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변화
목록

시계를 차고나면 풀지 않는다

시계에서 나오는 초침소리

반복되는 매크로놈같은

오차도 없이 흐르는 그 시간 속에서

느끼는 안정

번복을 꾀하지 않는다

변화가 생기지 않는 원을 유지하는 건

크고 작은 기어들

기어들을 유지하는 건 작은 톱니

그 작은 톱니 하나가 빠지면 바뀌게 될 24시간

하루의 큰 원이 있으면

나는 그 원 안으로

무수히 작은 원들을 잇는다

목록
기린에게
목록

처음 본 기린의 목이 길었기 때문에 나는 눈을 떼지 못했어

나와 달랐거든

발이 네 개, 목은 길고, 먹는 건 풀뿐이야, 멍도 너무 많았지

엄마의 옷소매를 끌어당겨 엄마의 귀에 내 입을 갖다대고 소곤거렸어

쟤는 엄마 배에서 나올 때 많이 아팠을 거라고

엄마가 웃었어 꺼이꺼이 숨소리가 넘어갈 듯이 웃었지

나는 입을 비죽 내밀었어 엄마가 손가락으로 눈밑에 묻은 눈물을 닦고 말했어

쟤는 너 때문에 멍들었다고

내 눈은 커졌고 입술은 떨렸고 다리도 떨렸는데 뒷걸음질 치다가 발을 헛딛어서 엉덩이를 땅바닥에 찧었어

아마 눈시울이 붉어졌을 거야 눈이 뜨거웠으니까

나는 울면서 미안해 미안해 외쳤는데

너는 이해했는지 내게 그늘 되어주던 나무의 나뭇잎들을 먹기 시작했어

이걸로 너와 나는 같다는 것이었을까

눈을 들었어 내 머리 위에 있는 너의 턱을 보니까 눈물이 멈췄고

나는 손을 뻗어 너의 턱을 만졌지

부드럽더라 너의 털을 뽑았어

너는 나를 보더니 다시 목을 곧게 세우고 다른 기린들과 어울렸어

 

나는 차를 타고 집에 오면서 그 하얀 털들을 손에 꼭 쥐고 잠 잤다고, 엄마한테 들었지

 

동물원을 갔다와서

차 뒷자석에서 꾸벅꾸벅 졸며 자는 내 딸 손에 쥐어진 하얀털을 보았어

엄마처럼 숨이 넘어가듯이 웃어볼까 생각해봤어

내 딸은 나랑 똑같더라고

나는 손으로 그녀의 맨들맨들한 턱을 깨지 않도록 살짝 꼬집어봤어

목록
모호함
목록

아마도 네가 내게 말했던 때는 대학가기 전인 차지도 따듯하지도 않은 모호한 계절 이었다

많은 것들이 바뀔 준비를 하니 모든 것들이 신기하고 궁금해졌다

네가 말을 했다

모든 게 달라졌다

나뭇가지에 붙어 꽃피울 준비를 하는 꽃봉오리가

편의점 의자에 앉아있던 아이들이

매번 같은 곳에 있던 모든 것들이

어색해졌다

나의 다리는 딱딱하게 굳었다 적어도 내 몸 정도는 어색해지지 말아야지

움직여야 할 상황에 제때 움직이지 못한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울어버렸다

속눈썹에 맺힌 눈물 때문에 시야가 뿌옇게 보였다 울고 있었어도 궁금한 게 생겼다

너는 어떤 표정으로 서서 나를 봤을까

확실한 건 내게 너는 바뀌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확신으로 남지 않은 것, 그것 뿐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