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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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을 때, 엄마 손 잡고 노란 유치원 가방을 메고 걸을 때였다.
깔끔한 리본이 달린 빨간색 구두였다. 정말 예뻐서 어린 마음에 무작정 사달라고 졸랐다. 얇은 지갑에서 우물쭈물 거리는 손이 아닌 구두를 신고 뛰어다니는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흐뭇한 미소만 보였다. 참 예뻤다고 한다. 당장 내일이 걱정되던 때 낳은 막내가 참 예뻐서 자꾸만 머뭇거리는 손이 미웠단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녀야 할 때, 엄마는 이사를 결정했다. 무리해서 이사 온 큰 아파트 뒤에 가려진 사정은 하나도 몰랐다. 참 큰 집이였다. 넓직한 거실이 좋아서 막 바닥을 뒹굴 때 엄마가 주방에서 요리를 하며 나를 바라보던 그 미소가 환했다. 초등학교 첫 소풍 때, 엄마가 새벽부터 일어나서 손수 싸주는 김밥을 언니와 하나씩 몰래 집어먹곤 했던 추억만 가득했던 집이였다. 그 때 우리 엄마는 직업이 많았다. 교수, 간호사, 선생님 … 그 땐 마냥 엄마가 참 멋지다고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에게 엄지를 세우고 달려가 안기기도 했다.
이사를 자주 다니다가 중학생 쯤 정착하면서 엄마는 옛 집 얘기를 꺼내곤 했다.
"벌써 막내가 열여섯이네."
"난 아직도 내가 중학교 삼학년이라는게 안 믿겨."
"옛날에 새벽에 자다 깨서 자고 있는 너희랑 집을 한번 둘러보면 마음이 참 먹먹하고 그랬는데 이젠 그럴 일도 없네, 다 커서."
"왜 먹먹했어? 그때 힘들었으니까?"
"아니. 기뻐서. 그 곳에서는 너희가, 어린 막둥이가 좋은 것들만 기억하면서 자랄 거라고 확신했어. 엄마가 막둥이만 보면 자꾸 힘이나고 노력하게 되어서 엄마가 진짜 잘할 수 있을거 같았어. 그 어린게 새근새근 자고 있는걸 가만히 바라보기만 해도 너무 큰 힘이 되더라. 하늘이 주신 선물이 다름 없지. 그 때 진짜 힘들었는데 힘들지가 않더라."
"그래서 그 때 무리해서 그 아파트로 간거였어?"
"아니, 사실 사정에 맞춰서 가려고 했는데, 네가 막 구두를 사달라고 조르는데 얇은 지갑이 너무 밉더라. 우리 막내를 너무 신겨주고 싶은데, 당장 내일이 걱정 되어서 손이 자꾸 머뭇거렸어."
"그럼 그냥 다음에 사주거나 안 사주면 되잖아. 나였으면 사정도 모르고 조르니까 속상했을거야."
"아니, 그래서 그냥 그 구두를 무작정 샀어. 그리고 무리해서라도 큰 집으로 이사가서 부족함 없이 키워야겠다고 마음 먹었어. 엄마의 동기부여가 된 셈이지. 그래서 최선을 다했고 지금 이렇게 정착하고 잘 지내고 있지만 가끔 그 시절이 그리워."
"왜? 힘들었던 시절이잖아."
"힘들었지. 힘든 만큼 언니가, 오빠가, 막둥이가 소중하고 힘이 되고 엄마가 자꾸 최선을 다하게 만들었어. 힘들었어도 너무 행복했어, 그 땐."
엄마가 왜 아직도 이젠 한참 작아져서 신지 못하는 빨간 구두를 버리지 않는지 알게 되었다.
"엄마한텐 너희가 가장 소중해. 옛날부터 변함없이. 언제든 막내에게도 구두가 생기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 작은 구두가 어렸던 힘든 시기의 엄마에게 어떤 의미인지 아직 나는 전부 가늠 할 수 없지만 나에게 첫 구두는 엄마다. 예전처럼 손을 붙잡고 거니는 거리가 아닌 자꾸만 작아지는 엄마의 가방을 대신 메고 어깨를 감싸안고 거니는 이 거리가 내겐 엄마와는 조금 다른 의미의 구두가 될 것 이다.

 

평가 첨삭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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