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사랑 백일장에 다녀오다
목록

2017. 6. 11

 

어제 백일장에 다녀왔다. 이번이 세 번째다. 처음엔 요령을 몰라서 무작정 떠오르는 대로 원고지에 바로 썼는데, 가족들 말을 들어보니 그곳에서 나눠준 또 하나의 원고지에 휘갈겨 쓰고 옮기는 방법이 훨씬 안정적이었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아, 왜 그랬지, 다음에는 미리 써두고 옮겨야겠다 싶었다. 친구와 함께 두 번째로 백일장에 갔을 때는 고려해둔 대로 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일일이 옮겨 적는 게 힘들었다. 물론 친구는 미리 쓰다가 바로 본지에 썼음에도 나보다 늦게 끝났지만.

그리고 그 두 백일장 모두 떨어졌다. 처음엔 내가 생각해도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글이었고 두 번째엔 이번엔 전보다 잘 썼는데? 했으나 이야기 구성이 너무 허술해 낙방했다. 억지로 지어낸 소설이어서 그렇기도 했고 어떻게든 짜맞추려해서이기도 했다. 내가 명문고를 다니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학생들이 과외를 받아서 그런 것도 아니다. 내가 부족해서 탈락한 게 틀림없었다.

 

그 뒤로 다시 백일장을 찾았다. 여기서 조금 떨어진 성남시였지만 상관없었다. 경북이나 목포 같은 먼 지역만 아니면 경험을(그리고 상금?) 위해서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그날 난생 처음 빨간 버스를 탔다. 에어컨도 시원하게 나오고 의자도 앞쪽을 향해 으리으리하게 빛나는 고급 좌석이었다. 요금도 비쌌다. 내가 자주 이용하는 초록 버스는 최근에 720원으로 할인됐지만 이 버스의 요금은 청소년 카드 기준으로 무려 1360원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뒤로 쭉 기대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있었으니.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김윤아 4집 수록곡 '꿈'을 들었다. 유튜브에서 잊고 있던 자우림 노래를 찾다가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노래가 이렇게 좋을 수 없었다.

 

때로 너의 꿈은 가장 무거운 짐이 되지

괴로워도 벗어둘 수 없는 굴레

너의 꿈은 때로 비길 데 없는 위안

외로워도 다시 걷게 해주는

때로 다 버리고 다 털어버리고

다 지우고 다 잊어버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어

(…)

간절히 원하는 건 이뤄진다고

이룬 이들은 웃으며 말하지

마치 너의 꿈은 꿈이 아닌 것처럼

소중하게 품에 안고 꿈을 꾸었네

작고 따뜻한 꿈 버릴 수 없는 애처로운 꿈

(…)

간절하게 원한다면 모두

이뤄질 거라 말하지 마

마치 나의 꿈은 꿈이 아닌 것처럼

마치 나의 꿈은 꿈이 아닌 것처럼

 

잔잔하다가 갈수록 격해지고 급기야는 응어리진 한이 터져 나오는 듯한 김윤아의 목소리는 터널 속에서 빛을 발하며 울려 퍼졌다. 나는 노래제목처럼 꿈꾸듯 감상했다.

너무 극찬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노래가 좋은 건 사실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곡조였는데 어쩌면 가수 김윤아의 목소리가 익숙해서일지 모르겠다. 이렇게 아름다운 곡을 누가 작곡했을까 궁금해져 검색해보았는데 놀랍게도 김윤아 본인이었다. 역시…… 흔히 말하는 대단한 '싱어송라이터(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이다)'인가. 여하튼 독자 여러분은 시간 나시면 한번 들어보시길.

 

버스에서 내려 한차례 갈아탄 다음 서울기록관에 도착했다. 걷고 기다린 것까지 합하면 한 시간 반 정도 달려온 것 같다. 사위는 예상 외로 고요했다. 서울기록관이란 거창한 이름에 정신없이 시끌벅적할 줄 알았는데 열렬히 달리는 차량들 빼고는 모두 잠잠했고 사람도 눈에 잘 띄지 않았다. 하긴 누가 기록관 같은 데 오겠냐마는 도시 한복판은커녕 인적 드문 곳, 그것도 각종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 밀림처럼 변한 곳에 있다니. 사방에 잡초가 가득했고 날파리, 나비, 딱정벌레 등 가지각색 곤충이 득시글거렸다. 특히 개미가 자주 눈에 띄었는데, 보기 드문 공주개미가 길가에 돌아다니는 것을 보아 결혼비행 철이 틀림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곤충 좋아하는 동생 녀석에게 마음껏 찍으라하고 싶었다. 나는 똑같이 백일장에 가는 것으로 추정되는 한 남자를 따라 걸어갔다.

지도에서 본 대로 횡단보도를 건너니 큼지막한 건물이 있었고 518 추모탑처럼 생긴 예술작품이 한가운데 굳건히 서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입구부터 흰빛 분홍빛 풍선이 달려있었고 기록관 안에서 방문자들이 풍선을 나눠받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나는 접수가 급해 풍선은(애초에 관심도 없거니와) 고사하고 서둘러 4층으로 올라가 원고지를 받았다. 그림도 응모할 수 있다기에 한번 그려보자는 심정으로 종이도 받았다. 인원수는 예상대로였다. 몇 주 전에 간 백일장과 비슷비슷했다. 나는 잘하면 마음이 맞는 친구, 어쩌면 '이성'친구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터무니없는 망념을 품으며 강당 안으로 들어섰다.

 

강당 안은 쉴 새 없이 웅성거렸다. 어린이부터 80대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의 참가자들이 객석에 앉아 글제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아무 데나 앉으려고 무심코 빈자리를 택했는데 양옆에 나이 들어 보이는 아주머니와 열 살도 안돼 보이는 남자애가 앉았다. 되도록 나와 나이 비슷한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었지만, 나는 자리 고르는 데 영 소질이 없나보다.

몇 분이 지났을까, 옆에 있던 얌전한 소년이 갑자기 나에게 말을 걸었다.

"글짓기하러 왔어요?"

"어, 응."

나는 나이 차이가 꽤 나긴 해도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고마웠다. 친해지는 데 나이가 뭔 상관이랴. 소년은 자신은 그림을 그리러 왔다고, 전에도 몇 번 상탄 적이 있다고 했다. 예상 외로 나보다 훨씬 경험이 풍부하고 솜씨도 좋은 것 같았다. 꿈이 화가고(몇 개 더 있었긴 했지만) 자신을 위해 온가족이 따라왔다는 것이다. 백일장에 참가하는 사람은 오직 자기뿐이란다. 어쩌면 가족 모두 소질이 없는데 이 소년 혼자 천재일지 모르겠다.

소년은 내가 말해주지 않아도 서서히 말을 놓기 시작했고, 몇 분 동안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 전화기를 꺼내들더니 자랑을 했다. 알고 보니 그는 부럽게도 친구가 많았고 내 동생과 같은 폴더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것도 세련돼 보이는 전화기에 친구라고 보여주는 애들이 거의 다 여자애였다…… 인기 많구나. 부럽다.

소년은 요즘 유행하는 얼굴에 캐릭터 입히기(이걸 뭐라 부르는지 모르겠다)를 소개하며 자신을 찍다가, 나와 같이 찍자고 해 얼떨결에 난생 처음 동물 가면을 쓰게 되었다. 예전에 한 번 해본 것 같지만 화려한 이미지로 찍는 건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백일장에 와서 '첫' 경험을 두 번이나 해봤구나. 소년이 카톡 비슷한 곳에 올려도 되냐고 물어 나는 이상하게 나온 사진만 아니면 괜찮다고 했다. 지금쯤 그의 전화기에 내 사진이 저장되어있거나, 지워져 있겠지. 소년은 도중에 이런 질문도 했다.

"어느 학교 다녀?"

이 말은 어느 지역의 학교를 다니느냐가 아닌 중학교냐 고등학교냐를 뜻했을 것이다.

"나는 학교 안 다녀. 집에서 공부(공부도 거의 안 하면서)해."

그러자 순식간에 소년의 표정이 돌변하면서 "그럼 어른?"(눈썹을 치켜들며 이상한 얼굴로)

내가 그렇게 삭아보이냐……고 대들고 싶었지만 고등학교1학년, 정확히 열일곱 살이라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그 다음에는 내가 질문했다. 형제가 몇 명이냐고 했더니 다섯 명이란다. 설마 우리 가족 같은 건 아니겠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친척을 말한 것이었다. 내 형제는 나까지 합해서 다섯 명이라 하자 소년의 얼굴은 또다시 놀람과 충격의 모습을 보였다. 그는 형이 없었다. 사촌형은 있지만 가족은 모두 네 명이었고 동생 한 명은 그저 구경하러 왔다는 것이다.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지만, 그는 형이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입양을 추천해주길 그랬나. 그러나 내가 크게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본다.

나는 개막이 끝나고 각자 장소를 정하러 뿔뿔이 흩어질 때 소년과 헤어졌다.

 

사회자의 의례적인 설명이 끝나고 마침내 글제가 발표되었다.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나에게 기록이란?'이었고 또 하나는 '다른 나라에 알리고 싶은 우리나라 기록'이었다. 기록 관련된 글제를 낸다 해 어렵고 난해한 것을 내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다행히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방심한 나는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기록'과 거리가 먼 글을 써버린 것이다. 기록보다 '기억'에 가까운 글을…… 다 써놓고 실수한 걸 깨달았지만 다시 쓸 수도 없으니, 마감 시간도 되어서 그냥 제출했다. 심사위원들이 잘 봐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내가 그림도 그렸다고 했는데, 솔직히 그림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 그림을 그리다 다른 학생이 그리는 만화를 슬쩍 쳐다보았는데 그래, 그렇구나. 나는 재미로 심심해서 그렸다 치자. 내가 괜한 희망을 품었구나. 들고 갈 필요도 없고 버릴 이유도 전혀 없으니 제출은 했다. 심사위원이 분명 코웃음을 칠 것이다. 아니면 박장대소를 터뜨릴지도. 그래도 혹여나, 천만 분의 일 확률이라도 가망이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내 그림이 뽑히면 심사위원에게 이상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최적의 장소를 찾으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는데 자리가 꽉 차 앉을 곳이 없었다. 결국 한 차례 왕복하고 여학생에게 조심스레 물어본 뒤 빈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오래 앉아있으니 뻐근했다. 게다가 그림 그리는 데 쓸데없이 시간을 소비하고 말았다. 결국 후닥닥 써서 글씨체는 좋지 않게 되었지만 내용은 괜찮게 갖춰졌다. 누군가 읽어도 나쁘지 않다고 할 정도인- 어쩌면 자기도취일지도 -글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수필 더하기 소설이었다. 나는 수필에 영 소질이 없는지 소설이 더 잘 써질 때가 많아 아무 생각 없이 시작했는데 의도치 않게 한 편의 소설을 완성했다. 너무나 그럴듯해 보이는 수필 같은 소설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수필을 쓰지만 나는 수필처럼 보이는(그러나 수필과 거리가 먼) 글을 쓴 것이다. 설마 심사위원들이 수필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보면 내 소설이 감쪽같았다는 것이고.

 

행사 끝날 때가 되자 하나둘 기록관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나도 접수를 마치고 길을 나섰다. 아쉽게도 경품 행사에 당첨되지 못했고, 접수처의 아주머니가 내 그림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젠장.

해가 기울고 있었다. 시계바늘은 그새 다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잠깐 정류장을 착각했지만 예리한 내 판단으로(사실 타인의 도움으로) 무사히 버스에 올라탈 수 있었다. 자리가 거의 찼지만 한 승객에게 여쭤 옆에 앉을 수 있었는데, 중요한 얘기는 아니지만 그 승객은 제주도 갔을 때 만난 학생과 닮아 보였다. 생각해보니 나는 약간의 과대망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자꾸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헤매는 것 같은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갈 때도 마찬가지로 빨간 버스를 탔다. 붉은 석양이 은은히 창문을 어루만졌다. 돌아가면서 무슨 음악을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음악대장이거나 김광석, 자우림 노래였을 것이다.

행복했다. 가끔씩 혼자 여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글을 목적으로 백일장에 간 것이 아니라 여가를 즐거이 보내려고 간 것일지 모른다. 뭐 아무려면 어떠랴. 토요일을 재미있게 보냈으면 그만이지.

나는 버스에서 내려 익숙한 전경을 보면서 오솔길을 따라 걸어갔다. 집에 도착하면 가족이 반갑게 맞아줄 거라는 마음으로.

 

 

 

 

목록
몇 달 전 이야기
목록

오늘 나는 너무나도 완벽하게 헛다리짚었다. 교회 주보에서 '김화영'이라는 이름을 발견했을 때부터 시작된 일이다.

 

나는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를 참 좋아해서 카뮈 관련 서적을 찾다보니 김화영 평론가의 <문학 상상력의 연구>를 읽게 되었고 카뮈 작품을 번역한 사람이 김화영 평론가란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주보에 '김화영', 그 이름이 딱 적혀있는 것이다.

처음 봤을 때 설마 하고 넘어갔다. 동명이인이겠지, 김화영이라는 이름은 많으니까, 하고. 그런데 주일날 김화영 평론가를 무척 닮은 사람을 목격한 것이다. 전체적인 외관도 그렇고 눈 툭 튀어나온 것도 그렇고 머리숱 적은 것도 그렇고…… 김화영 평론가보다 약간 나이가 적어 보였지만 나는 사람 알아보는 눈이 꽤 있기 때문에(감히 자부해본다) 진정 김화영 평론가일 수 있겠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진짜 그럴 수 있잖아! 평론가가 글 쓰면서 교회 다닐 수도 있지!

이렇게 멋대로 추측하면서 나는 점점 말도 안 되는, 허황된 증거와 몽상을 이리저리 갖다 붙였다. 만약 김화영 평론가가 맞다면, 카뮈에 대해 궁금한 것을 마음껏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 조언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김화영 평론가가 서울에 살 확률이 있으니, 내가 다니는 교회에 얼마든지 다닐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주보의 김화영에게 문자를 보내기로!(참 무식하다. 하필 택해도 그런 방법을 택하나) 만약 평론가가 맞다면, 그는 매우 놀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그가 아니라면 무시하거나 그냥 아니라고 하겠지.

 

그래서 보냈다. 아주 조심스럽게 써서. 한 10분 뒤 돌아온 말. 자기는 평론가는 아니란다. 내 추측과 망상은 그렇게 끝났다. 너무 섣불리 판단한 게 아닌가 싶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김화영이라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동시에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에이, 진짜 김화영 평론가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그는 그저 교회에서 활동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흑.

 

안타까운 마음에 다시 한 번 멋대로 추측해본다. 그 사람이 너무 겸손해서, 평론가 맞는데 그냥 자신은 교수일 뿐이라 생각해 '평론가는 아니다'고 한 건 아닐까?

 

목록
미래를 향한 신기술 – [영화 속의 바이오테크놀로지]를 읽고
목록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이런 재미있는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내가 거미에 물려서 스파이더맨이 된다면 악당을 물리치고 연인도 얻을 텐데!

내가 특별한 시약을 마셔서 헐크가 되면 영웅들과 손을 잡고 함께 지구를 지킬 텐데!

그러나 우리는 이런 것이 영화 속에서나 일어나는 허구적 요소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영화 속 가상 이미지가 아무리 가시적이고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해도 허구는 허구일 뿐, 우리 사회에 영웅처럼 등장하는 실재는 아니다. 그러나 허황돼 보이는 상상을 실현 가능케 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어떨까? 가상이 현실로 탈바꿈하고, 인류가 초능력을 얻어 자유자재로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게 된다면? 이런 즐거운 상상에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있도록 상상력을 자극하는 책이 바로 <영화 속의 바이오테크놀로지: 영화로 읽는 생명공학 이야기>다.

이 책의 저자이자 대학교수 박태현은, 점점 발전하고 상용화되는 바이오테크놀로지가 앞으로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고 우리를 어떻게 도와줄 것인지 영화를 통해 상세히 설명한다. <영화 속의 바이오테크놀로지>를 읽으려면 우선 이 책이 주로 다루는 ‘바이오테크놀로지’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계속해서 제시할 필자의 견해를 위해 잠깐 짚고 넘어가자.

바이오테크놀로지는 영어로 biotechnology(BT), 우리말로 생명공학, 또는 생명공학기술(生命工學技術)이라 한다. 바이오테크놀로지는 하나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며, 경우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된다. 대체적으로 바이오테크놀로지는 레드(의학 공정), 그린(농업/환경 공정), 화이트바이오테크놀로지(산업생명공학기술)(위키백과 참조)로 나뉘는데 본서에 가장 근접한 바이오테크놀로지는 화이트바이오테크놀로지이다.

‘화이트바이오테크놀로지는 옥수수ㆍ콩ㆍ사탕수수ㆍ목재류 등 재생 가능한 식물 자원을 원료로 하여 화학제품 또는 바이오 연료 등의 물질을 생산하는 기술을 말(매경시사용어사전 참조)’하는데 이것이 왜 미래에 다가가는 기술인지 앞으로의 논의를 통해 차근차근 풀어나가고자 한다. 바이오테크놀로지가 어떤 세계를 품고 있는지, 어떻게 해서 새로운 미래를 가져올 수 있는지 알아보자.

 

1부 ‘바이오 정보를 담고 있는 DNA’는 DNA의 변형, DNA의 결합 등 DNA와 바이오테크놀로지의 연관성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리 몸속의 DNA가 바이오테크놀로지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어떤 실험을 통해 효율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말한다. 1부는 다섯 편의 영화를 소개하지만, 여기서는 <스피시즈(Species, 1995)>를 예로 들어 이종교배에 대해 서술하고자 한다.

영화 <스피시즈> 이야기는 실험으로 인해 외계인과 인간의 이종교배로 탄생한 주인공이 2세를 잉태하려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이다. 영화가 다루려고 하는 것은 DNA와 이종교배가 아니지만, 저자는 동식물 잡종과 DNA의 결합을 이야기한다.

 

몇몇 독자는 모를 수도 있겠지만, 최근 들어 제주도에서 ‘천혜향’ ‘황금향’ 등 밀감류와 오렌지를 교배한 과일을 시중에 널리 판매하고 있다. 귤, 오렌지 등 전통적인 과일을 고수하는 소비자들은 ‘천혜향’과 같은 잡종 과일에 눈길을 주지 않겠지만, 사람들이 새롭고 독특한 과일에 관심을 갖고 다량 구매하는 것은 사실이다. <영화 속의 바이오테크놀로지>에서 라이거, 타이온을 언급했듯이, 이종교배를 통해 출생된 동물도 점점 늘어나 대중에게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2대 잡종)은 1대 잡종의 특성을 잃어버리게 된다(56쪽)’고 말한다. 2대 잡종은 종자 사용이 불가능해 농부들의 불편함을 덜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대 잡종의 단점을 수많은 노력으로 극복해, 2대 잡종이 탄생해도 1대 잡종의 특성을 그대로 보존하게 한다면 어떨까? 노새와 당나귀의 잡종 ‘노귀’라는 가축이 탄생될 수 있지 않을까? 아직 먼 이야기지만, 1대 잡종의 특성을 잃어도 3대 잡종에게는 그 특성이 그대로 남아있게 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이 기술이 발전되면 앞으로 품종 교배 일이 훨씬 수월해지리라고 믿는다.

 

2부 ‘바이오와 인간 생활’에서는 유전자, 혈액형 등 말 그대로 바이오와 인간을 다룬다. 저자는 <버블 보이>를 유전자 결함, <B형 남자친구>를 봄베이 O형에 결부지어 논지하고 있다. <버블 보이>의 유전자 결함은 매우 독특한 경우다. ‘중증합병면역결핍증‘에 걸린 유아는 태어날 때부터 세균 면역력이 없어, 몸속으로 세균이 침투돼지 못하게 버블(구 모양의 생활공간)에서만 살아야 한다. 이와 같은 대처법은 아주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안전한 치료법을 개발하지 못하면 환자 자신의 삶을 버블 안에서만 보내게 될 것이다.

<버블 보이> 증세는 매우 드물지만, 바이오테크놀로지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되면 환자들이 완치될 수 있지 않을까?

 

3부 ‘바이오와 미래 세계’의 내용은 책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주제에 매우 가깝다. 필자는 3부가 말하는 ‘복제인간’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고자 한다. 특히 <6번째 날(6th Day, 2000)>과 <아일랜드(The Island, 2005)>가 복제인간, 복제생물과 관련이 깊다.

전부터 이슈가 되어왔던 복제양 돌리 이야기는 여러분이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복제양이 탄생되면서 사람들은 바이오테크놀로지에 더욱 관심을 기울였다. 그렇다면 이 기술이 그대로 발전해 인간복제도 가능해지면 어떻게 될까? 물론 법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지만, 인간복제가 가능해져 나와 흡사한 인간이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 <아일랜드>의 등장인물처럼 평생 영문도 모른 채 실험실 속에서 살아야 할까, 아니면 <6번째 날>의 주인공처럼 스스로 현실을 부정하게 될까?

미래가 어떤 식으로 세상에 다가올지 모르지만, 바이테크놀로지의 항구적인 가능성이 우리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저자는 <쥬라기 공원>, <엑스맨> 등 대중이 알고 있는 상업영화를 활용해 독자의 흥미를 유발한다. 과학이 생소한 사람들을 바이오테크놀로지에 쉽게 다가가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곳곳에 과학 용어가 있어 기본 과학 지식을 갖추지 않은 독자에겐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각 부가 끝날 때마다 ‘바이오 기본 지식 요약’ 장이 나오지만, 이 역시 종종 난해한 용어가 눈에 띄어 독서의 불편함을 초래한다. 하지만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영화’라는 매체와 바이오테크놀로지를 접목시켜 도전적인 면모를 보여줬음으로 눈여겨볼 만하다.

저자 박태현은 영화 속에서 바이오테크놀로지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바이오테크놀로지가 영화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었고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또 세 가지가 어떤 식으로 융합돼 새로운 결과물을 탄생시킬 수 있는지 이 책 <영화 속의 바이오테크놀로지>로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유념해야할 사실이 있다. 과학기술이 발달한다 해서 무조건 좋기만 한 것일까?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 지금, 인공지능 발달로 과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자연 문제도 많이 언급된다. 대기오염, 수질오염, 토양오염 등 환경오염의 심각성이 경고를 알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구원들은 미리 사고에 대처하고 실험실을 단단히 관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오염으로 인한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무엇보다도 철저하게 준비된, 안전한 실험이 필요할 것이다.

 

바이오테크놀로지는 미래를 향한 신기술이다. 우리는 평범한 인간이 초인이 되고, 노인이 젊음을 되찾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날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과학자들은 끝없는 실험을 통해 생명공학의 성취를 이뤄낼 것이다. 필자는 앞으로 바이오테크놀로지가 진정한 ‘미래를 향한 신기술’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목록
파리(수정)
목록

PROLOG

 

어디선가 파리 한 마리가 날아와 콧잔등에 달라붙었다. 손을 들어 쫓아냈지만 콧등 위의 찜찜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며칠 전부터 한두 마리가 눈에 띄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화장실 세면대에서 구더기 몇 마리가 발견되기까지 한다. 집안 사방에서 퀴퀴한 냄새가 진동을 하고, 토악질이 나올 듯한 악취가 코를 찌른다.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구더기를 밟아 미끄러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집 전체를 세탁비누로 씻어내도 파리가 나타난다. 소변을 보려고 변기뚜껑을 열면 안에 구더기가 바글바글하다. 그 모습을 처음 보고 그날 밤 잠을 자지 못했다. 매일 밤 귓가에 파리 날갯짓 소리가 윙윙거려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다. 잠깐 눈을 붙였다 싶으면 집채만 한 파리가 날개를 비벼 방해하기 마련이다. 분명 창문을 꼭 닫아놓았을 텐데 어디서 어떻게 들어오는 걸까?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어김없이 파리가 나타나 방해하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잽싸게 도망가고 만다. 파리채로 수십 마리 때려죽이긴 했지만 수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늘어날 뿐이다.

파리들을 내쫓으려 창문을 열려 했지만 손잡이에 파리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손을 뗐다. 시커먼 파리가 우글우글 모여 날갯소리를 냈다. 파리 떼를 죽이려 해도 수가 군대만큼 많아 내 힘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제 손님을 집에 초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애수가 밀려온다. 아니, 더 이상 찾아올 손님도 없다. 몇 년 전 회사에 사직서를 낸 이후로 손님은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는다. 내 집에는 파리만 득실거릴 뿐이다. 쓰레기를 제때제때 치워도, 약을 놓아도 아무 소용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앞이 막막하기만 하다. 이 빌어먹을 파리들을 어떻게 하면 다 없앨 수 있을까?

 

 

#1

 

어쩌면 아버지 때문일 수도 있었다.

아버지는 몇 주 전부터 머리가 아프다, 배가 터질 것 같다 하면서 낑낑 앓는 소리만 늘어놓더니 결국엔 몸 져 눕고 말았다. 병원에 데려갔더니 의사는, 뇌종양이 자라고 있다면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그때 내 마음속에는 아버지의 죽음보다 파리를 죽이려는 욕구가 더 가득했다. 나는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하지 않고 있었다. 솔직하지 못한 말이지만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이 없었다. 모든 게 다 빌어먹을 파리 때문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은 뒤로 미뤄놓고 해충 스프레이를 사들이기에 바빴다. 그렇게라도 하면 귀찮은 파리새끼들이 죽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수술비를 마련할 돈이 없는 나는 아직까지 다 죽어가는 아버지를 방치하고만 있다. 날이 갈수록 아버지의 숨소리는 작아지고, 가늘어지고, 가냘파진다. 쌕쌕거리는 소리가 작아졌다 싶으면 커지고, 커졌다 싶으면 다시 작아진다. 의사는 수술이 시급하다고 했다. 갈수록 위급해질 것이라고, 그놈의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나는 어떻게든 직업을 구하러 이곳저곳 돌아다녀보았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내 학력은 한심할 정도였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집과 집안의 파리 떼뿐, 돈도 명예도 희망도 물거품이 된 채 심연에서 떠돌 뿐이다.

어느 날 아버지가 기운이 조금 났는지, 나를 불러다놓고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가 입원한 후로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아버지: 아들아.

나: 네 아버지.

아버지: 피곤하구나. 물 좀 갖다 주거라.

나: 네, 아버지. 여기 있어요.

아버지: (물을 마시고는) 이 애비 꼴 많이 흉하지?

나: …….

아버지: 미안하구나.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아무 얘기도 할 수 없었다. 골치를 썩이고 있는 파리 얘기를 꺼낼 수는 없었다. 아버지에게 걱정을 끼쳐드리긴 싫었다. 몇 십 년 전부터 아버지는 돈이 없었다. 아버지는 가진 것이 없어 유산을 나눠가지라느니 나 혼자 다 가지라느니 등의 유언도 남기지 못한다. 그저 할 수 있는 말은 (내가 이렇게 돼서)미안하구나, 밖에 없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모르겠다. 가난한 아버지? 불쌍한 아버지? 비극적인 아버지? 내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이 사회에서 한낱 파리 한 마리에 불과할 뿐인가.

아버지는 지금도 병실 한구석에서 끙끙 앓고만 있다.

 

 

#2

 

파리가 들끓는다. 이제 수십 마리를 넘어서 수백, 수천 마리가 온 집안을 들쑤시고 다닌다. 사방에 지독한 파리 냄새, 구릿한 구더기 냄새가 진동하고 초파리까지 나타나 천장에 달라붙는다. 하늘을 쳐다보면 푸른색이 아닌 갈색과 까만색만 어른거린다. 파리 떼는 이제 침대까지 침범해 그 위에서 다리를 비비고 커다란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불쾌하기 짝이 없다. 스프레이를 칙 뿌려보지만 소용없다. 비강(鼻腔)에만 안 좋을 뿐이다. 파리 한 마리가 내 가슴 위에 들러붙어 날개를 비빈다. 배앵, 배애앵.

잠을 잘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잤을 때가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어쩐지 이 파리는 아버지를 닮았다. 생김새가, 얼굴 모양이 아버지의 것과 흡사하다. 기분 탓인가, 중얼거렸지만 파리의 배앵 소리는 계속해서 들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파리의 소리는 날갯짓 소리가 아니다. 무언가를 우물거리는 듯한 목소리다. 털이 부숭숭 돋아난 파리가 시커먼 기운을 띠는 붉은 눈으로 나에게 말한다.

破{미안하구나.}罹

 

 

#3

 

악몽을 꿨다. 나는 잠에서 벌떡 일어나 흐르는 땀을 훔친다. 그러다 이마 위의 파리를 건드리고 만다. 화장실에 가 손을 씻는다. 손잡이를 만지다 파리 엉덩이를 만져버렸다. 물도 나오지 않는다. 파리들이 다 마셨나. 정신이 하나도 없다. 어젯밤 일은 모두 악몽이었겠지.

파리는 여전히 침대 위에서 몸단장을 하고 있고, 구더기들은 변기 속 오물을 섭취하느라 정신이 없다. 각자 주어진 삶에 만족하며 번성하고 있다. 파리들은 계속해서 자라나 내 집을 붕괴하고 그 위에 군림할 것이다. 내 집이 아닌 파리의 집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기 전에 이 때려죽일 파리들을 모조리 해치워야 했다.

아버지는, 아버지는 잘 있을까. 문득 섬뜩한 기운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나는 서둘러 파리가 달라붙은 바지를 털어 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어젯밤 악몽 때문인지, 기분 탓인지, 습관 때문인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없다. 그저 달려갈 뿐이다.

 

 

#4

 

아버지는 병실에 누워있었다. 전보다 더 수척해지고 쇠약해진 것 같았다. 머리카락이 빠져 퀭한 아버지의 몰골은 처참했다. 아버지의 입김은 이제 나비의 날갯짓만큼 가늘다. 맥박 수가 불안정한걸 보니 영 상태가 좋지 못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말한다.

 

나: 간호사 불러드릴까요?

아버지: (겨우 입을 열며)아니, 괜찮아. 그럴 필요 없어.

나: 정말 괜찮으세요?

아버지: 그래, 괜찮아, 괜찮아…….

나: 제가 어떻게든 노력해볼게요.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직업도 구하고 있으니까…….

아버지: 아냐, 괜찮아. 안 그래도 돼.

나: 아버지, 제가 해드릴 게 없을까요?

아버지: 괜찮아, 괜찮아. 병 옮을라. 이제 가도 돼.

나: 그럼 저, 이제 가볼게요.

 

나는 해골처럼 삐쩍 마른 아버지의 모습을 견디기 힘들어 서둘러 병원 밖을 뛰쳐나왔다.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입안이 바싹 말라 괴로웠다. 목구멍 속에서 파리 똥냄새가 풀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이제 정말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태세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아버지는 죽을지도 몰랐다. 내가 돈을 벌지 않는 한, 내가 어떻게든 수술비를 마련하지 않는 한.

집으로 가는 동안 아버지의 죽어가는 눈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5

 

집안은 파리 천지다. 이제 이곳은 파리의 세상이 되어 파리들이 집권하고 파리들이 다스린다. 나는 잡고 죽이는 일에도 지쳐 파리 찌꺼기가 묻은 침대에 누워 멍하니 허공만 응시한다. 아버지를 만나러가기가 싫었다. 아니, 싫었다기보다는 두려운 게 사실이리라. 아버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신이 죽어가고 있는 걸 알기나 할까? 나는 죽어가는 아버지를 방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몇 주 전 형은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어머니는 죽은 지 오래고, 친척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지인들조차 연락을 끊었다. 결국 나 혼자 남았다. 나 홀로 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다니, 너무나 불공평한 것이 아닌가? 망할 파리새끼들에게 화풀이를 하고 싶었다. 라이터로 집을 태워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파리들이 공중에서 윙윙거린다. 한 마리의 날갯짓 소리가 여러 마리의 소리와 하나가 되니 귀가 쟁쟁 울릴 정도로 시끄럽다. 아버지를 닮은 파리 한 마리가 내려와 나를 보며 말한다.

 

爸{아들아.}離

 

 

#6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죽었다고 했다. 나는 끝내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 시신을 정리할 예정이니 와달라고 했다. 나는 아무런 감정 없이 장례식을 치렀다.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눈물을 짜내려 애썼지만 눈물샘이 따라주지 않았다. 수술비로 쓰려고 모아두었던 돈을 장례식에 쏟아 부었다. 친척들은 예상대로 오지 않았다. 나 혼자 장례식에서 하루를 보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집에 돌아오고 있었다. 하루 이틀이 순식간에 지난 것 같았다. 나는 내 눈을 싹싹 비벼댔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를 원망하지 않을까. 죽을 때까지 수술비를 대주지 않은 당신의 아들을 증오하지는 않을까. 어렸을 때부터 돈이 없던 아버지를 우리는 증오한 게 아닐까. 갖고 싶었던 장난감도 사주지 못하고 맛있는 군것질거리도 사주지 못했던 아버지는 자기 자신을 증오한 게 아닐까. 그러나 때는 늦었다. 아버지의 소원은 저승 너머로 날아가 버렸다. 이제 돌아오기는 글렀다. 아버지는 가고 아버지의 혈육인 나만 남았다.

 

집이 가까 오자 아버지를 닮은 파리가 생각났다. 그 파리는, 너무나 기이하게도 아버지의 얼굴을 닮아있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아버지의 기력 없는 눈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순간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졌다. 어쩌면 두려운 건지도 모른다.

문을 열면 파리가 쏟아져 나올까. 문을 열면 파리가 나에게 달려들까.

모르겠다. 모든 것을 내 손에 맡기는 수밖에.

 

 

EPILOGUE

 

나는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목록
공기와 우리
목록

공기는 맛있습니다. 그러니까 ‘맛이 있다’는 것이지요. 맛이 없는 공기는 없잖습니까? 유기체든 무기체든 자신만의 맛을 보유하고 있기 마련이지요. 정정해야겠군요. 공기는 맛이 있습니다. 공기는 단순히 호흡의 역할만 하는 게 아닙니다. 손으로 만질 수도, 씻을 수도, 맛볼 수도 있지요. 한번 힘껏 들이마셔 보십시오. 상큼하고도 달콤 쌉싸름한 맛이 느껴지지요? 후각도 빠뜨릴 수 없지요. 시원하고도 상쾌한 향기가 콧속 깊이 빨려 들어갑니다. 공기가 ‘제4원소’에 포함되어있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그래, 나도 알아. 공기는 맛이 없어. 뭐라고? 공기가 맛이 있다고, 누가 그러지? 누군가 헛소문을 퍼뜨렸을지 모르겠군. 왜곡된 사실에 쉽게 현혹되다니, 왠지 그답지 않은걸. 나도 들었어. 공기가 맛있다고 확고히 믿으면서 무작정 정의를 내려 자기주장까지 펼치고 있다는 거. (비교적)냉철한 지성을 가지고 있는 그가 압도당할 정도면 대체 얼마나 설득력 있는 가설일까?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하는걸. 어쩌면 굳건한 신념을 가진 나도 한순간에 휘둘려버릴지 모르지. 과연 내 신념과 통찰력, 안목과 시선은 얼마나 튼튼할까?

 

[공기가 맛이 있든 없든 나는 관심 없습니다. 자신이 느끼기에 있으면 있는 거고, 없으면 없는 거지요. 있으면 보이지 않는 맛을 볼 수 있어 좋을 테고 없으면 아무 생각 없이 들이마실 수 있어 좋겠지요. 내가 보기에 그녀는 믿지 않는 것 같군요. 믿을 필요도 이유도 없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호기심이 솟아나는 건 사실입니다. 직접 확인해보지 않고선 공기가 맛을 퍼뜨리고 다니는지 꼭꼭 숨기고 다니는지 알 수 없으니까요. 과연 그처럼 심취할지, 전혀 동요하지 않고 꿋꿋하게 지나갈지 기대되는군요. 물론 나는 삼자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하는지 한번 지켜보자는 겁니다. 아무런 사심도 없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그 일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혹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구경해보도록 하죠.]

 

‘이런, 꽤 늦었군. 뒤늦게 들어와 볼품없는 자리를 차지하게 되다니. 이게 다 누구 때문일까? 그래, 나 때문이야. 늦게 들어온 것은 내 잘못이고 나를 탓하는 것도 내 잘못이지. 물론 허위사실을 유포한 건 내가 아니야. 증거는 없지만, 내 주장이 곧 증거 아니겠어? 결국 두 가지밖에 없는 거지. 내가 퍼뜨렸거나, 다른 사람이 퍼뜨렸거나. 사실 데마고기 따위 내가 알 바 아냐.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되기에도 부족하고 재미가 있거나 서사 구조가 탄탄하지도 않지. 하지만 하나의 드라마로 치환될 수는 있겠어. 노력하면 내 흥미를 끌 수 있겠는걸. 나도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이 세 사람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탄복할 만한 이야기가 생겨날 수 있겠지. 어디 한번 공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고.’

 

(이때쯤이면 처음 그 사람이 돌아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여보? 그래,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첫 장면의 남자가(확실하진 않지만) 공기의 맛을 표현하고, 두 번째 여자(잘 모르겠지만)가 공기의 맛을 반대하고, 세 번째 사람(누군지 모르겠어)이 느긋하게 관조하고, 네 번째 존재(감이 안 잡혀)가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거지. 이런 유의 이야기는 이런 형식으로 이루어져야 해. 그러라는 법은 없지만 다들 암묵적으로 동의해둔 거지. 규율을 어기면 처벌받는다거나 형식을 깨뜨려서 나무라는 사람은 없지만 주의를 주는 것들이 꽤 있단 말이야. 내 말은 모든 이야기가 자유로워야 한다는 거야. 자유롭지 않은 이야기는 이야기가 아니야, 아무런 의미가 없어…… 그럴 바엔 다 집어치우는 게 나아. 당신도 읽어봐서 알지? 화자가 번갈아가며 전개되는 방식.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어빈 웰시의 <트레인스포팅> 등에서 자세히 드러나지. 잘 모르겠으면 인터넷에 찾아봐. 다 나올 테니. 방금 전에 말했지만 앞서 나왔던 화자는 다시 돌아와야 해. 이야기 전개를 위해서, 자연스러운 서술을 통해서 그래야만 해. 하지만 또 새로운 화자(바로 나야 나)가 등장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흔한 방식의 소설을 기대하는 건 어려울 것 같아. 이 네 사람, 아니 다섯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작가만 알겠지. 아 미안, 잊어버렸어. 당신도 있었군. 당신이 말을 하지 않으니 존재감도 사라지고 있잖아. 아무 말이나 해봐. 가령, 공기에 관한 말이라도 좋으니.)

 

이런 식으로 나가면 끝이 없을 텐데요. 줄표에 대괄호, 따옴표에 괄호라. 나는 기호가 없네요? 그렇다고 제가 맨 처음 그 사람일까요? 공기의 맛을 음미하고 예찬하는 그? 장편이면 모르지만 짧은 이야기에서 자꾸만 화자를 늘려가는 건 좋지 않습니다. 이제라도 초심으로 돌아간다면 용서를 고려해보지요.

 

*그거 아니? 나를 그리는 사람이 이제 특수기호까지 쓰기 시작했단다! 웃기지 않니? 관심 받고 싶어서 저러는 걸까? 왜 한 사람마다 분량도 오락가락하는 걸까? 앞으로 또 무슨 기호를 사용할지 기대되지도 않아. 실컷 공기에 대해서 장광설을 늘어놓았으면 끝까지 책임져야할 거 아냐. 안 그래? 나도 참, 누구에게 말을 거는 건지 모르겠다.

 

이제 이해하시겠습니까? 공기는 맛있습니다. 공기는 절대적으로 맛있습니다. 맛이 없다면 이런 맛들을 맛보지 못했을 테니까요. 공기는 수없이 많고 다채로운 맛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천히 향유하기만 하면 됩니다. 공기는 공기 중에 빈틈없이 날아다니고, 그 공기 중 일부분은 싫더라도 당신 콧속에 들어가겠지요. 내뱉지 마십시오. 마음 편하게 받아들이세요. 불편하고 낯설더라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모든 게 순조로워질 테니까요. 상쾌한 공기는 결코 변색되지 않는답니다.

 

(중간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었어! 위의 사람은 내가 알던 그가 아니야! 여보, 내 예상대로라면 얼굴 기호 윗사람이야. 용서 어쩌고 한 사람 말야. 어째서 첫째 사람을 흉내 내지? 말투와 표현까지 차용해가면서 말이야. 모두 다른 기호(혹은 아무것도 없는)를 가지고 있지만 저 사람 혼자 첫 번째 사람처럼 기호가 없어! 작가가 기호 넣는 일을 잊어버렸을지도 몰라.)

 

[소란스럽군요. 소괄호 씨는 그런 것에 일일이 상관하는 게 귀찮지도 않습니까. 다른 화자를 따라하든 말든 저는 어디까지나 삼자로서 지켜볼 뿐입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원점으로 돌아가 공기에 관해서, 적어도 공기와 가까운 주제 안에서 토론해보자는 거지요. 영화 <매트릭스>에 나온 것처럼, 우리가 여기서 공기를 마시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글귀와 어휘 사이에서 헤매는 보잘것없는 화자일 뿐입니다. 공기를 마시고 있는지 마시고 있지 않은지 마실 수 있는지 마실 수 없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감히 공기에 대해, 위장과 속임수에 대해, 경계와 형식, 틀에 대해 논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잠깐, 그러니까 소괄호 속 화자가 말한 대로 저 윗사람이 맨 처음 그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뭐야? 이 엉망진창 지리멸렬한 상황을 알 수가 있어야지. 이렇게 줄줄이 화자를 늘어놓으면 어쩌겠다는 거야? 앞으로 계속 쏟아내는 건 아니겠지? 이제 이쯤 되면 작가 본인도 지쳐서 그만둘 텐데 말이야. 벌써부터 반복하고 있는 것을 보면 관둔 게 틀림없어. 사실 더 나타난다 해서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지. 알아서 하라지, 뭐.

 

-언제부터 주제가 공기가 아닌 우리가 되었지? 우리는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화자가 아니었던가? 과연 우리는 서로를 기호로 알아볼 수 있는 걸까? 누구나 기호를 자유자재로 변환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두 번째 화자라고 증명할 수 있을까? 누가 언제 어떻게 바꿀지 누가 알겠어? 이렇게 끊임없이 의문만 이어지다 결국 ‘공기’로 귀결되는 건 아닐까?

 

‘어쩌면 화자는 무한한 것일지 몰라. 따옴표 속의 내가 단락들 위의 나인지 나는 알 수 없지. 이 화자가 나인 것을 믿을 뿐이야.’

 

[완전히 아수라장이군요. 슬슬 지치기 시작하는데 말입니다……]

 

 

—————————————————————————–

 

-우리가 드디어 만났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 당신들한테서 정보를 캐내려 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호기심에 물어보는 것뿐이야. 나는 아직 내가 누군지 모르지 않아?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가 화자라는 것만 알지 우리가 사람인지 동물인지, 생물인지 무생물인지 모르잖아. 이걸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작가뿐인데, 문제는 작가가 여기 모습을 드러낼지 끝까지 은둔하고 있을지 잘 모르겠다는 거지.

*그건 쓸데없는 걱정 같은데. 작가는 작품 속에 모습을 드러낼 이유가 없어. 우리가 누군지 스스로 깨달아야하는 거지.

(자, 모두 잠깐 흥분을 가라앉히고 찬찬히 얘기해봅시다. 첫 번째 화자는 어디로 간 걸까요? 여기 남아 있는 걸까요 아니면 다른 화자가 그 화자를 흉내 내고 있는 걸까요? 여보, 당신도 이 사람들한테 뭐라고 말 좀 해봐. 아무 말이나 해봐야 할 거 아냐?)

‘이봐, 실존하지도 않는 인물에게 말 걸지 말라고. 우리가 유념해야 할 건 이 공간, 구조, 틀이야. 물론 등장인물인 우리도 포함되지. 줄표 씨 말대로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그것부터 알아봐야해. 이해되지?’

(훈계하지 마.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을 마치 자기 혼자 달통했다는 것처럼 말하지 마.)

[싸우지 맙시다, 여러분. 여기서 싸우면 이득 될 게 없어요. 첫 화자가 어째서 공기 얘기를 꺼냈는지 아리송하지만 그것가지고 다투면 좋을 게 없잖습니까. 물론 우리는 공기보다 우리 정체에 관해 관심이 더 많지만 말입니다.]

:뒤늦게 나타나서 죄송합니다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요?

*이런, 이제 끝났나 싶었더니 또 새 등장인물이 나오는구만.

-그래서 첫 화자가 숨은 거야 나타난 거야? 알 수가 있어야지. 아직 코빼기도 안 보이잖아. 어디로 도망간 거지?

글쎄, 어떻게 됐을 것 같아?

 

……………………………………………………………………………………………………………………

 

성현은 고개를 들어 공기를 마신다. 시원하다.

 

그러고 보니, 허공에서 누군가 재잘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가? 성현은 엉뚱한 생각을 품는다.

어쩌면, 원소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었을지 몰라.

 

-[(+%!@?=~*.</‘:,^우리는, 모두, 하나가, 아닐까?

 

 

 

 

 

 

 

목록
엊그제 백일장 다녀왔습니다
목록

엊그제 기록사랑 백일장에 다녀왔습니다! 만해백일장, 김소월백일장에서 떨어지고 세 번째로 갔네요. 백일장은 다니면 다닐수록 익숙해져서 글이 잘 써지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세 번째로 쓰니 확실히 전보다 나아진 느낌을 받습니다. 혹시 글틴 여러분 중에서 저처럼 엊그제 백일장 다녀오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네요.ㅎㅎ 아무튼 좋은 결과 한번 기대해봅니다. 참고로 그림도 그려서 접수했는데 뽑힐 것 같진 않아요.ㅋ

목록
보고 싶은 [껌은 고양이 뇌로]
목록

네이버 베스트 도전만화에 들어가면 '껌은 고양이 뇌로'라는 웹툰이 있다. power9923(봉준호)이라는 작가가 쓴 만화로, 10화까지 연재되다 갑자기 중단되어버렸다. 이유는 자료가 담겨있는 'USB'를 잃어버려서인데, 찾을 수 없어서 새로 쓰거나 어떻게 할 것이라고 해놓고 2년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한창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usb를 잃어버려서 중단되었다니 매우 안타깝고 아쉬울 수밖에. 이 만화를 보게 된 계기는 제목과 그림 때문이었는데, 노래 '검은 고양이 네로'를 '껌은 고양이 뇌로'로 바꿨다는 것부터 참 독특하고 재미있었다. 1화는 주인공이 '검은 고양이 네로'라는 노래를 듣고 문득 '껌은 고양이 뇌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서 실험해보려고 하지만 반대로 고양이가 주인공을 잡아간다는 내용이다. 2화부터는 고양이가 인간을 먹는 모습이 그대로 나오는가 하면 10화에서는 고양이 목을 베버리는 장면이 노골적으로 등장한다. 계속해서 내가 좋아하는 공포 분위기가 지속되는데 정말 아쉽게도 10화에서 그쳐버렸다. 작가 블로그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없고, 팬카페는 존재하지 않는 페이지로 뜬다. 댓글들을 보면 '작가님 언제 오시나요' 'usb 핑계대고 있네'등등 재밌게 보던 사람들의 항의가 가득하다. 그런데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공지가 이번에 들어가보니 사라지고 없다. usb를 찾은 건지, 아예 그만두었는지 모르겠다. power9923은 더 이상 재밌는 공포만화를 그려주지 않는 것일까?

이 만화를 처음 접했을 때가 대학만화최강자전 때였는데, 비록 떨어지긴 했지만 나에게는 아주 인상 깊은 만화로 남았었다. 10화까지만 볼 수 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목록
어느 홈스쿨러의 독백
목록

누군가 중학교를 졸업했다고 SNS에 사진과 글을 올렸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3년 동안 뭘 했을까? 공부를 했나 효도를 했나 돈을 벌었나? 친구를 만들었나? 나 자신을 잘 돌보았나, 남을 잘 돌보았나? 난 지난 일들을 돌아보며 후회할 수밖에 없다. 나의 학력은 아직 어린아이에 머물러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뿌듯하지 못하고 남들에게 뿌듯하지 못하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놀기만 했다. 놀 나이가 한참 지났는데 놀기만 했다. 사람들에게 무관심했다. 나는 사람 사귀는 법을 알지 못했다. 나는 너무나 무지하고 미숙했다.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가면 도중에 중학교가 보이곤 했는데, 거기엔 나와 같은 나이의 청소년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그곳이 무척 힘든 곳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갔으면 왕따를 당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나가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저기 있었다면 어땠을까'였다. 내가 저기 있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보다 공부를 잘했을까 체력이 좋았을까 아니면 훨씬 괴롭고 우울했을까. 저 애들은 행복할까. 나보다 행복할 수 있을까. 내가 저기 갔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었을까.

나에게 학교는 항상 범접할 수 없는, 베일에 싸인 미지의 장소였다. 전혀 알 수 없는 세계이자 타지였다. 나는 학교 다니는 애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애들을 만났을 때 나는 그들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도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얘기하고 싶었지만 얘기할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는 그들을 자주 만날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이 다니는 학교와 그들의 이야기를 책 또는 영상으로만 접할 수 있었다. 학교는 공포와 폭력의 세상으로 표현되었다. 나는 영상물을 볼 때마다 학교에 가지 않은 게 정말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그곳은 범죄와 학대로 이루어진 곳이라 생각했다. 내가 학교를 갔으면 무서운 일을 당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소심해서 친구는커녕 왕따만 당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왕따를 당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렇게 된 사람들이 훨씬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때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물론 행복할 것이다. 이 세상에는 공부만 강요하는 부모가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왕따 당하는 애들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들도 행복할 때가 있고 불행할 때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행복할 때가 많느냐 불행할 때가 많느냐였다. 내가 저기 있었다면 어울릴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친구도 사귈 수 있었을까. 애들과 친해질 수 있었을까. 아니면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공부를 못해서 괴로워했을까. 그들의 관심사에 관심을 가져 그들과 관심사를 나눌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 학교를 안 간다 해서 친구가 생기지 못하는 걸까. 내가 노력을 안해서일까. 모든 게 그 때문일까. 그곳에 갔으면 나도 지금쯤 졸업을 했을까.

 

나는 아직 몽정을 하지 못했다. 물론 늦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꿈에서는 아니, 나는 꿈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딜 가나 가족이 따라온다. 가족은 내 인생의 99%다. 내 무의식 속에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서 벗어나 몽정을 할 수 없다. 가족들이 막는다. 나는 살면서 가족 외에 다른 사람과 속 깊은 대화를 단 한 번도 나눠본 적이 없다. 내 고민을 들어준 사람도, 가족이 아니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나는 나 혼자 내 속으로만 나 자신과 대면할 수 있었다. 나는 짜증나는 일이 있을 때마다 분노를 표출하지 못해 속으로만 욕을 했다. 누군가에게 속을 털어놓은 적이 없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속을 털어놓을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나에게만 말했다. 나 혼자 상상했다. 나 혼자 생각했다. 나 혼자 내 마음대로 생각했다. 나는 너무 속이 좁았다. 나는 나밖에 몰랐다. 제일 친한 가족, 아버지 혹은 동생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나 혼자서만 묵혀둘 수 있는 나만의 이야기를 나 혼자서 떠올렸다. 나는 친구가 없다고 한탄하고 있다. 나는 내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 나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남에게 만족하지 못한다. 나는 너무 게으르고 무식하다.

나는 가끔씩 내가 정말로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나 싶다. 내가 진정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면 나 혼자라도 열심히 쌩쇼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핑계로 만들지 않았다. 나는 제대로 된 소설 하나 쓰지도 않았다. 용기 있고 과감하게 친구를 만들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나는 너무 소심했고 변명이 많았다.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하나의 삶을 더 살아서, 학교를 다니는 삶을 살았다면, 그 삶이 행복했을까 이 삶이 더 행복했을까. 물론 아무도 모를 일이다.

나는 교회 수련회 때 이런 생각을 했다. 역시 사람은 많이 만나 봐야 아는 거구나. 그래야 내가 더 다가갈 수 있구나.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그들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구나. 그런데 나는 그동안 여러 가지 핑계로 수련회를 피했다. 나는 그들과 친해지지 못한 것이 아니라 친해지지 않은 것이다. 교회에 있는 애들은 모두 달랐다. 나는 너무 예외적이었다. 다들 무척 심성이 좋고 마음씨가 착했다. 다들 너무 잘 대해줘서 미안할 지경이었다. 나만 무리에서 혼자 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예배가 끝날 때마다 나는 그냥 나왔다. 나와서 밥만 먹고 집으로 갔다. 그들의 모임에도 귀찮아서 가지 않았다. 늘 형과 함께 그곳을 빠져나왔다. 나는 도피했다. 나는 너무 귀찮아했다. 모든 것을 귀찮아했다. 나는 자정이 훨씬 넘어서 쓰고 있다. 이제 나는 늦게 잤다고 한소리 얻어먹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늦게 자더라도, 문장이 엉망이어도 쓰고 잘 것이다.

 

나는, 그 애들을 그 학교를 부러워했던 걸까. 아니면 단순히 궁금해 했던 걸까. 길을 가다가 학교 교복을 입은 남, 여학생 연인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학교에 갔으면 저렇게 될 수도 있었을까.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지나가면 나도 저렇게 어울려 다닐 수 있었을까. 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늘 제정신이 아니었다. 잠깐 제정신이 아니었다. 신호등이 바뀌었는데 계속 걸어가고 있었다. 큰일 날 뻔했다. 뒤에서 형제들이 불러서야 정신을 차렸다. 나는 그때 고등학교를 쳐다보고 있었다.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하려고 했다. 내가 학교를 다녔다면 저기 갔겠지. 내가 학교를 갔다면, 내가 학교를 갔다면…… 나는 늘 그런 생각을 하고 산다. 공부를 엄청 많이 해야 하는 곳인 줄도 알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에 비해 천배 만 배는 더 할 것이라고. 하지 않으면 전교 꼴찌가 될 것이 분명하다고. 나는 지나가는 여학생들을 보면서 내가 학교를 갔으면 저런 애들을 매일 봤을 것이라고. 한 교실에서 공부를 했을 것이라고. 나는 학생들과 함께 다니며 어울릴 수도 있었을 거라고. 매일 형제들이 아닌, 또래 애들과 다닐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내 어머니와 시장을 갈 때 후줄근한 차림으로 그들과는 다른, 교복이 아닌 다른 옷으로 어머니와 함께 다니면 뭔지 모를 부끄럼 민망함 창피함 그런 것이 들었다. 그들은 내가 자기들과 같은 나이의 애인걸 알까? 나는 왜 매일 어머니와 함께 다녀야만 하는 걸까? 왜 아버지와 손잡고 다니고 형제들과 이야기하면서 다니는 걸까. 나는 누구를 위해서 후회하는 걸까. 누구를 탓하고 있는 걸까. 부모님이 걱정하는 걸 나는 더 걱정하는 걸까. 나는 단지 또래 애들 때문에 이러는 걸까. 만날 사람이 없어,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 이러는 걸까. 내 넋두리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서일까. 16년 동안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아직도 여전히 미스터리다. 풀지 못할 수수께끼다.

 

나는 언제 철이 들까. 그것이야말로 나에게 제일 큰 문제다. 나는 언제 자신 있게 살 수 있을까. 언제 나 자신에게 뿌듯하게 모두에게 뿌듯하게 살 수 있을까. 그들과 이야기하면 어떤 기분일까. 또래 애들과 얼마나 이야기한 적이 없었기에 나는 고작 아는 애의 몇 마디 말에 좋아하는 걸까. 나는 나 이외의 모두에게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다. 나는 나만 알고 있는 이야기를 나에게만 들려준다. 나는 나만 안다. 나는 내가 제일 잘 안다. 부모님이 나를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결국엔 내가 아는 것 전부를 알지 못하듯이. 내가 어떤 일을 했는지 무슨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나는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싶나? 꿈이 뭔가? 너무 배가 불러서 꿈이 있는데 알지 못하는 건가 너무 광대해서 고르지 못하는 걸까? 한가하게 이거할까 저거 할까 그러고 있나? 다른 애들이 꿈이 없어 우울해할 때 나는 꿈을 정하지 못했다고 한심하게 킬킬거리고 있나?

언젠가 문화센터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여학생 한 명이 다른 한명에게 말했다.

-너는 꿈이 뭐야?

-몰라. 없어.

매우 짧고 간단한 답이었다. 나는 그 대답을 듣는 순간 기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몰랐다. 그들을 동정하는 건가? 나는 내가 고를 수 있는 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다고 뻐기고 있나? 다른 애들을 조소하고 깔보고 있나? 그들이 불쌍하다고? 학업에 열중하느라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애들을 보고 불쌍하다고 동정하는 건가? 모르겠다. 지금 대답할 수 있는 문제인지. 감정이입을 하니 눈물이 나온다. 눈물샘이 자극돼서 그런 것이다. 무엇 때문에 자극되었나. 내가 허심탄회한 고백을 해서? 거짓이 없어서 아니면 남에게 말하지 못한 것을 글로써 풀어서? 내가 은밀하게 생각했던 것을 사실대로 말해서? 내가 꿈속에서 여자를 만지려고 할 때마다 그 여자는 사라져버린다는 것 때문에? 여자와 자려고 할 때마다 가족이 나타나서 방해한다는 것 때문에? 무엇 때문에? 공부를 하지 않아서 후회되나 누나에게 욕을 하지 못해서 후회가 되나? 누나를 죽여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품어서? 그런 악한 생각을 품어서? 아니면 누나가 자신을 죽이려했다는 말도 안 되고 터무니없는 생각을 품어서? 어쩌면 진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누나가 너무 짜증만 내고 스무 살이 넘었는데 일도 안하고 돈도 안 벌고 집도 안 나가서? 형 때문에 아니면 두 동생, 아니면 아버지 어머니 때문에? 어렸을 때 우산으로 빗자루로 파리채로 맞은 것 때문에? 내가 맞지 않으려고 온갖 잔꾀를 부린 것 때문에? 나는 내가 반항하는 사춘기의 나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있나? 지금 한시가 넘었는데 나는 내 할 말을 다 못했나.

강요가 없어서인가. 부모님 말대로 나는 강제로라도 교육을 받았어야 했나. 무엇이 문제인가 먹고 자고 싸고 문제없이 건강하고. 나는 밖에 나가서 이런 생각을 한다. 오늘 내가 무슨 실수를 저질렀지 않았나, 버릇없게 행동하지 않았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 줄 행동을 하지 않았나, 누군가 나를 나쁘게 보지는 않을까 예의 없는 애로 보지는 않을까. 나는 잘 행동한 걸까 잘못한 걸까 예의 있어 보이는 걸까 싸가지 없어 보이는 걸까. 증자는 하루가 끝나고 세 가지 점을 돌아본다고 했다. 친구와 사귀면서 신의를 지키지 못한 적이 없는가, 남을 위해 일하면서 진심을 다하지 못한 적이 없는가, 배운 것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적이 없는가. 나는 친구가 없으므로 첫 번째 사항은 해당되지 않는다. 나는 남을 위해 일한 적이 없으므로 두 번째 사항도 해당되지 않는다. 나는 배운 것을 제대로 익힌 적이 수없이 많으므로 세 번째 사항은 그냥 상투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나는 터무니없고 헛된 망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 스스로를 과대망상에 빠뜨리고 있는 것일까 유일한 사회 공간이 교회라서 그런 것일까.

나는 다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하면 교회 사람들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다른 홈스쿨 집안이나 우리에 대해서. 애들은 내가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고 하면 부러워한다. 그만큼 나는 좋은 것을 가지고 있다. 나의 삶이 그들의 삶보다 낫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어떻게 사는지 모르고 나도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 그래서 누가 더 나은지 알 수 없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나도 모르겠다. 내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나는 속이 상할 때마다 나 자신만의 가상세계에 빠진다. 내가 상담의사를 만나 그에게 내 속을 털어놓는 것. 이러저러해서 이렇게 해서 억울하고 속상해요. 부모님도 내 말을 안 듣고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아요. 너무 억울해요. 나는 누군가 위로해줄 사람이 필요한 건가. 얼마나 털어놓지 못한 일들이 많았으면 상상을 해서라도 뱉어내려고 하는가. 눈물이 나옴과 동시에 코도 나온다. 코를 닦으니 코가 아프려 한다. 너무 세게 닦았나. 이제 자야 하나. 잠이 올까. 아주 잘 올까. 나는 무엇에 안식을 얻으려고 하는 걸까. 무엇을 통해서. 애들을 통해서? 나를 통해서? 글을 통해서 아니면 영화 보는 것으로?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들어주었으면 하는 것인가? 그렇게 내가 스트레스가 많았나? 많다고 해서 학교 다니는 애들처럼 많을 수 있을까? 그들이 나보다 스트레스가 많을까 적을까? 그들마다 다르겠지? 나는 나를 너무 추하게 보고 나는 나를 너무 낮게 바라본다. 낙천적이고 싶다. 나는 너무 비관적이다. 누군가에 의해서인지는 모른다. 어쨌든 누군가에 의해서겠지. 아니면 나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내가 공모전에 당선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자랑하고 싶어서인 것도 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돈을 타기 위해서다. 돈을 타서 공부는 안 해도 잔소리를 듣지 않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돈이 무슨 소용인가. 너무 빨리 사라져버리고 너무 빨리 시들어져 버리는데. 돈은 너무나 속절없고 부질없는 것인데. 나는 어머니가 다른 사람에게 셋째는 공부를 안 한다고 그래도 문화상품권이라도 번다고 하는 말을 듣고 누구를 탓하나? 공부를 안 한 나를 아니면 공부를 억지로 안 시킨 어머니를?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공부는 안 해도 돈을 벌면 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로 돈을 벌어야지. 지금 할 수 있는 것으로. 공모전에서 돈을 벌어야지. 알바 공고가 붙어있을 때 내가 성인이었다면 저것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모님에게 나 저거 해보겠습니다 세상 경험도 하고 힘든 일도 해볼게요 하고 말할 생각을 했다. 내가 형처럼 성인이었다면 저런 걸 해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너무 힘들고 무서울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저런 걸 할 배짱이 있나 생각했다. 시급 만원이라는데 난 주일에 교회도 안가고 가족들과 놀러가지도 않고 혼자 일해서 간신히 일해서 그것도 운이 좋아서 채용돼 몇 시간 일해 삼만 원쯤 벌면 집에 왔을 때 가족들에게 돈벌어왔어요 하고 내 하루를 거기에 쏟아 붓나. 그리고 밥을 허겁지겁 먹은 다음 방안으로 가서 자나. 주일마다 그렇게 살 배짱이 있나.

 

무엇이 걱정인가. 군대 아니면 사람관계 아니면 돈 아니면 공부 아니면 운동 내 허약함 내소심함 뭐. 너무 놀면서 세월을 보냈다. 노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너무 놀았다. 너무 공부를 안했다. 누가 나에게 초등학교 혹은 중학교 수학 문제 또는 다른 문제를 내면 나는 답을 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만큼 모른다. 책 좀 읽었다고 생각하겠지만 머리맡에 두고 읽다가 잠들 정도로 많이 읽지는 않았다. 영화를 많이 본다 하지만 영화를 제대로 만든 적이 없다. 모르겠다. 지금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다. 모르고 모르겠다. 혼란스럽다. SNS에 올라온 애들의 글을 보고 혼란스러워졌다. 부러워해야할지 내 가진 삶에 만족해야할지 축하해야할지 ‘좋아요’를 눌러야할지 뭘 해야 할지 나는 나 자신에 너무 소홀하고 남에게 너무 소홀하다. 남을 신경 쓸 줄 모른다. 나 스스로도 자각하고 있다. 남들과 얘기할 때 내 일에만 너무 집중한다. 억지로라도 그들의 관심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나 싶었지만 그런 건 더더욱 싫었다. 지금 한시 25분이고 벌써 2월 9일이 되었다. 그리고 배가 고픈 것 같다. 저녁을 적게 먹은 것 같다. 심란하다. 아는 형, 나보다 한 살 많은 형이 있다. 그 형이 ‘좋아요’를 누른 글을 봤다. 누가 그러는데 우울하지 않으면 진지한 글이 안 써진 댄다. 맞는 말이다. 김원일도 아는 동생이 죽어가는 와중에 우울한 마음으로 글을 썼다.(실제로 친동생 한 명이 죽은 적이 있다) 조지 오웰도 병환 중에 1984를 썼다. 그런데 나는 우울한가? 내 글에서 진지함을 볼 수 있나? 나는 모범생, 예의바르고 모범적인 아이처럼 행동한다. 너무 위선적이다. 이게 다 부모님 때문이라고 탓하기는 싫다. 탓할 수 없다.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결국엔 내 문제, 내 문제이기 때문에 누가 끼어 들 수 없는 상황이다.

나는 내가 진솔한지 않은지 모르겠다. 이제 생각하기는 여기서 그만해야 하나. 쓸 건 다 썼나 아니면 아직도 가슴속에 묻어놓은 말하지 못할 비밀이 있는 건가. 내가 어렸을 때 뭣 모르고 저지른 죄? 해서는 안 될 짓들? 속으로 쌍욕을 해대며 요즘도 그러고 다니고 있는 나? 실컷 욕을 못하니까 숨어서 욕하고 숨어서 엿을 날리나? 누구를 향해 나를 향해? 어렸을 때 그런 짓을 하면 죄책감을 느꼈는데 이제는 수치심마저 사라졌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욕을 중얼거린다. 예전에 차에 타서 반수면 상태에 이르렀을 때 옆에 동생이 부스럭거리자 나도 모르게 시발 어쩌구 할 뻔했다. 그냥 입에서 튀어나올 뻔했다. 아마 아주 작은 소리로 웅얼웅얼했을 건데 못 알아들었겠지. 나는 잠꼬대하는 일이 거의 없는데 큰일 날 뻔했다 생각했다. 꿈속에서 말하려고 하면 깬다. 나는 두서없이 글이 무엇을 아니,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쓰고 있다. 이제 그만 쓰련다. 자야한다. 계속 쓸 순 없다. 내일 부모님이 온다. 뭐 했니 물으시면 나는 절대 공부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보고 산책하고 운동하고 그랬어요 하겠지 늘 그랬듯이.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았다. 나는 나만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치한 대사긴 하지만.

 

이 글은 나의 모든 것을 담은 글이 아니다. 절대로. 누가 보면 정신병자 글인 줄 알겠지만…… 그냥 이제 자련다. 들어가서 안경 벗고. 꿈을 꾸지 못하더라도 꿈을 꾸고 싶은 꿈같은 꿈을 꿀 수 있도록. 꿈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기를. 괴물이 나온다 하더라도 나를 즐겁게 해줄 수 있기를. 늦은 밤 아니 이젠 오전, 꽤 긴 글 쓰느라 고생했다. 눈물까지 흘리면서. 젠장 한시 43분. 누가 이 글을 보면 어떡하냐고? 상관없다. 아무도 내 컴퓨터를 켜서 이 글을 클릭해 보지 않으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어쩔겨. 그런 거지. 읽어봤자 내 넋두리인걸. 내 생각인걸. 나의 진심을 담은 생각인걸. 그냥 끝까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게 내 소원이다. 너무 장황한걸 아무튼, 잘 거다. 학교 졸업한 분들 모두에게 축하를 드린다. 나는 얼른 검정고시나 졸업해야겠다. 대학을 가든 안 가든 검정고시는 졸업하고 봐야겠다. 아무튼 졸업하신 모든 분에게 축하드리고 나는 자야겠다. 너무 나만 알고 나밖에 몰라서 죄송하다. 그리고 아직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한다. 이제 좀 내 감정이 가라앉은 것 같다. 너무 토해내듯 내뱉었다. 아 맞다 잔다고 했지. 잘 자라. 내일 보자.

 

 

 

수필은 오랜만에 올리는군요. 이 글은 제가 2월 9일 한밤중에 쓴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뭔 생각으로 그렇게 정신없이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제가 진심을 담아서 글을 썼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때까지 수필이란 글을 쓰면서 한 번도 진지하게 쓴 적이 없었습니다. 수필쓰는 법을 모르기도 했고 유치찬란한 일기 쓰듯 대충 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글은 달랐습니다.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진심을 담아 썼습니다. 그래서 그만큼 읽기 불편한 대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을 허물없이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원제도 '어느 홈스쿨러의 독백'이 아닌 '진솔한 글'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필을 읽고 제가 비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고 있습니다. 이 글에는 저의 안 좋은 점만 잔뜩 담겨져 있기 때문에 혹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 우려되지만, 제가 이 글을 공개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솔직해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필은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수필은 진솔한 수필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이 글을 올리고 난 후에야 비로소 여러분에게 솔직해진 것 같습니다. 제가 학교를 다니지 않는 것은 글틴 여러분에게 처음 공개하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글을 읽겠냐마는, 제가 학교를 다니지 않고 집에서 논다는 사실만큼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이 글을 제 가족들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걱정을 좀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개의치 않으렵니다. 저는 이 글을 컴퓨터에 묵혀두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저는 이 글을 쓸 때와는 달리 친구도 생겼고, 내성적인 성격도 고치고 있습니다. 비관적인 집념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형제를 증오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지만, 저는 더 이상 저를 증오하지 않습니다. 요즘 저는 평화롭고 편안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공모전을 준비하느라(핑계일지 모르겠지만) 최근 제 글틴 활동이 뜸해진 것 같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열심히 활동할 것입니다.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무얼 하든 떳떳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진솔한 글'을 올려봅니다. 읽다가 불쾌한 대목이 등장하면 중단하셔도 됩니다. 여러분에게 보여주려는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니라 제게 솔직해지고 싶은 마음으로 쓴 것이니까요. 이 수필이 넋두리에 불과한 자아도취 글로 그칠지 모른다는 걱정은 그대로지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이 글은 진심을 담아 쓴 진솔한 글입니다.

 

 

 

목록
글틴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목록

글틴에서 활동하시는(관리하시는) 모든 분께 사과드립니다.

최근에 저는 제가 글틴에 활동하면서 오랫동안 아주 무례하게 활동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뒤늦게야 깨달아 정말 죄송합니다. 오래 전에 올려진 게시글을 보았는데 그 밑에 제가 쓴 댓글이 보였습니다. 유치하다느니, 월장원을 못 탈 것이라느니 아주 나쁜, 남에게 상처를 주는 댓글이었습니다. 세상에, 내가 이렇게 안 좋은 댓글을 올렸었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나쁜 언행들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겁니다. 생각해보니 그런 댓글을 올린 게 한 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오래 산 것도 아니고 글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었는데 함부로 남의 글을 평가하고 폄하했습니다. 저는 너무 자만했고 겸손할 줄 몰랐습니다. 이기적이었고 버릇이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저의 잘못된 태도를 지적하면 어린애처럼 삐져서 무시했습니다. 무례하게 재촉했고 남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면서 예의 없이 항의했습니다. 회원분들을 비아냥거리고 비웃었습니다. 1년 넘게 글틴에서 활동하면서 너무 무례하게 행동했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신 분들에게 대들었습니다. 저를 싫어하시는 분이 많을 겁니다. 최근까지도 예의없이 굴었습니다.

저는 지난 일을 보며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반성하고, 사과드리기에 너무 늦은 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한 번 글틴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투또우님, 이설 선생님, 허희 선생님, 관리자님, 김보영 선생님, 고래바람 선생님과 이제는 기억하지도 못하는, 제가 아주 무례한 언행을 해서 상처를 준 회원분들께 사과드립니다. 너무 늦게 사과드렸습니다. 앞으로 훨씬 조심하고 예의를 갖춰 행동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목록
고백
목록

이제 와서 고백하는 사실이지만

나는 시를 모른다.

시를 많이 읽지 않았다. 엄청 열심히 쓰지도 않았다.

애초에 시는 나와 맞지 않았다. 내 취향도 시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올렸다. 상을 받으려는 욕심 때문이었다.

만족할 줄도 몰랐다. 자만했고 이기적이었고 버릇이 없었고 감사할 줄 몰랐다.

시를 알지 못하면서 남의 시를 폄하하고 마음대로 평가했다.

고백하기엔 너무 늦은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 선생님과 청소년들에게 죄송하고 감사드린다.

나중에 시를 쓴다 해도 더 열심히 배우고 나서 쓰겠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