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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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백기를 꽂았단다.

너덜해진 제 집게발을 뜯어내 그 백사장 위에 꽂았단다.

“어쩐지 거품이 잘게 일더라니.”

가리비는, 정확히 말해 앙다문 그 입술 쪽이 부서진 가리비는 누군가의 거품으로 뒤덮인 해안가를 경멸스럽게 쳐다봤다.

누군가의 거품이 보글보글하게 일어나는 이 해안가에서 우리는 얼마나 치열했던가.

다시 그 울렁한 심해로, 저 수평선 너머로 돌아가고자 우리는 참 무던히도 노력했었다.

“이젠 그만할 땐가 보이.”

한 때는 모래알 속 진주를 품었던 내가 갯벌의 진흙만 진득히 품은지도 어연 십년이오.

게 군은 또 어떻소. 결국 하나 남은 제 집게발마저 떼어냈지 않소.

앙다문 그 입술 사이 틈으로 지난 고된 시간이 해안가의 모래 마냥 우수수 흘러나왔다.

“게다가 게 군도 죽었으니, 이젠 정말 자네뿐인데 자네는 저 바다가 고향도 아닌 몸이고..”

모시조개가 말을 덧 붙였다.

황금빛 모래알 태반이 그들의 시체 조각이라.

제 입안에 제 식솔, 친구들의 조각 한 움큼 머금고 사는 것이 죽기보다 싫다던 그 모시조개였다. “모시조개! 거 말이 좀 심한 거 아니요?” 불가사리 쪽에서 불만을 표했다.

비단조개는 그래도 먼 친척이랍시고 모시조개를 감쌌다.

“그래요, 저는 어느 여름 이곳에 버려진 쓰레기입니다. 운 좋게도 세상물살 타고 고향도 아닌 저 바다 경험했다가 금세 그 세상물살에 내쳐진 놈이 접니다.

태초부터 제 몸에 박혀있는 이 각인들만 보아도 제 출신성명을 아주 잘 알려주지 않습니까?”

가시 돋은 내 말에 폭죽이 파스스 제 몸을 떨었다.

이미 저 파도에 다 쓸려갔다 생각한 재들이 그의 발밑으로 떨어졌다.

모시조개는 조개들 그 종특 마냥 입을 꾹 다물고 회피하려 들었다.

“자, 자 다들 왜 그러십니까? 오늘은 게 군을 위해 한마음으로 다 같이 기도해야지요.”

미역이 해안가의 파란 열기를 잠재우려 끼어들었다.

자신의 흐물한 몸은 언제 한번 물살만 잘 탄다면 다른 이들과 달리 쉽게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 그다웠다.

혹자는 그를 언제든 배신할 준비가 되어있는 기회주의자라 비난했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여기 있는 누구든 물살이 남들이 아닌 ‘저’를 데려가 주길, 모두가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었다.

“고향이 그렇게도 중요하십니까? 입이 있으면 말씀해보시지요. 피차 내쳐진 것들에 불과할 뿐인데 그 것이 그렇게도 불만이십니까?”

나는 그저 돌아가고 싶었다. 그것은 이곳에 있는 모두가 그랬다.

태어나 단 한 번도 그 수평선, 그 심해의 물을 마셔보지 못한 군부도 본래 그 곳 태생이라 주장하던 모시조개도.

“왜? 모시조개가 틀린 말을 했나? 태생부터가 다른데 어찌 내가, 우리가 믿을 수 있겠어.

나는 저 과자 봉다리, 제 몸속에 갈매기 밥을 양껏 담고 있었던 그런 천박한 밥그릇이 우리를 바다로 이끌겠다면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네.”

떡조개가 모시조개를 옹호했다. 모시조개는 가리비를 바라봤다.

조개의 큰 어른으로서 한마디 하셔야지요.

“너무들 하네. 새우깡이 그동안 얼마나 고군분투하였는지 다 뻔히 알면서 조개란 족속들이 딱 그렇다니까. 지들끼리만 똘똘 뭉쳐서 어디 당신들이 미역 욕할 처지나 되오?”

불가사리가 반쯤 말라버린 사지로 조개들에게 삿대질을 했다.

“여기서 내 예기가 왜 나오는 겁니까? 제 욕을 하다니요?”

“저 기회주의자, 줏대 없고 흐물거리는 미역만도 못한 조개새끼들.”

“아니? 자네야말로 말이 정말 심하구먼!”

“뭐? 기회주의자? 줏대 없어?”

모두가 한마디 하지 못해 안달이었다.

지난 십년 간, 나는 너희들에게 불만 하나 없었는 줄 아느냐.

여태껏 바다행이 불발된 것은 너의 탓이다.

싸움이 진행될수록 폭죽의 발밑엔 재들이 수북이 쌓였다.

혹시라도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 한발 떨어져 벌벌 떨기만 하다 보니 재들이 그 자리에 쌓이고 쌓인 모양이었다.

“다 부질없는 짓이거늘.”

가리비가 혀를 끌끌 찼다.

애초에 우리는 바다로 가려고 뭉친 것이 아니었어. 암.

나는 방금 그가 중요한 말을 했다고 생각했다.

천만다행으로, 나를 제외하곤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못했다.

모두가 그의 말을 들었더라면 모두가 그것을 깨달았더라면 지금 이 싸움도 다 부질 없는 것이 되어버리겠지.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정말 휩쓸려버리고 말거야.

천만다행으로, 가리비는 그 말을 하곤 다시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의 갈라진 입술 끝으로도 모래알이 다시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조개 놈들의 종특 마냥 입을 다뭄으로서 현실을 회피하고자 하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가 다음날 아침 백기를 꽂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를 어쩌면 좋소.”

집게발이 없어 제 몸뚱이로 대신한 모양이었다.

그 몸뚱이, 그 백기 주변에 그동안 그가 머금었던 시체 조각들이 무더기로 쌓여있었다.

“밤새 토해내다, 토해내다 그렇게 죽었는감?”

아가미가 떨어져나간 멸치가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이제 곧 새벽 파도가 우리를 덮치면 그도 모시조개나 떡조개, 비단 조개의 입안으로 머금어 질 터.

조개들은 큰 어른을 제 입안에 담지 않으려 입을 앙다물었다.

허나 그것이 제 뜻대로 될 일이었으면 여기까지 내쳐지지도 않았겠지.

그저 속절없이 파도치면 입술을 벌려 제 혈육과 친구들을 맞이하는 것, 그것은 그들에겐 또 다른 물살이었다.

어제만 해도 기고만장하던 그 얼굴이 사색이 되어 벌벌 떨었다.

모시조개니 떡조개니 비단조개니 한풀 꺾여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들은 여전히 과반수의 조개였고 태어나기를 저 바다에서 태어났다지만 그것이 중하지 않다는 걸 그 가리비가 몸소 보여주고 떠났지 않았는가.

모두에게 공평한 공포가 서로의 거리를 좁혀주었다.

연이은 전우들의 패배가 되려 남겨진 이들을 끈끈하게 만들어 주었다.

“다들 정신 차리시지요. 우리 다시 돌아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게 군, 가리비 어른, 맘 편히 눈 감을 수 있게 해드려야지요.”

자네 말이 다 옳소, 불가사리와 미역이 동조했다.

모시조개와 떡조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비단 조개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내 평생 이 바위에 붙어먹고 살았소. 나도 온 몸으로 짠 내 한 번 느껴보고 죽고 싶네만.”

군부가 물컹한 제 몸을 꿀렁거리며 말했다.

폭죽은 이제 반 토막이 되어버린 제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다.

“거기 조개들은 입 좀 열어보시오. 자네들이 그렇게 찬양하던 바다, 안 돌아갈 것이요?”

불가사리가 펄펄 날았다. 입을 꾹 다무는 조개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이 상황이 그에게 희열을 안겨주는 듯 했다.

“돌아가고 싶겠지요. 그런데 뭐 별 수 있습니까? 진즉에 돌아가도 수 백 번 돌아갈 동안 못 돌아가고 이곳에 정체되어있다는 것은 별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까. 또다시 두 손 두발 서로 붙잡아들고 물살에 뛰어들 요량이라면 저는 빠지겠습니다. 어쨌거나 우리, 언제든 그 손 놓을 준비만 되어있고 놓아줄 준비는 되어있지 않는 듯 하니까요.”

해파리가 끼어들었다.

신참이랍시고 우리들 눈치를 보느라 여태껏 숨소리 하나 쉬이 내지 못했던 해파리였다. 해파리는 우리 중 가장 오랜 시간을 저 바다에서 보냈고 가장 깊고 먼 곳에서 왔다 했다.

워낙 말수가 적었고 투명한 제 몸마따나 그 마음 투명하게 보여주지 않아 어딘가 의뭉스럽다 말들이 많았다.

그래, 제일루 깊은 곳에서 왔다 이거지? 우리는 별 거 아니라 이거지?

특히 미역은 해파리를 유난스럽게도 싫어했다.

그는 매사 묵묵히 제 할 일을 했을 뿐이겄만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려 두 눈에 쌍심지를 켰다.

그러니 당연히,

“아니, 해파리 자네가 뭘 안다고 나서는 가? 본래 신참은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장님 3년이랬어. 자네가 막 나서고 그러는 거 다 우리를 무시해서가 아닌가?”

미역은 이 때다 하며 우악스러운 논리로 해파리를 후려쳤다.

“그러는 미역 자네는 뭐 대단한 고참이라도 되는 갑네. 3년 전, 여름 태풍 몰아치는 밤에 저 혼자 이 곳을 빠져 나가려 우리 발 묶어둔 거 우리가 모를 줄 알았나?”

“그거야 그 때는 성게가 나를 꾀니까 나도 어쩔 수 없이 넘어간 것이고..”

“어절씨구? 제아무리 죽은 성게는 말 못한다지만 그러는 거 아니요. 내가 그 때 자네가 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아이고, 떡조개요 우리 그런 일 다 저 짝에 묻어두기로 안했소? 미역도 그 때는 사정이 있었다 안하요.”

갑작스러운 떡조개의 역풍에 미역이 휘청거리고 페트병이 이들을 말렸다.

그러나 떡조개는 그칠 줄 모르고,

“나 같으면 저 배신자 놈을 용서는 무슨, 그냥 확..”

“이때까지 조용히 있다가 뭐 건덕지 생기니까 입 여는 것 좀 보소. 내가 말했지? 조개나 미역이나.”

미역은 해파리를, 떡조개는 미역을, 불가사리는 떡조개를, 모두가 서로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방금 전 만해도 전우의 시체 앞에 끈끈한 우정을 다짐했지 않나.

하루도 채 가지 못하고 분열하는 조직의 가벼움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우리 중 누구도 다시 돌아갈 순 없을 겁니다.”

해파리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그렇담 내일은 자네 차례겠구먼, 나는 잠시 해파리 쪽으로 몸을 돌려 조의를 표했다.

그는 나를 향해 고개를 까딱했다.

 

해파리의 촉수가 바람에 휘날리는 아침이었다.

그의 백기는 바닷바람에 정처 없이 휘날렸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데..”

페트병이 그 촉수를 쓰나 내리며 말했다.

“글쎄요.”

멸치가 해파리 대신 답했다.

“바다로 가야지. 우리는 바다로 가야지.”

미역은 바다로 가자라는 말만 계속해서 반복했다.

드디어 나사가 풀리고 말았군, 떡조개는 더 이상 그를 물고 끌어내리지 않았다.

문득 나는 나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곧 나의 차례가 되리라, 이 비닐 은박지를 깃발 삼아 저 해변가에 꽂을 날이 머지않았음을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다들 준비하시지요. 우리는 바다로 갈 겁니다.”

나는 남은 이들을 한번 둘러보며 말했다.

불가사리와 미역, 페트병, 폭죽, 군부는 비장함을 비췄다.

이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음을 그들도 깨달았기 때문이라, 이 곳 해안가가 우리에겐 최후의 전선이었다.

“살펴 가시지요. 저는 이곳에 머물겠습니다.”

멸치는 지친 자신의 몸을 진흙 속에 파묻으며 자신은 여기까지라 말했다.

조개들은 자기네들끼리 웅성거렸다.

마침내 길고긴 회의가 끝나고, 떡조개가 자기네들은 가지 않겠다 말을 꺼냈다.

비단조개가 그리되지만 않았어도 그들은 정말 끝까지 고고한 척 이 더러운 해변가를 거닐 수 있었겠지.

그러나 비단조개가 갑작스레 원을 그리며 경련을 일으킨 것은,

경련을 일으키다 온갖 것들을 토해내고 죽어버린 것은

파도가 우리 모두를 저 심해로 데려다 준대도 막지 못할 순간의 일이었다.

 

“죽었네. 죽었구먼.”

모시조개는 멍하니 비단조개의 시체를 바라보다 그가 토해놓은 시체 조각을 꾸역꾸역 입에 담았다.

미친놈, 떡조개는 치밀어 오르는 토기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듯 했다.

나는 떡조개에게 모시조개를 챙겨 따라 오라했다.

그리 빨리 가지는 않을 테니 천천히 따라 오라했다.

떡조개가 애절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누구 하나 남아 저 둘을 챙겨주겠습니까?

모두가 조개들 그 종특 마냥 침묵했다.

“모시조개는 버리고, 얼른 가는 것이 좋을 것이요.”

멸치가 진흙에 파묻힌 채 웅얼댔다.

떡조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벌벌댔다.

“나 좀, 나 좀, 도와주시오. 응? 하루만 미룹시다. 응? 하루 일찍 간다 해서 저 바다가 꽃길 되는 것은 아니지 않소.”

이미 미역은 뒤돌아 앞장 선 지 오래였다.

다들 그를 안타깝게는 쳐다보았지만 쉽사리 도와주려 하지는 않았다.

도와주려 하지 않았고 그를 위해 거사를 미루려고도 하지 않았다.

“자네도 알잖소, 거사라는 것이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결국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란 걸.”

불가사리가 미안하다며 떡조개를 달랬다.

“내가, 내가, 다 미안하오. 새우깡! 내 자네만 믿고 따를 터이니 좀 멈춰주시오. 응?”

“저도 마음 같아선 멈추고 싶습니다만..제가 독단적으로 거사를 멈춘다면 이 분들은 저를 어찌 믿고 따를 것이며 저는 어찌 이 분들을 바다로 이끌 수 있겠습니까?”

떡조개가 내 발 밑에 엎드렸다.

한 손은 모시조개를 붙잡은 채 이마는 바닥에 처박은 채 나에게 설설 기었다.

“얼른 안 오시오? 다들 갈 길이 멀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먹은 모양이네!”

미역이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떡조개의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어디 자네들이 저 바다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소? 응? 게 군이나 가리비 어른이나 해파리나 비단 조개가 왜 죽었는지 다들 알지 않소. 우리는 절대 못 돌아가오. 우리는 이미 저 바다에 버려진 몸들이 아니오. 자네들 몸뚱이를 한번씩 보고 그런 말들 하시오.

응? 부서지고, 긁히고, 떨어져나가고, 파도가 내칠 때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니. 애초에 우린 바다로 돌아가려 뭉친 것이 아니었지. 그저 내쳐진 것들끼리 조용히 혈육과 친구들의 시체나 퍼먹으며 살아갔어야 했는데. 저 바다는 희망과 꿈으로만 남겨둔다 해도 마냥 잔인하기만 한 곳이오. 당신들이 경험한 바다는 겨우 일각에 불과 하다고!”

나는 불안스레 나의 전우들을 둘러봤다.

게, 가리비, 해파리, 비단조개가 죽음으로서 숨겼던 진실이 나의 전우들에게 찾아온 것이다.

내가 아는 그들은 그런 진실을 감당하기엔 너무 여렸고 어리석었고 희망적이었다.

이대로라면 남은 것은 휩쓸리는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닐 터.

나의 전우들과 나는 물살에 또다시 휩쓸리게 될 것이다.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는 죽어서도 이 물살을 거스를 수 없을 것이다. 해안의 모래가 되어버린 그들처럼.

“개소리 하네! 우리가 바다로 가지 못한 것은 시기가 안 좋았기 때문이오.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오. 운이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이오. 이 삼박자가 맞으면 앉은뱅이 불구라 해서 저 바다로 못갈 것이 뭐 있겠소.”

미역이 콧방귀를 뀌고 군부가 소리쳤다. 페트병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불가사리는 떡조개를 향해 욕을 퍼부었다.

“아예 죽어버리라고 고사를 지내지 그래?”

폭죽마저 그를 향해 재를 뱉어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들은 떡조개의 말에 폭주하듯 앞으로 나아갔다.

잔파도가 여러 번 그들을 휩쓸었지만 굴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곳에 백기를 꽂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나는 힘찬 발걸음의 그들을 느릿하게 따라가다가 멈춰 섰다.

그들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져가고 벌건 색의 노을이 온 바다를 채웠다.

“새우깡! 왜 이리 느리시오?”

불가사리의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그들의 뒷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물이 뚝뚝 흘러내리는 두 팔을 머리 위로 들어 그들을 향해 흔들었다.

저 수평선 너머부터 시작된 파도가 그들을 덮치고 덮치고 덮치고 나에게로 올 때 까지.

마침내 파도가 나의 목전에서 넘실댈 때, 나는 뒤를 돌아 해안가를 향해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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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까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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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까 말까 그 고민을 되게 많이 하는데

결국은 전 안하게 되더라고요

이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릴까 말까

댓글을 쓸까 말까 한참 고민했다가

드디어 댓글도 쓰고 자유게시판에 글도 올렸습니다!

할까 말까 할 때는 새벽 시간에 하는 게 좋은 것 같애요.

새벽 감성이라는 놈이 생각보다 효과가 좋아서 이유없는 자신감을 주더라고요

이 글을 시작으로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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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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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가난하기에 불쌍한 사람이다.

왜 소년은 태어남과 동시에 발작하듯 울었는가.

그의 태생적인 불행함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소년의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의 수많은 형제들도 알려주지 않은, 어차피 살다가 언젠가는 알게 될 가난함. 가난함은 생각보다 여러 방면에서 그를 불행하게 그래서 불쌍하게 만들었다.

“이 놈의 집구석, 나는 당신들처럼 안 살라요.”

그의 수많은 형제들 중 하나가 양철 솥을 발로 차며 소리쳤다.

아무리 이 집구석에 건질 것이라고는 양철 솥뿐이라지만 어머니는 아들을 지나쳐 그 솥을 껴안고는 어여 꺼지라고 울부짖었다.

그리하여 녹이 슬어 삐그덕 거리는 대문을 열고 나간 형제는 제 말대로 이 놈의 집구석으로 다시 돌아오는 일이 없었고 해가 바뀌면 하나 둘 다들 먼저 간 형제 따라 이 집구석을 나가 그 역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벽 한 쪽은 이미 허물어진지 오래였고 쥐들마저 위험하다 노다니지 않을 지붕은 비가 올적마다 뚝뚝 눈물을 흘렸다. 비를 피하자고 옹기종기 모여 있자면 어머니는 남아있는 머리들을 하나하나 헤아렸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이곳에서 소년은 행복할 수 없었다.

“이제 갈랍니다.”

그 해도 어김없이 소년의 수많은 형제들 중 하나가 대문을 열었다.

이제 머리는 셋, 다음 해는 소년의 차례였다.

“형도 갈 것이여?” 한참 뒤에나 차례가 돌아올 고것이 애처롭게 소년에게 매달렸다.

“니는 평생 거지새끼라 불리는 것이 좋아?”

다음해, 턱수염만 덜렁 삐죽하게 나있는 소년은 “돈 벌러 갑니다.”하고는 대문을 열었다.

소년은 나지막히 이놈의 집구석 하고 중얼거렸다. 미역국 한번 먹이지 못한 채 자식을 내보내면서도 이 놈의 집구석은 손에 쥐어 주는 것 또한 하나 없었다.

달동네 중에서도 가장 꼭대기에 있어 내려가는데도 한참이었다.

가파른 내리막을 남의 집 처마 부여잡고 가까스로 내려가는데, 눈이 밟히는 소리가 귀에 자그락자그락 거렸다. 떠나는 사람은 둘도 없이 후련해 보였겄만 하필 눈이 와서, 눈이 자꾸 밟히는 바람에 소년은 한동안 걸을 수 없었다. 양철 솥을 발로 찼던 형제가 무릎을 꿇었던 그 곳에서, 조용히 인사 없이 떠났던 형제가 뒤돌아 봤던 그 곳에서 삐죽한 턱수염 한-두 올에 이젠 사내라 불리는 소년들이 발걸음을 멈췄던 그 곳에서 소년은 한동안 어제까지의 불행함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했다.

가난함이 불러온 여러 방면의 불행과 그것이 또다시 불러온 불쌍함의 연쇄 고리.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던 그 기억이라는 것이 다시금 소년을 움직이게 했다. 다시는 돌아보지도 돌아오지도 않으리라. 가난한 소년들은 그렇게 자신의 고향을 떠나갔다.
달동네 아래, 세상에서 소년은 어느덧 스물, 사내가 되어갔다.

 

사내를 써주겠다 하는 곳은 많았다.

세상 물정은 모르지만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젊음은 꽤 쓸 만 했다.

막노동이니 배달이니 미숙함은 싼 값으로 채우고 딱 죽지 않을 정도까지 뛰어다녔다.

돈이 뭐길래 이렇게 까지 하냐? 누군가 물었다.

스물쯤의 사내는 돈이 모든 것이라 했다.

판잣집, 그 지붕에서 물이 샐 적부터 뼈에 새겨왔다.

스물은 인생의 진리를 깨우치기에, 그 진리를 누군가에게 전하기에도 너무 이른 나이지만 사내는 많은 것을 이른 나이에 깨우칠 수 밖 에 없었다.

가난함이 불러 일으켰던 연쇄 고리, 그 굴레가 그에겐 고행의 시간이자 수행이었던 것이다.

돈이 세상의 전부다. 그 굴레가 선물해준 진리 앞에 사내는 많은 것들이 당연해져갔다.

사내는 내리 쬐는 여름에도 그늘 한 점 없이 뻘뻘 거렸다.

곱상한 도련님들 제 머릿속만큼이나 텅텅 빈 책가방 메고 다닐 적에도 한푼 두푼에 아등바등 거렸다. 그것이 사내가 생각하는 당연한 자신의 모습이었다.

매미 붙은 고목의 그늘 아래 내세울 것은 허여멀건 얼굴뿐인 계집애가 제 옆자리를 두들길 적에도 아랑곳 않았다. 되려 그녀를 한심스럽게 쳐다봤다.제 뜻대로 되지 않자 한바탕 얼굴 붉히는 계집애 말이,

“너는 뭐가 그리 잘났냐? 기껏해야 너는 짱깨고 잡부고 나는 함바집 딸이고 그런데 너는 왜 혼자 고고한 척이냐 말이다.”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니 억지스레 사내의 품에 안기려 하는 꼴이 사내에겐 너무나 당연하지 못했다.

조용히 돌아가라 경고하고는 사내는 다시 여름 아래를 뛰어다녔다.

그러나 그 날 이후로도 끈질기게 조르는 계집애는 밥 좀 먹자, 커피 좀 마시자, 술은 어떠냐. 보는 사람이 다 징할 정도로 쫓아다녔다.

그 허여멀건 얼굴이 하루는 벌겋게 하루는 시퍼렇게 사내의 말 따라 시시각각 변해 가는데, 그러던 어느 하루는 얼굴 뿐 만 아니라 흰자까지 벌게진 채로, “나 이제 시집간다.”하는 것이었다. 사내는 그 동안의 만행에 진즉 그리 할 것을 왜 귀찮게 했냐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 계집애, 농협 아들에게 시집간다더라 하는 말에 그간의 정도 있고 잘 살아라 했다.

그 와중에도 사내는 눈 한번 마주치지 않은 채 인부들 잔심부름, 새참이나 꼭꼭 챙기려 애쓰고 있었다.

그 계집애 시집가는 날, 축의금은 못 줄망정 되려 품삯만 받고 왔다고, 모두가 독하다 독해 하나같이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못 배워먹은 잡부 새끼가 뭘 알겠어?”

인생의 지리를 향해 가는 사람을 현자라 부르거늘 제 나름대로의 진리를 깨우친 사내는 제 이름으로도 불리지 못했다.

그러나 사내는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컨대, 단 한 번도 이를 부끄러워 한 적 없었다.

결국 끝에 웃는 것은 저 하나뿐이라고 굳게 믿던 사내였다.

자신이 얼마 지나지 않아 곱상한 도련님들에게 그 진리로 향한 길을 금방 따라 잡히리라는 사실을 몰랐던 사내는 그때까지만 하여도 순수했던 것이다.

 

서른쯤의 사내는 돈만이 신뢰할 수 있는 것이라 했다.

사내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신뢰할 수 있다 믿었고 돈은 그의 눈에 보였다.

그래도 서른쯤의 사내는 남의 돈을 빼앗거나 도박을 하진 않았다. 그저 악착같이 모을 뿐. 양심이나 도덕 탓이 아니라 제 돈 소중한 만큼 남의 돈 소중한 줄 알았다. 세상의 전부가 돈이니 그만큼 소중히 다룰 줄 알았다. 이때까지만 하여도 사람들은 그에게 장난스레 돈벌레라 불렀다. 거지새끼가 잡부, 짱깨에서 돈벌레로 불리기까지 만도 20년의 설움을 거쳐야했다.

손에 쥔 것은 잘 놓치지 않았고 돈은 그 손에 점차 쥐어지고 있던 터였다. 이런 것이 돈이 구나 할 때 쯤, 돈 냄새 잘 맡는 또 다른 돈벌레 하나가 말했다. 그의 중학교 동창이었다.

“우리 사업 한번 같이 해보지 않으련?” 동창이어서가 아니었다.

앞서 말했 듯 눈에 보이는 것이 신뢰 할 수 있는 것이었고 동창의 초롱한 눈에서는 돈이 보였다. 그 검은 홍채 샅샅이 박혀있는 돈의 모양새는 사내에게 확신을 안겨줬다. 그러니까 중학교 동창의 호탕한 웃음과 그 보다 더 호탕한 성격, 대게 사람들이 반하는 그런 것들이 아닌 그의 검은 홍채. 사내는 전 재산을 그 검은 홍채를 믿고 걸었다.

사업이 어찌 마냥 순탄할 수만 있겠는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자신의 세상을 지켜보는 것은 사내에겐 고역이었다. 그럴 때 마다 동창은 호탕한 웃음과 함께 소주 한잔, 위로 한마디 건넸는데, 사내는 그의 검은 홍채를 보는 것이 백번 천 번 더 낫다 여겼다.

웃음도 소주 한잔도 위로 한마디도 전부 투명해 사내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돈벌레 둘이 만났으니 뭐든 돈 나오는 일이면 술술 풀리겠지!”

가끔 지나치게 정이 많아 탈이었으나 돈벌레는 돈벌레였다. 동창은 제 검은 홍채를 따라 자신의 역할을 잘도 수행해 나갔다. 빳빳한 명함을 길거리에 뿌리며 사내는 그 때 처음 눈물을 보였다. 동창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 했지만 판잣집 거지새끼의 시작치고는 성대했다.

 

마흔쯤의 사내는 세상의 전부가 돈이라 했다.

사업은 호황이었고 어엿이 사장님 소리도 들었다. 미안하지만 운 좋게도 그의 동업자가 이 시점에 딱 죽어버리는 바람에, 유서 쓸 겨를도 없었던지 혈혈단신의 돈들은 다 사내의 것이 될 수 있었다. 흰 꽃으로 둘러싸인 채 호탕한 웃음을 짓는 동창을 배웅하며 사내는 혀를 몇 번 끌끌 차긴 했지만 그와 별개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가난과 기침 그리고 사내의 웃음은 숨길 수 없는 것이었다.

사실 그의 동업자에겐 3년 된 동거녀가 있었고 아이도 있나보지만 사내가 신경 쓸 만한 것은 아니었다. 몇몇 직원들, 개국 공신이라 불리는 자들이 도의를 따졌으나 결국 도의는 각자 해결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장례식장과 사내의 회사에 각각 흰 봉투를 보냈지만 그에 사내가 반응하리라는 생각은 오산에 불과 했다 사내에게는 그 또한 관심 밖의 일이었다. 차라리 사내에게 전해진 흰 봉투가 사직서가 아닌 조의금이었다면 사내가 반응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내는 사장님이었고 제 돈 하나 건사하기도 바쁜 몸이었다.

여전히 10원짜리 하나도 허투루 지나치는 일이 없고 내리쬐는 여름 밑에서 뻘뻘 거렸다.

어떻게 보면 그는 초심 그대로 변한 게 없다만 이젠 아무도 그에게 거지새끼니 잡부니 심지어는 한 때 그가 칭찬으로 생각했던 돈벌레 따위로 부르지 않았다.

그에게 그렇게 부를 만한 사람이 더 이상 그의 주위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진리를 깨우친 지 어언 20년 만에 그가 비로소 현자로 인정받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모자랐다. 돈이 모든 것. 세상이 돈이자 돈이 세상인 이곳에서는 모자라는 것이다. 진리를 깨우친 것과 도통하다는 것은 확연히 다른 차이였다. 싸구려 넥타이를 대충 풀어헤치고 사내는 다시 여름을 뛰어다녔다. 제 목의 땀띠 또한 그에겐 관심 밖의 일이었다.

 

오십쯤의 사내는 돈이 세상이라 했다.

돈이라는 진리 앞에서 모든 것들이 용서 되는 순간,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조금이라도 돈이 나오겠다 싶으면 짓이겨 밟아서라도 쥐어짰다. “내가 누군지 알고 감히!”

그가 어느 성직자의 엄숙한 표정으로 이 주문을 되뇌이면 다들 죽겠다하면서도 어디선가 돈들이 찔끔 나왔다. 하늘의 뜻이나 돈의 뜻이나 다들 맹신하는 세상이었다.

어디서나 사내가 회장님이라 하면 현자구나 했다. 단지 인생의 진리를 실천했을 뿐이겄만 여기 저기 한 수 좀 알려 달라 난리들이었다.

“돈이 다가 아니잖아요?”

어느 강단에 선 사내에게 스물쯤의 앳된 아이가 질문했다.

사실 질문이라기보다는 따지는 것에 가까웠다. 그 아둔한 스물쯤의 아이가 그의 고행과 수행의 시간을 송두리 째 부정했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스물쯤의 아이는 자신의 젊음을 예로 들었다.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라 했다.

사내는 이제 분노할 지경이었다.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억만금을 주지 않아도 살 수 있는 것들을 예로 들어 자신의 인생을 부정하다니.

사내는 이미 그 아둔한 젊음들을 싼 값에 사들이고 있었다.

백번 물러서 돈이 전부가 아니라 해도 돈으로 전부를 살 수 있었다. 살아보니 그랬다.

사내가 지금 서있는 이 강단만 해도 그가 거지새끼나 잡부, 짱깨, 돈벌레 따위였다면 오를 수 없을 자리가 아닌가. 결국은 모든 것이 돈이었다. 곱상한 도련님처럼 굴지만 그와는 큰 차이점을 가진 스물쯤의 가난한 아이의 질문에 그는 모든 것이 돈이라 답했다.

네가 태어나기를 억만금을 물고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네 젊음의 가치는 억만금이 아니다.

처음으로 그는 자신의 돈과 관련하지 않고 화를 냈다.

세상 물정, 인생의 진리 따위에는 관심 없고 이상적인 이야기나 지껄이는 베짱이는 사내는 가장 혐오했다. “요즘 애들은 다 저 모양이야?”

회장님, 회장님. 차츰 사내는 회장님에 걸맞게 고급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넥타이도 명품으로 턱턱 매었고 여름을 뛰어다니기 전에 고급 세단을 이용했다.

돈 있는 곳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다만 오십 줄이 돼서야 그는 쓰는 맛을 알게 된 것이다.

한여름 18°C의 고급 세단을 몰고 다니는 회장님. 안타깝게도 사내는 자신의 인생이 비로소 고급이라 생각하게 된 그 쯤 자신의 몸의 이상을 깨닫게 되었다.

이는 사내가 스무 살 때부터 혹은 그 전부터 꾸준히 사내의 심장에서 시작되어 그의 혈관을 데운 열기에 관한 것으로 여름마다 유난하다 했던 그의 더위가 단순히 여름 탓이 아니란 걸 18°C의 고급 세단에서 그는 깨달을 수 있었다. 사내의 운전기사가 한여름에도 얇은 파카를 입고 감기를 달고 살았던 이유가 눈에 보이면서, 그는 이 망할 더위를 의식하게 되었다. 허나 아직은 우선 순위가 바뀌지 않았음으로 특별히 뭔가 조치를 취한다거나 그런 것은 없었는데 다만 사내는 이 후 병적으로 얼음을 섭취했다.

 

살날이 스무 날 쯤의 사내는 주름진 옛 기억을 회고하며 말했다.

살아보니 돈이 전부더라. 사내는 벌써 서너번의 찬물 샤워를 거친 뒤였다.

머리 위에서 내뿜을 땐 얼음장 같던 물이 그의 가슴팍정도까지만 흘러내려도 금세 데워지기 일쑤였다.

집안은 항상 최저온도를 유지했고 이제는 제 돈 뿐만 아니라 제 몸또한 건사하기 버거운 그가 유일하게 돈 쓰는 구석이란 더위뿐이었다.

“그래 북극으로 가자!”

순간 든 생각이지만 안 될 것도 없었다. 가진 것이 돈 뿐인 사내, 가진 것이 세상 전부인 사내는 저 북극의 얼음을 다 사들인대도 부족하지 않으리라. 노망났군. 뭐라 수군댄대도 역시 그의 관심 밖의 일이이었다. 사내 또한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이 저 살날이 앞으로 언제까지인지는 몰랐으나 시원해지고 싶다는 갈망에 앞날에 대한 불안감은 뒷전이었다.

골수부터 피어난 열꽃, 혈관 하나하나 차오른 열기는 거의 그가 살아온 모든 날들과 동반했다.

돈이 전부라는 인생의 진리는 여전하나 이 일생의 더위를 사가겠다면 재산의 절반이라도 기꺼이 내 줄 용의가 있었다.

사내는 도의를 따며 떠난 개국 공신 대신 그 자리에 앉아 자신과 함께 회사를 일궜던 몇몇 이들의 배웅과 그들의 숨길 수 없는 웃음을 뒤로하고 북극으로 가는 비행기, 일등석 좌석에 몸을 뉘였다.

그러나 사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얼음을 물어도 채 가시지 않는 열기에 해와 가까이 맞닿아있는 지금 이 순간을 저주했다.

 

살날이 열아흐레 남은 사내는 극에 다다라서도 돈이 다라 했다.

북극의 얼음물로 목욕하는 사내는 저 하나 뿐 일게야. 이따금씩 빙산의 잔해가 곤두박질 치는 그 얼음물로.

돈 몇 푼이면 안 된다 말리는 사람도 없길래.

그래서

사내는 훌렁훌렁 옷을 벗었다.

찌는 듯 한 더위에 북극의 푸른 혈액으로 곤두박질 쳤다.

 

일흔 여덟의 노인네는 더워 죽겠다했다.

그의 주름진 손끝이 제 몸을 담근 그 푸른색으로 물들어도 더워 죽겠다했다.

그는 제 일생의 더위를 사간다면 전 재산을 주겠노라 했지만 감히 현자의 심장을 빼내갈 용자는 없었나 본지. 그의 주름진 심장이 요동칠 때마다 도는 혈액과 함께 열기가 또 다시 울컥 그의 혈관, 그의 몸 곳곳을 데웠다.

더워죽겠다. 이 놈의 심장은 곧 죽어도 뛰겠다며 그를 괴롭혔다.

홀로 북극의 얼음물에 덜렁 빠져있으면서 일흔 여덟의 노인네는 그제야 혹시 싶었다.

살고 싶어 뛰는 심장이라면 그를 이 사지에 몰아넣지도 않았을 것이다.

죽을 날 세는 것이 빠른 노인네의 심장이 뛰는 이유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여름의 그늘 한 점이, 자존심도 없던 그 계집애가, 친구의 검던 홍채가, 마지막 도의가,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내 심장을 때려왔구나.

억만금으로 얼룩진 자신의 인생을 보며 사내와 노인네, 그들은 억울해서 엉엉 울었다.

태어날 적이나 길거리에 제 명함을 뿌렸을 적과 비교할 수도 없이 엉엉 울었다.

억만금을 쥐었지만 억만금의 가치는 지니지 못한 자신의 젊음을 노인네는 되돌릴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이 흘린 땀은 정직했다 항변했지만 싼 값에 사들인 젊음 역시 이제와 되돌려 줄 수 없는 것이었기에..

어쨌거나

늙은 노인네의 열기는 이따금씩 빙산의 잔해가 곤두박질치는 북극의 얼음물 그 밑바닥으로 그렇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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