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그리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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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그리운 얼굴

한없이 그리운 목소리

 

한없이 그리운 품의 포근함

한없이 그리운 삶의 사소함

 

한없이 그리운 잔소리

한없이 그리운 빗질

 

한없이 그리운 김치찌개

한없이 그리운 계란찜

 

한없이 그리운 사람

한없이 그리운 엄마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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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도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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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도넛을 반으로 잘랐을까

커피 좋아하는 우리 엄마일까

신문 좋아하는 우리 아빠일까

책 좋아하는 우리 누나일까

장난감 좋아하는 내 동생일까

 

언제 도넛을 반으로 잘랐을까

커피 타다 반 먹으려 했을까

신문 보다 반 먹으려 했을까

책 읽다 반 먹으려 했을까

장난감 가지고 놀다가 반 먹으려 했을까

나 몰래 반 먹으려 한 것은 틀림없다.

 

어떻게 반으로 잘랐을까

커피 타던 숟가락으로 잘랐을까

신문 집던 손으로 잘랐을까

책에 있던 책갈피로 잘랐을까

장난감 플라스틱 칼로 잘랐을까

 

그런데

왜 내 손에 들려있던 반 조각은

왜 또 사라진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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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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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는 깜깜한 땅 속 이름 모를 작은 별이 캐내어질 때

차가운 공기가 매섭게 몰아칠 때

자신을 안고 안아 만들어졌습니다.

 

유리는 단단한 듯 보입니다.

 

하지만 유리는 강한 성냥개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의 온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유리가 쉽게 깨지고, 부서지는 이유입니다.

 

나무는 깜깜한 땅 속 웅크리고 자리 잡아질 때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부터의 물과 먹이를 받을 때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나무는 약한 듯 보입니다.

 

하지만 나무는 한 자리에 가만히 서서,

낮과 밤 구별 없이 해, 구름, 달, 별에게 손을 뻗고,

날씨 구별 없이 비, 바람에 흔들리되 자리를 지킵니다.

나무가 강한 이유입니다.

 

유리나무는 쉽게 깨지고, 부서집니다.

유리나무는 강합니다.

 

유리나무는

모두 살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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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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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져버린 건전지

깨져버린 전등

끊겨버린 필라멘트

이제 비춰주는 건 없어

 

텅텅 빈 책꽂이 위

남은 쩍쩍 갈라지는 앨범

빛바랜 사진들

타버린 추억들

그저 잿빛만 가득해

 

찢겨진 베갯잇

터져버린 베개

식어버린 침대

앙상하게 남아버린 나무다리

누울 자리 하나 없어

 

물기 없는 싱크대

차갑지 않은 냉장고

투명한 유리 식탁 위에

끝내 쏟은 커피 자국이 굳어있어

 

빈 칫솔걸이

빈 건조대

이제 걸지 않아

 

문 틈 끼어있는 전단지

먼지 쌓인 신발장

전부 뒤로하고

 

문을 열어

앞으로

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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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팽창하는 우주처럼

끊임없이 늘어져가는 너와 나의 선

 

알 듯 말듯

고개를 갸우뚱 하게 만드는 선

 

닿을 듯 닿지 않는

어두운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같은 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두루뭉실한 구름 같은 선

 

우주야, 커져라 커져라

선아, 늘어져라 늘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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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그릇의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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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다리 중 성치 않은 다리가 하나 없는 상을 만든 것은

내가 먹은 날이 낸 것인지 내가 먹은 식이 낸 것인지

모를 그런 밥상머리에

 

밥 한끼 같이 먹던 사람이 사라져

따뜻한 밥 한 그릇의 온기가 사라져

눈 오는 겨울은 더욱 시리다

 

온갖 재료들을 넣고 끓인 찌개와

나는 모르는 맛을 잔에 담아 비우신 아버지는

이 시린 겨울 날 이불을 걷어차신다

 

무엇이 담겨져 있었는지 모를 찌개와 나는 모르는 맛이 담겨 있던 잔을

물에 헹구는데 아버지 모습에 물에 닿았던 손이 더욱 시려온다

추위를 막기 위해 그의 이불을 그의 발 끝까지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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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 꼬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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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에 닿을락 말락한 단발머리도

눈썹에 닿을락 말락한 바가지머리도

돌처럼 굳은 몸처럼 딱딱한 나무 책상 위 올려져 있는

창가 넘어 눈 올듯 말듯한 하늘과 같은 회색 시험지에 고개를 숙였다

 

추운 겨울 공기를 밀어내며 헤엄치던 웃음들은

붉은 창살에 죽었다

창살에 잡힌 웃음들은

벗어날 수 없다는 두려움에 가득한 울음이 대신한다

 

꼬리의 맨 앞 머리를 장식하는 나의 이름을

줄줄이 잔혹하게 나열되어있는 애꿎은 숫자들을

지워주세요

 

책꽂이에 꽂혀있는 풀어 본 기억조차 사라진 문제집들과

손가락에 굳은 살을 머물게 한 손가락 한마디 정도 쌓인 프린트들을

치워주세요

 

눈물처럼 무거운 말과 말이

나를 더 깊은 바다 속으로

 

성적의 꼬리표는

소문의 꼬리표를 물고

나를 잡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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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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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향긋한 벚꽃이 피어 흩날리면

그녀와 갔던 벚꽃놀이를 생각하고,

 

여름에 따스한 햇살이 비치면

그녀와 같던 물놀이를 생각하고,

 

가을에 우수수 낙엽이 떨어지면

그녀와 걷던 공원길을 생각하고,

 

겨울에 펑펑 눈이 내리면

그녀와 누웠던 눈길을 생각하고,

 

그렇게

계절의 융단은

 

꽃잎으로

햇살로

낙엽으로

눈으로

 

바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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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웠던 말이 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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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이 한 마디가

어려웠던 말이 였을까

 

잘 지내

이 한 마디가

어려웠던 말이 였을까

 

사랑해

이 한마디가

어려웠던 말이 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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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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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휭 하고 지나가니

나와 내 가족들은

우두두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람이 쌩쌩 하고 지나가니

나와 내 가족들은

스스스 먼곳으로 흩어졌다.

 

빛에 열을 빼앗긴 몸을 말아

거리를 굴러다니면서

친구들을 만났다.

 

나와 내 친구들은 거리 위에서

파도를 만들며 놀았다.

 

이름 모를 이의 빗질에

나와 내 친구들은 거리 위에서

섬이 되었다.

 

까끌까끌한 포대에

섬들이 한 곳에 모였다.

 

나의 가족들을 다시 만났다.

나의 친구들을 다시 만났다.

 

나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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