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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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걸까.’ 이런생각이 머릿속에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나의 모든것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생활 패턴, 학교 성적, 사람들과의 관계 등 많은 것들이 어지럽게 또 복잡하게 돌아갔다. 하루하루 빠릿빠릿하게 규칙적으로 움직이던 내가 모든것이 하기 싫어졌고 삶에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학교 성적도 당연해 졌다. 전교 1등을 하던 내가 반에서 꼴찌로 떨어졌고 이런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그리고 사람들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망가지기 시작했다. 모든것이 이기적이게 바뀌어 버렸다.

 

이렇게 하루가 흐르고 한달이 흐르고 일년이 흘렀다. 나의 모든것이 점점 더 망가져가고 있었다. 이때 나는 유일하게 나의 기분을 전환시켜 줄 수 있는건 두 가지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첫번째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보는것과 두번째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보는것 이었다. 나는 연예계에 관심이 많다. 나의 모든것이 뒤틀린 후 부터 하는것이 좋아하는 연예인 덕질 하는것 밖에는 없었다. 연예인의 사진을 모으고 영상을 보고 노래를 들으며 마음에 되지도 않은 위안을 삼고 있었고 나는 그것이 진짜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고 믿고 싶었다. 생각보다 괜찮은 작전이었던걸까, 그 잠깐동안은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나중에 우울한 감정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럴때 마다 나는 더 좌절했다. 그러다 어느 날 학교에서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생겼다. 그 후로 덕질로 풀리지 않던 나의 우울한 감정이 그 사람을 보며 풀어졌다. 그 사람만 보면 웃음이 새어 나왔고 그 사람을 생각하는것 만으로도 즐거워서 몇시간을 그 사람 생각으로 지냈다. 그렇게 나혼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서 그런지 뒤틀어졌던 나의 모든것이 차차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보며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그 사람으로 인해 모든것을 다 가진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이 사람도 나를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아 이 사람만 날 좋아해주면 내가 여기 있는 이유가 있을텐데’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대로 다 해줄 세상이 아니었다.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지 않자 나는 또 다시 우울해 졌다. 그리고 결국 나는 또 다시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걸까, 저 사람도 나를 안좋아해주는데’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옛날보다 더 큰 우울증이 생긴것만 같았다. 그래도 ‘언젠간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겠지’라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그 후 일 년뒤 나는 아직도 그 사람을 좋아하고있었고 우울증도 그대로였지만 나한테 생긴게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내가 즐거울 수 있는 일을 하나 더 찾은것 이었다. 이렇게 우울한 나에게 더 특별히 그리고 더 의외로 다가온 것은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이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것이 조금씩 나에게는 최고의 행복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감정은 그대로였기 때문에 나의 감정에는 변화가 거의 없었다. 내가 기분이 좋으면 사람들을 도와주는것도 재미있었고 내가 기분이 좋지 않으면 평소 좋아했던 사람들을 도와주는것도 짜증났고 싫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그 사람한테 사로잡혀있다는것을 느꼈고 나의 모든 행동과 감정이 그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는것을 알았다. 이렇게 생각은 했지만 나의 감정은 달라지지가 않았다. 야속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막을 방법은 없었고 시간이 지나며 더 좋아지는 감정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집착이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나 자신도 말릴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나도 정말 심각한 짝사랑 인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사람을 포기 하고 내가 좋아하는 남을 도와주는 일을 하면서 나의 감정들을 되찾고 싶어졌다. 포기라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모두들 알듯이 포기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 사람이 다시 나를 잡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또 다른 일 년이 흘렀다. 어느새 고3이 된 나는 대학을 가야된다는 생각에 정말 공부만을 죽어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년전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나는 도무지 공부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나는 결국 그 사람을 잊으려 전학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사람 하나때문에 전학까지 온 나는 공부에 몰두할 수 있을것만 같았다. 하지만 전학을 온 이후로 나를 즐겁게 해주는게 사라지고 말았다. 그 사람을 못보니 더 우울해져 갔고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공부까지 하기가 싫어졌다. 하지만 나를 꽉 붙잡고있는 부모님 때문에 나는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혼자 공부를 해야만 했다. 삶에 즐거움을 잃은 다음부터 나의 꿈과 목표는 도무지 생길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공부를 해도 좋을 성적을 못 받을거같은 부정적인 생각에만 사로잡혀있었다. 삶에 대한 즐거움이 없이 공부를 해서 인지 원하던 대학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모든일이 풀리지 않자 나에게는 평소에 있던 우울증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극심한 우울증이 찾아왔다. 평소와는 다른 그런 우울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좌절하고 있는 나를 본 학교의 한 선생님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주셨다. 그리고는 나에게 제안을 하나하셨다. 다름아닌 내가 평소 좋아하던 사람들을 돕는일, 즉 봉사를 할 생각이 없냐고 물으시는 것이었다. 모든것이 마음에 안들었던 나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선생님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나의 성품은 더 악해져만 갔다. 모든게 내 맘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성품이 바르기로 소문난 나는 일진들과 어울려 놀게 되었고 나도 일진이 되어 갔다. 더 심각한건 나는 뭐가 잘못되었었는지 깨닫지 못했었다. 나를 본 부모님은 심리치료까지 받게 하셨지만 이와중에도 공부를 끊임없이 시키셨다. 나에게 모든일은 다 지옥같았다. ‘세상은 정말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곳인가’ 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러다 어느 날 집에가던 중 나에게 다가 온 한 친구가 있었다. 바로 내가 짝사랑 하고 있던 남자애였다. 그 애가 다가와서는 나의 하루에 대해 물어보았다. 나는 이때당시 심한 조울증이 있었기때문에 남자애를 봤을때 힘든일은 다 잊혀지고 좋은 기분만 남게 되었다. 그 남자애는 매일 매일 나에게 와서 나의 하루를 물어보았고 덕분에 우리는 친한 사이의 친구로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남자애와 함께여서 일까, 나의 하루하루도 바뀌고 있었다. 다시 나의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중 이었던 것이다. 기분이 좋아지니 공부도 할 마음이 생기고 성품도 다시 갖추어 나아갈 수 있었다. 친구가 많았던 나는 나의 성격변화로 인해 많은 친구를 잃었었지만 그 남자애 덕분에 나는 다시 많은 친구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나의 꿈, 내가 좋아하는것을 다시 찾을 수 있게되었다. 이번에도 나는 남을 도와주는 일에 흥미를 느꼈고 이번에는 ‘이게 진짜 내가 좋아하는거구나’ 라는것을 느꼈다. 내가 좋아하는 남을 도와주는 것을 가지고 나는 다시한번 사회복지학과에 지원을 하게 되었고 열심히 공부해서 인지 그 다음년에 나는 사회복지학과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사회복지학과에 들어간 나는 모든것이 다 행복했다. 내가 그동안 원하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만큼의 뿌듯함도 같이 느꼈기 때문이다. 모든것이 다 좋다고 느낀 나는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했고 모든것이 감사했다. 이래서 생각이 났던 것일까. 예전에 엄마가 나에게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엄마는 나에게 항상,

“너는 항상 원하는길로만 가면 되는거야. 남들의 시선 신경쓰지말고 너 하고 싶은거 해. 그게 후회도 안되고 가장 좋은 길이니까.” 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이 생각난 나는 엄마가 말씀해주신 대로 내가 하고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이 전까지는 엄마라는 존재는 항상 무섭기만 하고 나에게 짐만 되는 존재 그리고 내가 필요할때만 있으면 되는 존재라고 생각을 했었지만 오늘이 되고서는 나의 생각이 바뀌었다.  ‘엄마 덕분에,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신경을 써주신 엄마 덕분에 내가 지금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구나’ 라고 느끼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겨우 그 남자애 한명 때문에 나의 기분이 왔다갔다 한건가. 그 남자애랑 멀어지면 또 기분이 안좋아지려나’ 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기분이 들 것 같지 않았다. 내가 기분이 좋고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이 그 남자애 때문이라면 아쉬울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또 고맙기도 했다.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봉사를 하다보니 시간도 무려 1년이나 지나 있었고 행복했던 시간들이 많이 쌓인 것 같았다. 이제는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것 같아서 뿌듯했다. 어느덧 25이 된 나는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고 드디어 내가 원하는 직장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직장을 찾는 일은 어려웠다. 나는 무조건 일을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 문제를 알게 된 나는 ‘걱정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즐겁게 살아보자’ 라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직업을 찾기 보다는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 으로 가서 봉사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생각보다 갈 곳이 많았던 나는 신기하기도 했지만 내가 원하는걸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매우 좋았고 또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것에 뿌듯했다.

 

하루는 고아원에가서 봉사를 하게 되었다. 처음보는 아이들이라 낯설었지만 나의 직업인 만큼 최선을 다했다. 아이들과 보냈던 시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뜻 깊었고 너무나도 갚진 시간 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내가 봉사에 열심히 집중을 하고 있을때쯤 나의 친구들 소식이 차츰 들려오기 시작했다. 대기업에 취직해서 월급을 많이 받는 친구, 사람들이 필요로하는 의사를 해서 열심히 일을 하는 친구, 벌써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에서 지내고 있는 친구 등 여러가지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친구들의 소식과 함께 친구들의 말까지 나에게 들려왔다. 친구들은,

“뭐하러 그렇게 돈도 못벌고 힘들기만 한 걸 직업으로 하고 좋다고 해? 너 공부 잘하니까 더 좋은 회사 들어갈 수 있잖아. 다른 회사 한번 들어가봐. 그러면 이런 일 안하고 행복하게 돈 많이 벌면서 살 수 있어.” 라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한명이 이렇게 말을 하기 시작하니까 다른 친구들도 나에게 비슷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 말을 들은 나는 속이 상했다. 나는 내가 좋아해서 하는 일인데 주변사람들이 알아서 판단하고 또 나는 돈을 많이 벌려고 시작한 일이 아닌것을 친구들이 알아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내 마음도 모른채 계속해서 이런 말들을 했다. 그렇게 몇달이 지난 후 나는 친구들의 말에 세뇌를 당해서 인지 ‘그래, 돈도 못 벌고 힘들기만 한 이 일은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 없이 한번만 와줄 수 있냐는 고아원의 요청, 양로원의 요청, 그리고 자주가던 해외에서의 요청까지도 다 무시해버렸다. 그렇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보낸지 벌써 한달이 다 되어 갔다. 다시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쯤 우리 집으로 택배가 하나 날라왔다. 확인해보니 우리나라에서 준 상장이었다. 무슨 상장인가 하고 열어보니 봉사 우수 상장이었고 상장과 함께 온 또다른 물건이 있었다. 바로 하나의 카드였다. 이 카드는 주민등록증 같이 봉사자의 이름과 사진이 함께 붙어있는, 이제는 진정한 봉사자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주는 카드였다. 그리고 카드 아래에는 여태까지 내가 가서 봉사 했던 곳에서 적어준 ‘감사해요’ 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이 상장과 카드를 본 나는 울컥 했다. 여태까지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힘들기만 한 직업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사람들은 정말 고마워하고 있었고 나의 도움을 필요로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내가 이번 한달동한 한 행동들을 되돌아 보게 되었고 나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그리고 다음달 부터는 다시 봉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다짐했던 대로 다음달부터 다시 봉사를 했고 사람들은 나를 반겨주었다. 다시 봉사를 시작하며 나는 또 다른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들을 경험하고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이제는 해외로 봉사를 나가는 일이 많아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전과 달라진게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전보다 훨씬 더 봉사할때 행복함과 소중함을 느끼고 있었고 내 안에 불평과 불만이 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것이 감사하게 다가오기 시작하자 엄마가 한 말이 생각났다.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지말고 너가 즐겁게 할 수 있는것을 하라는 엄마의 말씀.. 엄마께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비로소 내가 왜 여기에 이렇게 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 바로 사람들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된것이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며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시간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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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상처 하나가 낳는 위험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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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름없이 시작했던 평범한 하루다. 평소와 같이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제일먼저 내가 하는일은 내 에스크 확인이다. 에스크는 익명으로 아무나 나에게 질문할수 있는 질문지이다. 내가 페이스북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미디어에 관심을 가진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미디어에 관련된 모든것이 다 신기하다. 특히 누군가가 나에게 익명으로 질문을 남기는 것 말이다. 들뜬 마음으로 내 에스크를 열었지만 내가 기대했던 바와는 달리 눈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린다. 누군가가 남기고 간 질문들이 나를 울게 만든 것이다. 수많은 질문들이 있었지만 그 중 단 하나도 나를 좋게 봐주는 질문은 없었다. 전부다 나를 욕하는 질문들 나를 무시하는 질문들 심지어는 우리 가족까지 무시하는 질문들이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부모님한테 말해야 할지 아니면 나 혼자 울어야 되는지 고민이 많이 되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가 페이스북과 다른 미디어에 관련된것들을 하는걸 싫어하셨기 때문에 말하기가 겁이 났다. 그렇기에 나는 일단 내 슬픔을 혼자 가지고 있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이런 질문들을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나는 나랑 친한 친구에게 말해보기로 했다. 왠지 부모님보다는 친구가 편했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에게 내 에스크를 보여주며 ‘나 이런 상황이 처음인데 어떻게 해야될지를 모르겠어’ 라고 문자를 보냈다. 친구에게서 5분도 안되서 답장이 날라왔다. 친구의 대답은 내 예상을 확 깨는 대답이었다. ‘너 일인데 왜 나한테 물어봐. 너가 알아서 해’ 라는 친구의 대답에 나는 눈물이 다시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다른 친구한테도 물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이 친구한테서도 돌아오는 답은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또 다른 친구도..그 다음 친구도 마찬가지 였다.친구들의 대답을 듣고 난 나는 ‘그래도 우리 친구인데 걱정이 안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아무런 해답을 얻지 못한채 에스크에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는 속상한 마음에 질문들을 다 지웠다. 질문들을 지우는 동안 나도 모르게 눈에서는 눈물이 계속나고 있었다. 별 다른 생각없이 하염없이 울고 나니 한시간이 지났다. 나도 모르게 내 시간을 허비한 것이다. 하염없이 울고나니 속이 좀 편해진 느낌이다. 그렇게 남은 하루도 편하지는 못한 마음으로 보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삼일째 되는 날 나는 내 머릿속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에스크가 어느순간 다시 들어가 내 머릿속 한켠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느꼈다. 이번에는 몇주가 지나도 떠나지 않았다. 에스크가 내 머리속에 다시 자리잡은 이후로 내게 드는 생각은 ‘왜 내가 이런 욕을 들어야 되지’ 라는 생각과 ‘내가 이런 욕을 들을 만큼 가치가 없고 민폐만끼치고 다녔었나’ 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내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내가 잘못한 것이 없었던건 아니지만 이정도 욕을 들을 정도로 잘못한건 없었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렇지만 과연 이 생각이 정말로 그냥 스치고 끝난것이었나? 아니다.  내가 잠시 스쳤다고 생각했던 것이 하루고 이틀이고 계속 내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한가지일에 이렇게 힘들어하고 시간을 보내면서 생각한거는 이번이 처음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지쳐간다. 그러다 문득 에스크에는 질문들을 신고할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것이 생각났다. 나는 바로 핸드폰을 들고 에스크에 들어가서 내가 전에 지운 질문들을 다시 복구하고 그 질문들을 신고했다. 신고한 후 보니까 내가 신고한 질문들을 남긴 사람들은 더 이상 내 에스크에 질문들 남길수가 없었다. 나는 이 사실을 알아낸 후 내 친구들에게 ‘내 에스크에 질문 하나씩만 남겨주면 안되?’ 라고 물어봤다. 친구들은 ‘알았어’라고 대답이 왔다. 나는 ‘알았다고 하는것 보니까 얘네들은 아닌가 보네?’하고 기뻐했다. 왜냐면 이 친구들은 나랑 가장 친한 친구들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대부분의 친구들 한테서 문자가 다시 날라왔다. ‘야 나 너 에스크에 질문을 못남기는데? 에스크가 이상한거 아니야?’ 라는 답장을 본 나는 잠시동안 가만히 있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보니까 ‘그럼 얘네들이 내 에스크에 욕한 사람들이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억울함과 배신감에 몇일만에 눈물이 다시 흘렀다. 우선 친구들에게는 내색을 안하기로 했다.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는다. 힘들고 속상한 마음에 내 생각들은 점점 위험한 생각이 되어가고 있었다. 친구들이 내 에스크에 욕을 달았다는것을 알고난후 처음에는 ‘뭐 그럴수도 있지.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순 없지’ 라는 생각으로 내 자신을 달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긍정적인 생각들은 사라져간다. 그런 생각에 시달린지 일주일이 넘어가니까 ‘내가 이렇게 욕을 먹는데 굳이 사람들에게 잘 보일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나는 친하다고 느꼈던 친구들이 나에대해서 안좋게 생각하고 있네’ 라는 생각부터 시작해서 ‘그럼 나는 이제 믿을 사람이 없네. 그럼 나 여기에 왜 살고 있지? 나는 필요한 존재가 아니었네’라는 생각까지 하면서 ‘내가 갑자기 사라지면 그때는 나를 한번이라도 생각해 줄까? 아니면 진짜 자살을 해볼까?’ 라는 생각까지 하게되었다. 처음에는 에스크에 달린 욕이 이렇게 심각한 생각으로까지 번질줄은 몰랐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하던 나는 결국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렸다. ‘자살까지는 내가 무서워서 못하니까 자해라도 해볼까’라는 생각이 내 머리속에 들어온 것이다. 이 생각을 바로 실행에 옮길 마음도 있었기에 더 무서운것이었다. 나는 ‘부모님이 언제 집에 안계시지’를 생각해보며 진짜 자해할수 있는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침 부모님이 집에 안들어오시는 날을 알게되었고 나는 그날 꼭 자해를 시도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내가 기독교인이지만 이때는 너무 힘들어서 하나님이고 뭐고 내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내가 사로잡힌 이 생각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하나님이 나 이렇게 만들었는데 뭐 어때요’라는 마음으로 부모님이 들어오시지 않는 날에 커터칼로 내 손목을 그었다. 그 순간 손목에서 피가 뚝 뚝 떨어졌다. 내가 자해하기로 마음 을 먹었었지만 막상 피를 보고 놀란 나는 몸이 먼저 반응해 소독약과 붕대를 가지고 와서 내 팔을 치료했다. 나도 무서웠는지 깊게 넣지는 않았나 보다. 피를 닦고 붕대를 감은 나는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죽지 않아서 다행이다..살아서 다행이다..많이 안다쳐서 다행이다..’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들더니 갑자기 부모님이 생각났다. ‘부모님이 이렇게 열심히 나를 키워주셨는데 내가 내 잘못된 생각때문에 내 몸음 상하게 했네..’ 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어느때보다 눈물이 굵게 쏟아져 나왔다. 그때 ‘나는 내가 정말 미쳤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부모님께 너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기에 더 슬펐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자, ‘내가 방금 한짓은 하나님의 법에도 어긋나는 것이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눈에서는 또 다시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이때 이후로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생각은 단 하나,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살자. 저런거에 상처받지 말자. 다른사람들은 몰라도 부모님과 하나님은 내편이라는 것만 믿고 가자’ 라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니 모든것이라고 할수는 없겠지만 대부분의 악플과 나를 안좋게 보는 시선들이 내 생각속에 남아있지 않게 되었었다.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그 일로 인해서 내가 정말 큰 것을 배우고 가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부모님, 하나님 죄송해요..그리고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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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피겨스-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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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히든 피겨스> 감상문

 

히든 피겨스 라는 영화는 얼마전 3월 23일에 개봉해 많은 인기를 얻고 네이버에서 9.41이라는 평점를 받은 데오도르 멜피 감독의 영화이다. 이 영화는 여성 흑인의 차별에 대해 나타내고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는 더욱더 흑인, 그리고 여자라는것이 도대체 왜 문제가 되어야하고 차별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흑인 여성 캐서린 존슨은 흑인 여성들의 리더이고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존슨은 흑인 여섯 최초로 NASA 엔지니어를 꿈꿨다. 하지만 막상 NASA에 들어간 그녀는 심한 차별을 당했다. 오로지 흑인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멀리있는 유색인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으며 또 흑인 여자라는 이유로 중요한 회의에 참석할수 없었다. 그리고 사무실안에있는 커피포트까지 이용이 불가능했다.하지만 존슨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NASA엔지니어 중에서 처음으로 우주궤도 비행 프로젝트에 필요한 새로운 수학 공식을 찾아냈다. 그 때부터 존슨은 모두의 관심을 받으며 NASA엔지니어의 흑인 여성이라는 편견을 깨고 중요한 일을 맡으며 NASA엔지니어의 중심이 된다.

 

존슨이 NASA엔지니어의 최초 흑인여성이 된 후 메리 잭슨과 도로시는 존슨과 같이 일을 하게 된다. 존슨, 메리 잭슨, 그리고 도로시는 서로 되게 친한친구였다. 그들은 서로를 도우며 NASA에서 필요한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었다. 그렇게 일을 하고 있을때 NASA에서 우주선을 날린다는 소식을 받았다. NASA는 그전에도 수없이 시도했지만 다 실패했지만, 존슨, 메리 잭슨, 그리고 도로시가 들오고 난 후 처음시도 하는 것이었었다. 이 우주선을 성공적으로 날릴려면 새로운 수학 공식이 필요했다. 모든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밤늦게까지 생각을 해봐도 새로운 수학 공식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한 두명씩 지쳐갈때쯤 존슨이 그 수학공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 후로 존슨은 그 수학공식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처럼 밤늦게까지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수학공식을 발견한 존슨은 NASA회사 안에 있는 큰 보드 위에 자신이 발견한 수학공식을 적었다. 모든 사람들은 존슨이 쓴 새로운 수학공식을 눈여겨 보았고 또 놀라기 시작했다. 마침내 NASA는 존슨이 발견한 수학공식을 우주선 날리는데 적용하기 시작했고 그 후로 존슨은 더 중요한 일을 맡았다. 마침내 우주선을 발사 하는 날이 다가왔다. 오랜만의 시도하는 우주선 발사라서 NASA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고 다 긴장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NASA의 우주선은 발사 되었고 안정적으로 발사되어서 사람들은 모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안도했다. 하지만 그 다행이라고 생각한것도 잠시 우주선은 점점 궤도를 벗어나고 있었고 자칫하면 또 실패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 순간 아무의 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때, 존슨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을 내린 NASA는 존슨에게 가서 해결방법을 찾아달라고 했다. 그리고 역시 존슨은 아무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 중요한 순간에도 침착히 해결방법을 찾았다. 존슨 덕분에 NASA의 우주선 발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렇게 히든 피겨스에서는 처음에는 관심도 받지 못했던 NASA엔지니어의 최초 흑인여성 존슨은 NASA의 새로운 역사를 새기고 NASA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아무의 관심도 받지않고 무시만 당하던 존슨은 오로지 자신의 노력과 용기로만 이 일을 이뤄낸 것이었다. 이 일은 정말 멋진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에게 무시당하면 위축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혼자 일을 이겨내기 보다는 포기하는 쪽으로 생각하는 일이 많을것이다. 하지만 존슨은 전혀 포기하지 않고 모두의 예상을 뒤엎으며 새로운 수학공식을 발견해내고 NASA의 가장 중요한 사람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서 존슨의 노력을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감독인 데오도르 멜피는 우리에게 존슨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위축되지 말며 용기를 가지고 하고싶은 일을 끝까지 하라는 말을 하고싶었던것 같다. 나는 나에게 자신없는 분야 이거나 아니면 남들보다 못하는 분야를 할때 위축되고 내가 한 일에 대해 자신감이 없다. 항상 내가 구한 답은 다 틀릴것 같고 내가 그 틀린 답을 말함으로서 사람들이 놀리고 또 더 무시할거 같아서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편인것같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조금이나마 자신감을 얻은것 같다. 감독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처럼 나도 한번 내가 자신이 없거나 남들보다 못하는 분야를 할때에도 존슨처럼 최선을 다하고 용기있게 하는 능력을 기르고 습관을 들여야 할것 같다.

 

히든 피겨스 라는 영화가 흑인 여성의 차별에 대해 나타나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한번 차별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는 작년에 '내 이름은 칸' 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내 이름은 칸' 이라는 영화안에서도 차별을 다루고 있었다. '내 이름은 칸' 이라는 영화에서는 주인공인 칸이 오로지 무슬림이고 자폐증을 앓고 있다는 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의 무시를 당하고 오해를 많이 받았다. 하지만 칸은 나중에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바꾼 멋진 일을 하였다. 그 일은 사람들이 가진 무슬림과 자폐증에 대해 편견을 깬 것이었다. 사람들은 '무슬림이면서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은 남에게 피해만 주고 이 세상에서 쓸모없는 존재야' 라고 생각했지만 칸이 무슬림은 나쁜 종교라는 편견을 깨며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그 일로 인해 칸은 모든사람들에게 존중을 받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한 내용은 아무리 사람들이 무시만 하는 사람이었던 칸이 모든사람의 편견을 깨고 좋은일을 했듯이, 우리가 사람의 겉으로만 보고 판단하면 안된다는것 같다. 겉으로만 보면 칸은 누구보다 약한 사람이었지만 막상 칸은 마음은 그 누구보다도 따뜻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이름은 칸'에서는 겉으로만 보고 차별하지 말자 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영화인것 같다. 내가 이 영화 이야기를 왜 했냐하면, '내 이름은 칸' 이라는 영화와 히든 피겨스와 우리에게 전해주고 하는 내용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칸' 에서도 그렇고 히든 피겨스에서도 그렇고 둘다 차별에 대한 이야기이고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은 내용이 둘다 겉만 보고 차별하지 말고 사람의 내면을 봐야 한다는 이야기인것 같다. 히든 피겨스에서도 처음에는 존슨은 아무의 관심도 받지 못했고 또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 일을 해야만 했는데, 존슨이 구한 새로운 수학공식 하나로 존슨의 삶을 완전히 바꿔버렸듯이 나도 이제는 내가 가진 나만의 편견을 깨고 존슨 처럼 자신있고 용기를 가지고 내가 도전해보지 못한것을 도전해보고 싶다. 끝으로, 다시한번 말하지만 히든 피겨스는 정말 멋있고 교훈이 많은 영화인것 같아서 내가 지금까지 본 영화중 가장 생각을 많이 하고 나를 돌아보게 만든 영화인것 같고 또 나에게 자신감을 찾아준 영화인것 같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보라고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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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칸-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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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쓸 감상문은 내 이름 칸 이라는  2011년에 나온 카란 조하르 감독이 만든 인도영화다. 이 영화는 자폐증을 앓고있는 무슬림, ’리즈완 칸’ 은 미국으로가 우연히 ‘만디라’ 라는 운명적인 여자를 만나게된다. 칸은 만디라와 결혼을 하고 죽을때 까지 지금 이 행복을 이어나갈것 같이 만디라와 행복하고 서로 사랑했지만 911 테러 후 그들의 사랑은 멈춰 버린다. 911 테러 후 만디라의 오해로 칸은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 여정이 시작된다.

 

내 이름은 칸 은 2011년에 나온 영화이다. 이 영화는 그때 당시 나왔던 영화들에 비하면 9.29라는 높은 평가를 받았던 영화다. 이 영화에서는 종교의 차별에 대해서 정말 명확히 다루고 있다. 그때 당시에는 이슬람과 무슬림을 대하는 태도는 정말 360도 달랐다. 그래도 칸이 어렸을때는 그나마 괜찮았다. 하지만 칸이 어른이 되고 만디라를 만나고 911테러가 난 후 에는 달랐다. 칸과 만디라와 그녀의 아들은 911 테러가 나기 전까지 정말 이세상의 어느 가족 보다도 행복하게 살았다. 그렇지만 911 테러 후 무슬림들은 모두의 적, 그리고 증오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칸의 아들은 자신의 이름에 칸 이라는 한 단어를 더 붙이고 학교를 다니고 있었지만 911테러후 더이상 예전처럼 지낼수 없게 되었다. 친구들은 칸 아들 이름에 무슬림 이름이 들어가있는것을 알고 왕따를 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칸의 아들은 친구들의 괴롭힘에 목숨을 잃고 만다. 그 것을 알게된 만디라는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잃었다는 생각때문에 그녀는 칸을 집에서 쫓아내고 대통령한테 가서 ‘내 이름은 칸이고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니에요’ 라고 말할수 있을때까지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했다. 그때부터 칸의 여정은 시작됐다.

 

칸은 대통령을 찾으러 가는 길에 많은 의심을 받고 감옥까지 갔었지만 끝내 대통령을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때에는 대통령도 칸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런 후 칸은 자신이 대통령을 보기전에 만났던 가족이 살고있던곳에 홍수가 나서 사람들이 다치고 집이 무너져 내렸다는 것을 듣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 가족과 거기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러 갔다. 처음에는 조그 만한 손길로 도와주기 시작했지만 칸의 행동이 뉴스에 나가면서 많은 사람들도 칸을 도와주러 왔다. 칸은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도움을 주기 시작했던것이지만 이 행동이 나중에 자신이 사랑했던 만디라를 다시 만날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것은 칸의 행동이 뉴스에 나가면서 무슬람에 대한 차별도 없어졌다. 그 이유는 칸도 무슬림 이었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 인식되어있었던 무슬림과는 다르게 사람들을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칸은 대통령을 만나 자신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란것을 말하고 오해를 푼 후 만디라와 다시 좋고 끝나지 않는 사랑을 할수 있게 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에는 종교적 차별이 명확하게 나와있고 배울 수 있는것도 명확이 나와있다. 이 영화의 교훈은 종교로만 따지지 말고 또 사람의 겉으로만 따지지 말고 항상 내면의 것을 먼저 보자는 내용인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의 삶을 돌아볼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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