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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칼의 전생은 지독한 슬픔을 지닌 인간이었을 것 어떤 손에 들리는 줄도 모르고 어느 황량한 밤 태동하는 해의 기운으로 누구든지 영혼을 바칠 테니 이 모든 것을 파괴해달라고 외치던 작은 소녀였을 것 그때 그대로 달이 추락해 소녀의 싸늘한 동공이 되었을 것

 

그러나 소녀의 영혼은, 그러나 소녀의 분노는 오직 한 사람의 몫이었으므로 어떤 이의 부조리가 되었다, 생각하며 나는 내게 온 이 어린 짐승, 이 불행을 키워내려 발버둥 친다

 

그러다 마당에 날을 심으며 네가 잊혀져 녹슬어 조각나기를 기다리다 어느 날 억지로 이름을 지어준다 사랑이라고

 

그래서 시인은 모두 칼춤을 췄던 이들이다 그러다 칼 위에서 내려가면 누운 땅이 세상을 가르는 거대한 칼날 같아 모든 것이 절반으로 보인다 그러다 목이 칼칼하면 갈라진 그림자에 고인 핏방울을 마신다 그러다 사슴이 보이면 허기에 심장을 찌르며 짐승의 피 색이 인간들처럼 새빨간 것에 전율한다

 

마지막은 나였다

 

어쩌면 내 심장은 내가 먹으려 살아온 인생이다 어쩌면 내 고통은 내가 마시려 버텨온 인생이다

 

그러다 연필이 칼처럼 보여 이 세상 모든 백지들을 건드릴 수 없을 지경 이 모든 것은 그저 상상이었다고 중얼대며 외면하는 실패자의 낯으로 가솔린 머금은 꽃처럼 환청 속을 달리다 동력 장치에 끼는 꽃줄기를 상상하며 터지는 차와 입 속으로 굴러 떨어지는 몇 방울의 짠 죽음을 상상하며 데이는 혓바닥이 쓰다가도 투명하게 없어지는 말들을 견딜 수 없어서

 

그래서 또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사랑한다고 검게 쓰며 그렇게 또 흰 것을 죽인다

 

그래도 내 살인은 차마 아름답지 않아 결백 했는가 완전 범죄는 어렵다고 생각하며 조각난 칼날들을 또 심었다 흙이 될 때까지 심을 것이다 더 이상 고통이 고통이 아니게 되는 날을 고대하며

 

그러나 그런 날은 죽을 날에만 존재할 것을 알고 있으므로 나는 지금의 날을 미리 사랑해보겠다 모래를 밟을 때 당신이 비춰진 유리창이 떠올라 뜨겁고 날카로웠던 날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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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버튼이 안 보이네요. 99년생이고 제 폰으로 했는데 오류 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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