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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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가 내려앉아서 바람이 더 깊이 들어가
들어온 바깥바람은 너무 시려서
속이 울렁거려
뭉친 숨이 무거워
더 오래 품고 있을 수가 없었어
어깨에 힘을 빼고
꽉 쥔 두 손을 펴면
남아 있는 건 달 여덟 개
왼손에 그믐달
오른손에 초승달
나는 그만큼 넓지 못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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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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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더위란 그 정도를 쉽게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위는 참 꾸준하게 닥쳐왔기에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우리는 피부가 익어가는 것도 몰랐다. 익숙해진 탓이었다.

 

감정도 마찬가지였다. 우린 서로의 온도에 데는 줄 몰랐다.

 

어린 여름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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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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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구인류는 조화를 모른다. 구인류의 문제점은 셀 수도 없이 많으나 가장 대표적인 것은 부조화다. 구인류는 다른 사람을 도울 줄 모르며 다른 사람의 도움도 거부한다. 서로를 위하는 이타적인 사회에 구인류 하나만 끼어들어도……

05-352가 손을 흔든다. 이제 그만하고 앉으란 뜻이다. 내가 자리에 털썩 앉자 바로 뒷자리 아이가 일어나 다음 줄을 읽는다.

서로를 위하는 이타적인 사회에 구인류 하나만 끼어들어도 그 사회는 괴멸한다. 이는 구인류가 조화를 모르기 때문인데……

낯선 냄새가 난다. 척추 저 찌릿한 충격이 와 허리를 바로 세워 앉았다. 내 시선은 어느새 딱딱한 문장에서 창문 밖을 향한다. 바깥은 평상시와 다를 바 없다. 그렇지만 느껴지는 분위기는 평소와 달랐다. 문장을 읽는 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모두의 감각이 온통 창밖으로 쏠려있다. 아직, 아직은 아니다. 이 냄새는 경고의 냄새였다. 우리가 피해야 할 것은 이 냄새가 아니었다. 우리가 있는 작은 공간이 긴장으로 가득 찬다. 살갗이 땅기는 기분을 뒤로 하고 다들 34-388을 바라본다. 문장에 집중을 하지 않으면 소리 없이 질책하던 05-352도 34-388을 쳐다보고 있다. 34-388이 고개를 조금 든다. 공포가 서려 있는 얼굴이다. 34-388은 모두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단 사실도 모른 채 고개를 휘젓다가 급기야 책상에 쿵쿵 머리를 박기 시작한다. 책상에 머리를 처박으며 앓는 소리를 내던 34-388이 바로 앞에 앉은 아이의 의자를 걷어찬 건 일순간이었다. 의자가 덜컹이는 걸 느낀 아이가 곧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를 기점으로 우리는 모두 제각기 할 수 있는 모든 반응을 보인다. 34-388은 완전히 패닉에 빠져 무언가를 중얼거렸고 05-352는 교탁을 손으로 내려친다. 34-388이 맡은 비릿한 냄새가 나한테까지 느껴진다. 아니, 맡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난 그제야 조금 늦은 거부 반응을 보인다.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른다. 정신없이 머리를 흔들다가 어디선가 느껴지는 이질적인 시선에 고개를 돌린다. 내 바로 옆자리, 93-870이었다. 93-870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아까 경고의 냄새를 맡을 때보다 더 몸이 경직됐다. 93-870은 제각기 할 수 있는 반응을 하느라 정신없는 이들과는 다르게 불신이 가득 찬 눈으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바깥을 향한 불신이 아니었다. 그 눈이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자 나는 불안감을 느낀다. 눈은 93-870와 계속 마주치며 입으론 더 큰 소리를 낸다. 그런데도 93-870의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부술 기세로 두드리던 책상을 급기야 걷어찬다. 93-870는 눈을 돌렸지만 시선은 거두어지지 않았다. 아니, 더 늘었다. 나는 34-388과는 달리 시선을 읽을 수 있었다. 어느새 비릿한 냄새는 사라져 있었다. 나는 모두가 주시하는 가운데 태연히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을 원상태로 되돌린 후 아무 문장이나 읽는다. 그러니까 모든 것은 구인류가 조화롭지 못하기 때문에……

05-352는 아이들이 아무리 줄을 지어 기다려도 한 번에 한 명씩밖에 보내주지 않았다. 한 아이가 지나가면 05-352는 문을 닫았다 새로 열었다. 05-352에게 배정된 역할 손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이들이 열었다가 마지막 아이까지 빠져나가면 다시 문을 닫는 것이었는데 매일같이 자신의 역할에 50배 정도의 일을 자처하는 걸 보니 05-352는 자신의 일에 자부심이 대단한 게 틀림없었다. 내 앞에서 문이 닫히고 05-352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린다. 평소와는 다른 반응에 의아하게 쳐다본 05-352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차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에 인상을 찡그리자 05-352는 내 어깨를 두드리더니 급기야 엄지까지 치켜세운다. 05-352는 날 싫어하는 티를 유독 많이 냈다. 내가 구인류처럼 보인다는 게 그 이유였다. 05-352는 내 앞에서 문을 곧바로 열어주는 일이 없었다. 항상 한숨을 폭 내쉬곤 검지로 내 몸을 그었다. 내 손목을 그을 때도 있었고 귀를 그을 때도 있었다. 말은 없어도 그 의도는 충분히 알겠으나 나로서도 억울한 게 많았다. 나라고 구인류처럼 보이고 싶겠는가. 그런데 오늘은 답지 않은 반응을 보이니 내 얼굴에 경계심이 서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자신의 표현을 이해 못 한 듯 보이자 05-352는 앙증맞은 다리로 허공을 걷어찬다. 무릎 관절이 없어 정확한 흉내는 내지 못하지만 나는 이해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다. 다행이었다. 냄새가 그치고 나서 책상을 엎은 것이 못내 신경 쓰였는데 05-352의 반응을 보아하니 다행히도 그렇게 과한 반응은 아니었나보다. 오히려 05-352는 내 행동에 감동이라도 받은 것 마냥 행동하지 않는가.

정확히 얼마에 한 번인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건 구인류의 공포였다. 구인류의 잔해는 온갖 감각들로 곧잘 공격을 해왔다. 오늘은 후각, 그러니까 ‘흙먼지’의 냄새가 우리를 괴롭혔다. 문장에도 간간이 흙먼지에 관한 언급이 있었다.

흙이란 구인류가 남긴 최악의 것으로 손꼽을 수 있다. 흙은 구인류의 조각들이다. 현재 우리는 안전한 장벽 위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구인류는 자신의 살을 밟으며 생활했다. 그 얼마나 미개한 족속들인가. 구인류가 조화를 알지 못하는데 구인류의 살이라고 다른 것과 조화를 이룰 리가 없다. 흙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알지 못하는 새에 생명을 갉아먹어 끝내는 생명을 앗아간다.

책에서 굉장히 강조되어 나온 말이었기에 생생히 기억할 수 있었다. 흙은 그 자체 말고도 그에 비롯된 모든 것들-예컨대 흙탕물과 흙먼지-이 위험했다. 오늘 우리는 흙먼지 냄새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벗어난 것이다. 오늘 제대로 반응을 할 수 있었던 건 34-388의 공이 컸다. 34-388은 후각 하나를 위해 모든 감각을 포기했다. 그로써 34-388은 다른 이들과 완전한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자 오늘 그렇게 피하려 용을 쓰던 흙먼지 냄새가 난다. 이 냄새가 밖으로 새어나갈까 황급히 문을 닫는다. 나는 빌어먹을 모리 때문에 이 냄새에 익숙해져버렸다. 흙먼지 냄새는 내 생명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언젠가 길거리에서 쓰러지게 되면 다 흙먼지의 영향일 터였다. 흙먼지 냄새는 다른 의미의 숨통도 조여 왔다. 오늘도 냄새에 제때 반응하지 못한 탓에 93-870의 의심스런 눈초리나 받아야 했다. 내 코가 멀쩡히 달려있는 이상 34-388보다 조금 못하더라도 그와 비슷한 속도로 반응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93-870은 분명 나를 구인류 따위로 의심하고 있을 터였다. 구인류는 사회악이었고 구인류를 신고하면 어마어마한 포상과 함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문득 93-870이 나를 구인류로 신고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신고는 신고로 막을 수 있었다. 93-870은 나를 그저 의심만 할 뿐이지만 나는 확실한 구인류 하나를 알고 있다. 흙먼지 냄새의 원인인 모리였다. 모리는 구언어 중 하나일 것으로 추정되는 ‘아버지’란 개념을 어렸을 때부터 내 귀에 박아 넣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내 아버지의 아버지라 주장했다. 나는 모리가 하는 말에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아무리 진지하게 떠들어봤자 항상 하는 사사로운 헛소리 중 하나에 불과할 터였다. 애당초 구언어는 믿을 것이 못 되며 구인류의 모든 말은 허언이었다. 실제로 아버지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도 모리밖에 없었다. 누군가 모리와 단 한 마디라도 말을 나눈다면 곧바로 모리가 구인류라는 것을 알아챌 것이다. 아니, 말을 나눌 것도 없었다. 모리는 그냥 훑어만 봐도 구인류란 것이 티가 났다. 모리는 손가락이 열 개, 발가락도 열 개, 팔 다리는 각각 두 개, 코와 입은 한 개씩, 눈과 귀는 두 개씩 있었다.

조화롭지 않은 몸을 가지고 있다.

구인류의 특징이었다. 우리들은 조화를 위해 자신의 일부를 포기했다. 앞집에 사는 74-882는 혀를 잘라냈다. 아랫집 65-392는 손목이 둥그렇다. 74-882의 의사는 누군가 대신 표현해주고 65-392는 가는 곳마다 65-392의 손을 대신해줄 이들이 있다. 74-882와 65-392도 누군가의 일부를 대신해 줄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준다. 완벽한 사회였다. 자신에게 부여된 특정 ‘일’을 할 때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없을수록 좋았다. 05-352는 혀와 다리를 동시에 포기함으로써 자신의 역할인 손에 더 충실할 수 있었다. 34-388은 코만을 남겨놓았는데 그 덕에 다른 코 역할인 이들의 배에 달하는 후각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질수록 사회에 더 큰 기여를 하고 그럴수록 사회가 조화로워졌다. 그런데 구인류는 달랐다. 구인류는 당최 자신의 것을 포기할 줄을 몰랐다. 모리도 마찬가지였다. 모리는 이질적인 몸을 가지고 있었으며 아무의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타적 사회와는 반하는 배타적 행동이었다. 그런 배타적 행동이 차라리 모리 자신에게만 해당된다면 그나마 다행일 텐데 모리는 나에게까지 이기적으로 굴었다. 그 탓에 내가 구인류가 아님을 증명할 수 있는 건 뭉툭한 손가락 여섯 개뿐이었다. 내 역할은 귀였다.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몇 해 전 내 감각 중 귀가 가장 예민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귀가 되어주고, 다른 이들은 내가 없는 역할을 해주면 사회는 서로를 필요로 하고 그에 따라 소외되는 이는 없을 것이었다. 책에서 배우는 완벽한 이상향이자 현재 우리의 사회였다. 그 완벽한 사회에 걸맞는 완벽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려면 도움을 더 주고, 더 받을 필요가 있었다. 나는 귀만 남기고 다 없애고 싶었지만 모리는 내 손가락 하나에도 유독 극성으로 굴었다.

랩타.

그렇게 부르지 마요.

방으로 돌아가려던 차에 모리가 나를 불러 세운다. 모리는 날 항상 저런 식으로 불렀다. 나는 모리가 저런 식으로 나를 칭할 때면 당장이라도 신고를 넣고 싶어서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모리가 무어라 말을 하는 것 같긴 했지만 나는 방으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모리의 문제야 일일이 말하기도 입 아팠지만 제일 큰 문제는 모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단 것이었다. 구인류는 우리처럼 식별번호가 아닌 이름을 가지고 있다. 식별번호가 없는 이는 사회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작년, 모리를 위해 길거리에서 식별번호 하나를 훔쳐왔다. 식별번호의 원주인은 길거리에서 다 죽어가고 있었다. 가죽이 뼈에 다 달라붙은 걸 보니 오랜 기간 동안 굶주림에 시달려온 것 같았다. 나는 급하게 식별번호를 물었다. 그 남자는 먹을 것을 요구했고 나는 빵 한 덩어리를 건넸다. 모리의 식별번호가 될 다섯 자리 숫자를 머리에 새긴 후 난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곳에 그 남자를 끌어다놓았다. 짧은 손가락이 불편했지만 이건 누구의 도움을 받아서 될 문제가 아니었다. 식별번호가 있는 걸 보니 구인류가 아닌 건 분명한데 몸이 이질적인 게 겉보기엔 영락없이 구인류였다. 사회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이기적인 사람까지 사회가 품어야 할 이유는 없다. 도움을 주지 않는 자는 도움을 못 받는다. 그 남자가 아사 직전까지 오게 된 이유였다. 내가 보기엔 마땅한 결말이었다. 굶어죽기 직전인 사람에게 빵 한 덩어리는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남자는 이틀 만에 죽었다. 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그 남자를 묻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힘들게 식별번호를 구해다줬는데 모리는 제 식별번호를 외우지도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모리’라고 부를 때까지 내 말에 아무런 대답을 안 했다. 구인류로 죽은 그 남자만 불쌍하게 됐다.

모리는 항상 ‘혈육’이니 ‘아버지’니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어렸을 땐 모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지만 커가며 모리가 자신의 망상 속에서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모리는 매일같이 내게 구인류의 잔해들을 보여주며 그것들을 강요했다. 모리랑 얘기를 하다보면 책에서 배우는 내용들을 실감할 수 있었다. 구인류는 정말이지 끔찍했다. 구인류는 지어낸 이야기임에도 어딘지 모르게 구미를 당겨와 혹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악질 중에 악질이었다.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 불쑥불쑥 미래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치고 들어올 때가 있었다. 항상 끝은 같았다. 구인류로 몰려 끔찍하게 죽는 나. 나는 구인류를 혐오하고 그들이 사상적으로 엄청난 문제가 있는 정치범이며 자신의 망상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환자라는 것을 안다. 신고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포상이 문제가 아니라 모리랑 계속 같이 살아가다보면 언젠간 모리처럼 정신이 돌아버릴 것 같았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신고를 못 하고 있었던 건,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지금 와서 신고를 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나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구인류랑 살아가며 이렇게 늦게 신고를 했는가. 사상경찰이 물어보면 나는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어설프게 신고를 했다간 나까지 구인류로 엮일 수도 있었다. 이 이유가 지배적이었지만…… 인정하긴 싫지만 모리가 하도 어렸을 때부터 혈육이니 나발이니를 세뇌시킨 탓도 좀 있었다. 사회에서 난 항상 긴장해 있어야 했다. 모리의 구언어가 머리에 박힌 탓이다.

너 아직도 그 이상한 글 적혀있는 걸 책이랍시고 들고 다니냐?

모리가 말한 이상한 글은 대개 구인류에 관한 책이었다.

걸음마 막 뗀 애한테 펜을 쥐어놔도 그것보단 잘 쓰겠다. 어떻게 책 한 권이 ‘구인류는 조화롭지 않다’라는 말로만 돼 있냐?

펜이 뭔진 모르겠지만 구언어예요.

펜이 구언어면 책도 구언어고 조화도 구언어겠지.

책과 조화는 우리가 쓰는 말이고요.

원래는 펜도 같이 썼어.

모리와의 대화는 진전이 없었다. 항상 돌고 돌아 말을 끝내고 나면 과연 무슨 얘기를 했나 싶었다.

소음이 귀에 잡혔다. 나는 이미 닫힌 문을 발로 힘껏 걷어찼다. 그러자 모리가 시끄럽다며 소리를 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모리는 내가 구인류라는 개념이 잡히기도 전 구인류의 것들을 가르쳤다. 구언어인 게 확실한 악기, 라는 것과 시계, 빗자루, 차……. 하여튼 모리가 가지고 있는 구인류의 것들을 모두 가르쳤다. 일방적으로 가르쳤다고 내가 다 배운 건 아니었다. 모리는 제대로 하는 게 없는 내 손에 저주를 뱉었다. 어쩔 수 없는 게 내 역할은 귀였지 손이 아니었다. 인내의 끝을 본 모리가 마지막으로 택한 게 바로 저 소리의 근원, 피아노라는 것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때는 모리가 가르쳐주는 대로 손을 동그랗게 모으고 하얀 것들을 누르기도 했다. 모리는 그런 나를 보며 원래 소리는 이렇지 않다며 한탄 아닌 한탄을 했다.

이렇게 꽉 막히고 답답한 느낌이 아니라 숨이 트이는 느낌이 나야 하는데.

구언어로 가득 찬 말을 완전히 알아듣진 못했지만 모리가 한숨을 쉬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모리는 하루하루 기억이 점점 사라진다며 나에게 짜증을 냈다. 제대로 치는 법을 잊어버렸다며 아무렇게나 하얗고 검은 것들을 눌러댔다. 그럴 때마다 듣기 싫은 소리가 났다. 모리가 말하는 답답한 느낌 같은 게 문제가 아닌 듯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라도 무언가 이상한 소리였다. 모리도 그걸 잘 알고 있는 듯 그럴 때마다 더 신경질을 부렸다. 모리는 그렇게 이상한 소리를 불협화음이라고 했다. 모리는 손가락이 총 열 개였는데 내가 보기엔 그게 문제였다. 손가락이 많으니 저렇게 이상한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닌가. 나는 손가락을 여덟 개밖에 안 썼다. 모리는 내가 손가락 두 개를 움직이지 않는 것에 항상 화를 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모리의 소리와는 달리 내 소리는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야 아무 생각 없었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모리를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욕심을 부려 부조화를 스스로 택한 모리는 당연할 수밖에 없는 불협화음에 불만을 품었다.

모리의 짜증을 듣는 것도 다 어렸을 때 일이었다. 구인류가 무엇인지, 또 구인류의 잔해들이 무엇인지 알게 된 후부터는 모리의 방엔 들어가지도 않았다. 계속해서 피아노를 치기를 강요하는 모리에게 내가 내민 건 짧은 손가락 여섯 개였다. 다시 칠 일은 없겠지만 만약 다시 치게 된다면 나는 모리와 달리 불협화음을 안 낼 자신이 있었다.

이른 아침 집을 나오면 나는 꼭 동네를 몇 바퀴고 돌다가 학교를 가고는 했다. 내 몸에서 흙먼지 냄새가 옅게나마 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 냄새를 알아챈 사람은 없지만 혹시 또 몰랐다. 34-388같이 예민한 코를 피하기 위해서는 동네에서 냄새를 뺄 수밖에 없었다. 동네를 도는데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그곳에서 누군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도 오늘부터 완벽한 테디베어야!

주위에서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가까이 가보니 역시나 테디베어였다. 짤막한 팔다리가 자부심에 차 동동 흔들렸다. 테디베어는 손과 발이 아닌 역할에 한해서 최고의 영광이었다. 테디베어는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손목, 발목이 아닌 팔다리를 완전히 잘라낸 사람을 의미했다. 05-532도 언젠가 테디베어가 되기를 원했지만 아쉽게도 05-532의 역할은 손이었다.

모리가 그리 자주 하지도 않던 나와의 외출을 완전히 관두게 된 것도 다 저 테디베어 덕분이었다. 모리는 영광스런 테디베어를 보고 인상을 썼다.

저게 뭐냐.

집에 가서 얘기해줄게요.

난 항상 모리가 밖에 나올 때마다 구인류인 것을 들킬까봐 겁이 났다. 일부로 마스크와 모자를 씌우고 품이 큰 옷을 입혔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기어이 밖으로 나온 모리는 도통 들어갈 줄을 몰랐지만 그날은 고분고분히 집으로 돌아갔다.

저게 뭔데 다들 저렇게 좋아하지?

테디베어도 몰라요?

덜떨어진 구인류는 테디베어도 몰랐다.

저런 걸 테디베어라 한다고?

아무리 턱없는 헛소리라도 개연성은 있던 모리가 그날은 유독 횡설수설했다. 저런 건 테디베어가 아냐…… 테디베어를 모두가 좋아하는 건 맞지만……

다들 미친 거야.

모리는 결국 저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네, 그렇겠죠.

너도 미쳤어. 밖에서 저런 거나 보고 자라니까……,

저런 거라고 하지 마세요. 저도 언젠가 테디베어가 될 테니까요.

그런 무서운 소리 말아라. 테디베어나 안고 놀아야 될 애가 저런 끔찍한 걸 보고 있으니……,

당신이 말하는 테디베어는 구언어예요.

구인류니 구언어니 하는 건 우리를 퇴화시키려고 그런 거야.

그것도 구언어예요.

네가 하고 있는 게 퇴화라는 거야.

그러니까, 그 말을 모른다니까요.

너처럼 멍청해지는 거야, 랩타. 할 수 있는 게 점점 없어진다는 뜻이지.

구이름으로 부르지 마세요.

너와는 말이 안 통하는구나.

역시나 모리와의 대화는 진전이 없었지만 다행히도 그 일을 계기로 혼자는 몰라도 적어도 나와 함께 밖을 나가겠다고 우기는 일은 없었다.

학교에 도착해서는 93-876의 눈치를 하루 종일 살폈다. 어제와 같은 의심스런 눈이 날 향하진 않아서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93-876이 내 팔을 건드렸다. 어제 일에 대한 추궁일까 싶어 최대한 부자연스러운 얼굴을 숨기고 돌아보는데 93-876은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지도 않았다.

지우개 좀 찾아줘.

어?

방금 어디로 떨어졌어.

떨어진 지우개를 향해야 할 고개가 빳빳이 서 있었다. 순간 맥이 탁 풀렸다.

여기.

아, 고마워.

그러니까 93-876은 눈이 먼 거였다.

어제 93-876의 시선이 아무 의미도 지니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나선 기분이 하늘을 찌를 듯이 좋았지만 그것도 집에 들어가기 전 이야기였다.

문을 열자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평소와 같은 옅은 흙먼지 냄새가 아니었다. 몸에서 자연스레 거부 반응이 올라와 소리를 질렀다. 모리는 소리를 지르는 내게 닥치고 문이나 닫으라며 맞고함을 쳤다.

더 미칠 수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모리는 매일 더 미쳐갔다. 집은 끔찍한 흙으로 난장판이었다. 나는 현관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가만히 굳어있었다. 모리는 그 끔찍한 흙을 밟고 서 있었다. 자신의 살을 망설임 없이 딛는 구인류의 실체를 현실로 보니 새삼스레 모리가 징그러워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모리는 흙을 한주먹 쥐곤 내게 던졌다. 흙 알갱이가 내 얼굴에 튀어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모리는 킬킬대며 웃었다. 이제 나는 죽을 것이다. 이제껏 냄새를 맡아왔으니 언젠간 끔찍하게 죽을 것이었지만 오늘부로 더는 그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흙이 피부에 닿았으니, 난 오늘 안에 죽고 말 거다. 모리의 웃는 얼굴에 살인충동이 일었다. 나만 갈 순 없었다. 바로 앞에 쌓여있는 흙은 한주먹 쥐고 모리의 얼굴에 던졌다. 모리는 얼굴을 피하지도 않고 그대로 흙을 뒤집어썼다.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난 그제야 구인류는 흙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얼굴을 감싸 쥐고 울음을 터뜨렸다. 진작 신고를 했어야 했다. 나는 죽기 싫다……. 모리는 가만히 몸만 웅크리고 있는 내 머리 위로 흙을 아예 쏟아 부었다. 나는 모리를 밀쳐냈다. 모리가 뒤로 나동그라지고 나서야 내가 구인류의 몸에 손을 댔다는 걸 알았다. 최악이었다.

왜 죽지 않지?

모리가 빈정댔다.

죽어가고 있잖아요. 안 보여요?

나는 손을 들어올렸다. 축축한 흙이 덩어리가 진 채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죽어가고 있지도 않아.

흙에 닿으면 몸이 녹아요.

녹지 않고 있다니까.

난 그제야 내 손을 살폈다. 흙 때문에 축축하기는 해도 피부가 흘러내리지는 않았다.

곧 그렇게 되겠죠.

아, 머리야. 랩타 넌 흙 때문에 죽었다는 사람을 본 적이나 있어?

흙이 닿으면 흘러내려서 형체가 없어지는데 어떻게 볼 수가 있겠어요.

더 멍청할 수도 없을 것 같군.

모리가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

왜 그런 식으로 교육을 시킨 건지 이해할 순 없지만 흙은 생명을 탄생시키지, 생명을 앗아가지 않아.

들어본 적도 없어요.

지금 들어. 네가 먹는 빵도 흙에서 나는 거고,

빵은 사회가 주는 거예요.

사회가 흙에서 얻은 거야. 물도 흙으로부터 나오지.

말도 안 돼요. 흙은 구인류의 살이잖아요.

살이 썩어서 흙이 되는 거겠지.

그렇다면 결국 우린 인육을 먹고 있는 거잖아요. 말이나 돼요? 제발 구인류 티 좀 내지 마요.

구인류, 구인류, 구인류! 구인류라는 건 없어. 다 개소리라고.

코앞에 당신이 있는데 왜 구인류가 없어요?

모리는 흙을 다시 집어던졌다.

네가 지금 당장 안 죽는 게 그 이유다, 이 멍청아.

반박하고자 입을 여는데 모리가 다시 흙을 집어던지는 바람에 입안으로 흙이 들어왔다.

흙이 그렇게 문제라면 흙냄새가 나는데 왜 다들 소리나 지르고 앉아있지? 그러면 흙냄새가 피해가기라도 하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반응을 보이면 흙은 우리에게 해를 입히지 못, 아, 젠장, 흙 좀 그만 던져요!

넌 네 말을 좀 객관적으로 들을 필요가 있어. 네가 하는 건 죄다 개소리고, 흙은 원래 사람한테 아무런 상해를 입히지 않으니까 발이나 굴러도 너희가 멀쩡한 거야!

구인류나 그렇겠죠!

구인류라는 건 있지도 않다니까!

모리는 더러워서 무슨 말을 못해먹겠다며 마지막 흙을 던지고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도 닫힌 문을 향해 흙을 던졌다.

모리의 말이 맞아서 기분 나빠해야 하는 건지 살게 돼서 기뻐해야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침이 됐을 때 나는 멀쩡했다. 모리의 모든 말이 진실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적어도 책에 나온 ‘흙이 피부에 닿으면 그 부위는 곧장 녹아내린다’라는 말은 틀린 것이었다. 어쨌든 별 탈 없이 하루가 시작된 탓에 평소보다 동네를 몇 바퀴고 더 돌아야 했다. 평소에는 잘 느껴지지 않는 흙냄새가 진동을 했다. 동네를 아무리 돌아도 냄새가 빠지지 않아 난 결국 학교에 가지 못 했다. 방에 틀어박혀 책장을 엎곤 정신없이 책을 찾아 헤맸다. 모리의 말을 반박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구인류의 잔해>를 손에 잡히는 대로 펼쳤다.

흙은 파괴의 근원이며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 비단 흙뿐만이 아니라…… 흙이 닿으면 생명은 서서히 그 숨이 빼앗기고…… 구인류를 잘게 쪼갠 것이 흙이기 때문에 흙은 구인류와 마찬가지로……

한 마디 두께 정도의 페이지를 넘겼다.

그러므로 흙은 모든 것을 손괴한다는 것이다. 흙만 있다면 멀쩡한 한 조직이 부지불식간에 와해되며……

문장을 읽을수록 이제까지 느끼지 못한 이질감이 들었다. 어떻게 책 한 권이 ‘구인류는 조화롭지 않다’라는 문장으로만 되어 있냐며 지나가듯 흘린 모리의 말이 문득 생각났다. 가방에서 <구인류와 조화>를 꺼내 어제 배운 페이지를 다시 읽었다.

구인류는 조화를 모른다. 구인류의 문제점은 셀 수도 없이 많으나 가장 대표적인 것은 부조화다. 구인류는 다른 사람을 도울 줄 모르며 다른 사람의 도움도 거부한다. 서로를 위하는 이타적인 사회에 구인류 하나만 끼어들어도 그 사회는 괴멸한다. 이는 구인류가 조화를 모르기 때문인데 동시에 구인류가 사회에 적응하지 못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 하는 구인류는 변화하는 사회에 발맞춰 따라가지 못 하고 결국 도태되고 만다. 구인류는 자신이 도태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하여 그 안에서 행복을 추구하고자 한다. 자신의 세상 속에서는 본인밖에 없기 때문에 구인류는 당연하게도 이기적이게 행동하고 그 때문에 사회와 조화를 이룰 수 없다. 그러니까 모든 것은 구인류가 조화롭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며……

두꺼운 책 한 권이 정말 같은 말만 하고 있었다. 그것도 어려운 말과 연결이 이상한 문장을 사용하면서 생판 다른 내용인 척을 하며 말이다.

혼란스러웠다. 이제까지 이 책들을 공부하면서 다 같은 내용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결국엔 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얘기하는 것뿐이었다. 모리의 말이 맞고 맞지 않고를 떠나 이 책은 이상했다. 그러니까…….

아니, 이 책은 이상할 수 없다. 이 책이 이상하려면 내가 이상해야 하는데 난 그렇지 않으니 이 책도 이상하지 않다. 이상한 건 모리다. 그래, 다 모리의 탓이다. 구인류는 이타적인 사회를 망가뜨린다. 본인의 이기적인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어떻게 책이 이상할 수 있겠는가? 구인류의 환경에 워낙 많이 노출되어 있다 보니 나까지 미친 거다. 나도 이상하다. 이상해지고 있는 중이다. 지금은 어쩌면 기회일 수도 있겠다. 내 몸이 완벽하게 미치기 전에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 왜, 그런 말이 있잖는가. 원래 기회라는 건 위기 속에서……, 아니 이 말도 온통 구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지금 구인류의 사상에 물들어버린 거다. 구언어를 사용하고, 구인류와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미쳤다는 증거였다. 아, 그래. 나는 미쳐 있었다. 그래서 흙이 닿아도 고통을 못 느끼며, 살이 녹고 있는 것도 보이지 않고, 구인류의 사상을 구언어로 그럴 듯하게 받아들이는 거다.

난 생각을 멈추고 학교로 달려 나갔다. 내 몸에선 여전히 흙냄새가 났지만 나는 반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기 전에 05-352에게 구인류가 있다는 말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그 후로 반은 뒤집어졌지만 할 말을 다한 나한테는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든 발을 구르든 알 바 아니었다. 05-352는 내 앞의 아이를 툭툭 쳤고 그 아이는 그제야 할 일을 찾은 듯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몇 분 안 되어 사상경찰이 들이닥쳐 나를 끌고 나갔다. 내 몸에서 진동하는 흙냄새도 위대한 사상경찰에겐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구인류는 어디 있지?

우리 집, 우리 집에 숨어 있어요.

사상경찰이 나를 앞세워 거리를 걸었다. 내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난 다시금 내 몸에서 흙냄새가 폴폴 난다는 것을 자각했다. 내가 이타적인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나는 발걸음을 빨리 했다. 사상경찰이 더 가깝게 붙어왔다.

여기 있어요.

사상경찰은 내 말이 끝나자마자 문을 걷어찼다. 문이 뒤로 넘어가고 아직도 바닥을 뒤덮고 있는 흙들이 그대로 드러났지만 사상경찰은 미간을 한 번 찌푸릴 뿐이었다. 사상경찰은 내 손이 가리키는 대로 모리의 방으로 곧잘 향했다. 곧 귀가 떨어져나갈 듯한 큰소리가 나고 사상경찰이 내게로 걸어 나왔다.

너는 저 구인류와 무슨 사이지?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침에 일어나니 저렇게 돼 있었어요.

나는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양손을 들어 보인다. 사상경찰은 내 뭉툭한 손가락 여섯 개를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구인류는 발견 즉시 사살이라는 원칙이 있어 망정이지 모리가 사상경찰 앞에서도 입을 놀렸다면 나까지도 구인류로 몰렸을 터였다.

어느새 사상경찰은 네 명으로 불어있었다. 언제 연락을 했는지 갑자기 나타난 사상경찰들이 성큼성큼 모리의 방으로 들어가더니 모리의 물건들을 꺼내왔다. 아, 침입자가 자기 살림을 차렸구나. 사상경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키들대며 웃었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사후세계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고, 책에서 그랬는데 이상하게 사람들이 보였다. 하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더니 내게 다가온다.

내가 왜 죽지 않죠?

당신은 구인류가 아니니까요. 거짓말은 했지만 이타적인 사회를 위해 신고를 했잖아요. 그 점을 높게 샀나보죠.

내가 왜 죽지 않죠?

우리가 당신을 살렸어요. 당신은 몰랐겠지만 당신 몸이 녹고 있었어요.

알고 있었어요.

그래요? 신기하네요. 하여튼 우리가 당신을 치료했습니다. 당신은 죽지 않아요.

그 후로 사상경찰이 내게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지만 그렇게 강압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 내 모든 걸 듣고 사상경찰은 내가 미쳐있었다고 부드럽게 결론을 내렸다. 그 말을 들으니 쿵쿵 뛰던 심장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역시 책은 이상하지 않았다. 이상하고 미친 건 나였고, 모리였다. 더 빨리 신고를 하지 못한 게 후회됐다. 사상경찰에 말에 따르면 나는 미쳐있었지만 그건 과거의 일이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 사회로 돌아오자마자 난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구인류의 흔적을 떨쳐버리기 위해 혀와 양 손목을 잘라냈다. 테디베어의 영광은 훗날을 위해 아껴놓을 셈이었다. 그렇게 돌아간 학교엔 이상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다들 나를 배척했다. 꼭 나를 구인류 취급하는 것 같았다. 나는 흥분해서 팔을 붕붕 휘둘렀지만 아무도 나에게 어떻다 할 반응을 해주지 않았다. 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듯 행동하고 있었다. 내가 구인류의 탈을 완전히 벗으면 가장 기뻐할 줄 알았던 05-352조차 나를 무시했다. 내 손목과 귀에 검지를 그었던 주제에 내 시선을 피한다. 화가 나 이게 뭐하는 행동이냐고 소리를 치려하지만 나는 더 이상 혀가 없다. 나를 대신해줄 혀들은 딴짓을 하고 있었다. 이건 악몽일 거다. 악몽이어야 한다. 그냥 집에 돌아가서, 그래, 일단 돌아가서……. 젠장, 난 손도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 손을 자처하던 05-352는 정작 필요하니 손을 거둔다. 뭉툭한 손목으로 문고리를 돌려보지만 문은 열리지 않는다. 시선이 느껴진다. 나를 건드리지도 않고 목소리를 내어 말해주지도 않지만 모두가 내게 말하고 있다. 나는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내 자리 앞을 한 아이가 차지하고 05-352는 문을 열어줬다가 곧 닫아버린다. 그게 반복되고 05-352와 나만 남았을 때, 05-352는 문을 열어놓고 가는 배려도 하지 않은 채 코앞에서 문을 쾅 닫아버린다. 나는 모리가 가르쳐준 구언어-빌어먹을-를 뱉으며 창문으로 갔다. 창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창문에 몸을 욱여넣고 발을 힘껏 굴렀다. 장벽을 짚을 손이 없어 온몸으로 충격을 고스란히 받았다. 1층 건물인 게 새삼 다행스러웠다. 거리를 걷는데 눈에 띄는 사람들마다 나를 피했다. 분명 더 이상 미친 게 아닌데, 미칠 것 같았다. 나는 사회를 위해 구인류를 신고했는데, 사회는 내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 내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건 내 도움 또한 필요 없다는 뜻이고, 그 말은 난 더 이상 이 이상적인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날 피할 이유는 없었다. 난 사회를 위해 모든 것을 했고 사상경찰에게 구인류가 아니라는 확인까지 받았다. 이건 내가 이상한 게 아니다. 이상 사회가 순식간에 이상한 사회가 되어버렸다. 불현듯 모리에게 식별번호를 주고 구인류로 죽었던 남자가 떠오른다. 어쩌면 그게 내 머지않은 미래가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정신없이 달렸다. 공포감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흙을 뒤집어썼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죽는 죽음은 그냥 죽음을 뿐이지만, 구인류로서의 죽음은 그냥 죽음이 아니었다. 사회에서 거절당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나는 구인류도 아니었다. 사상경찰에게 직접 와서 내가 구인류가 아니라는 걸 말해달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말을 못 하는 05-352는 학생을 시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무도 내게 도움을 주지 않을 터였다. 내가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사상경찰이 주둔하는 곳은 아무도 몰랐다. 사상경찰은 신고를 받으면, 어느 순간 와 있곤 했다. 나는 일단 집으로 갔다. 아무 대책이 없었지만 구인류와 관련된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집 문고리는 다행히 잡고 돌리는 방식이 아니었다. 집은 여전히 흙으로 엉망이었다. 나는 까슬까슬한 흙을 그냥 밟았다. 구인류로 몰리게 생겼는데 피부가 녹는 일 따위에 신경 쓸 순 없었다. 모리의 방을 안 들어간 지도 4년이 다 되어갔다. 방은 허전했다. 구인류의 잔해들로 꽉 차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텅 비어 있었다. 아마도 사상경찰이 다 수거해갔을 테지만 나는 열심히 모리의 흔적을 찾았다. 당연하게도 남아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멍하니 주저앉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앞만 쳐다보고 있는데 눈에 그렇게도 싫어했던 흙이 들어왔다. 흙, 흙, 흙. 모리는 저 많은 흙을 어디서 구해왔을까? 며칠 전만 해도 없던 흙들이었다. 모리의 방에 있었을 것 같지도 않다. 모리의 몸에서는 항상 옅은 흙먼지 냄새는 났지만 저렇게 짙은 흙냄새가 나지는 않았다.

집밖으로 나와 눈을 감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익숙할 수밖에 없는 냄새. 항상 느껴지지만 매번 부정했던 냄새는 집밖에서도 여전하다. 난 냄새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이 냄새는 항상 나던 것이었는데 왜 우리는 ‘흙먼지 냄새가 날 것’이라고 발표가 난 날엔 유난스레 굴었는가? 딛고 있는 장벽 밑에도 흙은 있지만 흙냄새는 거기서 나는 것이 아니었다. 어린 날, 사회의 시선을 느끼지 못했을 때엔 장벽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아본 적도 있었다. 장벽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 흙냄새를 따라 계속 걸었다. 다다른 곳은 발밑이 아닌, 눈앞에 있는 장벽이다. 책에선 이 장벽 때문에 아무도 건너편으로 가지 못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흙냄새는 계속, 강하게 나고 있었다. 손을 뻗었다. 장벽은 없었다. 아아, 난 이제 아무것도 모르겠다. 눈앞의 장벽은 없었고 발밑의 장벽은 끝났다. 나는 흙을 발로 디뎠다. 집에서의 흙은 까슬까슬했는데 어째 지금 밟고 있는 흙은 폭신폭신하게 느껴졌다. 아, 이게 피부가 녹고 있는 느낌이구나. 나는 계속 걸었다. 사상경찰을 어떻게 해야 만날지는 몰랐다. 어쩌면 사상경찰을 만나기 전에 내 발이 다 녹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기분 좋을 상황이 아닌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흙냄새가 머리를 마비라도 시키는 것 같았다.

해가 지고, 해가 떴다. 내 피부는 생각보다 두꺼운 모양이었다. 지난밤 동안 걸어오면서 현실에선 볼 수 없는 것들을 봤다. 하나는 테디베어 산을 본 것이다. 영광을 누려야 할 테디베어들이 싸늘하게 식어 산더미마냥 쌓여있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코웃음을 치며 계속 걸었다. 다음에 본 건 더 이상했는데 파괴의 근원인 흙 위로 녹색의 막대기가 꽂혀있었다. 그 위로 무엇인지 색색의 것이 얹혀있었는데 그 모양새가 꽤 예뻤다. 아니, 순간 홀릴 정도로 예뻐 손목을 가져다 댈 뻔했다. 내 손이 되어줄 이도 없는 상황에서 팔이 더 짧아질 순 없다는 생각에 다행히 손목까지 잃지는 않았다. 흙 위에 난 것이라고 흙과 다르진 않을 것이었다.

흙냄새는 환각까지 보여주는 듯했다. 웬 동네 하나가 보였다. 장벽도 없는 흙 위에 동네라니 가짜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가까이 다가갔다. 가까이 갈수록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색색의 것과 비슷한 느낌의, 그러니까 아름다운, 구언어로 선율이라 하는 것. 선율이 들려왔다. 나는 소리의 근원을 찾으려 두리번거렸다. 흙냄새완 달리 익숙하지 않아 어디서 들려오는 건지 쉽사리 짐작이 가지 않았다. 나는 눈앞에 보이는 집의 창문으로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황급히 숙였다. 집 안에는 구인류의 것들이 빼곡히 차 있었다. 소파, 티비, 에어컨…… 그밖에 모리가 말하지 않아 알 수 없는 수많은 구언어들까지. 순간 멍해졌지만 난 이미 흙도 밟고 있는 상태였다. 용기를 내어 바로 옆 창문을 봤다. 찾아 헤맨 게 무색하게도 소리는 그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피아노였다.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한 소녀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모리가 말한 꽉 막히고 답답한 느낌이 아니라 숨이 트이는 느낌이라는 걸, 알 것도 같았다. 소리만 다를 뿐 아니라, 모리가 마구잡이로 눌러댔던 불협화음이 아닌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음들. 소녀의 손가락을 쳐다봤다. 한두 개밖에 남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 소녀의 손은 손가락 열 개가 모두 달려 있었다. 말도 안 됐다. 손가락이 모두 있는데 조화를 이룰 리가 없다. 내가 쳐다보는 걸 느꼈는지 소녀가 창문께로 다가온다. 소녀가 창문걸쇠를 풀자 나는 창문을 열고자 팔을 들었다. 내 얼굴로 가 있던 눈동자가 도르륵 굴러 내 손목에 닿고, 소녀는 비명을 질렀다. 창문 밖에서도 다 들릴 정도로 크게, 크게. 난 그제야 소녀가 구인류인 것을 알았다. 여기는 구인류가 도망 나와 꾸린 마을일까. 그렇다면 장벽도 없이 흙 위에 바로 지어진 동네가 이해가 갔다. 구인류라면 이젠 지긋지긋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뒤로 돌았다. 내 발 바로 앞에, 딱딱한 군화가 있었다. 사상경찰. 언제 온 건진 모르겠지만 나는 내 목적을 이룬 셈이었다. 사상경찰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내 발이 녹고 있었다. 저 구인류 소녀 따위에게 시간을 빼앗길 순 없었다. 지난번 사상경찰과는 다른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이번 사상경찰이 내 의도를 알아듣길 바라며 입을 벌려 꺽꺽 소리를 질렀다. 사상경찰은 내게 들고 온 막대기를 겨눴다. 저것의 이름은 몰라도 무슨 일은 하는 건지는 안다. 모리를 잡으러 온 사상경찰 손에도 저런 게 있었다. 사상경찰은 날 구인류라고 착각하는 듯했다. 나는 구인류는 내가 아니라 저 소녀라고 창문을 향해 팔을 들어올렸다. 소녀는 여전히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사상경찰은 소녀를 봤음에도 막대기를 돌리지 않았다. 나는 구인류가 아님을 증명하려 양팔을 들어올렸다. 입을 열어 반쯤 날아간 혀도 보여줬다. 왜 저 막대기를 치우지 않는가 의아할 때쯤 사상경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상경찰은 구인류 마냥 온 몸이 멀쩡했다. 귀도 두 개, 팔도 두 개, 눈도 두 개……, 그러고 보니 전에 본 사상경찰은 몸이 어떠했는가. 또 하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은……

구역 밖 구인류 발견. 즉시 사살.

사상경찰은 내게 저런 소리를 했다. 우리가 퇴화하고 있다는 모리의 말이 스쳐가는 와중에 모리의 방에서 났던 큰소리가 한 번 더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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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륙으로 왔다. 지긋지긋한 바다를 이젠 더 이상 안 봐도 된다. 오빠는 바다에서 죽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아버지도, 아버지의 아버지도 모두 바다에서 마지막을 매듭지었다. 나도 바다에서 죽을 운명이었다. 운명의 굴레란 게, 제3자에겐 피식 웃고 말 아침드라마 소재거리밖에 안 되겠지만 당사자에겐 ‘운명’이란 말도 생각나지 않는다. 너무 당연해서, 운명이라고 생각조차 못 하는 것이다. 나도 그리 길진 않은 삶이 운명에 옭아 매여 있었다는 걸 며칠 전에야 알았다. 덜컹이는 버스를 타고, 바다가 보이지 않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이제까지 운명에 얽혀 있었고, 방금 그것을 내 손으로 끊어냈다는, 그런 생각.

아버지에 이어 오빠가 죽자 엄마도 따라 죽었다. 엄마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도 미동도 없었다. 오빠의 죽음에 나도 적잖게 충격을 받았지만 그러한 엄마의 반응은 새삼스러웠다. 엄마는 과연 몰랐을까? 바다 옆에 있는 오빠는 결국 죽을 운명이었다는 것을. 오빠의 장례가 끝나고 나는 말했다. 내륙으로 가자고. 어디든 상관없었다. 내륙이라 부를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았다. 엄마는 오빠가 죽은 후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

기가 막힐 정도로 시원한 대답이었다.

 

2.

푸른색은 보기 힘들었다. 검고, 하얀, 무책색의 색들, 혹은 간간이 껴 있는 초록 계열 정도. 내가 볼 수 있는 색의 다였다. 엄마는 평생을 보고 살던 푸른색을 못 보자 불안한 듯 보였지만 내가 보기엔 적응의 문제였다. 전학 수속을 밟았다. 이맘때쯤 전학을 오고 가는 일이 흔치 않다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바다냄새 난다.”

전학을 와서 처음 들은 말이었다. 바다냄새라는 게 무엇을 말하는지는 몰랐지만 어쨌든 한 애가 그렇게 말하자 다들 코를 킁킁이며 긍정을 했다. 나도 덩달아 내 팔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아봤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버스에서 처음 내리자 든 생각은 이상한 냄새가 난다, 였다. 처음 보는 높은 건물이 눈을 사로잡았지만 그것도 냄새 뒤의 반응이었다. 나한텐 시각적인 것보다 후각적인 것이 더 자극적이었다. 처음 맡아보는 냄새라 무어라 표현도 못하겠지만, 묘했다. 시원하면서, 텁텁한,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냄새. 내륙 애들도 내게서 그 비슷한 냄새를 맡고 있겠다 싶었다.

 

3.

엄마는 시장에서 생선장사를 했다. 내륙까지 와서 그래야 하나 싶었지만 엄마가 할 수 있는 건 생선장사뿐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륙에도 생선이 살아 들어오는 게 신기했다. 팔아야 할 생선 수는 더 적은데, 어째 엄마는 내륙 시장에서 더 바빠 보였다. 엄마는 내륙에선 뭐든 빨리 상하니 빨리 팔아치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것도 죽었을 때 말이지, 살아있는 물고기가 뭐 상할까 싶었지만 역시 말하지 않았다. 활달한 척 하는 입에 비해 눈이 너무 불안해 해 이질적이었다. 엄마 이야기다.

학교가 파하면 엄마 옆에 앉아 시간을 죽였다. 하는 일은 없었다. 그냥 자그마한 평상 위에 앉아 장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다른 애들은 야자니 학원이니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학교에 계속 앉아 있기는 싫었고 학원 갈 돈은 없었다. 아버지와 엄마는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한 번도 꺼낸 적 없다마는 사실 오빠나 나나 돈이 부족하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았다. 반찬 세 가지가 동시에 올라오는 일이 없던 집이었다. 그나마 먹고 살 수는 있게 했던 아버지와 오빠가 연이어 죽고 또 먼 내륙으로 이사를 왔으니 엄마의 주머니 사정이야 안 봐도 뻔했다. 월셋방 보증금으로 내륙의 월셋방 보증금을 메웠다. 그러고도 부족한 것을 엄마가 주인에게 사정사정을 해 적당히 에누리를 했다. 사실 내륙시장에 자리를 잡은 것도 기적이었다. 죽은 엄마가 이 정도 의지를 보이는 것에 나는 감사했다.

 

4.

내륙 애들은 이상했다. 이제껏 사교성은 꽤 괜찮다 자부했는데 내륙에 와선 아무와도 친해지지 않았다. 말을 걸면 대답을 해준다. 필요하면 말을 건다. 내륙 애들이 내게 보이는 성의는 거기서 끝났다. 왠지 모르게 벽을 치는 걸 나는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차라리 싸우면 싸웠지 이렇게 껄끄러운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나는 반 애들한테 말을 열심히 걸었다. 애들은 말을 시키면 시키는 대로 대답을 해줬다. 물론 질문이 되돌아오진 않았다. 그날 난 내가 전학 온 첫날 바다냄새가 난다며 살갑게 웃던 애가 똑같은 표정으로 짠내가 난다고 하는 걸 들었다. 어쩌다 듣게 된 그 한 마디는 모든 말을 의식하게 만들었다. 그러고 나니, 눈이 새로 트였다. 애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시선은 온통 나에게 향한 채였다.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책잡힐 건덕지라도 있으면 몰라, 난 전학 온 첫날부터 고립되어 있었다.

 

5.

생선들의 눈은 흐리멍텅했다. 사실 바다에서나 내륙에서나 맨날 보는 생선의 눈이었지만, 감정이 감정이라 유독 생선들의 눈이 흐려 보였다. 처음으로 생선이 좀 불쌍해보였다. 죽을 거면 다른 생선한테나 잡혀 죽지 왜 여기까지 잡혀 와서 이럴까.

 

6.

평소처럼 평상에서 뒹굴거리는데 손님이 왔다. 엄마가 화장실에 간 터라 내가 계산을 했다. 익숙하게 비닐봉지를 묶고 건네는데 손님 뒤로 눈에 익은 얼굴이 보였다. 이름은 모르겠고, 우리반 애였다. 애가 비죽하니 웃고 있었다.

“안녕히 가세요.”

원래는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지만 특별히 안녕히 가시라 인사했다.

 

7.

다음날 학교를 가니 애들 눈에서 적대감이 뚜렷해진 게 보였다. 모세의 기적도 아니고 가는 길마다 애들이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너 생선장사 한다며-

애들이 뭉쳐 있는 곳에서 희미하게 나온 소리였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터졌다. 어제 그 애를 보고 설마 했는데 진짜 이런 전개일 줄 몰랐다. 내륙 애들 수준이 눈에 훤히 보였다. 평생 고기만 먹고 살 애들이었다. 밥상에 올라오는 생선이 거저 탄생하는 건 줄 아나?

화는 안 꺼지는데 시간은 똑같이 흘렀다. 선생님이 들어오고 130페이지를 펴라는 말에 애들이 키득였다. 교과서를 넘기다 알았다. 교과서 끄트머리, 그러니까 페이지 부분이 죄다 잘려 있었다. 짜증이 갑자기 치솟아 뒷목이 뭉근하게 당겨왔다. 책상에 올려진 다른 교과서도 마찬가지였다. 확실했다. 그냥, 따돌리려는 거다. 신고는 못 할 정도로, 유치하게. 서랍 안 다른 교과서들도 보려고 책상께로 고개를 숙이는데 짝이 “아, 비린내.”라며 책상을 뗀다.

점심때까지 목이 뻐근했다. 고기도 누린내가 난다며 안 먹을 듯 굴던 새끼들이 급식으로 나온 전어를 뼈째로 꼭꼭 씹어 먹고 있는 걸 보자니 배알이 뒤틀렸다.

 

8.

그놈의 비린내, 비린내. 내 이름은 아예 비린내가 되어 버렸다. 내 몸에선 아무 냄새도 안 난다. 이건 사실이다. 살에 아무리 코를 처박고 냄새를 맡아도 무향무취였다. 그런데도 내륙 애들은 자기들은 머리를 이틀 만에 감았네 사흘 만에 감았네 거리며 내겐 냄새 운운했다.

 

9.

그쯤에서 엄마는 내 일들을 대충 눈치 챘다. 며칠 간 들떠서 떠들던 학교 얘기를 일순간 끊어버리니 들킬 만도 했다. 엄마는 무심한 말투로 내게 일어난 일들을 캐물었다. 빨간색 고무장갑을 낀 손은 물고기 꼬리를 잡은 채였다.

애들이 생선냄새 난대.

너한테?

응.

엄마는 의아한 얼굴로 들고 있던 물고기를 얼굴로 가까이하곤 냄새를 맡았다.

아무 냄새 안 나는데? 고무 냄새가 더 나겠다.

그러게. 나도 고무 냄새가 더 날 텐데. 학교에서 의연한 척 하고 있었지만 내심 신경 쓰고 있다는 걸 나 자신에게 들켰다. 쪽팔렸다.

 

10.

이게 뭔데?

뭐긴 뭐야, 비누지.

아닌 척 하고 있던 엄마는 나 못지않게 신경을 썼는지 다음날 아침에 비누를 내밀었다.

나 잘 씻고 다녀.

그걸 누가 몰라. 아침에 괜히 도와준답시고 여기저기 만지니까 그러는 거 아냐. 학교 가기 전에 손 씻고 가.

아침엔 장사준비를 하는 엄마를 보며 탁상에 앉아 발만 동동 굴리는 게 다였지만 나는 고분이 알았다며 머리를 끄덕였다.

받은 비누는 익숙한 초록색, 오이비누였다. 쓸데없이 딱딱하고 거품도 안 나는데다가 씻고 나서도 미끌미끌한 게 좋아하는 비누는 아니었지만 군말 없이 받았다. 세탁비누를 제외하곤 오이비누가 제일 쌌다. 우리 처지에 샴푸도 사치인 걸 안다. 엄마는 샴푸 냄새가 좋네- 라며 하나뿐인 샴푸를 같이 쓰는 척을 하지만 난 왜 엄마의 머리가 그렇게 뻣뻣한지 안다.

 

11.

애들한테 맞춰주는 기분이라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엄마에게 비누를 받은 날 이후로 학교 오기 전 꼬박꼬박 손을 씻고 왔다. 짝 코앞에서 은근하게 팔을 흔들기도 했다. 그럴 때면 왠지 향수를 뿌린 듯해 기분이 살짝 나아지기도 했다. 애들이랑 어울리는 건 포기했다. 학교생활에서 친구가 없으면 신경 쓰이는 일이 자주 벌어지지만, 그뿐이다. 내게 아무 이유 없는 적대감을 보이는 이들과는 굳이 힘들여 더 나은 관계를 맺을 생각은 없었다.

 

12.

아니, 사각사각, 정신이 갉힌다. 수군수군거리는 저 입들이 신경 쓰인다. 그래, 친구를 맺을 생각은 없지만 신경은 쓰이는걸. 내륙 애들은 답잖게 소심했다. 걔네는, 아무 것도 안 했다. 그러니까, 입만 놀렸다. 수군수군, 수군수군.

 

13.

담임은 신경을 안 썼다. 정정. 안 썼다기보다는 못, 썼다. 그만큼 반 애들의 따돌림은 은근했고 사실 또 그만큼 지독했다. 대충 비린내, 비린내 거린다는 것만 알고 있던 어느 날, 구체적으로 무슨 얘기가 오가는지 알게 된 건 정말 우연이었다.

갑작스런 비가 쏟아지던 날, 우산이 없어 현관 앞을 서성이다가 반 애들 몇 명의 말을 엿듣게 된 건,

비 때문에 젖은 흙먼지 냄새가 비릿하게 올라오는 그 날,

그러니까 요는 씨발 오이비누냄새가 꼭 정액냄새 같다는 거였다.

 

14.

돌아가는 길의 푸른바다는 더없이 영롱했다. 아아, 그래. 애들이 그렇게나 찾아대던 비린내를 알 것도 같았다. 엄마 말대로다. 내륙은 뭐든 간에 잘 썩었다. 썩은 것들의 냄새는 지독하게 비렸고, 비린내는 역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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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예쁜 타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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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예쁜 타조야

 

여름이 유난히 길었다. 학교에 발을 들여놓기가 무섭게 닥치는 끔찍한 무더위에 숨이 턱 막혔다. 햇빛이 직접 닿지 않는다고 덥지 않은 건 또 아니었다. 오히려, 바깥보다, 더웠다. 계단을 오를수록, 2학년 층에 가까워질수록 숨이 짧아졌다. 계단이 끝나자 도망치듯 반으로 뛰어 들어갔다. 의자를 빼 앉고 숨을 몰아쉬는데 문득 팔이 따가웠다. 아니, 따갑다는 걸 알아챘다. 손에 들린 케이크 상자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불긋한 팔을 손으로 매만졌다. 뜨끈뜨끈했다. 그 짧은 등굣길에 데었나 보다. 이상하게 데는 순간은 몰랐다. 난 항상 그 순간이 지나고서야 벌겋게 화상을 입은 걸 발견했다. 팔이 익은 걸 보니 케이크가 걱정됐다. 녹지는 않았을까, 상자를 열고 케이크를 살폈다. 다행히 케이크는 집에서 내올 때 그대로였다. 가슴이 답답할 정도의 더위는 내게만 해당되는 모양이다.

여름. 그 발음을 좋아했고 그 계절을 좋아했다. 딱 일 년 전까지는 그랬다. 여름에 허덕이기 시작한 건 작년부터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태껏 못 느끼던 더위를 작년부터 느끼기 시작했다. 추위에나 약하지, 더위에 약하지 않았다. 분명 그랬는데, 체질이 옮은 것 같다. 이게 다 내 예쁜 타조 탓이다. 내 예쁜 타조는 더위에 약했다. 더위에 맥을 못 추는 타조를 보고 있자면 나까지 열이 차올랐다. 열이 오르기 시작하면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무기력은 곧잘 우울로 번졌다. 여름은 끝날 기미가 안 보이는데 나는 너무 무방비하기만 했다.

 

예쁜 타조가 있다. 내 눈에는 더 예쁠 수가 없는데 남들 눈엔 꼭 그렇지만은 않은가 보다. 내가 예쁘다고 말만 하면 다들 혀를 내둘렀다. 나도 처음부터 마냥 예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점잖게 그런 사람들을 속으로만 비웃어주었다. 타조의 예쁨을 논하기 이전에, 나는 타조를 만나면서 사람 한 명과 사람 한 명이 만나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애당초 살던 곳도 달랐는데 어쩌다가 같은 학교를 지원했으며, 또 같이 붙은 것은 어떻고, 또 어쩌다가 같은 반, 그것도 짝이 되었을까. 아니, 그전에 같은 해에 태어난 것, 같은 나라에 태어난 것,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같은 세기, 어쩌면 태어난 것 그 자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우연인지는 몰라도 내가 필연이라고 착각할 만한 수많은 우연이 겹쳐져 타조와 내가 만났다. 조금만 삐끗했어도 타조와 나는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을 것을 알기에, 이런 생각을 하면 현기증과 애틋함이 동시에 피어올랐다.

첫인상은 밍밍했다. 타조는 딱 열일곱 살 여자애였다. 외모도, 체구도 그럭저럭 평균에 속하는 타조가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입학하고 채 한 달이 안 되었을 무렵이었다. 그 전까지 타조도 나도 짝이라는 의무감으로 말을 섞곤 했지만 영양가 없는 내용에서 정말 의무적인 티가 났다. 짝을 바꾸기까지 며칠 안 남은 그때, 타조가 새삼스레 눈에 찼다. 타조는 바뀐 게 없었다. 그날 아침도 입학 첫날이나 다를 바 없는 어색한 분위기로 몇 마디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눴고 여전히 타조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어제와 같은 타조를 두고 갑작스레 오늘 묘한 떨림을 느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난 그래서 당연히 스쳐지나가 으스러질 알량한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우습게 타조는 몇 개월이 지나도 내 시야에서 나오질 않았다. 난 그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챘다. 타조가 내 타조가 된 게, 딱 그 무렵, 여름이었다. 자리는 달마다 바뀌었지만 이상하게도 타조와 나는 유독 짝이 자주 걸렸다.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게 당연했다. 반에서 매일 보다보니 대화도 제법 매끄러워졌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타조와 내 세계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게 느껴졌다. 타조와 나는 완전히 반대였다. 표면적으로는 우선 어울리는 친구들부터가 달랐다. 처음에 난 그 이유를 학기 초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분위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글쎄. 사실 난 타조의 친구들과 상성이 맞지 않았다. 타조도 내 친구들에게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밖에도 속속들이 파고들수록 반대되는 것들만 나왔다. 좋아하는 색깔, 영화 장르, 과목에서부터 노래 취향, 모자 종류, 심지어 좋아하는 이불 감촉까지. 사소한 것들로만 그치지 않았다. 종교에 대한 생각은 아예 달랐고 기본적인 가치관과 신념엔 공통점이 없었다. 윤리적 딜레마를 놓고는 며칠이나 으르렁대기도 했다. 하루는 국가를 읽고 왔는지 철인정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어오기에 손을 내저었다. 국가관까지 다르면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게 신기할 것 같았다. 그 정도로 달랐다. 타조와 난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이렇게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데 마주 앉아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타조와 엇갈리면 엇갈릴수록, 우연이 아니고서야 만날 일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 안에서 타조는 점점 예뻐졌다. 나도 모르는 새였다. 내가 눈치 챘을 땐, 이미 타조는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칠 정도로 예뻐진 후였다. 평상시와 같이 대화를 하다가 눈이 마주친 순간, 당혹스러울 정도의 더위가 훅 끼쳐왔다. 무더위가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덥고, 더웠다. 타조의 여름은 끝난 지 오래인데, 내 여름은 늘어지기만 했다. 그게 조금 억울했지만 감정 자체가 일방적인 걸 알았기에 타조에게 어떻다 할 표현은 하지 않았다. 따라서 바라는 것도 없었다. 그냥, 더위를 견뎠다. 그렇게 잔잔하게 일 년이 갔다. 겨울방학은 순식간에 다가왔다. 방학 전날, 타조와 담담하게 인사를 나누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울었다. 울면서도 왜 우는지 몰랐다. 답답했다. 방학의 설렘은 다 어디로 가고, 타조가 없을 세 달이 벌써부터 막막했다.

타조가 눈앞에 없으면 당장 눈앞이 깜깜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한 달은 괜찮았다. 타조의 유무와는 별개로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것으로 충분히 신났고, 친구들과 여기저기 쏘다니느라 타조 생각을 할 정신도 없었다. 타조가 내 머릿속을 엉망으로 뛰어다니기 시작한 건 두 달째부터였다. 타조가 계속 생각났다. 솔직히 방학을 계기로 타조에게 가는 감정이 좀 가라앉진 않을까, 기대를 했다. 타조를 예뻐한다는 것이 나한텐 문제가 될 수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한테도 그렇게 비친다는 법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조용히 묻히길 바랐는데, 난 내 생각보다 타조를 더 지고지순하게 예뻐했나 보다. 타조가 너무 보고 싶었다.

타조가 정신없이 쪼아오던 학기 중과는 달리 길고 긴 겨울방학은 혼자 차분하게 생각해볼 시간이 많았다. 현실을 직시해 식을 줄만 알았던 머리는 차분히 낳은 게 결국 더 깊은 감정이었다. 나도 그에 배신감을 느끼는데 타조는 오죽할까 싶었다. 타조는 내 마음을 알지도 못 할 테지만, 그냥 미안했다. 미안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도 미안했다. 나는 타조가 내가 타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된 후에 느낄 감정을 상상해보려고 애썼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 마음도 어지러운데 타조의 입장을 헤아리다니 말이 안 됐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왔지만 난 타조의 얼굴을 마주 볼 수가 없었다. 원래 잘 못 보긴 했지만, 정도가 달랐다. 얼굴을 보기 부끄럽다는 게 내 나름의 핑계였지만, 사실 이유는 따로 있었다. 타조의 얼굴이 시야에 스치기만 해도 가슴이 쿡쿡 찔려왔다. 죄책감이나, 뭐 그런 감정들 같았다. 그게 아니고서도 난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꼭 내 얼굴에서 무언가를 읽을 것 같았다. 좁은 반 안이지만 난 봄방학이 시작되기 전까지 내내 타조를 피해 다녔다. 어쩌다가 마주치기라도 하면 타조의 발목께로 시선을 처박았다.

감정이 들쭉날쭉했다. 타조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 웃음이 실실 새어나오나 싶으면 곧 같은 이유로 기분이 바닥에 내리꽂혔다. 감정의 가닥을 못 잡아 허덕이는 와중에도 가장 힘든 건 내가 노골적으로 피해 다니는데도 타조가 내게 먼저 말을 거는 일 따윈 없다는 거였다.

 

긴 방학이 끝이 나고, 새학기였다. 타조와 난 반이 갈렸다. 과가 다르니 당연한 결과였다. 아마 앞으로 같은 반이 될 일도 없을 것이었다. 껄끄러운 감정을 더 이상 느끼지 않아도 되어서 좋아해야 하는지, 타조를 만날 일이 없어 슬퍼해야 하는지 몰랐다.

반이 바뀌자 타조와 마주치는 빈도가 현저히 줄었다. 그도 그럴 게 하필 반도 끝에서 끝이었다. 누구 하나 작정하고 찾아가지 않는 이상 보기는 힘들었다. 어쩌다 보게 되면 말을 걸었지만 시들한 반응에 말을 더 얹진 못 했다. 나는 좀 당혹스러웠다. 타조가 꼭 대화를 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알던 타조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그 변화를 외관적인 것에서 찾으려 했다. 타조는 긴 방학 동안 머리를 싹둑 잘라버렸는데 그 탓에 분위기가 바뀐 건지, 아니면 그 잘린 머리카락에 내가 아는 타조의 모습까지 같이 흘러가버린 건지 정말 생판 남 같았다.

머릿속은 혼란했지만 눈으론 끊임없이 타조를 찾았다. 타조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멀리서만 바라보자 작년에는 못 봤던 것들이 함께 잡혔다. 타조는 친구가 많았다. 내가 예뻐하는 것과는 별개로 타조가 객관적으로 그리 좋은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타조 주위엔 언제나 친구들이 북적거렸다. 타조가 친구들과 얘기하며 웃는 것을 보자 속이 쓰렸다. 문득 타조가 내게만 안 좋은 성격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조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다. 작년까지는 ‘같은 반 친구’라는 범주에 간신히 숨어 있었지만 이젠 아니다. 그래도 나는 타조와 내가 나름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타조의 태도를 보아하니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타조는 겁이 많아졌다. 말을 걸면 불편해 하는 게 얼굴에 드러났다. 한 발자국 다가가면 의식인 건지 무의식인 건지 꼭 그만큼 발을 뒤로 물렸다. 처음엔 타조가 무언가를 알아챘나 싶기도 했지만 자기가 기분 좋을 땐 먼저 말을 거는 걸 봐서는 그것도 아닌 듯했다. 난 매일같이 다른 타조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타조의 행동은 짧은 하루 안에서도 수없이 달라졌다. 타조가 먼저 말을 건 그 다음 쉬는 시간에 내가 말을 붙여도 타조는 방어적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속이 아릿했지만 얼굴근육은 제멋대로 웃음을 지어 보냈다. 사실 타조의 발끝만 봐도 그랬다. 파블로프의 개, 어쨌거나 개만도 못한 조건반사였다.

 

예쁘고, 비었다. 그게 내 타조였다. 타조는 멍청하다. 타조계의 아인슈타인이 들으면 발칵 화를 내겠지만 일반적으론 그렇다. 내 예쁜 타조 또한 마찬가지였다. 타조는 멀쩡해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하얗게 탈색된 뇌를 뽐냈다. 뇌 전시회도 한두 번이지 매일 가다보면 질릴 만도 한데 깃털을 다듬는 타조가 너무 예뻐 나는 군소리 한 번 못 했다.

타조는 내 세계에서 가장 멍청했다. 장학금이란 장학금은 다 쓸어가면서 왜 저럴까 싶기도 했다. 무정한 내 타조는 내 세계에 일말의 관심도 안 보였다. 타조와 내 세계에 관련된 얘기를 할 때면 난 꼭 벽에다 말하는 기분이 들었다. 타조는 락에 관심이 없고, 배구에 관심이 없고, 공학에 관심이 없었다. 이것들로만 끝나면 취향의 문제라고 여겼겠지만 그게 아니었다. 타조는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그걸 숨길 줄 몰랐다. 난 타조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오래였지만 갈수록 타조의 세계에서 머무르는 게 괴로워졌다. 일방적인 애정이었다.

“너 진짜 착하다.”

타조가 자주 하는 말이었다. 난 이 말을 들을 때마다 타조의 뇌가 어렴풋이 눈에 밟혔다. 착하다. 그 말을 하며 환히 웃는 타조는 예뻤지만 동시에 못났고, 미웠다. 내가 타조에게 쏟아 부은 모든 관심과 애정이 착하다, 라는 말로써 부정되었다. 타조는 내가 제게 해주는 것들이 꼭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내가 타조를 위해 하는 일들, 예컨대 타조가 조금이라도 기분이 안 좋아 보일 때면 상담가 역을 자처하거나 감기라도 든 날엔 보건실에 다 떨어진 감기약을 사러 20분을 걸어 약국을 다녀온다거나 타조가 먹고 싶다고 흘린 달달한 간식들을 다음날 당연하게 건넨다거나 하는 일들을 모두에게 해주면……, 속된 말로 나는 호구였다.

“너 진짜 착하다.”

그런 말을 하는 타조가 더 멍청한지 아무 말도 못 하고 웃는 내가 더 멍청한지는 잘 몰랐지만 아무튼 사람 하나 호구되기는 참 쉬웠다.

 

호구짓도 타조 얼굴을 봐야 하는 거지 타조 코빼기도 제대로 못 보는 상황에선 모든 게 부질없었다. 호구짓을 넘어서, 타조를 예뻐한다는 것 자체가 부질없게 느껴졌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실제로 부질없는 일인 건 맞았다.

작년 언젠가, 웬일로 쉬는 시간에 엎어져 자고 있지 않은 타조가 내게 물어왔다.

“야, 동성결혼 합법화되면 어떡하냐?”

월요일 1교시 쉬는 시간에 던지는 질문치곤 난데없었다. 아, 토론 주제가 나온 뒤긴 했다. 동성혼 법제화.

“한국에서 결혼하나, 나가서 결혼하나, 할 사람은 하겠지.”

타조와 무언가를 놓고 얘기하면 항상 대립된 의견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런 주제를 놓고 얘기하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불법도 아닌데 무슨 합법화야.”

하고 싶은 말은 많았는데 쳐다본 타조의 얼굴이 영 혼란스러워서 한 마디만 퉁명스레 덧댔다.

“아니, 유전자가 부딪히잖아. 아기한테 안 좋은 거 아냐? 그러다가 나중엔 친남매끼리 결혼한다하면 어떡해?”

“농담이지?”

책상에 엎드려 있던 나는 반쯤 몸을 일으켜 타조를 쳐다봤다. 타조가 농담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닌데 한번 농담을 던지면 사람을 참 당황스럽게 했다.

“어?”

불행히도 타조는 진지했다.

“거기서 동성은 남성 여성 그 성 아냐?”

“아…….”

타조의 목소리에서 머쓱함이 묻어나온다.

“그리고 동성동본 금혼 폐지된 지가 언젠데…….”

내 타조는 말이 없다. 나는 말을 골랐다. 그래도 정리가 안 돼서 입을 꾹 다물고 있으려니 타조가 가만히 덧붙인다.

“무슨 동성이든 동성은 안 좋은 것 같아.”

그대로 반을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처음으로 타조와 같이 있는데 숨이 막혔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타조의 말이 맴돌아 타조 쪽도 못 쳐다본 게. 저 깨끗한 뇌는 과연 교과서 지식만 담아도 벅찬 건가 향할 대상 없는 화가 가끔씩 났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융합과학 시간 생물 전공인 선생님의 ‘종족 보존을 위해’ 셋은 낳으라는 농에 말갛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타조를 보곤 알았다. 타조는 애초에 자기가 하는 멍청한 말들을 알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타조를 보는 게 갈수록 껄끄러워지고 또 그만큼 발목께로 시선을 박는 만큼 양말을 매일 갈아 신는구나 하는 멍청한 생각만 늘어갔다. 점점 타조화가 되고 있었다.

 

케이크를 톡톡 건드리다 고개를 돌려 달력을 바라봤다. 달력 곳곳엔 반 아이들의 생일이 적혀있다. 다른 반이라 여기엔 없지만, 사실 오늘은 내 예쁜 타조의 생일이다. 문득 내 생일 생각이 스쳤다. 성격 자체가 워낙 무심한 터라 타조에게 거는 기대는 없었다. 그냥, 작년에 타조의 생일을 챙겨줬으니 내 생일엔 축하한다는 말 정도 듣지 않을까 했다. 학교에 도착해 떨어지는 생일축하인사를 받으면서도 나는 열심히 타조만을 찾았다. 타조는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날 하루 종일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게 기대하지 않았다고 실망까지 안 하는 건 아니었다. 타조는 사흘 후 찾아와 “생일이었다며.”라며 어색하게 웃었다. 누구한테 얻어들은 말투였다.

“선물이야. 잘 어울릴 것 같아서.”

타조가 내민 건 귀걸이였다. 귀걸이는 주인 마냥 예뻤다. 좋긴 좋은데 뭔가 느낌이 싸했다. 애매하게 웃고 있는 나를 보고 타조는 “한번 해봐.”라며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머리카락을 앞으로 넘겨 귀를 가리고는 웃어보였다.

화장실로 곧장 향하면서도 이게 맞는 건가 싶었다. 거울 앞에서 머리카락을 넘기고 귀를 살폈다. 타조의 무심은 어디까지인지 모르겠다. 귀걸이 침 끝은 뭉툭했다. 한숨이 샜다. 명찰을 빼 날카로운 핀을 더듬었다. 손가락을 파고드는 핀 끝이 유독 아렸다. 손으로 귓불을 더듬어 대충 위치를 가늠하곤 핀을 찔러 넣었다. 사람의 살이 이렇게 약하나 싶을 정도로 핀은 쿡 들어갔다. 일부러 몇 번 휘젓다가 핀을 빼내곤 귀걸이를 끼워 넣었다. 말만 끼워 넣은 것이지 얇은 핀이 지나간 자리는 보이지도 않아서 새로 길을 뚫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아프지 않았는데, 거울 안 나는 귓불이나 눈이나 그 색이 같았다.

“오, 역시 잘 어울리네.”

타조의 감상평이었다. 타조의 긴팔이 새삼스럽게 다가왔고 나는 정말 울고 싶어졌다.

그날 하루 종일 귀에서 심장이 뛰었다. 귀걸이는 예쁜 값을 했다. 귓불이 홧홧했다. 일과 땐 욱신거리기만 하더니 저녁을 먹고 나선 급기야 온몸에 피가 죄다 귀로 쏠리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쿵, 쿵, 쿵. 심장이 너무 가까웠다. 감싸 쥔 귀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타조로 인한, 또 새로운 형태의 더위. 하루가 끝났을 때 난 간만에 좋은 핑계를 쥐고 울 수 있었다.

 

귀걸이가 자리를 잡은 지는 몇 개월이 넘었지만 그 오만한 놈은 날 여태껏 앓게 했다. 뜨거운 귀 때문에 난 정신이 없었고 그 탓에 타조를 예뻐한다는 것에 회의가 종종 일었다. 뜨거움 감정을 뱉어내려고 노력한 적도 몇 번 있었다. 제일 먼저 시도한 방법은 얼굴을 안 보는 것이었다. 어차피 올해로 들어오고 나선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볼 일도 없는 타조였기에 쉬울 것이라 생각한 방법은 일주일을 못 갔다. 상사병으로 죽는 고전소설의 인물들을 비웃는 게 아니었다. 시도 때도 없이 보고 싶단 생각이 불쑥불쑥 들어 아무것도 못 하느니 차라리 옆에서 마음고생 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자기합리화 끝에 난 타조를 피해 다니지는 않되 말도 섞지 않기로 했다. 타조의 반응이 싱거워진 이후로 하려던 말을 삼킨 적은 많은 터라 이번엔 어렵지 않겠다 싶었는데 또 문제가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타조는 자기 기분이 좋으면 내게 말을 건다.

 

케이크를 사놓고 기껏 한다는 고민이 줄까, 말까였다. 사오긴 사왔는데 줄 용기는 솔직히 없었다. 상자 손잡이를 몇 번이나 잡았다 놓았다 했더니 손바닥에 그새 줄이 죽죽 그여 있었다. 손, 손바닥. 큰일이다. 무엇을 해도, 무엇을 봐도 거기엔 타조가 있다.

장난기가 많다는 말을 자주 들어왔지만 타조에겐 그 어떤 장난도 쉬이 칠 수가 없었다. 농담에도 진심이 섞여 있을까봐 말을 아꼈다. 타조 앞에만 서면 ‘친구로서’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감도 안 잡혀 그 어느 것도 못 했다. 다른 애들 엉덩이야 툭툭 치지만 타조는 어깨를 톡톡 건드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무력해진 나는 가만히 손을 내미는 것밖에 못했는데 타조는 그럴 때마다 손을 잡아줬다. 타조는 아무 생각 없었을 거다. 그냥 내미니까, 잡아줬을 것이다. 괜히 의미부여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나는 그 가볍게 스치는 손에서조차 타조와 나의 온도 차이를 실감했다. 타조의 손은 항상 건조했고, 내 손엔 항상 땀이 차 있었다. 그래, 고작 손에 그인 줄 몇 개에 타조와 관련된 기억이 떠오르는데 어떻게 이 감정을 포기할까.

이제까지 한 다양한 포기 시도들이 몽땅 실패한 뒤로 불과 며칠 전 나는 새로운 도전을 했다. 내 고등학교 생활이 죄다 틀어질 수도 있는, 엄청난 결심이었다. 일단 타조의 기분을 살폈다. 평소엔 싸늘하지만 정말 친한 친구인가 헷갈리게 다가오는 순간이 가끔 있는데 그때를 노렸다. 순간을 잡고 나서도 자연스레 말을 꺼내느라 애를 먹었다.

우선, 겁 많은 타조에게 친구 타조가 사과를 먹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고 해서 그 타조가 원래 알던 타조랑 다른 타조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 다음 계획은 배를 좋아하는 것처럼 사과를 좋아하는 것도 성향이나 취향의 일부라는 것을 말하고 그 다음으론 사과를 좋아하는 타조가 아주 별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주변에도 있을 수 있다는 그런 얘기들을 할 예정이었지만, 깨끗하게 망했다. 경계 레벨을 최고치로 올린 타조는 우선 사과를 좋아하는 타조의 존재 자체를 이해 못 했다. 겨우겨우 존재를 받아들이고 나선 사과가 무슨 선악과라도 되는 양 역겨움을 표했으며 친구였던 타조라도 사과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난 후의 그 타조는 내 타조에게 ‘사과를 좋아하는’ 타조일 뿐이었다.

난 그날 전시회를 몇 바퀴고 돌았다. 나중엔 머리가 어지러워 더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내가 손을 내저으며 그만 하자는 의사를 보이자 타조는 그제야 꾹 다물고 있던 입을 뗐다.

“뭐 그런 게 다 있어?”

장장 네 시간동안 귀에 욱여넣은 ‘친구를 이해하는 법’에 대한 소감이었다.

그 뒤로는 나는 내 세계에 관해 이렇다 할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금 감정을 정리하려 노력했고 타조는 또 내킬 때마다 와서 나를 헷갈리게 했다. 내 감정곡선은 타조의 행동을 따라 그려졌다. 더 이상 휘둘리기 싫은데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또 타조가 던져놓은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바다 자체로도 버거워서 허덕이는데 타조는 지워줄 생각도 안 하면서 색을 더하기만 했다. 나는 타조가 더한 짙은 남색을 따라서 밑으로 가라앉고, 또 가라앉았다.

 

타조를 예뻐하는 게 점점 힘들어졌다. 더 이상 아무 것도 바랄 게 없는 순수한 마음이 아니었다. 나는 타조로 인해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타조가 친하게 지내는 선후배, 가감 없이 말을 섞는 친구들, 심지어 매일 인사를 받는 조리사 아주머니들한테까지도 열등감을 느꼈다. 그들에게서 내 부족함을 찾았다. 나는 무엇이 없기에 그들과 같이 타조와 물 흐르듯이 대화를 나누지 못하며, 자연스럽게 팔짱을 낄 수 없는가. 웃긴 건 그 와중에 타조의 존재감이 너무 강해 주위에 정확히 누가 있었는지 기억도 못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기억도 잘 안 나는 상대에게 온갖 질투를 다 하고 있었다. 한심했다. 자존감이 높은 편이라 자부할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없었다.

 

내 뇌는 계속되는 더위에 익어버렸다. 덕분에 더 멍청해졌다. 아웃팅 염려도 않고 타조를 예뻐한다는 괴로움을 친구들에게 토했다. 다행히 다들 개의치 않아했지만 처음 보이는 반응은 참 다양했다. 뱃속에서부터 기독교라는 한 친구는 “양성애자면 그냥 남자를 좋아하지.”라고 말했다. 아무 의도 없는 순수한 질문이라 나도 “걔가 여자여서 좋은 게 아니라 좋아하는 애가 여자인 거야.”라고 담백하게 대답했다. 그 뒤론 다른 친구들과 함께 일상적인 대화를 했다. 내가 나름의 커밍아웃을 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을 때 친구들은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해왔다. 어쩐지 네가 매달리는 것 같았다고. 머리를 후려 맞은 것 같았다. 멍했다. 친구들은 얼이 빠진 나를 보고 설명을 덧붙였다. 내가 타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기 전에도 친구사이라고 하기엔 뭔가 이상했다고 한다. 나만 빼고 다 알고 있던 사실에 나는 헤어질 때까지 입을 못 열었다.

사실 그래, 내가 타조에게 했던 말, 행동 모두 일반적이진 않았다. 옆에서 보던 친구들도 무언가 이질적인 걸 눈치 챘는데 과연 당사자인 타조가 몰랐을까. 그냥, 모른 척 했던 걸까, 아니면, 모르겠다. 나도 타조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는데 타조가 알 리가 있을까. ‘웬만하면 남자를 좋아하지’란 말은 타조 입에서 튀어나와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었다. 동성(同姓)과 동성(同性)도 구분 안 하는 타조에겐 내가 타조를 예뻐한다는 것이 상상조차 안 될 일일 것이다. 타조를 본 순간부터 예쁘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처음부터 내가 조심스러웠던 건 사실이다. 타조는 ‘타조를 예뻐하지 않는 나’의 모습을 모른다. 타조에겐 타조를 좋아하는 내가 나의 전부다. 타조에게 난 헌신적인, 정말 ‘착한’ 친구의 표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이제껏 타조 앞에서 직설적으로 내 마음을 표현한 적이 있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난 내 감정을 토할 용기조차 없었다. 아웃팅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애매한 관계가 더 틀어질까봐 나는 지레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괜히 감정 낭비하는 것도 싫었고, 아무 것도 모르는 타조도 싫었고, 그런 타조를 원망하는 것도 싫었다. 제일 싫은 건 겁 많고 멍청한 나였다.

사실 다 알고 있었다. 친구들이 중간에서 옆구리를 푹 찌르지 않아도 오래전부터, 어쩌면 타조를 예뻐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타조에게 ‘어쩌면,’이라고 생각할 여지도 주지 않고, 내 마음을 꽁꽁 숨긴 채 발만 애타게 굴렸다. 그래, 난 다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을 가장하며 대화를 나눴다. 그런 내가 가증스러웠다.

 

케이크를 주지 않으면, 뭐? 어떡하게, 졸업할 때까지 이러게? 졸업하고는 끝나겠어? 눈은 케이크에서 돌리지 않은 채 귓불을 만졌다. 정확히는 귀걸이를. 귀걸이가 자리 잡은 뒤 만지작거리는 게 습관으로 굳어버렸다. 손끝에서 열이 느껴진다.

볕만 피한다고 더위가 가시는 건 아니다. 귀는 첫날이나 다를 바 없이 여전히 홧홧했다. 뜨거운 게 너무 싫다. 타조가 주는 것이라면 더더욱.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 앞에 가 섰다. 거울을 보니 온몸에 피는 다 귀로 모인 것 마냥 벌겠다. 귓불이 두툼하게 부풀어 올라 귀걸이가 잘 보이지 않았다. 살짝만 건드려도 아픈 게 귓불 안은 온통 염증일 것 같았다. 귀걸이를 한 지가 몇 개월짼데 아직도 귀는 아물지 않았다. 연골도 아니고 살인데 무식하게 뚫은 대가라도 치르라는 양 귀는 계속 말썽이었다. 귀만 욱신거리는 게 아니라 머리까지 지끈거렸다. 귀걸이를 빼면 다 해결될 문제인 게 뻔했지만 이제까지 그 방법을 모른 척 하고 있었다. 귀걸이를 빼면, 염증은 가라앉겠지만 애써 뚫어놓은 길이 다 막히지 않는가. 엉망진창이어도, 길은 길이었다. 거기에다 멀쩡하게 아무는 것도 아니고 몽글거리는 멍울까지 만들어 놓을 것이다. 뚫을 때부터 아플 각오는 했다. 일방적인 통행이고, 일반적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버거웠다.

타조가 공부를 곧잘 하는 게 신기했다. 나로서는, 글쎄. 안 그래도 하루 종일 타조를 신경 쓰느라 체력이 남아 있지 않은 데다 올해로 접어들면서 주위사람들까지 의식하게 됐으니 감정소모가 심했다. 집중이 될 리가 없었다. 거기다 제일 곤란한 건 교과서 그 자체였다. 타조는 자기 이름이 이렇게 교과서에 많이 나온다는 걸 알기나 할까. 타조로 인해 내 일상이 무너졌다. 타조 때문에 무기력해지는 게 너무 힘들었다. 더 이상 억지로 버티고 싶지 않았다.

귀걸이를 뺐다.

나는 마침내 인정했다. 1년하고 조금이 넘는 시간동안 내가 억지로 관계를 이어왔던 것이지 타조와 난 아무것도 아니었다. 올해 들어와 타조가 변한 건 없다. 애당초 타조와 난 가까웠던 적이 없다. 거리가 멀어졌다고 느낀 것도 착각일 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귀걸이 침과 클러치에는 누런색의 고름이 덩어리 져 있었다.

 

거울 바로 위의 시계를 봤다. 타조의 날이 시작된 지 막 여덟 시간이 지나는 참이었다. 어제는 하루 종일 12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물끄러미 앉아 시계만 쳐다보고 있는데 기분이 묘했다. 시계를 볼 때마다 타조가 있었다. 하루에 꼭 두 번은 타조의 생일을 봤는데 이젠 그렇지도 않을 터였다. 시계에서 항상 보던 숫자가 달력에 찍히고 나는 전화를 걸려다 말았다. 시간이 늦어서, 따위의 이유가 아니었다. 난 내 타조와 전화 한 번 한 적이 없다.

 

최대한 차가울 때 주고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쯤이면 타조도 왔을 것이다. 타조의 반으로 향하는데 이상하게 텅 빈 복도가 울렁이며 나를 방해했다. 그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도착하니 2분이나 흘러 있었다. 남의 반이지만 그냥 열고 들어갔다. 타조는 친구들과 선물들에 파묻혀 있다. 가까이 다가가자 타조가 내 이름을 부른다. 이름은 알고 있구나. 멍한 뇌가 비아냥거린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케이크만 떠밀듯이 타조에게 안겼다. 타조는 놀랍지도 않은 표정으로 고맙다 인사한다. 나는 그에도 아무 대답 않고 그대로 반을 나왔다. 타조를 방생하고 돌아가는 길의 복도는 더 이상 울렁이지 않았다.

이제 넌 나의 ‘무엇’도 아니고 예쁘지도 않고 타조도 아닌데 왜 타조 깃털이 아직도 아른거리는지 모를 일이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심장이 따가웠다. 감정도 데는 줄 몰랐다. 이 아픔을 느끼는 게 다행이었다. 내 여름이 비로소 끝난 모양이다.

 

 

글을 쓸 땐 타조를 일일이 '내 예쁜 타조'라고 지칭했는데 나중에 읽어보니 뭔가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반복하는 느낌이라 그냥 '타조'라고 썼거든요. 혹시 '타조' 부분에 '내 예쁜 타조'라고 계속 지칭해도 글이 깔끔해 보일까요? 내 예쁜 타조는 제가 그 자체로 명사로 쓰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좀 지저분해 보일까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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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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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사람이 새와 같이 날기 위해선 지금보다 가슴근육이 일곱 배가량 발달되어야 한다고 한다. 날개만 가졌다고 끝이 아니라 그 날개를 버틸 힘 또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우리에게 돌아오는 모진 말은 유독 많았다. 자신들은 달지 못 했던 날개를 우리에게 억지로 짊어지운 어른들은 어서 날아오르라며 재촉했다.

다른 걸로 날개를 달만한 애들은 벌써 저 하늘 위에 있었다. 이도저도 아닌 우리들은 불안정한 날개를 달고 연신 진흙탕에 무릎을 처박았다. 여름엔 더운 대로, 겨울엔 추운 대로, 네모난 방에 틀어박혀 머릿속에 글이나 욱여넣을 수밖에 없었다.

끄집어내는 것 없이 집어넣기만 한 것들은 뇌에서 자기들끼리 엉켜 부글부글 끓어댔다. 우린 그 열기에 허덕이면서도 새로운 먹이를 집어넣고 휘젓기를 반복했다. 우리가 그 끈적끈적한 것들을 유일하게 치워버릴 수 있는 기회는 시험밖에 없었다. 소화가 안 돼 불편했던 것들을 시험지에 마구 뱉어놓고 나면 한동안은 머리가 깨끗했다. 허무할망정 허전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며칠 안 되어 새로운 것들이 또 줄을 서고 있으리란 걸 알았다.

시험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어떻게든 버리고 싶던 것들이기도 했다. 기다리고 있는 놈이 문제였다. 시험 뒤의 시험. 우리의 날개 크기를 가늠하고, 하늘에 띄웠을 때 무게에 못 이겨 뒤집어지진 않을까 가슴을 콕콕 찔러보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 빈도는 더 잦아지고 날갯죽지를 잡아 비트는 힘 또한 강해졌다. 날개엔 등급이 매겨지고 우린 또 가슴근육을 단련해야 했다. 채 여물지 못한 내 날개는 영 시원찮았다. 조금 나는 듯싶다가도 어김없이 고꾸라지기를 반복하는 바람에 난 이도 저도 아닌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더 이도 저도 아니게 돼버렸다.

 

퍼스널 트레이닝이 유행인 만큼 트레이너는 참 많았다.

“공부를 하긴 하니?”

가장 극성인 트레이너는 엄마였다.

“어떻게 그 비싼 과외를 줄줄이 붙여놨는데 오른 과목이 없어?”

약하다, 약하다. 근육은 원래 안일하기 짝이 없어서 잔뜩 헤집어놓지 않고서는 몸집을 불리지 않는다. 내 지조 높은 가슴은 매일같이 듣는 말로는 흔들리지 않는다.

“아니, 어휴…….”

엄마는 말을 줄인다. 머리를 짚으며 팔을 휘휘 내젓는다. 가슴이 조금 찌릿했다. 우리집 개새끼 군밤이가 몇 년째 배변을 못 가려도 저런 제스쳐는 안 취한다. 엄마는 미리 준비되어 있던 캔맥주를 딴다. 어쨌거나 미리 알고는 있었던 것 같아 트레이닝의 효과가 조금 줄어든다. 엄마가 티비를 틀자 나는 그제야 현관에서 벗어난다. 거실은 밟아보지도 못하고 나는 조용히 독서실로 향한다.

좁은 칸들 사이로 불빛이 드문드문 보인다. 다들 웨이트 트레이닝을 일찍 마친 모양이다. 하나같이 고개를 푹 처박고 있는 꼴이 양계장 닭 같다고 비웃지만 나도 곧 할당된 내 자리에 가만히 둥지를 튼다. 그래도 닭보다야 낫지 않을까. 아까부터 욕지거리를 짓씹던 내 뇌는 공부와 상관없는 생각이 튀어나오자 지독하게 물고 늘어진다. 닭은 평생 알만 낳잖아. 나는 올해, 아니 어쩌면 내년까지. 사실 더 갈 수도 있지만, 여하튼 끝은 있잖아. 인간의 아침거리밖에 안 되는 알을 낳는 것보다는 우리가 훨씬 생산성 있는 일을 하지. 비상하기 위해 열심히 날개를 만들고, 붙이잖아. 아, 닭도 나름 샌데. 그러고 보니 날개는 이미 달렸네. 그런데 못 날잖아. 그러니까, 나는 건 날개가 있는 것과는 별개로……, 아, 젠장. 어쩌면 독서실이 양계장보다 나은 건 문명이 화장실을 분리했다는 것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날개를 동경했고 새는 이미 날개가 달려 있다. 이것만 봐도 새가 인간보다 한 수 위다. 인간이 먹이사슬 최정점에 있다는 말은 내가 보기엔 순 거짓말이다. 우리집 개새끼 군밤이만 봐도 나보다 지위가 높다. 개는 자유롭게 떠돌 수도 있고 귀찮으면 멍청해 보이는 주인 하나 물 수도 있고 수틀리면 정말 물 수도 있고……. 인간은 자신들이 무어라고 감히 건방지게 먹이사슬을 운운하는 것인가.

모르겠다. 원래 근육은 쉬어야 붙는다. 복잡한 생각은 가는 대로 보내버리고 팔을 베고 엎드렸다.

 

“사는 만들기로 했잖아.”

그러게요. 할 말이 없어 대답은 안 했다.

“내신은 이 꼴 났고,”

“일 학기 것만 들어가지 않아요?”

“내년 수시 생각하면 이 학기도 챙겨야지.”

아, 내년……. 나는 닥치고 고개만 끄덕였다.

“……보니까 생기부는 버린 것 같네. 모의고사 성적은 어때?”

버린 적 없는 생활기록부지만 난 착실히 모의고사 성적을 얘기했다. ……칠? 믿지 않는 눈치여서 조금 솔직해져보기로 했다. ……팔? 더 솔직해졌다. 내년도 나온 판에 뭐가 문제겠어.

“사실 구도 나와요.”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한숨을 내쉰다. 다시 말하지만 저건 군밤이한테도 안 하는 거다.

“수시 진짜 아무데도 안 넣을 거야? 다음주까지 시간 있어.”

“이제 와서 뭘 어쩌겠어요.”

어깨를 으쓱였다. 선생님은 난데없이 우리나라 지도를 펼쳐들었다.

“어디를 가고 싶니?”

가려고는 하니? 어제 엄마의 말과 비슷하게 몽타주 되어 들렸다. 나는 말없이 우리나라 중간 어딘가를 짚었다. 눈치를 봤다. 손가락을 미끄러뜨렸다. 선생님은 고개를 저었다. 손가락은 더, 더 내려갔다.

“선생님, 이제 바단데요?”

선생님은 흠,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무언가를 고민했다. 내가 보기엔 쓸모없는 고민이었지만 9등급 제자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할애하시는 선생님이 감사해 얌전히 기다렸다.

“독재는 힘들어. 학원을 가자.”

흠. 나는 아까의 선생님과 똑같이 헛기침을 했다.

 

근육은 몰라도 굳은살은 꽤 배겨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나에게도 바다는 좀 감당하기 힘든 스케일이었다. 똑같은 걸 해도 유독 못 따라가는 놈이 있는 법이다. 그게 나라는 건 인정하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사실이 변하지는 않았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잠은 푹 자고. 이것도 좀 보고 그래.”

1차고사가 끝나기 무섭게 성적이 나왔고 성적으로 아무 희망 없는 상담을 나눈 다음날 모의고사라. 빡빡한 일정에 엄마의 태도는 회유책, 이를 테면 단백질 보충제 같은 거였다. 엄마는 한동안 보지도 못 했던 ‘내’ 화분을 내 품에 안겼다. 아니, 밀어 넣었다. 언젠가 “요즘은 감성시대래.”라며 엄마가 내 손에 무작정 들렸던 화분이었다. 책상 위에 가만히 놔두고 보기만 하던 걸 엄마가 성격에 못 이겨 내놓으라며 일주일 만에 데려간 놈이기도 했다. 엄마 성격에 화분을 가만히 놔뒀을 리가 없는데 이상하게 식물은 잎끝이 누렇게 변해 딱 봐도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누렇게 쳐져있는 잎을 내가 빤히 쳐다보자 엄마는 민망했는지 “맨날 물도 주고 영양제도 주고 했는데도 그렇다!”라며 큰소리를 쳤다. 나는 아아, 하며 수긍했다. 가만히 놔두지 않아서 저렇게 된 모양이다. 상추와 깻잎 그 사이 어딘가처럼 모호하게 생긴 이파리에 이름을 물어보려는데 엄마는 “그래도 오늘 무당벌레도 잡아서 얹어놨어!”라며 화를 내곤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사실 아는 식물이라곤 상추와 깻잎밖에 없어서 종류 같은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화분이 몇 달 전 짧게 머물러 있던 곳에 그대로 놔뒀다. 양계장도 익숙한 곳이 낫다는 체감에서 온 일종의 배려였다. 책상에 고개를 처박고 화분만 보는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진드기도 없는데 왜 무당벌레지? 무당벌레는 자기가 알겠냐는 듯 날개를 파르르 떨었다. 날개, 날개. 쟤도 날개가 있네. 나는 아예 코를 처박았다. 인간은 미물이란 단어를 사용할 자격도 없다…….

 

여느 때와 같이 책을 챙기려 책상을 짚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손 밑이, 그러니까……. 손바닥을 뒤집어보자 빨갛고 검은 무언가가 으스러져 있었다. 무당벌레는 안전한 보금자리를 벗어나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다 이렇게 참담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다리와 배가 원체 한 몸이었던 것처럼 뭉개졌지만 딱히 미안하진 않았다. 무당벌레 잔해를 손으로 살살 긁어서 책상 위로 탈탈 털었다. 수직으로 눌려서 그런지 압화 마냥 날개는 찌그러지지도 않았다. 그런 날개가 신기해 손톱 끝을 세워 들어 올리자 찌그러지지 않았다고 감탄한 게 무색하게 뚝, 끊어져버린다. 아……. 날개가 이렇게 약할 줄은 몰라 작은 탄식이 일었다. 손톱으로 날개를 쿡쿡 누르자 손톱 모양 그대로 날개는 조각조각 찢어진다.

 

정말이지 바다를 포용할 용기는 없는데 국어부터 조짐이 안 좋았다. 이게 과연 한글은 맞는 건지 글자가 뱅글뱅글 돌면서 희롱하는데 속이 울렁거려 글자를 노려보는 것밖에 못했다. 수학도 마찬가지였다. 내내 멀미를 앓았다. 답안지에 컴퓨터용 싸인펜으로 마킹을 새기는데 피실피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분홍색 바탕에 검은색 얼룩점이라, 꼭 무당벌레 같지 않은가. 나는 감독관으로 들어온 선생님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때까지 쿡쿡대는 소리를 삼키며 웃었다. 아, 우습다, 우스워. OMR답안지를 가로로 세워 그 끝을 매만졌다. 답안지는 너무 얇아 회의가 들었다. 아침에 무당벌레 날개를 잡았던 것처럼, 조심스레 손끝을 세워 답안지를 잡고는 주욱, 반대쪽으로 비틀었다. 소름끼치도록 조용한 반에 종이가 찢어지며 내는 괴성이 비정상적으로 크게 울린다. 모두의 시선을 무시하고 찢어진 답안지를 겹쳐서, 또 찢었다. 약하다, 약해. 우리는 이러한 날개가 무엇이라고 가슴에 굳은살만 박아 넣었나. 애당초 이런 날개로 날 수는 있나. 웃음을 더는 참지 않았다. 이런 날개라면 달고 싶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짧은 단편소설 쓰는 걸 좋아하지만 정말 혼자 쓰는 거라 다른 사람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 알 수 없어 첨삭 받을 수 있는 곳을 찾다가 글틴에 가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쓰는 입장이라 여기에 적힌 글들 외의 추가적인 이야기(혼자 구상했던 것이나 교정하며 뺐던 부분들)을 알고 있어 제 글을 객관적으로 보기 힘듭니다. 제가 몰랐던 사실이나 고쳐야 할 부분을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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