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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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싫어하는 너를 위해

방을 환한 빛으로 채워

 

내 팔에 머리를 대고 있는

너의 머리칼을 한번 쓰다듬어

 

너가 눈을 감으면

나는 너를 안아줄게

 

나의 품에서

편히 잠들기를

오늘 밤도 빌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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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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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서 당신을 보며 떠올렸던 말들을

 

하나 둘 종이에 옮겨 적어

 

그대의 따스함을

 

그 따스함에 대한 고마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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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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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있는 빛을 쫓아가다보면

뒤에 드리운 어둠은 보이지 않는다.

 

실은 볼 수 있는데

빛이 너무 밝아

보지 않는다.

 

쫓아가다 빛을 놓치게 되면

그제서 뒤에 드리운 어둠이 보이게 된다.

 

다시 빛을 찾기 위해

자신의 어둠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진정한 빛의 주인이자

빛의 그림자 주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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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검은 집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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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는

이름만 알고 얼굴은 모르는 이가

그려낸 종이 위 소리에 맞게

흑과 백으로 된 창문 사이에 손 놀리고

 

지금의 나는

차가운 나무 위에

알 수 없도록 검은 색을 뒤집어 쓰고있는

검은 집의 진동과 울림에 발 끝으로 다가가고

 

먼 훗날의 나는

작은 몽땅연필 쥐고

길게 뻗은 오선지 위에 소리를 싣고

그 소리 담긴 종이가

또 다른 검은 집에서 소리 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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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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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했던 하루를 보낸 이들이 사는

뺵빽하게 붙어있는 아파트 불이 하나 둘 꺼지고

고요해진 밤이 좋아

 

쨍쨍 내리던 햇빛보다

은은하게 내리는 달빛이 좋아

밤이 좋아

 

모두가 달리던 낮의 시간이 아닌

나만이 걷는 시간인 것 같아

밤이 좋아

 

빵빵 울리던 경적소리 말고

내 방 가득히 채우는 내 소리가 빵빵하게 들려

밤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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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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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단발 머리하고 복도에 웃으며 있는 사람

멀리서부터 꽃향기 날 듯한 교복 입고 있는 사람

작은 발에 꼭 맞는 하얀 실내화를 신고 있는 사람

나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주는 사람

 

감지 않던 폭탄머리를 바가지 머리로 변하게 만든 사람

방구석에 박혀 있던 교복을 가지런히 정리하게 만든 사람

질질 끌던 슬리퍼를 발에 맞는 하얀 실내화를 신도록 만든 사람

나를 환히 웃으며 학교를 갈 수 있도록 만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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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위에서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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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도화지에 푸른 빛을 쏴

물컹물컹한 물풀로 모래알을 붙여

 

"자, 바다야."

 

양팔을 양쪽으로 쫘악 뻗어

퇴근 못하는 선풍기 바람을 안아

 

푹푹 밣히던 눈들은 지났갔어

푹푹 밟히는 모래알갱이들 위를 걸어

 

"여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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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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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너는 탁 트인 파란하늘을 데려왔었어

오늘의 너는 둥실둥실 떠다니는 구름을 데려왔어

내일의 너는 휘잉휘잉 날아다니는 바람을 데려올거야

 

어제의 나는 자라오던 초록나무에서 빨간 옷을 입고 내려왔어

오늘의 나는 자라오던 초록나무에서 아직 초록 옷을 입고 있는 너를 바라보았어

내일의 나는 너를 위해 따뜻한 햇살을 데려올거야

 

앞으로 나는 들쑥날쑥 자란 잔디에서 너를 기다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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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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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별들이 새겨 놓고 떠난 글과 숫자를 담은 초록하늘과

따스한 햇살을 받는 나무들만 볼 수 있도록 막아놓은 차가운 철 덩어리들

그리고 굳어버린 몸과 마음처럼 딱딱한 책상과 의자가

어디보다 빠른 시간이 흐르는 이 공간을 채운다.

 

더 멀리, 더 높이, 더 빠르게

따스한 햇살을 받는 나무가 되기 위한

계단을 탁 탁 오르고

차오르는 눈물들을 보고 도망치기 위해서

계단을 타다닥 타다닥 오른다.

 

긴 복도 끝에

홀로 가만히 서 있으니

남은 이 하나 없다.

 

결국

난 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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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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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책가방이 누른  어깨만큼

종이에 눌린 새끼 손가락에는

굳은 살이 박혔다.

 

수 없이 잡았던 연필 때문에

가느다란 손목에는 힘조차 들지 않아서

바람에 흔들리는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부러질 듯 흔들린다.

 

지우고 쓰고를 반복해서 닳아버린 지우개처럼

그 어떤 칼이 들어와도

아프지 않다고 느낄만큼 마음은 닳아버렸다.

 

매일 셀 수 없을 만큼의

풀어나가는 문제들이 늘어나고

 

늘어나는 문제를 따라

다른 것인지 틀린 것인지 모를 것이 늘어나고

 

다른 것인지 틀린 것인지 모를 것에 따라

생각이 늘어나고

 

생각들에 따라

걱정은 늘어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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