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둘째 주 우수작(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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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우수작을 선정했어요. 유난히 편수가 적었는데 약간 늦어졌어요. 저는 지난주 13일에 아이(태명 : 봄봄이)가 태어나서 더 분주한 한주를 보냈거든요. 봄이 왔듯 저에게는 봄봄이가 왔답니다.

 

그리고 4월 16일에 맞춰 효월 님의 (세월호 인양을 다룬) 시  '고래에게'를 읽으면서 숙연해졌어요. 다들 세월호를 생각하면 슬퍼질 거라고 봐요. 슬픔은 나눌수록 줄어든다는데 세월호는 그러지 않네요. 오래오래 기억해야 할 비극이 아닐까 싶어요. 앞으로 이런 비극이 없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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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CN, <호수 밑바닥의 돌덩이가 되어> : 시적화자가 '젊은 거북이'군요. 친절하게 '나'는 누구라고 알려줬듯 진솔한 시입니다. 화자는 아프지만 이타적인 마음이 느껴졌어요. '무거운 등껍질'이 돌덩이처럼 호수 바닥에 내려 앉으면 물고기의 보금자리나 고향이 될 수 있겠죠. 그런데 화자가 삶을 대하는 자세나 설정이 아쉬워요. 병에 걸려 아픈 상황을 비관하지 않는 듯하지만 화자는 삶의 의지보다 포기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지 않나 싶거든요. 조금은 화자가 이기적이었으면 좋겠어요. 화자에게 처한 상황이 처절해도 괜찮습니다. 그 처절한 삶을 딛고 깨닫는 가치나 의미가 나오면 어떨까요. 그저 바람만 있다면 화자에게 공감하기가 어려울 수 있거든요.

 

 

홍로율, <혁명> : 시적 표현이 비유적이어서 좋았고 인상적인데 본문에 비해 제목이 너무 강력하네요. '혁명'은 직설적이면서 관념적입니다. 관념을 비유하는 것은 긍정적이나 관념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죠. 1연의 진술이 불꽃의 발화를 의구심 들지 않게 풀어놨으나 3연의 '닿지 않는 깊은 바다조차/일렁이는 물그림자/눈물이 재배한 파동'은 이미지가 모호하답니다. 4연 '물안개 번진 마음마다/꽃이 핀다'에서도 비슷한 느낌이 들어요. '불꽃이 핀다'는 것을 잘 드러나도록 하나의 이미지로 모아주면 어떨까 싶어요.

 

 

쐐기벌레, <제비꽃> : 제비꽃이 눈앞에 펼쳐지네요. 1, 2연에서 시적 형상화를 잘된 듯 싶어요. 현상 속에서 사유가 더 깊었다면 좋았을 듯해요. '화단 속에 보라색 발자국을 남겨 놨을까'라는 구절이 감각적입니다. 그런데 '요정 하나가~했을까'라고 해서 그 이유(정황)가 뒤따라왔다면 흐응이 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3연에서는 꽃을 꺽어가는 화자의 모습이 나와서 '보라색 발자국'이 휘발되거든요. 그리고 화자가 꽃을 꺾고 엄마가 유리 물병에 꽂는 모습들이 다소 설명적인 느낌을 줍니다. 그럼에도 봄에 읽는 시여서 그런지 재밌게 읽었어요.

 

 

효월曉月, <통닭 부루스> : 구수한 어투가 인상적이네요. 통닭 부루스라는 어감처럼 시 재밌게 봤답니다. '똥차,똥차 혀도 철수 아부지네 통닭 트럭'처럼 리듬감도 있었어요. 어디선가 본 듯한 통닭 트럭과 인물(철수 아부지)을 잘 그렸답니다. 자칫 시의 이야기가 통속극처럼 전개될 수 있는데 감정의 견제가 있어서 그렇지 않았어요. 다만 시의 의도가 과도하다고 느껴집니다. 비(빗길)와 통닭(돌아가는), 인생(돌아 굽이진) 등이 조화롭게 이어져야 할 듯해요. 이 중에서 비가 분위기는 자아낼 수 있어도 큰 역할을 하고 있나 따져봐야 해요. '빗발은 점점 굵어지고 고급 승용차' '비 오는 거리에 뭣이 중헌디' '비에 젖은 세월에 뭣이 중헌디' 등도 마찬가집니다. 고급 승용차와 트럭이 대조를 이뤄 인물의 처지를 비교할 수 있지만 직설적이어서 시적 감흥이 떨어진답니다. 마찬가지로 비오는 거리와 비에 젖은 세월에 뭣이 중헌디라고 한 것도 의도가 너무 드러나 아쉬워요. '곡성'의 대사가 떠오르지 않게 해야 신선한 표현이 될 수 있을 듯해요. 좀 더 퇴고하면 분명 좋은 시, 재밌는 시가 될 듯해요.

 

 

 

 

 

이번주 고등부 우수작은 두둥!! <통닭 부루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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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YP제국, <검은 집> : 시적 정황(이미지)이 조금만 더 구체적이었다면 명확하게 시적 의도를 드러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시적화자가 집에 기대어 잠들고, 무거운 마음을 앉히고, 지도를 종이 위에 적습니다. 화자의 모습이 있지만 화자가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또 검은 집이 무엇일까 궁금해져요. '내 말을 들어주는 검은집'이어서 마치 대상이 살아 있는 듯하거든요. 우주와 도시, 그리고 집에 이르기까지 뭔가에 짓눌리는 것이 피로나 졸음처럼 다가오지만 좀 더 의도를 드러낼 수 있도록 형상화를 해보세요.

 

 

 

 

이번주 중등부 우수작은 두둥!! <검은 집>입니다. 후보작이 한 편이지만 가능성이 있어 선정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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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월장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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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월장원을 발표합니다

 

 

 

 

첫째 주 /

 

세바시, <18호는 트럭에 올라탔다> : 트럭에 올라탄 소 이야기가 가슴 찡하네요. 첫 구절부터 강렬해요. '시뻘건 낙인이였다/18호, 네 몸뚱아리를 채운 것은.'이라는 문장이 도치법으로 시뻘건 낙인을 강조했어요. 그런데 시뻘건 낙인이 무엇이길래 몸을 채울 수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그럼에도 이 시는 18호가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소'라는 것과 소에 관한 이야기가 잘 그려졌어요. 그러나 대상과의 거리를 둬야 하는데 감정 이입이 많다는 것이 아쉬워요. 1연 9행부터 14행까지 시적화자의 주관적인 인식이 반영되어 의구심이 들기도 해요. 이 시를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그러나 어미가 어떻게 본능적으로 도축 당하는 것보다 새끼를 발굽에 치여 죽는 게 낫다고 알 수 있을까요. 화자가 소와 동일시되어 진술하는 것보다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게 감동을 줄 수 있답니다. 이를테면 '너의 눈빛은 우수에 차 있었다'고 화자의 시선을 담았는데 '가장 슬픈 보름달 같은 너의 눈은/축사 앞 운반 트럭을 떠나지 못하였다'에서는 과도한 감정이 실려 있어요. 2연에서 해가 솟고 보름달이 사라진 풍경처럼 시적 정황을 담담하게 그렸으면 더 진한 감동이 밀려들었을 것 같아요.

 

 

둘째 주 /

 

바이현, <사랑> : 짧은 시인데 만만치 않은 내공이 느껴지네요. '사랑'이라는 언어가 텍스트에 나오지 않아 은유로 읽혀졌거든요. 그러나 시가 금방 와닿지 않았어요. '이제' '이번에는'에서 시제의 혼돈이 생겼답니다. 3연까지 방에 두고 온 짐을 이야기 하는데, 연결고리가 부족한 상태에서 (짐?이) 이제 얼마 안 남았고 이번에 화자를 두고 온다는 게 의문점이 남는답니다. 보다 자연스럽게 정황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면 시의 은유에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윤별, <훔쳐가는 기억> : 잘 읽었어요. '기억'이라고 본다면 이 시는 정체가 불명한 시적화자와 '너'가 파편처럼 수없이 분산되어 있어요. 그럼에도 뭔가 의미를 부여하는 진술들이 있었답니다. 상상세계와 현실세계를 넘나드는 듯했어요. 시를 관통하는 중심 오브제와 이미지가 필요하답니다. 퇴고를 한다면 좋은 시가 나올 수 있을 듯해요. 대신 언어에 대한 책임감을 더 가지시길.

 

 

셋째 주 /

 

본낮필오, <나 여기에 살았습니다> : '웃어도 됩니다'고 말해주고 싶군요. 시적화자가 '슬퍼 운 세월'을 보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응원합니다. 화자는 '나 여기에 살았습니다'와 '나 여기에 살아있습니다'는 완전히 다르겠죠. 앞은 과거에 거기에서 살았다는 것이고 뒤는 현재 살고 있다는 것이니까요. 혼란스러운 부분이죠. 그럼에도 저는 살고 있다는 것으로 읽었어요. 그렇다면 여기에 갇힌 듯한 화자가 우는 이유는 뭘까요. 마음이 아픈 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울고 있는 화자를 알 수 있게끔 더 이미지가 나와야 합니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고통이라지만 우리가 살면서 그 고통을 잊을 만한 것들이 많잖아요. 여림의 시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가 떠오릅니다.

 

쐐기벌레, <겨울애> : 동화적인 상상력, 감성이 풍만한 시입니다. 제목은 '겨울애'라서 겨울의 사랑으로 읽혀집니다. '세상이, 그렇게 다정했다'는 인식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어요. 추위를 요정의 손으로 보는 것도 재밌어요. 겨울의 햇살이 무뚝뚝하지만 '날카롭고 차가운 겨울 공기'를 동장군 칼집에 넣어둔 겨울의 마음, 흰 눈솜이 이불이 되어 나무를 덮어주는 겨울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추운 겨울을 다정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인상적이었어요.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들에는 이면이 있고 대상(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입에서 나와 어는 숨은/하얗게 안개처럼 말한다,'고 하면서 '내가 살아있다고/수북이 떨어진 흰 눈솜이/까만 나무들에게 이불이 되어 주는' 부분에서 시적화자가 개입되는 건지, 겨울이 말하는 건지 확실히 해야 할 듯해요. 주어가 분명하지 않아 혼란스럽습니다. 문장도 정리해야 하고요. 또한 마침표와 쉼표는 그리 중요하지 않는 듯해요. 마지막 구절에는 마침표가 없는데 통일성을 가져야 해요. 다 빼든지 다 넣든지 하면 됩니다. 현대 시는 대체로 리듬을 살리기 위해 마침표를 넣지 않죠.

 

 

마지막째 주 /

 

승애연, <모데라토> : 시적공간이 구체적이어서 안정감이 있는 시입니다. 덕분에 '뭉게구름'을 찾아 들었어요. 참 좋은 곡입니다. 제목이 '모데라토'는 보통 빠르게 연주하라는 말인데 뭉게구름을 빠르게 연주하는 듯 여태 피지 못한 철쭉의 잎들이 박수를 치는 듯해요. 근데 '봄 이슬 자국 손'을 더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면 좋을 듯해요. 그래야 철쭉 꽃이 피지 않는 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올 듯합니다. 그리고 첫 문장에서 뭉게구름 가사를 넣는 게 얼마나 효과적일지 고민이 됩니다. 짧은 시인지라 바로 음악실에서 노래 부르는 장면으로 시작되면 좋을 듯해요. 또한 '이상해질 거야', '호흡은 지겹다', '쉼표 없는 악보는 찢어서 던지고 싶다', '어깨 토닥임과 함께 주는 초콜릿은 신물 나' 등이 직접적인 감정을 드러낸 듯해요. 묘사로 이미지를 형성하면 어떨까 싶고요. '나이를 먹을수록 걸음은 빨라져야 한다'는 진술을 받쳐줄 수 있는 묘사가 필요하답니다. 감정을 견지가 시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답니다. 잘 퇴고해보세요. 좋은 시가 나올 가능성이 있답니다.

 

여름별, <엄마> : 엄마라는 말 속에는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듯해요. 물론 전혀 다른 의미로 볼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엄마의 자궁에서 나온 우리에게는 엄마에 대한 공통분모가 있을 듯해요.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혹은 이해하려고 한다는 것), 특히 엄마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만큼 성숙해진 자아가 있어야 가능할 듯해요. 증오의 반대를 연민이라고 깨달은 시적화자에게 공감이 가는 까닭은 이 시가 설득력이 있어서랍니다. 어쩌면 화자는 증오했던 엄마를 점차 이해하고 연민을 가지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화자는 엄마를 서툰 여자, 고민하는 여자, 답이 옳지 않았던 여자로 인식하고 있어요. 그러한 진실성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엄마도 나약한 사람이니까요. 다만 '오직/그뿐이었다'는 사족처럼 느껴지고 '질긴 모래알 같은 무엇이'는 모호하답니다. '질긴 모래알'은 뭘까 궁금하거든요. 그럼에도 솜인형이나 춤추는 손가락 등의 비유는 잘 다가왔어요. 표현력이 좋았답니다.

 

 

 

 

이번 고등부 월장원은 <엄마>입니다.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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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월장원을 발표합니다.

 

 

 

 

첫째 주 /

 

천솜, <쥐구멍> :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였어요. 쥐로 풍자된 정황이 시선을 사로잡았어요. 근데 왜 쥐로 표현했을까 생각해봤어요. 쥐가 혐오스러운 동물이고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에서 착상을 했을까요. 쥐가 등장하는 근거는 '쥐구멍으로 숨고 싶다더니'겠죠. 여하튼 '오랫동안 비어 있던 교실을/낯선 날숨들이 채웠다'에서 알 수 있듯(얼마나 비어 있어서 오래인지 몰라도) 낯선 아이들과 낯선 시선이 느껴집니다. '가장 큰 아이'에게 시선이 덜 가는 정황과 '그 아이' '그 애'는 눈꼬리 대신 등을 구부리는데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궁금해요. 그 일 때문에 '그 애'가 쥐구멍에 숨는 쥐가 되는 정황으로 연결되거든요. 시각에서 청각으로 이어지는 시적 구조, 쥐구멍과 목구멍, 쥐와 귀 등의 언어 구조를 의도한 듯해 좋았어요. 좀 더 정교하게 이미지를 만들어내면 좋은 시가 나올 듯해요.

 

 

둘째 주 /

 

YP제국, <음표> : 음악을 음표로만 본다면 춤추는 듯 하겠죠. 이 시는 청각을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해 재밌어요. 그런데 '길쭉길쭉한 과자'가 연관성 없이 나와 휘발되는 게 아쉽고, '새싹'도 아쉬워요. 시어가 시어를 낳아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도드라진 언어가 어떻한 역할을 하는지 고민해봐야 해요. 그리고 '얇은 곧은 선'은 '얇고 곧은 선'으로, '손 끝에서'는 '손 끝으로'로 수정해보면 더 자연스러운 문장이 될 듯해요.

 

 

마지막째 주 /

 

우재영, <바다 앞에 서서> : 바다로 흘러드는 강물을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로 비유했군요. 우리는 슬플 때나 기쁠 때 눈물을 흘리죠. 그건 감정을 가진 것일 텐데 구체적으로 어떤 감정 때문에 혹은 어떤 일 때문에 눈물을 흘렸는지 힌트가 필요하답니다. 또 눈물로 이뤄진 바다가 숨소리를 고동쳤다는 것은 무엇인지, 수면 위로 꿈이 담긴 물보라는 무엇인지 궁금해요. 지는 태양이 왜 분노하는지도요. 마지막 연에서는 왜 아름다움으로 일렁이는 바다를 찾아볼 수 없을까 싶어요. 이 시는 바다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제목으로 따져 봤을 때 시적화자(보이지 않는 화자)가 바다 앞에 서서 눈물을 흘리고 있구나 추축할 뿐 시 내용에서는 화자가 왜 눈물을 흘리는지 알 수 없답니다. 시는 추측만으로 감상하는 게 아니라 논리적으로 감상하고, 마음으로 느끼게 해줘야 해요.

 

 

 

 

이번 중등부 월장원은 <음표>입니다.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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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첫째 주 우수작(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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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우수작을 선정했어요. 편수가 그리 많지 않았으나 만만치 않은 내공을 보여준 시들이 있어서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중·고등부에서 2편씩 선정했어요. 그만큼 아쉽게 선정하지 못한 작품들도 많았습니다. 더 건필하시고 퇴고도 열심히 하시길 바랍니다.

어느덧 꽃이 피어 맘을 설레게 하네요. 요즘 저는 여유롭게 꽃구경할 시간이 없어요. 글틴 친구들도 그렇겠죠. 그러나 잠깐  주위를 보면 꽃이 먼저 인사를 하더라고요. 그때 반갑게 인사하면 됩니다. 우리는 이미 봄과 함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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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본낯필오, <설탕과 소금에 찌들어 살래요> : 시가 진부해서 가슴이 아프다고 하는데 시를 게시한 용기가 있네요. 시의 리듬이 있고 호기심이 생겨 재밌게 봤어요. 설탕과 소금은 상극인 듯하지만 요리의 맛을 내는데 빼놓을 수 없는 조미료죠. 사람들이 좋아하는 달고 짠 맛, 시적화자는 음식이 아닐까 싶어요. 어쩌면 사람들이 맛을 본 후 사라질 존재지만 영원히 설탕과 소금에 찌들어 사는 존재여서 가슴이 아프죠. 그런데 불특정한 화자(대명사)가 등장하기 때문에 호기심이 생기지만 구체적인 감동이나 설득력을 갖기 어려워요. 사람들이 달고 짠 걸 좋아한다는 명제가 남지만 정작 화자가 휘발되고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호해졌습니다. 설탕과 소금은 좋은 소재랍니다. 그러나 시에서 의도를 드러내지 못하고 광범하게 말하고 있어요. 우리가 꽃을 시로 표현하고 싶다고 했을 때 꽃이라고만 쓰지 않고 제비꽃, 벚꽃, 수선화 등으로 이름을 불러주는 이유를 고민해봐야 합니다. 각기 다른 속성과 고유한 특성을 시적으로 사유하면 훨씬 감동적인 시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죠. 음식의 종류가 많고 설탕과 소금의 사용 목적도 다르니까요.

 

 

효월曉月, <유년기> : 시적화자 '나'와 '그애'가 만든 겨울연가 같군요. 싱그럽고 수줍은 사랑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둘이 강가에 앉아 첫 입맞춤을 하는 장면이 첫 사랑이 아닐까 싶어요. 근데 '유년기'에도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유년기는 초등학교 저학년까지인데 너무 빠르다는 생각도 들고 너무 성숙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저는 '청소년기'로 보였거든요. 시적 언어들도 그렇고요. 그럼에도 '이름도 모르는 내 유년의 물가/가끔은 하느님도 낮잠 주무시다 가시고'라는 표현이 좋았어요. 홍시와 홍시맛을 비유적으로 사용한 것도 인상적이었답니다. 다른 부분에서는 설명적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자세히 설명해서 시적 전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사족으로 느껴집니다. 퇴고를 잘 한다면 싱싱한 시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무엇이 가장 눈부시게 빛났'는지 알 수 없다고 끝맺은 것은 아쉽습니다. 다 눈부시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거든요. 오히려 그애(소년)와 나의 관계에 대해 여운을 남기면 어떨까 싶거든요.

 

 

별환, <필름> :  습작을 많이 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검은 기억'이라는 관념적인 소재를 '필름'으로 구체화시키려는 게 느껴졌어요. (그럼에도 다소 관념적인 시랍니다.) 또한 감각적인 언어나 표현이 풍성했고 마지막 연에서 감탄을 자아냈어요. '눈물은 색이 모두 빠진 채/투명하고 희미하게 흘러서'라는 표현이 시적입니다. 가끔 잠들기 전 여러 기억들이 밀려들지만 순간 끊긴 필름처럼 기억 나지 않는 장면들이 있죠. 그런 면에서 공감할 수 있으나 시가 '기억'이라는 관념에 집중되어서 전체적으로 피상적이라는 인상도 줍니다. 시적 의도나 주제를 잘 드러냈는지 따져봐야 해요.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이었나 다시 고민해보면서 퇴고해보면 좋겠어요. 더 구체화된 시적 정황으로 정보를 준다면 좋은 시가 될 가능성도 있답니다.

 

 

세바시, <벙어리> : '벙어리'라는 말 속에 우리 현실이 반영된 듯해 더 맘이 아픕니다. 이 시의 소재가 현실적이랍니다. 시적화자가 말을 전달해주는 형식이어서 객관적이고 이미지가 선명해서 생동감을 느꼈어요. 다소 설명적이고 장면 묘사가 소설적이지만 관념적이지 않았던 점은 좋았답니다. '사람에게 데이는 건 서투른 다림질에 데이는 것보다도 더 미련한 짓이라고 했다', '가끔 두 다리마저 갈피를 잡지 못할 때/배고픈 숫사자로부터 까닭없이 도망치는 토끼마냥' 등의 표현이 더 시적이면 좋겠어요. '발톱이 기어이 살집을 파고들고 나서야'는 제 마음까지 파고든 표현이랍니다. 그런데 "지긋지긋한 일 하든 안하든 지긋지긋한 인생이니 고마 지긋지긋하게 살람니더" 대사는 푸념에 그치고 직설적인지라 공감보다 아쉬워요. '비정규직 근로자의 처우나 부당해고' 등은 사회적 이슈이기 때문에 더 은유적으로 표현하면 어떨까요. 여튼 설명적이거나 직설적인 표현들만 잘 정리하면 좋은 시가 나올 듯해요.

 

 

 

 

이번주 고등부 우수작은 두둥!! <필름>, <벙어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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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박채연, <방구석에서> : 방구석에서 모든 걸 잘 볼 수 있다는 게 주변(외곽)에서 중심이 잘 보인다는 뜻처럼 다가옵니다. 시적화자는 '나를 즐겁게 하는 아픔'을 찾고 싶은 때 방구석에서 방 안을 봅니다. 방 안에는 로봇, 인형이 있어요. 이것들이 화자를 즐겁게 하는 아픔일까 싶기도 해요. 그런데 화자는 등 뒤의 창문을 보려고 하지 않아요. 고통에 정신을 잃고 향락하게 될까봐 두려운 것이라고 합니다. 표현이 어려운데 '고통'이 뭐고, 정신을 잃고 향락하는 게 뭘까 궁금해집니다. 밖에 나가서 정신 없이 놀고 싶은데 놀지 못해 고통스럽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구석에서 안이 잘 보인다는 인식은 시적이고 뭔가 궁금증을 유발시키지만 의도나 표현에서 모호한 게 많습니다. 사유를 잘 정리하고 표현을 다듬으면 좋을 듯해요.

 

 

YP제국, <참 고운 것> : 고운 것을 발견하는 고운 맘이라 느껴져요. 엄마의 손, 아빠의 발, 누나의 새끼손가락이 고운 것이라니! 시적화자의 마음이 참 고운 것이라 해야 할까요. 그럼에도 아쉬운 점도 있어요. 문장이 매끄럽지 않고 '물에 오래 살아서 물집 만든 손이'는 모호하답니다. '가장의 무게 대신 굳은 살 박힌 발이'는 표현이 신선하지 않죠. 또한 쉼표의 남발, 마지막 연의 반복된 문장 등이 아쉬워요. 마지막 문장은 '참', '참으로'의 단순한 변주여서 굳이 강조할 필요를 느낄 수 없었어요. 같은 대상이나 정황일지라도 아무도 쓰지 못한 YP제국 님만의 표현을 찾아보세요.

 

 

gayoung, <입술은 왜 갈라지지 않을까> : 언어를 다루는 솜씨와 사유가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명절날 모인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들이 누구에게는 달갑지만은 않겠죠. 시적화자는 말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혀는 축축하지만 말은 메말라버리죠. '톱밥 같은 말'이 되는데 '기이한 일'이라고 사유합니다. '입술은 왜 갈라지지 않을까'라는 물음은 말이 톱밥 같이 메말라버렸는데 입술은 갈라지지 않는지 의문을 품는 것 같기도 해요. 여튼 이 물음에 대한 의도가 쉽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갈라진다'는 것에 대해 공감할 수 있도록 앞 연에 이미지를 넣었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3연 '거기가 요즘 집값이 떨어져 그래도 전세로는 만만찮을 텐데/이번에 말이다 아는 언니의 친구의 딸이 거기에 붙었는데에'는 직접적으로 사람들의 대화로 표현해 아쉽기도 합니다. 이 대화는 상징적이라기보다 일반적이어서 식상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시적 이미지로 표현하면 좋겠어요.

 

 

 

 

 

이번주 중등부 우수작은 두둥!! <방구석>, <입술은 왜 갈라지지 않을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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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마지막째 주 우수작(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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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남해에 다녀왔어요. 갑작스럽게 동료의 아버지가 숨을 거뒀기 때문이었죠. 제가 할 수 있는 건 조문뿐이어서 먼 길을 달려가 늦은 밤 장례식장에 도착했습니다. 조문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는데 눈 앞에 만개한 벚꽃이 펼쳐지더군요. 참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조문객이라는 것도 잊은 채 꽃에 취했습니다. 살아있어서 느낄 수 있는 봄밤이었죠. 지난 봄에 죽은 꽃들이 되살아난 듯 싶었거든요.

 

오늘은 시 한 편 소개할게요.

 

"봄밤/꽃나무 아래에서는 술이 붉다/꽃향기 자욱한 술잔이 붉다/따라주는 이 없이 홀로 잔을 채워도/외롭지 않다, 절로 흥이 넘치는 밤"
– 이수익 시인 시 '봄밤' 전문

 

이번주에도 우수작을 선정했습니다. 부디 흥이 넘치는 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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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승애연, <모데라토> : 시적공간이 구체적이어서 안정감이 있는 시입니다. 덕분에 '뭉게구름'을 찾아 들었어요. 참 좋은 곡입니다. 제목이 '모데라토'는 보통 빠르게 연주하라는 말인데 뭉게구름을 빠르게 연주하는 듯 여태 피지 못한 철쭉의 잎들이 박수를 치는 듯해요. 근데 '봄 이슬 자국 손'을 더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면 좋을 듯해요. 그래야 철쭉 꽃이 피지 않는 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올 듯합니다. 그리고 첫 문장에서 뭉게구름 가사를 넣는 게 얼마나 효과적일지 고민이 됩니다. 짧은 시인지라 바로 음악실에서 노래 부르는 장면으로 시작되면 좋을 듯해요. 또한 '이상해질 거야', '호흡은 지겹다', '쉼표 없는 악보는 찢어서 던지고 싶다', '어깨 토닥임과 함께 주는 초콜릿은 신물 나' 등이 직접적인 감정을 드러낸 듯해요. 묘사로 이미지를 형성하면 어떨까 싶고요. '나이를 먹을수록 걸음은 빨라져야 한다'는 진술을 받쳐줄 수 있는 묘사가 필요하답니다. 감정을 견지가 시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답니다. 잘 퇴고해보세요. 좋은 시가 나올 가능성이 있답니다.

 

 

Chameleon, <침식> : '침식'이라는 제목이 뭔가 허물어지고 깍이는 느낌을 주는데 시에서는 '그렇게 스며든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제목이 도드라진 느낌이 들어요. 시의 내용을 잘 살릴 수 있는 제목을 고민하면 좋겠어요. 마지막 연에서 '나무의 품에 안긴다'는 게 관을 의미하는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 이상하게도 노인이 죽어서 땅에 묻히는 장면이 그려졌거든요. ('목이 매이고'는 '목이 메이고'로 수정해야 합니다.) 또한 여러 장면이 겹겹이 보이는 시이기도 해요. 그래서 이 시는 만만치 않은 시적 내용을 담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표현이 거칠고 감정 노출이 있어서 시적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답니다. 그런 탓에 퇴고가 덜 된 듯한 인상도 남깁니다. 우선 '어린 노인'이 뭘까 궁금해져요. 이 시는 노인에게 더 집중하면서 시적정황을 보여주면 의도를 드러내는 데 도움이 될 듯해요. 그러면서 '청춘으로 살아낸 동네/화사롭고 따뜻한 공기 빠짐없이 마신 후'나 '이제는 잘 살어라 못다한 말 못다하고/눈물로 느껴지던 당신의 부모님'과 같은 직접적인 발화 혹은 설명적인 부분을 퇴고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여름별, <엄마> : 엄마라는 말 속에는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듯해요. 물론 전혀 다른 의미로 볼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엄마의 자궁에서 나온 우리에게는 엄마에 대한 공통분모가 있을 듯해요.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혹은 이해하려고 한다는 것), 특히 엄마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만큼 성숙해진 자아가 있어야 가능할 듯해요. 증오의 반대를 연민이라고 깨달은 시적화자에게 공감이 가는 까닭은 이 시가 설득력이 있어서랍니다. 어쩌면 화자는 증오했던 엄마를 점차 이해하고 연민을 가지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화자는 엄마를 서툰 여자, 고민하는 여자, 답이 옳지 않았던 여자로 인식하고 있어요. 그러한 진실성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엄마도 나약한 사람이니까요. 다만 '오직/그뿐이었다'는 사족처럼 느껴지고 '질긴 모래알 같은 무엇이'는 모호하답니다. '질긴 모래알'은 뭘까 궁금하거든요. 그럼에도 솜인형이나 춤추는 손가락 등의 비유는 잘 다가왔어요. 표현력이 좋았답니다.

 

 

윤별, <갈라지지 않은 그림자는 표정이 없다> : 시적화자가 고백하는 '죽음을 갈구한다는 시를 언젠가 썼던 것도 같다'에 눈길이 머물었답니다. 그리고 '외로웠던 적이 있는 사람은 약속을 하지 않지'도 그랬어요. 이 진술이 와닿고 좋았는데 그 진술이 확장되지 않아서 아쉽기도 해요. 다만 외로움에게 위로받는 화자여서 굳이 누군가를 만나 위로를 받을 필요가 없는 건가 추측할 뿐입니다. 또 제목 '갈라지지 않은 그림자는 표정이 없다'에서 궁금증이 생겼어요. 애초에 그림자의 표정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반대로 갈라지는 그림자는 표정이 있다는 것일까 싶기도 하거든요. 그림자가 어떻게 갈라지는 건지도 의문스럽습니다. '어린왕자가 자신의 발목을 자른다'는 구절은 표현이 강렬하지만 외딴 섬처럼 툭 도드라져 나와 앞뒤 연결이 어려워요. 더욱이 전체적으로 시적 흐름을 보자면 제목에 나온 그림자의 표정의 역할이 크지 않고, 첫 구절 '창백하게 빠져들었어야만 했다'부터 마지막 구절 '네가 세 시에 온다고 하면 나는 두 시부터 도망치고 있을 거야'까지 일관된 줄기가 있는건지 따져봐야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각 연마다 각기 다른 이미지들이 나열된 느낌을 받았답니다. 꽃을 피우기 위해 줄기와 뿌리가 하나이듯 시의 줄기와 뿌리가 하나로 잘 연결시켜본다면 좋은 시가 나오지 않을까요.

 

 

 

 

이번주 고등부 우수작은 두둥!! <모데라토>,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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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YP제국, <봄이 오면> : 꽃나무가 시적화자인 시입니다. 인상 깊게 읽었답니다. 꽃이 피고 지듯 사람도 태어나면 죽은 게 당연하겠죠. 이 시는 그런 생사를 빗대어 표현한 듯해요. 베란다에서 시작화자를 내려다 보던 사람이 떠나고 그 사람의 아이가 다시 화자를 내려다 봅니다. 근데 검은 눈동자에 하얀 물을 담았다는 게 무엇인지 잘 그려지지 않아요. 혹 눈자위를 표현한건지도 모르죠. 적확한 묘사여야 합니다.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은 작은 베란다에서 '작은'이 주는 의미와 그 사람이 떠난 것을 화자가 어떻게 아느냐는 겁니다. 떠났다는 것을 암시하는 묘사가 있으면 좋겠어요.

 

 

우재영, <바다 앞에 서서> : 바다로 흘러드는 강물을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로 비유했군요. 우리는 슬플 때나 기쁠 때 눈물을 흘리죠. 그건 감정을 가진 것일 텐데 구체적으로 어떤 감정 때문에 혹은 어떤 일 때문에 눈물을 흘렸는지 힌트가 필요하답니다. 또 눈물로 이뤄진 바다가 숨소리를 고동쳤다는 것은 무엇인지, 수면 위로 꿈이 담긴 물보라는 무엇인지 궁금해요. 지는 태양이 왜 분노하는지도요. 마지막 연에서는 왜 아름다움으로 일렁이는 바다를 찾아볼 수 없을까 싶어요. 이 시는 바다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제목으로 따져 봤을 때 시적화자(보이지 않는 화자)가 바다 앞에 서서 눈물을 흘리고 있구나 추축할 뿐 시 내용에서는 화자가 왜 눈물을 흘리는지 알 수 없답니다. 시는 추측만으로 감상하는 게 아니라 논리적으로 감상하고, 마음으로 느끼게 해줘야 해요.

 

 

 

 

이번주 중등부 우수작은 두둥!! <바다 앞에 서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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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셋째 주 우수작(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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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삼월인데 꽃이 피는지 어떤지 모르고 살았네요. 요새 여유롭게 산책을 하지 못해서일까요. 옆 사람에게 물어보니 살짝 꽃이 필 기미가 보인다고 합니다. 저는 시를 쓰다가 막히면 산책을 하곤 합니다. 오히려 산책을 하면서 시를 쓰기도 하죠. 그만큼 산책이 주는 '환기'가 시 창작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죠. 글틴 친구들도 날이 좋으니 여유롭게, 한가로이 산책을 해보시면 어떨까요. 공부하느라 산책할 여유가 없을지 몰라도, 시를 쓸 땐 꼭꼭 산책을 추천해요. 생각을 정리하면서 사유를 넓힐 수 있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하거든요. 이번주 우수작을 선정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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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본낮필오, <나 여기에 살았습니다> : '웃어도 됩니다'고 말해주고 싶군요. 시적화자가 '슬퍼 운 세월'을 보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응원합니다. 화자는 '나 여기에 살았습니다'와 '나 여기에 살아있습니다'는 완전히 다르겠죠. 앞은 과거에 거기에서 살았다는 것이고 뒤는 현재 살고 있다는 것이니까요. 혼란스러운 부분이죠. 그럼에도 저는 살고 있다는 것으로 읽었어요. 그렇다면 여기에 갇힌 듯한 화자가 우는 이유는 뭘까요. 마음이 아픈 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울고 있는 화자를 알 수 있게끔 더 이미지가 나와야 합니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고통이라지만 우리가 살면서 그 고통을 잊을 만한 것들이 많잖아요. 여림의 시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가 떠오릅니다.

 

 

쐐기벌레, <겨울애> : 동화적인 상상력, 감성이 풍만한 시입니다. 제목은 '겨울애'라서 겨울의 사랑으로 읽혀집니다. '세상이, 그렇게 다정했다'는 인식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어요. 추위를 요정의 손으로 보는 것도 재밌어요. 겨울의 햇살이 무뚝뚝하지만 '날카롭고 차가운 겨울 공기'를 동장군 칼집에 넣어둔 겨울의 마음, 흰 눈솜이 이불이 되어 나무를 덮어주는 겨울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추운 겨울을 다정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인상적이었어요.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들에는 이면이 있고 대상(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입에서 나와 어는 숨은/하얗게 안개처럼 말한다,'고 하면서 '내가 살아있다고/수북이 떨어진 흰 눈솜이/까만 나무들에게 이불이 되어 주는' 부분에서 시적화자가 개입되는 건지, 겨울이 말하는 건지 확실히 해야 할 듯해요. 주어가 분명하지 않아 혼란스럽습니다. 문장도 정리해야 하고요. 또한 마침표와 쉼표는 그리 중요하지 않는 듯해요. 마지막 구절에는 마침표가 없는데 통일성을 가져야 해요. 다 빼든지 다 넣든지 하면 됩니다. 현대 시는 대체로 리듬을 살리기 위해 마침표를 넣지 않죠.

 

 

바이현, <별똥별> : 우리에게 별똥별은 인상적인 존재가 아닐까 싶어요.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몰라도 별똥별을 보면 소원을 빌잖아요. 이 시에서도 소원이 담겨있는 듯해요. 누군가에게 아름답게 남고 싶은 마음, 그 인연에게 순간 떨어지는 별똥별처럼 아름다웠으면 하는 바람은 비슷할 겁니다. 그래서 시가 화려하지 않지만 창작자의 진솔한 마음이 느껴졌어요. 별똥별과 인연을 연결한 것은 긍정적으로 봤어요. 그러나 시적 감흥이 크지 않아서 아쉬웠답니다. 시적화자의 마음에 공감이 되지만 그 마음(소망)의 표현들이 추상적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무수히 많을 수 있고, 수많은 당신에게 모두 아름답게 기억된다는 것은 무리일 수 있죠. (별똥별이 아름답지만 어둔 하늘에 변함없이 떠있는 무수한 별도 있잖아요.) 너무 낭만적인 사유가 아닌가 생각해봤어요. 저는 바이현 님이 직접 겪었던 체험에서 시의 소재가 나오길 바랍니다.

 

 

rien, <불길> : 긴 시인데 술술 읽히네요. 아마도 행갈이의 힘이 아닐까 싶어요. '브래지어가 세탁기 뒤 먼지 속에 빠졌다' 첫행이 인상적이었어요. '낯선 초인종이 울리고'도요. 처음이 자극적이면서 궁금증과 기대감을 유발했으나 시적화자의 내면의 불길만 본 듯해요. '不' '아니다' '모른다' 등등. 거칠게, 장황하게 화자의 내면을 표현한 듯 해요. 그래서 인종이 울리는 사이사이에서 정작 첫행에서 받은 인상이 사라졌어요. 차라리 내면의 불안감이나 초조함을 구체적인 대상에 빗대어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개울을 건널 수 있게 징검다리를 놓듯 독자가 화자에게 이입할 수 있는 징검다리를 잘 놓아야 합니다.

 

 

 

 

이번주 고등부 우수작은 두둥!! <나 여기에 살았습니다>, <겨울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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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YP제국, <짝사랑> : 시적화자의 짝사랑이 느껴집니다. 생동감이 있고 재밌어요. 근데 '도둑고양이'나 '톡 쏘는 사이다 군인 아저씨'의 '뾰족뽀족한 철모'로 짝사랑을 비유했는데 (화자의 마음을 잘 표현했으나) 시어들이 크게 연관성을 찾기가 어렵네요. 만약 군인을 짝사랑하는 고양이 이야기거나 (화자를 꽃으로 비유했으니) 가시가 있는 장미가 나왔다면 무리없이 읽혔겠죠. 시를 쓰면서 떠오른 단상이나 이미지가 있다면 더 파고들어야 합니다. 시어들을 잘 배치해 조화롭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이번주 중등부 우수작은 선정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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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둘째 주 우수작(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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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주에도 우수작을 선정했어요. 글틴 친구들의 시를 읽으면서 '관념'에 갇혀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우리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거나 뭔가를 설명하면서 관념어를 사용하거나 감정을 토로하거나 애매모호한 표현을 잘 쓰지 않습니다. 그러면 누구와도 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이죠. 시도 마찬가지랍니다. 관념을 표현하고 싶다면 일상에서 보고 느끼는 구상적인 소재로 써보세요. 진술보다는 묘사에 신경을 써보세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듯. 그러면  상대방은 머릿속으로 한 폭의 그림(추상화일 수도 있어요)을 그리면서 이야기를 들을 겁니다.  시는 마음에 그려진 지도 같아서 독자는 시인이 그려놓은 길을 뒤따라가기도, 앞서가기도, 다르게 가기도 한답니다. 저는 글틴 친구들의 지도를 따라가다가 길을 잃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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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편, <우주> : '오늘도 새우처럼 웅크리며 환멸과 함께 잠드는 밤'에서 시적화자가 '우주'로 비유된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이 시는 현학적이고, 관념과 추상이 지배적이나 시를 관통하는 정서가 있어요. 어쩌면 우주라는 막막한 공간에서 상상되는 화자의 권태와 환멸이라는 감정일 수 있어요. 문제는 이러한 화자의 감정이 매우 모호하다는 겁니다. 권태, 미움, 작별인사, 혐오, 욕구의 소멸, 원망, 돌연변이, 환멸 등으로 이어지는 관념화된 화자의 감정 상태들만 나열됐을 뿐 구체적인 정황이 없답니다. 다만 '사람들=별'에서 화자의 권태 속에 별들이 헤엄치지만 별들은 화자(돌연변이)를 모릅니다. 저는 화자가 우주라는 광범위한 존재로 비유되기보다 화자 자체를 형상화하면 어떨까 싶어요. 화자의 모습이 구체화되면 권태나 환멸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바이현, <사랑> : 짧은 시인데 만만치 않은 내공이 느껴지네요. '사랑'이라는 언어가 텍스트에 나오지 않아 은유로 읽혀졌거든요. 그러나 시가 금방 와닿지 않았어요. '이제' '이번에는'에서 시제의 혼돈이 생겼답니다. 3연까지 방에 두고 온 짐을 이야기 하는데, 연결고리가 부족한 상태에서 (짐?이) 이제 얼마 안 남았고 이번에 화자를 두고 온다는 게 의문점이 남는답니다. 보다 자연스럽게 정황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면 시의 은유에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윤별, <훔쳐가는 기억> : 잘 읽었어요. '기억'이라고 본다면 이 시는 정체가 불명한 시적화자와 '너'가 파편처럼 수없이 분산되어 있어요. 그럼에도 뭔가 의미를 부여하는 진술들이 있었답니다. 상상세계와 현실세계를 넘나드는 듯했어요. 시를 관통하는 중심 오브제와 이미지가 필요하답니다. 퇴고를 한다면 좋은 시가 나올 수 있을 듯해요. 대신 언어에 대한 책임감을 더 가지시길.

 

 

가역, <꽃> : 저도 애기똥풀을 고교시절에 알게 됐답니다. 시를 읽으니 동심이 느껴지고 재밌어요. 애기똥풀이 우는 이유가 오줌을 싸지 못해서라니! 대화 형식의 시여서 시적화자가 애기똥풀을 대변하고 있어요. 화자는 까칠하게 장미, 민들레에게 말을 합니다. 문득 화자가 누구인지 궁금해집니다. 어째서 애기똥풀 대신 장미에게 가시를 치워라고 하고, 민들레에게 솜털을 치워라고 할까 싶거든요. '가득 들었데요'는 말을 전하는 것이니 '가득 들었대요'라고 수정해야 해요. '애기똥풀이 울고 있을 때'의 반복은 어떤 의도인지 궁금하네요. 다른 구절에서도 반복되는 표현이 효율적인지 따져봐야 한답니다.

 

 

 

 

이번주 고등부 우수작은 두둥!! <사랑>, <훔쳐가는 기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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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STICKMAN, <해> : 십대가 느낄 수 있는 나이와 팔십대가 느낄 수 있는 나이는 다를 듯해요. 등의 얹어져 무거워지는 추, 추해지고 노쇠하고 늙는 것. 이 시가 의도하는 것은 뼈를 끼워마치는 노력, 그 고통에 관한 이야기 같습니다. 그렇지만 한 살 더 나이를 먹는 것의 외관만 집중하는 것 같아요. 나이든 노인이 척추를 끼워맞추려다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는 것도 단정적이랍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고, 늙어간다는 것, 죽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마음이 가벼워지는 게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이 시가 추측으로 이뤄지지 않고 삶의 통찰이 있었다면 또 다른 의미망이 형성될 듯해요. 지금은 한 살 더 먹은 시적화자의 정황만 보여주는 게 어떨까 싶고요.

 

 

YP제국, <음표> : 음악을 음표로만 본다면 춤추는 듯 하겠죠. 이 시는 청각을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해 재밌어요. 그런데 '길쭉길쭉한 과자'가 연관성 없이 나와 휘발되는 게 아쉽고, '새싹'도 아쉬워요. 시어가 시어를 낳아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도드라진 언어가 어떻한 역할을 하는지 고민해봐야 해요. 그리고 '얇은 곧은 선'은 '얇고 곧은 선'으로, '손 끝에서'는 '손 끝으로'로 수정해보면 더 자연스러운 문장이 될 듯해요.

 

 

 

 

이번주 중등부 우수작은 두둥!! <음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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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첫째 주 우수작(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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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이 되었네요. 옷의 두께도 얇아졌지만 아직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죠. 그래도 봄 기운이 너무 좋습니다. 이번주에는 중등부의 시들이 눈길을 사로잡았어요. 시가 성장한 친구도 있었죠. 곧 새싹이 온힘을 다해 땅을 뚫고 나오겠죠. 어둠을 딛고 빛을 향하는 새싹의 의지를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겁니다. 그 새싹처럼 홀로 책상에 앉아 백지와 싸우며 시를 짓는 친구들을 생각했어요. 무럭무럭 자라길 바라며 이번주 우수작을 선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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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세바시, <18호는 트럭에 올라탔다> : 트럭에 올라탄 소 이야기가 가슴 찡하네요. 첫 구절부터 강렬해요. '시뻘건 낙인이였다/18호, 네 몸뚱아리를 채운 것은.'이라는 문장이 도치법으로 시뻘건 낙인을 강조했어요. 그런데 시뻘건 낙인이 무엇이길래 몸을 채울 수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그럼에도 이 시는 18호가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소'라는 것과 소에 관한 이야기가 잘 그려졌어요. 그러나 대상과의 거리를 둬야 하는데 감정 이입이 많다는 것이 아쉬워요. 1연 9행부터 14행까지 시적화자의 주관적인 인식이 반영되어 의구심이 들기도 해요. 이 시를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그러나 어미가 어떻게 본능적으로 도축 당하는 것보다 새끼를 발굽에 치여 죽는 게 낫다고 알 수 있을까요. 화자가 소와 동일시되어 진술하는 것보다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게 감동을 줄 수 있답니다. 이를테면 '너의 눈빛은 우수에 차 있었다'고 화자의 시선을 담았는데 '가장 슬픈 보름달 같은 너의 눈은/축사 앞 운반 트럭을 떠나지 못하였다'에서는 과도한 감정이 실려 있어요. 2연에서 해가 솟고 보름달이 사라진 풍경처럼 시적 정황을 담담하게 그렸으면 더 진한 감동이 밀려들었을 것 같아요.

 

 

쐐기벌레, <사과가 빨갛다> : '그러하다.'는 말에 시선이 가네요. 후배 중에 박 모 시인이 있는데 페북에 쓴 모든 글귀에 '그러하다'를 붙이죠.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이 시가 SNS 글귀처럼 느껴졌어요. '빨갛다'와 '빨갰다'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빨갛다'는 것은 통상적인 관념이고 '빨갰다'는 것은 사실 혹은 진실인 듯해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니, 사과가 빨갰다.'(1연)와 '집에 와 보니, 사과가 빨갰다.'(6연)는 구절은 동어반복이 아닐까요. 그리고 1연에서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니'와 '집에 와 보니' 사이에 새벽 공기, 새벽 찬 공기, 교실, 칠판, 아이들이 나와요. 시적 흐름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고 이미지가 분절되는 것 같습니다. 추측하건데 새벽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시를 쓴 게 아닐까 싶었어요.

 

 

삼이사, <소년의 배> : 누구나 망망대해를 항해한다면 막막하리라 봐요. 특히 진로를 고민하는 사춘기 청소년이라면 더욱 그렇겠죠. 그런 막막한 감정을 바탕으로 탄생한 시가 아닐까 싶군요. 시적화자가 바다에서 '도착지를 모르는 여행'을 하면서 도착지를 찾으려고 애쓰는 화자의 모습에 공감이 갔어요. 정작 섬을 발견하고도 의심을 하는 모습도요. 이 시가 정처없이 떠도는 인생을 표현했더라도 소재나 세부 묘사에서 아쉬움이 남아요. 시적정황이 현실보다 상상이나 감정상태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막연한 감정은 막연하게 표현된답니다. (화자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상황들) 독자는 시를 추측만 할 뿐 구체적인 이미지를 볼 수 없고, 무엇보다 어떤 소년이 왜 항해를 하는지 의문이 든답니다. 경험(체험)을 바탕으로 시를 짓는 연습이 필요하답니다. 굳이 감정을 표현하지 않아도 시적정황만으로 독자는 상상하고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답니다.

 

 

Chameleon, <잔걸음> : '나는 이제 세상을 쪼으려는 듯' 의미심장한 구절로 시를 마쳤어요. 화자가 관찰하고 있는 까치와 연관성이 있겠다 싶어요. '지붕에 올라가는 것을 참 좋아했다' '비밀스럽게 조용하게' '강하고 곱게 고갯짓을/날개짓을' '까치가 몰고 온 구름' 등으로 까치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2연도 까치의 모습이겠죠. 그러나 화자의 주관이 개입되어 단정적으로 표현해 의문이 남습니다. 왜 까치는 지붕에 올라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는지, 왜 까치의 고개짓과 날갯짓이 비밀스럽고 조용하고 강하고 곱다고 인식했는지, 왜 (까치가) 모든 것을 지겹게 지켜보고 아쉬워하고 슬퍼한다고 인식하는지, 어떻게 까치가 구름을 몰고왔고 구름이 어떻길래 화자가 닮고 싶은지 등등. 이러한 의문이 생기지 않아야 '새벽 찬 공기와 희미한 달에 닿고 싶다' '나는 이제 세상을 쪼으려는 듯' 등의 구절에 호응이 될 듯해요.

 

 

 

 

이번주 고등부 우수작은 두둥!! <18호는 트럭에 올라탔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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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STICKMAN, <무당개구리 배때기> : 시적 발상과 상상력이 재밌어요. 다만 '김00 씨'와 '무당개구리'의 관계성이나 공통 분모를 찾아야 한다는 게 아쉽습니다. 덕분에 무당개구리가 무엇인지 찾아보게 되었어요. 청록색에 검은색 얼룩이 있는 무당개구리의 생김새가 특이하고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고 하는군요. 김00 씨가 지하철을 타고 '목적없는 곳, 무념무상 무의식적으로 가는 곳'으로 향하는데(어디론가 목적 없이 향하고 있죠) 무당역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무당개구리를 만나는데 '무슨 낙으로 사리오'라는 환청을 반복적으로 듣죠. 어쩌면 시로 말하고 싶은 구절이 아닐까 싶어요. '그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분못할 것을 애써 부인한 채 그곳을 빠져나온다'면서 집으로 올아오죠. 오늘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무당역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아이를 만나는 것인데 아침에 집에 들어오는 것인지 시간이 흐른 것인지 궁금합니다. 또 '김00 씨'의 사연(속사정)이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 시적대상(인물)에 동화되고 몰입하려면 인과가 있어야 하는데 무턱대고 환청, 환상으로 넘어가는 게 갑작스럽기도 합니다. 전형적인 인물이든 개성적인 인물이든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이미지를 응축시키면 보다 좋은 시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박성우 시인의 시 '달팽이가 지나간 길은 축축하다'를 읽어보세요.

 

 

천솜, <쥐구멍> :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였어요. 쥐로 풍자된 정황이 시선을 사로잡았어요. 근데 왜 쥐로 표현했을까 생각해봤어요. 쥐가 혐오스러운 동물이고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에서 착상을 했을까요. 쥐가 등장하는 근거는 '쥐구멍으로 숨고 싶다더니'겠죠. 여하튼 '오랫동안 비어 있던 교실을/낯선 날숨들이 채웠다'에서 알 수 있듯(얼마나 비어 있어서 오래인지 몰라도) 낯선 아이들과 낯선 시선이 느껴집니다. '가장 큰 아이'에게 시선이 덜 가는 정황과 '그 아이' '그 애'는 눈꼬리 대신 등을 구부리는데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궁금해요. 그 일 때문에 '그 애'가 쥐구멍에 숨는 쥐가 되는 정황으로 연결되거든요. 시각에서 청각으로 이어지는 시적 구조, 쥐구멍과 목구멍, 쥐와 귀 등의 언어 구조를 의도한 듯해 좋았어요. 좀 더 정교하게 이미지를 만들어내면 좋은 시가 나올 듯해요.

 

 

청빛, <돌연변이 레몬> : 마음이 느껴지는 첫 시를 발표했군요. 청빛 님의 시에서 참 맑은 마음과 동심이 느껴졌답니다. 아무래도 이제 막 중학생이 된 듯 싶기도 해요. 앞으로도 즐거운 활동 기대할게요. 종결어미가 '~다'와 '~지'인데 일관성 있게 통일하면 좋을 듯해요. 이 시는 나와 다른 모습을 가진 것들에 대한 '차별'을 꼬집고 있어요. 마지막 구절 '이 그림은 이상하고 슬픈 그림이다'에서 알 수 있듯 시적화자는 '돌연변이 레몬'을 그려놓고 이런저런 상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렇게 따진다면 애초에 그림(돌연변이 레몬를 그린 그림)으로 시작하면 어떨까 싶기도 해요. 1~8행까지 의문을 만들거든요. 과일가게 주인이 팔릴만한 과일을 진열할 텐데 왜 팔리지도 않을 돌연변이를 진열할까요. 화자도 돌연변이 레몬이 팔리지 않고 끝내 버려질 것이라고 알고 있잖아요. 돈을 벌어야 하는 가게 주인은 절대 돌연변이 과일을 팔지 않을 듯해요. 그래서 이 시는 화자의 상상에서 시작해 화자의 상상 혹은 감정으로 마무리되는 거랍니다. 시에 담긴 좋은 의미(의도)를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세요.

 

 

 

 

이번주 중등부 우수작은 두둥!! <쥐구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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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월장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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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월장원을 발표합니다

 

 

 

 

 

첫째 주 /

 

기해, <김장> : 농익은 김치 인생이라! 표현이 좋고, 여러 생각을 하게 합니다. 김치가 익기까지 숙성되는 시간이 필요하듯 기해 님의 시도 서서히 숙성되지 않을까요. 졸업 축하하고 멋진 고등학생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튼 시가 '김장'으로 부제 '졸업'을 비유하고 있군요. 부제가 없어도 충분히 학창시절을 이야기하는 것이니 '졸업'은 불필요한 듯해요. '자각은 늘 지각하는 법인지' 표현이 좋네요. 특정한 시절(중학교)을 회상하는 시적화자의 진솔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순간이 찬란했었다', '그 시절을 함께 추억하자' 등에서 화자의 단선적인 인식이 아닐까 싶고 마지막 연은 사족 같습니다. 화자의 소망일 뿐이니까요. 졸업과 김치의 비유는 좋지만 대체로 설명적인지라 시적 긴장감이 떨어져 아쉽기도 합니다.

 

 

 

둘째 주 /

 

金狂哲, <망태 할아버지> : 시적화자가 관찰하는 대상이 분명해요. 화자가 바라보고 사유해 풀어내는 문장 역시 관찰하는 대상을 벗어나지 않고 담담하게 진행되죠. 화자의 감정적인 발화가 개입이 되지 않은 걸('할아버지의 뒷모습은 너무도 처량하다'만 빼고) 보면 화자는 섣불리 대상과 상황에 대해 판단하지 않으려 하는 자세를 유지하려 노력했던 것 같아요. 독자들은 화자가 펼쳐놓은 한 폭의 풍경화를 읽어 내려갑니다. 그러나 화자의 대상에 대한 화자의 객관적인 위치가 시를 싱겁게 만들었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아쉬웠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망태 할아버지의 '문드러진 얼굴과 손'이 '그야말로 천형의 얼굴'이라며 피할 때, 시인은 '빈거리에 혼자 서서 / 아무도 모를 눈물 흘'리는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예를 들면 떨어진 낙엽이나 꽃잎을 떠올릴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선경후정이라고 하죠. 대상을 묘사해 독자에게 전한 뒤 시인의 목소리를 작품에 담아내, 독자와 소통하는 방법도 선경후정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여튼 제가 어렸을 때 들었던 이야기(아기 잡아먹는 슬픈 문둥이 등)들이 나오니 시적의 소재를 책에서 얻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물론 어디서 소재를 얻든 상상할 수만 있다면 직접 체험한 듯 묘사할 필요가 있답니다. 안도현 시인의 시 '서울로 간 전봉준'을 읽어보세요. 역사책에서 본 전봉준 사진 한 장으로 시작된 시랍니다.

 

자유지기, <행복한 나날> : 살면서 친구들을 만나거나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느낍니다. 저 사람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말이죠. 시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시는 시인의 생각과 사유를 꽤 객관적으로 담아내 독자에게 내어놓는 '작가의 그릇'과 다르지 않거든요. 시적화자는 사소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을 행복하게 느낍니다. 독자들 역시 그런 화자의 모습을 상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지도 모릅니다. '행복할 지도 모릅니다'에서 '행복합니다'라고 발전되는 시상은 화자의 확신이 되어 독자들에게 전달될 겁니다. 독자들은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죠. 그래 행복이 뭐 별거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려있는 거지. 이 시를 읽는 잠시나마 그런 생각에 빠진다면, 이 시는 독자와 가깝게 소통한 것이 되겠죠.'지치지 않고' '모릅니다' 등로 수정해야 하고(오탈자)와 '눈부실 때' '시작할 때' 등 여러 곳의 띄어쓰기에 신경을 써야 해요.

 

 

 

셋째 주 /

 

삼이사, <죽은 교실> : 교실에서 펼쳐지는 모종의 사건에 대한 시적화자의 정리라 느껴져요. 화자의 표현에 따르면 교실에는 피해자가 있고, 서로가 서로를 피해자라고 하고, 그것은 가해자의 낙인이 두려운 역할극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자라는 나뭇가지는 상황이 여기저기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 같아요. 어른들은 CCTV처럼 행적을 살피지만 말 그대로 카메라답게 어떤 조치를 내리지도 않습니다. 화자는 피해자 친구를 보고 자신의 처지를 안도합니다. 그러면서 죄책감 때문에 괴롭구요. 양심은 그 친구에게 손을 내밀까 고민을 하게 합니다. 아마 피해를 목격했던 화자는 그 대상이 자신이 될까봐 그대로 두었어요. 제가 풀어서 쓰긴 했으나 많은 독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정황을 보여줬어요. 저는 화자의 고백의 큰 무게와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해요. 손을 내밀까 고민했고, 자기가 피해자가 될까봐 두려웠고, 그냥 두었다는 문장이 작가와 작품을 읽는 독자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고민과 두려움이 피해자를 그냥 보고만 있었다는 방임의 태도가 언젠가는 견딜 수 없을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독자들은 아마 현재의 화자가 고민과 두려움, 피해자를 그냥 바라보는 태도를 벗어나 언젠가 손을 내밀어 보고 나서 새로 쓰일 시를 기다릴 겁니다.

 

유디, <엄마를 부르면> : 화려한 수사나 미사여구를 동원한 문장을 만드는 기술적인 면보다 유디 님처럼 (유려하거나 신선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감정을 가득 반영하는 표현이 기반이 되는 게 나을 수 있어요. 대부분의 '엄마(어머니)'가 시적화자의 엄마와 다르지 않을 겁니다. '문장 사이의 쉼표라도 놓칠까' '눈의 씰룩거림이라도 놓칠까봐' 대부분의 자식도 엄마를 그냥 부르는 이유가 화자와 다르지 않을 겁니다.

 

 

 

마지막째 주/

 

학생c, <자율학습실> : 학생의 본분이 공부라는 말은 때로 억압적으로 들리기도 하죠. 만약 모든 학생들이 공부를 잘한다면, 모든 학생들이 공부를 좋아한다면, 그 학생들이 성인으로 자라 이 사회를 채운다면 우리 사회는 얼마나 갑갑할까 상상해봤어요. 시적화자는 자율학습실 현장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어요. 답답하고 숨을 쉬지 못할 것 같은 시의 공기를 독자들이 공감할 겁니다. 그리고 급작스럽지만 화자의 당당한 고백은 통쾌합니다. '나는 스케치북을 펴서 그림을 그릴거야/대입의 지휘 아래로 휘둘렸던 나,/진짜 나를 찾는 공부에 몰입하려고' 화자의 고백이 시원한 이유는 앞서 말했듯 '만약~한다면'이라는 전제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자율학습실이라는 공간도 합리적이진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진짜 자신을 찾는 공부를 하느라,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도, 학생의 본분은 공부야! 라는 말을 듣지 않게 되길 기원할 수밖에요.

 

 

 

 

이번 고등부 월장원은 <엄마를 부르면>입니다.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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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월장원을 발표합니다

 

 

 

 

 

첫째 주 /

 

김줄, <열등감> : '우울증'에 이어 '열등감'을 표현했군요. 시적정황이 가슴 아픕니다. 형상화가 잘 되어서 이미지가 그려지지만 모호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선 개미를 흩뿌리는 화자와 한해살이 식물인 화자가 동일한 건지 궁금하네요. 또 열등감에 찌든 화자가 열등감이 생긴 게 벚나무 언니 때문인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밝은 빛 한 조각 들지 않는 깜깜한 미세먼지를/굳이 찾아 꾸역꾸역/나무 아저씨의 비난도/빽빽한 바람도/잘근잘근 씹어 시커먼 속에/화려한 단색 속 먼지가 있을지/알 수도 없을 걸요' 문장이 어색하고 잘 읽어보면 이해가 되지 않아요. '밝은 빛 한 조각 들지 않는 깜깜한 미세먼지'를 찾는데 미세먼지가 공간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밝은 빛 한 조각 들지 않는 깜깜한 (어디?)에서 미세먼지를 굳이 찾는다고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여튼 화자가 선명해지면 이미지도 구체화될 듯 해요. 그럼 훨씬 시가 좋아지지 않을까요.

 

 

 

둘째 주 /

 

별빛마저, <차가운 눈> : 소박한 느낌을 주는 시를 발표했어요. 날씨가 추웠던 날, 친구와 싸웠던 상황과 친구의 한 마디는 날씨보다 차갑게 시적화자의 가슴에 박혔던 것 같아요. 그리고 화자는 마지막 연에서 그 상황에 대한 후회의 심경을 토로하고 있답니다. 붙잡을 수 없는 눈송이를 통해서요. 첫 연으로 돌아오면 '일 년 중 이맘 때 / 눈이 펑펑 내린다'는 문장을 통해 눈이 내릴 때마다 과거의 어느 장면을 떨칠 수 없다는 심경까지 작품에 담겨있어요. 소박한 작품이지만 화자가 독자와 소통하고자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내비친 시라고 봐요. 흔히 순수하고 낭만적인 눈 내리는 상황을 화자의 심경에 맞게 풀어낸 지점도 진솔한 부분으로 꼽고 싶습니다.

 

김줄, <퇴고> : 저 역시 오프라인 모임에서 합평한 경험이 많답니다. 시를 읽은 사람들의 비평을 들으며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귀담아 듣고 퇴고에 반영하는 경우도 있었죠. 시적화자는 제목처럼 퇴고하는 과정 속에서 느끼는 감정을 풀어냈어요. 인정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변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가 등장합니다. 독자들은 퇴고 작업 중인 화자의 번뇌와 혼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어요. 다소 맥이 풀리는 부분들은 효과적인 이미지로 퇴고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해요.

 

 

 

셋째 주 /

 

룰루리, <오타> : 사람의 기억은 꽤나 복합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죠. 지우고 싶은 기억일수록 선명하게 남고 한편으로는 스스로에 의해 편집되고 조작되기도 한답니다. 룰루리 님의 시 '오타'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구질구질한 우울'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그 우울을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여러 가지 시도를 했습니다. 결국 시적화자는 '부드럽고 달콤한 사랑노래에 취해/이 끝없는 우울을 애써 무시해보려'고 하죠. 화자의 체념은 회피를 하려는 비겁함도 아니고 벗어나려는 발버둥도 아닐 겁니다.

 

 

 

마지막째 주/

 

ayeon, <부모님> : '귀여운 시입니다. 이 시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오직 사랑하나로/버텨'내는 부모님과 '단 1초의 쉼도 없이' '달리는' '시계소리'를 연결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독자들은 자식을 위한 부모님의 희생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는 주제를 연상할 수 있겠죠. 제목에만 부모님을 쓰고 본문에 부모님을 언급하지 않아서 좋았어요. 그러나 사유의 아쉬운 점을 언급하고 싶답니다. 시계의 분침과 시침은 회전운동이기 때문에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이미지라기보다 보통은 일상을 맴도는 상징으로 비유되곤 하죠. 물론 초침이 달려 분침과 시침이 진행이 되는 것은 무리하지 않은 시적 전개인데, '더 나아갈 수 있게'라는 표현은 그래서 조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을 초침, 분침, 시침과 연결해 표현하기 위해서는 내밀한 고민을 해본다면 분명 더욱 좋은 시가 탄생할 수 있을 겁니다.
 

이번 중등부 월장원은 <퇴고>입니다.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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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마지막째 주 우수작(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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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마지막째 주 우수작을 선정했어요. 우선 개학하고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보여줘 박수를 보냅니다. 시를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완성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죠. 가끔 그렇게 나온 시가 있답니다. 제가 아는 시인 중에는 머릿속으로 시를 쓰고 퇴고까지 마친 다음 노트에 한번에 시를 적는 사람이 있어요. 저도 마음에서 오래 머문 사유가 시가 되어 일필휘지로 나왔던 적이 있죠. 글틴 친구들도 시 한 편을 짓기 위해 오래 고심하리라 생각해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시를 쓴 다음입니다. 바로 퇴고가 남아있어요. 오래 퇴고할수록 단단한 시, 완성도가 높은 시가 나와서 창작자에게도 만족감을 주기도 한답니다. 저는 이를 창작의 고통이 주는 쾌감이라고 봐요. 물론 시적표현이 서툴러도 됩니다. 글틴이니까 마구마구 써도 됩니다. 다만 시를 접하는 진정성과 퇴고에 대한 열정이 필요해요. 창작자에게 쾌감이 없는 시는 독자에게 아무런 감동을 줄 수 없다는 점도 잊지 말아주세요. 저도 글틴의 한 독자로서 사유가 깊어지고 시를 읽는 즐거움이 커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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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윤별, <문> : 시적화자는 담벼락에 문을 그립니다. 그리고 파란 물을 토하는 빛나는 해파리를 봅니다. 두 문장의 연관성을 헤아리는 일이 독자들에게 어떤 인상을 준다거나 특정한 이미지를 전달하기는 곤란할 듯해요. 다음 문장에서는 구름을 찌른 콘크리트 사이에서 (무엇이) 죽어가고 있던 순간이었다고 해요. 아마 앞선 문장의 주어였던 빛나는 해파리였겠죠. 1연에 등장한 시어들을 보자면 담벼락, 문, 빛나는 해파리, 파란 물, 구름, 콘크리트 등이 조사와 서술어 등을 통해 문장이 되었어요. 그 문장에 담긴 이미지와 동원된 시어들이 비유 혹은 상징하는 부분 그리고 시적의미를 가만히 되짚어봅시다. 화자는 왜 담벼락에 문을 그리는지, 빛나는 해파리가 파란 물을 토하는 행위는, 그걸 본 화자는 그 현상을 왜 언급하고 있는지, 구름을 찌른 콘크리트는 화자의 상태를 비유하는 것인지, 첫 연에서 생성된 궁금증은 작품 내에서 해소가 되고 있을까요. 그렇다고 보기 어려워요. 독자들은 작품에 사용된 어떤 단어부터 시작해 한 문장과 한 연, 한 부분, 한 작품을 읽고 작가가 시를 통해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떠올리게 될 겁니다. 그게 구체적인 주제거나 슬프구나, 기쁘구나 생각할 수 있는 정서일 수 있죠. 시는 수학이나 과학처럼 공식이 있지는 않아서 자유로울 수 있어요. 그러나 정해진 공식보다 더 복잡하고 촘촘한 사고체계가 필요하답니다. 천차만별인 독자들과 소통하기 위해서겠죠. 좋은 시는 독자에게 말을 건네고 독자의 한마디를 이끌어내면서 독자와 대화하는 시가 아닐까요. 무턱대고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시키거나, 독자가 어떻게 생각하든 시인 자기가 할 말만 하는 시, 스무고개 하는 시, 쓴 사람조차 왜 썼는지, 무엇을 썼는지, 하고 싶은 말이 정립되지 않은 시들은 아마 독자와 대화하기가 힘들 수밖에 없어요. 작가가 어떠한 현상을 통해 소재를 생각하고, 대상을 관찰하고, 시어를 선택해 문장을 만들고, 이미지를 만드는 모든 과정이 시를 쓰는 데 중요하게 작용할 겁니다. 먼저 자신이 시로 독자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건네고 싶은지 확실해지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윤별 님이 독자와 나누고 싶은 말, 주제가 선명하다면 본인의 시에 과도하게 많은 시어와 그럴듯해 보이는 문장, 누군가 먼저 사용한 것 같은 식상한 이미지들이 무분별하게 사용되지 않으리라 봐요. 여러 이미지를 무분별하게 펼쳐놓는 시가 있겠지만 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읽히는 문장과 정제된 이미지를 통해 작가의 목소리를 내는 작품도 있답니다. 시 제목부터 첫 문장을 지나 마지막 문장까지 막히지 않고 읽히는 가독성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니까요. '낯설게 하기'는 의미를 헤아릴 수 없는 문장으로 독자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이 시인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기가 막히게 표현했지!'하면서 독자에게 전율을 일으킬 겁니다. 이런 전율에는 분명 소통과 교감이 필수적이겠죠. 물론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지만 시의 기본기를 충실히 연마하시길 기대할게요.

 

 

쐐기벌레, <근시> : 제목은 '근시'지만 1연의 문장을 보면 '노안'이 아닐까 싶어요. 문장은 창작자 자신의 생각을 독자에게 전하기 위한 그릇이겠죠. 혹은 그릇 위에 담겨진 음식일 수 있어요. 올바른 문장이 아니거나 효과적인 문장이 아니라면 독자들은 작가들이 건넨 그릇이나 그릇 위 음식을 받지 않으려 물러설 겁니다. 글틴 친구들 대부분이 신경 쓰고 훈련해야 할 부분이 문장연습이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여하튼 화자는 근시입니다. 안경을 착용하고 몰랐던 세상이 '잘 보이게' 됩니다. 어떤 이유인지 다시 '안경을 뺐고' 화자의 엄마는 '괜찮을 거라고 말'합니다. 일부러 안경을 두고 나온 화자는 위험에 처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화자는 '겁이 많'지만 '세상을 보고 싶고/계속 살고 싶'다고 해요. 그 고백이 자신의 근시 시력을 교정해주는 안경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시적인 연결고리가 부재되어 있어요.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서는 시 전체의 이야기. 엄마와 근시와 안경과 살고싶다는 고백도 다 의미가 없어진답니다. '…맨홀에 빠져 죽으면, 그러려니 하지 뭐.' 애초에 그런 생각을 했다면 독자들은 왜 이 시를 읽은 걸까요. 그렇게 자조적인 마지막 문장을 작성할 정도로 화자는 낙담한 건가요. '살고 싶'다는 고백과 '죽으면 그거려니 하지 뭐'의 거리는 덜 여문 문장으로 메울 수 있는 의미가 아닐 겁니다.

 

 

학생c, <자율학습실> : 학생의 본분이 공부라는 말은 때로 억압적으로 들리기도 하죠. 만약 모든 학생들이 공부를 잘한다면, 모든 학생들이 공부를 좋아한다면, 그 학생들이 성인으로 자라 이 사회를 채운다면 우리 사회는 얼마나 갑갑할까 상상해봤어요. 시적화자는 자율학습실 현장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어요. 답답하고 숨을 쉬지 못할 것 같은 시의 공기를 독자들이 공감할 겁니다. 그리고 급작스럽지만 화자의 당당한 고백은 통쾌합니다. '나는 스케치북을 펴서 그림을 그릴거야/대입의 지휘 아래로 휘둘렸던 나,/진짜 나를 찾는 공부에 몰입하려고' 화자의 고백이 시원한 이유는 앞서 말했듯 '만약~한다면'이라는 전제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자율학습실이라는 공간도 합리적이진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진짜 자신을 찾는 공부를 하느라,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도, 학생의 본분은 공부야! 라는 말을 듣지 않게 되길 기원할 수밖에요.

 

 

오태연, <귀는 새벽을 좋아한다> : 시에 나타난 정서가 비교적 뚜렷합니다. 그러나 문장과 문장, 연과 연, 이미지와 이미지, 시적정황과 정황 사이의 연결이 허술해 아쉬워요. 어떤 문장 다음에 오는 문장을 통해 독자에게 이미지를 더욱 강렬하게 전달하거나 혹은 지금까지의 이미지를 환기한다든가 하는 의도적인 부분이 결여되어 있어요. 한 줄 한 줄 써내려갔을 뿐 독자와 소통하기 위해 효과적인 시적구조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시 여기저기에서 제대로 완결되지 못한 문장들도 확인할 수 있어요. 1연 '보이지 않는 천장에서 창에서 그 어딘가에서/흘러나온 묵은 소리를,/귀는 새벽을 좋아해'를 살펴보면 '보이지 않는 ~ 묵은 소리를,'까지는 주어가 없어요. 그래서 쉼표를 찍고 '귀는 새벽을 좋아해'라고 썼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분명히 나뉘어야 할 문장이죠. 물론 주어는 '귀'가 될 것이고 주어에 호응하는 서술어는 '좋아요'가 되겠지요. 그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창작자는 비교적 간결하게 퇴고할 수 있는 문장을 알 수 있을 거라 봐요.

 

 

 

 

이번주 고등부 우수작은 두둥!! <자율학습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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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YP제국, <죄책감> : 시적화자는 어떤 사건을 기억하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 죄책감을 외면하거나 완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기본적인 부분부터 언급할게요. 1연 마지막 문장 '나를 다독이는 따스한 햇살들이 작은 내 머리를 쓰담으며 말했다' 주어는 '따스한 햇살들이'입니다. 주어를 꾸미는 '나를 다독이는'과 주어의 서술어인 '쓰담으며 말했다'는 한 문장에서 주어의 동시다발적인 행동을 표현하고 있어요. 틀린 문장은 아니지만 효과적이거나 좋은 문장은 아니랍니다. 두 문장으로 나눌 필요가 있어 보여요. 작가의 문장구사는 작가가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에 고민이 필요하답니다. 독자들은 화자의 '선택이' 어떤 '실수'였고 어떤 '잘못'이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목인 '죄책감'이 무엇에 대한 어떠한 죄책감인지 당연히 알 수 없겠죠.

 

 

ayeon, <부모님> : '귀여운 시입니다. 이 시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오직 사랑하나로/버텨'내는 부모님과 '단 1초의 쉼도 없이' '달리는' '시계소리'를 연결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독자들은 자식을 위한 부모님의 희생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는 주제를 연상할 수 있겠죠. 제목에만 부모님을 쓰고 본문에 부모님을 언급하지 않아서 좋았어요. 그러나 사유의 아쉬운 점을 언급하고 싶답니다. 시계의 분침과 시침은 회전운동이기 때문에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이미지라기보다 보통은 일상을 맴도는 상징으로 비유되곤 하죠. 물론 초침이 달려 분침과 시침이 진행이 되는 것은 무리하지 않은 시적 전개인데, '더 나아갈 수 있게'라는 표현은 그래서 조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을 초침, 분침, 시침과 연결해 표현하기 위해서는 내밀한 고민을 해본다면 분명 더욱 좋은 시가 탄생할 수 있을 겁니다.

 

 

 

 

이번주 중등부 우수작은 두둥!! <부모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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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셋째 주 우수작(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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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우수작 선정이 늦어졌어요. 한꺼번에 우수작들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많은 친구들이 새롭게 유입됐지만 여전히 강조하는 것이 '소통'인 듯해요. 자기를 기록하는 행위가 일기이고, 혼자 쓰고 혼자 보는 것이죠. 자기의 가치 있는 체험을 기록하는 문학은 같이 보면서 공감대를 형성한답니다. 글틴 친구들에게는 피부로 와닿지 않는 말일 수 있어요. 그러나 노력하지 않고 포기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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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삼이사, <죽은 교실> : 교실에서 펼쳐지는 모종의 사건에 대한 시적화자의 정리라 느껴져요. 화자의 표현에 따르면 교실에는 피해자가 있고, 서로가 서로를 피해자라고 하고, 그것은 가해자의 낙인이 두려운 역할극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자라는 나뭇가지는 상황이 여기저기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 같아요. 어른들은 CCTV처럼 행적을 살피지만 말 그대로 카메라답게 어떤 조치를 내리지도 않습니다. 화자는 피해자 친구를 보고 자신의 처지를 안도합니다. 그러면서 죄책감 때문에 괴롭구요. 양심은 그 친구에게 손을 내밀까 고민을 하게 합니다. 아마 피해를 목격했던 화자는 그 대상이 자신이 될까봐 그대로 두었어요. 제가 풀어서 쓰긴 했으나 많은 독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정황을 보여줬어요. 저는 화자의 고백의 큰 무게와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해요. 손을 내밀까 고민했고, 자기가 피해자가 될까봐 두려웠고, 그냥 두었다는 문장이 작가와 작품을 읽는 독자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고민과 두려움이 피해자를 그냥 보고만 있었다는 방임의 태도가 언젠가는 견딜 수 없을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독자들은 아마 현재의 화자가 고민과 두려움, 피해자를 그냥 바라보는 태도를 벗어나 언젠가 손을 내밀어 보고 나서 새로 쓰일 시를 기다릴 겁니다.

 

 

hyeonee, <오후의 상념> : 시적화자의 행동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어요. 마지막 연에서는 화자와 다른 상황에 처해있는 '나태라며 눈 흘기는 너'를 통해 화자의 입장을 구체화하고 있기도 해요. 수업시간을 가정하면 학급문고의 낡은 시집을 읽는 화자와 수업을 듣고 있는 '너'가 괴리되어 있는 상황이겠죠. 제목처럼 '오후의 상념'입니다. 비약하자면 수업을 듣는 학생과 다른 짓을 하는 학생과의 차이는 없다고 느껴져요. 화자처럼 그 시간을 귀중한 상념과 값진 나태로 보낼 수 있고 화자가 바라보는 '너'처럼 수업을 열심히 들을 수 있겠죠. 수학을 재미있어 하고 잘하는 친구는 수학 문제를 풀면 되고, 만화책을 좋아하는 친구는 만화책을 보거나 직접 만화를 그려도 될 텐데, 수업시간에 모두 한 과목의 수업에 몰두해야 하는 게 문득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답니다.

 

 

유디, <엄마를 부르면> : 화려한 수사나 미사여구를 동원한 문장을 만드는 기술적인 면보다 유디 님처럼 (유려하거나 신선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감정을 가득 반영하는 표현이 기반이 되는 게 나을 수 있어요. 대부분의 '엄마(어머니)'가 시적화자의 엄마와 다르지 않을 겁니다. '문장 사이의 쉼표라도 놓칠까' '눈의 씰룩거림이라도 놓칠까봐' 대부분의 자식도 엄마를 그냥 부르는 이유가 화자와 다르지 않을 겁니다.

 

 

차한비, <회> : 이 시는 경험이 기반으로 쓴 시인 것 같아요. 횟집에서 연어의 아랫도리와 관련된 경험을 통해 시적화자의 '아랫도리가 허하다'는 발견이 짧은 생각만으로 문장화할 수 없을 거라는 봐요. 그러나 화자가 갖고 있는 정서는 분명하지 않아요. 횟집의 경험이 힘들었는지? 즐거웠는지? '끌끌, 웃으며/연어 회를 조롱'하는 게 말 그대로 단순한 조롱인지? 연어에 대한 혹은 자신에 대한 연민인지? '연어는/회를 거듭한다'는 문장은 불필요해 보이기도 해요. 그리고 '아랫도리가 허하다'는 건 허전함인지? 다른 감정인 건지? 그래서 마지막 '식탁 위 달, 오줌 지린 듯 차갑다'가 크게 다가오지 않아요. 조금 더 긴장감 있는 시적 구조가 필요하답니다.

 

 

 

 

 

이번주 고등부 우수작은 두둥!! <죽은교실>, <엄마를 부르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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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YP제국, <키가 작은 소년의 도끼> : 동화적인 상상력을 동원한 시입니다. 그런데, 우선 문장의 중요성을 짚고 넘어갈게요. '숲에 홀로 사는 키가 작은 소년의 도끼의 날은/많은 나무를 베지 않고, 따뜻한 불을 얻기 위해,/키가 큰 나무를 향해 있었다.' 첫 연 4행이 한 문장입니다. 간결한 문장으로 바꿔볼게요. '키가 작은 소년은 숲에 홀로 살았습니다./소년의 도끼날은 많은 나무를 베지 않았습니다./따뜻한 불을 얻을 수 있으면 됐으니까요./도끼는 키가 큰 나무를 향해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바꾼 문장이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어로 시작해 주어와 호응하는 서술어로 마무리된 문장은 짧은 호흡으로 오히려 독자들에게 수월하게 읽힐 수 있어요. 올바른 문장은 독자와 눈을 맞추는 데 기본이라고 해야겠죠. 여하튼 키 큰 나무들이 키가 작는 소년인 너는 키 작은 나무나 베라고 말했어요. 소년이 키 작은 나무를 다 베어버리고 나자 겨울 눈만 남았어요. 왜 일까요. 소년이 베지 않았다면 키 큰 나무들도 남아 있었을 텐데, 어쨌든 소년은 키 큰 나무도 베어버렸나 봅니다. 그러다 모두 베어버렸어요. 키 작은 소년 자신까지도 말이죠. 뭔가 슬픈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소년이 베어놓은 그 나무(장작)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 불타 사라지고 말았을까요. 남아있던 눈도 다 녹아버리고 말았겠죠. 소년의 도끼만 덩그러니 남아있을 걸 생각하니 쓸쓸해지기도 하네요.

 

 

박채연, <사막> : 제목 '사막'의 특징을 대체로 평이하게 표현했답니다.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시적화자는 사막을 이야기하면서 독자와 어떤 의미를 소통하고 싶었던 걸까 궁금해집니다. 이해가 가지 않거나 궁금해지는 문장이 없어요. 그러나 작품의 제목이자 주된 소재인 '사막'에 어떤 상징이 반영되었거나 사막의 모습을 통해 우리 혹은 자신의 황폐한 삶을 비춰보고자 했다면 더 공감할 수 있는 시가 될 것 같아요.

 

 

룰루리, <오타> : 사람의 기억은 꽤나 복합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죠. 지우고 싶은 기억일수록 선명하게 남고 한편으로는 스스로에 의해 편집되고 조작되기도 한답니다. 룰루리 님의 시 '오타'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구질구질한 우울'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그 우울을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여러 가지 시도를 했습니다. 결국 시적화자는 '부드럽고 달콤한 사랑노래에 취해/이 끝없는 우울을 애써 무시해보려'고 하죠. 화자의 체념은 회피를 하려는 비겁함도 아니고 벗어나려는 발버둥도 아닐 겁니다.

 

 

 

 

이번주 중등부 우수작은 두둥!! <오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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