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월장원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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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수요일입니다.

이번 달에는 월장원이 없습니다.

늘 좋은 글만 쓸 수는 없어요. 글이 잘 써지지 않는 날도 있고, 쓰고 나서 답답한 날도 있어요. 그래도 노력할 수밖에 없어요. 노력은 글쓰기의 가장 큰 재능입니다. 내 주변의 글쟁이들은 누구나 묵묵히 노력하고 있어요.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긴 시간 구성하고, 다듬어요. 지난한 시간 끝에 빛나는 글이 완성됩니다. 모두 힘내요!

 

효월 님 <이제, 저녁을 허락할 시간>

정말 그래요. 저녁이 없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죠. 우리가 언제인가부터 잃어버리고 만 저녁에 대해, 휴식에 대해, 마음건강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잘 읽었어요. 다만 이 글은 일상을 풀어내었다기보다 주장을 펼치는 논설문으로 보입니다. 이 글이 수필이라면 자신의 주장을 설득하는 말투로 의견을 담기보다는 화자 자신이 겪고 있는 저녁 없는 삶에 대해 스스로의 개인적 체험을 드러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녁을 잃어버린 화자 가족의 모습을 담아도 좋고, 저녁을 누리지 못하는 화자 주변의 친구들에 대해 말해도 좋아요. 주장하는 대신 보여주세요. 독자에게 청유하는 대신 독자가 느끼게 해주세요. 화자의 구체적 경험이 생생히 전달될 때 독자는 자연스레 화자에게 공감하게 됩니다.

 

바못 님의 <독서실의 밤>

글쓰기에 대한 바못 님의 생각 잘 읽었습니다. 독서실과 시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네요. 좋았습니다. 관찰력이 없다면 쓸 수 없는 글이죠.  관찰력은 좋은 글의 바탕이 됩니다. 다만 이 글에서는 구체적 표현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어요. 바못 님은 왜 독서실의 풍경에 대해, 손목시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표현했나요? 구체적 표현을 한 의미가 더 잘 보여야 합니다.

창작을 할 때, 아이디어를 얻는 작업으로 의식의 흐름에 따라 휘갈기듯 글을 쓸 때가 있어요. 그렇게 쓰다보면 생각도 못한 멋진 글감이 나타나곤 해요. 그렇게 찾아낸 글감을 더 발전시키고 다듬어 한편의 좋은 글로 완성합니다. 바못 님이 쓴 글은 완성된 글이라기보다, 글감을 찾는 단계에서 떠오른 아이디어들의 나열로  보여요. 불필요한 아이디어는 버리고, 필요한 아이디어는 살려 글쓰기에 대한 바못님의 생각을 잘 엮어내길 바랍니다.

 

 

바람서리 꽃 님의 <별들의 기억>

우주와 삶에 대해 생각, 잘 읽었습니다. 글이 관념적으로 흐르고 있어 아쉽습니다. 우리는 소박한 이야기를 통해 많은 걸 느끼고 생각합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통해 오만이 만드는 결과를 생각하고, 벌거벗은 임금님의 행진을 통해 허위의 민낯에 대해 생각합니다. 구체적 상황이 담긴 이야기가 오만, 허위와 같은 추상적인 관념을 드러내는 겁니다. 이것이 구체성의 힘입니다. 바람서리 꽃 님, 추상적인 표현은 지양하고 보다 구체적으로 써 주세요.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담을 통해 우주로부터 얻은 깨우침을 담아주세요. ‘우주는 깨달음을 주고, 생각하게 한다.’와 같은 형태의 관념적인 문장으로 글이 채워지면 독자에게 공감을 얻기 힘듭니다.

전반적으로 문장이 명쾌한 전달력을 갖추지 못했어요. 글을 깔끔하게 정리해 무엇에 대해 쓰고 있는지 독자가 쉽게 알 수 있도록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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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월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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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입니다.

날이 좋아요. 햇살이 환한데 오늘 나는 퍽 쓸쓸합니다. 내 감정을 차분히 들여다봅니다. 피고, 지고, 흔적을 남기는 것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벗님들은 어떤가요?

3월의 월장원은 두 편입니다. 김지용1 님의 <이방인>과 오태연 님의 <쭉정이>. 축하드립니다.

모든 작품을 잘 읽었어요. 일상의 벅찬 행복에 대해, 글을 쓸 수밖에 없는 내면의 열정에 대해, ‘나’라는 존재의 그늘에 대해, 우리를 숨 막히게 하는 제도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여는 것에 대해, 부족했던 나를 담담히 응시할 수 있는 내면의 성장에 대해, 견디기 어려운 현실을 버티는 어려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어요. 여러분의 마음을 나누어주어 고맙습니다.

 

우재영 님 <함께 할 때의 행복>

한참 지나버렸지만 생일 축하합니다! 좋은 친구들과 함께, 멋진 파티였겠죠? 16년 만에 찾아온 선물 같은 친구들과의 우정. 얼마나 근사한지 읽는 나도 설레었어요. 우재영 님의 글을 통해 ‘함께’와 ‘혼자’는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보완되는 것이란 걸 느꼈답니다. 나도 ‘혼자 하는 모든 것이 OK’인 사람이에요. 나를 이해해주고 지지해주는 친구들이 있기에, 때로 그들과 만나 온기를 나누며 위로받기에 혼자 있는 시간이 더 행복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글에서 사소한 버릇 한 가지를 덜어내면 좋겠어요. 이 글의 내용 때문인지, 강조를 위한 형용사를 넘치게 사용하고 있어요. ‘큰 행복이라는 걸 깊이 느꼈다.’는 말의 ‘큰 행복’, ‘깊이 느꼈다’를 들여다보세요. ‘큰 행복이라고 느낀다.’라고 써도 화자의 행복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전달됩니다. ‘많이 행복하다. 아주 많이’, ‘깊이 박혔고 참 고마웠다’, ‘깊은 의미를 느껴보는 말’ 등 강조를 위한 형용사를 빈번히 사용합니다. 이런 강조는 적당히 들어가는 게 좋습니다. 절약할수록 글 안에서 그 형용사의 가치가 커집니다.

 

 

속도 님 <견디며 살아가는 모두에게 건네고 싶었던 말: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속도 님이 글을 쓰는 이유와, 속도 님이 글에 담는 생각을 엿볼 수 있게 해주어 고맙습니다. 글이 가진 힘에 대해, 글이 주는 위로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 상처를 입잖아요. 그 상처는 남들 눈에 별 것 아닌 걸로 보이지만, 나에게는 참기 어려운 통증이 되죠. 특히 가까운 사람이 주는 상처가 그렇더라고요. 친할수록, 좋아할수록, 믿을수록 그가 주는 작은 상처에도 더 큰 아픔을 느껴요. 반대의 경우도 빈번히 일어나요. 나는 내 사소한 실수가 누군가에게 큰 아픔이 되기도 한다는 걸 알고 당혹했어요.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단 한 번도 가해자가 되지 않은 채, 피해자의 역할만 할 수는 없단 걸 알았죠. 이 글에 속도 님이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던 경험도 같이 들어가면 어떨까요? 상처를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우리의 자화상이 더 선명히 보일 겁니다. 공정무역 커피에 대한 내용은 의도치 않은 개인의 상처를 보여주는 일례로 조금 약합니다.

전개가 유려하고 문장이 명료해 전달력이 좋은 글입니다. 내밀한 생각도 잘 표현하고 있어요.

 

 

전하리 님 <묻어 둔 말들>

‘나를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자들의 기준에 맞추어서 그들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으려고 몸부림’치는 것. 참 피곤한 일인데, 알면서도 그만두기 어렵습니다. 나를 내가 사랑하지 않는 느낌, 외부의 기준에 맞추어 나를 변형하고 결국 껍데기만 남은 느낌, 마침내는 ‘내가 한 일들이 내가 되어, 나는 내가 아니게 되고 내가 한 일의 흔적이 되어’버리는 기묘한 상황이 잘 담겼어요. 마지막 문장에 담긴 비관적인 울림은 생각할 거리를 만듭니다. 화자가 말하는 ‘여기’는 화자가 진정으로 바라는 바로 그것인가, ‘밝은 미래’라는 외부의 기준이 만들어낸 허상인가. 화자는 나인가, ‘내가 아’닌 나인가.

전하리 님이 이 글에 자신의 생각을 더 견고히 담으면 좋겠습니다.

글을 쓸 때 표현을 더 정확하게 해주세요. 예로 ‘쓰라리는 말들 때문에 아파왔던 내가 조금이나마 강해 보이려 쓰고 있던 밝음의 탈을 벗고 돌아다녀도 당황하지 않아야 했다.’같은 문장은 그 뜻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윤별 님 <숨의 기억>

내 고등학교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되는구나. 나도 학교생활이 힘들었는데, 지금은 얼마나 고될까. 마리오네트처럼 하루를 보내며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매일을 버텨나가는 건 얼마나 고통스런 일일까. 글을 읽으며 별별 생각이 다 듭니다. 윤별 님의 글을 읽으면 막연하게 ‘힘들겠구나.’ 짐작했던 것들이 구체화되어 다가옵니다. 윤별 님은 상징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들을 눈에 보이도록 바꿔놓거든요. 정교한 표현도 윤별 님의 글이 가진 매력입니다. 글은 노력을 배신하지 하지 않아요. 쓰는 만큼 쌓여 다음 글의 자양분이 됩니다. 윤별 님이 쓰는 글 한 편 한 편 어느 것 하나 스스로에게 귀하지 않은 글은 없습니다.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꾸준히 글을 써나가면 좋겠습니다.

 

 

김지용1 <이방인>

엄마가 데려온 이방인과 나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이 장면으로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아빠 없다고 놀렸던 애들 틈에서 이방인과 같았던 나와 이 나라의 이방인인 그 남자의 자리를 겹쳐보며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화자, 담담하게 그 남자를 받아들이는 동생, 민망해 하면서도 가까워지려고 애쓰는 그 남자, 큰 아들 앞에서 작아지는 당신을 추스르며 노력하는 어머니……. 이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개성을 지니고 있어요. 관찰력과 묘사력이 상당합니다.

마무리는 다소 갑작스러워요. 카레와 김치, 서로에게 이국의 음식일 것들이 섞이고 화합하는 마무리가 소설이었다면 진부하게 보였을 겁니다. 그래도 김지용1님 자신의 경험일 터이기에 따뜻하고 기분 좋게 다가오네요. ‘나는 죽고 싶을 때마다 잠수를 했다.’는 문장과 ‘정말이지 죽고 싶을 정도로 살고 싶었다.’는 문장이 한데 이어지며 느낌을 만듭니다.

이 글은 첫 문단의 묘사가 좋아요. 첫 문단의 긴장감을 끝까지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 문단부터 문장이 흐트러집니다.

 

오태연 님  <쭉정이>

‘내가 할 수 있는 건 딱 여기까지였다.’는 말에 담긴 의미가 묵직해요. 쭉정이 같은 자신의 마음과, 그 마음을 여전히 걸러내지 못하고 있는 스스로에 대해 담담히 쓰고 있어 매력적입니다.

형에 대한 얘기가 없다면 오태연 님이 왜 쭉정이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제대로 드러나지 못했을 겁니다. 잘난 형 때문에 형처럼 알맹이가 단단하게 보이는 그 녀석, 나비넥타이가 어울려 보이는 그 녀석이 더 마땅치 않아 보였다는 것이 지금보다 더 또렷이 드러나도 괜찮을 듯해요. 심리의 흐름을 더 풍부히 보여줘도 좋겠습니다.

내용이 조금 더 들어갔으면 하는 부분이 있어요. 우선 시간대가 더 분명히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현재와 회상의 경계가 모호해서 읽을 때 헷갈립니다. 첫 문단은 현재죠? “태연아, 같이 가자.”라는 대화 위에 회상으로 들어가는 짧은 문장을 한줄 추가해주세요.

엄마에게 쭉정이를 걸러내는 법을 물은 뒤, 그에 대한 엄마의 말이 생생히 들어가도 좋겠습니다. 엄마가 알려준 대로 쭉정이를 걸러내고, 쭉정이를 거르는 게 사실 아주 쉬운 일이었다는 걸 깨달으며 ‘내가 할 수 있는 건 딱 여기까지’라는 믿음으로 살았던 것이 얼마나 사소한 벽이었는지 알게 되는 순간, 쭉정이 같던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걸러내고 그 녀석과 마주할 힘을 얻게 되는 모습이 조금 더 나오면 좋겠습니다.

 

타임머신 님 <현실 도피>

단문을 감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에요. 공격적인 말투로 툭툭 던져내는 문장에 한 번 더 눈이 갑니다. ‘마치 여러 번 해본 듯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카드를 삽입하고 계좌에서 3만원을 가져’가는 행위에 눈이 확 가며 집중하게 되는데, 막상 이렇게 뺀 돈으로 PC방에 가 현실의 도피처로 컴퓨터 개임에 몰입하게 된 원인이 내용에서 빠져 있어요. 이 내용이 없으면 독자의 공감을 얻기 어려워요. 사실 보다 근원적인 부분, 상처 입게 된 원인을 글로 쓰기는 쉽지 않아요. 상처를 마주보아야만 하니까요. ‘나’를 현실 도피로 몰아간 그 사건과 그로 인한 상처를 쓸 수 있을 때, 이 글이 완성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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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월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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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수요일입니다.

2월에 올라온 글은 꼭 대화 같았어요. 우리 앞에 놓인 궤도를 도는 것과 이탈하는 것에 대해 글틴 벗님들이 서로 응답하며 “그렇구나.”, “그렇지 않아.”, “하지만”, “나는 이래.”하고 대화하는 듯했어요. 여러분의 생각을 담은 소중한 글, 잘 읽었습니다.

2월의 월장원 선정작은 두 편입니다.

오태연 님의 <나는 누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김지용2 님의 <기계체조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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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경수 님 <12월 31일 11시 59분 59초>

2017년을 맞아 지난 한해를 돌아보며 잠시 뒤쳐졌던 스스로를 격려하며 달음박질해 나가려는 화자의 마음이 잘 담겼어요. 한 해 동안 자신의 마음과 행동에 대한 후회와 반성 그리고 앞날을 위해 노력하려는 각오가 보이는 글입니다.

이 글에는 불필요한 수식어가 많아요.

‘유난히 가슴이 시큰거리던 찰나가 아스라이 스쳐 지나간다.’

위 문장에서 ‘찰나’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바로 그때의 짧은 시간이고, ‘아스라이’는 가물가물 희미할 때를 뜻해요. ‘스쳐 지나간다.’는 퍼뜩 떠올랐다 빠르게 사라지는 걸 뜻하고요. 의미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아도 비슷하게 겹칩니다. 이럴 땐 ‘유난히 가슴이 시큰거리던 찰나였다.’라고 써도 괜찮지 않을까요? 작가의 의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불필요한 수식어와 겹치는 단어를 전체적으로 정리하면 더 매끄럽게 읽힐 겁니다.

 

란서 님 <성공>

잘 익은 사과처럼 영글어 있는 글입니다. ‘해야 할 것들’에 뺏겨 ‘하고 싶은 것들’을 포기한 채 한숨 쉬던 때가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더 절실히 느낄 수 있는 거겠죠. ‘나는 이내 웃으며 사과나무를 오르기 시작합니다.’라는 문장에 담긴 화자의 기쁨과 의지가 훅 다가와요. 누군가 닦아놓은 길을 따라 가며 사과가 떨어지길 기다리는 사람들 틈에서 ‘나무의 오목한 홈들에 발을 걸쳐가며 계속 올라’가고 있는 화자의 모습이 싱그럽습니다. 화자가 찾아낼 성공 또한 공산품 같지 않은, 자기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그 무엇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오태연 님 <나는 누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누’가 되고 ‘누가’ 되고픈 소망을 오고가며 내면의 흐름을 따라 지절대는 글이 인상적이에요. 보이는 길을 따라 가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겠습니다. 정해진 길, 둘러싸인 울타리 안에서 경쟁은 더 치열해지죠. 맞아요. 누군가 ‘튜브에 올라가려면 다른 사람이 튜브에서 내려야’하는 일이 반복돼요. 저도 그런 삶이 싫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벗어날 순 없더군요. 이 글이 어디로 흘러갈까 생각하며 천천히 읽어나갔어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오태연 님이 퇴고를 할 때는 불러온 것들의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리며 그 이미지와 배치되지 않도록 문장을 정리해주세요. 이를테면 유수풀의 형태가 안 그려져요.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좁’은 유수풀에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위치’에 있는데, 그 위치는 ‘한적’하지만 뒤에서 ‘자꾸만 부딪쳐’옵니다. 오태연 님이 무얼 이야기하는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정리하면 훨씬 읽기에 수월해질 거예요. 누군가에게 빤히 쳐다보여지는 경험-나를 보는 시선-이 관상용 물고기로 연결되는 부분이나 ‘당신들’을 어항에 비유해 풀어내는 부분을 더 정리해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2월의 월장원으로 선정합니다.

 

눈설 님 <♡♥>

귀엽고 발랄한 글입니다. 짝사랑에 대한 일화를 가볍게 풀어냈어요. 대화문, 독백, 대화문, 독백의 짧은 반복이 재밌으면서도 한편 아쉬워요. 짝사랑 상대에 대한 설렘이나 서운함 같은 감정을 더 적극적으로 써주었으면 했거든요. 괄호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되도록이면 괄호를 빼고 그 내용을 본문 안에 풀어서 써주세요.

 

바람서리꽃 님 <두려움을 벗겨내고>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힘든 시간을 보낸 뒤 스스로를 당당히 인정하게 된 바람서리꽃 님. 소중한 경험을 공유해주어 고마워요.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게 인간관계죠. 모든 일이 관계에서 시작되고, 이어지고…. 그래서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이 다른 이에게 어떤 아픔을 주는지 보여주는 것, 참 중요해요. 그 글이 누군가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작은 단서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화자가 이 글에서 ‘우리 반 악녀들’에게 어떤 비판의 말을 들었는지, 운동회에서 어떤 실수를 했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보여줬다면 좋았을 겁니다. 독자들은 화자 앞에 닥친 구체적인 상황에 자기 몸을 겹쳐보며 공감합니다.

 

 

곧 님 <못 가본 세계를 가 본 세계로: 북경, 96시간>

중국 여행의 경험을 흥겹고 유쾌하게 담아낸 기행문이에요. 구성도 잘 정돈되어 있고, 뭣보다 글이 맛깔스럽습니다. 목적에 충실한 글입니다. 워낙 잘 씁니다. 술술 읽힐 뿐 아니라 재미있어요. 왕부정 거리에서 바가지를 쓰고, 정신없이 인력거 투어를 마치고, 땀을 뻘뻘 흘리며 만리장성에 올라갔던 3박 4일의 기억이 생생히 담겼어요.

말머리를 조금 가볍게 바꾸는 건 어떨까요. 말머리에서 한 이야기가 막상 여행 일정에서는 잘 녹아 나오지 않았거든요. 화자가 가진 유쾌한 어조를 살려 서두 부분을 더 산뜻하게 고치면 좋겠습니다.

 

 

김지용2 님 <기계체조선수>

첫 단락의 표현이 참 좋아요. 아무나 쓰기 어려운 기계체조 선수의 움직임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단문으로 속도감 있게 담겼어요. 눈을 사로잡는 시작에 비해 결말은 다소 트릿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도 매력을 지녔어요. 기계체조 선수로서의 경험이 김지용2 님에게 특별한 자산이 되리라고 생각해요.

이 글을 2월의 월장원으로 선정합니다.

 

서윤호 님 <편린들>

가지가 잘린 가로수를 보며 생각의 편린을 풀어냈어요. 가지가 잘리고, 자라고, 잘리는 시지푸스와 같은 가로수를 보며 화자가 느끼는 감정이 잘 살아있습니다. 사람의 키를 훌쩍 넘기며 무성히 자란 풀도 여름이 오기 전 사람들에 의해 뭉텅 잘릴 테지요. 가로수와 풀.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있는 듯 보이지만 때가 되면 어김없이 가지를 잘리고 몸을 잘리는 식물의 모습을 통해 서윤호 님은 무얼 말하려 했나요? 이 편린들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을 겁니다. 그게 더 잘 드러나면 이 글의 완성도도 높아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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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월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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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수요일입니다.

 

지난 시간이 내 안에서 무르익어 넘칠 때 가장 아름다운 글이 나옵니다. 글틴 벗님들, 우리 2017년에도 많이 경험하고 많이 고민해요. 그 시간들이 언젠가 마른 가지에 새 잎이 돋듯 글로 돋아날 겁니다.

 

 

투또우 님 <홀로>

낯선 곳에서 느끼는 화자의 외로움을 담담히 담았어요. 홀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비슷비슷한 표정을 지어요. 입을 꾹 다물고 무표정한 얼굴로 먼 곳을 내다봐요. 일부러 그런 얼굴을 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레 그런 얼굴이 되요. 외롭기 때문에요. 그리움과는 또 다른 감정이에요. 혹시 투또우 님이 ‘누군가를 그리워하지 않’는 자신을 이기적으로 느끼는 까닭이 있을까요. 이 글이 혹시 그리워하다 실망하고, 체념하고, 결국엔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없게 된 사람의 반어적 슬픔을 담은 것일까요.

투또우 님은 감각적인 언어 사용이 매력적이에요. 기본이 탄탄합니다. 특별한 인상을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글이 될 수 있도록 세부 내용을 더 풍성히 넣어주세요.

 

눈설 님 <Best Friend>

‘그 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지만 가장 싫어하는 친구기도 했다.’는 말에 공감하며 내 친한 친구를 떠올렸어요. 왜 친구를 좋아만 할 수 없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좋다가도 지겨워지고, 싫어졌다가도 그리워지고. 그런 과정을 오랫동안 거쳤어요. 사실은 친구도 나를 참아주는 부분이 많다는 것도, 서로 맞춰가며 노력해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긴 시행착오 끝에 알았죠. 눈설 님이 관계 회복을 위해 먼저 친구에게 인사하고, 문자를 보내는 모습이 멋집니다.

이 글에는 담으려는 내용이 너무 많아요. 다람쥐 모양 포스트잇에 적혀있는 글과 친구와의 추억을 일일이 연결하다보니 글안에 내용이 넘칩니다. 예쁜 티셔츠 열 장을 겹쳐 입는다고 열 배로 예뻐지지 않잖아요.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사건 하나를 집중해서 보여주면 좋겠어요. 문장을 한 번 더 정리해주세요.

 

o7uz 님 <2017>

다사다난했던 2016년을 버텨내고 2017년을 맞이하는 화자의 마음이 잘 담겨 있어요. 버텨낸 스스로에게 수고했노라 위로하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사랑하는 모습에서 화자의 여문 내면이 느껴집니다. 이 글을 읽고 ‘그래. 당연한 일인데, 잊고 있었어. 그래도 내가 나를 사랑해야지.’하며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려줬어요. 열심히 사는 우리, 2017년에는 더 행복해져요.

이 글 역시 세부 사항이 담기면 좋겠습니다. ‘하나도 안 맞는 교복 꾸준히 입고 다녔고, 맛도 없는 급식 너무 잘 먹어줬고’같은 문장이 다른 문장보다 눈이 가고 기억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문장 정리가 필요합니다.

 

콩두 님 <추억의 그리움>

콩두 님, 소중한 기억을 공유해주어 고맙습니다. 애틋하고 그리운 마음이 올올이 배어 있는 글이에요. 화려하지 않아서 더 아름다운 글이 있어요. 이 글이 그렇습니다. 담백하고 솔직해요.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그 시집을 찾고 싶어 서가를 뒤졌습니다. ‘내가 읽은 동시집인데.’하면서요. 시집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다 쓴 뒤 다시 한 번 문장을 정리해주세요. 입으로 소리 내어 읽으며 어색한 문장을 찾아 고치면 좋습니다.

 

바위꽃 님 <우리 집>

장소가 멋진 글감이 되고 있습니다. 잘 읽었어요. ‘삼공육 보충대 앞에 있는 용현 주공’이라는 장소가 생생해요. ‘나는 십육 년을 여기서 살았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 우리 동네에 들어올 때면 갑자기 무성해지는 나무와 작아지는 아파트들이 익숙하다.’는 문장이 독자를 오래된 오층 아파트 단지로 툭 데려다 놓네요. 사라진 슈퍼와 ‘슈퍼 멍멍이’에 대한 세부 기억이 동네에 대한 애정을 자연스레 보여주고 있어요.

문장 정리가 필요합니다.

 

 

김지용1 님 <걸레>

걸레와 실크 손수건이 선명한 이미지를 만들어요. 아버지의 실크 손수건을 훔쳐 걸레로 쓰려 하고, 깨끗한 방을 일부러 어질러 어머니의 존재를 확인하는 ‘나’의 마음이 묘해요. 그 묘한 감정의 결이 살아있어 매력적입니다. 장면의 세부 묘사가 화자의 감정을 잘 드러내고 있어요.

다만 구성이 아쉬워요. 첫 단락은 굳이 필요치 않아 보여요. 빠지는 게 더 자연스럽겠습니다. 마무리 부분도 더 생각해주세요. 아버지와 ‘나’의 대화보다 더 적합한 마무리가 있을 겁니다.

문장도 더 신경 써 주세요.

 

 

2017년 1월의 월장원은 김지용1 님의 <걸레>입니다.

새해 첫 글을 써준 모두에게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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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월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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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글틴 벗님들.

2017년이 왔는가 싶더니 벌써 1월 중순이 다 되어갑니다.

2016년을 마무리할 12월 월장원은

두둥두둥두둥~

서윤호 님의 <개와 남자와 달리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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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이사 님의 <열여섯, 나의 짧은 여름>

자기 앞의 생에 대한 화자의 열정이 전해집니다. 중학교에 올라가 다른 학생들의 그림 실력에 좌절한 화자가 자만을 털고 새로이 나아가게 된 과정이 진솔하게 담겨 있어요. 인터넷에 그림을 올려 평가를 요청하고, 그 아래 달리는 아픈 댓글을 끝까지 읽어내는 모습에 뭉클했어요. 스스로를 깨고 다시 시작하는 화자의 내면이 생생합니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는 구절이 정신에 일으켰을 강렬한 화학작용에 충분히 공감되는 건, 여름 같은 삶에 대한 삼이사 님의 진지한 고민이 글에 배어나오기 때문일 겁니다.

다만 이 글에는 비문이 많아요. 한두 가지 지적으로 끝낼 수 없을 만큼 비문이 흘러넘칩니다. 원고를 어느 정도 완성했다면, 한 문장 한 문장 들여다보며 정성껏 고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문장이 문법적으로 옳은가, 이 표현이 나의 생각을 잘 담고 있는가, 이 단락이 내 글에 필요한 것인가 등을 생각하며 고치는데 시간을 충분히 할애하길 바랍니다. 문장은 시간을 들인 만큼 좋아집니다. 좋아진 문장은 다음 글의 바탕이 됩니다. 반드시 퇴고를 통해 글을 정돈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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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별 님의 <채도 낮게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고>

윤별 님이 ‘나의 글’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쓴 글 같습니다. 이런저런 글을 시도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시도를 통해 자기 글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으니까요.

닫힌 학교 닫힌 교실 안에서 죽어가는 ‘우리’의 현재, 죽어가는 청춘의 고민 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정리해주세요. 무엇보다 문장이 걸립니다. 문장과 문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못하고 툭툭 끊어져요. 주어의 지나친 생략, 자연스런 흐름을 타지 않는 문장 등이 낯선 효과를 만들기보다 글을 이해하는데 불편함을 줘요. 예를 들겠습니다.

D-7이라고 적힌 포스트잇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뒤따라 책상에 새겨진 수많은 상흔들이 보인다. 상처보다 시간을 더 중요시한다. 책상 언저리를 쓸었다. 지우개가루와 샤프심의 감각이 낯설지 않다. 그러니까 패인 나무는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위의 여섯 문장은 본문의 일부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날짜가 적힌 포스트잇을 본 뒤에야 상흔이 새겨진 책상에 눈이 가는, ‘상처보다 시간을 더 중요시’하는 화자 자신에 대한 씁쓸함이 제대로 전달되고 있지 않아요. 뒤의 두 문장도 적절한 전달력을 지니지 못했어요. 글에 불필요한 묘사가 없는지, 정확하고 간결한 문장을 쓰고 있는지, 장식적인 문장이 많지 않은지 고민하고 점검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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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호 님의 <개와 남자와 달리는 사람>

어떤 내용일까, 절로 흥미진진해지는 제목이에요. 발랄하고 깔끔한 글입니다. 어느 날 학교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며 겪게 된 해프닝을 생생하고 간결하게 담아내었어요. 잘 읽었습니다. 서윤호 님의 <개와 남자와 달리는 사람>을 이 달의 월장원으로 선정합니다.

이 글 안에서 화자가 더 고민해볼 수 있는 평소의 생각이나 문젯거리를 꺼내어 볼 수 있을까요? 화자가 달리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순간만큼은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고, 철봉을 하는 남자는 ‘교수대에 매달린 사람’ 같고, 개는 생생하게 ‘짖으며 나를 향해 달려’오죠. 이 사건 안에 살아있음, 살아감 등에 대한 서윤호 님의 생각을 담을 수 있을 듯해요. 그런 생각을 넣어 바꿔 쓰라는 말이 아니라, 어떤 글감을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글감이 내 내면의 무엇을 건드리는가에 대해 더 생각하고 그것을 독자에게 전달해달라는 말입니다. 싱거운 해프닝은 한바탕 웃음으로 끝나지만, 그 안에 화자의 독특한 생각이 더해지면 웃음 뒤에 긴 여운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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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님의 <작가의 변>

과거의 ‘나’와 ‘당신’ 사이에 있었던 상처와 현재의 ‘나’가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담고 있네요. 잘 읽었습니다. 스스로의 잘못을 돌아보는 일은 늘 어렵습니다. 과거의 실수를 솔직하게 고백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죠. 쓰기 쉽지 않았을 글입니다.

2인칭 시점을 사용했는데 그 덕에 이 글은 독자와 ‘당신’이라는 이중의 수신자를 가지게 되었어요. 미지의 독자를 수신자로 하는 글이기도 하고 ‘당신’을 수신자로 하는 사과의 글이기도 한 셈이죠. 그래서 나는 이 글이 ‘당신’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당신’을 향한 고백같은 사과의 글이 되면 좋겠어요.  진정한 사과는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나부터도 그래요. 내가 아무리 명백한 실수를 했더라도, “사실은 이유가 있었어. 내 탓만은 아니었어.”하며 자기변명을 내놓곤 해요.

이 글이 자기변명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화자가 자신을 돌아보는데 더 집중하면 좋겠어요. ‘당신’을 위한다는 이유로 어떤 그릇된 행동을 했는지, ‘당신’에게 한 일로 상황이 어떻게 어긋나버렸는지 등을 더듬으며 억울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던 ‘나’ 자신의 복잡한 내면을 더 치열하게 보여준다면 어떨까요.

고교 불합격 이야기는 다르게 풀 수도 있을 듯해요. ‘당신’에게 사과할 기회를 잃어서 허탈한 ‘나’의 마음이 제대로 다가오지 않아요. 그보다는 사과할 기회를 잃어 허탈한 것을 표현하느라 ‘당신’이 밝히고 싶지 않아할 아픈 부분을 순진한 목소리로 드러내버리지 않았나 하는 개인적 우려가 들어요.

여기까지 쓰고 나니 걱정이 됩니다. 나는 화자의 의도를 처음부터 오독했는지 몰라요. 글에 대한 내 생각은 모두 개인적인 견해이니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하는 마음으로 평을 읽으면 좋겠어요.

 

곧 님의 글에 '본격문학'에 대해 나와 살짝 덧붙입니다. 동화, 아동 소설, 청소년 소설, 동시 등 아동문학 작품은 모두 본격문학에 속하며 성인문학과 대등한 관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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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월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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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글틴 벗님들. 수요일입니다.

수필은 나의 이야기예요. 우리 자신의 경험이나 마음을 글로 표현하면 수필이 되지요. 벗님들이 어떤 경험에 대해 쓰기로 했다면, 왜 그 경험을 쓰고 싶은지 고민하세요. 일상적이고 사소한 경험을 통해 우리의 내면이 드러날 때 그 글은 더 특별해집니다.

11월의 월장원은 구닐라 님의 <병렬>, 투또우 님의 <메스꺼움>입니다.

 

구닐라 님 <병렬>

‘우리 집 늙은 개’와 ‘우울증에 걸린 할머니’를 병치해 이미지를 구축했어요. 몇 군데 비약이 있지만 글 전체에 이를 상쇄하는 매력이 있어요. 8년에 걸쳐 생겨난 금을 어쩌지 못하고 언젠가 찾아올 종결을 기다리면서도 두려워하는 화자의 마음을 예리하게 담았습니다. 화자의 내면을 표면에 드러내지 않고 ‘우리 집 늙은 개’에 대한 생각을 통해 풀어내었어요. 이 글을 11월의 월장원으로 선정합니다.

구닐라 님이 글을 조금 더 다듬으면 좋겠어요. 첫 단락의 글을 조금 바꿔 볼게요.

‘우리 집 개는 생고구마를 먹고 토한다. 늙어서 그렇다. 어제는 쓰다듬으려는 아빠의 손을 물었다. 피가 났고 아빠는 개를 때렸다. 늙어서 예민해진 개는 툭하면 으르렁거린다.’

‘늙어서 그렇다.’는 개가 생고구마를 먹고 토하는 이유를 더 선명하게 만들어요. ‘어제는’은 시간성을 구체적으로 만듭니다. ‘물었다.’ 과거시제로 쓰는 게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체온을 모르면서도 ~ 자주 헷갈린다.’ 부분은 굳이 필요치 않은 이야기로 보입니다. 구닐라 님이 꼭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빼도 좋을 듯해요.

내가 여기에 고쳐 적은 문장이 최적은 아니에요. 글은 다듬을수록 좋아집니다. 글 쓰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생각과 마음과 의도를 더 선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문장을 고쳐나가요. 글틴 벗님들 모두 자기 글을 어떻게 다듬어야할지 계속 고민해주세요.

 

 

서윤호 님 <상호관람>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분할된 공간에 있는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대상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시선이 깨집니다. 두 사람은 상호관람자의 위치에 서서 서로를 마주보게 되고, 서로를 관찰 대상이 아닌 존재로 인식하게 되죠. 서윤호 님이 찾아낸 ‘상호관람’은 단선적 시선과 상호적 시선의 차이, 시선의 마주침이 만들어내는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글감이에요. ‘상호관람’을 풍성히 만들 다른 이야깃거리를 서윤호님의 기억에서 찾아내어 글을 보강하면 좋겠어요. 연극무대, 동물원, 길거리 공연……. 시선과 시선이 얽힐 수 있는 것들을 더 생각해보세요. 서윤호 님이 괜찮다면 ‘비상호관람’에 대한 부분은 덜어내도 좋겠습니다. 덜어내지 않을 거라면 자신이 ‘대상’이 되었을 때의 기분을 더 솔직하게 담아주세요. 전체적으로 문장을 정리해주세요.

 

 

silver 님 <가을의 문턱에서>

화자의 시선을 다라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서 학교 뒷산의 아직 푸릇푸릇한 나무를 봅니다. 겨울이 오면 저 푸른 자연 속 생명들은 어디로 사라질까. 죽는 걸까, 잠시 잠을 자는 걸까. 단정한 문장 안에 화자의 생각이 잘 전달되고 있어요.

이 글에는 동물들, 동식물들, 생명들 등 뭉뚱그린 표현이 나와요. 그런 표현을 되도록 줄여주세요. silver 님이 만난 생명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동물에 초점을 맞춰보면 어떨까요. 글 속에 두어 번 언급되었던 거미를 예로 들어 볼게요. 거미줄이 쳐진 나무를 통해 푸릇함을 말하고, 나무를 기어 다니는 거미를 통해 살아 숨 쉬는 생명을 말하고, 거미가 만든 알주머니를 통해 잠과 꿈, 죽음과 깨어남을 말할 수 있어요. 구체적인 대상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면 그 전달력이 훨씬 커집니다. 참, 이 글이 가을의 문턱에서 쓴 것인지, 겨울의 문턱에서 쓴 것인지 모호합니다.

silver님이 이 글을 통해 보여주려 한 살아있는 것들의 숭고를 담담하고 아름답게 담고 있는 동화집이 있어요. 신시아 라일런트의 단편집 <살아있는 모든 것들>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읽어보길 권합니다.

 

오태연 님 <아침해>

검푸른 새벽에 일어나 어머니의 배웅 없이 홀로 고속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며 아침 해를 맞는 화자의 모습이 정갈하게 담겨있어요. 스스로 빛을 내려는 화자의 각오가 붉게 떠오르는 아침 해와 잘 어우러집니다.

언젠가 우리는 부모님의 바램과 다른 선택을 하게 돼요. 그런 선택을 하는 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해요. 나 또한 처음 부모님의 뜻과 다른 길로 들어섰을 때의 불안함과 설렘을 기억하고 있어요. 그렇기에 <아침해>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글이 될 수 있어요. 화자의 상황을 분명히 드러내면 화자가 얼마나 큰 용기로 어머니의 뜻과 다른 길을 선택했는지, 아침 해를 맞으며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이 화자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지 독자들도 함께 느낄 거예요. 어머니가 왜 고함으로 집을 메웠는지, 화자가 굳게 닫힌 어머니의 방문을 뒤로 하고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화자가 무엇을 위해 새벽에 집을 떠났는지 등을 더 담아 주세요.

 

 

오태연 님 <이별을 준비할 시간>

평소 드러내기 어려운 마음 깊은 곳의 이야기를 글에 담았어요. 이 글은 아직 숙성할 시간이 필요해요. 낯선 것과 낯설지 않은 것에 대한 혼란과, 애정에 대한 의심과, 이별에 무덤덤해 보이는 가족과,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자신 등에 여러 생각을 충분히 정리해 무엇을 쓸 것인지 분명히 하고 글에 담을 것과 담지 않을 것을 나눠주세요. 길고 모호한 도입부를 줄이고 화자의 마음을 더 분명히 드러내면 좋겠어요. 본문에서는 레고와 할머니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해주세요. 레고에 대한 마음과 할머니에 대한 마음, 레고와의 ‘지나간 안녕’과 할머니와의 ‘앞으로 안녕’을 동등하게 보기 어려웠어요. 할머니와의 일화가 레고에 대한 것만큼 드러나면 독자가 화자와 할머니의 심리적 관계를 짐작할 수 있을 거예요. 내용이 정돈되면 결말부도 달라질 겁니다.

레고라는 좋은 글감을 찾았네요. 이 글에서 레고에 대한 부분이 좋았어요. 집 마루에 떨어뜨린 레고를 밟고 역정 내던 부모님, 무서운 밤 레고를 옆에 두고 잠이 들던 화자의 모습 등이 생생히 그려졌어요. 화자에게 레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느껴졌고요. 레고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겠구나 싶어요.

 

 

 

 

투또우 님 <메스꺼움>

투또우님의 마음을 따라가며 본 세상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아요. 시험이 끝난 뒤 찾은 것은 자유가 아니었고, 자유를 가장한 정해진 출구였다는 생각에 메스꺼움을 느끼는 화자의 모습이 절박하게 다가와요. ‘그냥 눈물’도 흘리지 못하고 구역질로 속엣것을 비워내는 화자의 어둡고 우울한 심리가 섬세하게 그려졌어요. 쓰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 글의 흐름이 자연스러워요. 문장도 좋습니다. 이 글을 11월의 월장원으로 선정합니다.

메스꺼움은 조금 나아졌나요? 투또우 님의 치열한 고민이 신체의 증후로 나타났나 봐요. 나는 투또우 님이 세상을 보는 예민한 시선이 좋아요. 우리 앞의 위선을 붙잡아 글로 드러내는 건 어려운 일이죠.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요. 나는 투또우 님이 언젠가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만의 길을 찾으리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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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월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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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벗님들, 안녕하세요. 수요일입니다.

 

벗님들의 글, 잘 읽었어요. 시들어버린 꽃과 허리가 구부러진 풀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별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목각 인형에서 만나게 되는 벗님들의 상실감과 고민에 마음이 아립니다. 그런 가운데도 포장마차와 옛 집의 추억에서 작은 기쁨을 찾아내고 웃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어 고마워요.

교실은 닫힌 공간입니다. 서로 빤한 아이들이 앞, 뒤, 옆으로 다닥다닥 붙은 책상에 앉아 서로의 등을 보며 수업을 받습니다. 집단 안에서 누군가와 지속적인 관계를 만들지 않으면 고립되는 건 순식간이죠. 닫힌 공간은 사람을 더 잔인하게, 더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나는 살아오는 동안 다른 어떤 장소보다 학교가 가장 어려웠어요.

지금 그 자리에서 스스로를 피동형의 자리에 놓도록 만드는 현실에 대해 고민하고 말하고 환기시키는 여러분이 있기에, 함께 고민하는 다른 많은 이들이 있기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믿어요.

벗님들이 그 안에서 겪는 어려움 뿐 아니라 소소하게 생기는 작은 기쁨도 놓치지 말고 소중히 기록하면 좋겠습니다. 사라져 버릴 기억을 붙잡아 내 안에 새기는 것은 우리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10월의 월장원은 윤별 님의 <ㅎ – ㅣ ㅁ ㅏ ㅇ>입니다.

 

 

지기지우 <배경>

지기지우 님, 시점을 교차해 글을 끌어나간 점이 신선합니다. ‘나’의 시점과 아이의 시점, 풀의 시점을 번갈아 보여주며 꽃과 풀이 겪은 상황을 입체적으로 그려주었어요. 무심히 꺾이는 꽃보다는 밟혀도 다시 일어나는 풀이 되겠다는 ‘나’의 변화가 씁쓸하면서도 이해됩니다. 꽃에 가해지는 악의 없는 폭력과 교실에서 일어나는 이유 없는 괴롭힘에 무슨 큰 차이가 있겠어요. 꺾인 꽃이 가리키는 것이 명확한 만큼 꺾인 꽃과 눌린 풀에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었던 내포작가 자신의 경험이 함께 어우러져도 좋을 듯합니다. 나는 이 글에서 각 화자의 목소리가 잘 구분되지 않았어요. 여덟 번째 문단의 화자는 첫 문단의 화자와 다른 사람인가요? ‘나’와 아이의 목소리를 구분하기가 어려워요. 짧은 분량의 글 안에 세 개의 시점을 어지럽게 담기보다는 두 개의 시점으로 줄여 보여줘도 좋겠어요. 풀의 단일 시점으로 서술해도 다른 느낌의 글이 될 수 있을 거예요.

 

맛없는초코맛 <일상 속, 어느날의 밤하늘>

어느 가을 밤하늘을 보며 피워낸 생각을 잘 담았습니다. 맛없는초코맛님이 내면에 담아두었던 질문, 별처럼 반짝이던 사람들이 그 빛을 잃고 사그라지는 현실에 대한 의문이 어느 달밤 자연스럽게 흘러넘쳐 이 글이 나왔겠지요? 구름이 달을 지나며 만들어내는 밤하늘의 변화를 잘 관찰해 보여주고 있어요.

강물이 바다를 향해 흐르듯 글은 주제를 향해 흘러요. 글이 걸림 없이 잘 흐르게 하려면 필요하지 않은 부분을 덜어내고 정리하는 게 좋아요. 낮, 노을, 난시 등에 대한 얘기는 빼고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보게 된 밤하늘에 집중하면 어떨까요. 맛없는초코맛님이 비약일까 걱정했던 부분에는 연결고리가 필요해요. 구름이 달을 가리며 만들어내는 변화를 관찰해 묘사한 글 바로 뒤에 달빛마저 별빛을 방해하고 있다고 쓰는 것은 생뚱맞게 느껴집니다. 달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 확 바뀌니까요. 두 단락을 자연스럽게 잇기 위해 그 사이에 넣어줄 내용을 더 고민해주세요.

마지막으로 이 글은 문장이 상당히 길어요. 쉼표 사용을 줄이고 긴 문장을 분절해 단문으로 간결하게 정리하는 연습을 해 보면 좋겠습니다.

 

 

참치군 <포장마차>

참치군 님, 포장마차의 추억을 나눠주어서 고마워요. 과거의 작고 소중한 추억들이 현재의 우리 자신을 이루는 일부가 되고 우리 안에 생각의 샘이 된다는 화자의 생각이 멋집니다. 이 글을 읽은 뒤로 평소 무심코 지나치던 포장마차 안을 불쑥불쑥 들여다보곤 해요. 무얼 파는지 공연히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런데 왜 하필 가을이 되면 포장마차가 기쁨이 되나요? 포장마차는 ‘1년 내내 식을 일이 없다’라고도, ‘그러나 여름에는 포장마차가 일을 쉬어’라고도 쓰여 있으니 장터에 포장마차가 일 년 내내 있다는 건지, 여름에는 잠시 쉰다는 건지 헷갈립니다. 독자가 내용의 사소한 불일치로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도록 글을 조금 더 다듬어주면 좋겠어요. 초교를 쓴 뒤 깔끔히 다듬는 방법 중 하나는 초고가 담고 있는 내용을 크게 서너 덩이로 나누어 소제목을 붙인 뒤 그에 맞춰 글을 정리하는 겁니다. ‘1. 시골 장터의 포장마차 2. 어릴 적 내가 사랑한 포장마차 3. 사라진 포장마차와 사라지지 않은 기억’등으로 소제목을 정해 내용을 정리하면 글의 중심을 잡기 좋아요. 정리를 마치면 소제목을 빼고 글을 자연스럽게 이어주세요.

 

 

 

이예원 <추억을 담은 집>

오랫동안 정든 집을 이사하는 아쉬움과 이사하며 생긴 변화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담고 있어요. 이예원 님의 글은 지나친 수식어구가 없고 전개가 깔끔해 잘 읽혀요. 미문을 만들기 위해 애쓰지 않으면서 뜻이 분명히 드러나는 깔끔한 문장을 사용해 전달력이 큽니다. ‘새로운 집이라 하기에는 너무 익숙해서 원래 집한테 미안할 정도였다.’같은 문장이 좋아요. ‘이런 느낌 알겠어.’하고 공감하게 되네요.

지금은 ‘나에게는 내 소중한 추억들이 담겨있었던 집이었다.’, ‘난 그런 의미 있던 추억이 가득했던 집을 떠나’와 같은 말로 추억이 ‘있음’에 방점을 찍고 있는데, 그보다는 ‘어떤’ 추억이 있었는지를 보여주세요. 전의 집에 특별한 추억을 상기시키는 무언가가 있을 겁니다. 거실 한쪽 벽에 바른 보라색 벽지라던가, 유리창에 붙여놓은 낡은 스티커라던가, 화장실 벽면의 깨진 타일이라던가, 가스레인지 벽의 그을린 자국… 실수나 장난으로 생긴 집안의 어떤 흔적과 그 사연을 담으면 좋겠어요. 글에 나만의 경험이 들어가면 생생함이 커집니다.

 

 

 

 

윤별 <ㅎ – ㅣ ㅁ ㅏ ㅇ>

윤별 님, 잘 읽었어요. 시험이 끝난 날로부터 결과를 떠올리며 불안하게 흔들려야만 하는 ‘나’의 내면은 얼마나 황폐할까요. 행간 사이사이 날카롭게 벼리어진 무언가가 툭툭 부딪혀오는 글이에요. ‘나’가 지니고 있는 두 개의 목소리, 자아와 심연에 있는 제 2의 자아를 교직해 서술하며 모순되고 분열된 자신의 내면을 잘 드러내고 있어요. 한 몸 안의 두 자아에 각기 다른 색깔을 부여한 점도 매력 있습니다. 이성적으로 사고하며 ‘-다.’체 종결어미를 구사하는 자아와 감성적으로 느끼며 ‘-요.’체 종결어미를 사용하는 제 2의 자아가 제 역할을 잘 해주고 있네요. 다시 연필을 잡아 기쁩니다. 이 글을 10월의 월장원으로 선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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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월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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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평가의 우수작은 폼드테르 님의 <낯설음>입니다.

중간평가 이후 글이 없으므로 중간평가 우수작을 월장원으로 선정합니다.

 

 

폼드테르 님 <낯설음>

 

낯섦이 주는 편안함이 있어요. 생소한 장소에서 이방인으로 있기에 오히려 편안하고, 그 편안함이 너무 익숙해 문득 낯설어지는 그런 때가 있죠. 미묘한 감정의 색채를 잘 잡아내었습니다. 흩어지는 낯선 언어, 흔들리는 비행기, 옆자리의 설레는 동생과 다른 내 마음의 먹먹함이 비행기에서 생기는 귀의 먹먹함과 겹치는 내면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만났어요. ‘어둠에 겹쳐진 내 얼굴과 바깥풍경’이 유리창 안에서 뒤섞이며 만들어지는 ‘비틀리고 섞인 이질감’ 속의 편안함. 순간순간 경험 속에 만나는 감정의 풍경을 섬세하게 살리고 있어요. 갖가지 색으로 섞이는 목소리, 이 색도 아니고 저 색도 아닌, 뒤섞여 있는 복잡 미묘한 감정의 색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참 멋진 일이죠. 스스로도 다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한 마음을 모호한 그대로 글 안에 담으려 한 시도가 좋아요. 다만 독자가 이 글을 가슴으로 느끼기에 부족함이 있다고 보여요. 이 글에서 ‘나’의 현 상황이 모호하게 쓰인 것이 현재의 불투명하고 낯선 상황을 보여주기 위한 또 하나의 시도인가요? 글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독자가 ‘나’의 상황을 보다 잘 유추할 수 있도록 정보를 조각조각 박아 넣었다면 낯섦에 대한 공감이 더 커지지 않았을까요? 쉼표와 마침표도 한 번 씩 더 점검해주세요.

 

 

 

지기지우 님 <캡슐 뽑기>

 

뽑기에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무언가가 있어요. 한 푼 두 푼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것도 모르고 열중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죠. 선물도 선물이지만 동전을 넣고 무언가를 뽑기까지의 과정 자체가 주는 즐거움은 굉장합니다. ‘뽑고 싶다.’는 그 강렬한 마음, 충분히 이해가 돼요. 그렇게 거짓말 하고, 들키고, 후회하며 조금씩 성장하나봐요, 우리 모두.

시간은 결코 잊어버리지 않으리라 믿었던 것들을 지워버립니다. 하찮으면서도 하찮지 않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기억들도 어느 날 문득 지워지죠. 글로 남긴다는 건 사라져버릴지 모를 소중한 마음의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과 비슷하죠. 잘 읽었습니다.

본문에서 글의 첫 인상을 더 매력있게 만들 수 있는 문장들이 눈에 띕니다. ‘내 별명은 금붕어였다.’나, ‘뽑고싶다. 이 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같은 문장을 앞에 써서 글의 구성을 바꿔봐도 좋을 듯해요.

 

 

 

맛없는 쵸코맛 님 <나의 동네 -川 1->

 

맛없는 쵸코맛님이 강이 품은 귀한 생명들을 발견했군요. 밝은 눈으로 찾아낸 자연의 숭고함과 그 안에서 찾아낸 소중한 희망을 글로 만나 기쁩니다. 죽어버린 것 같던 강에서 작은 물고기를 발견하고, 무성한 풀을 헤치고 나아가 잉어와 붕어를 발견했을 때의 느낌은 얼마나 경이롭고 특별할까요! 동네 중심을 벗어나면 논밭과 상업시설이 어중간하게 들어서 있는 ‘나의 동네’가 가진 수수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담기 위해 선택한 단어들이 좋습니다. 좋은 표현이 중간중간 눈에 띕니다. 문장만 더 보강되면 더 멋진 글이 탄생할 거예요. 적절한 조사를 선택해서 쓰고, 주어와 서술어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해주세요.

‘개발된다던 동네는 여전히 낮고 수수한 건물들이 여기저기 들어서 있고…’라는 문장을 한번 보세요. ‘동네는’을 ‘동네에는’으로, ‘건물들이’->‘건물들만이’로 바꾸면 이야기하려는 바가 더 뚜렷해집니다. 위 문장의 주어와 서술어도 확인해보세요.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쓰면 좋겠습니다. 맛없는 쵸코맛님의 문장에 대해 세부적으로 얘기하기에는 나 또한 부족한 사람입니다. 대신 이 분야의 전문가가 쓴 좋은 책을 소개할게요. 교정 교열을 20년 째 해온 김정선 님의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유유)는 문장 다듬는 법을 알려주는 내공 충만한 책입니다. 시간 내서 읽어보면 도움이 될 거예요.

 

 

 

참치군 님 <열 여섯 살의 회고록>

 

참치군님. 벌레였다는 말, 황산으로 타들어가는 듯 고통스럽다는 말이 참 아프게 다가왔어요. 마음에 누군가 들어올 수 있는 빈 자리를 내고 있다는 말에 기뻤고요. 자리 하나를 비워내는 것, 힘든 일이죠.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요. 참치군님도 알겠지만 ‘아동기의 발달 과업-또래 친구와의 관계 형성’이라는 말은 심리학자들이 그들의 눈으로 찾아낸 평균적인 발달 과정이지 우리 인생에 반드시 거쳐야하는 절대적인 그 무엇은 아니에요. 교과서는 보편적인 지식을 담고 있을 뿐 그 자체로 완전한 책은 아니에요. 수능을 잘 보려면 그 보편적인 지식을 완전한 것으로 믿고 외워야겠지만요. 우리에겐 각자 자신의 속도가 있어요. 그 속도의 늦고 빠름에 연연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참치군님은 잘 해나가고 있어요.

 

우리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연기를 하고 살아요. 나는 참치군님이 사회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을 완벽하게 연기하려고 노력하지 않기를 바래요. 사회화는 평생에 걸쳐 이루어져요.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사회의 요구에 순응할 수도, 불응할 수도 있어요. 어떤 것은 취하고 어떤 것은 거부하고 어떤 것은 고민하며 사회 안에서 나 다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죠. 참치군님도, 나도 서로 다른 자리에서 끊임없이 고민할 문제예요. 우리 함께 힘내요.

 

나는 이 글이 관념적으로 흘러도 좋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도 참치군님이 독자가 참치군님의 글을 따라갈 수 있도록 독자에게 조금 더 친절해지기를 바라요. 예를 들어볼게요. ‘그럴수록 내 티끌의 크기는 점점 작아져만 갔고, 그럴수록 다가온 것은 높아진 자존심과 땅으로 떨어진 자존감, 내 인생은 이미 망쳐졌다는 절망의 말들과 여기서 포기하지 않으면 더한 나락으로 떨어뜨려버리겠다는 협박들이 눈앞에 들이닥쳤을 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을 ‘버텼다’라기 보단 그저 흘려보낸 것 같아요.’와 같은 문장에 참치군님의 상황을 짐작해볼만한 어떤 정보도 들어있지 않아요. 독자는 ‘이 화자가 힘든가보다.’ 막연히 짐작할 뿐 화자의 마음에 공감할 수 없어요. 무슨 말, 무슨 협박이 어떻게 닥쳤는지 좀 더 상황이 보여진다면 좋겠어요. 문장 정리도 한 번 더 해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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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월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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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입니다. 벌써 9월, 책 읽기 좋은 계절이 왔어요. 두고두고 기억할 책 한 권 올 가을에 만나길 바랍니다.

수필란을 밝혀준 Laurie님과 지기지우님, 두 벗님들의 글 반갑게 읽었어요.

 

 

Laurie님 「수영장에 관한 추억들(2)」

잘 읽었습니다. 수영장에서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에 대한 생생한 상황 묘사를 즐겁게 읽었어요. ‘자유형은 하면 할수록 숨쉬기가 힘들고, 평영은 느려터진데다 다리 벌리는 것이 짜증나고, 배영은 물이 튀어 코에 물이 들어가고, 접영은 팔을 끝까지 뻗으라고 해서 힘들다.’고 투덜대는 화자가 친근하게 느껴져요.

이 글 안에 Laurie님 내면의 소리를 더 담아내면 좋겠습니다. 짜증이 난 것과 짜증이 난 상황에 대한 얘기를 나열하는 것도 재미를 줘요. 그렇지만 수영장에서의 경험이 불러일으킨 내면의 풍경을 함께 담아내지 않으면 노른자 빠진 계란처럼 글이 허전해져요. ‘짜증난다.’는 말이나 짜증나는 상황에 대한 묘사만으로는 진짜 솔직한 글이 되지 못합니다. 내가 왜 수영장의 이야기를 쓰게 되었는지 왜 짜증이 났는지 왜 저들이 싫은지 내면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자기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글을 쓴다면 좋겠습니다. 글을 쓰면 그동안 몰랐거나, 희미하게 느끼고 있었지만 무엇인지 갈피를 잡지 못했던 기분의 원인을 더 분명히 알게 되잖아요. 글이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투시경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Laurie님의 글에 묵직한 여운이 더해질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 )안의 내용은 되도록 본문 안에 ( )없이 풀어 쓰는 게 좋습니다. 덧붙여 ‘ㅋㅋㅋ’, ‘?!’ 같은 인터넷 용어는 필요하다면 사용하되, 꼭 필요치 않다면 줄여주는게 좋겠습니다.

 

 

 

 

지기지우님 「사과 안 해」

잘 읽었습니다. 때로는 따돌리고, 때로는 따돌림받으며 불완전한 관계를 이어가는게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3년여 동안 되새김질하고 있었던, 사과조차 하지 못할 무거운 경험을 간결한 문장으로 잘 담아냈어요. 이 글을 이 달의 수필 당선작으로 선정합니다.

나에게도 아픈 경험이 있어요. 긴 터널같은 순간이 계속되던 때, 터널에도 끝이 있다는 말은 위로도 되지 않는 허튼 소리일 뿐이었어요. 성인이 된 뒤에도 오랫동안 그때를 되새김질했지요. 그런 나에게 도움이 된 책이 있습니다. 레이첼 시몬스의 『소녀들의 전쟁』(홍익출판사)이라는 책이에요.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도서관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연구자의 사례 연구와 솔직한 자기 고백이 인상적인 책입니다. 내가 겪어야 했던 일들이 여성에게 침묵하도록, 착한 사람의 가면을 쓰도록 강요된 기형적 집단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해석이 담겨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확실하지는 않아요. (지금 책을 펴고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미안합니다.)

이 책에서는 각각의 소녀들이 경험한 개별적 상황이 구체적으로 서술되고 있어요. 개별적 상황이 담길 때 글의 전달력과 몰입감이 얼마나 커지는지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지요. 지기지우님이 「사과 안 해」에 스스로가 겪거나 행한 구체적 정황을 보여줬다면 어땠을까요. 내밀한 개인의 경험을 조금 더 담았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하고 싶지 않거나 말할 수 없는 부분은 적당히 가공하고 수정해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드러내면 됩니다.

덧붙여 아동문학 작가 최나미 선생님의 중편집『셋 둘 하나』도 홀수가 된 소녀들의 우정과 심리를 잘 담고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한번 읽어봐도 좋겠습니다. 좋은 아동문학 작품은 나이와 세대를 넘어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징검다리가 되어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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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월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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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월장원 발표

글틴 벗님들, 안녕하세요. 수요일입니다.

정말 무덥죠. 다들 잘 보내고 있나요? 나는 칠월 마지막 주에 생전 처음 일사병 증세를 겪었어요. 머리가 지끈거리고 눈이 뱅뱅 도는데… 아휴. 참신한 경험이지만 두 번 하고 싶진 않았어요. 벗님들도 건강 잘 챙기세요.

더운 여름 중에도 멋진 글을 올려준 laurie님과 들님. 잘 읽었어요.

laurie님 <산비둘기>

laurie님이 어느 날 찾아낸 것, 저 멀리 푸드덕 날아 가버린 산비둘기의 맑고 순수한 눈은 많은 것들을 연상시켜요. 그런 점에서 좋았고 또 그런 점에서 아쉽기도 했어요. 산비둘기의 자존심, 새로서 오롯이 지켜내야 할 긍지란 무엇일까요. 산비둘기의 변화는 긍지의 훼손일까요, 긍지와 무관한 적응일까요. 그 변화는 산비둘기의 입장에서 퇴보일까요, 진화일까요. 인간이 중심이 되는 이 세상에서 본래의 삶터를 훼손당한 비둘기는 약자의 자리에 위치할 수밖에 없어요. laurie님이 포착해낸 산비둘기는 ‘긴 그림자만 빽빽하게 드리우고 있는 아파트로 가득 찬’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무수한 생명을 드러내는 좋은 제재예요. 이 제재를 살리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작고 약한 존재의 편에 서 주세요. 약한 존재의 입장에서 그들의 목소리, 그들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laurie님 <수영장에 관한 추억들(1)>

버스기사는 남자였고 항상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데다 얼굴의 주름으로 봐선 한 쉰, 예순 정도 나이를 먹은 것 같았다.(아니면 마흔인데 스트레스로 인해 주름이 생긴 걸지도.)’라는 글에 웃음이 풋 터졌어요. 어딘가 예리하고도 유쾌한 글이에요. 아이들을 함부로, 불합리하게 다루는 버스기사의 행동과 세월호 사건을 연결해 생각할 거리가 더 풍성해졌어요. 세월호는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이죠. 그 안타까운 비극을 야기한 우리 사회의 일면에 대해, 버스기사에 의해 돌출되고 있는 그 일면의 부조리함에 대해 조금 더 할 얘기가 있었을 텐데 말을 아낀 것이 아쉽습니다. 2편이 어서 올라오기를 기다렸으나 아쉽게도 7월을 넘겨버리네요.

혹시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쓴 빌 브라이슨을 알고 있나요? 그는 뛰어난 에세이스트이기도 해요. 독설과 유쾌함, 재치가 결합된 그의 글은 읽는 재미가 남달라요. laurie님의 발랄한 글을 읽으면 이 작가가 떠오릅니다. 기회가 된다면 빌 브라이슨의 에세이를 한 권 가볍게 읽어봐도 좋겠어요.

 

 

들님 <연명의 가치>

들님에겐 ‘나’의 내면을 거미집처럼 섬세하게 짜 드러내는 힘이 있어요. 고백하듯 읊조리는 '나'의  목소리를 살리는 ‘-어요’ 종결어미도 좋은 선택이었어요. 들님을 아프게 만드는 것들이 너무 완고하고 견고해 안타까워요. 가식적인 옳음을 강요하는 강제된 울타리 안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빛’을 가슴에 담고, 그 불씨를 마주하길 두려워하며, 불씨를 지켜가려는 들님의 노력은 얼마나 고단할까요. 버티어야 하는 삶 속에서 글을 통해서나마 내면을 드러내고 소통할 수 있어 다행이에요. 저 아래 가라앉아 있었을 들님, 약속을 위해 생을 연장해 나가는 들님, 스스로를 비난하며 흔들리는 들님, 필사적으로 불씨를 움켜쥐고 어둠 속에서 버텨가는 들님. 수많은 면면의 들님이 진솔하게 담겨있는 이 글을 7월의 월장원으로 선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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