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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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점에 갔다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보았다. '생산적 인간'. 약간의 불쾌함 까지 가져오는 필명을 사용하는 작가이다. 그의 소설은 절망적인 결말로 유명하다. 좋은 결말로 끝나는 작품은 하나도 없다. 벌써 6권의 장편소설을 출간한 프로작가이지만, 언제나 비극적인 결말 때문에 안티 팬이 많은 듯 하다.

그러나 슬프고, 비극적이고, 자극적인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신격화되는, 호불호가 확실하게 나눠지는 작가이다. 그의 소설속에서 표현되는 잔인하고, 비극적인 클라이막스의 묘사는 감탄을 자아낸다. 나는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경외감을 느낀다. '생산적 인간'이라는 필명처럼 그저 '생산'을 반복할 뿐일지도 모르지만, 그의 묘사는 내가 그 자리에 있는 비극의 주인공처럼 서글퍼지게 만들어준다. 특히 이번 소설이 그랬다. '행복의 비애'라는 제목의 소설 이었는데 결말은 언제나 그렇듯 비극이었다.

 

 

 

기차 역에서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스크린도어 앞에 서서 멀리 떠나가는 기차를 바라보는 주인공.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스스로의 무능력함을 질책한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모습이 주인공을 더 초라하고, 서글프게 만들었다.

'박사원, 이거 오늘 5시까지 해서 나한테 보내줘요.'

상사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일을 시작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작업량에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일이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상사에 대해 불평한다.

'적당히 시켜야지…. 저렇게 많이 시키고 5시까지 다 하라는게 말이되나….'

집으로 가는 중, 사람들이 많은 번화가를 지나가다가 술집을 보게된다. 시원한 맥주를 한입 크게 들이키며 '캬'하며 저절로 소리내는 모습이 주인공을 자극 하기에는 충분했다. 주인공은 집으로 가기전에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사가기로 한다. 그리고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고르고 계산대에 올려놓은 순간, 그녀와 마주친다.

 

 

 

 

나는 '운명적인 사랑'을 믿지 않았다. 스스로를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언제나 옳다고 주장하는 이기적이고, 고집 센 사람처럼 느껴졌다. 사랑은 사람에 따라 형태가 다르고, 그 중 자신이 느낀 한 형태가 보편적인 사랑의 형태라고 주장하는 그들의 말은 이기적인 주장으로 느껴졌다. 이 소설은 내가 느끼고, 생각해온 사랑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었다.

 

 

 

운명적으로 다시 만나게 된 주인공과 여자. 그들은 운명처럼 다시 사랑에 빠진다. 고등학교때 헤어진 이후 있었던 일들을 공유하며, 서로의 유대는 더욱 깊어진다.

헤어졌을때 당신을 너무 그리워해서, 그 그리움이 행복마저 삼켜버려서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었다 해도 열심히 살아왔다고, 수고했다고 말해달라고. 그렇게 요구하는 주인공과 여자의 마음이 표면에 드러나 '사랑'을 잘 모르는 나 조차도 공감하게 만들었다.

 

 

 

 

사랑의 형태가 어느 하나로 고정된 느낌이었다. 믿음이 부정당하는 느낌. 그러나 하나도 불쾌하지 않았다. '사랑은 원래 이런거구나.'라는 수긍의 감정이었다. 첫 부분의 초라함과 서글픔에 대조되어, 행복해지고 활력을 되찾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운명적인 사랑을 믿지는 않지만, 그 존재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주인공과 여자는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사랑을 속삭이며 아이를 가졌다. 그리고 결혼을 약속했다. 얼마 뒤, 서로가 보일 수 있는 가장 멋지고, 가장 예쁜 모습으로 서로를 마주했다. 그리고 행복의 미소를 짓는다.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자랑할 수 있을 정도로. 그정도로 행복하다고 모든 단어들을 통해 말하고 있었다. 둘은 예식장으로 향했다. 차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행복을 절정으로 느끼며 굽이굽이 산길로 올라가고 있었다. 뭔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건 그때였다. 산길을 올라가던 도중에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산길은 더욱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당황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른 채 핸들만 부여잡고 있었다. 격하게 흔들리는 차체에 당황한 주인공의 심정을 여자의 한마디가 꿰뚫었다. '왜 제대로 안살피고 출발한거야.' 모든것을 주인공 탓으로 돌리는 여자의 직설적인 한마디가, 격하게 흔들리는 차체를 멈추었으며, 정적이 자리잡도록 도와주었다. 그 한마디에 사랑은 형태를 잃고 일그러졌으며 그 빈자리를 분노가 채우기 시작했다. '생산적 인간'은 그걸 이렇게 표현했다. '꽉 찬 보름달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면 그 자리를 어둠이 채우는 것 처럼, 자연스러운 이치로 사랑의 빈자리는 분노가 채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모양을 잃은 사랑은 유지가 불가능했고, 넋을 놓은 남자가 운전대를 놓으면서 소설은 끝난다.

 

 

 

 

 

다 읽고 나서야 제목의 의미를 가늠할 수 있었다. '행복의 비애'는 행복의 부조리함과 바람직하지 못함을 느끼면서 생기는 슬픔이나 서글픔을 표현하고 있었다. 행복을 이루기는 어렵지만 말 한마디에 사라질 정도로 연약하다. 그 부조리함을 '행복의 비애'라는 짧은 말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약간의 불만이 남는다. 어째서 저런 애매한 결말로 끝을 낸건지. 애매한 결말로 끝을 내면서 얻는 이득은 뭐가 있을까. 그저 '생산적 인간'인가? 무언가를 만들기만 하는건가? 수 많은 의문이 의문을 덮고, 결론 지을 수 없다고 말할 수 밖에 없어져서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시간 책을 읽어서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프다. 손을 깍지껴서 위로 들고 좌우로 움직였다. 허리에서 '뿌드득'하는 소리가 나며 조금은 시원해졌다. 창문을 열어보았다. 며칠전 느꼈던 미지근한 바람은 사라지고, 이제는 시원하게 기분좋은 바람이 날아들고 있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보름달은 정원대보름이 1달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창문을 활짝 열고,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허리까지 오는 방범창에 기대어 보름달을 주시하고 있었다.

 

 

 

 

보름달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저 '생산적 인간'인가. 왜 내 이야기에 의문이 생기고, 그 의문들을 결론지을 수 없는거지? 지난 1년간 무얼했냐. 그렇게 질문하면 난 무슨 대답을 할까. 오래전부터 생긴 강박증과 의문. '모든 것의 답은 내릴 수 없어.'라고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느낀 그 경외감은 스스로를 향한 혐오감이었다. 그래 이게 끝이겠지. 내 소설의 결말처럼, 이게 내 결말인거야.

그때 나의 몸을 밝은 보름달이 비추면서, 꽉 찬 행복을 투영하고 있었다.

 

 

 

이게 '생산적 인간'의 비극이야. 그 이야기는 모두 나였어.

비친 행복을 사랑하는 이처럼, 행복을 바랐던 자신을 고문하고 이제는 죽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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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개월 22 일 전
* "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작업량에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일이 끝났다." – "그러나 작업량은 생각보다 많아서 평소보다 늦게까지 일을 해야 했다." * " 저렇게 많이 시키고 5시까지 다 하라는게 말이되나" – "이렇게 많은 일을 5시까지 다 하라는 게 말이 되나." * "시원한 맥주를 한입 크게 들이키며" : 들이키다 -> 「…을 …으로」 안쪽으로 가까이 옮기다. 들이켜다 -> 「…을 …으로」 안쪽으로 가까이 옮기다. * " 스스로를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언제나 옳다고 주장하는 이기적이고, 고집 센 사람처럼 느껴졌다. 사랑은 사람에 따라 형태가 다르고, 그 중 자신이 느낀 한 형태가 보편적인 사랑의 형태라고 주장하는 그들의 말은 이기적인 주장으로 느껴졌다." – "스스로를 '운명적… Read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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