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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황룡사 살인사건
작가 : 이문영 날짜 : 2005.09.15

(* 이 작품은 10월 12일 현재 e book 코너에서 전자책으로도 서비스중입니다)

 

                    

                      황룡사 살인사건

 

 

 “보림랑은 독살되었습니다.”

 “뭐, 뭐야?”

 “피부가 검게 변하고 죽으면서 혈변(血便)을 보았습니다. 거기에다 손과 발이 딱딱하게 굳었습니다. 이것은 비상(砒霜)을 먹은 사람에게서 보이는 증상입니다.”(중략)

“이 일을 어쩐단 말이냐? 누가 그런 짓을 했단 말이지?” ... ...

 

이문영

 


 

1.


 앞서 가던 보림(寶林)이 비틀거렸다. 은제 허리 장식대에서 금속이 부딪는 맑은 소리가 작게 울렸다. 바로 뒤에서 따라 올라가던 하영(夏英)이 투덜거렸다.

 “왜 이래? 차 마시고도 취하나?”

 하영랑 뒤에 있던 별선(鱉蟬)이 웃으며 말했다.

 “촌놈이 중국에서 온 용차(龍茶)를 마시더니 정신을 못 차리는 거지.”

 보림이 그 말에 눈을 부릅떴다. 어쩐지 얼굴색이 어두워져 있는 것이 몸이 아픈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촌놈이라니? 말 다했어?”

 별선은 입을 비죽대며 대꾸했다.

 “백제 촌놈이 화랑(花郞)이 되지 못했으면 어찌 중국에서 온 명차를 맛볼 수 있었겠어?”

 “삼한이 일통된 지 벌써 백 년이 되어서 삼한 일족에 대한 차별이 사라진 지 오래인데 아직도 너 같은 말을 하는 놈이 있다니!”

 “백 년이 아니라, 천 년이 흘러도 더러운 족속은 더러운 족속일 뿐이야.”

 보림의 얼굴이 벌게졌다.


 때는 혜공왕(惠恭王) 5년(769년) 겨울, 장소는 신라국 서라벌 황룡사 9층탑 안이었다. 화랑들이 황룡사 탑 안에 들어와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한 층을 오를 때마다 서라벌 시내가 점점 더 멀리 보인다고 유명하다. 9층까지 오르게 되면 전 도성을 다 볼 수 있었다.

 열댓 명의 화랑들은 오전에 모여 축국(蹴鞠) 한 판을 했다. 차를 내기로 한 명전(茗戰)이었다. ‘명전’이라 함은 진 쪽이 차를 대접하는 내기 놀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두 패로 나뉜 화랑은 으레 그렇듯이 진골(眞骨) 출신의 명문들과 한미한 가문과 설씨(薛氏)와 같은 육두품의 낮은 지위가 한 무리가 되었다. 이 중에는 이제는 사라진 고구려와 백제의 후예로 화랑이 된 소년들도 있었다. 지금 비틀거리는 바람에 시비가 붙게 된 보림은 백제 귀족의 후예였다.

 고구려나 백제의 귀족은 최고 6두품의 신분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신분은 극히 예외적인 것이어서 신라의 정사에 관여하거나 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다만 보림의 아버지가 작년에 있었던 대공(大恭)의 반란 사건 때 큰 활약을 했고, 그 공로에 대한 포상 성격으로 보림이 화랑이 되어 보림랑(寶林郞)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백제인으로 처음 화랑의 지위에 올랐으니, 다른 화랑들의 시기와 질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보림은 뛰어난 무술 실력과 풍부한 학식으로 다른 화랑들을 제압하고 있었다. 오늘 축국에서도 교묘한 발재간으로 진골 출신들을 농락한 끝에 승리를 얻어냈다.

 이 때문에 별선은 물을 끓이고 진효(進孝)는 차를 갈아야 했다. 성질이 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별선의 말은 너무 심한 말이었다. 보림보다 앞서 가고 있던 다른 화랑들도 화를 냈다.

 “말을 너무 함부로 하는 거 아냐!”

 “빨리 취소해!”

 “졌으면 깨끗하게 승복해야지, 이게 무슨 짓이야!”

 그러자 아래쪽에 있던 진골 출신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이것들이 단체로 미쳤나? 어따 대고 큰 소리야!”

 “애초에 비틀대지를 말거나!”

 “빨랑빨랑 올라가기나 해라!”

 보림 뒤에 있던 도종(道宗)이 보림을 밀치며 화를 냈다.

 “나가서 격검(擊劍)이라도 할 테냐!”

 검술로 승부를 겨루는 것을 격검이라고 부른다. 하영이 말을 받았다.

 “그럼 누가 겁낼 줄……. 어라, 왜 이래?”

 보림이 비틀거리며 쓰러지고 만 것이다. 그대로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버렸다. 아래층에 있던 진효가 보림을 발로 걷어찼다. 다른 화랑들은 모두 계단 위에서 진효와 보림을 바라보았다.

 “일어나! 이 자식아!”

 그러나 보림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거 왜 이래?”

 하영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일으켜봐!”

 “에이, 귀찮게스리.”

 진효가 보림의 겨드랑이 아래에 팔을 넣고 일으켜 세우려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이 자식이 날 아주 시종으로 보는군!”

 진효가 투덜대면서 보림의 어깨를 잡아끌다가는 소스라치게 놀라 보림의 상반신을 놓쳐버렸다. 보림의 목이 힘없이 뒤로 넘어가버렸기 때문이다.

 “모, 목이 부러졌어!”

 화랑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얼어붙었다. 누구도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방금 전까지 살아 숨쉬던 보림의 몸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시선을 돌리고 싶었지만 눈이 돌아가 주지를 않았다.

 영겁 같은 침묵을 깨뜨린 것은 보림을 붙들고 있던 진효였다.

 “사람을, 의원을, 의원을 불러!”


 제일 먼저 온 것은 절의 승려들이었다. 경내의 일을 책임지는 오진(悟眞) 스님과 사미승(沙彌僧) 용담(龍談)이 달려와 보림을 살폈다. 오진 스님은 40대의 중년 승려로 온화하고 인자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용담은 착하게 생긴 사미승이었지만 키도 크지 않고 몸도 실하게 보이지 않았다.

 오진 스님이 탄식을 내뱉었다.

 “아미타불!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것입니까?”

 하영이 대답했다.

 “네, 스님. 저기 5층에서 떨어졌습니다.”

 황룡사의 스님들은 일반 신분이 아니었다. 황룡사는 도성 내에 있는 신라 왕실의 기원사찰로 이 절의 승려가 되려면 당연히 진골 출신이어야 했다. 오진 스님 역시 그 삼촌 되는 이가 상대등(上大等)의 지위에 있는 명문가 출신이었다. 당연히 콧대 높은 진골 화랑들도 예를 갖추게 마련이었다. 당연히 따라 들어온 사미승 용담도 명문대가의 자제였다. 용담은 아주 순둥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 화랑들이 쉽게 대하기는 했지만 내력을 아는 이들은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

 오진 스님은 죽은 화랑이 백제 출신의 아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보았다. 그나마 진골 귀족이 죽은 것보다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어쩌다 이런 일이……. 나무아미타불.”

 오진 스님이 용담에게 말했다.

 “너는 어서 가서 불목하니들을 불러오너라. 행랑도 비워 놓고.”

 용담이 뛰쳐나가는데 그 뒤에다 대고 오진이 다시 외쳤다.

 “아참, 충영(忠永) 대관대감(大官大監) 댁에도 통지를 해라.”

 충영은 보림의 아버지다. 대관대감은 충영의 관직이었다. 신라는 삼국통일 후 9개의 군대를 만들었다. 이중 백제 유민으로 만들어진 부대가 둘 있었다. 바로 백금서당(白衿誓幢)과 청금서당(靑衿誓幢)이었다. 충영은 백금서당을 지휘하는 4명의 대관대감 중 하나였다. 서당을 이끄는 총 지휘관은 장군(將軍)이라 불렸는데, 물론 진골 출신이어야만 오를 수 있는 지위였다. 충영의 지위는 대나마(大奈麻)에 불과했으므로 대관대감의 지위에 오른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었다. 대나마란 신라의 관등 17개 중 10등급에 해당하는 낮은 등급이다.

 오진 스님은 아직도 넋이 나가 있는 화랑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낭도 여러분들은 모두 승방으로 가 계시지요. 이곳에서 나가십시오.”

 진효가 몸을 부르르 떨면서 말했다.

 “승방은 뭐하러요? 오늘 아주 재수 옴 붙었는데, 집으로 돌아가겠어요.”

 진효의 아버지는 백금서당을 책임지고 있는 장군 이군(彛君)이었다. 진효는 그 때문에 평소에도 보림을 멸시하고 있었다. 이번에 보림을 일으킬 때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소년은 소년인 듯 무서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건 안 됩니다.”

 오진 스님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화랑들 사이에 분란이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동료 화랑이 죽었는데 집에 가고 싶다는 식으로 나온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해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화랑은 신라를 이끌어온 힘이었다. 한산주총관(漢山州摠管) 김대문(金大問)은 일찍이 <화랑세기(花郞世記)>에서 “어진 재상과 충성스러운 신하가 이로부터 어났고, 훌륭한 장군과 용감한 병졸이 이로부터 나왔다”라고 화랑을 찬양하지 않았던가.

 오진 스님은 화랑들을 승방으로 안내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유신(庾信) 공 같은 분이 나오지 않는 한 통합은 어려운 모양이야.”

 태대각간(太大角干) 김유신 때 화랑은 3개의 파벌로 나뉘어 서로 다투고 있었다. 그들을 모두 아울러 결집된 힘을 만들어낸 화랑이 바로 김유신이었다. 그러나 삼한통일 후에 다시 파벌이 나뉘어 다투었고, 결국은 한때 화랑이 폐지되는 사태까지 발생한 적도 있었다. 이제 다시 그런 길로 가려고 하는 걸까?

 오진 스님도 비록 불법에 몸을 담고 있다고는 해도 귀족 가문의 후예로 세상일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몸이었다. 화랑들의 분란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걱정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안 것은 바로 얼마 후였다.

 일을 처리하고 불목하니 넷과 돌아온 용담이 오진 스님의 소매를 잡아끌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냐?”

 “보림랑은 목이 부러져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보림랑은 독살되었습니다.”

 “뭐, 뭐야?”

 “피부가 검게 변하고 죽으면서 혈변(血便)을 보았습니다. 거기에다 손과 발이 딱딱하게 굳었습니다. 이것은 비상(砒霜)을 먹은 사람에게서 보이는 증상입니다.”

 오진 스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 아이 용담은 기파랑(耆婆郞)에게서 의술을 배웠다. 허튼 소리를 할 아이가 아니었다.

 “이 일을 어쩐단 말이냐? 누가 그런 짓을 했단 말이지?”

 오진 스님의 등골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왕실 사찰인 황룡사에서 화랑이 독살되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이 일의 파장이 얼마나 커질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오진 스님은 정신없이 찰주(刹柱:탑의 한가운데 세워진 중심 기둥)를 뱅뱅 돌고 있었다. 보다 못한 불목하니 하나가 말을 걸었다.

 “스님, 오진 스님.”

 오진 스님이 문득 멈춰 섰다.

 “응? 왜 그러냐?”

 “시신을 옮길깝쇼?”

 “응. 아니, 아니. 아아, 이걸 어쩌지?”

 오진 스님은 용담을 보고 말했다.

 “기파랑은 어디 계시냐?”

 용담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백록(白鹿)을 잡으신다고 태백산으로 떠나신 지 달포쯤 되었습니다. 아직 돌아오시려면 달포는 더 걸리실 겁니다.”

 “사고라 해도 대관대감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 독살이라 하면 가만있겠느냐? 용담아, 이 일은 가만 묻어둬야겠다.”

 용담의 눈이 커졌다.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오진 스님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목이 부러지면 사람이 살 수 없는 법. 보림랑은 목이 부러져서 죽은 것이 분명하다. 공연한 분란을 만들 필요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충영 대관대감은 지난 번 반란 진압 때 승진의 폭이 작았다고 백제인들 부추기고 있다고 들었다. 병권을 지닌 자에게 섭섭한 마음을 갖게 하면 좋지 않아.”

 “그래도…….”

 “허허, 말귀를 못 알아듣는구나. 이런 일은 너희 집안에도 좋지 않단 말이다. 이 안에서 있던 일은 절대 밖에서 말이 나오지 않게 해라.”

 용담 역시 진골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시위부(侍衛府) 장군 만해(曼解)였다. 오진 스님은 불목하니들을 돌아보면서 강한 어조로 말했다.

 “너희들도 쓸 데 없는 소리를 지껄였다가는 당장 치도곤을 낼 것이다. 명심해라. 시신은 조심스럽게 행랑으로 옮기고, 염이를 불러다 염습을 해놓게 해라.”

 염습을 하겠다는 이야기는 정말 이 일을 모른 척 하겠다는 것이 분명했다. 용담은 분한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어 그대로 물러나왔다. 그런데 대웅전 앞이 소란스러웠다.


 

2.


 “네 녀석이 옷깃을 끌어당긴 게 틀림없어.”

 화를 내고 있는 것은 도종이었다. 도종은 6두품 출신의 화랑으로 눈썹이 짙고 서글서글하게 생긴 인상이었지만, 생긴 것과는 달리 성질이 급한 소년이었다.

 도종이 야단치고 있는 상대는 보림 뒤에서 올라오고 있던 하영이었다. 김유신 가문 출신의 하영랑은 화랑(花郞)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꽃처럼 아름다운 미소년이었다. 하지만 격검에 있어서는 세 손가락에 들어가는 고수기도 했다. 하늘하늘한 가느다란 몸집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지 알 수 없는 소년이기도 했다.

 “애초에 보림랑에게 비틀거린다고 말했던 것도 네 놈이 뒤에서 옷깃을 당겨 놓고는 비웃은 게 틀림없어.”

 하영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네가 보기라도 했냐?”

 하영은 소매를 걷어 올렸다.

 “내가 만만해 보이냐? 이리 와라! 버릇을 고쳐주마.”

 “흥! 그렇게 나오면 겁날 줄 알고? 나야말로 이번에 네 버릇을 고쳐주마.”

 둘이 칼을 뽑아들었다. 훈련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날이 서지 않은 환두대도이기는 하지만 성질대로 휘두르면 크게 다칠 수 있는 흉기라는 점에서는 다를 것이 없었다.

 용담이 급한 대로 달려가 말려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다행히도 둘 사이를 갈라놓는 화랑이 있었다. 별선이었다. 별선은 예쁜 용모를 가진 소년은 아니었다. 화랑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용모를 갖춰야 하는데, 별선이 특별히 못난 얼굴은 아니었지만 화랑 속에서는 별로 눈에 띄는 용모가 아니었다. 사실 진골 출신들보다 타 출신들이 더 아름다운 경우가 많았다. 진골 출신들은 신분을 이용해 화랑이 될 수 있었지만, 신분이 낮은 소년들은 기본 바탕을 갖추지 못하면 화랑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다고 뭐 달라지는 거 있어? 그리고 도종랑! 보림랑이 옷깃 잡아당긴다고 굴러 떨어질 사람이냐?”

도종은 대답하지 못했다. 물론 아니었다. 보림의 뛰어난 무술 실력을 생각해 보면 굴러 떨어지다가도 오똑 설 수 있을 터였다.

 “네가 밀었으면 모를까?”

그 말에 진골 출신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도종의 안색이 확 변했다. 도종은 더 이상 말하는 것을 포기하고 별선의 머리를 향해 환두대도를 내리쳐 버렸다.

하영이 급히 칼을 들어 도종의 칼을 막았다. 용담이 비명을 질렀다.

 “아이쿠!”

 이제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용담이 손을 휘두르며 달려갔다.

 “화랑 여러분! 왜들 이러세요! 진정하세요!”

 이미 하영과 도종의 칼이 불꽃을 튀기며 부딪치고 있었다. 용담이 막무가내로 그 사이로 들어서려 하자 화랑 하나가 얼른 용담의 소매를 붙잡았다.

 “스님, 위험합니다.”

 용담이 누군가 하고 돌아보니 문덕(文德)이었다. 문덕은 보림과 유사한 화랑이었다. 그는 고구려 유민의 후손이었다. 보림이 화랑이 된 뒤 고구려계에 대한 정치적인 배려로 화랑이 된 소년이었다. 있는 듯 없는 듯해서 눈에 띄지 않는 화랑이기도 했다. 정치적 배려로 화랑이 되어 용모도 그다지 눈에 띄는 모습이 아니었다. 우직해 보이는 인상이 호감을 줄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화랑이라면 연상되는 예쁘장하면서도 날카로운 인상은 전혀 주지 못했다.

 “왜 구경들만 하십니까? 저러다가 큰 일 나겠습니다.”

 “저걸 어찌 말리겠습니까? 제 풀에 지치면 그만 두겠지요.”

 문덕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용담은 문덕의 손이 칼자루에 가 있는 것을 보고 조금 안심했다. 둘 다 사나운 기세를 가지고 있을 때는 말릴 수가 없는 법이다. 잘못하면 말리는 사람이 칼에 맞을 수도 있다. 한쪽이 확연히 밀려서 반격할 수 없을 때 말려야 했다. 용담은 급한 마음에 기본적인 원칙을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도종이 하영에게 밀려 위험해지자 문덕이 칼을 뽑았다. 시기를 맞추지 못했다면 하영의 칼이 도종의 목을 때릴 뻔 했다. 날이 없는 칼이라 해도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그 순간에 문덕의 칼이 하영의 칼을 막았다. 두 칼이 맞대인 상태에서 문덕이 팔로 원을 그리자 하영의 칼이 손아귀에서 벗어나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문덕이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이쯤 해 두지?”

 하영은 분노했다.

 “백제 촌놈이 골로 가니까 이제는 고구려 촌놈 차롄 거냐?”

 “그런 거 아니니까 그만 하자고.”

 “그만하긴 뭘 그만 해! 저 자식이 내가 보림랑을 끌어당겨서 죽였다잖아! 칼도 저 놈이 먼저 휘둘렀어! 사과해! 그래야 끝이 나지.”

 “그건 별선랑도 도종랑에게 똑같이 말한 거잖아. 그만 하자고.”

 “애초에 도종랑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으면 아무 일도 없었어! 그러니 사과해!”

 용담이 합장을 하며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었다.

 “나무아미타불! 모두 잠시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죠.”

 하영이 짜증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스님이 낄 자리가 아닙니다.”

 용담이 목소리를 깔았다.

 “제가 좀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이야기를 계속 하시지요.”

 용담이 그렇게 나오자 하영도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용담의 집안 내력을 잘 아는 탓이었다. 용담의 형인 명로(命蘆)도 화랑으로 전방대화랑의 지위까지 지낸 몸이었다. 장군 만해는 한 집안에서 화랑을 둘 낼 필요는 없다며 용담을 출가시켜 스님이 되게 했다. 용담의 나이는 화랑들과 비슷한 열다섯이었지만 그런 지위를 가진 몸이라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목소리를 나직이 깔고 말하자 용담에게서는 알 수 없는 권위가 흘러나왔다. 승려의 겸손함이 사라지자 본바탕인 귀족의 오만한 성품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용담의 눈빛은 사납기 그지없어서 순하게만 보이던 인상이 한 순간에 전사로 돌변한 것 같았다.

 “물어볼 말이 무엇입니까?”

 “오늘 구층탑에 오르기 전에 차를 드신 것으로 압니다. 다른 것도 드신 게 있었나요?”

 “차는 다식(茶食)과 함께 마셨습니다.”

 “다식은 무엇이었습니까?”

 “송화다식이었습니다.”

 송화다식은 소나무 꽃가루로 만든 과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것은 저희 절에서 내온 것이겠군요.”

 얼마 전에 남아있던 송화가루를 써서 다식을 만들었으니 그것을 내온 것일 게다. 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는 무엇을 드셨습니까?”

 “중국에서 온 용차였습니다. 제가 가지고 온 것입니다.”

 “용차는 차의 모양을 가리키는 말이죠. 차의 종류는 무엇이었습니까?”

 차를 다식처럼 틀에 넣어 둥글게 만들어 찍어서 만드는 것을 단차(團茶)라고 한다. 단차 중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중 용차는 용 모양을 새겨 넣고 봉차(鳳茶)는 봉황 모양을 찍어 넣는다. 단차는 차를 가는 연모인 다마(茶摩)에 갈아 가루를 낸 뒤 물에 타서 마신다.

용차라는 것이 차 이름인 줄 알고 있던 하영은 그만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그, 그것은...”

 “혹시 남은 것이 있습니까?”

 하영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주머니에서 차두(茶兜:차를 담는 봉지)를 꺼내 용담에게 건네 주었다. 용담은 황금빛이 나는 용차 일 각(角:단차를 세는 단위)을 꺼내 신중하게 살펴보고 향기를 맡아보았다.

 “이것은 정말 귀한 차군요. 중국 서주(徐州) 곽산(藿山)에서 나는 황아차(黃芽茶)입니다. 그 맛이 진귀하기 이를 데 없다는 차지요. 떫지 않고 단맛을 살짝 가진, 순하고 부드러운 차 맛이 일품이지요. 소승도 한두 번 정도 맛을 본 적이 있을 뿐입니다. 정말 오늘 좋은 차를 드셨습니다.”

 용담의 말에 체면이 선 하영이 금방 잘난 척을 했다.

 “흠, 흠. 그야 뭐 당연히 귀한 차지요. 숙부께서 당에 사신으로 다녀오시면서 어렵게 구해 오신 거니까.”

 “그러셨군요.”

 용담은 씁쓸하게 대꾸했다.

 다식은 절에서 만든 것이라 비상이 섞여 들어갈 가능성이 없었다. 비상은 찬물에는 녹지 않지만 뜨거운 물에는 잘 녹는다. 비상이 녹은 물은 단맛을 가지는데, 오늘 마신 차는 일반 차보다 단맛이 더 강한 차였다. 보림랑이 이상하게 생각했다 해도, 다른 이들도 차맛이 달다고 이야기했을 것이니 아무 의심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차에 비상을 타서 보림에게 먹인 것이 분명했다.

 “오늘 마신 차 찌꺼기는 어디에 버리셨나요?”

 하영은 별걸 다 물어본다는 표정으로 용담을 바라보았다.

 “버리긴요. 저쪽 선방에서 마셨는데, 치웠는지 치우지 않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용담은 상대방이 화랑이라는 것을 깜빡 잊은 것이다. 그들이 직접 뭘 치울 리가 없었다. 승려들이야 지위고하를 따지지 않고 자신의 그릇을 직접 치우지만.

 “아하, 그러셨군요. 고맙습니다. 그럼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용담의 마음은 벌써 다구(茶具)가 있는 선방에 가 있었다. 눈치 안 보이게 천천히 물러났지만 화랑들로부터 조금 떨어지자 달음박질이 되고 말았다.

 정말 다행히도 선방의 다구들은 그냥 놓여 있었다. 차를 가는 다마(茶摩), 차주전자와 은로탕정(銀爐湯鼎:은으로 만든 세발달린 화로로 여기에 소부를 올려 물을 끓인다)과 소부(小釜:작은 솥)도 모두 그대로 있었다. 선방 안에는 조금 흐트러지기는 했지만 비단 방석들이 제법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고, 그 앞에는 붉은 소반이 하나씩 놓여 있었고 그 위에 금색 꽃이 그려진 검은 옻칠을 한 찻잔이 올려져 있었다. 찻잔 옆에는 송화다식이 있었던 모양인데, 한창 먹성이 좋은 때라 그런지 남은 것은 없이 부스러기만 보였다.  

 아무튼 화랑들이 구층탑으로 간 지도 반 시진(한 시간) 정도 지났는데, 아무 것도 건드린 것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야말로 게으른 불목하니들 덕분이었다. 기분이 좋아진 용담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고맙게 생각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네.”

 그때 난데없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용담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더니 어느 틈에 문덕이 쫓아와 있었다.

 “깜짝 놀랐습니다. 왜 온 겁니까?”

 “뭔가 알고 있는 게 있는 거죠? 보림랑의 죽음에 대해서.”

 용담은 새삼 문덕을 다시 보게 되었다. 검술에는 일가견이 있다는 하영의 검을 일격에 떨어뜨린 실력도 그렇고, 용담의 질문에서 수상쩍은 기미를 눈치 챈 것도 그렇고, 조용하고 과묵해서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이지, 대단한 실력을 숨기고 있는 소년 같았다. 용담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 소년을 믿기로 했다. 용담의 의술 사부 기파랑도 진골 출신이 아니었지만 모두에게 존경받는 사람이었기에 용담은 신분에 대한 차별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기파랑의 명성은 충담사(忠談師)가 지은 향가(鄕歌)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에도 잘 나타나 있었다.

 “사실 소승은 보림랑의 죽음에 의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심이라뇨? 그럼 정말 누가 당기거나 밀쳤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게 아닙니다. 독살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용담은 찻잔을 살펴보았다. 아직 찻물과 찻가루가 조금 남아있는 잔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남아 있는 찻물은 옅은 황색이어야 했지만 찻잔이 검어서 색을 알아볼 수는 없었다. 찻가루가 남아 있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쉿, 목소리가 큽니다.”

 용담은 차주전자 안을 들여다보았다. 물이 조금 남아 있었다. 품에서 은침(銀鍼)을 꺼냈다. 은이 비상을 만나면 검게 물들게 된다. 차 주전자에 비상이 들어갈 리는 없지만(그랬다면 모두 중독되었을 것이니까), 정확하게 해두는 것이 중요했다. 용담은 찻잔에 은침을 담그고 잠시 기다려보았다. 은침은 변색되지 않았다.

 “문덕랑, 이 주전자에 감로수를 받아와 주세요.”

 문덕은 싫어하는 기색 없이 차주전자를 받아들었다. 문덕이 고구려계라고 해도 엄연한 화랑이다. 이런 심부름을 시키면 싫은 티를 낼 줄 알았는데, 전혀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용담은 문덕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문덕이 받아온 차주전자의 물을 열다섯 개의 잔에 조금씩 나눠 부은 뒤 그 하나하나에 은침을 담갔다. 소부와 다른 차주전자에도 은침을 넣었다. 그때까지 아무 말 없이 지켜보던 문덕이 물었다.

 “뭘 하는 겁니까?”

 “아, 설명도 안 했군요. 저는 보림랑은 비상을 먹은 것 같습니다. 만일 찻잔에 비상이 들어있다면 은침이 검게 변할 겁니다.”

 “비상이라면 독약의 이름입니까?”

 “네. 비석(砒石)을 태워서 만드는 독약입니다. 조금만 먹어도 사람이 죽습니다. 비석을 태우면 하얀 결정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백비(白砒)라고도 부르고 비상이라고도 부릅니다. 더운 물에 녹고, 약간 단맛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문덕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독약을 왜 일부러 만드는 겁니까?”

 “쥐나 참새같이 농작물을 해치는 짐승을 죽이는 데 사용하죠. 또 백동(白銅)을 만들 때도 필요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데도 사용하고요.”

 용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가 보림랑의 자리였습니까?”

 문덕은 한쪽 자리를 가리켰다.

 “좌우에는 어느 분이 앉았었나요?”

 “왼쪽에는 도종랑이, 오른쪽에는 내가 앉았습니다.”

 자리는 두 줄로 되어 있었지만 마주보고 앉은 화랑이 비소를 탈 가능성은 없었다. 좌우라 해도 거리가 널찍한 편이어서 사람들 눈을 피해 비소를 찻잔에 집어넣을 가능성이 없었다. 더구나 비상은 흰색이라 검은 잔에 미리 들어있었다면 대번에 눈에 띄었을 것이다. 

 “후찬자(候贊者)는 누가 했습니까?”

 후찬자는 차를 따르는 등 차 시중을 드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영랑하고 진효랑, 별선랑이 했습니다.”

 “그때 일을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문덕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3.

 


 

하영은 기분이 무척 나쁜 상태였다. 당연히 이길 줄 알았던 축국에서 신분이 낮은 화랑들에게 진 것이 너무 속상해 다른 생각이 나질 않았다. 풀어놓았던 금제 허리 장식대를 채우는데 자꾸만 고리가 어긋났다. 신경질이 뒤꼭지로 솟구쳐 올랐다.

 특히 보림이 이기고 나서 잘난 척 거들먹거리는 꼴은 눈꼴시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여태 한 번도 진 적이 없었기 때문에 기분이 더 나빴다.

 “별선랑, 네가 차를 갈아라. 진효랑은 물 끓이고, 쳇.”

 진효와 별선을 지목한 것은 이들이 오늘 어이없는 실수를 연발해서 승부에 진 때문이었다. 진효와 별선도 제 잘못을 아는지 투덜대지 않고 일을 거들었다.

 하영은 별선에게 차두를 넘겼다. 선방 앞뜰에는 소반에 올려진 찻잔들이 펼쳐졌다. 별선이 차를 갈고 찻가루를 찻잔에 담았다. 겨울이라 차를 우리는 방식으로 하투법(下投法)을 사용한 것이다. 하투법이란 찻가루를 먼저 넣고 물을 붓는 방식이다. 물을 조금씩 따라가며 차의 맛이 우러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방법의 장점이다. 대개 여름에는 물을 먼저 따르고 찻가루를 나중에 넣는 상투법(上投法)을, 봄과 가을에는 물을 반쯤 따른 다음 찻가루를 넣고 다시 물을 따르는 중투법(中投法)을 사용했다.

 본래 이런 일들은 허드렛일을 담당하는 낭두(郎頭)들이 할 일이었다. 하지만 황룡사에는 아무나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에 화랑들만 들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하영은 일부러 축국 한 판 하기를 제안했다. 지게 되면 밑에 것들이 하는 일을 시키며 모욕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꼴이람!

 진효와 별선이 소반을 들어 화랑들 앞에 하나씩 가져다 놓았다. 소반이 놓이자 취향에 따라 소금을 약간 뿌리는 화랑들이 있었다. 차 맛을 높이기 위해 소금을 뿌리기도 했다. 화랑들은 워낙 차를 즐겼기 때문에 대개 소금통 정도는 허리 장식대에 매달아 다녔다. 보림랑도 자신의 장식대에서 소금통을 떼어내 찻잔에 뿌렸다.

 소반이 자리를 잡자 찻물을 따를 차례가 되었다. 찻물은 하영이 따랐다. 

하영은 정성을 다해 찻물을 따랐다. 찻물을 따르는 데 따라 차의 풍미가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차를 따르는 시중을 드는 것은 창피한 일이었지만, 차 맛이 달라졌다는 말을 들으면 그것은 더 창피한 일이 될 게 틀림없었다. 하영은 그런 모욕을 결코 당하고 싶지 않았다.

 찻물을 받은 화랑들은 찻솔로 찻잔을 휘저어 찻가루가 골고루 섞이게 했다. 이때 찻가루가 덩어리가지지 않도록 잘 저어야 한다.

 차 맛은 정말 훌륭했다. 보통 차는 아무리 찻물을 잘 따른다 해도 떫은맛이 뒤끝에 남기 마련인데 하영의 차는 뒷맛이 개운하며, 그윽한 향내와 산뜻한 단맛이 어울려 잊기 힘든 풍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보림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 이기지 않았으면 이런 차를 어찌 맛보았겠나? 오늘 모두 하영랑에게 큰 신세를 진 셈이야.”

 하영랑이 차갑게 말을 받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가 이겼다면 그 나름대로 좋은 차를 대접받았겠지. 보성(寶城:지금의 전라남도 보성군)에도 좋은 차가 나온다고 하지 않던가?”

 신라에서 즐겨먹는 차로 죽로차(竹露茶)도 있는데, 굳이 옛 백제 땅인 보성을 들먹인 것은 보림을 깔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기에서 이기고 좋은 차를 마신 보림은 그런 말에 끄떡하지 않았다.

 “죽로차는 가야의 허황후(許皇后)가 가져온 차나무에서 나오는 명품이지. 대나무 이슬을 먹고 자라나는 명차니, 그 정도면 족하다고 보는데?”

 하영의 얼굴이 굳었다. 하영은 김유신 가문이었다. 김유신의 선조는 가야국의 국왕으로 김수로(金首露)의 후예들이었다. 허황후는 바로 수로왕의 왕비였다. 보림의 말은 “따지고 보면 너도 신라인이 아니야”라는 이야기였다.

하 지만 하영은 부글부글하는 속마음을 꾹 눌렀다. 황룡사에서 싸우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다음 기회에 백만 배로 갚아주는 것이 나았다.

 “오늘 황룡사에 온 것은 구층탑을 오르며 국가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것이 본래 목적이었으니, 모두 구층탑으로 가도록 하지.”

  하영의 말에 모두 일어섰다.

황룡사 구층탑은 선덕여왕 때 자장법사(慈藏法師)가 주장하여 세운 것이다. 그 높이가 183자에 이르니 서라벌 시내에서 보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 탑의 내부에는 계단이 놓여 층층이 위로 올라가며 서라벌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보림에게는 남다른 장소기도 했다. 이 구층탑을 지은 이가 백제인이기 때문이다. 구층탑은 백제의 공장(工匠) 아비지(阿非知)가 소장(小匠) 이백여 명을 이끌고 와서 만들었다. 전설에 따르면 아비지는 탑의 찰주를 세울 때 백제가 멸망하는 꿈을 꾸었다.

 놀란 아비지는 공사를 중지했다. 불사(佛事)라고 생각하고 일을 하는 것이었지만 이 절을 세워 조국이 멸망한다면 그 일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비지가 일손을 멈추자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고 땅이 흔들렸다 한다. 금전문(金殿門)에서 노승이 장사 하나를 데리고 나타나더니 찰주를 완성시키고 홀연히 사라졌다. 아비지는 탑을 완수하라는 부처님의 명이 내렸다고 생각하고 공사를 계속해 세상에서 가장 웅장한 목탑을 만들어냈다.

 이 탑의 층은 각기 구한(九韓)을 하나씩 의미한다고 한다. 보림이 떨어진 5층은 하필이면 백제를 상징하는 층이기도 했다.


 문덕의 이야기가 끝나자 미간을 찌푸리며 용담이 물었다.

 "보림랑에게 소반을 가져간 화랑은 누구였습니까?"

 "잘 기억이……. 아, 그래요. 별선랑이었습니다. 나한테 가져온 사람이 진효랑이었으니까요."

 “별선랑과 진효랑이 실수를 해서 내기에서 졌다고요?”

 “그랬지요.”

 “고의로 실수한 것 같았나요?”

 “글쎄요. 그랬을 지도 모르지만……. 그건 뭐라고 이야기하기가 어렵네요. 다만 좀 긴장한 것처럼 보이기는 했어요.”

 용담은 더 이상 묻지 않고 담가두었던 은침들을 확인했다. 예상대로였다. 보림의 잔에 든 은침만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소부도, 차주전자도 모두 멀쩡했다. 보림의 잔에만 독을 넣은 것이다.

 문덕도 보림의 잔에서 나온 은침이 변색된 것을 보았다. 그의 눈에서 불길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그 은침은! 우리 중에 독살을 한 살인자가 있다는 이야기군요!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침착하게만 보였던 문덕도 눈앞에서 살인의 증거를 보자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거의 용담의 멱살을 잡을 것처럼 다가와 물었다.

 “누군가요? 누가 범인이죠? 누가 보림랑을 죽인 거죠?”

 용담이 슬며시 문덕을 밀쳤다. 문덕도 실례를 한 줄 알고 뒤로 물러났다.

 “잠시만, 잠시만 생각을 좀 할게요. 어떻게 독을 전달할 수 있었을지 말이에요.”

 용담은 선방을 나와 선방 앞뜰을 왔다갔다하며 뭔가 중얼거렸다.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던 문덕도 선방을 나와 용담의 뒤를 따라 왔다갔다 움직였다. 드문드문 들리는 소리는 사실 황당무계한 것이었다.

 “너무 당연해서 보이지 않는 사실이 무엇이지? 아, 조금만 더 용맹정진하면 선과(善果)를 얻을 수 있을 텐데. 화엄경(華嚴經)을 읽을 때도 이렇게 어렵지는 않았어. 아…….”

 갑자기 말을 뚝 끊은 용담이 멍하니 금전문을 바라보았다. 문덕이 물었다.

 “범인이 누군지 알아낸 겁니까?”

 용담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고, 저 소리는…….”

말달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용담과 문덕이 금전문으로 나가보자 흰색과 푸른색으로 장식된 깃발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깃발은 백금서당의 표식이다. 제일 앞에서 말을 달리고 있는 장수가 보림의 아버지 충영이었다.


4.


 주지 스님 표훈 대덕(表訓 大德)을 비롯해서 황룡사의 주요 스님들이 모두 주랑(柱廊)에 나와 충영을 맞이했다. 오진 스님이 충영을 보림의 시신이 안치된 행랑으로 안내했다.

 충영은 보림의 시신을 보고 입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굳게 다문 그 입술은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구층탑의 계단을 오르다 그만 발을 헛디뎌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경내를 책임지고 있는 승려로 뭐라 말씀드려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충영은 손을 흔들었다. 아무 이야기도 들리지 않았다. 아들의 영혼과 마지막 교감을 나누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한참을 아들의 얼굴만 들여다보며 쓰다듬던 충영이 눈물 젖은 얼굴로 오진을 보고 말했다.

 “나는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몸입니다. 우리 아이가 정말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것으로 목숨을 잃은 것이 분명합니까?”

 그 말에 오진 스님은 찔끔하고 말았다.

 “아, 그게, 그게, 저…….”

 “내 아들이 목이 부러진 것은 분명합니다. 이게 직접적인 사인이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구층탑 정도 못 올라갈 정도로 허약한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충영의 눈빛이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오진 스님은 용담의 말이 마음에 걸려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목을 비틀면 사람을 간단하게 죽일 수 있지요. 저도 여러 번 해본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얼굴색이 검게 변하지는 않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표훈 대덕이 충영을 위로했다.

 “아미타불! 대대감의 슬픔은 잘 알고 있소. 우리가 성대히 불사를 치러 반드시 아드님을 극락왕생케 할 것이니, 그만 슬픔을 접으시오.”

 충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닙니다. 저는 지금 슬퍼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은 슬퍼할 때가 아닙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정의입니다. 제 아들은 결코 실족해서 죽은 게 아닙니다. 다들 이 아이를 보십시오. 그래도 모르시겠습니까?”

 “맞습니다!”

 충영은 새된 목소리가 자신의 말을 지지해주자 놀라서 누군가하고 살펴보았다. 나이는 죽은 보림 또래로 보이지만 한참은 키도 작고, 몸집도 작아 순둥이로 보이는 꼬마였다. 도움이 될 사람으로 보이지가 않았다. 오진 스님이 용담을 야단쳤다.

 “용담아, 무슨 소리냐! 대대감, 아직 사리분별을 못하는 아이입니다.”

 충영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직 사리분별도 제대로 못할 사미도 제 말이 맞다고 합니다. 저는 다만 제 아들을 죽인 자를 찾아내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충영은 사람들의 주목이 자신에게서 벗어난 것을 느꼈다. 표훈 대덕이 아까 그 꼬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말을 걸고 있었고, 꼬마는 무언가 대답하고 있었다. 표훈 대덕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표훈 대덕이 오진 스님에게 말했다.

 “화랑들이 아직 경내에 있는가?”

 “그렇습니다.”

 “모두 이곳으로 불러오게. 내가 알아봐야 할 것이 있네.”

 오진 스님이 직접 달려갔다. 충영이 물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표훈 대덕이 대답했다.

 “이 사미는 용담이라 하는데, 기파랑의 기명(記名) 제자입니다. 열 살에 화엄경을 뗀 천재지요. 결코 허튼소리를 하지 않는 아이니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시지요.”

 충영은 고승 표훈이 그렇게 극찬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오진이 하찮게 말한 것도 있고, 자신도 순둥이로만 보여 별 볼 일 없는 아이인줄 알았는데, 표훈의 말로 대번에 느낌이 달라졌다.

 “스님, 제가 눈이 어두워 천리마를 못 알아보았습니다. 부디 가르침을 주십시오.”

 충영이 합장까지 하며 말하자 용담은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애초에 보림랑이 계단에서 떨어져서 다쳤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의심스러운 생각을 했습니다. 구층탑은 저도 매일 오르는 탑인데, 보림랑처럼 무술 실력이 뛰어난 화랑이 굴러떨어질 수도 없고, 목을 부러뜨릴 수도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광경을 목격한 화랑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보림랑은 쓰러지기 전에도 비틀거렸다고 합니다. 왜 그랬던 것인지는 시체를 보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용담은 비상 중독에 대해서 같은 설명을 한 뒤 말을 덧붙였다.

 “비상을 먹게 되면 다리부터 힘이 빠져나갑니다. 보림랑은 비상을 먹은 것이 분명했습니다.”

 충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짐작은 했으나 단정적인 이야기를 듣자 다시 울컥 치미는 분노를 참기 어려웠다.

 “누가 우리 아이를 죽였단 말입니까?”

 용담은 대답 없이 보림랑의 시신을 살펴보고 있었다. 용담은 보림랑의 허리 장식대를 살펴보고 있었다. 용담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찾고 있던 것을 찾은 것이다.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진 자리를.

 그때 오진 스님이 화랑들을 데려왔다. 화랑들은 스님들 옆에 도열했다. 용담이 말했다.

 “범인이 누군지 알 것도 같습니다. 그 전에 한 가지 확인을 했으면 싶은 게 있군요.”

 용담이 앞장서서 걸어간 곳은 보림랑이 죽은 구층탑 내부였다. 스님들과 화랑들도 무슨 영문인지는 몰랐으나 용담의 뒤를 따라갔다.

 용담은 사건 현장에 서서 여기저기를 날카로운 눈으로 살피기 시작했다. 충영이 답답해 하며 물었다.

 “뭘 찾는 건가요? 같이 찾도록 하죠.”

 용담이 고개를 흔들었다.

 “없을 수도 있는 물건입니다. 작은 고리가 떨어져 있을까 싶어서…….”

 용담의 얼굴이 밝아지면서 바닥에서 작은 은제 고리 하나를 집어들었다. 어딘가 매여 있던 고리였던 모양인데 힘을 받아 끝 부분이 벌어져 있었다. 용담이 그것을 충영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뭔지 아시겠습니까?”

 충영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는데? 뭔가 매달아 놓았던 것 같군.”

 “맞습니다. 보림랑의 몸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아까 보림랑의 허리 장식대를 살펴볼 때 알았죠.”

 용담이 문덕랑에게 물었다.

 “축국을 할 때, 허리 장식대들은 풀어 놓았겠죠?”

 “당연하죠.”

 은제 허리 장식대는 실제 옷을 붙들어 매는 허리띠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놀이를 할 때는 풀어놓는 게 당연했다. 용담이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소승은 그동안 비상이 언제 찻잔에 들어갔을까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찻가루를 넣을 때가 가장 좋은 때였겠지요.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대체 어떻게 독이 든 찻가루를 보림랑 앞에 갖다 놓을 수 있었을까요? 찻가루를 잔에 넣은 이는 별선랑이었습니다.”

 별선이 꽥 소리를 질렀다.

 “난 아냐!”

 하영도 말했다.

 “사람들이 다 지켜보고 있었는데, 몰래 비상을 넣을 방법이 있었겠습니까? 너무 억지를 부리십니다. 그리고 별선랑에게 후찬자의 일을 시킨 것은 접니다. 별선랑이 스스로 한 게 아니었어요.”

 다들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별선이 남들 몰래 비상을 넣을 방법은 없었을 것 같았다.   용담이 말했다.

 “맞습니다. 만일 별선랑이 거기서 조금만 수상한 행동을 했다면 누구라도 그것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건 너무나 위험한 일이죠. 더구나 비상을 넣었다 해도 그것이 정확하게 보림랑에게 전달되게 할 방법이 없다는 문제가 남습니다.”

 “그래! 난 아냐!”

 “소반을 나른 사람은 별선과 진효입니다. 두 사람이 날랐기 때문에 더욱 어렵지요. 두 사람이 서로 내통하고 있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별선과 진효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말도 안 돼!”

 하영도 화를 냈다.

 “정말 너무 하시는군요! 무슨 물증이라도 있습니까?”

 “물증이 있습니다.”

 용담의 그 말에 장내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하영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용담이 그 말을 무시하고 문덕에게 말했다.

 “진효랑을 붙잡으세요.”

 문덕은 망설이지 않았다. 용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진효가 등을 돌려 달아나려 했으나 문덕의 환두대도가 그의 등 뒤에 번쩍였다. 진효랑은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오진 스님이 놀라서 외쳤다.

 “아미타불! 경내에서 칼을 휘두르다니!”

 문덕이 칼을 꽂으며 말했다.

 “칼등으로 내리쳤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용담이 진효에게 다가가 품속을 뒤졌다. 진효가 끙끙거리며 반항하려 했지만 제대로 타격을 받았던 탓에 꼼짝하지 못했다.

 “역시 여기 있군요.”

 용담이 진효의 품속에서 꺼낸 것은 대나무로 만든 소금통이었다. 윗뚜껑에 달려 있던 고리가 떨어져 나가 있는. 문덕이 물었다.

 “그게 뭡니까?”

 “보림랑의 소금통입니다. 진효랑은 이 소금통 안에 비상을 넣어두었지요. 차를 마실 때 소금을 뿌리는 보림랑의 습관을 이용한 겁니다.”

 “진효랑이 범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소금통을 회수해 갈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사람은 진효랑뿐이었으니까요. 보림랑이 쓰러졌을 때 보림랑을 접했던 사람은 진효랑뿐이었지요. 무리해서 소금통을 떼다가 고리를 떨어뜨린 것입니다. 오늘 범행을 실행할 생각이었기에 바짝 긴장하고 있어 축국을 할 때도 실수를 여러 차례 범했었죠.”

 충영이 진효를 붙잡고 물었다.

 “무슨 이유로 보림이를 죽인 거냐? 왜?”

 진효는 쉽게 말을 하지 못했다. 충영이 다시 채근하자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죄송해요. 죽일 생각으로 넣은 게 아니에요. 아주 조금만 넣었어요. 정말 죽을 줄 몰랐어요. 계단에서 떨어지지만 않아도 괜찮았을 거예요. 그냥, 그냥 혼만 내주려고 한 거였어요.”

 용담이 혀를 찼다.

 “비상은 극독 중의 극독입니다. 아주 조금만 먹어도 위험하지요. 장난으로 써서는 안 되는 물건이었습니다. 계단에서 떨어지지 않았어도 죽었을지 모릅니다.”

진효는 울면서 충영에게 빌었다.

 “몰랐어요! 정말이에요! 몰랐어요! 살려주세요!”

 진효의 아버지는 백금서당의 지휘관으로 충영의 직속상관이었다. 오진 스님은 흥분한 충영이 엉뚱한 일이라도 저지를까 봐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나 충영은 가만히 일어났다.

 “천하가 하나가 된 지 이미 백 년. 삼한은 앞으로도 일가(一家)를 이루며 살아가야 하지. 네가 짐승 같은 짓을 했다고, 나도 똑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내가 바라는 건 정의이지, 복수가 아니니까. 그건 보림도 바라는 일이 아닐 거야. 그러니 네가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친다면 너를 용서하고 싶다. 하지만 너를 그냥 용서하면 세상은 내가 상관을 두려워해서 아부를 했다고 말할 것이다. 너를 압송해서 장군께 말씀드리고 처벌을 일임하겠다.”

 충영은 데려온 병사들에게 말했다.

 “이 아이를 체포해라. 압송해 간다.”

 병사들이 진효를 포박했다. 진효는 반항하지 않았다. 충영은 용담에게 다가가 고마움을 전했다.

 “하늘의 그물은 성기나 죄인을 놓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스님이야말로 하늘의 그물(天網)이십니다.”

 용담도 합장을 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대대감이야말로 하늘의 도리를 아는 분이십니다. 선과를 맺으실 겁니다.”

 충영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진골 출신 화랑들이 고개를 떨궜다. 표훈 대덕이 화랑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충담사는 안민가(安民歌)에서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가 태평하리라고 노래했다. 너희는 화랑으로 화랑답게 행동해야 한다. 무엇이 화랑다운 것일까? 풍월주(風月主) 천광랑(天光郞)은 협기(俠氣)를 지녀 강자를 억누르고 약자를 도우며 자신의 뜻이 옳으면 죽어도 그것을 행했다. 너희는 화랑으로 어찌 당파를 만들고 친구를 배척하는가? 오늘 아들을 잃은 슬픔에도 불구하고 용서할 줄 아는 대인을 우리 모두 보았다. 너희가 능히 대관대감의 높은 뜻을 따를 수 있겠느냐? 너희가 그동안의 반목을 버리고 서로를 용서할 수 있겠느냐?”

 표훈 대덕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돌아섰다. 부끄러움에 화랑들이 고개를 떨굴 때, 용담만이 합장을 하며 그를 배웅했다.

 

<작품 후기>

 

"신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통합국가입니다. 분단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신라가 통일을 이룬 후 어떻게 살아갔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라가 통일을 이룬 3백 년 뒤에 우리 민족은 다시 분열하여 후삼국 시대를 맞이합니다. 어쩌면 이것은 신라가 민족화합을 잘 이루지 못했던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분열이 불과 30여 년 만에 종식되었고, 그 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은 분열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것은 또한 통일을 위해 노력한 신라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요? 그런 생각들을 모아 <황룡사 살인사건>을 썼습니다."

 

-저자소개-

 

 

 이문영:

서강대학교 사학과 졸업
게임시나리오 작가 및 소설가.

현재 글틴 이야기글 게시판 운영자로 활동하고 계시기도 합니다.
주요작품으로는  역사소설 <다정>, <숙세가>, 그림책 <색깔을 훔치는 마녀>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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