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함을 안다는 것. 진리를 깨닫는 것. 가치를 알아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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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진리를 잃어버린 이 한국 사회.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지금의 우리들. 비록 삶은 편한하고 안락하지만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지금, 죽음이 앞에 놓여 불안과 억울함에 억눌렸던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서스름없이 행하는 우리들. 그저 선하다고, 그릇되지 않았다고 여겨지면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 해보지 않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마치 자신의 아버지를 살인죄로 고소하는 것이 선하다고 철썩같이 믿은 에우튀프론처럼… 불분명한 선함의 잣대를 가지고 자신은 안다 생각했지만 막상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에우튀프론처럼… 생각하지 않았떤 에우튀프론, 그는 생각 하지 않았다. 선하다는 것이 무엇일지, 그 기준은 무엇일지, 정의로움과 진리에 대한 생각들. 에우튀프론은 자신이 당연히 그것들을 안다고 생각했고, 섣불리 자신의 서투른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이런 에우튀프론의 모습과 아이히만의 모습은 다를 것이 없다. 몇 천년이 지난 후였기에, 인간의 욕망과 악함이 극도로 쏫아 올랐을 당시 였기에, 에우튀프론이 자신의 아버지를 고소하는 것으로 끝아 난것에 반해 아이히만은 무고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무사유의 죄. 생각 없음의 죄.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생각 하라고. 자신이 알고 있지 않음을 깨달라고.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이런 소크라테스를 아테네 정부는 첫 째,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고로, 둘 째, 국가가 인정한 신을 믿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신을 믿지 않는 이유로 그를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크리톤을 포함안 돈 많은 제자들이 소크라테스의 탈옥을 지지하고 후원했지만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죽음을 달게 받아드렸다. 당신의 안녕, 당신의 목숨, 당신의 아이들, 당신의 지식들, 당신의 사상들, 당신의 교육 방침, 당신의 영광, 다른 사람의 시선등… 소크라테스가 탈옥을 해야만 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의 신념은 탈옥과 정반대의 곳을 가르켰다. 인간을 위한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보다 실제로 아름답고 정의로운 것을 행하기 위헤서는 탈옥을 해서는 안되었다. 자신의 탈옥이 절대적인 신의 법을 어길 수 있으므로, 적의 정의롭지 못함이 나의 정의롭지 못함을 정당화 시키는것은 아니기에, 또한 자신의 죽음이 신의 뜻임을 믿었기에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정부가 내린 법에 따라 죽었다.

 

소크라테스의 고소인들은 그의 죽음이 모든 것의 종점이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준 전율과 감동은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몇 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따라서 그의 죽음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이겼다고 생각했던 소크라테스의 고소인들.. 그들은 진리가 맺을 열매를 너무 과소 평과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은 그의 죽음 이후 더욱 더 큰 열매를 맺었다.

 

나의 무지함을 알고, 나의 약함을 깨닫는다면 지혜와 진정한 힘이 도울 것이라 믿는다. 마치 소크라테스가 그랬던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었던 그. 델포이 신전의 신조차도 인정했던 그의 지혜로움. 그런 소크라테스 조차 무지한 인간이었다. 그것을 인지한 순간, 그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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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어 둔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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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다보면 나도 모르게 창 밖에 눈길이 간다.   스쳐 지나치는 일들을 내 시야 안에 담을 수 있는 기분이 너무 좋다고 해야 할까.  그저사람들 일생의 일부를 내가 확인하고 볼 수 있다는 사실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더 묘한 것은 나도 그들에게는 하나의 스쳐 지나가는 60억 인구 중 한명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심지어 지구 위의 한 점 보다도 작은 하나의 먼지에 불과하다. 스스로에게는 너무 중요하다고 느꼈던 내가, 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되었던 내가, 그들의 눈에 비춰보면 아무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나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자들의 기준에 맞추어서 그들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으려고 몸부림 친다. 인정과 환호를 위해서 내 귀한 시간을 아끼지 않고 쏟고 쓸때없는 걱정은 하면서 정작 제일 중요한 인생의 가치관을 생각할 때는 시간과 노력을 드리지 않는 나… 생각해보면 참 바보 같은 일에 목을 절절매는 나… 아무것도 아닌 일, 그저 한 순간으로 지나갈 것 같은 칭찬을 위해서 내 인생의 전부를 보내고 싶지는 않다. 최소한 그것이 나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정말 두려운 것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데에 있다. 나를 사랑 할 수 없기에 더더욱 남의 인정과 칭찬을 받기를 원하며, 내 존재 자채가 아닌 내가 한 일 들이라도 남에게 사랑을 받기 원한다. 나의 행적들 마저도 버려진다면 너무 처참할 것 같다. 그래서 내 존재 자채보다 내가 한 일들이 내가 되어, 내가 나는 내가 아니게 되고 내가 한 일의 흔적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언제 부터 이랬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아마도 모든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남의 인정과 사랑에 목말라 하고 갈급해 하는지도 모르겠다.

교만, 무감각, 탐욕, 안절부절함, 부도덕, 무절제…. 물론 이 모두 다 나를 흔들어 놓지만, 그중에서도 소유욕이라는 놈이 나를 제일 괴롭힌다. 무조건 최고가 되어 어떤 사람을 소유하고 싶다는 그 마음에서 다른 죄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나의 이기심은 다 내가 최고가 되고 모든 일의 집중 대상이 되고 싶어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고백해야겠다.

소유욕을 해결하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것에 감사하고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예전 만큼 많이 신경을 쓰면 안되었다. 남들이 무심코 던진 말들이 나에게 비수처럼 꽂히지 않게 언젠가는 피하는 법도 배워야 했다. 무작정 맞고 있거나, 그렇다고 그들에게 다시 던져서는 안되었다. 쓰라리는 말들 때문에 아파왔던 내가 조금이나마 강해 보려이 쓰고 있던 밝음의 탈을 벗고 돌아다녀도 당황하지 않아야 했다.  아직도 이 탈을 완전히 벗지는 못했고,  숨막히는 공간 안에서 푸드덕거리며 탈출하려고 해도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제발 나의 노력 하나하나가 헛되이지 않기를 원한다. 내가 완전한 성숙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려고 한 나의 노력이 땅에 떨어지지는 않았으면… 좋은 땅에 떨어져 하나하나 그 목적과 뜻을 이뤘으면… 남에게도 내 진심이 전해졌으면… 내가 마땅히 해쳐 나가고 보여야 할 것이 있더라면 그 때라도 자신있게 내 이야기를 떳떳히 말할 날이 오기를 바란다.

상처도 많고, 당한 것도 많고, 사랑받지 못한 것도 많았지만, 그만큼 상처를 주었고, 사랑하지도 않았던 나… 사랑받기 만을 원하며 그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는 내 스스로를 보면서 남을 정죄함에 있어서 너무 앞써갔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가끔씩 외로워 지고, 우울해 질 때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가까워지면 너무 많이 알기에 답답하고 아파오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처럼 양의 탈을 쓴 늑대라는 것을 알게 될 때, 너무 고통스럽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인간은 참으로 악한 것이구나…

남과 세상, 그리고 남과 세상이 아는 나와 잠시 멀어져 가만히 지켜보는 시간도 필요할 것 같다.

나는 허공에 대고 소리치며 말한다. 모든 것이 나를 가로막는 것 같고, 껌껌한 공간밖에 보이지 않고, 언젠가는 다시 가로 막힐 것은 분명하지만 말이다.

"네가 아무리 가로막으려 노력해도 내 앞길은 가로막히지 않을 밝은 미래 밖에 없단다, 난 내가 아니기 때문이야.”

그렇다. 나는 내가 아니기에 여기까지 왔다고 인정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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