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는 더 이상 대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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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는 더 이상 대안이 아니다

이영

2013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정치와는 아무 연관 없던 안철수가 대권후보가 된 것은 안철수 개인의 능력과는 거의 상관없는 것이었다. 기존 정치판에 대한 불신과 정치 일련의 작동 구조의 변화를 바라는 목소리가 안철수를 불러들였다. 안철수는 그것을 잘 알고 새정치라는 (실체 없는)기치를 내걸었고 일련의 사건을 거쳐 원내 제3당의 대권후보로 문재인과 오차범위 안에서 비등비등하게 겨루고 있다. 그러나 안철수는 짧았던 정치경력 중에 새정치를 보이기보다는 철저하게 현 정치 작동 과정에 충실했다. 그의 약진 속에 새정치에 열광하던 개혁의 목소리는 옅어지고 보수층의 목소리가 짙어지고 있다.

안철수의 약진은 보수층의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자신들을 대표한다고 믿었던 박근혜가 탄핵되면서 보수층들은 큰 상실감을 입었다. 설령 그들이 박근혜에게 지지를 철회하고 탄핵을 찬성했다손 치더라도 자신들의 가치를 대변하던 인물의 몰락은 곧 자신들의 가치가 경멸당하고 무시당한다고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자신들의 가치를 대변해줄 후보를 찾게 되는데 그것이 안철수이다.

보수를 자칭하는 두 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철수에게 표가 몰리는 이유는 일단 바른정당의 유승민은 배신자의 이미지와 따뜻한 보수라는 상당히 진보적인 대안을 내놓으면서 보수층의 마음과 멀어졌고 자유한국당의 홍준표는 지금까지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해온 친박의 잔당의 대권 후보라는 점과 그의 독선적 언행에서 보수의 신임을 못 얻고 있다. 둘의 지지율은 다 더해도 10%가 안 된다. 이 두 당은 사실상 대권의 승리에는 관심이 없고 누가 보수의 주도권을 차지하여 다음 지방선거 때 어느 당을 중심으로 보수가 재편될 것이냐 라는 것에 더욱 관심이 있다. 그렇다면 이제 후보군은 셋으로 줄여진다.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 심상정은 뿌리부터 노동운동에 두며 진보적 색깔이 뚜렷해서 보수의 가치에 반한다고 생각한다. 문재인은 지난 대선 때부터 박근혜의 대척점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계속해서 오르는 대세론에 불안한 보수층들은 “문재인만 아니면 된다.”라는 정서로 안철수에게 결집하게 된다. 즉 안풍은 보수층의 집결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으며 안철수 지지층 사이에서 보수층이 주류가 된다면 거꾸로 진보적 염원으로 안철수를 지지하는 지지자들이 배신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철수는 보수층으로의 확장을 꾀해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는 프레임을 구축해왔다. 안보적으로 보수의 시각을 많이 차용했지만 새누리당과 동일하게 보이지 않게 노력한 것은 국민의당의 지지기반이 호남지역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안철수는 초반부터 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를 반대해왔으나 최근 들어 보수층 표심을 염두해 찬성 측으로 선회하였다. 그러나 THAAD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고도로 날아오는 북핵을 막는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으며 도리어 X-band 레이더가 중국의 베이징까지 파악해 중국의 군사적 움직임을 관찰하는 중국 견제용라 볼 수 있다. THAAD의 한국 배치는 미국 MD체계의 편입으로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외교를 펼치지 못한다. 안철수가 주장하는 자강외교가 아닐뿐더러 자주외교의 심각한 침해가 발생하는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진보적 경제라는 프레임과는 달리 경제정책 또한 보수적 시각을 많이 차용하였다. 안철수의 공약 중에 규제프리존법이 있다. 규제프리존법이란 지역별로 규제의 완화를 골자로 한다. 과거 안철수가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표일 때 규제프리존법이 의료민영화를 실현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해왔다. 규제프리존법은 시장의 원리를 맹목적으로 믿고 정부의 간섭과 규제는 시장을 어지럽히는 악이라고 생각하는 보수적 시각을 그대로 차용하는 법이다. 시장과 정부의 관계에 대한 안철수의 보수적인 시각은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정부의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안철수는 정부가 뒤에서 민간을 돕는다는 표현을 썼다. 이는 최순실 사태가 큰 정부로 인한 것이라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정부의 시장개입이 시장의 원리를 어지럽혀 문제가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최순실 사태의 골자는 큰 정부의 실패가 아니라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단합한 정경유착이다. 미르 재단과 K-sport 재단의 설립 과정에서 대통령이 강제로 자금을 출현했다고 언론에서 보도하지만 사면권을 받은 SK와 합병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손을 빌린 삼성과 같은 반증이 일방적 착취관계가 아닌 거래관계였음을 입증했다. 도리어 한국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큰 정부를 가져본 일이 없다. 박정희가 국가가 나서서 주도하는 국가 사회주의적 면모를 보이기는 했으나 국가가 너무 절대화 되어 독재적이었다는 것에서 제대로 된 큰 정부라고 보기 어려우며 ―민주주의를 해치는 정부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것이 크든 작든― 김대중, 노무현 정부 또한 큰 정부를 실현하지 못했다. 도리어 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주의 기조를 받아들였다.

안철수가 대통령이 된다는 것 자체로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첫째는 그의 지지층에 보수와 진보가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수와 진보를 전부 아우르는 정책은 있을 수 있으나 국정운영의 전체적인 방향은 둘 다를 아우를 수 없다. 전체적인 방향만큼은 뚜렷한 색깔을 띠어야 한다. 집권 시 진보 지지자들과 보수 지지자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어느 쪽을 선택하든 지지자들에 대한 믿음의 배신이다. 보수적 정책이 주를 이루고 있는 안철수 후보가 진보적 지지자를 택할지는 미지수다. 둘째로 여소야대의 의회 상황도 문제가 된다. 우선 국민의당은 호남의 지역적 지지기반을 중시하는 세력과 중도보수로의 확장을 꾀하는 비례대표 세력으로 분열되어 있다. 안철수의 당선은 개인의 집권만이 아니라 당의 집권을 의미한다. 뚜렷한 정책 방향도 없는 당이 집권하는 것은 국정에 혼란을 가중한다. 또한 연합정부를 구성한다고 해도 호남을 두고 경쟁하며, 민주당의 2중대라는 비판을 의식하는 국민의당이 선명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민주당과의 연합을 꺼릴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남는 정당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정의당이 남는다. 현실적으로 정의당과의 연대는 정권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할 것이다. 남는 두 당 모두 전신을 새누리당에 두고 있어 최순실 사태에 책임이 있다. 두 당 중 어느 당과의 연합도 이번 대선을 만든 적폐청산이라는 촛불민심에 부합하지 않는다.

안철수라는 선택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기우였으면 좋겠으나 그의 집권이 정국을 혼란케 하고 지지자의 일부를 배신하고 다시금 적폐세력의 부활에 일조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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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종교화, 정치인의 신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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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종교화, 정치인의 신앙화

이영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헌재는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했다. 당일 이 소식을 들은 탄핵반대집회 참가자들은 폭력을 휘두르며 극렬하게 항의해 현재까지 참가자 3명이 사망하고 참가자와 경찰을 합쳐 다수가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모 대통령 변호인의 말처럼 박근혜를 예수로 보지 않는 이상 그들의 폭력 행위를 이해할 까닭이 없다. 이는 “정치의 종교화”, “정치인의 신앙화”의 대표적인 예다.

 

정치의 종교화는 이념의 종교화에서 시작한다. 이념의 종교화는 특정 이념에 대한 무조건적 맹신과 타 이념에 대한 극단적인 배타성과 폭력성을 갖는 것이다. 보수진영에서의 정치의 종교화는 공포가 근본이다. 공포라는 것은 불확실성에 기반 한다. 수풀 너머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를 때 사람들은 공포심을 갖는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보수는 더욱 강경하고, 패권주의적이며,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는 사고와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개인의 책임을 매우 중시하는 각자도생을 공포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긴다. 또한 적에 대한 반사적인 규정과 증오. 즉, 레드 콤플렉스가 보수진영 내에 깔려있다. 대한민국은 분단체제와 전쟁의 기억이 있기에 레드 콤플렉스는 굉장한 효과를 지닌다. 레드 콤플렉스야 말로 공포의 메커니즘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선명하며 이질적인 적을 두는 것은 공포의 불확실성에 대한 해소다. 이는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라 할지라도 기득권 사회가 만들어 놓은 분위기에 젖어 공포를 내재화 하고 적을 규정하는데 동조하게 된다. 이러한 공포의 심리가 작동해 정치의 종교화를 이룬 예로 일간베스트(이하 일베)를 들 수 있다. 일베에서는 여성, 성소수자, 청소년, 장애인 등등 약자에 대한 혐오가 문화로 받아들여진다. 혐오의 감정은 강자가 갖는 감정이 아니다.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해 자존감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인정을 받기위해 노력하거나 초월하는 태도를 갖지 못할 때 자신의 존재가 철저하게 가려진 곳으로 도피하고 자신의 존재가 하등하다고 낙인찍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내면에 폭력성으로 쌓여 그것을 자신들보다 상대적으로 약자라고 인식되는 상대들에게 퍼부어 공포를 해소하려는 욕구에 지나지 않는다.

 

진보진영에서의 정치의 종교화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진보 또한 공포를 느낀다. 그러나 그것에 더하여 진보는 다른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경제적 계급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불러일으켜온 분노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진보는 경제적 계급에 대하여 자본의 독점으로 인한 착취 주체와 착취 대상의 산물로 인식하기에 기본적으로 자본계급을 향한 분노가 있다. 거기에 더하여 마르크스가 제창한 공산주의 사상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단점과도 연관되는데 그 단점은 마르크스는 역사는 정해진 과정을 거쳐 필연적으로 공산사회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즉, 공산사회야 말로 인류의 이상향이자 역사의 종착지로서 공산주의를 향해 가는 길 외의 것들은 전부 쓸데없거나 악한 것으로 규정하고 토론과 비판의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다는데 있다. 실제 진보적 성향이 강한 오늘의 유머(이하 오유)에서는 선민의식이 강하게 나타나는데 그것이 마르크스 사상의 가지는 한계와 연관된다.

 

두 진영의 양상이 다르더라도 그 본질은 두려움이라는 것에 공통점을 지닌다. 단지 그 공포를 어떻게 해결하려 드느냐의 차이로 이념이 생기고 정치의 종교화의 양상이 조금 달라질 뿐이다. 사람이 공포를 느끼거나 분노를 느끼는 것은 매우 당연한 감정 중 하나다. 그러나 이것이 이성의 통제를 벗어나게 된다면 맹신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의 종교화만으로는 상기한 탄핵반대집회참가자들의 행위를 온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감이 있다. 그들의 행위가 정치적 종교화를 전제로 하지만 그렇게까지 폭력적일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필자는 정치의 종교화뿐만 아니라 정치인에 대한 신앙화가 이루어지기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정치인의 신앙화는 정치의 종교화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엄밀한 차이가 있다. 정치의 종교화는 자신의 감정이 어떠한 발로로 분출되는가가 주된 반면에 정치인에 대한 신성화는 자신을 그 인물에 투영한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공포 또는 분노를 느끼는 개인으로서의 자아가 있는 반면 후자의 경우 특정 정치인에 대해 자신의 정체성과 이상향을 투영함으로써 개인으로서의 자아가 아니라 특정정치인에게 투영시킨 자아로 존재하는 것이다. 레이건 대통령의 참모 리처드 워슬린은 사람들이 정치인이 가지는 견해와 정책에 근거하여 뽑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에게 자신의 이상향 또는 정체성을 투영하여 선거한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 사회의 박정희 시대를 지내신 분들이 ―그것이 진실이던 아니던―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위해 “희생”한 박정희를 온전히 믿고 자신들이 원하는 인간상의 이상향 또는 자신들의 고달프고 자부심이 있는 삶을 투영하여 만들어 낸 것이 박정희 신화인 것이다. 이것이 그 딸 박근혜에게 박정희 영광의 부분을 투영되어 절대화된 것이 오늘날의 박사모의 신앙이다. 그들은 박근혜를 동일시하기에 이르러 박근혜의 추락은 곧 그들의 추락, 더 나아가 그들이 살아온 날들에 대한 전체의 부정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더 폭력적일 수 있었던 것이다.

 

사상초유의 장마대선으로 얼마 남지 않은 준비 기간 동안 더불어 민주당의 대세론이 계속되고 있다. 더불어 민주당의 대선후보들 중 문재인은 단연 대세론으로 굳히기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일부지지자들의 문재인에 대한 신앙화는 그 정도가 심하다. 오유에 들어가면 문재인에 대해 공격적 성향을 드러낸 이재명을 한 목소리가 되어서 비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재명은 단지 경선토론과정의 규칙과 문재인의 문제성 발언들에 대해 확인하고 비판한 것이지 문재인에 대한 인격적 모독이나 음모론 등의 저급한 공작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명은 공격당하고 있다. 노무현과 문재인에 대한 친노, 친문의 지지가 과연 박근혜에게 향하는 지지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개인이 위대하다손 치더라도 그는 명예로운 영웅으로서 자리해야 할 뿐 신이 되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영웅이 나타나면 위태로워진다. 그 영웅이 신이 된다면 민주주의는 기나긴 침묵에 빠져 들 것이다. 절대화된 종교가 인간의 구원이 아닌 교리 그 자체가 목적이 되듯 마찬가지로 정치의 종교화는 정치행위의 목적인 국민에 앞서 정치행위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게 된다. 정치를 위한 정치는 독재라는 괴물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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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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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편하게 얘기하고 싶어서 글 올려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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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평론 ; 안희정의 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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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의 우클릭?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따라 조기대선을 맞는 정치권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촉박한 시간 아직 검증 되지 않은 후보들이 난립하고 있다. 특히 현 시국에 책임이 있는 보수진영은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으로 분열되고 뚜렷한 지명도를 가진 후보가 없어 등장한 대안이 반기문 전 총장이었다. 그러나 반 총장은 귀국 후 대권행보에서 자신이 실제보다 과대평가 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했다. 기차표 하나도 제대로 뽑지 못하고 자원봉사를 가서 할머니께 누워서 식사를 하게 하는 등 어색한 서민행보를 보이면서 자신이 대다수의 국민들과 일상을 공유하지 않는 특권계층이라는 것을 상기시켰다. 국민들은 반 총장의 서민행보를 보고 표를 위해 연기하는 낡은 정치를 보았다. 이는 그대로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반 총장이 사퇴한 후에 반 총장에게로 집중된 지지율은 새로운 후보를 찾아 떠났다. 그 수혜자 중 특히 안희정 충남지사는 이재명 성남시장의 지지율 고착화와 보수표를 얻으며 전체 대선주자 지지율 2위에 올라서는 약진을 보였다. 정권교체의 필요성을 느끼는 보수성향의 유권자들이 지지할 보수후보가 없을뿐더러 진보진영에서 가장 중도의 스텐스를 취하며 포용력이 있어 보이는 안 지사에게 몰렸기 때문이다. 즉 안 지사의 팽창은 보수층으로의 확장에 기반하고 있다. 이것이 안 지사의 가장 큰 장점이다. 문재인 대표가 30%로 전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으나 외연확장성은 안 지사보다 떨어진다고 평가되어진다. 안 지사는 지지율이 크게 오르자 더욱 활발히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 중 대다수는 중도 및 중도보수의 표를 향해있다. 그러나 안 지사의 우클릭―우클릭인지 신념인지는 모르지만―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안 지사의 우클릭 행보 중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대연정 발언이다. 대연정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은 20대 국회 의석 분포에 있다. 20대 국회의 의석 분포를 보면 어느 당이 집권한다 해도 여소야대 형국으로 새 정권의 정책추진에 제약이 많아진다. 연정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안 지사는 새누리당도 연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발언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현 시국의 책임이 있는 새누리당과 연정을 한다는 것은 새누리당에게 면죄부를 주고 부활할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이는 적폐청산, 정권교체, 정의의 시대정신과 맞지 않다. 시대정신은 곧 민심이다. 즉 탄핵정국을 여기까지 이끌고 온 촛불민심에 반하는 것이다. 국민들은 협치와 화합, 통합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적폐청산, 정권교체를 원하는 것이다. 또한 안 지사 고정 지지층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안 지사는 더민주다. 또한 스스로 말하기를 노무현과 민주당의 적자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그가 하는 발언들을 보면―가령 박정희 대통령을 공칠과삼으로 평가하는 것 등―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바둑 격언 중에 아생후살타(我生後殺他)라는 말이 있다. 내 돌이 산 다음에 상대의 돌을 공격하라는 것이다. 내 세력이 살고 비빌 언덕이 있어야지 밖으로의 확장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핵심 지지층이 없이 외연확장에만 치중하면 집 없이 대마만 떠돌아다니는 형국이 된다. 집이 없는 대마의 결말은 죽음이다. 마지막으로 보수층으로의 확장이 당내 경선에 얼마나 도움이 되냐는 것이다. 과거 새정치민주연합시절 안철수 의원과 비주류들의 탈당 속에서 문 전 대표는 획기적인 인재영입과 온라인 당원을 받는 등 당에 변화를 꾀해 위기를 극복했다. 그때 다수 들어온 당원들은 친문 성향과 진보 성향이 강한 유권자들이다. 안 지사의 약진은 중도보수 표의 흡수인데 그것이 당내 경선에서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대연정을 어째서 구상하고 선언했을까? 사실 안 지사의 우클릭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선거 때 진보진영은 종종 우클릭 행보를 보이곤 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클릭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보수의 프레임에 갇혀 2가지의 콤플렉스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온건진보 콤플렉스이다. 보수가 진보를 공격하는 프레임 중에는 과격성의 프레임이 있다. 실재 진보의 사상적 기반은 카를 마르크스다. 카를 마르크스의 계급론과 혁명론의 시각으로 사회를 본다. 그러나 보수가 민족주의적이고 적자생존적인 시각으로만 세상을 보지 않는 것처럼, 또한 모든 보수가 민족주의적이고 시장근본주의자가 아닌 것처럼 진보 또한 스펙트럼이 넓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 기득권(=수구) 세력은 주류를 차지한 보수 언론들을 통해 진보의 정당한 비판을 저의가 있다고 의심하고 종북으로 몰아간다. 진보는 보수의 프레임을 그대로 받아들여 스스로 ‘과격하지 않은 순한 진보’가 되기 위해 자기검열을 한다. 또 다른 콤플렉스는 실용적 진보 콤플렉스다. 보수는 보수언론을 통해 실용적 이미지를 선점함으로써 선거에서 우위를 점해왔다. 그러면서 진보에게 ‘쓸데없이 고리타분하고 이상적인 얘기만 하는 엘리트들’이라는 프레임을 씌워왔다. 큰 건물을 세우거나 강을 파는 등의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는 보수적 경제정책에 비해 분배의 공정을 통해 유효수요 창출로 성장을 견인하는 진보적 경제정책은 가시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성과이다. 또한 진보 정권인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 또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피면서 사실상 한국에서는 진보적 경제정책을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 실용적 진보 프레임도 상기한 ‘순한 진보 프레임’처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가시적 경제성과에 집착해 진보의 다른 소중한 가치 예컨대 공동체주의, 다양성, 평등함, 자유로움을 소홀히 하게 되면서 선거에서 제대로 된 진보의 가치를 홍보하지 못하게 된다. 이 2가지 콤플렉스에 빠져 자기검열하면서 진보 스스로의 가치를 표방하지 못하게 된다.

위에 상기한 2가지 이유 말고도 우클릭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진보의 우클릭이 도리어 보수의 당선을 돕는다고 얘기한다. 조지 레이코프는 사람들이 어떤 현상을 바라 볼 때 특정한 언어사고체계로 바라본다고 설명한다. 언어사고체계가 소위 말하는 프레임이다. 가령 “세금 구제”라는 말을 쓰면 ‘세금=고통’이라는 언어사고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세금을 줄이는 것은 고통에서의 구제라는 프레임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 프레임은 보수의 프레임이다. 이에 맞서는 진보의 프레임은 “세금은 투자”라고 하는 것이다. 투자라는 프레임은 세금이 공공재와 사회의 유지를 위한 비용을 넘어서 되돌려 받을 수 있는 이득이자 권리가 된다. 이처럼 모든 사람들 머릿속에는 진보적 프레임과 보수적 프레임 둘 다 존재하는데 어느 프레임이 더욱 지배적이냐에 의해 그 사람의 정치성향이 정해진다. 그렇다면 중도는 무엇인가? 우리는 중도를 진보와 보수의 중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조지 레이코프는 중도는 없으며 우리가 중도라고 부르는 이들은 사안에 따라 프레임을 달리 사용하는 이중개념주의자라고 말했다. 중도를 잡기위해 우클릭 하는 것은 첫째 자신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들며 둘째 보수적 프레임을 사용하여 이중개념주의자들에게 보수적 프레임을 활성화 시킨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호한 스탠스의 진보보다 확실한 보수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진보가 해야 할 것은 우클릭이 아니라 좌클릭이다. 중도를 잡기위해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중도를 왼쪽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빌려서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어색하다. 진보가 집권하기 위해서는 그저 자신의 가치를 솔직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표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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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평론 ; 꽃은 그 조그만 얼굴로 비바람을 견디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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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그 조그만 얼굴로 비바람을 견디어 낼 것이다

李榮

박근혜 대통령은, 아니 박근혜는 자신의 역량과 분에 넘치는 대통령 자리를 찬탈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무지와 독선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말살시켰다. 사실상 박근혜 정권은 정당성을 상실했고 대통령이라는 권좌를 찬탈해왔으니 나는 이제부터 박근혜에게 대통령의 호칭을 붙이지 않고 대통령으로서 인정도 하지 않겠다.

박근혜는 민주주의의 살인자며 민주주의 앞에 죄인이다. 내가 박근혜를 민주주의의 죄인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수 없이 많지만 간략하게 줄여 죄명을 제시하겠다. 각종 부패와 비리를 제외하더라도 박근혜가 민주주의의 죄인임을 밝히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우선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그 자체만으로도 민주주의의 훼손이다. 지난 대선에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사실이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다. 지난 대선은 중립성을 지켜야 할, 그것도 정보를 독점하고 북한에 대적하기 위한 기관인 국정원이 감히 국민을 상대로 작전을 벌인 관건부정선거였고 그러므로 지난 대선은 무효라는 의미가 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의 유일한 정당성은 선거인데 대선이 무효가 되어 박근혜 정권의 정당성은 상실되었다. 이것만으로도 박근혜가 탄핵되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그러나 박근혜는 대통령직을 유지했고 3년 8개월가량의 시간동안 대한민국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국민들의 삶과 정치를 수준 이하로 떨어뜨렸다.

“대한민국 헌법 제 21조 1항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는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명시한 것이다. 표현의 자유 없이는 진정한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 내 손으로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는다 해도 표현의 자유가 없다면 선거 때만 국민으로서, 주권자로서 권리를 행사하고 선거가 끝나면 노예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 시절 언론 장악이 박근혜 정권에 들어와서는 완벽하게 수행되었다. 언론은 더 이상 권력을 감시하지 않고 그저 떡고물만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개처럼 주인의 발에 지근거릴 뿐이다. 언론을 길들이고 그 뿐 아니라 국민들의 입을 가로막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정권에 반기를 드는 예술인들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테러방지법으로 국민들 개개인을 감시하고 국정교과서로 자신들의 ‘위대한’ 역사를 주입시키려 하고 있다. 정권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간첩을 조작하기도 하고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짓밟은 국정원에게 영장도 없이 국민들의 통신기록, 위치, 사생활을 열람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과연 국정원이 조작을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를 믿는 사람은 살인 전과범에게 칼을 맡기고는 그 전과범이 나를 지켜주리 라고 믿는 사람이다. 또한 국정원이 우리 사회에 암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2016년 초 국정원이 어버이 연합을 움직여 어용시위를 주도했다는 의혹보도로 알 수 있다. 그 돈은 전경련에서 나왔다. 기껏 한다는 짓이 자기들의 꼬붕들을 고용해 거리시위를 주도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에서 CIA가 미국노인연합회를 시켜 시위를 시키고 그 돈은 월스트리트에서 나왔다는 말과 같다. 당연히 대통령 탄핵감이다. 그러나 또 어물쩍 넘어갔고 국정원은 개혁되지 않았다. 우리 현대사의 끊임없는 생채기를 내는 국정원을 개혁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가 올바로 설 수 없다. 국정원은 밖에서부터 개혁되어야 한다. 절대 스스로 개혁을 할 수 없는 폐쇄적인 집단이다.

또 역사가 좌편향 되어 있다면서 올바른 역사를 위해서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한다고 한다. 이는 한국 보수 진영의 메시아 콤플렉스다. 자신들이 옳으며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우매하다고 보며 그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야 된다는, 그런 정신병이란 말이다. 역사는 객관적일 수가 없다. 역사가는 자신이 사실을 나열한다고 믿어도 사실을 선택하는 과정과 기술하는 과정에서 역사가의 주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가령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카이사르가 갈리아 총독의 임기가 다 되어가자 임기의 연장을 신청했는데 원로원이 이를 거부하고 지휘권을 반납한 뒤 민간인 신분으로 집정관에 입후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무장해제하고 적의 수중으로 들어오란 말이었다. 카이사르는 내전을 준비하고 로마를 향해 진군해 나갔는데 루비콘 강을 경계로 무장해제를 하고 로마로 향해야 하는 법이 있었다. 이를 어길 시 그것은 반란이었다)을 건넜다는 사실을 기술했다면 그 것에는 역사가의 주관이 빠져 있는 것일까? 수많은 사람이 루비콘 강을 건넜으나 역사가는 카이사르가, 원로원과의 내전을 결심한 상태에서, 루비콘 강을, 무장하고 건넜다는, 그 사실에 주목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건넜다는 사실 중에서 역사가 본인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기술했으니 이것이 과연 역사가의 주관이 들어가지 않았다 할 수 있는가? 그런데도 정권은 우기고 있다. 뻔히 보인다. 친일과 독재에 대한 기술은 축소될 것이고 박정희와 신군부의 업적은 부풀려지리라는 것을. 박근혜는 지금 개인 일기장에 써야할 내용을 교과서에 쓰려고 하고 있다.

국민들의 사상을 통제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시도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2015년 11월 14일, 제1차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 참가한 백남기 농민에게 물대포를 직사하여 농민이 쓰러지고 서울대병원에서 4시간가량 수술을 받았으나 중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끝끝내 2016년 9월 25일 향년 68년의 일기로 서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백남기 농민은 대학시절 박정희 군사정권에 대학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2차례 재적당하고 신군부의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 이후 계엄군에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당했다. 군사독재정권의 수장이었던 박정희와 신군부에 맞서 투쟁하셨던 분이 유신의 딸이 당당하게 청와대로 입성하는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세월도 노인의 분노를 막지는 못했으리라. 제1차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백남기 농민은 경찰의 물대포를 직사로 맞고 서거했다. 경찰이, 공권력이 국민을 죽인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살인 정권이다. 백남기 농민을 살해하고 경찰은 사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으며 법원에 부검을 하겠다며 부검영장을 신청하고 백남기 농민의 시신을 탈취하려고 시도했다. 부검은 사인이 불명확하거나 범인으로 추정되는 경우 범죄사실을 밝히기 위해 하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도 사인이 명확하기에 부검하지 않았다. 검경은 백남기 농민을 살해한 것도 모자라서 부검을 시도하여 사인을 물대포가 아닌 것으로 은폐를 시도하고 있다. 이미 돌아가신 백남기 농민의 시신에 칼을 대는 것은 백남기 농민을 두 번 죽이는 것이고 백남기 농민과 유가족들의 존엄을 무참히 짓밟는 짓이다.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저들에게 국민은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 국가는 없었다. 땅이 흔들릴 때도, 타국에서 온 이름도 생소한 병이 창궐했을 때도 정부는 없었다. 우리가 세금을 내고 국방의 의무도 지며 근로와 교육의 의무까지 다하는 것은 국가가 나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국민들은 묵묵히 제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앞바다에서 아이들이 죽어갈 때 정부는 없었다. 뒤늦게 나타난 정부는 아이들의 목숨을 가지고 돈 장난을 했다. 언딘이라는 회사에 독점 구조 계약을 맺어 이미 자발적으로 작업하던 모든 바지선들과 잠수부들을 철수시켰다. 그 시간 중에도 배는 여전히 차가운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고 아이들은 그 차가운 철 덩어리와 함께 심연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바다 속에 있는 아이들을 걱정하며 구조를 기다리던 가족들, 그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 정부의 구조를 기다렸다. 그들은 마땅히 구조 받아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렸고 신뢰를 저버렸으며, 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청와대 대변인 입에서 청와대는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말이 나왔다. 정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이다. 이는 자신 정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막중하고도 엄중한 책임을 회피한 것이다. 그 말을 어찌 그리도 당당하게 할 수 있을까. 그래놓고는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유가족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기는커녕 유가족들에게 시체 팔이라며 손가락질하며 그들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새겼다. 만일 유가족 분들이 정부와 박근혜에게 끔찍한 말을 퍼붓는다고 해도 그들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렇지 못 한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신사적으로 행동했으며 단호하게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밝히자고 요구했다. 그것이 아이들에게 우리가 사죄할 수 있는 길이라고. 그렇게 호소하는 유가족들을 무시하고 모욕한 이 정권의 무능함과 오만함에 분노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세월호는 잊혀 졌고 박근혜는 대통령직을 유지했다. 세월호 정국에서 박근혜가 탄핵되지 않은 것이 개탄스럽다. 비난을 받을 사람은 박근혜인데 유가족들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을 주는 우리 사회에 한 숨 밖에 나지 않았다.

2016년 10월 25일 좀처럼 국민 앞에 나서지 않던 박근혜가 대국민 사과를 했다. 사과의 내용은 최순실이 자신의 연설문을 고치는데 조금 도움을 받았으며 청와대의 보좌체계가 완성되자 그만두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보좌체계가 갖추어진 이후에도 최순실이 개입했다는 정황은 곳곳에서 포착되었으며 대부분이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최순실은 박근혜와 부적절한 관계였던 최태민 목사의 딸로 박근혜가 무한신뢰를 하는 사람이다. 최순실은 강남의 테스타로싸라는 카페에서 비선모임을 운영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여기에 심부름꾼으로 청와대 2급과 3급 행정관을 부리며 갖가지 연설문과 국무회의 및 청와대 수석회의 발언, 대법원장 면담 자료, 호주총리 통화 참고자료, 중산층 및 가계부채 문제 대안을 담은 청와대 국무회의와 정책인사 자료들을 열람하고 영향력을 미쳤다. 장관들을 비롯한 공무원들의 임명권도 휘둘렀으며 심지어는 남북한의 군사접촉에 대한 문서도 받았다. 일개 무당이 국정의 내치와 외교 전반, 더 나아가 대통령의 신변잡기와 안보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행사했으며 그 과정에서 국민의 혈세를 횡령하고 갖은 특혜를 다 받아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누구도 최순실에게 투표하지 않았다. 최순실에게 도장이 찍힌 어느 투표용지도 없다는 말이다. 이는 여느 비선실세 논란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민주주의는 절대절차다. 과거에 권력자들이 밀실에서 하던 회의를 양지로 끌어들이고 공개하여 그 과정 속에서 민의를 수용하고 감시당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최순실은 선출되지도 않았으며 임명되지 않은 일개 민간인, 그것도 무당에 불과하다. 무당이 권력자를 등에 업고 횡포를 부리는 것은 과거 왕정시대에나 가능한 일이다. 지금 최순실과 박근혜는 역사의 시계바늘을 뒤로 돌리다 못해 왕정시대까지 와버린 것이다. 최순실과 박근혜는 국정을 농단하고 헌법을 경시했으며 민주주의를 모욕했다. 실제로 최순실과 박근혜를 사법처리할 근거가 충분하다. 국가기밀과 공공기록물을 불법으로 공유하고 유출하였고 최순실에게는 개인비리의 혐의가 적용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들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파렴치한 짓을 했다. 박근혜는 탄핵하고 최순실과 함께 구속하여 엄정히 수사하여 진상을 다 털어 내야한다. 최순실과 박근혜는 용서받을 수 없다. 우리가 믿어온 민주주의를, 신뢰를 배신했다. 박근혜 대통령 사과 이후에 각종 포털에 박근혜 탄핵, 탄핵, 하야 등의 검색어가 오르내렸다. 이 말은 국민들이 이미 박근혜를 용서할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박근혜와 그 모든 일의 배후로 의심되는 최순실에게 더 이상의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 된다. 이미 그들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들을 저질러 왔다. 나는 그리도 많은 아이들이 죽게 내버려두고 한 노인을 죽인 것에 면죄부를 주고 넘어왔다는 것이, 그리고 아이들이 죽고 노인이 살해당한 일에는 분노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최순실의 국정개입이 명백해지자 탄핵을 이야기 하고 하야를 이야기 하는 것에 마음이 착잡해진다. 그 아이들과 노인의 생명이 최순실보다 가볍단 말인가. 진즉에 거두어졌어야 할 신뢰가 드디어 거두어졌다. 드디어 국민들은 정권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로 남을 것이다. 신뢰는 무너졌으며 그 신뢰를 다시 쌓기까지는 오랜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마 최순실과 박근혜의 그늘에서 벗어나기까지 많은 땀과 인내가 필요할 것이고 그 과정은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정립되는 일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는 것과 같다고 조롱했던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고 어느 미군 장군의 말에 우리가 들쥐가 아니며 우리가 아무나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과거에 입증해내었고 지금도 입증해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들꽃과 같다. 온실 속의 화초들은 조그만 천둥에도 움츠려들고 비바람에 뿌리 뽑히고 흩날려 갔다. 그러나 들꽃은 그 조그만 얼굴로 비바람을 견디어 낼 것이다. 그리고는 마지막에는 비바람과 사람들의 발과 마차의 바퀴와 온 몸을 갉아먹는 벌레들을 이겨내고 비구름을 뚫고 걷어내며 찬란하게 내리쬐는 햇빛을 보리라 나는 감히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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