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은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해 쓴다
청소년 문학 강좌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나 같은 작가가 다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고사했지만, 1년 반 동안 청소년들의 소설을 살펴보았으니 그 안에서 느낀 문제를 풀어나가 보라는 권유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문학에 대해서 이야기하긴 하겠지만 이야기는 주로 “소설”에 한정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1년 반 동안 보아온 것이 바로 청소년 여러분의 소설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번 회에서는 글이란 무엇인지,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고 가겠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이야기는 누구를 위해서 글을 쓰는가라는 문제입니다. 제목에 달아놓은 것처럼 말이죠.
글은 누군가를 대상으로 쓰게 됩니다. 내가 <글틴>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이 글을 쓰는 것처럼 말이죠.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이 누구를 대상으로 그 글을 쓰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편지를 쓴다면 그 대상이 누군지 분명히 알고 있겠지요? 글쓰기란 편지쓰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글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기와 같이 자기 자신에게만 보여주기 위해 쓰는 특수한 글이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하는 글은 창작물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기록이 목적인 일기에 대해서는 깊은 논의를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일기도 깊이 들어가 보면 자기 자신과의 대화와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결국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글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게 됩니다. 그 때문에 독자를 자기 자신으로 한정하고 쓴 일기도 보편적인 문학의 지위를 획득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안네의 일기」나 「난중일기」같은 것을 생각해 보세요.)
다시 말해보죠. 글을 쓴다는 것, 즉 창작을 한다는 것은 이미 누군가를 대상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대상이 보편적인 인류라면 그것은 일반 문학이 될 것입니다. 그 대상이 10대 미만의 아동이라면 아동문학이 될 것이고, 십대라면 청소년 문학이, 미스터리 애호가라면 추리소설이, 용과 마법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판타지 소설이 될 것입니다.
상대방이 원하는 글, 내가 전하고 싶은 글
그럼 누군가를 대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바라는 글을 쓴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그 대상에게 자신이 들려주고 싶은 것이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논술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작금 대한민국 청소년의 최대 관심사는 논술이잖아요. 자자, 물론 나는 아니라고 할 친구도 있겠지만 (글 쓰는 친구들 중에는 괴팍한 사람이 워낙 많지요.) 딴지걸지 말고 쫓아와 주세요.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대입 전선에 서서 논술 시험을 치게 된다고 해봅시다. 주어진 문제를 읽고 그에 대한 의견을 써나가기 시작합니다. 누구를 대상으로 쓸 것입니까? 즉, 누구에게 설명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글을 써나갈는지요? 어떤 이들은 출제자를 위해서 글을 써나갑니다. 출제자가 왜 이런 문제를 냈을까 궁리해 본 뒤 깜냥이 서면 글을 쓰기 시작하죠. 글을 보게 될 대상을 위해 쓰는 것입니다. 이 안에는 사실상 자기 자신의 의견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의 의견보다 출제자의 비위를 맞춘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람직한 논술이란 물론 자기 자신의 의견을 일반인을 상대로 전개하는 것이겠습니다만, 솔직하게 말해서 어느 쪽이 대학입학시험에 유리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논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대학교 측 이야기를 들어보면 종종 출제자의 의도를 읽어야 한다는 식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이야기대로 대입 논술을 썼다가 미끄러졌어요, 라고 따지러 오진 마세요.)
어떤 독자에게 내 글을 전할까
소설을 쓰거나, 시를 지을 때도 똑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자신의 글을 읽는 이들이 누구라고 생각하고 글을 써왔는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시를 읽고 내가 느낀 감동을 같이 느낄 수 있는 사람이요.”
다른 친구는 이런 말을 하는군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꼭 그런 생각을 해야만 시를 쓸 수 있나요? 시는 자기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잖아요.”
두 말은 사실 같은 말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시를 쓰는 사람들은 그 대상을 일반인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일반인이라는 것이 자기만큼의 수준을 가진 사람들로 한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즉, 자기와 같은 수준의 사람들이라는 설정이 자동적으로 만들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네,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바둑을 예로 들어볼까요? 바둑 7, 8급 정도 되면 서서히 정석 책을 사서 읽어보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프로 기사들이 두는 바둑의 뜻을 읽어낼 수가 없습니다. 아직 살지 못한 돌이 남아 있는데, 엉뚱한 곳에 두는가 하면 그 기회에 돌을 살려야 할 텐데 중요해 보이지 않는 곳에 착점합니다. 답답할 정도입니다. 프로 기사들이니까 뭔가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두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시나 소설에도 이와 같은 면이 있습니다. 대상을 마음에 그리지 않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만 치중하게 되면 사람들이 동감하기 어려운 이해할 수 없는 글이 나올 수 있습니다. 작가 자신만 알고 전달되지 않으며, 작가의 정신세계에서만 이해 가능하고 남에게 호환되지 않는 글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독자들이 작가와 동일한 경험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글로부터 동의도, 교훈도, 어떤 감동도 끌어낼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독자들을 한없이 낮은 수준으로 잡게 되면 글이 천박해지고 맙니다. 그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가가 작가의 끝없는 고민이 됩니다.
한정된 독자를 위한 글
작가 자신의 수준이 어디인가, 그리고 글을 읽는 독자의 수준이 어디쯤 와 있는가라는 문제는 규정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계속 글을 써나가면서 상호 피드백을 통해 깨우쳐 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독자를 자기 자신과 유사한 수준으로 규정하고 그 수준의 글쓰기를 한다면 글이 점점 어려워질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어려운 글이라고 해서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좀 더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대상을 분명히 한정해 놓고 있는 글들은 정의를 내리기가 좀 쉽습니다. 이른바 장르 소설이라 부르는 것이나, 특정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글들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글쓰기를 정의하기 쉽다고 해서 그런 글이 더 쓰기 쉽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가령 추리소설에서는 “더 이상의 밀실 트릭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죠. 하지만 추리소설에서는 오늘날에도 매력적인 밀실 살인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때 그 밀실 살인이 기존 추리소설을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다면 명작으로 남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그렇고 그런 삼류 소설로 전락하게 되겠지요.
동화의 경우는 어떨까요? 어린이들이 읽는 동화에 잔혹한 고문이나 살인, 방화 등의 범죄를 상세하게 묘사해내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어린이에게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주로 충성, 효도, 예의범절 같은 것들)을 주워 모아서 동화를 쓰는 것 역시 매우 부적절합니다. 그런 생각은 작가가 보는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필요한 것들일 뿐이죠. 이래서 동화를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니까 적당히 넘어가도 괜찮을 거야”라는 식으로 생각하면 큰코다치게 됩니다.
이런 점을 피해가고 싶은 작가들은 종종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말로 자기 책을 포장합니다. 이 말이 나타내는 것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동화를 쓰는 것보다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를 쓰는 것이 쉽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대상 없는 글쓰기가 있을까
“우와, 누군가를 대상으로 잡아서 글을 쓴다고 해도 이렇게 어려운 거예요?”
그렇습니다. 글쓰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은 잘하지만 글로 무엇을 쓰라고 하면 어려워합니다. 아무리 말하듯이 써보라고 해도 쩔쩔매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글쓰기 훈련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앗, 예상하고는 다른 대답이 나왔나요? 글쓰기 훈련이란 무엇일까요?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대상을 정확히 설정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허공에 대고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눈앞에 분명한 대상이 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종이를 앞에 놓고(또는 컴퓨터 키보드를 앞에 놓고 있으면) 말해야 할 대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 막연한 것이죠. 그래서 무엇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알지 못하게 됩니다. 당연히 어렵죠.
누군가를 대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고 올바른 글쓰기를 위해 필요한 것인지 이해들 하셨나요?
자,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들은 누구를 대상으로 글을 쓰고 그것을 <글틴>에 올리고 있었나요?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냥 막연하게 내 글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글을 쓴 친구들도 있을 것이고, 확실한 대상을 상정하고 글을 쓴 친구들도 있을 것입니다. 막연한 대상을 상대로 글을 쓰는 친구들이라 해서 대상이 없는 글쓰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경우에는 자기 자신을, 그리고 자기 자신과 비슷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비평가의 입맛에 맞춰 글을 쓰는 것보다 백번 낫습니다.
그것은 시든 소설이든 어떤 특정인물 한두 사람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 쓰는 것이기 때문이죠. 좋은 글일수록 많은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글을 심사할 사람을 위한 글을 쓴다거나, 비평가의 구미에 맞는 글쓰기를 한다는 것은 논술시험에서 출제자의 의도에 맞는 글쓰기를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좋은 글은 그 자체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게 해주지요.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가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좋은 글이 아닙니다. 왜냐고요?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풀어가 봅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