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첫째 주 우수작(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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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 불볕 더위라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입니다. 잠시 밖에서 걷기만해도 땀이 줄줄 흐르죠. 글틴 친구들 더위 조심하시길. 이번에는 너무 많은 시가 쏟아졌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두 분이 폭발적인 창작열을 보여준 듯해요. 사실 여러 친구의 작품이 아닌 한 친구의 작품을 계속 보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매우 난감한 일이랍니다.  여러 분들이 공 들여 쓴 작품을 오래 봐야 하는 저로써는 집중력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제발 오늘 쓴 시를 오늘 올리지 마시길. 퇴고하고 더 이상 퇴고가 되지 않거나 완성된 작품이 맘을 흡족하게 할 때 발표를 했으면 좋겠어요.  시가 동시에 올라와 한꺼번에 피드백을 하려면 저도 반복적인 말을 할 수밖에 없답니다. 다작을 하는 것은 얼마나 열심히 쓰고 있는지 알 수 있지만 시의 순도가 얼마나 높은가에 대해선 더 따져봐야 합니다. 하루에 몇 편을 쓴 건지, 차곡차곡 써놨던 시를 한꺼번에 올린 것인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저는 시를 고민하고 창작하는 절대적인 시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칫 다작을 하다보면 대상을 관찰하고 깊이 사유하지 않고 자기 복제만 할 수 있으니까요. 시 창작은 감정의 작용이기에 밧데리처럼 방전되면 다시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에 에너지를 얼마나 쏟았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한 작품에 온힘을 쏟아보시길 바랍니다.

이번주에도 우수작을 선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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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멜랑콜리다성, <에프터 이미지> : '모든 이별'을 퇴고했군요. 이별 이후 누군가를 잊지 못한 심경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려고 애써서 박수를 보냅니다. '나뭇가지는 다른 이름으로 나뭇잎을 다시 달고 있었다'는 구절이 인상적었어요. 그러나 시적화자의 심경이 '새'와 '낙엽'으로 드러내는 게 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게 아닌지 고민이 되는 군요. 오히려 더 명료한 이미지로 화자의 마음을 담아보면 어떨까요. 윤희상 시인의 시 '무거운 새의 발자국'을 추천해요.

 

 

여름별, <죄책감과 기만의 상관관계> : 제목이 눈길을 사로잡네요. '죄책감과 기만의 상관관계'가 뭘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제목만 보고는 죄책감이 기만으로 변하는 상황 혹은 죄책감과 기만 사이에서 갈등하는 화자를 표현한 걸까 싶기도 했어요. 여튼 시 본문은 1연 화자가 독하게 맘을 먹고 상처를 주려 했지만 맘이 아파 죄책감이 든 듯해요. 2연 화자는 '너'와 눈을 마주치지 않죠. 너가 화자를 기만한 건지, 화자가 너를 기만한 건지 그러한 상황이 아닐까 싶어요. 애써 눈물을 참는 화자가 느껴집니다. 근데 '너'가 누군인지, 무슨 일이 있는지 (무엇 때문인지) 궁금해요. '도망치듯 방문을 닫았어'라고 하니 '너'는 화자의 동생(가족)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화자의 모습만으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점은 있으나 정황이 모호한 게 아쉽습니다. 만약 구체적인 제목으로 시 본문을 아우르거나 의미를 확장할 수 있는 정황 혹은 이미지가 더 있다면 어떨까 싶어요.

 

 

민하늘, <푸른 장미의 꽃말은 기적> : 우리는 기적을 바라지만 기적이 일어나는 일이 거의 없죠. 시적화자도 그런 기적을 바라는 마음에 푸른 장미를 샀겠죠. 그러나 금방 기적을 잊듯 푸른 장미를 잊어버렸고 그런 심경을 드러내고 있어요. 이 시는 경험에서 비롯된 듯 현실감이 있어서 좋았어요. 시적 전개도 매끄럽고 사유를 잘 전개했답니다. 생각해봐야 할 것은 '사실'에 맞는지입니다. 우선 꽃말이죠. 푸른 장미의 꽃말이 기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노점상 아주머니가 화자에게 판매를 하기 위해 꾸며냈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꽃말이 무엇이든 화자에게 푸른 장미가 '기적'이어야 하는 필연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또 하나는 장미는 화분에 심어놓은 식물(생명)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화분이라면 물을 주고 잘 가꿀 수 있지만 꽃병에 꽂아둔 장미꽃은 물이 마르면 말라버리거나 물을 갈아준다해도 시들 수밖에 없습니다. 상인이 꽃을 팔기 위해 꽃을 꺾었을 땐 이미 생명이 끊어진 상태인지라 '죽었다'는 표현도 고민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화자가 '기적은 빨리 죽는다는 것을'이라고 인식하는데 '죽는다'가 아닌 다른 표현으로 '깨달음' 혹은 '발견'을 독자에게 선사하면 어떨까 싶어요. 마지막 연은 후회하고 슬퍼하는 화자의 모습이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 아쉬워요. 감정을 감추고 기적에 관한 사유만으로도 충분히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답니다. 그럼에도 이 시는 가능성이 있답니다. 잘 퇴고해보세요.

 

 

세바시, <빗물> : 빗물(과객)의 입장을 느낄 수 있어 재밌어요. '우산에게는 공감해줄 수 없잖습니까'는 구절이 인상적입니다. 우리는 바삐 살면서 누군가에게 스며들 듯 공감하기보다 자기 입장만 생각하잖아요. 마지막 연도 좋았어요. '비인 마음, 비인 눈동자/고요히 채우는' 빗물이 울림을 주는 군요. 그렇게 비워야만 채울 수 있는 관계처럼요. 그런데 한적한 마을버스 차창에 붙여 있는 빗물의 대사가 뒤섞여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오히려 대사가 없이 빗물을 관찰하면서 객관적으로 묘사한다면 어떨까 싶어요. 전지적 작가시점이니 가능할 듯해요.

 

 

 

 

이번주 고등부 우수작은 두둥!! <푸른 장미의 꽃말은 기적>, <빗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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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YP제국, <늘어나> : 시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해 공감이 됐어요. 이 시는 1~2연과 3~7연이 나눠져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저는 3연부터 시작하는 게 어떨까 생각했답니다. 1~2연은 사족처럼 느껴지고 2연의 비유는 적절한가 싶어요. 군더더기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3~7년에 1~2연을 녹여내도 좋을 듯해요. 이때 생각해봐야 할 것은 단순한 연상작용인지 더 고민해봐야 해요. 생각이 늘고 걱정이 늘어나는 것이 창작자에게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구체적인 형상화를 해보면 좋겠어요. 그럼에도 시적 대상이 '지우개'로 시작해 관념을 풀어낸 것은 좋았어요.

 

 

여전사 캐츠걸, <삭(朔)> : 이 시는 무엇보다 '삭'이라는 생경한 언어가 호기심을 자극했어요. 굳이 주석을 달지 않아도 된답니다. 오히려 설명으로 보여질 수 있어요. '이를테면~' 구절부터 설명으로 느껴지듯. 음력으로 매월 초하루마다 삭일이라고 하죠. 달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창작자에게 어떠한 자극을 줬고 이미지로 다가왔을까 궁금합니다. 사실 시 본문에서는 궁금증이 풀리지 않는군요. 시가 어렵게 다가온답니다. 이는 '삭'의 현상을 차용했을 뿐 문학적인 고민이 깊은 시적화자가 도드라지게 보이고 모호함(추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화자가 '알 수 없습니다'고 하듯 모호한 이미지 혹은 감정들이 수북하답니다. 그럼에도 좋은 표현이 있으니 시의 주제를 잘 드러낼 수 있도록 퇴고한다면 좋겠어요.

 

 

 

 

이번주 중등부 우수작은 두둥!! <삭(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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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월장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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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월장원을 발표합니다

 

 

 

 

첫째 주 /

 

세글자, <안경매니저> : 시가 짧지만 여러 생각이 들게 했어요. 재밌었습니다. 시적화자는 '네가 제일로 미워 보이는' 안경을 맞추는데 눈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눈이 좋아져서 미워 보이는 것이 왠지 제대로 봤다는 뜻으로 느껴져요. 화자가 각진 테로 바꾼 게 나쁘고 어렵게 보이려는 것이겠죠. 더 말하지 않아도 '너'가 왜 밉고 화자가 왜 각진 안경테로 바꾸는지 알 수 있었어요. 구어체로 쓴 것이 시의 맛을 살려준 듯해요. 다만 띄어쓰기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둘째 주 /

 

rien, <칼> : 시적 긴장감을 놓치지 않아 재밌게 읽었어요. '어쩌면 칼의 전생은 지독한 슬픔을 지닌 인간이었을 것'이라는 첫 구절부터 '당신이 비춰진 유리창이 떠올라 뜨겁고 날카로웠던 날을 생각하며'라는 마지막 구절까지 생생한 진술이 좋았어요. 묘사보다는 진술이 넘쳐서 아쉽지만 비유가 적절했고 상상력이 부풀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답니다. 다만 칼의 쓰임이 죽이기도 있으나 살리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셋째, 마지막째 주 /

 

본낯필오, <눈빛> : 예술은 연민에서 비롯되죠. 세상 만물에 대한 연민을 가진 자만이 관심을 갖고 관찰을 하고 발견을 하죠. 어쩌면 우리는 자기의 삶에 치중하고 있다보니 이웃의 삶에 무딜 수 있습니다. 이 시는 가난한 노인의 삶을 엿보려는 태도가 좋았답니다. 연민은 동정과 다르고 시적화자가 바라보는 시선은 연민이 아닐까 싶습니다. 화자가 바라봤던 수많은 눈빛들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차라리 죽였으면 싶은 선의에 찬 눈빛들'은 다소 모순돼 보여요. '선의'는 '남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거나 좋은 목적을 가진 착한 마음'인데 죽였으면 싶다니 이해가 되지 않거든요. 혹 그 눈빛들이 힘겨운 삶을 포기하려고 '차라리 죽었으면' 싶다는 것을 표현하려는 게 아닐까요. '웃기게도 그것으로 연명하는 인생'이라고 하니 죽을 각오로 산다는 말 같기도 합니다. 그것이 치열한 인생일 텐데 '웃기게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누군가의 누군가의 어깨를 붙들고 묻기를/사람은 왜 가난해야 하는가'은 불특정한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왜 묻는지 따져봐야 하고 무엇보다 직접적인 물음이 시적 긴장감을 떨어뜨린답니다. 창작자가 가난을 말하지 않아도 읽는이는 가난을 읽고 고민하게 됩니다. 그런 과정에서 독자도 시적 대상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면서 공감대를 형성한답니다.

 

별환, <걸음> : 재밌게 읽었어요. 여러모로 흥미로웠습니다. 그동안 별환 님의 시의 공간이 대체로 방인 듯합니다. 시어로는 '이불'이 자주 등장한 듯 싶고요. 이번 시는 공간의 확장을 느꼈다가 끝내 '이불'로 귀결됐어요. 구절마다 힘이 들어갔고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됐습니다. '이곳(?)'에서 시적화자는 경적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물론 전철은 경적을 울리지 않기에 철길이라고 말할 수 있고 화자는 탈선을 자주합니다. 거기서부터 상상이 시작되는 듯해요. 그래서 눈을 뜨기 전과 눈을 뜬 후(이불을 발로 걷어낸 후)의 정황으로 나눠진 게 아닐까 싶어요. 시적화자가 걸을 수 있는 발이 없기 때문에 상상으로 펼쳐놓은 정황들이 시적이기도 합니다. '끝은 끝을 내딛었다' '그림자의 자세는 편하고 게을러 보였다. 그것은 아무래도 이불 없이 잠에 든 것 같았다' 등입니다. 6연에서 '그림자 위로 드러누웠다'는 것도 의미가 잘 다가오지 않는군요. 여튼 추론해본 까닭은 '걸음'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잘 헤아려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시는 연마다 분절돼 있어서 하나하나 뜯어보면 구체적인 듯하나 전체적으로 이미지가 모아지지 않아서 아쉬움을 준답니다. 시적 표현이 풍부하니 화자의 상태나 시적 정황을 명확히 보여주면 어떨까 싶군요.

 

 

 

 

이번 고등부 월장원은 <안경매니저>, <칼>입니다.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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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월장원을 발표합니다

 

 

 

 

첫째 주 /

 

YP제국, <하고 싶은 것들> : 시적화자의 '하고 싶은 것들'이 이쁘고 귀엽습니다. 잘 읽었어요. 표현이 살아 있어서 화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어요. 다만 일차적인 시적 접근이 아쉽긴 하나 문장이나 이미지를 그리는 게 한층 성장한 듯해 좋습니다. '~싶어요'의 그 다음이 필요할 듯해요. 이를 위해 사유와 인식을 넓혀가며 시로 담아내는 게 중요해요. 그럼 시의 맛이 더 살아나겠죠.

 

 

셋째, 마지막째 주 /

 

암흑왕, <안녕> : 시적화자의 처지와 심정, 어린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난 시였어요. 시보다는 산문적 고백에 가까워서 일기를 몰래 읽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렇다보니 시어들이 대체로 관념적이랍니다. 그럼에도 솔직한 심정이 잘 드러나 좋았어요. 여튼 화자의 '평범함'이 '혼자'를 만들고 '불행'을 만들었다는 것이 안타까우면서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아요. 여기서 화자의 평범함은 모범생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해서 혼자가 됐는지 그 과정이 없습니다. 또한 화자가 불행을 끝내려고 노력한 것이 단순히 발버둥만 치지 않았을 텐데 어떤 노력을 했는지 모호해요. 아무리 노력해도 그 자리에 있어서 공허한 화자가 어린시절과 조우하면서 평온을 찾습니다. 그것은 추억 속에서 위안을 얻었을 뿐 지금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생각해봤어요. 어쩌면 이 시는 스스로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는 자기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위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자기만 추억이 모두의 추억이 되어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죠. 관념에서 탈피해 구상으로 나와야 해요. 하나의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듯 묘사에 집중하면서 이미지를 만드는 연습이 필요하답니다.

 

 

 

 

이번 중등부 월장원은 선정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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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셋째, 마지막째 주 우수작(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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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폭염주의보가 떨어졌다는 긴급재난 문자가 옵니다.  봄인가 싶더니 여름이네요. 여름방학이 글틴 친구을 기다릴 테고 그 전에 기말고사가 있겠네요. 저는 아주 오래전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무료했던 방학이나 지긋지긋한 시험이 그리워진답니다.  특히 글틴 친구들을 만나면서 학창시절을 추억할 때가 많아서 그런 듯해요. 아무래도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어서 그렇겠죠. 가만 생각해보면 지금 저도 사는 게 공부이고 매순간 시험을 보는 기분이랍니다.

이번에는 게시된 편수가 적어 셋째, 마지막째 주를 묶어서 우수작을 선정했답니다. 기존 친구들도 있고 새로운 친구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두 가지만 말씀드립니다. 하나는 친구들이 발표한 시에 관심의 댓글을 달았으면 좋겠어요. 작은 관심이 큰 힘이 되고 다양한 시각이 퇴고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는 사이 자기도 모르게 성장할 수 있거든요. 또 하나는 시집을 읽어야 합니다. 늘 강조했던 이야기죠. 시인들의 시를 읽지 않고 시를 쓰는 것은 가수의 노래를 듣지 않고 노래를 부르는 거랍니다.  물론 자기 혼자서 흥얼거리듯 맘대로 멋대로 노래해도 됩니다.  그러나 창작자 입장에서 창작법을 익혀 작품을 탄생시키면 엄청난 희열을 맛볼 수 있답니다.  물론 창작의 고통을 겪고 난 후 찾아오겠죠.

곧 여름방학입니다. 많이 읽고 많이 쓰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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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협궤열차, <수레바퀴> : '이 쓸쓸한 메모는 어설픈 추억의 조각이겠지요'라는 마지막 구절이 수레바퀴로 비유된 시적화자의 삶이 막연하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사는 것 같지만 잘 보면 어제와 오늘은 다르죠. 2연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에 공감이 갔어요. '구름이 낡을 수 있나요'는 구절은 인상적이었어요. 4연이 시적이지만 단상 같아서 아쉽기도 했어요. '오늘 제가 본 하루는 무척 짧습니다' '찬란한 내일의 햇살을 중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마치 올바른 이정표를 지닌 듯 망설임이 없습니다' '이 쓸슬한 메모는 어설픈 추억의 조각이겠지요' 등등 구절들이 설명적이랍니다. 화자의 사유가 중심적인 오브제가 없이 가지를 뻗어놓고 있어서 이야기는 풍성해보이나 비유적인 이미지가 필요하답니다. 궁금한 것도 있어요. 화자는 하루를 무척 짧다고 인식하는데 그 이유로 '오늘도 하루종일 구르기만'해서라고 하기엔 빈약하답니다. 또 구른다는 것이 살아간다는 표현 같지만 어떻게 구르는지 이미지가 잡히지 않아 모호합니다. 또 화자가 왜 지난 날과 이별할 생각이 없는지도요. 마지막 구절처럼 이 시는 화자의 메모일 수 있습니다. 메모하고 시를 쓴다는 것은 가치 있는 삶을 기록하는 행위랍니다. 협궤열차 님의 삶의 일부분을 섬세하게 묘사하면 구체적인 정황이 그려질 것이고 그게 나중에는 어설픈 추억의 조각일지라도 가치가 있을 거랍니다.

 

 

쐐기벌레, <잠꼬대> : 시적화자가 자기와의 대화를 나눈 듯하군요. 제목이 '잠꼬대'인데 화자는 의식적으로 끊임없이 자기를 드러내 (자기 고백을 하면서) 중얼거리는 느낌을 준답니다. 잠꼬대는 수면 상태에서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헛소리라고 하죠. 첫부분의 표현은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화자가 말을 하지 않고 묵직해진 이유를 잘 표현했답니다. 칼퀴로 말을 모으고 성을 쌓는 장면말이죠. 화자에게 감정을 이입해하면 안타까움을 준답니다. '일생에서 가장 과묵한/원치 않는 사람이 되고 있어'라고 하니까요. 화자의 지금의 상태나 상황은 이해할 수 있으나 근거가 되는 원인을 찾기가 어렵답니다. 왜 화자가 소극적이고 소심할까 궁금하답니다. 또한 9연까지는 화자에 집중하다가 10연부터 '너'라는 대상이 나옵니다. 잠든 화자가 현실의 화자에게 말하는 것 같군요. '너는 살아야 돼'라고 간절한 목소리를 냅니다. 그런데 시적 효과를 생각해봤을 때 시적 흐름에서 화자의 시선이 바뀌는 것은 혼란을 줄 수 있습니다. 되도록 일관성 있게 전개하면 좋겠어요.

 

 

본낯필오, <눈빛> : 예술은 연민에서 비롯되죠. 세상 만물에 대한 연민을 가진 자만이 관심을 갖고 관찰을 하고 발견을 하죠. 어쩌면 우리는 자기의 삶에 치중하고 있다보니 이웃의 삶에 무딜 수 있습니다. 이 시는 가난한 노인의 삶을 엿보려는 태도가 좋았답니다. 연민은 동정과 다르고 시적화자가 바라보는 시선은 연민이 아닐까 싶습니다. 화자가 바라봤던 수많은 눈빛들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차라리 죽였으면 싶은 선의에 찬 눈빛들'은 다소 모순돼 보여요. '선의'는 '남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거나 좋은 목적을 가진 착한 마음'인데 죽였으면 싶다니 이해가 되지 않거든요. 혹 그 눈빛들이 힘겨운 삶을 포기하려고 '차라리 죽었으면' 싶다는 것을 표현하려는 게 아닐까요. '웃기게도 그것으로 연명하는 인생'이라고 하니 죽을 각오로 산다는 말 같기도 합니다. 그것이 치열한 인생일 텐데 '웃기게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누군가의 누군가의 어깨를 붙들고 묻기를/사람은 왜 가난해야 하는가'은 불특정한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왜 묻는지 따져봐야 하고 무엇보다 직접적인 물음이 시적 긴장감을 떨어뜨린답니다. 창작자가 가난을 말하지 않아도 읽는이는 가난을 읽고 고민하게 됩니다. 그런 과정에서 독자도 시적 대상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면서 공감대를 형성한답니다.

 

 

별환, <걸음> : 재밌게 읽었어요. 여러모로 흥미로웠습니다. 그동안 별환 님의 시의 공간이 대체로 방인 듯합니다. 시어로는 '이불'이 자주 등장한 듯 싶고요. 이번 시는 공간의 확장을 느꼈다가 끝내 '이불'로 귀결됐어요. 구절마다 힘이 들어갔고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됐습니다. '이곳(?)'에서 시적화자는 경적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물론 전철은 경적을 울리지 않기에 철길이라고 말할 수 있고 화자는 탈선을 자주합니다. 거기서부터 상상이 시작되는 듯해요. 그래서 눈을 뜨기 전과 눈을 뜬 후(이불을 발로 걷어낸 후)의 정황으로 나눠진 게 아닐까 싶어요. 시적화자가 걸을 수 있는 발이 없기 때문에 상상으로 펼쳐놓은 정황들이 시적이기도 합니다. '끝은 끝을 내딛었다' '그림자의 자세는 편하고 게을러 보였다. 그것은 아무래도 이불 없이 잠에 든 것 같았다' 등입니다. 6연에서 '그림자 위로 드러누웠다'는 것도 의미가 잘 다가오지 않는군요. 여튼 추론해본 까닭은 '걸음'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잘 헤아려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시는 연마다 분절돼 있어서 하나하나 뜯어보면 구체적인 듯하나 전체적으로 이미지가 모아지지 않아서 아쉬움을 준답니다. 시적 표현이 풍부하니 화자의 상태나 시적 정황을 명확히 보여주면 어떨까 싶군요.

 

 

청단靑旦, <봄날> : 저는 '봄날은 간다'가 떠오릅니다. 청춘이 지나가듯 봄날이 가는 거죠. 이 시는 봄날과 사랑을 연결지었습니다. 봄날이 가듯 사랑이 지는 과정도 담아냈군요. 또 다시 '매날'(매달처럼 만든 단어인가 싶어요) 봄날을 향한다는 여운도 있어요. 특히 '꽃이 기우는 방향으로'는 설명할 필요 없이 좋았습니다. 근데 시가 긴 만큼 군더더기도 있어요. 전체적으로 설명적이어서 그런듯해요. 잘 살펴보면서 퇴고를 하면 좋겠어요. 특히 '봄날은 아름답다'는 것은 굳이 표현할 필요 없고 '굳이 기다리지는 않았었지만'은 과거완료형인데 우리말은 과거형 '않았지만'으로 쓰면 된답니다.

 

 

 

 

이번주 고등부 우수작은 두둥!! <눈빛>, <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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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암흑왕, <안녕> : 시적화자의 처지와 심정, 어린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난 시였어요. 시보다는 산문적 고백에 가까워서 일기를 몰래 읽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렇다보니 시어들이 대체로 관념적이랍니다. 그럼에도 솔직한 심정이 잘 드러나 좋았어요. 여튼 화자의 '평범함'이 '혼자'를 만들고 '불행'을 만들었다는 것이 안타까우면서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아요. 여기서 화자의 평범함은 모범생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해서 혼자가 됐는지 그 과정이 없습니다. 또한 화자가 불행을 끝내려고 노력한 것이 단순히 발버둥만 치지 않았을 텐데 어떤 노력을 했는지 모호해요. 아무리 노력해도 그 자리에 있어서 공허한 화자가 어린시절과 조우하면서 평온을 찾습니다. 그것은 추억 속에서 위안을 얻었을 뿐 지금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생각해봤어요. 어쩌면 이 시는 스스로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는 자기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위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자기만 추억이 모두의 추억이 되어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죠. 관념에서 탈피해 구상으로 나와야 해요. 하나의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듯 묘사에 집중하면서 이미지를 만드는 연습이 필요하답니다.

 

 

 

 

이번주 중등부 우수작은 선정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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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둘째 주 우수작(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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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중등부의 시가 보이지 않아서 아쉽네요. 다소 늦어진 우수작 선정이지만 빠른 시일 내로 마무리하고 월장원을 뽑아야겠죠. 6월을 어떻게 보냈는지 금방 지나가는 군요. 여러 분들은 한 해의 반을 어찌보냈나요. 건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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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기린P, <모호함> :  시적화자와 '너'가 등장하는 시군요. 대학가기 전의 '너'인지라 화자가 성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여튼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대학에 가기 전 모든 게 달라지고 어색해지죠. 저도 그런 경험을 한지라 공감이 됐습니다. 그런데 제목이 '모호함'이어서 이런 심정이 모호하게 다가온다는 것도 효과적이었어요. 화자는 다리가 아픈 듯도 해요. 그래서 '너'가 화자를 생각하는 마음도 변했겠죠. 다만 직접적인 발화가 아쉽기도 해요. 숨길 것은 숨기고 드러낼 것은 드러내면서 연갈이와 띄어쓰기에 신경을 쓴다면 더 전달력이 좋았을 겁니다.

 

 

rien, <칼> : 시적 긴장감을 놓치지 않아 재밌게 읽었어요. '어쩌면 칼의 전생은 지독한 슬픔을 지닌 인간이었을 것'이라는 첫 구절부터 '당신이 비춰진 유리창이 떠올라 뜨겁고 날카로웠던 날을 생각하며'라는 마지막 구절까지 생생한 진술이 좋았어요. 묘사보다는 진술이 넘쳐서 아쉽지만 비유가 적절했고 상상력이 부풀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답니다. 다만 칼의 쓰임이 죽이기도 있으나 살리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민하늘, <소녀와 소년과 사자와 비둘기의 이야기> : '상식'이 뭔지 곰곰 생각하게 해줬어요. 재밌게 읽었어요. 아무래도 자기 전 누군가(보호자?)가 누군가(아가)에게 이야기를 하는 형식을 취해 이야기를 서술하는 데 힘을 썼군요. 그렇다보니 시가 이미지보다 설명적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더욱이 주제를 드러내는 데 있어 억지스러운 설정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평화가 없는 세상에 상식이 없기 때문이겠지만 아가가 잠들기 전 잔혹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의도도 궁금합니다. 소수자를 혐오하는 우리 사회를 극단적으로 비유한 게 아닐까도 싶어요. 생각해봐야 할 것은 창작자의 입장이 객관적인지 살펴봐야 해요. 편향적이거나 과격한 게 아닌가 생각해봐야 합니다.

 

 

효월曉月, <어떤 만남> :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해요. 1연과 2연이 한데 어울려 이야기 구조이군요. 이야기를 만드는 힘이 엿보였습니다. 그러나 따져봐야 할 것은 대화 형식으로 이뤄진 시가 얼마나 시적인 효과를 줬는가 입니다. 또한 딸을 알아보지 못하는 치매 말기 어머니의 대화일까 궁금해져요. 저도 군 시절 휴가를 나와 치매 말기로 외할머니가 만난 후 일주일만에 돌아가셨어요. 그때 거의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답니다. 어쩌면 소설처럼 그럴싸한 이야기를 꾸며낼 수 있지만 시는 사실에 근거한 진실을 추구해야 한답니다. 저도 이야기 시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야기에 앞서 창작자의 사유가 깊어야 하죠. 그 사유에서 나온 이미지를 독자가 읽었을 때 곱씹어볼 수 있답니다.

 

 

흰구름범고래, <모든 이별> : 조언해주고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 시가 좋아졌다니! 제가 원하던 바였답니다. 근데 1연 2행의 '새때'는 수정을 하지 않았군요. '새때'라는 단어가 있기 때문에 더 주의해야 해요. 특히 시는 오탈자나 띄어쓰기(깃털로서 → 깃털로써, ~때 까지 → ~ 때까지, 등)에 엄격해야 합니다. 분량이 적은 시를 몇 번이고 보면서 퇴고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오탈자가 나오기 어렵죠. 물론 비문(낙엽은 건조해지지 못한다)도 그렇습니다. 이 시는 창작자에게 뭔가 사연이 있는 듯해요. '이별이라고 발음하고 싶지 않았다' '이별이라고 발음할 수 없어'에서 알 수 있듯 이별을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가 드러나고 있답니다. '새'라는 대상이 갖는 자유로운 속성을 새장에 갇둬놓는다 해도 없앨 수 없겠죠. 사람을 구속하고 가둘 수 없듯이요. 그러기에 시적화자는 제 손으로 새장의 문을 열어주는 듯해요. 이별의 순간의 느낌이 살아 있는 시였습니다. 그럼에도 시가 더 익으려면 숙성의 시간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화자의 정황이나 감정을 더 자연스럽게 비유할 수 있는 때가 오리라 봐요. 앞으로 얼마나 적확하게 비유를 했는가를 따져봤으면 싶어요.

 

 

 

 

이번주 고등부 우수작은 두둥!! <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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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이번주 중등부 우수작은 선정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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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첫째 주 우수작(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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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절반을 보내고 있어요. 매주 새로운 친구들이 글틴에 와서 반갑지만 가끔 시 창작에 관해 반복적인 이야기를 꺼낼 때 고민이 되기도 해요. 물론 누구나 처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글틴은 수년간 친구들의 작품이 공유되는 곳이랍니다. 당부 드리고 싶은 것은 친구들의 창작시에 관심을 갖고 저의 댓글도 꼭 확인해보세요.  시를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친구에게는 우리나라 1900년대 초기 근대시부터 현대시까지 차분히 읽으면서 공부하시길 권합니다.  이번주에도 우수작을 선정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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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별환, <안녕, 을 따라하는 나의 앵무새> : 예전에 봤던 '낮'과 '제목'의 연작시 같았어요. 어느 정도 구체화되어 한층 업그레이드 버전이라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시의 소재로 나온 '앵무새', '이름'가 창작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리라 봐요. 더욱이 인상적인 체험을 시적으로 사유하는 것이 좋았고 가능성을 볼 수 있었어요. 그러나 주관적인 입장이 강하다는 것은 아쉽답니다. 의문점도 있어요. 두 마리의 앵무새 중에 한 마리는 죽고, 시체 썩은 냄새가 납니다. 시적화자가 '나만 남겨진 새장'에 갇혀 지내는 듯한데 썩은 냄새가 나도록 새의 시체를 방치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군요. 또한 화자가 죽은 앵무새를 잊지 못하고 꿈을 꾸면서 앵무새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화자는 '이불로 고립된 무덤' 죽음의 상태에서라도 만나고 싶다고 하면서 '잘 못 지낸다'다고 합니다. 개인의 아픔에 잣대를 들이댈 수 없지만 화자의 상황이나 고백이 독자에게 얼마나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담담한 어조로 꾹꾹 눌러서 말하고 있지만 주관적이고 극단적인 화자의 진술이 앞서서 일방적으로 화자의 인식과 상황을 전달한답니다. 문학은 가치 있는 체험의 기록이라고 하죠. 개인에게 가치 있는 체험이 만인의 간접 체험이 되려면 시적 대상을 객관화시켜야 합니다.

 

 

세글자, <안경매니저> : 시가 짧지만 여러 생각이 들게 했어요. 재밌었습니다. 시적화자는 '네가 제일로 미워 보이는' 안경을 맞추는데 눈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눈이 좋아져서 미워 보이는 것이 왠지 제대로 봤다는 뜻으로 느껴져요. 화자가 각진 테로 바꾼 게 나쁘고 어렵게 보이려는 것이겠죠. 더 말하지 않아도 '너'가 왜 밉고 화자가 왜 각진 안경테로 바꾸는지 알 수 있었어요. 구어체로 쓴 것이 시의 맛을 살려준 듯해요. 다만 띄어쓰기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으슥한 달, <소녀> : 사랑의 물리학인지라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도입부가 좋았어요. '소리(음파)'가 물체의 진동으로 형성되는데 소녀의 노랫소리가 더 빠르게 다가오는 것도 공감이 갔습니다. 그런데 '너무 무거운 곳'은 어디를 말하는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이는 시적화자가 소녀를 바라보면 시간이 빨리 간다는 것을 대조적으로 표현하려 한 듯한데 의문이 들지 않게 표현해야 합니다. 또한 화자가 '나와 (모습) 다른 소녀'에게 가는데 소녀가 화자를 힘껏 끌어당기는 것이 몸인지 마음인지 불분명합니다. 문맥상 표현은 몸을 끌어당기는 것 같고 의미로 보자면 마음을 힘껏 끌어당기는 것 같거든요. 의미가 애매하지 않도록 시를 퇴고해야 할 듯해요.

 

 

민하늘, <일어버린 별에서 온 편지> : 시를 읽는 동안 우주 어느 별에서 영혼들이 살고 있지 않을까 상상하게 했어요. 재밌게 봤습니다. '다섯 개의 계절과 스물 네 개의 달', '잃어버린 별', '추방당한 별'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무엇보다 누가 왜 누구에게 편지를 보내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어요. 연옥에서 지구로 보내는 편지라고 하기엔 불특정하고 목적은 불투명하기 때문이죠. 또 편지인데 '매력적이지 않아요? 죽은 생명은 모두 여기로 와요' '외롭지 않냐구요? 그럴 것이 있나요' '이제 가봐야해요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워요 어서 오세요'라고 하듯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형식입니다. '지구의 절반도 되지 않는 크기의 이곳은 세 시간이면 모두 볼 수 있어요'라고 하는데 지구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해도 어마어마하게 크겠죠. 그 거리는 '영혼'이어서 가능한 시간이겠죠. 시적인 허용일 수 있지만 편지와 대화의 간극이 크고 어떻게 세 시간에 다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 든답니다. 참, '믿고 온 잘못했네요'는 '믿고 온 게 잘못'이다는 문장이겠죠. 여튼 이 시는 지구에서 산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주기도 합니다. 만약 우리의 현실을 풍자한다면 더 좋은 시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이번주 고등부 우수작은 두둥!! <안경매니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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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YP제국, <하고 싶은 것들> : 시적화자의 '하고 싶은 것들'이 이쁘고 귀엽습니다. 잘 읽었어요. 표현이 살아 있어서 화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어요. 다만 일차적인 시적 접근이 아쉽긴 하나 문장이나 이미지를 그리는 게 한층 성장한 듯해 좋습니다. '~싶어요'의 그 다음이 필요할 듯해요. 이를 위해 사유와 인식을 넓혀가며 시로 담아내는 게 중요해요. 그럼 시의 맛이 더 살아나겠죠.

 

 

 

 

이번주 중등부 우수작은 두둥!! <하고 싶은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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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월장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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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월장원을 발표합니다

 

 

 

 

첫째 주 /

 

바이현, <너> : 저도 시를 쓰면서 평소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제게 배운 습작생들도 그런 고백을 했던 적이 있죠. 시를 쓰면 주변에 있는 사소한 것들에 관심이 가니까요. 어느날 갑자기 누군가에게 관심이 생겨 그 사람이 특별해지는 순간이 있듯. 이 시에서 그런 정황을 그린 듯해요. 그러나 '반평생을 살았건만'는 시적화자의 나이가 많다는 뜻이고, 그 나이가 먹도록 벚꽃나무를 몰랐다는 것은 억지스럽기도 합니다. 테마 님의 댓글처럼 왜 화자의 나이를 '반평생'이라고 설정했는지 의문이 든답니다. 오히려 2연에서처럼 벚꽃을 보고 스쳐지나가다가 벚꽃에 반해버린 장면이 자연스럽고 시적이랍니다. 불쑥 이 시에 다른 제목을 붙이면 어떨까 생각해봤어요. '다르게 보이다'는 직설적이어서 감흥이 없답니다. 시 본문을 설명하는 제목이거든요. 예를 들어 '사춘기'라고 했다면 상상력을 좀 더 부풀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제목과 본문을 잘 고쳐보면 좋겠어요.

 

여름별, <눈물은 꽃을 키우고> : 눈물이 꽃을 키운다는 발상이 시적이군요. '어째서 누군가의 세월은/바위처럼 딱딱하게 굳어/우리 가슴 속에 박히는가'만으로도 참 아픈 구절입니다. 이 시에서 '세월'이 1연에서 말하는 흐르는 세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눈치챌 수 있을 듯해요. 가슴에 노란리본을 달고 눈물을 흘리는 '그대/당신'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대'는 살아남아 있는 사람이므로 '눈물을 흘리되/얽매이지는 말라'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시적 흐름이 어색하지 않지만 꽃이 '당신 가슴 가운데 태양'이 되고 '당신의 삶'을 비춘다는 것은 쉽게 공감하기가 어렵답니다. 시의 분위기만으로 충분히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지만 상상력이 과도하게 확장되는 양상이랍니다. 어쩌면 눈물이 멈추지 않아 꽃이 더 무럭무럭 자랄 수 있을 테니까요. 이 시는 어투가 성숙한 느낌이 든답니다. 그런 어투에 맞는 진술('부는 것은 바람이고/흐르는 것은 세월인데'처럼)이 더 필요하겠죠.

 

 

둘째, 셋째 주 /

 

곧, <폭포> : 시적화자의 담담한 어조가 시를 잘 이끌어갔어요. 나와 그대로 일컫는 '우리'가 폭포를 보면서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인지 진술합니다. 화자가 이상하게도 성숙하다는 인상을 준답니다. 그런데 등을 맞대고 앉은 나와 그대의 관계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들이 물줄기를 봤던 것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그 하류는 미래라는 느낌이 들어요. 앞으로 흘러가야 할 시간이겠죠. 그래서 나중에 지금 이 밤을 기억하라는 뜻인가 싶기도 해요. 또한 '이 밤'이 현재형이지만 '기억해'는 과거형을 쓰고 있답니다. 시점의 혼돈을 주고 있어요. 3연은 조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릴 적 보물 상자에 숨겨두었던/새파란 수채 물감 따윈 이미/시간에 내주었는 걸 통행료로.' 대략 무슨 말을 하려는지 느껴지기도 하나 뜬금없기도 합니다. '풀 먹인 저고리처럼'라는 직유도 좋지만 연관성이 있는 비유가 나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해요. 좀 더 사유를 확장시키고 시적 흐름(문장)을 부드럽게 퇴고하면 좋겠어요. 시적 정황이 선명하고 정서가 있어서 사유를 정리한다면 좋은 시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영광 시인의 연작시 '빙폭'을 추천해요.

 

 

마지막째 주 /

 

기해, <신데렐라> : 발상이 신선하고 재밌군요. 팔이 신데렐라고 펜이 왕자라니! 시적화자는 작품을 완성하는 창작자겠죠. 이러한 설정이 구체화돼 시에 나타나서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시에 감동을 받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됩니다. 팔의 노동이 치욕스러운 것들인지 의문이 듭니다. 우리 몸은 저마다 역할이 나눠 있고 모두 중요한 일을 하고 있잖아요. 화자는 작품을 완성하는 것 외의 노동들이 치욕스럽고 고되다고 인식하고 있어요. 물론 신데렐라로 비유하다 보니 그의 처지와 팔의 처지가 같다고 본 듯한데 적절한가 따져봐야 합니다. 또한 '황홀한 왕자와의 만남', '감성으로 너덜너덜', '하나의 작품이 완성' 등이 개인적이고 주관적이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표현한다면 좋은 시가 나올 듯해요.

 

 

 

 

이번 고등부 월장원은 <폭포>입니다.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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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월장원을 발표합니다.

 

 

 

 

첫째 주 /

 

그아, <달의 몰락> : '달의 몰락'은 달이 보잘 것 없이 되는 게 아니라 수직적 관계를 수평적 관계로 만들어준다는 인식 같아요. 시적화자가 동경하고 존경하는 달이 화자와 동등하고 같이 빛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요. 어쩌면 이것은 발견하는 것이라고 봐요. 멀리서 보면 아름답게 빛나는 달의 표면, 가까이서 보면 울퉁불퉁합니다. 또 스스로 빛나는 게 아니라 태양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죠. 다듬어지지 않는 문장, '다가갔단'과 같은 오자에 신경써야 해요. 여튼 표현이 조금 서툴지만 접근하는 방식, 발견하는 태도는 좋았습니다. 달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했듯 주변에서 발견한 것을 빗대어 표현하면 시가 풍성해질 듯해요.

 

 

둘째, 셋째 주 /

 

YP제국, <적당히> : 한마디로 뭐든 적당해야 한다는 거군요. 적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을 일상에서 찾아서 좋았어요. 그런데 1연과 3연은 다소 아쉽기도 합니다. 2연의 라면처럼 비유가 적확하지 않아요. 여튼 더 발랄하게 생각해보면 2연에서 적당하지 않으면 어찌되는지 나와도 좋을 듯해요. 라면의 경우 맛 없거나 아예 먹지 못하니까요.

 

 

이번 중등부 월장원은 <달이 몰락>입니다.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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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마지막째 주 우수작(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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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우수작을 선정했어요. 이번에 선정을 하면서 '시인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봤습니다. 글틴에 시를 게시하는 여러분들도 시를 쓰는 사람들이니 시인이라 할 수 있죠. 저도 고교시절부터 시를 썼는데 당시 한 선생님이 저에게 작은 시인이라 불렀던 추억이 떠오르네요. 어쩌면 그때부터 시란 무엇인지, 시인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했던 것 같아요. 지금 시를 쓴다해서 다 시인이 되는 건 아니겠죠. 그러나 시를 쓰는 이 순간, 여러분 모두는 시인이 아닐까 싶어요. 이왕이면 좋은 시를 써서 많은 친구들과 교감한다면 더더욱 좋겠죠.

문득 신경림 시인의 시집 '뿔(2002년)'에 실린 시인의 산문이 떠오르네요. '시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이죠. 원로 시인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 이것은 오늘의 우리 시에 거의 공통되는 것 같다"며 "요즈음 시인들이 정말 좋은 우리 시를 제대로 읽지 않은 결과라는 한 평자의 말은 귀담아들어야 할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는 시를 자연스럽게 쓰고 읽을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억지로 만드는 것, 말장난 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한 "가벼움이 우리 민족성과 맞는다는, 그래서 인터넷 시대는 바로 우리 시대이기도 하다는 우수개도 있지만, 요즈음의 우리 시는 너무 가볍다, 또 너무 쉽게 너무 함부로들 시를 쓴다"면서 "예술성과 시정신의 결여로 이어질 밖에 다른 길이 없었지 않나"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신경림 시인의 고민은 좋은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 어떤 시를 써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리라 봐요. 글틴 친구들도 함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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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세바시, <개미> : 날이 무더워지는데 까만 개미는 어쩔까 싶어요. 제 몸보다 훨씬 큰 먹이를 들고 다니는 개미를 볼 때면 경이롭기도 합니다. 시적화자는 개미처럼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개미를 관찰합니다. 화자는 땀방울에 맞으면 죽을 수 있어서 연민하는 마음마저 거둡니다. 눈물이 흘리면 개미가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겠죠. 2연은 모호합니다. '눈 먼 도로'가 뭘까요. '투덜대는 발걸음 쉬이 가라앉질 않'는다고 하는데 왜 투덜댈까요. '고장 난 이어폰 음악 소리'가 사그라지는데 매미가 왜 숨을 죽이는지 1연과 연결이 잘 되지 않습니다. 3연은 개미가 나타났다는 것인데, 개미도 나름대로 먹고사는 일을 하고 있는데 왜 개미를 보고 '부질없이 부지런한 것이다'고 했을까요. 끝내 화자의 땀방울이 떨어졌는데 4연에서 '밟힌 저것'이라고 합니다. 땀방울에 밟힌 것이 부스러기를 들고가는 개미라면 굳이 이것인지, 저것인지가 중요할까요. 또 '밟혔다'는 표현도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문태준 시인의 '개미'가 떠오릅니다. 그 시는 봉산댁과 개미의 특성을 잘 연관시켜 비유했거든요.

 

 

은갈치, <검은 행복> : 아이러니한 상황이군요. 행복이 시적화자를 비웃고 행복해질 것 같지 않아 죽음을 선택했는데 눈을 감으니 화자 손에 행복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검은 행복'은 뭘까요. 죽음 이후에 알게 된 행복인가 싶기도 하군요. 여튼 이 시는 삶(길)과 죽음을 행복이 결정할 수 있냐는 의문이 듭니다. 우리는 행복, 불행을 동시에 겪고 있잖아요. 늘 행복할 수 없고, 늘 불행할 수 없으니까요. 더욱이 행복이 왜 화자를 비웃는지, 화자에게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고 말하는 건지 궁금해집니다. 또한 화자가 삶의 의지를 불태우지 않고 죽음을 선택한 것도요. 직접 경험한 일이나 주위에 있는 대상을 시로 적어보세요. 시적 형상화를 하면서 마음을 담아보는 것도 좋을 듯해요.

 

 

rien, <비상> : '비상'이 '비정상'을 의미하는 듯 싶군요. 시적화자가 염세적주의자인 듯해요. '이제 남은 것은 광기뿐이다'고 했듯 시 전반에 광기가 느껴진답니다. 전반적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헤아리기 어려우나 화자의 정서나 분위기는 있는 듯해요. 그럼에도 화자에게 집중할 수 없기도 합니다. 1연에서 '흰 피들이 아팠다' '하얀 얼굴들이 목이 말랐다' '고통은 최대한 없는 것처럼 죽이는 수밖에 없지' '그들이 사랑하는 뼈만 남겨라' 등의 주체와 '나는 최후의 비둘기' '나는 누군가를 위한 생일 선물' '아무것도 못본 빨강'으로 명명하는 화자 간에 충돌이 생기고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2연에서는 샤워하다 본 악마, 즉 화자겠죠. 어쩌면 '내 눈 앞을 흐리게 만드는 유령들의 숨소리' '내 폐 안에서 잠자는 영혼들의 비명'이 화자를 괴롭히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꿈처럼 호흡하다 사라'진다고 하더니 '이 공기의 지겨움을 기억'한다고 해요. 기억한다는 것은 살아간다는 뜻이겠죠. 시는 창작자의 상황이나 정서가 반영되기도 합니다. 어째서 비정상적인 광기 어린 화자가 나왔고 이로 인해 (시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따져봐야 할 듯해요.

 

 

기해, <신데렐라> : 발상이 신선하고 재밌군요. 팔이 신데렐라고 펜이 왕자라니! 시적화자는 작품을 완성하는 창작자겠죠. 이러한 설정이 구체화돼 시에 나타나서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시에 감동을 받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됩니다. 팔의 노동이 치욕스러운 것들인지 의문이 듭니다. 우리 몸은 저마다 역할이 나눠 있고 모두 중요한 일을 하고 있잖아요. 화자는 작품을 완성하는 것 외의 노동들이 치욕스럽고 고되다고 인식하고 있어요. 물론 신데렐라로 비유하다 보니 그의 처지와 팔의 처지가 같다고 본 듯한데 적절한가 따져봐야 합니다. 또한 '황홀한 왕자와의 만남', '감성으로 너덜너덜', '하나의 작품이 완성' 등이 개인적이고 주관적이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표현한다면 좋은 시가 나올 듯해요.

 

 

 

 

이번주 고등부 우수작은 두둥!! <신데렐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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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YP제국, <나무들의 무대> : 교실 밖에 나무들이 그려집니다. 바람이 불면 춤을 추는 듯 움직이는 모습이죠. 그것을 무대로 인식하는 게 잘 어울린답니다. 그런데 현상을 보여줬을 때 그 이면에 내포된 의미가 더 있다면 좋을 듯해요. 이를테면 교실 밖을 이야기하면서 교실 안 풍경을 암시적으로 보여주거나 화자의 심경을 담아도 시가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싶거든요.

 

 

 

 

이번주 중등부 우수작은 선정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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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둘째, 셋째 주 우수작(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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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올해의 절반을 보냈습니다. 글틴 친구들은 올해의 절반을 어찌 보내셨나요. 이번 주 우수작은 둘째 주의 편수가 적어서 셋째 주와 통합해 선정했답니다. 계속 새로운 친구들이 들어오고 있어요. 기존의 친구들이나 새 친구들이나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서로의 시를 어찌 읽었는지 댓글도 달면 좋겠네요. 더불어 성장하는 글틴이 되길 바랍니다.

이번에 시를 보면서 관념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특히 내면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이를테면 마음의 작용을 표현한다면 마음은 무형이어서 감정이 이입돼 표현하거나 농익지 않은 진술을 하게 됩니다. 이때 객관적인 대상(상관물)로 비유하거나 정황으로 묘사를 한다면 독자는 그 마음을 비유적으로 읽어낼 수 있겠죠. 문학은 언어예술입니다. 그래서 창작자가 어떻게 형상화를 하느냐에 따라 독자는 상상력을 발휘한답니다. 말처럼 쉬운 게 아니지만 시를 많이 읽으면서 기본기를 다졌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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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협궤열차, <자정 버스> : 자정을 넘기 전과 자정을 넘긴 후의 버스 안 풍경이 그려집니다. 시적화자의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 순 없지만 버스를 타는 순간부터 버스(버스에 이입되어)가 창해를 날고 싶다고 합니다. K씨들은 불특정 다수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친구 Y씨는 왜 등장했을까요. '회답이 늦지 않지만/그것대로 쓸쓸하다'고 하는데 화자의 심정을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역한 냄새, 폐포파립, 공허한 말, 어설픈 도회의 길 등이 모호하고 표현이 거칠긴 하지만 잘 다듬으면 괜찮을 듯해요. 자정 버스가 시적인 느낌을 주니 좀 더 사유를 가다듬으면 어떨까요. 주관적인 인식을 객관적으로 바꿀 때 물음표를 던져봐야 합니다. 한 구절씩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자문자답하면서 퇴고가 될 듯해요.

 

 

민들레의 꿈, <별> : 간결하게 별이 빛나는 모습을 보여줬어요. 별을 보면서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무리없이 시가 읽혀져요. 살면서 힘들고 지칠 때 별이 위로를 해줄 수 있죠. 생각해봐야 할 것은 모두가 비슷한 인식을 갖는 소재를 시에 담았을 때 얼마나 감동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해봐야 해요. 또한 주관적인 관념이 지배적인 것도요. '따뜻한' '한없이 꿈꾸는' '어린 꿈' '아름답게' 등이랍니다. 객관화시켜서 사유를 해야 합니다. 밤하늘이 따뜻하다는 것도 어린아이가 한없이 꿈꾼다는 것도 주관적인 사유에서 나온 게 아닐까 싶어요. 아름답게 빛난다는 것도요. 물론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적 형상화를 하면 아름다움을 읽는 이가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곧, <폭포> : 시적화자의 담담한 어조가 시를 잘 이끌어갔어요. 나와 그대로 일컫는 '우리'가 폭포를 보면서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인지 진술합니다. 화자가 이상하게도 성숙하다는 인상을 준답니다. 그런데 등을 맞대고 앉은 나와 그대의 관계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들이 물줄기를 봤던 것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그 하류는 미래라는 느낌이 들어요. 앞으로 흘러가야 할 시간이겠죠. 그래서 나중에 지금 이 밤을 기억하라는 뜻인가 싶기도 해요. 또한 '이 밤'이 현재형이지만 '기억해'는 과거형을 쓰고 있답니다. 시점의 혼돈을 주고 있어요. 3연은 조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릴 적 보물 상자에 숨겨두었던/새파란 수채 물감 따윈 이미/시간에 내주었는 걸 통행료로.' 대략 무슨 말을 하려는지 느껴지기도 하나 뜬금없기도 합니다. '풀 먹인 저고리처럼'라는 직유도 좋지만 연관성이 있는 비유가 나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해요. 좀 더 사유를 확장시키고 시적 흐름(문장)을 부드럽게 퇴고하면 좋겠어요. 시적 정황이 선명하고 정서가 있어서 사유를 정리한다면 좋은 시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영광 시인의 연작시 '빙폭'을 추천해요.

 

 

향유용, <연,애> : 인연과 사랑을 연으로 비유한 게 좋았어요. 그러나 숙명, 운명 등의 관념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게 아쉽니다. 숙명이나 운명을 직접 쓰지 않는다 해도 인연과 사랑을 부각시킬 수 있을 듯해요. '연, 애'란 결국 누군가의 곁에 있는 것일 테니까요. 그리고 몇 가지 의문이 남기도 합니다. 3연에서 '내가 밟고 지나친/장미들이 붉은 눈물로/땅 위를 수놓아도/운명을 거스를 힘이 내겐 없습니다'고 하고 4연에서 화자는 운명이란 이름으로 비겁하게 숨고 비겁하게 도망쳐버린다고 합니다. 3연에서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왜 화자는 스스로 비겁하게 숨고 도망칠까요. 어쩌면 운명이나 숙명을 그냥 받아들인 게(수동적) 아니라 스스로 인연의 끈을 놓아버린 것(능동적)이 아닐까요. 또한 5연에서는 누군가에게 내려달라고 합니다. 지쳐서 쉬어갈 때 화자가 나무에 걸려 있을 때 대체 누가 내려줄까요. 운명 같은 '그대'가 나타나거나 처음에 연을 잃어버린 주인일까요.

 

 

 

 

이번주 고등부 우수작은 두둥!! <폭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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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박채연, <딱딱한 숲> : 시가 동화적 상상력이 돋보입니다. 산신령에게 날카로운 이빨을 부탁하는 나무, 서로를 해치기 위해 애뜻한 발길질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헤아리기가 어렵기도 합니다. 나무는 잘려나가고 불속에서 제 몸을 태운답니다. 그런데 시적화자가 '이제 듣기가 싫어져서 시끄럽다고' 소리를 칩니다. 누군가의 속삭입니다. 시적 전개가 잘 흘러가지만 뭔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답니다. 단단한 발톱이나 발길질, 누군가의 속삭임 등이죠. 더욱이 나무가 산실령에게 숲에서 가장 으뜸가는 나무가 된다고 약속하면서 이빨을 부탁할까요. 나무는 움직일 수 없어서 짐승처럼 누군가를 물 수 없는데요. '나무 우거진 숲 깊은 산속에서'는 우거진 숲과 깊은 산속이 중복으로 나오는데 매끄럽게 수정해야 할 듯해요. 더욱이 숲과 산의 차이가 뭘까 고민해보세요. 통일성있게 언어를 쓰면 좋지 않을까요.

 

 

YP제국, <적당히> : 한마디로 뭐든 적당해야 한다는 거군요. 적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을 일상에서 찾아서 좋았어요. 그런데 1연과 3연은 다소 아쉽기도 합니다. 2연의 라면처럼 비유가 적확하지 않아요. 여튼 더 발랄하게 생각해보면 2연에서 적당하지 않으면 어찌되는지 나와도 좋을 듯해요. 라면의 경우 맛 없거나 아예 먹지 못하니까요.

 

 

 

 

이번주 중등부 우수작은 두둥!! <적당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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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첫째 주 우수작(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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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첫째 주는 쉬는 날이 참 많았죠. 가정의 달인지라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있었죠. 오늘은 스승의 날이고요. 지난 화요일에는 장미 대선이 있었답니다. 오래 쉬다 보니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더라고요. 한 나라의 지도자가 어떠냐에 따라 국정이 달라진답니다. 학교에서도 누가 회장이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잖아요. 그 지도자를 뽑는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합니다. 내 손으로 직접 뽑은 대통령이 꼭 좋은 나라를 만들었으면 좋겠네요.  글틴 친구들은 아직 투표권이 없지만 곧 생기니 그때도 좋은 지도자를 뽑는 데 참여하시길 바랍니다.

이번주에도 우수작을 선정했습니다. 이번에도 새롭게 글틴에 글을 남긴 친구들이 많았어요. 늘 반갑게 맞아주시고 따뜻한 댓글도 달아주세요. 글틴은 여러분들이 활발하게 소통하는 공간이니 주저하지 마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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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세바시, <적색 돌벽> : 문득 고교시절에 읽고 감탄했던 백석 시인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가 떠올랐습니다. 시적화자의 외롭고 쓸쓸한 풍경이 흰 바람벽에 잘 형상화돼 있었죠. 이 시도 '적색 돌벽'에 화자의 사유를 녹여놨습니다. 야심한 밤 그 벽 앞에서 한 남자의 그림자가 머뭇거리는 장면이 보입니다. '오금로 목화빌라'가 나오니 구체적인 공간이라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목화빌라를 가보지 않은 독자가 더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가 있으면 좋았을 듯 해요. '어제 같은 날' '오늘 같은 날' '내일 같은 날' 등이나 관념적인 '설움' '걱정' 등을 헤아리기 어려워 시가 모호하고 막연하게 전개된다는 게 아쉬워요. 목화빌라의 적색 돌벽이 구체적이니 별빛, 가로등빛, 달빛 등보다 시적인 이야기를 넣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이현, <너> : 저도 시를 쓰면서 평소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제게 배운 습작생들도 그런 고백을 했던 적이 있죠. 시를 쓰면 주변에 있는 사소한 것들에 관심이 가니까요. 어느날 갑자기 누군가에게 관심이 생겨 그 사람이 특별해지는 순간이 있듯. 이 시에서 그런 정황을 그린 듯해요. 그러나 '반평생을 살았건만'는 시적화자의 나이가 많다는 뜻이고, 그 나이가 먹도록 벚꽃나무를 몰랐다는 것은 억지스럽기도 합니다. 테마 님의 댓글처럼 왜 화자의 나이를 '반평생'이라고 설정했는지 의문이 든답니다. 오히려 2연에서처럼 벚꽃을 보고 스쳐지나가다가 벚꽃에 반해버린 장면이 자연스럽고 시적이랍니다. 불쑥 이 시에 다른 제목을 붙이면 어떨까 생각해봤어요. '다르게 보이다'는 직설적이어서 감흥이 없답니다. 시 본문을 설명하는 제목이거든요. 예를 들어 '사춘기'라고 했다면 상상력을 좀 더 부풀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제목과 본문을 잘 고쳐보면 좋겠어요.

 

 

맛없는쵸코맛, <논의 물벼룩> : 시를 읽고 나니 시적화자가 마치 옛날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요즘에도 화자처럼 논두렁을 다니며 소일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거든요. 여튼 화자가 논두렁 웅덩이에서 열심히 사는 물벼룩에게 가르침을 받고 자극을 받아 당당히 걸어갑니다. 화자의 태도나 형상화가 구체적이어서 좋았어요. 그러나 물벼룩이 '열심히 삶을 열어나간다'는 인식이 다소 주관적이고 억지스럽기도 합니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은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오로지 사람만이 선택적인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닐까요. 또 그런 당연한 모습에 가르침을 받고 '작은 스승'에게 감사하는 모습도 일차적이랍니다. '몸을 쭉 펴고 다시 당당하게 걸어갔다'는 것도 마찬가지랍니다. 어떻게 보면 물벼룩을 만나기 전에는 화자가 몸을 쭉 펴고 당당하게 걷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시에는 창작자의 '깨달음' '발견'이 있어야 합니다. 이때 객관적인 비유나 이미지로 표현되어야만 읽는이에게 공감과 감동을 끌어낼 수 있겠죠.

 

 

여름별, <눈물은 꽃을 키우고> : 눈물이 꽃을 키운다는 발상이 시적이군요. '어째서 누군가의 세월은/바위처럼 딱딱하게 굳어/우리 가슴 속에 박히는가'만으로도 참 아픈 구절입니다. 이 시에서 '세월'이 1연에서 말하는 흐르는 세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눈치챌 수 있을 듯해요. 가슴에 노란리본을 달고 눈물을 흘리는 '그대/당신'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대'는 살아남아 있는 사람이므로 '눈물을 흘리되/얽매이지는 말라'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시적 흐름이 어색하지 않지만 꽃이 '당신 가슴 가운데 태양'이 되고 '당신의 삶'을 비춘다는 것은 쉽게 공감하기가 어렵답니다. 시의 분위기만으로 충분히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지만 상상력이 과도하게 확장되는 양상이랍니다. 어쩌면 눈물이 멈추지 않아 꽃이 더 무럭무럭 자랄 수 있을 테니까요. 이 시는 어투가 성숙한 느낌이 든답니다. 그런 어투에 맞는 진술('부는 것은 바람이고/흐르는 것은 세월인데'처럼)이 더 필요하겠죠.

 

 

 

 

이번주 고등부 우수작은 두둥!! <너> <눈물은 꽃을 키우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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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SEN., <늦은> : 시적화자가 느끼는 '늦은 밤, 이른 새벽'에 관한 시입니다. 감성이 충만해지고 외로워하고 그 외로움을 다독여줄 사람을 찾고, 눈물을 흘리는 시각입니다. 저는 '너'가 궁금해요. 어쩌면 '메아리 하나 울리지 않'는 대상이 화자를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게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시적 감수성이 있다 해도 화자가 눈물을 흘려야 하는 이유가 나와야 공감하고 함께 울 수 있을 듯해요. 구체적인 정황이 있다면 더 좋겠죠. 문성해 시인의 '수건 한 장'을 추천합니다.

 

 

그아, <달의 몰락> : '달의 몰락'은 달이 보잘 것 없이 되는 게 아니라 수직적 관계를 수평적 관계로 만들어준다는 인식 같아요. 시적화자가 동경하고 존경하는 달이 화자와 동등하고 같이 빛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요. 어쩌면 이것은 발견하는 것이라고 봐요. 멀리서 보면 아름답게 빛나는 달의 표면, 가까이서 보면 울퉁불퉁합니다. 또 스스로 빛나는 게 아니라 태양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죠. 다듬어지지 않는 문장, '다가갔단'과 같은 오자에 신경써야 해요. 여튼 표현이 조금 서툴지만 접근하는 방식, 발견하는 태도는 좋았습니다. 달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했듯 주변에서 발견한 것을 빗대어 표현하면 시가 풍성해질 듯해요.

 

 

YP제국, <겁쟁이> : 시적화자의 강한 의지와 역동성이 있네요. 화자가 인식하는 미로는 검은집인 듯합니다. 그곳을 빠져나와 화자를 덮치는 파도로 뛰어들 수 있는 의지는 아픔을 견뎠기 때문이겠죠. 그러므로 이 시는 겁쟁이가 아닌 화자로 보여집니다. 아마도 겁쟁이라면 검은집에 자신을 가둬놓고 지냈을 테니까요. 이 시는 적극적으로 화자의 상황을 비유(표현)했지만 미로(벽)-아픔(가시, 송곳)-파도-검은집의 연결구조가 유기적이기보다 인위적인 느낌이 든답니다. 또 미로를 헤매는 화자의 상황이나 시적 정황을 추상적인 이미지로 표현했다는 게 아쉬워요. 어쩌면 마음의 작용을 보여주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YP제국 님이 겪고 있을(겪었을)지도 모를 그 상황을 담담하게 써보는 것도 좋을 듯해요. 시가 현실에 뿌리를 두지 않는 것은 열매나무가 땅(흙)에 뿌리를 두지 않는 것과 같답니다. 그런 나무는 봄에 꽃이 피지 않고 가을에 열매가 맺지 않는답니다.

 

 

 

 

이번주 중등부 우수작은 두둥!! <달의 몰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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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월장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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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월장원을 발표합니다

 

 

 

 

첫째 주 /

 

별환, <필름> :  습작을 많이 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검은 기억'이라는 관념적인 소재를 '필름'으로 구체화시키려는 게 느껴졌어요. (그럼에도 다소 관념적인 시랍니다.) 또한 감각적인 언어나 표현이 풍성했고 마지막 연에서 감탄을 자아냈어요. '눈물은 색이 모두 빠진 채/투명하고 희미하게 흘러서'라는 표현이 시적입니다. 가끔 잠들기 전 여러 기억들이 밀려들지만 순간 끊긴 필름처럼 기억 나지 않는 장면들이 있죠. 그런 면에서 공감할 수 있으나 시가 '기억'이라는 관념에 집중되어서 전체적으로 피상적이라는 인상도 줍니다. 시적 의도나 주제를 잘 드러냈는지 따져봐야 해요.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이었나 다시 고민해보면서 퇴고해보면 좋겠어요. 더 구체화된 시적 정황으로 정보를 준다면 좋은 시가 될 가능성도 있답니다.

 

세바시, <벙어리> : '벙어리'라는 말 속에 우리 현실이 반영된 듯해 더 맘이 아픕니다. 이 시의 소재가 현실적이랍니다. 시적화자가 말을 전달해주는 형식이어서 객관적이고 이미지가 선명해서 생동감을 느꼈어요. 다소 설명적이고 장면 묘사가 소설적이지만 관념적이지 않았던 점은 좋았답니다. '사람에게 데이는 건 서투른 다림질에 데이는 것보다도 더 미련한 짓이라고 했다', '가끔 두 다리마저 갈피를 잡지 못할 때/배고픈 숫사자로부터 까닭없이 도망치는 토끼마냥' 등의 표현이 더 시적이면 좋겠어요. '발톱이 기어이 살집을 파고들고 나서야'는 제 마음까지 파고든 표현이랍니다. 그런데 "지긋지긋한 일 하든 안하든 지긋지긋한 인생이니 고마 지긋지긋하게 살람니더" 대사는 푸념에 그치고 직설적인지라 공감보다 아쉬워요. '비정규직 근로자의 처우나 부당해고' 등은 사회적 이슈이기 때문에 더 은유적으로 표현하면 어떨까요. 여튼 설명적이거나 직설적인 표현들만 잘 정리하면 좋은 시가 나올 듯해요.

 

 

둘째 주 /

 

효월曉月, <통닭 부루스> : 구수한 어투가 인상적이네요. 통닭 부루스라는 어감처럼 시 재밌게 봤답니다. '똥차,똥차 혀도 철수 아부지네 통닭 트럭'처럼 리듬감도 있었어요. 어디선가 본 듯한 통닭 트럭과 인물(철수 아부지)을 잘 그렸답니다. 자칫 시의 이야기가 통속극처럼 전개될 수 있는데 감정의 견제가 있어서 그렇지 않았어요. 다만 시의 의도가 과도하다고 느껴집니다. 비(빗길)와 통닭(돌아가는), 인생(돌아 굽이진) 등이 조화롭게 이어져야 할 듯해요. 이 중에서 비가 분위기는 자아낼 수 있어도 큰 역할을 하고 있나 따져봐야 해요. '빗발은 점점 굵어지고 고급 승용차' '비 오는 거리에 뭣이 중헌디' '비에 젖은 세월에 뭣이 중헌디' 등도 마찬가집니다. 고급 승용차와 트럭이 대조를 이뤄 인물의 처지를 비교할 수 있지만 직설적이어서 시적 감흥이 떨어진답니다. 마찬가지로 비오는 거리와 비에 젖은 세월에 뭣이 중헌디라고 한 것도 의도가 너무 드러나 아쉬워요. '곡성'의 대사가 떠오르지 않게 해야 신선한 표현이 될 수 있을 듯해요. 좀 더 퇴고하면 분명 좋은 시, 재밌는 시가 될 듯해요.

 

 

셋째 주 /

 

흰구름범고래, <머리 없는 닭 마이크> : 기괴하면서 신기한 일이죠. 아마도 머리 없는 닭이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적이었을 겁니다. 더 놀라운 것은 머리 없는 닭은 마이크라는 이름이 생겼고 닭 주인은 돈을 벌었다는 거죠. 흰구름범고래 님 덕분에 세상에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네요. 이 시는 현상(마이크)과 현상에서 비롯된 사유를 자유롭게 펼쳐놓은 듯한 인상을 줍니다. 시가 거칠지만 재밌게 읽었고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 점이 좋았어요. 그러나 현상을 재현시킨 이미지들이 범람하고 사유는 직설적으로 표현돼 아쉽기도 해요. '당신'이 마이크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혹은 '우리가 처한 삶'이 될 수 있다는 설정이 느껴졌어요. 그러나 마이크의 삶과 동일시 될 수 있는 객관적 대상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거칠게 늘어놓은 질문들도 자문이길 바랍니다.

 

 

마지막째 주 /

 

별환, <제목> : '이름을 잃었습니다' 흥미롭게 시작했어요. 제목이 '제목'인 시라는 것도 흥미롭네요.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지하철이라는 공간을 설정한 것도 괜찮았어요. 그러나 사유가 설익은 느낌이 듭니다. '~니까'의 반복이나 시적화자와 '당신'으로 지칭하는 '우리'가 구체화되지 않습니다. 3연에서 '객실마다 계절이 달랐습니다'는 상상력이 좋았는데 더 확장되지 않고 4연에서 휘발되는 것도 아쉽기도 해요. 창작자에게 구상적인 사유가 읽는이에게도 어떠한 의미가 형성되어 전달됩니다. 그랬을 때 공감대가 형성되죠. 이 시가 더 공감되려면 창작자의 자기 확신이 필요할 듯해요.

 

향유용, <나의 서커스> :  '서커스'라는 소재가 재밌어요. 특히 시적화자가 시에 개입되지 않고 전개되는데 마지막 연에서 '나의 서커스'라고 하니 반전이 생깁니다. 그런데 뭔가 걸립니다. 제목 '나의 서커스'가 있으니 굳이 본문에 '나의 서커스'를 쓰지 않아도 될 듯 합니다. 여튼 이 시는 화자 '나'가 매우 중요하게 다가와요. 어릿광대, 곡예사, 조련사, 사자 등이 등장하고 이들은 서커스를 합니다. 그렇다면 화자는 어릿광대, 곡예사, 조련사, 사자를 데리고 있는 서커스 단장일까요? 물론 이 시는 일반적인 서커스를 말하려는 게 아니겠죠.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요?'라고 말하는 어릿광대에게 마음이 가기도 하지만 상황과 묻고 답하는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물론 서커스로 화자의 삶을 빗대놓은 듯(비유) 해요. 행복해야 하는 서커스, 모두가 즐거운 서커스, 즐거워야 하는 슬픈 서커스를 하듯 우리는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시를 추측해서 읽는 것은 무리겠죠. 시의 구절들이  반복되는 게 얼마나 효과적이고 효율적인지 따져봐야 합니다. 오히려 시적정황을 더 구체화시키고 시적의도를 드러내는 데 이미지를 할애하면 어떨까요.

 

 

 

 

이번 고등부 월장원은 <통닭 부루스>입니다.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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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월장원을 발표합니다.

 

 

 

 

첫째 주 /

 

박채연, <방구석에서> : 방구석에서 모든 걸 잘 볼 수 있다는 게 주변(외곽)에서 중심이 잘 보인다는 뜻처럼 다가옵니다. 시적화자는 '나를 즐겁게 하는 아픔'을 찾고 싶은 때 방구석에서 방 안을 봅니다. 방 안에는 로봇, 인형이 있어요. 이것들이 화자를 즐겁게 하는 아픔일까 싶기도 해요. 그런데 화자는 등 뒤의 창문을 보려고 하지 않아요. 고통에 정신을 잃고 향락하게 될까봐 두려운 것이라고 합니다. 표현이 어려운데 '고통'이 뭐고, 정신을 잃고 향락하는 게 뭘까 궁금해집니다. 밖에 나가서 정신 없이 놀고 싶은데 놀지 못해 고통스럽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구석에서 안이 잘 보인다는 인식은 시적이고 뭔가 궁금증을 유발시키지만 의도나 표현에서 모호한 게 많습니다. 사유를 잘 정리하고 표현을 다듬으면 좋을 듯해요.

 

gayoung, <입술은 왜 갈라지지 않을까> : 언어를 다루는 솜씨와 사유가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명절날 모인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들이 누구에게는 달갑지만은 않겠죠. 시적화자는 말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혀는 축축하지만 말은 메말라버리죠. '톱밥 같은 말'이 되는데 '기이한 일'이라고 사유합니다. '입술은 왜 갈라지지 않을까'라는 물음은 말이 톱밥 같이 메말라버렸는데 입술은 갈라지지 않는지 의문을 품는 것 같기도 해요. 여튼 이 물음에 대한 의도가 쉽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갈라진다'는 것에 대해 공감할 수 있도록 앞 연에 이미지를 넣었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3연 '거기가 요즘 집값이 떨어져 그래도 전세로는 만만찮을 텐데/이번에 말이다 아는 언니의 친구의 딸이 거기에 붙었는데에'는 직접적으로 사람들의 대화로 표현해 아쉽기도 합니다. 이 대화는 상징적이라기보다 일반적이어서 식상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시적 이미지로 표현하면 좋겠어요.

 

 

둘째 주 /

 

YP제국, <검은 집> : 시적 정황(이미지)이 조금만 더 구체적이었다면 명확하게 시적 의도를 드러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시적화자가 집에 기대어 잠들고, 무거운 마음을 앉히고, 지도를 종이 위에 적습니다. 화자의 모습이 있지만 화자가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또 검은 집이 무엇일까 궁금해져요. '내 말을 들어주는 검은집'이어서 마치 대상이 살아 있는 듯하거든요. 우주와 도시, 그리고 집에 이르기까지 뭔가에 짓눌리는 것이 피로나 졸음처럼 다가오지만 좀 더 의도를 드러낼 수 있도록 형상화를 해보세요.

 

 

마지막째 주 /

 

redfeet, <1980 이어폰> : 시적화자의 진솔한 감정과 주제가 잘 드러나 좋았어요.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 느껴지는 군요. 그 현실을 견디고 참아내는 시간이 필요할 듯합니다. 저는 성장통과 같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진로상담이 고해성사처럼' 느껴진다는 표현이 좋았고 아프게 다가왔어요. 그러나 직접적으로 발화는 아쉽기도 합니다. 감정 토로나 사족 같은 설명이 될 수 있거든요. 그렇게 된다면 시가 주관적으로 흐를 수 있어요. 객관적인 시를 쓰려면 비유하고 묘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목도 좀 더 고민해보시면 어떨까요. 이 제목은 전체를 아우르거나 시를 증폭시켜주는 역할을 하지 않거든요. 여튼 퇴고를 잘 한다면 좋은 시가 나올 가능성이 있답니다.

 

 

 

 

이번 중등부 월장원은 <방구석에서>입니다.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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