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퐁의 이중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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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롱한 안개 속에서 눈을 뜬 기분이었다. 방 창문에 어스름한 푸른빛이 돌았다. 여름 중순이라 새벽4~5시쯤이라는 걸 자각했다. 문득 목이 말랐다. 냉장고를 열어 뭐라도 마시고 싶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향했다. 주황빛으로 물든 거실로 나왔다.

채련이 고개를 왼편으로 돌렸다. 저편에 여동생, 알퐁의 뒷모습이 보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알퐁은 커튼을 쫙 친 베란다 창가에서 다섯 발자국 떨어진 곳에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알퐁은 베란다 창가를 배경으로 삼고, 그 앞에 간이탁자 위의 램프를 그림의 모델로 두었다. 그리고 두 개의 화판을 두고 각각 두 개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녀의 미술 작업은 언제나 채련의 호기심을 유발했다. 베란다 창문에 비친 풍경은 여느 때와 같았다. 산에서 막 나온 주황빛을 품은 해가 보였다. 산 아래로는 줄지어 모여 있는 주택가가 있었다. 사는 곳이 높은 층이고, 베란다 창문이 동쪽으로 나 있어, 항상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이 몽환적인 시공간에서 고등학교 2학년인 알퐁은 매일 다른 작품을 만들었다. 시간별에 따라 빛을 달리 받는 시계를 한 그림 안에 압축해 표현한 그림도 있었고, 컴퓨터 모니터를 뜯어 온 채 마우스 줄로 칭칭 묶은 것을 모델로 그린 적도 있었다.

채련은 고개를 돌려 탁자를 손으로 훑으며 냉장고를 향해 갔다. 냉장고 문을 여니 반 쯤 남아 있는 1.5리터짜리 포도 주스가 있었다. 평소에는 입 안 대고 그대로 들고 마시지만, 오늘은 컵을 꺼내 따랐다. 그리고 컵을 들고 천천히 알퐁의 뒤로 갔다. 알퐁은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 언니가 다가오는 것을 힐끔 봤다. 하지만 그녀는 신경을 쓰지 않고 계속 그림을 그렸다.

채련이 알퐁의 두 그림을 보았다. 두 그림 다, 산에 해가 걸친 풍경에 램프가 있었다. 다만, 약간 다른 점이 있었다. 왼쪽 그림은, 막 해가 산 위로 조금 얼굴을 드러낼 때였다. 주황빛이 강렬했고 어둑한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 또, 램프의 불도 켜져 있었다. 오른쪽 그림은 어느 정도 산 위로 해가 나온 풍경으로 어느 정도 밝아져 램프의 불이 꺼졌을 때를 담고 있었다.

“제목이 뭐야?”
갑자기 들려온 언니의 목소리에, 알퐁이 조금 머뭇거리다 답했다.

“이중 사고”
채련은 그 제목을 듣고 눈을 크게 떴다. 예상외로 딱딱한 제목이었다.

“오……왜? 태양을 본 램프의 잠은 어때?”

“사람들은 우리 베란다 창문이 서쪽을 향해 있는지, 동쪽을 향해 있는지 모르잖아.”
채련은 그 말을 듣고 단순히 알퐁이 시간 순서대로 그린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그치. 이 두 그림 순서에 따라 해가 지는 건지 뜨는 건지 달라지겠지. 그걸 정하는 건 사람들 맘이고 근데 그래서, 이걸로 ‘이중사고’를 어떻게 표현하게?”
채련이 포도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 알퐁의 붓놀림은 느려졌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 마쉬었다.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골몰하는 표정이었다.

“음 그니까, 일단. 어떤 장치가 필요해. 이 두 작품을 좌우로 움직여서 순서를 배열할 수 있는 장치. 언니 말처럼 사람들이 생각하는 순서에 따라 해가 지거나 뜨도록 느끼기 위해서 말이야.”

“오, 뭐, 아무튼 그런데 넣어서, 사람들이 직접 그 두 그림을 움직여 순서를 맞춰보면서 어떤 느낌을 준다는 건데, 그런 거라면 굳이 그림 그릴 필요 없잖아. 그냥 사진을 찍어도 되는 거 아냐?”

“응, 근데 그리고 싶었어.”

“음, 그래.”

“아무튼 그 아래에 이런 문구를 두는 거야. 해가 지는 것과 뜨는 것을 동시에 느껴보라, 당신은 앞으로 어느 한 그림의 램프의 상태를 바꿀 수 있을 것인가?”

“흠, 잠만. 대충 뭔 말인지는 알 거 같아. 그니까, 막 사람들이 좌우로 이리저리 순서를 맞춰보면서 막 해가 지고 뜸을 동시에 느끼려다가, 정작 혼란스러워져서 어느 그림이 램프가 켜져 있든 말든 그걸 못 바꾼다?”

“응, 원래는 서로 다른 시공간 속에 있어야 하는 두 장면이 하나로 연결되어 보이면서 헷갈리는 거야. 그러면서 앞으로 어느 무엇도 선택하지 못할 거라는 느낌을 주는 거지.”

‘서로 다른 시공간?’
그 말에 채련이 웃음을 지었다.

“사람들이 이런 기분을 느꼈으면 한 거야?”
그 말에 알퐁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뭔가 부끄러워하는 눈치였다.

“글쎄, 의식적으로는 별 생각 없었는데.”

채련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걸 만든 이유는 뭐야?”

“글쎄 모르겠어. 이 그림을 이용하려고 영감에 따라 만든 것 같아.”

“그럼 이 작품 만들면서 어땠어?”

“솔직히 헷갈렸어. 이 작품을 구상하는 생각이.”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 줄까 말까 하다가 방해될까봐, 컵을 씻으려 부엌에 갔다. 컵을 가볍게 씻고, 선반 위에 올려놓으며, 알퐁에게 말했다.

“여느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시공간적으로 말도 안 되는 여러 이차원적 이미지들의 생각에 혼동될 때, 너무 곤란해 하지 마. 저 ‘이중사고’란 작품처럼 사람의 이미지적인 생각은 삼차원 같은 이차원 공간에 시간을 더한 삼차원에서만 일어나니까. 중요한 건 삶에서의 행동이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삼차원에 시간을 더한 사차원이니까. 헷갈릴 때는 그냥 행동을 해봐."

알퐁이 그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하다 말했다.
"이리저리 지구가 고개를 젓는걸 모르고 한 사람이 그 지구 위에서 해를 바라보아 일출과 일몰이 반복된다면, 그러면 직접 지구를 공전하게 만들어야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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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저울 안 톱니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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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점심시간에 혼자 나와,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어렸을 적부터 커피를 좋아한 내게, 커피는 쓸수록 달았다. 카페 창밖에 현재 다니고 있는 석유주식회사가 보인다. 저 회사에 입사한 지도 어느덧 3년, 부서 내에서는 사원이다.

저곳은 수많은 경쟁을 거친 결과다. 그렇다고 한숨 돌리기도 넉넉지 않다. 석유주식회사에서는 언제든 큰 실수가 날 가능성이 크다. 그 대상이 나만 아니길 빌며, 항상 동태를 살피며 조심히 일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저 곳에서도 경쟁이 있다.

그래, 언제나 존재했다.
고등학생 때 반에서 1등 했을 때,
희망하던 대학에 마지노선으로 붙었을 때,
면접에서 다행히 안 떨고 준비한대로 말해서 이 회사에 입사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내 앞 유리창 밖을 스쳐 지나간다. 그들은 모두 어디론가 이끌린다. 그들의 방향은 모르지만, 좀 있으면 가야하는 회사가 있어, 그들에게 동질감을 느껴 본다.

생각보다 컸던 사회에서의, 경쟁에 뛰어들기 전, 나는 부조리에 반항할 용기가 있었다.

그러고 보면 중학교 때 나는 아주 특별한 사건을 겪었다. 그 사건은 뉴스에서 보도될 정도로 유명했지만, 또, 금세 잊혀졌다. 어쩌면 그 일이 있은 후, 그 일에 대한 회피 심리로 사회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한 것일 수도 있다.

일단 늦기 전에 회사부터 가야겠다.

2교시 체육시간이었다. 한적한 벚꽃나무 그늘 속 의자에 앉은 나는 머그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감미로운 커피의 향기가 벚꽃잎과 함께 운동장에 유유히 흩뿌려졌다.

운동장에는 우리 반만 있어 한적했다. 2, 3학년들은 체육관에서 팔굽혀펴기 시험을 보고 있었고 체육선생님은 1학년에게 자유시간을 주신 뒤 영어선생님과 대화를 하고 계셨다. 그래서 평소 축구하자고 노래를 부르던 남자애들은 운동장 전체에서 축구를 하게 되었다. 여자애들은 땅바닥이나 그늘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민수는 모종삽으로 구덩이를 팠다. 그 구덩이는 내 다리가 다 들어갈 정도로 깊었다. 듣기로는, 민수가 자신이 판 땅 구덩이에 물풍선을 숨겨, 그 위를 아무나 밟도록 장난치려는 속셈이었다. 그런 의도치고는, 꽤 깊어보였다.

“왜 그렇게 열심히 파냐?”

“재밌잖아.”

“적당히 파.”

“잠만 말시키지 말아봐”

민수는 자신의 몸을 구덩이 안으로 집어넣어, 모종삽을 구덩이 깊은 곳에 연달아 내리찍었다. 무엇에 걸려, 잘 안 파지는 모양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승재야, 이, 이게 뭐야!”

민수가 파던 구덩이에서 정체 모를 액체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그 액체는 거무스름했다.

“으악!”

민수는 깜짝 놀라 몸을 뒤로 젖히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덩달아 놀란 나는 머그컵을 떨어뜨렸고, 담겨있던 커피가 흙바닥에 쏟아졌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뒷걸음질했다. 멀리 떨어지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넘어져 있던 민수는 그 액체를 온 몸에 뒤집어쓰고 있었다. 정작, 민수는 정체모를 분수를 멍하니 바라봤다. 상황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축구를 하던 남자애들, 수다를 떨던 여자애들이 우리의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선생님은 여전히 저 멀리서 수다를 떨고 계셨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우리를 향해 뛰어오다가, 분수를 본 아이들은 저마다 외치며 말했다.

“저거 설마 똥물이야? 똥물은 아닌 것 같은데? 뭐든 간에 빨리 씻어.”

주변이 시끌벅적해졌다. 민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옷을 보았다.

“아 더럽잖아, 잠시만 이거?”

그가 놀란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이건, 커피야!”

반 애들은 깜짝 놀랐다. 흙구덩이에서 커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몇몇 애들이 그 곳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손가락에 그것을 묻혀, 냄새를 맡았다. 저마다 탄성을 내질렀다.

저 쏟아져 나오는 것이 진짜 커피라면? 애초에 꿈이 바리스타였던 나에게는 천국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벌떡 일어나 주변에 몰려있는 애들의 비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 그 분수에 검지를 댄 다음 내 혓바닥으로 맛을 보았다. 순간 너무 써서 혀가 아렸다. 하지만 이 쓰디 쓴 것이 진짜 커피라는 것을 알자 행복감에 몸이 저렸다. 나는 말했다.

“이건 더치커피원액이야. 물에 타면 맛있어."

이 때, 수진이 큰 소리로 말했다.

“나, 선생님께 말하고 올게.”

그러자 민수는 선생님께 달려가려는 수진을 보고 외쳤다.

“잠만, 멈춰봐!”

이어서 그가 말했다.

“나는 그럼 이걸 망가트렸으니 혹시 이 것의 주인, 그니까 공장에다 수리비를 물어내야 하는 거 아냐?”

그러나 아이들은, 민수의 사정이 딱하지만, 선생님께는 알려야한다는 눈빛이었다. 이것을 눈치 챈 민수는 애들을 설득하려했다. 결국에는, 서로 말싸움까지 이어지는 와중에 이런 상황을 제지 안하고 가만히 생각을 하고 있는 회장이었다. 그는 우리 반에서 중간고사 반 1등을 차지할 정도로 영특한 아이였다. 게다가 말을 굉장히 잘해서 학급 일들을 곧잘 처리해냈다. 이런 그가 말했다.

“애들아 잠시만, 당분간은 선생님께 말하지 말아줄래? 잘만 하면 우리가 앞으로 이 커피를 평생 공짜로 마실 수 있게 될지도 모르잖아.”

몇몇 애들이 말했다.

“에이, 어떻게 그래?”

“가능해, 어른들이 모르는 우리만의 비밀을 만드는 거지.”

“들키면 어쩌려고.”

그들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은근 기대하는 눈치들이었다. 커피를 공짜로 마신다는 것보다는 어른들이 모르는 비밀을 만든다는 것이 훨씬 매력적이었다.

마음속으로 가장 기대를 한 사람은 어쩌면 나였다. 커피광인 나에게 커피를 마실 때마다 드는 비용은 너무나 벅찼다. 내가 평생 커피를 공짜로 마실 수 있다는 말은 평생의 기쁨을 공짜로 누릴 수 있게 되리라는 말과 같았다. 나는 말했다.

“그래, 민호가 불쌍하지도 않냐? 커피는 행복이야. 우리 반만 그 행복을 즐겨보자고.”

그 때 커피분수가 뚝 뚝 끊기더니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나를 비롯한 여러 애들의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지자 회장이 말을 했다.

“이게 갑자기 왜 끊기지? 민수야, 일단 이 구멍을 숨겨줘, 이걸 연구한 다음 실제로 몰래 마실 수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봐야겠어.”

수진은 그 말을 듣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거지도 아니고, 이걸 왜 마셔? 마셔도 된다는 허락도 안 받았고, 비싸지도 않은데 그냥 사먹어. 바보야.”

“그래, 300원이면 자판기에 넣어서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싸지. 근데 난 단순히 커피를 공짜로 마시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야. 이건, 어쩌면, 어른 돼서 보면, 우리만의 추억일수도 있잖아.”

추억, 그 단어가 묘하게 끌렸다. 잠시 후, 회장이 말을 이었다.

“그럼 애들아, 다수결로 정하자.”

애들 분위기를 보아하니, 회장은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던 눈치였다. 회장이 자신의 의견에 찬성, 반대를 나누라 하자, 찬성이 과반수였다. 이를 본 수진이 말했다.

“이건 추억이 아니라 범죄라니까. 그냥 말하자. 더 일이 크게 번지기 전에.”

하지만 수진이를 보는 남자애들의 시선이 달갑지 않았다. 몇몇 여자애들이 수군거리는 걸 보아하니 수진에게 동조하는 것 같았으나, 그들은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 분위기는 마치 수진이 스스로 왕따를 자청하는 분위기였다. 남자애들이 말했다.

“에휴, 또 지 혼자 착한 척이네.”

“제는 왜 항상 뭐만 하면 꼬투리를 잡냐?”

회장이 이런 남자애들을 막아섰다. 그리고 수진에게 말했다.

“일단 확정된 건 아니잖아. 그니까 기다려봐.”

그렇게 우리는 그 정체모를 커피를 연구해보기로 결정했다. 나는 얼른 친구들에게 맛있는 커피를 타주고 싶었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바리스타의 일이었고, 나의 꿈이었다.

일주일 뒤, 반 톡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승재 말대로 더치커피원액이야. 민수가 건드린 것은 커피공장의 수도관으로 더치커피 만드는 공장에서 더치커피원액을 포장하는 공장으로 보내도록 이어진 수도관이었어. 우리 학교가 신식학교여서 원래 있던 그 수도관 위에 지어진 것 같아. 그리고 우리는 조사를 하기 위해 커피공장에 갔어. 지난번에 수도관이 뚫려 커피가 새나갔다는 사실은 그 공장에 어떤 사람도 모르시는 것 같아 보이셨어. 간접적으로 물어봤었거든.

포장되는 것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1L의 더치커피제품 1500개 정도였고 실제로 공장에 들어오는 양은 1600개 정도의 양이었어. 그 양을 받는 데도 1500개 정도만 포장하는 것을 보면 이 정도 포장하는 것이 이 공장에 한계 인가봐, 이 공장은 그저 커피공장에서 받는 수익을 더 늘리려고, 1600개의 양을 받나봐. 하지만 커피공장은 하도 커서 신경도 잘 안 쓰는 모양이야. 그래서 우리가 쓸 수 있는 양은 우리 반이 먹을 것보다 훨씬 많은 8, 90L의 양이야. 오전 9시 반부터 10시까지가 더치커피가 수도관으로 운반되는 시간이야. 지난번 2교시 체육시간에 커피가 뿜어져 나왔던 것처럼 말이야.

그래서 조심스럽게 하는 말인데 우리 같이 이 커피의 양으로 학교학생들에게 약간의 돈을 받고 커피를 나누어 주는 것이 어때? 기업 것을 훔쳐 파는 것이라 도둑질이라 생각될 수 있겠지. 하지만 어차피 버릴 커피야. 게다가 우리 학교에 졸리고 지친 청소년들을 위해서라면 카페인이 담긴 커피가 간절히 필요할 것 같지 않아? 만약 이 일이 잘된다면 우리는 수입을 적절히 분배해서 월급도 받을 수 있어. 아, 또 이 비밀을 우리 반을 제외한 다른 자에게 누설하지 않기를 바라. 들키는 그 순간, 이 비밀을 그 때 숨기고 있었던 우리 반에게 무슨 벌어질지 몰라. 물론, 만약 들킨다면 책임은 최대한 내가 지도록 노력해볼게. 대신, 나만 잘 따라오면, 들킬 일은 없을 거야.

그럼 다음 주 월요일에 7시까지 등교해 주었으면 좋겠어. 댓글은 이 공지가 잘 보일 수 있게 달지 말도록 해줘.

나는 사업을 하나 차려보자는 게 어떠냐는 부분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물론 커피를 공짜로 마신다는 것은 멋졌다. 하지만 기업의 허락도 없이 그 많은 물자를 빼가며 그 것을 허가 없이 돈 주고 우리 학교에 판다는 것은 불법 장사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것을 직감했다.

다음날이었다. 교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자 회장이 나를 보고 성큼성큼 다가와서는 친근하게 말을 건넸다.

“오, 우리 반 커피생산부장이 왔네, 승재, 오늘부터 니가 학교에 나누어 줄 커피를 만들어줘.”

나는 처음에 회장이 입을 벌리려할 때 불법 장사를 목적으로 두고 말을 내뱉을 것 같아서 나는 무슨 부탁이라도 거절할 참이었다. 하지만 내가 우리 반의 커피생산책임자라는 말을 들으니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입 꼬리는 저절로 올라갔다. 그랬다. 나의 꿈은 커피를 만들어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것.

회장은 커피를 팔기 위한 부서로 총 5개를 만들었다. 5개의 부서는 커피생산부, 커피판매부, 커피관리부, 커피홍보부, 커피노동부였다. 각각마다 6,7명의 부원들이 있었다. 회장은 조직체계가 다 정리되자 우리 반 친구들에게 각각 종이를 나누어 주었다. 그것은 각서였다. 내용은 이 일을 절대 말하지 않고 이 사업에 적극적인 기여를 하라는 것이었다. 이 약속을 지키면 월마다 많은 돈을 주겠다고 하고 말이다. 수진은 처음에 거부했으나, 압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찍게 되었다. 결국 우리 반은 한 명도 빠짐없이 각서에 손도장을 찍었고 선서까지 이어졌다. 사업이 결성되자 회장은 우리에게 바로 일을 시켰다.

가장 먼저 일을 시작한 커피관리부를 보니, 커피를 뽑아낼 장치를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숨겨뒀었던, 커피통로관의 뚫린 구멍을 다시 드러냈다. 그리고 그 구멍에 호스를 연결한 다음 그 것을 아무도 못 보는 체육관 뒤편으로 가져갔다. 그러고 나서 체육관 뒤편 수도꼭지와 연결해 뽑아 쓸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들은 커피보관소를 체육관 뒤편과 가까운 안 쓰는 컨테이너 안으로 정했다. 그 곳이라면 등굣길도 아니고 경비아저씨만 가끔씩 겉만 살펴보고 가기 때문에 안전했다.

내가 있는 커피생산부는 커피관리부가 가줘다 준 더치커피원액을 받았다. 더치커피 원액은 사실 물만 타서 먹어도 괜찮으나, 청소년의 입맛에 맞게 만들었다.

커피판매부로 놀러가 보니, 커피를 어떻게 판매할 것인지, 얼마에 판매할 것인지 고민했다. 분명 학생들을 직접 만나 판매하면, 거부감이 들게 뻔했다. 확실한 방법이 필요했다. 고심 끝에 그들은 컴퓨터의 전원버튼을 눌렀다. 그들의 생각은 신청서를 만들려는 것이었다. 한 달에 얼마를 내면 매일 커피를 나눠준다는 판매 전략이었다. 그리고 담는 용기가 있는 애들한테는 담는 용기에 커피를 나누어주고 담는 용기가 없는 애들에게는 종이컵에다 커피를 따라 주기로 했다.

커피홍보부는 커피판매부의 전략에 따라 홍보방법을 정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선생님 몰래 커피소비자들을 늘려야했다. 그래서 반 학생들이 의심하지 않도록 각 반의 회장들을 돈으로 매수했다. 그런 다음 그들을 이용해 그 반 아이들에게 커피를 우유급식처럼 급식 신청을 받는다는 듯이 전달했다. 다행히 각 반 선생님들은 눈치를 채지 못했다.

커피노동부는 이런 부들에게 인력을 제공하였다. 이들은 우리 사업의 보안 및 관리 하는 역할도 맡았다.

이틀 뒤 우리의 사업은 대성공이었다. 신청서를 거두었더니 우유급식만큼 싼 커피의 가격에 깜짝 놀란 아이들 대부분이 신청을 했다. 통장에 입금된 수입금을 모두 빼낸 커피판매부가 교실에서 총 판매액에 대한 보고를 했다. 우리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천만원. 신청한 학생들 한명마다 한 달에 만원도 안 되게 걷었었는데 천명도 넘게 신청을 하여 천만원이 되었다는 커피판매부장의 말이었다. 의자에 앉아 이 보고를 듣던 우리 반 회장이 힘차게 일어섰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쭉 내려 보았다. 그가 말했다.

“이로써 우리의 월급은 몇십만원이 될 거야, 그저 조회시간, 점심시간, 쉬는 시간만 일해도 너희는 월마다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어,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너희들은 더욱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이 사업이 불법이라던 아이들, 힘들다던 아이들, 자신은 안하겠다는 아이들이 웃음을 지었다. 근무시간도 평소보다 일찍 나와야 된다는 것을 빼면 특별한 점이 없는데 그렇게 많은 돈을 받게 된다는 것에 우리는 깜짝 놀랐다. 우리 반 친구들은 벌써 몇십만원으로 무엇을 할지 서로 수군거렸다. 그러나 이 순간 이 불법사업이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어보였다.

다음 날, 우리는 바쁘게 움직였다. 예상치 못하게 많은 주문량 때문에 커피포트도 중고로 4개나 사서 따랐다. 우리는 부서에 상관없이 아침에 커피보관소에 가서 커피를 따랐고 얼음을 띄운 아이스커피, 뜨거운 커피 두 개를 동시에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1,2,3학년 신청해 준 사람 자리에다 갖다놓았다. 다행히 이 모든 일이 아침 조회시간 전에 끝났다. 시간이 아슬아슬했다. 우리의 등교시간은 더 빨라져야만 했다. 힘든 일은 아침이 끝이 아니었다. 쉬는 시간에는 항상 커피를 관리했고 점심시간에는 미리 만들어 둔 커피 설문지를 돌렸다. 애들은 선생님들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각 반의 종이컵을 수거해서 버렸다.

회장은 종례 시간이 끝나고 우리를 잠시 교실로 모이게 했다. 그는 교탁에 뒤에 서더니 앞으로 할 일을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애들아, 너희들은 앞으로 커피에 관한 지식, 마케팅 전략, 경제 상식 등에 대한 시험을 보게 될 거야.”

나는 그의 말에 깜짝 놀랐다. 굳은 얼굴의 표정의 애들이 회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우리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회장은 분위기를 눈치 채고 부드럽게 말하기 시작했다.

“얘들아, 별거 아니잖아. 그리고 각각 부서의 부원들에게 돈을 더 많이 받는 부장이 될 기회를 주는 거야, 이걸로 너희들의 경쟁력을 더 길러주었으면 해.”

우리는 그렇게 무엇인가와 점점 닮아갔다.

사건은 이주일이 지나자 터졌다. 이주일 동안 우리는 많이 지쳐있었다. 매일 6시에 등교하며 만든 커피를 나누어 주었다. 점심시간, 쉬는 시간에도 놀 틈이 없었다.

회장은 이 사업이 시작한 직후부터 온라인 쇼핑몰을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회장은 부모님께 거짓말을 치면서 사업신고에 필요한 도장을 찍어달라고 설득했다. 그는 지금 여러 온라인 쇼핑몰업체에 지금 사업자 신고를 끝낸 상태였다. 그 소식을 접한 우리는 그를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먹물을 뿌린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나를 포함한 우리 반 친구들은 회장을 만나러 커피보관소에 갔다. 여기저기 거미줄이 쳐져 있는 커피보관소 안에 그는 한 나라의 왕처럼 거만하게 앉아있었다. 우리는 그 앞에 모였다. 그리고 나는, 회장에게 말할 내용을 적은 종이를 들고, 앞으로 가 회장에게 말했다.

“처음부터 우리는 불법사업으로 시작했어. 근데 이제 온라인 쇼핑몰까지 넘본다면 우리는 우리나라를 상대로 사기를 쳐야해. 게다가 사업이 커진다고 치자. 이 불법 사업이 알게 되는 사람이 많아질 텐데 그건 어떻게 감당할거야? 사실 나는 내가 만든 커피를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친구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목적으로 이 사업을 시작했어, 근데 너의 목적은 그게 아닌 것 같아. 본래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는 자신이 행복해야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들었어. 우리는 지금 전혀 행복하지 않아. 그러니 우리가 만든 커피를 사람들이 마실 때 전혀 행복하지 않겠지, 행복하지 않은 커피가 잘 팔릴 일도 없어.”

그 말을 듣고 회장은 웃었다. 덩달아 웃던 그의 옆에 있던 애들이 말했다.

“제네 왜 쓸데없이 진지해.”

하지만 회장은, 이내 자신이 우리 모두의 발언을 비웃는 것을 깨닫자 웃음을 멈췄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얘들아, 진정해. 이 사업이 커질수록 니들이 무서워지는 건 알겠는데, 내가 이미 다 계획을 해놨어. 어디까지 해놨냐면, 1년 뒤, 반이 바뀔 때까지야. 이때 우리는 이 사업에 깔끔하게 손을 때는 거야. 그리고 우리만의 추억으로 남는 거지. 추억도 남기고 돈도 버는, 이게 행복이지.”

그가 비아냥거렸다. 나는 다시 말했다.

“그 추억, 반 전체가 징계 먹는 일로 될 수 있어. 그니까 이제 그만하자.”

회장은 순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뒤에서는 수근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회장의 얼굴은 점점 붉어지며 숨이 턱턱 막히는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러다 입을 열었다.

“왜 지금 와서 그런 소리를 해, 이미 늦었어, 각서 찍기 전에 그런 소리를 했어야지, 잔말 말고 일이나 열심히 해, 병신아.”

그 말은 내게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지금 말 다 했어?”

회장, 이 녀석은 달라졌다. 이 사업이 점점 커질수록 오만함도 커졌다. 그것 때문에, 그는 절대 그의 사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언젠가 사업이 만천하에 들어날 것이었다.

뒤를 돌아보며 회장에게 등을 지고, 애들에게 말했다.

“애들아, 몇십만원 때문에 단체로 강제 전학 당하고 싶지는 않겠지? 우리 돈 돌려주고 없었던 걸로 하자, 그럼 일이 더 커지지는 않을 거야.”

애들의 표정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그저 멍했다.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나와 회장 둘의 눈치만 보았다. 그 순간 뒤에서 의자가 꽝 소리가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회장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있었다. 그는 주변에 있던 커피노동부원 진수, 강민에게 무슨 말을 수군거렸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에게 오더니 나의 팔을 붙잡았다. 악력들이 무지하게 셌다. 난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들의 눈빛을 봤다. 이들의 눈빛에는 내가 친구로 비치지 않았다. 저 앞에 회장의 얼굴이 뺨맞은 듯이 붉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침착했다.

“얘들아, 너희들에게 월급의 반을 지금 미리 나누어 줄게, 물론 저 자식 빼고 말이지, 그리고 앞으로 반항하면 어떻게 되는지 너희들 두 눈으로 똑똑히 봐봐.”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내 종아리가 걷어차이며 난 털썩 주저앉았다. 그 뒤 내 등 뒤를 묵직한 돌덩이가 내려찍는 것 같은 감각이 느껴졌고 완전히 털썩 엎드려지고 말았다. 고개를 힘겹게 들자 회장 녀석의 발이 보였다. 이 녀석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게 되다니.

“밟아.”

그 순간 내 등 뒤에 발길질이 폭풍우 같이 쏟아지더니, 등이 으스러지는 것 같았다. 좀 전 까지 내 옆에 있어주었던 친구들은 소름끼치는 침묵을 유지했다. 밟히는 도중에 몸을 천천히 구르면서 고개를 들었다. 그들은 진수에게 돈을 받고 있었다. 돈 하나에 놀아나는 배신감을 느꼈다. 그들의 눈빛은 나를 동정했지만, 절대 내가 되기는 싫은 모양들이었다.

그 순간 민수가 보였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가 이 모든 사건의 처음이었으니까, 민수와 수진은 같이 방을 나갔다, 커피노동부원은 날 때리느라, 돈을 나누어 주느라 그 광경을 보지 못했다.

눈앞이 흐려질 때 쯤 그들에 쏟아지는 발길질이 멈췄다.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지만 제정신만이라도 가까스로 유지시키고 있었다. 눈을 가까스로 떴을 때 녀석이 보였다. 그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너 다친 것을 외부사람에게 보여주면 우리 엿 먹일 수 있을 것 같지? 지금 15만원씩 받은 애들 중에 니가 밟혔다는 것을 증명해줄 사람 있을 것 같아? 뭐, 지금의 고통이 나중에라도 그리워지면 이 사업에 대해 말해보시든가…근데 뭐, 늦지는 않았어…병신아, 이제라도 인정하든가, 니 잘못.”

“닥쳐, 지겨워, 이제…이 짓거리.”

“지금까지 했으면서, 큭큭, 멍멍거리지 좀 마. 착각하나 본데, 이 짓거리가 니가 어른이 된다 해서, 사라지는 게 아냐. 그니까 순응하며 살라고.”

그때였다. 문이 벌컥 열렸다. 건장한 남성들, 아니 여러 명의 남자 선생님들이었다. 그들의 옆에는 울고 있는 민수가 보였다. 순간 이 곳은 정적이 흘렀다. 그 사이에 우리 반 애들은 그저 서로 망했다는 표정만 주고받았다. 그 분들은 우리의 피바람 부는 현장을 보며 말했다.

“이게 뭐하는 짓들이야!”

회장의 얼굴을 보았다. 회장의 표정은 회사가 부도난 표정이었다. 그가 한 짓은 이제 모두 만천하에 공개 될 것이다. 그래, 이것은 그의 잘못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미사자의 사냥방법을 그대로 따라 해보려다 실패한 어린 사자였을 뿐이었다. 그의 힘없는 갈기를 내 입가로 가져왔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그러게, 그걸 왜 따라했어.”

그리고 10년 뒤, 석유주식회사 마케팅 부서 안에서 나는 대답한다.

“그러게. 나는 지금 그걸 왜 따라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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