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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섬

 

안녕, 나는 아담이야. 나는 별 여행자야. 원래는 섬에서 살았는데, 까만 죽음이 해변을 핥다가 섬을 삼켜서 떠날 수밖에 없었어. 사람이 살던 별을 떠나는 건 남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나는 떠나고 싶지 않았는데, 너는 살아야 한다고 등떠밀어서 갈 수밖에 없었어.

나는 돛단배를 타고 세상이 별처럼 많은 우주로 뛰어들었어. 밤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들은 다 하나의 세상이라는 걸 알지. 유리덮개 밑에서 핀 장미가 반짝이는 물소리가 나는 우물을 파는 별, 가로등과 차가 수북해서 우주만큼 빛이 많은 도시. 과일이 눈처럼 내리고 꿈처럼 녹아지는 산맥에는 기상학자 몇몇이 날씨연구를 하고, 여름이 카페를 차린 정거장에선 내 친구 제스퍼가 알바를 하고 있지. 나는, 돛단배를 타고 무작정 돌아다녔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무작정 돌아다니는 건 나뿐이었어. 나는 과거를, 미래를, 뒤엉킨 기억들 사이를 헤맸고 배는 자기 길을 갔으니까. 나는 똑바로 누웠다가 돌아 누웠다가 엎드려 누웠다가 하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 내가 평생을 살았던 바다 마을, 선착장의 고깃배와 그물과, 알고 지내던 이웃들의 얼굴을 억지로 떠올리면서. 서재에 배를 깔고 엎드려 사진이 많은 책을 뒤적이던 그날에 마음을 우겨넣어 보기도 하고, 풀이 우거진 마당을 헤매거나 길 건너 숲으로 가서 바다까지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걸어보기도 했어. 숲 끝자락에 서서 나무 사이로 밤하늘을 보던 그 기억을 꽤 자주 살려냈어, 이제 그럴 수 있는 건 기억뿐이었으니까. 덜컹이는 간이침대, 무거운 이불들, 무의식 속에서는 어린 시절의 잔상들이 형체를 갖추고 나타나 눈물을 흘렸어. 나는 잠들지도 못하고 깨어나지도 못한 채 붙잡혀 있었어. 현실이 아닌 눈물은 뜨거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어. 내 울음은 피처럼 울컥 쏟아지다가 금방 식어 버리는데. 흘리지 못한 눈물들이 팔다리를 잡아 침대에 묶고, 그러다 쏟아지기라도 하면 흠뻑 젖은 무게가 뼛속에 스며들어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버거웠어. 그렇게 날 무겁게 만들어놓고, 정작 말라붙으면 붙잡지도 못하게 혼자 가벼워 사라졌어.

돛단배는 과일 산맥에서 멈췄어. 과일이 수북이 내리는 그 별의 여름에 긴 자국을 남기며 내려앉자 겨울이 머무르는 골목에서 스티브가 뛰어나왔어. 스티브는 마음이 급했는지 내가 배에서 내리기도 전에 인사부터 했어. “안녕, 아담! 피곤해 보인다.” 걔는 조심스럽게 덧붙이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자기 집으로 끌고 갔어.

“피곤하지 않아.” 하지만 스티브는 내 말을 믿지 않았어. “거울부터 봐.” 현관에 나를 억지로 구겨넣으며 걔가 말했어. “신발장 위에 붙어 있어.”

스티브가 신발을 터는 동안 나는 시키는 대로 했어. 거울 속의 나는 눈가가 검고, 멀쩡하게 살아 있고, 화석처럼 오래 전에 살았는데도 지금까지 선명한, 살아있으면 안 되는 사람의 얼굴처럼 슬퍼 보였어. 스티브는 바닥에 깔린 종이들을 발로 밀며 거실 한가운데에 길을 냈어.

나는 어둡고 고물에 점령당한 집안을 멍하니 쳐다봤어. 과일 산맥에는 꽤 들렀지만 막상 집안에서 지낸 기억은 거의 없어. 스티브가 처음 여기로 이사왔을 때 나와 브리엘과 제스퍼가 짐 나르는 걸 도와줬고 넷이서 집 안을 샅샅이 뒤지며 비밀통로나 숨겨진 방 같은 것들을 찾아다녔어. 다락방이 있고 베란다 구석에 사람 하나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걸 알아냈지. 그리고 우리가 두어 번 더 방문할 동안 스티브는 그 모든 공간에 고물을 갖다 놓았고, 그게 바닥과 가구 위까지 점령하면서 결국 아무도 집 안에서 잘 수 없게 됐어. “여기저기 필요해서. 여긴 물품이 적잖아.” 스티브는 그렇게 말했지만, 솔직히 아직도 100년 묵은 신문들이 날씨 연구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어. 오만가지 상자들, 페트병들, 금 간 도자기 인형들, 철판과 톱니바퀴, 굴러다니는 먼지덩이… 나는 스티브의 거실에서 살아남은 소파가 있다는 게 놀라웠어. 스티브는 나를 소파 위에 앉혀 놓고는 종이 뭉치들을 자근자근 밟으며 부엌으로 넘어갔어. 엉덩이 밑에서 소파가 무너지는 소리를 냈어.

저번에 왔을 때는, 침낭 깔고 뒷마당에서 자다가 밤새 내린 딸기에 흠뻑 깔렸었어. 나는 웃음을 터뜨렸고 스티브는 허둥지둥 일어나서 빗자루를 가져왔지. 우리는 과일들이 꿈처럼 녹아 사라지도록 여름이 된 큰길까지 쓸어냈어. 소파 위에서 나는 그때의 기분을 기억해보려고 애썼는데, 힘들게 떠올린 그날의 웃음은 끝이 이상하게 일그러지더니 녹아서 뚝뚝 떨어졌어. 나는 스티브가 병원 전화번호를 찾는다고 왔다갔다하는 동안 멍하니 흘러내리는 웃음을 생각하고 있었어. 그 전까진 버석할지언정 깨어 있던 정신이 소파에 앉고 나서부터 서서히 무너져 내렸어. “여보세요? 거기 주소 좀 불러주시겠어요?” 건넛방에서 스티브가 말했어. 먹구름, 해일, 쏟아지는 빗방울, 죽음, 재해, 상실의 장면들이 거칠게 어른거렸어.

우리는 열기구를 타고 병원으로 갔어. 나는 몽롱하게 열기구 밖을 내다보았어. 과일 산맥 저편에서 해가 지며 하늘을 주황색으로 물들이는 게, 아주 오래 전에 스티브가 브리엘과 나를 초대했을 때 같았어. 그때도 우리는 열기구를 탔고 브리엘은 풍경 하나하나를 사진으로 남기며 감탄했어. “봐, 아담. 오렌지색 황혼이야.” 서쪽을 가리키며 브리엘이 말했어. 대기를 타고 퍼져나가는 주황빛. 미소어린 속삭임, 앞을 가리키며 쭉 뻗은 팔 끝에 알록달록한 장갑 낀 손이 있었어. 나는 뒤를 돌아봤어. 브리엘은 없고, 산을 이룬 냉동과일 무더기를 배경으로 스티브가 버너를 노려보고 있었어.

병원 대기실에 앉은 사람들은 지치고 망연자실해 보였어. 엄격한 표정의 나이든 간호사가 내 이야기를 물었어. 나는 멍한 정신으로 스티브가 간호사에게 하는 말의 일부를, 가라앉은 섬과 잃어버린 연인과 돌아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단어 몇 개를 들었어. 지친 머리가 그 단어들을 반복해서 웅얼거리자 생각들이 미친 파리처럼 서로 부딪치고 떨어져 나가며 산란하게 날아다녔어. 하얀 가운을 입은 인영이 입원이라는 단어를 내밀고, 나는 수속을 밟는 동안 접수대 근처에 서 있었어. 로비에서 대기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깜빡 깜빡 하며 빙빙 돌았어. 곤죽이 된 배경을 따라 비틀거리는 내 어깨를 스티브가 잡았어. “아담, 가자.” 또 다른 간호사가 내 팔에 링거를 꽂고 병실로 안내했어. 링거 거치대를 끌며 병원 복도를 가로질렀어. 세상은 차분했다가 날뛰었다가 제멋대로였어.

“수면제 드릴게요.”

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어. 약이 줄을 타고 혈관으로 흐르자 순식간에 잠이 왔어.

 

병원은 대체로 평온했어. 입원을 한지라 내 왼쪽 손등에는 주삿바늘이 꽂혔고, 거치대에 매달린 팩에서 수액이 뚝뚝 떨어져 줄을 타고 흘러내렸어. 나는 6인실을 배정받았는데, 슬퍼 보이는 아주머니를 제외하면 거기서 내가 가장 나이가 많았어. 열 대여섯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애는 헤드폰을 빼놓지 않았고, 여섯 살, 여덟 살, 열두 살인 꼬맹이 셋은 거치대를 킥보드처럼 끌며 뛰어다녔어. 아침밥을 먹고 나면 밖으로 뛰어나갔는데, 병실에서 멀찍히 떨어진 곳에서 노는 모양인지 자세히 들어보면 희미하게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어. 다소 사무적인 태도로 아침밥보다 먼저 회진을 도는 의사가 있었고, 내 면담치료를 담당하는 다른 분이 또 있었어.

진료실 문을 열며 작게 인사하면, 색연필로 그린 그림처럼 부드럽고 동그랗게 휜 눈매가 다정한 의사 선생님이 웃으며 반겨 주었어. 우리는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했어, 나무로 된 책상엔 나무로 된 책장이 딸려 있고, 한쪽에는 컴퓨터 모니터 두 대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붙어있었어. 문 옆에는 알록달록한 시계와 달력이 붙어 있었고 벽은 하늘색이었어. “일주일만이죠, 잘 지냈어요?” 나는 책상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어.

“잠은 잘 잤어요?”

“아뇨.” 나는 이실직고했어.

내가 꿈만 꿀 뿐 잠은 못 드는 이상한 상태로 병원에 끌려온 이후 이분의 고민거리 2위는 내 불면증이었어. 다른 병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니까 걱정될 만도 하지, 그게 나한테 해당되는 말이라고는 생각 안 하지만.

섬에 있을 때는 잠들지 못하면 혼자 산책을 했어. 브리엘과 해변에서 만나지 않으면 그냥 동네를 쭉 돌다가 집 뒷마당에 놓아둔 캠핑의자에 아침까지 앉아있었지. 그러면서 잠이 안 오는데 억지로 자려는 건 좋지 않다는 걸 배웠어. 잠이 잘 들때도 있었고, 잘 못들 때도 있었고, 죽어도 잠이 오지 않을 때도 있었어. 그럴 때는 병원에서 잠드는 약을 처방해 줬어, 나이든 의사가 적어준 처방전은 꼬깃꼬깃해졌고, 나이든 약사가 건네는 약은 작고 보름달처럼 동그랬어. 그걸 먹을 때조차도 많은 게 괜찮았지, 그러니까 지금 잠이 오지 않는 게 크게 걱정되지는 않아.

물론, 내가 걱정하지 않는 것과 의사가 걱정하는 건 별개지. 의사는 내 말을 듣자마자 얼굴을 찌푸렸어.

“힘들면 약 먹어요.”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나는 고개를 저었어. 먹겠다고 했다가 크고 독하고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이 붙은 약을 받으면 어쩌나 걱정스러웠거든. 그리고 혹시 찾아올 부작용과 기타 등등으로 내가 정말 괜찮지 않다는 사실이 갑자기 나타날까봐, 그러면 검고 물결치는 어둠을 따라 세상이 다시 일그러져 돌까봐 두렵기도 했고. 그래서 우리 대화는 핵심을 찌르지 않고 주변을 맴돌았어. 형식적으로나마 비밀로 두른 담장 너머를 거닐었지. 하지만 덤벼드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알려줘야 할 말이 있었어. 아무것도 모르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을 테고, 잘 모르는 상태로 놔 두면 호기심이 아무렇게나 뻗어나갈 테니까. 그래서 맨 처음이 제일 고통스러웠어. 나는 항상 느리고 더듬거리지만 그날은 내 말이 아닌 척, 재빨리 달려 들어가 한움큼 가지고 나오는 식으로 말했고, 눈으로는 의사와 그 뒤의 벽과 책상을 산란하게 헤맸어. 어둠과 고통은 당황하느라 나를 붙잡지 못했어. 의사는 브리엘의 죽음을 들었어.

“브리엘은 섬이에요.”

“섬이요?”

“네. 갈라파고스나 하와이, 이스터 섬처럼요. 바다에 둘러싸인, 대륙보다 작고 암초보다 큰 땅이요.”

의사는 미간을 찌푸렸어. 이게 비유인지 사실인지 머릿속으로 따져보는 듯 했지만, 내 말을 헤집지 않고 그냥 들었어.

“거긴 아주 작고, 시골이고, 사람도 많이 안 사는 한적한 바닷가 마을이에요. 전 거기서 평생 살았어요… 가라앉기 전까진.”

그러니까, 사람들이 화석 연료를 남용하고 나무를 베고 쓰레기를 버려서 지구온난화가 생기고, 그 때문에 해수면이 올라가면서 섬이 잠겨버린 거죠.

나는 늘어놓은 말이 웃겨서 낄낄거렸어. 가벼운 농담인 걸 눈치챈 의사도 피식 웃었어. 그러니까, 첫 문장 말고. 그 다음에.

“바닷가에 숲이 있었는데, 거기서 산책을 자주 했어요. 밤에 잠이 안 와서 동네를 돌아다니다 해변에서 마주치기도 했고요. 제스퍼랑 스티브랑 놀지 않을 때도 우린 항상 같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아마도, 별들이 더 이상 저 위에 있지 않다가,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부터. 산책하고, 세상에 사는 모든 생물들의 사진이 있을 것처럼 두꺼운 생물도감을 읽고, 가끔 페이지 한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진지하게 의논하고 그랬어요. 마당에서는 식물학자처럼 근엄한 투로 저게 아까 책에 있던 나무와 같은 종인지 아닌지 토론하며 놀았고요. 공책을 들고 나가서 구름을 관찰하고 낮달을 봤다고 신나하다가, 별이 하나 둘 나타나면 손전등과 책을 가져와서 늦은 밤까지 하늘을 관찰했어요. 때로는 스티브랑 제스퍼까지 넷이서, 때로는 둘이서 그렇게 세상을 배웠어요, 함께하고, 나누고, 말하고, 말하고 말하면서, 항상 브리엘과 같이 있었어요.”

“가라앉은 고향섬도 브리엘이고, 여자친구분 이름도 브리엘이네요.”

“네.”

“좋은 친구였나봐요.”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 피식, 하고 젖은 웃음이 새어나왔어.

“걔는, 말하는 걸 좋아했어요. 만들어낸 건지 어디서 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야기를 자주 해줬어요. 감귤 별자리가 있다던가, 밤하늘에 반짝이는 것들은 반딧불이들이라거나… 바다랑 섬도 반딧불이 안에 들어있는 거니까, 그 작은 벌레들 속에 세상이 하나씩 담겨 있는 거라고요. 별이 되길 바란 돛단배 이야기도 브리엘이 처음 해줬어요.”

하늘을 담는 호수에 흰 돛을 단 배가 떠 있었지. 아침 하늘이 비치면 해가 된 듯 하고, 밤이 되면 마치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별 같았어. 하지만 돛단배는 진짜 별이 되고 싶어했어, 머리 위의 밤하늘에 실제로 떠 있기를 꿈꾸었지. 어느 날, 하늘이 돛단배를 떠내어 별들 사이로 데려갔고, 별들은 기꺼이 자리를 마련해 주었어. 돛단배는 그렇게 하늘에 고정되었고 다시는 호수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어.

“그 이야길 듣고 울었었어요.” 그 말을 하면서 울지 않으려고 웃었어.

“하루는 참나무 밑에 바구니를 두고 왔었어요, 도토리를 주워 담으려고요. 도토리 안에서 꿀꿀이바구미 애벌레를 찾고 싶었는데, 그때까지 한 번도 발견한 적이 없었거든요. 브리엘이랑 저는 매 가을마다 돋보기를 하나씩 들고 앉아서 바늘구멍이 난 도토리를 찾아 까보고 나머지들은 다시 참나무 밑에 쏟아붓곤 했었죠… 그때 브리엘은 힘이 없어 보였는데, 자꾸 코피가 나고, 머리가 아프다고 했었어요. 그렇다고 별 일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낫지도 않아서 걱정스러웠죠. 그때는 스티브가 기상학자가 돼서 과일 산맥으로 떠나고, 제스퍼는 독립해서 도시로 갔다가 여름을 만나서 한여름 정거장에 정착했을 때였어요. 여름이 운영하는 그 카페에 취직해서요.” 나는 이야기가 튀어나가지 않도록 붙잡았어. “우리는 걱정이나 불안은 전화 통화로만 주고받았어요. 브리엘이 계속 괜찮아질 거라고 했기 때문에, 그리고 저도 그렇게 믿고 싶어서, 걱정된다는 말을 대놓고 하지 않고 셋이서 그냥 소근거렸어요. 브리엘은 말수가 점점 줄어들고, 예전처럼 말하지 않고 힘없이 웃으며 괜찮다고만 해서, 정말 그런지 물어볼 수도 없었거든요. 너무 아파보여서 말 걸기도 무서웠고요. 그래서 그날 밤도 뒤척이면서, 이렇게 저렇게 걱정하지 않으려고 도토리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브리엘이 제게 전화를 걸었어요.”

아담, 나 곧 죽어. 걔는 그렇게 말했어. 목소리는 조용하고, 조근조근하고, 말투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것처럼 차분했어. 말 한 마디에 가득 담긴 바꿀 수 없는 사실을 향한 낙담이, 어렸을 때 간식으로 자주 먹던 잼 샌드위치, 하얀 빵 사이에서 흘러내리던 찐득한 잼을 떠올리게 했어. 그 말에는 어떤 부가적 설명도 달려 있지 않았지만 머리 아프다는 말과 뚝 하고 떨어지던 핏방울이 받쳐들고 있었어. 나는 전화를 끊었어.

그 다음 날 우리는 다시 만나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러나 이미 확정된 시한부 진단을 받은 사람들처럼 하루를 보냈어. 자주 가는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점심을 먹었고 특별한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지. 우리는 다신 도토리를 주우러 가지 않았어.

그때 텔레비전에서는 해수면이 높아진다는 뉴스가 한창이었어. 환경 문제가 심각해서 앞으로 몇 년만 있으면 섬이 통째로 가라앉을 거라고.

“브리엘이 저한테 같이 꿀꿀이바구미 애벌레를 관찰하러 가자고 했던 그 때가 저한테는 세상이 처음으로 손 내밀어주는 것과 같은 일이었어요. 그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으니까요… 사진이 많은 책을 뒤적이며 옆에 붙은 설명을 읽어 준 것도 브리엘이었고, 제스퍼와 스티브를 소개해준 것도 브리엘이었죠. 그 모든 게 다 섬에 있었고요. 그리고 저는 아직도 혼자 세상을 탐험하지 못해요. 친숙하던 고향이 낯모르는 곳으로 바뀌었고, 진짜 섬과 제가 보는 섬은 같으면서도 결국은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니까, 섬이 가라앉았든 살아남았든 저는 돌아갈 수가 없는 거예요. 돛단배가 호수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요.”

“하지만 당신은 가라앉는 섬을 떠났고 돛단배는 별이 되고 싶어서 호수를 떠났는데, 둘이 어떻게 같아요?”

“그래도 아무튼 떠났다는 점에서요.” 말하면서도 헛소리 같아서 웃었어, 하필 너무 바보같은 이유를 대 버렸네.

“하지만 그건 너무 극단적이잖아요.” 의사가 못마땅하다는 듯 말했어.

“그러게요.” 나는 씁쓸하게 웃었어. 의사는 걱정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어.

“그래서 저는 모든 걸 새로 배워야만 해요.” 나는 어렵게 그 말을 꺼내 놓았어. “선생님, 저는 살고 싶어요.” 손을 내려다보며 그렇게 못박았어.

“사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약 먹고 늘어져 자는 거 말고요.” 그 말들은 절박했어. “제가 무슨 말 했는지 기억하세요?”

“네.”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어.

“당신에게 브리엘이 있었어요. 브리엘은 당신에게 돛단배를 주며 여행을 다녀오라고 했죠. 브리엘은 작은 섬이었는데 가라앉았어요. 하지만 아담, 정든 곳을 떠나는 사람들은 많아요.” 의사의 말은 다정하고 간곡하고, 또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 마음을 아프게 쓸었어.

“그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힘들어하진 않겠죠.” 나는 인정했어. “하지만 바다에게 느닷없이 고향을 뺏기는 일은 개인 사정으로 이사해야 하는 상황과는 달라요. 혼자 살아난 거랑, 단순히 안녕하고 헤어지는 건 달라요. 슬퍼하고 일어서는 이들은 세상이 자꾸만 까매져서 죽고 싶어지는 마음을 당장은 몰라요.”

 

나는 병원에서 한달 반 정도를 있었어. 초반 일주일간은 약에 취해 있었던 것 같아. 그동안 자지 못했던 잠을 몰아서 자듯 며칠간 일어나지 못했던 것 같아. 일어나서 멍하니 있다가 다시 자고, 또 자고, 오기 전과 다를 게 없었어. 정말 잘 수 있었다는 걸 빼면. 잠드는 게 어찌나 쉬운지 아무 일도 없을 때 같았지. 몸이 금방 회복될 것 같았고, 의사가 퇴원해도 된다고 하면,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어. 조금 나아진 다음부터는 약을 줄였던 것 같아. 깨어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부작용을 견뎌야 했고, 회진 도는 의사가 내게 말을 걸었어. 면담치료를 받기 시작하 후에는 슬픈 아주머니가 병실을 옮기고, 헤드폰 쓴 여자애와 꼬마들 셋이 차례로 퇴원했어. 그리고 의사는 날을 세우고 경계하지만 내게는 그다지 심각해보이지 않는, 경미한 수준의 불면증이 다시 찾아왔어.

나는 잠드는 걸 포기하고 일어나 앉았어. 병원 침대가 조용히 삐걱거리고, 달빛이 병실에 닿았어. 그날 밤은 달이 선명했어, 공기에 마법이 깃든 것처럼. 창밖에서 바람이 나무를 스쳐가자 나뭇잎이 바스락거렸어. 잠들지 못한 밤에 혼자 숲길을 산책하고, 부둣가에 서서 별을 세곤 하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았어. 그때 나는 섬에 있었고, 해변을 걷고 있으면 브리엘이 와서 나와 함께 밤을 새우다 잠들곤 했어. 그때만큼은 당장 잠들지 못해도 괜찮았어. 우리는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들고 나온 담요를 두르고 작은 마을을 한바퀴 돌았어. 브리엘이 뭐라고 했더라, 병원꽃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빨리 나으라고 가져다 주는 꽃다발들이 새로 피어나는 법을 알려 준다는 내용이었지. 그래서 퇴원한 사람들의 침대에서 들꽃이 핀다고. 나는 진료실에서 의사에게 슬쩍 물어봤었어. 의사는 하하 웃으며 관용어라고 했지만, 헤드폰 쓴 여자애가 퇴원하면서 나는 그 말도 농담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빈 메트리스에는 이름모를 노란 꽃이 뿌리내렸고, 꼬마들이 쓰던 철침대에서도 코스모스가 피어났어. 간호사들이 꽃들을 꺾고 침대를 정리했어. 꺾은 것들은 병원 어딘가에서 꽃다발이 되어 ‘빠른 쾌유를 빕니다’ 카드를 달고 나와 슬픈 아주머니께 돌아왔어. “전통이에요.” 간호사는 눈을 찡긋하며 그랬어.

달빛은 협탁에 놓인 병원꽃 한다발을 묵묵히 비추었어. 나는 한켠 바닥에서 데이지와 제비꽃이 피어나 순식간에 벽을 뒤덮는 것을 보았고, 다른 한 켠에서는 밤이 하늘색으로 변할 때까지 창밖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어. 병실을 점령한 꽃들이 순식간에 시들며 검은 물결로 바뀌고 그게 나를 덮칠 때까지.

어둠은 빠르게 요동치며 스치고, 나는 계속해서 미끄러졌어. 너무 번잡해서 알아들을 수 없는 과거의 목소리들이 쌕쌕 지나갔어. 속도감에 머리가 어지러웠어. 통 미끄럼틀같은 어둠은 끝에서 몸을 불리더니 별안간 달려들어 나를 덮쳐눌렀어. 온 몸을 덮은 것은 눈물을 담은 자루처럼 출렁거렸어. 나는 짓눌리는 동안,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는 와중에도 내게 할 말이 있다고 느꼈어. 어둠은 다시 놀이기구처럼 요동치며 바닥을 없애고 나를 밑으로 떨어뜨렸어. 그리고 또 다시 미끄러지고, 내가 잡지 못하는, 중요한 대화들이 사각이며 스쳐갔어. 어둠은 시원하고 빠르고 날카롭다가, 뜨끈하고 무거워지며 눈꺼풀 밖의 햇빛으로 변했어.

눈을 떴을 때도 정신은 가물거렸어. 나는 느리게 깜빡, 깜빡하며 깨어나려고 애썼어, 이렇게 무거운 건 익숙하지 않아서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저녁 즈음의 느긋한 햇살이 벽을 비추고, 누군가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웠어. 내 등 뒤쪽에, 침대맡에 간호사가 있었어. 수액을 가는 건지 약을 주사하는 건지 아니면 나를 살피러 온 건지 알 수가 없었어. 나는 돌아보려고 애를 썼어. “약 좀 넣지 마요오오오오.” 말끝이 이상하게 녹아내렸어. 머릿속은 울렁 울렁 하고, 몸은 물로 변하기라도 한 듯 출렁거렸어. 졸리듯 몽롱했어, 따라가면 잠도 아니고 꿈도 아닌 이상한 곳으로 떨어질 것 같은데. 머릿속에서 메스껍게 달콤한 분홍, 빨강, 노랑이 사탕처럼 춤을 추다가 검게 녹아서, 나와 함께, 살아있지 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어.

그게 내가 겪은 가장 심각한 증세였어. 오만가지 검사를 받고, 스티브가 병원에 찾아오고, 진료실에서 다정하고 간곡한 의사와 약을 먹느니 안 먹느니 실랑이하면서 일주일을 보냈지. 어둠은 간간이 나를 삼켰지만 그 이후로는 기절하지 않았어.

뭔가가 있다는 생각을 해, 달려드는 어둠 저 끝에 무언가가. 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분명 있다는 건 알겠어. 거기에 이름이 있을 거라는 것도 알아. 하늘에서 반짝이는 것은 반딧불이었고 쏴- 하는 소리는 파도였던 것처럼, 내가 모르는 거라고 해도 분명 누군가는 이미 보았을 테니. 아니면 내가 최초로 발견한 것일 수도 있지, 아직 놓지 않은 자리에다 내려놓으면, 이미 정리된 다른 것들이 우르르 달라붙어 새 그물을 짤 거야. 몰랐던 것은 아는 것으로,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으로 영원히 박제되겠지.

그 자리가 어디에 있든, 나는 그것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어둠 깊숙히 잠수해서, 책에 기록된 모험가나 학자들처럼 용감하게. 아니면 끝나지 않을 거라고.

그날 나는 의사와 상의해서 퇴원 날짜를 잡았어.

 

종이비행기가 시트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어. 고개를 돌려보니 창문이 열려 있었어. 누군가가, 또는 내가 열어놓고 닫는 걸 잊었나봐. 그러고 보니 이게 어디서 날아왔는지 알 것도 같았어. 나는 멍한 상태로 종이를 펼쳤어.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았지만, 그게 오히려 확신을 주었어. 푸른 집이구나.

종이비행기는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말이 있지. 나는 푸른 집에 대한 이야기를 더듬어 보았어, 상실을 애도하는 공간, 공기에 섞여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울리고, 흩뿌려진 전단지처럼 길거리를 굴러다니며 필요한 사람들을 기다린다던 초대장. 이리 오라고 손짓하는 이야기를 생각했어. 간절히 가고 싶고 또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어떡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했어. 펼쳐진 종이에는 아무런 말도 없었는데, 그 텅 빈 여백이 오히려 나를 끌어당겼어. 자, 여기에 네 이야기를 써 줘. 우리 얘기하자, 말하고, 좋은 동행처럼 마음을 나누자. 접은 자국이 희미하게 남은 종이가 그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어. 잘 깎은 연필을 잡아, 종이에 대고 누르면 검은 자국을 남기고… 나는 너무 삐뚤해서 쉽게 읽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글씨체 때문에 얼굴을 찌푸렸어. 내게 글 쓰기는 항상 너무할 정도로 힘들고, 너무 서툰 나머지 군데군데 틀릴지도 모르는데. 그리고 답이 올 테고… 읽는 게 힘들겠지만, 그건 어떻게든 오겠지.

누가 읽을 수 있긴 해? 그 질문은 날붙이처럼 한 면이 날카로웠어. 하지만, 하지만… 머리가 소심하게 웅얼거렸어. 나는 너무 아파서 감히 선명하게 그릴 수 없는 말을 떠올렸고, 내가 사랑한 사람처럼 여유롭고 상냥하게 웃는 의사의 얼굴을 떠올렸어. 괜찮다는 말은 눈물로 번진 불빛 같았어. 어두운 밤, 한적한 해변가를 비추던 가로등. 부둣가에서는 끝내 발견하지 못한 감귤 별자리. 온기가 부드럽게 밀어서 나는 마지못해 펜을 빌렸어. 절대 생각을 따르지 않는 느린 손으로 나름 또박또박 써내려갔어.

 

“퇴원한다면서요.” 체온을 재러 온 간호사가 말했어.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그냥 웃으며 끄덕였어.

“네.”

“그냥 그렇게 퇴원해도 괜찮겠어요?” 간호사가 물었어. 물음은 예의바르고 상냥하고, 내 결정을 해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걱정된다는 듯 조심스러웠어.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어.

“퇴원하고 또 그러면 꼭 병원 가요.” 나는 퇴원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지만, 이번에도 그냥 끄덕였어.

 

“이제 마지막이네요.” 의사가 말했어.

“푸른 집에서 온 편지는 잘 받았어요?”

나는 이분이 그걸 어떻게 알았나 싶어서 눈을 동그랗게 떴어. “보셨어요?” 이번에는 의사가 눈이 동그래져서는 “아뇨!” 하고 손사래쳤어. “간호사 선생님이 말해줬어요.” 아. 체온을 재러 온 간호사분께 볼펜을 빌렸던 기억이 났어. 그분은 내가 힘들여 쓰는 것을 한번 쓱 보시고는, 충분한 시간을 주려는 뜻에서였는지 다른 병실로 그냥 가버리셨어. 볼펜은 협탁 위에 고이 놓아두었다가 다음 날 체온 재러 오셨을 때 돌려드렸어.

“종이비행기를 따라가요.”

“종이비행기요?”

“네.”

의사는 진지하게 나를 바라보았어. “푸른 집으로 가요.”

“필요하면 그렇게 할게요.” 나는 시선을 피했어. 진지함을 흩어놓으려고 일부러 웃으면서. 마지못해 하는 말이라는 걸 그분도 눈치채신 것 같았어. 별 말씀은 없으셨지만.

“아, 그리고, 약을 처방했어요, 혹시 몰라서요.” 의사가 재빨리 덧붙였어. “약한 거니까 힘들면 먹어요.” 그 말은 소심했어. 부탁조였고 의사는 컴퓨터 모니터를 방패 삼아 시선을 피하고 있었지. 마음에 찔리고 민망하고, 미안하고, 아무래도 많이 걱정되는 모양이었어. 내가 아주 멀리 떠나고, 한참 만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 실감나게.

“그렇게 할게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어.

“안녕히 계세요.”

“잘 가요.”

나는 꾸벅 인사하고 진료실 밖으로 나갔어. 닫히는 문 사이로 의사가 손을 흔들었어.

나는 꽃도 피지 않았는데 병원을 떠났어. 카운터로 가서 퇴원수속을 밟고 약국 대기실에 앉아 기다렸지. 젊은 약사가 건네준 지퍼백에는 작고 노란 알약들이 담겨 있었어. 아티반정 0.5mg. 나는 약 이름을 두 번, 확실하게 읽었어. 선착장으로 가서 돛단배를 찾았어. 수평선을 넘어서 다시 떠났어.

 

거기 있다면 부디 답장해줘.

 

 

 

 

2부 별

 

돛단배는 어떻게 별이 되었을까? 어떤 배들에게는 별들처럼 정해진 길이 있지. 하나의 별자리를 따라 죽 흘러가는 거야. 돛단배처럼. 돛단배는 감귤 별자리를 따라가. 감귤 별자리는 브리엘이 내게 가르쳐 준 거야. 보통은 잘 발견하지 못해. 나도 처음에는 못 봤어. 떠난 다음에야 볼 수 있게 됐어.

돛단배는 바닐라빛 황혼이 지는 별에서 멈췄어. 카페를 갖춘 숲 속 철도역으로 갔고, 인근 강에 내려앉으며 엄청난 물보라를 일으켰어. 물방울 맺힌 나뭇잎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어. 나른한 오후였어. 날씨는 안온했고 이제 해가 지려는 참이었지. 나는 강가에 배를 댔어. 생수병을 가져다 유리잔에 물을 따르고, 지퍼백에서 약 하나를 꺼내 갑판으로 나갔어. 하늘이 물드는 걸 지켜보며 약을 삼켰어. 나는 바닐라빛이 질 때까지 기다리다 카페를 찾아갔어.

등 뒤에서 문이 닫히자 딸랑, 하고 풍경이 울렸어. 반팔 반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테이블 몇 개에 퍼져 앉아 얼음 띄운 음료를 마시고 있었어. 커피 기계를 만지던 제스퍼가 나를 발견하곤 눈이 동그래졌어. “너 눈이 새까매.”

괜찮아. 피곤해서 그래. 난 힘없이 웃었어. 오랫만이다, 안녕 같은 말은 둘 다 하지 않았어.

“올라가면 침대 있어. 좀 자.” 제스퍼가 카운터 문을 열어주며 손짓했어. 나는 나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어. 다락방의 둥근 창문으로 차분한 빛이 들어오고, 원목침대 위에 파란 퀼트이불이 웅크리고 있었어. 나는 조심스럽게 침대 안으로 기어 들어갔어. 햇빛 때문이었을까, 약 때문이었을까, 푹 싸여서는 녹아들듯 잠이 들었어. 일어나보니 빛은 잦아들었고 하늘은 바닐라 빛이었어.

시간이 시간인지라 카페 안은 엄청나게 붐비고 있었어. 건너편에 있는 나무 문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적어도 스무 명은 카운터 앞에 줄 서 있었지. 알바생들은 주문 받느라 바빴어. 아니면 뒤에서 동동거리는 친구가 신입이라 도와주느라 바쁘거나. 손님들을 흘끗하던 제스퍼가 나를 보고는 눈이 동그래졌어. 좀 있다 와, 꼭 와. 그냥 가지 마. 제스퍼가 절박하게 뻐끔거렸어. 나는 웃으며 손 흔들었고, 나무 문을 열고 바다로 나갔어.

문 밖에서 바닷바람이 달려들자 양복이 무겁게 늘어졌어. 뜨거운 공기는 몸을 흔들며 날아오르고, 수영복 입은 사람들이 웃고 재잘거리고 꼬마들은 비치볼을 들고 해변을 달려갔어. 나는 펑퍼짐한 검은 양복에 감싸여 이리 비틀 저리 비틀거렸어. 부딪쳐서 모래밭에 주저앉으면 일사병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게 될 것 같았지. 나는 고개를 흔들며 뜨거운 생각들을 떨쳐내려고 애썼어. 웃고 떠들며 손짓하고, 달아오른 공기는 품안으로 나를 밀어넣고, 다그치고 또 다그쳤어. 산 채로 익어가는 나는 누군가에게 밀쳐져 넘어졌어. 엎어진 내 주위로 세상이 손잡고 빙글 빙글 돌았어. 난 땀에 젖었고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는 눈물로 젖어 있었어.

새벽처럼 어렴풋한 햇살이 방 안을 기웃거렸어. 약하지만 시원한 바람이 어디선가 솔솔 들어왔어. 찬기에 의지해 얼굴을 문질러 닦았어. 언제 들어왔는지 건너편 간이침대에는 제스퍼가 자고 있었고 내 양복 상의는 벗겨져 옷걸이에 걸려 있었어.

“일어났어, 아담…?” 제스퍼는 너무 졸려서 돌아눕지도 못하고 웅얼거렸어.

“어디 가게?”

“옷 갈아입고 산책 좀 하려고. 다시 올게.” 나는 일어나지 말라는 뜻으로 손을 휘저었어. 제스퍼는 고개를 끄덕끄덕 하고는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어.

나는 운동화를 질질 끌면서 나무 사이를 걸었어. 돛단배가 혹시 떠나버리지 않았을까 잠시 불안했어. 하지만 돛단배는 대 놓은 강가에 머물러 있을 뿐이었어, 날 두고 떠날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차분하게. 나는 배 안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어. 두껍고 펑퍼짐해서 거추장스러운 양복은 잘 개어 넣고 얇은 재질의 여름용 바지를 찾았어. 부드러운 재질의 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새로 매고, 검은 조끼를 걸친 후 벽걸이 거울을 향해 얼굴을 찡그렸어. 밖으로 나와서 다시 숲으로 들어갔어.

 

“어서오세요.”

제스퍼가 말했어. 등 뒤에서 문이 닫히자 딸랑, 하고 풍경이 울렸어. 에어컨 공기가 춤추며 다가와 나를 끌어안았어. 한산한 시간대라 알바는 제스퍼 하나뿐이었어. 반팔 반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테이블 몇 개에 퍼져 앉아 얼음 띄운 음료를 마시고 있었어. 다들 가볍고 단정해 보였어, 나는 셔츠가 축 처진데다 넥타이는 헐렁하게 풀어져 덜렁덜렁했는데. 나무로 된 문을 열고 들어온 해변 피서객들도 젖어 있긴 했지만 나처럼 초라하지는 않았지. 나는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카운터 앞에 섰어. 커피 기계를 만지던 제스퍼가 나를 발견하고 함박웃음을 지었어.

“안녕, 아담!” 제스퍼는 카운터 너머에서 내 손을 잡았다가 깜짝 놀랐어. “너 어디 빠졌니?”

"아니."

"그럼, 땀나게 걸어다녔어?"

아마 그랬나봐. 얇은 옷을 입어도 흠뻑 땀을 빼는 바깥의 더위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어. 뜨겁고 무거운 공기와 수영복 입은 사람들과 비치볼과 무릎에 묻은 모래가 뒤이어 떠올랐어. “악몽을 꿨거든. 더워서 그랬나봐."

"이런." 제스퍼가 얼굴을 찌푸렸어.

“카페가 시원해서 다행이다. 야, 뭐 마실래? 내가 살게.”

“돈 낼게.”

“됐소, 친구.”

제스퍼는 완강한 거절의 의미로 가운뎃손가락을 들어올렸어.

“얌전히 받고 고맙다고나 해. 뭐 마실래? 카운터 안에 들어와도 되고, 아니면 테이블에 같이 앉자.”

나는 거절의 말을 생각하느라 눈을 뙤록뙤록 굴렸어. 제스퍼가 우유팩을 가져오며 고갯짓으로 메뉴판을 가리켰어.

“카운터 벗어나는 건 근무 태만 아니야?” “그렇게 치면 주인이 가게 비우는 거 자체가 근무 태만이지.” 제스퍼가 능청스럽게 받아쳤어. 얼음이 담긴 플라스틱 컵 속에서 커피와 우유가 층을 이루었어.

“여기 경영도 거의 알바한테 맡겼잖아, 내가 그 알바고. 마침 손님도 얼마 없고 주문도 이게 끝이겠다, 배 째라 그래." 제스퍼는 항상 카페의 주인인 여름을 편하게 대했어. 자기는 거의 부재하고 알바들에게 카페를 맡겨버리다니 양심이 있긴 한 거냐고 툴툴대면서. 나는 고용된 입장에서 사장을 그렇게 까도 되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더 말릴 수가 없어서 그냥 항복했어. "시원한 거, 따뜻한 거?” 제스퍼가 카페라떼를 내놓으며 재촉했어.

“따뜻한 거.” 찬기운에 땀이 식어서 조금씩 으슬으슬했어.

“고구마 라떼?”

“…고맙다.”

“뭘.”

“여기 이렇게 앉아도 돼?”

“되지 왜 안되겠어, 손님도 없는데. 카운터랑 가까우니까 오면 나갔다 오면 되고. 풍경이 괜히 달렸게?”

제스퍼는 느긋하게 빨대를 입에 물었어. 나도 내 몫을 한 모금 마셨어. 에어컨과 바깥날씨를 적당히 고려해 음료는 미지근했어.

“옷 갈아입은 거야?” 제스퍼가 넥타이를 가리키며 물었어.

“응. 왜? 아까가 나아?”

“아니, 지금이 낫다. 아까 건 안 어울렸어. 장례식장 온 것 같았거든.”

농담으로 감싸인 그 말은, 의도대로라면 경쾌한 소리를 내며 스쳐가야 했지만 두 걸음도 못 날고 힘없이 떨어졌어. 테이블에 얼굴을 박고 날개가 부러진 아기 새처럼 바르작거리는 걸 보니 마음이 아팠어. 제스퍼는 씩 웃고 침묵하는 편을 택했어. 걔는 왜 장례식에 오지 않았냐고 묻지 않았어.

떠난 그날, 나는 우주를 빙 돌아서 장례식이 열리는 도시에 갔었어. 고층건물과 도로가 빼곡하고 차들이 벌떼처럼 몰려다니는 그곳에서, 검은 양복을 입고 장례식장을 찾아 헤맸어. 여러 사람의 장례식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높은 건물 안에서, 어디로 가야 하지? 나는 알 수가 없었어. 감히 물어볼 수도 없었어. 왜 묻냐고 하면 어떡해? 무슨 사이길래 이것도 모르냐고 물으면? 친구였어요. 아니, 아니야. 정확하지 않은 말이야. 연인이었어요. 남자친구요. 이것도 정확하지 않지. 브리엘과의 관계를 담아낼 수 있는 한 단어는 어디에도 없어. 그 애는 나를 나로 만들어 주었고, 살아가는 법을 알려 주었고, 나를 살게 했는데, 그걸 담아낼 말은 내게 없어서 나는 헐떡 헐떡 하고 머릿속 사람들은 묻고 묻고 끝내는 다그쳤어. 왜 왔어? 왜 떠났어? 나는 입구에서 비틀거리다가 들어오는 사람과 어깨를 부딪혔어. 잘못 들어선 사람처럼 그 길로 돌아 나왔어. 그게 다 녹아서 없어질 때까지, 한참을 혼자 시달렸어.

그날은 트럭에서 일할 때 자주 묵던 곳에서 잠을 잤어. 높다랗게 솟은 8층 건물의 맨 꼭대기에서. 방은 무난하게 깔끔했고 창문 밖에서는 도시의 불빛들이 내려다보였어. 저 멀리 콘크리트 건물들이 자랑스레 눈을 부라리고 있었지. 유리창이 희미하게 나를 비춰 주었어. 펑퍼짐한 양복 밑에서 길고 어색한 팔다리가 흔들렸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라긴 했으되 마땅히 되어야 할 모습은 되지 못한 몸은 그렇게 흔들 흔들 하다 반죽처럼 뚝뚝 떨어져 나갈 것 같았어. 레고를 분해하듯 손쉽게 아프지 않게, 내가 아닌 것 같아서 울지도 못한 채 나는 내 몸을 떼어내고 싶었어. 그걸 생각하면 스티브가 날 병원에 데려간 것도 충분히 이해할만 해.

“계속 양복 입고 다녔던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

“연락이 안 돼서 걱정했어.” 제스퍼는 그 말만 붙였어. 나는 핑계라기보다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 말했어. “병원에 갔었어.”

“거기서 뭐래?”

“약 먹으라더라.”

“아, 그래. 병원이니까.”

제스퍼는 알 만 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어. 걔는 지병이 있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증상들을 죽을 때까지 조절하면서 살아야 하는 병이. 제스퍼가 도시에서 그 병을 얻었을 때, 나는 전화 너머에서 해주는 말들, 검게 타오르는 공포와 들쭉날쭉 울렁이는 어둠이 대체 무슨 말인가 싶어서 당황했었어. 제스퍼와의 연락은 고통에 울고 웃는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난 목소리였다가 한동안 끊겼고, 아주 나중에서야 섬으로 편지가 왔어. 하늘색 종이비행기 안에 쾌활하면서도 차분해진 글씨로, 병원에 다니면서 도시를 이리저리 헤매다 여름을 만났고, 한여름 정거장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근황과 이제는 괜찮다는 말이 적혀 있었어. 그 다음 해 여름에 브리엘과 나는 한여름 정거장에 놀러 왔어. 제스퍼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어. 살이 조금 내리고 어두운 기색이 남아 있었지만, 우리가 알던 모습으로 살고 있었어.

“그래서, 먹었어? 약 말이야.”

“응. 몇 번 바꿨어. 약한 걸로.”

나는 테이블에 손가락을 대고 의사가 처방해 준 동그랗고 노란 알약을 그려 보았어.

“그분은 힘들다고 하면 무조건 약 먹이려고 하시더라고.”

“스티브처럼?” 제스퍼가 웃으며 농담을 던졌어. 나도 웃음이 터졌어. “그래, 스티브처럼.”

"스티브가 네 안부 묻더라."

열기구를 탈때 본 심각한 표정이 떠올랐어. 걔한테 아무 연락도 않고 혼자 퇴원수속을 밟았다는 사실이 뒤이어 떠올랐지. 병원에 없다는 걸 알고 좀 놀랐으려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게 화를 내거나 하지는 않을 거야. 잔소리라면 할지도 몰라. 그리고 괜찮겠느냐고 묻고, 도울 일이 있겠느냐는 뜻으로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묻겠지.

"그래서 뭐라고 했어?"

"잘 지내는 거 같다고 했어." 제스퍼가 씩 웃었어. "걔는 걱정이 많아. 언제나 도와주려고 대기하는 것 같다니까."

"어련히 알아서 할 것을."

"맞아."

스티브가 미개발지역인 과일 산맥으로 가기를 자처한 것, 응급구조사 자격증을 따서 조난자 구조를 돕는 것, 나를 병원으로 데려간 것을 쭉 이어서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왔어. 걔는 어렸을 때부터 오지랖이 넓었어. 의학에 관심이 많아서 인체 대백과사전을 세 권이나 갖고 있었는데, 좀 더 크고 나서는 응급처치로 관심을 옮겨갔어. 어릴 때는 다소 돌팔이여서 모기 물린 자국을 보고 체체파리라고 추론하는 바람에 동네 꼬마를 겁먹게 하기도 했고, 날씨 맞추기도 좋아해서 장난 삼아 내기를 걸었다 지기도 했어. 스티브는 항상 가방에 상비약 봉지를 넣고, 비가 오면 함께 쓰려고 큰 우산을 갖고 다녔어. 걔는 우리의 구급상자였어, 제스퍼가 병에 걸렸을 때도, 브리엘이 아팠을 때도.

“나랑 처음 만났을 때, 너희 둘은 브리엘이랑 이미 알고 있었지?”

“그랬지, 걔가 소개해 줬으니까.”

“얼마나 됐었는지는 기억해?”

“아니. 하지만 길지 않았던 것 같아.” 제스퍼는 레모네이드를 빨아들였어. “너만큼 깊지도 않았던 것 같고. 너네 둘은 특별하잖아.”

“그랬지.”

“그래.”

우리는 그게 뭐라도 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어.

 

딸랑, 제스퍼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어. 캡모자를 눌러쓴 택배기사가 꾸벅 인사했어. “안녕하세요, 물건 받으러 왔습니다.”

“아, 잠깐만요! 아담, 잠시만 기다려.” 제스퍼는 그렇게 말하고는 총알처럼 카운터 너머로 튀어나갔어. 이내 크고 작은 선물박스들이 택배기사의 품에 안겨 유리문 바깥으로 사라졌어. 아마 저 밖에 트럭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나 혼자 테이블에 앉아서 제스퍼가 허둥지둥 서두르는 걸 보고 있자니 조금 미안했어.

“나도 도와줄게.”

“어, 아니야. 거의 다 끝났어… 여기. 이건 네 거야. 깜빡 잊고 택배로 부칠 뻔했네.”

제스퍼는 내 도움을 받는 대신 신발상자처럼 생긴 민트색 상자 하나를 안겨 주었어. 받아보니 아주 무겁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보기보다 무게가 있었지. 나는 제스퍼가 택배기사를 배웅하는 동안 상자를 테이블에 올리고 뚜껑을 열었어. 완충제용 뽁뽁이를 둥지처럼 깔고 누운 부엉이 한마리가 게슴츠레 나를 올려다보았어.

“말하는 인형이야. 인사해 노아, 얘는 아담이야.” 제스퍼가 손등으로 이마를 훔치며 말했어. “안녕.” 내가 속삭였어. 부엉이가 순하게 눈을 깜빡였어.

나는 노아를 두 손으로 들어올려서 조심스레 살펴 보았어. 커다란 병아리처럼 솜털이 있고 날개짓이 약한 걸 봐서는 아기 부엉이를 본딴 것 같았지. 날개의 느낌도 그렇고, 눈도 그렇고, 어딜 봐도 기계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어. 인형처럼 얌전한 것 빼고는.

“날개깃에 제조일자 있대.” 건너편에 다시 주저앉은 제스퍼가 설명서를 후루룩 훑으며 말했어. 날개를 펴서 자세히 살펴 보니 오른쪽 깃털 끝부분에 제조일자가 적혀 있었고, 그 옆에 익숙한 병원 로고가 붙어 있었어. 피어나는 들꽃을 형상화한 듯 퐁퐁 터지는 동그라미들. “전에는 병원에 있었대. 치료용으로. 깃털에 박힌 로고는 병원에서 일한 경력사항이고… 이거 좀 봐.” 나는 노아를 테이블에 내려 놓고 설명서를 들여다보았어. 설계도같은 그림이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어. 깃털을 붙이기 전의 모습인지 새의 해골처럼 생겼고, 카메라가 달린 유리눈이 불거져 있었어. “글도 쓸 줄 알고, 라디오 주파수도 잡고, 태양광 충전 형식입니다… 근데 자기가 알아서 할 거니까 신경쓰지 말라네.” 제스퍼가 조막만하게 적힌 글들을 읽어 나갔어. 어느새 노아가 뒤뚱뒤뚱 걸어와 우리를 빤히 바라보았어.

“낯 가리나봐. 여기 와서도 처음에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쳐다보기만 하더라고. 익숙해지면 말문도 트이고 할 거야. 둘이 친하게 지내.” 제스퍼의 말투가 당부 같아서 나는 피식 웃었어. “동행이 하나 더 생겼네.”

“야, 동행뿐이냐, 내가 준비한 선물도 있어. 여기, 짠.” 제스퍼가 뭔가를 쓱 밀어주었어. 받아보니 열쇠고리였어. 금속재질이었고 노란 해바라기 팬던트가 달려 있었어.

“예쁘다. 네가 만든 거야?”

“응. 카페 단골손님들만 주는 기념품인데, 풀린지 얼마 안 됐어. 다른 건 다 복사품인데 이것만 내가 만든 진품이야.”

제스퍼가 뿌듯한 표정을 지었어.

“여기도 나름 관광지잖아, 한여름 정거장, 여름이 직접 운영하는 카페. 물론 주인장 얼굴 보기 더럽게 힘들지만, 그래서 기념품이 있어야 된다고 내가 그랬지. 은근 결정하기 힘들었어, 알바들 머리 맞대고 의논하는데 새로 온 애는 심지어 풍선까지 얘기하더라고. 그건 브리엘 취향이잖아, 어디 가면 꼭 헬륨풍선 사는 거.”

“잃어버릴 거면서.”

“맞아.”

놀이공원에 놀러갔던 어느 날, 들고 있던 빨간 풍선을 놓쳤을 때 표정이 얼마나 웃겼는지. 눈은 동그래지고, 입이 벌어지면서 어! 하고 외치던 그 애는 순간 나보다 더 어리게 느껴지기도 했어. 그때는 넘어지거나 뭔가를 놓치는 일에 부가세처럼 따라붙는 말들이 없었어. 풍선을 놓치면 놀라워하기 전에 먼저 아쉬워해야 하고, 자꾸 그러면 풍선을 가질 만한 사람인지에 대해 자기 자질을 의심해 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나잇값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강요도 없었고. 이상하게 들리는 거 알아,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 바다 건너에 도시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 사람들은 매일같이 그런 말을 했어. 안 하는 사람이 신기할 정도로. 거기서 나는 트럭에서 일했고, 나 빼고 다 아는 사람들과 매일 어깨를 부딪혔어.

그 도시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았어. 트럭에서 일하는 동료들은 나를 릭이라고 불렀고, 어리버리하고 말도 잘 못하고 심지어 알아듣지도 못한다고 싫어했어. 물론 나도 그 사람들이 싫었어.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 싫으면서도 부득이하게 붙어있어야 했던 거야. 무거운 박스들을 나르고 차가 빵빵한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나보다 더 오래 일해온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단어를 배웠어. 조금만 느려져도 밀치고 지나갔고, 잠시만 뒤쳐져도 모두가 사라져 있었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너무 익숙한 나머지 다들 잔인할 정도로 거침없었어. 나는 멍한 상태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어. 왜 여기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 있었어, 그게 이전인지 이후인지도 모르게.

살아감이 춤이고 희노애락이 박자라면,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건 무용수가 되는 일 같아. 사람이 많을수록 삶은 더 복잡해지는 거야. 하지만 사람은 결국 사람들과 살아야 하고, 그래서 삶의 초반기에 웃고 우는 법을 배우는 게 중요한가봐. 그런 걸 조금씩 겪어내며 배워가는 교실은 집이 아니라면 고향일 수도 있겠지. 무엇을 위하거나 살아남기 위한 삶이 아닌 살아가기 위한 삶을 살기 위해, 나는 법을 배우는 새처럼 떨어지고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집이 안온하지 않아도 돌아갈 수 있는 고향. 내가 집이라면 브리엘은 내게 고향이었어. 그리고 나는 좀 늦되었나 봐, 어른이 된 지금도 바깥이 낯설고 무서워서 여기저기 어깨 부딪히는 걸 보면.

언젠가는 모두 그렇듯 더 넓은 세상에 나가서 살아야 한다는 걸 알아. 그곳의 공기는 다른 중력, 다른 법칙을 품고 있지. 결국 나도 배우게 될 거고, 그래서 언젠가는 움츠러들지 않고 거리를 지날 거라고 믿어. 다른 사람들처럼, 이렇게 배우지 않았다면, 다르게 배웠다면 좋았을 텐데. 어린 우리는 해변을 달리며 사랑하고 배우고 살아가겠다고 맹세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결국엔 우리 둘 다 해변을 떠났네. 걔는, 죽었고, 나는 세상이 낯선 이로 혼자 남겨졌어…

“아담, 아담.” 상념에 가라앉는 나를 제스퍼가 불러 깨웠어.

“돛단배랑은 잘 맞아?”

“응.”

“감귤 별자리는 봤어?”

“…응.”

그렇게 애썼던 게 무색하게도 너무 쉽게. 나는 그 말을 삼켰어. 밤마다 부둣가에서 별자리를 찾던 날들을 어림잡아 보았어. 잠 못 들어 애쓰던 밤만큼, 추억 만큼,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허무할 정도로 빨랐어. “모든 게 너무 꿈 같아.” 나는 힘없이 푸념했어. “하도 터무니없게 보여서, 그런 생각까지 들어.”

“무슨?”

“이게 사실 다 꿈이면 어쩌나, 하는.” 별 여행자인 나도, 돛단배도, 브리엘도.

“하지만 진짜 뭔가를 잃어버리긴 한 거지, 그게 꿈에서 나타난 거래도. 그러니까, 꿈은, 현실과 내면의 반영이라고 하잖아.” 말 잇기가 힘들어서 나는 억지로 숨을 들이켰어.

“그런데, 뭘 잃어버렸는지 모르겠더라. 물어보는데 대답할 수가 없었어. 세상은 빠르게 걸어가는데 나는 자꾸만 멈춰 서야 하고, 빈 자리를 돌아보면 아픈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

“아담, 검고 끈적끈적한 죽음을 알아?” 제스퍼가 별안간 목소리를 낮추었어. 쾌활한 밝은 눈이 어둡게 빛났어.

아, 제스퍼의 지병, 사계절이 순환하듯 주기적으로 정신세계가 일렁이는 병.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를 재정비해야 하는 그 병. 걔는 폭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처럼 나를 보았어. 나는 순순히 긍정했어.

“응.”

“걔가 뭐라고 하는지 들었어?”

나는 병원에서 느꼈던, 어둠 저편에 있는 ‘해야 할 말’ 의 존재를 떠올렸어.

“응.” 나는 소년처럼 말했어. 제스퍼는 나보다 더 오래 살아남은 사람처럼 부드럽게 일렀어.

“그놈이랑 싸워야 해. 포기하면 안 돼. 알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조금 더 앉아 있었어. 손님들은 하나 둘 떠나고, 하늘에 바닐라빛이 질 때서야 말없이 헤어졌어. 노아는 내 어깨 위에 올라앉아 함께 돛단배를 탔어. 나는 마음이 심란해서 약을 먹고 잠이 들려고 했는데, 먹었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잠이 오지 않았어.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한참을 뒤척거리다가, 결국 갑판으로 걸어나왔어. 노아가 뱃전 위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았어. “들어가서 자.” 나는 손을 휘저었어.

“아담, 아담.”

노아가 재잘거렸어.

“나는 관찰자야. 나는 지켜보는 사람이야.”

그 말은 꿈처럼 반짝였어. 나는 문득 노아의 눈을 들여다보았어. 설계도에는 카메라가 들어 있다고 했지만, 막상 마주한 초록 눈은 나를 통찰하듯 차분했어. 카메라처럼 피부를 훑는 것도 아니었고, 어깨 부딪히던 사람들처럼 미끄러지는 시선도 아니었어. 내 마음에 보는 그 눈은 스티브의, 제스퍼의, 의사의 것 같았어. 그 전에는, 브리엘. 나의 브리엘.

브리엘을 만나기 전에는 내 마음에 아무것도 닿지 않았어. 부모님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지만, 그건 자기 자리에만 머물러 있었지. 중요한 순간에 움직여 줄 거라고 감히 장담할 수 없었어. 그분들은 전하려 하지 않으셨고 나는 어떤 것도 말로 담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느낌으로 겨우 소통했어. 그때는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었어, 내게는 스승이 없었고 친구도 없었으며 그분들은 산이나 바다처럼 나를 사랑했으니까, 새로 생긴 별처럼 들끓고 불안정한 데다 안개로 덮여 있었어. 나는 브리엘을 만난 다음에야 내가 되었어. 떠나는 밤에 나는 노아에게 여러 말을 했어. 노아는 차분한 눈으로 그저 바라보았고, 나는 밤새 얘기했고 노아는 내 말을 전부 들었어.

“한 번은 브리엘이 밤하늘의 빛이 반딧불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어.” 나는 노아에게 그 말을 했어. “나는 별을 알게 된 지금도 그 말을 믿어. 가끔 저 밖에 보이는 빛들이 반딧불이라는 상상을 하곤 해. 행성과 항성과 혜성에 둘러싸여도, 하늘에는 반딧불이도 있고, 별도 있고, 인공위성도 있는 거라고.”

네가 보는 밤하늘의 별 하나는 돛단배의 흰 돛일지도 몰라. 떨어지는 유성 중 하나는 길 잃은 나일지도 몰라. 그러니 손 흔들어 줘. 나는 여전히 가고 있어.

 

…이 편지는 전부 노아가 대필해준 거야. 나도 이렇게 또박또박했으면 좋겠다. 읽느라 수고 많았지, 답장해줘서 정말 고마워.

 

 

 

 

3부 집

 

어느 날, 우주복 입은 남자를 만났어. 쾌활하고 깡말라서는, 제트팩을 메고 우주공간에 떠 있었지. “안녕, 친구! 잠시 타도 괜찮을까요?” 남자가 웃으며 물었어. 목소리는 헬멧에 막혔기 때문에, 어깨에 달린 스피커에서 지지직거렸어.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어 배에 태웠어. 그가 헬멧을 벗을 때 등 뒤의 제트팩이 늙은 집사처럼 쿨럭거렸어.

“휴식도 안 주고 혹사시켜서 힘들었나봐요. 좀 쉬면 괜찮아지겠죠. 전 숀이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남자가 웃으며 손 내밀었어. 나는 서툴게 맞잡았어. “아담이에요. 반가워요. 괜찮아질 때까지 머물러도 좋아요.”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속사포처럼 늘어놓았어. 남자는 내가 고개를 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어. 그렇게 긴장할 것 없다고 말하듯, 조금 의아해하듯이.

그 다음에는 정신이 없었어, 누군가를 대접하는 게 너무 오랫만이라. 나는 손님을 선실로 데려왔고 차를 내와야 할지 어쩔지 허둥지둥했어. 그 사람은 나를 기다려줬고 노아는 횃대 위에서 내내 벽시계인 척 했어.

“어디 가는 길이에요?” 나는 서두를 어떻게 열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아무 말이나 지껄였어.

“악어 하늘에 가고 있어요. 저는 스카이 다이버거든요. 별똥별보다 조금 낮은 곳에서 세상으로 뛰어내리는 사람들요.” 내가 어리둥절해 보였는지 그는 웃으며 설명했어. “그렇게 떨어진 세상에서 새로운 배움을 얻죠. 악어 하늘은, 스카이 다이버들에게 특히 유명한 곳이에요. 온통 물로 이루어진 별에 악어 섬이 하나 떠 있는데, 수면이 얼마나 파란지 꼭 하늘 위로 뛰어내리는 것 같대요. 뛰어내리면 섬에 닿을 수도 있고 바다에 닿을 수도 있는데, 섬에는 울창한 정글이 펼쳐져 있고 그것을 헤치고 지나면 악어 섬을 만날 수 있다고 해요. 천상 악어인지라, 입을 벌려 방문자를 삼킨다더군요. 그럼 어둠으로 떨어지게 되고요. 바다로 가도 수많은 물고기들, 생물들, 색깔들을 지나 결국은 어둠을 만나게 된대요. 그 어둠 속에서 숨 쉬는 것을 잊을 정도로 죽을 것 같고, 비명도 지르지 못할 정도로 할 말을 잃게 되고,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결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결국에는 삶에 대해서 배운다고 하죠. 사람들마다 본 것은 각자 다르다지만, 언제나 수면 위에 둥둥 떠 있는 걸로 끝나요.”

“많이 힘들겠네요.”

“네, 많이 힘들죠.” 남자가 웃으며 긍정했어.

“그런데 삶이라는 건 격렬한 거잖아요. 시냇물은 달리면서 끝없이 재잘거리고, 낙엽은 떨어지기 싫어하고 푸른 잎은 낙엽이 되고싶지 않아 하고. 예전에 어둠을 만났었어요. 삶이 증발하고 까맣게 남은 구덩이 말이에요. 살아나, 살아나, 살아나! 하고 외치는 소리, 그걸 한참 따라간 후에야 겨우 삶을 만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다시 만난 삶은 아주 까다롭더군요. 모든 걸 새로 배워야 했어요. 하루하루가 예전과는 너무나도 달랐어요. 거기 들어갔다 나오면 또 달라져 있겠죠.” 숀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어.

미소는 부드러웠어, 괜찮을 수 없음을 아는데도. 나는 생각했어, 어쩌면 악어 하늘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만큼 격렬하지 않고, 사려깊고 지적이고 그러면서도 야생적인 세상이 함께 거닐자고 무뚝뚝하게 손 내밀지 않을까 하고. 거기서는 모든 게 알 수 있도록 정리되어 선명하지 않을까? 자연의 많은 부속들이 연구되고 분류되어 이름이 붙은 것처럼, 미발견된 것들이 들어갈 자리조차도 깔끔하게 만들어지듯이. 나는 순간 그와 함께 악어 하늘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어. 하지만 차분함 속에도 고통은 있겠지. 나는 살고 싶었고, 아직은 별똥별이 되고 싶지 않았어.

나는 그 남자에게 여분의 방을 내어 주었어. 한밤중에 깨서 갑판에 나와 보니 방에 불이 켜져 있었어. 툭툭 탁탁 하는 소리로 봐서는 아직도 제트팩을 고치는 모양이었지. 나는 별들을, 제트팩 고치는 소리를 배경 삼아 심호흡을 했어. 백색소음 사이로 흥얼거림이 섞여 들어왔어.

‘그건 비행기가 아니라 나야, 있어야 할 곳에 앉아 있어. 구름 위로 떠 가네, 아무도 가까이 올 수 없어…’

우리는 일주일 가량을 함께 여행했어. 그 사람 제트팩이 악어 하늘까지 갈 수 없을 정도로 지쳐 버려서, 쉬고 쉬고 또 쉬어야 했거든. 나는 일어나서 그와 인사를 나누는 데 익숙해졌고, 숀이라고 부르는 데 익숙해졌고, 함께 이야기하는 데도 익숙해졌어. 숀은 래퍼처럼 리듬을 타며 자주 노래를 불렀어. 무슨 노래인지 물어보자 웃으며 말했지. “제가 지어낸 거예요. 가사는 전에 만난 스카이 다이버들의 이야기들을 넣었고요.” 폭죽 빛으로 밤에 불을 붙이고, 녹은 은하수의 맛을 보고, 별빛 세레나데에 가라앉네. 나는 노래가사를 마음 속에 그려 보았어. 별들이 폭발하며 불꽃들이 뿜어져 나오고, 대기를 뚫고 달리는 롤러코스터, 노래하는 인공위성들, 나를 환하게 밝히고, 콘크리트와 하늘이 위치를 바꾸니 도시의 불빛들이 밤하늘이 되었어. 가사는 비현실적인 말들로 가득했어. 돛단배를 타고 우주를 여행하는 나만큼이나 허무맹랑했지. 그리고 나는 네가 들려준 이야기, 바닐라빛 황혼이 지는 별을 떠난 날 돛단배를 찾아온 종이 비행기를 생각했어. 회색 공간과 딛을 때마다 눈가루인지 먼지인지 모를 것들이 풀풀 날리는 하얀 길, 흘리지 못하는 눈물을 가득 끌고는 헤매고 또 헤매다 닿게 된 성. 우리는 다들 자기만의 환상을 갖고 있는 거야. 나는 별 여행자이고 브리엘을 떠나왔어. 돛단배는 별이 되어서 은하를 건너. 우주복 입은 남자는 악어 하늘로 뛰어들고, 너는 온통 빛바랜 공간에서 슬픔으로 중심을 잡은 채 너를 살리려고 애쓰지. 우리는 모두 살아가려고 버둥거려, 살아남기 위해 본 것들을 이야기에 덧씌워야 하는 삶은 때로는 비현실처럼 허무맹랑하니까.

 

브리엘이 아프면서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어. 나도 그 병에 걸린 것 같았어, 또는 더 심한 병에. 죽음이 가까워 오는 걸 브리엘보다 내가 더 체감할 정도로. 나는 브리엘처럼 얌전할 수 없었어. 제스퍼에게 편지를 쓰고, 스티브에게 편지를 쓰고, 길가의 히치하이커나 불운하게 조난당한 사람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온 몸으로 애원했어, 우리가 여기 있으니 데려가 달라고. 여기 있다가 죽지 않게 해 달라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함께 산책을 할 때마다, 산책하는 시간이 줄어들 때마다 어딘가가 뜯어지는 것 같았어. 항상 나보다 반 발짝 앞에 있던 애가 아프니 내가 두 발짝이나 앞서게 된 거야. 나는 브리엘을 지키고 싶었어.

그 애를 돌보고 싶었어. 한바탕 비가 내리면 무지개를 찾아서, 점점 시들어가는 그 애에게 수혈해 주고 싶었어. 색깔들이 피에 섞이고, 혈관을 타고 심장으로 가서 빛바랜 마음을 온통 물들이도록. 하지만 비는 그칠 생각이 없었고, 어둠은 검은 기름처럼 번지고, 브리엘은 새처럼 가라앉았어. 구급상자같던 스티브는 아주 멀리 있었고, 제스퍼는 어쩔 줄 몰라 허둥거렸어. 아무도 올 수가 없어서 이야기만 나누었어. 나는 손을 꼭 잡고 다독이고 또 당부했어. 힘내, 눈물 닦고, 비가 그치면 내게 말해줘. 타르처럼 녹아내리는 마음은 이곳을 온통 덮도록 하고 우리는 떠나 버리자. 그건 단지 껍데기가 녹은 것일 뿐이야. 가자, 우리는 괜찮을 거야…

그 말을 할때, 나는 애원했을까? 의사가 약을 건네며 내게 그랬던 것처럼, 그건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브리엘을 위해서, 어쩌면 그보다 더 나를 위해서? 점점 죽어가는 브리엘, 도와달라는 외침은 문드러지고, 떠나지 말라고 껴안은 우리의 맞닿은 부분은 썩어서 곪아갔어. 질식해서 괴사하지 않게 헐겁게 껴안고, 끝내는 어쩔 수 없이 떨어뜨려야 할 것 같았어. 상자에서 빼내야 하는 사과처럼, 하지만 누굴 빼내야 했을까? 내가 붙잡지 않았다면, 우리는 살았을까?

그래서 내게 떠나라고 했을까?

브리엘은 나를 선착장으로 데려가 돛단배를 소개해 주었어. 나는 돛단배를 타고 바다를 건넜어. 도시를 온통 헤매다가 이틀 만에 다시 돌아왔는데, 브리엘은 전보다 더 아파 보였어. 어느 날의 걔는 내게 화를 내기도 했었는데, 썩어들어가 죽을 것 같다는 말을 딱 한 번 쏟아냈었는데, 그 수많은 나머지 말들은 다 속으로 파고들어간 듯 힘없이 웃기만 했어. 나는 갈비뼈가 조여드는 것 같았어. “너무 빨리 돌아왔잖아. 더 멀리 가. 더 많이 보고, 기념품도 사고. 얼른, 아담.” 브리엘은 그렇게 나를 다시 보냈어. 나는 답답하다고 생각하며 또 다시 배를 타고 떠났는데, 이번에 돛단배는 수평선을 넘어 날아올랐어. 나는 아이처럼 신이 났어. 저 위로는 우주선이나 타야 갈 수 있는 줄 알았고, 설마 배가 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거든. 나는 반딧불이처럼 반짝이는 별들을 하나 하나 세며 잠도 안 자고 밤을 지새웠어. 돛단배는 내가 몰지 않아도 알아서 길을 찾아갔고, 그 길이 내 마음에 맞았어.

나는 무거움을 잊을 수 있을 만큼, 아주 멀리멀리 갔다가 돌아왔어. 중간에 들린 별에서는 기념품으로 엽서 하나를 사서 부쳤어. 곧 돌아갈게, 아프지 마. 힘내. 글씨가 정말 삐뚤삐뚤하긴 하지만, 그래도 읽을 수는 있겠지. 나는 브리엘이 그걸 읽었을 거라고 생각했어. 떠날 때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걔네 집을 찾아갔는데, 우편함에 편지들이 그대로 놓여 있었어. 평소대로라면, 그러니까, 아프기 전이라면, 브리엘이 아침마다 우편함을 비웠어야 했고, 그러니까 내가 보낸 엽서는 들어있으면 안 되는 건데. 뒤늦게 문을 연 브리엘은 엄청 오랜만인 것처럼 나를 반겼어. “왔어, 아담? 여행은 어땠어?” 그 애는 아프기 전의 여행을 말하듯 아무렇지 않은 척했고, 나는, 우편함에서 엽서를 몰래 꺼내 주머니에 구겨넣었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동네를 뱅뱅 돌다가 길거리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어. 일주일, 또는 며칠만에 브리엘은 다시 나를 여행보냈어. 섬으로 돌아갈 때마다 나는 여행을 떠난 횟수를 세고, 기간을 세고, 날짜를 세고 또 셌어. 내가 떠나지 않았을 때 우리는 말없이 산책을 했어. 브리엘은 산책하는 것도 힘들어했고 나는 침묵이 너무 쓰라려서 울고 싶었지만, 다른 수가 없었어. 그게 우리로서 시간을 보내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었으니까.

일곱 번째 여행을 다녀왔을 때도 브리엘은 나를 반겼어. 말하지 않아도 고통이 느껴지는데, 아무 일도 없는 척 웃기만 했어. 나는 자꾸 조여드는 마음이 아파서 조심조심 숨 쉬었어. 다음에는 바다 사진을 한 장 갖다 달라고 했을 때, 나는 충동적으로 말했어. 같이 가자. 흐릿하게 빛나던 브리엘의 눈동자가 순간 멈추었어. 검은 동공에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한 내 얼굴이 비쳤어.

그때 나는 절망했던 것 같아. 애타는 마음을 달랠 수가 없어서 화가 났던 것 같아. “아담, 나는 못 가.” 브리엘은 힘없이 웃으며 말했지. 그 다음부터는 떠남을 세지 않았어. 여행자가 아니라 발사된 로켓처럼, 앞으로 멀리, 더 멀리 그냥 떠났어. 브리엘이 죽어가는 만큼 내 섬은 가라앉았어. 나는 다시 떠나고 싶었고 멀리 떠나고 싶었어, 간절히 살고 싶었고 차라리 죽고 싶었어.

돛단배는 새 같았어. 나를 태우고 어디든 날개 닿는 곳으로 데려갈 새 말이야. 질척이며 번지는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 나는 떠날 수 있었어. 심지어 은하를 가로지르며, 별들 사이로, 새처럼 나는 돛단배를 타고. 하지만 나는 하늘에 닿을 때마다 브리엘을 떠올렸어. 날지 못하는, 떠나지 못하는, 마음이 조여들어서 숨이 막혔어. 그 거리, 그 시간은 브리엘이 나을 수 있는 기간이 아니었어. 그저 내게, 잊을 수 없는 것을 잊기 위한 핑계가 될 수 있었을 뿐이지.

단지 걔가 나를 살리려고 했다는 걸 이제는 알아.

떠나기 전에도 우리는 산책을 했어, 어렸을 때처럼 숲 속을 함께 걸었지. 어스름한 저녁, 진해지는 남색, 검푸르러진 하늘에 하나 둘 나타나는 별들이 나뭇잎 사이로 내려다보았어. 우리는 숲의 끝까지 걷고, 또 이어진 해변을 걷고, 부둣가에 닿을 때까지 그냥 걸었어. 아직 감귤 별자리를 보지 못했던지라, 저 앞에서 빛나는 별들을 습관적으로 연결하며 감귤 별자리를 그려 보았어. “수평선 너머도 푸를까?” 브리엘이 물었어. 우리는 부둣가에 서서, 서로 손 잡고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았어.

이튿날 해뜰 때 나는 떠났어. 돛단배가 수평선을 건너자 눈앞에서 해가 떠올랐어. 해 주변을 조금 돌다 떠나갈 때, 우주는 검고, 검푸르고, 반딧불이 많았어. 뱃머리 저 앞에는 감귤 꽃을 닮은 별자리가,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났는데도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였어. 돛단배는 감귤 별자리를 따라갔으니까.

어디에나 브리엘이 있었어. 돛단배를 준 것도 브리엘이고, 감귤 별자리를 알려준 것도 브리엘이고, 반딧불이를 알려 주고 별들을 불러 준 것도 브리엘이었지. 브리엘이 없는 곳이 없었어, 나를 이루는 그 무엇에도. 모든 곳이 브리엘이었고, 어디에도 브리엘이 없었어.

있잖아, 섬이 가라앉아서 브리엘을 잃은 게 아니야. 브리엘을 잃었기 때문에 섬이 가라앉은 거야. 이제 다시는 예전처럼 숲을 걸을 수도 없고, 바다를 볼 수도 없고, 일상 위에 소소한 추억들을 쌓을 수도 없는 거야. 그 모든 것들은 슬픔에 잠겨서, 기억 속으로 깊이 가라앉아야만 볼 수 테니. 추억 속의 우리가 난파선을 들락날락하는 물고기처럼 그 위를 거닐고 있을 거야.

 

숀은 뿌연 별 하나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했어.

“바로 저기예요.”

처음에 그 별은 덩어리 같았어, 안개를 힘써 뭉쳐놓은. 조금 더 다가가서는 그게 하얀 구름들이라는 걸 알았어, 까마득한 저 아래로 켜켜이 쌓여 있었지. 양떼같고 솜사탕 같은 구름 사이로 뱃머리를 디밀자 수증기가 안개처럼 피어올랐어. 돛단배는 파란색이 보일 때까지 엉거주춤 비집고 들어갔어. 하늘을 마주한 것 같은 착각이 들 때, 헬멧을 쓰고 제트팩을 둘러멘 숀이 내게 악수를 청했어.

“즐거웠어요, 아담. 좋은 여행 되길 바라요.”

“당신도요, 숀. 잘 가요.”

말은 의도치도 않았는데 유려했어. 숀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활짝 웃었어. “잘 지내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 사람은 떠났어. 두려움이라곤 눈꼽만치도 없는 사람처럼 망설임없이 갑판 끝으로 가서는, 뱃전에 올라앉아 한 다리를 바깥으로 내어 놓고는 마지막으로 나를 보며 웃었어. 숀은 노래하고 있었어. 마치 누군가 연주하기라도 하듯 박자에 맞춰서 신나게 덩실거렸어. “난 어디 있었나? 로켓이 삶으로 나와서, 너를 악어 하늘로 데려갔을 때. 저 앞에 뭐가 있을지는 몰라도, 난 놓지 않을래. 난 놓지 않을 거야!” 팔을 벌리고, 새로운 모험을 껴안는 사람처럼 우주복 입은 남자는 그렇게 뛰어내렸어. 나는 서둘러 달려갔어. 빠르게 작아지는 인영은 무작정 뛰어내린 사람처럼 위태롭고 연약해 보였어. 돛단배가 몸을 돌려서 떠나던 그때, 손톱만한 등에서 낙하산이 튀어올랐어. 안정적인 착지 자세를 취한 스카이 다이버가 하늘 밑의 세상으로 사라졌어.

돛단배는 자기 길을 갔어. 악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졌을 때 나는 갑판 끝에 서서 밤하늘을, 감귤 별자리를 보고 있었어. 저 멀리 혜성이 지나갈 때 조금 울었어. 엄마를 찾는 아이처럼 나를 둘러싼 세상에 손을 뻗으며, 애타게 찾으면서, 넓다란 우주 저편에 대고 속삭였어. 검푸른 우주에서 온통 느껴지는 —에게. 날 놓지 말아요, 날 보내지 말아요, 하고 신열에 들뜬 사람처럼 애원했어. 돛단배가 하늘에 닿을 때 유성이 쏟아졌어. 배는 별똥별처럼 내려갔어.

 

바닷가에 등대가 있어. 하얀 벽에 빨간 지붕을 얹고 하늘색 빛을 비추고 있어. 돛단배는 바다와 만나며 하얀 물보라를 만들어 내고, 돌투성이 해변을 가로지르며 갈대밭 사이로 들어가. 비틀대는 내 어깨 위에서 노아가 바르작거리고, 바닷바람이 솜사탕 날리듯 내게 붙어있던 꿈을 훑어내지. 지금쯤 한여름 정거장의 바닐라빛 황혼에는 오로라가 끼고, 또 다른 별의 쌍둥이 등대 앞은 얼음으로, 또 눈으로 덮였겠지. 브리엘은 겨울일 거야. 하얀 털실로 짠 모자를 쓴 나의 브리엘, 검은 부츠를 신고 눈밭을 가로질러 튀어나온 바위에 앉겠지.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는 거야. 내 하늘은 겨울처럼 청회색이야. 시원짭짤하고 차분해. 바람이 갈대밭을 스쳐가고 나는 이제 푸른 집에 다 왔어… 문 앞에 서 있는 네가 보여.

 

 

 

 

 

 

 

안녕, 아담.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

나는 지금 갈대 사이를 걷고 있어. 하늘은 파랗고 나는 여전히 졸려. 바깥에 닿으면 찬바람에 잠이 달아날까?

거기서 살아 나온다고 해서 세상이 특별히 다정하지 않을 거야.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난 것 같고 너는 아주 많이 변해 있어서, 변한 네가 어색하고 과거의 네가 불편할지도 몰라. 상처가 아물었는데도 내 마음은 아직도 덜렁거려, 준비가 안 되었다는 생각도 자꾸 들고. 안이나 밖이나 살아간다는 건 역시 골치 아픈 일인가 봐. 그래도, 용기 내보고 있어. 들어간 너와 나가는 내가 살아갈 세상이, 무뚝뚝해도, 다정하길 바라.

빨간 체크무늬 남방에 검은 바지를 입은 널 언젠가 다시 본다면 반가울 거 같아. 지울 수 없을 것처럼 슬프지 않고 일상을 잘 살아간다면 기쁠 거야.

잘 지내.

 

 

 

 

 

 

 

 

 

 

 

 

 




 

 

 

+) 모티브는 Johnny Cash의 Home of the blues, 아담 영의 프로젝트인 아울시티와 스카이 세일링. 3부에서 우주복 입은 남자가 부르는 노래는 아울시티의 Alligator Sky 입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미리 인사)

…31일이 끝인줄 알고 서두르느라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되는지 자꾸 손대네요…ㄱ- 그만해야지 (때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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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제한 문의입니다!!! (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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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질문들도 찾아봤는데 잘 이해가 안돼서요…

제가 99년생이라 내일부터 성인이 되는데요, 만 나이로 19세가 될 때까지는 11일 정도 남았습니다.

제가 여기 올릴 수 있는 날짜는 오늘까지인가요, 아니면 생일이 지나기 전까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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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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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붉지 않았다면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을 거야

붉은 것이 아스팔트 위에서 터진 흔적

지나가던 이들의 의아해하고, 징그러워하고, 안쓰러워하던

마음이 낙엽처럼 쌓인 것은 사실 떨어진 감의 흔적

 

이파리 사이로 태어났을 때부터 나는 매달렸지

푸르고 작던 시절에는 대단한 것이 될 줄 알았는데

까치가 내 왼쪽을 쪼아 먹은 후엔

아무도 나를 구해주지 않았어

단단한 살이 물렁하게 농익도록 햇빛을 받으며 대롱거리다

삶은 그렇게 끝났네, 아 내 위로 눈물 한 방울 떨군 나무여

 

얇은 껍질이 터지고 물렁한 살을 잔뜩 쏟아내며

환경미화원이 올 때까지 길 위에 붉은색을 물들인

감의 죽음, 네가 슬퍼하던 것이 떨어진 감이라면

그래도 나의 죽음을 슬퍼해 줄 테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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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남겨진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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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팡이 핀 식빵도 마음이 간지러울까

감정은 냄비처럼 끓어오르고

꽃처럼 피어나는데

빵에 발린 잼처럼 그 어떤 것도 날아가지 못하고

나와 함께 굳어가고 있어

 

말라붙은 나, 잠, 두려움

먼지 쌓인 기억, 거울을 들여다보면 슬퍼지는

괜시리 외로워서 우울한 시간

 

건조한 표면을 불려보려고 책장 위를 달리고

음악을 뒤집어쓰면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내게 입혀봐

때수건으로 밀듯 키보드를 두드리고

그래도 빨개지기만 하는

 

화석이 된 나, 꿈, 애가 탄

먼지 낀 기억, 거울을 들여다보면 슬퍼지는

2시 반도 아닌데

괜시리 외로워서 우울한 시간

 

하루종일

반쯤 잠이 든 채

머릿속에서 깜빡

깜빡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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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헤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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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좋아해줘, 내가 행복하니까. 내 이름을 싫어해줘, 그건 해로우니까.
누가 나란 이에게 햄 샌드위치와 물을 주고
그의 이름은 헤이어, 그는 하얀 언덕에 산다고,
나를 웃게 하고 나를 울게 하고
내게 흰 빵을 주고, 검은 빵을 두드려 내쫓아 줘.

 

빨간 왕이 잠들어있는 트위들의 숲에서, 나는 아무도를 찾아서 언덕을 내달렸어.
소용 없어, 소용 없지. 나는 기막히게 빠르거든. 차라리 바람과 악수를 하는 게 낫지.
사자가 유니콘을 때리자 천둥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지.
보나마나 적에게 쫓기고 있을 거야. 내 곁에는 적들이 우글우글 하거든.

 

아무도를 보았니? 오늘 발견했지. 실물 크기인데다가 실물보다 훨씬 진짜 같아.
전설 속에 나오는 괴물인 줄만 알았는데 살아 있었네!
이야기책 속의 괴물인 줄 알았다고 하얀 왕은 말했지.
네가 나를 믿어 주면 나도 너를 믿어 줄게.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하자, 아무도가 말했어.

 

나도 그렇게 눈이 밝으면 좋겠다, 아무도를 볼 수 없다니!
이 햇빛 아래서 나는 실존하는 것들만 볼 순 없는 걸.
왕이 보낸 전령들은 발이 뒤엉켜서 말을 탄 병사들과 우당탕 쿵쾅 넘어졌어.
덤프티는 쨍그랑 깨지고, 나는 옆에 웅크리고 그렇게 잠시 있었어.

 

두 팔을 부채처럼 벌리고, 장어인듯 꿈틀대며 촐랑촐랑 껑충대는 전령은 기분이 좋다는 뜻이래.
나는 기분이 나빠서 하얀 여왕을 제치고
온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다리 쪽이 전망은 좋다고 소리를 질렀어.
아무도가 나보다 빠르다면 여기에 이미 도착했겠지?
신난 바람처럼 들판을 달리며 욕을 하며 꿈결에 대고 흥얼거렸어.

 —–
+)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시에도 팬픽같은 게 있던가, 암튼 그런 거. 책과 읽어보면 심각한 데자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으어 이거 엔터 왜않돼 흫헣ㅠ 본문만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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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of the 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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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를 돌아, 조용한 고통에

빈자리를 통과하는 눈물방울 사이를 지나

푸른 집으로 이어지는 갈대밭에서

너는 헤매다 이곳으로 왔고

해묵은 회색 미로에서

나는 이제 나가는 중이었어.

너는 부엉이 인형을 어깨 위에 앉히고

인형은 재잘거리며 브리엘, 브리엘, 했어.

아담, 아담, 브리엘, 브리엘.

닥쳐, 노아. 네가 말했어

너는 브리엘을 떠나 왔다고 했어.

너의 고향, 연인, 가족과 마음의 일부.

곁에 있었어야 했어, 네가 되뇌었어.

내가 브리엘을 버렸단 말이야.

너는 커다란 허공을 안고

정처없이 방황하다 푸른 집을 찾아왔어.

여기선 쉴 수 있을까?

너는 잠들어 일어나지 않을 사람처럼 말했고

나는 먼지 쌓인 낡은 방과 창가의 침대와 내가 헤매던 안개 낀 미로를 생각하다가

그곳에서도 결국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어.

낡은 거미줄 흔들리던 방 침대 위에 누운 오래된 몸뚱이.

영영 있다간 그렇게 된다고 말해 주었어.

하지만 쉬기만 한다면, 일어나기 전에 잠깐 머무른다면야.

나는 말했어. 괜찮을 거야.

깔끔하게 칠해진 하얀 벽과 파란 차양 아래서 오래 잠들어도 괜찮을 거라고.

너는 입술을 깨물었고

건너도 푸르단 것을 알까, 먼 곳을 향해 중얼였어.

 

네가 타고 온 배를 떠올렸어.

검푸르고 광활한 바다와 반딧불이들을 지나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아담을 생각했어.

내 섬은 가라앉았어, 너는 말했지.

선원들은 떠나 버리고, 나는 홀로 남았어.

남들 보기에

너는 말하는 부엉이와 세상을 여행하는 쾌활한 청년이었어.

네가 그 말을 할 때도 쾌활함을 잃지 않았어.

네가 슬퍼한 건 브리엘 뿐이었어.

청록색 원피스를 입고 나무 사이를 거닐던 너의 브리엘.

파도치는 잎사귀 소리를 들으며 둘은 손을 잡고

수평선 건너를 바라보았어.

저 너머엔 뭐가 있을까? 브리엘이 물었어.

건너도 지금처럼 푸를까?

너는 손을 꽉 잡았고

그게 마지막이었어, 하고 말했어.

브리엘은 파랬어, 노아가 재잘거렸어.

브리엘은 파란 걸 좋아했어.

숲길을 함께 걷고, 저 아래 파란 바다와

문 앞에 걸린 그물, 고깃배, 다정하고 소박한 사람들

떠날 수밖에 없었던 너를 생각했어.

내가 떠나온 것을 생각했어.

아스팔트 깔린 한 칸짜리 길

옆의 초록들과, 그늘을 드리워주던 잎이 넓은 나무들

주차된 차, 빙글 빙글 크게 도는 모퉁이

놀이터, 학교, 책가방을 메고 걸어갔던 날들과

아직 발을 끌고 다니던 시절에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을 느릿느릿 걸어가던 나의, 지금보다 더 작은 손과 발을 생각했어.

나의 대부분을 쏟아낸 나와 짜증내던 사람들과

끝없이 달려야 했던, 비틀거림으로써 더 나빠져 가던 날들을 지나

안쪽부터 무너져가는 나를 끌고

아무도 모르는 피를 흘리며 비틀 비틀 걸어서 이곳으로 왔던 것을 생각했어.

앞으로 네가 겪을 일을 상상했어,

푸른 집 안의, 무거운 잠에 감싸인 나와

나머지 켠에서 꿈꾸듯 살아가던 나와

거미줄 낀 회색 미로에서 헤매이던 날

혼자 빙글 빙글 빙글 돌아간 동그라미를 생각했어.

내가 얼마나 말할 수 있을지도 헤아려 보았어.

 

낮의 기사가 다녀가고, 어두운 망토가 내려앉은 위에

반딧불이가 반짝이던 밤, 너는 푸른 집에 들어갔고

나는 너를 바라보았어.

검푸른 우주의 수평선을 넘겨보며

네 마음을 비춰주는 푸른 지붕의 거울에

두 팔 벌려 안아주는 품이 있기를 바랐어.

먼지 낀 길을 빙 돌아 다시 나오는 날

졸음은 덜 깨도 햇빛이 좋기를

갈대밭 너머로 죽 걸어서 콘크리트 정글로 돌아가면

지구만큼 돌아간 세상이 무뚝뚝해도 다정하길 바랐어.

 

 

 


 

 

+) 동명의 노래 커버를 듣고, Home of the blues→blues(블루스/우울)의 집→blue(푸른/우울한)의 집→푸른 집 이라는 의식의 흐름.

…여기에 올려놓은 채로 너무 많이 손을 대서 한 번만 더 손대면 내 손모가지를 잘라버려야겠다. 고만 수정훼 미친노마 올리기 전에 하던가(((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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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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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퀴를 가져다

말라버린 단어들을 모으고 있어

커다랗게 성을 쌓고

다시는 나오지 않고 싶다

 

움직이길 요구하는 세상이 있어

해일처럼 밀려와 말하기를 요구하고

내 세계를 쓸어가고

또 밀려와서 나를 쓸어내

 

내 것이 아닌 것을 나는 가득 머금고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견디다가

폭풍우라도 몰아치는 날엔 죽는만큼 살아나

쓸려가는 빈곤한 모래사장은

 

하고싶은 말이 있으면서도 없어

내가 원하는 말과

내가 요구하는 말과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서로 부딪쳐

 

발이 꼬여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승선은 사백미터 남았어

일생에서 가장 과묵한

원치 않는 사람이 되고 있어

 

앵무새처럼 떠들고

원숭이처럼 꺅꺅대고

돌고래처럼 끽끽댈 수 없어서

 

잔뜩 긴장되어 굳은 무대 위의 어깨로

도와달라는 말만 수없이 중얼이고 있다

마이크는 덧없이 지지직거려

생각하는 동상처럼 굳어가는 몸이

 

굳어버린 입처럼

얼어버린 뇌처럼

덧없이 중얼이는 강박증의 종처럼

 

굳어버린 몸 속에

아직 꿈꾸는 내가 있다

환상의 장미를 끌어다 꽃침대를 만들고

잠자는 숲 속의 공주님인 듯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를 뉘어

말하지 못하는 너를 나는 미워하고 사랑해서

절망하는 세상이 너마저 삼키기 전에

너는 누이고 나는 두 팔을 벌리고

 

부서진 별처럼 흩어져서

하고싶은 말을 늘어놔

너는 살아야 돼

두려움은 파도처럼 밀려와

 

네가 다시 일어나면

부디 나를

깨워

 

 

 

 


+) 마음이 복잡하면 잠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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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 (퇴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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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어딘가에는 아이가 묻혀 있대

눈물을 죽어도 내지 못하던 작은 아이

남들 걸을 때 걷고, 걸을 때 뛰다가,

어느 날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고

누구보다도 잘해야 해서

아무것도 괜찮지 않았대

 

요정님, 사람들은 그 애를 그리 불렀어

뭐든지 빨리 배우고 뭐든지 잘 하고

요정을 보고 동화 속 이야기를 믿고

그래서 마법같은 구석이 생겼던 걸까

 

괴롭다고 하면 안 돼, 너는 다 자랐으니까

괴로워서도 안 돼, 이상한 일이잖니?

화를 내서도 안 돼, 너는 다 자랐으니까

그게 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한다고

 

그 애는 그냥 12살이었어

물론 누가 봐도 거대해 보이겠지

어느 날 그 애는 별안간 발걸음을 멈추고

흙이 무너지듯 내려앉아서는 땅바닥에 고갤 묻고

사람들이 와서 흔들 때도 일어나지 않아서

괜찮을 거라고 하던 이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어

 

그들은 아이를 흔들고 때리고 윽박지르고

병원에 데려가고 애원하고 소리를 지르며 호소하고

 

어느 날 그 애는 일어나서 머리를 풀고

눈물로 얼룩진 볼 그대로 걷고 걷고 걸었대

아무도 듣지 못하는 노래를 부르며

 

가자, 슬픈 아이야

내 손을 꼭 잡아

황야를 지나 물을 건너

같이 달리자

 

찔렸던 덤불을 지나고

미처 울지 못했던 곳을 지나

죽어 묻힌 너의 무덤 한자락으로 가서

 

차마 흘리지 못한 눈물로

먼지쌓인 시간을 놓아주자

 

흘러 흘러 지나온 길을 밟아

우리가 출발한 곳으로 향하게

 

그 다음엔 나와 함께 손을 잡고

흘러간 강둑을 따라 달리며 춤을 추자

 

걸었던 길에 다다를 쯤에는

네 가슴이 뛰어 손을 놓치고 말 거야

 

그렇게 헤어질 적에 가르쳐 주길

오솔길 너머 저 건너 숲에는

네가 아직 못 걸은 길이 있단다

 

가거라, 사람의 아이야

내 손을 놓아, 빈 손으로

요정들 손을 꼭 잡고

숲을 지나, 너 가고픈 바대로

 

너의 시간으로, 돌아가자

 

 

 

 

——–

화자가 둘인 걸 의도했지만 아무래도 망한 듯. 그리고 요건 고친 것도 아니고 안 고친 것도 아니여. 아예 뜯어고쳐 버린듯.

인정하기 싫지만 기대받는 아이 클리셰 따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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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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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 깔린 길에 어린 이가 많았어

길가에는 민들레와 함께 피어 있고

아파트 놀이터 회전무대를 따라 피고

화단에도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어

 

파란 모자를 쓴 작은 요정 하나가

장난감 자동차처럼 벽돌길을 달리다

흐드러진 초록 사이를 누비던 저 나이대의 나처럼

화단 속에 보라색 발자국을 남겨 놨을까

 

하교길 문방구에서 사탕을 하나씩 물고

책가방 메고 웃으며 지나치던 어린 나이

화단에서 몰래 꽃을 꺾어 쥐고는

문득 길가에서도 몇개 꺾어 가곤 했어

 

그때에 나는 그네를 너무 좋아해서

놀이터에 가면 그네 다리에 핀 제비꽃을 가져 왔었어

한 번은 달맞이꽃이 저 아래 동네로 내려가

엄마와 그네를 타며 놀다 너무 시끄러워서 혼이 났고

 

아파트 정문에 피어 있던 나팔꽃이나

가로수에 달린 흰분홍 팝콘이 버찌가 되기 전에

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한가득 쥐어다가

집에 와서 내밀면, 엄마가 유리 물병에 꽂아 주었어

 



 

 

+) 왜 뒤로 갈수록 길어지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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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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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을 여니까 집이 텅 비어 있더라.
계단을 올라가는데 어째 발소리만 나더라니.
아니, 아파트에 들어올 때부터 너무나 조용했는데,

 

우리 동네가 텅 빈 기분이었어.
오는 내내 차 안에서, 조금은 불안하고 두려웠었어.
고속도로와 국도를 구분할 수 없이 차는 달렸어.
어딘가에서 내가 그 차를 탈 때, 창가 자리를 고집했겠지?
항상 나는 길치야, 거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더라.
하지만 기억하기로, 바닷가에 있던 것 같아.

 

나, 어디에서 뭔가를 잃어버렸어.
집에 가면 볼 수 있다는 걸 알았지.
엄마가 잔소리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일상적인 잃음이 아닌 것 같아.

 

내가 비었을까
잃었을까
왜 그랬을까?

 

사실 많이 불안해.
괜찮다고 해 줬으면 좋겠어.
나는 그 말을 믿고, 이 문을 열면
텅 빔의 마법은 깨지고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나 왔어, 엄마."

———————————–
…항상 기억하는 건 공허뿐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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