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끝나기 전에(윤별)’에 덧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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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끝나기 전에(윤별)’에 덧붙여

 

 

원문: https://teen.munjang.or.kr/archives/100699

 

 

“어쨌든 공연은 올려야 한다.”

11월 수필 부문 월장원인 윤별의 ‘연극이 끝나기 전에’는 이렇게 시작된다.

 

“어쨌든 문집은 만들어져야 한다.”

이 글을 읽을 무렵의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부장으로 있는 토론 동아리에서는 11월쯤에 문집을 펴낼 예정이었다. 수익금은 작년처럼 비정부단체에 기부할 예정이었고, 기부 행사를 진행하고 봉사 시간을 받기로 단체 측과 협의도 다 해 놓은 상태였다. 문집 발간에 사용되는 비용도 학기 초에 행정실에 청구해서 학교 측에서는 우리를 위해 얼마간의 예산을 떼 놓았다. 비용 한푼 들이지 않고 부원들의 스펙도 쌓아주고, 의미 있는 기부도 할 수 있는 완벽한 계획이었다. 다만 한 가지,

 

책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빼곤 말이다.

 

2학년들은 이미 작년에 해 보았기 때문에, 라는 이유만으로 1학년들에게 문집 일을 일임했던 것이 패착이었다. 나는 1학년들이 알아서 잘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2학년에서 기획하고 있던 다른 동아리 활동을 이끄느라 문집 일에 크게 관여하고자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여름방학이 다 가도록 열심히 짜고 있다는 기획안은 나오지 않았다. 여름방학이 끝나면 9월 모의고사 준비를 해야 해서, 9월 모의고사가 끝나면 중간고사 준비를 해야 해서, 중간고사가 끝나면 수행평가 준비를 해야 해서, 기획안 작성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2학년들은 자신들에게 할당된 파트가 뭔지 알지 못해 글을 써나갈 수 없었다. 결국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채 10월 말이 되었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나는 1학년 편집부장들을 불러 함께 기획안을 짜고, 부원들에게 분량을 할당해주었다. 부원들을 열심히 재촉한 결과, 다행히 글 취합은 11월 안에 끝났다.

 

복병은 기말고사였다. 기말고사가 끝나자 겨울방학이 2주 앞으로 다가왔고, 편집과 일러스트는 시작도 안 된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행정실에서는 우리를 위해 마련해둔 예산을 이미 다른 곳에 써버렸다는 연락이 왔다. 11월에 돈을 사용하기로 해놓고, 12월이 되도록 찾아가지 않아서 다른 부서에 할당해주었다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자비로 문집을 발간해야 했다. 무를 수도 없었던 것이, 이미 비정부단체에서는 우리 행사를 위해 언제 팸플릿과 포스터를 보내 줄지 묻고 있었고,  중요한 2학년 2학기 내신을 포기하며 문집에 들어갈 글을 쓴 2학년 아이들의 노력이 너무 아까웠다. 1학년들은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것처럼 보였다. 편집부장들은 자신들의 수고가 물거품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허망해 보였다. 2학년들은 1학년이 일을 제때 처리하지 못한 것 때문에 자신들이 3만원씩을 내서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짜증을 내고 있었다. 동아리 담당 선생님은 1학년들이 중간 진행을 보고하지 않고, 볼썽사납게 일을 그르친 것에 화를 내고 계셨다. 나는 부장으로, 그 세 집단의 중간에 끼어 어떻게 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며, 어쨌든 문집은 만들어져야 할 텐데, 라고 되뇌고 있었다.

 

 

그 무렵에 윤별의 수필을 접했다. 글을 쓰지 않은지는 오래 되었지만, 가끔 글틴에 들러 제목이 눈에 띄는 몇몇 작품들을 읽고 나갔던 터였다. 첫 문단부터가 너무나도 그 당시의 나의 상황과 비슷해서, 글의 길이가 제법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어나갔다. 글쓴이는 나와 같은 고등학교 2학년으로, 연극부 부원이다. (아마 수능 직후인 것으로 추정되는) 축제가 다가오고 있었지만, 동아리의 축제 준비는 아직 시작 상태였다. 1학년들이 올리기로 예정되어 있던 연극은 연습은커녕 대본조차 덜 쓰여 있는 상태였고, 귀신의 집을 꾸미기에 필요한 박스조차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수능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선배들마저 우려할 정도였다. 마침내, 글쓴이를 포함한 2학년들이 1학년들의 연극에 도움의 손길을 주기로 합의했다. 축제 2주 전, ‘장면 전환이 아홉 번이나 있을’ 정도로 엉망인 1학년들의 대본을 고치는 데에 그들은 야자 시간을 바쳤다. 호랑이 선생님조차도 그들을 위해 공간을 마련해 주셨고, 1학년들은 2학년들의 제언을 열심히 메모하며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공연의 진행에 실낱같은 빛이 보이는 듯 했으나, 이튿날 그들은 다시 절망을 맛보게 된다. 1학년들은 ‘놀리는 인력이 없어야 한다’며 두 팀으로 나누어 대본을 수정하고 있었고, 결말을 어떻게 낼지를 의논하느라 시간을 축내고 있었다. 대본은 막장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이 흡사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들 같다’고 생각한 글쓴이는 과외를 빼고 학교에 남아 1학년들을 모았다. 그러나 모인 1학년의 수는 2학년의 수보다 적었다. 결국 모인 이들은 대본을 더 진척시키는 대신 3학년들이 써 놓고 상연하지 않은 대본으로 연극을 준비해나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힘겨운 과정을 거쳐 연습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연습 참여율은 저조했다. 1학년들 사이의 갈등도 고조되어, 더 이상 연습에 나오지 않겠다고 나가버린 학생도 있었다. 박스를 주우러 나간 학생들은 폐지 줍는 노인들의 생계수단을 빼앗는다는 민원을 받았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연습은 계속되었고, 연극은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 그 무렵 1학년 부원들이 2학년들도 무대에 올라올 것을 제안하고, 함께 군무를 연습하며 그들은 밝음을 되찾았다. 수능이 한 주 연기된 터라 그들의 축제도 따라 연기되었다. 거의 준비가 끝났음에 안도하면서도 글쓴이는 이제 고3이 된 자신이 지금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회의감을 느끼곤 했다. 수능 당일, 그들은 밤늦게까지 연극 연습을 하고, 귀신의 집 세팅을 했다. 드디어 연극이 시작되었다. 연극부원들은 하나가 되어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윤별의 ‘연극이 끝나기 전에’가 수필로서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섬세한 묘사일 것이다. 이 글에 직접적으로 알파벳으로 이름이 표기된 인물만 해도 열두 명 남짓이나 될 정도이다. 글쓴이는 자신의 감정에만 매몰되지 않고, 연극부원 각자의 감정에 일일이 초점을 맞춘다. 이 수필에는 유독 인물들의 대화 장면이 많은데, 그 점이 이 글이 그 자체로도 하나의 희곡인 것처럼 읽히게 해 준다. 대화 장면은 또한 갈등을 부각시키고, 메시지를 전달하고, 글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도 기여한다. 가령, 비상소집 때에 2학년들보다 적게 모인 1학년 부원들을 향한 2학년 부원 J의 말(“우리도 이제 수능 준비해야 하는데 너희 도와주러 나왔지. 그런데 지금 일 학년들 나온 애들 거의 없지. 나오는 애들만 나왔잖아… 아니. 다 제치고. 연극, 하고 싶긴 한 거야?”)과 J를 말리는 글쓴이의 말(“야, 진정하고, 감정적으로 가지 마.”)은 장면에 싸한 긴장감을 부여하며 이 글의 클라이맥스를 형성한다. 여러 인물의 대화를 통해 사건이 전개되므로, 글의 분량은 필연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고,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나는 이 수필에 나온 모든 인물들과 그들의 말은 전후의 사건과 긴밀하게 엮여 있어서, 하나가 빠지면 나머지도 균형이 맞지 않고 허물어져 버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량이 일반적인 수필에 비해 많은 것은 사실이나, 이를 줄이기 위해 비교적 불필요해보였던 일부 상황을 요약적으로 제시하였더라면 글의 정체성 내지는 매력이 지금보다 훨씬 덜 느껴졌을 것이다.

 

이 글은 타 인물들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한편, 글쓴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묘사하는 수필의 본연적인 목적에도 충실하다. 글쓴이는 마치 한 편의 희곡이나 소설 같은 이 수필에서 1인칭 주인공과 1인칭 관찰자를 오가며 주변 인물들의 행동에 대한 생각과 자신의 심리상태를 담백하게 적어 내린다. 글쓴이는 특히 타 인물들에 대해 함축적이면서도 직설적으로 평가를 내리는데, 그 방식에서 탁월함을 보인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글의 막바지 무렵, 2학년들도 연극 무대에 서기로 결정하는 장면에서 글쓴이가 2학년 기장 Y에 대해 묘사하는 부분이다. 부원들을 포용하는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Y에 대해 글쓴이는 “내가 누구를 봐서 해 주는 거야, 라는 말에서 누구를 맡고 있는 것만 같았다,”라고 말한다. 처음 이 글을 읽었을 때부터 감상을 쓰기 위해 재차 반복해 읽을 때까지, 저 문장은 한결같이 나를 잡아끌었다. 내가 누구를 봐서 해 주는 거야, 라는 말의 ‘누구’를 맡고 있다는 단 한 줄의 문장으로 독자는 Y가 어떠한 성격인지, 교우관계는 어떠할지, 학급이나 동아리에서 어떤 존재일지 명확하게 파악하게 된다. 긴 대화로도, 한 줄의 묘사로도 글을 진행해나갈 수 있는 글쓴이의 역량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다만 이 수필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결말부가 도입부나 전개부에 비해 빈약하다는 점일 것이다. 수필은 1학년 부원들이 공연을 하고 있고, 2학년 부원들이 Uptown Funk를 추기 위해 무대 구석에서 대기하는 장면에서 끝난다. 그 직전의 장면은 1학년 부원들이 핀 마이크 착용과 리허설 등 최종적인 준비를 하는 동안 2학년 부원들이 귀신의 집을 보수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학교 관리인과의 잠깐 동안의 대화(“여기 왜 안 열려!”/“아, 선생님, 저희 오늘 귀신의 집요!”/“으엥, 오늘 축제여?”/“네, 오늘 밤까지만 쓸게요, 선생님!”)까지도 대화 형식을 빌려 세세하게 묘사하였던 종전과는 달리, 이 두 개의 장면은 합쳐서 15줄이라는 짧은 분량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수필의 주제가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어서, 글쓴이가 연극 당일에 대한 묘사는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을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A4 14장에 달하는 긴 호흡의 글을 이끌어온 글쓴이가 마지막에 이르러 지친 것일 수도 있겠다. 일반적인 분량의 수필이라면, 15줄짜리 결말은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이다. 그러나 ‘연극이 끝나기 전에’는 타 수필에 비해 도입과 전개가 압도적으로 길기 때문에, 결말이 급하게 지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또한, 1학년들의 엉망인 연극 못지않게, 준비가 덜 된 ‘귀신의 집’도 수필의 전개에 한 획을 차지하는데, 이에 대해서도 결말부에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최종 리허설 때까지 2학년 부원들이 박스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을 보수할 정도로, 귀신의 집은 연극부의 축제 준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렇게 공들여 만든 귀신의 집이 축제 때 어떻게 되었는지는 수필이 끝날 때까지 제시되기 않는다. 어쩌면 글쓴이가 말하는 귀신의 집은 대부분의 학교에서 축제 때 진행하는, 놀이공원 귀신의 집의 미니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관객의 흥을 돋우기 위한 강당 세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수필의 맨 처음에 글쓴이는 ‘귀신의 집을 ’운영‘하려고 하는 건 맞는 건지’라고 말한다. ‘귀신의 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부분이 미흡하게 다루어진 것이 다소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수필은 매우 잘 써진 글이다. 글쓴이의 문학적 재능과 기교에 있어서도 그러하지만, 글의 진정성과 보편성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글쓴이가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고민과 생각은 어떤 환경과 나이의 독자든 굳이 동아리 활동이 아니더라도 일상생활 중에서 한번쯤은 생각해보았을 것들이다. 특히 비슷한 나이대의 청소년들은 이 글에 크게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도 그러하다. 나는 예비 고 3으로서 공부에 매진해야 하는 상황에 1학년들의 연극을 위해 발 벋고 나서야 하는 상황에 놓은 글쓴이에게서 남들이 수능 기출을 풀 때 밤새도록 빨간 플러스 펜을 들고 부원들의 글을 교정하고 있던 나 자신을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갑자기 울음이 날 것만 같았다. 나는 이제 고등학교 삼 학년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연극부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정말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글쓴이의 한탄은 나의 생각과도 맞닿아 있었다. 1학년 부원들 대다수가 회의에 불참했을 때 글쓴이가 한 ‘화를 내고 싶었는데 온 후배들의 잘못이 아니라 오지 않은 후배들의 잘못이었고, 사실 지금까지 이만큼 온 건 그 자리에 있는 일학년들이 없었다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그만두어야 할 테였으니 화를 낼 수도 없었다.’라는 독백은 초기 편집회의 때 1학년 부원 몇몇이 각종 비교과 행사를 이유로 불참했을 때 내가 마음을 다잡기 위해 한 생각과 비슷했다. 이렇게 독자로 하여금 공감하고, 자신의 경험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글을 쓰는 윤별은 대단한 잠재력을 가진 작가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내내 건필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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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개월 15 일 전
곧님 안녕하세요? 제가 요청 드린, 다른 게시판에 있는 작품을 보고 비평해달라는 부탁을 들어줘서 고맙습니다. 무엇보다 「연극이 끝나기 전에」를 쓴 윤별님이 곧님의 비평을 읽고 기뻐할 것 같은데요. 작품에 대한 세심하고 따뜻한 마음이 깃든 글, 무척 좋았습니다. (다만 제목만 고쳤으면 합니다. 본인의 비평을 집약할 수 있는 타이틀로요.) 보통은 코멘트를 할 때 글을 어떻게 고치면 더 나을 것 같다고 조언하지만, 곧님의 글에 대해서는 그럴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이미 한 편의 작품으로서 높은 완성도를 갖추고 있으니까요. 사실 곧님의 글은 ‘수필+비평’의 혼합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도 저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비평 대상이 수필인 경우는, (직접적이더라도) 본인의 경험 지평 안에서 다른 작품을 해석하는 방법이 나쁘지 않은… Read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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