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미쳐서
목록

나는 독서광입니다. 하루에 책 한 권은 꼭 읽는, 독서광이자 책상에 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놓는 수집광입니다. 언제부터 내가 책을 사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열세 살 스티븐 킹 소설에 빠져 한동안 대중소설을 읽다가 세계고전에 심취하고, 문학뿐 아니라 영화/미술/철학까지 두루 섭렵해 어느새 나는 책에 미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소설이 재미있어 글을 사랑하게 되었고 글을 쓰다 보니 다양한 책을 많이 읽게 되었지요. 자연스레 소설 쓰고 독후감도 쓰게 되더군요.

어느 날, <장정일의 독서일기>라는 책을 읽고 작가의 대단한 독서량에 경쟁심을 느껴 그보다 더 책을 많이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무식하게 하루 한 권은 꼭 읽으리라는 목표를 세우고 말았지요. 마음속에 욕심이 무럭무럭 솟아나면서 나는 미친 듯이 책을 끌어 모았습니다. 서점에서 책을 사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책상에 책이 한가득 쌓여있더군요. 천장을 가릴 정도로, 서른 권 아니 마흔 권이 넘는 책 더미가 터질 듯이 책상을 메우고 있었습니다. 수두룩하게 쌓여있는 책이 마치 높고 높은 돌탑 같았지요. 아니나 다를까,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루 한 권 다 읽는 일이 무리라는 걸 알면서도, 감당 못할 두꺼운 책을 한꺼번에 모아버린 것입니다. 소설에서 만화까지, 책상을 가득 메운 책이 취미와 재미를 넘어서 얼른 처리해야할 숙제, 짐 더미가 되었습니다.

나는 참 곤란해졌습니다. 이 많은 책을 언제 다 읽나? 너무 욕심을 부렸나? 오늘 한 권 다 읽으니 내일 한 권 쌓여있구나. 그러나 나는 걱정을 접었습니다. 수량이 많아도 늘 하던 대로 미친 듯이, 아니 미친 채로 읽으면 이런 책 탑쯤 금방 사라질 거라고. 그래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내내 책만 붙들고 있을 수는 없지만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읽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하루 절반을 책에 투자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300쪽짜리 책은 기본이고 800쪽이 넘는 두꺼운 책까지, 시 수필 소설 평론 잡히는 대로 읽고 또 읽었습니다. 밀린 책이 셀 수 없이 많은데 새 책을 또 읽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산더미 같은 책은 그대로더군요. 열심히 읽는다고 읽었는데 역부족이었던 겁니다. 책상 자리가 비면 그냥 놔두면 되는데, 못 참고 책을 빌려버린 것이지요. 덕분에 천장까지 쌓였던 책이 천장을 뚫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 꿈이 작가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책을 읽을 필요가 있나? 하고요. 상관없습니다. 작가가 되지는 않더라도 제대로 된 소설을 써서 꼭 책 한 권은 내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으니까요. 내 실력이 어느 정도 훌륭해지면 신춘문예나 신인상에 소설을 응모해볼 생각입니다. 이미 나는 몇몇 청소년문학상을 받은 적이 있거든요. 내 자랑은 그만하고 책 이야기로 돌아가서, 내 아둔함을 나무라봅시다. 하지만, 더 얘기할 게 있을까요? 책상은, 아니 책상과 천장과 바닥은 이미 책으로 뒤덮였고 집은 책으로 가득 찼습니다. 밀린 숙제처럼 나를 짓누를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충족감을 들게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나는 아무리 책이 쌓여도 읽고 또 읽을 것이며, 내 뇌가 터질 때까지, 늙어서 죽을 때까지 책을 읽을 거라는 걸.

나는 오늘도 반납기한에 시달려가며 책을 읽습니다. 한 권, 두 권, 백 권, 만 권……

 

목록
검은 바다
목록

물고기가 살고 있어요

말 없는 물고기가

이름도 없고 기억도 없는 바다에서

살고 있어요 소리없이.

물고기는 봅니다 반대편 바다에서

자유로이 헤엄치는 갈매기를

소리도 없고 추억도 없는 물고기는 봅니다 언젠가

바다 반대편으로 날아오를 꿈의 그 날을.

그래요 물고기는 잡힙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웃음 짓는 어부의 쇠창살 속으로

들어갑니다 물고기는 세상으로 나오고

소리 없이 트럭에 실려 침묵 없이 시장에 팔려

나갑니다 검정 비닐 밖으로

번뜩이는 칼날이 기다리는 반짝이는 비늘에게로

다시 눈을 뜨면 물고기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아무것도 만질 수 없는

캄캄히 잠들은

물고기가 살고 있어요 지구 반대편 차가운 물속에.

 

 

목록
오솔길
목록

2017. 12. 14

 

 

나는 이탈로 칼비노를 올해 초순에 처음 만났다. 도서관에서 잡지를 펼쳐읽고 있었는데 유독 눈에 들어오는 광고가 보였다. 민음사가 이탈로 칼비노 전집을 냈다는 것이다. 나무위의 남작, 우주만화, 팔로마르 등 이탈로 칼비노 소설이 총 열한 권으로 구성되어있었다. 작가 연보를 보니 아무래도 전집은 아닌 것 같았다. 이탈로 칼비노의 다른 책으로 <왜 고전을 읽는가>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 선집을 간절히 읽고 싶다는 욕망에 붙잡혔다. 무지개 색으로 반짝이는 표지 때문이기도 했고,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 ‘우주만화’란 독특한 제목이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열한 권 전부 사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기 때문에 빌리는 수밖에 없었다. 한권씩 사자니 집안에 혼자 남을 한권에게 미안했다.

집 근처 도서관에 이탈로 칼비노를 눈 씻고 찾아봐도 없어서 아버지께 부탁하기로 했다. 아버지 직장이 대학교라 마음껏 대학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수 있었다. 나는 그 점을 이용해 자주 책을 신청했고 그날도 내가 주문한 책을 손에 넣었다. 그렇게 내가 처음으로 읽은 이탈로 칼비노 소설은,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이었다.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 듣자마자 환상적(fantastic)인 제목이라 생각했다.

 

 

공모전에 올리려다가 만 글이다. 주제가 '오솔길'인데 나에게는 오솔길과 엮인 기억이 하나도 없다. 애써 짜낸 오솔길이 소설 제목 오솔길이라니, 참 한심하기도 하지.. 하면서 썼는데 어떻게 글을 맺어야할지 막막해져서 관두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제가 '오솔길'인 수필은 나에게 맞지 않았다.

내가 요즘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공모전에 연달아 떨어지고 소설도 못 쓰고 있고.. 책은 많이 읽는데, 성과는 언제 나올까. 연말이라서 그런지 마땅한 공모전도 나오지 않는다. 내년엔 글을 미루고 미뤄 공모전 마감일을 넘겨버리는 짓 따위 하지 말아야겠다.

목록
10년 후의 나와 머리카락
목록

2017. 11 ~ 2018. 1

 

 

두 번째로 머리를 기른다. 첫째는 타의에 의해서, 둘째는 자의에 의해서다. 내가 머리를 기르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결같은 머리 모양이 지겨워, 염색을 못하니까 머리라도 길러, 어떻게든 머리카락에 변화를 줘보자는 심정으로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지금은 짧은 편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내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내려와 풍성해질 것이다. 그러고 보니 첫 번째로 머리를 기른 지 십 년이 되어간다. 한 아홉 살인가, 식구들의 권유로 나는 별 생각 없이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아픈 사람, 병든 사람, 머리카락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모발을 기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증이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나는 내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기쁨에 무작정 머리를 길렀다. 머리 기르는 일은 참 별거 아니라고,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남자가 머리 기르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모르고 있었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머리가 길면 여자, 머리가 짧으면 남자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나는 내가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부정했지만, 길을 가다 짧은 머리를 한 사람을 보면 무조건 남자라 인식하게 된다. 이런 의식과 관념은 아주 옛날부터 비롯된 것이고 우리 머릿속 깊이 내재해있는 거라,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 머리 기른 남자에게 머리는 여자만 기르는 것인데, 왜 네가 기르냐 물어오면 불쾌해질 수밖에 없다. 머리가 길어서 여자로 알았다고 하거나 화장실에 들어가다 깜짝 놀라 나가라 하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당황해하고 부끄러워하게 된다. 나는 길고 긴 몇 년 동안 그런 일을 숱하게 겪어왔다. 남자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낯선 아저씨들이 “공주님은 저기로 가야지” “니 여자고 남자고?” 하고 말을 건네면 한없이 창피해지곤 했다. 별로 크게 의식할 일도 아니고 그들의 반응도 당연한 것이었는데, 왜 그렇게 민망했는지 모른다. 중년 남성에게 대들 수도 없었다. 여자 아니라고, 남자라고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매번 반복되는 사람들의 반응이 두려웠다. 그래서 소변도 눈치봐가며 봐야했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냥 나오기 일쑤였다. 물론 한참동안 소변기에 서서 소변을 보지 못하는 나의 행동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아주 나쁜 습관이었다. 남들에 대한 두려움, 피해의식 때문에 그런 버릇이 더 심해지지 않았나 유추해볼 뿐이다. 피해의식이 생길 이유도 없는데 말이다. 그런 일이 계속되자 나는 남자화장실을 꺼리게 되었다. 대신 여자화장실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여자화장실에 들어가면 상관하는 사람도 없고, 아주 편하게 볼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남자화장실엔 아저씨, 청년, 청소부 등 간섭하는 사람이 많지만 여자화장실엔 그럴 사람이 없었다. 모두 같은 여자 대하듯 지나쳤다. 오히려 편했다. 여자가 아닌데 여자화장실에 간다는 사실이 처음 얼마간은 어색했으나 익숙해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머리를 기른 뒤 나는 길을 갈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여자애’ 소리를 들어야했다. 낯선 여자아이 둘이 나를 보면서 귓속말로 키득거리고, 식당 주인 할머니가 정말 남자 맞냐고 내 사타구니 부분을 더듬기도 했다. 지인을 만날 때마다 여자 같다는 말을 들었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 모두 나를 여자로 봤다. 나는 화내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사람들이 나를 여자로 대할 때마다 대들고 싶었고 화내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소심한 나는 또박또박 여자가 아니라고 설명해줄 용기조차 없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참고 지나갈 뿐이었다.

 

나는 남자가 머리 기른다는 사실이, 아니 내가 머리 기른다는 사실이 뿌듯하지 못했고 지긋지긋하기만 했다. 거울에 비친 나는 영락없는 아홉 살 여자아이였다. 어깨도 넓지 않고 수염도 없는 앳된 나는 누가 봐도 여자아이의 모습이었다. 내 정체성에 혼란이 온 것이었을까? 한창 예민할 시기에,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어, 아니 분명 나는 당당한 남자였는데 타자의 착각이 나를 헷갈리게 한 것이었을까?

 

처음엔 이발비를 아끼려 머리 기르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모발 기증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나는 누구를 위해 머리를 기른 걸까? 아픈 사람들을 위해? 머리를 기르라는 부모님을 위해?

 

 

9년이 지난 지금 나는 나를 위해 머리를 기른다. 기증하려 기르는 것도 이발비를 아끼려 기르는 것도 아니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이것 하나뿐이다. 아홉 살 머리 기른 소년과 달리 열여덟 살 머리 기른 청년을 본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목록
봉사활동 간 날
목록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10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직 가을임에도 불구하고 냉혹한 추위는 온몸을 으슬으슬 떨리게 만들었고, 쌀쌀한 바람은 마음속 빈 공간을 싸늘하게 훑고 갔습니다. 교회에서 봉사하시는 분들이 저와 형 누나에게 노숙자 식사 배급 봉사를 부탁해 지하철을 타고 가는 중이었습니다. 바깥의 풍경은 시리도록 황량하기 그지없었지요. 지정된 장소에 도착했더니 입구에 노숙자분들이 와글와글 모여 있었고, 계단을 따라 주욱 내려가니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아, 반가워. 저기 가서 앞치마 입으면 된단다.”

이곳에서 늘 봉사하시는 아주머니가 말했습니다. 저희는 초록색 앞치마를 두르고 길쭉한 장화를 신은 다음 노숙자분들이 들어오길 기다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노숙자분들은 줄지어서 우루루 들어왔지요. 저는 서둘러 그릇을 가져다놓기 시작했고, 아주머니들은 노숙자분들에게 식사를 부지런히 배급했습니다.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자 식당 안은 저절로 따뜻해지기 시작했고,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차갑던 체온이 따뜻하게 올라갔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움직임은 늘어나고, 저는 앞치마가 흠뻑 젖은 것도 잊은 채 컵을 정리했습니다. 국그릇, 밥그릇을 갖다 놓고 컵은 충분히 찼다 싶으면 통째로 가져가 드리곤 했지요. 옆에서 함께 봉사하는 아저씨가 컵 갖다놓는 요령도 가르쳐주셨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제 몸은 땀으로 젖었고, 노숙자분들의 움직임도 차츰 뜸해졌습니다. 끝날 때가 된 것이지요. 각자 뒷정리를 하고, 고무장갑을 벗어 걸어놓고, 손을 깨끗하게 씻어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노숙자분들도 떠날 채비를 끝마쳤고요. 저희는 곧장 집에 갈 준비를 했습니다. 봉사하시는 분들은 서둘러 앞치마를 끄르고는, 기념으로 함께 사진을 찍자며 모였습니다. 저희도 그 가운데 끼어들어 기념사진을 한방 멋지게 찍었지요. 찰칵! 사진 속에 봉사하는 사람들의 따스한 얼굴이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끝나고 나자 한 아주머님이 식사를 하자고 하시는 바람에 얼떨결에 따라가서 시원한 국밥 한 그릇을 뚝딱 들이켰습니다. 그때만큼 국밥이 맛있었던 적이 있나 싶습니다. 후루룩 다 마시고 나니 온몸이 봄처럼 따뜻해졌지요. 밖으로 나오자 하얀 구름 같은 입김이 뿜어져 나왔고, 저희들은 지하철로 내려가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그 뒤에도 저희는 가끔씩 봉사를 하러 갑니다. 어떤 땐 밥솥을 씻고, 어떤 땐 식판과 수저를 빠른 속도로 씻어내지요. 노숙자분들은 부지런히 밥을 가져가 드시고, 저희는 다 끝나고 나면 개운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갑니다. 비록 갈 때는 추위가 엄습하지만, 올 때는 훈훈한 감정이 마음속 한 자리에 자리 잡고 있기 마련이지요. 뭐랄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애틋한 정이랄까요. 그런 마음이 저희와 노숙자분들, 봉사하시는 분들의 마음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기분입니다.

목록
결혼에 관한 단상
목록

2017. 7

 

어렸을 때 어른이 되면 결혼하리라 마음먹은 적이 있었다. 애도 낳아 알콩달콩 잘 살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부모님이 그랬으니 나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섯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두 명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만약 낳게 되면 어떤 이름을 지어줄까 하며 다소 유아적이고 섣부른 상념을 품은 것 같다. 그러나 그런 환상은 산산조각나기 시작했다. 내가 결혼할 이유도 없고, 결혼하란 법도 없고, 결혼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결혼한다 해도 애를 낳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없을 일이었다. 내가 낳은 자식이 내 가족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내가 첫째를 낳으면 내 형제의 첫째처럼 될지 모르고, 내가 둘째를 낳으면 내 형제의 둘째처럼 될지 모른다는 끔찍한 환상. 내 자식이 한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부모를 원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나는 왜 사람들이 결혼하는지 알지 못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 해서 그 사람과 결혼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자식을 갖고 싶어서? 단지 그 사람과 동거하고 싶어서? 그 사람과 더 깊게 사귀고 싶어서?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자주 만나고 연락하고, 부족하면 동거하면 되지 왜 '결혼'을 하려는 것일까? 결혼하지 않은 상태의 사랑과 결혼한 상태의 사랑은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떤 결과를 빚어내는 걸까. '동거'와 '결혼'은 무엇이 다른가? 단순히 법적 관계가 맺어지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한 번의 결혼식 때문만도 아닐 것이다. 결혼하지 않고서도 사랑은 할 수 있고 결혼하지 않고서도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결혼을 하는 것일까? 아무래도 지금의 내가 고민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이에 관한 책을 열독하면 사랑이라는 감정에 관해 상세하게 알 수 있겠지만, 에리히 프롬이 말했듯이 사랑은 기술인지 나는 생각해봐야한다. 사랑은 기술이 아니다. 사랑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수많은 철학자가 주체니 지성이니 사고에 대해서 논쟁을 하지만, 어떻게 해서 사랑이라는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사랑은 인간의 영역에서 벗어난 하나의 세계일 것이다. 그 세계는 우리가 아는 우주보다 넓고, 우주 너머 세계보다 넓은 감정일 것이다.

 

 

 

2017. 9. 25

 

결혼은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사랑을 더욱 입증하기 위한 사랑 고백이자 가정으로 들어가는 입사식 아닐까?

 

 

 

2017. 12. 25

 

위의 두 글은 너무 두서없이 쓴 것 같다. 옆길로 샌 것 같기도 하고 궤변 같기도 하다. 이 단문에 새 글을 추가하며 재고한다. 결혼은, ‘결혼’이라는 말 자체로 사람들이 하는 것일지 모른다.(이런 추정형 문장을 자주 쓰는 이유는 모든 것이 가변적이고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결혼이라는 절차/예식/입사식을 통해서, 비록 그것이 한순간의 장식이고 감흥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결혼을 함으로 서로의 사랑을 더 확인하고 또 가정으로 들어가려는 것이 아닐까 하고 다시 생각해본다. 결혼은 참 기묘한 것이다. 결혼을 한다 해서 더 행복해질지 불행해질지 알 수 없고 골치만 아파질 수 있는데, 남녀가 열렬히 사랑하면 대체로 결혼을 결심하니까. 물론 21세기 들어서 반강제적 결혼제도도 줄어들었고 법적으로 엉키기 싫어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부부도 많아졌다.

사실 나는 아직 이런 말을 할 자격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 적도 결혼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이 생각들은 그저 하나의 짧은 감상에 불과하다. 앞으로 결혼할지 안 할지 모르는, 연애만 할지도 모르는 내 무지한 생각이다.

 

 

목록
글틴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목록

글틴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제가 어제 올린 시 '글쓰기'로 물의를 일으켜 글틴 회원 여러분께 불쾌감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타인에게 불쾌감을 심어주지 않을까, 제가 이 시를 올리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저의 무분별한 행동이 아주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글틴 여러분께 사과드리는 바입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 혹시 제 글을 오해하고 계실까봐 한 가지 말씀드리려 합니다. 저는 이 시를 장정일 시인의 <늙은 창녀>를 읽고 영감을 받아서 썼습니다. <글쓰기>의 화자는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저는 글쓰기가 어떤 면에서 볼 때 자기 자신과 분투하는 일, 싸우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작중 ‘그녀’는 화자에게 말 그대로 사람이 아닌 ‘글’을 뜻합니다. 화자의 ‘손’ 또는 ‘손가락’은 타자(컴퓨터, 타자기 혹은 노트북) 칠 때의 손가락을 의미하고, 계속해서 등장하는 효과음 ‘퍽’은 타자 칠 때의 ‘타닥’을 상징합니다. 요컨대 화자는 글쓰기를 하면서 자기 자신과 분투하는 것입니다. 글을 쓰는 작가가 어떻게 자신의 글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싶은지, 얼마나 글을 쓰려 고심하는 것인지 성(性)적인 상징으로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표현이 과격하고 거칠어 회원분들께 안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점 깊이 반성합니다.

또 한 가지, 저는 이 시를 씀으로 제 성욕을 분출하려 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성욕을 분출하려면 굳이 이 사이트에 할 이유가 없습니다.

글 쓰는 사람은 누구나 표현의 자유가 있습니다. 이 사이트에서 ‘이러이러한 선정적인 글은 금지한다’고 명기되어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제가 이런 글을 올려 타인을 불쾌하게 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자 잘못인 것입니다. 저는 이 시에 ‘선정적인 것’ 또는 ‘폭력적인 것’에 목적을 두고 쓴 것이 아닙니다. 작중 성적인 표현들은 시적 의미를 표출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저는 이 글이 시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 자체는 잘못이 없습니다. 저의 행동이 잘못된 것입니다. 저는 게시판에 어떤 글이든 올릴 자유가 있으나 글틴 여러분의 기분을 나쁘게 할 권리는 없습니다. 시를 올린 것 자체가 잘못이 아니라 시를 올려 문제를 만든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제가 이 글을 올린 목적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글틴 선생님께 조언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물의를 일으킬 수 없어, 안타깝게도 어쩔 수 없이 <글쓰기>를 지워야 했습니다.

이러한 제 생각이 변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글이 제 욕망을 드러내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는 걸 꼭 밝히고 싶었습니다. 이점 양해해주시기 바라며, 글틴 여러분께 불쾌감을 드려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목록
2018년에도
목록

나는 살면서 한번도 사귀어본 적이 없어
사귀지 못한 사람만이 이 마음을 알 거야
이런걸 흔히 모태솔로라고 하더군 나도 알아,
사귀려면 멋있어야 하고 잘 꾸며야겠지
멋있게 꾸미려면 돈이 필요하겠지 돈을 가지려면
돈을 벌어야겠지 돈을 벌려면 얼른 커야지
무럭무럭 자라서 독립을 해야겠지 독립을 하려면
가족의 품에서 벗어나야겠지 그러려면 돈을 벌어야겠지
돈을 벌고 벌어서 차넘칠 때까지 벌어서
보란듯이 자랑해야지 식구들 비웃으며 독립해야지
나 혼자 살면 한결 자유로울 거야 한결 편안할 거야
간섭하지도 따지지도 잔소리하지도 아무 소리도
들을 필요없어 아무도 없으면
사귈 수 있겠지 친구도 우정도 가족의 사랑도
집어치우고 사람을 사랑해야지 자유를 사랑해야지
지긋지긋해서 벗어나고 싶어, 다 치우고 싶어
몇 년만 기다리면 될 거야 조금만 기다리면
내가 원한 것 사랑하는 것 얻고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모두 이룰 거야
아무도 오지 말라지, 나는 나 혼자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 받아야지

이곳은 여섯 명이야, 나 더하기 여섯은 일곱이야
그런데 말이지 이 지옥 같은 걸 빠져나간다 해도
진정 네가 원하는 자유를 만질 수 있을까?
어디에도 진짜 자유는 없어 자유는 희망일 뿐이야 그저 덜 종속될 뿐이야
그런데도 왜 난, 나가고 싶어하는 걸까 무엇을 위해
오직 날 위해? 나는 사랑 받고 싶은 거야 사랑은
사랑하는 것보다 사랑받는 게 더 좋아 나는 사랑받고 싶어 그러나
이미 사랑받는데도 저기 길가에 거지를 봐 너처럼 사랑 많이 받니
난 만족하지 못하는 거야 사람들은 만족할 수 없는 거야
여기가 좋은 곳인데도 난 가고 싶은 거야 그냥 무작정
어디론가 가버리고 싶은 거야 어디든가 상관없이 어디든

나는 사람에 고프고 자립에 고프고 돈에 고프지만
사랑만은 고프지 않았으면 – 싶은 거야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일 테지 그래 난

이런 보잘것없는 소망이라도 품어야 조금이라도

안정하는 것일 테지 그래 난

목록
낙타는 바늘귀에 들어갈 수 없다
목록

내가 교회에 다닐 때 집사님이 가장 자주 하던 말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게 더 어렵다’였다. 거대한 짐승 낙타가 어떻게 바늘귀를 통과할 수 있을까? 몸통을 줄여서? 몸속의 물통을 비우면 배가 홀쭉해져 바늘귀보다 작아지는 것일까? 집사님의 말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그렇게 힘들다는 것이다.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한 일인데, 어떻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니? 부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단다. 평생 욕심만 채우다 지옥으로 떨어지기 십상이지. 그러니 여러분도 꼭 가진 것을 이웃에게 나누어주고 서로서로 돕고 살아야 해요. 알았죠? 부자가 되는 건 좋지만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답니다.

 

아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예, 하고 대답했다. 어린 나도 그렇구나, 역시 성경의 비유는 참 대단하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너무 교회 전통만 맹신하며 살았는지 모른다. 퀴즈대회가 열리면 참석하고 유치부 공연을 기획하면 또 열심히 참여하고, 비록 성경공부는 소홀히 했지만 나름 즐거운 마음으로 교회를 다녔다. 물론 투철한 신앙심을 가지고 예수를 믿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람들과의 교류, 즉 사회생활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유치부를 졸업했고, 나이에 비해 늦은 편이었지만 중등부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중학생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었지만, 내 성격이 몹시 소심하고 우유부단해 중등부 안에서 가장 조용한 청소년이 되고 말았다. 선생님과 중등부 학생들이 모여 스케이트장에 놀러갈 때도, 나는 하릴없이 침묵에 잠겨있었다. 남자애들과 여자애들이 어울려 행복하게 대화하고 있을 때 나는 자꾸 서먹하게 행동하는 것이었다. 웃음도 나오지 않고, 누군가 어깨를 툭 치며 농담할 때만 어색하게 미소 짓고, 먼저 얘깃거리를 꺼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지도 않았다. 그저 선생님이 얘기하면 선생님 따라 친구가 얘기하면 친구 따라 갈 뿐이었다.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서 그런지 소변만 차올랐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물거리기만 했다. 그러다 친구 하나가 물이 든 자신의 컵에다 콜라를 들이 부었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지르고 말았다. 무슨 짓이야?

 

세상에 물과 콜라를 섞어 마시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그 친구의 행위가 너무나 어처구니없게 느껴졌던 것이다. 친구는 깜짝 놀라 웃으며 “왜 그래? 네가 그러는 거 처음 봤어.”하고 말했다. 평소에 아무 말 없던 내가 감정을 드러내자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다른 아이들도 어이없지만 재밌어하는 얼굴이었다. 알고 보니 그 물은 물이 아니라 사이다였던 것이다. 사이다와 콜라를 섞어 마시는 건 청소년들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괜히 착각해 친구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았던 것이다.

 

큰일이 아니어서 ‘물 콜라’ 사건은 조용히 지나갔지만, 나는 차마 “물이 아니라 사이다였구나. 착각해서 미안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말할 기회가 지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는 내 실수를 털어놓을 만큼 자존심이 조절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의 가장 큰 단점은 자존심인지도 몰랐다.

 

 

나는 스케이트를 잘 못 탄다. 스케이트장에 갈 때마다 내게 맞는 신발을 찾지 못해 뒤뚱거리기 십상이다. 오래전 가족들과 스케이트장에 갔을 때 실수로 작은 신을 골라 애먹은 적이 있었다. 아주 꽉 끼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조여서 불편했는데, 그 때문인지 스케이트를 타다 앞으로 넘어져버린 것이다. 얼굴은 다치지 않았지만 팔꿈치와 손바닥이 긁혀 한동안 붕대를 감고 다녔었다. 중등부 모임에서도 나는 신발을 잘못 골라버렸다. 내 발 크기는 255 정도였는데 그만 265를 받아버린 것이다. 친구들이 너도나도 265를 신자 나도 얼떨결에 265가 맞는 건가 보다 싶어 그렇게 신은 것이었다. 선생님이 크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내 발 치수를 몰랐기 때문에 맞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어기적거리며 스케이트를 끌고 가는 나와 선생님은 부딪혀 쓰러지고 말았다. 맞는 신발을 신었어도 제대로 못 탔을 것은 분명하지만 내가 엉덩방아를 찧은 것은 선생님이 둔했기 때문이었다. 싱싱 잘 타고 다니는 애들을 보며 약간 울적해진 나는 나와 같이 스케이트 못 타는 선생님을 위안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내내 욱신거리는 엉덩이를 문지르긴 했지만 말이다.

 

 

그때 나는 난생처음 짝사랑이란 것을 하고 있었다. 단발머리에 안경은 쓰지 않았고 쾌활하지만 수줍음을 많이 타는 여자애를 나는 남몰래 좋아하고 있었다. 내 눈에 그녀는 참 잘생긴 사람이었나 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못생긴 얼굴도 잘생긴 얼굴도 아니었는데 무엇이 그토록 좋았는지 모른다. 나는 그녀가 분반활동을 하러 자리에 앉을 때마다 슬며시 뒤에 앉곤 했다. 남들처럼 멋있게 사귀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머릿속에 그저 ‘좋아하는 마음’만 가득 들어있었나 보다. 그런데 좋아하는 여자애 앞에서 넘어지는 추태를 보이다니. 잠자리에 들었을 때 속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스케이트를 잘 타지도 못하고, 선생님과 뒤엉켜 고통스럽게 엉덩방아를 찧다니. 그래도 내 마음을 부풀어 오르게 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사진기 속 그녀의 사진이었다. ‘물 콜라’ 사건이 일어나기 전 나는 사진기를 꺼내 막상 가져왔으나 쓸 데가 없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사진 찍을 사람 없냐고 묻자 그녀가 불쑥 찍어 달라 한 것이다. 그녀는 사진 찍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고 했다. 환하게 웃으며 손가락을 펼쳐 보이는 그녀를 나는 놓치면 사라질세라 서둘러 찍어댔다. 집에 돌아와 컴퓨터에 사진을 저장했지만 그 사진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지금은 모른다. 내가 별 의미 없는 추억 쪼가리로 여겨 삭제했는지 문서를 정리하면서 의도치 않게 버렸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그 사진을 자꾸 봐서 그런지 아직도 그녀의 얼굴이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다. 빨간 옷을 입고 행복하게 미소 지었던 여학생. 그녀를 향한 애정은 한순간일 뿐이었다.

 

 

새해를 맞은 우리 식구는 이사를 해야 했다. 부모님의 사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내키지 않더라도 이사를 가야만 했다. 내 고향은 창원이었지만 두 살이 채 되기 전 포항으로 떠났기 때문에, 사실상 고향이 포항이었다. 포항에서 오랫동안 살아 정이 들었는데 갑자기 충북으로 떠나고 대전에 왔다 부천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기분이 씁쓸한 건 사실이었다. 이제 막 정착해 안정적인 생활을 보내려 했는데…….

어차피 이런 감정은 한번 겪어봐서 아무렇지 않을 거라 다짐했던 나는 교회에서 적잖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사하기 전날 마지막으로 교회에 간 나는 막장드라마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다.

“얘들아, 기쁜 일이 있어. 우리 반 미은이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단다!”

“네? 선생님 정말요? 미은이 너 대단한걸!”

“뭐 그런 걸 가지고…….”

 

남들은 대개 이런 말을 들으면 속상해 죽겠다거나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징징대지만, 나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러려니, 그녀의 상냥함으로는 얼마든지 이성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어느새 시들어져 버린 마음을 감춘 채 교회를 나왔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한마디 말도 나누지 못한 채 헤어졌다.

나는 그 일 때문에 그녀에게 배신감을 느꼈다거나 교회에서 싫증을 느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교회의 관습인 율동과 유치찬란한 예배 활동이 때때로 지루했을 뿐 절대 큰 반감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부천에 있는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의 몇몇 제도가 달랐지 나의 행동은 한결같았다. 친구들과의 어색한 만남, 어른들과의 부자연스런 인사. 단발머리 여자애를 향한 짝사랑.

새 교회는 표면적으로 달라보였지 전 교회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내가 간 교회는 모두 비슷비슷했다. 나는 또다시 이사를 갈 것이고 그립지도 않은 곳을 떠날 것이고 서먹했던 사람들과 작별할 것이다. 한마디로 감흥 없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나는 교회를 무슨 마음으로 다니는 것일까. 신앙심 깊은 부모님에 비해 나는 종교에 관심이 없었다. 부모님이 가는 곳이라면 무념무상 따라갈 뿐이었다. 허무했다. 어느 곳이든 한 지역에 정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소박한 꿈을 따라주지 않는 운명이 원망스러웠지만, 그것이 정말로 내 진심인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학교에서 그저 그런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일상은 예상대로 한결같았다. 변한 것이라곤 커진 내 몸뿐이었으니까.

어느 날 식탁에 앉아 부모님과 성경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물론 대화의 주제는 내가 아닌 부모님이 꺼낸 것이었다. 나는 무심코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낙타와 바늘귀 이야기’를 꺼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빌 게이츠가 열심히 기부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꾸준히 사회를 위해 봉사하면 바늘이 점점 커져 낙타가 바늘귀를 손쉽게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부자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아버지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비유라고 설명했다.

“바늘귀는 우리가 쓰는 바늘의 바늘귀를 말하는 게 아냐. 옛날 중동 지방에 바늘귀라는 문이 있었는데 낙타 주인이 낙타를 데리고 통과해야할 때가 있었지. 그 바늘귀라는 문이 엄청 작았다 하더라고. 낙타 같은 큰 짐승이 지나가기엔 너무 작았던 거야. 사람들이 자꾸 오해하는데 바늘귀가 그 바늘귀가 아니란 말이지. 바늘귀는 문 이름이라고.”

 

나는 그제야 그 빌어먹을 교회에서 오랫동안 속아왔다는 사실을, 미치도록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목록
수정 부탁드립니다
목록

늦게 문의드려 죄송합니다. 제가 예전에 형제 계정으로 활동할 때 '귄터 그라스 <게걸음으로>와 세월호' '당신이 제목을 지을 수 있다' 두 편이 월장원이 되었는데, 월장원 처리(글틴 명예의 전당)가 되어있지 않아 수정 부탁드립니다. 또 '게걸음으로'는 닉네임이 '탈퇴 회원'으로 되어있는데 neo로 바꿔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