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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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피는 여명만큼 지겨운 것이다. 어제 머리끝을 갑각류 색으로 물들인 O의 새빨간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목도했다. 그의 발 치에는 담배가 막 꺼진 채였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자욱했다. 매캐하게 퍼지는 숨까지 결백해 보이게 만드는 잘난 얼굴이 그 원인일 것이다. 사람들 무리 새로 해가 뜨고 있었다. 저 아름다운 입술을 성행위 묘사하듯 벌리는 상상을 했다. 저 안에 자리 잡은 고유한 인간의 추악한 속내를 파헤치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인간들을 보며 끊이지 않던 허구의 탐닉이었다. 저편에서 열심히 뭔가를 지껄이던 O의 낯이 나를 발견한 채 의아해졌다. 왜 놀라는지 모르겠군. 내 뇌를 읽은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멈춘 그의 고개가 완전히 군중에서 틀어졌다. 사람들이 말을 거는 데 귀머거리처럼 멍하니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나 가야 할 것 같아. O의 입모양을 해석하자면 그는 아마 그렇게 뇌까렸다. 사람들이 어디 가냐는 듯 O를 잡지만 그는 내게로 뛰어오고 있었다. 옅은 숨소리를 내며 어느새 내 앞에 도착한 채 입을 가르며 미소 짓는 O. 흑백 영화 속에서 기어 나온 존재 같다. 많이 기다렸지? 나와 O를 보며 쑥덕이는 사람들의 얼굴들이 흐리게 보였다. 이제 이곳이 브라운관이 되었고, 나는 머리가 조금 아파졌다.

 

“X, 왜 그렇게 멍하냐? 왜. 형아 머리가 그렇게 멋있어? 너도 내가 가는 미용실 어딘지 궁금해?”

“아니.”

 

그러자 은근한 기대를 머금고 있던 O가 웃음을 터뜨린다. 손뼉을 짧게 치면서 사람을 빤히 쳐다보는 버릇.

 

“야, 그렇다고 그렇게 지겹다는 눈으로 볼 건 없잖아.”

“형이 지겨운 건 아닌데.”

 

O가 나를 내려다본다. 그 눈 속에서 출현되는 걱정의 기운은 뇌쇄적이다. 때때로 나는 사실 아프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을 만큼.

 

“또 권태야?”

 

권태. O가 그 말을 한다는 것이 좀 비현실적이어서 웃음이 삐져나왔다.

 

“형이 그 말 하니까 좀 웃겨.”

“왜. 설마 내가 권태도 모를 것 같아?”

“그게 아니라, 형은 밝잖아. 그래서… 그 낱말 자체랑 안 어울린다고.”

“칭찬 고맙다.”

 

O가 여느 때처럼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끊어질 듯 말 듯 한 미소를 짓는 O. 입은 웃고 있는데 눈초리가 쎄하다. O는 의외로 날카로운 면이 있다. 나는 그게 좋은지 싫은지 모르겠는데 그러므로 괜히 더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근데, 너도 그거랑 안 어울리는데.”

 

그의 밝음에 할 말이 녹는다. O는 나를 잘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가? 어물대듯 웅얼대자 O는 내 머리칼을 큰 손으로 잔뜩 짓눌렀다. 젖혀 있는 창문으로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추위로 시큰거리는 귓가에 열이 감돌았다. 도대체 뭘 뜻하는 행동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 목적이 위로라는 걸 안다.

 

“그래, 임마.”

 

그니깐 너무 혼자서 있지 마. 형이 있잖아. 그의 우려가 고마웠다.

 

“고마워.”

“고맙긴. 이제 점심 먹으러 가자.”

 

점심? 응. 배고프지? 가로등에 반사된 그의 눈은 호흡하지 않는 것처럼 유려했다. 그런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그를 따라나섰다.

 

 

 

 

***

 

 

“어디 갈까? 뭐 먹을래?”

 

O는 주위를 둘러보며 간판들을 눈으로 훑었다. 치켜뜬 눈이 이리저리 굴러가고 그 아래에서 나는 그것이 신기했다. 처음 신호등을 본 아이처럼 그 앞에 서 있자 시선이 부딪쳤다.

 

“음…”

“너 어제 술 많이 마셨으니까 해장 쪽이 낫나? 순대국밥 아님 훠궈?”

 

O는 항상 주변에 무슨 음식점이 있는지 스스로 찾아내 내게 의견을 물어봤다. 해장. 순대국밥. 훠궈. 곰곰이 생각하려다 지껄였다.

 

“훠궈? 훠궈가 언제부터 해장 쪽이었어?”

 

사실관계는 확실하게 해야 했으므로 묻자 O가 자연스레 뱉었다.

 

“국밥 먹을래?”

“난 훠궈 먹고 싶은데.”

“사실 나도.”

 

그렇게 뱉으며 O는 기쁜 듯 킬킬 쪼갰다. 추위 때문에 숨마다 부연 안개가 이상한 모양으로 탈출했다. 역시 X, 나랑 맞아. 그러면서 지가 밥 산다고 말했다.

 

 

 

****

 

 

 

O의 숨결을 박제하고 싶다.

 

점심으로 훠궈를 먹다가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밖으로 나온 뒤 금세 뇌리에서 잊혀졌다. 지금 내가 욕망하는 것은 지극히 사람다운 것이었다. 훠궈를 먹고 배가 불러서 잠이 온다. 그래서 O와 헤어지고 싶다.

 

“X, 우리 놀러 갈까?”

 

하지만 O는 눈치가 없다. O가 빙글빙글 웃었다. 심드렁하게 발길에 채이는 돌맹이를 차며 물었다.

 

“어디?”

“여기 근처에 방탈출 하는 데 있대.”

“별로.”

“그럼 노래방?”

“나 지금 좀 피곤해. 그냥 집 들어가서 잘래.”

“그럼 너네 집 가서 같이 영화 한편 때리다 자자. 콜?”

 

그 말에 돌맹이 차는 걸 멈추고 그를 바라봤다. O는 여전히 미혹적으로 미소 짓고 있었다. 저 현실에 붓칠된 생명력 앞에서 나는 조악할 정도로 이류다. 괜히 미적지근하게 발음했다.

 

“그러든가.”

 

O가 좋다고 활짝 웃는다. 오케이. 어깨를 감싸는 손길에 괜히 눈 등이 발열했다. 사실 나도 혼자서 자는 것보단 형이 있는 게 좋았다. 내색은 안했지만.

 

 

 

***

 

 

 

 

 

“일주일 동안 뭐 먹고 살았니.”

 

O는 굳은 낯으로 침대 위에 누워있는 나를 쳐다봤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눈동자가 담담하고 불안했다. 컵라면. O가 그럴 줄 알았다며 냉장고 문을 히스테릭하게 닫는다. 왜 내가 안 먹은 건데 자기가 더 성질을 내는지 모르겠군.

 

“볼 때마다 비실대는 게 다 이거 때문이었네. 내일 장 보고 올 거니까 나 없어도 요리해서 먹어.”

“……”

“X, X. 듣고 있어? 건강 걱정 되서 그래.”

 

귓가를 통과하는 낮은 저음이 거실 바닥을 타고 미끄러지듯 울려 퍼졌다. O의 목소리는 자장가로 위장한 물뱀이 아닐까. 방금 나는 죽고 있는데 잠들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편안함을 알아채고 만 것 같다.

 

“됬어. 내가 알아서 볼게. 애도 아니고.”

“그렇게 말한 게 벌써 일주일 됬다. 집도 휑한 게 사람 사는 집 맞아? 스탠드라도 하나 사. 내가 사줄게.”

 

O는 계속 잔소리를 지껄이다가 조용해졌다. 좀 낫다. 켜진 모니터를 응시하면 방금 결제한 고전영화 제목이 필기체로 뜬다. 효과음들이 쏟아지며 졸음이 노곤히 몰려오는데 방문이 끼익 열리는 소리가 났다. X. 이거 누구야? 웃음이 짓눌린 목소리를 듣자마자 등골이 싸늘해졌다. 몸을 일으키면 쇳덩어리처럼 굳은 뼈가 심장을 압박했다. 빠르게 달려가자 O가 보고 있는 건 예상했던 대로 그를 그린 그림이었다. 린시드유와 테레핀유 냄새가 콧 속을 진동했다.

 

“이거 나지?”

 

바스라질 것 같은 까만 시선이 내리꽂혔다. 캔버스 안에 그려진 건 멜티드 다크색 옷을 착용한 채 무표정으로 그림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O다. 그 앞에는 진짜 O가 그것과 조우해 있다. 그에게 보여줄 생각은 아니었던 그림이었다. 그저 이 광경이 당황스러웠지만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어쩌다 그렸어.”

 

O는 내 말의 무게를 상관하지 않는 듯 했다. 조금 얼 빠진 황홀한 낯으로 그림 가까이 다가갔다.

 

“그려줘서… 고마워.”

“어쩌다 그렸다니까.”

 

내 무감해 보이려 애쓰는 말에 O가 고개를 돌렸다. 그는 입꼬리를 달싹이며 내뱉었다.

 

“근데, X 넌 내가 이렇게 멋있게 보여?”

“…뭔 소리야.”

“아무리 봐도 실물보다 더 잘생기게 그린 것 같은데.”

 

그가 웃음을 넘치도록 흘리며 그림을 관찰했다. 확실히 그 말은 맞았다. 누가 봐도 저 그림 속 O의 피사체는 신성의 경지에 올라서 있었으니까. 이 텅 빈 공간에 홀로 유의미하게 그려진 뮤즈라도 되는 것처럼. 심장이 쿵쿵거렸지만 태연하게 발음했다.

 

“그림이니까 좀 미화한 거 뿐이야.”

“너 나 좋아하지?”

 

그가 기습적으로 질문했고, 메마른 음성에 깃들여 있는 의도는 분명치 않았다. 나는 O를 살폈다. 옅은 웃음을 가면처럼 씌운 무표정에서 분리되는 감정은 없었다. 긴장이 손끝까지 전파처럼 퍼졌다. 이 상태로는 나무젓가락을 바코드에 꽂아도 전기가 통할 것 같은 기분이다. 차가운 손을 눌러 쥐자 O의 시선이 그곳을 스쳐갔다.

 

“뭐?”

“당사자 몰래 그림 그릴 정도면, 좋아하는 거 아닌가?”

 

장난 반 진지함 반의 표정. 반질한 눈동자의 깊이를 모르겠다. 정신이 탁해질 정도로 까맣다. O 라는 구덩이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기분.

 

“뭔 소리야. 나중에 주려고 했어.”

 

잠시 아득한 침묵이 오갔다. 습관적으로 입술을 씹으려다 말았다. O의 표정이 점점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와 나 사이에 물 장벽이라도 존재하게 된 것처럼. 방 안이 비현실적으로 서늘했다.

 

“정색하긴. 장난이야.”

 

어느 순간 그 말을 허공에 쑤시듯 읊조린 O는 창백히 서 있는 나를 지나쳤다. 피곤하겠다. 빨리 자야지. 애를 어르는 듯 한 말투에 맥이 풀렸다. 심장이 조금 뻐근했지만 그를 뒤따라 침실 안으로 몸을 뉘었다. 영화는 거희 끝이 나 있었고 O가 말 없이 볼륨을 0으로 낮췄다. 내겐 빛이 없는 공간에서는 무서워서 못 자는 버릇이 있다. O는 내 옆에 누워 있었고 언제나처럼 나는 그를 바닥으로 내쫓지 않는다. 내가 바닥으로 가지도 않는다. 뒤돌아 누운 채 기묘한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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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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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우지 못한 날짐승들이 전깃줄 위에 앉아

다리를 벌린 곳에 위치한 것을 물어대는 원초에게 감전 되가는 창백한 새벽이다

모든 것을 놓아주기 쉬운 시각

넓은 곳에서 겪는 범람하는 기억의 폐쇄공포증

당신과 나는 금붕어처럼 가만히 널브러져 떨었고

걷는 방법을 알게 될 즈음 다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

어쩐지 물 섞인 호흡이 당연해지는 순간은

가장 눈물을 뺨 씻어내듯 버리기 쉬운 순간

검은 하늘을 보면 내 동공 속으로

떨구는 담뱃재처럼 낙태당하는 독성들

이미지가 필요하면 한번쯤 뭔가를 죽였어야 하지

아니면 몰래 죽이는 척 담배를 빨며

가슴이 부셔지듯 내려앉는다 동공은 하얘졌다

만년설 같은 세상을 걸으며

산사태를 품은 내 눈이 보여요?

아무에게도 묻고 싶지 않았지만

어쩌다 마주친 시선

절망이 아니었어

하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건 아니었고

조금 초연하고 슬픔을 많이는 모르는 다정한 이였지

예언은 가능했지

입술을 침으로 트게 만들 것처럼

우린 오래 입을 맞대다 피가 좀 나면

철분만 넘치고 산소가 부족해 죽겠지

물속에서 키스를 하는 우리를 물고기와 피라냐 떼들이 구경하러 올 것이다

그들은 우리를 고매한 바니타스로만 기억할 것이지만

우리의 철분을 남김없이 먹는 이들이 그들이었으면

아니 결국 남겨진 그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우리가 피를 더 많이 뽑아 서로에게 헌혈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그들이 철분 과다 섭취로 결핵에 걸리도록

그래서 우리가 죽어서도 더 많은 피를 토해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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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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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증오가 습관이 되고

나는 추위의 순수한 음해를 알아, 유령같이 나를 사랑하는

부리를 하늘로 치켜든 뾰족탑 안, 고트족 마냥 야만적인 장식 새

고딕의 빛살이 펼쳐지는 곳에서 아직 순수히 떠는 나를 내던져줘

야만적인 신의 품에 한번이라도 닿으면

이 미움 받는 첨탑은 완벽한 기괴함으로 완성될 거야

비로소 생명력을 가진 채 아름답게 날아오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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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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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지어가 세탁기 뒤 먼지 속에 빠졌다

낯선 초인종이 울리고

나는 헐레벌떡 마지막 죽음의 기도를 하는데

모르는 사람들의 말소리는 항상 안에서 시작되고

그들은 다닥다닥 붙어 미사를 시작할 거라고 말했어

이 빵과 포도주를 다 먹으면

우리는 죽어서 구원받을 것이라고

이것은 복화술이 아니다

신성은 모두가 이해하는 도축

신 뒤에는 배고픈 이들이 감추어져 있다

정말로 저들은 웃으며 나를 죽일 작정이다

나를 죽이려는지도 모르고

내가 죽으면 또 누가 죽는지도 모르고

누가 죽으면 어떤 게 죽는지도 모르지

사실 알고도 우린 배가 고파서

죽이고 난 뒤에도 가죽을 벗기고 삶고 꾸며내며

모든 것을 느리게 죽이는 것이 구원인가

신의 시간이 가증스러워

지금 흐르는 나의 시간을 증오하고

저 초인종 소리가 어느새 멈췄다는 걸 깨달으면

신은 있더라도 없다는 것이 떠오르지

밤을 품은 낮처럼

달을 품은 파란 하늘처럼

해를 숨긴 밤하늘처럼

말 그대로의 이 모순처럼

어떤 것은 잊었거나 모르는 세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나를 알고도 모르도록 쓴다는 것

 

초인종 소리가 들리지 않는 밤이 되었어

내가 앉아 소리 없이 노래하는

창문 밖에는 도심의 반딧불이 떼가 있지

네 어두운 얼굴에 비춰지는

몇 개의 점 점 점

침묵하는

둥그런 빛무리들

넌 마치 빛으로도 눈물을 흘리는 것 같다

어째서 너와 닿는 건 죄다 눈물일까

너는 대답하지 않고

나는 달아나고 싶어지지만

너는 찬성도 반대도 없지

그래서 여기 있는 건 오로지 나 같다

그러니 여기 있겠다

이 어둠 속

 

그렇게 말하는 순간

형광등이 쉴 세 없이 깜박였지

그것은 소방차 위 빨갛게 깜박이는 경광등 같았어

경고였지

경고라고

깜박이는 형광등은 내게 말을 걸고 있었는데

나는 형광등 심을 빼버린다

죽은 형광등과 죽지 않은 나

고장이 난 건 너야

말하지 않는 형광등

고장이 난 건 너야 너야 너야

말하는 나

언어로 써진 모든 것들이 지옥불의 연료처럼 느껴지고

이곳은 지옥이야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는

심장이 담긴 종이들을 아무리 꺼내봤자

담배 빤 것처럼 검게 타들어가

어떻게든 장작이 되지 오해가 진실이 되지 감염이 전부가 되지

어쩌면 흰 것보다는

이 검은 것들이 진실에 가까울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거짓되고 싶었지

나는 죽어도 될 쓰레기가 아니고 싶었어

그러나 말할수록 어제보다 더 불어나는 지옥 속에서

어쩌면 나는 너보다 빨리 죽었어야 했다고

재빨리 다시 형광등을 끼우면

느리게 살아나는 초조한 형광등 불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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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의 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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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을 해부하면 타오르는

무지개처럼 핏방울이 솟아오른다

내 두 손가락은 비둘기처럼

살로 짜인 방주를 두드리고

잠시 그녀는 수줍게 열렸다가

날 내보내고 닫힌다

칭얼대는 아기처럼 첨벙대며

떠내려가는 그녀를 붙잡으면

해골의 눈 속 고인 물의 색기

원효처럼 빠져드는 틈에

물뱀이 조금 벌린 입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와 기도가 되어버린다

썩은 물 맛이 익숙해질 즈음

나는 기도를 바가지 긁듯 긁어 역류한다

토하면서 시간을 감으면 어느새 에덴

선악과 씨를 심는 신의 천사들

사과처럼 벌거벗었다

물과 볕이 씨눈에게 음탕하게 젖어드는 순간

사과 표면을 핥고 깨물며 식물 아래에 시체를 묻었다

그 시체는 흘러나온 즙으로 번들거리는

약지 손가락 한 개

그녀가 마지막 신음을 하고

세계를 덮은 양수가 말라가는 중이다

그녀에게서 삐걱이며 쏟아지는 것을

에리 직톤의 눈으로 관람한다

모두 메말라 죽을 것들

마셔버릴까

이 편이 긴 기도의 끝을 명확하게 할 텐데

고페르 나무 향이 나는 그녀의 몸통에는

지문이 지나간 자리마다 배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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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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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 아래 당신의 가죽은 정말 이상한 반짝임을 가졌다. 이끌려 다가갈수록 내 체온을 앗아간다. 그 반쯤 열린 눈은 비정할 정도로 나를 통과하고, 난 제발 당신에게 얼어 죽는 나를 봐달라고 소리친다. 무응답은 끓는 조바심을 일으킨다. 강한 바람을 헤쳐 차디찬 조각 같은 입술 안을 들여다보면 혀 위에 세워진 에덴이 있다. 그녀의 구취는 숨 막힐 정도로 신성하다. 난 나를 먹어치울 입구를 완전히 연다. 하나님이 보기 이로우시게 타락한, 아직은 흰 천사들이 자살을 하고 있군. 난 은밀히 배경에 휩쓸린 채 그녀와 같은 신성을 꿈꾼다. 내가 천사라면 당신은 나를 볼 수 있겠지. 그녀가 나를 볼 수 있게 눈이 오는 날 성당 이층 스테인 글라스 창을 열어주시길. 이름 모를 천사에게.

 

 

이어지지 않습니다. 제목을 느낌대로 정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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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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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발버둥 쳐보렴, 그 목소리는 꿈에서 들려왔다. 아침을 맞으면 비늘은 증오만큼 뒤덮인다. 자해하는 부분마다 아가미가 생긴 기분이니. 땅보다 더 깊은 곳에서 환청이 웅웅댄다. 그 주파수는 날 안다. 내 괴로움을 알아줄 곳은 땅보다 더 깊은 곳.

 

마녀를 불러봐, 해저 속에서 사는 그녀를. 이대로는 견딜 수가 없거나 있거나 없나. 다른 것을 생각하기도 전에

 

그녀를 찾았어, 면사포 같은 파도가 치는 벼랑 앞에서. 아이야, 바다 안에서 그렇게 살고 싶니. 거품은 네 숨으로 빚어지고 해초는 네 입천장을 다 헐게 할 건데. 대신 최후의 날, 물은 널 아름답게 박제할 걸. 네가 너를 더 많이 준만큼 빠르게. 엉겅퀴를 닮은 해초 같은 활자들이 마녀의 어지럽도록 고혹적인 로즈빛 눈에 깨진 자국으로 박혀 있다. 난 따가운 만큼 좋다고 말했다. 당신처럼 가시 달린 꽃이 되고 싶어요. 지금 것과는 다른 규칙으로 숨 쉬고 싶어요. 사금파리 같은 슬픔은 매력적이다. 난 감히 깨질 것도 없는 걸. 비교법으로 너를 잊는가, 너를 지우려 드는가

 

가여운 영혼아, 처음 듣는 목소리가 잠시 지느러미를 저릿하게 한다. 목소리를 주고 가진 생으로 말없이 객체계를 부유하면 플레게톤 색 해초들이 유난히 아름답다. 나도 저것처럼 아름다워야 해. 불가피하게 꼬리를 채찍처럼 유연히 휘두른다. 율동 한가운데에서 핏물이 솟았다. 그러나 멈출 수 없다. 지금껏 내가 원했던 걸 찾았어. 이곳에선 증오도 슬픔도 아름다울 수 있어.

 

상승이 시작돼, 꿈틀대는 두려운 시선 속에서 나는 홀로 불완전하다. 금빛 소용돌이를 그리며 해저에서 수면까지 헤엄친다. 위험한 햇살이 내 비늘을 완벽히 투과하는 걸 누구든지 봐야 해. 느린 물살에서 빠르게 탈출해 원의 자태를 뽐내는 순간

 

작살이 꿰여져, 원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다. 밤으로 잠긴 어류의 목젖에서 흡혈귀처럼 핏물을 빠는 너는 어쩌면 내 아가 내 사랑 나의 괴물. 성대부터 시작된 침묵은 몸 전체로 경련하며 퍼진다.

 

음성이 들린다. 아름답게 발버둥 쳐보렴, 구경하게. 작살을 사랑한 물고기들이여, 방금 한 말은 포말을 향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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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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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면 살기 위해 칼 위 춤추듯 걷습니다. 꽃을 밟으면 어디선가 우우우 소리가 나지요. 달을 본 늑대울음소리가 어둠 속을 비호하고 나는 습관적으로 도망칩니다. 밟은 장미의 비린내가 미소한 곳까지. 축축한 발목에는 덤불이 아파한 흔적이 흥건한데 꽃은 끝없습니다. 나도 너도 꽃인 걸 모를 정도로 저마다 다르게 피어 있어 나의 가시로 찔린 생들은 오늘 밤에도 모두가 저열한 아픔을 호소하네요. 아픔을 주지 않으려고 해도 줘 버린 아픔들이 서로를 시들게 하고, 시드는 힘은 첫 가시를 피우기 위해 쓰여 집니다. 스스로의 상처는 아기처럼 상처 속만을 굴러다니고 그 안에서 젖을 빨고 이따금씩 상처 내벽을 차고 건드려요. 그 안에서 터지는 젖의 맛은 그저 어제와 똑같은 슬픔이어서, 낮이 되면 모든 것은 자작극처럼 잊히고 맙니다. 분명 피핍 된 이들이 가진 황금비의 가녀린 숨은 아름다운 재앙일 것입니다. 왜 우린 비참히 헐떡대며 죽어가는 걸 미화하는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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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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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흘렸고 젖은 가슴을 물 묻은 휴지처럼 자르고 싶어졌다. 이 젖음은 결벽증 같은 두려움. 창피한 것들이 자성처럼 일어선 형체는 각종 구멍 속으로 쇳가루 먼지처럼 빨려들고 혓바닥에게 짠 통증을 준 그곳은 내 속에서 기어나온 혓바늘 같은 별이 못 박히는 자리 첫 치욕의 생리혈은 욕구하지 않았던 짠 맛 나는 언젠가부터 '짜다'와 '고통'을 분별하지 못하고 그나마 내 고통을 표현할 수 없어 기뻤다. 표현한 순간마다 죽고 싶어질 테니 정말로는 못 죽고 표현욕구의 가위 날 중간에 위치한 채 더 이상 자라날 수 없는 침묵으로 무언가를 사랑하겠지 가위로 사람의 목을 벨 수 있나요? 누군가 묻는다 더듬더듬 허공의 모가지를 연습하듯 자르며 대답 한다 기요틴은 섬세한 손동작이 아니어서 나와 어울리지 않아 섬약한 인간은 저렇게 한 번에 죽지 못하는 노을처럼 끊임없는 출혈을 겪는다 그런데 노을 지는 하늘은 너무 일렁이고 나는 갑자기 촛불인 것 같기도 한데 속이 울렁거려서 이거 어떡하지, 본질이 흐트러져서, 희미해져서, 더러워져서 더러운 피가 그을음 지는 부분마다 자르는데 이 휴지를 자른다고 될 일이 아닌가 마지막 컷, 나는 스스로가 난도질 해 빨간색으로 흥건한 가죽을 진리의 깃발마냥 흔든다 곡선 따위 없는 사각형의 이성은 방금 지나친 바람처럼 움직이는데 근데 어쩌지? 방금 본 그것은 마치 무쓸모한 쓰레기처럼 보여

 

 

오랜만이네요^^

다들 잘 지내셨는지 모르겠지만 잘 지내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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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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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 어느 날 그것이 팔을 삼켰다

나는 무감각하게 써 내렸다

어느새 활자가 종이의 흰 장막인 눈꺼풀을 들춰냈다

그 속을 최초로 목도하면 유리알 같은 눈이 있었고

흑연 같은 동공이 스스로의 눈알을 터뜨리려 했다

이것은 글이 아니다

그저 흔한 죽음이었고 나는 말렸다

칼 같은 펜을 뻗어 종이를 몇 번이고 그었지만

종이 대신 펜의 혈담만이 불어났다

어느 곳이든 그 눈은 몇 번이고 되살아난 것이다

산사나무 껍질, 땅, 천장, 돌 모든 것에 붙어 있었다

마치 서늘한 빛처럼 눈은 모순적으로 살아있었다

 

그 눈은 나의 이슬 같은 고통을 도색잡지 중독 환자처럼 원했고

내 혈담의 늘어남이 그가 바라는 제 존재의 쌓여짐이었다

 

잘린 종이의 날카로운 부분을 매만지면 그들의 끝에는 식은땀이 젖어 있었고

눈의 마지막 비명에서 창공처럼 파란 피가 튀겼다는 걸 알았다

마치 자연이 가진 에스파뇰 리즘의 마지막 핏줄처럼

그때부터 나는 고결한 눈을 쉽게 죽일 수 없었고

유리알 같은 눈, 그 거울이 세계가 아니라는 듯

처음부터 나는 그 눈이 있는 곳으로 가 그것을 파헤칠 수 없었다

그래, 눈 너는 미지 안에 갇혀 있으므로 불멸하고 신성하다

 

그래서 나는 눈과 증오에게 마지막을 고하려 길을 떠났다

동공과 흑연심이 처참히 뭉개지는 곳까지

움튼 미지를 시들게 하는 자유의 언어를 쓰기 위해서

 

도착한 모든 것이 차갑게 얼어붙은 땅은 온몸으로 기침을 하고 있었다

마치 결핵에 걸린 것처럼

대지의 입김을 맞으며 그곳에서 나는 아이슬란드의 거대한 눈을 보았다

내 뒤편을 도려낸 것처럼 새하얗게 뚜렷한 그 눈을 포착했다

순간 생각이 기화된 물방울처럼 떠올랐고 하늘에 그것을 적고 싶었지만

나의 영혼은 불 신성 했기에 쌓이는 눈 위에 글을 떨어트렸다

증오가 영원히 땅 밑에 갇혔고, 나는 물처럼, 오필리아 처럼, 백치마냥 웃었다

나는 못으로 가 잎맥을 그러안은 손으로

자신을 죽인 종이 한 다발을 흩뿌린 후

유해 가루처럼 일어나는 거품의 숭고함을 응시했다

증오, 그것이 나를 삼켰다

증오 끝에는 가장 큰 방관자인 내가 있다

이 악의 꽃들로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용서하노라

나 이제 스스로 단명할 나의 님만 있으면 완벽하리라

서로를 마주보고 굳어버린 필레몬과 바우키스처럼

한 날 한시의 죽어 나무가 된 채 그간 뿌려둔 증오로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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