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백일장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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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기록사랑 백일장에 다녀왔습니다! 만해백일장, 김소월백일장에서 떨어지고 세 번째로 갔네요. 백일장은 다니면 다닐수록 익숙해져서 글이 잘 써지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세 번째로 쓰니 확실히 전보다 나아진 느낌을 받습니다. 혹시 글틴 여러분 중에서 저처럼 엊그제 백일장 다녀오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네요.ㅎㅎ 아무튼 좋은 결과 한번 기대해봅니다. 참고로 그림도 그려서 접수했는데 뽑힐 것 같진 않아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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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껌은 고양이 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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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베스트 도전만화에 들어가면 '껌은 고양이 뇌로'라는 웹툰이 있다. power9923(봉준호)이라는 작가가 쓴 만화로, 10화까지 연재되다 갑자기 중단되어버렸다. 이유는 자료가 담겨있는 'USB'를 잃어버려서인데, 찾을 수 없어서 새로 쓰거나 어떻게 할 것이라고 해놓고 2년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한창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usb를 잃어버려서 중단되었다니 매우 안타깝고 아쉬울 수밖에. 이 만화를 보게 된 계기는 제목과 그림 때문이었는데, 노래 '검은 고양이 네로'를 '껌은 고양이 뇌로'로 바꿨다는 것부터 참 독특하고 재미있었다. 1화는 주인공이 '검은 고양이 네로'라는 노래를 듣고 문득 '껌은 고양이 뇌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서 실험해보려고 하지만 반대로 고양이가 주인공을 잡아간다는 내용이다. 2화부터는 고양이가 인간을 먹는 모습이 그대로 나오는가 하면 10화에서는 고양이 목을 베버리는 장면이 노골적으로 등장한다. 계속해서 내가 좋아하는 공포 분위기가 지속되는데 정말 아쉽게도 10화에서 그쳐버렸다. 작가 블로그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없고, 팬카페는 존재하지 않는 페이지로 뜬다. 댓글들을 보면 '작가님 언제 오시나요' 'usb 핑계대고 있네'등등 재밌게 보던 사람들의 항의가 가득하다. 그런데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공지가 이번에 들어가보니 사라지고 없다. usb를 찾은 건지, 아예 그만두었는지 모르겠다. power9923은 더 이상 재밌는 공포만화를 그려주지 않는 것일까?

이 만화를 처음 접했을 때가 대학만화최강자전 때였는데, 비록 떨어지긴 했지만 나에게는 아주 인상 깊은 만화로 남았었다. 10화까지만 볼 수 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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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홈스쿨러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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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중학교를 졸업했다고 SNS에 사진과 글을 올렸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3년 동안 뭘 했을까? 공부를 했나 효도를 했나 돈을 벌었나? 친구를 만들었나? 나 자신을 잘 돌보았나, 남을 잘 돌보았나? 난 지난 일들을 돌아보며 후회할 수밖에 없다. 나의 학력은 아직 어린아이에 머물러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뿌듯하지 못하고 남들에게 뿌듯하지 못하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놀기만 했다. 놀 나이가 한참 지났는데 놀기만 했다. 사람들에게 무관심했다. 나는 사람 사귀는 법을 알지 못했다. 나는 너무나 무지하고 미숙했다.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가면 도중에 중학교가 보이곤 했는데, 거기엔 나와 같은 나이의 청소년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그곳이 무척 힘든 곳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갔으면 왕따를 당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나가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저기 있었다면 어땠을까'였다. 내가 저기 있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보다 공부를 잘했을까 체력이 좋았을까 아니면 훨씬 괴롭고 우울했을까. 저 애들은 행복할까. 나보다 행복할 수 있을까. 내가 저기 갔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었을까.

나에게 학교는 항상 범접할 수 없는, 베일에 싸인 미지의 장소였다. 전혀 알 수 없는 세계이자 타지였다. 나는 학교 다니는 애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애들을 만났을 때 나는 그들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도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얘기하고 싶었지만 얘기할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는 그들을 자주 만날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이 다니는 학교와 그들의 이야기를 책 또는 영상으로만 접할 수 있었다. 학교는 공포와 폭력의 세상으로 표현되었다. 나는 영상물을 볼 때마다 학교에 가지 않은 게 정말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그곳은 범죄와 학대로 이루어진 곳이라 생각했다. 내가 학교를 갔으면 무서운 일을 당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소심해서 친구는커녕 왕따만 당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왕따를 당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렇게 된 사람들이 훨씬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때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물론 행복할 것이다. 이 세상에는 공부만 강요하는 부모가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왕따 당하는 애들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들도 행복할 때가 있고 불행할 때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행복할 때가 많느냐 불행할 때가 많느냐였다. 내가 저기 있었다면 어울릴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친구도 사귈 수 있었을까. 애들과 친해질 수 있었을까. 아니면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공부를 못해서 괴로워했을까. 그들의 관심사에 관심을 가져 그들과 관심사를 나눌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 학교를 안 간다 해서 친구가 생기지 못하는 걸까. 내가 노력을 안해서일까. 모든 게 그 때문일까. 그곳에 갔으면 나도 지금쯤 졸업을 했을까.

 

나는 아직 몽정을 하지 못했다. 물론 늦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꿈에서는 아니, 나는 꿈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딜 가나 가족이 따라온다. 가족은 내 인생의 99%다. 내 무의식 속에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서 벗어나 몽정을 할 수 없다. 가족들이 막는다. 나는 살면서 가족 외에 다른 사람과 속 깊은 대화를 단 한 번도 나눠본 적이 없다. 내 고민을 들어준 사람도, 가족이 아니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나는 나 혼자 내 속으로만 나 자신과 대면할 수 있었다. 나는 짜증나는 일이 있을 때마다 분노를 표출하지 못해 속으로만 욕을 했다. 누군가에게 속을 털어놓은 적이 없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속을 털어놓을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나에게만 말했다. 나 혼자 상상했다. 나 혼자 생각했다. 나 혼자 내 마음대로 생각했다. 나는 너무 속이 좁았다. 나는 나밖에 몰랐다. 제일 친한 가족, 아버지 혹은 동생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나 혼자서만 묵혀둘 수 있는 나만의 이야기를 나 혼자서 떠올렸다. 나는 친구가 없다고 한탄하고 있다. 나는 내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 나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남에게 만족하지 못한다. 나는 너무 게으르고 무식하다.

나는 가끔씩 내가 정말로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나 싶다. 내가 진정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면 나 혼자라도 열심히 쌩쇼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핑계로 만들지 않았다. 나는 제대로 된 소설 하나 쓰지도 않았다. 용기 있고 과감하게 친구를 만들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나는 너무 소심했고 변명이 많았다.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하나의 삶을 더 살아서, 학교를 다니는 삶을 살았다면, 그 삶이 행복했을까 이 삶이 더 행복했을까. 물론 아무도 모를 일이다.

나는 교회 수련회 때 이런 생각을 했다. 역시 사람은 많이 만나 봐야 아는 거구나. 그래야 내가 더 다가갈 수 있구나.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그들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구나. 그런데 나는 그동안 여러 가지 핑계로 수련회를 피했다. 나는 그들과 친해지지 못한 것이 아니라 친해지지 않은 것이다. 교회에 있는 애들은 모두 달랐다. 나는 너무 예외적이었다. 다들 무척 심성이 좋고 마음씨가 착했다. 다들 너무 잘 대해줘서 미안할 지경이었다. 나만 무리에서 혼자 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예배가 끝날 때마다 나는 그냥 나왔다. 나와서 밥만 먹고 집으로 갔다. 그들의 모임에도 귀찮아서 가지 않았다. 늘 형과 함께 그곳을 빠져나왔다. 나는 도피했다. 나는 너무 귀찮아했다. 모든 것을 귀찮아했다. 나는 자정이 훨씬 넘어서 쓰고 있다. 이제 나는 늦게 잤다고 한소리 얻어먹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늦게 자더라도, 문장이 엉망이어도 쓰고 잘 것이다.

 

나는, 그 애들을 그 학교를 부러워했던 걸까. 아니면 단순히 궁금해 했던 걸까. 길을 가다가 학교 교복을 입은 남, 여학생 연인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학교에 갔으면 저렇게 될 수도 있었을까.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지나가면 나도 저렇게 어울려 다닐 수 있었을까. 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늘 제정신이 아니었다. 잠깐 제정신이 아니었다. 신호등이 바뀌었는데 계속 걸어가고 있었다. 큰일 날 뻔했다. 뒤에서 형제들이 불러서야 정신을 차렸다. 나는 그때 고등학교를 쳐다보고 있었다.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하려고 했다. 내가 학교를 다녔다면 저기 갔겠지. 내가 학교를 갔다면, 내가 학교를 갔다면…… 나는 늘 그런 생각을 하고 산다. 공부를 엄청 많이 해야 하는 곳인 줄도 알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에 비해 천배 만 배는 더 할 것이라고. 하지 않으면 전교 꼴찌가 될 것이 분명하다고. 나는 지나가는 여학생들을 보면서 내가 학교를 갔으면 저런 애들을 매일 봤을 것이라고. 한 교실에서 공부를 했을 것이라고. 나는 학생들과 함께 다니며 어울릴 수도 있었을 거라고. 매일 형제들이 아닌, 또래 애들과 다닐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내 어머니와 시장을 갈 때 후줄근한 차림으로 그들과는 다른, 교복이 아닌 다른 옷으로 어머니와 함께 다니면 뭔지 모를 부끄럼 민망함 창피함 그런 것이 들었다. 그들은 내가 자기들과 같은 나이의 애인걸 알까? 나는 왜 매일 어머니와 함께 다녀야만 하는 걸까? 왜 아버지와 손잡고 다니고 형제들과 이야기하면서 다니는 걸까. 나는 누구를 위해서 후회하는 걸까. 누구를 탓하고 있는 걸까. 부모님이 걱정하는 걸 나는 더 걱정하는 걸까. 나는 단지 또래 애들 때문에 이러는 걸까. 만날 사람이 없어,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 이러는 걸까. 내 넋두리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서일까. 16년 동안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아직도 여전히 미스터리다. 풀지 못할 수수께끼다.

 

나는 언제 철이 들까. 그것이야말로 나에게 제일 큰 문제다. 나는 언제 자신 있게 살 수 있을까. 언제 나 자신에게 뿌듯하게 모두에게 뿌듯하게 살 수 있을까. 그들과 이야기하면 어떤 기분일까. 또래 애들과 얼마나 이야기한 적이 없었기에 나는 고작 아는 애의 몇 마디 말에 좋아하는 걸까. 나는 나 이외의 모두에게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다. 나는 나만 알고 있는 이야기를 나에게만 들려준다. 나는 나만 안다. 나는 내가 제일 잘 안다. 부모님이 나를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결국엔 내가 아는 것 전부를 알지 못하듯이. 내가 어떤 일을 했는지 무슨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나는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싶나? 꿈이 뭔가? 너무 배가 불러서 꿈이 있는데 알지 못하는 건가 너무 광대해서 고르지 못하는 걸까? 한가하게 이거할까 저거 할까 그러고 있나? 다른 애들이 꿈이 없어 우울해할 때 나는 꿈을 정하지 못했다고 한심하게 킬킬거리고 있나?

언젠가 문화센터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여학생 한 명이 다른 한명에게 말했다.

-너는 꿈이 뭐야?

-몰라. 없어.

매우 짧고 간단한 답이었다. 나는 그 대답을 듣는 순간 기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몰랐다. 그들을 동정하는 건가? 나는 내가 고를 수 있는 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다고 뻐기고 있나? 다른 애들을 조소하고 깔보고 있나? 그들이 불쌍하다고? 학업에 열중하느라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애들을 보고 불쌍하다고 동정하는 건가? 모르겠다. 지금 대답할 수 있는 문제인지. 감정이입을 하니 눈물이 나온다. 눈물샘이 자극돼서 그런 것이다. 무엇 때문에 자극되었나. 내가 허심탄회한 고백을 해서? 거짓이 없어서 아니면 남에게 말하지 못한 것을 글로써 풀어서? 내가 은밀하게 생각했던 것을 사실대로 말해서? 내가 꿈속에서 여자를 만지려고 할 때마다 그 여자는 사라져버린다는 것 때문에? 여자와 자려고 할 때마다 가족이 나타나서 방해한다는 것 때문에? 무엇 때문에? 공부를 하지 않아서 후회되나 누나에게 욕을 하지 못해서 후회가 되나? 누나를 죽여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품어서? 그런 악한 생각을 품어서? 아니면 누나가 자신을 죽이려했다는 말도 안 되고 터무니없는 생각을 품어서? 어쩌면 진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누나가 너무 짜증만 내고 스무 살이 넘었는데 일도 안하고 돈도 안 벌고 집도 안 나가서? 형 때문에 아니면 두 동생, 아니면 아버지 어머니 때문에? 어렸을 때 우산으로 빗자루로 파리채로 맞은 것 때문에? 내가 맞지 않으려고 온갖 잔꾀를 부린 것 때문에? 나는 내가 반항하는 사춘기의 나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있나? 지금 한시가 넘었는데 나는 내 할 말을 다 못했나.

강요가 없어서인가. 부모님 말대로 나는 강제로라도 교육을 받았어야 했나. 무엇이 문제인가 먹고 자고 싸고 문제없이 건강하고. 나는 밖에 나가서 이런 생각을 한다. 오늘 내가 무슨 실수를 저질렀지 않았나, 버릇없게 행동하지 않았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 줄 행동을 하지 않았나, 누군가 나를 나쁘게 보지는 않을까 예의 없는 애로 보지는 않을까. 나는 잘 행동한 걸까 잘못한 걸까 예의 있어 보이는 걸까 싸가지 없어 보이는 걸까. 증자는 하루가 끝나고 세 가지 점을 돌아본다고 했다. 친구와 사귀면서 신의를 지키지 못한 적이 없는가, 남을 위해 일하면서 진심을 다하지 못한 적이 없는가, 배운 것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적이 없는가. 나는 친구가 없으므로 첫 번째 사항은 해당되지 않는다. 나는 남을 위해 일한 적이 없으므로 두 번째 사항도 해당되지 않는다. 나는 배운 것을 제대로 익힌 적이 수없이 많으므로 세 번째 사항은 그냥 상투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나는 터무니없고 헛된 망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 스스로를 과대망상에 빠뜨리고 있는 것일까 유일한 사회 공간이 교회라서 그런 것일까.

나는 다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하면 교회 사람들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다른 홈스쿨 집안이나 우리에 대해서. 애들은 내가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고 하면 부러워한다. 그만큼 나는 좋은 것을 가지고 있다. 나의 삶이 그들의 삶보다 낫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어떻게 사는지 모르고 나도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 그래서 누가 더 나은지 알 수 없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나도 모르겠다. 내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나는 속이 상할 때마다 나 자신만의 가상세계에 빠진다. 내가 상담의사를 만나 그에게 내 속을 털어놓는 것. 이러저러해서 이렇게 해서 억울하고 속상해요. 부모님도 내 말을 안 듣고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아요. 너무 억울해요. 나는 누군가 위로해줄 사람이 필요한 건가. 얼마나 털어놓지 못한 일들이 많았으면 상상을 해서라도 뱉어내려고 하는가. 눈물이 나옴과 동시에 코도 나온다. 코를 닦으니 코가 아프려 한다. 너무 세게 닦았나. 이제 자야 하나. 잠이 올까. 아주 잘 올까. 나는 무엇에 안식을 얻으려고 하는 걸까. 무엇을 통해서. 애들을 통해서? 나를 통해서? 글을 통해서 아니면 영화 보는 것으로?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들어주었으면 하는 것인가? 그렇게 내가 스트레스가 많았나? 많다고 해서 학교 다니는 애들처럼 많을 수 있을까? 그들이 나보다 스트레스가 많을까 적을까? 그들마다 다르겠지? 나는 나를 너무 추하게 보고 나는 나를 너무 낮게 바라본다. 낙천적이고 싶다. 나는 너무 비관적이다. 누군가에 의해서인지는 모른다. 어쨌든 누군가에 의해서겠지. 아니면 나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내가 공모전에 당선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자랑하고 싶어서인 것도 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돈을 타기 위해서다. 돈을 타서 공부는 안 해도 잔소리를 듣지 않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돈이 무슨 소용인가. 너무 빨리 사라져버리고 너무 빨리 시들어져 버리는데. 돈은 너무나 속절없고 부질없는 것인데. 나는 어머니가 다른 사람에게 셋째는 공부를 안 한다고 그래도 문화상품권이라도 번다고 하는 말을 듣고 누구를 탓하나? 공부를 안 한 나를 아니면 공부를 억지로 안 시킨 어머니를?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공부는 안 해도 돈을 벌면 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로 돈을 벌어야지. 지금 할 수 있는 것으로. 공모전에서 돈을 벌어야지. 알바 공고가 붙어있을 때 내가 성인이었다면 저것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모님에게 나 저거 해보겠습니다 세상 경험도 하고 힘든 일도 해볼게요 하고 말할 생각을 했다. 내가 형처럼 성인이었다면 저런 걸 해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너무 힘들고 무서울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저런 걸 할 배짱이 있나 생각했다. 시급 만원이라는데 난 주일에 교회도 안가고 가족들과 놀러가지도 않고 혼자 일해서 간신히 일해서 그것도 운이 좋아서 채용돼 몇 시간 일해 삼만 원쯤 벌면 집에 왔을 때 가족들에게 돈벌어왔어요 하고 내 하루를 거기에 쏟아 붓나. 그리고 밥을 허겁지겁 먹은 다음 방안으로 가서 자나. 주일마다 그렇게 살 배짱이 있나.

 

무엇이 걱정인가. 군대 아니면 사람관계 아니면 돈 아니면 공부 아니면 운동 내 허약함 내소심함 뭐. 너무 놀면서 세월을 보냈다. 노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너무 놀았다. 너무 공부를 안했다. 누가 나에게 초등학교 혹은 중학교 수학 문제 또는 다른 문제를 내면 나는 답을 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만큼 모른다. 책 좀 읽었다고 생각하겠지만 머리맡에 두고 읽다가 잠들 정도로 많이 읽지는 않았다. 영화를 많이 본다 하지만 영화를 제대로 만든 적이 없다. 모르겠다. 지금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다. 모르고 모르겠다. 혼란스럽다. SNS에 올라온 애들의 글을 보고 혼란스러워졌다. 부러워해야할지 내 가진 삶에 만족해야할지 축하해야할지 ‘좋아요’를 눌러야할지 뭘 해야 할지 나는 나 자신에 너무 소홀하고 남에게 너무 소홀하다. 남을 신경 쓸 줄 모른다. 나 스스로도 자각하고 있다. 남들과 얘기할 때 내 일에만 너무 집중한다. 억지로라도 그들의 관심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나 싶었지만 그런 건 더더욱 싫었다. 지금 한시 25분이고 벌써 2월 9일이 되었다. 그리고 배가 고픈 것 같다. 저녁을 적게 먹은 것 같다. 심란하다. 아는 형, 나보다 한 살 많은 형이 있다. 그 형이 ‘좋아요’를 누른 글을 봤다. 누가 그러는데 우울하지 않으면 진지한 글이 안 써진 댄다. 맞는 말이다. 김원일도 아는 동생이 죽어가는 와중에 우울한 마음으로 글을 썼다.(실제로 친동생 한 명이 죽은 적이 있다) 조지 오웰도 병환 중에 1984를 썼다. 그런데 나는 우울한가? 내 글에서 진지함을 볼 수 있나? 나는 모범생, 예의바르고 모범적인 아이처럼 행동한다. 너무 위선적이다. 이게 다 부모님 때문이라고 탓하기는 싫다. 탓할 수 없다.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결국엔 내 문제, 내 문제이기 때문에 누가 끼어 들 수 없는 상황이다.

나는 내가 진솔한지 않은지 모르겠다. 이제 생각하기는 여기서 그만해야 하나. 쓸 건 다 썼나 아니면 아직도 가슴속에 묻어놓은 말하지 못할 비밀이 있는 건가. 내가 어렸을 때 뭣 모르고 저지른 죄? 해서는 안 될 짓들? 속으로 쌍욕을 해대며 요즘도 그러고 다니고 있는 나? 실컷 욕을 못하니까 숨어서 욕하고 숨어서 엿을 날리나? 누구를 향해 나를 향해? 어렸을 때 그런 짓을 하면 죄책감을 느꼈는데 이제는 수치심마저 사라졌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욕을 중얼거린다. 예전에 차에 타서 반수면 상태에 이르렀을 때 옆에 동생이 부스럭거리자 나도 모르게 시발 어쩌구 할 뻔했다. 그냥 입에서 튀어나올 뻔했다. 아마 아주 작은 소리로 웅얼웅얼했을 건데 못 알아들었겠지. 나는 잠꼬대하는 일이 거의 없는데 큰일 날 뻔했다 생각했다. 꿈속에서 말하려고 하면 깬다. 나는 두서없이 글이 무엇을 아니,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쓰고 있다. 이제 그만 쓰련다. 자야한다. 계속 쓸 순 없다. 내일 부모님이 온다. 뭐 했니 물으시면 나는 절대 공부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보고 산책하고 운동하고 그랬어요 하겠지 늘 그랬듯이.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았다. 나는 나만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치한 대사긴 하지만.

 

이 글은 나의 모든 것을 담은 글이 아니다. 절대로. 누가 보면 정신병자 글인 줄 알겠지만…… 그냥 이제 자련다. 들어가서 안경 벗고. 꿈을 꾸지 못하더라도 꿈을 꾸고 싶은 꿈같은 꿈을 꿀 수 있도록. 꿈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기를. 괴물이 나온다 하더라도 나를 즐겁게 해줄 수 있기를. 늦은 밤 아니 이젠 오전, 꽤 긴 글 쓰느라 고생했다. 눈물까지 흘리면서. 젠장 한시 43분. 누가 이 글을 보면 어떡하냐고? 상관없다. 아무도 내 컴퓨터를 켜서 이 글을 클릭해 보지 않으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어쩔겨. 그런 거지. 읽어봤자 내 넋두리인걸. 내 생각인걸. 나의 진심을 담은 생각인걸. 그냥 끝까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게 내 소원이다. 너무 장황한걸 아무튼, 잘 거다. 학교 졸업한 분들 모두에게 축하를 드린다. 나는 얼른 검정고시나 졸업해야겠다. 대학을 가든 안 가든 검정고시는 졸업하고 봐야겠다. 아무튼 졸업하신 모든 분에게 축하드리고 나는 자야겠다. 너무 나만 알고 나밖에 몰라서 죄송하다. 그리고 아직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한다. 이제 좀 내 감정이 가라앉은 것 같다. 너무 토해내듯 내뱉었다. 아 맞다 잔다고 했지. 잘 자라. 내일 보자.

 

 

 

수필은 오랜만에 올리는군요. 이 글은 제가 2월 9일 한밤중에 쓴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뭔 생각으로 그렇게 정신없이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제가 진심을 담아서 글을 썼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때까지 수필이란 글을 쓰면서 한 번도 진지하게 쓴 적이 없었습니다. 수필쓰는 법을 모르기도 했고 유치찬란한 일기 쓰듯 대충 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글은 달랐습니다.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진심을 담아 썼습니다. 그래서 그만큼 읽기 불편한 대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을 허물없이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원제도 '어느 홈스쿨러의 독백'이 아닌 '진솔한 글'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필을 읽고 제가 비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고 있습니다. 이 글에는 저의 안 좋은 점만 잔뜩 담겨져 있기 때문에 혹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 우려되지만, 제가 이 글을 공개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솔직해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필은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수필은 진솔한 수필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이 글을 올리고 난 후에야 비로소 여러분에게 솔직해진 것 같습니다. 제가 학교를 다니지 않는 것은 글틴 여러분에게 처음 공개하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글을 읽겠냐마는, 제가 학교를 다니지 않고 집에서 논다는 사실만큼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이 글을 제 가족들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걱정을 좀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개의치 않으렵니다. 저는 이 글을 컴퓨터에 묵혀두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저는 이 글을 쓸 때와는 달리 친구도 생겼고, 내성적인 성격도 고치고 있습니다. 비관적인 집념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형제를 증오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지만, 저는 더 이상 저를 증오하지 않습니다. 요즘 저는 평화롭고 편안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공모전을 준비하느라(핑계일지 모르겠지만) 최근 제 글틴 활동이 뜸해진 것 같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열심히 활동할 것입니다.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무얼 하든 떳떳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진솔한 글'을 올려봅니다. 읽다가 불쾌한 대목이 등장하면 중단하셔도 됩니다. 여러분에게 보여주려는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니라 제게 솔직해지고 싶은 마음으로 쓴 것이니까요. 이 수필이 넋두리에 불과한 자아도취 글로 그칠지 모른다는 걱정은 그대로지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이 글은 진심을 담아 쓴 진솔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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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에서 활동하시는(관리하시는) 모든 분께 사과드립니다.

최근에 저는 제가 글틴에 활동하면서 오랫동안 아주 무례하게 활동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뒤늦게야 깨달아 정말 죄송합니다. 오래 전에 올려진 게시글을 보았는데 그 밑에 제가 쓴 댓글이 보였습니다. 유치하다느니, 월장원을 못 탈 것이라느니 아주 나쁜, 남에게 상처를 주는 댓글이었습니다. 세상에, 내가 이렇게 안 좋은 댓글을 올렸었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나쁜 언행들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겁니다. 생각해보니 그런 댓글을 올린 게 한 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오래 산 것도 아니고 글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었는데 함부로 남의 글을 평가하고 폄하했습니다. 저는 너무 자만했고 겸손할 줄 몰랐습니다. 이기적이었고 버릇이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저의 잘못된 태도를 지적하면 어린애처럼 삐져서 무시했습니다. 무례하게 재촉했고 남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면서 예의 없이 항의했습니다. 회원분들을 비아냥거리고 비웃었습니다. 1년 넘게 글틴에서 활동하면서 너무 무례하게 행동했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신 분들에게 대들었습니다. 저를 싫어하시는 분이 많을 겁니다. 최근까지도 예의없이 굴었습니다.

저는 지난 일을 보며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반성하고, 사과드리기에 너무 늦은 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한 번 글틴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투또우님, 이설 선생님, 허희 선생님, 관리자님, 김보영 선생님, 고래바람 선생님과 이제는 기억하지도 못하는, 제가 아주 무례한 언행을 해서 상처를 준 회원분들께 사과드립니다. 너무 늦게 사과드렸습니다. 앞으로 훨씬 조심하고 예의를 갖춰 행동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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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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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고백하는 사실이지만

나는 시를 모른다.

시를 많이 읽지 않았다. 엄청 열심히 쓰지도 않았다.

애초에 시는 나와 맞지 않았다. 내 취향도 시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올렸다. 상을 받으려는 욕심 때문이었다.

만족할 줄도 몰랐다. 자만했고 이기적이었고 버릇이 없었고 감사할 줄 몰랐다.

시를 알지 못하면서 남의 시를 폄하하고 마음대로 평가했다.

고백하기엔 너무 늦은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 선생님과 청소년들에게 죄송하고 감사드린다.

나중에 시를 쓴다 해도 더 열심히 배우고 나서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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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은 누군가의 등에 추를 한 개 더 얹는 것과 같다

그 누군가는 내가 될 수도 있고 내 부모님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될 수도 있다

추는 등골이 휘어져라 무거운 추는 날이 갈수록 더해져

누군가들은 점점 더 추해지고 노쇠해지고 늙어간다

기쁨보다 두려움이 앞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여든 살 노인네처럼

누군가들은 얼굴도 삭고 몸도 삭는다

쌓이고 쌓인 추의 무게를 덜어내지 못한 누군가들은

휘고 부러진 척추를 제자리에 끼워 맞추려다

우두둑 부러져

다시는 일어서지 못한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은 접합하지 못할 부러진 뼈를 영원히 일어나지 못할 부서진 뼈를

다시 끼워맞추려 노력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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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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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있으면 해가 여행을 떠나고 밤이 이사 올 터였다. 그때까지 이 씨는 원고 작성을 마무리해야 했다. 하지만 번뜩이는 영감이 한 번에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는 한 좀처럼 써지지 않는 법이었다. 주인공 성식이가 홀로 여행을 떠나 세상 경험을 하고 친구 만수를 만나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는 것까지 완성했지만, 그다음부터는 도저히 그럴듯한 이야기가 생각나지 않았다. 이 씨는 미리 결말을 정해놓을걸 하고 후회했지만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소설의 전체적인 구성을 미리 구상해놨어야 하는데 얼른 쓰고 싶은 욕심에 무작정 執筆을 시작한 것이다. 낑낑 고심을 하며 머리를 쥐어짜내도, 영감이여 떠올라라 하고 책상에 머리를 꿍꿍 쥐어박아대도 소용없었다. 머리카락이 헝클어지고 속만 애타게 끓을 뿐 아이디어를 바라는 건 어림도 없었다. 그는 잠시 원고를 앞으로 밀어놓고 곰곰이 생각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바람도 쐴 겸 머리가 돌아가려면 通風이 잘 되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이 씨는 공원으로 발을 옮겼다.

아직 겨울이라 그런지 쌀쌀한 바람이 이 씨의 얼굴을 차갑게 훑고 지나갔다. 옷을 좀 더 두껍게 입었어야 했는데 이 씨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은 슬프리만치 매정했고 발가락에 스며드는 한기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시렸다. 하지만 공원 중심으로 온 이상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 씨는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은 채 계속 걸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세차게 부는 바람처럼 온갖 생각이 뒤엉키고 있었다. 에이, 그냥 대충 써버릴까? 만수가 어떻게 되든 말든, 그냥 생각나는 대로 완성해버릴까? 하지만 이때까지 心血을 기울여 집필한 소설을 결말부에 이르러 먹칠할 수는 없었다. 무엇이든 완성도가 높으려면 후반부에서 深化되어야 한다. 이 씨는 항상 그런 신념으로 소설을 썼다. 하지만 지금 그런 마음다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단번에 휘갈겨지는 탁월한 이야기였다.

이 씨는 풍경을 바라보면 저절로 무엇인가 떠오르겠거니 하고 공원 한가운데의 공터를 무심히 쳐다보았다. 그곳엔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다. 움직이는 物體란 흩날리는 모래바람과 휘청거리는 나뭇가지들뿐이었다. 작은 모래알갱이들이 구르고 굴러 이 씨의 운동화를 때렸다. 이 씨는 방향 잃은 소설처럼 목적 없이 공원을 헤매고 있었다. 그는 몸을 움직여 홀로 있는 벤치에 다가갔다. 그때 벤치 위에 있던 시커먼 덩어리 하나가 공벌레처럼 꿈틀댔다. 이 씨는 막 엉덩이를 대고 앉으려다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그 시커먼 덩어리는 몇 번 꿈틀대더니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이 씨를 빤히 쳐다봤다.

“안녕하슈.” 시커먼 덩어리가 컬컬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아, 예, 예 안녕하세요.” 이 씨는 얼떨결에 인사에 和答했다. 그 물질은 시커먼 덩어리가 아니라 무릎을 모아 누운 노숙자였던 것이다.

“아니, 이런 누추한 곳에 뭔 일로 오셨어요? 잠이라도 자려고? 댁도 나랑 같은 신세요?”

“아, 아뇨. 전 그냥…… 산책 삼아 걷다가…… 우연히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다.”

“허, 그러셨구먼. 이왕 공원 중심까지 온 김에 앉지 그래요? 내가 비켜줄게.”

지저분한 얼굴에 수염을 텁수룩하게 기른 노숙자가 이 씨에게 자리를 권하는 바람에 이 씨는 옆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서 구릿하고도 담백한 냄새가 확 풍겨왔다. 이 씨의 손이 본능적으로 코를 막으려 했지만 그의 이성이 간신히 막았다. 사람 앞에서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은 당연히 무례한 짓에 포함된다. 이 씨는 아무리 악취가 난다 해도 참기로 했다.

“그래 걷다 보니 생각나는 게 있던가요?”

“네? 아, 딱히 뭐…… 춥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네요. 옷을 좀 더 입고 올 걸 그랬나 봐요. 이렇게 날씨가 매서울 줄 알았으면 코트라도 입고 오는 건데 말예요.”

“그러게 말이요. 나는 신문지라도 주워 몸에 풀칠이라도 하는데 댁은 어째 입은 꼴이 영 거시기허구만. 앞으로 점점 추워질 테니, 가벼운 운동화 대신 두꺼운 장화라도 신는 게 좋을 겁니다.”

“아, 예. 충고해주셔서 고맙군요. 주무시는데 제가 방해한 건지 모르겠네요. 전 이제 그만 가봐야 할 것 같아서요, 그럼 이만.”

“아니 괜찮아요 괜찮아, 온 김에 조금이라도 더 앉아 있다가 가시구려. 누가 옆에 있으면 그나마 따뜻하거든. 사람 體溫이란 게 이래봬도 35도가 넘는다고요. 정말 대단한 온도 아닙니까? 안 그래요?”

“아, 하하…… 그렇군요.”

이 씨는 말 많은 거지에게 잘못 걸렸다 싶었지만, 날이 추워 몸서리를 치는 남자를 홀로 두고 가기가 뭣해 그냥 있기로 했다. 좋은 얘기가 떠오르지도 않는데 노숙자와 대화를 나누면 어떤 영감이 떠오를지 누가 알겠는가. 한 중년 남자의 넋두리를 꾸준히 듣다보면 그에게서 아름다운 한 편의 소설이라도 건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이런 날씨에는 그저 붕어빵 한 봉지 사다가 소주 한잔 따서 먹고 마시는 게 최고지. 댁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그렇죠?”

“네, 하지만 전 분식점에 들어가 시원한 어묵 한 사발 들이마시고 나오는 게 속 편할 것 같군요. 아니면 순대 1인분 시켜서 소금 탁탁 쳐 우물우물 천천히 씹어 먹는 것도 나쁘지 않지요.”

“순대라, 캬…… 소주 한 잔이랑 순대 한 접시만 먹으면 원이 없겠네, 원이 없겠어…….”

“이런, 맛있는 음식 얘길 하니 절로 배가 고파지는군요. 아저씨 점심은 드셨어요?”

이 씨는 아차, 싶었지만 한번 내뱉은 말은 돌이킬 수 없는 법이었다. 안 그래도 못 먹는 거지에게 이런 얘기를 꺼내다니 틀림없이 기분 나빠할 게 뻔했다. 잘 먹었냐고? 넌 아주 잘 먹었겠지? 된장국에 밥 쓱쓱 말아 얼씨구 좋다 들이마시고는 라면 하나 슬쩍 꺼내 보글보글 끓여서 씨원~ 하게 후루룩 짭짭 들이켰겠지? 후식으로 들큰한 번데기 하나도 까 드셨나? 응?

하지만 노숙자는 기분 나빠하기는커녕 도리어 싱글벙글 웃음을 띠는 것이었다.

“아이고, 먹다마다요. 비빔밥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릅니다. 달걀 후라이가 안에 들어있어서 참기름도 필요 없었어요. 대충 고추장 콩나물 넣어다가 맛있게 쩝쩝 비벼먹었지요. 댁은 뭐 드셨수? 그냥 밥? 아니면 뷔페라도 드셨나?”

뷔페는 무슨. 마감 시간에 쫓겨 굶는 와중에, 점심은 마다하고 아침이라도 먹었던가? 이 씨는 이제 건망증이라도 걸렸는가, 하고 기억나지 않는 오전 일을 머릿속에서 떨쳐버렸다. 꾸르륵거리는 위장이 거슬려 이 씨는 話題를 바꾸기로 했다.

“저는 소설을 쓰는 사람인데, 오늘 밤까지 쓰던 단편소설을 마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출판사랑 계약을 한 바람에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네요. 아무 얘기라도 떠오르면 좋으련만, 대체 마땅한 결말이 생각나야 말이죠.”

이 씨는 웬만하면 자신의 개인적인 생활을 말하지 않으려 했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이야깃거리도 없어 그냥 생각나는 대로 털어놓기로 했다. 노숙자는 이 씨의 말을 집중해서 듣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거 참 걱정 많은 양반이로구만. 내가 그 걱정 싹 다 없애줄 테니 걱정일랑 저 멀리 던져버리쇼. 앞으로 그런 걱정 할 일은 없을 것이고만.”

“네? 어떻게요? 걱정할 필요 없다니요? 맨날 안 써지는 게 소설인데, 아저씨가 어떻게 내 걱정을 없애줍니까?”

“조용히 하고 잠깐 눈을 감아보세요. 당신 머릿속에 만수가 굴러다니는 게 훤히 보이구만. 성질 급한 양반일세.”

이 씨는 어떻게 소설 속 등장인물의 이름을 알았냐고 물으려 했지만 그가 손을 들어 이 씨의 눈을 자동으로 가리는 바람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선물 하나를 줄 것이구만요. 만수란 애가 어떻게 하는지 잘 보세요. 자, 눈앞에 만수가 보이지 않습니까?”

이 씨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캄캄한 어둠뿐이었지만, 너무나 어이없고 황당한 이 거지의 말을 그래도 꾹 참고 들어주기로 했다. 자고로 君子란 인내심이 많고 참을성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만수는 성식이를 만난다. 성식이는 만수를 만난다. 둘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나서 만수는 알게 된다.”

심심하고 재미없는 이야기에 이 씨는 싫증이 날 지경이었다. 어서 이 거지가 눈앞에서 사라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때 노숙자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걱정은 개나 줘버리고! 일어나 소설을 끝마치슈!”

노숙자는 이 씨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고 갑자기 손을 이 씨의 눈에서 뗐다. 이 씨의 눈앞에 강렬한 태양빛이 화사하게 비쳤다. 그는 눈앞에 비쳐오는 햇빛을 볼 수 있었다. 따사한 햇빛은 어느덧 칙칙했던 구름을 덜어주었고, 이 씨의 눈앞에는 까만 비닐봉지 몇 개만 굴러다닐 뿐이었다. 그는 방금 전까지도 눈앞에 있던 노숙자가 감쪽같이 사라진 걸 보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 사람은 어디로 간 걸까. 벤치의 빈자리에는 구릿하고 담백한 냄새만이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말하지도 않은 등장인물의 이름을 안 것부터 이상했다. 아니, ‘걷다보니 생각나는 게 있던가요?’ 라는 질문부터 이 씨에겐 이상하게 들렸었다. 그때 눈치 채진 못했지만 그 거지가 남의 속마음을 훔쳐보는 능력이라도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씨는 증발해버린 노숙자의 존재를 잊으려 노력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루 두 끼를 굶으니 幻覺을 볼만도 했다. 그래, 잠시 내가 넋이 나간 모양이야. 아니면 꿈이라도 꿨나 보지. 그러나 손안에 느껴지는 물건은 분명 헛것이 아니었다. 그는 조심스레 손을 펼쳐보았다.

그 속에는 그가 그토록 기다리던, 주인공 성식이와 만수의 운명이 적혀 있었다. 아, 진작 이렇게 썼으면 됐을 것을, 나는 왜 그리도 떠올리지 못했는가! 이런 卓越하고, 간단한 결말이 있었다니! 이 씨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달려갔다.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이 소설의 결말이다! 이런 쉬운 수를 깨닫지 못했다니! 이 씨는 자신의 무지를 나무랐다. 그는 서둘러 신발을 벗고 손도 씻지 않은 채 작업실에 들어가, 황급히 모니터를 켜고 한글 파일을 눌렀다. 그러고는 후다닥, 10분도 안 돼 작품을 마무리했다. 마지막 문장을 끝내고 나서 그는 뿌듯한 성취감을 느꼈다. 이제 출판사에 넘기는 일만 남았다. 이 씨는 자신 있게 인터넷에 접속해 ‘메일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문득,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구심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 노숙자의 정체는 뭐였을까. 하늘에서 떨어진 기적이자 선물이었을까, 아니면 무의식적에 빠져나온 영감이 형상화한 것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아이디어를 선물하는 신이라도 되는 걸까. 오늘도 이 씨는 소설 한 편을 완성해 한시름 놓았지만,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들을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대체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사람이었을까, 이 세상 생물이 아니었을까.

 

이 씨는 완성된 단편소설을 출판사에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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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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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넘어 언덕 넘어 그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면

마당 앞에 마중 나온 우리집 멍멍이가 왈왈 짖어댄다

우리 멍멍이새끼 잘 있었니 그 사람은 집에 있니

헥헥거리는 멍멍이 만져달라 멍멍이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놓고 집안으로 들어섰는데

그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텅빈 공간에 먼지만 가득하네

그 사람, 그 사람은 어디갔을까

바깥으로 나가 힘껏 불러보았다

그 사람 그 사람 나 왔어요 그 사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그 사람

멍멍이 밥달라고 멍멍이

나는 마루에 앉아 그 사람을 생각하다

그 사람은 나를 모르고

나는 그 사람 이름을 몰라

그 사람 그 사람 하고 그 사람이라고만 부르고 있구나

그 사람 그 사람 어디갔을까

그 사람 그 이름 어디갔을까

산 넘고 들 넘어 그 사람이 기다리지 않는 곳으로 가면

그 사람은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한 나만

하염없이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구나

그 사람이 널 기다릴 줄 알았던

내가 잘못 생각한 걸까 단단히 잘못 생각한 걸까

마루에 누워 하늘을 보고

멍멍이는 놀아달라 멍멍이

그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나는 아직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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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개구리 배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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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개구리가 발라당 뒤집혔다

 

오늘 아침 김00씨는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향했다.

목적없는 곳, 무념무상 무의식적으로 가는 곳 그곳

김00씨는 넋을 잃은 채 멍하니 지하철 한구석을 응시한다

띠리리리 무당역 무당역에 도착했습니다

김00씨는 가방을 들고 들러붙은 바지를 떼고 일어선다

문이 열린다

푸르른 들판 짹짹 참새소리 화창하게 빛나는 해…

사방에 무당개구리들이 펄쩍펄쩍 뛰어다닌다

그중 한마리는 김00씨의 바지에 한마리는 가슴에 한마리는 목울때에

달라붙은 채 김00씨의 눈을 빤-히 바라본다

무당개구리 느낌이 꺼름칙해 땅바닥으로 휙

무당개구리가 지 배때지를 드러내놓고 비웃는다

무슨 낙으로 사리오 무슨 낙으로 사리오

환청인가 환청인가 귀에 거슬리는 소음일 뿐

붉은 바탕에 까만색 점 오돌토돌 오톨도톨

김00씨 소름끼치는 점들 무수히 많은 점들 보기 싫어

그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분못할 것을 애써 부인한 채 그곳을 빠져나온다

무당개구리는 여전히 배때지를 드러낸 채 걸걸거리는 웃음소리로

무슨 낙으로 사리오, 무슨 낙으로 사리오….

집에 돌아오자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다

무슨 낙으로 사리오.

김00씨는 비밀번호를 누른다

띠리리리 문이 열린다

김00씨는 그곳으로 그안으로 들어간다

 

발라당 뒤집혀진 무당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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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도망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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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보여드리기 앞서 독자 여러분에게 양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우선, 이 시는 여러분에게 이해하라고 만든 시가 아닙니다. 이 시가 무엇을 말하든 굳이 해석하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이 시는 문법에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뭐라 지껄이든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저는 이 시가 어디있는지 모릅니다. 여러 번 지켜봐왔지만 저의 부주의로 인해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혹시라도 이 시를 발견하신 분은 아래 전화번호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000-0000-0000

 

아니, 오늘도 햄버거인가. 이씨는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요즘 햄버거를 너무 자주 먹어서 당분간 생각없었는데, 이씨의 생각은 안중에도 없나. 눈치없는 햄버거는 또 밥상에 올랐다. 이건 이씨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진 일이다. 그냥 햄버거 알아서 밥상 위에 대가리를 떡하니 내밀고 이씨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날 먹어 날 먹어. 이씨는 잠깐 숨을 고르기로 한다. 벌써 며칠째 햄버거니 오늘도 먹어야 하는 것인가 먹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이씨는 식사 때마다 찾아오는(그것도 강제로!) 햄버거를 어디 먼 곳으로 쫓아내고 싶었다. 햄버거를 무찌르는 방법을 찾았지만 오히려 햄버거를 먹는 방법만 가득했다. 이씨는 시를 버리고 소설가가 된 장정일씨의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대충 훓어보았으나, 거기엔 그냥 햄버거 조리법만 적혀있는 게 다였다. 그래, 이 소설가의 소설이 논란이 된 이유가 다 있구나. 이씨는 생각했다. 햄버거는 그 자리에 있었다. 아무리 터뜨리고 창밖으로 내던져도 다시 온다.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이씨는 햄버거를 먹지 않으면 그도 더 이상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한숨 푹 자기로 하자. 거기 있든지 말든지.

 

아직도 못 찾으셨습니까? 혹시라도 이 시를 보신다면 저에게 연락하라고 전화번호를 보여드리지 않았습니까. 저는 이 시에게 잡아먹혀야 합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합니다. 독자 여러분은 만약 혹시라도, 혹시라도 이 시를 발견하신다면,

밑의 전화번호로(혹시 잊어버리셨을까 봐)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HAM-BUUR-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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