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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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3,4층 높이의 작은 빌라들이 숨 쉴 틈 없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이곳에서는 엊그제부터 장마가 시작되었다. 태풍 ‘도그’가 북상한 까닭이었다. 2주에 한 번 찾아오는 각설이는 장타령으로 분위기를 띄워보려 해도 짓누르는 듯이 습한 공기와 며칠 째 계속해서 오락가락하는 비 때문에 분위기 전환도 좀처럼 쉽지 않았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은 여러 방법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빠른 길은 모란시장을 가로질러 가는 것이었다. 나는 모란시장 상인들의 째지는 목소리와 여름이 다가오면 코끝을 자극하는 이상하고도 비릿한 냄새와 단정치 못한 모습이 너무나도 싫었지만 이 편이 제일 빨랐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오늘도 친구와 모란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저 멀리서 누군가 크게 한탄하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모란시장에서는 다반사로 있는 일이니 그러려니 했지만 그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나의 마음은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의 주인공이 아빠임을 알았을 때에는 심장이 다시 한 번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친구가 학원에 가야 한다고 먼저 가지 않았더라면 창피를 당했을 것이다.

술도 거의 잘 안 드시는 아빠가 낮술을 하고 혀가 꼬부라진 목소리로 고함을 치는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다. 옆에서 그런 아빠를 보며 마루에 걸터앉아 있는 엄마도 아빠를 말리는 것을 이미 포기한 것 같았다. 내가 엄마한테 아빠를 향해 손짓을 하자 엄마는 징글맞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며 입모양으로 ‘냅둬’를 반복하였다.

그런 아빠를 보며 나는 며칠 전에 아빠가 내게 고함을 지르던 모습이 겹쳐 떠올라 고개를 푹 숙였다. 지금 나와 아빠는 냉전 상태였고 나는 하나밖에 없는 딸의 마음 하나 이해해주지 못하는 아빠에게 서운해 아빠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이게 진짜 이유는 아니다. 단순히 아빠에게 실망하여 아빠를 보고 싶지 않은 게 아니란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아빠가 망가지는 모습을 볼 자신이 없다. 나한테 모진 말을 퍼붓고 고함을 지를 때도 나는 우리 아빠가 어쩌다 이렇게 변해 버렸을까 하는 생각에 항상 속상하다. 내 기억 속의 아빠는 듬직한 어깨와, 큰 손과, 햇살같이 따뜻한 미소로 모든 걸 다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그런 분이셨다. 언제부터였을까, 우리 아빠가 이렇게 된 건. 며칠 전의 일도 그렇게 화낼 만한 게 아니었는데 예전 아빠의 모습은 어디로 가 버린 걸까.

수요일 저녁이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탓에 모란시장을 찾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자, 부모님께서는 가게를 일찍 정리하셨다. 집에 일찍 들어오신 부모님은 간만에 제대로 된 외식을 하자며 외출 준비를 마치고 바로 나가자고 하셨다. 그 때 나는 외출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였으므로,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계속해서 보고 있었다. 그런데, 나가자는 말을 하러 방으로 들어오신 아빠가 모니터 화면을 보고 말았다.

나는 아빠의 시선이 컴퓨터로 향하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며 창을 급히 아래로 내렸다. 하지만 이는 소용없는 일이었고 나의 어색한 미소와 당혹스러운 표정은 아빠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는 것에 더 강한 확신을 줄 뿐이었다. 점점 표정이 일그러져가던 아빠는 마우스로 다시 그 창을 띄우셨다. 창의 맨 위에는 ‘아이 러브 강아지’라는 블로그 이름이 있었고 그 밑에는 ‘강아지 분양 정보’라는 제목과 앙증맞은 강아지 사진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빠는 화면을 제대로 보자마자 강아지는 절대 집에서 키울 수 없다며 버럭 화를 내셨다.

“뼛다구밖에 안 남아서 돈도 안 되는 개새끼 사진을 뭘 그렇게 빤히 보고 있어.”

“아, 아빠. 아니, 그런게 아니라요, 친구가 이 강아지 키우겠다고 한 번 보라고 하길래 요…”

내가 아빠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해명하려고 하자 아빠는 아니긴 뭐가 아니냐며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쓸데없는 것만 보고 있다며 쏘아붙이셨다.

“시끄러워. 그래서 이 개새끼들 때문에 정신이 팔려 공부도 제대로 안 하고 있었던 거니? 엄마, 아빠가 밖에서 뼈가 빠지도록 일할 때 너는 이런 거나 보고 있었구나? 부모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면서도 어떻게 하면 개를 키울까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던 거지?”

“아빠는 왜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데요. 왜 제 말은 믿지도 않으시는 거 냐구요. 그리고 제가 막말로 강아지 한 마리 키우면 좀 어때서요?”

아빠가 내게 윽박지르자 나는 괜히 더 반항심이 생겨 오늘만큼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아무 생각 없이 말을 뱉어냈다.

“뭐? 강아지를 키워? 너 지금 제정신이니?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절대 안돼.”

“아빠가 장사하는 그 개랑 이 개가 어디 같아요? 이거는요, 살을 불리기 위해서 먹이고 키우는 게 아니라 가족처럼 애정을 가지고 키우는 거잖아요. 동물도요, 누가 자기를 좋아 하고 자기를 싫어하는지 다 알아요. 아빠가 그 좋아하는 토실토실한 개들도 자기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다 안다고요. 그리고 어차피 강아지를 키우면 아빠가 키우는 것도 아 니고 제가 키우겠다는 건데 왜 아빠가 나한테 키우면 안 된다고 하시는 건데요?”

“도대체 삐쩍 말라서 돈도 안 되는 개새끼가 뭐가 좋다는 거야? 아무런 쓸모도 없잖아. 오 히려 쓸데없는 돈만 더 들어갈 뿐이야. 그리고 내가 집에서까지 개새끼를 봐야겠니?”

“아니, 아빠는요. 강아지가 돈으로밖에 안 보여요? 살이 찐 개는 비싼 몸, 마른 개는 돈도 안 되는 몸으로밖에 안 보이냐고요. 강아지도 한 생명이에요. 아빠는 그 강아지들이 살려달 라고 울부짖을 때 불쌍하지도 않아요?”

“하, 그만하자.”

“뭘 그만해요? 제 얘기 아직 다 안 끝났어요. 아빠, 아빠는 왜 이렇게 이기적이세요? 저 솔직히 아빠가 하시는 일 너무 창피해요. 남들 앞에서 단 한 번도 떳떳하게 말할 수가 없 었다고요.”

아빠가 떨리는 목소리로 힘주어 말하며 방문을 쾅 닫고 나가셨다.

“오늘 외식은 없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아빠에게 실망스러웠고 아빠가 그렇게 미웠다. 아빠가 했던 말들이 모두 내겐 충격이었다. 나로서는 처음 보는 아빠의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점점 어깨를 크게 들썩거리며 행여 우는 소리가 새어 나갈까봐 입술을 꽉 깨물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한참을 울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몸을 웅크리고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보며 아빠가 들어오시기만을 기다렸다. 자정이 다 되었는데도 아빠가 돌아오시지 않자 술도 잘 마시지 않는 아빠가 내심 걱정되었던 것이다. 나는 울면서 아빠와 싸웠던 내용을 곱씹어 보았다. 그러다 나는 생각 없이 감정적으로 내뱉었던 말이 큰 실수였음을 깨달았다. 아빠가 창피하다고 말한 것이 아빠의 가슴에 비수를 꽂은 것이었다. 정말로 그 말만큼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자 간신히 진정되었던 가슴은 다시 크게 뛰기 시작했다. 얼룩진 눈물자국 위로 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몇 시간 동안 울었던 탓에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눈꺼풀이 내려오고 말았다. 그러던 중 현관문이 딸깍 하는 소리에 잠에서 깨고 말았다. 직감적으로 아빠가 집에 돌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옆에 놓여있는 휴대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해 보니 새벽 3시였다. 발을 질질 끄는 발걸음 소리로 짐작하건대 술을 한가득 마시고 왔음이 분명했다. 그렇게 나와 아빠의 관계는 틀어질 대로 틀어지며 수요일 밤이 지나갔다. 그 이후로 나는 아빠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낮술을 하고 뻗어버린 아빠와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 그리고 널브러져 있는 주변을 둘러보니 오늘도 장사가 잘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무더운 여름철이 시작되면 늘 그러했듯 주문전화가 하루에 수백 통씩 밀려와 우리 가족을 포함한 사람들은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고 모란시장은 활기를 띠었다. 하지만 올해는 좀 이상하다. 모란시장 전체를 휘감는 이 싸한 분위기는 모란시장의 불행을 미리 예감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작년 이맘때쯤이면 하루 평균 약 290마리 정도가 팔렸으나 지금은 가장 많이 팔려도 그 반 정도밖에 되지 못한다.

“아이고, 이번 여름 장사는 글렀네, 글렀어. 이 사기꾼 같은 놈들 같으니. 간만에 돈 좀 되는 주문 건수가 들어와서 택배로까지 보내줬더니 감히 주문을 물려? 비를 맞아 비위생적이라고? 이게 지금 말이 되는 소리야? 어? 이 개새끼들 다 죽여 놓고 지금 뭐하자는 거야? 며칠 지나면 팔기도 힘들어지는 것을.”

아빠는 정확하지도 않은 발음으로 열변을 토하며 미친 듯이 흐느꼈다. 나중에는 결국 술에 단단히 취해 울다웃다를 반복하였다. 아빠의 외침과 주변 상인들의 대화로 짐작하건대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개고기 장사가 잘 안 되는 듯 했다. 그리고 오늘은 바로 상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날, 도둑맞은 날이었다. 며칠 전, 우리 가게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을 체인점을 가진 보신탕집 사장이라고 밝힌 그 사람은 곧 복날이니 이를 미리 준비하기 위해 개고기 약 400마리가 필요하다며 주문했고 다른 식재료들과 추가로 필요한 개고기들 모두 모란시장 내에서 구입하겠다고 말했다. 이 소식을 들은 모란시장 상인들은 하나같이 기뻐했고 잠깐 활기를 되찾나 싶었다.

그런데 오늘 배송을 하려고 보니 그 사장이란 사람이 연락두절이 되어 버린 것이다. 몇 번을 전화해봐도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라는 나레이션만 반복될 뿐이었고 친분이 있는 경찰에 전화를 걸어 신원을 조회해 보아도 신원 또한 조작이었기 때문에 도저히 범인을 찾을 수 없었다. 다른 시장의 사정은 어떤지 잘 몰라도 전통이 있는 모란시장은 ‘신뢰’를 바탕으로 했다. 대부분 모란시장과 관계를 맺고 있는 음식점과 업체들은 대부분 안면이 있었고 가끔 새로 창업하여 떠오르는 업체들과 관계를 맺는 경우도 있었다. 때문에 서로와 서로를 믿고 거래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양심 없는 사람들 때문에 종종 이렇게 주문을 물리는 등 사기를 치고 모란시장에서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게 되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걸 우리는 ‘도둑맞았다’고 말한다.

아빠의 위기는 여기에서 멈추는 듯 했으나 더 큰 위기가 모란시장에게로 닥쳐왔다. 복날이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란시장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들은 모란시장 입구에서 수군대는 것으로 그들의 존재를 알렸다. 그런데 하루가 갈수록 박스며 응원도구며 손에 들고 오는 것이 많아졌고 어디 산악회 모임이라도 갔다 온 듯 옷차림은 모두 하나같이 비슷했고 촌스러웠다.

일이 커지기 시작한 건 정확히 복날을 기준으로 5일 전부터였다.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민머리에, 아랫배가 불룩 튀어나와 뒤로 자빠질 듯 말 듯 걷는, 반장으로 보이는 그 아저씨는 현수막 설치, 전단지 돌리기 등의 일들을 주도했다. 대문짝만 한 크기의 현수막에는 ‘동물도 생명이다. 살인자가 가득한 모란시장은 없어져라!’ 라는 문구가 박혔고 전단지에는 시위 일정과 모란시장의 단점이 과장되어 나타나 있었다. 그 아저씨는 심지어 확성기를 들고 모란시장 상인들에게 도발을 하기 시작했다. 얼굴에 심술보가 덕지덕지 붙은 아주머니들은 어디서 천막까지 구해 와 아예 모란시장 앞 모란광장에 죽치고 앉았다. 그들은 항상 오후 5시에 본격 시위를 시작했는데 지원자의 연설, 행진 등으로 진행되었다. 모란시장은 오후 7시쯤에 뒷정리와 마무리를 하고 오후 8시부터 가게 문을 하나 둘 닫는 시간이었는데 이 때문에 모란시장 상인들은 시위에 대응할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모란광장의 사람들이 더 이상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결국 모란시장 사람들은 급히 모여서 계획을 세웠다. 바로 다음날부터 영업을 오후 5시쯤에 마무리 짓고 맞대응 시위에 나서기로 결정한 것이다.

모란시장 사람들이 맞대응 시위를 한다길래 나도 그 시간에 맞추어 모란광장으로 향했다. 그 배불뚝이 아저씨가 먼저 시위의 시작을 알리는 듯이 모란시장 상인들을 향해 애완동물을 혐오하고 동물을 생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죽여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도발을 하였다. 그러자 맞은편에 서 있던 모란시장 상인들이 ‘개고기도 하나의 우리 음식 문화’라며 돼지고기, 소고기도 먹는데 개고기가 어떠냐며 반발하였다. 모란시장 사람들의 무리 중 앞장 선 사람이 유독 적극적이었는데 그 사람은 ‘우리도 개가 불쌍한 줄 아는 사람’이라며 돈 벌어 먹으려고 해왔던 일이 개고기 장사인데 불쌍하다고 그만두면 우리는 어떻게 하냐고 확성기에 대고 마구 소리쳤다.

나는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그때서야 깨달았다. ‘돈.’ 결국 돈 때문이었다. 아빠가 개고기 장사를 그만두지 못하고 계속 이어가는 것도 결국 모두 돈을 벌기 위함이었다. 아빠는 어쩔 수 없이 가장이라는 책임감으로 원치 않아도 개고기 장사를 해왔던 것이었다. 비로소 그때서야 나는 아빠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모란시장 상인들의 대표가 점점 앞으로 나오자 배불뚝이 아저씨 쪽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계란을 던지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앞으로 다가오자 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란시장 사람들의 얼굴은 거의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가 누군지 궁금하여 나 또한 사람들 틈을 비집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너무 화가 났다. 그 배불뚝이 아저씨와 그 사람들에게 말이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아빠였다. 나는 아빠에게 계란을 던진 사람들에게 이성을 잃고 욕을 하며 바락바락 따져들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빠가 발밑에 주저앉아 흐느끼고 계셨다. 나는 지친 아빠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아빠, 일어나세요. 어서요…….”

나는 짙게 내려앉은 땅거미를 바라보았다. 쓰러져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나는 그저 옷소매로 눈가를 훔치며 아버지를 내려다 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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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잇는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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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잇는 아픔

하근찬의『수난 이대』를 읽고

 

‘수난 이대’는 전쟁으로 빚진 한 가족의 수난사를 담담하고 솔직하게 풀어썼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아픈 기억, 어쩔 줄 모르며 아들을 기다리는 행동,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을 감추기 위해 내던지는 듯한 투박한 말투들은 우리의 마음을 더욱 더 저미게 만들었다. 직접 겪어보지 않았다는 핑계로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친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가 점점 잊혀져 가고 있는 가운데, 역사가 만들어낸 한 가족의 비극을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것이 왜 중요한가? ‘수난 이대’가 말하고 있는 역사의 아픔은 단지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근찬은 소설 내적으로 이러한 아픔을 두 가지 상징물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이 소설의 오프닝과 엔딩에 일관성이 있다는 점을 발견했는가? 좋은 작품은 오프닝과 엔딩이 잘 짜여 있다. 작가가 그만큼 오프닝과 엔딩에 신경을 썼다는 것과 그 작은 부분들에 비교적 큰 의미를 부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세히 보면 이 소설의 오프닝과 엔딩에서 하근찬 작가가 애초에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처럼 보이는 공통어를 찾을 수 있다. 바로 ‘용머리재’다. ‘그래 그런지 몰라도 박만도는 여느 때 같으면 아무래도 한두 군데 앉아 쉬어야 넘어설 수 있는 용머리재를 단숨에 올라채고 말았다.’ (하근찬,『수난이대』) 이것이 오프닝에서 용머리재가 사용된 문장이다. 이는 주인공인 박만도가 용머리재를 단숨에 넘을 만한 사건이 일어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을 매듭짓는 문장이기도 한 엔딩 문장을 살펴보자. ‘눈앞에 우뚝 솟은 용머리재가 이 광경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근찬,『수난이대』) 엔딩 문장에서 우뚝 솟아 있는 용머리재가 두 부자(父子)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외나무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자연물 용머리재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즉, 이 자연물, 용머리재는 우리 민족의 수난의 역사를 지켜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두 ‘용머리재’의 의미는 상반되면서도 함축적인 의미를 지녔는데 특히 엔딩 문장의 용머리재가 더욱 그러하다. 오프닝에서는 주인공 혼자 등장하지만, 엔딩에서는 아들도 함께 등장한다. 오프닝에서는 주인공인 박만도가 용머리재를 넘은 후지만, 엔딩에서는 용머리재를 아직 넘지 않았다. 오프닝에서 박만도가 용머리재를 넘고 혼자 등장한다는 것은 이미 하나의 시련과 고비를 넘긴 것으로 보인다. 엔딩에서 박만도는 막 외나무다리를 건넌 직후, 아들과 함께 용머리재를 올려다보는 입장이다. 이는 그들이 함께 수난을 극복했음을 알려주는 동시에 견뎌내야 할 또 다른 수난이 기다리고 있음을 암묵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두 번째, 이 소설에서 핵심 소재로 다뤄진 ‘외나무다리’를 살펴보자. 박만도가 발을 헛디뎌 물에 빠졌던 적이 있었던 외나무다리와, 아들과 함께 힘을 합쳐 건넌 외나무다리가 등장한다. 물에 빠졌을 적에는 술김에 그랬던 것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외나무다리를 건너지 못했기에 어려움을 극복해내지 못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엔딩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외나무다리에 다다르자, 아들은 아버지의 등에 업히고 고등어를 든다. 서로의 장애를 극복하고 힘을 합쳐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수난 이대가 극찬 받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의 아픈 역사를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로 주인공에게 자연스럽게 녹여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주인공에 따라 달라진다. 전체적으로 보면 6·25 전쟁 직후이지만, 아버지와 아들에 각각 초점을 맞추고 보면 시대적 배경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시대 때 징용에 끌려 나가 한쪽 팔을 잃었고, ‘아들’은 6·25 전쟁에 참전하여 한쪽 다리를 잃었다. 시대적 배경이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시대, 아들은 남북전쟁이라는 것이다. 우리 민족이 겪은 아픔을 그린 수많은 작품들과는 다르게, ‘수난 이대’는 억지로 짜 맞추려 하지 않고 주인공을 부모와 자식으로 설정함으로써 두 시대를 담아냈다. 두 시대를 2대에 걸친 한 가족의 비극으로 담아낸 것이다.

 

하지만 ‘수난 이대’의 아픔은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이 아픔이 현재까지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일제 강점기 시대는 위안부를, 남북전쟁은 남북분단의 결과를 낳았다. 위안부 문제와 남북분단의 현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가장 큰 비극이자, 수난이다. 이는 아직까지도 속 시원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로, 앞으로 우리가 꼭 풀어가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수난 이대’를 좁은 의미에서 보면 한 가족에게 수난이 대물림되는 것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시대가 변함에 따라 수난이 또 다른 수난을 낳아 대물림된다는 것이다. 이 소설이 현대 사회와 연관 지어 생각해 보게 해 준다는 점은 ‘수난 이대’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또한 슬픔을 담담하게 풀어쓰는 하근찬 작가의 특유한 문체가 더 먹먹한 감동을 느끼게 해 준다는 점도 하나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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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앞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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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그칠 줄 모르고

흘러내립니다.

 

감정을 가진

그 눈물은

한데 모여 바다를 이루었습니다.

 

바다는 숨소리로

고동쳤습니다.

수면 위로 꿈이 담긴

물보라가 일었습니다.

 

지는 태양은 분노하며

바다를 비춰주었습니다.

 

아름다움으로 일렁이던 바다는

다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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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할 때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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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생일을 맞이했다.

 

내가 태어난 지 벌써 15년이 지나고 올해가 16년째다. 고로 올해 난 16살이다.

이번 생일이 지금껏 맞이한 생일 중 가장 기쁘다. 혼밥이든 혼술이든 혼영이든, 혼자 하는 모든 것은 다 OK라고 생각하던 내가 사람의 소중함을 깨달은 채 맞이한 생일이다. 혼자 하는 것에 대한 내 생각은 아직도 변함없이 OK이지만 좋은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 또한 큰 행복이라는 걸 깊이 느꼈다.

 

16살이 됐으니 이제는 더 공부에 집중하자며 결의를 다지자는 명분으로 중학교 2학년의 겨울방학과 봄 방학은 나름 즐겁게 보냈다. 16살이라는 나이가 짓누르는 무게를 함께 버텨내고 있는,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말이다. 그 친구들과 함께할 때는 누가 무슨 말을 꺼내도 항상 웃음이 끊이질 않았고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들처럼 참 편했다. 잘 보이려고 신경 쓰거나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맞춰가기 위해 노력했고 우리 모두 서로의 모든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가끔 핀트가 조금씩 어긋나 감정이 북받쳐 올라도 서로에게 그대로 드러내어 더 이상의 오해를 만들지 않았고 그것을 계기로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심지어 우리는 서로의 잠재되어 있는 똘끼 충만한 모습도 이해했다.

 

난 친구들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난 지금 많이 행복하다. 아주 많이. 누가 내게 진정한 친구가 몇 명이냐고 묻는다면 10명도 채 안 돼는 내 친구 수에 그 누군가는 고작? 이라고 되물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성격이 어느 정도 반영된 탓도 있겠지만 정말 내 사람이다 싶으면 아직 열어보지 않은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새 사람을 찾기보다는 내 사람에게 좀 더 잘해주고 또 그러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도 난 그럴 것이다.

 

아플 때 진정한 친구를 가려낼 수 있다고 누가 그랬던가. 이 말이 정말 맞다면 내 친구들은 모두 진정한 친구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유독 친한 두 친구가 있는데 그 두 친구의 반응은 정말 똑같았다. 게다가 비슷한 시간대에 메세지를 주고받던 터라 내 입에서는 기분 좋은 실소가 터져 나왔다. 어쩜 그리 반응이 똑같을 수 있는지. 한 친구는 다른 중학교에 다니는 친구인데 뭐하냐는 물음에 독감에 걸렸다고 하니 톡이 계속 연달아서 왔다. 아파서 어뜩하냐며 빨리 약 먹고 푹 쉬라는 등의 메세지였다. 학원에도 안 간다는 내 말에 자다가 심심하면 바로 연락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다른 한 친구는 같은 반 친구로 학원이 끝나자마자 톡을 했었다. 메세지를 연달아 보내고 날 걱정해주는 내용은 앞 친구와 똑같았다. 사실 다를 바가 거의 없었다. 그 때 친구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수도 없이 내린 비와 바람으로 다져졌기에 나는 내가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아플 때는 몸도 마음도 모두 약해지는 것 같다. 뭐 그리 대수롭지도 않은 말들이었지만 그날따라 유난히 가슴에 콕 하고 깊이 박혔고 참 고마웠다. 누군가가 날 생각해주고 걱정해준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를 그날 새삼 깨달았다.

 

오늘, 2월 17일 금요일이 생일이라는 말을 종업식 때 듣고 난 친구들은 생일 파티는 안 하냐며 내게 물었다. 친구들도 각자의 스케줄이 있었고 우리가 마냥 놀며 지내는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생일파티에 대해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 나오자 나는 장난인 줄 알고 농담 삼아 말을 던졌다. 생일파티 하면 올 거냐고. 그랬더니 한 친구가 그날 무슨 일이 있어도 제쳐두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친구도 당연한 게 아니냐며 거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1분 만에, 계획에도 없었던 내 생일파티가 결정되었다. 생일파티는 2월 18일, 토요일에 하기로 했다. 생일은 지나서 하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아무렴 어떠냐.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한 사람의 귀빠진 날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라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면 그깟 날짜 따위 다 부질없는 것인데 말이다. 안 그래도 친구들끼리 약속 잡아서 하는 생일파티는 처음이라 무척 설레고 떨리는데 친구들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친구들은 자신의 생일도 아닌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수줍게 웃었다.

 

세상에서 제일 아닌 척, 무심한 척은 다 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고 서로를 챙겨주는 내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덕분에 ‘우정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다. 너무나도 추상적이기에 우정이라는 명사의 깊은 의미를 느껴보는 날이 있을까 싶었는데 말이다. 친구 간에 사랑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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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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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마음속에 꼭 품어 왔던 씨앗이

겨우내 싹을 틔웠습니다.

 

비가 내리면 피할 곳 찾지 않고

아파했습니다. 견뎌냈습니다.

더 단단해질 거라고 믿으면서요.

 

어두운 눈동자에

누군가가, 누군가의 모습이

희미하게 비쳤습니다.

 

그는 내가 줄기를 곧게 세우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꼭 꽃을 피울 거라는 희망도 주었습니다.

 

그는 흔적을 남겼습니다.

은은한 꽃향기가

모든 공기를 집어삼켰습니다.

 

따뜻했습니다. 참 따뜻했습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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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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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날개

 

우리가 사는 세상의 새들은

저마다 날개를 가지고 있다.

 

크고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새들을 볼 때면

 

부푼 희망을 가득 안고

날개를 손질한다.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날개가 부러져도

 

쓴 눈물을 삼키며

붕대를 동여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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