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린 것을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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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도보다 십자가가 많아요 엄마, 백일기도 그만하세요. 나는 구석에서 피지도 못할 담배를 물고 있는 날이 많아요 나의 구름은 멀리멀리. 나의 어른들도 멀리멀리. 자판기 밑 잡히지 않는 동전처럼 엄마의 기도도 굴러가요 멀리멀리.

 

저는 앞집 옥상에 걸려 있는 팬티의 주인을 생각하는 날이 많아요, 생각도 죄라면서요
유죄인 나의 상상은 무지 하죠

 

초록불인데, 차가 조금이라도 횡단보도를 막고 있으면 나는 몰래 바퀴에 침을 뱉어요 나의 세상에 뱉는 침처럼. 주인이 나와 내게 욕을 하지 않아요. 내가 욕하죠. 잘못을 하고 성내는 아이처럼 나는, 큰 개만 보면 짖는 어린 개처럼.

 

담벼락을 넘어 다니며 나의 죄를 소금쟁이처럼 넓히는 중이죠

 

엄마, 이 세상은 짖어야 들어요 엄마, 하나님은 얌전한 엄마의 기도를 믿지 않아요 목사님은 항상 꿈을 찾으라 말하는데, 나는 ㄱ을 잃어 버렸어요. 굼, 떴죠. 세상에게 나는 가위를 낼테니

 

너는 보자기를 내라고 말했는데, 이 세상은 항상 내게 종주먹을 휘둘러요.

 

횡단보도에서 성장통을 겪지 않는 내가 손을 안 드는 이유는, 세상이 빈차 투성이라서. 나는 버스를 몰래 탄 적 있어요. 나는 매일 무임승차하는 유치원생 돈을 넣는 곳에 은박에 싼 버찌씨를 넣어요

 

해질 때 쯤 이런 식으로 대화 할까요? 오늘도 저녁식사에는 늦을 거 같아요. 고백은 처음하는 거예요. 내게 어울리는 곳은 공사장 아직 완성 되지 않는 음산함이 좋아요. 나의 비밀은 공사중이잖아요 엄마, 기도로 나를 변하게 할 수는 없어요.

 

엄마 나는 기도 할 줄 몰라요 느려터진 내게 더 느리게 가란 건 꼴등이 뒤를 돌아보는 바보 같은 짓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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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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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초가 생각보다 잘 죽지 않았다.

여자는 베란다로 다가가 엎어진 화분을 바라봤다. 목이 꺾이긴 했어도 뿌리는 여전히 흙을 붙잡은 채 아직 가시지 않은 바람을 견디고 있었다. 여자는 잡을 게 없어 손을 잡았다. 손의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암초는 그렇게 거대한 배도 집어 삼켰다는데 왜 태풍은 이깟 화초 하나 날리지 못하나.

여자는 매일 꿈을 꿨다. 바다 속으로 잠긴 배에 여자의 딸이 타고 있었다. 딸은 어둠 속에서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는데 물은 계속 차올랐다. 여자는 반대편 유리창에 얼굴을 들이밀고 딸에게 소리를 질렀다. 갓 승무원이 된 딸은 항상 울었고 혼자였고 헐떡였고 또 죽어갔다. 딸의 머리카락이 물위로 떠 하늘거렸다. 딸은 몇 번 발버둥 치다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마다 여자는 잠에서 깼다. 온 몸에서 땀이 났다. 여자는 물을 마시려고 고개를 들다 베란다 유리에 비친 모습을 바라보았다. 양 팔을 가로 질러 두 팔을 안고 있는 자신이 보였다.

이른 새벽이었다. 여자는 소파에 앉아 바닥에 쓰러진 화분을 바라봤다. 화초는 태풍이 불기 전 날 왔었다.

화초를 감싼 비닐봉투에는 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여자는 그 위 종이를 빼들었다. A4용지에 문서로 복사된 글이었다. 여자는 소리 내어 앞 문장을 읽었다.

이 화초는 따님이 죽기 전 제게……,

여자는 말끝을 흐렸다. 문장이 끊이지 않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편지지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딸이 죽기 전 화초를 보고 무슨 말을 했었다는 걸까. 혹시 딸은 죽음의 그림자를 봤던 것일까. 여자는 숨을 참았다. 그런데도 왜 구명조끼를 양보한 것인가. 여자는 억지로 침을 넘기려고 했다. 여자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나는 딸에게 무엇이었나.

여자의 창백한 얼굴은 짙은 화장으로 덮여있었다. 여자는 화장 솜에 세정제를 묻혀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여자는 직장을 잃었다는 걸 종종 잊었다. 매일 아침 딸을 깨우러 딸의 방에 들어갔다가 가만히 멈춰서있기가 일쑤였다. 딸의 침대는 아직까지 딸의 냄새가 났다. 여자는 물끄러미 자신이 앉아있던 마루의 소파를 바라봤다. 바닥에 편지지가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여자는 숨을 참고 편지지를 들었다. 호흡은 가파르게 이어졌다.

혜선은 바다를 바라보며 숨을 거듭 삼켰다. 배에서 학생들을 끌고 나온 직후였다. 아직 배는 완전히 기울지 않아 들어갈 틈이 보였다. 혜선은 자신의 구명조끼를 다른 학생에게 건넸다. 자신은 수영을 배웠다고 다른 사람을 구하는 게 승무원의 의무라고 말했다. 혜선은 구명조끼를 받은 학생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살아야 해. 학생은 눈을 붉혔지만 이내 그 말은 자신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말은 독백 같기도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화초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다. 혜선의 손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여자는 숨을 죽였다. 손이 하얗게 질려갔다. 바람이 불자 화초가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자는 베란다로 한 발자국씩 걸어 나갔다.

수영을 가르치는 게 아니었는데.

승무원이 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 좋아하는 게 아니었는데.

배려와 용기에 대해 알려주는 게 아니었는데.

나는 화초가 돌아오길 바라던 게 아니었는데.

널 낳는 게 아니었는데……,

여자의 발에 흙이 밟혔다. 바람이 불어 여자의 치마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뿌리로 흙을 안으며 간신히 버티는 화초가 여자의 눈에는 오히려 악착같아 보였다. 무언가를 간신히 붙잡은 채 살려고 버티고 있는 것만 같았다. 편지를 쥐고 있는 여자의 손처럼 하얗게 질려있는 것만 같았다.

살아야 해.

여자는 물에 들어가기 전 딸처럼 숨을 거듭 삼켰다. 무언가 밝아오는 빛에  여자는 잔뜩 붉어진 얼굴로 창밖을 내다봤다. 베란다 너머에선 전날의 태풍을 이겨낸 사람들이 또 다시 아침을 맞고 있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었다. 화초는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여자는 베란다에 쓰러져 앉아 천천히 화초를 끌어안았다. 여자의 양 손 사이에서 흙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화초는 생각보다 잘 죽지 않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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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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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내 사이 책상 간격에는 유독 먼지가 많았다.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먼지가 왜 네 주변에만 많았는지 나는 알고 있다. 너의 책가방이 항상 쏟아질 듯이 열려있었기 때문이다.

너의 하루는 균형이 맞지 않아 조금씩 열리는 문을 닫으며 시작됐다. 문이 닫히면 너의 인사는 십 원짜리 동전처럼 요란스럽게 땅에 떨어졌다. 아이들은 너의 말이 사라지는 걸 보며 아무도 주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고장 난 자판기라도 된 듯 너의 입에선 실없는 인사말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안녕. 반가워. 지금이 몇 시야? 밥 먹었어?

너는 항상 시간과 관계된 말을 내뱉었다. 방금 눈이 마주쳤던 것뿐인데 오래 못 본 사이처럼 살갑게 굴었다. 하지만 가끔 네가 사실 이 모든 걸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문 바로 앞 너의 책상을 선생님이 호의라고 말하자 네가 단어를 반죽하듯 책상 속에 손을 넣어 천천히 배려라고 대답했을 때의 눈빛처럼 말이다. 너는 다운증후군이었다. 다운증후군이 뭔지는 몰라도 눈이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건네는 너에게 시간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게 단지 너에게서 나던 고소한 냄새에 감춰져 있었다고 생각할 따름이다.

너의 어깨 너머 책상 안에서는 제빵이라는 단어가 가장 밝게 빛났다. 너는 수업시간마다 그 책을 꺼내 올렸고 나는 네가 책을 꺼내면 선생님을 바라봤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쳐다봤고 그 중 나는 없었다. 그리고 너도.

어느 날 네가 내게 빵을 건넸다. 내 옆에 있는 아이에게도. 아이는 빵을 받곤 작게 고맙다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더 작게 시발, 더럽게. 라고도 중얼거렸지만 너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네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는 나는 모른다. 하지만 나도 그 빵이 왠지 더럽게 느껴졌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나는 네가 쓰레기통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던 그때를 기억한다. 이동수업에서 돌아오고 나서 너는 한 번 쓰레기통을 쳐다봤을 뿐이었을 것이다. 그 안에는 네가 준 빵이 있었다. 너는 그것을 본 채 한참을 멈춰 있었고 우리에게 중요했던 건 네가 한참이나 문을 막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수업종이 칠 때까지. 마치 알람이 고장 나 수업이 시작됐다는 것을 못 들은 것처럼. 아이들은 너를 밀며 들어왔고 너는 끊임없이 밀려나갔다. 반항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고장나보였다.

이제야 말하지만 너는 듣지 못하는 게 많았다. 그리고 너는 그걸 항상 내게 물어왔다. 하지만 사실 난 고장 난 알람이다. 네가 수업종마다 뒤를 돌아봐도 정확한 시간을 알려줄 수 없다. 내 알람을 오로지 나를 위해서만 울렸다. 나는 너의 시간이 아니었다. 나는 네게 시간이 되어 줄 수 없었다. 나는 자리를 옮겼다.

너는 그 이후로 벽에 등을 붙이고 지냈다. 내가 없는 네가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내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고 네가 사라진 것도 몰랐을 무렵에 선생님이 네가 빵집에 취직했다며 더는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교탁에 선 널 지켜봤다. 네가 돌린 팥빵에서는 너에게서 나던 냄새가 났다. 너는 처음으로 선 교탁이 어색한 듯 떨었다. 네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팥빵을 쥐었다. 따듯했다. 분명 너에게 앞문 바로 앞자리는 반의 전부였을 것이다. 네가 가본 전부였을 테고 네가 느낀 전부였을 테다. 너의 자리는 항상 아이들의 책상으로 둘려 쌓여 있었으니까. 그들의 시선은 너에게 울타리였을 테니까. 너의 고소한 냄새는 또 다른 보호색이었을 테고 나는 너의 울타리를 막아주지 못했다. 네가 문 밖으로 나가는 게 보였다. 네가 울타리를 넘고 있다. 사실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았다. 문득 동정은 내가 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심리에서 나왔다는 말이 생각났다. 나도 어쩌면 너의 또 다른 울타리였을지도 몰랐다.

무심코 네가 사라진 네 자리에 앉았다. 칠판이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앞만, 분필가루를 털어내는 기계만 보였다. 책상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차가운 날붙이가 잡혔다.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놨다. 커터 칼이었다. 네가 이것을 쥐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차가운 철이 오래 쥐니 축축해졌다. 문득 운다는 게 무엇일까 생각했다. 용서라고 생각했다. 커터 칼을 책상 깊은 곳에 놓아주었다. 그리고 너처럼 주변을 둘러봤다. 너의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책상들 너머 철창이 보였다. 블라인드에 가려진 철창의 그림자는 울타리로 막혀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너는 우리가 아니라 저걸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걸 안다는 눈빛으로 무언가에 둘려 쌓여 갇힌 건 내가 아니라 너희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물어보기에 너는 여기 없다. 답변을 하듯 네가 준 팥빵을 뜯어 입에 우겨넣었다. 팥이 마냥 달지는 않았다. 쓰기도 하고 목이 멨다. 하지만 왠지 더 달다고 느껴졌다. 네가 나간 앞문을 바라봤다.

네가 준 팥빵 팥이 유독 붉다. 네가 지금껏 견뎌낸 선혈처럼 나의 손 위로 팥이 뚝뚝 떨어진다. 너는 지금 울타리 밖 세상에 있다. 수업종이 울렸다 그친다. 차마 일어서지 못하고 그대로 자리에 앉아 앞 문 밖을 내다본다. 손에 들린 빵에서 고소한 냄새가 계속해서 난다. 나도 저 울타리를 넘을 수 있을까. 시간이 이미 지났는데도 알람 소리가 끈질기게 귓가를 맴돌고 있다. 온 몸이 자명종처럼 덜덜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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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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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한 마리

 

언니, 잘 지내세요? 최근에 소식 들었어요. 결혼하셨다면서요? 언니가 소개해준 덩치 큰 아저씨들이 말해줬어요. 곧 태어날 애까지 있대나 뭐래나. ‘청원 고시원’ 너무 오랜만에 듣는 이름인가요? 저는 아직도 여기에 살고 있어요. 그때 언니가 썼던 방을 쓰고 있어요. 언니가 그토록 들어오지 못하게 한 그 방에요. 그땐 방안에 뭔 꿀단지라도 숨겨놨나 싶어 틈틈이 언니 방을 훔쳐보려던 게 생각나요. 언젠가 저와 눈이 마주쳤던 거 기억하세요? 언니의 살짝 벌여진 문 사이에서요. 언니는 망상스럽게 옷을 홀딱 벗고는 어떤 남자와 얘기 중이었죠. 그때가 아직도 선명해요. 지금 제가 앉아 있는 책상 바로 뒤에서 언니는 웃고 있었어요. 저는 처음에 언니가 울고 있는 줄 알았어요. 문 뒤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언니의 윤곽은 곧 쓰러질 것처럼 떨려 웃음이 정말 슬프게 들렸나 봐요. 심하게 흔들리던 그림자, 전 걱정이 돼 문틈 사이로 언니를 봤죠. 언닌 웃고 있더라고요. 흐흐흐 웃음을 흘리며. 그런데 신기하게 웃고 있는 언니의 얼굴을 봐도 여전히 슬퍼보였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 있는 남자는 그런 언니가 웃는 걸 좋아하는 듯했어요. 뭐 그러니까 언니가 웃고 있었겠지만. 저는 언니를 보며 고층빌딩들 사이로 연결된 외줄에 올라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언니, 혹시 춥지는 않으셨나요? 높은 곳은 춥다는데 옷도 홀딱 벗고서 벌벌 떨고 있었잖아요. 전 언니에게 적어도 따듯한 물 한잔 건네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 자리에 붙박여있던 거 에요. 언니와 눈이 마주칠 때 동안. 언니는 지금까지 제가 훔쳐봤다 생각했겠죠. 그때 말했어야 했는데…… 언니가 절 쳐다보는 눈빛이 너무나 섬뜩해서, 무언가 와르르 무너지는 게 보여서 그냥 문을 닫고 도망쳐야 했어요. 그때 문 뒤에 남겨진 언니는 이어 웃었죠. 그때 전 동물들을 보고 왜 운다 하는지 알았어요. 언닌 마치 동물이었죠. 슬프게 흐느끼는. 미안해요. 언니, 그때 말했어야 했는데, 정말 미안해요.

언니, 제가 이 방에 처음 왔을 때 언니가 놓고 간 일기장을 발견했어요. 딱 3장 적힌 일기장이요. 언니도 저처럼 시골에서 올라왔다 말했죠. 돈을 벌려고 집을 나섰다고요. 언니의 일기장에 무슨 말이 적혀 있었는지 기억해요? 편지가 적혀있었어요. 제게 보내는 편지. 언니는 아마 제가 그 편지를 읽게 될 줄 몰랐겠죠? 저는 그렇게 믿고 싶어요. 단지 쓰고 버리려 했던 거라고. 날 보여 줄 생각이 없었다고. 언니가 침대에 일기장을 두고 사라진 것이 저를 보라고 올려놓은 게 아니라고요. 언니는 그렇게 잔인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제게 서울 말씨를 가르쳐주고 언니, 동생으로 지내자 했잖아요. 저는 아직도 언니가 사준 삼계탕을 잊지 못해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뚝배기 안에 쑥스러운지 자신의 속살을 조금만 내보이는 그 닭 한 마리. 그러면 더 먹고 싶단 걸, 손이 간다는 걸 그 닭은 몰랐겠죠. 저는 그때 닭을 잡아들고는 먹질 못했어요. 너무 짜더라고요. 닭이, 국물이 그 모든 게 마치 제 눈물 같이요. 언니는 그런 절 묵묵히 쳐다보더니 제 그릇을 가져가 먹기 시작했죠. 언니는 비위가 좋은 것 같았어요. 제가 언니였으면 한마디 할 성 싶은데 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죠. 그런데 사실… 들었어요. 언니가 작게 그릇에 얼굴을 박고 먹으면서 한말을요. 괜찮아, 괜찮아. 나도 그랬어. 그리곤 고개를 들고 재빨리 입이 찢어지게 하품하는 모습을, 눈에도 김이 서렸는지 촉촉해진 눈망울을 하고선 제게 그만 가자고 말했죠. 그랬던 언니가 제게 그랬을 리 없잖아요. 하지만 가끔 외로울 때, 덩치 큰 아저씨들의 말이 떠오르곤 해요. 걔는 자기 살자고 널 버린 거야. 언니가 제게 보증을 서달라고 부탁했을 때, 저 덩치 큰 아저씨들 앞에서 아버지가 아프다고 제게 울면서 간청했을 때 아저씨들은 웃고 언니는 울었죠. 오늘 같이 외로운 날. 아닌 걸 알면서도 자꾸 아저씨들의 말이 머리를 맴돌아요. 그러면 그때 언니의 흐느끼는 목소리가 생각나고 소름끼치는 웃음이 떠올라요. 저는 언니가 제게 했던 모든 몇 안 되는 말 중에서 그 말이 가장 컸다고 기억하고 있어요. 나 돈 좀 빌려주라. 제발. 언니 전 이제 짜디 짠 삼계탕을 먹을 수 있어요. 정말 짰는데, 이젠 별로 못 느끼겠더라고요. 눈물도 뭐도. 언니, 그건 그렇고 이제 아버지는 괜찮으신가요?

벌써 언니가 사라진지 10년이 지났네요. 언니가 말없이 떠나고 나서 전 돈을 갚기 위해 정말 여러 일을 했어요. 여자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말이에요. 처음엔 여러 잡일로 시작하다가 이러단 평생 불어나는 이자도 못 갚겠다 싶어 아저씨들이 제안한 일을 하기 시작했죠. 언니처럼 말이에요. 저는 그게 두려웠어요. 이게 날 평생 쫓아다니는 족쇄가 될까봐. 매일 새벽에 타는 버스의 손잡이처럼 내 손을 꽉 잡고 놔주지 않을까봐. 나도 이제 살아가고 싶은데, 좀 살고 싶은데… 평생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했죠. 그래서 전 자살도 생각했어요. 버스의 손잡이를 보며 교수형을 떠올렸죠. 누군가가 내게 벌을 내리는 거구나.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거구나. 그럼 죽어야지. 내가 잘못했다는데 죽어야지. 그래서 머리를 넣어보려고 하면 구멍이 너무 작았어요. 제 머리가 들어가기엔 너무나도. 전 그렇게 모든 구멍엔 맞지 않는 사람이었나 봐요. 전 항상 너무 컸어요. 언니. 그래서 제가 언니를 이해한다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르죠. 전 항상 제가 크다 생각했으니까. 그 모든 걸 껴안을 정도로. 언니의 일을 이어 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언니가 왜 기괴하게 웃으며 옷을 벗고 있었는지 이해가 됐어요. 짐승의 소리를 내며 우는 언니가 이해됐어요. 언니는 제게 서울 말씨를 알려줄 때 음의 높낮이만 알려준 게 아니었죠. 언니, 저는 지금 삼계탕이 된 기분이에요. 하얗고 뽀얀 살이 된 기분이에요. 그들이 나를 물고 잡아당겨 나는 소중한 사람이가요?

언니 저도 임신했었어요. 배에 임신선이 생겨서야 임신했단 걸 알았죠. 언니는 처음 임신선이 생겼을 때 어땠었나요? 저는 두려웠어요. 임신선이 생기고 생리가 멈추고 나서부터 애 아빠는 누굴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죠. 언니, 화장실에서 죽어간 애들은 도대체 몇 명일까요. 가끔 변기를 내려다 볼 때 가슴이 막 답답해요. 답답해서 숨을 쉬기 힘들어요. 아저씨들이 준 약을 먹었을 때도 전 화장실 변기에 붙박여 움직이질 못했죠. 뭔가가 나온 게 느껴졌는데 아래를 내려 볼 수 없었어요. 언니도 아이를 물 위에 두둥실 흘려보낸 적이 있나요? 소용돌이 속으로 던져본 적이 있나요? 언니 저는 사람을 죽였어요. 언젠가 제가 결국 변기위에서 일어서야 한단 걸 깨달았을 때, 그것과 제가 연결된 줄은 오직 나만이 끊을 수 있단 걸 깨달았을 때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언니 전 줄을 잘랐어요. 가위가 잘 들지 않더라고요. 제 속에서 나온 것은 마치 털이 다 빠진 닭 같았어요. 아무런 쓸모가 없어 죽어진 닭. 어쩌면 언니가 제 껄 무리하게 먹고 게워낸 닭일지도 모르죠. 언니, 저는 닭을 먹을 순 있어도 먹긴 싫어요. 닭을 볼 때마다 언니가 떠오르고, 제가 떠오르고 그것이 떠올라요. 언니 이제 당신의 털은 다 자랐나요? 오랜만에 정말 보고 싶어요.

언니가 제게 미안해한다 하더라고요. 언니,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제게 미안해하지마세요. 전 언니의 족쇄가 되기 싫어요. 돈은 다 갚았어요. 저도 이제 고시원을 떠날 거 에요. 이 지긋지긋한 곳을 떠나, 영원할 줄 알았던 족쇄를 풀면 전 어디로 가야 하죠? 언니도 이런 기분이었나요? 전 지금 열쇠를 들고 망설이고 있어요. 구멍에 열쇠를 넣어다 빼며 생각해요. 만약 그때 언니가 저의 대한 오해가 없었더라면 언니는 도망쳤을까요? 제게 차라리 한마디의 언질이라도, 도망치라고 말해줬더라면 뭔가가 달라졌을까요? 언니 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잘생기진 않았지만 착해 보여요. 매일 아침 일찍 나와 근처에서 그 사람을 지켜봐요. 그 사람은 병든 닭처럼 골골대요. 저는 이 사람과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뭔가 느낌 상 전 사랑하지 못하는 몸이 된 것 같아요. 폐경기가 너무 일찍 온 것 같아요. 언니 저를 한 번 보러 와줘요. 제 마음 속의 털이 다 자랐는지 확인해줘요. 저는 아마 계속 고시원에 있을 테니 언니가 준비되면 언제든 나를 보러 와줘요. 그때야 저는 아침을 알리는 닭처럼 힘차게 울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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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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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정이

쌀을 양은냄비에 불려놓았다. 쌀에서 하얀 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돌렸다. 손이 벌게질 때쯤 뺐다. 손은 물기로 번들거렸다. 서서히 쌀은 가라앉고 쭉정이가 올라왔다. 나는 쭉정이가 올라온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딱 여기까지였다.

“태연아, 같이 가자.”

녀석이 손을 건네 왔다. 숲은 울창했고 나무의 가지는 길게 뻗어 기지개를 펴는 듯했다. 나는 빛이 들지 않은 그림자 아래에 있었다. 내 몸은 저 나무의 가지들처럼 축 처져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피어 난지 얼마 안 된 새싹처럼 아무렇게나 흩뿌려져있었다. 나와 달리 녀석의 얼굴에는 빛이 반짝거렸다. 생기어린 얼굴이었다. 자신감이 넘치는 얼굴이었다.

“됐거든, 나도 혼자 갈 수 있어.”

나는 부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일어섰다. 땀을 잽싸게 훔쳤다. 단체복은 땀에 찌들어있었다. 나는 녀석을 힐끔 쳐다봤다. 녀석은 벌써 저만치 나아가있었다. 같이 가자고 했으면서. 나는 으윽, 소리를 내며 녀석을 앞질러 나갔다. 녀석은 그 당시 나의 자그마한 라이벌 이었다.

형의 손가락을 보며 피아노를 배웠고 형의 나비넥타이를 보며 성악을 시작했다. 내가 형이 입은 단체복을 보고 컵 스카우트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엄마는 내가 금방 그만 둘 줄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내게 형이 입던 단체복을 물려줬다. 늘어난 멜빵바지에 어깨선이 맞지 않은 목 때 낀 파란셔츠. 나는 가끔 단체복을 입고 학교에 갔다. 형은 나를 보자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게슴츠레 형을 쳐다봤다. 나를 부러워하고 있는 거야. 내가 너무 멋져서. 그럴 때마다 형은 가시 돋친 말투로 내가 끝까지 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포기 할 거라고. 하지만 나는 엄마와 형의 예상을 깨고 형처럼 조장까지 했다. 형같이 반짝이는 뱃지는 없었지만 조장은 조장이었다. 내가 엄마와 형의 예상을 깨고 버틸 수 있었던 건, 녀석 때문이었다.

녀석은 특별히 잘생기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피아니스트와 성악가처럼 나비넥타이가 잘 어울리는 아이였다. 웃음이 보기 좋은 아이, 부모들이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런 녀석이 항상 내게 껌 딱지처럼 달라붙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항상 웃고는 했다. 하하 호호. 나는 그 웃음소리가 싫어 귀를 막고 고개를 푹, 숙이고 싶을 때가 많았다. 녀석은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항상 싱글벙글했다. 나도 딱 한번 녀석에게 웃어줬던 때가 있었다. 스카우트의 조장들만 가는 졸업여행. 녀석과 내가 한 조가 된 처음이자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그때 녀석의 콧대를 눌러주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었다.

이윽고 우리 조는 캠핑장에 도착했다. 나를 포함해 6명이 이루어진 조였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텐트부터 쳤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 우리는 각자 저녁밥을 준비해야 했다. 그게 이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직접 음식을 준비하는 것. 녀석은 텐트 주변에 모기향을 뿌리느라 바빴다. 나는 재빨리 조원들을 불러 모았다.

“각자 가져온 재료들을 꺼내자.”

나는 쌀과 김치를 꺼냈고 다른 애들은 여러 가지 밑반찬을 꺼냈다. 고기며, 상추며, 새우젓이며, 하나같이 바비큐를 위한 것이었다. 녀석이 가져온 것은 그릴이었다. 고기를 구울 줄 안다고 했다. 초등생주제에 고기는 무슨 고기. 나는 녀석을 힐끔 곁눈질한 후 밥을 할 줄 안다고 했다. 그래서 양은 냄비를 가져왔다.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그 녀석의 그릴에 비해 내 양은냄비는 초라해보였다. 녀석은 싱긋, 웃고 나는 지지직, 눈빛을 보냈다.

녀석이 설치한 그릴의 달궈지기 시작했다. 녀석은 나뭇가지를 가지러 어디론가 향했다. 사람들은 녀석이 가져온 그릴에 관심이 많아보였다. 녀석이 아빠와 캠핑을 자주 간다고 말하던 게 생각났다. 나는 이러다가 내가 준비한 밥이 밉보이면 어쩌지, 이번만큼은 지기 싫은데 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나는 쌀 봉지에서 벌레가 보였다. 쌀벌레였다. 나는 화들짝 놀라 벌레를 버리려다가 딱 좁쌀만한 것이 그릴의 반짝거리는 은박지위에서 잘 보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사건은 그로부터 10분 후 터졌다. 누가 처음 소리를 쳤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릴주위로 몰려왔다. 그 안에는 녀석도 있었다. 녀석은 그릴위에 죽어있는 벌레를 보고 당황해 울기 시작했다. 내건 깨끗한데, 정말이야. 녀석의 울음은 그칠지 몰랐고 나는 녀석이 우는 걸 처음 봤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걸 처음 보는 느낌이었다. 하늘에서도 물이 내리는구나. 우는 녀석을 등지고 그릴을 바라봤다. 그릴 위에는 내가 놓은 쌀벌레가 새까맣게 타고 있었다. 그 주변엔 내가 가져온 쌀알들이 곳곳이 놓여있었다. 쌀알을 치울까 했지만 곧 그만뒀다. 시간이 지날수록 쌀이 타는 냄새가 점점 났다. 마치 밥의 김이 빠지는 것처럼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났다. 사건은 선생님이 프라이팬을 들고 오는 걸로 끝났다. 그날, 나는 내가 가져온 밥을 안치지 못했다.

그때 이후로 나는 더 이상 녀석과 만날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다른 중학교를 올라가며 멀어졌고 나도 서서히 녀석을 잊어갔다. 녀석은 내 기억 속에서 영원히 이름 없는 ‘녀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내게 밥을 안쳐달라고 부탁한 날. 내가 못하겠다고 하자 어렸을 때 컵 스카우트에서 배운 게 어디로 갔냐며 나를 달달 볶던 그 날. 나는 쌀을 씻었다. 쌀에서 하얀 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돌렸다. 손이 벌게질 때쯤 뺐다. 손은 물기로 번들거렸다. 손등에 물을 맞추고 냄비를 끓이려던 찰나, 서서히 냄비위로 무언가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쭉정이였다. 쭉정이를 보며 그때가 떠올랐다. 녀석의 그릴이 생각났고 녀석의 울음이 생생히 들렸다. 하지만 녀석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무언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을 해야 하는데. 나는 엄마를 불러 쭉정이를 걸러내는 법을 물었다. 엄마는 그것도 기억하지 못하냐면서 나를 채근했다. 졸업앨범. 앨범을 보면 녀석의 이름을 알 수 있을까.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 들은 채 천천히 졸업앨범이 어디 있는지 생각했다. 졸업앨범 속 나비넥타이가 잘 어울리는 녀석은 아직 나를 기억할까. 나는 녀석에게 쭉정이를 건지는 법을 알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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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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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누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누’가 되는 사람. 왜 그런 적 있잖아요. 너무 힘들어 모든 걸 포기하고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은 거. 마치 수영장의 유수 풀처럼 말이에요. 흐름 따라 주르륵. 생각해보니 저는 어렸을 때부터 유수 풀을 정말 좋아했어요. 돌아다니는 튜브 하나 챙겨 그 위에 가만히 누워있음 제 갈 길 알아서 가는 걸요. 저는 당연히 제 인생도 그렇게 정해진 길을 따라 유수 풀의 흐름처럼 흘러갈 줄 알았어요. 정말 평탄하게. 두둥실 하늘에 뜬 구름처럼.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구름은 먹구름이 되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어렸을 때의 전 몰랐나 봐요. 수영장엔 저만 있는 것도 아니고, 제 갈 길에도 저만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자꾸 사람들과 부딪쳐서 튜브에서 떨어지고, 물을 먹고. 눈물 콧물 쏙 빼고 눈을 뜨면 이미 내 주변의 흐르던 흐름은, 튜브는 저만치 지나가 있더군요. 다음 흐름을 타면 되는 게 아니냐고요? 튜브를 주워서 새로 타면 되는 거 아니냐고요? 그게 말처럼 쉽나요. 제가 튜브에 올라가려면 다른 사람이 튜브에서 내려야 해요. 마찬가지로 제가 흐름에 끼려면 다른 사람이 저처럼 낙오돼야 하고요. 저는 핑계지만 그게 싫었어요.

 

생각해보면 유수 풀은 가만히 있는 곳이 아녜요. 가만히 있어도 돌긴 하는 곳이지. 제가 왜 튜브에서 미끄러지고, 흐름을 놓쳤는지 아세요? 멈춰있어서 그래요. 멈춰있어서. 다른 애들은 막 물장구치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는 떡 하니 튜브 위에 누워 하늘만 바라보며 궁상을 피워서 그래요. 우리 엄마도 그랬어요. 다 네 게으름 때문이다. 다 네 탓이야. 아녜요. 엄마, 아녜요. 죄송하지만 우리 집 돈 때문이에요. 우리 집은 남들보다 좋은, 단단하고 깨끗한 튜브를 살 돈이 없어요. 제게 수영을 가르칠 수도 없고요. 저를 다시 흐름으로 밀어 보낼 힘도 없잖아요. 엄마, 그리고 아빤. 엄마 아빤 모두 거짓말쟁이에요. 약골에다가. 우리 집이 가난해서, 가난해서 제가 학원도 못 다니고 공부에 대한 열의가 없어진걸요. 아, 물론 거짓말이에요. 이 모든 건. 제발 섣부른 동정심 갖지 마세요. 제가 한 이 모든 말은 거짓말이에요. 전 거짓말쟁이니까요. 우리 집 돈 많아요. 한 이건희처럼?

 

어쩌면 제가 튜브를 뺐기 싫고, 남의 낙오된 자리에 들어가기 싫다고 말하는 것도 거짓말일 수 있겠네요. 저는 거짓말쟁이니깐. 근데 확실한 건 전 이미 낙오돼서 저 멀리 끄트머리에 걸쳐있다는 거 에요. 그런데 정말 웃긴 건 사실 제가 있는 곳은 완벽한 끝이 아녜요. 저 뒤가 있어요. 생각해보면 이 유수 풀은 이미 정원초과인지 모르겠네요.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좁거든요. 저는 지금 딱,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위치에 있어요. 제가 있는 위치는 정말 한적하죠. 그만큼 외롭고요. 다른 애들은 적어도 뭉쳐있는데 전 그러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가끔, 저도 앞으로 나갈 때가 있어요.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요. 그냥 물속에서 빈둥거리며 있고 싶은데 뒤에서 뭘 나가려고 하는지 자꾸만 부딪쳐요. 그러니 남들에게 치이며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죠. 뒤에서 올라오려는 애들에게 밀려서 앞으로 가는 거 에요. 뒤에 있는 애들은 저기 앞이 좋아 보이나 봐요. 어차피 꽉 막힌 건 똑같은데. 힘든 것도 똑같은데. 참 웃기죠. 전 앞으로 가기가 싫어요. 나는 앞으로 가기 싫은데, 싫은데. 정말 싫은데. 히히 이것도 거짓말이에요.

 

그거 아세요? 지금 당장 근처에 있는 사람 누구든 빤히 쳐다봐보세요. 그 사람이랑 눈이 마주칠 때까지요. 싫으면 어쩔 수 없고요. 저는 보통 그걸 당해요. 하는 게 아니라. 아무튼, 지금 하고 있나요? 보고 계신가요? 그 사람의 표정이 변하는 게 보이시나요? 처음엔 웃었나요? 점점 입꼬리가 내려가나요? 눈가가 찡그려지나요? 당신을 향해 다가오나요? 아니면 도망가나요? 네, 저는 도망 다녀요. 어딜 가나 저를 보는 시선이라 도망가는 것도 아니죠. 단순히 피해 다녀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무서운지 당신은 아시나요? 아니지, 제가 너무 성급하게 물었네요. 당신이 보기엔 그가 당신의 시선을 좋아하는 것 같나요? 당신은 왜 그를 쳐다봤죠? 제가 보라고 하지 않고 사람을 쳐다볼 땐 그 기준은 무엇이죠? 저는 다 알고 있어요. 당장 말하세요! …… 사실 말 안 하셔도 되요. 저는 다 알고 있으니까요. 이 모든 건 제 열등감이에요. 흐름에서 벗어난, 튜브를 놓친 반항아의 일부에 속하죠. 저는 다가가지 못하는 쪽에 속해요. 앞뒤가 막혀 있는 사람이니까요. 저는 관상용이죠. 물고기는 화나도 어항을 치지 못해요. 자기만 다칠 걸 알기 때문이죠. 하지만 전 가끔 그런 물고기를 본 적 있어요. 일부러 어항에 부딪히는, 물고기에게도 피가 나더라고요. 그때 처음 알았어요. 피가 난다는 걸. 심지어 내 피와 똑같은. 붉은색의.

물고기는 왜 어항에 부딪히는 걸까요. 모르죠? 당신들은 아마 모를 거 에요. 이해하려고만 하겠죠. 이해만 하겠죠. 죄송해요. 제가 좀 심보가 고약해요. 기분 나빴던 건 아니죠? 이해해줘요. 저는 ‘누’가 되고 싶은 삶을 원하는 사람이니까요. 저는 지금 제 본분을 다하는 거뿐이에요. 그런 김에 더 나아가서 저는 당신들을 뭐라고 불러야 하죠? 이 쯤 되니 당신들을 편히 부르고 싶어져서요. 좀 더 제 얘기를 하기 쉽게 말이에요. 음… 아! 어항, 어항 괜찮죠? 저는 이제부터 물고기를 할게요. 저를 물고기라 불러주세요. 당신들은 어항이에요. 아 이제 좀 살 것 같네요. 제 어항이 보이니까요. 여기까지가 내 어항이었구나. 감사해요. 제 어항이 되어주셔서. 저는 이제부터 계속 당신에게 누가되면 되겠네요.

 

물고기가 되니까 수영장에서도 좀 더 수월할 것 같네요. 물 안에서도 숨을 쉴 수 있고. 사람들 틈을 빠르게 비집고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쩌면 앞으로도 갈 수 있을까요? 저는 이제 튜브도 필요 없어지고 흐름도 필요 없어졌으니까요. 하지만 그럴 필욘 없겠네요. 제겐 어항이 있으니까요. 아 이 유수 풀도 어항이었나. 뭐 전 작은 걸 좋아하니까요. … 아, 맞다 물고기가 돼서 물 안을 헤엄치다 생각 난 건데 전 그냥 물속에서 콱 죽어버리면 좋겠단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런 걸 자살이라고 하나요? 그 사람이 시킨 걸 하는 거면 자살인가요? 타살인가요? 아, 그냥 말해본 거 에요. 그냥. 뭐 이제는 물속에서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순 없겠지마는. 물고기는 물에 빠져도 죽질 않잖아요. 하하 나만 웃긴가. 어항님도 웃어주세요. 그리고 어항님은 제게 콱 죽어버리란 말을 하진 말아주세요. 어쩌면 전 그땐 어항에 몸을 박을지도 모르니까요. 저는 ‘누’가 되는 사람이, 아니지 물고기가 되고 싶은 거지. 죽고 싶은 게 아니니까요. 그게 그건가? 히히

 

이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땐, 그러니깐 제가 사람이었을 때요. 그땐 어항님을 만나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죠. 그냥 잠을 자야 할 시간에 숨이 너무 막혀 숨 좀 트자며 쓴 글이었어요. 이 글도 대충 쓸 생각이었죠. 평상시처럼. 난 내 꿈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야 하며. 자신을 위로하고 달래며 자위할 수 있게. 뭐, 지금도 대충 쓰고 있긴 하지만요. 그러니깐 제 말은, 이 글도 자위할 목적으로 썼다는 거 에요. 표현이 너무 그런가? 제가 단어를 잘 몰라요. 이해해주세요. 아무튼, 그런데 시간이 왜 이렇게 지나가는지 모르겠어요. 대충 쓰고 있는데 쓸 게 왜 이리 많은지 지금도 한 넉 장은 남은 것 같아요. 잠깐만요. 지금 왠지 뭐라고 말하신 것 같은데? 제가 한 번 맞춰볼게요. 음… 이렇게 재미없고 지루한 걸 더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쁘다. 라는 식으로 말했죠? 에이, 다 알아요.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전 괜찮아요. 제가 당신을 위해 말해줄게요. 잘 들으세요. 한마디만 할 거니깐.

“나가세요.”

 

읽기 싫으면 이제부터 멈추셔도 돼요. 홈페이지를 끄고 제 갈 길 가세요. 당신이 아직 튜브를 잃지 않고 흐름에서 안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건 충고이자 부탁이자 권유에요. 전 붙잡지 않으니깐. 전 뒤 돌아보지 않거든요. 지금 전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걸 후회하고 있지만 말이에요. 아 그래도 뒤를 돌아보지 않아요. 그니까 끝까지 써보려고요. 이유는 없어요. 신념을 지키는 것도 아니고요. 저 같은 사람에게 신념 따위가 있겠어요. 제가 글을 쓰는 건, 그냥 제겐 남은 건 오직 시간이니까요. 흐흐흐 왠지 이제야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손바닥을 비벼야겠어요. 열을 만들려고요. 지금은 매우 춥거든요. 새벽녘의 겨울이니까요. 아 나는 손이 없구나.

 

어항님 결론이 뭐냐고요? 빨리 듣고 싶다고요? 참, 아까부터 계―속 말했잖아요. 전 ‘누’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요. 이대로 다 포기하고 최하층까진 아니어도 하층 정도에 만족하며 치이는 대로 살 거라고. 그래서 남들에게 ‘누’를 끼치며 살고 싶어요. 엄마든 아빠든 형이든 친구든 그 누구에게도 속칭 ‘빨대’를 꽂고 살고 싶어요. 남들이 제 튜브가 돼주면 좋겠다는 심보죠. 이건 제 속마음이에요. 왠지 이건 거짓말 같지 않네요. 하지만 이제 제겐 튜브는 필요 없고 (거듭 말해서 난 물고기니깐) 다른 사람들도 필요 없어요. 제겐 어항님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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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끝내도 되지만… 에잇, 저는 솔직해지기로 마음먹은 거짓말쟁이 물고기니까요. 끝까지 저는 글을 쓸 거 에요.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때까지요. 아직은 할 말이 남았네요.

 

누가 되고 싶은 사람으로서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어항님. 이번 단락에서만큼은 물고기가 아니라 다시 사람으로 있을게요.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거든요. 아무튼, ‘누가’되고 싶은 사람으로 깊게 생각해보면. 네, 이번엔 ‘누가’에요. ‘누’가 아닌 ‘누가’, 나 아닌 다른 사람. 전 제가 아닌 ‘누가’되고 싶었어요. 어쩌면 짐작하셨겠지만 전 어항님에게, 다른 사람에게 ‘누’가 되는 정도에 만족하지 않았죠. 솔직히 죄송하지만 어항님이나 다른 사람에게 ‘누’가 되는 삶은 정말 피곤했어요. 가끔씩 그들이 내비치는 눈빛과 혐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자꾸 인식하게 되는 제가 싫었죠. 그래서인지 저는 제가 아닌 ‘누가’되는 걸 꿈꿨어요. 그래서 전 꿈을 이룬 것 같네요. 물고기가 됐잖아요. 히히 일단은 이건 접어두고 전 ‘누가’되는 걸 꿈꿨는데 그 ‘누가’는 좀 높은 사람들이었어요. 유수 풀의 튜브를 놓치지 않은 사람.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은 사람. 완벽한 사람이었죠. 그런 사람들이 되게 부러웠어요. 속으로도 겉으로도 표현했지만, 물론 욕이었죠. 밥 먹고 공부만 처 했냐 시발 것들아……. 너무 표현이 거칠다고요? 이해해줘요. 이 모든 게 부러워서 한 거 아니었겠어요. 부러워서. 너무 나쁘게만 보진 말아주세요. 그럼 더 이상 제 얘기를 하기 힘들어지니까요. 어항님만큼은 적어도요. 분위기를 전환하는 김에 그거 아세요? 제가 ‘누가’되길 바란다는 점에서부터 전 여러분들에게 거짓말쟁이임을 인증한 셈이에요. 전 아까 남들의 튜브와 남들이 낙오된 흐름을 타고 가기 싫다고 말했죠. 다 위선이었어요. 가식. 밑바닥 쳐보니까 알게 되더라고요. 제 진심을. 괜히 삐뚤어지고 싶더라니 까요. 철없는 시절처럼. 욕도 막 내뱉고, 막 때리고, 울고, 불고, 난리 치고. 결국에는 어항에 머리를 쾅 박는. 하아, 상상만 해도 기진맥진하네요. 벌써 머리에서 피가 보이는 것 같아요. 진짜 핀가.

 

제가 ‘누가’되고 싶다고 생각한 건 남들이 나보다 앞에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였어요. 그걸 인정한 건 훨씬 뒤고요. 인정하기 전까진 ‘누’가 되는 사람이 되길 원했고, 인정하고 나선 ‘누가’되는 사람이 되길 원했어요. 말장난 같죠? 그런데 진심이에요. 제가 이 글을 쓴 발단도 이 ‘누’, ‘누가’에서 시작했죠. 그거 아세요? 모두들 처음엔 자신은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건 정말이에요. 전 그랬어요. 제가 생각만 하면 모든 걸. 그러니까 이 전부를 다 해낼 줄 알았죠. 저는 이 생각을 꽤 오래 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길게 낙오를 할 수도 있었던 거죠. 언제든 다시 튜브를 타고 그들의 흐름에 합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네 알아요. 자만이었던 거. 그래서 지금 이 꼴이 된 거. 그런데도 정신을 못 차리고 글 쓴다 하며 새벽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거. 가능성이 없는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도. 흠, 이 쯤 되면 밝혀야 할 것 같네요. 어항님이 궁금하실 것 같으니까요. 제 흐름의 명칭은 1999에요.

 

저는 지금 2017을 지나는 중이에요. 막 2016을 지나왔고요.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 참, 위를 보세요, 위를. 수영장 위를 말이에요. 뭔가 모르게 네온사인 빛을 내는 야광 판이 보이시나요?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글씨가 보이시죠? 그럼 자그마하게 적혀있는 봄, 여름, 가을, 겨울과 그 아래의 숫자가 보일 거 에요. 적혀 있는 게 보이시죠? 네, 그거 맞아요. 2017. 그게 날짜를 가리키는 판이에요. 친절하게도 계절을 알려주죠. 흐름을 타고 얼마나 왔는지 알려주는 거 에요. 저에겐 좌절과 절망을 곱씹게 해주는 아주 고마운 판이죠. 제 흐름이 지금 어디쯤 있을까요. 저 판을 봐도 모르겠어요. 몇 년이 지난 것만 어렴풋하게 알 수 있을 뿐이지. … 어? 저기 저 정체된 구간이 보이시나요? 지금 보니 저기 끄트머리에 걸친 사람 중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대충 얼굴만. 자식이 커서 경찰 하고 싶다더니. 지금 하려고 노력 중인가 봐요. 멋지네요. 정말 부러워요…… 흠흠. 아니에요. 부럽지 않아요. 잘못 들으신 거 에요. 그렇다고요. 뭐. 그건 그렇고 대충 짐작하기에 저기에 있을 것 같아요. 제 흐름이 말이에요. 저기는 대입이라는 구간이거든요. 저기에 사람들이 왜 몰려 있는지 아세요? 뒤에선 거센 물살이 자꾸 나를 떠미는데 앞으로는 가지 못하고 계속 나를 압박하는 저런 곳에서 속 답답하게 왜 있는지 아세요? 그런 게 재밌어서? 참, 사람들이 전부 변태이게요? 다 틀렸어요. 입구가 작아서 그래요. 작아서. 저기, 쩌어기, 조그만 콩알 한 개 보이세요? 저게 구멍이에요. 저걸 들어가야 해요. 이후엔 뭐가 있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다들 저길 들어가야만 해요. 아니,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고요. 저도 들어가고 싶은데 제 차례가 올까요? 만약 온다면 전 얼마나 기다려야 하죠? 제가 있는 위치에서 저긴 너무 멀어요. 그러면 뛰어가라고요? 아니, 지금까지 뭘 들으신 거 에요. 저길 가려면 힘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힘도 재능도 능력도 그 무엇도 하나도 없다고요. 아시겠죠? 그래서 전 방법을 찾았어요. 바로 왼쪽 길로 들어가면 되는 거 에요. 뭔가 밖에서 봤을 때 안에 쓰레기만 가득 찬 것 같은 오물 가득한 물로, 저 하수구 같은 곳으로 빠지는 길로 가면 되는 거 에요. 저 길은 꽤나 큰 구멍이에요. 이마저도 못 건너는 사람이 있지만 말이에요. 그들은 돼지죠. 살만 뒤룩뒤룩 쪄서는 물에도 뜨지 못하는 겁쟁이들. 사실 그게 바로 저에요. 그래서 전 다이어트를 하려고 하는 중이죠. 저 구멍이라도 들어갈 수 있게 말이에요. 솔직히 저 큰 구멍 뒤에도 뭐가 있는지는 알 수 없어요. 알고 보면 정말 1급수 물에, 예쁜 여자들이 비키니를 입고 수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정말 두려워요. 저 작은 구멍은 뭐가 있는지도 잘 안 보이니까 그냥 들어간다고 해도, 이건 대놓고 싫고 짜증이 나는 게 널려 있잖아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걸 더 무서워한다는데 개소리인 것 같아요. 전 보이는 게 더 무서워요. 작은 구멍을 못 들어가는 건 끈기 문제가 아니냐고요? 여보세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네? 정답이에요. 어항님도 알다시피 저는 끈기도 없고 구멍에 들어갈 수 있는 체형도 안 되는 거짓말쟁이 돼지물고기에요. 지금은 사람이지만요. 어항 속에 갇힌. 이젠 어디가 제 진짠지 모르겠어요. 사람인지 물고기인지. 전 제가 물고기였으면 좋겠네요. 멀리멀리 떠나갈 수 있게.

 

이거 보이시나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던 저는 제 흐름이 지금 어디를 가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어요. 지구가 태양을 따라 도는 걸 왜 중학교 때 알려주는 걸까요. 전 저를 향해 지구가 돌아가는 줄 알았어요. 제가 마치 신인 줄 알았죠. 잠깐 지구로 마실 나온 거로 생각했어요. 신을 하기 위해서 인간 생활을 연습해보라는 거라나 뭐라나. 그래서 ‘트루먼 쇼’를 보며 소름이 돋았고 지금도 나에게 사람들이 장난을 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솔직히 그랬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불행한 건 싫으니까요. 차라리 몰래카메라라고 해줘요. 거짓말이라고 해줘요. 이건 거짓말쟁이의 바람이에요. 어항님.

 

제발 하루라도 헬렌켈러의 바람처럼 전 다른 사람이 되어보고 싶어요. 눈을 뜨고 싶은 것처럼 저도 잘하는 게 있으면 좋겠어요. 딱 하나만 그것만 바라볼 수 있게. 너무 이기적인가요? 차라리 이기적이 될 테니 뭐든지 주세요. 잘할게요. 정말 잘하려나? 잘 하는 게 생겼는데 잘할 필요가 있나? 그럼 차라리 행복하게 살 테니 제게 힘을 주세요. 어항님 기도합니다. 다음 문단으로 넘어갈 때는 제게 힘이 생겨야 해요. 무조건 하나는 잘할 수 있는 그런 힘이요. 부탁할게요. 어항님은 절 품고 있는 전지전능한 어항이잖아요. 믿습니다. 아멘.

 

왜 힘을 안 주시나요? 당신도 결국은 나약한 존재였네요. 누구에게 힘은 줄 수 없는, 그저 불쌍한 눈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는. 제가 그렇게 보지 말라고 했죠. 절 보지 마세요. 절 가만히 내버려 두세요. 전 지금이 좋아요. 지금이 행복해요. 하아 제발, 지금이 행복한가요. 제가 행복해 보이시나요? 말하지 마세요. 전 준비가 안 됐어요. 아직은. 절 당신의 애인 다루듯이 다뤄주세요. 소중하게. 사랑스럽게. 문지르듯이.

 

그래서 전 ‘누가’되고 싶다는 거 에요. 이렇게 불행하니깐 네, 저 다시 물고기로 돌아왔어요. 사람이 되니 복잡한 게 참 많네요. 특히 감정이 북 받쳐 올라요. 짜증나게. 아무튼, 그거 아세요? 어항님. 물속에선 울어도 티가 나지 않아요. 저는 경험해봐서 알죠. 많이 울어봤거든요. 우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요. 울고 나면 콧등이 시큰한 게,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울 때도 있었죠. 물속에서 울 때면 숨이 막혀 와요. 물속에서 숨을 참아야 하는데 거기서 운다고 생각해보세요. 눈과 코와 입과 귀에 물이 들어가 여간 불편하지 않은 데가 없죠. 눈은 뻐근하고 코는 시큰하고 귀는 먹먹하고 입은 칼칼하고. 그런데, 전 일부로 그랬어요. 그래야지 평상시의 내가 아니니까, 그렇게 된통 당해봐야지 병신이 된 기분이니까. 장애인을 비하하는 건 아녜요. 그냥,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 에요. 그 정도로. 자신을 혐오 하냐고요? 잠깐만 거울 좀 볼게요. 아 손이 없는데… 어항님, 어항님의 유리에 얼굴을 좀 비춰볼게요. 그래도 되죠? … 음 … 잘 모르겠네요. 그냥 못생기고 뚱뚱하고 거짓말쟁이일 것 같은 물고기가 있어요. 아 이게 혐온가?

 

이제 잘 아셨죠? 전 ‘누’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고, 더 나아가 ‘누가’되고 싶어요. 그런데 그것도 사람이어야 하는 것 같아요. 누가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거니까요. 인간성은 물고기인 저에겐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매우 소중한 것이었나 봐요. 그렇기에 물고기는 안 되나 보네요. 미안해요. 아깐 되는 줄 알았는데. 결국, 꿈을 이뤘다는 것도 저 혼자만의 착각이었네요. 생각이 바뀌었어요. 다른 사람이 제가 됐으면 좋겠어요. 내가 ‘누가’되는 그런 미래만 생각하지 말고 ‘누가’ 내가 되는 상상을 해봐야겠어요. 너도 고통 좀 받아보라지. 그런데 누군가가 내가 됐는데 나보다 더 잘살면 어떡하죠? 그렇담 나는 무엇인가요. 도대체가 내가 살아 있는 게 도움은 되는 걸까요? 차라리 그때 죽을 걸 그랬어요. 모든 걸 포기하고. 그냥 물속에 잠겨가며.

제겐 하나의 바람이 있어요. 어렸을 적 제 꿈이었죠. 저를 특별한 사람이라 생각하면서도 저는 평범한 사람이길 원했어요. 남들과 똑같은. 남들이 좋아하는 걸 좋아하고, 원하는 걸 원하는. 누구든지 그렇게 되길 원하는 사람. 그 누군가가, 거의 이 세상의 많은 누군가가 원하는 행복한 삶. 평범하게 웃을 줄 아는 사람. 전 그런 사람이 되길 원했었죠. 그런데 전 그러지 못하네요. 남들에게 빨대를 꽂으며 사는 ‘누’가 되는 사람과, 남들이 되고 싶어 하는 ‘누가’되는 사람은 그 누구도, 그 ‘누가’가 원하는 사람이 아녜요. ‘누가’는 되고 싶어 하지 않아요. 그런 사람을. 저 같은 사람을. 그래서 저는 물고기가 되었는지도 몰라요. 이런 사람은 싫어서. 남은 게 자존심밖에 없는 그런 사람은 되기 싫어서. 허망하죠. 지금 제 기분이 그래요. 맷돌 손잡이가 없어도 한참은 없는 것 같네요. 어항님. 왜 나는 날 이끌어가지 못하는 걸까요. 전 더 이상 도망치질 못하겠어요. 이제 더 이상 전 물고기가 될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물론 어항님도요. 어항님 죄송하지만 이제 당신을 깨트려도 될까요?

“……”

장난이에요. 지금은요.

 

*

 

물이 차가워요. 전 그런 물속에서 19년을 살아온 셈이죠. 처음엔 따듯했을 거 에요. 시원했거나.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땐 좋았겠죠. 사람이 되니 저를 치고 가는 물살이 더욱 강하게 느껴지네요. 물살. 물살이 저를 밀고 있네요. 그런데… 전 잘 밀리지 않아요. 왜 그러죠? 아, 땅에서 제 발이 앞으로 나아가길 거부하고 있군요. 생각해보니 전 지금 물살을 버티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속도가 느린 것도 그런 거 때문인 것 같고요. 저는 왜 앞으로 가길 싫어하는 걸까요. 솔직히 나는 앞으로 가길 원하는 것 같은데 왜 내 몸은 거부하는 걸까요. 물살이 되게 차요. 감기에 걸릴 것 같아요. 전 추운 걸 싫어해요. 그 정도로 물에 오래 있길 싫어하고요. 생각해보니 제 주변엔 싫어하는 것투성이네요. 저 작은 구멍. 막혀있는 앞뒤. 숨 막힐 것 같은 사람들. 나를 쳐다보는 시선. 주위의 모든 것. 도대체 제가 왜 여기 있죠? 다 제가 싫어하는 것밖에 없는데 말이에요. 저는 깨달았어요. 어항님, 절 지켜보고 계신가요? 절 꺼내주세요. 지금까지 당신에게 한 저의 무례를 전부 사과할게요. 제발 당신이 나를 퍼서 물 밖으로 내던져 주세요. 차라리 그게 낫겠어요. 전 여기서 도무지 버틸 수 없겠어요. … 네? 그럴 수 없다고요? 왜요? 이유가 뭔데요. 당신은 정말 끝까지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저 말만, 말밖에 없어요. 진짜로 전 당신을 증오해요. 지금 제게 생각하라고 하신 건가요? 나갈 방법을 간구하라고 하시는 건가요? 누구한테 간구합니까. 누구한테 기도합니까. 도와줄 생각이 없으면 제발 저를 가만히 내버려 두세요. 생각은 그놈의 생각. 알았어요. 생각할게요. 마지막으로 어항님의 부탁을 들어드리죠. 당신은 저를 버렸어도 그러니깐 저를 연민의 눈으로 쳐다보지 말라고 말했잖습니까. 괜찮아요. 전 당신을 이해하니까요. 그러니 생각할게요. 심호흡 좀 하고. 지난날의 저를 돌아볼게요.

 

…… 깊게 생각해보면, 배를 치는 흐름에 토가 나올 지경이지만, 집중해서 생각해보니 전 유수 풀의 흐름을 좋아했던 것 같진 않아 보여요. 물살을 타고 앞으로 나아가기보단 그 물살을 거꾸로 역행하는 걸 좋아했지. 그 증거가 아까 제가 물살을 버티던 거 에요. 그때의 표정이에요. 지금까지 써 내려온 문장들이에요. 전 싫은 것들 가운데서 전 버티고 있었던 거죠. 이제야 깨달았어요. 저는 미는 힘을 이겨내며 나아가는 걸 좋아해요. 친구들과 물도 왕창 마시며 콜록대기도 하는 그런 걸 말이에요.

 

왜 이제야 생각나는 걸까요. 남들에게 폐를 끼치는 ‘누’가 되는 사람. 내가 남들이 되고 싶은 ‘누가’되는 사람. 남들이 바라는 걸 나도 바라고 싶은 ‘누가, 되는’사람. 남들이 나를 바라고 원하고 따르고 싶어 하는 ‘누가’되(려)는 사람. 이 모든 게 거듭 더해져 ‘누가되는’사람이 된다는 걸요. 저는 거듭하여 보태어지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였어요. 말 그대로 누가되는. 점점 거듭하려 보태어지는. 이제야 깨달았네요. 그 모든 사람이 되고 싶어도 못 됐던 이유를. 되고도 힘이 들었던 이유를. 저기에 계단이 보여요. 정말 가까운 곳에 있었네요. 왜 전 못 알아봤을까요. 옆을 보기 싫었던 거겠죠. 주변을 살피기 싫었던 거겠죠. 정말 전 창피할 정도로 겁쟁이이었네요.

 

이렇게 길게 쓸 생각이 없었는데 벌써 새벽이네요. 공기가 차요. 이런 날 수영하면 감기 걸릴게 십상이죠. 수건을 준비해둬야겠어요. 곧 제 친구들이 나올 것 같거든요. 혹시 모르니 따듯하게 안아주려고요. 어… 물속에서 나와서 보니 저들이 어떻게 보이냐고요? 저들은 물고기로 보여요. 전부는 아니고 당연히 저와 같은 사람들만요. 저기에서 적응하지 못한 자들이요. 그런데 저들은 그냥 물고기가 아녜요. 연어지. 물속을 회귀하며 돌아오는 그런 대단한 존재 말이에요. 적어도 전 그렇게 생각해요.

 

누를 끼치다.

누가 되다.

누가 되는 사람이 되길 원하다.

누가 되려는 사람이 되길 원하다.

거듭 더해지다.

저는 누가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 모든 의미가 거듭 더해져 단단해질 거거든요.

 

그러니 어항님 당신을 깨트려도 되나요? 전 이제 제 다리로 스스로 설 수 있을 것 같네요.

 

쨍그랑

 

“저기 저는 누가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당신을 어항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히히 당연하죠. 지금부터 전 어항을 할게요. 당신을 품어줄 수 있는. 뭐든지 제게 거듭해서 털어놓으세요. 아, 일단 당신의 물기부터 말리죠. 제가 수건을 준비해놨어요. 그럼 좀 더 차분하게 말을 할 수 있을 거 에요. 시작 전에 일단 한 마디하고 시작하죠. 무슨 말인지는 알죠? 모르시겠다면 저를 따라 하세요.

 

하나

 

 

 

그래요. 난 누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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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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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잠

 

하늘은 십자수를 꿰매는 듯

촘촘한 구름의 틈마다 하얀 눈실이 내려와요

뭉쳐진 솜이 문지방을 두드리며 나를 불러요

바닥에 층을 이뤄

한층 두층 세층···

겹겹이 쌓인 솜에 물이라도 채워진 건지

문은 열리지 않아요

아빠, 문이 열리지 않아 밖을 나갈 수 없어요

늑대가 밖을 돌아다닌다고

다 너를 위한 일이라고 말하시는 아빠,

늑대의 울음소리와 아빠의 고성은 비슷한 듯해요

 

-방은 따듯해

바람이 창을 두드리며 저를 불러요

-이불은 부드러워

눈이 자신의 부드러운 살결을 해님에게 보여요

-귤을 달콤해

저는 하늘에 걸린 구름이 먹고 싶어요

 

거친 숨을 내쉬는

아빠, 문을 열어주세요

입김이 모락모락 올라가

얼어붙은 하늘을 녹이고

하늘에 걸린 발가벗은 새도 끼룩끼룩,

하이디처럼 미소를 띠지 않나요?

기러기는

마르코폴로 마르코폴로

저는 모험가가 되고 싶어요

그러니 아빠, 제발 문을 열어주세요

그러지 않으면 저는 새가 되어

하늘에 걸릴지도 몰라요

 

강이 얼어붙고

신발이 솜 깊숙이 파묻힌다고 해도

사랑하는 아빠

문을 열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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