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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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에서 알림음이 나자 채지선은 곧바로 마우스를 움직이며 채팅창을 바라보았다. 컴퓨터 화면에는 아기자기한 캐릭터들과 몽환적인 배경이 띄워져있었다.

게임에 집중한 지선이 알지 못하게 창문으로 흘러들어오는 햇빛의 색은 자취방을 노을빛으로 물들였다.

지선은 채팅을 하던 중 눈살을 찌푸렸다.

 

mina : 이번 주말에 뭐할 거야? [2016.07.28./17:36]

CUZO : 일요일에 자살할 거야.. [2016.07.28./17:37]

 

지선은 예상치못한 쿠조(CUZO)의 대답에 학창시절 자살했던 친구가 떠올랐다. 지선은 당황할 새도 없이 답장했다.

 

미나 : 일요일에 만나자. [2016.07.28./17:37]

 

지선은 메시지를 보내놓고 옆에 놓아둔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오늘은 금요일이었고 일요일에는 아무런 일정도 없었다. 지선은 안심하며 다시 컴퓨터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쿠조에게서 메시지가 와있었다.

 

CUZO : 어디서? [2016.07.28./17:38]

mina : 어디 사는데? [2016.07.28./17:38]

CUZO : ─역 알아? [2016.07.28./17:38]

 

지선은 30분 거리의 역을 떠올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까지 해봤지만 지선이 아는 역이 맞았다.

 

mina : 30분 거리네. 3시에 옆에 ─음식점에서 만나자. [2016.07.28./17:38]

 

지선은 메시지를 보내고 책상에 턱을 괴고 쿠조가 보낸 메시지를 보며 생각에 빠졌다. 왜 만나자는 말에 쿠조는 흔쾌히 알겠다고 했을까? 그 전에 왜 죽겠다고 한 거지? 지선은 그런 답답한 생각을 그만두고 중얼거렸다.

“만나서 물어보면 되겠지…”

어느덧 쿠조에게서 답장이 와있었다.

 

CUZO : 왜 만나자고 한 거야…? [2016.07.28./17:39]

mina : 죽는다고 했잖아. 당연하지. [2016.07.28./17:39]

CUZO : 그게 아니라… 보통 만나려고 하지는 않잖아. [2016.07.28./17:39]

mina : 그거야… [2016.07.28./17:39]

 

지선은 타자치는 걸 잠시 멈추고 친구의 이야기를 쿠조에게 해도 될지 고민했다. 지선은 곧바로 손을 움직였다.

 

mina : 고등학생 때 친구가 있었어. [2016.07.28./17:40]

 

쿠조에게서 답장은 없었다.

 

mina : 친했어. 근데 자살했거든. [2016.07.28./17:40]

CUZO : … [2016.07.28./17:40]

mina : 그래서 그랬어. 또 누가 자살로 멀어지지 않았으면 해서. [2016.07.28./17:40]

 

쿠조에게서의 답장은 한동안 오지 않았다. 괜히 말했다고 생각한 지선이 키보드를 누르려던 순간 쿠조에게서 답장이 왔다.

 

CUZO : …미안해 [2016.07.28./17:41]

 

지선은 쿠조의 메시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도저히 쿠조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mina : 왜? [2016.07.28./17:41]

CUZO : 내 때문에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른 게 아닌가 해서… [2016.07.28./17:41]

 

지선은 웃었다. 이게 쿠조였다. 바보같이 남을 배려하는. 지선은 미소를 지우지 않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mina : 미안해할 거 없어. 몰랐잖아. 아무튼 만날 거야? [2016.07.28./17:41]

CUZO : 응… [2016.07.28./17:41]

 

지선은 안심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몸이 흔들리는 걸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봤다. 2시 45분이었다. 지선이 잠든지 얼마 지나지 않은 듯했다. 창문에 비친 지선은 회색 반팔티와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지선의 무릎 위에는 하얀색 핸드백이 놓여 있었다.

그 너머, 지선에게 보인 건 버스의 창밖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이었다. 지선은 몽롱한 상태에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쿠조와 만나기로 한 날에 비가 오고 있는 것이었다.

지선은 핸드백을 열어 접이식우산이 있는 걸 확인하고 다시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약속 장소가 야외가 아닌 점은 다행이었지만 일기예보도 확인하지 않고 약속을 잡은 자신이 한심했다. 쿠조도 실망했을 게 분명했다.

지선은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쿠조는 그럴 리 없다고. 마침 버스는 ─역에 다다르고 있었다. 버스 안내 화면도 ─역 앞 정류장이 바로 앞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지선은 버튼을 누른 후 버스가 멈추자 우산을 펴며 버스에서 내렸다.

비가 오고 있었지만 ─역 앞에는 사람들로 북적했다. 지선은 쿠조와 만나기로 했던 음식점으로 향했다. 지선이 대학생 때부터 자주 들렀던 단골집이었다. 양식집인 탓에 가게에서는 서양느낌이 물씬 담긴 향신료의 냄새가 나고 있었다.

우산을 접으며 음식점에 들어간 지선에게 종업원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지선이 우산꽂이에 우산을 넣고 창가자리에 앉았다. 두 면의 벽이 유리로 되어있었다. 보통의 식당이 그렇듯이 테이블과 의자가 옹기종기모여있었다. 대부분이 4인석이었다.

지선에게 종업원이 다가왔다.

“주문받겠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니 나중에 시킬게요.”

종업원이 돌아가고 지선은 우측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가자리였던 덕분에 가게 밖이 훤히 보였다. 빗소리와 부드럽게 섞여 울리는 가게의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지선은 가게 안을 둘러봤다. 점심을 먹기에는 늦은 시간인 탓에 가게 안에는 지선밖에 없었다.

지선은 고개를 돌려 3시를 가리키고 있는 벽시계를 봤다. 지선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창밖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쿠조가 나오지 않으면 어쩔지에 대한 걱정이었다. 지선의 시야 한편의 한 남자가 지선이 있는 음식점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검은색 티셔츠에 청바지, 쿠조가 말한 것과 똑같은 차림새였다.

“이야, 지선이 아니냐? 오랜만이네.”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지선은 고개를 돌렸다. 가게 주인아저씨가 웃으면서 지선을 내려 보고 있었다. 깔끔히 정리된 수염들과 섬세함이 엿보이는 얼굴은 위생을 철저히 관리하는 요리사인 걸 단번에 알 수 있게 했다.

“앗, 아저씨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지선이 웃으며 인사하자 아저씨도 소리 내어 웃으며 말했다.

“웬일로 왔냐? 대학 졸업하고 코빼기도 안보이더니. 누구 기다리는 모양인데, 남자친구?”

아저씨의 말에 지선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냥 약속이 있어서요. 남자친구는 좀 생겼으면 좋겠네요. 소개 좀 시켜주실래요?”

지선이 말을 마치자 가게 입구의 종이 울리며 지선이 봤던 남자가 가게로 들어왔다. 키는 180cm를 여유롭게 넘겼고 머리는 스포츠컷으로 시원하게 밀었다. 남자는 가게 안을 둘러보고는 지선에게 다가왔다.

“저기, 미나…야?”

“…쿠조?”

쿠조였다.

“어? 지선이가 남자랑 만나다니… 운석이라도 떨어지는 건가? 비켜줄 테니까 잘해봐.”

아저씨는 웃으면서 자리를 벗어났다.

“아 진짜…”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린 지선을 자신의 앞에 서있는 쿠조를 바라봤다. 쿠조는 지선과 눈을 마주치고는 지선의 앞에 앉았다.

“쿠조, 맞지?”

“응… 미나…?”

지선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쿠조와 대화를 나눴던 건 인터넷 내에서였고 얼굴을 맞대는 건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분위기 사이로 종업원이 다가왔다. 물컵과 물통, 메뉴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종업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카운터로 돌아갔다. 지선은 어색한 공기가 환기된 걸 깨닫고 입을 움직였다.

“쿠조는 이름이 어떻게 돼?”

지선의 물음에 쿠조는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김…인수.”

“인수구나. 내 이름은 채지선. 내가 나이 더 많으니까 말 놓을게?”

“그러면 저는 존대를…”

“응? 아냐, 편하게 말해. 게임에서 반말 해놓고는 새삼스럽게 뭘.”

지선의 말에 인수는 멋쩍은 듯 살짝 웃었다.

“분명… 대학교 2학년이었지? 21살인가?”

“아니, 대학교 1년 다니고 군대 가서… 23살이야.”

“그렇구나.”

지선은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종업원이 놓고 간 메뉴판을 쿠조의 앞에 펴면서 말했다.

“이 가게 엄청 맛있거든. 뭐 먹을래?”

쿠조는 지선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고는 메뉴판으로 시선을 내렸다. 신중하게 고르던 쿠조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치즈오븐스파게티…?”

쿠조의 입에서 나온 메뉴를 지선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따끈따끈하고 담백한 치즈. 그 밑에는 토마토 소스와 스파게티 면. 한동안 먹지 못했던 메뉴였다. 지선은 종업원을 불렀다.

“치즈오븐스파게티 2개랑 콜라 2잔, 파인애플 피자 한판 주세요.”

종업원이 카운터로 돌아가자 인수가 지선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

“아니, 그…”

“왜 똑같은 거 시켰냐고? 좋아하는 메뉴였거든.”

인수는 고개를 저었다.

“콜라 2잔 시킨 거? 콜라 좋아했잖아.”

인수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파인애플 피자?”

인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파인애플 피자 좋아하잖아. 너 전에도 파인애플 피자 시켜먹었고.”

“포테이토 피자였는데.”

지선은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작게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미안, 잘못 기억했나봐. 바꾸고 올게.”

“아니, 괜찮은데…”

지선은 카운터로 향했고 인수는 자리에 홀로 남게 됐다. 인수는 한숨을 내쉬며 몸에 힘을 뺐다. 인수의 머릿속은 온통 하얬다. 인수는 지선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고 마음의 준비도 제대로 끝마치지도 못했다. 전쟁터에 맨몸으로 달려 나온 꼴이었다.

인수는 자신과 지선의 물컵에 물을 따랐다. 천천히 자신의 컵으로 물을 마신 인수는 심호흡을 하고 앞을 바라봤다. 지선이 얘기를 끝마쳤는지 테이블로 돌아오고 있었다.

“미안, 포테이토 피자로 바꾸고 왔어. 헷갈려서 미안해.”

“아니, 미안해할 필요 없어.”

인수의 말을 끝으로 테이블은 침묵을 유지했다. 지선은 뭐라도 말을 해보려 했지만 마땅한 화제가 떠오르지 않았다. 물론 인수도 마찬가지였다.

10분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종업원이 어색한 분위기를 뚫고 다가왔다.

“주문하신 치즈오븐스파게티, 콜라, 포테이토 피자 나왔습니다.”

지선과 인수의 앞에 각각 스파게티와 콜라가 놓였고 한가운데는 포테이토 피자가 자리 잡았다. 지선은 포크와 숟가락이 담긴 통을 열어 자신과 인수에게 한 개씩 나눴다. 먹기 전에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지선은 스파게티에 포크를 댔다. 지선의 눈에 포테이토 피자가 눈에 띄었다.

“인수야, 포테이토 피자 먹는다고 했던 게 언제였지?”

“어? 어… 아마 4달 전? 피자 먹기 직전에 갑자기 레이드 가자고 해서 허겁지겁 먹었지.”

“아… 기억나. 결국 필드보스 잡혀서 내가 화냈었지.”

인수는 당시의 상황이 기억났는지 얼굴 근육이 부드러워졌다. 그런 인수의 얼굴을 보고 지선은 웃었다. 인수는 포크를 들어 스파게티에 넣고 돌렸다.

“레이드하니까 떠올랐는데.”

지선의 말에 인수는 포크에서 지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길드원들이랑 가는 거 꺼려하는 거 같던데 무슨 일 있었어?”

“레이드?”

“응, 내가 낀 파티만 따라가는 거 같아서.”

인수는 포크에 말려있는 스파게티를 잠시 바라보더니 입에 넣었다. 인수는 입을 비우고 난 후 스파게티 대신 대답을 뱉어냈다.

“너랑 같이 가는 게 편하기도 하고, 실수할까봐.”

지선은 눈을 몇 번 깜빡이고는 인수에게 물었다.

“실수는 누구나 하는 거잖아?”

“실수하는 게 무서워서… 너랑 같이 가면 마음이 편해지거든.”

지선은 납득이 되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도 모른다는 건 설명해도 모를 게 분명했다.

지선도 인수와 마찬가지로 스파게티에 포크를 넣고 돌렸다. 면과 함께 먹음직스러운 치즈가 같이 말려왔다. 지선은 그걸 입에 넣고 천천히 맛을 음미했다.

인수도 함께 스파게티를 먹기 시작했다. 지선이 피자를 집어 들려고 손을 뻗자 우연히도 인수의 손도 피자를 향하고 있었다.

“아… 먼저 집어.”

“고마워.”

지선이 피자를 집어 들고 이어서 인수도 피자를 들었다.

“인수는 원래 남한테 양보 같은 거 자주 해?”

“양보? 그건 왜?”

“그야 게임에서도 좋은 아이템 나오면 대부분 다른 길드원한테 주잖아?”

인수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물을 마셨다.

“이미 가지고 있는 거면 양보해줘야지. 나한테는 쓸모없는 아이템이기도 했고.”

“보통은 가지고 있다가 다른 사람한테 팔 텐데… 인수는 착하네.”

지선의 말에 인수는 묘한 웃음을 짓고는 다시 물을 마셨다.

“전부터 다른 사람한테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으니까. 게임에서라도 해보려는 거야.”

“무슨 뜻이야?”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일단 먹고 얘기하자. 배고파 죽겠어.”

그 후 지선와 인수는 음식에 집중했다. 물론 중간 중간 얘기도 나눴다. 대부분이 게임에 관련된 거였지만 오히려 그게 지선과 인수에게 어울렸다. 서로 처음 만났던 이야기, 처음 사냥을 갔던 이야기, 처음 레이드 보스를 잡은 이야기, 지선의 무기가 터졌을 때 인수가 도와줬던 이야기. 추억을 떠올리며 둘의 거리는 좁아져만 갔다.

어느덧 지선의 그릇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지선은 슬슬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인수의 그릇을 보니 빈지 한참이 지난 듯 했다.

“기다려 준거야?”

지선의 말에 인수는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스파게티 다 먹었잖아. 다 먹은 지 꽤 지난 거 같고.”

“내가 다 먹었다고 가게 나가자고 하는 건 좀 그렇잖아. 얘기도 나누고 있었고.”

지선은 그렇구나라고 말하고는 핸드백에서 지갑을 꺼냈다.

“어? 네가 계산하게?”

“내가 불러냈으니까 당연하지. 그리고 내가 더 연상이니까.”

“…백수잖아.”

“펙트아파욧. 아무튼 내가 계산하게 해줘.”

인수는 찜찜한 표정을 했지만 지선에게 못 이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갔다 올게.”

지선은 핸드백을 팔에 걸고 카운터로 향했다. 인수는 지선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게문 옆에 있는 우산꽂이에는 인수의 우산과 지선의 것으로 보이는 우산이 꽂혀있었다. 인수는 두 우산을 꺼내들고 문 앞에서 지선을 기다렸다.

잠시 후 지선이 계산을 끝마치고 인수에게로 다가왔다. 인수는 지선의 우산을 건네주었다.

“매너 좋은데?”

“이 정도는 당연히 하지.”

인수와 지선은 같이 우산을 펴고 가게를 나섰다. 지선이 앞장섰고 인수는 그 뒤를 따라갔다.

“이제 어디갈 거야?”

“음… 카페라도 들를까 생각했는데. 어때?”

“카페… 나 아는 곳 없는데.”

“괜찮아, 근처에 하나 있었거든. 한 번도 안 가보긴 했지만.”

한적한 거리를 5분정도 걸어가니 멀리 스타벅스 간판이 보였다. 언 듯 보기에도 가게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역시 있었네. 자, 빨리 가자.”

지선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고민하고 있는 탓이었다. 인수와 만나게 된 건 인수가 자살하겠다고 말한 탓이었고, 이제는 그 이유에 대해 물어봐야 했다. 하지만 지선은 뭐라고 말을 건네야할지 자신이 없었다.

인수도 마찬가지였다. 지선이 왜 자살할거냐고 물어볼 것에 불안해하고 있었다.

지선이 먼저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갔고 인수는 그 뒤를 따라갔다. 우산을 우산꽂이에 집어넣고서 둘은 카운터로 걸어갔다.

“뭐 먹을래?”

“어… 지선이 먹는 거랑 같이 먹을게.”

지선은 인수를 바라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배려해 줄 필요 없어. 먹고 싶은 거 시켜.”

인수는 뒷목을 긁으며 말했다.

“미안, 나 카페 와본 적이 없어서…”

“…와본 적이 없다고? 커피 안 마셔?”

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선은 난처한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그러면… 쥬스라도 마실래?”

“응… 미안.”

지선은 고개를 저으며 네 탓이 아니라고 말했다. 주문을 마치고 인수와 지선은 자리를 찾아 앉았다. 흰색 벽에 목재무늬의 바닥이 나름 잘 어울리는 가게였다.

지선과 인수는 서로를 마주보게 앉고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마치 음료가 나오는 타이밍에 입을 열기로 짜놓은 듯했다. 정적 속에 인수가 먼저 고개를 내렸다. 테이블은 심플한 하얀색이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점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메리카노와 오렌지쥬스 주문하신 고객님~.”

지선은 고개를 돌렸다.

“내가 받아 올게.”

고개를 끄덕이는 인수를 놔두고 지선은 쟁반을 들고 왔다. 쟁반 위에는 길쭉한 종이컵 2개가 놓여있었다.

“아마… 이게 인수 걸 거야.”

인수는 지선이 내민 컵을 받아들고 우선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인수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진짜 먹을 줄은 몰랐어. 미안.”

인수가 컵의 내용물을 들여다보니 검은색의 아메리카노였다. 인수는 입에 머금고 있던 아메리카노를 인상을 쓰며 넘기고 말했다.

“…엄청 쓰네.”

“여기, 오렌지쥬스.”

인수는 아메리카노를 테이블에 두고 지선이 내민 오렌지쥬스를 들이켰다. 찡그렸던 얼굴이 어느 정도 펴졌다.

“미안해. 조금 분위기 풀어볼까 했어.”

“아냐, 겨우 장난인데 뭐.”

인수의 말이 끝나고 둘은 서로의 눈을 바라봤다. 입을 먼저 연 건 지선이었다.

“우리가 만난 이유 말인데…”

인수는 침을 삼켰다.

“왜… 죽으려는 거야?”

인수는 고개를 숙였다.

“말 못할 이유라면 말 안 해도 괜찮아. 그랬으면 아예 나랑 만나려하지도 않았겠지만…”

인수는 시선을 오렌지쥬스에 고정시켰다. 인수에게는 지선의 눈을 마주칠 용기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든 인수의 입이 살짝 열렸다. 지선은 인수의 입에 집중했다.

“그냥… 누군가 알아줬으면 했어.”

예상이 못한 대답에 지선은 얼빠진 소리를 냈다. 알아줬으면 했다니, 지선으로써는 인수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해줄 수 있을까?”

지선의 말을 듣고 인수는 화들짝 놀라고 몸을 움츠렸다. 마치 달팽이 같았다.

“미안… 내가 설명을 잘못했나봐.”

“이런 일로 기죽지마. 괜찮아, 끝까지 들어줄게.”

인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오렌지쥬스를 들이켰다.

“네가 알아줬으면 한 건…”

인수는 마음 깊은 심연에서 흘러나온 한숨을 내뱉고 어깨를 늘어뜨렸다.

“아니야. 말 안하는 게 좋을 거 같아. 금요일에는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했던 거 같아. 지금 오니까 별거 아니었던 거 같기도 하고…”

인수가 덩치에 안 어울리게 우물쭈물 거리며 말을 흐리자 지선은 의자를 바짝 끌어 앉았다.

“극단적이든 괜찮아졌든 그때 느꼈던 감정은 진짜잖아. 말해봐.”

지선으로서는 인수가 어물쩍 넘어가게 둘 수는 없었다. 가까운 사람이 2번이나 자살을 해버린다니, 너무나 끔찍했다.

“…알았어. 일단 말하지만 나는 금수저야.”

지선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치면서 인수를 노려봤다.

“아름다운 고백에 화가 나는 걸. 뭘 말하고 싶은 거야?”

“그, 그게… 아무튼 집안에 돈이 많았어. 그도 그럴게 부모님이나 친척들은 전부 엘리트니 뭐니 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달랐어.”

지선은 인수 주변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나한테 재능이 없었는지 뭘 하든 제대로 성과를 내는 게 없었어.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쏟아 부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정도로 공부도 해봤지만… 부모님은 그런 나를 가만히 둘 수 없었나봐.”

인수는 컵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면서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좋게 구슬리다가 나중에는 때리거나 욕을 하거나… 어떻게든 내가 뭘 이룰 수 있도록 간섭하셨어. 하지만 지금은 포기 하셨는지 대학만 어떻게든 보내고 완전히 손을 놓으셨지.”

지선은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었다. 만일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더라고 할 수 없었다. 인수의 입은 굳게 닫혀있었지만 그 뒤의 말들이 밖으로 나오고 싶어 안달 나있었다.

인수의 컵 겉에 붙은 물들이 방울이 되어 떨어졌다. 인수가 입을 열었다.

“…집에 돈이 많으니까 그거에 빌붙으려고 나를 도와주려던 사람들도 있었어.”

인수의 얼굴은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찌그러졌다. 얼굴의 주름 사이에는 그동안의 감정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고는 내가 뭘 제대로 못하니까 욕하며 나를 떠나갔어. 나도 처음에는 화가 났지. 자기들이 먼저 와놓고 화를 내며 멀어지니까. 하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니까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나에게 잘못이 있는 게 아닐까? 라고.”

“그건…”

“내 잘못이 아닌 건 알아. 하지만 반복되면 이런 생각을 하게 돼. 그리고 그렇게 지내던 중 대학교에 와서 게임을 접하게 됐어. 고등학교 다니는 동안에는 부모님 때문에 컴퓨터를 만질 기회가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지.”

인수의 얼굴에 보는 걸로 안심이 되는 곡선들이 생겨났다.

“나는 처음으로 잘하는 걸 찾았어. 겨우 게임일 뿐이었지만 게임을 하면서 칭찬도 받아봤어. 그런 게임에서 너를 만났어. 인터넷의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줬지만 어딘가 달랐어. 만일 실수해도 괜찮다며 언제까지고 해결책을 제안해줬지. 그것만이 아니야. 너무 많아. 그래서 너에게 알리고 싶었어. 내 어두운 감정들을. 누군가에게 덜어버리고 싶었어.”

지선은 인수의 이야기를 전부 듣고 아메리카노를 삼켰다. 쓰디 쓴 알약을 물로 삼키듯이 아메리카노를 삼켰다.

“네가 자살할거라고 말을 하면 내가 관심을 가지고 무슨 일인지 물어볼 거라고 생각한 거야?”

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잘못은 저지른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 말을 하지 않았어도 네가 말했으면 나는 당연히 들어줬을 거야. 너는 나에게 소중한 친구니까. 게임속의 얘기지만.”

지선은 숨을 들이켰다.

“괜찮다는 것도 들었고 안심이야. …그래도 이대로 헤어지기는 아쉬운데. 기껏 만났잖아.”

인수도 같은 의견인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선이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보니 6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6시 조금 넘었는데, 뭐 먹으러 가기도 그렇고 노래방이나 pc방 가자니 조금밖에 못 놀고…”

“…6시? 오늘 7시에 이벤트 있지 않았어?”

“맞다, 드랍률 이벤트 있었지. 가는데 30분정도 걸리니까… 지금 가야되잖아!?”

지선은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나고 카페 밖으로 뛰어나갔다. 타이밍 좋게 비는 멎어있었다. 지선은 버스 정류장으로 곧장 향했다. 마침 버스는 정류장에 정차하고 있었고 버스에 탄 지선은 숨을 몰아쉬었다. 버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니 버스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인수가 보였다. 지선은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해줬다.

버스는 이미 출발하여 지선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선이 스마트폰을 꺼내 다시 시간을 보니 막 6시 25분을 넘기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출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번에는 어디서 파밍할까…”

버스는 기분 좋은 덜컹거림과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

 

버스에서 내린 지선은 노을이 지는 상가 사이를 걷고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보니 오후 7시에 다가가고 있었다. 그래도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지선의 집까지 3분도 안 걸리니까.

지선은 집 현관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방안을 둘러볼 것도 없이 컴퓨터의 전원을 켜놓고 화장실로 향했다. 손을 씻고 나온 지선은 곧바로 게임을 켰다. 아기자리한 캐릭터가 그려진 화면으로 넘어갔고 곧바로 채팅이 날아왔다. 인수였다.

 

CUZO : 우산 놓고 갔어. [2016.07.30./18:57]

 

지선은 방에 아무렇고 놓아둔 핸드백을 열어봤다. 우산이 없었다.

 

mina : 진짜네… 미안. 다음에 찾으러 갈게. [2016.07.30./18:57]

CUZO : 응, 다음에. 꼭 와. 일단 지금은 던전돌자고. [2016.07.30./18:58]

 

 

 

결말을 어떻게 내야할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반년동안 침체기에 빠져 있어서 그런 걸까요,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와서 처음으로 결말을 본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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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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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태양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소녀가 걷고 있는 곳은 하얀 눈이 잔뜩 쌓여있는 숲.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에 쌓여있던 눈의 알갱이들이 빛처럼 흩날렸다. 소녀는 숲에 나있는 철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마을과 마을 사이를 잇기 위해 만든 철로였지만 이제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됐다.

 

소녀 때문이었다.

 

소녀는 ‘순백의 마녀’라고 불렸다. 소녀는 자신이 사는 숲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질 것 같으면 막았었다. 불미스러운 일은 대부분 겁탈이나 살인 같은 일이었고 가해자를 제압하고 피해자를 돌려보냈을 뿐이었지만 그렇게 불리고 있었다.

 

그런 소녀가 방금까지 자신을 토벌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던 마을을 말살시켰다. 그것은 몇 시간 전의 일이었다.

 

*

 

소녀는 언제나처럼 숲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소녀는 눈처럼 하얀 머리칼과 피부, 때타지 않은 순백의 옷까지. 눈밭에 누우면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하얬다.

 

소녀는 철로가 나있는 곳을 지나가다가 눈 속에 파묻힌 작은 소년을 보았다. 소녀는 다가가서 살펴보았다. 피부가 전부 새파랬고 소녀의 손이 차가워질 만큼 소년의 몸이 차가웠다. 눈이 가득 쌓일 정도의 온도를 가진 숲에서 무언가 얼어 죽는 것은 일상과 같은 일이었다. 소녀가 지나치려하자 소년이 소녀의 발목을 잡았다.

 

“살…려주세요…”

 

소녀는 숲의 주인, 부탁을 받았으면 거부할 수 없었다. 소녀는 소년의 몸을 가볍게 들어 올리고 자신이 지내던 통나무집으로 돌아갔다.

 

통나무집 안에는 흔들의자와 서랍밖에 없었다. 소녀는 서랍 안에서 담요를 꺼내 소년의 위에 덮어주었다. 소년이 아직 괜찮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자 소녀는 소년의 손을 잡고 작게 중얼거렸다.

 

마녀라고 불리는 만큼 마술적인 지식이 있었기에 소녀는 소년의 몸에 있는 차가움이라는 것을 자신의 몸으로 끌어왔다. 소년의 몸이 점점 따뜻해지고 피부도 정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소녀는 담요를 제대로 덮어주고는 통나무집을 나섰다.

 

소녀가 차가움을 끌어왔던 손은 파랗게 질려있었다. 하지만 소녀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소녀는 다시 숲을 걸어 다녔다. 멀리서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려 그쪽으로 향했다. 소녀의 앞에 있는 동물은 늑대였다. 아마도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남게 된 듯했다. 소녀가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늑대는 소녀에게 다가와서는 자신의 발톱으로 자신의 목을 깊게 그었다.

 

소녀는 늑대의 피가 튀어도 상관하지 않고 다가갔다. 늑대의 숨이 완전히 끊긴 걸 확인하고 소녀는 늑대의 시체를 끌고 통나무집으로 돌아갔다.

 

통나무 집 안에는 소년이 막 깨어나고 있었다. 소년은 소녀를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소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손에 잡혀있는 늑대의 시체를 소년에게 내밀었다. 살려면 먹어야한다는 뜻이었는지는 몰라도 소년은 그저 두려움에 떨며 울고만 있었다.

 

소녀는 소년이 어려서 자기 혼자 못 먹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늑대의 이빨을 뽑아 손질을 하기 시작했다. 소년은 더욱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소녀는 배가 고프다는 것으로 알아들었는지 더욱 서둘렀다.

 

손질을 끝마치고 소녀는 핏물이 떨어지는 고기를 들고 소년에게 다가갔다. 소년은 이미 실신하여 쓰러져있었다. 소녀는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기를 자신의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새하얀 소녀의 입에서 붉은 혈액이 흘러나오며 이미 붉게 물든 원피스를 더욱 붉은 색으로 물들여가고 있었다.

 

소녀가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된 고기를 입에서 꺼내고는 소년의 입에 쑤셔 넣자 소년은 의식이 없는 중에도 고기를 삼켰다. 소녀는 소년이 제대로 삼킨 것을 확인하고 늑대의 시체를 들고 통나무집 밖으로 나갔다.

 

소녀는 새하얀 손으로 눈을 파헤쳤다. 차갑게 얼어붙은 흙을 파헤치고 딱딱한 돌을 땅 위로 끌어내고 늑대의 시체를 그 안에 넣고는 다시 메꿨다. 소녀의 손은 딱딱하게 굳은 피와 흙, 부러진 손톱으로 기괴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소녀는 다시 통나무집으로 돌아갔다. 소년을 마을로 돌려보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없었다. 소녀는 이상하다는 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다시 숲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 달이 떴다. 하늘에는 쥐에게 파 먹힌 생김새의 달이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별들은 자기들끼리 재잘거리듯 모여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숲에 횃불을 든 남자들이 걷고 있었다. 그들은 소년이 돌아갔던 마을의 남자들이었다. 처참한 몰골을 한 채로 돌아온 소년의 몫을 갚아주려는 생각이었다. 소녀는 영문도 모른 채 그들의 앞을 걸어갔다.

 

“저기 있다!”

 

“죽어라, 마녀!”

 

남자들은 앞 다투어 마녀에게로 달려들었다. 마녀는 순순히 남자들의 손에 잡혀 공중에 들어 올려졌다. 소녀는 의문과 차가움을 담은 눈으로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가?”

 

“몰라서 묻는 거냐!”

 

남자들은 소녀의 말을 듣지도 않고 바닥에 처박았다. 손을 뒤로 묶고 눈에 천을 씌우고 재갈을 물렸다. 소녀는 남자들 중 제일 건장한 남자의 어깨에 들려 마을로 옮겨졌다.

 

소녀의 재갈이 풀린 곳은 마을의 광장이었다. 소녀에게 제일 처음 보인 건 자신을 겨누고 있는 칼날이었다. 그 다음으로 보인 것은 자신을 바닥에 처박았던 남자의 얼굴이었고 그 다음은 자신이 돌봐주었던 소년의 얼굴이었다. 마을사람들 모두가 두려움에 몸을 떨고 소녀에게 분노하고 신에게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소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은 소년을 돌봐주었을 뿐이었는데 모두가 두려움과 분노의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자가 말하였다.

 

“이 사악한 마녀!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는가?!”

 

소녀는 순수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무엇을 잘못했는가?”

 

마을사람들은 모두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그중 몇몇은 떨어져있던 돌멩이를 던지는가 하면 가지고 온 농기구를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소녀가 머리에 맞자 찢어진 머리 가죽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입술에 맞자 입술은 붉은 피를 허공에 퍼뜨렸다. 소녀의 하얬던 원피스는 더욱 붉게 물들어갔다.

 

“구제 불능이군. 내가 이 마녀의 목을 치겠다!”

 

남자는 그렇게 외치고는 칼을 머리 위까지 들어 올리고 소녀의 목으로 내리쳤다. 소녀의 목은 깔끔하게 잘리지 못했다. 목의 반만이 남아서 상처에서 피가 흩뿌렸다. 남자는 다시 칼을 휘둘러 소녀의 목을 완전히 잘라내었다. 목이 없는 몸에서는 하늘로 폭죽을 터뜨리듯 피를 뿜었다.

 

마을 사람들은 다 같이 함성을 지르고 남자는 뿌듯하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소녀는 죽지 않았다. 소녀의 몸에서부터 차가움이 퍼져나갔다. 소녀의 몸을 묶고 있던 줄은 순식간에 얼어붙고는 산산이 깨져버렸다. 소녀의 몸은 자기 혼자 일어섰다.

 

“무, 무슨…”

 

남자는 뒷걸음질 쳤다. 마을 사람들은 방금과 다른 두려움 섞인 비명을 질렀다. 소녀의 몸은 자신의 머리를 집어 들어 원래 위치에 두었다. 소녀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저 차가움만이 느껴지는 무표정. 마을사람들과 남자는 감히 움직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너희는 아무런 죄가 없는 나의 목을 잘랐다.”

 

소녀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나의 목을 자른 너희를, 더욱 심한 꼴로 만들어도 상관없겠지?”

 

소녀의 말이 끝나는 순간 소녀의 몸에서 눈보라가 휘몰아 쳐나갔다. 제일 먼저 얼어붙은 건 남자였다. 그 다음은 소녀에게 보살핌을 받은 소년, 그리고 다른 마을사람들. 소녀가 천천히 걸어가서 얼어붙은 남자를 가볍게 건들이자 남자는 천천히 금이 가더니 부서져버렸다.

 

소녀가 걸어간 곳은 소년의 앞이었다.

 

“너는 나에게 살려달라고 했다. 결과가 이렇지만 약속을 깰 수는 없겠지.”

 

소녀는 소년을 내버려두고 마을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너희는 무지(無知)하다. 누군가에게 선동당하여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고 바라보기만 했다.”

 

소녀는 한명, 한명 자신의 손으로 부숴나갔다. 소년의 주변에는 붉은색 얼음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소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마을을 떠났다. 철로를 따라 숲에 도착했다. 소녀는 다시 숲을 돌아다녔다. 언제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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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사건이나 주제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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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부터 현재 고등학교 2학년까지 글을 써오고 있는 학생입니다.

중학생 시절 소위 오타쿠였기에 라이트노벨(일본에서 만들어진 장르이며 현대의 장르소설과 비슷함. 스토리보다는 인물에 치중됨.)을 읽으며 살아왔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가끔씩 읽고 있습니다만, 그 탓인지 순수문학(?)이라고 해야할까요. 장르소설에서 벗어난 소설을 쓰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소설을 통해 독자들이 느끼게 하고 싶은 것들(주제라고 볼 수 있을까요?)이 떠오르지를 않고 글에 표현되지도 않습니다.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평소에 대충 썼던 플롯이나 인물에 대한 것들을 노력해서 짜봤지만 무의미했습니다.

무언가 해결책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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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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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밖에서부터 푸른빛이 스며들어오고 있었다. 밤의 끝과 새벽의 시작을 알리는 하늘의 신호였다. 마시던 코코아잔을 책상에 내려놓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매서운 겨울의 추위를 생각해서 두꺼운 코트를 입고 방을 나섰다. 현관문을 열고 하늘을 보니 안개 낀 날의 유리창처럼 탁한 색이었다.

새벽 공기는 맑았다. 숨을 들이마시니 몸속으로 시원한 기운이 흘러들어왔다. 이른 시간인 탓인지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몽환적인 느낌이 들어 근처 벤치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런 시간에도 비둘기는 땅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들을 쪼아 먹고 있었다.

하늘을 보니 새벽이 끝나가는 듯 태양의 따스한 빛이 건물 사이로 비춰졌다. 건물들은 금방이라도 낡아 부서질 듯했지만 마지막 자존심이라는 듯 자신들의 높이를 자랑하고 있었다. 제각각 층도 다르고 생김새도 달랐다. 겉모습이 다른 점이나, 자존심이 강한 점이나 사람과 다를 것이 없었다.

순간 네가 떠올랐다. 흐리멍텅한 눈에 납작한 코, 작은 입을 가진 너. 잘 생기지도 않았지만 묘하게 끌리는 너. 하지만…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은 하얀 연기가 되어 천천히 희미해졌다. 일어나려 손으로 벤치를 짚으니 부스럭 소리가 났다.

소리의 정체는 신문이었다. 누군가 읽고 버린 모양이었다. 누가 읽은 것일까 생각했다. 취업난에 휩쓸린 청년일까. 자만에 빠져 잘난 체를 하는 늙은이일까. 집도 없이 바닥의 추위를 이기기 위해 신문지를 몸에 덮은 노숙자일까.

알 수 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신문을 집어 들었다. 바스락 소리를 내며 만든 것은 종이비행기 3개였다. 첫 번째로 던진 종이비행기는 얼마못가 떨어졌다. 첫사랑이 떠올랐다. 다시 던졌다. 첫 번째 것보다 멀리 날아갔지만 차이는 별로 없었다. 차인 기억이 떠올랐다. 세 번째의 종이비행기. 멀리 날아갔으면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한 바람이 불어 날아가지도 못하고 내 앞에 떨어졌다.

어느 곳으로 날아가지도 못하고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차가운 바닥에. 나쁜 예감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정되질 않았다. 네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네가 보고 싶어.

다시 걷기 시작했다. 너의 집은 그다지 멀지 않았다. 걸어서 20분정도의 거리지만 너와 만날 수 있다면 멀지 않아.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걸었다. 너와 무슨 얘기를 할까. 곰곰이 생각하면서 걷고 있었더니 어느새 너의 집 앞이었다. 10평이 될까 말까한 원룸. 흰색의 철문 옆의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후 네가 문을 열고 나왔다. 부스스한 머리와 눈꼽 낀 눈. 좋지 못한 얼굴을 한 너는 내가 온 걸 알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런 소소한 것들이 좋았다. 특별하진 않지만 세상에 단 하나뿐이니까.

“이런 시간에 무슨 일로 온 거야?”

너는 다그치지도 않고 상냥하게 물어봐주었다.

“그냥 보고 싶었어.”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너의 가슴팍에 안겼다. 듬직하고 따뜻했다. 너는 놀란 탓인지 어정쩡하게 나를 안아주고는 여전히 서툰 솜씨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이런 서툴음이, 순수함이 나는 좋았다.

“코코아 마실래?”

다정하게 물어봐 주는 너에게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좁은 집이었지만 아늑했다. 집 어디서든 너의 향기가 났다.

“잠깐만 기다려줘.”

네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다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방에 작게 달려있는 창문 밖을 보았다. 새벽의 몽환적인 푸른빛은 이제는 없었다. 대신 아침의 온화한 하얀빛이 대신하여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모두 다른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가지각색이었다.

너는 쟁반을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 쟁반 위에는 분홍색 컵과 파란색 컵이 올리어져 있었다. 함께 가게에서 샀던 커플 컵이었다. 너는 분홍색 컵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코에 가져다대지도 않았는데도 코코아의 달콤한 향이 맡아졌다. 나는 웃으며 컵을 받아 들었다.

한 모금을 마시고 두 모금을 마시고, 달콤한 코코아 덕분에 내 입 꼬리는 귀에 닿을 것처럼 올라가 있었다. 너는 이런 내 얼굴을 보고 싱긋 웃었다.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너는 손을 내 입가로 가져다대어 묻어있던 코코아 거품을 떼어주고는 혀로 핥아 먹었다. 갑작스런 행동에 내가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자 너는 귀엽다고 말하며 내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주었다. 어설픈 손놀림이었지만 이런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웃으며 너의 손에 머리를 맡겼다.

잠시 후 나는 다시 코코아를 홀짝였다. 네가 마시고 있는 건 믹스커피였다. 네가 더 어른스러운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질투심이 들었다. 너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파란색 컵을 내려두고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보고 싶어서 온 거야? 다른 일은 없고?”

“응. 그냥 보고 싶어서.”

내 대답에 너는 멋쩍게 웃었다.

“보러 오는 건 좋지만 연락은 하고 와줘. 세수라도 해야지.”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방금 일어난 너도 좋으니까 상관없어.”

너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붉었다. 우웅, 하고 너의 스마트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너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서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아… 미안. 아르바이트 갈 시간이야.”

너의 말에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렇구나, 잘 갔다 와.”

“너도 돌아가야지.”

너는 그렇게 말하고 비워진 컵들을 쟁반에 올려놓고 싱크대로 옮겼다. 그렇겠지. 네가 없는 곳은 쓸쓸하니까.

나는 너를 따라 건물을 나섰다.

“택시 잡아 줄까?”

나는 괜찮다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차를 사기는커녕, 택시 한번 타기도 힘들 정도로 가난한 걸 난 알고 있었다. 너는 알겠다고 말하고선 손을 흔들며 뛰어갔다. 그런 너의 뒷모습을 나는 몇 분 동안이나 바라봤다.

너와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언제까지고 입을 맞추고 싶고 같이 자고 싶어. 나를 마주보고 웃으며 좋다고 말해주면 좋겠어. 하지만 너는 해주지 않아. 네가 나를 책임질 능력이 없어서, 그만큼 나를 소중히 해서 그런다는 건 알아. 그렇지만……

나는 눈물이 나오려는 걸 깨닫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이제는 눈부신 태양이 비춰지고 있는 하늘. 우는 게 싫어서 웃었다. 활짝 웃었다. 처량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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