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월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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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글틴 벗님들.

2017년이 왔는가 싶더니 벌써 1월 중순이 다 되어갑니다.

2016년을 마무리할 12월 월장원은

두둥두둥두둥~

서윤호 님의 <개와 남자와 달리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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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이사 님의 <열여섯, 나의 짧은 여름>

자기 앞의 생에 대한 화자의 열정이 전해집니다. 중학교에 올라가 다른 학생들의 그림 실력에 좌절한 화자가 자만을 털고 새로이 나아가게 된 과정이 진솔하게 담겨 있어요. 인터넷에 그림을 올려 평가를 요청하고, 그 아래 달리는 아픈 댓글을 끝까지 읽어내는 모습에 뭉클했어요. 스스로를 깨고 다시 시작하는 화자의 내면이 생생합니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는 구절이 정신에 일으켰을 강렬한 화학작용에 충분히 공감되는 건, 여름 같은 삶에 대한 삼이사 님의 진지한 고민이 글에 배어나오기 때문일 겁니다.

다만 이 글에는 비문이 많아요. 한두 가지 지적으로 끝낼 수 없을 만큼 비문이 흘러넘칩니다. 원고를 어느 정도 완성했다면, 한 문장 한 문장 들여다보며 정성껏 고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문장이 문법적으로 옳은가, 이 표현이 나의 생각을 잘 담고 있는가, 이 단락이 내 글에 필요한 것인가 등을 생각하며 고치는데 시간을 충분히 할애하길 바랍니다. 문장은 시간을 들인 만큼 좋아집니다. 좋아진 문장은 다음 글의 바탕이 됩니다. 반드시 퇴고를 통해 글을 정돈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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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별 님의 <채도 낮게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고>

윤별 님이 ‘나의 글’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쓴 글 같습니다. 이런저런 글을 시도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시도를 통해 자기 글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으니까요.

닫힌 학교 닫힌 교실 안에서 죽어가는 ‘우리’의 현재, 죽어가는 청춘의 고민 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정리해주세요. 무엇보다 문장이 걸립니다. 문장과 문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못하고 툭툭 끊어져요. 주어의 지나친 생략, 자연스런 흐름을 타지 않는 문장 등이 낯선 효과를 만들기보다 글을 이해하는데 불편함을 줘요. 예를 들겠습니다.

D-7이라고 적힌 포스트잇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뒤따라 책상에 새겨진 수많은 상흔들이 보인다. 상처보다 시간을 더 중요시한다. 책상 언저리를 쓸었다. 지우개가루와 샤프심의 감각이 낯설지 않다. 그러니까 패인 나무는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위의 여섯 문장은 본문의 일부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날짜가 적힌 포스트잇을 본 뒤에야 상흔이 새겨진 책상에 눈이 가는, ‘상처보다 시간을 더 중요시’하는 화자 자신에 대한 씁쓸함이 제대로 전달되고 있지 않아요. 뒤의 두 문장도 적절한 전달력을 지니지 못했어요. 글에 불필요한 묘사가 없는지, 정확하고 간결한 문장을 쓰고 있는지, 장식적인 문장이 많지 않은지 고민하고 점검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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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호 님의 <개와 남자와 달리는 사람>

어떤 내용일까, 절로 흥미진진해지는 제목이에요. 발랄하고 깔끔한 글입니다. 어느 날 학교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며 겪게 된 해프닝을 생생하고 간결하게 담아내었어요. 잘 읽었습니다. 서윤호 님의 <개와 남자와 달리는 사람>을 이 달의 월장원으로 선정합니다.

이 글 안에서 화자가 더 고민해볼 수 있는 평소의 생각이나 문젯거리를 꺼내어 볼 수 있을까요? 화자가 달리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순간만큼은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고, 철봉을 하는 남자는 ‘교수대에 매달린 사람’ 같고, 개는 생생하게 ‘짖으며 나를 향해 달려’오죠. 이 사건 안에 살아있음, 살아감 등에 대한 서윤호 님의 생각을 담을 수 있을 듯해요. 그런 생각을 넣어 바꿔 쓰라는 말이 아니라, 어떤 글감을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글감이 내 내면의 무엇을 건드리는가에 대해 더 생각하고 그것을 독자에게 전달해달라는 말입니다. 싱거운 해프닝은 한바탕 웃음으로 끝나지만, 그 안에 화자의 독특한 생각이 더해지면 웃음 뒤에 긴 여운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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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님의 <작가의 변>

과거의 ‘나’와 ‘당신’ 사이에 있었던 상처와 현재의 ‘나’가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담고 있네요. 잘 읽었습니다. 스스로의 잘못을 돌아보는 일은 늘 어렵습니다. 과거의 실수를 솔직하게 고백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죠. 쓰기 쉽지 않았을 글입니다.

2인칭 시점을 사용했는데 그 덕에 이 글은 독자와 ‘당신’이라는 이중의 수신자를 가지게 되었어요. 미지의 독자를 수신자로 하는 글이기도 하고 ‘당신’을 수신자로 하는 사과의 글이기도 한 셈이죠. 그래서 나는 이 글이 ‘당신’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당신’을 향한 고백같은 사과의 글이 되면 좋겠어요.  진정한 사과는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나부터도 그래요. 내가 아무리 명백한 실수를 했더라도, “사실은 이유가 있었어. 내 탓만은 아니었어.”하며 자기변명을 내놓곤 해요.

이 글이 자기변명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화자가 자신을 돌아보는데 더 집중하면 좋겠어요. ‘당신’을 위한다는 이유로 어떤 그릇된 행동을 했는지, ‘당신’에게 한 일로 상황이 어떻게 어긋나버렸는지 등을 더듬으며 억울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던 ‘나’ 자신의 복잡한 내면을 더 치열하게 보여준다면 어떨까요.

고교 불합격 이야기는 다르게 풀 수도 있을 듯해요. ‘당신’에게 사과할 기회를 잃어서 허탈한 ‘나’의 마음이 제대로 다가오지 않아요. 그보다는 사과할 기회를 잃어 허탈한 것을 표현하느라 ‘당신’이 밝히고 싶지 않아할 아픈 부분을 순진한 목소리로 드러내버리지 않았나 하는 개인적 우려가 들어요.

여기까지 쓰고 나니 걱정이 됩니다. 나는 화자의 의도를 처음부터 오독했는지 몰라요. 글에 대한 내 생각은 모두 개인적인 견해이니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하는 마음으로 평을 읽으면 좋겠어요.

 

곧 님의 글에 '본격문학'에 대해 나와 살짝 덧붙입니다. 동화, 아동 소설, 청소년 소설, 동시 등 아동문학 작품은 모두 본격문학에 속하며 성인문학과 대등한 관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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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월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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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글틴 벗님들. 수요일입니다.

수필은 나의 이야기예요. 우리 자신의 경험이나 마음을 글로 표현하면 수필이 되지요. 벗님들이 어떤 경험에 대해 쓰기로 했다면, 왜 그 경험을 쓰고 싶은지 고민하세요. 일상적이고 사소한 경험을 통해 우리의 내면이 드러날 때 그 글은 더 특별해집니다.

11월의 월장원은 구닐라 님의 <병렬>, 투또우 님의 <메스꺼움>입니다.

 

구닐라 님 <병렬>

‘우리 집 늙은 개’와 ‘우울증에 걸린 할머니’를 병치해 이미지를 구축했어요. 몇 군데 비약이 있지만 글 전체에 이를 상쇄하는 매력이 있어요. 8년에 걸쳐 생겨난 금을 어쩌지 못하고 언젠가 찾아올 종결을 기다리면서도 두려워하는 화자의 마음을 예리하게 담았습니다. 화자의 내면을 표면에 드러내지 않고 ‘우리 집 늙은 개’에 대한 생각을 통해 풀어내었어요. 이 글을 11월의 월장원으로 선정합니다.

구닐라 님이 글을 조금 더 다듬으면 좋겠어요. 첫 단락의 글을 조금 바꿔 볼게요.

‘우리 집 개는 생고구마를 먹고 토한다. 늙어서 그렇다. 어제는 쓰다듬으려는 아빠의 손을 물었다. 피가 났고 아빠는 개를 때렸다. 늙어서 예민해진 개는 툭하면 으르렁거린다.’

‘늙어서 그렇다.’는 개가 생고구마를 먹고 토하는 이유를 더 선명하게 만들어요. ‘어제는’은 시간성을 구체적으로 만듭니다. ‘물었다.’ 과거시제로 쓰는 게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체온을 모르면서도 ~ 자주 헷갈린다.’ 부분은 굳이 필요치 않은 이야기로 보입니다. 구닐라 님이 꼭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빼도 좋을 듯해요.

내가 여기에 고쳐 적은 문장이 최적은 아니에요. 글은 다듬을수록 좋아집니다. 글 쓰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생각과 마음과 의도를 더 선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문장을 고쳐나가요. 글틴 벗님들 모두 자기 글을 어떻게 다듬어야할지 계속 고민해주세요.

 

 

서윤호 님 <상호관람>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분할된 공간에 있는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대상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시선이 깨집니다. 두 사람은 상호관람자의 위치에 서서 서로를 마주보게 되고, 서로를 관찰 대상이 아닌 존재로 인식하게 되죠. 서윤호 님이 찾아낸 ‘상호관람’은 단선적 시선과 상호적 시선의 차이, 시선의 마주침이 만들어내는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글감이에요. ‘상호관람’을 풍성히 만들 다른 이야깃거리를 서윤호님의 기억에서 찾아내어 글을 보강하면 좋겠어요. 연극무대, 동물원, 길거리 공연……. 시선과 시선이 얽힐 수 있는 것들을 더 생각해보세요. 서윤호 님이 괜찮다면 ‘비상호관람’에 대한 부분은 덜어내도 좋겠습니다. 덜어내지 않을 거라면 자신이 ‘대상’이 되었을 때의 기분을 더 솔직하게 담아주세요. 전체적으로 문장을 정리해주세요.

 

 

silver 님 <가을의 문턱에서>

화자의 시선을 다라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서 학교 뒷산의 아직 푸릇푸릇한 나무를 봅니다. 겨울이 오면 저 푸른 자연 속 생명들은 어디로 사라질까. 죽는 걸까, 잠시 잠을 자는 걸까. 단정한 문장 안에 화자의 생각이 잘 전달되고 있어요.

이 글에는 동물들, 동식물들, 생명들 등 뭉뚱그린 표현이 나와요. 그런 표현을 되도록 줄여주세요. silver 님이 만난 생명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동물에 초점을 맞춰보면 어떨까요. 글 속에 두어 번 언급되었던 거미를 예로 들어 볼게요. 거미줄이 쳐진 나무를 통해 푸릇함을 말하고, 나무를 기어 다니는 거미를 통해 살아 숨 쉬는 생명을 말하고, 거미가 만든 알주머니를 통해 잠과 꿈, 죽음과 깨어남을 말할 수 있어요. 구체적인 대상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면 그 전달력이 훨씬 커집니다. 참, 이 글이 가을의 문턱에서 쓴 것인지, 겨울의 문턱에서 쓴 것인지 모호합니다.

silver님이 이 글을 통해 보여주려 한 살아있는 것들의 숭고를 담담하고 아름답게 담고 있는 동화집이 있어요. 신시아 라일런트의 단편집 <살아있는 모든 것들>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읽어보길 권합니다.

 

오태연 님 <아침해>

검푸른 새벽에 일어나 어머니의 배웅 없이 홀로 고속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며 아침 해를 맞는 화자의 모습이 정갈하게 담겨있어요. 스스로 빛을 내려는 화자의 각오가 붉게 떠오르는 아침 해와 잘 어우러집니다.

언젠가 우리는 부모님의 바램과 다른 선택을 하게 돼요. 그런 선택을 하는 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해요. 나 또한 처음 부모님의 뜻과 다른 길로 들어섰을 때의 불안함과 설렘을 기억하고 있어요. 그렇기에 <아침해>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글이 될 수 있어요. 화자의 상황을 분명히 드러내면 화자가 얼마나 큰 용기로 어머니의 뜻과 다른 길을 선택했는지, 아침 해를 맞으며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이 화자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지 독자들도 함께 느낄 거예요. 어머니가 왜 고함으로 집을 메웠는지, 화자가 굳게 닫힌 어머니의 방문을 뒤로 하고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화자가 무엇을 위해 새벽에 집을 떠났는지 등을 더 담아 주세요.

 

 

오태연 님 <이별을 준비할 시간>

평소 드러내기 어려운 마음 깊은 곳의 이야기를 글에 담았어요. 이 글은 아직 숙성할 시간이 필요해요. 낯선 것과 낯설지 않은 것에 대한 혼란과, 애정에 대한 의심과, 이별에 무덤덤해 보이는 가족과,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자신 등에 여러 생각을 충분히 정리해 무엇을 쓸 것인지 분명히 하고 글에 담을 것과 담지 않을 것을 나눠주세요. 길고 모호한 도입부를 줄이고 화자의 마음을 더 분명히 드러내면 좋겠어요. 본문에서는 레고와 할머니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해주세요. 레고에 대한 마음과 할머니에 대한 마음, 레고와의 ‘지나간 안녕’과 할머니와의 ‘앞으로 안녕’을 동등하게 보기 어려웠어요. 할머니와의 일화가 레고에 대한 것만큼 드러나면 독자가 화자와 할머니의 심리적 관계를 짐작할 수 있을 거예요. 내용이 정돈되면 결말부도 달라질 겁니다.

레고라는 좋은 글감을 찾았네요. 이 글에서 레고에 대한 부분이 좋았어요. 집 마루에 떨어뜨린 레고를 밟고 역정 내던 부모님, 무서운 밤 레고를 옆에 두고 잠이 들던 화자의 모습 등이 생생히 그려졌어요. 화자에게 레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느껴졌고요. 레고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겠구나 싶어요.

 

 

 

 

투또우 님 <메스꺼움>

투또우님의 마음을 따라가며 본 세상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아요. 시험이 끝난 뒤 찾은 것은 자유가 아니었고, 자유를 가장한 정해진 출구였다는 생각에 메스꺼움을 느끼는 화자의 모습이 절박하게 다가와요. ‘그냥 눈물’도 흘리지 못하고 구역질로 속엣것을 비워내는 화자의 어둡고 우울한 심리가 섬세하게 그려졌어요. 쓰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 글의 흐름이 자연스러워요. 문장도 좋습니다. 이 글을 11월의 월장원으로 선정합니다.

메스꺼움은 조금 나아졌나요? 투또우 님의 치열한 고민이 신체의 증후로 나타났나 봐요. 나는 투또우 님이 세상을 보는 예민한 시선이 좋아요. 우리 앞의 위선을 붙잡아 글로 드러내는 건 어려운 일이죠.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요. 나는 투또우 님이 언젠가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만의 길을 찾으리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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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월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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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벗님들, 안녕하세요. 수요일입니다.

 

벗님들의 글, 잘 읽었어요. 시들어버린 꽃과 허리가 구부러진 풀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별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목각 인형에서 만나게 되는 벗님들의 상실감과 고민에 마음이 아립니다. 그런 가운데도 포장마차와 옛 집의 추억에서 작은 기쁨을 찾아내고 웃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어 고마워요.

교실은 닫힌 공간입니다. 서로 빤한 아이들이 앞, 뒤, 옆으로 다닥다닥 붙은 책상에 앉아 서로의 등을 보며 수업을 받습니다. 집단 안에서 누군가와 지속적인 관계를 만들지 않으면 고립되는 건 순식간이죠. 닫힌 공간은 사람을 더 잔인하게, 더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나는 살아오는 동안 다른 어떤 장소보다 학교가 가장 어려웠어요.

지금 그 자리에서 스스로를 피동형의 자리에 놓도록 만드는 현실에 대해 고민하고 말하고 환기시키는 여러분이 있기에, 함께 고민하는 다른 많은 이들이 있기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믿어요.

벗님들이 그 안에서 겪는 어려움 뿐 아니라 소소하게 생기는 작은 기쁨도 놓치지 말고 소중히 기록하면 좋겠습니다. 사라져 버릴 기억을 붙잡아 내 안에 새기는 것은 우리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10월의 월장원은 윤별 님의 <ㅎ – ㅣ ㅁ ㅏ ㅇ>입니다.

 

 

지기지우 <배경>

지기지우 님, 시점을 교차해 글을 끌어나간 점이 신선합니다. ‘나’의 시점과 아이의 시점, 풀의 시점을 번갈아 보여주며 꽃과 풀이 겪은 상황을 입체적으로 그려주었어요. 무심히 꺾이는 꽃보다는 밟혀도 다시 일어나는 풀이 되겠다는 ‘나’의 변화가 씁쓸하면서도 이해됩니다. 꽃에 가해지는 악의 없는 폭력과 교실에서 일어나는 이유 없는 괴롭힘에 무슨 큰 차이가 있겠어요. 꺾인 꽃이 가리키는 것이 명확한 만큼 꺾인 꽃과 눌린 풀에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었던 내포작가 자신의 경험이 함께 어우러져도 좋을 듯합니다. 나는 이 글에서 각 화자의 목소리가 잘 구분되지 않았어요. 여덟 번째 문단의 화자는 첫 문단의 화자와 다른 사람인가요? ‘나’와 아이의 목소리를 구분하기가 어려워요. 짧은 분량의 글 안에 세 개의 시점을 어지럽게 담기보다는 두 개의 시점으로 줄여 보여줘도 좋겠어요. 풀의 단일 시점으로 서술해도 다른 느낌의 글이 될 수 있을 거예요.

 

맛없는초코맛 <일상 속, 어느날의 밤하늘>

어느 가을 밤하늘을 보며 피워낸 생각을 잘 담았습니다. 맛없는초코맛님이 내면에 담아두었던 질문, 별처럼 반짝이던 사람들이 그 빛을 잃고 사그라지는 현실에 대한 의문이 어느 달밤 자연스럽게 흘러넘쳐 이 글이 나왔겠지요? 구름이 달을 지나며 만들어내는 밤하늘의 변화를 잘 관찰해 보여주고 있어요.

강물이 바다를 향해 흐르듯 글은 주제를 향해 흘러요. 글이 걸림 없이 잘 흐르게 하려면 필요하지 않은 부분을 덜어내고 정리하는 게 좋아요. 낮, 노을, 난시 등에 대한 얘기는 빼고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보게 된 밤하늘에 집중하면 어떨까요. 맛없는초코맛님이 비약일까 걱정했던 부분에는 연결고리가 필요해요. 구름이 달을 가리며 만들어내는 변화를 관찰해 묘사한 글 바로 뒤에 달빛마저 별빛을 방해하고 있다고 쓰는 것은 생뚱맞게 느껴집니다. 달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 확 바뀌니까요. 두 단락을 자연스럽게 잇기 위해 그 사이에 넣어줄 내용을 더 고민해주세요.

마지막으로 이 글은 문장이 상당히 길어요. 쉼표 사용을 줄이고 긴 문장을 분절해 단문으로 간결하게 정리하는 연습을 해 보면 좋겠습니다.

 

 

참치군 <포장마차>

참치군 님, 포장마차의 추억을 나눠주어서 고마워요. 과거의 작고 소중한 추억들이 현재의 우리 자신을 이루는 일부가 되고 우리 안에 생각의 샘이 된다는 화자의 생각이 멋집니다. 이 글을 읽은 뒤로 평소 무심코 지나치던 포장마차 안을 불쑥불쑥 들여다보곤 해요. 무얼 파는지 공연히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런데 왜 하필 가을이 되면 포장마차가 기쁨이 되나요? 포장마차는 ‘1년 내내 식을 일이 없다’라고도, ‘그러나 여름에는 포장마차가 일을 쉬어’라고도 쓰여 있으니 장터에 포장마차가 일 년 내내 있다는 건지, 여름에는 잠시 쉰다는 건지 헷갈립니다. 독자가 내용의 사소한 불일치로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도록 글을 조금 더 다듬어주면 좋겠어요. 초교를 쓴 뒤 깔끔히 다듬는 방법 중 하나는 초고가 담고 있는 내용을 크게 서너 덩이로 나누어 소제목을 붙인 뒤 그에 맞춰 글을 정리하는 겁니다. ‘1. 시골 장터의 포장마차 2. 어릴 적 내가 사랑한 포장마차 3. 사라진 포장마차와 사라지지 않은 기억’등으로 소제목을 정해 내용을 정리하면 글의 중심을 잡기 좋아요. 정리를 마치면 소제목을 빼고 글을 자연스럽게 이어주세요.

 

 

 

이예원 <추억을 담은 집>

오랫동안 정든 집을 이사하는 아쉬움과 이사하며 생긴 변화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담고 있어요. 이예원 님의 글은 지나친 수식어구가 없고 전개가 깔끔해 잘 읽혀요. 미문을 만들기 위해 애쓰지 않으면서 뜻이 분명히 드러나는 깔끔한 문장을 사용해 전달력이 큽니다. ‘새로운 집이라 하기에는 너무 익숙해서 원래 집한테 미안할 정도였다.’같은 문장이 좋아요. ‘이런 느낌 알겠어.’하고 공감하게 되네요.

지금은 ‘나에게는 내 소중한 추억들이 담겨있었던 집이었다.’, ‘난 그런 의미 있던 추억이 가득했던 집을 떠나’와 같은 말로 추억이 ‘있음’에 방점을 찍고 있는데, 그보다는 ‘어떤’ 추억이 있었는지를 보여주세요. 전의 집에 특별한 추억을 상기시키는 무언가가 있을 겁니다. 거실 한쪽 벽에 바른 보라색 벽지라던가, 유리창에 붙여놓은 낡은 스티커라던가, 화장실 벽면의 깨진 타일이라던가, 가스레인지 벽의 그을린 자국… 실수나 장난으로 생긴 집안의 어떤 흔적과 그 사연을 담으면 좋겠어요. 글에 나만의 경험이 들어가면 생생함이 커집니다.

 

 

 

 

윤별 <ㅎ – ㅣ ㅁ ㅏ ㅇ>

윤별 님, 잘 읽었어요. 시험이 끝난 날로부터 결과를 떠올리며 불안하게 흔들려야만 하는 ‘나’의 내면은 얼마나 황폐할까요. 행간 사이사이 날카롭게 벼리어진 무언가가 툭툭 부딪혀오는 글이에요. ‘나’가 지니고 있는 두 개의 목소리, 자아와 심연에 있는 제 2의 자아를 교직해 서술하며 모순되고 분열된 자신의 내면을 잘 드러내고 있어요. 한 몸 안의 두 자아에 각기 다른 색깔을 부여한 점도 매력 있습니다. 이성적으로 사고하며 ‘-다.’체 종결어미를 구사하는 자아와 감성적으로 느끼며 ‘-요.’체 종결어미를 사용하는 제 2의 자아가 제 역할을 잘 해주고 있네요. 다시 연필을 잡아 기쁩니다. 이 글을 10월의 월장원으로 선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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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월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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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평가의 우수작은 폼드테르 님의 <낯설음>입니다.

중간평가 이후 글이 없으므로 중간평가 우수작을 월장원으로 선정합니다.

 

 

폼드테르 님 <낯설음>

 

낯섦이 주는 편안함이 있어요. 생소한 장소에서 이방인으로 있기에 오히려 편안하고, 그 편안함이 너무 익숙해 문득 낯설어지는 그런 때가 있죠. 미묘한 감정의 색채를 잘 잡아내었습니다. 흩어지는 낯선 언어, 흔들리는 비행기, 옆자리의 설레는 동생과 다른 내 마음의 먹먹함이 비행기에서 생기는 귀의 먹먹함과 겹치는 내면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만났어요. ‘어둠에 겹쳐진 내 얼굴과 바깥풍경’이 유리창 안에서 뒤섞이며 만들어지는 ‘비틀리고 섞인 이질감’ 속의 편안함. 순간순간 경험 속에 만나는 감정의 풍경을 섬세하게 살리고 있어요. 갖가지 색으로 섞이는 목소리, 이 색도 아니고 저 색도 아닌, 뒤섞여 있는 복잡 미묘한 감정의 색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참 멋진 일이죠. 스스로도 다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한 마음을 모호한 그대로 글 안에 담으려 한 시도가 좋아요. 다만 독자가 이 글을 가슴으로 느끼기에 부족함이 있다고 보여요. 이 글에서 ‘나’의 현 상황이 모호하게 쓰인 것이 현재의 불투명하고 낯선 상황을 보여주기 위한 또 하나의 시도인가요? 글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독자가 ‘나’의 상황을 보다 잘 유추할 수 있도록 정보를 조각조각 박아 넣었다면 낯섦에 대한 공감이 더 커지지 않았을까요? 쉼표와 마침표도 한 번 씩 더 점검해주세요.

 

 

 

지기지우 님 <캡슐 뽑기>

 

뽑기에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무언가가 있어요. 한 푼 두 푼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것도 모르고 열중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죠. 선물도 선물이지만 동전을 넣고 무언가를 뽑기까지의 과정 자체가 주는 즐거움은 굉장합니다. ‘뽑고 싶다.’는 그 강렬한 마음, 충분히 이해가 돼요. 그렇게 거짓말 하고, 들키고, 후회하며 조금씩 성장하나봐요, 우리 모두.

시간은 결코 잊어버리지 않으리라 믿었던 것들을 지워버립니다. 하찮으면서도 하찮지 않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기억들도 어느 날 문득 지워지죠. 글로 남긴다는 건 사라져버릴지 모를 소중한 마음의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과 비슷하죠. 잘 읽었습니다.

본문에서 글의 첫 인상을 더 매력있게 만들 수 있는 문장들이 눈에 띕니다. ‘내 별명은 금붕어였다.’나, ‘뽑고싶다. 이 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같은 문장을 앞에 써서 글의 구성을 바꿔봐도 좋을 듯해요.

 

 

 

맛없는 쵸코맛 님 <나의 동네 -川 1->

 

맛없는 쵸코맛님이 강이 품은 귀한 생명들을 발견했군요. 밝은 눈으로 찾아낸 자연의 숭고함과 그 안에서 찾아낸 소중한 희망을 글로 만나 기쁩니다. 죽어버린 것 같던 강에서 작은 물고기를 발견하고, 무성한 풀을 헤치고 나아가 잉어와 붕어를 발견했을 때의 느낌은 얼마나 경이롭고 특별할까요! 동네 중심을 벗어나면 논밭과 상업시설이 어중간하게 들어서 있는 ‘나의 동네’가 가진 수수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담기 위해 선택한 단어들이 좋습니다. 좋은 표현이 중간중간 눈에 띕니다. 문장만 더 보강되면 더 멋진 글이 탄생할 거예요. 적절한 조사를 선택해서 쓰고, 주어와 서술어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해주세요.

‘개발된다던 동네는 여전히 낮고 수수한 건물들이 여기저기 들어서 있고…’라는 문장을 한번 보세요. ‘동네는’을 ‘동네에는’으로, ‘건물들이’->‘건물들만이’로 바꾸면 이야기하려는 바가 더 뚜렷해집니다. 위 문장의 주어와 서술어도 확인해보세요.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쓰면 좋겠습니다. 맛없는 쵸코맛님의 문장에 대해 세부적으로 얘기하기에는 나 또한 부족한 사람입니다. 대신 이 분야의 전문가가 쓴 좋은 책을 소개할게요. 교정 교열을 20년 째 해온 김정선 님의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유유)는 문장 다듬는 법을 알려주는 내공 충만한 책입니다. 시간 내서 읽어보면 도움이 될 거예요.

 

 

 

참치군 님 <열 여섯 살의 회고록>

 

참치군님. 벌레였다는 말, 황산으로 타들어가는 듯 고통스럽다는 말이 참 아프게 다가왔어요. 마음에 누군가 들어올 수 있는 빈 자리를 내고 있다는 말에 기뻤고요. 자리 하나를 비워내는 것, 힘든 일이죠.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요. 참치군님도 알겠지만 ‘아동기의 발달 과업-또래 친구와의 관계 형성’이라는 말은 심리학자들이 그들의 눈으로 찾아낸 평균적인 발달 과정이지 우리 인생에 반드시 거쳐야하는 절대적인 그 무엇은 아니에요. 교과서는 보편적인 지식을 담고 있을 뿐 그 자체로 완전한 책은 아니에요. 수능을 잘 보려면 그 보편적인 지식을 완전한 것으로 믿고 외워야겠지만요. 우리에겐 각자 자신의 속도가 있어요. 그 속도의 늦고 빠름에 연연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참치군님은 잘 해나가고 있어요.

 

우리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연기를 하고 살아요. 나는 참치군님이 사회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을 완벽하게 연기하려고 노력하지 않기를 바래요. 사회화는 평생에 걸쳐 이루어져요.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사회의 요구에 순응할 수도, 불응할 수도 있어요. 어떤 것은 취하고 어떤 것은 거부하고 어떤 것은 고민하며 사회 안에서 나 다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죠. 참치군님도, 나도 서로 다른 자리에서 끊임없이 고민할 문제예요. 우리 함께 힘내요.

 

나는 이 글이 관념적으로 흘러도 좋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도 참치군님이 독자가 참치군님의 글을 따라갈 수 있도록 독자에게 조금 더 친절해지기를 바라요. 예를 들어볼게요. ‘그럴수록 내 티끌의 크기는 점점 작아져만 갔고, 그럴수록 다가온 것은 높아진 자존심과 땅으로 떨어진 자존감, 내 인생은 이미 망쳐졌다는 절망의 말들과 여기서 포기하지 않으면 더한 나락으로 떨어뜨려버리겠다는 협박들이 눈앞에 들이닥쳤을 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을 ‘버텼다’라기 보단 그저 흘려보낸 것 같아요.’와 같은 문장에 참치군님의 상황을 짐작해볼만한 어떤 정보도 들어있지 않아요. 독자는 ‘이 화자가 힘든가보다.’ 막연히 짐작할 뿐 화자의 마음에 공감할 수 없어요. 무슨 말, 무슨 협박이 어떻게 닥쳤는지 좀 더 상황이 보여진다면 좋겠어요. 문장 정리도 한 번 더 해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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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월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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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입니다. 벌써 9월, 책 읽기 좋은 계절이 왔어요. 두고두고 기억할 책 한 권 올 가을에 만나길 바랍니다.

수필란을 밝혀준 Laurie님과 지기지우님, 두 벗님들의 글 반갑게 읽었어요.

 

 

Laurie님 「수영장에 관한 추억들(2)」

잘 읽었습니다. 수영장에서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에 대한 생생한 상황 묘사를 즐겁게 읽었어요. ‘자유형은 하면 할수록 숨쉬기가 힘들고, 평영은 느려터진데다 다리 벌리는 것이 짜증나고, 배영은 물이 튀어 코에 물이 들어가고, 접영은 팔을 끝까지 뻗으라고 해서 힘들다.’고 투덜대는 화자가 친근하게 느껴져요.

이 글 안에 Laurie님 내면의 소리를 더 담아내면 좋겠습니다. 짜증이 난 것과 짜증이 난 상황에 대한 얘기를 나열하는 것도 재미를 줘요. 그렇지만 수영장에서의 경험이 불러일으킨 내면의 풍경을 함께 담아내지 않으면 노른자 빠진 계란처럼 글이 허전해져요. ‘짜증난다.’는 말이나 짜증나는 상황에 대한 묘사만으로는 진짜 솔직한 글이 되지 못합니다. 내가 왜 수영장의 이야기를 쓰게 되었는지 왜 짜증이 났는지 왜 저들이 싫은지 내면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자기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글을 쓴다면 좋겠습니다. 글을 쓰면 그동안 몰랐거나, 희미하게 느끼고 있었지만 무엇인지 갈피를 잡지 못했던 기분의 원인을 더 분명히 알게 되잖아요. 글이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투시경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Laurie님의 글에 묵직한 여운이 더해질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 )안의 내용은 되도록 본문 안에 ( )없이 풀어 쓰는 게 좋습니다. 덧붙여 ‘ㅋㅋㅋ’, ‘?!’ 같은 인터넷 용어는 필요하다면 사용하되, 꼭 필요치 않다면 줄여주는게 좋겠습니다.

 

 

 

 

지기지우님 「사과 안 해」

잘 읽었습니다. 때로는 따돌리고, 때로는 따돌림받으며 불완전한 관계를 이어가는게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3년여 동안 되새김질하고 있었던, 사과조차 하지 못할 무거운 경험을 간결한 문장으로 잘 담아냈어요. 이 글을 이 달의 수필 당선작으로 선정합니다.

나에게도 아픈 경험이 있어요. 긴 터널같은 순간이 계속되던 때, 터널에도 끝이 있다는 말은 위로도 되지 않는 허튼 소리일 뿐이었어요. 성인이 된 뒤에도 오랫동안 그때를 되새김질했지요. 그런 나에게 도움이 된 책이 있습니다. 레이첼 시몬스의 『소녀들의 전쟁』(홍익출판사)이라는 책이에요.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도서관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연구자의 사례 연구와 솔직한 자기 고백이 인상적인 책입니다. 내가 겪어야 했던 일들이 여성에게 침묵하도록, 착한 사람의 가면을 쓰도록 강요된 기형적 집단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해석이 담겨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확실하지는 않아요. (지금 책을 펴고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미안합니다.)

이 책에서는 각각의 소녀들이 경험한 개별적 상황이 구체적으로 서술되고 있어요. 개별적 상황이 담길 때 글의 전달력과 몰입감이 얼마나 커지는지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지요. 지기지우님이 「사과 안 해」에 스스로가 겪거나 행한 구체적 정황을 보여줬다면 어땠을까요. 내밀한 개인의 경험을 조금 더 담았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하고 싶지 않거나 말할 수 없는 부분은 적당히 가공하고 수정해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드러내면 됩니다.

덧붙여 아동문학 작가 최나미 선생님의 중편집『셋 둘 하나』도 홀수가 된 소녀들의 우정과 심리를 잘 담고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한번 읽어봐도 좋겠습니다. 좋은 아동문학 작품은 나이와 세대를 넘어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징검다리가 되어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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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월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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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월장원 발표

글틴 벗님들, 안녕하세요. 수요일입니다.

정말 무덥죠. 다들 잘 보내고 있나요? 나는 칠월 마지막 주에 생전 처음 일사병 증세를 겪었어요. 머리가 지끈거리고 눈이 뱅뱅 도는데… 아휴. 참신한 경험이지만 두 번 하고 싶진 않았어요. 벗님들도 건강 잘 챙기세요.

더운 여름 중에도 멋진 글을 올려준 laurie님과 들님. 잘 읽었어요.

laurie님 <산비둘기>

laurie님이 어느 날 찾아낸 것, 저 멀리 푸드덕 날아 가버린 산비둘기의 맑고 순수한 눈은 많은 것들을 연상시켜요. 그런 점에서 좋았고 또 그런 점에서 아쉽기도 했어요. 산비둘기의 자존심, 새로서 오롯이 지켜내야 할 긍지란 무엇일까요. 산비둘기의 변화는 긍지의 훼손일까요, 긍지와 무관한 적응일까요. 그 변화는 산비둘기의 입장에서 퇴보일까요, 진화일까요. 인간이 중심이 되는 이 세상에서 본래의 삶터를 훼손당한 비둘기는 약자의 자리에 위치할 수밖에 없어요. laurie님이 포착해낸 산비둘기는 ‘긴 그림자만 빽빽하게 드리우고 있는 아파트로 가득 찬’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무수한 생명을 드러내는 좋은 제재예요. 이 제재를 살리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작고 약한 존재의 편에 서 주세요. 약한 존재의 입장에서 그들의 목소리, 그들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laurie님 <수영장에 관한 추억들(1)>

버스기사는 남자였고 항상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데다 얼굴의 주름으로 봐선 한 쉰, 예순 정도 나이를 먹은 것 같았다.(아니면 마흔인데 스트레스로 인해 주름이 생긴 걸지도.)’라는 글에 웃음이 풋 터졌어요. 어딘가 예리하고도 유쾌한 글이에요. 아이들을 함부로, 불합리하게 다루는 버스기사의 행동과 세월호 사건을 연결해 생각할 거리가 더 풍성해졌어요. 세월호는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이죠. 그 안타까운 비극을 야기한 우리 사회의 일면에 대해, 버스기사에 의해 돌출되고 있는 그 일면의 부조리함에 대해 조금 더 할 얘기가 있었을 텐데 말을 아낀 것이 아쉽습니다. 2편이 어서 올라오기를 기다렸으나 아쉽게도 7월을 넘겨버리네요.

혹시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쓴 빌 브라이슨을 알고 있나요? 그는 뛰어난 에세이스트이기도 해요. 독설과 유쾌함, 재치가 결합된 그의 글은 읽는 재미가 남달라요. laurie님의 발랄한 글을 읽으면 이 작가가 떠오릅니다. 기회가 된다면 빌 브라이슨의 에세이를 한 권 가볍게 읽어봐도 좋겠어요.

 

 

들님 <연명의 가치>

들님에겐 ‘나’의 내면을 거미집처럼 섬세하게 짜 드러내는 힘이 있어요. 고백하듯 읊조리는 '나'의  목소리를 살리는 ‘-어요’ 종결어미도 좋은 선택이었어요. 들님을 아프게 만드는 것들이 너무 완고하고 견고해 안타까워요. 가식적인 옳음을 강요하는 강제된 울타리 안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빛’을 가슴에 담고, 그 불씨를 마주하길 두려워하며, 불씨를 지켜가려는 들님의 노력은 얼마나 고단할까요. 버티어야 하는 삶 속에서 글을 통해서나마 내면을 드러내고 소통할 수 있어 다행이에요. 저 아래 가라앉아 있었을 들님, 약속을 위해 생을 연장해 나가는 들님, 스스로를 비난하며 흔들리는 들님, 필사적으로 불씨를 움켜쥐고 어둠 속에서 버텨가는 들님. 수많은 면면의 들님이 진솔하게 담겨있는 이 글을 7월의 월장원으로 선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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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월장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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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수요일입니다. 6월의 글, 반갑게 읽었어요.

우리 사는 이야기를 문학으로 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그 어려운 일을 해냅니다. 글틴님들이.

 

 

참이삭님의 <짜장면>

어느 날 오후, 아빠와 짜장면을 먹으며 갑작스레 찾아온 깨달음의 순간을 담아냈어요. 밥이 가진 힘은 역시나 대단하고, 그 대단한 순간을 잡아낸 화자의 시선이 반갑습니다. 짜장면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내는 아빠의 모습에서 소년을 보는 화자의 눈과 마음에 끌리는 글이에요. 짜장면을 통해 아빠 안에 숨겨진 소년을 보고, 그 소년 같은 아빠가 얼마나 어른스러운 척 하며 사는지 알게 된 화자가 느끼는 특별한 감정이 간결한 문장 안에 잘 담겼습니다.

아빠를 위로하고 싶은 화자의 마음이 더 드러나도록 아빠의 어른스런 평소 모습을 앞에서 보여줘 대비했어도 좋았겠어요. 발랄하면서도 여운이 있는 글입니다. 따뜻한 밥 한 그릇 먹은 듯 뱃속이 덥혀지는 기분이에요.

 

 

laurie님의 <애매한 글?>

laurie님의 글에 대한 열정이 느껴지는 소회입니다. laurie님의 말대로 글쓰기란 그저 좋아서 계속 쓸 수밖에 없는 일 같아요. 열정이 있기에 그 먼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거죠. 글에서 아쉬운 점이 있어요. 중심 주제가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아요. 중심 주제가 확 들어오지 않으니 5월에 올렸다 삭제하게 된 글, 매 주 쓰는 감상문, 최근 빠져있는 게임, 글쓰기의 어려움, 글틴 활동 등에 대한 내용이 한 덩이 이야기로 단단히 뭉치지 못하고 알알이 달린 포도 알처럼 보여요. 이 점을 더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수필은 사실성을 기저에 깔고 있는 논픽션 문학이에요. 우리 삶에서, 주변에서 길어 올린 생생한 사건들 특히 자신의 감정을 건드리는 개인적 사건이 좋은 글감이 된답니다.

 

 

투또우님의 <새벽>

불그레한 새벽, 차를 내리는 고요한 순간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오감을 일깨우는 세부묘사예요. “아!”하고 일어나 다기를 꺼내어 홍차 잎을 우렸습니다. 오랜만의 홍차입니다. 일에 치여 오랫동안 여유를 잃고 있었는데, 글속 저 새벽녘 정적의 시간에 마음을 담그고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었어요. 하얀 김에서 나는 싸한 홍차 향을 맡으며 ‘정말 차향이네.’하고 웃었어요. 김에서 차향이 난다는 걸 여태 모르고 살았습니다.

어느 새벽녘 코끝에 감기는 홍차 향을 즐기며 “어느 해 여름은 온통 빨간 색이었다.”고 사각사각 첫 문장을 쓰고 있을 화자의 잔잔한 즐거움이 서정적으로 전달되는 글입니다.

 

 

 

들님의 <조연의 잘못된 심폐소생술>, <연명>

자신의 고통스런 이야기, 쉽게 꺼낼 수 없는 내면의 아픔을 진솔하게 풀어내는 글은 그 자체로 힘을 가져요. <조연의 잘못된 심폐소생술>이 그렇습니다. 들님의 고통스러운 심장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해요. 방어할 수 없는 몸, 무력감과 공격성, 주저흔, 가식의 가면, 완벽한 아이의 껍데기가 선연하게 화자의 아픔을 전달하고 있어요. 글 사이사이 모호하게 드러나는 과거의 작은 조각들을 보면서 ‘이렇게 조각으로 드러내야만 화자가 숨을 쉬겠구나. 다 꺼내어선 너무 힘들겠구나.’하고 끄덕이게 됩니다.

<조연의 잘못된 심폐소생술>과 <연명>은 붙여서 이야기를 해야 할 듯합니다. 한 쌍의 날개 혹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두 이야기는 함께 있을 때 그 목소리가 더 선명해져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잃어버린 ‘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고리, 그 안에서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는 화자의 날카로운 비명이 가슴에 꽂힙니다. 교실이라는 도가니 안에서 버텨나가고 있을 누군가에게 자꾸 미안해집니다. 가슴을 묵직하게 누르고, 흔드는 글입니다.

 

Mobius님의 <헤드폰>

<헤드폰>은 감각적입니다. 특히 몸의 느낌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문장이 훅 다가옵니다. 어물어물하지 않고 헤드폰 이야기로 쑥 들어가는 점도 좋습니다. 헤드폰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가 나란히 이어져 있네요. 헤드폰을 사게 된 경위, 헤드폰에서 들려온 속삭이는 소리, 헤드폰의 번거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굳이 연결하지 않고 간격을 벌려 병치했는데 이 구성이 썩 좋진 않아요. 헤드폰에 관한 에피소드의 나열로 끝내지 말고 세 이야기를 엮을 방법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요? 쓰기에 겨운 헤드폰을 사고, 쓰고, 가지고 다니는 Mobius님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문장이 조금 더 들어있으면 해요.

 

 

이번 달 장원은 투또우님의 <새벽>과 들님의 <조연의 잘못된 심폐소생술>입니다. 투또우님의 <새벽>에는 화자를 따라 찻잎을 우리고 싶게 만드는 끌림이 있어요. 섬세하고 서정적인 글입니다. 들님의 <조연의 잘못된 심폐소생술>은 강렬하고 진솔합니다. 글의 거친 결이 화자의 고통을 더 생생하게 살려내고 있어요. 마음을 움직이는 두 편의 글을 이 달의 우수작으로 선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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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월장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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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수요일입니다.

아휴, 땀난다. 날이 무지 더워요.

 

이번 월 장원은 lauri님의 「음식쓰레기」입니다.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스런 경험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어요. 지금은 웃으며 장기 밀매단인 줄 알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때는 얼마나 떨렸겠어요?

사실 얼마 전 이 글의 내용과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엘리베이터가 점검중이라 층계로 올라가는데 누가 뒤에서 올라오는 겁니다. 어쩐지 무서워 가슴은 쿵쿵 뛰고, 땀은 줄줄 흐르고… 헐떡헐떡 집으로 뛰어 들어왔어요. 그런 경험 뒤에 lauri님의 글을 다시 읽으니 이 얘기, 아주 무서운 얘기예요. 강렬하고 무서운 경험을 lauri님 식의 유쾌한 어조로 실감나게 쓴 거죠. 본래 ‘터무니없고 말도 안 되는 잡념’이 우리 안에서 부풀고 부풀어 공포를 심고 환상을 만들잖아요.

글에 생동감이 있어요.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로 생겨난 상황이 눈에 쑥 들어옵니다. 다만 급하게 쓴 듯 문장이 많이 거칠어요.  lauri님의 다른 글과 비교해보니 퇴고를 한 작품과 안 한 작품의 차이 같아요. 꼭, 여러 번 다듬어주기. (아예 버릇으로 들이기)

결말 부분의 ‘다음날 아침-’부터 ‘음식 쓰레기였습니다.’까지가 마무리로 어울리지 않아 아쉬워요. 음식 쓰레기통 (뚜껑) 안에 ‘경악할 만큼의 무언가’가 들어있었는데 그 경악할 만한 게 음식 쓰레기였다는 결말은 이야기를 지나치게 우스꽝스럽게 만들어요.  어둠과 공포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다른 마무리를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lauri님의 다음 글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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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월장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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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여러분 안녕하세요. 수요일입니다.

봄볕이 따뜻해 딴 생각하기 좋은 날, 4월 월장원을 발표합니다.

이달의 월장원은 흔들리는 마음을 진지하게 담아낸 페르시안님의 「삶에 대한 불온한 생각」입니다.

축하드립니다!

 

 

페르시안님 「삶에 대한 불온한 생각」

페르시안님의 글을 읽으며 삶과 맞물려있는 죽음에 대해, 생의 소중함과 어려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두 개의 문장이 부딪히는 꿈과 환상과 현실. 그 속에서 흔들리는 내면을 진지하게 담아낸 글 잘 읽었어요.

이 글에 나오는 ‘아티스트적 캐릭터’는 어떤 사람인가요? ‘아티스트적 캐릭터’라는 말 대신 ‘동주는 볼펜만 있으면 남의 손등에 낙서를 하는 친구로 셔츠 소매에 늘 볼펜똥을 묻히고 다닌다.’라는 식으로 그의 세부적 특징을 잡아 쓰면 독자는 그 인물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세부 사항을 구체적으로 쓸 때 글이 더 특별하게 변합니다. 글에서 관념적인 부분을 줄이고 사람, 사물, 사건, 상황 등을 구체적으로 써주면 좋겠습니다. 독자와의 공감이 더 쉬워질 겁니다.

 

 

laurie님 「서윤이의 보물 강탈(?)방법」

「서윤이의 보물 강탈(?)방법」은 생활 속에서 일어난 재미난 사건을 생동감 있는 대화로 잘 보여주고 있어요. 동생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는 유쾌한 글입니다. 저에겐 무뚝뚝한 남동생만 있어요. 서윤이 같이 귀여운 동생이 있었다면!

이 글을 확장해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별다른 주제 없이 짧은 일화 하나를 툭 던지는 것으로 읽히거든요. 유쾌한 시선과 진지한 사유가 한데 섞일 때 laurie님의 글이 가진 발랄함이 빛을 발할 거예요.

‘그런데요, 서윤이가 준 종이컵에서 진짜로 빛이 나더군요.’라는 마지막 문장이 재미있어요. 그러나 이 문장은 글의 허구성을 강화해 수필의 특징 중 하나인 사실성을 떨어뜨립니다. 수필에 반드시 사실만을 담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글에서 배어나오는 사실성은 수필의 특별한 매력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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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월장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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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월장원을 발표합니다.

안녕하세요. 수요일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두 편의 글, 잘 읽었어요. 무형의 틀에 억지로 몸을 맞추며 한 가지 목표를 향해 걸어야 하고, 성적만으로 그의 가치가 결정되는 학교생활. 그 안에 있는 투또우님과 들님의 힘겨움은 어떨까.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어요. 그런 힘듦 속에서 지켜나가는 글쓰기란 얼마나 버거운 것일까요. 두 분의 글을 읽고 저 또한 글쓰기의 어려움과 귀함에 대해 돌아봤어요. 이번 참에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도 다시 읽고요.

 

 

 

들님의 <내가 사랑하는 것을>

바싹 말라 갈라진 입술과 하루 만에 말라버리는 다섯 장의 수건이 많은 걸 말해주고 있네요. 메마른 기숙사 생활, 학교 생활 속 들님의 불안과 고민이 와 닿는 글입니다. 들님이 어려움을 잘 이겨내시면 좋겠어요. 이 글은 입술, 수건 그리고 서른두 개의 볼펜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좋아요. 그것들이 들님의 상황을 더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매개 역할을 잘 해주고 있어요. 들님이 겪고 있는 상황이 진솔하게 다가오고, 그 진솔함이 공감을 만듭니다. 가슴이 완전히 마르지 않도록 들님이 계속 글을 써나가면 좋겠어요.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을 생각할 때 중간에 ‘고등학생이 되자 글이 더더욱 절실해졌다.-(중략)-사랑했다.’라는 단락은 빼는 게 자연스럽겠습니다. 따라잡기 어려운 수업의 어려움과 의대 진학이라는 꿈에 대한 불안감 사이에 끼어있는 단락이 생경하게 튑니다. 글을 쓸 때 ‘무엇을 담을까?’를 생각하며 ‘시작-중간-끝’의 간단한 플롯을 짜놓고 시작하면 정돈이 더 잘 된답니다.

 

투또우님의 <갈증>

시작 부분이 눈길을 확 사로잡아요. 쫄쫄이 파워레인져 같은 문제집 더미를 향해 던지는 ‘나’의 말이 생생합니다. 파워레인져의 이미지를 좀 더 확장해보면 좋겠어요. 파워레인져처럼 보이는 문제집, 문제집이 보장하는 성적, 성적은 네 인생을 구하리라는 암시, 그 암시가 만들어 낸 익숙한 풍경 등이 글 안에 담겨있는데 그것들이 보다 또렷이 보일 수 있도록 다듬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투또우님의 고민이 무겁고 아프게 다가옵니다. 송곳처럼 불쑥 튀어나오는 특별함, 그 개성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 현실에 속이 상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작은 위로뿐이네요. 힘내세요. 투또우님의 ‘다른’ 형질은 앞으로 투또우님이 걸어갈 길을 밝히는 불빛 중 하나가 될 거예요.

입시 제도에 대한 고민,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겪지 않아도 됐을 불화, 투또우님 앞에 닥친 현재의 어려움 등이 무엇인지 더 구체적으로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구체성은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답니다.

 

 

이번 월장원은 <내가 사랑하는 것을>입니다. 축하해요.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들님이 인용한 부분을 찾아봤어요.

 

“여러분이 형편없는 작가라면 그 누가 도와줘도 장차 훌륭한 작가는커녕 제법 괜찮은 작가가 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여러분이 훌륭한 작가인데 위대한 작가가 되고 싶다면… 빨리 포기하시라.”

 

스티븐 킹이 말한 ‘형편없는 작가’란 글쓰기에 대한 진지한 생각과 노력 없이 손쉽게 글을 써내는 작가,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몰두하지 않고 구태를 답습하는 작가일 거예요. 더 나은 글을 쓰고 싶다는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 어떤 도움이 통하겠어요? 그 스스로가 별 도움을 바라고 있지도 않을 텐데 말이에요.

반면에 소수의 위대한 작가는 우리가 논할 수 있는 영역 밖에 있으므로 그에 대해 말하는 건 무의미하겠죠. 우린 다만 제법 괜찮은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거고, 제법 괜찮은 작가가 된 뒤에는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 ‘죽어라고 열심히’ 노력해야 할 거예요. 글쓰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형편없는 작가가 되고 싶어도 될 수가 없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흔히 그러듯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니까요. 그 노력이 변화를 만드니까요.

책 말미에 글쓰기에 대한 스티븐 킹의 생각이 들어 있네요. 오랜 시간에 걸쳐 찾아냈을 그만의 답은 이렇습니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지금은 힘들어도, 들님과 투또우님이 글쓰기를 통해 위로받고 이겨내고 행복해지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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