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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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끼다 만 것 같은 이른 아침, 축구팀 문양이 그려져 있는 청색 바지에 회갈색 후디. 언뜻 봐도 색깔 맞춤이다. "자전거 타고 올게." 반쯤 문이 열린 안방으로 선포하듯이 말하고서는 서둘러 잠바를 입는다. 매 일 같이 하는 의미 없는 말,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묵묵부답. 왼쪽 주머니에는 핸드폰, 오른쪽에는 경대에서 훔쳐온 부모님 신용카드.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확실히 자전거를 타고 오는 것이긴 하지.` 속으로 씁쓸한 생각을 삼키며 베란다에 있는 낡은 자전거를 꺼낸다. 밑창까지 까진 슬리퍼를 구겨 신고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는 찰나에 들려오는 한마디. "쌩쌩 달리면 안 돼…." 피곤한 눈으로 엄마는 나를 애처롭게 쳐다보며 걱정해주신다. 못 들은척하며 집을 나온다. 사실 난 저 한마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자전거가 아니라 인생을 뜻하는 것이겠지. 삶에서 목적지가 없는 과속을 하지 말라고. 아파트 단지를 나와 가장 처음 향한 곳은 근처 소형 마트에 있는 ATM 기계. 마치 여러 번 해본 듯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카드를 삽입하고 계좌에서 3만 원을 가져간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러한 생각을 한다. 동시에 마음의 가책이라곤 일절 없다. 처음 내가 부모님의 은행잔고에서 돈을 훔쳤을 때는 극도의 불안감 때문에 잠을 지새우지도 못했었다. `혹시 내가 돈을 훔친 것이 핸드폰으로 메시지가 갈까?` 혹시 나 때문에 우리 집이 거덜 나지는 않을까? `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뒤엉켰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거 없다. 단지 충동적으로 밀려오는 자괴감만이 있을 뿐. 이 은화 30냥으로 내가 향한 곳은 근처 대학가에 있는 낡은 피시방이다. 입구를 들어가며 코로 들어오는 익숙하고 편하지만, 동시에 담배와 채취로 버무려진 역겨운 냄새. 계산대를 지키고 있는 직원에게 가서 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해 값을 지불하며 이름을 말한다. "천우현 35번 12시간 채워주세요." 아, 정확히 말하면 저 이름은 나의 본래 이름이 아니다. 단지 나의 행방을 쫓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즉석에서 만든 이름일 뿐. 서둘러 내가 항상 사용하는 자리에 앉아 컴퓨터의 전원을 켠다. 나에게는 1분 1초가 아깝다. 단지 게임을 하지 못해서. 기대감, 흥분, 고조, 불안, 허무, 그리고 자괴감. 내가 매일같이 순서대로 느끼는 감정들이다. 처음 시작하는 순간만큼은 짜릿하다. 게임 속에서는 나는 명문대학교를 다니는 토플 110점의 대학생이다. 남을 짓밟고 승리하는 과정에서 쾌락을 느낀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면 뿌듯해 하며 쾌락이 절정에 달아 고조된다. 그러다 점점 남은 시간을 확인하면서 불안감에 휩싸인다. `난 아직 꿈에서 깨기 싫어, 아니 영원히 깨기 싫어. `정각 10시에 들려오는 잠에서 깨워주는 알람 소리. "만 18세 이하 청소년 여러분들은 즉각 퇴실하시기 바랍니다." 터덜터덜 건물에서 나오며 가슴을 가리키며 중얼거린다. "난 아직도 이곳이 채워지지 않았는데…." 낡은 자전거에 다시 올라타며 집으로 가는 길. 이미 해가 져 물어서 길도 잘 보이지 않는다. 현관문에 도착해 잠금 장치를 여는 것이 너무나 무겁다. 무게가 나를 짓누른다. 이미 거실과 안방은 불이 꺼져있고 부모님은 주무신 것 같다. 아마 날 걱정 하시다가 불안 속에 잠드셨겠지. 온몸에서는 찌든 때 냄새가 나고 머리는 기름져 있다. 방안에 들어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매트리스에 쓰러진다. 내가 왜 이렇게 됐냐는 자괴감과 동시에 내일은 또 무슨 게임을 할까라는 생각이 오버랩 되며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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