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지금 미쳐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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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 미쳐가고 있다

이 만년필에 내 모든 몸과

영혼을 맡겼다

 

문학만이 나라에서 허락하는

유일한 마약이니까

 

이게 바로 지금의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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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한 뼘 가까이 [퇴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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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한 뼘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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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의식하지 않아도 티끌들을 볼 수 있다. 그날 하루의 흔적들이다. 애써 보려고 해도 볼 수 없지만, 형체는 핍진하다. 가끔은 가만히 눈감은 이 상황이 죽음이라 가정하곤 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끝난다면 잠자듯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 가슴 한쪽이 아리며 숨이 막혀왔다. 그러면 무서운 공상을 멈추기로 했다. 대신 생이 끝난 뒤에도 내 존재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안도는 잠깐이었다. 죽을 수 없다면 그것대로 끔찍하겠지, 그 수많은 사람이 부대낄 자리나 있을까. 결국, 사람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체념이 몰려왔다. 또 숨이 막혀와서 이제는 눈을 떴다. 고개를 돌리고 이불을 끌어매었다. 며칠 동안 이런 상태를 반복하기만 했다. 학교에서 엎드려 잘 때도 그랬고 길을 걸을 때도 그랬다. 친구나 주변 사람에게 의견을 묻기도 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한 번도 죽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한결같이 대답은 쉼표보다는 물음표였다. 그때만 해도 이 상념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믿었지만, 그 생각이 우스워지는 데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걱정이 사라질 수는 없으니 가장 좋은 삶은 걱정하지 않고 사는 것이란 친구의 말이 들어맞았다. 사실 새 교복으로 갈아입고 나서는 걱정 같은 사치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길로 다녔다. 의미 없는 지식을 남보다 더 채워 넣고 보상을 받았다. 잠은 부족해서 정신이 멍했고 눈만 감으면 꿈을 꾸었다. 잃어버린 사랑을 기억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문학마저 뒷전으로 치워버렸다. 이렇게 기계처럼 나를 죽이며 버텨내다 보니 먼 미래처럼 느껴지는 일 같은 건 쉬이 망각해가고 있었다.

3년만 참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계속 살아냈다. 하루는 길을 걸었다. 학교에 가는 중이었다. 평소에 가던 길로 가다 보니, 얼굴은 아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그가 외진 곳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등교 시간까지 맞추려면 걸어서는 아슬했다. 앞의 녀석도 학교로 가는 데도 샛길로 빠졌다는 건 그 길이 빠르다는 신호 같았다. 속는 셈 치고 따라가 보기로 했다. 길 들머리부터 구불구불한 골목이었다. 길바닥조차 아스팔트가 아닌 오래된 콘크리트였다. 큰 교회가 보이는 지점부터는 왼쪽은 산기슭이었고 오른쪽에는 노후화된 주택가였다. 그때부터 눈에 익은 건물들이 보였다. 계속 따라가서 학교에 도착하고 보니 예상보다 십 분은 더 이른 시각이었다.

학교가 파하고서 더듬거리며 왔던 길을 떠올려 집으로 걸어갔다. 다시 그 산기슭과 낡은 집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나는 그제야 그곳이 평범하지만은 않음을 깨달았다. 몇 개인지도 알 수 없는 무덤들이 보였다. 내 지난 상념들이 덩어리져 있는 것 같았다. 공동묘지처럼 정갈하지도 않았고 문중의 묘처럼 단정한 석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언덕에 묘가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곳은 어쩐지 을씨년스러웠다. 언젠가 제주에서 보았던 이름 모를 산담은 죄다 홀로였다. 검은 돌로 무릎 높이의 담장을 세우고, 각자의 구역을 정해 두었다. 그러나 이 무덤들은 최소한의 구획이나 기단석조차 없었다. 무덤이 있으면 그 옆에 무덤이 있었고, 그 위나 아래에 또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해가 떠오르며 비추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자그만 흙산들은 햇빛을 머금고 풀을 돋우기만 했다. 그들은 공통점이라고는 없는 모습이었다. 비석 이나마 세운 게 있으면 그나마도 없는 게 부지기수였다. 한자로 학생 신위라 쓰여 있는가 하면, 한글로 ○씨 ○○지묘라 쓰인 비석도 있었다. 세월에 깎이고 이끼가 껴서 한때 글자가 존재했는지조차 모를 돌도 있었다. 몇몇 무덤은 땅이나 다름없이 완만했다.

처음 이곳이 만들어졌을 때를 생각해보았다. 적당히 양지바른 언덕에 누군가 주검을 묻고, 또 누군가가 밤새 몰래 봉분을 만들고. 그러기를 수십 년이 넘었을 것이다. 이제는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묻은 이는 분명 다른 이의 흙을 좀 빌려야 했을 것이다. 주로 아래쪽 무덤이 허물어져 가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였을 테다. 찾아오는 이 한 명 없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언덕 맨 위쪽의 그나마 비석이 단정한 곳엔 꽃다발이 하나 놓여 있었다.

무덤은 죽음에 가깝더라도, 그 가장자리에서 생은 버티고 있었다. 둔덕 왼쪽 구석에 푸른 그물을 친 곳이 있었다. 다른 부분들과 달리 평평한 땅이었다. 사다리꼴에 가까운 모양이었다. 땅 위에 파랗게 솟은 건 배추였다. 사람이 직접 울타리를 치고 심었다. 그곳뿐 만 아니라 주변에 밭이 많았다. 거기 누운 사람들이 내게 실마리를 쥐여주었다.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뭐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사람들은 살아내고 있다고. 죽은 자의 육체는 흙에 스며들고 그이를 머금은 땅은 작물을 길러 내고 사람을 살게 한다고.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을 알아볼 방법은 없다. 그러나 내가 본 대로만 판단해보자면, 죽음이 영원한 결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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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한 뼘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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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사리 잠들지 못하던 날들이 많았다. 주로 죽음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신도 내세도 믿지 않았다. 그저 내게 주어진 시간이 끝난다면 잠자듯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눈감은 이 상황이 죽음이라 생각했다. 숨이 일순간 막히곤 했다. 그러면 무서운 공상을 멈추었다. 암울한 생각 대신 생이 끝난 뒤에도 내 존재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영원히 살면 그것대로 끔찍할 거란 기분이 들었다. 그 수많은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있을까. 결국, 사람은 사라지지 않을 수 없다는 체념이 몰려왔다. 또 숨이 막혀와서 이제는 눈을 떴다. 며칠을 내내 이런 상태였다. 학교에서 엎드려 잘 때도 생각했고 다른 이들에게도 물어보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한 번도 죽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한결같이 대답은 쉼표보다는 물음표였다. 그때만 해도 이 상념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믿었다. 그 생각이 우스워지는데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걱정은 해결해도 또 다른 형태로 생겨나므로 가장 좋은 것은 걱정하지 않는 것이란 친구의 말. 들어맞았다. 기계처럼 나를 죽이며 버텨내다 보니 먼 미래처럼 느껴지는 일 같은 건 쉬이 잊어버리게 되었다.

멍하니 계속 살아냈다. 하루는 길을 걸었다. 학교에 가는 중이었다. 평소에 가던 대로 가다 보니, 얼굴은 아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녀석이 어떤 샛길로 빠졌다. 등교 시간까지 맞추려면 걸어서는 빠듯했다. 앞의 녀석도 학교로 가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샛길로 빠졌다는 건 지름길로 간다는 신호다. 속는 셈 치고 따라가 보기로 했다. 샛길 초입부터 구불구불한 골목이었다. 길바닥조차 아스팔트가 아닌 오래된 콘크리트였다. 큰 교회가 보이는 지점부터는 왼쪽에 둔덕 오른쪽에 오래된 주택가였다. 그때부터는 적당히 눈에 익은 건물들이 보였다. 도착하고 보니 예상보다 십분은 더 이른 시각이었다. 기억해 두기로 했다. 학교가 파하고 더듬거리며, 왔던 길을 떠올리며 걸었다. 다시 그 둔덕과 빌라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나는 그제야 둔덕이 그저 평범하지만은 않음을 깨달았다. 그건 내 지난 상념들이 뭉쳐진 것과도 같았다. 몇 개인지도 알 수 없는 무덤들이었다. 무슨 공동묘지처럼 정갈하지도 않았고 문중의 묘처럼 단정한 석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언덕에 무덤이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곳은 어쩐지 더 쓸쓸했다. 언젠가 제주에서 보았던 이름 없는 무덤들은 죄다 홀로였다. 검은 돌로 무릎 높이의 담장을 세우고, 각자의 구역을 정해 두었다. 그러나 이 무덤들은 최소한의 구획조차 없었다. 줄 맞추기나 기단석 따위도 없었다. 무덤이 있으면 그 옆에 무덤이 있었고, 그 위나 아래에 또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해가 떠오르며 비춘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자그만 흙산들은 햇빛을 머금고 풀만 돋우었다. 무덤들은 어느 하나 같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비석 하나 세운 것이 있었다. 그나마도 없는 게 부지기수였다. 한자로 학생ㅇㅇㅇ신위라 쓰여 있는가 하면, 한글로 ㅇ씨ㅇㅇ지묘라 쓰인 비석도 있었다. 세월에 깎이고 이끼가 껴서 한때 글자가 쓰여 있었는지조차 모를 돌도 있었다. 몇몇 무덤은 땅이나 다름없게 완만했다.

처음 이곳이 만들어졌을 때를 생각해보았다. 적당히 양지바른 언덕에 누군가 가족을 묻고, 또 누군가가 밤새 몰래 무덤을 만들고. 그러기를 수십 년이 넘었을 터이다. 이제는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묻은 이는 분명 다른 무덤을 밟고, 다른 이의 흙을 좀 빌려야 했을 것이다. 주로 아래쪽 무덤이 허물어져 가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였을까. 아무렇게나 두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곳이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언덕 맨 왼쪽 꼭대기의, 그나마 비석이 단정한 곳엔 꽃다발이 하나 놓여 있었다.

단지 그것 뿐은 아니었다. 무덤은 죽음에 가깝더라도, 그 가장자리에서 생은 버티고 있었다. 둔덕 왼쪽 구석에 푸른 그물을 친 곳이 있었다. 평평한 땅이었다. 다른 부분들과는 구분되었다. 그 땅에 놓인 것은 배추였다. 사람이 직접 울타리를 치고 심었다. 그곳뿐만 아니라 주변에 밭이 많았다. 나는 생각했다. 뭐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사람들은 살아내고 있다. 죽은 자의 육체는 흙에 스며들고, 그이를 머금은 땅은 작물을 길러내고 사람을 살게 한다. 죽음을 먹고 다시 삶이 자란다. 지독한 순환이다. 동시에 내 상념도 스치듯 해결되었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을 누구도 확답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본 대로만 생각해보자면, 죽음이 꼭 끝만은 아니다. 끝이 있기에 시작이 있다고, 모두 말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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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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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 글을 거의 쓰지를 않은 것 같네요. 못 쓴걸까요, 안 쓴걸까요. 중학교때 안하던 공부를 이제 와서 열심히 하다 보니 시간이 안나서, 라고 변명하고 싶은데, 막상 보면 스마트폰 보는 시간이나 책읽는 시간  일기쓰는 시간은 비워두면서 글쓰는 시간은 없네요. 몇 번 소설을 쓰려 시도는 했죠. 그런데 쓰다가 팽개치고 쓰다가 팽개치고를 한 두어번을 했어요. 이제는 시도 조차도 안해요.  언제 또 시간을 내서 꾸준히 소설을 쓸지 확신이 들지를 않으니까. 고등학교는 시험 치고 걸러 또 시험이더라고요.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 김연수 작가의 <소설가의 일> 인데,  역시 책에서 말하듯 한 장씩이라도 쓰는게 좋은거겠죠. 팽개치더도 써보는게 옳은 거겠죠. 알면서도 실천하는게 참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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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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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 사지가 잘린지는 좀 되었다. 도시에는 보도블록 위로 창백한 가로수가 서있다. 크기나 종도 제각각이다. 그도 생물이어서, 죽지 않으면 자란다. 뿌리가 벽돌을 뚫고 조그만 오르막을 만들기가 예사다. 가지는 조금씩 자라 사람들 눈을 감춘다.

 

동네 아파트 단지 사이에는 사거리가 있다. 좌우로 나뉜 횡단보도를 기준으로 여기는 2단지, 저기는 3단지 식으로 구별한다. 곳곳에 가로수는 많이도 심겨있다. 2단지 쪽에 세워진 나무가 하나 있다. 잎이 둥근 종이라 겨울이면 삭막해진다. 겨우살이나 가끔 신세질 뿐, 앙상한 가지만 무성하다. 어느날 보니 그 나무에 사람이 올라갔다. 자세히 보니 사다리를 탄 것이다. 사람이 올라간 후 나무는 한풀 멋이 꺾였다. 그나마 빽빽하던 것이 잘렸다. 짧은 잔가지는 덜어냈다. 긴 가지는 뭉텅 잘리었다. 주위를 보니 다른 나무도 마찬가지다. 사철 푸르지도 못하고 사지를 잘리는 이 시지푸스들이 가련하다. 그러든 말든, 사람들은 바쁘게 지나쳐간다. 기실 나무에 신경쓰기는 너무 바쁜 우리네다. 나만 해도 우연히 나무를 본 것이다. 그 전에는 저 사람들과 다를 게 없었다. 나무가 어떤 기분인지 아무도 모른다. 나무는 말을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썰린 나무를 보고 착잡한 마음으로 가던 길을 걸었다. 길섶 울타리를 보았다. 울타리는 풀이 덮었다. 그 중 풀 한 포기가 막대기처럼 솟았다. 서리도 없는 따뜻한 겨울에 그것은 홀로 길게 자랐다. 사람 키의 곱절은 되었다. 멀리서도 보일 정도였다. 나는 자연의 신기함을 생각해보았다. 그것도 잠시 잘리워진 나무를 떠올렸다. 무리에서 특출난 것이 화를 당하는 일이 많지 않은가. 풀도 그 사례가 될 것만 같았다. 긴 풀은 사람들 시선에 빽빽한 나무 만큼이나 눈에 잘 띌 것이다. 곧 작업복에 야구모자 쓴 이가 큰 집게로 풀을 썩둑 자르겠거니 생각하였다.

 

그러고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다. 풀이 솟은 울타리는 항상 지나는 길이다. 어제 보아도 오늘 보아도 그대로, 자랑스러이, 인간을 내려보듯 서있다. 사람들은 나무에 비해 풀에 관대한 듯 하다. 이유를 추측해 보자면, 나무가 자라면 사람에게 직접 영향을 미친다. 풀은 거들떠보지 않으면 그만이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실용을 좇고 귀찮은 일을 벌이기 싫어한다.

 

글을 쓰는 지금은 입춘이 지났으니 봄이다. 해마다 봄이 지날 즈음이면 풀냄새가 진동한다. 여름을 대비해 풀을 깎아버리기 때문이다. 그때는 사람들이 저 군계일학을 가만두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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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남자와 달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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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루 일과 중 제일 좋아하는 일을 꼽으라면 달리기와 글쓰기다. 둘은 꽤 상반되어 보이지만, 나에겐 비슷하다. 언제나 나에게 그 순간만큼은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내가 어김없이 달리기 위해 근처 학교 운동장에 갈 무렵이었다. 가게들은 하나둘 문을 잠그고 가로등은 빈자리만 비추었다. 이미 어둑해진 운동장 어귀로 들어서니 귀퉁이의 철봉 가까이에 남자가 어렴풋이 보였다. 얼마 전에도 운동장에서 운동하던 이들은 많았기에 개의치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달랐다. 운동장에 들어섰던 이들은 대부분 뛰기는 싫고 운동은 해야 하기에 느릿느릿 걷는 중년들이었다. 그런데 남자는 철봉 근처에서 운동하고 있었다.

나는 밤공기를 마시며 뛰었다. 고맙게도 운동장엔 원 모양으로 인조잔디가 심겨 있어 그 길로 곧장 달리면 한 바퀴다. 학교를 슬쩍 보면 조회대는 흰 조명이 비추었고 다른 쪽을 가스 가로등이 밝혔다. 내가 다시 남자를 바라본 것은 운동장을 다섯 바퀴 정도 돌았을 즈음이었다. 보통 운동장을 다섯 바퀴 정도 돌면 조금씩 숨이 가빠지고 처음의 긴장이 풀려 집중이 흐트러진다. 그런 가운데 남자가 보였다. 그는 분명 턱걸이를 하고 있었다. 철봉은 높이가 조금씩 높아지는 세 개가 솟아 있는데, 남자는 이 중 중간 높이 철봉에 매달렸다. 그 사람은 독특한 기구를 사용했다. 각각 목과 철봉에 연결하는 긴 고무 고리 같은 것이었다. 턱걸이하다 보면 목에 힘이 풀려 뻐근해진다. 그것을 막는 도구로 보였다. 그런데 기구를 착용한 모습은 마치 교수대에 매달린 사람 같았다. 낮이었다면 기구와 옷과 몸이 제각기 색을 띄었을 것이다. 그러나 밤은 그를 어스름한 그림자로만 보이게 했다. 어둠 속에서 목에 무언가를 건 이가 턱걸이를 하는 모습은 조금 우스웠고 기괴했다.

내가 운동장을 달리는 동안 그도 기구를 착용했다 벗었다 하며 턱걸이를 했다. 나는 쉼 없이 달렸지만 남자는 틈틈이 숨을 고르고 반복했다. 나와 그는 아무 말 없이 운동만 묵묵히 했다. 그때 학교에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도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핏 본 몸집은 작아 보였고 움직임은 재빨랐다. 나는 속도를 늦추고 학교 쪽을 계속 살폈다. 어둠이 일렁였다. 마침내 조회대 불빛 사이로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개였다. 도둑은커녕 개였다. 중간 크기의 개가 학교를 여유롭게 돌아다녔다. 나는 다시 달렸지만, 개가 운동장으로 내려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정작 개는 내려올 마음이 없어 보였다. 열 바퀴를 뛸 즈음까지는. 조회대 양옆에는 단이 높은 세 개짜리 계단이 차례로 있는데, 개는 조금씩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내려와서 달리는 나를 살피곤 했다. 문득 눈길이 신경 쓰여 개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면 개는 사라졌었다. 남자는 아직도 목을 맨 채였다.

처음에는 사십 바퀴를 뛰리라 마음먹었다. 평소대로면 오십 바퀴를 뛰어야 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쉬다 며칠 전 다시 시작한 운동이었기에 스무 바퀴부터 조금씩 횟수를 늘리는 중이었다. 분명 밥을 먹은 지 1시간이 넘었음에도 위가 저려왔다. 30바퀴를 돌면서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몰려왔다. 뒤에서 낮고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개가 짖는 소리다. 뒤를 돌아보니 개는 짖으며 나를 향해 달려왔다. 나는 뛰어오는 개를 끔찍이 무서워한다. 이미 호흡이 가팔라졌지만, 속도를 올렸다. 짖는 소리는 더 크게 들려왔다. 진원지가 가까워졌다. 내가 속력을 올릴수록 개는 더 빠르게 나를 쫓아왔다. 이대로 간다면 개가 나를 따라잡을 것이 뻔했다. 너머에 턱걸이하는 남자가 보였다. 스치는 기억에, 조회대 불빛에 비친 개는 털이 정돈되어 있었다. 키우는 주인이 있는 개였다. 나는 턱걸이하는 남자가 개를 풀어놓고 운동을 하는 것이리라 추측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철봉으로 내달렸다. 철봉 바로 앞에 오기 직전까지. 머릿속은 개에게 엉덩이가 물리는 상상만 되새겼다. 남자는 멀리서부터 나를 지켜보았던 것 같다. 나는 헝클어진 머리도 잊은 채 물었다. 저 개가 그쪽 개냐고. 남자는 아니라고 했다. 내 가정은 틀린 셈이었다. 마음이 다시 착잡해졌다. 내 표정을 본 남자가 덧붙였다. 자신도 개를 키운다며, 내가 달리지 않으면 개도 따라오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나는 감사하다 말한 뒤 돌아섰다. 개는 멀찍이서 나를 노려보더니 등 돌려 천천히 걸어갔다. 나는 개가 운동장을 나갈 때까지 지켜보았다. 개가 학교를 나간 뒤에야 천천히 걸었다. 달리기하고픈 마음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남자도 가방을 정리하는 모양이었다. 개는 학교 앞 떡 공장에서 키우는 듯했다. 공장에서 사람이 나오자마자 개가 반기는 것을 보았다. 학교 입구를 돌아 나오며 웃음 지었다. 개는 학교를 활보하고, 나는 달리고, 남자는 목매듯 턱걸이를 했다. 한 공간에서 동시에 벌어진 일이다.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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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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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주의 한 카페에서-이름도 생소한 카라멜 마끼아또를 마시며-창밖을 본 적이 있다. 내가 앉았던 자리는 단층의 긴 책상에 딸린 의자였다. 유리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는 건물에 존재했다. 내 허리보다 높은 의자에 등정한 채 밖을 보았다. 한국인인지 중국인일지 모를 이들이 스쳐 지나갔다. 때때로 그들과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그 순간 나는 오로지 자신만이 유리 뒤에 숨어 그들을 관찰한다고 착각하지만, 그와 눈을 마주함으로써 그런 환상은 깨지는 것이다.
내가 바라보았던 그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나를 보며 그 자신만이 나를 몰래 훔쳐보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나와 그는 유리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른바 〈상호관람〉을 했다. 어쨌든 공평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막은 적어도 투명했으니까. 서로를 바라보며 자신이 은닉했다고 착각하는 희극.
또 나는 승합차 한 대를 본 적이 있다. 그 누구도 볼 수 없게 창문을 까맣게 덮은 차였다. 나는 그 차를 유심히 살폈지만,  어떤 인기척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차 안의 이가 밖을 바라보았다면 그에게 나는 똑똑히 보였을 것이다. 이 경우는 비(非) 상호관람이다. 한쪽은 형상을 보려 기웃대지만, 한낱 보호필름 앞에 인간의 존재는 상실한다. 인간 사이에 색깔을 덧씌운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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