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와 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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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슬럼프가 없었다. 애초에 글이 술술 써진 적도 없었으니 슬럼프도 없었다.

12살 때, 나는 처음으로 독후감이 아닌 글을 썼다. 인터넷 카페에 소설을 써서 올렸었는데, 그때조차도 키보드를 반복해서 두들겨야 했다. 소설이란 게 뭔지 제대로 알기도 전이었지만, 작품성이라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술술 쓰지 못했다.

아무런 계획도 수정도 없이 글을 쓴 적이 없기에, 나는 도저히 글을 술술 쓴다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다. 물론, 마치 종이 위에 똥을 싸듯 연필을 휘갈기며 써본 적은 있지만 그것은 단순한 메모나 일기에 불과했다. 다른 사람이 읽으라고 쓰는 글은 단 한 번도 그냥 줄을 넘기는 법이 없었다. 문제는, 그렇게 열심히 쓰고 고치고를 반복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글이 초콜릿을 너무 많이 넣은 쿠키 같다는 것이다.

초콜릿을 넣은 쿠키의 묘미는, 바삭하고 고소한 쿠키와 부드럽고 달콤한 초콜릿의 절묘한 조화다. 이 조화를 지키려면 적절한 비율을 잘 지켜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다.  어린 시절의 나는, 엄마를 도와 수제 쿠키를 만들면서 초콜릿을 무진장 많이 넣었다. 맛있는 초콜릿을 많이 넣었으니 당연히 맛있을 거라 믿으면서. 하지만 아니었다. 내가 만든 쿠키는 언제나 너무 달거나 너무 텁텁했다. 초콜릿을 과도하게 많이 넣은 탓에, 어떤 쿠키엔 초콜릿이 많이 박히고, 어떤 쿠키엔 초콜릿이 적게 박혔던 것이었다.

나의 글은 꼭 이와 같다. 초콜릿이 너무 많이 박혀 있거나, 너무 적게 박혀 있다. 도저히 맛있는 쿠키라고 할 수는 없다. 내 글은 항상 너무 달거나 텁텁한 쿠키 같았기에, 슬럼프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것이다. 그나마 쿠키는 20개 중에 1개라도 비율이 적절한 게 있었지만, 내 글 중에 그런 건 없었다. 지금까지도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그 완벽한 쿠키는 나오지 않을 것 만 같다.

그 이유는, 내가 사용하는 재료는 물론 내 실력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쿠키, 좋은 글은 좋은 재료와 좋은 실력에서 나온다. 그러나 나는 좋은 재료를 준비할 여력도 없고, 좋은 실력을 기를 여력도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냥 게으른 거다. 다른 좋은 재료를 찾는다거나, 좋은 실력을 기르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재능이란 것도 물론 존재하겠지만, 그래도 역시 중요한 건 노력이다. 레시피가 아무리 좋아도, 재료가 아무리 좋아도, 아니, 모든 요건이 전부 완벽해도 나의 노력이 없다면 그 어떤 것도 완성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형은 학교 캠퍼스에서 수제 초콜릿 쿠키를 사가지고 왔다. 정말이지 달콤하면서도 고소하기 그지없어서, 몇 년 전까지 엄마가 만들던 쿠키 다음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쿠키가 된 놈이다. 언젠가는 꼭, 나도 이 쿠키 같은 글을 쓰고 싶다. 바삭하고 달콤하며 고소한, 우유를 곁들이면 더욱 완벽해지는 쿠키 같은 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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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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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의 밤. 이곳은 독서실이라기 보단 오히려 카페 같다. 공부만 하는 카페. 시험이 일주일 남았다. 그러나 공부는 하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공부가 싫다. 단순 암기가 싫다. 성적이 좋아봤자 쓸 데도 없다. 단지 더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을 뿐이다.

 

나는 글이 좋다. 글을 쓸 때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글을 쓸 때면,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영웅이, 악당이, 신이, 악마가, 부자가, 거지가, 바보가, 천재가 될 수 있다. 원한다면. 내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열심히 공부중이다. 이들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이곳에 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부모님의 제안으로 이곳에 오게 됐다. 물론 내 입으로 독서실을 다녀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지만, 부모님을 의식하고 한 말이었다.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진즉에 공부를 때려 쳤을 것이다.

 

그리고 매일 매일 글만 썼을 것이다. 가끔 게임도 하면서. 문제는 내 글이 예술성이 뛰어나지도, 오락성이 뛰어나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글을 쓴다. 공부가 싫어서.

 

예술성도 오락성도 없는 내 글은 긴 하소연에 불과하다, 이 글처럼.

 

독서실 안은 밝다. 전체적으로 인테리어가 예쁘다. 책상과 의자들의 색깔은 같고, 여러 소품들이 가득하다. 백열전구가 있는데, 책이 전구 위에 있다. ㅜ 형태로. 물론 장식용 책이므로 펼치거나 할 수는 없다. 전구를 오래 바라보면 눈에 잔상이 남는다. 녹색? 파랑색? 빨강색? 이 세 가지 색깔이 오묘하게 겹쳐진 잔상이 계속 보인다. 대략 10초 정도. 천장은 요즘 유행하는 양식이다. 이 양식 이름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대략 설명하자면, 공사 현장을 그대로 옮긴 듯한 천장? 시멘트인지 페인트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천장이 굳은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대부분의 카페 천장도 이런 식이다. 예쁘진 않다. 오히려 흉측하다. 천장의 흉측함이 그 아래의 아름다움을 더 강조해 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래서 이 양식의 천장이 유행인 걸까.

 

벌써 10시다. 이제 1시간 뒤면 집에 갈 생각이다. 오늘도 공부를 안했다는 자괴감과 글을 많이 썼다는 뿌듯함을 가지고. 의식의 흐름을 따라 글을 쓰면 이런 글들이 나온다. 하소연, 탄식에 가까운 일기 같은 글들이 나온다.

 

가죽으로 된 조그마한 손목시계가 내 옆에 있다. 내 하나뿐인 시계이고, 가장 좋아하는 시계이다. 시계 줄은 앞면이 검은 색, 뒷면은 베이지색이다. 그리고 시계바늘과 숫자들을 덮고 있는 유리는 하늘색이다. 볼록 거울처럼 쓸 수 있는 시계다. 그래서 구름을 비추면, 정말로 예뻐진다. 진짜 하늘 보다 시계 속 하늘이 더 예쁘다고, 더 하늘답다. 구름도 마찬가지다. 이 시계 속 구름과 하늘은 한없이 맑고 푸르러 보인다. 실제와는 다르게.

 

바깥은 아주 어둡다. 어떤 책에서 읽은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먹을 풀어놓은 듯이 깜깜하다. 밤하늘의 색깔은 아쉽지만 머루 빛이 아니다. 그저 새까맣다. 별도 달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원래부터 비어있는 하늘이지만, 더 공허해 보인다. 나의 글처럼.

 

나의 글은 암초 같다. 썩은 생선 같기도 하다. 또는 공허한 하늘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는 암초를 산호초로 바꾸는 법을, 생선을 썩지 않게 보관하는 법을, 공허한 하늘을 채우는 법을 모른다. 그냥 마구 쓸 뿐이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는 확실히 알고 있지만, 내 글이 그렇게 되지는 못한다. 재능의 문제일까, 노력의 문제일까, 둘 다일까.

 

어떤 사이트의 가입 질문에 이런 게 있었다. ‘아름다움이란?’ 나는 망설임 없이 답을 채웠다. ‘나에게 없는 것.’

 

언제까지 생각이 흐르는 대로 글을 쓸까. 대충 30~40분 동안 이 자리에 앉아 이 짓거리를 하고 있다. 인터넷 용어로 말하자면, ‘아무 말 대잔치’같은 글이다. 그냥 떠오르는 모든 것들을 노트북에 옮겨 적고 있다.

 

세상에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차고 넘친다. 그러나 내가 명쾌하게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생은 스케이트장이다. 이 답은 나의 답이 아니라, 프랑스 파리의 지하철 노숙자의 답이지만. 그것도 영화 속에 나온.

 

이제는 글을 끝마칠 때가 왔다. 노트북 대여 시간도 끝나가거니와, 이 방의 사람들이 점점 나를 쳐다보고 있다. 정적 속 경쾌한 타자소리가 귀에 거슬릴만도 하다. 어서 집으로 가고 싶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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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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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써보았습니다. 예전 게시물은 삭제 했습니다.

 

<산수유>

 

갈빛 손가락 끝자락,
손톱에
누가 노랑을 칠해놓은 걸까

 

그 조그맣고 보드라운 손톱들,
어루만지고파
눈동자에 노랑이 비치는

 

봄이다

 

페인트의 노랑과도
색연필의 노랑과도 다른
살아있는 저 노랑을 칠한 것은

 

봄이다

 

겨우 드러난 손가락으로
노랑 붓을 집어 들어
갈빛 손톱에다 칠을 해준 것은

 

봄이다

 

봄보다도 먼저 와
봄이 옴을 알리는
저 살아있는 손톱,
노랑은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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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막이,

차가운 길을 걸어가면

바람이 나를 찾아오고

나비가 나를 찾아오고

달빛이 나를 찾아온다.

 

바람은 바람답게

한 순간 나를 안고

다음 순간 떠나간다.

 

나비는 나풀나풀

주위를 맴돌다가

꽃을 좇아 사라진다.

 

그러나 달빛만큼은 나와 길을

환하게 비춰준다.

 

내가 지나온 길을,

지금 밟고 있는 길을,

앞으로 걸어갈 길을,

달빛은 묵묵히

그러나 따스하게 비춰준다.

 

나는 달빛 가득한 그 길을

한참을 걸어가다

문득,

달이 구름 뒤로 그

고운 자태를 숨기기라도 하면

 

발걸음을 멈추고,

달이 얼굴을 내밀 때까지

차가운 그 길 위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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