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둘째 주 우수작(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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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주에도 우수작을 선정했어요. 글틴 친구들의 시를 읽으면서 '관념'에 갇혀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우리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거나 뭔가를 설명하면서 관념어를 사용하거나 감정을 토로하거나 애매모호한 표현을 잘 쓰지 않습니다. 그러면 누구와도 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이죠. 시도 마찬가지랍니다. 관념을 표현하고 싶다면 일상에서 보고 느끼는 구상적인 소재로 써보세요. 진술보다는 묘사에 신경을 써보세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듯. 그러면  상대방은 머릿속으로 한 폭의 그림(추상화일 수도 있어요)을 그리면서 이야기를 들을 겁니다.  시는 마음에 그려진 지도 같아서 독자는 시인이 그려놓은 길을 뒤따라가기도, 앞서가기도, 다르게 가기도 한답니다. 저는 글틴 친구들의 지도를 따라가다가 길을 잃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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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편, <우주> : '오늘도 새우처럼 웅크리며 환멸과 함께 잠드는 밤'에서 시적화자가 '우주'로 비유된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이 시는 현학적이고, 관념과 추상이 지배적이나 시를 관통하는 정서가 있어요. 어쩌면 우주라는 막막한 공간에서 상상되는 화자의 권태와 환멸이라는 감정일 수 있어요. 문제는 이러한 화자의 감정이 매우 모호하다는 겁니다. 권태, 미움, 작별인사, 혐오, 욕구의 소멸, 원망, 돌연변이, 환멸 등으로 이어지는 관념화된 화자의 감정 상태들만 나열됐을 뿐 구체적인 정황이 없답니다. 다만 '사람들=별'에서 화자의 권태 속에 별들이 헤엄치지만 별들은 화자(돌연변이)를 모릅니다. 저는 화자가 우주라는 광범위한 존재로 비유되기보다 화자 자체를 형상화하면 어떨까 싶어요. 화자의 모습이 구체화되면 권태나 환멸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바이현, <사랑> : 짧은 시인데 만만치 않은 내공이 느껴지네요. '사랑'이라는 언어가 텍스트에 나오지 않아 은유로 읽혀졌거든요. 그러나 시가 금방 와닿지 않았어요. '이제' '이번에는'에서 시제의 혼돈이 생겼답니다. 3연까지 방에 두고 온 짐을 이야기 하는데, 연결고리가 부족한 상태에서 (짐?이) 이제 얼마 안 남았고 이번에 화자를 두고 온다는 게 의문점이 남는답니다. 보다 자연스럽게 정황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면 시의 은유에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윤별, <훔쳐가는 기억> : 잘 읽었어요. '기억'이라고 본다면 이 시는 정체가 불명한 시적화자와 '너'가 파편처럼 수없이 분산되어 있어요. 그럼에도 뭔가 의미를 부여하는 진술들이 있었답니다. 상상세계와 현실세계를 넘나드는 듯했어요. 시를 관통하는 중심 오브제와 이미지가 필요하답니다. 퇴고를 한다면 좋은 시가 나올 수 있을 듯해요. 대신 언어에 대한 책임감을 더 가지시길.

 

 

가역, <꽃> : 저도 애기똥풀을 고교시절에 알게 됐답니다. 시를 읽으니 동심이 느껴지고 재밌어요. 애기똥풀이 우는 이유가 오줌을 싸지 못해서라니! 대화 형식의 시여서 시적화자가 애기똥풀을 대변하고 있어요. 화자는 까칠하게 장미, 민들레에게 말을 합니다. 문득 화자가 누구인지 궁금해집니다. 어째서 애기똥풀 대신 장미에게 가시를 치워라고 하고, 민들레에게 솜털을 치워라고 할까 싶거든요. '가득 들었데요'는 말을 전하는 것이니 '가득 들었대요'라고 수정해야 해요. '애기똥풀이 울고 있을 때'의 반복은 어떤 의도인지 궁금하네요. 다른 구절에서도 반복되는 표현이 효율적인지 따져봐야 한답니다.

 

 

 

 

이번주 고등부 우수작은 두둥!! <사랑>, <훔쳐가는 기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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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STICKMAN, <해> : 십대가 느낄 수 있는 나이와 팔십대가 느낄 수 있는 나이는 다를 듯해요. 등의 얹어져 무거워지는 추, 추해지고 노쇠하고 늙는 것. 이 시가 의도하는 것은 뼈를 끼워마치는 노력, 그 고통에 관한 이야기 같습니다. 그렇지만 한 살 더 나이를 먹는 것의 외관만 집중하는 것 같아요. 나이든 노인이 척추를 끼워맞추려다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는 것도 단정적이랍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고, 늙어간다는 것, 죽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마음이 가벼워지는 게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이 시가 추측으로 이뤄지지 않고 삶의 통찰이 있었다면 또 다른 의미망이 형성될 듯해요. 지금은 한 살 더 먹은 시적화자의 정황만 보여주는 게 어떨까 싶고요.

 

 

YP제국, <음표> : 음악을 음표로만 본다면 춤추는 듯 하겠죠. 이 시는 청각을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해 재밌어요. 그런데 '길쭉길쭉한 과자'가 연관성 없이 나와 휘발되는 게 아쉽고, '새싹'도 아쉬워요. 시어가 시어를 낳아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도드라진 언어가 어떻한 역할을 하는지 고민해봐야 해요. 그리고 '얇은 곧은 선'은 '얇고 곧은 선'으로, '손 끝에서'는 '손 끝으로'로 수정해보면 더 자연스러운 문장이 될 듯해요.

 

 

 

 

이번주 중등부 우수작은 두둥!! <음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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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월장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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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월장원을 발표합니다

 

 

 

 

 

첫째 주 /

 

기해, <김장> : 농익은 김치 인생이라! 표현이 좋고, 여러 생각을 하게 합니다. 김치가 익기까지 숙성되는 시간이 필요하듯 기해 님의 시도 서서히 숙성되지 않을까요. 졸업 축하하고 멋진 고등학생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튼 시가 '김장'으로 부제 '졸업'을 비유하고 있군요. 부제가 없어도 충분히 학창시절을 이야기하는 것이니 '졸업'은 불필요한 듯해요. '자각은 늘 지각하는 법인지' 표현이 좋네요. 특정한 시절(중학교)을 회상하는 시적화자의 진솔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순간이 찬란했었다', '그 시절을 함께 추억하자' 등에서 화자의 단선적인 인식이 아닐까 싶고 마지막 연은 사족 같습니다. 화자의 소망일 뿐이니까요. 졸업과 김치의 비유는 좋지만 대체로 설명적인지라 시적 긴장감이 떨어져 아쉽기도 합니다.

 

 

 

둘째 주 /

 

金狂哲, <망태 할아버지> : 시적화자가 관찰하는 대상이 분명해요. 화자가 바라보고 사유해 풀어내는 문장 역시 관찰하는 대상을 벗어나지 않고 담담하게 진행되죠. 화자의 감정적인 발화가 개입이 되지 않은 걸('할아버지의 뒷모습은 너무도 처량하다'만 빼고) 보면 화자는 섣불리 대상과 상황에 대해 판단하지 않으려 하는 자세를 유지하려 노력했던 것 같아요. 독자들은 화자가 펼쳐놓은 한 폭의 풍경화를 읽어 내려갑니다. 그러나 화자의 대상에 대한 화자의 객관적인 위치가 시를 싱겁게 만들었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아쉬웠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망태 할아버지의 '문드러진 얼굴과 손'이 '그야말로 천형의 얼굴'이라며 피할 때, 시인은 '빈거리에 혼자 서서 / 아무도 모를 눈물 흘'리는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예를 들면 떨어진 낙엽이나 꽃잎을 떠올릴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선경후정이라고 하죠. 대상을 묘사해 독자에게 전한 뒤 시인의 목소리를 작품에 담아내, 독자와 소통하는 방법도 선경후정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여튼 제가 어렸을 때 들었던 이야기(아기 잡아먹는 슬픈 문둥이 등)들이 나오니 시적의 소재를 책에서 얻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물론 어디서 소재를 얻든 상상할 수만 있다면 직접 체험한 듯 묘사할 필요가 있답니다. 안도현 시인의 시 '서울로 간 전봉준'을 읽어보세요. 역사책에서 본 전봉준 사진 한 장으로 시작된 시랍니다.

 

자유지기, <행복한 나날> : 살면서 친구들을 만나거나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느낍니다. 저 사람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말이죠. 시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시는 시인의 생각과 사유를 꽤 객관적으로 담아내 독자에게 내어놓는 '작가의 그릇'과 다르지 않거든요. 시적화자는 사소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을 행복하게 느낍니다. 독자들 역시 그런 화자의 모습을 상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지도 모릅니다. '행복할 지도 모릅니다'에서 '행복합니다'라고 발전되는 시상은 화자의 확신이 되어 독자들에게 전달될 겁니다. 독자들은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죠. 그래 행복이 뭐 별거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려있는 거지. 이 시를 읽는 잠시나마 그런 생각에 빠진다면, 이 시는 독자와 가깝게 소통한 것이 되겠죠.'지치지 않고' '모릅니다' 등로 수정해야 하고(오탈자)와 '눈부실 때' '시작할 때' 등 여러 곳의 띄어쓰기에 신경을 써야 해요.

 

 

 

셋째 주 /

 

삼이사, <죽은 교실> : 교실에서 펼쳐지는 모종의 사건에 대한 시적화자의 정리라 느껴져요. 화자의 표현에 따르면 교실에는 피해자가 있고, 서로가 서로를 피해자라고 하고, 그것은 가해자의 낙인이 두려운 역할극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자라는 나뭇가지는 상황이 여기저기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 같아요. 어른들은 CCTV처럼 행적을 살피지만 말 그대로 카메라답게 어떤 조치를 내리지도 않습니다. 화자는 피해자 친구를 보고 자신의 처지를 안도합니다. 그러면서 죄책감 때문에 괴롭구요. 양심은 그 친구에게 손을 내밀까 고민을 하게 합니다. 아마 피해를 목격했던 화자는 그 대상이 자신이 될까봐 그대로 두었어요. 제가 풀어서 쓰긴 했으나 많은 독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정황을 보여줬어요. 저는 화자의 고백의 큰 무게와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해요. 손을 내밀까 고민했고, 자기가 피해자가 될까봐 두려웠고, 그냥 두었다는 문장이 작가와 작품을 읽는 독자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고민과 두려움이 피해자를 그냥 보고만 있었다는 방임의 태도가 언젠가는 견딜 수 없을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독자들은 아마 현재의 화자가 고민과 두려움, 피해자를 그냥 바라보는 태도를 벗어나 언젠가 손을 내밀어 보고 나서 새로 쓰일 시를 기다릴 겁니다.

 

유디, <엄마를 부르면> : 화려한 수사나 미사여구를 동원한 문장을 만드는 기술적인 면보다 유디 님처럼 (유려하거나 신선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감정을 가득 반영하는 표현이 기반이 되는 게 나을 수 있어요. 대부분의 '엄마(어머니)'가 시적화자의 엄마와 다르지 않을 겁니다. '문장 사이의 쉼표라도 놓칠까' '눈의 씰룩거림이라도 놓칠까봐' 대부분의 자식도 엄마를 그냥 부르는 이유가 화자와 다르지 않을 겁니다.

 

 

 

마지막째 주/

 

학생c, <자율학습실> : 학생의 본분이 공부라는 말은 때로 억압적으로 들리기도 하죠. 만약 모든 학생들이 공부를 잘한다면, 모든 학생들이 공부를 좋아한다면, 그 학생들이 성인으로 자라 이 사회를 채운다면 우리 사회는 얼마나 갑갑할까 상상해봤어요. 시적화자는 자율학습실 현장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어요. 답답하고 숨을 쉬지 못할 것 같은 시의 공기를 독자들이 공감할 겁니다. 그리고 급작스럽지만 화자의 당당한 고백은 통쾌합니다. '나는 스케치북을 펴서 그림을 그릴거야/대입의 지휘 아래로 휘둘렸던 나,/진짜 나를 찾는 공부에 몰입하려고' 화자의 고백이 시원한 이유는 앞서 말했듯 '만약~한다면'이라는 전제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자율학습실이라는 공간도 합리적이진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진짜 자신을 찾는 공부를 하느라,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도, 학생의 본분은 공부야! 라는 말을 듣지 않게 되길 기원할 수밖에요.

 

 

 

 

이번 고등부 월장원은 <엄마를 부르면>입니다.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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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월장원을 발표합니다

 

 

 

 

 

첫째 주 /

 

김줄, <열등감> : '우울증'에 이어 '열등감'을 표현했군요. 시적정황이 가슴 아픕니다. 형상화가 잘 되어서 이미지가 그려지지만 모호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선 개미를 흩뿌리는 화자와 한해살이 식물인 화자가 동일한 건지 궁금하네요. 또 열등감에 찌든 화자가 열등감이 생긴 게 벚나무 언니 때문인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밝은 빛 한 조각 들지 않는 깜깜한 미세먼지를/굳이 찾아 꾸역꾸역/나무 아저씨의 비난도/빽빽한 바람도/잘근잘근 씹어 시커먼 속에/화려한 단색 속 먼지가 있을지/알 수도 없을 걸요' 문장이 어색하고 잘 읽어보면 이해가 되지 않아요. '밝은 빛 한 조각 들지 않는 깜깜한 미세먼지'를 찾는데 미세먼지가 공간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밝은 빛 한 조각 들지 않는 깜깜한 (어디?)에서 미세먼지를 굳이 찾는다고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여튼 화자가 선명해지면 이미지도 구체화될 듯 해요. 그럼 훨씬 시가 좋아지지 않을까요.

 

 

 

둘째 주 /

 

별빛마저, <차가운 눈> : 소박한 느낌을 주는 시를 발표했어요. 날씨가 추웠던 날, 친구와 싸웠던 상황과 친구의 한 마디는 날씨보다 차갑게 시적화자의 가슴에 박혔던 것 같아요. 그리고 화자는 마지막 연에서 그 상황에 대한 후회의 심경을 토로하고 있답니다. 붙잡을 수 없는 눈송이를 통해서요. 첫 연으로 돌아오면 '일 년 중 이맘 때 / 눈이 펑펑 내린다'는 문장을 통해 눈이 내릴 때마다 과거의 어느 장면을 떨칠 수 없다는 심경까지 작품에 담겨있어요. 소박한 작품이지만 화자가 독자와 소통하고자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내비친 시라고 봐요. 흔히 순수하고 낭만적인 눈 내리는 상황을 화자의 심경에 맞게 풀어낸 지점도 진솔한 부분으로 꼽고 싶습니다.

 

김줄, <퇴고> : 저 역시 오프라인 모임에서 합평한 경험이 많답니다. 시를 읽은 사람들의 비평을 들으며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귀담아 듣고 퇴고에 반영하는 경우도 있었죠. 시적화자는 제목처럼 퇴고하는 과정 속에서 느끼는 감정을 풀어냈어요. 인정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변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가 등장합니다. 독자들은 퇴고 작업 중인 화자의 번뇌와 혼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어요. 다소 맥이 풀리는 부분들은 효과적인 이미지로 퇴고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해요.

 

 

 

셋째 주 /

 

룰루리, <오타> : 사람의 기억은 꽤나 복합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죠. 지우고 싶은 기억일수록 선명하게 남고 한편으로는 스스로에 의해 편집되고 조작되기도 한답니다. 룰루리 님의 시 '오타'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구질구질한 우울'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그 우울을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여러 가지 시도를 했습니다. 결국 시적화자는 '부드럽고 달콤한 사랑노래에 취해/이 끝없는 우울을 애써 무시해보려'고 하죠. 화자의 체념은 회피를 하려는 비겁함도 아니고 벗어나려는 발버둥도 아닐 겁니다.

 

 

 

마지막째 주/

 

ayeon, <부모님> : '귀여운 시입니다. 이 시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오직 사랑하나로/버텨'내는 부모님과 '단 1초의 쉼도 없이' '달리는' '시계소리'를 연결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독자들은 자식을 위한 부모님의 희생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는 주제를 연상할 수 있겠죠. 제목에만 부모님을 쓰고 본문에 부모님을 언급하지 않아서 좋았어요. 그러나 사유의 아쉬운 점을 언급하고 싶답니다. 시계의 분침과 시침은 회전운동이기 때문에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이미지라기보다 보통은 일상을 맴도는 상징으로 비유되곤 하죠. 물론 초침이 달려 분침과 시침이 진행이 되는 것은 무리하지 않은 시적 전개인데, '더 나아갈 수 있게'라는 표현은 그래서 조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을 초침, 분침, 시침과 연결해 표현하기 위해서는 내밀한 고민을 해본다면 분명 더욱 좋은 시가 탄생할 수 있을 겁니다.
 

 

이번 중등부 월장원은 <퇴고>입니다.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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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첫째 주 우수작(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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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이 되었네요. 옷의 두께도 얇아졌지만 아직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죠. 그래도 봄 기운이 너무 좋습니다. 이번주에는 중등부의 시들이 눈길을 사로잡았어요. 시가 성장한 친구도 있었죠. 곧 새싹이 온힘을 다해 땅을 뚫고 나오겠죠. 어둠을 딛고 빛을 향하는 새싹의 의지를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겁니다. 그 새싹처럼 홀로 책상에 앉아 백지와 싸우며 시를 짓는 친구들을 생각했어요. 무럭무럭 자라길 바라며 이번주 우수작을 선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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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세바시, <18호는 트럭에 올라탔다> : 트럭에 올라탄 소 이야기가 가슴 찡하네요. 첫 구절부터 강렬해요. '시뻘건 낙인이였다/18호, 네 몸뚱아리를 채운 것은.'이라는 문장이 도치법으로 시뻘건 낙인을 강조했어요. 그런데 시뻘건 낙인이 무엇이길래 몸을 채울 수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그럼에도 이 시는 18호가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소'라는 것과 소에 관한 이야기가 잘 그려졌어요. 그러나 대상과의 거리를 둬야 하는데 감정 이입이 많다는 것이 아쉬워요. 1연 9행부터 14행까지 시적화자의 주관적인 인식이 반영되어 의구심이 들기도 해요. 이 시를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그러나 어미가 어떻게 본능적으로 도축 당하는 것보다 새끼를 발굽에 치여 죽는 게 낫다고 알 수 있을까요. 화자가 소와 동일시되어 진술하는 것보다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게 감동을 줄 수 있답니다. 이를테면 '너의 눈빛은 우수에 차 있었다'고 화자의 시선을 담았는데 '가장 슬픈 보름달 같은 너의 눈은/축사 앞 운반 트럭을 떠나지 못하였다'에서는 과도한 감정이 실려 있어요. 2연에서 해가 솟고 보름달이 사라진 풍경처럼 시적 정황을 담담하게 그렸으면 더 진한 감동이 밀려들었을 것 같아요.

 

 

쐐기벌레, <사과가 빨갛다> : '그러하다.'는 말에 시선이 가네요. 후배 중에 박 모 시인이 있는데 페북에 쓴 모든 글귀에 '그러하다'를 붙이죠.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이 시가 SNS 글귀처럼 느껴졌어요. '빨갛다'와 '빨갰다'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빨갛다'는 것은 통상적인 관념이고 '빨갰다'는 것은 사실 혹은 진실인 듯해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니, 사과가 빨갰다.'(1연)와 '집에 와 보니, 사과가 빨갰다.'(6연)는 구절은 동어반복이 아닐까요. 그리고 1연에서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니'와 '집에 와 보니' 사이에 새벽 공기, 새벽 찬 공기, 교실, 칠판, 아이들이 나와요. 시적 흐름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고 이미지가 분절되는 것 같습니다. 추측하건데 새벽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시를 쓴 게 아닐까 싶었어요.

 

 

삼이사, <소년의 배> : 누구나 망망대해를 항해한다면 막막하리라 봐요. 특히 진로를 고민하는 사춘기 청소년이라면 더욱 그렇겠죠. 그런 막막한 감정을 바탕으로 탄생한 시가 아닐까 싶군요. 시적화자가 바다에서 '도착지를 모르는 여행'을 하면서 도착지를 찾으려고 애쓰는 화자의 모습에 공감이 갔어요. 정작 섬을 발견하고도 의심을 하는 모습도요. 이 시가 정처없이 떠도는 인생을 표현했더라도 소재나 세부 묘사에서 아쉬움이 남아요. 시적정황이 현실보다 상상이나 감정상태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막연한 감정은 막연하게 표현된답니다. (화자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상황들) 독자는 시를 추측만 할 뿐 구체적인 이미지를 볼 수 없고, 무엇보다 어떤 소년이 왜 항해를 하는지 의문이 든답니다. 경험(체험)을 바탕으로 시를 짓는 연습이 필요하답니다. 굳이 감정을 표현하지 않아도 시적정황만으로 독자는 상상하고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답니다.

 

 

Chameleon, <잔걸음> : '나는 이제 세상을 쪼으려는 듯' 의미심장한 구절로 시를 마쳤어요. 화자가 관찰하고 있는 까치와 연관성이 있겠다 싶어요. '지붕에 올라가는 것을 참 좋아했다' '비밀스럽게 조용하게' '강하고 곱게 고갯짓을/날개짓을' '까치가 몰고 온 구름' 등으로 까치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2연도 까치의 모습이겠죠. 그러나 화자의 주관이 개입되어 단정적으로 표현해 의문이 남습니다. 왜 까치는 지붕에 올라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는지, 왜 까치의 고개짓과 날갯짓이 비밀스럽고 조용하고 강하고 곱다고 인식했는지, 왜 (까치가) 모든 것을 지겹게 지켜보고 아쉬워하고 슬퍼한다고 인식하는지, 어떻게 까치가 구름을 몰고왔고 구름이 어떻길래 화자가 닮고 싶은지 등등. 이러한 의문이 생기지 않아야 '새벽 찬 공기와 희미한 달에 닿고 싶다' '나는 이제 세상을 쪼으려는 듯' 등의 구절에 호응이 될 듯해요.

 

 

 

 

이번주 고등부 우수작은 두둥!! <18호는 트럭에 올라탔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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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STICKMAN, <무당개구리 배때기> : 시적 발상과 상상력이 재밌어요. 다만 '김00 씨'와 '무당개구리'의 관계성이나 공통 분모를 찾아야 한다는 게 아쉽습니다. 덕분에 무당개구리가 무엇인지 찾아보게 되었어요. 청록색에 검은색 얼룩이 있는 무당개구리의 생김새가 특이하고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고 하는군요. 김00 씨가 지하철을 타고 '목적없는 곳, 무념무상 무의식적으로 가는 곳'으로 향하는데(어디론가 목적 없이 향하고 있죠) 무당역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무당개구리를 만나는데 '무슨 낙으로 사리오'라는 환청을 반복적으로 듣죠. 어쩌면 시로 말하고 싶은 구절이 아닐까 싶어요. '그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분못할 것을 애써 부인한 채 그곳을 빠져나온다'면서 집으로 올아오죠. 오늘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무당역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아이를 만나는 것인데 아침에 집에 들어오는 것인지 시간이 흐른 것인지 궁금합니다. 또 '김00 씨'의 사연(속사정)이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 시적대상(인물)에 동화되고 몰입하려면 인과가 있어야 하는데 무턱대고 환청, 환상으로 넘어가는 게 갑작스럽기도 합니다. 전형적인 인물이든 개성적인 인물이든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이미지를 응축시키면 보다 좋은 시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박성우 시인의 시 '달팽이가 지나간 길은 축축하다'를 읽어보세요.

 

 

천솜, <쥐구멍> :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였어요. 쥐로 풍자된 정황이 시선을 사로잡았어요. 근데 왜 쥐로 표현했을까 생각해봤어요. 쥐가 혐오스러운 동물이고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에서 착상을 했을까요. 쥐가 등장하는 근거는 '쥐구멍으로 숨고 싶다더니'겠죠. 여하튼 '오랫동안 비어 있던 교실을/낯선 날숨들이 채웠다'에서 알 수 있듯(얼마나 비어 있어서 오래인지 몰라도) 낯선 아이들과 낯선 시선이 느껴집니다. '가장 큰 아이'에게 시선이 덜 가는 정황과 '그 아이' '그 애'는 눈꼬리 대신 등을 구부리는데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궁금해요. 그 일 때문에 '그 애'가 쥐구멍에 숨는 쥐가 되는 정황으로 연결되거든요. 시각에서 청각으로 이어지는 시적 구조, 쥐구멍과 목구멍, 쥐와 귀 등의 언어 구조를 의도한 듯해 좋았어요. 좀 더 정교하게 이미지를 만들어내면 좋은 시가 나올 듯해요.

 

 

청빛, <돌연변이 레몬> : 마음이 느껴지는 첫 시를 발표했군요. 청빛 님의 시에서 참 맑은 마음과 동심이 느껴졌답니다. 아무래도 이제 막 중학생이 된 듯 싶기도 해요. 앞으로도 즐거운 활동 기대할게요. 종결어미가 '~다'와 '~지'인데 일관성 있게 통일하면 좋을 듯해요. 이 시는 나와 다른 모습을 가진 것들에 대한 '차별'을 꼬집고 있어요. 마지막 구절 '이 그림은 이상하고 슬픈 그림이다'에서 알 수 있듯 시적화자는 '돌연변이 레몬'을 그려놓고 이런저런 상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렇게 따진다면 애초에 그림(돌연변이 레몬를 그린 그림)으로 시작하면 어떨까 싶기도 해요. 1~8행까지 의문을 만들거든요. 과일가게 주인이 팔릴만한 과일을 진열할 텐데 왜 팔리지도 않을 돌연변이를 진열할까요. 화자도 돌연변이 레몬이 팔리지 않고 끝내 버려질 것이라고 알고 있잖아요. 돈을 벌어야 하는 가게 주인은 절대 돌연변이 과일을 팔지 않을 듯해요. 그래서 이 시는 화자의 상상에서 시작해 화자의 상상 혹은 감정으로 마무리되는 거랍니다. 시에 담긴 좋은 의미(의도)를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세요.

 

 

 

 

이번주 중등부 우수작은 두둥!! <쥐구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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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마지막째 주 우수작(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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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마지막째 주 우수작을 선정했어요. 우선 개학하고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보여줘 박수를 보냅니다. 시를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완성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죠. 가끔 그렇게 나온 시가 있답니다. 제가 아는 시인 중에는 머릿속으로 시를 쓰고 퇴고까지 마친 다음 노트에 한번에 시를 적는 사람이 있어요. 저도 마음에서 오래 머문 사유가 시가 되어 일필휘지로 나왔던 적이 있죠. 글틴 친구들도 시 한 편을 짓기 위해 오래 고심하리라 생각해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시를 쓴 다음입니다. 바로 퇴고가 남아있어요. 오래 퇴고할수록 단단한 시, 완성도가 높은 시가 나와서 창작자에게도 만족감을 주기도 한답니다. 저는 이를 창작의 고통이 주는 쾌감이라고 봐요. 물론 시적표현이 서툴러도 됩니다. 글틴이니까 마구마구 써도 됩니다. 다만 시를 접하는 진정성과 퇴고에 대한 열정이 필요해요. 창작자에게 쾌감이 없는 시는 독자에게 아무런 감동을 줄 수 없다는 점도 잊지 말아주세요. 저도 글틴의 한 독자로서 사유가 깊어지고 시를 읽는 즐거움이 커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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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윤별, <문> : 시적화자는 담벼락에 문을 그립니다. 그리고 파란 물을 토하는 빛나는 해파리를 봅니다. 두 문장의 연관성을 헤아리는 일이 독자들에게 어떤 인상을 준다거나 특정한 이미지를 전달하기는 곤란할 듯해요. 다음 문장에서는 구름을 찌른 콘크리트 사이에서 (무엇이) 죽어가고 있던 순간이었다고 해요. 아마 앞선 문장의 주어였던 빛나는 해파리였겠죠. 1연에 등장한 시어들을 보자면 담벼락, 문, 빛나는 해파리, 파란 물, 구름, 콘크리트 등이 조사와 서술어 등을 통해 문장이 되었어요. 그 문장에 담긴 이미지와 동원된 시어들이 비유 혹은 상징하는 부분 그리고 시적의미를 가만히 되짚어봅시다. 화자는 왜 담벼락에 문을 그리는지, 빛나는 해파리가 파란 물을 토하는 행위는, 그걸 본 화자는 그 현상을 왜 언급하고 있는지, 구름을 찌른 콘크리트는 화자의 상태를 비유하는 것인지, 첫 연에서 생성된 궁금증은 작품 내에서 해소가 되고 있을까요. 그렇다고 보기 어려워요. 독자들은 작품에 사용된 어떤 단어부터 시작해 한 문장과 한 연, 한 부분, 한 작품을 읽고 작가가 시를 통해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떠올리게 될 겁니다. 그게 구체적인 주제거나 슬프구나, 기쁘구나 생각할 수 있는 정서일 수 있죠. 시는 수학이나 과학처럼 공식이 있지는 않아서 자유로울 수 있어요. 그러나 정해진 공식보다 더 복잡하고 촘촘한 사고체계가 필요하답니다. 천차만별인 독자들과 소통하기 위해서겠죠. 좋은 시는 독자에게 말을 건네고 독자의 한마디를 이끌어내면서 독자와 대화하는 시가 아닐까요. 무턱대고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시키거나, 독자가 어떻게 생각하든 시인 자기가 할 말만 하는 시, 스무고개 하는 시, 쓴 사람조차 왜 썼는지, 무엇을 썼는지, 하고 싶은 말이 정립되지 않은 시들은 아마 독자와 대화하기가 힘들 수밖에 없어요. 작가가 어떠한 현상을 통해 소재를 생각하고, 대상을 관찰하고, 시어를 선택해 문장을 만들고, 이미지를 만드는 모든 과정이 시를 쓰는 데 중요하게 작용할 겁니다. 먼저 자신이 시로 독자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건네고 싶은지 확실해지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윤별 님이 독자와 나누고 싶은 말, 주제가 선명하다면 본인의 시에 과도하게 많은 시어와 그럴듯해 보이는 문장, 누군가 먼저 사용한 것 같은 식상한 이미지들이 무분별하게 사용되지 않으리라 봐요. 여러 이미지를 무분별하게 펼쳐놓는 시가 있겠지만 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읽히는 문장과 정제된 이미지를 통해 작가의 목소리를 내는 작품도 있답니다. 시 제목부터 첫 문장을 지나 마지막 문장까지 막히지 않고 읽히는 가독성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니까요. '낯설게 하기'는 의미를 헤아릴 수 없는 문장으로 독자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이 시인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기가 막히게 표현했지!'하면서 독자에게 전율을 일으킬 겁니다. 이런 전율에는 분명 소통과 교감이 필수적이겠죠. 물론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지만 시의 기본기를 충실히 연마하시길 기대할게요.

 

 

쐐기벌레, <근시> : 제목은 '근시'지만 1연의 문장을 보면 '노안'이 아닐까 싶어요. 문장은 창작자 자신의 생각을 독자에게 전하기 위한 그릇이겠죠. 혹은 그릇 위에 담겨진 음식일 수 있어요. 올바른 문장이 아니거나 효과적인 문장이 아니라면 독자들은 작가들이 건넨 그릇이나 그릇 위 음식을 받지 않으려 물러설 겁니다. 글틴 친구들 대부분이 신경 쓰고 훈련해야 할 부분이 문장연습이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여하튼 화자는 근시입니다. 안경을 착용하고 몰랐던 세상이 '잘 보이게' 됩니다. 어떤 이유인지 다시 '안경을 뺐고' 화자의 엄마는 '괜찮을 거라고 말'합니다. 일부러 안경을 두고 나온 화자는 위험에 처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화자는 '겁이 많'지만 '세상을 보고 싶고/계속 살고 싶'다고 해요. 그 고백이 자신의 근시 시력을 교정해주는 안경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시적인 연결고리가 부재되어 있어요.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서는 시 전체의 이야기. 엄마와 근시와 안경과 살고싶다는 고백도 다 의미가 없어진답니다. '…맨홀에 빠져 죽으면, 그러려니 하지 뭐.' 애초에 그런 생각을 했다면 독자들은 왜 이 시를 읽은 걸까요. 그렇게 자조적인 마지막 문장을 작성할 정도로 화자는 낙담한 건가요. '살고 싶'다는 고백과 '죽으면 그거려니 하지 뭐'의 거리는 덜 여문 문장으로 메울 수 있는 의미가 아닐 겁니다.

 

 

학생c, <자율학습실> : 학생의 본분이 공부라는 말은 때로 억압적으로 들리기도 하죠. 만약 모든 학생들이 공부를 잘한다면, 모든 학생들이 공부를 좋아한다면, 그 학생들이 성인으로 자라 이 사회를 채운다면 우리 사회는 얼마나 갑갑할까 상상해봤어요. 시적화자는 자율학습실 현장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어요. 답답하고 숨을 쉬지 못할 것 같은 시의 공기를 독자들이 공감할 겁니다. 그리고 급작스럽지만 화자의 당당한 고백은 통쾌합니다. '나는 스케치북을 펴서 그림을 그릴거야/대입의 지휘 아래로 휘둘렸던 나,/진짜 나를 찾는 공부에 몰입하려고' 화자의 고백이 시원한 이유는 앞서 말했듯 '만약~한다면'이라는 전제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자율학습실이라는 공간도 합리적이진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진짜 자신을 찾는 공부를 하느라,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도, 학생의 본분은 공부야! 라는 말을 듣지 않게 되길 기원할 수밖에요.

 

 

오태연, <귀는 새벽을 좋아한다> : 시에 나타난 정서가 비교적 뚜렷합니다. 그러나 문장과 문장, 연과 연, 이미지와 이미지, 시적정황과 정황 사이의 연결이 허술해 아쉬워요. 어떤 문장 다음에 오는 문장을 통해 독자에게 이미지를 더욱 강렬하게 전달하거나 혹은 지금까지의 이미지를 환기한다든가 하는 의도적인 부분이 결여되어 있어요. 한 줄 한 줄 써내려갔을 뿐 독자와 소통하기 위해 효과적인 시적구조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시 여기저기에서 제대로 완결되지 못한 문장들도 확인할 수 있어요. 1연 '보이지 않는 천장에서 창에서 그 어딘가에서/흘러나온 묵은 소리를,/귀는 새벽을 좋아해'를 살펴보면 '보이지 않는 ~ 묵은 소리를,'까지는 주어가 없어요. 그래서 쉼표를 찍고 '귀는 새벽을 좋아해'라고 썼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분명히 나뉘어야 할 문장이죠. 물론 주어는 '귀'가 될 것이고 주어에 호응하는 서술어는 '좋아요'가 되겠지요. 그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창작자는 비교적 간결하게 퇴고할 수 있는 문장을 알 수 있을 거라 봐요.

 

 

 

 

이번주 고등부 우수작은 두둥!! <자율학습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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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YP제국, <죄책감> : 시적화자는 어떤 사건을 기억하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 죄책감을 외면하거나 완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기본적인 부분부터 언급할게요. 1연 마지막 문장 '나를 다독이는 따스한 햇살들이 작은 내 머리를 쓰담으며 말했다' 주어는 '따스한 햇살들이'입니다. 주어를 꾸미는 '나를 다독이는'과 주어의 서술어인 '쓰담으며 말했다'는 한 문장에서 주어의 동시다발적인 행동을 표현하고 있어요. 틀린 문장은 아니지만 효과적이거나 좋은 문장은 아니랍니다. 두 문장으로 나눌 필요가 있어 보여요. 작가의 문장구사는 작가가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에 고민이 필요하답니다. 독자들은 화자의 '선택이' 어떤 '실수'였고 어떤 '잘못'이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목인 '죄책감'이 무엇에 대한 어떠한 죄책감인지 당연히 알 수 없겠죠.

 

 

ayeon, <부모님> : '귀여운 시입니다. 이 시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오직 사랑하나로/버텨'내는 부모님과 '단 1초의 쉼도 없이' '달리는' '시계소리'를 연결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독자들은 자식을 위한 부모님의 희생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는 주제를 연상할 수 있겠죠. 제목에만 부모님을 쓰고 본문에 부모님을 언급하지 않아서 좋았어요. 그러나 사유의 아쉬운 점을 언급하고 싶답니다. 시계의 분침과 시침은 회전운동이기 때문에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이미지라기보다 보통은 일상을 맴도는 상징으로 비유되곤 하죠. 물론 초침이 달려 분침과 시침이 진행이 되는 것은 무리하지 않은 시적 전개인데, '더 나아갈 수 있게'라는 표현은 그래서 조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을 초침, 분침, 시침과 연결해 표현하기 위해서는 내밀한 고민을 해본다면 분명 더욱 좋은 시가 탄생할 수 있을 겁니다.

 

 

 

 

이번주 중등부 우수작은 두둥!! <부모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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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셋째 주 우수작(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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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우수작 선정이 늦어졌어요. 한꺼번에 우수작들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많은 친구들이 새롭게 유입됐지만 여전히 강조하는 것이 '소통'인 듯해요. 자기를 기록하는 행위가 일기이고, 혼자 쓰고 혼자 보는 것이죠. 자기의 가치 있는 체험을 기록하는 문학은 같이 보면서 공감대를 형성한답니다. 글틴 친구들에게는 피부로 와닿지 않는 말일 수 있어요. 그러나 노력하지 않고 포기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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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삼이사, <죽은 교실> : 교실에서 펼쳐지는 모종의 사건에 대한 시적화자의 정리라 느껴져요. 화자의 표현에 따르면 교실에는 피해자가 있고, 서로가 서로를 피해자라고 하고, 그것은 가해자의 낙인이 두려운 역할극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자라는 나뭇가지는 상황이 여기저기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 같아요. 어른들은 CCTV처럼 행적을 살피지만 말 그대로 카메라답게 어떤 조치를 내리지도 않습니다. 화자는 피해자 친구를 보고 자신의 처지를 안도합니다. 그러면서 죄책감 때문에 괴롭구요. 양심은 그 친구에게 손을 내밀까 고민을 하게 합니다. 아마 피해를 목격했던 화자는 그 대상이 자신이 될까봐 그대로 두었어요. 제가 풀어서 쓰긴 했으나 많은 독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정황을 보여줬어요. 저는 화자의 고백의 큰 무게와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해요. 손을 내밀까 고민했고, 자기가 피해자가 될까봐 두려웠고, 그냥 두었다는 문장이 작가와 작품을 읽는 독자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고민과 두려움이 피해자를 그냥 보고만 있었다는 방임의 태도가 언젠가는 견딜 수 없을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독자들은 아마 현재의 화자가 고민과 두려움, 피해자를 그냥 바라보는 태도를 벗어나 언젠가 손을 내밀어 보고 나서 새로 쓰일 시를 기다릴 겁니다.

 

 

hyeonee, <오후의 상념> : 시적화자의 행동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어요. 마지막 연에서는 화자와 다른 상황에 처해있는 '나태라며 눈 흘기는 너'를 통해 화자의 입장을 구체화하고 있기도 해요. 수업시간을 가정하면 학급문고의 낡은 시집을 읽는 화자와 수업을 듣고 있는 '너'가 괴리되어 있는 상황이겠죠. 제목처럼 '오후의 상념'입니다. 비약하자면 수업을 듣는 학생과 다른 짓을 하는 학생과의 차이는 없다고 느껴져요. 화자처럼 그 시간을 귀중한 상념과 값진 나태로 보낼 수 있고 화자가 바라보는 '너'처럼 수업을 열심히 들을 수 있겠죠. 수학을 재미있어 하고 잘하는 친구는 수학 문제를 풀면 되고, 만화책을 좋아하는 친구는 만화책을 보거나 직접 만화를 그려도 될 텐데, 수업시간에 모두 한 과목의 수업에 몰두해야 하는 게 문득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답니다.

 

 

유디, <엄마를 부르면> : 화려한 수사나 미사여구를 동원한 문장을 만드는 기술적인 면보다 유디 님처럼 (유려하거나 신선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감정을 가득 반영하는 표현이 기반이 되는 게 나을 수 있어요. 대부분의 '엄마(어머니)'가 시적화자의 엄마와 다르지 않을 겁니다. '문장 사이의 쉼표라도 놓칠까' '눈의 씰룩거림이라도 놓칠까봐' 대부분의 자식도 엄마를 그냥 부르는 이유가 화자와 다르지 않을 겁니다.

 

 

차한비, <회> : 이 시는 경험이 기반으로 쓴 시인 것 같아요. 횟집에서 연어의 아랫도리와 관련된 경험을 통해 시적화자의 '아랫도리가 허하다'는 발견이 짧은 생각만으로 문장화할 수 없을 거라는 봐요. 그러나 화자가 갖고 있는 정서는 분명하지 않아요. 횟집의 경험이 힘들었는지? 즐거웠는지? '끌끌, 웃으며/연어 회를 조롱'하는 게 말 그대로 단순한 조롱인지? 연어에 대한 혹은 자신에 대한 연민인지? '연어는/회를 거듭한다'는 문장은 불필요해 보이기도 해요. 그리고 '아랫도리가 허하다'는 건 허전함인지? 다른 감정인 건지? 그래서 마지막 '식탁 위 달, 오줌 지린 듯 차갑다'가 크게 다가오지 않아요. 조금 더 긴장감 있는 시적 구조가 필요하답니다.

 

 

 

 

 

이번주 고등부 우수작은 두둥!! <죽은교실>, <엄마를 부르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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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YP제국, <키가 작은 소년의 도끼> : 동화적인 상상력을 동원한 시입니다. 그런데, 우선 문장의 중요성을 짚고 넘어갈게요. '숲에 홀로 사는 키가 작은 소년의 도끼의 날은/많은 나무를 베지 않고, 따뜻한 불을 얻기 위해,/키가 큰 나무를 향해 있었다.' 첫 연 4행이 한 문장입니다. 간결한 문장으로 바꿔볼게요. '키가 작은 소년은 숲에 홀로 살았습니다./소년의 도끼날은 많은 나무를 베지 않았습니다./따뜻한 불을 얻을 수 있으면 됐으니까요./도끼는 키가 큰 나무를 향해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바꾼 문장이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어로 시작해 주어와 호응하는 서술어로 마무리된 문장은 짧은 호흡으로 오히려 독자들에게 수월하게 읽힐 수 있어요. 올바른 문장은 독자와 눈을 맞추는 데 기본이라고 해야겠죠. 여하튼 키 큰 나무들이 키가 작는 소년인 너는 키 작은 나무나 베라고 말했어요. 소년이 키 작은 나무를 다 베어버리고 나자 겨울 눈만 남았어요. 왜 일까요. 소년이 베지 않았다면 키 큰 나무들도 남아 있었을 텐데, 어쨌든 소년은 키 큰 나무도 베어버렸나 봅니다. 그러다 모두 베어버렸어요. 키 작은 소년 자신까지도 말이죠. 뭔가 슬픈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소년이 베어놓은 그 나무(장작)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 불타 사라지고 말았을까요. 남아있던 눈도 다 녹아버리고 말았겠죠. 소년의 도끼만 덩그러니 남아있을 걸 생각하니 쓸쓸해지기도 하네요.

 

 

박채연, <사막> : 제목 '사막'의 특징을 대체로 평이하게 표현했답니다.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시적화자는 사막을 이야기하면서 독자와 어떤 의미를 소통하고 싶었던 걸까 궁금해집니다. 이해가 가지 않거나 궁금해지는 문장이 없어요. 그러나 작품의 제목이자 주된 소재인 '사막'에 어떤 상징이 반영되었거나 사막의 모습을 통해 우리 혹은 자신의 황폐한 삶을 비춰보고자 했다면 더 공감할 수 있는 시가 될 것 같아요.

 

 

룰루리, <오타> : 사람의 기억은 꽤나 복합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죠. 지우고 싶은 기억일수록 선명하게 남고 한편으로는 스스로에 의해 편집되고 조작되기도 한답니다. 룰루리 님의 시 '오타'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구질구질한 우울'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그 우울을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여러 가지 시도를 했습니다. 결국 시적화자는 '부드럽고 달콤한 사랑노래에 취해/이 끝없는 우울을 애써 무시해보려'고 하죠. 화자의 체념은 회피를 하려는 비겁함도 아니고 벗어나려는 발버둥도 아닐 겁니다.

 

 

 

 

이번주 중등부 우수작은 두둥!! <오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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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둘째 주 우수작(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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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우수작을 발표하죠. 이런저런 사정으로 주 우수작 발표가 늦어졌답니다. 그래도 틈틈히 친구들의 시를 읽고 메모해놨죠. 겨울햇살이 따사롭습니다.  문득 이번 겨울은 눈을 본 기억이 거의 없었죠. 이제보니 겨울방학도 마쳤을 것이고, 개학을 했겠요. 저는 방학마다 왜 이런저런 계획을 못지켰을까 후회하기도 했어요. 그럴 때마다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이 맴돌았죠. 'I knew if I stayed a 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다.'입니다. 찾아보니 이 번역은 오역이라고도 합니다. '오래 살다보면 이런 일(죽음) 생길 줄 내가 알았지!'로 번역 가능하다고 해요. 여튼 당연히 생길 일을 알면서도 살면서 못한 것들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기도 하죠. 그렇지만 유쾌하게 받아들이고 다시 시작해보는 게 지혜로울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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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金狂哲, <망태 할아버지> : 시적화자가 관찰하는 대상이 분명해요. 화자가 바라보고 사유해 풀어내는 문장 역시 관찰하는 대상을 벗어나지 않고 담담하게 진행되죠. 화자의 감정적인 발화가 개입이 되지 않은 걸('할아버지의 뒷모습은 너무도 처량하다'만 빼고) 보면 화자는 섣불리 대상과 상황에 대해 판단하지 않으려 하는 자세를 유지하려 노력했던 것 같아요. 독자들은 화자가 펼쳐놓은 한 폭의 풍경화를 읽어 내려갑니다. 그러나 화자의 대상에 대한 화자의 객관적인 위치가 시를 싱겁게 만들었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아쉬웠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망태 할아버지의 '문드러진 얼굴과 손'이 '그야말로 천형의 얼굴'이라며 피할 때, 시인은 '빈거리에 혼자 서서 / 아무도 모를 눈물 흘'리는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예를 들면 떨어진 낙엽이나 꽃잎을 떠올릴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선경후정이라고 하죠. 대상을 묘사해 독자에게 전한 뒤 시인의 목소리를 작품에 담아내, 독자와 소통하는 방법도 선경후정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여튼 제가 어렸을 때 들었던 이야기(아기 잡아먹는 슬픈 문둥이 등)들이 나오니 시적의 소재를 책에서 얻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물론 어디서 소재를 얻든 상상할 수만 있다면 직접 체험한 듯 묘사할 필요가 있답니다. 안도현 시인의 시 '서울로 간 전봉준'을 읽어보세요. 역사책에서 본 전봉준 사진 한 장으로 시작된 시랍니다.

 

 

유디, <브라운관 너머에서> : 시적화자가 브라운관을 보고 있군요. 화면에 어떤 대상이 등장하고 화자는 그 대상에 대한 생각을 시로 옮겼습니다. 화자의 표현을 통해 독자들은 화자가 대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답니다. 그 대상에 매혹된 화자의 응원으로 시는 마무리하죠. 독자들은 화면에 비친 구체적인 대상이 누구인지 알지 못해도, 화자의 표현만으로도 화자의 감정을 느낄 수 있어요. 비약해 말하자면 화면을 통해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이성에게 느끼는 설레고 들뜬 감정과도 다르지 않을 테니까요. 그걸 공감대라고 말하기도 하죠. 습작기에 유효한 작업 방식이죠. 창작자 자신이 좋아하고 인상 깊게 본 대상이나 사물에 대한 생각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이죠. 독자와 소통할 창작자의 진심을 자연스럽게 작품에 담아낼 수 있을 테니까요.

 

 

 

참치군, <수박> : '수박'이라는 대상은 분명 시적화자에게 큰 의미를 가진 상징이자 매개체가 아닐까 싶어요. 이렇게 생각해보죠. 작가가 일정한 의미를 부여한 수박이 독자에게 전해졌을 때, "아! 이런 이유로 '수박'을 소재로 삼았구나" 혹은 "수박이라는 사물이 작품에서 이토록 낯설 게 표현될 수 있구나"라는 지점, 독자의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킨다면 작가의 작품이 독자의 마음에 닿았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이 작품에서 수박은 개인적인 상징으로 그치는 것 같아 약간 아쉬워요. '물기를 머금은', '반을 쪼개면 붉은 과육이 허약하게 물을 흘'리는, '수분 가득한 언어' 이렇게 '수박'이라는 대상의 외피를 시에 활용할 뿐이라면, 창작자가 수박에 대해 갖는 사유와 소재를 통해 드러내고 싶었던 세계는 그리 단단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준답니다. 안개, 죽음, 사투, 진눈깨비, 학교, 데크레센도, 이팔청춘, 쏟아진 별, 별들의 탄환, 부두, 젖가슴, 오라토리오, 졸업 등등. 시적흐름을 구현하지 못한 채 사용된 시어들로 보여서 제역할을 잘 하나 고민이 들기도 해요. 그럼에도 기존에 시보다 정제된 느낌을 주니 좀 더 시적흐름과 개인적 상징을 어떻게든 드러내 독자가 느낄 수 있도록 한다면 좋은 시가 될 것 같군요.

 

 

 

자유지기, <행복한 나날> : 살면서 친구들을 만나거나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느낍니다. 저 사람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말이죠. 시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시는 시인의 생각과 사유를 꽤 객관적으로 담아내 독자에게 내어놓는 '작가의 그릇'과 다르지 않거든요. 시적화자는 사소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을 행복하게 느낍니다. 독자들 역시 그런 화자의 모습을 상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지도 모릅니다. '행복할 지도 모릅니다'에서 '행복합니다'라고 발전되는 시상은 화자의 확신이 되어 독자들에게 전달될 겁니다. 독자들은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죠. 그래 행복이 뭐 별거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려있는 거지. 이 시를 읽는 잠시나마 그런 생각에 빠진다면, 이 시는 독자와 가깝게 소통한 것이 되겠죠.'지치지 않고' '모릅니다' 등로 수정해야 하고(오탈자)와 '눈부실 때' '시작할 때' 등 여러 곳의 띄어쓰기에 신경을 써야 해요.

 

 

쐐기벌레, <미로(mirror)> : 미로 속에 갇혀 있는 시적화자가 안따깝네요. '나는 현재를 떠도는 과거의 유령'이기에 '나는 없다'는 게 이해가 됩니다. '미로(mirror)'에서 보듯 언어유희가 시 본문에서도 나타나고 있어요. 말장난 같은 것들이 시의 무게감을 해소해주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이 시는 화자가 미로에서 나가길 바라게 되도록 만든답니다. 그들은 누구인지, 왜 화자를 미워하고 변하길 바라는지 알 수 없어 아쉽네요.

 

 

 

 

이번주 고등부 우수작은 두둥!! <망태 할아버지>, <행복한 나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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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별빛마저, <차가운 눈> : 소박한 느낌을 주는 시를 발표했어요. 날씨가 추웠던 날, 친구와 싸웠던 상황과 친구의 한 마디는 날씨보다 차갑게 시적화자의 가슴에 박혔던 것 같아요. 그리고 화자는 마지막 연에서 그 상황에 대한 후회의 심경을 토로하고 있답니다. 붙잡을 수 없는 눈송이를 통해서요. 첫 연으로 돌아오면 '일 년 중 이맘 때 / 눈이 펑펑 내린다'는 문장을 통해 눈이 내릴 때마다 과거의 어느 장면을 떨칠 수 없다는 심경까지 작품에 담겨있어요. 소박한 작품이지만 화자가 독자와 소통하고자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내비친 시라고 봐요. 흔히 순수하고 낭만적인 눈 내리는 상황을 화자의 심경에 맞게 풀어낸 지점도 진솔한 부분으로 꼽고 싶습니다.

 

 

YP제국, <춥지 않은 겨울 거리 위> : 문장을 먼저 보죠. "거리를 침대처럼 푹신한 눈이 매웠다."보다 "침대처럼 푹신한 눈이 거리를 메웠다."가 더 자연스럽겠죠. '매웠다'는 오자랍니다. 직유법 '~처럼'이 4번 나오는 게 걸립니다. 직유법보다 은유법을 지향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시의 확장력을 높일 수 있어요. 일회성으로 형용사(푹신한, 달콤한)를 수식하기 위한 표현과 관념(사랑, 물보다 진한 피)을 표현하기 위한 직유로 사용해서 언어들이 서로 연결돼 이미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어요. 추운 겨울 거리를 따뜻한 이미지로 형상화한 것은 좋았어요. 그러나 더 잘 표현해야 '겨울 거리 위는 춥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하지 않고도 읽는 이들이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김줄, <퇴고> : 저 역시 오프라인 모임에서 합평한 경험이 많답니다. 시를 읽은 사람들의 비평을 들으며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귀담아 듣고 퇴고에 반영하는 경우도 있었죠. 시적화자는 제목처럼 퇴고하는 과정 속에서 느끼는 감정을 풀어냈어요. 인정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변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가 등장합니다. 독자들은 퇴고 작업 중인 화자의 번뇌와 혼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어요. 다소 맥이 풀리는 부분들은 효과적인 이미지로 퇴고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해요.

 

 

 

 

이번주 중등부 우수작은 두둥!! <차가운 눈>, <퇴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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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첫째 주 우수작(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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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날씨가 포근하군요.  글틴 친구들은 겨울방학을 어찌 보내고 있나요. 혹 방학이 끝났나요? 저는 신나게 놀 수 있었던 방학이 없어서 가끔 학창시절이 그리워질 때가 있어요.  이래저래 여러분들이 부러울 때도 있고요.

이번주에도 우수작을 선정합니다. 다소 주 우수작을 늦게 발표했군요. 이래저래 저도 바쁜 일들이 많이 생겼답니다. 그럼에도 열심히 시를 쓴 친구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시에는 '정서' 가 지배합니다. 가끔 친구들의 시를 읽을 때면 그 정서를 느끼지 못할 때가 있어요. 시의 정서가 읽는 이에게 전달될 때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감동도 받게 된답니다. 각자 자신이 쓴 시에 어떤 정서가 묻어나는지 들여다보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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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金狂哲, <동백의 낙화> : 동백으로 피의 역사를 담으려고 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맨아래 주석을 넣지 않았다면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역주라는 말은 번역한 사람이 주석을 달 때 쓰는 거랍니다). 시는 주석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쓰는 게 좋아요. 논문이나 설명문이 아닌지라 꼭 써야 할 때 주석을 사용해보세요. 또한 '동백이 뿌리내린 곳'과 '동백을 덮은 그늘'을 발음이 비슷한 한자어(기표)로 의미(기의)를 표현한 것도 인상적었어요. 그러나 한자어로 표현한 게 시에서 얼마나 효과적인지 고민해봐야 해요. 먼저 '그 겨울 그 산기슭'이 어디쯤인지 나오지 않기 때문에 '뿌리내린 곳'이 더 막연하답니다. 제주도에 핀 동백이라면 시 내용에 지명이 나와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늘'은 맥락 없이 등장해서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답니다. 시적 흐름이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뚝뚝 끊기고 있어요. 동백이 피고 지는 것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해서가 아닐까요. 시적정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의도를 드러낼 수 있답니다. 송찬호 시인의 시집 '붉은 눈, 동백'을 읽어보세요.

 

 

난쟁이두부, <꿈:오래된 미래> : 미래의 희망은 개발 이전의 라다크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말하는 책 '오래된 미래'가 떠올랐습니다. 이 시도 개발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느낌을 준답니다. 미래를 뒤바꿔놓았던 것들을 거슬러 올라가 시작이 시작된다는 구절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러나 제목이 '꿈'인지라 꿈 속의 장면이 이것저것 펼쳐졌다가 암전되고 다시 펼쳐지는 것 같아 이미지들이 우왕좌왕하기도 해요.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할 수 있지만 시적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이미지가 넘쳐납니다. '우리'가 등장하는데 누구인지 궁금해요.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라는 말을 거꾸로 바꿔 가랑이가 찢어진 마지막 황새와 무언가 결단한 뱁새가 시의 의미망을 확장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시적 흐름을 더 촘촘히 이어준다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이미지를 선명하게 그려보세요. 관념적인 '꿈'을 배제하고 비유적으로 접근하면 더 시가 좋아질 듯 해요.

 

 

죽수길, <끝을 모르는 자책> : 끝 모를 자책을 비유적으로 표현했군요. '사색'도 '고민'도 아닌 자책하는 시적화자는 도마 위에 올라가 생선처럼 칼로 썰어냅니다. 실감나도록 관념을 구체화시킨 것이 좋았어요. 그러나 칼로 썰어내더라도 무게가 덜어지지 않겠죠. 끝을 모르는 자책이기 때문에 아무리 잘라내도 끝이 없을 듯합니다. 그래서 화자는 무게를 덜어낼 수 없어 '밤하늘의 운치를 보겠지'라고 말하지 않나 싶군요. 다소 아쉬운 것은 '자책'의 원인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다짜고짜 화자가 저울에 올라가는 게 의문이 생기거든요. 막연한 관념이 앞서서 그러지 않을까요. 만약 시적정황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했다면 더 좋은 시가 나올 듯해요.

 

 

윤별, <숨은 죽음을 위한 선물> : 격렬하게(동적으로) 무언가(?)시적정황을 만들어낸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러나 거침없이 쏟아지는(덜 숙성된 듯한) 언어로 인해 이미지가 산만하답니다. 시어의 조합으로 이미지를 만든다면 언어 간의 간극을 고민해봐야 해요. 언어와 언어가 충돌하면서 새로운 이미지를 형성시키기도 하고 언어와 언어가 조화롭게 밀고 당기면서 세계를 그려준답니다. 이러한 시를 쓸 때 상상력이 연상 작용에서 나오기도 하는데 주제와 연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시적공간이 막삭이 된(임신 266일이 되는) 여자의 뱃속인가 싶기도 하고, 태아의 모습을 형상화한 느낌도 듭니다. 그러나 첫 행부터 의문스러운 표현들이 가득해 시를 제대로 감상하기가 어려웠답니다. 주관적인 표현인지라 하나하나 설명을 들어야 이해가 될 듯해요. 어떻게든 공감할 수 있는 표현을 고민해봐야 해요. 특히 '추락하던 비행기가 파동에 놀라 회항'에서 추락하던 비행기가 추락하지 않고 어떻게 회항을 하는지 모르겠고, '죽음이 비껴간 태아의 눈물'의 맛이 뭔지 느껴지지 않거든요. 한 구절마다 물음표를 던져야 한다는 게 아쉽습니다. 그럼에도 이 시는 뭔가 알 수 없는 의미의 파장이 생겨요. 전체적인 이미지만 잘 만들어준다면 좋은 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해, <김장> : 농익은 김치 인생이라! 표현이 좋고, 여러 생각을 하게 합니다. 김치가 익기까지 숙성되는 시간이 필요하듯 기해 님의 시도 서서히 숙성되지 않을까요. 졸업 축하하고 멋진 고등학생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튼 시가 '김장'으로 부제 '졸업'을 비유하고 있군요. 부제가 없어도 충분히 학창시절을 이야기하는 것이니 '졸업'은 불필요한 듯해요. '자각은 늘 지각하는 법인지' 표현이 좋네요. 특정한 시절(중학교)을 회상하는 시적화자의 진솔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순간이 찬란했었다', '그 시절을 함께 추억하자' 등에서 화자의 단선적인 인식이 아닐까 싶고 마지막 연은 사족 같습니다. 화자의 소망일 뿐이니까요. 졸업과 김치의 비유는 좋지만 대체로 설명적인지라 시적 긴장감이 떨어져 아쉽기도 합니다.

 

 

 

 

이번주 고등부 우수작은 두둥!! <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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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STICKMAN, <눈 속의 눈> : 리듬감이 있어 시가 잘 읽힙니다. '눈 속의 눈'은 중의적인 표현을 의도한 것 같아요. 눈동자, 눈썹에서 눈(眼)을 알 수 있죠. '눈이 내려~ 쌓였습니다'는 눈(雪)이겠죠. 그러다가 '맑고 하얀 그대 눈'을 '사뿐히 밟아도 아플까봐'에서는 눈(眼), 눈(雪)이 결합돼 있습니다. 적절하게 눈(眼), 눈(雪)을 사용하고 있어요. 그러나 시적화자는 누구이기에 '불이 되어' '불씨가 되어' 그대에게 헌신을 하는지 궁금해요. 물론 그대도 누구일까요. 물론 둥근 눈동자 같은 지구 등등을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자와 그대가 추상적이고 너무 광범위해서 아쉽기도 해요.

 

 

YP제국, <사춘기 소녀의 꿈> : 누구에게나 생명을 나눠주는 나무 같은 울타리가 된다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일까요. 이 시는 '사춘기'의 특징을 부각시켜야 해요. 사춘기에만 겪을 수 있는 상황이나 마음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사춘기에 겪는 신체적인 변화는 '커다란 내 몸'으로 말해준다 해도 정신적인 변화는 자아가 더 커져 부모를 밀쳐내지 않나 싶기도 해요. '달력의 큰 숫자들이/점점 커질수록'은 무슨 말인가요. 월이나 년을 말하겠죠. 표현은 정확하게 해야 합니다. 앞으로는 생각하는 것을 시라는 형식으로 쓸 때 시적 표현을 고민해봐야 합니다. 불쑥 안도현 시인의 시 '이웃집'이 떠오르는 군요.

 

 

김줄, <열등감> : '우울증'에 이어 '열등감'을 표현했군요. 시적정황이 가슴 아픕니다. 형상화가 잘 되어서 이미지가 그려지지만 모호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선 개미를 흩뿌리는 화자와 한해살이 식물인 화자가 동일한 건지 궁금하네요. 또 열등감에 찌든 화자가 열등감이 생긴 게 벚나무 언니 때문인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밝은 빛 한 조각 들지 않는 깜깜한 미세먼지를/굳이 찾아 꾸역꾸역/나무 아저씨의 비난도/빽빽한 바람도/잘근잘근 씹어 시커먼 속에/화려한 단색 속 먼지가 있을지/알 수도 없을 걸요' 문장이 어색하고 잘 읽어보면 이해가 되지 않아요. '밝은 빛 한 조각 들지 않는 깜깜한 미세먼지'를 찾는데 미세먼지가 공간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밝은 빛 한 조각 들지 않는 깜깜한 (어디?)에서 미세먼지를 굳이 찾는다고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여튼 화자가 선명해지면 이미지도 구체화될 듯 해요. 그럼 훨씬 시가 좋아지지 않을까요.

 

 

참치군, <갱도> : 퇴고하느라 애썼어요. '학교/수험생활'을 표현하려고 몇 구절을 추가하고 수정했네요. 초고보다 설명이 추가됐지만 언어와 이미지가 여전히 모호하답니다. '효수의 칼날' '카르마의 수레바퀴' '마스터키' '바겐세일 마케팅' '알고리즘의 혈관' 등이 이미지가 잡히지 않을 뿐더러 의미를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어요. 시어를 관념 속에서 끄집어낸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일반적인 학생의 삶과 거리감이 있답니다. 참치군 님이 보고 느끼는 것들이 보다 현실적인 언어, 손에 잡히는 일상어로 표현하면 어떨까 싶어요.

 

 

 

 

이번주 중등부 우수작은 두둥!! <열등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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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월장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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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월장원을 발표합니다

 

 

 

 

첫째 주 /
은바다, <완벽한 지각> : 시적화자의 태도와 이미지가 구체적이어서 좋았어요. 지각이라는 소재도 잘 살려 화자의 심경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답니다. 그러나 왜 화자가 지각을 했는지 궁금했어요. 지각하게 된 계기로 보이는 '흑의 기운'과 서럽게 만든 '풍경'이 모호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시적 근거나 힌트가 될 만한 표현이 필요하답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완벽한 지각을 위해서' 화자가 '길을 잃지 않았다'로 읽히는데 조금 애매한 느낌이 든답니다. 매일 등교하는 길이고 익숙한 길일 텐데요. 저는 화자가 마음에서 길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또 완벽한 지각을 위해 화자가 서러움에 젖어있는 걸로 보여요. 그래서 '지각을 핑계 삼아 서러움에/젖어 볼 모양이었다/완벽한 지각을 위해' 이렇게 한 연으로 읽히기도 했어요. 이 시는 연을 나눴다면 더 효과적일 것 같아요.

 

김지용1, <바늘> : 바늘에 찔린 듯 마음을 아프게 하는 시군요. 구멍과 바늘이 잘 운용돼 적절한 표현을 만들었어요. 근데 바늘보다 구멍의 비중이 약간 크다는 느낌도 듭니다. 직유법과 정황 설명이 사족으로 느껴져 아쉬워요. 3연에서 보여주듯 이미지만으로 충분히 말해줄 수 있을 듯해요. 좀 더 이미지로 압축시키면 좋겠어요.
※ <바늘>은 시 게시판에서 삭제돼 월장원 후보에서 제외했습니다.

 

 

 

둘째 주 /
여름별, <추억을 떠올린다는 것은> : 추억이 단맛으로 느껴지는 시였어요. 많은 친구들이 재밌게 봤듯 저도 재밌게 읽었답니다. '추억'이라는 관념을 구상적으로 표현해서 좋았답니다. 그렇지만 관념을 주제로 다룬 것은 아쉽기도 해요. 시적화자의 행동 묘사가 주관을 개입시키지 않아서 '기억하고 싶어하는 것만 기억하려는 사람의 마음'이 자연스레 드러났답니다. 단 생각해봐야 할 것은 껍질이 단단해진 이유가 '냉기를 받아'서 일까, 수박 씨가 씁쓸할까입니다. 이것은 시적 흐름에서 잘 어울리지만 창작자가 의도를 드러내기 위해 인위적으로 표현한 느낌이 든답니다. 조율 시인의 시 '적도'를 참고해보세요.

 

 

 

셋째 주 /
윤별, <우주의 항등식> : 재밌게 잘 읽었어요. 수학을 공부하면서 쓴 시라는 점이 고스란히 드러나네요. 그래서 화자가 문제를 푸는 모습, '절규'가 보이기도 하고요. 시적화자와 우주의 관계가 뭘까요. 그렇지만 시 본문만 보자면 화자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고 주관적인 목소리만 들린답니다. '우주'가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는지도 구체적이지 않아 모호하답니다. 광활하고 막막한 우주가 논리라 심경을 대변할 수 있지만 화자의 삶이 반영되는 건 거리가 있습니다. 보다 현실적인 화자의 모습이 담겼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마지막째 주/
꽃내, <종이접기> : 시를 읽으니 필력이 느껴지는 군요. 종이접기로 태어난 돔물(동물)이라니!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있어서 재밌게 봤습니다. 그러나 이미지가 분산 되어 의도가 잘 드러나지 않아요. 이미지를 압축시키면 좋을 듯해요. '접는 방법이 같은/기린 사슴 말 노루/같은 몸에 무늬를 그리면/기린이 되는 기적'을 보자면 '같은' '기린'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한 문장으로 봤을 때 '접는 방법이 같은 사슴 말 노루 몸에 무늬를 그리면 기린이 되는 기적'이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연마다 호응이 잘 되는지도 따져보면 좋을 것 같고 기린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면 좋겠어요. '죽을수록 늘어나는 모서리' '기린의 목에 사선을 긋는다' '전신주에 목이 걸린 사슴' 등에서 '너'의 상황을 암시하는 듯하지만 '너'가 '기린 옷'을 입고 왜 울고 있는지 잘 와닿지 않아요. 문득 종이접기를 하는 대상이 '너'가 아니라 시적화자 '나'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어요.

 

 

 

 

이번 고등부 월장원은 <완벽한 지각>입니다.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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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월장원을 발표합니다

 

 

 

 

첫째 주 /
기해, <외롭자> : '외롭자'는 외로운 자를 말하는 거겠죠. '외롭지?'를 사투리로 '외롭자!'라고 하기도 해서요.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감당해야 하는 숙명을 반박하는 시적화자의 인식이 돋보였어요. 외로움을 감동이나 따스함으로 여길 수 있다는 게 시적일 수 있어요. 그러나 창작자의 단정적인 인식이 진술할 수 없는 영역까지 건드렸다는 느낌이 든답니다. 1연을 보자면 '인간'과 '신'의 영역을 일반화시켜서 바라보고 있어요. 만약 신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인간의 외로움이 신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고, 신을 믿는 이들은 신이 벌을 받는 존재일까 의구심이 들겠죠. '인간의 추악한 본성'도 그래요.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단면만 이야기해서 선한 본성과의 균형을 잃었고, 인간의 공동체 의식을 부정하고 있답니다. 3, 4연에서도 일방적인 인식을 드러내고 있답니다. 마지막 연에서는 흩어지는 '한숨', '애도'가 설득력 없는 주장으로 다가와 저를 허탈하게 만들었답니다. 중등부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기해 님은 필력과 자기인식이 있어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답니다. 우선 외로움, 생채기 등과 같은 관념을 여과 없이 시로 쓰는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한 관념을 표현해낼 수 있는 보조관념(대상, 정황)을 찾아야 합니다. 시로 말하고자 하는 관념(주제)을 구체적인 대상이나 정황으로 빗대어서 표현해야 합니다. 이때 진술보다는 묘사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답니다.

 

 

 

셋째 주 /
천솜, <속도전> : 객관적으로 표현하려는 노력이 엿보여 좋았습니다. 세상에서 멈추지 않는 게 시간이죠. 무엇보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시간을 보내는 일일 겁니다. '아이가 아이의 속도로 나아가고 있을 때' 속도전이 마쳤다는 시적화자의 인식이 다소 모호합니다. 아마도 1연과 대조를 이루는 듯 하나 왜 '일이 오지 않으리라' 화자가 직감할까 궁금하거든요. 1~3연이 의도를 체화시키면 4연이 자연스럽게 공감될 것 같아요. 그럼에도 이 시는 필력이 느껴지고 시적 가능성이 높았답니다. 퇴고 잘 하시길 바랍니다.

 

참치군, <마네킹> : '마네킹'은 매력적인 소재입니다. 저도 예전에 마네킹으로 시를 쓴 적이 있죠. 이 시는 홍등이 켜진 정육점의 이미지와 홍등가를 비유하는 것 같군요. '우리'라고 말하는 마네킹들이 전시돼 고기처럼 사람들이 구경하고 몸을 사는 정황을 상상해봤어요. 그러나 우리 속에 있는 시적화자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아 포괄적인 느낌이 들어요. 보다 세밀한 묘사와 정서가 있어야 하는데 '페시미즘의 도래' '무의식의 흐름' '소유물' '거짓' 등의 관념들이 장황하게 느껴지고 시를 모호하게 합니다. 어쩌면 창작자도 그저 마네킹으로 생각하는 '사람들'과 같은 시각이 아닐까 싶어요. 사유를 펼치는 것이 내밀한 삶을 들여다본 게 아니라 시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으니까요. 그렇다 보니 공감을 유도하기보다 확신에 차서 단정짓고 있답니다. 자기 고민은 삶에서 얻는 것이죠. 자신의 삶에 자극이 돼 시의 소재를 만났다면 잘 키워야 좋은 시가 나온답니다. 이 시는 가능성이 있으니 시적 형상화에 신경을 써보세요.

 

 

 

마지막째 주/
YP제국, <엄마는 여행 중> : 여행 중인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시적화자가 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아마도 엄마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난지도 모르죠. 김유 작가의 동화 '내 이름은 구구 스티커즈'가 떠오릅니다. 구구는 하늘 나라에 간 부모님이 여행을 떠났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씩씩하고 건강한 삶을 산답니다. 시적화자는 하늘 위에서 여행하는 엄마가 구름 과자를 먹고, 구름 우물에서 물을 마시고, 넓은 구름 집에서 살고, 구름 의자에 누워 책도 읽습니다. 근데 화자의 관점에서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느껴져요. 그리고 엄마가 여행이 아닌 구름 위에서 또 다른 삶을 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엄마가 여행하는 하늘 위가 더 행복해 보이는데 화자가 달빛 아래서 엄마를 기다리는 이유가 뭘까요. 어쩌면 이 시는 엄마의 모습만 보여줘도 좋았을 것 같아요. 물론 문장을 다듬고 '그곳에서는'이 반복되지 않아도 됩니다. 다 그곳인지 아니까요. 쉼표나 마침표도 굳이 쓰지 않아도 됩니다. 문장을 더 자연스럽게 연결시켰으면 좋겠어요. 소리 내서 읽어보면 리듬을 느낄 수 있어요.

 

 
이번 중등부 월장원은 <속도전>입니다.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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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마지막째 주 우수작(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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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월을 보냈습니다. 한 해의 첫 달을 너무 빠르게 보낸 기분이 들어요. 저의 시간과 글틴 친구들의 시간이 다르겠지만^^ 이번주 우수작을 선정했어요. 매주 새 친구들의 시를 감상합니다. 기존의 친구들도 그렇지만 '관념적인 시'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저는 몇몇 시에서는 한 사람의 시를 쭈욱 읽은 기분까지 들었어요. 관념에 갇힌 사유(감정 노출 포함)는 끝끝내 관념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시적인 울림을 주기보다 의구심을 만든답니다.  시를 처음 접했을 때 관념(사랑, 행복, 기쁨, 슬픔, 아픔 등등)이 지배할 수 있으니 객관적인 시각을 갖춰야 해요. 사유와 시어가 관념에서 벗어나려면 시인들의 시를 많이 읽고 느끼면서 익혀야 해요. 문학은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이죠. 글틴 친구들이 제각기 맘대로, 멋대로, 맛대로 시를 쓸 수 있지만 타인과 공감하고 느낄 수 있는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좋은 표현을 찾아보세요. 방학에는 독서에 열중하시고, 건필,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P.S. 게시한 시를 무단으로 삭제하는 친구가 있어요. 아마도 덜여문 시라 여기고 그런듯해요. 본인의 게시물을 삭제하는 건 자유이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댓글을 달아준 마음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완벽한 시가 아니라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보고 싶은데 지운 시를 다시 볼 수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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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성아진, <너를 위한 시> : 2연을 보면서 호빵이 떠올랐어요. 차가운 느낌의 구술보다 따뜻한 호빵의 이미지가 부각됐다면 어떨까 생각해봤어요. '시'라는 관념적인 소재로 시를 썼으나 생동감이 있어서 좋았답니다. 근데 뜨거운 시, 따스한 시가 대체 뭘까요. '너를 위한 시'가 뜨거웠다가 따스해지는 과정을 그렸을 텐데 '시'는 '구슬'이라는 전제조차 모호하게 느껴진답니다. 그것은 구슬의 이미지가 구체적으로 다가오지 않은 탓이 아닐까요.

 

 

꽃내, <종이접기> : 시를 읽으니 필력이 느껴지는 군요. 종이접기로 태어난 돔물(동물)이라니!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있어서 재밌게 봤습니다. 그러나 이미지가 분산 되어 의도가 잘 드러나지 않아요. 이미지를 압축시키면 좋을 듯해요. '접는 방법이 같은/기린 사슴 말 노루/같은 몸에 무늬를 그리면/기린이 되는 기적'을 보자면 '같은' '기린'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한 문장으로 봤을 때 '접는 방법이 같은 사슴 말 노루 몸에 무늬를 그리면 기린이 되는 기적'이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연마다 호응이 잘 되는지도 따져보면 좋을 것 같고 기린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면 좋겠어요. '죽을수록 늘어나는 모서리' '기린의 목에 사선을 긋는다' '전신주에 목이 걸린 사슴' 등에서 '너'의 상황을 암시하는 듯하지만 '너'가 '기린 옷'을 입고 왜 울고 있는지 잘 와닿지 않아요. 문득 종이접기를 하는 대상이 '너'가 아니라 시적화자 '나'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어요.

 

 

2℃, <그래도 되는 날> : 재밌게 읽었어요. '그래도 되는 날'이란 제목이 궁금증을 일으켰어요. 제목 덕분에 가만히 누워 이 순간을 즐기는 게으른 시적화자를 상상해봤어요. 화자가 이 순간을 영원히 다른 순간으로 미루고 평화를 느끼는 것 같군요. 1~8행 청각, 시각, 후각, 촉각이 동원돼 입체감이 있었습니다.그런데 9행부터 국면이 전환되는데 의문점이 남아요. 8행까지 모든 게 움직였던 것들이 멈춰 있다고 하니 갑작스럽기도 합니다. 왜 멈춰있다고 하는지도 궁금해요. 순간의 쾌락이나 가치도 갑작스럽고요. 만약 이것을 어떠한 정황이나 화자의 모습으로 묘사했다면 어땠을까요. 물론 추론이나 추측보다 선명한 이미지로 시를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답니다.

 

 

바위꽃, <소금쟁이> : '소금쟁이'를 관찰하는 시적화자의 모습이 인상적이고 천진스러워 좋았어요. 차가 쌩쌩 달리는 도시에 냇가가 없는데 쏜살같이 빙글거리는 소금쟁이라니! 재밌기도 합니다. 그러나 짧은 시의 매력은 강렬한 이미지와 의미의 확장력인데 그렇지 않아 아쉽기도 해요.저는 문장이 더 간결하면 어떨까 싶어요. 또 '니는 어디서 왔니' '요 도시에 친구들은 있나'는 '너는 어디서 왔니?' '이 도시에 친구들은 있니?'라고 한다면 어떨까 싶어요. 마지막 행 '있는다'는 '있다'고 하는 게 자연스럽겠죠. 박지웅 시인의 시 '소금쟁이'를 읽어보세요. 어쩌면 화자는 소금쟁이를 천천히 보고 있지만 그 다음으로 이어진 화자의 사유가 더 펼쳐질 것만 같거든요.

 

 

윤별, <첫 문장> : 어쩐지 '순응'과 연결된 느낌이 드는군요. 활자를 몸의 비유로 쓴 것이 생동감이 있고 그로테스크하네요. 첫 문장이 나오는 과정 같기도 하고요. 넓은 의미에서 시를 이해하면 그럴싸한 느낌이 들지만 이렇게까지 표현하는 게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검은 피' '별' '칼날' '시계의 춤' '거미줄에 붙잡힌 벌레처럼' '글자들의 무덤' '도축당한 맨몸들' '얼어 만든 문장'으로 연결해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시적 울림이 없어서 아쉬워요. 개인적인 상징을 썼지만 시가 주관에 머물고 있답니다. 활자 혹은 문장에 대한 선명한 정황이나 인과를 추가하면 어떨까요. 첫 문장이 탄생하는 순간들은 언제나 다를 테니까요.

 

 

 
이번주 고등부 우수작은 두둥!! <종이접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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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콩두, <낮잠> : 한가로이 낮잠을 자고 싶네요. 1연에서 눈이 내리는 장면이 낮잠을 잘 때 느끼는 것을 보여주네요. 잠을 잘 때 몸이 녹아내리듯 힘이 빠지고 마음이 가벼워지잖아요. 그래서 햇살에 맡긴 시적화자 '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근데 저는 화자의 정체는 뭘까 궁금해요. 화자가 낮잠을 자는 이유도요. 시에서 낮잠 자체만 표현할 수 있지만 콩두 님이 낮잠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느낄 수 없답니다. 참, 본문에서 '몸에 힘이 사르르' 바로 위에 '낮잠'은 제목이겠죠. 띄어쓰기를 하지 않아서 헷갈린답니다.

 

 

YP제국, <엄마는 여행 중> : 여행 중인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시적화자가 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아마도 엄마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난지도 모르죠. 김유 작가의 동화 '내 이름은 구구 스티커즈'가 떠오릅니다. 구구는 하늘 나라에 간 부모님이 여행을 떠났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씩씩하고 건강한 삶을 산답니다. 시적화자는 하늘 위에서 여행하는 엄마가 구름 과자를 먹고, 구름 우물에서 물을 마시고, 넓은 구름 집에서 살고, 구름 의자에 누워 책도 읽습니다. 근데 화자의 관점에서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느껴져요. 그리고 엄마가 여행이 아닌 구름 위에서 또 다른 삶을 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엄마가 여행하는 하늘 위가 더 행복해 보이는데 화자가 달빛 아래서 엄마를 기다리는 이유가 뭘까요. 어쩌면 이 시는 엄마의 모습만 보여줘도 좋았을 것 같아요. 물론 문장을 다듬고 '그곳에서는'이 반복되지 않아도 됩니다. 다 그곳인지 아니까요. 쉼표나 마침표도 굳이 쓰지 않아도 됩니다. 문장을 더 자연스럽게 연결시켰으면 좋겠어요. 소리 내서 읽어보면 리듬을 느낄 수 있어요.

 

 

 

이번주 중등부 우수작은 두둥!! <엄마는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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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셋째 주 우수작(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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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달력을 넘기기 바로 전입니다. 지금 글틴 친구들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나요? 설날이죠. 저는 한 주 정신 없이 바쁘게 보냈습니다. 그래서 셋째 주 우수작 선정도 다소 늦어졌죠.  요즘 새로운 친구들이 계속 유입되고 있어요. 서로서로 잘 소통하면서 즐거운 활동하시길 바랍니다. 이번주 우수작을 선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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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김기룸, <작아지다> : 힘이 쎘던 할아버지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니 너무 작게 느껴진다는 게 공감이 가요. 시적화자가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애틋합니다. 먼저 시적 대상이 구체적인 점은 좋았어요. 근데 할아버지가 8인실 구석에 누워있게 한 게 술이 원인이었을까요. 그냥 쭈욱 시를 읽으면서는 거리낌없이 넘어갔는데 다시 깊이 들여다 보면 궁금한 게 생깁니다. 아마도 할아버지의 모습을 요점만 뽑듯 표현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손녀를 알아보지 못하는 할아버지의 상태는 알 수 있지만 '소리따라 헤매'는 상태가 구체적으로 다가오지 않아요. 마침표와 쉼표가 걸립니다. 행마다 종결어미가 '할아부지'로 끝나 리듬감이 있으니 굳이 마침표나 쉼표를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만약 퇴고를 하신다면 '할아부지'를 시 본문에서 빼놓고 표현해보면 어떨까요.

 

 

승애연, <고구마 껍질> : 고구마 껍질의 시각으로 시를 풀어낸 발상이 좋았답니다. 시적대상이 분명하고 시적흐름에는 무리가 없었어요. 그러나 발상에 비해 의미나 울림이 크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껍질이 품은 속살을 '구름'으로 비유하고 김을 '나비'로 비유했는데 성질보다는 가시적인 효과만 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시로 표현하기 위해 시어를 가져온 듯한 인상을 주거든요. 아무래도 주제를 드러낼 수 있는 비유를 찾아보면 어떨까 싶어요. 또한 고구마 속살이 노란색이고 껍질이 붉은색이지만 색이 너무 많이 등장해서 효과가 줄고 있어요. 무엇보다 내가 왜 고구마 껍질에 대해 쓰는 것인지 깊이 고민해보고 담아내면 좋은 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달흔, <뒤처진 시대의 앞서간 명화> : 낯선 사람들이 '낯익은 얼굴'인 것은 미간 사이에 깊이 새겨진 명화 때문이라는 인식이 좋았어요. 근데 시로 말하고 싶은 게 많은지 이미지로 압축되는 게 아니라 설명적이랍니다. 또 낯익은 얼굴에서 명화를 남긴 고흐로 이어지는 것이 제목과 관련된 것일 텐데, 아마 시적화자는 고흐의 명화처럼 미간에 새겨진 명화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 시대는 '뒤처진 시대'가 아닐까 하는 사유를 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우격다짐으로 맞추는 인상을 줍니다. 아마 고흐가 없었다면 '뒤쳐진 시대의 앞서간 명화'가 나올 수 없겠죠. 그런데 가만 생각하면 명화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 시대가 뒤처진 걸까 의문이 듭니다. 시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진가를 아느냐!'고 외치고 싶다면 시적정황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해서 의미와 주제를 드러내야 합니다. 저는 달흔 님의 고민이나 체험을 시로 표현하면 좋겠어요. 시를 생각으로 쓰는 것 같아요. '혹시 시급은 얼마를 받으시나요'와 같은 구절이 뭔가 현실적인 고민이나 사회 현상을 드러낼 수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한 번도 들지 않은 길'이 어딘지 몰라 모호하지만 '빼곡히 들어선 빌라촌'은 구체적으로 인지할 수 있죠. 오히려 2연부터 시작했다면 현실의 공간이 묘사되고 능동적이면서 적극적인 화자의 모습을 그려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부적절한 적막에 애처로움을 느끼'는 화자의 감정을 말하지 않고도 읽는이가 느낄 수 있게 표현하면 좋겠죠.

 

 

윤별, <우주의 항등식> : 재밌게 잘 읽었어요. 수학을 공부하면서 쓴 시라는 점이 고스란히 드러나네요. 그래서 화자가 문제를 푸는 모습, '절규'가 보이기도 하고요. 시적화자와 우주의 관계가 뭘까요. 그렇지만 시 본문만 보자면 화자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고 주관적인 목소리만 들린답니다. '우주'가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는지도 구체적이지 않아 모호하답니다. 광활하고 막막한 우주가 논리라 심경을 대변할 수 있지만 화자의 삶이 반영되는 건 거리가 있습니다. 보다 현실적인 화자의 모습이 담겼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번주 고등부 우수작은 두둥!! <우주의 항등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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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천솜, <속도전> : 객관적으로 표현하려는 노력이 엿보여 좋았습니다. 세상에서 멈추지 않는 게 시간이죠. 무엇보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시간을 보내는 일일 겁니다. '아이가 아이의 속도로 나아가고 있을 때' 속도전이 마쳤다는 시적화자의 인식이 다소 모호합니다. 아마도 1연과 대조를 이루는 듯 하나 왜 '일이 오지 않으리라' 화자가 직감할까 궁금하거든요. 1~3연이 의도를 체화시키면 4연이 자연스럽게 공감될 것 같아요. 그럼에도 이 시는 필력이 느껴지고 시적 가능성이 높았답니다. 퇴고 잘 하시길 바랍니다.

 

 

참치군, <마네킹> : '마네킹'은 매력적인 소재입니다. 저도 예전에 마네킹으로 시를 쓴 적이 있죠. 이 시는 홍등이 켜진 정육점의 이미지와 홍등가를 비유하는 것 같군요. '우리'라고 말하는 마네킹들이 전시돼 고기처럼 사람들이 구경하고 몸을 사는 정황을 상상해봤어요. 그러나 우리 속에 있는 시적화자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아 포괄적인 느낌이 들어요. 보다 세밀한 묘사와 정서가 있어야 하는데 '페시미즘의 도래' '무의식의 흐름' '소유물' '거짓' 등의 관념들이 장황하게 느껴지고 시를 모호하게 합니다. 어쩌면 창작자도 그저 마네킹으로 생각하는 '사람들'과 같은 시각이 아닐까 싶어요. 사유를 펼치는 것이 내밀한 삶을 들여다본 게 아니라 시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으니까요. 그렇다 보니 공감을 유도하기보다 확신에 차서 단정짓고 있답니다. 자기 고민은 삶에서 얻는 것이죠. 자신의 삶에 자극이 돼 시의 소재를 만났다면 잘 키워야 좋은 시가 나온답니다. 이 시는 가능성이 있으니 시적 형상화에 신경을 써보세요.

 

 

 

 

이번주 중등부 우수작은 두둥!! <속도전> <마케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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