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원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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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년 2016 연장원 발표는 언제로 예정되어있나요?

p.s 메일은 잘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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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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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깥 창문을 주먹 옆구리로 쾅 친다.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던 티눈만한 하루살이들이 우왕좌왕 흩어져버린다. 창에서 조금 떨어진 허공에서 하루살이들은 저희들끼리 몸을 섞고 있다. 살렘스 롯이란 소설에 등장하는 흡혈 박쥐들 같다. 그 박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것들은 하나도 무섭지 않다는 것이다. 목털을 쭈뼛 세우는 박쥐의 기이한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저 시커먼 것들이 바글거리고 있다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다. 3인용 작은 소파에 앉아 바깥 창을 내다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TV 스크린에는 이용 잔여시간이 한 시간 가량 남아있다는 안내 문구 뒤로 뭔지 모를 노래의 뮤직비디오가 흘러가고 있다. 30분 전과 똑같다. 시간은 줄어들지도 늘어나지도 않은 채 그대로였다. 멈춰 있는 평행세계에 갇힌 기분이 든다. 들이마시는 산소조차도 과거의 부유물처럼 탁하게 느껴진다. 24시간 노래방의 마이크에선 온갖 사람들의 입내와 침 냄새가 뒤섞여 풍긴다. 무선도 아닌 마이크는 줄이 배배 꼬인 채 가죽이 다 뜯긴 의자에 뒹굴고 있다. 나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14호실이라고 숫자 스티커가 붙은 방문을 쳐다본다. 반은 투명하고 반은 불투명한 가느다란 창으로 역시 하루살이들이 내다보인다. 바깥의 하루살이들과 똑같다. 문은 잠겨있지도 않고 무언가 가로막힌 것도 없으나 나는 나갈 수가 없다. 순간 스치듯 박쥐와 하루살이의 다른 점 하나를 더 생각해낸다. 박쥐들 중에 사람이었다가 박쥐로 종전환을 한 박쥐는 없을 것이다. 하루살이들 중에는 있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다시 창가로 들러붙은 하루살이들에게로 다가간다. 하루살이들 중엔 원래 사람이었던 이들이 많다. 매우. 지금도 시시각각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을 것이다.

경찰이 오겠지. 아무나.

나는 학교에서 이런 재난 비슷한 사태 때 알려준 지침사항을 기억한다. 경찰과 구급대원들이 구조하러 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라고 했다. 학원도 안 가고 좋지, 뭐. 나는 창에 검지 끝을 대본다. 손가락 한 마디의 반의 반의 반도 안 되는 크기의 하루살이 하나가 꼼지락거리며 움직인다. 원래 어떤 사람이었을까, 생각해보려다 순간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에 놀라 멈칫한다.

2

모두가 카프카의 그레고르로 변해버린 기분을 수치로 표현할 수 있다면. 물론 그 중에 나는 포함되지 않는다. 확률과 통계를 배우고 있는 나로서는 왠지 한 번 시도해보고 싶은 그런 종류다. 그러나 기분을 수치화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그만 내 몸은 징그러운 곤충으로, 어느 소설 시놉시스에 나올 것만 같은 이런 현상이 현실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순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미 하루살이로 변해버린 지 오래일 테니까. 하루살이가 되면 인간의 그 커다란 뇌도 쪼그라든다.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을 만한 부위 자체가 남아있을 리 없다. 사람들이 하루살이로 변해버리기 시작한 게 정확히 어느 시점인지, 대충 언제인지조차 나는 모른다. 지진이나 쓰나미가 나 여기 온다고 예고하고 오지 않듯 소리소문 없이 다가온 변이(變異)다. 그저 지진계의 미세한 그래프처럼 미세한 흔적만을 남겼을 뿐이다. 실종. 흔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실종은 너무도 일상적인 것이 아닌가. 일상과 일상이 아닌 실종을 구분하는 지능을 갖춘 인간은 없었다. 어쩌면 그 점에선 하루살이와 같을 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현상을 알게 된 것은 이모의 장례식에서였다. 몸이 찌뿌듯해서 대충 핑계를 대고 2교시에 조퇴를 하고 왔는데 얼마 쉬지도 못한 채 장례식에 끌려가야 했다. 이모에게 사고가 났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즉사, 는 아니고 중환자실에 일주일 정도 있었다고 엄마가 알려주었다. 왜 아무런 말을 해주지 않았느냐는 내 물음에 엄마는 하루종일 출장 다녀오랴 집안일 하랴 야근 하는 상황에서 말해줄 새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지나가는 말로 말하긴 했어, 이모 아프다고. 네가 수행평가 준비한다고 문 닫고 얼른 나가라고 했을 때. 나는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이모에게 절을 하고 향을 피운 뒤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입을 일자로 꾹 다문 채 노려보듯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앞으로 하루살이 몇 마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하루살이들을 잡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만약 이모가 자신의 영정사진을 보았더라면 당장 웃는 걸로 바꾸라고 난리를 쳤을 것이다. 만약 이모가 하루살이들을 발견했더라면 당장 편의점에서 박멸-해충 스프레이를 사와 사방 천지에 뿌려댔을 것이다. 사고가 나서 죽을 때까지 이모는 강박증과 편집증의 노예였으니까. 하루살이들을 눈에 띄는 족족 손으로 흔들어 쫓으려 했지만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도 그것들은 이모의 사진 앞을 맴돌고 있었다.

그 와중에 들리는 말이 하나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이모의 친척이거나 지인인 사람이 꺼낸 말이었다.

남긴 돈이 꽤 있다고 들었는데.

다 제 언니한테 가겠지. 결혼도 안한 노처녀인데.

제 부모한테 가지 않나?

부모 죽은 지가 옛날이여.

언니가 복 받았구먼.

살아있을 때 돈을 앵간히 밝혔어야지, 여자가. 명절 때 얼굴 한 번 안 들이밀었어.

한 남자의 손에서 술잔이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근데 그 소문 들었는가?

아뇨,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쪽으로 자세를 바꿔 앉았다.

시체가 없대, 시체가.

시체가?

아까 가족들 애기하는 거 들어보니까 대충 그렇더구만.

시체가 왜 없어, 멀쩡한 시체가 제 발로 어딜 돌아다니나?

모르지. 처녀인 채로 죽었으니 남자 맛보려고 돌아다니는 건지도.

그들이 낄낄거렸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냥 고개를 숙이며 토하는 체를 했다. 왠지 그게 예의일 것 같아서였다. 이모가 보는 데서는.

스피커에서 나온 목소리는 그게 끝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귀를 기울였을 때는 멍한 침묵만 느껴진다. 나는 방금 들었던 목소리를 다시 되살리려고 애쓴다. 애를 쓰면 쓸수록 목소리는 머릿속 잡념에 덧씌워져 엄마의 목소리나 친구의 목소리도 되었다가, 이모의 목소리로 날카로워진다. 그래, 그 날카로움. 나는 다시 소파에 앉는다.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괴수의 갈라지는 울음소리처럼. 장례식을 앞두고 이주 전쯤에 만났던 이모의 목소리와 비슷했다. 목이 쉰 것 같은 쇳소리가 거슬릴 정도로 가시 돋아 있었다. 이모의 회사 일을 도와주러 알바 비슷한 걸 하러 갔을 때였다. 하루 스케줄을 숨 쉴 틈도 없이 1분 단위로 빽빽하게 적어놓은 시간표가 이모의 집 현관에 붙어있었다. 내가 5분 정도 늦는 바람에 이모의 시간표가 어긋날 위기에 처해있었다. 내가 상부에 낼 보고서들 오탈자를 점검하는 두 시간 동안 이모는 쉴 새 없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지 말라, 잔소리를 퍼부어댔다. 애초에 스피커에서 나온 저 소리가 사람인지, 동물인지 뭔지 알 수조차 없다. 그렇지만 다시 들려올 것 같은 직감 아닌 직감에 나는 바싹 긴장하며 귀를 열어둔다.

시간이 좀 지난 것 같은데 스피커는 잠잠하다. 나는 팔걸이에 머리를 대고 소파에 몸을 뻗는다. 어디선가 나타난 수십 마리의 하루살이 한 무리에 어떤 여자가 둘러싸여있던 모습이 머릿속을 스친다. 여자는 그 자리에서 거품을 물고 쓰러지더니 고통에 찬 비명을 질러대며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세 시간 전의 일이다. 나는 도망치듯 노래방으로 달려 올라와 이곳 14호실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지금 나는 여전히 이곳에 있다.

3

하루살이에게 감염되는 것이 틀림없다. 내가 두 눈으로 목격했으니 의심할 여지도 없다. 다만 아까 여자가 하루살이로 ‘변하는’ 과정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어느 새 노래방에까지 번졌는지는 모르나 이곳 건물 안이든 바깥이든 온통 하루살이 천지다. 노래방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모두 하루살이로 변해버린 모양이다. 만약 아직 성한 사람이 있다면 뭔가 기척을 냈겠지. 아까의 일을 되씹어봤을 때 공격성이 눈에 띈다. 마치 맹수마냥 어디 숨어있다 튀어나올 지도 모르는 일이다. 모두 다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엄마가 재미없다고 중간에 꺼버렸던 ‘해프닝’이라는 미스터리 영화 주인공의 말처럼, 자연의 섭리에 대한 진실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디까지나 추론에 의존한 가설과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하루살이가 되기 싫다는 사실.

정말 이름대로 하루만 살고 죽지는 않는다는 연구결과를 어디서 본 것도 같다. 하지만 그래도 싫다.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다 징그럽고 좁쌀만 한 벌레로 변한다는 게. 남의 밥그릇이나 썩은 음식들을 기웃거리며 살아간다는 게. 내가 혐오하고 만날 죽이기 바쁘던 대상의 삶을 산다는 게. 머릿속으로 시답잖게 이유들을 나열해보지만 쓸데없는 짓이다. 참나, 하루살이가 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4

어쩌다 노래방에 갇힌 건지 새삼 이상한 기분이 든다. 친구들이 하나 같이 끝나자마자 방과 후 보충에, 소논문 대회 오티에, 야자에 시간이 없다고 해서 그냥 나 혼자 와버린 것이었다. 혼자 노래방에 오기는 처음이라 살짝 떨리고 괜히 창피하기도 했다. 이모도 처음에는 그랬을 터였다. 노래방이나 영화관에 혼자 가는 게 버릇이 되어버렸다고 이모는 언젠가 말했었다. 모든 일에 냉정하고 철두철미하게 기계마냥 움직이는 사람이 그런 ‘문화생활’을 즐긴다고 생각하니 이상했다. 심지어 노래까지 부른다니. 이모는 노래방에 갈 때 항상 주인에게 하는 말이 있다고 했다. 서비스 시간은 안 줘도 돼요. 사람이 많고 적을 때를 골라서 가는 것도 아닐뿐더러 서비스 시간이 변칙적이기 때문에 스케줄에 차질이 생긴다는 얘기였다.

아니 이모, 그게 얼마나 큰 낙인데! 서비스 시간 엄청 아깝다. 차라리 나 주지.

뭐가 아까워? 그 대신 일이 계속 밀리는데.

무슨 노래를 부르냐고 내가 물어보면 이모는 그냥 옛날 발라드, 라고만 대답했다. 혼자서 무슨 재미로 가느냐고 물어보면 혼자니까 재밌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엄청 귀찮거든. 이모가 다 쓴 빨대를 티슈로 몇 번이고 닦으며 말했다. 같이 갈사람 구하는 거 안 귀찮니? 그리고 분위기도 신경 써야 하고. 다 싫어. 종일 사람들하고 부대끼는데 일주일에 하루쯤은 혼자서 보내야지. 영화는 반드시 사흘 전에 인터넷으로 예매. 철칙이었다. 예고편과 관객 후기를 보지 않고 가는 것도 이모의 철칙이었다. 맛있는 걸 먹고 싶을 때도 이모는 혼자 가서 먹기를 즐겼다. 고깃집까지 혼자 가봤는지는 모르지만.

일순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스피커에서 다시금 목소리가 들린 것이다. 이번엔 확실히 머릿속으로 목소리의 형태를 뜰 수 있다. 고라니의-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괴상한 기침소리 같은 울음소리와 밤중에 들리는 고양이의 아기 같은 울음소리를 섞어놓은 듯한 소리였다. 동물이 내는 울음소리일까. 그렇다면 어디에서 들려오는 것일까. 나는 문에 난 창으로 눈동자를 붙박았다. 최대한 시선이 닿는 데까지 눈에 힘주어 살핀다. 하지만 스피커 소리의 정체라고 짐작될만한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여전히 떼 지어 웅웅거리는 하루살이만 보일 뿐이다. 나는 바로 얼굴로 달려들 것 같은 그 움직임에 뒤로 움찔 물러난다. 가만히 그들의 날갯짓을 응시한다. 저 중에 혹시 이모가 있을 수도 있겠다, 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저 중 누구일까. 일정한 패턴이라도 있을까 싶어 읽어내려 하지만 걔가 쟤고 쟤가 재 같다. 분간하기가 힘들다. 문득 왜 하루살이들은 떼를 지어 모여 있는 것인지 의아하다. 그거야 한 마리는 너무 작고 약하니까. 초원의 초식동물들이 으레 그렇듯이. 저 중엔 사람이었던 하루살이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도 서로 가까이 뭉쳐있는 것이다. 우습다. 사람이었을 적엔 서로 살겠다고 경쟁하며 짓밟기 바빴으면서, 이젠 살겠다고 버둥거리며 짝짓기를 하면서 뭉쳐있다니. 식도로 역류하는 신물의 쓴맛과 함께 조소에 입꼬리가 우그러진다. 너무 염세주의적인가. 어렸을 때 읽었던 하루살이에 관한 동화 하나가 생각난다. 그 하루살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100년만큼이나 재밌고 알차게 보내자고 마음먹는다. 모험을 떠나고, 시련도 겪고, 연인도 만난다. 그리곤 쇠똥에 처박혀 죽는다. 끝이 조금 비루하긴 하지만 흔한 동화 속 주인공이나 영웅의 일대기처럼 보람된 삶이다.

그런데 내가 바라보고 있는 저들에겐 그런 것조차 없는 것인가.

아니면 당황, 그래 당황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인간의 몸에서 하루살이 몸으로의 신체 변화도 변화겠지만 무엇보다 주어진 시간의 변화에 대한 적응이 시급할 터였다. 벌써 저 하루살이들은 하는 것 없이 세 시간 째 가만히 제자리에서 날갯짓만 반복하고 있다. 저들은 24시간 중 세 시간을,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날려버렸을 것 같다. 수많은 계획과 일정과 스케줄 속에서, 영원할 것만 같던 시간 속에서 살던 존재가 24시간의 시공간에 빠져버린 셈이다. 100세 시대에 맞게 100년에 걸쳐 설계한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24시간으로 응축, 수정해야 하는 과정이란 녹록치 않을 것이다. 너무나 당황스런 나머지 쇼크사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공간의 갭을 견디지 못하고 사망. 아마 이모였다면 그랬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주일을 1분 단위로 계획하던 사람이 24시간 하루살이가 되어 살아가는 모양새란.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재앙에 가까울 것이다.

5

할 일이 없다. 맞다, 핸드폰! 하면서 폰을 찾으려던 순간 사흘 전에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국제전화로 엄마한테 욕을 먹긴 했지만 하나 새로 사준다고 했는데. 그래, 엄마아빠는 어떻게 되었을까. 여태껏 가족 생각을 안했다니, 나도 참 인정머리 없는 인간이다. 하지만 굳이 변명을 해보자면 부모님은 둘이 여행을 가신 지 이미 닷새째다. 혼자 집을 보는 게 사흘이 넘어가니 독신으로 살고 있는 양 익숙해진 탓이다. 이모가 살아있었다면 이모네 집에서 지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말렸을 것이다. 평소에 이모한테 놀러가는 것도 그리 탐탁찮게 여기던-할 건 다 하고 땡땡이치는 거야?-엄마였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으나 뭘 거슬려 하는 건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보나마나 이모의 그 괴상한 성격 때문이었을 거다. 내가 옮아올까봐. 이모의 행동 하나하나에 타박과 뒷담을 하던 사람이 아닌가. 이모가 잠시 집에 와서 아빠 회사에서 일어난 비정규직 파업 사태에 대해 실컷 떠들고 간 5월 중순쯤이었다. 그때 엄마는 옆에서 이모의 말에 맞장구를 치던 내게 물었다. 넌 이모가 좋니? 내가 그 말에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긍정의 대답을 했으리라. 엄마는 이모가 주고 간 비누세트를 창고에 처박아버렸다.

엄마와 이모는 쉽게 말해 씨 다른 자매였다.

그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어느 누구에게서도 들은 바는 없으나, 둘 사이에 흐르던 미묘하게 어긋나있는 주파수를 기억하고 있다. 딱히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다른 자매들처럼 툭닥거리면서 챙겨주는 사이도 아니었다. 그저 만나야 할 때 만나는 사이였다. 그 이외의 시간을 서로에게 양도할 수 없는 사이였다. 이모의 장례식 때 엄마가 울었나. 머릿속이 가물가물하다. 뭐 이모는 개의치 않았으리라. 그나마 가까이 지냈던 나조차 울적한 표정을 지은 게 다일 뿐, 감정의 북받침이나 어떤 휘몰아치는 슬픔 같은 걸 느끼진 못했다. 한 가지 기억나는 게 있다. 친척들끼리 모이는 명절날에 이모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단 한 번도. 뭐랄까, 이모는 저 혼자 섞이지 못하고 허공만 뱅뱅 떠도는 벌레와 비슷했다. 이모에 대한 가족들의 관심을 비율로 낼 수 있다면, 이따금씩 삼촌이 전기모기채를 휘두르며 파리를 잡는 순간 파리에게 갖는, 그 얕은 관심과 비슷할까. 그녀는 뒷담화의 대상에조차 오르내리지 못했다. 어쩌다 이름이 튀어나와도 잠시 귓가에 모기가 앵앵대듯 몇 초의 존재감에 지나지 않았다.

일순 위잉, 하는 소리에 시선을 돌린다. 바람 소리인가 싶었는데 아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를 새에 하루살이들이 새까맣게 바깥 유리창을 뒤덮고 있다. 창에 달라붙어 있거나 돌아다니는 모습들이었지만 어딘가 달라진 점을 발견한다. 나는 그게 뭔지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뒤늦게 알아챈다. 무리 지어 다니던 하루살이들이 점차 흩어진 모양새였다.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순 없지만 멀리서 봤을 때의 모습이 아까하고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 무슨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짝짓기가 다 끝난 걸까. 이모가 이 하루살이들 중 한 마리로 섞여 있다고 가정하면 이모도 짝짓기를 했을까. 남자와 자본 적은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이모는 남자에 관심이 없어보였다. 물론 결혼도 하지 않았고 이모의 애인 역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모 집에 갔을 때 몰래 남자의 흔적을 쫓으려고 했으나 먼지 한 톨도 없었다. 서른 중반을 넘기면서 노처녀에 가까워질 때마다 엄마가 이모더러 결혼은 언제 할 거냐고 물어봤지만 아직은 여유가 없다고 했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남까지 어떻게 신경 쓰고 먹여 살려, 요즘 같은 세상에. 다른 생물들처럼 인간도 오로지 종족번식만을 목적으로 사는 생명체면 몰라, 만물의 영장이셔서 여러 가지 해야 할 게 한두 가지야?

음, 했을 듯싶다. 짝짓기. 하루살이가 뭐 하는 게 있겠는가. 하루 인생 즐겁게 오늘만 사는 인간처럼 즐기다 가면 되는 거지. 이모의 짝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하다.

6

마이크를 손에 쥔다. 가만히 앉아서 언제 올지 모를 경찰을 기다리느니 노래라도 실컷 부르면 더 나을까 싶어서다. 그리고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릴 수도 있잖은가. 그러나 이내 사방이 방음벽으로 둘러싸여있는 현실을 떠올린다. 마구잡이로 선곡한 노래는 웬 베트남 노래다. 노래방 곡들 중 국가별 목록을 찾아보면 팝송을 비롯해서 일본, 베트남, 필리핀 등 다양한데 그 중 베트남 노래가 걸려든 것이다. 알 수 없는 문자로 적힌 가사에 생경한 반주리듬이 띵동거린다. 그리고 왠지 모를 낯익음에 나는 어색하다. 이모네 집에서 알쏭달쏭한 노래 하나가 흘러나오는 광경이 일순 눈앞에 펼쳐진다. 베트남 노래를 어디서 들어봤나, 했더니 이모가 범인이었다. 이게 그 노래인진 모르겠는데 대충 비슷한 것 같다. 내가 가사 내용이 뭐냐고 묻자 이모는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 그냥 음이 좋아서. 딱 들어보면 로맨스 노래 같지 않니? 이모는 그렇게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는데 이미 잘생긴 남자친구까지 딸린 애라고, 그래서 아무 소용이 없다고. 그 말을 이모한테 하니 그래도 마음을 놓지는 말라고 했다. 좀만 기다려봐. 금방 깨질 테니까. 나는 깨지지 않을 거라고 했다. 걔넨 결혼까지 할 걸. 1분 1초도 서로 못 봐서 죽는 애들인데. 하지만 이모의 예언대로 그 여자애는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잠깐 동안 내게도 희망이 있는 건가, 싶었는데 어느 새 다른 남자애와 사귀고 있는 여자애였다.

이모가 ‘사랑’을 해본 적이 있을까.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 이모의 스케줄에서 사교 시간이나 연애 시간 따위를 본 적이 없다. 뭐 몰래 했었을 수도 있다 치더라도……. 솔직히 말해서 오늘 하루 남은 인생 다 사는 것처럼 빡빡하게 사는 여자와 누가 연애를 하고 싶겠느냐는 말이다. 굳이 우겨보면 이모의 그 근육 불거진 장딴지를 좋아하는 남자가 어딘가에 존재할 수도 있을 테지만.

즉흥적으로 아무렇게나 지어낸 가사들이 혓바닥 위에서 능글맞게 흐느적거린다. 이리저리 손으로 허공을 젓고 몸부림치며 노래를 부른다. 나밖에 없으니 평소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대로 자유롭게 몸이 움직인다. 실제 콘서트를 개최한 가수처럼, 수천 명의 팬들을 눈앞에 둔 가수처럼 온갖 제스처와 말들을 흉내낸다. 지금 당장에 온몸의 모든 열정을 쏟아내는 양 나를 내려놓고 노래를 불러 젖힌다. 뒤죽박죽 갖가지 일들로 엉켜 있던 일상에서의 일탈로부터 비롯된 카타르시스가 나를 흥분시킨다. 바깥에서 끊임없이 춤을 추고 있는 하루살이들이 나를 따라 열광하며 몸을 들썩이는 팬들로 여겨진다. 아니, 팬들로 여긴다. 종족번식을 목적으로 사랑도 관심도 슬픔도 열망도 없는 무조건적인 짝짓기를 하는 하루살이들과 우리들이 별로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 한 구석에 고여 든다. 내가 좋아했던 그 여자애와 하루살이 암컷 사이에 어떠한 차이가, 존재할까.

7

마이크를 내려놓는다. 수많은 사람들의 침방울과 입내가 닿았던 거기엔 이제 내 것도 묻어있다. 팔을 양 쪽으로 늘어뜨린 채 고개를 뒤로 젖힌다. 핥으면 달달한 슈가파우더가 녹아들 것 같이 흰 달이 반으로 뭉뜽그러진 채 떠있다. 짙은 보랏빛 파랑으로 침잠한 하늘은 하루살이들의 날갯짓에 거뭇거뭇한 반점이 박혀있는 것 같다. 창을 열어 시원한 공기를 쐬고 싶지만 당연히 불가능하다. 창문도 없을뿐더러 열면 즉각 하루살이들이 몰려와 나를 물어뜯을 테니까. 아, 물어뜯진 못할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동화책에서 읽은 기억에 의하면 하루살이들은 입이 없다. 그러니 물어뜯을 이빨도 없다. 거기다 말도 못하겠구나.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갑작스레 밤바람에 올라탄다. 경찰이다! 실낱같은 희망에 벌떡 일어서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는다. 경찰이 여기까지 과연 무사히 올 수 있을까. 그런데 이깟 하루살이들 그냥 전기 파리채나 청소기 같은 걸로 없애면 끝이잖아? 나는 한동안 그 물음에 들떠 있었다. 순간 문을 열고 도망갈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그러기엔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 발에 채였다. 문득 나는 하루살이에 대해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짧게 살고 징그럽고 귀찮다는 점 외엔.

스피커에서 삑, 하는 화이트노이즈가 터져 나온다. 나는 화들짝 놀라 뒤로 자빠진다. 엉덩방아를 찧고 주저앉은 나는 다시금 들리는 목소리-아니 울음소리에 정신을 집중한다. 여전히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다. 무언가를 웅얼거리는 듯하면서도 아무 뜻 없이 그저 공기 사이로 진동하는 울림에 불과한 것 같다. 사람이 엉엉 우는 소리 같기도 하다. 분명 노래방 내에 누군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몸은 지치고 뱃속은 곯은 소릴 내며 배고프다고 투정을 부린다. 나는 문가로 다가간다. 수백, 아니 수천에 가까운 하루살이들이 복도를 점거하고 있다. 그들은 서로 뭉쳐 있지 않았다. 파리처럼 각자의 영역을 형성하고 있었다. 하천이나 나무 밑에서 떼를 지어 모여 있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아까보다 더 그 현상이 심해졌다. 어떤 일이 생긴 건지는 짐작할 수 없다. 나는 창가로 달려간다. 경찰이 도착했나 살펴보기 위해서다. 하루살이들을 끌어들이는 전조등의 노란 불빛이 눈에 띈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사람을 찾는 소리 대신 점점 정적으로 잦아드는 신음소리만 들릴 뿐이다. 나는 창에 뺨을 붙인 채로 아래를 내려다보기 위해 애쓴다. 경찰관은 어둠 속에 파묻힌 채로 온 몸을 뒤틀고 있다.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주위에 하루살이들이 새까맣게 날아든다. 마지막 희망의 빛이 탁 꺼져버리는 듯한 기분이다. 남자의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하루살이들은 바닥에 튀는 소금가루처럼 사방으로 순식간에 각자 날아가 버린다.

나는 문고리를 감아쥔다. 차가운 금속의 느낌이 살갗을 찌른다. 여태껏 느끼지 못한 답답함과 무언가가 숨통을 죄는 것 같은 느낌, 폐소공포증 비슷한, 각양각색의 감정들이 떼거리로 달려드는 하루살이 떼 마냥 나를 포위한다. 지금까지 버티고 있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려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것 같다. 진즉에 나갔어야 한다는 후회가 밀려든다. 나는 문고리를 쥔 손에 힘을 준다.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얗게 피가 메말라버리기라도 했나. 한순간 공명하는 혼란에 빠져든다. 나는 내 두 손을 내려다보고 몸을 만져보고 고개를 들어 문에 비친 나를 살핀다. 나는 하루살이로 변하지 않았다. 아직 인간이다. 시야 한 쪽에 여전히 환한 TV 스크린이 밟힌다. 잔여시간은 여전히 한 시간이 남아있다.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안에서 발돋움한 상태로 핏줄을 세운다. 문을 연다.

얼굴에 우수수 무언가가 떨어지는 느낌이 감각을 마비시킨다. 통신이 끊긴 아날로그 TV화면처럼 세상이 검은 점들로 수없이 반짝인다. 나는 재빨리 몸을 움직이려 하지만 발걸음은 꿈속에서처럼 느릿하다. 스피커에서 들리던 소리의 진원지를 쫓아 두 발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에서 하루살이들을 떼어내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엉겨 붙는다. 마치 내가 저희들의 하루 삶 동안의 유일한 먹이라도 되는 것처럼. 카운터와 바깥문이 나타난다. 그 목소리는 카운터에서 들려오고 있다. 나는 그 쪽으로 다가간다. 주인아줌마가 안내 방송을 할 때 쓰는 마이크가 머리부터 끝까지 새까맣다. 은빛의 울림 부분을 하루살이들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메우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거으으아앙, 하는 그 소릴 듣는다. 나는 잠자코 그 소릴 듣는다. 한 순간 시야가 흐려지는 느낌과 함께 척추가 맥없이 허물어진다. 뒤이어 피부 저변에 느껴지는 고통에 사로잡힌다. 나는 그 울음소리에 매몰되어 스러진다. 24시간 노래방에 가득한 하루살이의 울음소리는 매우 시끄럽기만 하다. 구슬프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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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국민으로서 -일산 대진고 사건을 통해 본 학생의 정치참여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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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국민으로서

-일산 대진고 사건을 통해 본 학생의 정치참여에 대해-

*한글파일 형식상 각주는 괄호 안으로 옮겼습니다.

 

  지금, 시국선언을 하고 대자보를 붙이는 순간

주권자가 일어섰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비정상적인 국정 상태를 바로잡기 위해서다. 국정농단에 대한 분노와 나라를 다시 새롭게 건설하려는 열망으로 타오른 국민들의 촛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을 환히 밝히고 있다. 그런데 나는 최근에 충격적인 기사 하나를 접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박근혜 게이트와 관련한 시국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내리려 한 것이다. 더군다나 시국선언을 나서기도 전 학생들이 동급생들에게 받은 서명용지들을 빼앗아 파쇄 하였다. 학교 측은 미리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시국선언도 집시법에 저촉되는지에 대하서는 논란이 있다. 한 네티즌은 헌법 제 21조의 사항들을 예로 들며 행인들에게 불편을 주거나 교통에 불편을 주는 경우에만 집회를 신고하도록 되어있으며, 또한 시국선언은 집회가 아니기 때문에 신고를 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시국선언과 집회의 성격에 관해 논의가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에 따르면 학교 측에서 별도의 징계를 내리지 않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고 한다)둘러댔다. 그러나 해당 학생 인터뷰와 교사의 발언 녹취록 등을 근거로 할 때, 학교의 대응은 단순히 집회를 미리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내린 훈계가 아니라 학생의 정치참여 자체를 탄압하고 징계를 내리려는 겁박에 가까웠다. 해당학교 일부 재학생들은 ‘학교의 이름을 내건 행위’인만큼 미리 교사들에게 알렸어야 했다고 학교를 두둔하기도 한다.

 

*관련기사: http://www.huffingtonpost.kr/2016/11/09/story_n_12873286.html

 

하지만 시국선언을 한다는 사실을 학교에 미리 알려 교사들과 상의를 하지 않았기에 징계를 한다는 것은 그저 둘러대기식 변명에 불과하다. 그 학생들이 미리 알렸다면 선생님과 학교가 하라고 내버려두었겠는가? 당연히 못하게 막았을 것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 때도 이와 같은 일이 전국의 일부 학교에서 이미 일어난 바 있고, 따라서 해당 학생들은 시국선언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몰래 해야겠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애초에 '상의'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학교의 이름을 건 행위’는 조심스러워야 한다. 자칫하면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학생과 선생님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시국선언이 앞서 말한 ‘명예실추’와 ‘피해’에 해당되는가? 그렇지 않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학생들의 시국선언이 학교의 이름을 건 행위가 합당하다고 본다.

 

일산 대진고는 우리 집 바로 앞에 있는 곳이다. 중3때 1지망 고등학교로 쓴 곳이고, 아는 친구가 다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점이 뭐가 중요하겠느냐마는, 다른 먼 지역의 학교에서 일어난 소식으로만 접하던 일이 바로 집 앞 고등학교에서 버젓이 일어났기에 상당히 충격적이다. 흔히 사용하는 ‘피부로 와닿았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게 맞겠다.

 

최순실 국정농단을 비롯한 박근혜 게이트가 현재진행형인 지금, 중고등 학생들의 역할과 그 가치는 더욱더 커지고 있다. ‘대구 여고생 발언’과 ‘중고생들의 시위’를 비롯한 수많은 학생들의 목소리와 대자보가 그 증거다. 나는 이러한 상황에서 일산 대진고에서 일어난 징계 사건은 명백히 학생-청소년의 참정권, 발언권, 표현의 자유권 등을 학교와 교사 기득권층이 제도와 권력을 통해 억압하려한 ‘인권침해’라고 규정하겠다.

 

 

  1. 학생의 참정권과 ‘미성숙함’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공화국이다. 헌법 제 21조에서는 모든 국민의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헌법 제24조와 제25조 역시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다. 국민이 주권을 가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참정권’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국민들은 참정권을 행사하여 대변인을 뽑고(대의민주주의), 그 대변인들이 올바르지 못한 길로 가고 있으면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국민’에는 선거권을 가지고 있는 만 19세 이상 성인뿐만 아니라 학생-청소년(미성년자) 역시 포함된다(세계적으로 선거권을 만 18세 이상으로 낮추는 추세이다. 최근에 국회에서도 이와 관련한 선거법 개정 법안이 발의되었다). 그러므로 학생 역시 참정권을 가지고 있는 똑같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앞서 말한 일산의 대진고 는 이러한 넓은 의미에서의 학생 참정권을 침해하였다. 학생들은 비록 학교에 소속되어 있지만, 학생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이다. 고작 학교라는 조그만 단체의 ‘규칙’ 따위가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억누를 수 없다. 그리고 ‘학생인권조례’의 존재를 잊어서는 안 된다.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은 전국 시도교육청 중 제일 먼저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였다. 이후 서울특별시와 인천시, 광주광역시, 전라북도 등이 잇따라 학생인권조례를 발표하였다(이 지역들을 제외하고 다른 지역은 아직 학생인권조례가 미비한 현실이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 16조 제 1항은 ‘학생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하여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제 2항에선 ‘학교는 학생이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경우 부당하고 자의적인 간섭이나 제한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한다(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 블로그 ‘대진고 사건’ 관련 게시물 참조). 일산 대진고는 이 역시 위반했다. ‘부당하고 자의적인 간섭이나 제한’을 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일산 대진고는 대한민국 국민의 기본권 중 하나인 참정권과 대한민국 학생-청소년이 가진 권리 중 하나인 의사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였다. 비단 이 학교뿐만이 아니다. 대구의 한 학교에서도 박근혜게이트와 관련하여 교내에 게시된 대자보를 게시한 학생의 허락도 없이 즉각 훼손하고 없애버렸다. 해당 학교 교장은 “학생들은 아직 미성숙하기 때문”이라고 철거 이유를 설명했다. 대진고 사건에서도 학교 측 해명 중에 그와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여기서 ‘학생’의 ‘미성숙함’이란 대체 뭘 의미하는 것인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 간단하게 말해 이 말은 기존 기성세대의 편견에 뿌리를 둔 ‘청소년혐오’적 표현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미 법과 조례로 보장된 학생의 참정권과 의사표현의 자유권을 ‘미성숙함’이라는 그럴 듯한 단어 하나로 일체 부정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미성숙함의 정의는 ‘아직 성숙하지 못함’이다. ‘성숙함’의 의미는 세 가지로 정의된다. 첫 번째로 ‘생물의 발육이 완전히 이루어졌음’, 두 번째로 ‘몸과 마음이 자라서 어른스럽게 됨’, 세 번째로 ‘경험이나 습관을 쌓아 익숙해짐’이라는 뜻이다. 어디를 찾아봐도 ‘만 19세 이상 성인’ 같은 나이를 기준으로 삼고 있지 않다. 물론 그와 비슷한 ‘생물의 발육의 완전함’이라는 의미가 있으나 그것은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의미가 이 단어의 본질적 뜻임을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뤄졌던 학생의 참정권 탄압 사례들을 돌이켜보라. 학교에서 말하는 성숙함이란 나이와 신분만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아직 학생 주제에’, ‘미성년자가 어른들 일에 뭘 나서느냐’, ‘학생은 학생의 위치에서 학생의 본분이나 다 하라’. 이것이 학교(와 기성세대)가 학생들에게 말하는 성숙함이다. ‘성숙하다’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를 완전히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더 깊게 내려가 본다면 이러한 현실은 ‘청소년’이라는 약자에게 가진 편견과 기성세대가 생물학적 성인으로서 갖는 위계적 권력이 만연한 상황에서 생긴 ‘청소년혐오’의 한 양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의 관점에서 앞선 사례들을 다시 살펴보겠다. 우선 해당 고등학교는 시국을 이 지경으로까지 몰고 온 기성세대로서의 책임을 외면하였다. 이어 시국선언이라는 필연적이고 합당한 행위를 탄압한 학교는 정신적으로 미성숙하기 때문인 것이 틀림없다. 반면 학생들의 시국선언은 현 상황에 부합하며 또 필요한, 국민으로서 당연한 정치적 행위이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누가 성숙하고 누가 미성숙한가? 성인이라고 다 성숙한 것이 아니며, 학생이라고 다 미성숙한 것이 아니다. 만약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 나이와 신분만으로 성숙한지 여부가 결정된다면, 애초에 이 지경까지 우리나라가 파탄으로 내몰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사회가 지금까지 얼마나 성숙함의 의미를 왜곡했는지를, 또 청소년혐오를 무기삼아 성숙한 국민들의 참정권을 억압해왔는지를 깨닫고 반성해야한다(김진태 의원은 최근 국정감사 때, 11월 5일에 있었던 중고생들의 집회를 종북으로 몰아붙이며 종북주의 교사의 사주를 받은 것이 틀림없다면서 이적단체성을 조사하라고 법무부 장관에게 말하였다. 본 글의 논지에서 약간 벗어난 내용이지만 마찬가지로 청소년혐오를 바탕으로 한 기성세대의 청소년 정치참여 탄압의 사례이기 때문에 일러둔다).

 

 

  1. 역사엔 언제나 학생이 존재했고, 존재하며 존재할 것이다

역사를 써온 것은 영웅이나 유명 정치가, 예술인, 사업가들이 아니다. 역사의 중심은 항상 학생-청소년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유명 정치가들도 청소년 때부터 정치참여를 해오면서 의식을 발전시켜 갔다. 반면 현재 우리나라 사회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청소년’과 ‘정치’를 마치 서로 마주하면 안 되는 상극인 물질마냥 여기고 있다. 대자보를 붙이거나 시위를 하고, 집회와 시국선언을 하면 쉬쉬해왔고 어쩌면 술담배나 학교폭력보다 더 금기시 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청소년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존재할 수 없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곧 그 나라의 미래이고 발전을 지속해나갈 주역이기 때문이다. 주역을 무시하는 사회는 기득권과 과거의 망령에 얽매여 퇴보를 거듭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이미 우리나라는 퇴보 중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대표적인 학생의 정치참여 사례는 1929년에 있었던 ‘광주학생항일운동’을 꼽을 수 있다. 발단은 일본인 학생이 기차에서 한국인 여학생을 성희롱한 일이다. 그에 대한 한국인 학생들의 반발이 생겼고 학교간의 패싸움으로 이어졌다. 그 뒤 광주에서 고등학생들의 가두시위가 전개되었고,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일본 제국주의 타도’, ‘무산계급 혁명’, ‘민족해방’ 등을 내세운 대규모 시위로 확산되었다. 이 운동은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3.1운동이나 6.10만세운동과 같이 일부만 참여한 게 아니라 ‘조직적’으로 대중운동을 주도해나갔다는 사실에 의의가 있다. 광복을 거쳐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학생들의 정치참여는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1987년의 6월 민주항쟁과 1960년 4.19혁명에서 학생들은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에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산발적인 시위를 진행해나갔다. 1960년 3.15부정선거를 앞두고는 야당의 유세현장에 가지 못하도록 정부가 일요일에 등교조치를 취한 데 대한 저항으로 2월 28일,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시위를 벌였다. 또한 박정희와 전두환의 군부독재 시절에도 학생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전두환 정권 시절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주소영 학생의 일기장은 당시 정권의 살인적 독재와 탄압을 비판하고 민주화를 염원하는 내용으로 빼곡하다(용용군, ‘광주여행, 오월의 광주 (3)5.18 민주화운동기록관’, 네이버 블로그, 2016.06.07). 이처럼 대한민국의 독립과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데 있어 학생들은 지속적으로 저항과 개혁을 주도해왔다. 그들의 정치참여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세우는 디딤돌로 자리 잡았다. 그만큼 학생-청소년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불행하게도 지금 우리 사회와 사람들은 이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는 것 같다.

 

세계적으로도 청소년들의 정치참여는 활발하다. 올해 프랑스에서는 정부의 노동법 개혁에 반대하는 시위가 격화되며 진행 중이다. 대학생, 근로자 등뿐만이 아니라 100곳이 넘는 고등학교가 휴교를 하면서까지 고등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하였다. 프랑스는 시민들이 이끈 여러 혁명을 통해 입헌군주제, 공화정, 전제정치 등 많은 정치적 변혁을 겪으며 민주주의 제도를 일찍이 성립해나갔다. 그런 역사 배경 때문인지, 프랑스는 고등학생을 포함한 다양한 계층의 정치참여가 활발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박근혜 정부가 노동법 개혁을 시도했고, 이는 노동자들의 반발과 ‘쉬운 해고’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지조차 의문일 정도였다. 2014년부터 이어져오고 있는 홍콩의 민주화 시위도 눈 여겨봐야 한다. 홍콩은 중국정부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역시 고등학생들부터 대학생까지 젊은 계층이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판국이다. 시위의 배경이나 전개과정은 다를 지라도,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광주학생항일운동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네이버 검색, 블로그 참조).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현재 우리사회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누구의 피와 땀으로 세운 나라인지 알면서, 정작 학교를 비롯한 기성세대들은 그 역할과 가치를 무시하고 억누른다. 과거에도 학생-청소년들의 정치참여를 막으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있었다. 위계와 권력이 있는 곳이면 항상 비판과 저항이 있고, 반대로 그것을 탄압하고 짓밟으려는 기득권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기득권은 적을 만들거나 논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적극적으로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그것이 지속되면 방관과 침묵, 외면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그들은 젊은 학생들의 비판과 정치참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세계는 지금까지 학생들이 정치참여를 하며 목소리를 냈기 때문에 조금 더 나아진 것이다. 고작 학생들이 참여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 회의적인 사람들도 많다. 즉각적으로 새롭고 거대한 변화가 현실에서 일어나기는 힘들다. 하지만 중요한 건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는’ 점이다. 그 나아짐이 계속 되다보면 언젠가는 이상이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1. ‘우리 학교’는 학생의 참정권을 보장하고 있을까.

과연 우리가 다니는 학교는 우리의 참정권을 보장하고 있는가? 학생인권조례를 두고 있는 지역은 몇 개 되지 않는다. 경기도, 인천, 서울, 전라북도, 광주 등 다섯 곳의 교육청에 불과하다. 아직도 전국적으로 규정상으로나마 학생의 참정권을 보장해주는 곳이 얼마 없다는 의미다. 교육부가 전국적으로 시행령을 공포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몇몇 지역에서는 학생들 스스로 인권조례를 제정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였으나 해당 학교 교칙에 의해 징계를 받았다고 한다(나무위키 참조). 그렇다면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어있는 지역의 학교들은 어떨까. 나는 제일 먼저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 경기도 고양시의 일산에 있는 한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다.

 

2014년부터 3년째 학교를 다니면서 우리 학교에 대자보가 나붙거나 시위, 집회 등이 열린 것을 본 적은 없다. 혹시 시도를 했는데 취소되거나 은폐되어서 모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상당히 ‘고요’한 편이었다. 학교 교지를 통해서 소극적으로 참여할 수는 있었다. 나는 3년째 교지편집부에 몸을 담고 있는 덕분에 교지를 통해 역사교과서 국정화나 한일위안부합의에 관한 비판적인 글을 쓸 수 있었다. 미약하게나마 정치참여를 했다고 생각한다(사실 그것도 쓰면서 혹시 학교나 담당선생님이 뭐라고 하지는 않을까 내심 마음 졸였던 것도 사실이다. 학교가 나름 진보적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데도). 그러나 내가 쓴 글의 주제가 갖는 심각성에는 한참 모자라고 거리가 있는 행동이다. 나 역시 후회되는 것도 반성해야 할 것도 많다. 어쩌면 지금까지 성장해오면서 세뇌 받은 기성세대의 편견과 청소년혐오가 무의식적으로 자리 잡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자리 잡았을 것이다. ‘고등학생인 주제에’ 나서는 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두려움, 주변에서 받을 따가운 시선. 작년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시위 때에도 또래 고등학생들의 목소리를 신문으로 접하면서 ‘그래도 학생인데 무슨’, 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동급생들의 서명을 받거나 피켓을 제작하는 등의 행동은 머릿속으로만 그려보았을 뿐 행동으로 옮긴 적은 없다. 나 같은 생각을 가진 학생들이 아마 대부분일 것이다(아니라면 정말 다행이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서는 여태껏 그런 대자보나 시위 등을 보지 못했던 것이리라.

 

이와 같이 비교적 소극적인 정치참여 매체인 학교교지조차 학생들의 정치참여를 위한 통로가 되기가 쉽지 않다. 이것이 현재 우리학교 학생들이 처한 정치참여 현실이다(내가 모르는 우리학교 학생들의 정치참여 측면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 점이 한계임을 밝힌다). 제 3 매체(교지)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지금 시점에선 우리 학교가 학생의 참정권을 완전히 보장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기는 어렵다. 앞으로 대자보나 시위 등으로 정치참여의 단계가 발전하게 되면 그때 확실히 드러나게 되리라 생각한다.

 

당신의 학교는 어떠한가. 당신의 학교는 어느 단계에 머물고 있고 어떠한 상황인가? 그것에 대해 우리는 성찰해보아야 한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곳이 우리의 권리를 빼앗고 탄압하고 있지 않은지, 우리가 스스로 권리를 내던진 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지금 바로 오늘 이웃 학교에서, 저 멀리 섬에 있는 학교에서 대진고 사건과 같은 일들이 벌어지지 말란 법은 없다.

 

 

  1. 학생 정치참여권 보장과 의식 제고

학교는 학생의 정치참여에 대한 기본 권리를 절대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그것이 이 글의 제목이고 주제이자 내용이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이 원칙을 우리 사회의 대부분 학교는 지키지 않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도 침묵한다. 학교 내에 대자보를 붙이고, 학생들에게 서명을 받고, 학교 내외에서 집회와 시위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우리가 갖고 있음을 모르는 학생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 행위를 하면 혼나거나 징계를 받는 것으로 아는, ‘위반행위’라는 인식도 적지 않다. 지금 학생은 학교의 주인이라는 주체의 위치가 아니라 객체의 위치에 놓여있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서 학생의 참정권을 보장해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본다.

 

첫째, 학교는 학생에게 학생이 가질 수 있는 기본 권리들(참정권을 포함한)을 규정하고 이른바 ‘00고교 학생 권리장전’을 공포하여야 한다. 나조차도 지금 우리 학교에서 학생으로서 내가 가지는 권리가 무엇인지 뚜렷이 알지 못한다. 그저 수업권, 동아리 조직의 자유? 그런 것밖에 모른다. 우리들은 학생으로서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금칙행위들만 알고 있을 따름이다. 학생이 어떠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규정을 학생들이 인식할 수 있게끔 교훈이나 급훈처럼 각 반, 복도에 게재하여야 한다. 규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지금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참정권을 비롯해 그동안 소외되어 왔던 학생 인권이 특히 주요 내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집회 및 시위 신고제이다. 교내에서 집회 및 시위를 할 경우 담당교사에게 신고를 하여 날짜와 시간, 활동 등을 보고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다른 학생들의 활동과 겹치지 않도록 하고, 집회 및 시위를 교내에 알려 다른 학생들도 참여할 수 있게끔 학교 측에서 격려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학교 밖에서 일반 시민들이 집회 및 시위를 할 경우 경찰에 집회 신고를 하여야 한다(시국선언도 해당되는지 논란이 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기에 학교 측에서 도움을 주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절차는 학교 측에서 학생의 참정권을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전제 하에 학생과 교사 간의 신뢰가 구축되어 있는 상황에서만 가능하다. 자칫하면 ‘검열’로 악용될 수 있으니 말이다. 지금 상황에서 이렇게 써놓고 보니 실현이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럼에도 충분히 시도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와 같은 절차적 문제 역시 고려해야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학생 스스로의 의식 개선도 절실하다. 학생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이다. 명백히 잘못된 점에 대해서 분노하지 않고 남의 일, 어른들의 일이라고 미뤄둔다면 그 대가는 후에 고스란히 돌아오기 마련이다. 당장 집회에 참가하고 시위행진을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먼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조그맣고 소극적인 참여부터 하는 거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서 적극적인 참여로 발전하여 ‘내가 사는 곳은 내가 바꾸는’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아니면 가족이나 친구, 지인을 따라 가는 것도 좋다. 다만 그때 주의해야 할 것은 반드시 ‘고민’을 해봐야 한다는 점이다. 그 집회가 어떤 것을 목적으로 하는지 사실 파악을 하고, 그럼으로써 나와 사회에 이익이 되는지, 필요한 것인지 등등의 최소한의 고민을 거쳐야 한다. 그런 최소한의 고민과 사실 파악조차 하지 않고 무작정 주변 사람들을 따라 움직이는 순간, 바로 ‘SNS 정치꾼’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1. 정치적, 사회적 잠에서 깨어나야

스스로를 성숙한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누구나 알고 있는 당대의 유명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평생 동안 내가 확실히 안 것은 한 가지밖에 없다. 그건 나는 진리를 모른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안광복,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웅진 지식하우스, 2007). 그처럼 성숙함이란 끊임없이 계발해나가야 하는 자기 삶의 숙제와도 같은 것이다. 어떤 사람은 노인이 되도록 여전히 미성숙할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어린 학생인데도 이미 성숙한 어른일 수 있다. 나이와 경험은 성숙함의 지엽적인 요건에 불과할 뿐, 주요 요건이 될 수 없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그 많은 ‘성숙한’ 어른들이 만든 이 사회는 왜 성숙하지 않은가?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성숙함이란 옳지 않은 일을 옳지 않다고 말하고 바꾸어 나가려는 노력을 할 수 있음, 이다. 이번 일산 대진고 사건은 다시 한 번 대한민국 사회의 미숙한 ‘학생-청소년 정치참여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제 우리 학생들은 정치적, 사회적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목소리를 낼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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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유

내가 이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것은 지금이 새 학년, 새 선생님들을 기다리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뭐, 나름 걱정도 되고 또 괜한 것 때문에 혼자 되도 않는 걱정하기 싫어서 사연팔이 하는 셈치고 주절대려는 것이다.

관계를 맺는다는 건 정말 힘들다. 그 관계가 어떤 대상과 이루어지든 간에 말이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관계를 작용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서도. 이제 한 해를 먹고 2015년인 지금, 5년 째 글을 써오면서 그걸 절감했는데, 아마 내 인생에 있어서 이것보다 더 큰 충격을 주는 연은 없을 것이다.

다만 나는 5년 동안의 글쟁이 생활을 시시콜콜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이미 한 번쯤 말했거니와 그게 이 글의 요지는 아니니 말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관계는 선생님과 ‘글을 쓰는 학생’이다. 일반 친구들과 가족도 아니고, 거기다 친했거나 가까이 지냈던 선생님들과의 무슨 아름다운 눈물 감동 스토리의 인간극장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선생님들은 계속 머리와 마음으로 되새기고 생각해야지, 이 활자 덩어리들에 가둬놓는 것 자체가 미련한 짓이다. 왜냐면 그렇게 내버려두어도 저절로 머리와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그런데 내가 말하려는, 이 파탄의 연속인 관계는 머리와 마음에 가두는 데 이제 한계가 왔다. 앞서 말했듯 일전에 풀어놓긴 했어도 그래도 그건 어디까지나 소설이란 허구의 세계 안이었기에, 나는 그냥 눈앞에 생으로 내놓으려고 하는 것이다.

 

2. 용두사미

중 2때까지만 하더라도 선생님한테 내 글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 1때부터 소설을 쓰긴 했지만 2학년 때까지만 하더라도 온전히 자기만족을 위한 글쓰기였으니까. 더군다나 그 즈음엔 부모님조차 그다지 글 쓰는 걸 탐탁찮게 여기셨고, 기껏해야 내 친구들이 빈말에 가깝게 잘 썼다고, 재밌다고 하는 수준이었다. 백일장이나 공모전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3학년에 올라가서였다. 그래서 처음 나간 것이 마로니에 백일장이었는데, 고등부보다는 덜하지만 어쨌거나 중등부도 경쟁이 꽤 있었고, 처음 나간 대회인데다 산문의 개념조차 헷갈리는 나였기에 상당히 두렵기도 하고 긴장이 되었었다. 더군다나 예선이 있어서 일단 본심 백일장에 가려면 통과를 해야 하는 게 우선이었고, 수필이든 단편소설이든 콩트든 장편을 빼곤 죄다 처음 써보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그동안 자기만족을 바탕으로 혼자서 죽치고 글만 써왔는데 난생 처음으로 '대회'라는 곳에 가게 된 것이다. 그건 어느 모로 보나 충격이었다. 뭐 놀랐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글쟁이의 내 판을 깨버린 것이 아닌가. 더군다나 아는 애는 예고를 준비하고 있었고, 그 애도 예선에 나간다 하여 왠지 모를 불안감이 더 증폭되었었다.

나는 생각했다. 아, 국어선생님과 친해져야겠다고. 때때로 대회 제출 작품도 보여드리고, 피드백도 받고 말이다. 그렇다고 이해타산적인 관계를 원한 건 아니었다. 다른 반 친구 C까지 끌어다 국어선생님이 담당인 독서토론부에 들어갔다. 처음에 C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독서는 그렇다 쳐도 그걸 갖고 토론하는 게 별로라고. 그러나 나는 초기 때만 해도 의욕이 아주 차고 넘쳐서 어떻게든 친구까지 다 데리고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국어선생님과 친분을 쌓아갔다. 어쨌거나 독서토론부도 결국은 책이니 글 쓰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접하게 되었다. 아직까진 괜찮았다. 나는 그 국어선생님이 원래부터 해오던 한 아이에게 이번에도 동아리 활동하라면서 '우리 동아리 기둥인데, 네가 해야지.' 하는 말을 듣고 그 정도로 친분을 쌓고 또 가까이 지내고 싶다, 는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예선에 출품할 작품을 보여드렸다. 사흘 정도가 걸렸고, 3교시가 시작 될 쯤에 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부르셨다. 가보니 내가 부탁드렸던 작품을 꺼내들고 계셨다. 그리고 내 글에 관한 얘기가 시작 되었다. 처음 써본 글, '집'에 관해 수필 식으로 쓴 글이었는데 마치 일대일 수업을 받는 것처럼 글의 구조와 첨삭에 관해 여러 얘기가 오갔다. 그러다보니 3교시 수업시간도 십오분 정도 넘기게 되었고, 수업에 늦게 들어가게 됐는데 마음은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친구나 가족이 아닌, 객관적으로 내 글을 봐줄 수 있는 제 3자를 만난 것이니까 말이다. 수업에 교과서를 아예 챙겨가지 못해서 나는 작품 뒷면에 문제를 푸는 척 하면서 어떻게 글을 고칠지, 생각하기 바빴다.

그렇게 메일로까지 새로운 작품을 피드백으로 주고받으며 대회에 냈고, 예선에 통과한 것도 모자라 첫 대회에서 수상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렇게 나는 독서토론부 활동을 성실히까지는 아니더라도 빼먹지 않고 열심히 하면서 큼직큼직한 대회들, 이를 테면 대산청소년문학상이나 아니면 특정주제에 관한 글짓기 대회들을 여러 차례 악착같이 조언을 듣고, 첨삭을 받았다. 대산청소년문학상에 응모했을 때는, 국어교사 및 학교장 추천서가 필요해서 필히 작품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고, 나는 처음에 A4파일에 작품을 프린트해서 드렸다가 나중에 다시 고쳐서 건넸다. 그리고 한 달 후에, 마감일날 급하게 교장선생님 결재를 받아 겨우 당일 우편으로 응모했다. 물론 나는 나대로의 불만이 있었다. 작품을 보여준 지가 언젠데, 한 달이나 걸려서 추천서를 써주느냐. 그것도 작품은 바빠서 읽어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대회는 예선에서 탈락했고, 그 A4파일은 나와 선생님의 기억 모두에서 잊혀졌다.

관계에 균열의 초석이 깔린 건, 주말의 늦은 아침이었다.

잠에서 깨면 나는 핸드폰으로 대충 몇 가지 것들을 확인한 다음(메시지나 알림 따위의) 일어나는데, 카톡이 와있었다. 보니 국어선생님이었다. 확인했다. 채팅방을 클릭하기 전부터 알게 모르게 가슴이 답답하고 앞이 뿌연 게, 석연찮았다. 적중이었다, 예감은. 이토록 장문의 메시지를 받아본 적도 없었고, 더군다나 그 내용이 꽉꽉 내 행동을 책잡아서 지적하고 비난하는 투로 채워본 적도 처음이었다. 앞의 몇 문장을 읽기 전에, 나는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전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짚어보았다.

청소년문학상.

단편소설.

첨삭부탁.

메일로 보냄.

때는 여름방학이었고, 나는 8월 중순에 어떤 청소년문학상이 있는데 작품을 봐주실 수 있는지 미리 양해를 구한 터였다. 다행히 OK~라는 답이 왔고, 나는 기분 좋게 작품을 나름대로 손질한 다음 메일로 보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지.

그야말로 나는 울고 싶었다. 실제로 울지는 않았지만, 아주 조금만 자제력을 잃었어도 펑펑 울어버렸으리라. 눈물이 나오는 것은 뭐 친구와 싸워서, 아파서, 엄마아빠와 싸워서, 그런 상황에서만 터지는 게 아니다. 내가 원래 눈물이 많은 편이긴 한데, 그것도 초등학교 시절에나 머물렀던 얘기였다. 그런데 이렇게 거의 울 지경까지 왔던 날이, 중학교 들어서 있었을까? 그때의 심정을 아무리 좋은 낱말을 가져다가 요리조리 포장한다 해도, 그건 그저 짐작하는 수준밖에 안 된다.

그때 더 컸던 건 아마,…… 오해와 약간의 배신감이었다.

내가 예의가 없다고 했다. 기본예의가. 선생님이 자신의 귀한 방학시간을 깨면서까지 너에게 이렇게 해줘야할 이유라도 있느냐, 너는 한 번도 고맙다고 해본 적이 있느냐, 너는 이걸 너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다, 그리고 어느 부분을 짚어봐달라 한 것인지 자세히 말해줘야 하지 않겠느냐, 뭐 대충 그런 내용들. 솔직히 지금 내가 이걸 왜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 생각이 나면 기다렸다는 듯 머릿속에선 그 여자를 표현할 수 있는 새롭고 참신한 욕들을 찾기 바빠 죽겠는데, 이걸 구태여 쓰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지만 아까 내가 말했던 것처럼, 이건 한 번 확 까발려야 한다. 그 여자의 잘못을 낱낱이 세상에 알린다는 게 아니라, 내 머릿속에서 이석마냥 굴러다니는 그것을 밖으로 빼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너무 중언부언한 것 같다.

각설하고, 다시 돌아가서 얘기하겠다. 그런 내용들은 끝없는 스크롤의 지옥의 빠진 것처럼 계속 아래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다 읽지 못하고 바로 꺼버렸다. 그리고 씻고 나서, 오전 시간을 그냥저냥 보내다 어느 순간, 툭하고 그 생각이 뇌 한쪽을 두들겼다. 그래서 다시 카톡을 키고 보았다.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처음에 든 생각은 '이 인간이 단단히 뭔가를 착각하고 있구나.'였다. 착각은 사실이었다. 오해도 사실이었고, 나는 그 여자가 묘사한 '무례하고 저 잘난 줄 아는 아이'에 부합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는 무례하지도 않고 내가 잘났다고 생각해본 적은 지금까지도 정말 손에 꼽을 정도니까. 그 생각은 그때 다시 카톡을 정독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그 카톡을 읽고 나서, 나는 문자로 친한 친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독서토론부에 데려갔던 C에게도 보냈고, 같은 반 친구에게도 보냈다. 당연히 친구들은 내가 예의가 없다는 그녀의 말에, 학교에 얼마나 싸가지 없는 연놈들이 널렸는데 그럼 걔네들은 뭐냐, 하면서 내 생각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때 생각해보았다. 나는 글을 쓰고, 달리 작품을 보여줄 사람이 없어 보여준 것뿐인데, 내가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나. 죄송하다는 서두로 나 또한 장문의 답장을 보내긴 했지만, 다시는 연락하고 싶지 않아 연락처 삭제 및 차단을 했다. 그러는 동안에 마음이 그렇게 심란할 수가 없었다. 나는 좋은 관계를 맺고 싶었는데, 국어선생님과 친해져서 글쟁이들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학교에서 조금이나마 숨을 트려고 했는데, 일이 이 지경이 되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겨우 더 분쇄되기 쉽도록 미리 초석을 깔아둔 균열에 불과하다는 게 무서울 지경이다.

관계란 무엇일까. 나는 방학이 끝나가도록 생각해보았다. 첨삭을 봐달라 했던 작품은 응모하지 않았고, 그 여자에 대한 원망과 스스로의 이해에 몰두했다. 그 여자 말마따나 내가 학교 선생님한테 너무 무리한 부탁을 한 것일까, 안 그래도 바쁜데 징징대며 매달린 것이었나. 예의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곤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속으로 그건 당연한 거야, 여긴 건 아니었나. 그러나 자기반성 보다는, 그 위에 가분수로 얹힌 증오와 배신감이 더 컸다. 배신감, 나는 그녀를 믿고 따랐고 가깝게 지내려 한 것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사람한테서 그런 예상치 못한 말을 듣는다는 건, 누구나 상당히 충격적일 수밖에 없으리라. 그걸 대충 비유하자면 사랑하는 연인한테서 꺼지라는 말을 들은 것이나, 부모로부터 넌 내 자식 아니야, 정도로 짚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선 예로 든 것 보단 당연히 별 것 아닌 일인데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실제 바깥 날씨와 사람이 느끼는 체감온도가 다른 것처럼 말이다. 밖은 똑같이 영하 1도인데, 저 사람은 따뜻한 날씨라고 느끼고, 나는 매우 춥다고 느낀다. 사람이라면 그런 상황에 누구나 처하겠지만, 만약에 그 상황이 영하 5도 정도라고 한다면 나는 한 영하 20도를 느낀 것 같았다.

다시는 작품을 보여주지 않기로 했다. 아마 그때부터, 더욱더 폐쇄성으로 내 글은 돌아선 듯하다. 대회나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제외하고, 나를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더 이상 내 글을 보여주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때 느꼈다. 내가 글쓴답시고 국어선생한테 글 보여 줘 봤자, 서로가 부담만 지며 피곤해질 뿐이라고. 나는 글을 부탁드렸으니 뭔가 더 잘해야 할 것 같고, 실망시켜드리지 않아야 할 것 같고, 선생은 글 쓰는 애가 매우 드물니 더 꼼꼼히 봐주고 가르쳐줘야 할 것 같고……. 그러면 이제 부담의 무게에 짓눌린 한 쪽이, 지치고 마는 것이다.

좆나 그냥 서로가 부담만 많고 필요가 없어.

그런 생각에 나는 2학기를 시작했다. 용두사미였다. 처음은 좋았는데, 1년의 반이 채 가버리기도 전에 관계가 너덜너덜한 헝겊 같았다.

 

3. 파괴

잘 지워지지 않는 볼펜 자국 위에 오히려 더 볼펜을 묻혀서 닦으면 더 잘 닦인다. 왜냐면 아직 따끈따끈한 볼펜의 새 잉크가 기존의 스며든 잉크까지 떼어가기 때문이다. 내 관계가 그랬다. 나와 그 여자와의 관계가 그러했다. 완전한 붕괴로까지 치닫는데는 예상보다 1년의 반이라는, 많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나는 수업을 외면했다. 그 여자가 들어와 수업을 해도 나는 고개를 돌려 얼굴 한 번 쳐다보지 않았다. 그저 국어책만 내내 응시하며 딴 생각으로만 끔찍한 45분을 꾹꾹 눌러 채웠다. 수업이 끝나면 그때서야 고개가 자유로워져서 목 운동 한 번씩은 꼭 하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이 그 여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오히려 욕하면서 싫어한다는 현실에 감사했다. 그 여자를 좋아하는 애들은 독서토론부가 전부였다. 한 마디로 그녀의 추종사단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내부에는 동아리 정할 게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들어온 애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중 1, 2 때부터 같이 해온 일종의 측근들인 셈이었다. 나는 그 점이 거북스러웠다. 당연히 싫은 인간이 있는 한 방에 어떻게 지내고, 더군다나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방에서 또 어떻게 지내겠는가.

독서토론부 활동을 계속 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2학기 들어 처음으로 그 여자와 대화를 했다. 수업 시작하기 전에 짧게 몇 마디 나눈 것인데, 나는 학원 때문에 못할 것 같다고 대꾸했다. 나는 학원을 다니지도 않는데 말이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그 여자는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그러면서 그 방학 중 카톡에 관해 얘기를 시작했다. 참, 빼먹은 게 있는데 이때는 관계에 약간의 회복세가 나타났다. 교무실에서 그녀가 카톡에 관해 이렇게 저렇게 말하면서 다시 관계를 좋게 이끌려고 한 것에, 나도 여태까지 지녔던 생각들을 다 청산하고 다시금 새로운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겠다 기대를 품고 독서토론부 활동도 계속 이어나갔고 수업도 집중했다.

중학교 마지막 겨울방학이 다가오는 내내 평탄했다. 단체 출전 대회 때문에 책 내용을 바탕으로 연극처럼 UCC를 만들기 위해 내가 시나리오를 써서 애들이 연기하고 편집하기도 했고, 서울에 있는 한 대학교로 밤에 연극을 보러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는데-아, 사실 말하는 게 꼭 1인칭 시점의 소설을 쓰는 것 같은 기분이다. 벌써 2년 전 일이라서 그런 진 모르겠는데 어쨌거나 기분이 좀 이상하다-그 여자가 나를 다시 교무실로 불러냈다. 때는 기말고사와 합창대회도 끝나고, 방학식을 열흘가량 앞둔 시점이었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방과 후에 친구더러 밖에서 기다려 달라 하고 교무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 여자와 마주보고 앉았다. 그 여자는 대뜸, 교원평가 결과가 자신한테 왔는데 자기에게 자뻑이 심하고 수업이나 잘하세요 라는 막말이 적혀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선, 내게 그거 네가 쓴 것이냐, 고 물었다. 나는 황당하고 당황한 나머지 뭐라 대답해야 할 지 몰랐다. 미리 밝혀두자면 그건 내가 쓴 것이 아니다. 어쨌거나 나는 아니라고 했고, 내 말에 그 여자는 그럼 너는 뭐라 썼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 수업 잘해주시고 마지막까지 잘해달라는 말만 했다고 대답했다.

지금도 식은땀이 나는데, 솔직히 그때만큼 ‘오해’가 얼마나 무서운 건지 절실히 깨달은 적이 없다.

그러자 그 여자는 미심쩍은, 의심이 넘치다 못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눈빛과 표정으로 자기나름의 근거를 나열하기 시작했다. 먼저, 동아리 평가 때 내가 이 독서토론동아리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 그것은 대학교에서 연극을 봤던 날에 대해, 내가 연극 모임의 시간이 너무 늦었고, 또한 앞으로는 자정이 넘어 새벽까지 이어지도록 활동이 지속되어선 안 된다, 선생님께서 부모님께 미리 그러한 사실을 알려드리면 좋겠다, 내용이었다. 내가 쓴 글을 보고 동아리의 한 애가 ‘야, 너무 비관적으로 썼잖아.’ 이랬다. 나는 ‘뭐 어때, 부정적인 평가가 나올 수도 있는 거지.’ 했는데, 아뿔싸, 그게 지금 이 얼토당토않은 사건의 시발점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 여자는 이 글을 보면서, 방학 중 카톡 일에 대해 아직도 나한테 뭔가 감정이 남아있나 라고 딴에 추측해보았더랬다. 그래서 나는 아니라고 했고, 그 상황에서 방학 중 있었던 일이 이렇게까지 확대되는구나, 하며 놀랐다. 서로가 다 끝난 거 아니었나. 다 끝난 얘기를 전혀 관련 없는 것에 가져와 연관 시키는 재주가 상당히 있네, 하면서 속으로 놀라고 어이가 없었다. 넘겨짚는 탁월한 초능력도.

그건 한 마디로 몰아붙이기였다. 죄 없는, 누명을 쓴 사람이 다른 뭇 사람들에게 지탄받을 때의 심정이 어떤지를, 드라마에서나 소설에서나 봤던 그러한 인물의 심정을 아주 잘 알게 되었다. 심지어 이 선생이 국어 작품으로 느끼지 못했던 인물의 감정을 실제로 느끼게 해주려고 이러나, 싶었다. 그러나 그건 이건 꿈일 거야, 하는 내 마지막 희망의 풀린 올에 불과했고 관계는 막장드라마의 결말처럼 화려하고 웅장하고 잔인하게 파멸로 치닫았다.

그 선생은 그러한 내 평가문과 방학 중 있었던 일,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내 평소 성격까지 거론해가며 나를 막말 교원평가의 범인으로 몰아세우려고 안간힘을 썼다. 순진하고 착하고 배려 깊은 줄 알았는데, 평소 자세히 보니 친구에게 욕을 하며 하는 것이 아, 사실 이런 애였구나, 깨닫게 되었다고. 세상에, 그게 무슨 상관이 있더란 말인가. 더군다나 그 여자가 말한 그 ‘평소에 친구에게 욕을 하고 막 대한 것’이란 2년 지기 둘도 없는 친한 친구와 습관적으로 서로를 장난으로 대하면서 나오는 것에 불과했다. 그 여자 논리대로라면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은 서로에게 교과서적이고 기계적인, 따뜻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릇된 인간이다, 라는 말이다. 평소의 나를 물론 담임보다 더 잘 안다 딴에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2년 동안 그 일을 계속 되뇌며 살아오면서,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그 여자를 모르겠다. 그녀, 라는 ‘사람’을 모르겠다. 그렇게 나를 싸가지 없고 몰상식한 아이로, 인격을 멋대로 평가해 단정 지은 것에 대해 나는 더 화가 났다. 온갖 감정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디선가 본 건데, 제방에 구멍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절대로 막지 못한다 한다. 그대로 무너지고 물길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방학 중 있었던 일은 알고 보니 제방에 뚫린 구멍이었고, 나는 그것을 영원히 코르크 마개처럼 봉쇄했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일시적으로 휴지를 틀어막은 것에 불과했고, 천천히 제방에 균열이 일며 광란의 일격을 터뜨리는 준비를 차곡차곡 한 것이었다.

하지도 않는 일에 대해서 했다고 오해를 받고, 그것 때문에 나라는 인간 자체가 20분 만에 평가되고 한 사람 말에 의해 갇힌다는 것은 그야말로 미친 짓이다.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말하지만, 어차피 이 글을 읽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순전히 이제 막 고 2가 된 고딩의 교사에 대한 치기 어린 분노나 원망쯤으로, 자기 잘못은 인정치 않고 자기변호하기 바쁜 그야말로 그 여자 말대로 개념 없는 인간으로 여길 수도 있다. 이건 소설이 아니고 수필이니 그렇게 제 3자가 느끼는 걸 내가 뭘 어떻게 하겠는가. 다만 중요한 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보든 간에 이건 크나큰 충격이었다. 계속 충격충격충격 이러니까 싸구려 성장소설 같은 느낌이 든다. 어쩔 수 없다. 싸구려 성장소설이 사실 진짜 성장소설일 수도 있으니까.

성격이 원체 내성적인 데다가 표현을 막 드러내는 표현이 아니라서, 그녀가 딴에는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건 분명한 내 잘못이다. 물론 내 서투른 사람과 사람간의 처신이 이 모든 일을 촉발시킨 것일 수도 있다. 내가 표현을 잘 못해서, 선생님을 미리 생각하고 배려하지 않아서. 당연히 나는 어느 정도 그랬을 것이었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관계가 어디 있는가. 신화를 보면 그 전지전능한 신들마저도 서로 싸우기 바쁜데.

나는 당연히 그 여자가 더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만, 누가 더 잘못했든 간에 나나 그 여자나 커다란 상처로 작용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것 때문에 한동안 난 정말이지 내가 대체 어떤 인간인가, 하는 것에 목매달았다. 친구들한테 내가 어떤 인간이니 물어보기 바빴고, 그 여자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친구들에게 그동안 몹쓸 짓을 해왔다는 말이 된다. 한 마디로, 나는 꼭 사회부적응자 기분이 들었었다. 다행히 부모님과 친구들은 끝까지 내 편을 들어주었고, 일은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끝이 나버렸다. 하지만 그건 그 후유증은 길었다. 독서토론부의 그 여자를 좋아하는 애들까지도 나 스스로 등지게 만들었고, 그 여자가 특목고 원서를 쓰러 온 아이를 예로 들며 “걔한테선 뭔가 감사하다는 마음이 저절로 느껴졌는데 너한테선 그게 안 느껴져.” 말한 것은 나로 하여금 아무 관련도 없는 썅년으로 욕하게끔 만들었다. 한 마디로, 그 여자와 조금이라도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내 관계 분쇄의 여파로 다 폭발해버린 것이다.

심지어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도, 어느 선생님이 조금만 뭐라 해도 금세 그 선생을 깎아내리기 바빴고, 더 곡해하고 비꼬아서 아예 일절 관계를 끊어버리기까지 하는 일이 벌어졌다. 다 그 여자가 하는 말로 들리는 것이다. 이 인간들이 아주 작당해서 나를 미친놈으로 만들고 있구나, 뭐 그런 생각.

그래서 말하게 싶은 게 뭔데? 이렇게 말해서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게 뭔데? 나는 잘못한 거 없다는 거? 그 여자가(아직도 내 머릿속은 그 여자를 쌍욕이란 수식어와 함께 부르고 있다) 무조건 잘못했다는 거? 모르겠다. 하나도 모르겠다. 분명 벌어진 ‘일’이 있고, 그에 따른 ‘감정’이 아직도 코끝까지 잠기고도 남는데 말이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지금 또 다른 선생님을 만나야 하고, 1년을 살아가야 하는 새 학년 시점에서 그 일이 잠재된 공포로 작용했을지 모른다. 그런 인간이 또 있으면 어떡하지, 이번엔 국어선생님이나 다른 선생님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나. 고등학교 올라와서 내 작품을 국어선생님이나 담임선생님께 보여주는 순간에도, 내가 괜한 짓을 하는 게 아닌가, 괜히 쓸데없이 관심을 가지게 하는 건 아닌가, 이러다가 작년 꼴 난다, 이렇게 별의별 상상을 펼쳤다.

그 여자가 나라는 인간을 멋대로 판단한 것에 그렇게 화가 났었는데, 이젠 내가 다른 사람들은 한정된 시선 안에 한정된 행동 하나로 평가하고 단정하는 것 같아서 무섭다. 조금만 내 맘에 안 들어도, 내 생각과 어긋나거나 조금만 오해를 받아도 모든 관계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달고 있으니, 내 옆에 5년지기 친구가 있다는 것이 그냥 신기하고 놀라울 지경이다.

…….

글쎄, 이건 한 마디로 불특정 다수에 대한 고해성사 아닌가. 고해성사라 할 만큼 내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지만. 제일 그나마 알맞은 단어는 속풀이가 아닐까 싶다. 술 먹으면 막 괴로웠던 일 다 말하는 것처럼, 나는 키보드와 지면을 술 대신으로 토해내는 것이다.

관계는 어렵다. 사람 관계는 참 어렵다.

관계는 시작과 중간, 끝이 다 불안정하다. 마치 회사 주가처럼 폭등, 폭락을 계속하며 사람 마음을 망치질 해댄다.

이제 이와 관련된 생각은 안 할 것이다, 라고 하면 거짓말이다. 조금이라도 혼자 있는 시간이 있으면 아마 삐에로 인형처럼 계속 튀어나올 것이다. 소설 구상하려고 머릿속 뚜껑을 열었더니 확 튀어나오듯이.

이 글이 분노로 가득 찬 글인가, 그렇다, 그렇지 않다. 적어도 나는 분노만으로 쓴 글은 아니다.

속이 풀렸다. 이게 잘 쓴 글이든 괴상망측한 넋두리 사연팔이 글이라고 하던 간에 내 속이 풀리면 그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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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생활글에 들르는군요. 개학이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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