것은 아닌지, 혹시 누군가 상처를 받는 것은 아닌지 하는 조심스러움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하면 '대체로 잘'이라든지 '그만하면 꽤'라는 식의 조언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순간적인 위안은 될 수 있을지언정 결코 도움은 되지 않는 조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입니다. 발전적인 글쓰기에 도움을 주는 일이 제가 할 일일테니까요. 그래서 한 달 동안 제가 느낀 점을 정리하여 몇 가지 당부를 드리려고 합니다.

 

 

1. 매수를 지켜주세요.

이곳은 소설을 쓰는 공간입니다. 소설의 구성 요소로는 인물, 사건, 배경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언제 어디서 누군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허구의 글쓰기가 소설이라는 말이겠지요. 그런 모든 요소를 만족시키는 글쓰기가 단 번에 완성되기는 어렵습니다. 기승전결과 인물, 사건, 공간을 형상화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정 매수 이상의 긴 글을 쓰는 훈련도 동반되어야 합니다. 간혹 단상이나 습작 메모 형식의 글을 올리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소설을 시작하기 전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에 올리는 작품은 15매(200자 원고지 기준)- 20매 (장편, 혹은 엽편 소설이라고 합니다), 혹은 50매-90매(단편 소설)의 완결된 형식의 작품으로 올려주세요. 쓴 글을 읽고 그에 대한 조언을 하는 일이 제가 할 일이지만 습작 메모까지 일일이 제가 조언을 한다는 것은 여러분에게 별 도움이 안 될 거라는 생각입니다. 각자가 고민하고 궁리하는 과정이 생략된 원고가 완결성 있는 글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2. 댓글을 달아주세요.

글은 혼자 쓰는 과정의 연속이지만 그 '글'에는 독자가 필요합니다. 습작기의 학생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쓴 글에 대한 조언이 필요합니다. 오프라인에서는 그 시간을 '합평'이라고 칭합니다. 합평에는 틀린 것과 옳은 것이 없습니다. 서로 다른 입장과 생각만이 있을 뿐이겠죠. 또한 그 다른 입장과 생각을 통해 시야를 넓혀가고 안목을 길러가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합평입니다. 이 공간을 방문하고 글을 올리시는 여러분 모두 그런 합평에 좀더 적극적이셨으면 좋겠습니다. 최근에 댓글을 다는 건 저 뿐인 것 같은데, 여러분도 서로의 작품을 읽어주고 조언을 해주는 것에 인색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타인의 작품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고 조언하고 또 조언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작품을 점검해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게 글쓰기의 유기적 훈련 과정입니다. 기회가 되는 대로 좋은 '댓글'도 추천할 생각입니다.

 

3.  올린 작품을 지우지 말아주세요.

간혹, 공들여 읽고 댓글을 단 원고가 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자신이 쓴 글을 자신이 지운 것을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고 여겨 자신의 글을 지우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그건 특정 개인에 국한된 감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두들 저마다 조금씩 그렇게 의기소침했다가 또 쓰기를 반복하겠지요. 저는 여기가  일방적으로 글을 올리고 일방적으로 댓글을 다는 것으로 끝나는 공간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아카데미에 참석했다가 여러분처럼 한때 이곳에 시를 올리고 소설을 올리며 글쓰기를 하던 선배들을 만났습니다. 아마 그 선배들의 선배들도 있겠지요. 그 말은 역설적으로 여러분의 후배에 후배들도 생기리라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곳에 작품을 올리며 타인의 작품을 읽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그 작품에 붙은 댓글도 읽으며 자신의 글쓰기를 교정하는 시간을 뺏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이곳이 소모적인 공간을 넘어 '보물창고' 같은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꼭 필요하다 여겨집니다.

 

*

본격적인 추위가 곧 시작되겠지요. 여러분 모두 건강하고 따뜻한 겨울을 시작하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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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월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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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은 잘 보내고들 계시는지요. 내내 타는 듯 덥던 대기가 오늘은 하루 종일 축축하게 젖어 있습니다. 작년만큼이나 더운 여름이었어요. 제가 지내는 곳은 창이 모두 서쪽으로 나 있는데요. 해질녘이 되면 그야말로 햇빛으로부터 도망칠 곳이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돼요. 여름 햇빛이 얼마나 길게 드리우는지도 알게 되었고 말이예요. 창들이 동쪽으로 향한 곳에 사시는 분들, 혹은 남쪽이나 북쪽으로 난 집에 사시는 분들은 각각 조금씩 다른 발견들을 하겠죠. 아무 의미 없는 그런 사소한 감각들이 여러분의 삶을 좀더 풍요롭게 만들길 바랍니다.

 

이 번 달에는 총 11분이 작품을 올려주셨어요. 다른 달에 비해 특히 중등부 분들이 많이 참가해주셨는데요 모로님의 파리를 제외하고 열 작품(아던의 이야기, 별, 살인 의뢰소/SDO, 나는 갓길이다/여전사 캣츠걸, Time Wrap Watch/sevensj, 아버지와 돼지고기/배정환, D-13/황혜정, 어 보이/황유원, 친구/츠바키, 회상/소금별사탕)이 모두 중등부 작품들이었습니다.

 

이 번 달에 올려주신 작품들을 읽으면서 크게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환타지란 과연 환타지인가 하는 생각과 글은 왜 쓰는 것인가 하는, 그야말로 원론적인 생각이었어요. 글은 '나'를 표현하기 위해 가장 쉽게 쓰이는 방법입니다. 펜과 종이가 있다면, 컴퓨터가 있다면 따로 뭔가를 준비하지 않아도 누구든 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그런데 '나'를 표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단순히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일상을 사는 사람이야,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글을 통해 나를 드러내고 싶어하고 나를 알리고 싶어하고 이해받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까 '표현'에는 '소통에 대한 욕망'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소설은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글이 아닌, 읽는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동의하거나 분노하게 하는, 그런 입체적이고 상호교환적인 글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방적으로 내 생각을 설명하거나 진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좀더 노력을 해야 해요. 책상이라는 명사로 예를 들어 볼게요. 책상이라는 명사는 누구나 다 아는 명사이지만 책상, 이라는 단어를 통해 각각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다 다를 거예요. 누군가는 말끔하게 잘 정돈된 책상을 떠올릴 것이고 누군가는 서류가 어지럽게 널린 책상을 떠올릴 것이고 누군가는 나무로 만든 책상, 누군가는 푸른 페인트가 칠해진 책상, 또 누군가는 서랍이 내려 앉은 책상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겁니다. 그건 당연한 거겠죠. 각각의 삶이 다 다르니까요. 소설은 그 각각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죠. 그런데 많은 분들은 그냥 '책상'이라고만 쓰고 지나가 버려요. 책상을 묘사하는 일은 필요없는 일이라 생각하거나, 너무나 당연한 단어에 굳이 공을 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그게 그렇지 않답니다.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세상에는 수많은 책상이 있고 그 책상은 모두 다른 책상이니까요. 여러분은 그 수 많은 책상 중 단 하나의 책상을 골라 그 책상의 주인을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만드는 거예요. 그러니 그 책상을 어떻게 묘사하느냐에 따라 주인공은 깔끔한 성격일 수도, 아닐 수도, 부유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거죠. 그런 묘사를 통해 독자들은 작품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런 것들을 간과한 채 자신이 설정한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에 급급한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환타지를 위한 환타지, 이건 좀더 생각 조각들이 모이면 다시 말씀드릴게요.

 

 

이 번 달에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벌써 몇 달째 장원을 뽑지 못해 저도 안달이 났거든요. 사실 중등부와 고등부는 각각의 잣대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리하여 고민 끝에 두 작품을 뽑았습니다.

 

<나는 갓길이다> 이 작품은 작품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정말 공을 많이 들인 작품이라 여겨집니다. 댓글에서 조언한대로 아직 플롯이나 문장의 모호함들이 개선되어야 할 문제로 보이지만 이 글을 쓰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고치고 궁리한 흔적이 역력했어요. 앞으로 문장을 좀더 분명하게 쓰는 법을 훈련하시길 바랍니다.

<아버지와 돼지고기> 이 작품은 자신의 주변에서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는 소재를 찾았다는 점. 이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드렸습니다. 댓글에서도 말했듯이 소설은 거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13살 화자의 내면이 그 또래의 눈높이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물론 에피소드를 좀더 심화시키고 플롯을 궁리하는 건 숙제로 남겨두겠습니다.

여전사 캣츠걸님과 배정환님, 축하드립니다. 그 외의 모든 분들도 수고 많이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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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월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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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텁지근 날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작년 여름에 겪었던 더위가 떠오르기도 하는 그런 6월이었습니다. 특히 여러분들에게는 그리 즐겁지 않은 6월이었겠네요. 다들 시험은 무사히 치르셨나요. 모두 고생하셨어요.

기말고사 때문이었는지 6월에는 업로드 된 작품이 거의 없었는데요, 모든 것이 시험 때문이었다고 애써 믿어 봅니다. ㅠㅠ

잠깐, 6월에 올려주신 작품 세 편을 7월에 올려주실 작품과 묶어 월장원을 뽑을까 고민도 했었지만 6월은 6월의 작품을, 7월은 7월의 작품을 읽는 것이 맞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작품을 올려주시고 기다려주신 세 분께 감사드려요.

각설하고,

호로비츠 – 이십

집- 애기애타

공기와 우리 – 모로

6월에는 고등부 세 분이 작품을 올려주셨어요.

이십님의 호로비츠는 음악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고민하는 한 존재의 내면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 좀더 섬세한 묘사와 진술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어요. 결말이 다소 급작스럽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일 겁니다.

애기애타님의 집은 겉으로 드러난 구조는 비교적 안정되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집(혹은 방)이라는 공간(표면적인)을 채우는 것은 결국 내면의 이야기인데 그와 같은 숨은 서사가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런 숨은 서사들은 때로 많은 분량을 필요로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댓글에서도 밝혔듯이 '이제'라는 부사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거든요. 빈방을 바라보며 찰나에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 같은 것들(예를 들면 말이죠)이 몇 장면 들어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습니다. 그랬다면 이야기가 좀더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마지막으로 모로님의 공기와 우리. 이 작품은 실험적인 성격이 강한 소설이었습니다. 모로님은 언젠가부터 '서사'라는 양식을 가진 서사적 글쓰기에서 벗어나보려는 시도를 하고 계신 것 같아요. 그 점은 퍽 칭찬해드리고 싶어요. 그 서사 파괴를 지향한다는 것이 아니라 '모색'은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태도 중 하나니까요. 다만, 그 모색이 형식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내용'까지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은 꼭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모로님의 작품에서 늘 아쉬운 것이 사람'들'의 '삶'에 대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아주 가까운 곳에서부터(부모님이나 그 외의 가족들) 그런 삶의 관찰을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매번 월장원을 뽑아야 하는 상황마다 늘 드는 고민에 빠집니다. 정성스럽게 올려주신 여러 작품들을 제가 너무 쉽게 읽은 것은 아닌가, 너무 엄격한 잣대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고민과 동시에 드는 생각은 이 공간이 뭔가 하나라도, 아주 작은 하나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여러분이 무심코 쓰는 부사 하나라도 줄일 수 있다면, 개연성을 위해 한 시간이라도 고민을 더 할 수 있다면, 캐릭터를 위해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생길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지요. 눈치채셨겠지만 이렇게 말이 길어지는 이유는 이번 달에도 장원을 뽑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방학 중에는 좀더 다양하고 많은 작품들을 접할 수 있길 바랍니다.

 

더위 조심하시고, 물가에 가실 때도 늘 더 조심조심하세요. 더불어 모두들 즐거운 여름을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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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월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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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답지 않은 오월이었습니다. 이 계절에 초미세먼지의 공습을 받게 될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모두 건강히 잘 지내셨나요.

다른 달보다 장원 발표가 조금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번 달에는 다른 달보다 올려주신 작품 수가 조금 적었는데요. 고등부는

  • 멸망(수정본) – 애기애타
  • 순백의 마녀 – 구리
  • 비행 – Lyeok
  • 하늘의 바이올린 – 참치군 등 총 4편이었고

중등부는

  • 잘못된 치료방법 – 조용한 아이
  • 위잉위잉 – 이메브
  • 천악(수정본 포함) – 호리공령
  • 도플갱어를 만나면 – SDO 등 총 5편이었습니다.

 

이번 달의 작품들을 읽으며 느꼈던 것을 간단하게 말씀드릴게요.

소설은 시와 달리 일정한 형식과 내용을 필요로 합니다. 많은 분들이 간과하시는 부분이기도 한데, 소설은 인물과 사건과 배경이 그 형식과 내용을 끌고 가야 하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플롯이고요. 실제로 복잡하게 얼기설기 엮인 플롯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설에는 늘 플롯이 존재해야 합니다. 댓글에서도 밝혔듯이 소설에서의 플롯은 2차원인 평면의 세계를 3차원의 세계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면 위에 점 두 개를 그어 놓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어진 두 개의 점 너머에 또 다른 점과 점을 잇는 평행의 공간이 있고 또 그 너머에 다른 공간이 있는 것. 제가 생각하기에 플롯은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시간의 순서에 따라(그건 줄거리이기도 합니다) 평이하고 단조로운 플롯의 작품을 쓰고 계시는 것 같아요.

" 옛날 옛날에 왕과 왕비가 살았다. 둘은 서로를 사랑했고 그래서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왕비는 몹쓸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 끝내 운명을 달리 했다. 혼자 남은 왕 또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숨을 거두었다."

위의 예는 시간의 순서에 따라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이런 건 줄거리죠.

"왕이 죽은 이유는 왕비를 잃은 슬픔 때문이었다. 왕이었지만 그에게 가장 중요했던 건 왕비였던 것이다. 그 왕비가 몹쓸 병에 걸린 것은 지난 해 여름이었다. 왕은 사랑하는 왕비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헛수고였다. 왕비가 죽고 왕은 식음을 전폐하고 왕비의 방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왕비가 몹쓸 병에 걸린 날부터 왕도 따라 죽어가고 있던 것일지도 몰랐다."

둘을 비교해보면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개연성에 관한 부분입니다. 가독성이 좋은 몇몇의 작품들을 읽으며 든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잘 읽히기는 한데, 왜 공감을 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주인공이 하는 행동이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여겨지지 않고 자꾸 그는 왜 이런 행동을 할까 하는 질문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평범한 남자가 폭력적인 남자로 변하는데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평범한 소년이 특별한 청년으로 성장해가는 데에 필요한 것은 초월적 힘이 아니라 고난과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작품의 결말을 누군가의 죽음으로 끝내거나 혹은 작품의 처음을 어떤 '초월적 힘'에 기대어 전개하기도 하는데 그런 이야기일수록 개연성 있는 서사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소설을 쓸 때 참고가 되시길 바랍니다. 더불어 다른 달과 마찬가지로  개별 평은 각각의 작품에 덧붙인 댓글을 참고해주세요.

 

그리하여

이번 달의 장원을 뽑기 위해 고심했지만 장원을 뽑지 못했습니다.

아쉽지만 6월의 작품들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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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월 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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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 달 동안 모두들 안녕하셨는지요. 봄인가 싶더니 벌써 여름이 된 것 같습니다.

일제히 피었다가 앞다투어 지는 꽃들을 보며 시작과 끝 사이의 과정들, 그 과정들이 너무 빨리 지나가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소설에서도 그건 몹시 중요한 일이지요. 흔히들 소설의 첫 문장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저도 그런 말을 자주 하곤 하는데, 그건 단순히 첫 문장만 중요하다는 말은 아니예요. 첫 문장을 쓸 수 있다는 건 마지막 문장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라고 믿습니다. 즉,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결정했다는 건 그 사이의 과정을 제대로 장악한다는 말이라는 의미죠. 시작과 끝은 단순히 시작과 끝이 아니라 그 단어들이 나란히 쓰이는 순간, 그 사이의 과정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세계의 전부라는 말과 같아요.

권선징악의 세계, 상투적인 기승전결의 세계, 이런 서사는 이미 옛날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권선징악이나 상투성은 굳히 소설을 통하지 않고도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이니까요. 문학에서의 새롭다는 말은 낯설다는 말과 동의어라고 생각합니다. 낯섦에는 어떤 매혹이 있어요. 그게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흥미를 유발하는 촉매제가 되죠. 그런 낯섦을 위해 여러 고민들을 하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런 고민들이 단순히 추상적이고 모호한 세계의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번 달에 올려주신 9편의 소설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삶'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얘기들이 아닌가 하고 말이예요. 9편의 소설에는 9명의 주인공들이 등장하지만 실제로 각각의 9명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령 여러분 또래의 9명이 있다고 생각해 보죠. 그들은 같은 학교를 다니고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은 교복을 입지만 각각 고민도 다르고 상처도 다르고 습관도 다르고 추억이나 취향도 모두 달라요. 모두 보편적이면서도 특별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일 거예요. 어떤 사람은 비오는 날을 좋아하고 또 어떤 사람은 비오는 날을 싫어하겠죠. 왜? 라고 물으면 더듬더듬 자신의 얘기를 털어 놓을 거예요. 그런 '자신의 얘기'가 한 명의 개별적인 인물을 만들고 개별적인 서사를 만드는 것고 나아가서는 낯설고 매혹적인 얘기의 주인공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들 비슷비슷하게 지나치게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것에만 집중하고 계신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에는 반드시 어떤 '존재'가 등장해야 하고 그 존재는 세상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개별적인 존재여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걸 극복하는 방법은 타인의 삶을 관찰하는 끈기와 노력일 거예요.

 

이번 달에는 고등부 7편 (닭 한 마리-오태연, 기묘한 관계-리엔, 통조림-애기애타, 화해-상실, 생명의 땅-ssay, 멸망-애기애타, 파랑-구리)과 중등부 2편 (첩보요원에서 여고생으로-황태연어, 뱀파이어 소녀-sdo)이 올라왔습니다. 그 중 화해(상실)과 뱀파이어 소녀(sdo)는 전체적인 구성이나 인물들의 갈등이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어 주목했는데요, 각각의 댓글에서도 밝혔듯이 각각 인물들의 갈등이 상투적인 결말로 치닫는 것이나 개연성을 배제한 글쓰기가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아쉽지만 장원 작품 선정은 다음 달로 넘기겠습니다.

 

눈부신 날들이 계속 되겠죠. 고민도 눈부신 과정일 겁니다. 5월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김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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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월 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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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이 피기 시작하더군요. 곧 떨어져 사라질 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해 꽃이 피는 계절이면 반갑고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그때서야 무심히 지나치던 나무가 목련 나무였다는 걸, 매화 나무였다는 걸, 살구 나무였다는 걸 떠올립니다. 항상 거기 있어서 잊어버리고 지냈던 많은 사물과 일상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3월이 지나고 이제 4월이 왔습니다.

 

3월에는 총 11편의 작품을 올려 주셨습니다.

그 중 고등부는

닭 한 마리 (오태연)

유서의 밤, 음료수 (윤별)

첫 눈 (찬연)

반복재생, 눈을 떠보니 길거리를 일상인 것처럼 터벅터벅 걷는 사람들이 보인다, 불이 꺼진 극장 (차한비)

등, 총 7편이었고

중등부는

미카 (박채연)

떨어진 동전 (대청마루)

보이지 않는 것 (스틱맨)

어느 날 일어난 신비로운 일 (SDO) 등 4편이었습니다.

 

모두 애쓰셨습니다. 새학기라 여러가지로 바쁘고 분주했을텐데 말입니다. 특히 두 편을 올려주신 윤별님과 세 편을 올려주신 차한비님. 고생하셨습니다. 댓글에서는 여러가지 아쉬운 점을 위주로 글을 썼지만 한 달에 두 세 편을 쓰거나 고친다는 건 열정이 없으면 힘든 일이지요.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쓰신 거라는 걸 이 자리를 빌어 말씀드립니다.

 

늘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것 같습니다만, 총평을 하겠습니다.

상투성, 혹은 전형적이라는 말에 대해 많은 분들이 간과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라마를 예로 들어 볼까요. 얼마 전 외국인들이 본 우리나라 드라마의 공통점들을 추려놓은 영상을 보며 한참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드라마에 꼭 등장하는 재벌 3세와 출생의 비밀, 얽히고 설킨 가족 관계, 현실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악한들. 그러나 결국 주인공은 행복에 이르는 이야기.

모든 드라마가 이런 건 아니지만 어떤 드라마는 한 두 편만 봐도 대충 전체의 이야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텔레비젼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시청률을 의식하다보니 생긴 공식이겠지만 공공연한 공식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소설은 드라마와 달라서 이런 공공연한 상투성 같은 건 없습니다. 그러나 작품을 읽다보면 상투적인 서사구조들이 종종 보이기도 합니다. 부부는 대개 깊은 불화를 겪고 있고 아이들은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에 시달리고 있고 엄마나 아빠는 부재중이거나 폭력적이거나 무능력하고 할머니는 선하고 동생은 아프고 예민한 나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심리적인 거리를 유지하며 관조하거나 외면하고.

현대를 사는 인간의 삶은 대개 엇비슷하거나 동일한 방식으로 영위되기 쉽습니다. 같은 평수의 주거 구조라는 게 엇비슷하고 그런 엇비슷한 구조 안에서 엇비슷한 일상을 이어가는 것이 현대의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비슷한 경로로 학교에 가고 점심을 먹고 수업을 듣고 야자를 하고 밤이 깊어서야 돌아와 비슷한 위치의 책상에 앉아 또 오늘과 비슷한 내일을 떠올리는 게 여러분 대부분의 일상이겠죠. 우리가 사는 삶의 형식이 전형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가 그런 주거문화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있습니다. 소설이 그런 전형성을 유지하면서도 개성을 만들어야 하는 건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전형성을 극복하는 길을 궁리하고 모색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각각 개별적이면서 특별한 존재들이니까요.

그리고 자신이 쓰고자 하는 이야기를 위해서는 취재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작품의 주인공이 정원사라면, 정원사가 쓰는 도구들이나 그 일에 대한 전문적 지식(물론 진짜 정원사가 아니면 알기 힘든 일이겠지만요)에 대해 조사를 하는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제가 종종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얘기를 쓰라고 조언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그저 막연하게 "그는 흙을 파고 나무를 심었다" 보다 "그는 은행나무를 심기로 했다. 농약을 뿌릴 필요가 없고 수확하기도 손쉬운 수목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가 더 낫습니다. 많은 분들이 막연한 설정으로 막연한 이야기를 쓰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해고된 직장인'이라고 진술하고 말 것이 아니라 "그는 30년을 넘게 총무부에서 일했다. 그 부서의 그 어떤 책상보다 그가 총무부에서 버틴 시간이 더 길었다는 말이다. 회사의 모든 집기와 비품 중 그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하다못해 그에게 문서로 전달된 정리해고 통지서조차 그의 결제를 통해 사들인 것이 분명했다"가 훨씬 더 소설적이라는 겁니다. (제가 급하게 예를 든 것이라 거친 표현을 이해해주세요.)

 

모두들 잘 알고 있겠지만, 아는 것을 작품에 반영하는 일이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에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단번에 극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조금씩 극복해 나가실 수는 있으니까요.

 

각설하고,

이번 달 장원은

 

미카 (박채연)로 정했습니다.

 

중등부 작품임에도 독특한 분위기와 문체가 인상적이라 여겨졌습니다. 물론 각각의 이야기가 갈등으로 이어지는 부분이나 결말 부분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남아 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더 좋은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고등부는 아쉽지만 4월로 넘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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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월 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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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가 시작되는 계절이네요.

체로키 족은 3월을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달"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마음도 마음이려니와 몸도 새로운 뭔가를 향해 움직이게 되는,

그런 달이라고 생각합니다.

 

2월에는 총 16편의 소설이 올라왔습니다.

고등부는 (스텔라, 지구가 쪼개지는 소리보다 더 아프게, 야자, 내성발톱, 바다에서 헤엄치는 법, 돈 저울 안 톱니바퀴, 치즈케익은 사랑스러워, 신께서 보고 계셔!, 통조림 속 여름, 설거지는 네가 해) 총 10편의 작품이 올라왔고 중등부는 (흙같은 삶, 마지막 선물, 무명, 우리, 열대어, 자갈)  6편의 작품이 올라왔습니다. 그 중 두 편을 올려주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방학임에도 뭔가를 부지런히 쓰는 분들이 계시구나, 혼자 그렇게 생각하며 흐뭇해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혼자 뭔가를 해야 할 때 걱정이 앞기도 합니다. 과연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맞는 건가 싶어서 말입니다.  맞는 길로 가고 있는 걸까, 이게 맞는 걸까 하는 걱정이 들겠지요. 그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조차도 여전히 그런 걱정과 두려움이 들 때가 있으니까요. 그때마다 누군가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게 맞나요? 제가 잘 하고 있는 건가요? 하고 말입니다. 물론 아무에게도 묻지 못했고 그 질문에 아무도 대답해 줄 리 없다는 것을 이제 압니다.

많은 분들이 글을 쓰며 이런 고민을 하실 거라 생각해요. 올려주시는 글을 읽을 때마다 그런 고민들이 보입니다. 그러나 글을 쓰는 동안에는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글쓰기의 정도는 자신의 글을 읽고 또 고치기를 반복하는 방법 이외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자신이 쓰고자 하는 이야기가 과연 말이 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제나 의미에 집착한 나머지 과정을 생략해 버리는 경우들이 종종 보입니다. 소설은 결말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것과 같습니다. 출발에서 결승점까지 그 모든 과정을 자신이 모두 걸어 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중간에 건너 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반대로 지나치게 자신의 모든 걸음 걸이에 집착한 나머지 끝내야 할 곳이 어딘지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많은 작가들이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에 대해 고민합니다. 저 또한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 작품은 이미 쓴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단순히 하나의 문장 자체를 멋지게 쓰기 위한 고민이 아니라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 사이의 그 세계에 대한 고민을 끝낸 상태니까요.

 

그런 생각을 하며 2월에 여러분이 올려주신 작품들을 읽었습니다.

2월의 고등부 장원은 두 분입니다.

 

곧님이 올려주신 <지구가 쪼개지는 소리보다 더 아프게>와 속도님이 올려주신 <통조림 속 여름>

그리고 중등부 장원은 박채연님이 올려주신 <우리>입니다.

 

세 분 축하드려요.

그리고 모두들 고생하셨습니다.

각각의 작품에 대한 평은 댓글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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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월 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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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방학 잘 보내고 계신가요.

이번 달에는 모두 16편의 작품이 올라왔습니다.

 

그중 고등부는 총 10편(오이소, 딸, 사디스트, 내가 사랑한 여자는, 자정, 착각백단, 명함, 칼, 꽃귤, 입김)이었고

중등부는 총 6편(포장된 진실, 강아지 이야기, 목적지, 마음의 미소, 겨울은 내게, 아이와 새)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쉽게도 이번 달 장원작품은 뽑지 못했습니다.

 

제가 정말 여러 번 얘기했지만 여전히 자신이 쓰고자 하는 이야기의 맥락을 생략한 채 순간의 상황이나 감정을 토로하는 것에 비중을 둔 작품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쓰는 자는 오로지 글을 통해서만 자신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쓰는 동안은 늘 감정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이어야 하고 감상보다는 논리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겠지요. 쓰는 동안은 더없이 외로운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전혀 모르는 누군가에게 내 얘기를 해야 한다면 여러분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겠는지요. 무엇을 말하기 위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주인공은 몇 살인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이력을 가졌는지, 어떤 방에서 어떤 꿈을 꾸며 잠들었다가 깨는지, 그는 어떤 상처를 가진 사람인지, 왜 울고 있는 것인지, 왜 죽고 싶은 것인지. 미처 작품 속에 다 쓰지는 못하더라도 쓰는 사람은 인물에 대한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가상의 인물을 만든다는 것은 그토록 어려운 일이지요.

 

동지가 지난지 한참이지만 여전히 밤은 길고 아침은 느즈막히 시작되는 계절입니다. 그만큼 생각하고 감각할 시간은 늘어난 계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쓰고 있는 이야기에 과연 '맥락'이 있는지, '인물'은 개성적인지 고민해 보세요. 소설은 손과 머리가 같이 부지런해야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별평은 각각의 작품에 단 댓글을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더불어 자신의 작품에 대한 댓글만 읽지 마시고 다른 분들의 작품에 더한 댓글도 읽어주세요. 사실 그 댓글의 상당부분이 특정 작품에 대한 조언이 아니라 여러분 모두에게 더하는 조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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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마지막 월 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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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한꺼번에 많은 작품들이 올라와 깜짝 놀랐어요. 한동안 작품이 올라오지 않아 그것 또한 제 탓인가 여겼는데 말입니다. 기말고사로 바쁘셨을 텐데 모두 애쓰셨습니다.

12월에 올라온 소설은 모두 18편이었습니다.

그 중 중등부는 <발 밑의 낙엽(도월현), 파리(스틱맨), 사라진 것들(박채연), 크리스마스 나무 기둥 안에서(다이너마이트)> 등 총 4편이었고 고등부는 <비일상(맛없는초코맛), light romance(lien), 곱슬머리(넌출월귤), 섬사람들(L), 동물원(애기에타), 이별(성아진), 반복재생(차한비), 소리 없는(아그책), 해변의 시계, 묘지, 혀(투또우), 바람의 방향(노랑)외 탈퇴회원의 2편(피, 애자씨)>등 총 14편이었습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각각의 작품들에 대해 댓글을 달았으므로 다시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양해해 주세요.

이번 달 총평을 해 보자면 여전히 소설적 구체성이 아쉬운 소설들이 많았다는 느낌입니다. 여러 번 말씀드리지만 소설은 발단 전개 절정 결말등의 형식을 갖춰야 하고 구체적인 인물이 주된 사건을 통해 그 형식을 끌고 가야 합니다. 그것은 분량과 상관없이 작품의 완결성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면서 이야기가 가지는 최소한의 형식입니다. 또한 설정이 앞선 나머지 미처 개인의 '삶'을 제대로 조명하지 못한 작품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투또우님의 <혀>와 <묘지>라는 작품에 단 댓글을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물론 여러분이 이 정도의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놀라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여러분 나이 때는 감히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는 것을 떠올려 보면 제 이런 잔소리가 과하다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좀더 발전적인 방향을 위해서라는 변명과 더불어, 12월의 장원을 발표하겠습니다.

 

중등부 <발 밑의 낙엽(도월현)>

고등부 <바람의 방향(노랑)>

 

축하드립니다.

 

2017년이 밝았습니다. 여러분이 하고 있는 실수들을 줄이기 위해 고민하는 시간을 늘린다면 올해는 작년보다 더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작년보다 더 좋은 일들이 많은 한 해이길 바랍니다. 그리고, 올해도 잘 부탁드릴게요.

 

 

 

  • 그리고, 조금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여러분께 공지합니다. 내일 모레부터 약 2주 정도 여행을 다녀올 예정인데 그 사이에 작품을 올리고 혹시 기다리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이런 글을 남깁니다. 돌아와서 열심히 읽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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