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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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뼈가 아려온다

정신은 또렷하다

깜빡거리는 신호를 무시했다

차 안 인간의 불호령도 무시했다

검은 옷을 차려입고

쪼그려 앉아 울던 대리석 계단으로 왔다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어

사과가 필요해

액자 속 웃고 있는 아버지에게

 

더 이상 걸을 수 없어

사과가 필요해

액자 품은 나에게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어

사과가 필요해

울다 지쳐 잠든 내 동생에게

 

사과가 필요했어

마음이 몹시 아팠던 어머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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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있는 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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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밤에 파도가 밀려오듯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불 켜진 방에서 울컥울컥

 

윙윙 돌아가는 컴퓨터처럼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엉엉 젖어가는 얼굴

 

떠나보낸 달님이

나 보러 데리러 온 차가운 별빛에

데어버린 혀를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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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짜리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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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거울 앞 투과된 환한 미소는 산산조각 부서졌다.

 

조각난 미소는 조각난 횟수만큼 일그러진다.

조각난 미소는 지은 횟수만큼 날카로워진다.

 

우린 그래서 쓴 웃음을 짓는다.

 

 

비어있는 속에는 흐르지 못한 울음이 가득하다.

 

막혔던 목을 조르며 재촉한다.

피어난 핏줄은 눈을 뜨겁게 적신다.

 

우린 그래서 뜨거운 눈물을 쏟아낸다.

 

 

아무도 모른다.

모두가 모른 척한다.

 

우린 그래서 반쪽짜리 얼굴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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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와 마른 나뭇가지에 쌓여만 가는 눈 때문에 녹지 않는 팔 위의 기다란 눈

여름이 오면 빛을 볼까 두려워

남들 눈에 녹을까 두려워 천조각으로 가리고

차라리 이 겨울이 끝나지 않기를

 

눈은 켜져있는데 자꾸만 꺼두어 두고 싶은 눈 때문에 녹아내리는 입 속의 둥근 눈 덩어리

여름이 와도 다시 겨울이 와도 한없이 녹아내리는 눈

차라리 이 겨울이 끝나 봄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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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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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밤하늘 맨 앞에 걸린

달빛에 취해

잠이 든 밤

 

귀를 막은

검은 눈동자

속은 텅 비어있는 거울

거울에 반사되어 나는 소리

연결 되어있는 골목길

 

꼬불꼬불한 길 따라

내리는 하얀 달빛 아래

취하도록

낮은 목소리로 검은 건반으로 둥둥

 

별 내리는 눈길

별빛 톡톡 튀는 빗길

 

느리게

다시 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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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그리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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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그리운 얼굴

한없이 그리운 목소리

 

한없이 그리운 품의 포근함

한없이 그리운 삶의 사소함

 

한없이 그리운 잔소리

한없이 그리운 빗질

 

한없이 그리운 김치찌개

한없이 그리운 계란찜

 

한없이 그리운 사람

한없이 그리운 엄마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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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도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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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도넛을 반으로 잘랐을까

커피 좋아하는 우리 엄마일까

신문 좋아하는 우리 아빠일까

책 좋아하는 우리 누나일까

장난감 좋아하는 내 동생일까

 

언제 도넛을 반으로 잘랐을까

커피 타다 반 먹으려 했을까

신문 보다 반 먹으려 했을까

책 읽다 반 먹으려 했을까

장난감 가지고 놀다가 반 먹으려 했을까

나 몰래 반 먹으려 한 것은 틀림없다.

 

어떻게 반으로 잘랐을까

커피 타던 숟가락으로 잘랐을까

신문 집던 손으로 잘랐을까

책에 있던 책갈피로 잘랐을까

장난감 플라스틱 칼로 잘랐을까

 

그런데

왜 내 손에 들려있던 반 조각은

왜 또 사라진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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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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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는 깜깜한 땅 속 이름 모를 작은 별이 캐내어질 때

차가운 공기가 매섭게 몰아칠 때

자신을 안고 안아 만들어졌습니다.

 

유리는 단단한 듯 보입니다.

 

하지만 유리는 강한 성냥개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의 온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유리가 쉽게 깨지고, 부서지는 이유입니다.

 

나무는 깜깜한 땅 속 웅크리고 자리 잡아질 때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부터의 물과 먹이를 받을 때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나무는 약한 듯 보입니다.

 

하지만 나무는 한 자리에 가만히 서서,

낮과 밤 구별 없이 해, 구름, 달, 별에게 손을 뻗고,

날씨 구별 없이 비, 바람에 흔들리되 자리를 지킵니다.

나무가 강한 이유입니다.

 

유리나무는 쉽게 깨지고, 부서집니다.

유리나무는 강합니다.

 

유리나무는

모두 살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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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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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져버린 건전지

깨져버린 전등

끊겨버린 필라멘트

이제 비춰주는 건 없어

 

텅텅 빈 책꽂이 위

남은 쩍쩍 갈라지는 앨범

빛바랜 사진들

타버린 추억들

그저 잿빛만 가득해

 

찢겨진 베갯잇

터져버린 베개

식어버린 침대

앙상하게 남아버린 나무다리

누울 자리 하나 없어

 

물기 없는 싱크대

차갑지 않은 냉장고

투명한 유리 식탁 위에

끝내 쏟은 커피 자국이 굳어있어

 

빈 칫솔걸이

빈 건조대

이제 걸지 않아

 

문 틈 끼어있는 전단지

먼지 쌓인 신발장

전부 뒤로하고

 

문을 열어

앞으로

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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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팽창하는 우주처럼

끊임없이 늘어져가는 너와 나의 선

 

알 듯 말듯

고개를 갸우뚱 하게 만드는 선

 

닿을 듯 닿지 않는

어두운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같은 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두루뭉실한 구름 같은 선

 

우주야, 커져라 커져라

선아, 늘어져라 늘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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