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제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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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왔다.

커다란 바위에

은색돗자리를 깔고 누웠다

 

누운 지 얼마 안 돼 깨달았다

난 신성한 제단 위에 누운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또 알았다

머리 위 소나무는 제물이 도망치면

진압하기 위해 뾰족한 솔잎을 쏜다는 것을

 

음식에 파마산 치즈가루를 뿌리는 거처럼

전신에 솔잎이 뿌려진 채 하늘 위로 올려졌다.

제사상을 받은 신은 미인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나

뭔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훈제를 외쳤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알 수 없었지만

신의 위장이 아닌 돗자리 위에서 눈을 떴다

 

동이 트니 하늘은 늘 맞는 아침이

뭐가 그리 설레는지 두 뺨을 붉혔고

새는 수다를 떨며 벌레를 소화시켰고

소나무는 솔잎을 떨어트렸다.

 

아아 이번 휴가 방콕은 꿈도 못 꾸겠다.

부지런히 강렬한 자외선을 흡수해

검게 그을린 훈제요리가 돼야하니 말이다


 

 

 

p.s. 날이 무진장 덥네요 이번 주가 휴가 피크라고 하던데 다들 휴가는 떠나셨나요?ㅎㅎ 바다든 계곡이든 에어컨 앞이든 각자 더위를 피하는 방법은 다르겠죠 모두들 시원한 여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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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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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체에 달린 달랑달랑한 기둥 끝

열 손가락과 바닥 그리고 등

난 이것들을 손이라 쓰고 신데렐라라 읽는다

 

신데렐라는 뇌라는 상급기관에 종속된 노예이자

삼시세끼 이빨과 혓바닥이라는 불량배 녀석들에게

산수진미 셔틀 신세이다

 

이 뿐 아니다

매일 아침 미끄덩거리는 똥을 닦는 걸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일사분란하게 머리도 긁적여주고

뾰루퉁한 여드름을 달래고

미술시간 물감파티로 온 몸이 카멜레온이 되기까지 한다

 

이런 치욕스러운 순간을 견딜 수 있는 근원은

바로 고된 노동 후에 주어지는 황홀한 왕자와의 만남

 

거품으로 온 몸의 찌든 때를 닦아내고

백지라는 무대에 들어선다

펜왕자를 끌어안고 격렬한 탱고를 추기 시작하면

종이는 감성으로 너덜너덜해지고

춤이 갈무리될 때 쯤  날짜가 새겨지며 또 하나의 작품이 완성됬음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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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눈물, 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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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사준다는 말에

기뻐 따라 나섰던 날

난 아빠를 보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책임이 커지고

모임이 많아지고 시간이 없어

가정에 소홀했다는 당신의 말이

더 이상 핑계로 들리지 않았다.

 

소주 한 잔을 들이킬 때마다

내려놓는 사연보따리에

나이와 상관없이 내 존재만으로

아빠의 영혼에 위로됨을 알았다.

 

아내의 잔소리와

자식의 무관심에,

짓누르는 책임의 무게와

세상의 냉정함에

 

아빠는 갈 곳을 잃고

진정으로 외로웠음을 알았다.

 

아빠는 말씀하셨다.

“예은아, 거인이 되라.”

많이 배운 사람 말고

돈이 많은 사람 말고

 

모두를 품을 수 있는 포용력을

지닌 거인이 되라고

그게 리더 라고.

 

마지막 술잔을 내려놓으시며 말씀하셨다

“사랑한다. 내 딸이라서.”

울컥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웃으며 눈물을 삼켰다.

 

그날따라 유난히

아빠의 소주가 써보였다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의

넋두리, 사연들이 함축된 눈물로 보였다.

 

아파야 아빠인걸까

아빠의 아픔이 보이던 이 날

소주잔에 반쯤 남은 투명한 액체를 통해

내가 한층 더 성숙해졌음이 비춰줬다.

 

거인이 되고 싶다.

세상의 모든 눈물을 끌어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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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원 관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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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연장원 심사에 시 게시판만 제외되는 건가요? 정말 궁금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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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부제: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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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밑동에 칼집을 냈다

양념에 잘 버무리기 위함 이였으나

명백한 상처였다

 

초록 노랑 하양 선명한 색 구분은

멀리선 조화로워 보였으나

사실 서로의 이질감에 몸서리치는 중이였다.

 

작은 행동과 사소한 말 하나가

소금으로 절여져

우리의 마음과 미간을 쭈글쭈글하게 했다

 

우리의 3년은 찹쌀풀처럼 끈끈하기도 했고

멸치액젓처럼 고약하기도 했고

다진 생강처럼 싸해지기도 했고

설탕처럼 달콤하기도 했다

 

각종 양념이 저 하나의 에피소드를 들고

우릴 덮친 후에야 깨달았다

모든 순간이 찬란했었다고

 

자각은 늘 지각하는 법인지

잘 가란 말 한 마디 못한 채

우린 서로 다른 통에 담겨졌다

 

숨을 죽이고

냉장고 구석으로 쳐박힌다

차가운 냉기를 머금고 성숙을 준비한다

 

훗날 시큰하고 알싸한 묵은지의

향기를 품기며 만났을 땐

더 깊이 뿌리내리기 위해 서로의 수분을 훔쳐 먹고

내 잎이 푸르다 네 잎이 푸르다 우겨댔던

그 시절을 함께 추억하자

………………………………………………………………………………………………………………………………………………………………………………………………..

“풋내 나는 겉절이 인생이 아닌 농익은 김치 인생을 살아라. 그런데 김치가 제 맛을 내려면 배추가 다섯 번 죽어야 한다. 배추가 땅에서 뽑힐 때 한 번 죽고, 통배추의 배가 갈라지면서 또 한 번 죽고, 소금에 절여지면서 다시 죽고, 매운 고춧가루와 짠 젓갈에 범벅이 돼서 또 죽고, 마지막으로 장독에 담겨 땅에 묻혀 다시 한 번 죽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김치 맛을 낸다. 그 깊은 맛을 전하는 푹 익은 인생을 살아라. " ㅡ농익은 김치의 과학 , 권오길

p.s. 위의 글은 제가 김치를 검색하다 깜짝 놀라서, 농익은 김치 인생이라는 표현이 좋아서 밑에 덧붙여 봅니다.ㅎㅎ  이제 고등학생이라니..호고곡 제 글도 김치처럼 농익길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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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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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은 인간이 감당해야할 숙명이 아니라

인간이 감동받아야 마땅할 천명이다

인간에게 불을 선물한 프로메테우스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인다던데

인간에게 외로움을 선물한 신은 어떤 벌을 달게 받고 있을까

 

타인을 종속시키고 발밑에 두려는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매일매일 실감하며 살아가니깐

함께, 우리라는 단어는 잠시 접어두도록 하자

사실 혼자라는 단어가 제일 따스한 법이다

 

마음에 생채기가 나느니

생채기가 나지 않도록 마음을 냉동보관하고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서로를 향해 윽박지르느니

방에 자신을 가두고 이불을 덮자

 

가정은 지상에 내려진 작은 천국이라 하지만

이 천국을 향한 테러는 끊임없다

아니 구성원들 모두가 자살테러를 감행하기 때문에

지옥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곳이다

 

그러니 우리 한 숨의 재처럼 흩어지자

서로의 한숨에 애도라도 표할 수 있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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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의 눈물, 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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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님은 어디에 계실까

계시긴 계시는 걸까

달이 거듭될수록 그리움은 배가 되네

기약 없는 기다림으로 내 몸과 마음 타들어간 지 오래

더 이상은 안되겠어

 

이봐요 중매쟁이 주인양반

내 님을 내놓으시오

뭐요?

내놓을 님이 없다고요?!

저번 달과 말이 다르잖소 안되겠소

당신처럼 파렴치한 인간은 내 용서할 수가 없소

 

자궁의 기다림의 분노는

오로지 나를 향했고

 

혼쭐 좀 나보라며 자궁은 비대해졌다,

망치질을 했다,

꽈베기처럼 몸을 틀었다하며

자기 몸이 피 나오는 정수기인냥

끊임없이 피를 토해냈다

 

자궁의 피눈물은

뚝 뚝

콸 콸

콰르르 콰르르

 

고통을 동반한 내 눈물도

뚝 뚝

콸 콸

콰르르 콰르르

 

어쩜 넌 24시간 풀가동인지

나또한 반격을 가하러 24시간 편의점에서 사온

타이레놀을 한 움큼 삼켜댔다

 

너와 나의 일주일은

정말 말 그대로 피 튀겼고

지금은 곤히 잠든 너를 감싸며

어김없이 찾아올 다음 달

우리의 전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군인이 총에 총알을 넣듯

소녀는 서랍에 타이레놀을 쟁여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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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양수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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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떠다니는 이곳은

엄마의 뱃속 푸른양수

 

저 하늘의 번개는

날 궁금해하는 의사의 초음파

 

수영장을 독점한 밤

뒤로 누워 둥둥 떠다닌다

 

진공상태가 된 세상

푸른섬광으로 번쩍 대는 하늘

검푸른 꽃을 그리는 달과 구름

내 눈에 둥둥 떠다닌다

 

엄마 배를 차대며 전진

엄마랑 의사는 놀라자빠지며 후진

 

타국의 땅에서

그려보는 나의 탄생

 

엄마 배를 독점한 밤

뒤로 누워 둥둥 떠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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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죽이 겨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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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의 추위를 피해서 온

여기는 태국

 

오기 전 친구들한테

반말할 수 있을 때 많이 하라 했다

 

태국 왕자 꼬셔서 왕실로 들어가면

나한테 절해야 한다며

 

당찬 포부와 함께

갈아 입은 하얀 원피스

 

오랜만에 맡아보는 에어컨 냄새에

겨털이 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얼마나 부끄럽던지

한국은 한겨울이니

당연히 내새끼들 양육중이였지

 

제모를 하려하자

겨털 한가닥이 삐죽대며

 

남자에겐 자존심인데

여자에겐 왜 수치심이냐며

논리정연하게 살려달라 주장을 펼쳤다

 

망설인 걸 눈치채곤

얄팍한 주인 땀냄새 맡아가며 기생하느니

차라리 죽으면 죽으리이다

협박까지 해댔다

 

마음이 약해져

단두대 처형은 여름으로

생을 연장시켜줬다

 

내새끼들 고마운지

눈물흘리며 축축하게 적셔대길래

에라 모르겠다

힘차게 만세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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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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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가 오선을 대신할 때

하늘에 악보가 펼쳐졌다

훌륭한 작곡가되신 창조주는 뒷짐을 지곤

연주자들에게 즉흥연주를 부탁했다

 

별들은 부담스럽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서쪽 별이 쭈뼛쭈뼛 거리며 소리를 내자

모두 앞다투어 뛰어들었다

 

별들의 휘황찬란한 연주로

눈과 귀가 호황할 때 쯤에서야

비행기가 지나가며 간주중임을 알렸다

 

전류가 흐르던 전봇대의 칠흑같은 머리카락엔

아름다운 선율이 흘렀고

내 몸엔 전율이 일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하늘에

아무나 들을 수 없는 멜로디는

존케이지의 4분 33초처럼

세상을 고스란히 품었다

 

밤하늘이 감개무량하게 다가올 때면

빅뱅이론이 내 비듬에서 시작되는 거 마냥

눈 앞에 펼쳐져 별의 후예라는 내 정체성을 일깨운다

 

우주의 궤도를 거슬러 흐르는

별들의 선율은

세상의 침묵까지도 달콤하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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