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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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은 소리를 소유한다 규칙적인 심장박동과 발걸음의 횟수는 출근길의 졸음을 소유한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는 시각을 소유하고 깊은 물웅덩이는 개미의 목숨을 소유한다 하지만 트럭이 그의 옆을 지나가자 물웅덩이는 순식간에 그의 검은 장화를 침범한다

 

그의 바지는 젖어 피부에 들러붙는다 장화 속에 있는 그의 발은 완연한 새의 형태를 띄고 있다 …그는 이종(異種)이다!

 

하지만 소유란 얼마나 사랑스러운 것인가 그는 날카로워진 종아리를 서툴게 매만진다 동시에 그는 깨닫는다 그의 삶은 한 번도 낯섦을 침범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충실한 순례자로 인간이 사랑하는 달콤의 방식을 연구하는 사람이었다 매주 월요일 아침에 그는 레몬 타르트를 만들었다 레몬은 언제나 반달 모양으로 열여섯 조각이 올라갔으며 매일 8시 정각에 타르트를 한 조각씩 가지고 출근했다 그는 규칙적인 인사와 규칙적인 작업과 규칙적인 계산과 규칙적인 퇴근을 했다 중간에 화장실은 정확히 네 번 갔으며 점심시간엔 언제나 사내식당에서 A세트를 먹었다 그는

 

규칙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오늘

 

그는 골목 깊숙이 들어간다 장화를 벗는다 여덟 개의 발가락과 원뿔 모양의 고단하고 뾰족한 발톱이 탄생한다 형태를 확인한 그는 몸서리를 친다

 

그는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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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등 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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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제부터 단정함을 사랑하는

손등이 될래

비밀을 발설하지 않는

간첩이 될래

 

내가 살던 집은 두 시간에 한 번 마을버스가 지나가고 넓은 해변이 바람에 모래알을 실어 보내는 곳 못을 뺀 작고 검은 구멍에는 개미들이 들락거렸고 마룻바닥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거인의 뒤꿈치처럼 삐걱거렸다 메롱을 멈추지 않는 아이들의 혓바닥이 어울리는 방과후, 어린 시절을 바닷가에서 살던 나는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께

 

새들의 자유주의를 동경해서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했다 흉곽에서

돋아나는 지구의 언어로

 

무성한 그리고

부드러운 두통을 겪다가

두 줄 시를 쓰다가

그러다가

 

(외로이)

 

난 이제부터

가장 외로운 것들을 사랑하는

손등이 될래

명멸하는 지구를 삼키려는

입술이 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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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바이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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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을 하면 사람들은 답답해합니다. 내 병명은 편측성불완전구순구개열로 간단히 말하자면 언청이입니다. 입을 벌리지 않아도 하얀 치아는 제멋대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소이야, 너 이제 그만하자.”

바람은 갈라진 틈새로 목구멍을 드나듭니다. 솔-레-라-미- 단조로운 바이올린의 음률이 순차적으로 올라갑니다. 손가락을 대지 않은 채 긋는 현은 깊고 웅장합니다. 나는 입에 이어 귀까지 부정하고 싶어졌습니다. 내 이름과, 뭐라구요?

어머니는 울먹이는 목소리를 가라앉히려고 애쓰며 앞치마의 끝자락을 만지작거렸습니다. 우리 집은 다른 집에 비해 빈곤한 편입니다. 하루하루 버는 돈이 그날의 식량입니다. 게다가 반복적으로 수술을 받아야 하는 내 입은 그나마 남은 돈을 그대로 잡아먹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화를 낼 것이라 생각했는지 조금이라도 기미를 보이면 맞설 기색이 역력합니다. 하지만 난 가만히 앉아 생각에 잠깁니다.

악기를 처음 손에 쥐어본 것은 중학교에 올라오고 나서입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상당히 늦된 재능의 발현이었습니다. 처음 손에 쥔 바이올린 채와 둥그스름한 몸체는 딱 품에 안겨들어 예기치 않은 흥분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결과는 이미 나왔습니다.

“엄마 나, 하고 싶어.”

단순하지만 뚜렷한 의지를 담은 한 마디였습니다. 갑자기 어머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합니다. 나는 놀라 눈을 둥그렇게 뜹니다.

“집안사정이 그런데, 무슨 애가 자꾸 음악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려!”

이제 어머니의 눈엔 눈물이 맺혀있습니다.

“너도 알잖아. 응? 너 이거 해서 돈 못 벌어.”

그녀는 울음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오려는 걸 참으려고 끅끅거렸습니다.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젖가슴을 부여잡았습니다. 맹수처럼 날선 눈이 나를 파랗게 쳐다보았습니다. 그것은 가난의 서러움과 죄책감, 원망이 고인 세월의 응어리입니다. 심지어 내가 언청이라 더욱-

“소이야…”

건조한 공기로 차있는 실내에 내 이름이 가라앉습니다.

 

 

“소이야! 담임쌤이 너 불러.”

무릎이 가볍게 튀어오릅니다. 어깨는 한 순간 들썩거립니다. 그 분은 내 은사십니다. 나에게 처음 음악을 향한 열정과 재능을 불태워주신 분입니다. 나는 집과 현실에서 벗어나 그의 온화한 목소리와 격려의 손짓, 그가 말해주는 아름다운 미래에 위로받습니다. 음악계에서 꽤 권위 있는 분이라고 들었으나 왜 학교에서 선생님을 하고 있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학생들을 지도하고 이끌어나가고 싶은 것처럼 고상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추측해볼 뿐입니다.

“A고는 생각해봤니?”

그 때부터 나의 가슴은 차갑게 가라앉습니다. A고는 일반계지만 음악중점고등학교로 저희 지역에선 나름 성적도 괜찮은, 일반계인데도 상당히 좋은 평가를 얻고 있는 명문입니다, 성적이 조금 부족하지만 내가 음악을 할 수 있는 학교중에 가장 여건이 좋은 학교입니다. 그런데,

“너 음악에 재능 있잖아. 그래서 물어본 건데, 어머니는 뭐라셔?”

목구멍에 걸친 언어가 죽어갑니다. 어머니가 내비친 것은 완고한 거절이었습니다. 음악은 당장의 삶이 급한 어머니께 가치가 없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각각 다른 고등학교의 특성이 어떤지에 대해 알아보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발이 넓거나 시간이 많은 분이 아니셨고 내가 어머니를 잘만 속일 수 있다면 그 학교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은 것입니다. 내가 성공만 한다면 어머니도 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고 나는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놓고 싶지 않은 것은 나 자신에 대한 희망과 세상에 존재를 새기고 싶어 하는 열망입니다.

“…괜찮으시대요.”

“그래? 다행이다!”

선생님께서 나에게 그 학교의 팸플릿과 입학원서를 건네십니다. 어머니께 갖다드리렴. 생기부랑 서류들은 내가 잘 정리해 놓을 테니까 사인만 받아와. 나는 그것을 꼭 쥐고 집에 갔지만 어머니는 상위에 통장과 서류, 책 더미를 쌓아두고 한 장씩 넘겨보고 있었습니다. 말이 없는 어머니는 블라인드가 쳐진 듯 감정을 읽을 수 없어 무서웠습니다. 난 그냥 서류를 가방에 쑤셔 넣곤 조용히 이불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날부터 난 실기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아직 허락을 해주시진 않으셨지만 단순히 실기준비를 핑계로 악기를 만질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았습니다. 학원을 다닐 비용은 없었습니다. 지방, 그것도 소도시 외곽의 작은 학교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일주일에 한 번 방과 후에 남아 바이올린을 지도해주셨습니다. 난 매일 음악실에 남아 연습을 했고 일찍 끝나는 날이면 계단 난간에 앉아 윤동주의 시를 읽었습니다.

중학교 이학년 때의 일입니다. 선생님과 상담을 끝내고 허리 밑으로 내려앉을 것 같은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방금 내가 당한 일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난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잘 모르지만 정말 역겹고 공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울음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작은 방에서 올려다본 네모난 하늘이 너무 새파랬기 때문입니다.

우리 동네에는 공터가 참 많습니다. 난 그날 밤에 집에 들어가지 않고 공터 흙바닥 위에 누워 밤을 지새었습니다. 시골의 하늘은 참 맑습니다. 겨울 은하수가 하늘을 가로지르고 그 사이로 바람이 달리고 있습니다. 별아, 너는 왜 그렇게 빛날 수 있는 거니.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한 번도 꺼지지 않고 우주공간의 운석들을 빨아들이면서, 어쩌면 그렇게 타오를 수 있는 거니. 그렇게 까맣고 더러운 하늘에 있으면서, 밝고 찬란하게 초원에 빛을 내리는 너를 동경했어. 그런데 난-

몸을 씻기 위해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흙이 묻은 교복을 세탁기에 넣어 몇 번이고 빱니다. 깨끗해지도록. 더러움이 남지 않도록. 설거지가 쌓인 싱크대 수도꼭지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빈 방에선 일에 지친 어머니의 땀 냄새만이 났습니다.

새벽부터 엄마가 큰 소리로 통화하는 통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아침엔 어머니께서 옷장 속에만 고이 모셔두던 정장을 꺼내 입으셔서 예쁜 어머니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에는 서류에 사인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야! 김소이!”

점심시간, 이현오는 중학교 1학년 때 전의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이런 시골 학교까지 전학 온 도시아이입니다. 비싼 집에서 사는 비싼 옷을 걸친 비싼 도시아이. 그 애는 백 원짜리 동전을 손에 얹어 이마를 탁 치고는 웃으며 도망칩니다. 찢어진 흔적이 옅게 남아있는 입술로 뭔가를 말하려고 했으나 이내 꾹 다물어버렸습니다. 그는 판잣집이라 불릴만큼 낡은 옥탑방에서 사는 내 가난한 집안사정을 곧잘 놀리곤 했습니다. 짜증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다음 시간은 역사였습니다. 2학기에 접어들어 우리는 미국 민주주의의 발전과정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물소를 사냥하는 인디언들과 목화밭에서 일하는 흑인들이 스쳐지나가고 유럽에서 온 호모 사피엔스들은 문명을 이루었다. 남북전쟁과 링컨과 독립선언문이 다시 지나가고 교과서는 맨 앞으로 옮겨져 하얀 페이지만이 남습니다

실기 연습이 끝나고 집에 들어가자 나는 어머니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마룻바닥에 앉아 서류를 펼쳐보고 있었습니다.

“엄마.”

어머니는 말이 없습니다. 서류가 사락사락 넘어가고 어머니는 손가락을 붉은 점토에 찍어 지장을 찍습니다.

“저 이것 좀 사인해주세요”

“…소이야.”

“응?”

“엄마가, 미안해.”

서류에는 양육권 포기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그 이후로 난 학교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마을의 대청마루라 불리는 큰 공터에서 어머니가 자살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상담센터와 집을 오가며 심리치료를 받았습니다. 나는 이것이 무슨 효과를 발휘하는지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갑자기 미쳐버리거나 돌아버리지 않습니다. 나는 바뀐 것이 없습니다. 그저 주위 사람들이 나를 좀 더 조심스럽게 대하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뿐입니다.

나는 결국 그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과 그 서류 때문에 자연스레 아버지께 양육권이 넘어갔고 난 아버지가 바라는 도시의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우산을 쓰고 검은 하늘을 가렸습니다.

*바이올린은 말을 한다. 그것은 차갑고 날카로운 산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는 어머니가 나왔다. 어머니는 날뛰고 있는 물소위에 올라타 있었다. 어머니는 바람조차 자유로운 아메리카의 초원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이룬 문명의 틀에서 벗어나 어머니는 자유롭게 초원을 달리고, 하늘에서는 별똥별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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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무늬 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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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무늬 카페인

 

그의 관자놀이를 파고드는

검은색 바탕 레드줄무늬 스타킹

조금씩 압박을 시작하고

목구멍을 꿀꺽꿀꺽 넘어가는 나, 검은 뱀

서점주인은 다리를 주무른다

 

육체를 내리치며 피로를 빌미삼은 파충류

줄무늬 스타킹은 다리를 목구멍 속으로 삼켰다

나는 그동안 조금씩 식도에 좀먹히고

약간의 포션, 프로메테우스의 석유가 되어가며

서점 램프에 불을 밝힌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몇 모금

나는 목젖을 뛰어넘는 줄무늬 수레바퀴

지붕 위 서점에 형광등을 연결하고

증폭작용을 시작하는 트랜지스터

 

도트무늬처럼 남겨진 컵 속 둥근 원

나는 마지막 숨의 파편처럼 남겨져

시체의 등줄기를 타고 올라가는 자정의 종소리

서점은 죽어가는 나-카페인-를 양분삼아 불을 밝혔어요

 

서점주인은

꼬인 혀를 붙잡으며

#0시_0분, #개_같은_밤샘작업, #죽고_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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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도 퇴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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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도

 

아이들이 빠져나온 교실

효수의 칼날을 당겨오는 카르마의 수레바퀴

갱도의 쪽방에서 마스터키를 향해 뛰어들고

아이들의 머릿속 글자의 회선들은

매일같이 신항로를 개척했다

 

바람 부는 고요한 갱도

그 곳에선 그림조차 글자가 되어

아이들의 머리에선 흑연이 묻어났다

아이들의 발목을 자르는 바겐세일 마케팅

점원들은 금속 넥타이를 맨 채

연필조차 무기로 바꾸었다

 

알고리즘의 혈관 속에서

아이들이 떨어뜨린 땀방울은

빛나는 금덩어리일까

 

황금향을 향한 아이들에게

조도를 낮춰 비춰준 태양빛이

밀어뜨린 갱도 속

자그마한 금덩어리라도

아이 손에 쥐어질까

 

노랗게 빛나는 안전모의 헤드랜턴

가물가물 하던 시야조차 닫혀버린 그 곳에서

아이는 금을 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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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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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살들을 우뚝 갈고리에 걸어놓고선

홍등이 걸린 네모난 정육점은 동공을 자극하고

우린 자그마한 빛에도 그만 눈을 감아버렸지

반나절조차 채우지 못한 발걸음은

뚜벅이는 소리가 귓바퀴를 맴돌 때마다

세상을 시계방향으로 돌리고

우리들은 장막으로 덮인 스크린 아래에 남아

납덩어리와도 같은 몸을 힘껏 끌어안고

페시미즘의 도래를 축하했어

 

동공은 무의식의 흐름을 따라 흘러가

이불로 슬쩍 덮어버린 젖가슴엔

다른 이의 시선이 짓이기듯 남아있어

 

있지, 우린 마네킹일 뿐이야

천천히 날 훑어가는 이 감각은

인공수정체가 응시하는 저 하얀 봉오리의 둔덕은

응, 마네킹일 뿐이야.

스크린 앞 우리는 한 치의 거짓말도 하지 않아

우린 그저 자신을 그대로 내보였을 뿐인데

언제나 부끄러운 소유물처럼 여겨졌어

 

우린 마네킹

바라보는 사람들은 우릴 그저 마네킹으로만 생각했어

정육점에 걸린 돼지고기처럼

스크린의 홍등은 다시 가격을 매길 듯 간판을 내걸고

마네킹이 되어버린 우린

언제나 거짓 그 자체가 되었지

 

다시 우린 정육점 앞에 홍등을 걸고

얇은 스크린에 몸을 압착해

우린 정말 마네킹일 뿐이었을까

아니면 마네킹이어야만 했을까

 

 

 
*다음 달에 졸업식을 마치면 고등부로 들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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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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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움푹 파인 잔을 향해 술을 따른다

물줄기 따라 별이 우수수 떨어지고

창밖에는 눈이 내린다

 

시장바닥의 메마른 흙냄새가 배어있던

아내의 머리카락, 매일 흙을 나르던 나는

그 냄새가 싫어 이불 속에서도 아내를 밀어내었다

 

내 눈치를 살살 보던 아내가

문빗장너머로 살그머니 웃는다

아내 손에 생선가시처럼 박혀있던 실반지

상처자국으로 남아 화장대 위에서 눈물을 흘린다

 

지난 겨울, 구덩이를 파다가

그 속에 아내를 묻었다

추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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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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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다. 추수를 시작하면, 발끝이 시려 꽁꽁 싸맨 채 거리에 나가기로 한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가판대 위 과일은 풍성해지며 퍽퍽한 작년 쌀은 들어가고 햅쌀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가을에 먹을 일이 많다는 것은 참 맞는 말이군, 싶다. 매년 가을이 되면 으레 느끼는 것이다. 그래도 내가 가장 신났던 것은 따로 있다. 난 딱히 호화스러운 추석음식이나 탱탱한 윤기를 뽐내는 햅쌀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나의 기쁨은 오로지 길가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앉아있던 포장마차 때문이었다. 

 

포장마차는 여름에는 무더위에, 봄, 가을 겨울에는 손님이 많아 1년 내내 식을 일이 없다. 그러나 여름에는 포장마차가 일을 쉬어 그 공백이 어쩔 수 없이 허전했다. 빙수, 아이스크림, 슬러시…. 여름에도 매력적인 군것질거리들이 넘쳐나지만 겨울철 우리를 따뜻하게 데워주는 포장마차만은 못하다. 그래서 난 포장마차가 돌아오는 가을을 어릴 적부터 제일 좋아했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그 때부터 포장마차가 눈에 스치면 그냥은 지나치지 못했다. 부모님을 졸라서라도 무엇이든 하나씩 손에 쥐고 나서야 성이 풀렸다. 그런 나의 습관은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매번 음식을 입속으로 밀어 넣을 때마다 몸무게가 늘어날 것을 알면서도 후회하지 않았다. 추억의 맛이기 때문이다.

 

내가 한참 꼬맹이일 적, 매주 금요일에 아파트 앞 주차장에서 열리던 시장은 지금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그 시장의 포장마차는 꽤 큰 크기를 자랑했다. 붕어빵에 떡볶이, 순대, 튀김, 닭꼬치, 소면까지 없는 게 없어서 그 땐 포장마차가 다 그렇게 큰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먹은 뒤엔 언제나 엄마 뒤를 쫒아 시장바닥을 섭렵해야 했다. 피곤하기 짝이 없는 고된 노동이었다. 그것도 그런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꽤 불공정한 거래였다. 먹는 시간을 잠깐인데 돌아다니는 시간은 두세 시간이나 되었다. 그때마다 어린 나는 아픈 발을 부여잡고 집으로 휘청거리며 들어와야 했으니 말이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작은 포장마차를 볼 때면 자꾸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포장마차에서 분식으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포장마차를 찾기가 힘들다. 내 배가 커진 탓도 있고, 포장마차가 너무 작은 탓도 있다. 게다가 요즘 포장마차들은 붕어빵과 어묵만 파는 데도 많고 특이하게 닭꼬치나 떡볶이가 있을지언정 미리 만들어 놓은 것이라 맛도 없다. 옛 추억의 그 맛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 그것은 언제나 기억의 저편에서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아있으니. 사람들이 첫사랑의 좋은 면만을 기억하고 있는, 혹은 그러고 싶은 것처럼.

 

작년, 어쩌다가 금요일에 서울로 올라갈 일이 생긴 나는 오랜만에 그 곳을 찾아가게 되었다. 부모님과 함께 귀농을 하고 나서 칠팔 년. 실로 오랜만의 재회인지라 설레는 가슴을 안고 찾아갔건만, 오랜 시간이 지나서인지, 장사가 잘 되지 않아서인지 장터와 포장마차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었다. 그저 음침한 자동차들만이 듬성듬성 자리를 대신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 많은 나이도 아닌데도 어린 시절의 추억들은 자꾸 사라지고, 새로운 것들만이 밀고 들어오기 시작한다. 작아져 입을 수 없게 된 옷, 그림이 많은 동화책, 고장난지 오래인 라디오같이 과거의 잔재들은 세월과 함께 쓸려나가고 그들을 추억하는 나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지금까지 날 태워온 포장마차는 이제 추억을 딛고 과거로 역행한다. 그에 반해 내 인생은 점점 앞을 향해 끌려가고 있다. 우린 서로 반대방향의 길을 걸어가며 더더욱 격차를 벌려갔다. 세상은 내 생각보다 빨리 시간을 채갔다. 내가 따라가지도 못할 정도로. 내 포장마차가 세월과 함께 사라진 것처럼 커서보니 시간은 너무나 빨리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남들에 비해 너무나도 느린 내 발걸음은 늦춰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나는 발걸음에 모터엔진을 단 그들을 절대 따라잡지 못했다.

 

쌀쌀한 밤바람이 내 볼에 칼을 새기고, 이 세상엔 손발이 부르트도록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한계는 내 생각보다 많았다. 이렇게 힘들고 영원히 멈추어버리고 싶다는 체념의 말들이 입천장과 혀끝을 맴돌다 꺼져버리길 반복했다. 나름 열심히 새겨왔다고 자부한 나의 발자취가 세상 앞에선 너무나 옅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앞을 향한 길이 너무나 춥다고, 힘들다고 역정을 내었다. 멈추어버릴 것 같은 발걸음을 그 포장마차를 따라 역행해 버리고 싶은 날도 있었다.

 

하지만 쫄지 말자. 나의 포장마차, 나의 시간, 나의 자랑 못할 과거들은 너무나도 초라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추억과 경험들은 아주 작았지만 나에게 멋진 바퀴자국을 남기고 지나가 주었다. 모두가 나의 삶이고, 나의 일부였다. 내 추억은 김치처럼 묵어갔고, 나는 묵었기에 낼 수 있는 새로운 맛이 있었다. 내 기억은 어묵처럼 국물이 우러나 더욱더 깊은 생각의 샘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러니 쫄지 말자. 세상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포장마차지만, 지나친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넬 수 있었던, 나의 유년시절 소박하지만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준 포장마차처럼.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이루어나가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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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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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폭염의 더위에 그 기세를 한껏 부풀리던

공장의 뜨거운 매연냄새

짊어지던 무게와 함께 작아지던

바퀴처럼 굽은 아버지의 등

그의 목소리는 수증기가 되어 허공을 맴돌았다

허접한 몸은 이제 폐광이 되고

아버지는 들숨 날숨 목구멍으로 힘겹게 독을 뱉으며

단풍잎 같은 발걸음을 새벽의 요람으로 던진다

 

긴 시간 돌보지 않아 녹슬어버린

아버지의 뼈대는 너무 오랜 시간동안 톱니바퀴를 굴렸다

그는 괴상한 잡음과 함께 멈추어버리길 반복했고

나는 구불구불한 비탈길의 세월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던 얼굴, 그 주름 사이를

삽으로 깊게 파내곤 했다

 

나는 폭염이었다

내 몸을 부풀리며 주변의 것들을 잡아먹던

자신도 모르게 불에 뛰어든 불나방을 먹어치우던

먹구름 한 점 없어 유난히 서럽던 그 여름날,

나는 아버지께 찾아온 폭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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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겨울이었을 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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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겨울이었을지도 몰라

 

눈이 왔다
흐리멍덩한 사람들이 고막을 두드린다
너무 작아 이불로 덮지 못한 발가락은 이미
겨울의 도착과 함께 발걸음을 내딛지도 못하고
봉숭아물을 들였다

 

우린 당연한 듯
구멍 난 자루 속에 꽃잎을 쓸어 담아
지나온 길을 물들이며 살아왔다
시간은 내 머리 위를 물 흐르듯 지나갔고
내 뒤를 쫒던 꽃잎들은
누운 곳이 추워 몸을 웅크렸다

 

고막은 쓸려나가야 했을 타인의 말로 채워졌다
난 그것을 그물로 끌어올려
보관창고에 넣었다가 꺼내먹길 계속했다
우리는 어째서인지 삶을 가식적으로 살아왔고
그 흔적은 너무나도 짙었을 따름이다

 

나는 ,오늘도 한껏
가랑이 사이의 절벽으로 떨어져 내릴 듯
고개를 파묻다가 다시 들어 올리지 못했다

 

눈을 맞아 흐리멍덩한 사람들이
고막을 두드린다
나의 마음은 둥둥, 북소리를 내며 깊이 잠겨들었고
미련은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추었으며
후회는 끝내 밀물처럼 밀려와 그 자리를 채웠다

 

아침
어제오늘 할 것 없이
평범한 삶이다

 

 

P.S. 뭘 한 건진 모르겠지만 제목이 후지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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