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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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붉지 않았다면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을 거야

붉은 것이 아스팔트 위에서 터진 흔적

지나가던 이들의 의아해하고, 징그러워하고, 안쓰러워하던

마음이 낙엽처럼 쌓인 것은 사실 떨어진 감의 흔적

 

이파리 사이로 태어났을 때부터 나는 매달렸지

푸르고 작던 시절에는 대단한 것이 될 줄 알았는데

까치가 내 왼쪽을 쪼아 먹은 후엔

아무도 나를 구해주지 않았어

단단한 살이 물렁하게 농익도록 햇빛을 받으며 대롱거리다

삶은 그렇게 끝났네, 아 내 위로 눈물 한 방울 떨군 나무여

 

얇은 껍질이 터지고 물렁한 살을 잔뜩 쏟아내며

환경미화원이 올 때까지 길 위에 붉은색을 물들인

감의 죽음, 네가 슬퍼하던 것이 떨어진 감이라면

그래도 나의 죽음을 슬퍼해 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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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개월 20 일 전

제목, 본문도 재밌네요. 호기심을 일으킵니다. 시적화자는 홍시(감)이고, '너'는 나무 같군요. '내가 붉지 않았다면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을 거야'라는 구절이 의미심장합니다. 그래서 '네가 슬퍼하던 것이 떨어진 감이라면/그래도 나의 죽음을 슬퍼해 줄 테니?'라고 하니까요. 홍시가 떨어진 흔적을 보면서 연민을 느낀 게 좋았어요. 화자는 까치에 쪼인 후 나무에 매달려 죽음을 맞이했는데 여러 생각을 하게합니다. 타인에게 받은 상처를 안고 죽어가는 존재니까요. 반면 홍시는 나무에 매달려 있다가 익어서(늙어서, 때가 되서) 죽음을 맞이했으니까요. 그러나 이 시는 다소 설명적이고 인위적이랍니다. 나무가 눈물을 떨어뜨리는 것도 '지나가던 이들의 의아해하고, 징그러워하고, 안쓰러워하던' 모습도요. 시적 이미지를 더 고민해보세요. 다 보여주고, 말해주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시가 될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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