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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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향긋한 벚꽃이 피어 흩날리면

그녀와 갔던 벚꽃놀이를 생각하고,

 

여름에 따스한 햇살이 비치면

그녀와 같던 물놀이를 생각하고,

 

가을에 우수수 낙엽이 떨어지면

그녀와 걷던 공원길을 생각하고,

 

겨울에 펑펑 눈이 내리면

그녀와 누웠던 눈길을 생각하고,

 

그렇게

계절의 융단은

 

꽃잎으로

햇살로

낙엽으로

눈으로

 

바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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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웠던 말이 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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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이 한 마디가

어려웠던 말이 였을까

 

잘 지내

이 한 마디가

어려웠던 말이 였을까

 

사랑해

이 한마디가

어려웠던 말이 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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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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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휭 하고 지나가니

나와 내 가족들은

우두두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람이 쌩쌩 하고 지나가니

나와 내 가족들은

스스스 먼곳으로 흩어졌다.

 

빛에 열을 빼앗긴 몸을 말아

거리를 굴러다니면서

친구들을 만났다.

 

나와 내 친구들은 거리 위에서

파도를 만들며 놀았다.

 

이름 모를 이의 빗질에

나와 내 친구들은 거리 위에서

섬이 되었다.

 

까끌까끌한 포대에

섬들이 한 곳에 모였다.

 

나의 가족들을 다시 만났다.

나의 친구들을 다시 만났다.

 

나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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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목에는 기다란 구두가 숨어있어

나비의 날개에는 파란장미가 숨어있어

얼룩말의 줄무늬에는 하얀수박이 숨어있어

 

목 없는 기린이

구두를 잃어버린 것 뿐이지

기린이 아닌 건 아니야

 

날개 없는 나비가

장미를 잃어버린 것 뿐이지

나비가 아닌 건 아니야

 

 

줄무늬 없는 말이

수박을 잃어버린 것 뿐이지

얼룩말이 아닌 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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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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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싫어하는 너를 위해

방을 환한 빛으로 채워

 

내 팔에 머리를 대고 있는

너의 머리칼을 한번 쓰다듬어

 

너가 눈을 감으면

나는 너를 안아줄게

 

나의 품에서

편히 잠들기를

오늘 밤도 빌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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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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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서 당신을 보며 떠올렸던 말들을

 

하나 둘 종이에 옮겨 적어

 

그대의 따스함을

 

그 따스함에 대한 고마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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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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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있는 빛을 쫓아가다보면

뒤에 드리운 어둠은 보이지 않는다.

 

실은 볼 수 있는데

빛이 너무 밝아

보지 않는다.

 

쫓아가다 빛을 놓치게 되면

그제서 뒤에 드리운 어둠이 보이게 된다.

 

다시 빛을 찾기 위해

자신의 어둠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진정한 빛의 주인이자

빛의 그림자 주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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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검은 집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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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는

이름만 알고 얼굴은 모르는 이가

그려낸 종이 위 소리에 맞게

흑과 백으로 된 창문 사이에 손 놀리고

 

지금의 나는

차가운 나무 위에

알 수 없도록 검은 색을 뒤집어 쓰고있는

검은 집의 진동과 울림에 발 끝으로 다가가고

 

먼 훗날의 나는

작은 몽땅연필 쥐고

길게 뻗은 오선지 위에 소리를 싣고

그 소리 담긴 종이가

또 다른 검은 집에서 소리 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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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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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했던 하루를 보낸 이들이 사는

뺵빽하게 붙어있는 아파트 불이 하나 둘 꺼지고

고요해진 밤이 좋아

 

쨍쨍 내리던 햇빛보다

은은하게 내리는 달빛이 좋아

밤이 좋아

 

모두가 달리던 낮의 시간이 아닌

나만이 걷는 시간인 것 같아

밤이 좋아

 

빵빵 울리던 경적소리 말고

내 방 가득히 채우는 내 소리가 빵빵하게 들려

밤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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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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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단발 머리하고 복도에 웃으며 있는 사람

멀리서부터 꽃향기 날 듯한 교복 입고 있는 사람

작은 발에 꼭 맞는 하얀 실내화를 신고 있는 사람

나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주는 사람

 

감지 않던 폭탄머리를 바가지 머리로 변하게 만든 사람

방구석에 박혀 있던 교복을 가지런히 정리하게 만든 사람

질질 끌던 슬리퍼를 발에 맞는 하얀 실내화를 신도록 만든 사람

나를 환히 웃으며 학교를 갈 수 있도록 만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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