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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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물고기의 싱싱한 비린내가 난다
비린내 속에 강낭콩은 키가 크고 꽃은 피고 여물지 않은 손가락이 자라고

 

처음 안아본 너는 자라지 못한 채 죽은 어린잎처럼 끈적했지 너를 적신 빗물이 그때까지도 마르지 않아서
물갈퀴가 있을까 혹시 몰라 나는 너의 엄지와 검지 사이 허공을 몇 번이고 꼬집었다

 

빗방울 전주곡은 불안의 노래
떨어진 발자국은 고인 채로 툭툭 몸을 떨고 하늘이 맑아가는 동안 내 빨래는 마르지 않는다
젖은 네 몸 나는 좁게 끌어안고

 

빗물이 내리고 나는 자라고 있어 조금만 길면 네 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이 가까워 너는 내 뺨을 치지 마 장작처럼 말라비틀어진 네 귀를 물어뜯을게

 

오래된 첫비가 내려 하나 된 몸이 젖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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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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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나 설정 하나를 가지고 와서 마음 가는 대로 끝까지 쓴 다음 중요한 줄기나 전체적 맥락을 잡고 새로 씁니다. 미리 얼개를 다 짜두고 시작하면 쓰기가 힘들어서요. 이미 끝난 이야기를 붙잡고 있는 것 같아서 정말 그 뼈대 이상으로는 나아가질 못합니다. 플롯을 잘 짜야 한다는 말을 여기저기에서 자주 읽었는데, 이런 식으로 무슨 찰흙 반죽하듯이 막 써도 되는 건지 불안합니다. 그런 불안감 때문에 아직 큰 줄기도 없이 퍼져 있는 미완성 글을 자꾸 들여다봅니다. 들여다 볼수록 아이디어며 글이 너무 허술하게 느껴져요. 결국 도입만 쓰다가, 잘해봐야 중반 정도까지만 겨우 들어갔다가 글을 버립니다. 이런 버릇이 이제는 습관이 되어서 짧은 글 하나도 제대로 끝내지 못해요. 일기나 수필은 쓰는 데 큰 무리가 없는데 소설은 벌써 몇 달째 제대로 쓰질 못하고 있습니다. 쓰려고 시도할 때마다 이야기는 억지스럽고 인물들은 다 죽어 있다는 사실이 너무 의식돼서 참고 쓰기가 어려워요.
또 최근에는 시를 읽기 시작했는데, 이런 색이나 이런 이미지 같은 느낌이다, 하는 식의 단순한 감상 이상으로는 도무지 생각이 발전하지 않습니다. 시가 뭐고 소설이 뭐고 문학이 뭔지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나 뚜렷한 주관도 없어요. 지금까지 써온 글도 생각 없이 그냥 쏟아내기만 한 텅 빈 글이었어요. 글이 좋다는 말이나 칭찬을 가끔씩 들었는데 그런 말을 듣고 아무 생각 없이 좋아했던 게 지금은 너무 부끄러워요.
이러다 글을 영영 못 쓰게 될까 봐 너무 무섭습니다.
어떻게 해야 불안감과 글을 끝까지 못 쓰는 버릇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시(를 중심으로 한 문학 전반)를 공부할 수 있는 좋은 책이 있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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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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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개는 생고구마를 먹고 토한다. 쓰다듬으려는 아빠의 손을 문다. 피가 났고 아빠는 개를 때렸다. 개는 늙어가고 있다. 예민해서 툭하면 으르렁거리는 바람에 몇 년 동안 개를 만져보지 못했다. 그러나 개가 죽으면 어쩔 수 없이 슬플 것이다. 체온을 모르면서도 슬퍼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이상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손 한 번 대 본 적 없는 이들을, 또 심지어는 직접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이들을 자주 추모했던 것이다. 그나마 나와 가까웠던 사자(死者)들―외할아버지와 돌아가신 두 분의 선생님―의 손을 잡아본 적이 있었는지조차 자주 헷갈린다. 그러나 아무래도 좋다. 중요한 것은 개가 죽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꽤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길게 놓인 시간 동안 우리는 역시 아무 일도 하지 않겠지만.

개와 불화하기 시작한 때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개는 어려서부터 나를 잘 물었다. 어릴 때는 물리고도 손을 곧잘 내밀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물리는 게 무서워졌다. 그 후 다시는 개를 만지지 못 했다. 여전히 개는 기분이 좋으면 내 손을 핥는다. 개가 가까이 오면 나도 기분이 좋다. 옆에 오래 있길 바란다. 혼자 있으면 개에게 말을 건다. 서로 다정하던 이전과 다를 바 없다. 다만 개가 손을 핥는 동안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개를 안아올릴 수가 없을 뿐이다.

개는 개다. 개는 여덟 살 먹은 수컷 요크셔테리어고 이름은 몽이다. 눈과 귀가 크고 잘생겼다. 머리는 은색이고 몸은 은색으로 바래가는 검은색이다. 개는 산책을 할 때 언제나 크게 짖으며 먼저 앞으로 달려나가고 몸줄 쥔 사람을 끌고가려 한다. 개는 몸집이 작지만 힘이 세다.

개는 개이므로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외할머니는 우울증에 걸렸다. 이모는 직장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할머니를 찾지 않으면서 정작 가까이에서 할머니를 돌보는 엄마에게 잔소리를 했고 엄마는 이모와 싸웠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외삼촌은 점점 모든 일에 무감각해졌다.

삼남매 중에 젊을 때 할머니에게 정신적으로 휘둘리지 않았던 사람은 엄마 뿐이었다. 할머니는 젊은 엄마가 일하는 회사에 하루에 사십 번도 넘게 전화했고 이모가 더 좋은 병원으로 직장을 옮기는 걸 막았고 이젠 결혼을 해야하지 않겠냐고 외삼촌을 끊임없이 닦달했다. 어린 이모는 부모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고 기타와 동물을 좋아하던 삼촌은 성격이 유했다. 엄마만이 할머니에게 지배되지 않았다.

엄마는 아닌 일엔 아니라고 말하고 냉정하게 선을 긋는다. 남매 중 가장 이성적이라 무정해보이지만 실질적으로 할머니를 돕는 건 엄마다. 외삼촌은 하도 시달려서 이미 진이 다 빠졌다는 태도로 일관한다. 할머니가 밥과 약을 제대로 챙겨먹는지도 신경쓰지 않는다. 삼촌은 겨울엔 깔깔이를 입고 여름엔 런닝셔츠를 입으며 샤워를 오래 한다. 삼촌은 텅 빈 사람 같다. 그다지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없으며 밥을 많이 먹고 운동을 한다. 이모는 직장 일에는 똑 부러지지만 일상적인 일에는 서툴다. 이모는 어린 사촌동생의 기저귀를 갈아입히며 티비를 보다가 어린애의 아랫도리를 벗겨놓은 채 손에 새 기저귀를 들고 삼십 분 간 멍하니 티비를 보고 앉아있던 적이 있다.

할머니가 아프기 전까지 엄마와 외삼촌과 이모가 서로 싸우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 돌연 이렇게 되었다. 외삼촌은 질렸다는 듯이 항상 말이 없고 이모는 엄마와 전화로 싸운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새삼스레 깨닫는 때가 있다. 이 일이 벌써 팔 년이나 계속되어 왔다는 사실을. 우리 집 개와 할머니의 우울증은 나이가 같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조금 전에 개를 데리고 왔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다리가 두 번 부러져서 각각 두 달 간 우리 집에 머문 적이 있다. 개를 볼 때면 그나마 희미하게 웃고 맛있는 걸 줬다. 개는 맛있는 걸 주는 할머니를 좋아한다.

할머니의 우울증은 재발한 것이다. 엄마가 아주 어릴 적에도 할머니가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었다 했다. 처음으로 병病이 고개를 들었을 때는 무당이 병을 눌렀다. 그걸로 다 나은 듯했다. 그러나 우울은 오래 꼬리를 감추었을 뿐이었고 팔 년 전에 다시 나타났다. 몇십 년이 지나도록 병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과연 좋은 무당인가 나쁜 무당인가. 그리고 개와 재발한 우울증의 나이. 개를 볼 때마다 그 시간을 생각하는 때가 있다. 이상한 방식으로 어찌어찌 벌써 그렇게 오래 되었다.

엄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아픈 뒤부터 또는 개를 데려온 뒤부터 술을 자주 마신다. 개가 온 지 얼마 안 되어 아빠의 친구 가족과 함께 강화도에 놀러간 적이 있다. 엄마는 맥주캔을 끊임없이 비웠다. 울면서 내가 나쁜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날 밤 엄마는 나(와 내 동생)의 앞에서 처음으로 술에 취했다. 엄마가 누워있던 나를 짓누르면서 안았는데 엄마, 부르며 밀어내도 밀리지가 않았다. 정말로 무서워져서 엄마 엄마 했을 때 엄마는 웃다가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우는 나를 아빠와 아빠의 친구인 아저씨와 아저씨의 딸인 언니가 달랬다. 그날 이후로 엄마아빠가 술을 마실 때엔 무슨 말이라도 쏘지 않고 지나가는 일이 없다. 그렇게 되었다.

 

나는 가끔 그런 상상을 했던 것 같다. 개가 온 해에 모든 일이 벌어졌으니까 개와 함께 모든 일이 종결되지 않을까 하는. 그 종결이란 아마 외할머니의 죽음일 것이고 종결 이후엔 모든 것이 다 무너져내릴 지도 모른다. 엄마와 이모와 외삼촌은(특히 엄마와 이모는) 평생 얼굴을 보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은 그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사소한 금이 집을 무너뜨리듯 정말 그렇게 될 지도 모른다. 종결이 종말이 되고 그렇게 끝나버릴 지도 모른다.

외할머니의 상태는 좋아지고 나빠지길 반복한다. 엄마에게 시도때도 없이 전화를 걸다가 어떤 때엔 나와 동생에게 용돈을 준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을 엄마는 자주 한다. 개는 항상 베란다 문을 열어달라고 보채지만 막상 열어주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보챘는지를 잊고 베란다에 그저 멍하니 서 있는 일이 잦다. 그러면 나는 개의 이름을 불러 거실로 들이고 베란다 문을 다시 닫는다.

이 일이 언젠가 끝날 것임을 나는 안다. 그리 가깝진 않지만 어쩌면 멀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때가 오는 게 무섭다. 무너져내려도 무섭고 사이좋게 돌아가도 무섭다. 누군가 기뻐할까 봐, 어쩌면 그게 나일까 봐 더 무섭다. 그때가 언제든, 아마 그때까지도 나는 개와 화해하지 못할 것이지만.

개는 언젠가는 반드시 죽고 모든 일은 끝난다. 가깝지는 않지만 그다지 멀지도 않다. 그 끝을 생각할 때면 항상 무섭다. 그러나 역시 종결은 온다. 그렇게 되고 나면, 끝난 일의 뒤로 다시 지난한 새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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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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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을 다시며
북어처럼 건조시킨 말들
엄마의 핸드크림을 훔쳐서 입술에 발랐다
무해하지 않은 거짓말은 촉촉해

 

물이끼가 무성히 자라
초록으로 수장당한 나의 방

 

하루 재워주지 않겠니 나는 잘 곳이 무덤뿐이야
맨눈으로 보기엔 너무 날카롭게 모서리가 있고
액자마저 따뜻하게 덮여있는 죽은 육면체
나의 유해가 거기에 있어
의심하는 얼굴의 너를 잡아끌었다

 

물이끼가 무성히 자라
초록으로 수장당한 나의 방

 

이끼를 이불처럼 걷어내면
거기 내가 있었다 눈을 감고
죽었거나 죽은 척을 하면서
구멍이 뻥 뚫린 누런 노래

 

얼굴을 보려 허리굽힌 너를
뼈가 드러난 팔꿈치로 힘껏 누르면
오래된 유골을 바스라뜨리며
질식하는 물고기는 포닥포닥

 

물이끼가 무성히 자라
초록으로 수장당한 우리의 방

 

죽은 내가 누운 곳에
나는 다시 포개어 눕고
위로 홉뜬 너의 눈
잘생겼다 애인처럼 웃고

 

입술에 묻은 초록을 지우며
촉촉하게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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