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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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제가 어제 올린 시 '글쓰기'로 물의를 일으켜 글틴 회원 여러분께 불쾌감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타인에게 불쾌감을 심어주지 않을까, 제가 이 시를 올리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저의 무분별한 행동이 아주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글틴 여러분께 사과드리는 바입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 혹시 제 글을 오해하고 계실까봐 한 가지 말씀드리려 합니다. 저는 이 시를 장정일 시인의 <늙은 창녀>를 읽고 영감을 받아서 썼습니다. <글쓰기>의 화자는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저는 글쓰기가 어떤 면에서 볼 때 자기 자신과 분투하는 일, 싸우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작중 ‘그녀’는 화자에게 말 그대로 사람이 아닌 ‘글’을 뜻합니다. 화자의 ‘손’ 또는 ‘손가락’은 타자(컴퓨터, 타자기 혹은 노트북) 칠 때의 손가락을 의미하고, 계속해서 등장하는 효과음 ‘퍽’은 타자 칠 때의 ‘타닥’을 상징합니다. 요컨대 화자는 글쓰기를 하면서 자기 자신과 분투하는 것입니다. 글을 쓰는 작가가 어떻게 자신의 글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싶은지, 얼마나 글을 쓰려 고심하는 것인지 성(性)적인 상징으로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표현이 과격하고 거칠어 회원분들께 안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점 깊이 반성합니다.

또 한 가지, 저는 이 시를 씀으로 제 성욕을 분출하려 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성욕을 분출하려면 굳이 이 사이트에 할 이유가 없습니다.

글 쓰는 사람은 누구나 표현의 자유가 있습니다. 이 사이트에서 ‘이러이러한 선정적인 글은 금지한다’고 명기되어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제가 이런 글을 올려 타인을 불쾌하게 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자 잘못인 것입니다. 저는 이 시에 ‘선정적인 것’ 또는 ‘폭력적인 것’에 목적을 두고 쓴 것이 아닙니다. 작중 성적인 표현들은 시적 의미를 표출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저는 이 글이 시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 자체는 잘못이 없습니다. 저의 행동이 잘못된 것입니다. 저는 게시판에 어떤 글이든 올릴 자유가 있으나 글틴 여러분의 기분을 나쁘게 할 권리는 없습니다. 시를 올린 것 자체가 잘못이 아니라 시를 올려 문제를 만든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제가 이 글을 올린 목적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글틴 선생님께 조언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물의를 일으킬 수 없어, 안타깝게도 어쩔 수 없이 <글쓰기>를 지워야 했습니다.

이러한 제 생각이 변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글이 제 욕망을 드러내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는 걸 꼭 밝히고 싶었습니다. 이점 양해해주시기 바라며, 글틴 여러분께 불쾌감을 드려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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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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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면서 한번도 사귀어본 적이 없어
사귀지 못한 사람만이 이 마음을 알 거야
이런걸 흔히 모태솔로라고 하더군 나도 알아,
사귀려면 멋있어야 하고 잘 꾸며야겠지
멋있게 꾸미려면 돈이 필요하겠지 돈을 가지려면
돈을 벌어야겠지 돈을 벌려면 얼른 커야지
무럭무럭 자라서 독립을 해야겠지 독립을 하려면
가족의 품에서 벗어나야겠지 그러려면 돈을 벌어야겠지
돈을 벌고 벌어서 차넘칠 때까지 벌어서
보란듯이 자랑해야지 식구들 비웃으며 독립해야지
나 혼자 살면 한결 자유로울 거야 한결 편안할 거야
간섭하지도 따지지도 잔소리하지도 아무 소리도
들을 필요없어 아무도 없으면
사귈 수 있겠지 친구도 우정도 가족의 사랑도
집어치우고 사람을 사랑해야지 자유를 사랑해야지
지긋지긋해서 벗어나고 싶어, 다 치우고 싶어
몇 년만 기다리면 될 거야 조금만 기다리면
내가 원한 것 사랑하는 것 얻고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모두 이룰 거야
아무도 오지 말라지, 나는 나 혼자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 받아야지

이곳은 여섯 명이야, 나 더하기 여섯은 일곱이야
그런데 말이지 이 지옥 같은 걸 빠져나간다 해도
진정 네가 원하는 자유를 만질 수 있을까?
어디에도 진짜 자유는 없어 자유는 희망일 뿐이야 그저 덜 종속될 뿐이야
그런데도 왜 난, 나가고 싶어하는 걸까 무엇을 위해
오직 날 위해? 나는 사랑 받고 싶은 거야 사랑은
사랑하는 것보다 사랑받는 게 더 좋아 나는 사랑받고 싶어 그러나
이미 사랑받는데도 저기 길가에 거지를 봐 너처럼 사랑 많이 받니
난 만족하지 못하는 거야 사람들은 만족할 수 없는 거야
여기가 좋은 곳인데도 난 가고 싶은 거야 그냥 무작정
어디론가 가버리고 싶은 거야 어디든가 상관없이 어디든

나는 사람에 고프고 자립에 고프고 돈에 고프지만
사랑만은 고프지 않았으면 – 싶은 거야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일 테지 그래 난

이런 보잘것없는 소망이라도 품어야 조금이라도

안정하는 것일 테지 그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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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는 바늘귀에 들어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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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교회에 다닐 때 집사님이 가장 자주 하던 말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게 더 어렵다’였다. 거대한 짐승 낙타가 어떻게 바늘귀를 통과할 수 있을까? 몸통을 줄여서? 몸속의 물통을 비우면 배가 홀쭉해져 바늘귀보다 작아지는 것일까? 집사님의 말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그렇게 힘들다는 것이다.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한 일인데, 어떻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니? 부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단다. 평생 욕심만 채우다 지옥으로 떨어지기 십상이지. 그러니 여러분도 꼭 가진 것을 이웃에게 나누어주고 서로서로 돕고 살아야 해요. 알았죠? 부자가 되는 건 좋지만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답니다.

 

아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예, 하고 대답했다. 어린 나도 그렇구나, 역시 성경의 비유는 참 대단하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너무 교회 전통만 맹신하며 살았는지 모른다. 퀴즈대회가 열리면 참석하고 유치부 공연을 기획하면 또 열심히 참여하고, 비록 성경공부는 소홀히 했지만 나름 즐거운 마음으로 교회를 다녔다. 물론 투철한 신앙심을 가지고 예수를 믿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람들과의 교류, 즉 사회생활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유치부를 졸업했고, 나이에 비해 늦은 편이었지만 중등부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중학생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었지만, 내 성격이 몹시 소심하고 우유부단해 중등부 안에서 가장 조용한 청소년이 되고 말았다. 선생님과 중등부 학생들이 모여 스케이트장에 놀러갈 때도, 나는 하릴없이 침묵에 잠겨있었다. 남자애들과 여자애들이 어울려 행복하게 대화하고 있을 때 나는 자꾸 서먹하게 행동하는 것이었다. 웃음도 나오지 않고, 누군가 어깨를 툭 치며 농담할 때만 어색하게 미소 짓고, 먼저 얘깃거리를 꺼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지도 않았다. 그저 선생님이 얘기하면 선생님 따라 친구가 얘기하면 친구 따라 갈 뿐이었다.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서 그런지 소변만 차올랐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물거리기만 했다. 그러다 친구 하나가 물이 든 자신의 컵에다 콜라를 들이 부었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지르고 말았다. 무슨 짓이야?

 

세상에 물과 콜라를 섞어 마시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그 친구의 행위가 너무나 어처구니없게 느껴졌던 것이다. 친구는 깜짝 놀라 웃으며 “왜 그래? 네가 그러는 거 처음 봤어.”하고 말했다. 평소에 아무 말 없던 내가 감정을 드러내자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다른 아이들도 어이없지만 재밌어하는 얼굴이었다. 알고 보니 그 물은 물이 아니라 사이다였던 것이다. 사이다와 콜라를 섞어 마시는 건 청소년들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괜히 착각해 친구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았던 것이다.

 

큰일이 아니어서 ‘물 콜라’ 사건은 조용히 지나갔지만, 나는 차마 “물이 아니라 사이다였구나. 착각해서 미안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말할 기회가 지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는 내 실수를 털어놓을 만큼 자존심이 조절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의 가장 큰 단점은 자존심인지도 몰랐다.

 

 

나는 스케이트를 잘 못 탄다. 스케이트장에 갈 때마다 내게 맞는 신발을 찾지 못해 뒤뚱거리기 십상이다. 오래전 가족들과 스케이트장에 갔을 때 실수로 작은 신을 골라 애먹은 적이 있었다. 아주 꽉 끼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조여서 불편했는데, 그 때문인지 스케이트를 타다 앞으로 넘어져버린 것이다. 얼굴은 다치지 않았지만 팔꿈치와 손바닥이 긁혀 한동안 붕대를 감고 다녔었다. 중등부 모임에서도 나는 신발을 잘못 골라버렸다. 내 발 크기는 255 정도였는데 그만 265를 받아버린 것이다. 친구들이 너도나도 265를 신자 나도 얼떨결에 265가 맞는 건가 보다 싶어 그렇게 신은 것이었다. 선생님이 크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내 발 치수를 몰랐기 때문에 맞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어기적거리며 스케이트를 끌고 가는 나와 선생님은 부딪혀 쓰러지고 말았다. 맞는 신발을 신었어도 제대로 못 탔을 것은 분명하지만 내가 엉덩방아를 찧은 것은 선생님이 둔했기 때문이었다. 싱싱 잘 타고 다니는 애들을 보며 약간 울적해진 나는 나와 같이 스케이트 못 타는 선생님을 위안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내내 욱신거리는 엉덩이를 문지르긴 했지만 말이다.

 

 

그때 나는 난생처음 짝사랑이란 것을 하고 있었다. 단발머리에 안경은 쓰지 않았고 쾌활하지만 수줍음을 많이 타는 여자애를 나는 남몰래 좋아하고 있었다. 내 눈에 그녀는 참 잘생긴 사람이었나 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못생긴 얼굴도 잘생긴 얼굴도 아니었는데 무엇이 그토록 좋았는지 모른다. 나는 그녀가 분반활동을 하러 자리에 앉을 때마다 슬며시 뒤에 앉곤 했다. 남들처럼 멋있게 사귀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머릿속에 그저 ‘좋아하는 마음’만 가득 들어있었나 보다. 그런데 좋아하는 여자애 앞에서 넘어지는 추태를 보이다니. 잠자리에 들었을 때 속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스케이트를 잘 타지도 못하고, 선생님과 뒤엉켜 고통스럽게 엉덩방아를 찧다니. 그래도 내 마음을 부풀어 오르게 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사진기 속 그녀의 사진이었다. ‘물 콜라’ 사건이 일어나기 전 나는 사진기를 꺼내 막상 가져왔으나 쓸 데가 없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사진 찍을 사람 없냐고 묻자 그녀가 불쑥 찍어 달라 한 것이다. 그녀는 사진 찍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고 했다. 환하게 웃으며 손가락을 펼쳐 보이는 그녀를 나는 놓치면 사라질세라 서둘러 찍어댔다. 집에 돌아와 컴퓨터에 사진을 저장했지만 그 사진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지금은 모른다. 내가 별 의미 없는 추억 쪼가리로 여겨 삭제했는지 문서를 정리하면서 의도치 않게 버렸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그 사진을 자꾸 봐서 그런지 아직도 그녀의 얼굴이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다. 빨간 옷을 입고 행복하게 미소 지었던 여학생. 그녀를 향한 애정은 한순간일 뿐이었다.

 

 

새해를 맞은 우리 식구는 이사를 해야 했다. 부모님의 사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내키지 않더라도 이사를 가야만 했다. 내 고향은 창원이었지만 두 살이 채 되기 전 포항으로 떠났기 때문에, 사실상 고향이 포항이었다. 포항에서 오랫동안 살아 정이 들었는데 갑자기 충북으로 떠나고 대전에 왔다 부천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기분이 씁쓸한 건 사실이었다. 이제 막 정착해 안정적인 생활을 보내려 했는데…….

어차피 이런 감정은 한번 겪어봐서 아무렇지 않을 거라 다짐했던 나는 교회에서 적잖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사하기 전날 마지막으로 교회에 간 나는 막장드라마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다.

“얘들아, 기쁜 일이 있어. 우리 반 미은이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단다!”

“네? 선생님 정말요? 미은이 너 대단한걸!”

“뭐 그런 걸 가지고…….”

 

남들은 대개 이런 말을 들으면 속상해 죽겠다거나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징징대지만, 나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러려니, 그녀의 상냥함으로는 얼마든지 이성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어느새 시들어져 버린 마음을 감춘 채 교회를 나왔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한마디 말도 나누지 못한 채 헤어졌다.

나는 그 일 때문에 그녀에게 배신감을 느꼈다거나 교회에서 싫증을 느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교회의 관습인 율동과 유치찬란한 예배 활동이 때때로 지루했을 뿐 절대 큰 반감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부천에 있는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의 몇몇 제도가 달랐지 나의 행동은 한결같았다. 친구들과의 어색한 만남, 어른들과의 부자연스런 인사. 단발머리 여자애를 향한 짝사랑.

새 교회는 표면적으로 달라보였지 전 교회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내가 간 교회는 모두 비슷비슷했다. 나는 또다시 이사를 갈 것이고 그립지도 않은 곳을 떠날 것이고 서먹했던 사람들과 작별할 것이다. 한마디로 감흥 없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나는 교회를 무슨 마음으로 다니는 것일까. 신앙심 깊은 부모님에 비해 나는 종교에 관심이 없었다. 부모님이 가는 곳이라면 무념무상 따라갈 뿐이었다. 허무했다. 어느 곳이든 한 지역에 정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소박한 꿈을 따라주지 않는 운명이 원망스러웠지만, 그것이 정말로 내 진심인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학교에서 그저 그런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일상은 예상대로 한결같았다. 변한 것이라곤 커진 내 몸뿐이었으니까.

어느 날 식탁에 앉아 부모님과 성경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물론 대화의 주제는 내가 아닌 부모님이 꺼낸 것이었다. 나는 무심코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낙타와 바늘귀 이야기’를 꺼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빌 게이츠가 열심히 기부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꾸준히 사회를 위해 봉사하면 바늘이 점점 커져 낙타가 바늘귀를 손쉽게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부자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아버지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비유라고 설명했다.

“바늘귀는 우리가 쓰는 바늘의 바늘귀를 말하는 게 아냐. 옛날 중동 지방에 바늘귀라는 문이 있었는데 낙타 주인이 낙타를 데리고 통과해야할 때가 있었지. 그 바늘귀라는 문이 엄청 작았다 하더라고. 낙타 같은 큰 짐승이 지나가기엔 너무 작았던 거야. 사람들이 자꾸 오해하는데 바늘귀가 그 바늘귀가 아니란 말이지. 바늘귀는 문 이름이라고.”

 

나는 그제야 그 빌어먹을 교회에서 오랫동안 속아왔다는 사실을, 미치도록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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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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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문의드려 죄송합니다. 제가 예전에 형제 계정으로 활동할 때 '귄터 그라스 <게걸음으로>와 세월호' '당신이 제목을 지을 수 있다' 두 편이 월장원이 되었는데, 월장원 처리(글틴 명예의 전당)가 되어있지 않아 수정 부탁드립니다. 또 '게걸음으로'는 닉네임이 '탈퇴 회원'으로 되어있는데 neo로 바꿔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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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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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6. 1. 1

 

저는 그날 아침에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슬픈 현실입니다. 어머니를 놓치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물론 여기서 제가 말하는 ‘잃어버렸다’는 표현은 ‘물건을 잃어버렸다’와 같이 가벼운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추운 겨울날, 거리를 스쳐가는 사람들은 옷을 하나하나씩 더 껴입었습니다. 새해를 맞은 그들의 얼굴엔 함박웃음이 그려졌지만, 나의 얼굴에는 차가운 바람이 때린 자국만 새겨질 뿐이었습니다. 저는 옷을 세 겹이나 껴입었음에도 목도리를 뚫고 들어오는 추위에 못 이겨 어머니의 손을 더욱 꼭 잡고 걸어갔습니다. 차디찬 바람 사이로 묵묵히 걸어가는 어머니는 전혀 추위를 타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입을 꾹 다문 어머니의 표정은 무언가를 굳게 결심하기라도 한 듯 무색했지요. 어머니는 제 손을 붙잡고 한참동안 걸어가다 전화를 받고는 멈춰 서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상대방을 진정시키려다가도 가끔씩 언성을 높이는 어머니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심각한 표정을 띠고 있었습니다. 대화 상대가 누군지 알 수는 없어도 그것이 매우 엄중한 일이라는 걸 깨달은 저는 어머니의 눈치만 살피며 머뭇거렸습니다.

그때 제 나이는 여섯 살에 불과했으므로, 통화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지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멀리서 무심히 달려가는 차들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의자에 앉아 다리를 떨었습니다. 수많은 차량은 별다른 소리 없이 도로 위를 달려갔습니다. 어머니의 전화는 좀처럼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린 나는 통화 내용이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추운 곳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왜 그렇게 오랫동안 전화를 붙들고 있는지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자 백화점 구경이라도 하자는 심경으로 뒤돌아 건물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제 눈앞에 나타난 것은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하나의 사물이었습니다.

현란한 광고물, ‘20%할인’이라는 문구가 붙은 유리창 안의 커다란 로봇 장난감. 저는 그것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번쩍번쩍 금칠을 한 플라스틱 덩어리를 만져보고 싶었지요. 저는 어머니에게 할인을 하니 사달라고 졸랐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어머니가 없어지고 난 뒤였습니다. 저는 로봇에 정신이 팔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넋 놓고 있었던 겁니다. 어쩌면 어머니는 저에게 로봇 사줄 돈을 구하러 잠깐 자리를 떠난 것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오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어머니를 불렀지만 눈에 띄는 건 울고불고 소리 지르는 어린아이를 쳐다보는 사람들뿐이었습니다. 누구든 제 일이 아니면 귀 기울이지 않는 법입니다. 사람들은 따뜻한 말 한번 건네주는 일 없이 저 애가 길을 잃어버렸나, 하고는 묵묵히 갈 길을 갈뿐이었습니다. 저는 계속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보도블록 위에 툭툭 떨어졌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은 점점 더 싸늘해졌습니다. 어머니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아니 어쩌면 그런 불안한 예감 때문에 두려움이 더 증폭된 것인지 모르지요. 아무리 어렸다 하더라도 어머니가 떠났다는 사실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을 겁니다.

 

어머니는 하이힐의 발자국도 머리카락의 샴푸 향기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습니다. 저는 잠깐 장난감에 눈이 팔려 방심한 나의 아둔함을 책망했습니다. 엄마 손을 잡지 않고 로봇만 들여다보다 엄마를 잃었구나, 엄마를 봐야하는데 그러지 않아 엄마를 잃은 거구나.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여섯 살짜리가 궁리할 게 있겠습니까? 그저 스스로 자책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저는 무서웠습니다. 지나가다 흘끗흘끗 흘겨보고 가는 행인들의 시선이 무서웠습니다. 저 혼자 추운 길거리에 오들오들 떨며 서있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보이지 않는 어머니의 형체가 무서웠습니다.

저는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또 울었습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아마 여섯 살짜리 어린아이가 쏟아낼 수 있는 눈물이란 눈물은 전부 쏟아냈겠지요. 세찬 바람이 저를 아프게 때렸습니다. 얼굴도 차갑고 손도 시리고 다리도 아팠습니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습니다. 어머니는 어디로 간 걸까요. 목적지는 정해놓고 나를 떠난 걸까요. 아니, 어쩌면 나를 버려두고 가는 게 목적 아니었을까요.

저는 두려움에 덜덜 떨며 하염없이 어머니를 기다렸습니다.

 

 

2016년 1월 1일

 

나는 오늘 아침에 내 아들을 버렸다. 슬프다. 아니, 슬프다는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다. 왠지 그보다 훨씬 비참하고 애통한 표현을 사용해야 마땅할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표현을 쓸 용기가 나지 않는다. 부질없는 상념에 젖은 지금도 나의 마음은 부서진 풍경처럼 흔들릴 뿐이다. 내가 내 아들을 버린 건 사실이다. 잠깐 놔두고 온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맡겨둔 것도 아니다. 정말로 나는 아들을, 버렸다.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서 버려둔 것은 아니다. 장소를 확인해놓고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두고 온 것도 아니다. 기회를 틈타 조용히 길가 저편으로 달아난 것뿐이다. 아주 비열하고 약삭빠르게, 너무나 몰염치하고 매정하게,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단번에 버렸다. 나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주저하는 마음이 있었던 걸까? 그랬다면 단 한 번이라도 뒤돌아보지 않았을까? 한순간도 주저하지 않았기에 한 번도 돌아보지 않은 것이었을까? 회한이 있었다면 뒤돌아보았을까?

당연한 일이지만 처음부터 그런 짓을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애인의 제안이 엄두조차 내서는 안 될 섬뜩한 행위를 떠올리게 한 것이다. 그와 함께 끔찍한 고안을 내다니 나는 어머니로서 자격이 있는 걸까. 고안만 한 게 아니라 실전에 옮겼으니, 나는 지옥에 떨어져도 충분한 걸까.

 

얼마 전에 나는 남편을 버렸다. 그와 함께 살 이유가 없기도 했고, 그와의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기도 했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그를 만났다. 나는 나보다 두 살 많은 그를 선배라 불렀지만, 한 차례 관계를 가진 후로는 선배라는 호칭이 아무런 의미 없는 수식어가 되어버렸다. 내 아들이 태어난 건 순전히 그와 나의 경솔한 감정 때문이었다. 처음 관계를 가질 때 임신은 상상조차 못했었다. 남들도 한다던데, 우리도 해보자는 심정이었다. 어쩌면 나의 학업 스트레스가 성적 욕망으로 변질되어 나타난 현상이었는지 모른다.

 

그와 나는 서로의 부모에게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아들을 6년 동안 숨기고 살았다. 간신히 단칸방을 얻었지만, 하루하루가 괴롭기 짝이 없었다. 언제 발각될지 몰라 매번 노심초사했고, 나도 모르게 소문이 퍼질까봐 전전긍긍하며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했다. 어쩌면 나는 아들이라는 징역 6년을 선고받은 걸지도 몰랐다. 남편의 도움 같은 희망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6년의 시간. 6년이라는 고통과 후회의 시간. 나는 저주의 숫자와도 같은 시간 속에서 시간의 노예로 살아왔다. 지금까지 무가치하고 허황된 삶을 보냈다는 사실이 한스러울 뿐이다.

남편은 나와 내 아들을 키울 만큼의 능력이 있지 않았다. 직장이 없는데다 변변찮은 아르바이트 일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간신히 부모가 대주는 돈으로 버텼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다. 그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법적으로 마땅히 취직할 수 있는 연령이었지만 술로 하루를 보내기 마련이었다. 남편은 출생할 때부터 게으른 사람이었는지 한 번도 자의로 무언가를 해본 적이 없었다. 내 일을 도와준 적도, 돈을 벌어다준 적도 부모에게 이렇다 할 효도를 한 적도 없었다. 하는 일이라곤 매일 술집에 가 양껏 마시고 침대에 드러누워 해가 떠오를 때까지 자는 것뿐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그와 잔 사실이 한없이 후회되곤 했다. 뱃속의 아이를 책임질 수 없으면 왜 나에게 부질없는 감정을 심어주었을까. 남편은 나와 함께 가정을 꾸려나갈 자신이 없었다. 아니, 애당초 우리에게 가정이란 존재하지 않는 희망사항이었다. 나는 그와 함께 살아갈 수 없었다. 그의 피를 물려받은 내 아들은 나와 함께 사는 것이 불가능했다. 어떻게 보면 아들을 버리는 행위가 불가피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그는 진정 날 사랑한 걸까, 아니면 내 몸만을 사랑한 걸까?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왜 나를 떠나기로 마음먹었을까? 나를 사랑했다면 내 피붙이도 사랑한 걸까?

그는 지긋지긋한 삶을 견디기 힘들어 지쳤는지, 어느 날 일언반구도 없이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오랜 세월을 근근이 버티다 하필 왜 그때 떠나갔는지 나로서는 의아할 뿐이다. 그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새 남자를 만났다. 품행이 단정하고 외모도 뛰어난데다 엄연히 직장까지 지니고 있는 젊은 남자였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학에서 학생들을 선발하는 직책을 맡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매우 염치없게도 그럴듯하고 현실성 있는 사실들을 내 앞에 늘어놓았다.

 

  • 이대로 계속 숨기며 사는 건 모두에게 좋지 않은 일이다.
  • 알다시피 지금 와서 사실을 알리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무모한 짓이다.
  • 다른 곳에 맡기거나 맡아줄 사람을 찾는 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다.
  • 당신 아들은 계속 자랄 것이고 절대 감출 수 없을 것이다.

 

모두 옳은 말이었다. 내게 아들을 계속 키울 자신은 없었다. 포기하고 부모에게 털어놓을 자신도 없었다. 부인하고 싶지만 부인할 수 없는, 부인해서는 안 될 현실이었다. 결국 나는 그와의 협의 하에 결심을 했다. 별다른 도리가 없었을 뿐더러, 결과적으로 내 아들은 그의 아들이 아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 자립할 수 없도록 정해져있었다. 결국 남은 건 선택이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지우는 것이 최선이었다. 사실 이러한 선택은 불가항력적이고, 가난 때문에 일어난 문제이기 때문에 그와 나의 견해는 절묘하게 일치했다. 다른 길이 없었다. 이 방법이 최선인 것 같았다. 훗날 후회하게 되더라도 누군가에게 발각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이가 더 크기 전에 정을 떼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애인의 말에 전부 동의했다.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2036. 1. 1

 

마냥 그 자리에 주저앉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사람은 정신보다 육체가 먼저 반응하기 마련이라, 손이 얼어붙고 발가락이 간지러워지자 저는 본능적으로 일어섰습니다. 밖은 추위가 점령했고 백화점 안은 온기로 가득했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겨울바람이 휘몰아치는 바깥보다 뜨끈뜨끈한 히터를 틀어놓은 백화점을 선택할 겁니다. 저는 기다리기를 포기하고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움도 외로움도, 그 어떤 애절함과 슬픔도 추위를 이길 수는 없더군요. 백화점으로 들어서자 손님들의 분주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마다 화장품, 가방, 겨울용 점퍼를 고르느라 정신없었습니다. 그 어떤 자연적인 광경도 없이 기계적인 손들은 바삐 움직이고 있었지요.

늘 그렇듯 백화점은 어린아이를 반겨주지 않습니다. 부를 가진 자만 공손하고도 깍듯이 대하지, 저같이 조그만 어린아이에겐 티끌만큼도 눈길을 주지 않지요. 그게 더 편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옷 사기에 여념 없었고 상품 사이를 바람처럼 왔다 갔다 지나칠 뿐이었습니다. 저는 그 가운데 서서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로봇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머니를 잃어버린 와중에도 장난감만큼은 잊을 수 없었던지, 한동안 20%할인이라는 문구가 붙은 유리 막 안을 뚫어지게 바라봤습니다. 몇 분이 흘렀는지 모릅니다. 당시 제 머릿속엔 커다란 로봇 장난감만 들어있었나 봅니다. 방금 전 어머니를 잃은 순간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쳐 쌀쌀한 바람처럼 흩어졌습니다. 제가 그때 로봇을 보고 있었는지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었는지는 여섯 살짜리 아이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2016년 1월 1일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새 애인은 내게 아들을 어떻게 버릴 것인지 물었다. 나는 그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어떻게 답할 수 있었겠는가? 신문에서는 종종 놀이기구에 어린아이를 버리고 가는 부모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기사가 뜨곤 했다. 나는 그런 곳에서 공개적으로 일을 벌일 위인은 못 된다. 그럴만한 용기도 없거니와 그런 곳에 갈 형편도 없다. 하지만 그것이 공개적이든 비공개적이든 한 아이의 부모로서 그런 짓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위다. 한창 행복해하고 있는 어린애를 기구에 태워놓은 채 무참하게 사라져버리는 것만큼 잔인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장난감에 정신이 팔린 어린애를 두고 가는 부모와 놀이기구에 탄 채 신나게 웃고 있는 어린애를 두고 가는 부모는 서로 성격만 다를 뿐이지 근본적으론 마음이 같다. 아이를 버리는 방법이 어떤 방향이든 그런 짓은 부모로서 씻을 수 없는 평생의 죄다.

내 아들은 법적으로 등록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나와 남편, 애인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의 존재를 모른다. 그러니 어딘가에 버려둔다면 내 아들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잊히거나, 누군가의 손에 의해 새로운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다. 데려다 키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나보다 부유할 것이다. 그러나 누가 여섯 살짜리 애를 데려가서 키우기나 할까? 키워준다 해도, 아무 탈 없이 먹여주고 재워주고 보듬어주기나 할까?

어쩌면 해외로 팔려가 끔찍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될지 모른다. 중국이나 일본으로 팔려가 노예가 될 수도, 남창이 되어 노파들에게 몸을 대주면서 평생을 보낼 수도 있다. 나는 이 일에 있어 최대한 비관적인 생각을 금하기로 했지만 비관적인 생각이 자꾸만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애인도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나는 머릿속에 계속해서 떠다니는 막연한 불길함을 떨칠 수가 없다. 내 아들을 내가 버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만 해도 두렵다.

 

 

2036.  1. 1

 

로봇 장난감을 구경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누군가 말을 건네는 바람에 저는 화들짝 놀라 뒤돌아보았습니다.

“안녕. 너 혼자 있니?”

까만 모자를 쓰고 번쩍거리는 형광색 옷을 입은 남자는 경찰이었습니다. 광장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거지요. 경찰서에 대한 내 사고방식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급할 때 들어가 화장실 용도로 사용하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경찰아저씨가 그저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가보다, 하고 로봇을 구경하고 있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경찰은 얼굴에 웃음기를 띠더니 “엄마는 어디 가셨니?”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어느새 경찰이 발견할 정도로 오랫동안 앉아있었던 겁니다. 저는 엄마가 날 놔두고 어디론가 가버렸다고 찬찬히 설명했습니다. 아직 완전한 언어를 구사하지 못한 내 말을 경찰은 대충 알아들었는지, 아니면 흔히 있는 일이라 지레짐작한 것인지 자신과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평소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말라 하던 엄마의 말이 생각나 경찰의 손을 거부했지만, 그대로 앉아 엄마를 기다리는 일은 너무 괴로울 것 같아 별다른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유리 막 안의 로봇은 잊을 수 없었나 봅니다. 저는 경찰 앞에서 장난감을 사주지 않으면 따라가지 않겠다고 어리광을 부렸습니다. 자리에 엎어져 다리를 동동대며 떼를 썼습니다. 왜 그토록 한낱 장난감에 집착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경찰은 그런 나를 보더니 장난감을 사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순순히 응낙했던 터라 눈물 흘릴 준비를 했던 나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찰은 대뜸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로봇을 샀습니다. 그는 내 손에 커다란 장난감을 쥐어주고는 “자, 이제 됐지? 아저씨랑 엄마 찾으러 가자.”하고 말했습니다. 어린 저는 얼떨떨한 마음으로 파출소에 갔습니다. 갖고 싶었던 로봇을 손에 쥔 채로요.

 

파출소 안은 따뜻한 공기로 가득했습니다. 난방이 어찌나 강하던지 입고 있는 잠바를 벗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소변이 마려워진 저는 곧장 화장실에 달려갔지요. 돌아오자 상당히 늙어 보이는 경찰 한 명이 묻더군요. 엄마 전화번호, 주소는 아냐고. 가까운 친척이나 아는 사람은 없냐고. 물론 전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로봇만 바라보고 있어서인지 어머니의 얼굴도 자세히 기억나지 않았고, 아버지의 얼굴은 윤곽마저 일그러져 눈앞에 떠오르지 않을 지경이었으니까요. 제가 살면서 아버지를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르겠습니다. 많아야 세 번, 네 번 정도일까요. 잘 모르겠군요.

저는 어머니의 겉모습만 설명했습니다. 머리가 길고, 안경을 썼고 키가 크고 아주 가끔씩 동화책을 읽어주었다고. 사소한 것 말고는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몇 가지 더 질문을 던지다가, 자기들끼리 귓속말로 속삭이고는 나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네 엄마를 찾으려면 앞으로 몇 년은 걸리겠구나. 그동안 너를 맡아줄 사람을 찾아보도록 하자.”

저는 그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고개만 갸웃거렸습니다. 다만 좋지 않은 일이라는 건 확실했습니다. 어린 나도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간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으니까요. 앞으로 오랫동안 어머니를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번쩍거리는 로봇을 더 꽉 쥐었습니다.

 

 

2016년 1월 1일

 

아들과 거리에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애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이 기회라고, 틈이 나면 내버려두고 오라고. 카페에서 만나자고, 할 얘기가 있다고. 나는 시내 구경을 시켜주기 위해 데리고 온 아들을 차마 떨칠 수 없었다.

아직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지금 해?

꼭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거야? 그냥 지금 해. 괜찮아. 아무도 신경 안 써.

그래도…….

내가 애인과 대화했을 때 아들은 장난감을 바라보고 있었다. 황금빛을 띤 로봇의 얼굴이 왠지 모르게 슬퍼보였다. 로봇의 이상한 눈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로봇의 눈이 나의 눈과 닮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로봇일까?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로봇. 아무 감정 없이 아들을 팽개치는, 움직이지 못하는 장난감 로봇.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해야 편했다. 그렇게 생각해야 아무 죄책감 없이 아들을 버리고 갈 수 있었다. 애인이 말했다.

우리를 생각해. 어쩔 수 없어. 그냥 애는 처음부터 없었던 걸로 치자.

로봇의 눈에도 눈물이 흐를까. 로봇도 감정이 있을까. 아니, 장난감은 감정이 없다. 뻣뻣하게 서있는 장난감은 가슴도 심장도 굳어 감정도 눈물도 없다. 로봇은 나와 같다. 나는 로봇과 같다.

 

나는 장난감을 보는 아들을 놔두고 카페를 향해 걸어갔다.

 

 

2036. 1. 1

 

저는 운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하마터면 범죄의 소굴로 들어가 죽을 때까지 고통스러운 삶을 보낼 수 있었잖습니까? 어머니의 가장 큰 걱정은 제 미래입니다. 다행히도 나는, 저녁으로 고기를 굽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얻어먹었습니다. 경찰들은 이상하다며 아무리 찾아도 제가 이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나온다 했습니다. 내 이름이 그게 확실하냐고 몇 번이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때마다 나의 답은 같았습니다. 아마 제가 법적으로 기록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경찰아저씨는 저를 입양했습니다. 정식으로, 법적으로 저를 아들로 삼았습니다.

 

저는 그날 새아버지의 침대에 누워 잠 들었습니다. 눈을 감기 전 나는 상상했습니다. 엄마는 잘 있을까. 나를 찾고 있지는 않을까. 엄마가 나를 버리고 간 게 아니라 내가 엄마를 놓친 게 아닐까. 저는 그 뒤로도 꾸준히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밤마다 꿈속에 나타나는 사람은 눈물을 줄줄 흘리는 어머니였습니다. 머릿속에서 신음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하염없이 울려 퍼졌습니다. 저는 그 소리가 듣기 싫어 베개로 귀를 막았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아침까지 나를 깨어있게 만들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피곤해졌습니다. 저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보고 싶어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니 어머니의 한 맺힌 신음소리도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울부짖는 듯한, 끊임없이 흐느껴대는 소리는 귓속에 남아있습니다. 어머니는 아직까지 저를 찾고 있을지 모릅니다.

 

 

2016년 1월 1일

 

그래,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속으로 다짐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한다. 그런데 연약한 내가, 이 연약하고 가냘픈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내 마음은 두려움으로 먹칠되어 있었다.

애인이 나를 보더니 말했다. 이때까지 있었던 일들, 자식을 낳은 거, 다 잊어버리자고. 없던 일로 하자고. 그래, 그러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해. 애인도 끄덕였다. 우리는 합의를 봤다.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의견을 같이했다. 우리는 서로 손을 잡지도 않았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자. 머릿속에 뿌리깊이 박혀 있는 몽상들은 뽑아버리자. 쓰레기통에 던져버리자. 모두 없던 일로 여기자. 이제 칙칙한 과거는 끝났다. 나는 내 아들을 버렸다.

 

 

2036. 1. 1

 

그 일이 있은 후 어느덧 2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는 이제 스물여섯 살입니다. 그때의 어머니 나이를 훌쩍 넘었군요. 어머니는 이제 마흔셋의 중년이고요.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흐를 줄은 몰랐습니다. 한 시간이 지났다 싶으면 1분이 넘어있고, 1분이 지났다 싶으면 한 시간이나 넘어있지요. 시간은 참 변덕스럽습니다. 저는 그 변덕 속에서 26년을 살았습니다. 어머니가 어디서 무얼 하고 사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가끔씩 나를 잊어버리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들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러지 않았을 거라 확신합니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아들을 잊어버릴 수가 없었을 겁니다. 평생을 회한과 고뇌 속에서 견뎌냈을 것입니다. 제가 어머니를 잊지 못했듯 어머니가 저를 잊지 못했을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어쩌면 아직도 나를 찾고 있을지 모를 일이지요.

오늘따라 무척 어머니가 보고 싶어집니다. 이제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말입니다. 어머니의 손이 차가웠는지 따뜻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습니다. 세월은 참 매정합니다. 시간과 함께 기억을 말끔히 지워버리니 말입니다. 그러나 20년이란 긴 시간이 흘러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2016년 1월 1일

 

그 일이 있은 뒤 나는 곧장 집으로 가려 했으나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왜 그럴까. 왜 자꾸만 그곳에 가고 싶어지는 걸까. 왜 아들의 얼굴이 잊히질 않는 걸까. 잊어야 하는데, 단단히 마음먹고 잊어야 하는데 왜 잊히지 않는 것일까. 가야하는데, 애인의 집으로 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살아야하는데. 자연스럽게 생활하며 늙어가야 하는데. 아들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려야 하는데.

애인의 뒷모습이 차차 멀어질 때 나는 본능적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 뛰어갔다. 내 아들은 잘 있을까. 누가 데려가지는 않았을까.

 

갑자기 후회되기 시작했다. 내 아들을 다시 데려와야 한다는 강한 집념이 가슴을 짓눌렀다. 정체모를 뭔가가 몸을 훑었다. 하염없이 달렸다. 이마 아래로 땀이 무겁게 흘러내렸다. 마음속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입속이 점점 뜨거워졌다. 거기 그대로 있을까, 아직도 장난감을 구경하고 있을까, 그래야 해, 그래야만 해. 내 아들은 그대로 거기 있어야 해. 달려가서 보듬어줘야 해. 엄마랑 집에 가야해. 마음 굳게 먹고 아르바이트라도 하면 입에 풀칠이라도 하면서 살 수 있을 거야. 애인은 무시하고 우리 둘끼리 행복하게 살자.

그러나 아들은 없었다. 빈 의자만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로봇도 없었다. 나는 망연히 유리창만 바라보았다. 목과 얼굴은 땀으로 번들거렸다.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내 아들을 누가 데려갔을까? 납치범이 데려갔을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 직원에게 물었다. 파란 옷을 입은 여섯 살짜리 꼬맹이를 못 봤냐고. 내 아들인데, 내가 버렸어요.

죄송하지만 손님, 그런 남자애는 보지 못했습니다.

 

너무 늦었다. 아들은 온데간데없었다.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알 수 없다. 아들의 향기가 맡아지지 않았다. 아들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다. 모든 것이 희미해졌다.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저질렀다. 나는 넋이 나간 상태로 유리만 쳐다봤다. 마치 그 유리에서 아들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나는 의자에 앉아 아들을 기다렸다. 그래, 잠깐 화장실에 간 거겠지. 금방 올 거야. 와서 나를 꼭 껴안으며 어디 있었냐고 울먹이겠지.

 

나는 의자에 앉아 보이지 않는 아들을 기다린다. 몇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시간을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과거니까. 나는 몇 시간, 며칠, 몇 년이 지나도 이곳에서 내 아들을 기다릴 것이다. 내 아들은 내 아들이니까, 자석에 끌리듯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와 안길 것이다.

 

나는 사라져버린 로봇을, 슬픈 표정을 지닌 로봇의 빈자리를 가만히 보고 있다.

 

 

2036. 1. 1

 

모든 것은 세월 속에 잊혀져갑니다. 나는 어머니를 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에게 어머니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는 않을 겁니다. 이 세상에 어머니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지요. 어머니의 얼굴을 보지는 못해도 어머니의 마음을 볼 수는 있습니다. 제 머릿속에서 어머니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져도 어머니라는 존재는 없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아버지가 승진했습니다. 경찰서장으로 진급한 겁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드릴 꽃다발을 사러 백화점으로 향했습니다. 백화점에서 꽃도 파냐고요? 물론입니다. 이 백화점에선 팔지 않는 물건이 없거든요. 예나 다름없이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저는 직원에게서 꽃을 받아들고 발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 눈앞에 뭔가가 나타나더군요. 그것은 유리 막이었습니다. 20년 전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로봇 장난감이 들어있던 유리 막 안. 물론 그곳에는 로봇 대신 새로 입고된 피규어가 비치되어있었습니다. 문득 아버지가 준 로봇이 기억나더군요. 집안에서 뒹굴다가 버렸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혹시 모르죠. 아직 집안 구석 어딘가에 플라스틱 한 조각이 남아있을지도요.

저는 잠깐 쉬려고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의자는 마치 누가 오랫동안 앉아 있었던 것처럼 따뜻했습니다. 누가 방금 막 앉았다 간 모양이었습니다. 따스한 체온이 그대로 남아 저를 데워주었으니까요. 이상하게도 의자에서 익숙한 냄새가 났습니다. 어디서 많이 맡아본, 아주 옛날에 맡아본,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향기였습니다. 사람은 눈으로 본 것만 기억하는 게 아닙니다. 귀로도 기억하고 코로도 기억합니다. 코가 기억하는 것은 매우 강렬하고 지울 수 없는 애틋한 그리움을 남깁니다. 오늘 제 코는 기억한 것입니다.

그것은, 미칠 듯이 코를 자극하는 향기는 바로 어머니의 향기였습니다. 착각이 아닌 게 분명했습니다. 나의 손을 꼭 잡아주었던 어머니의 머리카락 냄새였습니다. 어머니가 자주 사용하던 샴푸 냄새였습니다. 나를 버리고 간 어머니의 냄새였습니다. 어머니의 냄새이자 나를 기다리던 마음이었습니다. 저는 설마, 설마 어머니가 이 근처에 있나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곳에는 향기만 있었을 뿐입니다.

저는 그곳에 오랫동안 앉아있었습니다. 혹시나 어머니가 찾아오지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유리 막 밖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 어머니가 있나 자세히 눈여겨보았습니다. 그러나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슬픈 표정을 띤 피규어뿐이었습니다.

 

 

2016년 1월 1일

 

 

모든 것은 세월 속에 망각될 것이다. 나 또한 아들을 잊을 것이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자. 쓸데없는 걱정 따위 던져버리고 내 삶을 살자. 나 혼자 살자. 아들을 버리고, 애인도 버리고, 나 혼자 살자. 애인은 나 없이도 잘 살 것이다. 지금 여기서, 로봇의 빈자리를 느끼며 아들을 기다리는 나보다 훨씬…….

 

 

2036. 1. 1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습니다. 샤워를 해야 했지만 씻기 싫었습니다. 어머니의 향기를 지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 몸에서 나는 냄새는 어머니의 향기가 확실했습니다. 20년이란 시간이 지나도 향기만은 지울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향기를 잊고 싶지 않아 씻지 않고 누워있었습니다. 강렬한 이 냄새는 제 추억 속에 스며들어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한편으로 백화점에 우연히 들르게 해준 아버지에게 고마웠습니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어머니의 향기를 맡지 못했을 겁니다.

저는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잠깐 잠이 들었습니다. 문득 아버지에게 꽃을 드리지 못했다는 생각에 잠이 확 깨더군요. 저는 흐릿한 정신으로 아버지를 불렀습니다.

아버지, 꽃을 사왔어요. 와서 한번 보세요.

저는 여느 때처럼 “오냐” 하고 방문을 열고나올 아버지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오지 않았습니다. 이상했습니다. 어디 밖에 나가셨나. 저는 문을 열었습니다. 아버지는 없었습니다. 그곳에는 슬픈 표정을 지닌 로봇이 앉아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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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들이 왜 자살하는지 모르겠어요

 

사람이 싫고, 세상이 싫으면

사람을 미워하고, 세상을 미워해야지

나를 죽일 필욘 없잖아요

돈이 허무하고 명예가 허무하면

돈을 포기하고 명예를 포기해야지

나를 저버릴 필욘 없잖아요

 

나는 자살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어요

 

사랑도 지치고 삶도 지치면

사랑을 버리고 삶을 버려야지

나를 던질 필욘 없잖아요

사람이 싫으면 사람을 죽이세요

세상이 싫으면 세상을 죽이세요

돈이 싫으면 돈을 죽이세요

명예가 싫으면 명예를 죽이세요

사랑이 싫으면 사랑을 죽이세요

삶이 싫으면 삶을 죽이세요
나를 죽이고 싶으면 나를 죽이지 마세요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잖아요 나를 죽이려는 게 아니잖아요

나를 죽이면

사람을

세상을

돈을

명예를

사랑을

삶을

죽이는 게 아니잖아요

 

사람들이 왜 자살하는지
알 필욘 없잖아요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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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페 모르는 나를 패, 나는 마조히스트니까
좋탐 모르는 나를 탐해, 나는 관심종자니까
인터넷 용어 모르는 나에게 in해, 나는 쾌락주의자니까
십대 용어 모르는 나를 욕해, 나는 십할놈이니까

 

좋페가 뭐냐고? 너를 좆나게 패주지
좋탐이 뭐냐고? 너를 좆나게 탐하겠어

 

요즘 유행을 모르는 나는 문찐이야, 왕따야
요즘 말을 모르는 너는 십대 맞니?

 

모르겠으면 인터넷을 찾아봐 이 세상에 인터넷은 기본이야 필수야
컴퓨터를 쓰면 인터넷을 알아야지 인터넷을 쓰면 인터넷 말을 알아야지

 

그래요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무지몽매해요
좋페도 좋탐도 탐라도 제주도 탐라 아닌가요

 

좋페를 모르고 좋탐을 모르고
인터넷 용어를 모르고 십대들이 쓰는 유행어를 모르는 나는
그들을 모른다 그렇기에 그들도 나를 모른다

 

좋페- 좋아요 누르면 페이스북 메세지 보내준다
좋탐- 좋아요 누르면 타임라인에 글 올려준다

탐라- 타임라인
문찐- 문화 찐따

 

인터넷을 뒤져야만하는 문찐, 그대들의 수고를 덜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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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페 모르는 나를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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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십대들이 쓰는 말은 어렵다. 나도 십대인데 십대들이 쓰는 말을 보면 너무 어려워서 이해할 수가 없다. 그냥 환경 차이, 문화 차이라 생각하고 싶다.

페이스북에 들어가면 십대 친구들이 게시한 글을 많이 볼 수 있다. 일 년 전인가 한 친구가 '좋탐'이라는 글을 올려놓은 적이 있었다. 난 '좋탐'이라기에 '아, 좋담.', 그러니까 '좋다'는 의미인줄 알았다. 물론 그 단어의 정확한 뜻을 몰랐고 그저 추정한 것이었다. 나처럼 의아해한 사람이 있어 "좋탐이 뭐야?"하고 댓글을 달았는데, 다른 이용자가 '좋아요 탐라'라고 답변했다. 나는 '좋아요'는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탐라'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 인터넷에 찾아봤는데, 뜬금없이 지역 이름이 나온 게 아닌가. '제주도 탐라' 하고 제주도 관련 사진과 감귤이 나오는 것을 보고 잘못 찾았구나 싶어 다시 검색해보니 '타임라인'의 준말이라고 뜬다. 그러니까 '좋탐'은 '아, 좋담~'하는 감탄사도 아니고 제주도를 좋아하는 것도 아닌 '좋아요 누르면 타임라인에 글 써준다'의 준말이었던 것이다. 이건 내가 무지하거나 그들이 나와 다른 세대라서 그런 게 아니다. 서로의 문화가 다르고 취향이 달라서 내가 이해를 못한 것이다. 내가 인터넷 용어와 담을 쌓고 지낸 결과일 뿐이다.

어쨌거나 '좋탐'을 올린 친구는 뒤이어 '좋페'라는 글도 올렸는데, 덕분에 나는 더 큰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좋페라니, 좆을 팬다는 건가? 좋아요 안 누르면 패준다는 건가?' 아무리 봐도 좋은 말 같지 않았다. 물론 그의 의도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좋페가 뭐냐고 물어볼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댓글을 다는 행동이 무의미했다. 그날은 '그냥 좋아요 더하기 페이스북이겠지'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오늘 우연히 페이스북에 올라온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내가 궁금해했던 '좋탐'과 '좋페'에 관한 영상이었는데 '좋페'가 '좋아요 누르면 페이스북 메세지 보내준다'라는 것이다. 요즘 십대들이 심심해서 쓰는 말이란다. 게다가 나 같은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문찐'이란다. 나는 문찐인가 보다. 나는 01년생인데. 그들과 같은 나이, 같은 세대인데. 흑

 

(문찐이 뭐지? 문학 찐따인가? 문과 찐따인가? 궁금하면 인터넷에 찾아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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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열 속에서], [감정이 있는 심연]에서 나타난 해방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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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숙(韓戊淑, 1918~1993)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여성주의 소설가로 유명하다. 그의 대부분 작품에서 드러난 것처럼 여성차별에 대한 반대의식이 강하지만, 한무숙의 모든 소설이 여성주의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한무숙 작품집>에 실려 있는 해설은 ‘성적 불평등’에 초점을 두고 작품을 해석하지만, 필자는 한무숙의 세계관이 단순히 성차별에 국한되지 않고 사랑의 본질과 자유를 이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본고는 작품집에 실린 <대열 속에서>와 <감정이 있는 심연>으로 두 작품이 함유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논하고자 한다.

<대열 속에서>는 전쟁으로 빚어진 갈등과 분열이 주인공 ‘명서’와 친구 ‘창수’를 통해 이어지는 이야기다. ‘명서’는 어렸을 적 전쟁으로 인해 ‘창수’와 관계가 멀어지기 시작한다.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뒤틀린 마음을 품고 살아가다 성인이 된 명서는 어느 날 시위대 속에서 성장한 창수를 발견한다. 명서는 창수가 총에 맞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함께 도로 위에 쓰러지고 만다.

작중 몇몇 대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청년의 명서와 창수는 사상적으로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랐다. 이것은 명서가 애인 ‘애희’에게 꽃을 꺾어주려 할 때 확연히 드러난다.

 

그때였다.

“누구얏.”

우웅 울리는 굵다란 소리가 들리더니, 숲 속에서 한 사나이가 나타났다.

“나무에 올라간 놈이 누구얏! 빨리 내려왓!”

굵은 소리는 다시 우웅- 울렸다.

명서는 가지에서 떨어질 번하도록 놀랐다. 거기, 역시 자기와 같은 해, 어느 사립대학에 들어갔다는 소문을 들은 채 오래도록 보지 못했던 창수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명서는 어름같이 냉정해 있었다.

“내려오라구? 누구에게 명령을 허는 거야.”

“국가 재산인 임업시험장의 나무를 다치려는 자에게 국민의 한 사람이 명령하는 거다!”

“무슨 권리로-”

“국민된 권리로-”

“난, 이 꽃을 꺾기 전엔 못 내려가겠다.”

“꺾진 못할 거다.”

“꺾고 말 테다.”

 

  • <대열 속에서>, 63~64쪽 中

 

단순히 꽃을 꺾으려는 자와 꽃을 꺾지 말라는 자의 의견이 부딪혀 대립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명서는 같은 중학교를 나오고 같은 집에 살았던 창수가 ‘국민의 권리’를 언급하며 평등을 말하자 그는 고정된 틀에서 벗어남을 느낀다. 명서는 ‘창수가 너무 옳았(66쪽)’음을 깨닫고 아버지에게서 억압되었던 민주적 사고방식을 되새기게 된다.

작중 명서는 애희를 사랑하는 것으로 표현되지만, 사건이 있은 뒤 그녀의 이야기는 소개되지 않고 현재의 명서와 창수만 남게 된다. 이야기는 결말에 이르러 절정에 치닫게 되면서, 표면적 사랑은 애희지만 실질적 사랑은 창수와 창수의 마음이라는 것을 전달한다.

<감정이 있는 심연>도 <대열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핵심 주제는 ‘사랑’이다. 한무숙 단편 <감정이 있는 심연>은 주인공이 어릴 적 사랑한 여자 ‘전아(典娥)’를 정신병원에서 만나기 전에 회상되는 이야기로, 전아가 겪었던 아픔과 고통을 화자의 입을 통해 생생히 전달한다. 주인공이 사랑하고 주인공을 사랑한 전아는 엄격한 큰고모 아래서 위압적인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이 작품에서는 종교적 부조리도 뒤얽혀 환기되는데, 큰고모의 뒤틀린 종교적 관습 탓에 전아는 정신적으로 압박을 받으며 자란다. 초반의 ‘창백한 청년’과 결말부의 ‘충청도 사투리의 여인’이 중첩되며 훗날 화자는 정신병원에 갇혀 그림을 그리는 전아를 만나러 가지만, '딱더 · 김'의 충고와 몇 가지 사항 때문에 포기하고 만다. 소설은 화자가 ‘어떤 일본의 악덕 상인(惡德商人)’ 이야기를 상기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감정이 있는 심연>은 속박된 전아의 삶과 화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대열 속에서>는 전후 상황을 다룬다는 점에서 차이가 나지만, 두 작품의 상호관계는 모두 ‘사랑’으로 귀결된다.

전자와 후자는 겉보기에 현격히 달라 보인다. 일반적인 시선에서 <감정이 있는 심연>은 남녀의 사랑이야기로, <대열 속에서>는 남녀, 또는 남남의 사랑이야기로 해석되겠지만 본질적으로 인물들의 공통된 행동은 다르지 않다. <대열 속에서>의 명서와 창수의 사이는 자칫 우애로 보일 수 있지만, 명서가 민주주의, 창수의 민주주의와 자신의 민주주의를 사랑한다는 점에서 넓게 해석한다면 사회적 사랑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감정이 있는 심연>은 개인의 애정으로 국한돼 세계관이 한정되어있다고 결론내리면 오산이다. 앞서 말했듯이 성차별적 문제가 도드라져 있으면서 답습되는 종교적 · 유교적 오류도 함유되어 어떤 면에서 보면 <대열 속에서>보다 더 큰 사회적 인식이 내재해있다고 할 수 있다.

 

작가 한무숙은 많은 작품을 남기며 여성작가가 드물었던 당시 독보적인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나, 그의 작품은 결코 성 평등에만 한정되어있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가부장제에 억압된 여성의 이야기뿐 아니라 육이오 전쟁과 여러 가지 사회적 양상을 심도 있게 표현한다. 우리는 그의 작품 중심에서 빛을 발하는 민주주의와 평화적 삶이 말하는 ‘사랑’을 찾아낼 수 있으며, 누군가의 슬픔과 비애를 이해하고 감싸 안을 때 비로소 작가 한무숙이 말하는 ‘사랑’의 참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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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열일곱 살, 지금 내가 가장 가지고 싶은 것은 장정일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와 마광수 <즐거운 사라>와 턴테이블에 올려서 들을 수 있는 김광석 2집이다. 단지, 그것들만이 열일곱 살 지금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얻고자 원하는, 전부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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